CINELAB2024-09-23 10:18:02
9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베테랑2> 560만 돌파, 10일 연속 1위
<베테랑2>가 개봉 2주차 만에 누적 관객수 56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9월 20일부터 22일까지 주말 동안 91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재개봉한 <비긴 어게인>은 주말 동안 4만 4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습니다. 이와 함께 <사랑의 하츄핑>은 누적 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3위 자리에 안착했습니다.
한편,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는 <트랜스포머 ONE>의 개봉에도 불구하고 <비틀쥬스 비틀쥬스>가 3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누적 수익 약 3000억 원을 기록, 그 인기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반면 <트랜스포머 ONE>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2위에 머물렀으며,
<스픽 노 이블>이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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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생긴 상처는 관리대상일 뿐 없앨 순 없다
팬지는 말 그대로 '쌈닭'이다. 모든 인간에게 시비를 걸고 모든 인간과 싸운다.
가족이고 뭐고 지나가는 행인이든 그녀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것을 넘어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집착적으로 깨끗함에 목을 매고, 좋은 의도로 다가오는 사람조차 공격으로 여기며 모든 사람들에게 이를 갈며 덤빈다.
그녀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지언정 그렇게 보인다.
그녀의 가족들은 모두 그녀의 눈치를 본다. 그녀의 동생도 그녀를 버거워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남편과 아들은 그녀를 무서워하는 것 같다.
그 정도 되면 그녀와 대판 싸울 법도 한데, 그들은 그녀와 대놓고 싸우진 않는다.
그저 그녀가 선사하는 알싸한 욕을 그대로 듣기만 한다. 어떠한 공격적인 의지도 드러내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그녀가 그렇게 공격적인지는 영화가 자세하게 말해주진 않지만 유년 시절에 그녀에게 어른들이 무심함을 넘어 무관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무관심은 그녀로 하여금 표현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표현하지 못한 울분은 화가 되어 그녀의 삶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집착적인 완벽주의와 그 완벽주의를 남에게 요구하는 모습은 일종의 화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녀도 자신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갈피를 못 잡던 그 때, 그런 그녀를 변화시키는 건 놀랍게도 간단했다.
그녀를 변화시킨 건 동생의 진심어린 걱정과 사과였고, 그 사과를 듣자마자 그녀는 다시 10대의 소심하고 어른들 눈치보던 모습으로 돌아간다.
동생은 몰랐던 언니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면서도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모두 느낀다.
하지만 팬지의 아들이 선물한 꽃을 받고 고맙다고 하면서 펑펑 우는 팬지를 보고 있자니 앞서 모든 사람들에게 욕을 하던 팬지의 모습이 스쳐지나가면서도
그녀가 새삼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아, 뭔가 해소되지 못했던 거구나, 사랑받고 싶었던 거구나, 사랑받지 못해서 엇나갔던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생각보다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는 것은 어리숙해도 진심이 담긴 말과 마음이 담긴 조그마한 선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에 대한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는데
어떤 사유로 남편과 사이가 틀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은 표면적으로 어떤 사과의 제스처를 취하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더이상 아들을 들들 볶진 않았지만 남편은 더 미워하는 것 같았다.
한바탕 울고 난 후, 팬지가 평온해졌다고 생각한 남편은 팬지의 분노의 방향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느끼곤 그녀의 우울이 그에게 전이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장면이 계속 맴돈다. 이 커플의 결론은 남남이 되는 것일지 어떨지.
정말 팬지의 분노의 방향이 남편에게 향하게 된 데에는 어떤 내막이 숨겨져 있는 걸까. 영화를 보고 나온 지금도 사실 계속 그게 궁금하다.
팬지를 보면서 느낀다.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영원히 마음의 낙인으로 남지만 그것을 어떻게든 해소해야 한다.
같은 상처를 가졌어도 팬지의 동생은 긍정적으로 살지만 팬지는 그러지 못한다. 상처를 대한 자세가 달랐던 것이다.
팬지를 보면서 다소 안타까웠던 것이 어떻게든 울부짖고 표출했어야했는데 그녀는 쌓아둔 것 같다. 그것이 속병이 되어 세상에 등돌린 것 같다. 보통 무례한 사람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세상이 자신을 등돌렸다고 하던 경우를 종종 보는데 그녀도 비슷한 게 아닐까.
참고로 팬지의 욕을 창의적으로 번역하신 번역가님 대단하신 듯하다. 깔쌈한 욕 번역이영화가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해당 리뷰는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대되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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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의로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듯이
구사일생
경기 대기 중. 홍대의 머릿속에 생각이 많다. 홍대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 홍대. 홍대의 시선은 동료 축구선수 성찬으로 향한다. 인터뷰 중. 빅리그 입단이 확실시된 성찬에게 질문이 쏟아진다. 박성찬 선수! 이 경기는 어떻게 플레이할 생각이십니까? 뭐 빅리그도 물론 좋지만 지금 앞에 있는 경기에 집중해야죠. 겸손함을 보여주는 성찬. 그런 성찬을 바라보는 홍대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경기 시작! 주심이 호루라기를 분다. 갑자기 홍대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 성찬을 도와 팀의 승리를 이끌어야 할 홍대가 성찬이를 맨 마킹 한 것이다. 경기를 던져버리는 홍대. 당연히 라커룸에선 난리가 났다.
라커룸에서만 난리가 나면 다행일 것이다. 홍대의 역주행은 금세 수많은 화제를 낳았다. 빗발치듯 따라온 기자들. 난감한 질문이 들어온다. 그러나 그중에 가장 깐족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유난히 눈이 맑은 기자 하나가 유달리 거슬리게 행동한다. "경기 중 역주행 퍼포먼스는 사기 혐의로 수배 중인 어머니에게 보내는 메시지인가요?" "현재 사기 혐의 수배 중인 어머니의 도주를 돕고 계신 건 아닌가요?" 홍대의 얼굴표정에 무언가 변화가 있다. 화가 난 홍대. 도발하던 기자의 눈을 찌른다. 이 장면은 뜨거운 감자가 돼서 홍대의 커리어에 직격탄을 날렸다. 축구선수로서 은퇴 5분 전인 홍대. 아예 축구계는 접고 연예게 입문을 노리고 있다. 그런데 좋은 걸로 이슈가 된 것이 아니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 이때, 홍대에게 제의가 들어온다. "너 감독해라. 월드컵 나갈 건데. 홈리스 월드컵이야. 다큐 제작팀도 붙을 거다."
감동 실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실제로 2010년에 한국 홈리스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 출전한 바가 있다고 한다. 이 한 줄로 알 수 있는 정보는 두 개다. 하나는 '홈리스'를 소재로 했다는 것과 스포츠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이다.
영화는 홈리스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영화 표면적으로 주인공 롤을 맡은 배우는 홍대 역의 박서준과 소민 역의 이지은 배우다. 이 둘은 영화에서 밑그림이 된다. 무슨 말이냐. 홍대는 홈리스를 하나의 축으로 모으는 역할이다. 또 이 사람들을 다독여서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야 하는 임무가 있다(그 과정에서 이뤄지는 홍대 내적인 성장은 보너스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홍대가 영화의 핵심에 겹쳐지는 순간이 있다. 이는 영화 내내 제시되는 홈리스들의 입장과 홍대가 처해있는 상황이 병치된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런 연출은 영화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영화가 다루는 핵심 소재는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 홈리스와 같은 입장에 놓이는지, 또 어떤 이유로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지가 영화에서 직간접적으로 묘사된다. 약간 부차적인 장면이긴 하지만 홈리스들에 대한 시선이나 '빅이슈'라는 잡지사가 등장하는 방식도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하하거나 희화하는 걸 지양하지만 소재를 다루는 것에 거침없었던 감독의 수가 돋보인다.
또 이 작품은 스포츠영화로서의 장르적 특성을 갖고 있다. 2부에 축구 경기장이 등장한다. 이 축구장 시퀀스의 완성도를 떠나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흥미롭게 볼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글쓴이가 생각했을 때 스포츠영화로서의 장르성을 챙겼던 것이 어느 지점에선 강점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중반부까지 홈리스들을 가르치는 홍대의 모습이 그렇다.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에 갑자기 짠하고 잘하지 않는다.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못하는 게 당연하다. 영화에서 홈리스들 간의 사연이 다양한 만큼 이 피지컬적인 재능도 각자 다르게 묘사되는 부분은 흥미로웠다. 홈리스들의 연령대를 생각해 보면 사실 당연한 건데 섬세한 연출방식으로 리얼리티를 더했다.
몇 명 퇴장당한 축구경기처럼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면 '착한 영화'다. 홈리스에 대해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영화는 좋은 평을 받기 충분하다. 그러나 이와 상응하는 이 영화의 단점을 뽑자면 그 나머지다. 사실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뭉클한 장면이 있다. 신인류의 OST가 들어가는 장면은 역시 감독의 감각이 젊다는 걸 체감하게 한다. 전체적으로 뻔했던 경기장 시퀀스에서 이 노래가 삽입되는 장면 하나만큼은 식상하지 않았다. 또 웃긴 장면도 있다. 홈리스들의 서사를 쌓아가는 과정이 약간 전형적이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양현민 배우의 퍼포먼스는 인상 깊었다.
그런데 이 외의 지점에서 마이너스가 너무 많았다. 우선 첫 번째. 영화는 착하기만 하다. 이를 구체적으로 풀어서 써보자면 영화가 살짝 노골적이라고 느껴졌다는 점이다. 우선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생각난다. 션 베이커의 작품 세계가 그렇지만 영화에서 해결책이 없었다는 점은 우리 각자의 몫으로 설루션을 돌렸다는 점에서 그 작품의 강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 중에 깊이 있는 통찰을 다룬 작품은 많다. 후반부에 약간 김새긴 했지만 시스템이 만든 비극 자체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훌륭하다(물론 영화가 제시한 해결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드림>은 중반부 즈음에 어떤 인물이 누구에게 코미디 대사와 함께 직접적으로 제시된다. 이 인물이 축구대회까지 가는 길에 굉장히 중요한데 이 장면에서 갑자기 방점이 쾅 찍히고 존재감이 옅어지는 건 차치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대사들이 너무 대놓고 들어갔다. 이병헌 감독의 진심이 느껴지긴 했다. 심지어 이 장면에 들어간 코미디 대사들 웃기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대사 하나가 너무 템포에서 임팩트가 커서 이 장면만 기억나는 느낌? 조연 홈리스들의 도전서사가 이 장면이 내포하는 메시지로 귀결이 나는 거면 모르겠다. 어차피 이 장면을 보여주려고 후반부가 있는 거면 이다음 시퀀스들이 굳이 없어도 되지 않을까?
또 인물을 설정하는 방식에서도 꼼꼼하지 못한 것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우선 홍대 쪽 묘사다. 홍대 역을 맡은 박서준 배우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뭔가 과한 초중반부를 이끌 만큼 본인이 갖는 스타성을 적절히 활용한다. 특히 초반부에 홍대가 사고를 치고 인터넷 밈으로서 주인공이 퍼지는 영상이 있다. 이런 건 배우가 박서준이고 그의 역할에 이입되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영상이다. 그러나 이 인물이 약간 과시적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쌍쌍바가 등장하는 시퀀스다. 음.. 모르겠다. 박서준과 이병헌이라는 이름을 보고 극장을 가는 사람 중 이런 방식의 연출을 원했던 분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또 이 홍대는 중후반부 지점을 지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다. 이 시퀀스는 좀 나사가 빠진 듯하다. 소민이의 직업적 역량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던 건가 싶다. 뭐 비단 홍대라는 캐릭터 자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도 이야기 몰입에 지장을 준다. 바로 홍대 어머니 캐릭터다. 이 홍대 어머니 캐릭터가 이야기에 있어서 기본 바탕이 된다. 이 인물의 어떤 행동들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가? 의 문제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으니 차치하기로 한다. 이 사람은 이야기의 핵심과도 영 닿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심지어 어떤 장면에선 몰입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왜? 홍대가 갖고 있는 내적인 문제는 초반부에 나온다. 홍대가 갖고 있는 이 문제를 영화는 후반부까지 계속 이어지게 장면을 구성했다. 이 부분에 집중하고 보는 게 부담스럽지 않고 깔끔한데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들어오니 좀 난잡해진다. 하려고 했던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또 홍대와 홍대 어머니의 연출뿐만 아니라 홈리스와 소민 캐릭터도 영 아쉽게 느껴진다. 우선 소민 캐릭터다. 이 캐릭터는 좀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지점이 많다. 소민이가 하는 대사도 약간 예전 영화들 같다. “약 먹을 시간 됐어”같은 대사들 뭔가 아쉽다. 대사를 떠나서도 인물의 동선이나 움직임들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는 것은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소민 캐릭터에게 별로 마음에 드는 점이 없다. 그나마 이지은 배우의 미모 빼면 굉장히 전형적인 캐릭터와 평범한 대사들만 반복한다. 안 그래도 상투적인 화법을 더 진부하게 만든 것이다. 글쓴이가 이지은 배우의 팬임에도 불구하고 소민이라는 인물이 대사 할 때마다 눈을 감게 됐던 것도 여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지은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점에서 오는 단점이 이 영화에서 느껴졌다. 가수와 배우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카메라 드는 폼이 좀 이질감이 들었다. <브로커>에서 가수 커리어 내내 한 적 없는 쌍욕을 하는데 어색하지 않았던 것과는 정반대다.
홈리스 쪽 캐릭터에서도 아쉬운 지점이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전부 아쉽다. 그중에서도 장점과 단점을 뽑아보자면 양현민/고창석 배우는 이 작품의 윤활유가 된다. 소수자 다음으로 중요한 영화의 소재는 가족이다. 고창석 배우는 가족영화로서 가져야 할 뭉클함을 치트키라도 쓴 것 마냥 다 만든다. 또 양현민 배우는 비주얼과 말투부터 코미디적 요소를 잘 살린다. 글쓴이가 가장 많이 웃었던 부분이 이 양현민 배우 캐릭터에 있기도 하다. 그러나 홈리스 서사에서 아쉽게 느껴졌던 건 이현우 배우가 맡은 인선 역이다. <영웅>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비슷한 문장을 썼었던 것 같다. 이 배우가 처음 등장할 때 '아마 이럴 거야' 생각했다. 그리고 정확히 다 맞아떨어져 갔다. 예상과 단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 배우는 커리어에서 확실한 전환점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이 영화에서 인선 역의 입지처럼 이 배우의 등장만으로도 모든 줄거리가 예상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거 실화냐
그렇게 아쉬운 인물연출은 영화의 줄거리와도 이어진다. 1부 홈리스들을 모으는 장면에서 나타나는 불균일함은 뭐 어쩔 수 없다고 치자. 2부는 약간 당황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다. 일단 실제 홈리스 월드컵의 규칙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규칙의 여부를 떠나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 있어 각색이라는 부분은 연출가의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몇몇 장면들은 영화 감상에 있어 내적인 모순을 스스로 보여주는 듯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홍대 일행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자 어떤 사람들과 대화하는 신이 있다. 이 사람들은 영화 후반부의 터닝포인트가 되어 이야기를 쉽게 푸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인물들에게 더 쉬운 접근법을 만들어준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사람들은 영화에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동한다. 없어도 되는 존재를 떠나 팀의 조직력과 완성도의 측면에서도 강한 유효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최고 단점이다.
또 이 축구경기를 중계하는 중계진들은 영화의 리얼리티성을 떨어트린다는 악영향을 끼친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실화를 찾아보니 해설자들이 실제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들을 실제로 했는지 안 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그 상황이 있기 전까지 영화에서 한국의 홈리스에게 감정이입할 요소들을 넣었어야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는 영화 전체적으로 '굳이 말 안 해도 알 걸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습관'의 연장선상같이 느껴져서 이병헌 감독의 단순한 실수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홈리스들의 모습. 강박적으로 느껴지는 균형감각. 현실적인 어려움. 이런 큼지막한 덩어리들은 대놓고 때려 박았다. 그걸 잘 이어 붙이면 뭐 아무 문제없었을 텐데 은근슬쩍 딱 갖다 놓아서 영화가 끊기는 듯한 느낌은 아쉽다. 이렇게 예상이 가는 장면들의 연속이라는 점은 영화 후반부에 있어 '언제 끝나나' 싶게 생각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좋은 영화는 맞지만 재밌지는 않았어
사실 이 <드림>을 기대했다. 글쓴이는 그냥 웃긴 영화, 재밌는 영화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품고 있는 좋은 시선에 대한 강박이 템포를 끊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하나의 이야기 같지 않게 들린다는 것. 상황을 전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나 이병헌이라서 이런 거 잘한다 다들 알지??' 같은 것들은 감독의 전작 <극한직업>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지게 한다. 분명히 재기 발랄한 무언가가 있었는데 말이다. 박서준의 열연, 이지은의 사랑스러움도 이병헌이라는 감독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단점을 받쳐주지는 못했다. 좋은 의도로 착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완성도에 생긴 구멍을 메워주지는 않는데 말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박서준과 이지은 배우, 하현상과 신인류의 팬이라면 볼만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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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취하지 않는 단 한 사람
영화를 보기 전, 다르덴 감독이 한국 관객에게 남긴 메시지를 먼저 접하게 되었다. “<토리와 로키타>를 보는 한국 관객들이 한국에 도착하는 또 다른 ‘토리’와 ‘로키타’ 같은 이주 아동들의 친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라는 문장을 읽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온 ‘특별 기여자’들과 그 아이들을 떠올렸다.
‘난민’이라는 단어는 그동안 건강한 담론보다는 혐오 표현으로 이어지기 일쑤였지만, 그때만큼은 그래도 여론이 갈린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우리와 함께 일해 온 ‘특별 기여자’들인데 팽해서는 안 된다는, 한국인의 의리가 불안을 이겨낸 목소리가 있었다. 여론이 이 정도라면 그래도 다행이다, 생각하며 무사 귀환에 안심한 후로는 나도 크게 관심 갖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달 친구들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독서모임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 당시 특별 기여자 자녀들이 학교에 갈 때, 기존 학생들에게 전달할 선물을 하나씩 들려 보냈다고. 이것이야말로 아이히만의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무능’과 무엇이 다르냐며 분개했다. 차라리 옛날 반장 엄마들처럼 햄버거나 쫙 돌리는 게 낫지, 기존 학생들이 시혜를 베푼 것이 아닌데 마치 그런 것처럼 저자세로 들어가게 만드나?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경계를 넘어설 텐데 어른들이 먼저 선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뒤늦게 들은 내가, 토리와 로키타 같은 이주 아동의 친구라 말할 수 있나. 지긋지긋한 내 안의 아이히만을 인지하며, 다소 무거운 감정을 안고 영화관으로 들어섰다. 토리와 로키타의 행복과 무운을 비는 마음으로.
영화는 불안한 눈빛의 로키타에서 시작한다. 몇 마디 이야기가 오고 갔을 뿐인데, 관객은 금방 로키타의 거짓말을 눈치챌 수 있다. 로키타의 뒤를 따르는 카메라와 함께 가다 보면, 로키타의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토리와 로키타는 각자의 이유로 아프리카 어딘가를 떠나 온 아이들이다. 벨기에에 정착해서 함께 살고자 하지만, 진작에 체류증을 받은 토리와 달리 로키타의 서류 발급은 계속해서 지연된다. 두 사람은 남매임을 증명해서 체류증을 받고자 하지만, 삶은 녹록하지 않다.
두 사람은 식당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돈은 모이지 않는다. 잊어버릴 만하면 나타나서 입국 비용을 내놓으라고 하는 브로커들이 있고, 고용주 또한 여러 모로 아이들을 착취하며, 심지어 로키타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돈을 보내야 한다.
아이들은 피자도 배달하고, 식당에서 노래도 한다. 프랑스어로 노래하고 이어 이탈리아어로 노래한다. 이국의 언어로, 서사를 부여하면서 불러야 하면 노래도 노동이 된다. 이들의 일은 점차 위험해진다. 위험한 밤의 거리에서, 마약 배달까지 하고 있다. 아직 어려도 야무진 토리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야무지게 챙겨 받을 줄 안다.
노동이 되어야 하는 노래와 대조적으로, 두 사람의 지친 밤을 위로하는 노래가 있다. 토리가 따라 부르는 로키타의 자장가. 실제 카메룬 언어로 된 자장가라는데, 내 귀에는 어쩐지 자꾸 익숙한 찬송가처럼 들렸다. “사랑의 주 사랑의 주 내 맘 속에 찾아오사 내 모든 죄 사하시고 내 상한 맘 고치소서”라는 한 구절처럼. 아무리 뒤져봐도 찬송가라는 말은 없던데. 그러나 진짜 찬송가였다고 해도 그 노래는 로키타를 구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브로커들이 로키타에게 만남을 요구하는 장소는 언제나 교회다.
아직 어린 어깨에 책임이 너무 많다. 스스로를 보호하기에도 어린데, 자기 세상을 지켜야 한다. 그 세상에서 유일하게 서로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로키타에게는 토리, 토리에게는 로키타이다. 두 사람이 어떤 서사를 통해 여기까지 왔는지, 어떻게 이런 유대 관계를 쌓게 되었는지 영화에서 밝히지 않는다. 다만 유독 힘든 날 보고 싶은 사람도 서로이고, 학교에서 ‘아는 사람’ 그리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도 서로일 뿐이다. 겁먹고 숨을 헐떡일 때 약과 물을 건네주는 한 사람, 대신 문을 두드려 따져 물어주는 사람, 착취의 세상 속에서 착취하지 않는 단 한 사람이다.
아이들의 깊은 우정에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피부로 감각하여 정확히 알고 있다. “우리는 환영 못 받잖아.” 로키타가 시시각각 처하는 상황은 분명 비극이지만, 세상이 로키타를 그전까지 대해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끌고 가고, 무슨 일이 생겨도 탈출구가 없는 건물에 들어가야 하고, ‘원한다 je veux’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사람이라면 응당 가지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로키타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아는데도, 흥청망청 사는 어른보다도 훨씬 똑똑하게 삶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영화의 많은 장면에서 카메라는 아이들의 노동하는 등을 따라간다. <로제타> 때부터 일하는 누군가의 등을 다정하게 따르던 그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 자체로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러나 알고 있다. 다르덴 형제가 만드는 영화의 감각에 안심할 수 없는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다는 걸. 영화 속에도 친절한 개인은 있었다. 기꺼이 제 자리에서 자기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는, 잘 곳 없을 때 오라고 주소를 주는 쉼터 선생님도. 그러나 개인의 친절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문제를 우리는 알고 있다.
다르덴 형제는 말했다.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길, 토리와 로키타의 이야기에서 조금은 마음에 남은 것이 있길 바란다고, 그래서 주변과 이야기를 나눠 주길 바란다고.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왜 다르덴 형제가 토리와 로키타의 친구가 되어 달라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세상만큼은 아니었으면, 사라지지 않도록 아이들이 그 자리에만 있을 수 있도록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이루어 갔으면.
그런 마음으로 잠을 자고 아침을 맞으니, 세상은 어린이날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얼마나 환대하고 있을까. <토리와 로키타>가 던진 질문을 계속 입 안에서 굴려 본다. 담담하여 다정하며, 더 깊은 담론을 끌어내는 이 영화는, 아마 남은 오월 내내 '오월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는 해맑은 노래와 함께 잔상처럼 남아 있을 것 같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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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됐지만 그 끝은 알 수 없던, <미드 90>
* 글에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드 90 Mid90s, 2018 제작
미국 | 드라마 | 85분
감독: 조나 힐
시작됐지만 그 끝은 알 수 없던, <미드 90>
출처: 영화 <미드 90> 스틸컷
여기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랑스러운 손길을 느껴본 적 없는 아이가 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나, 진정으로 함께 산다고 확신할 수 없어 외로운 13살 사춘기 소년, 스티비. 아빠의 존재는 궁금하지 않고 엄마의 관심은 오직 생계유지이며, 형(이안)은 무차별적인 폭력만 가한다. 가족이지만, 큰아들 생일에 남자친구 얘기를 하며 부끄러워하는 엄마와 동생이 건넨 선물을 똥 씹은 표정으로 내던지는 형을 어린 스티비가 온전히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다. <미드 90>는 스티비의 삶을 이루는 시공간을 담아내는 일에 주력한다. 왜 왜소한 아이의 몸에 푸른 멍이 가득한지 설명하지 않는다. 처음엔 그를 방황하는 청춘으로도 표현하지 않는다. 매일 가족 눈치를 보며 아슬아슬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하기 바쁜 아이에게 ‘방황’과 ‘청춘’은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가혹한 처사니까. 따라서 스티비의 세계는 외줄타기처럼 아찔하다. 불안이 가득한 사건들은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그 사건들은 전부 시작만 존재할 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 어떤 사건이 스티비를 무자비하게 삼켜버릴지 짐작할 수 없기에 영화 <미드 90>은, 해피엔딩은 물론 치유 과정도 섣불리 기대할 수 없는 이야기로 우리를 맞이한다.
스티비는 형의 방 안에서 세상을 배우며 산다. 양아치 같은 형을 혐오하면서도 동경하고 닮고 싶어 한다. 우연히 거리에서 어른의 기세에 눌리지 않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동네 형들을 발견하기 전까진 그랬다. 형의 주먹질에 무방비로 노출됐던 스티비는 보드를 타고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낯선 그들에게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저들과 함께라면, 자신을 옭아맨 현실에서 탈주할 수 있을 거란 강한 확신에 다음 날부터 동네 형들의 아지트 보드 가게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서클 눈치를 보며 며칠을 보냈을까, 마침내 서클 일원 로벤이 스티비에게 악수를 청한다. 스티비는 로벤의 ‘함부로 고맙다고 말하지 말라’는 첫 번째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들의 언어를 열심히 배우고, 행동강령을 습득하며 서클에 스며든다.
출처: 영화 <미드 90> 스틸컷
"땡볕! 너도 갈래?"
서클의 입단 조건은 명확했다, ‘우리와 똑같이 하며 살 것’. 스티비는 거친 욕설과 도를 넘는 일탈을 일삼는 서클에 온전히 소속되기 위해 정말, 죽도록 노력한다. '멋들어진 보드를 타면서 술과 담배를 하고, 여자를 옆구리에 끼고 틈틈이 섹스를 즐기는 어른'이 되고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활용한다. 서클은 스티비에게 자유이자 꿈이며, 우정이자 사랑이 꿈틀거리는 곳,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자 유일한 자부심으로 정의된다. 형의 낡은 보드를 가장 아끼는 노래 테이프와 바꾸고, 위험한 도전을 서클 일원으로 함께하고, 엄마 돈을 훔치는 등 숱한 노력 끝에 스티비는 새 보드와 서클의 일원임을 인증하는 별명, ‘땡볕’을 얻는 데 성공한다. 아이러니하지만 드디어 그도 험악한 세상으로 내던져진, 방황하는 청춘이 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과거, 엄마 돈을 훔치기 전에 빗으로 자기 허벅지를 세게 문지르며 자신을 체벌했던 아이는 달라진다. 집 안에서 혼자 고독과 외로움을 피하고자 했던 자학을, 보드를 타는 서클 친구들과 함께 차들이 다니는 도로 위에서 마음껏 행한다. 그들에게 자학은 자학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는 세계에선 당연한 일과였고, 맥없이 흐르는 시간 속의 즐거움이었으며, 자연스러운 경험 축적이었다. "어차피 우린 여기서 이렇게 살다가 죽어, 그러니 그냥 즐겨!" 서클 일원, 존나네의 말처럼, 불합리와 불안정, 불건전함은 곧 삶의 규칙이자 지혜였으니까.
출처: 영화 <미드 90> 스틸컷
서클과의 교류에도 스티비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형의 무시무시한 폭력과 엄마의 강압적인 폭언은 계속됐다. 스티비는 하루빨리 그 누구도 함부로 자신을 건들 수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분노를 표출하고, 느껴보지 못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껴야 했으며, 이는 가족을 이해하는 일과 가족과 함께 사는 과정보다 훨씬 중요했다. 그 결과 스티비는 더 위험한 상황 속에 뛰어든다. 한 손에는 담배를, 다른 손에는 술병을 들고 다니며 기꺼이 몸을 땅바닥에 내리꽂는다. 그가 내놓을 수 있는 거라곤 종잇장 같은 몸뿐이고, 친구들과 평생 함께할 수만 있다면 온몸이 부서져도, 심지어 죽을 뻔해도 좋으니까. 스티비의 결연한 목표가 서클 일원들의 삶으로 연결되고 흡수되자, <미드 90>은 기다렸다는 듯 스티비에서 멈추지 않고 서클 개개인이 가진 속사정을 이야기 곳곳에 털어놓는다.
레이, 존나네, 4학년, 루벤도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동시에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중이다. 영화는 서클 활동을 통해 이들이 사실 자기 미래를 향한 희망을 잃지 않고 있음을 설명한다. 사회는 물론 가족에게까지 보호받고 도움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발적으로 탈출해 자기와 같은 동족을 만나, 새로운 가족을 결성한 이들을 응원한다. 세상 밖으로 나온 스티비의 필연적인 성장통과 서클 친구들의 내일을 향한 의지를, 넘어지고 깨져도 끝끝내 일어나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스케이트보드로 전달한다. 또한 서클 이야기를 비행 청소년들의 사건 사고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가 낳은, 묵과할 수 없는 문제임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문제투성이인 서클이 이들의 유일한 안식처로 이해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스티비가 보드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 게 아니라 오히려 안도감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는 이유이다. 이후 스티비는 존나네의 음주운전으로 크게 다치고 만다. 그러나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친구들의 우정과 연대에 활짝 웃는다.
출처: 영화 <미드 90> 스틸컷
영화 속 어른들은 행동하지만, 서클의 멈추지 않는 보드 질주에 한없이 무력하게 비친다. 도로의 무법자들을 막는 일과 비행 청소년과 자기 아들을 구분하는 일에 급급할 뿐이다. 하지만 <미드 90>은 어른을 절대 생략하지 않는다. 방관자든 제삼자든 구경꾼이든 상관없이 보드를 타는 서클 주변에 항상 위치하게 하고, 두 세계를 한 화면에 담는다. 본 영화가 시각적으로 더욱 의미 있는 건 서클의 성장통을 단독으로 노출하지 않고, 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혼란을 매 순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목적은 당연히 두 세계의 통합. 영화는 그 귀중한 결과를 마지막 장면에 수놓는다. 병원에 입원한 아들을 찾아온 서클을, 아들의 진정한 친구들로 받아들이는 스티비 엄마의 깊은 이해와 따뜻한 눈빛으로 말이다.
<미드 90>은 그 나이를 겪어야만 하는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그린 작품이다. 성장을 위해 방황을 필수적으로 엮었고,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이들의 모습을 따스하게 비췄다. 이따금 현란하고 화려한 보드 곡예가 눈물짓게 하는데, 우린 이미 이 눈물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시작됐지만 끝은 알 수 없어 고통스러웠고 또 다행스러웠던 우리의 그때를, 그 간절했던 순간들을 잊었을 리 없으니까‥. 단언컨대 <미드 90>이 단순히 가혹하기만 한 영화였다면, 많은 이가 자전적 얘기를 담은 조나 힐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에 무한한 찬사를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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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치열하고, 또 애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엄마, 영순(A Mother Youngsoon)
South Korea/2022/85min/이창준 감독 작품
영순은 2007년 탈북했다. 남편은 자살했고 두 아들 중 큰아들은 북한에 있다. 그녀는 같이 온 작은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엄마가 북한에서는 형에게만 사랑을 주고 자신을 내팽개쳤으며 이제는 남한에 데려와서 탈북자로 낙인찍히게 했다고 미워한다. 영순은 북한에 억류된 국군 포로의 딸로 태어나 늘 가난했고 유일한 희망은 재능이 특출났던 큰아들이었다. 영순에게 작은아들은 희망 대신 숙제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상하기 어려운 마음가짐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삶에 대해 가진 마음가짐은 워낙 견고하고 단단하며, 또 씩씩하고 용감해서 내가 감히 그 마음가짐의 무게를 예측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엄마, 영순>의 주인공 '영순'이 내겐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2007년 작은아들 '소사'와 함께 깊고 넓은 바다를 헤엄쳐서 탈북한 엄마 '영순'은 함께 경마장 근처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같은 집에 살고 있다. 영순은 평일에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며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영순이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아들 '소사'였다. 영순은 노가다에서 일한다고 뭐라 하는 다른 이들의 말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아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씩씩하게 자기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한편, 두 모자는 같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서로를 의지하거나 서로에게 진솔한 대화를 털어놓지는 않는다. 영순과 소사에게는 폭력적이었던 남편이자 아버지의 자살, 북한에서 행방불명된 큰아들이자 형, 다른 이들의 편견 어린 시선 등에서 비롯된 상처가 마음 깊이 존재한다. 이들은 남한 땅에서 평범한 사람이 되어,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그뿐이다.
이전에 내가 시청했던 다른 탈북민의 다큐멘터리와의 차이점은 '탈북 자체에 대한 스토리보다는 그저 다른 이들과 똑같은 평범한 사람인 이들이 살아가는 그 삶 자체에 더 집중'했다는 것이다.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영순과 소사의 모습을 보다보면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자신의 삶을 애틋하게 생각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절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 자신의 아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해서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엄마.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고, 끊임없이 새로운 난관을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아들. 치열하고, 또 애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가족의 삶을 생각하는 그들을 미워하는 방법을 나는 모른다. 미워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저 다른 이들과 똑같은 '평범한' 모습을 원하는 이들의 삶에 대해서. 평범해지기 위해 치열한 과정을 거쳐 새로운 땅에 도착했고, 또 평범한 삶을 위해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그저 당장 내가 바라는 것은 이들을 향한 조금의 편견 어린 시선도 거두는 것. 그저 있는 그대로,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본다면 어느 순간 그 시선이 다정한 시선으로 변해있을 것이라 믿는다.
*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2022.09.24(토) 13:30 메가박스 백석점 8관
2022.09.26(월) 10:30 메가박스 일산 벨라시타 101호
2022.09.28(수) 10:30 메가박스 백석점 컴포트 6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09월 22일 - 0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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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잡한 감정이 나쁜 생각으로 이어질 때 필요한 이야기
- *이 글은 시사회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감정은 복잡하다. 땅따먹기 하듯 정확하게 선 그을 수 없고 돈을 셀 때처럼 정확히 셈할 수 없다. 어림짐작할 뿐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때론 모순되는 감정이 뒤엉켜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랑, 외로운 질투처럼 머리로는 이해 못 할 기분에 사로잡힌다. 복잡한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쁜 생각으로 이어질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 속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해결책을 고민해보자.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The Professor and the mad man)'은 빅토리아 시대 '옥스퍼드 사전 편찬'에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다. 사전 편찬 책임자인 '제임스 머리(멜 깁슨)'은 방대한 양의 문학 인용문을 찾기 위해 영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쓴다. 그의 편지가 우연히 정신병원에 구금된 윌리엄 마이너(숀 펜)에게 닿게 된다. 사전 편찬에 알 수 없는 열정을 느낀 윌리엄은 제임스에게 단어 예문 보내며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을 예고편으로 미리 만나보세요! ▼
언어에 능통한 두 주인공이 등장한 덕분에 영화의 대사가 한 편의 문학작품 같다. 주인공들의 생각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거나 복잡한 감정을 시 구절처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제임스가 문학 인용문을 찾기 위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의되지 않는 언어를 바다로 설명한다.
“어휘의 바다에서 우릴 이끌어 줄 해도나 나침반은 없습니다. 과학이 규정한 기준들이 중요했듯이 영어 또한 그만한 존중을 받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의 단어를 보내주십시오. 그물처럼 얽힌 편지의 놀라운 미로 속에서 함께 힘을 쏟으며 연대합시다.”
은밀한 암호 같은 대사와 달리 화면 연출은 굉장히 솔직하다. 윌리엄이 낯선 남자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오프닝부터 시작해서 정신병원의 가학적인 치료 장면까지 여과 없이 보여준다. 거짓 없이 보여준 잔인한 현실과 아름답게 들리는 대사는 상반된 매력을 뽐내며 관객이 주인공들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옥스퍼드 사전에 숨겨진 이야기
영화 ‘프로페서 앤 매드맨'의 원작은 저널리스트 사이먼 윈체스터가 출간한 <교수와 광인>이다. <교수와 광인>은 옥스퍼드 사전 편찬 당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으며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영화의 핵심 소재인 '옥스퍼드 사전'때문에 단어 자체가 주는 따분함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게다가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원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 검색의 시대이니 종이 사전을 만드는 내용이 처음에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영단어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자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강한 의지를 상징한다. 옥스퍼드 사전은 1150년 이후의 영어를 모두 수록했고, 단어의 형태, 철자, 의미의 변천이 상세하게 기술되어있다. 12권의 초판이 완성될 당시 414,825개의 표제어와 1,827,306개의 예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전이 출판되지 않았다면 영어의 많은 부분은 기록되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옥스퍼드 출판부는 매년 그해 등재하는 신조어를 발표할 권위를 부여받았다.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나요?
역사에 길이 남을 옥스퍼드 사전의 편찬 과정은 치열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현실의 얄궂은 장난으로 인해 복잡한 감정과 고뇌에 빠진다.
제임스는 사명감과 무력감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언어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제임스는 사전을 편찬하며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학문의 꿈을 이루려고 한다. 그는 사전 편찬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헌신하지만, 수많은 단어와 예문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에 좌절한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빈자리에 지쳐 눈물을 흘리고 호시탐탐 그의 자리를 노리는 이들에게 가능성을 의심받는다. 위기에 처한 그에게 구세주처럼 윌리엄이 나타난다.
윌리엄의 사정은 조금 더 복잡하다. 의사이자 장교로 살아온 윌리엄의 내면엔 깊은 자괴감과 극복하고자 하는 욕구가 충돌한다. 그는 군인 시절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끝내 정신질환마저 앓게 되며 밤마다 낯선 사람의 환영을 본다. 정신병원에 갇힌 그는 뛰어난 어휘력으로 사전 편찬의 해결사 역할을 한다. 그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예문을 찾는 순간엔 낯선 사람에게 쫓기는 느낌에서 벗어나 무언가 쫓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만남과 동시에 친구가 되어 자연스러운 대화를 한다.
영화는 사전 편찬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자세히 보면 사전을 만들던 두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어딘가 조금씩 상처 입고 외로운 이들이 모여 서로를 걱정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들의 관계를 우정, 가족, 연인처럼 다른 단어로 부를 수 있으나 모든 관계의 밑바탕엔 사랑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느낄 때 그들의 복잡한 감정은 방황을 멈춘다. 나아가 서로를 향한 사랑만이 그들 앞의 고난을 헤쳐나 힘을 준다.
다시 우리의 복잡한 감정을 들여다볼 시간이다.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질문은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고 감정의 바다에서 당신을 이끌어 줄 해도나 나침반은 없다. 그러니 그물처럼 얽힌 사랑의 놀라운 미로 속에서 함께 힘을 쏟으며 연대해보자.
* 본 콘텐츠는 브런치 jadeinx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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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주 최신개봉영화(특송, 하우스 오브 구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청춘적니, 클리포드 더 빅 레드 독)
[WEEKEND CHOICE MOVIE] 2022년 1월 2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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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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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영화 후기 / 매즈 미켈슨 주연 / 덴마크 영화 / 영화제목이 갱단 이름이었다니.. ^^;;;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작남의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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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왕국을 되돌려 놔야죠." 2025년 3월, 마법같은 스토리가 펼쳐진다! [백설공주] 메인 예고편 대공개 [백설공주] 2025년 3월 극장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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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코다> 뮤직 예고편
24/7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 '루비'는
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간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기쁨과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다.
합창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일스와의 듀엣 콘서트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까지 얻지만
자신 없이는 어려움을 겪게 될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루비는 망설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