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9-30 15:31:25
9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한국인 애니메이터 참여한 <와일드 로봇> 북미 1위
드림웍스 30주년 기념작 <와일드 로봇>이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이 작품은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이자 아마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피터 브라운의 아동 문학 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것으로,
로봇과 동물들이 자연 속에서 펼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립니다.
특히, 한국인 1호 드림웍스 애니메이터들이 참여해 더욱 주목받고 있으며,
작품의 뛰어난 영상미와 그림체, 주연 캐릭터들의 연기, 감동적인 사운드트랙이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한편, 국내에서는 <베테랑2>이 640만 명을 돌파했으나, 흥행세가 크게 꺾여
1000만 관객 돌파가 쉽지 않을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어 주말 관객수 12만 명을 동원한
<트랜스포머 ONE>이 2위, 재개봉을 한 <비긴어게인>이 3위에 올랐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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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이 캔 스피크>
* 이 영화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간단한 감상을 원하시는 분은 처음 두 단락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영화를 감상하신 후에 다시 보러 와주시기 바랍니다.
간만에 좋은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아주 잘 차린 가정식이라는 인상을 준다. 너무 맵거나 짜지도 않고, 적당히 감칠맛이 도는, 거창하지는 않지만 맛있고 자꾸만 생각나는. 그리고 건강하고 배부른 한 끼 식사.
성급한 일반화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영화를 보고나서 이토록 개운한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서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한국민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건을 다루고 있으면서, 그것을 자극적이지도, 신파적이지도 않게 완급을 잘 조절했다. 사건의 진행은 나름의 개연성을 가지고 있고, 인물들 간의 관계도 촘촘한 편이다. 영화 중간 중간에 숨어 있는 위트들은 어떤 사람도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 그래서 편하다.
아래에서는 영화 전반에 관한 간단한(혹은 두서없는) 감상을 다룰 것이다.
1. 인간적인 원칙주의자들의 만남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의 양 끝단에 서 있다. 나옥분(나문희 분)은 도깨비 할머니라고 불릴 정도로 구청 직원들과 시장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하는 극성스러운 민원인이며, 유민재(이제훈 분)는 그런 옥분을 상대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서류부터 제출하시라'는 말을 하거나, 자신보다 높은 지위의 상대에게 당당하게 그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원칙주의적인 직원이다.
이런 원칙주의자들은 사실 적이 많다. 사람들은 원칙에 벗어나길 좋아하니까. 옥분에게는 시장과 구청 사람들이 그렇고, 민재에게는 그의 하나 뿐인 동생이 그렇다. 그들이 겪는 갈등은 원칙을 지키려는 자와 그것을 피해 가려는 자의 대립에서 피어나게 된다. 카메라는 그들의 이런 모습을 먼저 조명한다.
언뜻 보기에 옥분과 민재, 이 두 사람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도 보인다. 옥분은 할 일 없어 허구한 날 구청을 찾아와 민원이나 넣는 극성스러운 할매고, 민재는 토익 950점에, 업무처리까지 탁월해 구청장에게까지 인정받는 능력있는 인재다. 그런 민재는 정도도 모르고 구청 직원들을 성가시게 하는 옥분이 못마땅하다. 더군다나 뜬금없이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억척스럽게 달라 붙으니 그녀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러나 사실 이런 원칙주의자들은 오히려 합이 잘 맞기 마련이다. 사실 상 두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칙주의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옥분의 원칙주의는 그녀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불의에 대한 저항감에 기인한다. 무척 깐깐하고 무작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그녀는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설령 그것이 오지랖이고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지언정 그녀는 그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불의와 불합리함들이 사람을 어떻게 다치게 하는지를 그녀는 이미 겪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억척스러움이, 마냥 밉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그녀의 사정에 있다. 그녀의 결핍, 그러니까 가정의 부재와 아픈 과거로 인한 상처는 도리어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다.
민재의 원칙주의는 다소 엘리트주의적으로 보인다. 옥분이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할 때 일부러 어려운 단어들을 숙제로 내주고 외워오라고 하거나, 건물 재건축(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과 관련된 일로 구청장에게 편법을 제안하는 것은 얄밉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모습은, 타고난 본성일 수도 있겠지만, 어린 동생을 홀로 부양해야 하는 그의 사정과도 크게 떨어져 있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부모님이 부재한 상황에서 그는 좀 더 단단해지고, 좀 더 능청스럽게 그의 삶을 살아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옥분의 등장은 그를 난감하게 한다.
결국 두 사람의 원칙주의는 그 성질이 다소 달라보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 두 사람은 인간적이다. 이러한 원칙주의와 인간미는 두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게 하면서, 동시에 서로에게서 닮은 점을 찾고,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는 관객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두 주인공들의 만남을 애정 어린 눈으로 감상할 수 있게 돕는다.
2. 나는 말하고 싶다!
민재와 옥분의 기나긴 실랑이는 민재가 그녀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끝이 난다. 민재는 온갖 재치있는 교수법을 동원해 그녀를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열정적인 학생인 옥분은 그를 통해 아주 유창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훌륭한 한 사람의 영어 화자로 거듭난다.
이러한 모습은 언뜻 많은 영화에서 그려온 멘토와 멘티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한다. 재능은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못한 제자가 좋은 스승을 만나서 그의 꿈을 이룬다는 플롯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말하자면 전형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좀 더 특별한 것은, 단순히 영어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것이 옥분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영어는 말하자면 수단이다. 그녀에게는 많은 동기가 있다. 영어를 할 수 있어야 먼 타지에서 떨어져 사는 그녀의 남동생과 소통할 수 있고, 세계에 그녀와 그녀의 벗들이 겪었던 억울한 사연을 알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 절실했고, 더 열정적이다. 민재가 한 일은, 그런 그녀를 살짝 보조(Nudge)해준 것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재는 아주 좋은 교사다. 그는 학습자의 수준에 맞춰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파악해 가르쳐주는 방법을 알고 있다. 노래를 통해 가사를 외우는 것은 꽤 구시대적인 교수학습법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효과적이다. 그의 이런 모습은 옥분이 먼저 찾았던 학원 강사의 모습과 대비된다. 그러나 강사의 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반에는 너무 많은 학생이 있었고, 따라서 학생 개인에게 관심을 두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바람직한 방법은 학원에서 그녀를 위한 특별반을 마련해주는 것일 텐데, 학원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므로 그다지 끌리는 조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어 과외를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최적의 환경인 셈이다. 사실 전문 과외 선생도 아닌 민재를 영어 과외 선생으로 들인다는 것 자체가 좀 넌센스이기는 하지만 영화적인 장치로 이해해 보자.
사족 같이 덧붙이자면, 사실 그녀는 이미 상당한 영어 실력의 소유자다. 그녀는 영어학원에서 민재와 원어민 화자가 대화하는 것을 얼추 이해할만큼 능력이 좋다. 영어를 차치하더라도, 그녀는 각종 민원을 꼼꼼하게 지적해 제출할 정도로 법에 대해서도 잘 아는 편이다. 그녀는 단순히 노력만 열심히 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아주 영민하고 또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녀의 잘못을 잘 시인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줄 안다. 이는 좋은 학습자의 자세이며, 그녀가 끊임 없이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임을 시사해준다.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그녀가 만약 그녀의 아픈 과거가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더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너무나 가슴아팠다. 그러나 현실의 그녀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충분히 멋있기 때문에, 너무 아파하지만은 않을 수 있었다.
3. 사건이 아닌, 인간 나옥분
이 영화에서 특히 높이 평가하는 것 중 하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녀를 단순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건'의 대상이 아닌, 그러한 아픈 과거를 지닌 한 사람의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녀는 누군가의 어머니도, 아내도 아니다.
물론 이는 그녀의 아픈 관거에 기인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점은 오히려 그녀를 누군가의 보조자가 아닌, 그녀의 삶의 당당한 주체로서 바라보게끔 한다. 그녀는 매일 같이 구청을 찾아 또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한 사람의 영웅이자, 정심과 진주댁에게는 소중한 벗이, 그리고 민재와 그의 동생에게는 의지를 하면서도 또 의지가 되는 사랑스러운 이웃이자, 새로운 가족이 되어 준다. 비록 그녀는 일제에 의해 그녀의 삶의 일부를 강제로 빼앗긴 적이 있었지만, 그래서 남들은 다하는 시집도 가지 못하고 속을 앓으며, 죄인처럼 스스로를 숨기면서 살아가야 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녀의 의지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해 나가며 살아간다.
영화의 카메라는 그녀의 이러한 모습을 조심스럽게 쫒아간다. 관객은 우선 한 사람의 인간인 나옥분을 조명하고, 그녀의 삶을 하나씩 나열해 나간다. 그리고 그것을 천천히, 강압적이지 않게, 개연성있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픔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을 무대의 전면으로 내보내면서 소위 '위안 부 피해자'의 문제가 단순히 우리와 동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가장 내밀한 이웃에게 벌어지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이 겪는 아픔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3. 우리에게는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이웃들이 있다.
옥분이 스스로가 위안부 피해자임을 신문을 통해 알렸을 때, 그녀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녀를 쉬쉬하고 그녀의 아픈 과거를 덮으려고만 했던 그녀의 어머니와 그 시대의 옛날 사람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좀 뻣뻣하고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애정어린 방식으로 그녀의 아픔에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그녀를 돕고자 애쓴다. 그녀를 끌어 안는 진주댁과 민재의 모습, 그리고 몰래 문틈에 돈봉투와 편지를 끼워 넣고선 먼 발치에서 허리 굽혀 이사하는 족발집 처녀, 그리고 증언을 위해 미국으로 가는 그녀에게 이것저것 많은 선물을 챙겨주는 다른 시장 주민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이웃들의 모습은 그녀가 위안부 증언대에 서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때 다시금 나타난다. 민재를 중심으로 하여 구청 직원들과 주민들로부터 시작된 탄원서는 국민적인 관심을 이끌어 그녀가 그녀의 말을 할 수 있게끔 돕는다. 이러한 전개는 영화 '마션'에서 보았던 것과 또 조금 다른, 한국적인 인간미가 우리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쾌감을 안겨준다.
인생은 때론 고달프고, 때론 원망스러울 정도로 야박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 안에는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를 돕고자 하는 인간애가 있다. 이 영화는 그런 것을 조명한다. 다소 식상한 전개임에도 이것이 싫지 않은 이유다.
4. 사이다 썰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해피엔딩
결국 옥분은 친구인 정심의 소원을 위해, 그리고 그녀가 그녀 자신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미국으로 가 위안부 피해자 사건이 실존함을 세계에 알린다. 그녀의 증언은 충격적이면서 감동적이다. 그녀는 일본군에게 무조건적인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조목조목, 그녀의 억울함을 논리적으로 토로한다. 그녀가 한 사람의 증언자로 나섬으로써, 그녀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원칙주의적 면모의 사연을 이해하게 되고, 그녀는 그녀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으로서 거듭난다. 그리고 그녀의 아픔으로만 남았던 사건은 세상에 공식적인 범죄로서 공표된다.
건물 상가를 철거하려던 건물주와 시장 주민들(사실 주민'들'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다. 나서서 해결하고자 했던 인물은 여태 옥분 하나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만이 유일한 민원인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영화 표면상에 나타난 것은 그렇다.)의 갈등은 민재의 중재를 통해 잠정적으로 중단된 것처럼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시원스러운 '사이다 썰'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그들의 선조들이 벌인 만행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에 이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것으로 머문다. 또, 건물 철거 건도 사실은 해결된 것이 아니다. 영화는 건물주가 그의 고집을 철회하겠다 하는 장면 같은 것은 집어 넣지 않았다. 다만 유예될 뿐이다.
이렇듯 영화를 이끌어 가던 두 가지 큰 사건은 사실 상 명확하게 끝맺음 지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화장실을 갔다가 볼 일을 시원스레 마무리하지 못한 듯한 찝찝함은 남아 있지 않다. 왜일까? 그것은 옥분과 민재라는 인물이 이러한 사건들을 언젠가는, 조금씩, 설령 그것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그러한 불의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사실, 이 두 가지 큰 사건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의 자잘한 사건들은 꽤 순조롭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옥분과 구청 직원들, 시장 사람들과의 갈등, 그리고 민재와 민재 동생의 갈등은 사그러들었고, 옥분은 또 다른 증언을 준비하고 있으며, 민재는 준비 중이던 7급 공무원이 된다. 희망적이다.
5. 좋은 배우들, 좋은 연출. 삼시 세끼 먹어도 좋은 영화이제훈과 나문희의 조합, 정말 좋다. 나문희는 우리네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냈고, 이제훈은 그런 그녀의 훌륭한 보조자이자, 그 개인의 이야기에서는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그리고 개선해나갈 줄 아는 입체적인 인물로 잘 소화해냈다.
연출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언급했으므로 더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눈물짓게 되는 장면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는 불쾌하지 않다.(불쾌한 신파의 한 예로, '7번방의 선물'은 너무나 고통스럽게 관객의 눈물을 쥐어 짠다.) 억울해서 마지못해 짜내는 종류의 눈물이 아니다. 그것은 순수하게 그녀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 그리고 감동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다. 좋은 눈물이다. 필자는 영화관에서 우는 것을 사실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영화라면, 충분히 울 가치가 있다.
이 영화는 여러 사건을 차근차근 놓아서 하나의 큰 사건으로 끌고 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과정은 지루하지 않다. 뒷 이야기가 자꾸만 궁금해진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다. 물론 옥분과 민재의 만남을 위한 장치들(가령 민재의 동생과 영어 학원에서의 만남)나, 옥분을 둘러싼 사건들이 희망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다소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이 정도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봐줄만 하다. 중간 중간에 담긴 위트는 재치있다. 재미있는 영화가 되기 위해서 차별과 혐오를 담아야 한다는 것은 괴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몸소 증명해준다. 그것이 없어도 충분히 영화는 재미있을 수 있다. 만약 건강한 영화의 교과서가 필요하다면, 나는 자신 있게 이 영화를 추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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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썩어빠진 조선시대를 날카로운 칼날처럼 풍자하다.
조선 최고의 살수라고 불리는 이난은 의뢰를 받고 적을 잔인하게 죽이는 사람이다. 한때 의뢰를 받고 많은 적들을 죽였지만 그때의 영광에 비하면 지금은 초라한 신세이다. 한편 산적 떼들이 이방이라는 관리와 손을 잡고 아편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중독 시킨 후에 토지와 제물을 빼앗아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관찰사(사또) 앞에선 이방 조차도 아랫사람에 불과하다. 그런 이방이 노리는 건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없어진 혼란스러운 조선 사회에서 갑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방은 이난을 죽이기 위해서 산적떼를 보내기 시작하는데...
산적 떼와 관리들이 손을 잡은 상황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산적들에게 강간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했다. 사람의 목숨이 아무것도 아닌 그 당시 조선시대는 전란이 많이 일어나서 부정한 방법으로 제물을 축적해 양반이 되고 갑질을 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살수들은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조선시대의 영웅이었다. 물론 이 영화는 각색한 것이지만 악인들이 살수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게 통쾌하기도 했다. 마왕초라는 전설의 약초도 영화 설정에 의해 만들어진 거지만 이난을 살리는 약초였다는 게 신의 한 수였다.
이방은 과거에 범죄자였고 부정한 방법으로 제물을 축적해 부자가 되어 산적 떼와 결탁해 자기보다 힘없는 사람들을 압박했다. 사람을 죽이는 게 아무것도 아닌 시대에서 나쁜 놈들도 공평하게 죽임을 당하길 바라는 건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과 너무나 비슷하다. 범죄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교도소에서 나와 다시 사람들을 해친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정치인들도 부정한 세력과 결탁해 국민들을 우롱한다. 어찌 보면 역사는 반복되나 보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강대국은 아니었어도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썩어빠진 행정 시스템으로 발전이 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 살수를 통해 조선시대의 관리들과 산적 떼와의 결탁으로 서민들을 못살게 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각색이지만 나름 신선한 영화였다. 물론 야한 장면도 나오고 대사도 있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우리는 같은 과오를 반복하면 안 된다.
살수는 지금도 필요하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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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정서 학대
개봉 전 스크리너 시사회로 먼저 관람하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인생에서 꽤 중요한 존재다. 우리 모두는 갓 태어났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엄마에게 많은 도움을 받는다.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것을 알려준다. 다른 무엇보다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정서적 안정감은 굉장히 중요하다. 사랑이라고 하는 그 감정은 부족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애정결핍이 되고, 너무 넘치면 애정 과잉이 되어 한 사람의 성향을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우리가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대부분은 따뜻함과 포용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사랑은 넘치든 모자라든 큰 영향을 준다.
그럼 엄마에게 아이란 무엇일까. 사실 아직까지 현대사회에서도 엄마는 전통적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육아에 대한 부담을 아빠와 사회 제도가 약간은 보조해주지만 여전히 엄마에게 육아의 부담의 무게가 좀 더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렇게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커리어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아예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태어난 초기에 대부분의 엄마는 혼란스러워하고 고민도 많아진다. 그 상황에서 아이를 교육하고 또 사랑을 주게 되는데 여기서 각 엄마들의 사랑의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어떤 방식은 조금 과격할 것이고, 어떤 방식은 한없이 부드러울 것이다. 그 강약은 엄마도 아이도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그 사랑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엄마가 딸에게 주는 사랑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
영화 <비올레타>는 한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이야기 속에는 엄마인 한나(이자벨 위페르)가 딸인 비올레타(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에게 주는 사랑의 방식이 그려진다. 영화 초반 비올레타의 모습에서 엄마는 그저 그리운 존재다. 증조할머니와 같이 생활하고 있는 그는 주로 외부 활동을 하고 가끔씩 찾아오는 엄마를 볼 때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잠깐의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집 밖으로 나가는 엄마 한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비올레타의 모습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한나는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카메라로 누군가를 찍는 등 예술 쪽 관련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마로 인한 감정적 부재는 있지만 비올레타는 학교에서 크게 문제가 없는 아이였다. 증조할머니의 보살핌과 기도를 받으며 어느 정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주변에 특별히 나쁜 친구들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상황 그대로 자랐어도 어느 정도 일반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문제는 엄마 한나가 좀 더 적극적으로 비올레타를 찾아오기 시작한 이후 벌어진다. 동료 미술가인 에른스트(드니 라방)에게 카메라를 받은 이후 한나는 여러 모델을 이용해 자신의 사진작품들을 작업해나간다. 일반인 중에서 모델을 선택하는데, 그가 선택한 모델 중 한 명이 바로 비올레타다.
한나는 비올레타에게 보고 싶었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딸이 사진의 모델이 되는 길을 이끈다. 비올레타에게 그 사랑이라는 말은 한없이 달콤한,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엄마의 사랑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거기서부터 의심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딸을 찾아오지 않다가 갑자기 매일 찾아오는 엄마가 말하는 사랑이 얼마나 진실된 것일까. 그런데 비올레타는 그렇게 엄마가 자신을 원한다는 그 자체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린다. 그만큼 그동안 받지 못한 엄마의 사랑은 달콤하다.
엄마가 주는 사랑과 비올레타가 원하는 사랑 사이의 괴리
사실 영화 속 엄마 한나가 요구하는 수준이 단순히 이쁜 옷을 입고 사진 촬영을 몇 번 하는 정도라면 보는 관객들도 모녀의 관계와 활동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 한나는 계속적으로 사진의 수위를 높여간다. 아직 중학교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비올레타는 엄마의 요구에 맞추어 어른 옷을 입고 화장도 짙게 한다. 그때부터 비올레타는 학교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게되고,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이 되거나 따돌림을 당한다. 거기에 심한 노출 사진까지 찍게 되면서 비올레타는 하기 싫은 일과 엄마의 사랑 사이에서 굉장히 혼란스러워하게 된다.
엄마 한나의 논리는 간단하다. 자신의 작품을 완벽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모델은 딸 비올레타고, 그와 함께 작업했을 때 그가 일하는 예술계에서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인정받고 돈을 버는 것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비올레타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건 비올레타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성인이 되지 않은 어린 소녀에 불과한 비올레타는 엄마가 찍는 사진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지만 그 사랑은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고 그것을 대중에게 공개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랑에 숨겨진 폭력은 결코 외면할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엄마와 함께 하는 건, 공포와 짜증이 된다. 아이에게 그 상황은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고 자기 자신이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엄마에게 떨어지면 사랑받지 못하고 유일한 가족이 되어버린 한 사람과 멀어지게 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엄마와 같이 있으면 자신의 치부가 외부에 공개된다. 아이는 도망갈 곳이 없다. 최악의 경우, 죽음만이 그 탈출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시 한번 질문할 수밖에 없다. 엄마에게 아이란 무엇일까. 엄마에게는 아이로 인해 여러 가지 넘어야 할 장벽이 생긴다. 경력에 단절이 생긴다거나 아예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남편이 없고 혼자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건 더 큰 벽이 된다. 영화 속 한나는 비올레타를 모델로 사진을 찍으면 딸과 시간을 보내며 딸이 원하는 사랑을 충족시켜 줄 수 있고, 자신의 커리어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한 가지는 비올레타는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자신이 생각한 사랑과 커리어의 균형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이 영화 안에서 엄마 한나에게 아이는 자신의 안정과 출세를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다. 즉, 아이가 만든 사회의 장벽을 아이로 넘으려고 결정한 것이다.
너무나 이기적인 엄마 한나의 사랑
영화 <비올레타>를 다 보고 나면 엄마 한나가 내뱉는 ‘사랑’이라는 말이 굉장히 폭력적이고 일방적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안기는 비올레타의 모습에서는 측은함과 분노를 느낀다. 사실 부모가 된 모두가 하는 실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교육시키고 또 함께 하지만 그것은 아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부모의 사랑이 필요해서 아이는 그저 부모가 원하는 대로 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다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처음에는 그들이 생각했을 때 아이를 위한 놀이나 교육을 시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아이에게 가장 적절한 길을 찾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아이를 위한 사랑일 것이다.
엄마 한나는 그 사랑을 이용했다. 어쩌면 딸에게 주는 사랑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한나의 아픈 과거가 드러난다. 하지만 그런 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한나가 비올레타에게 했던 나쁜 사랑을 정당화할 수 없다. 한나는 비올레타에게 계속 사랑한다고 소리치지만 비올레타에게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고 멀리 도망치게 만드는 아픈 말이 되어 버린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분노가 치미게 되는 건, 그런 한나의 이기적인 사랑 방식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아픈 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용서할 수 없는 건, 영화 맨 마지막 비올레타의 행동을 통해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영화 <비올레타>는 2011년에 만들어져 칸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영화다. 또한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드니 라방의 뛰어난 연기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비올레타 역의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도 성공적인 데뷔를 했던 영화다. 이 영화에서 특히 화제가 되었던 것은 이 영화를 연출한 에버 이오네스코 감독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이다. 자신의 엄마가 어린 시절 자신을 촬영했던 경험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는 감독은 그것의 특징적인 아픔을 영화적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비올레타>를 완성했다.
영화 <비올레타>는 비록 만들어진지 10년이 지났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부모가 주는 사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아이를 위해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강요는 오히려 아이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모든 부모가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 적정한 선을 찾아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질문하면서 좀 더 좋은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부모도 아이도 한나와 비올레타의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다. <비올레타>는 그 사랑의 방식이 잘못 이루어진 모습을 잘 보여준다. 특히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조금 아프더라도 이 영화 관람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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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박찬욱 감독의 신작 <도끼>에 차승원, 윤가이, 박희순 배우가 합류했습니다.
<도끼> 원작 '액스' 정보
‘도끼’를 의미하는 ‘액스(The Ax)’는 은유적으로 ‘정리해고 행위’를 뜻한다.
흔히 ‘잘렸다’고 하는 바로 그 표현이다.
출판사 서평에 따르면『액스』는 제목 그대로 대량 인원 삭감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다고 합니다.
한 중산층 남자가 해고로 인해 어떻게 피폐한 삶으로 전락하게 되는지, 그리고 재취업을 위해 어떻게 경쟁자들을 제거해나가는지 두 축의 이야기를 동시에 전개해간다고 합니다.
라이언 레이놀즈 <데드풀> 제작당시 본인의 출연료 작가들에게 지급
라이언 레이놀즈가 <데드풀> 제작 당시 스튜디오의 작품 허가가 불발될것을 염려해, 본인의 출연료의 일부를 포기하고 작가들에게 지급했다고 밝혔습니다.
<데드풀>은 5800만 달러의 적은 예산으로 전 세계 7억 8천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R등급 슈퍼히어로 영화로서 이례적인 평가를 얻었습니다.
김다미X손석구 <나인 퍼즐> 2025년 디즈니+ 공개 확정
<나인 퍼즐>은 10년 전 미결 사건의 목격자이자 현직 프로파일러인 이나와, 그를 용의자로 의심하는 형사 한샘이 퍼즐 조각과 함께 다시 시작된 연쇄살인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영화 <공작>과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으로 호평받은 윤종빈 감독의 신작으로, 김다비와 손석구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나인 퍼즐>은 2025년 전 세계 공개 예정입니다.
박찬욱 신작 차승원, 윤가이, 박희순 합류
배우 차승원, 박희순, 윤가이가 박찬욱 신작 출연을 확정하고 세부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합니다. 해당 작품은 <헤어질 결심> 이후 선보이는 영화로 박찬욱 감독이 수년간 준비해온 스릴러 영화입니다.
신작에는 이미 이병헌, 손예진, 염혜란, 이성민, 유연석이 캐스팅 확저외며 화려한 라인업으로 영화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샤이닝> 셜리 듀발 75세 나이로 별세
11일 외신은 셜리 듀발이 이날 당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셜리 듀발은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샤이닝>에서 주인공 잭 토렌스의 아내 웬디 토렌스 역을 맡으며 영화 팬들에게 인상 깊은 연기를 남겼습니다.
셜리 듀발은 <샤이닝> 외에도 <쓰리 위민>, <포프아이> 등 다양한 영화에서 독특한 매력과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였으며, 그녀의 연기 스타일은 많은 팬들과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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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의 모호함 속에서, 우리
재작년 쯤에 광주극장에서 ‘프랑스여자’ 종영 기념 GV에 관람했다. 이 자리가 나의 ‘프랑스여자’ 영화의 두 번째 관람이었다. 첫 번째 관람은 작년 광주여성영화제에서 만났었다. 어찌 보면 나는 프랑스여자 극장상영에서의 거의 처음과 끝을 만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처음에는 이 영화를 만났을 때는 꽤나 낯설고 어려웠다. 마치 꿈같고 환상적인 전개는 나에게 혼란스러움 가중시켜주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물음표가 가득했었다. 덕에 GV를 더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올해 프랑스여자가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처음 봤을 때의 나의 감정을 다시 회고해보면 어려웠던 기억이 더 많아 선뜩 보러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권유를 받아 친구와 함께 종영 GV를 관람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마주한 두 번째 프랑스여자는 나에게 또 다른 감정을 선사해주었다. 분명히 봤던 영화지만 참신한 느낌으로 다시 다가온 것이다.
‘프랑스여자’는 맥락을 알고 보는 것과 맥락을 모르고 보는 것이 확연하게 다른 영화였다. 당연히 나는 맥락을 알고 봤을 때가 더 재밌었다. 처음에는 그저 난해한 줄 알았는데, 이 스토리의 흐름을 알고서 같이 찾아가며 보니 난해함이 아니라 마치 계산된 듯 마냥 딱딱 맞아 떨어져갔다. 영화의 큰 구성은 미라와 친구들의 술자리 장면 그리고 미라의 꿈이 번갈아 이어진다.
이 두 장면은 서로에게 이질적으로 보이면서도 서로에게 실마리를 알려주며 호환되는 장면들이었다. 술자리에서의 의문이 미라의 꿈에서 몽환적으로 재현되는 듯했다. 또한 술자리 장면도 특이했는데, 마치 타임리프 같았다. 바로 미라가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현재와 미라가 프랑스로 가기 전인 20년 전 과거로 시점이 번갈아 가며 나온다.
이는 영화 ‘써니’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다른 점이 있다. ‘써니’처럼 과거로 돌아간다 해서 과거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40대 중년 미라의 현재 모습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마치 미라가 과거의 모습을 꿈꾸는 중인 상황 속에 들어 온 것 같았다. 미라만 현재의 모습이며 친구들은 20년 전 모습 그대로이다. 이에 미라는 당황해하지 않고 당연하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낸다.
이런 타임리프 장면이 나에게 참신하고 신기했었다. 과거로 돌아간 상황에 전혀 당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은 되러 관객 쪽에서 아이러니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관객들도 미라의 모습으로 20년 전의 해은, 영은, 성우의 모습을 지켜본다. 왜냐면 현재의 그들의 이야기에서 무언가 숨겨지는 듯한 모습들이 과거를 추적하게끔 관객을 유도한다.
그래서 이 장면전환은 꽤나 재밌었다. 앞으로의 실마리가 어떻게 풀어질까에 대한 흥미진진함을 유발시켜줬다. 그것도 몽환적이고 영롱하게. 마치 시간이 초월 되는 기분이 든다. 공간은 술집 그대로 똑같은데 시간의 모호함이 느껴진다. 이게 과거인지 현재인지 미라와 미라가 있는 장소만 바라보자면 알 수가 없다. 시간의 경계선 어딘가에 미라가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간의 경계 말고도 공간의 경계가 느껴질 때도 있다. 바로 마라의 국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한국여자로 보이는 미라는 프랑스여자이다. 그는 병원에 가서도 프랑스사람이기에 건강보험에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미라에게는 계속 프랑스여자라고만 말을 한다. 그리고 프랑스에는 언제 돌아가느냐는 질문을 한다. 미라는 프랑스에 돌아가겠단 말이 없음에도 말이다. 이미 한국에서의 미라는 프랑스여자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미라는 프랑스에서의 진정으로 프랑스사람으로 지냈을까. 남편의 불륜 상대를 보고는, 자신을 한 여자로서 좋아했는지, 한국여자로서 좋아했는지 헷갈린다. 남편의 불륜 상대는 자신의 한국인 후배이기 때문이다. 이에 미라는 배신감을 느끼고 남편과 이혼한다. GV에서 감독님이 말씀해준 것 중에 기억 남는 게 있다.
미라는 남편과 함께 살았던 당시에는 국적을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혼 이후 국적을 프랑스로 바꾼다. 그전에는 언제든지 국적을 바꿀 기회가 있어 굳이 선택하지 않고 경계선에 머물렀던 것인데, 이혼으로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선택에 위기가 온 것이다. 그렇게 프랑스에서 법적으로 한국여자로 살던 미라는 남편과 이혼 이후 프랑스여자가 된다.
남편과 미라가 싸웠던 식당에서 테러를 받아 미라는 죽을 목숨에 처하게 되는데, 만약 미라가 거기서 죽었다면 미라는 한국여자가 아닌 프랑스여자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됐을 것이다. 평생 한국여자로 살다가 어떤 계기로 국적으로 바꾼 날, 그 사람이 죽는다면 한국여자가 아닌 프랑스여자로 알려질 것이라는 이 아이러니가 신기하고 흥미로웠다고 말했던 감독님의 말씀이 아직도 인상 깊다. 영화의 제목에 크게 관통하는 부분이기도 해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
프랑스여자에 대한 예고편을 보다가 댓글 보았는데, “프랑스여자는 백인이지”. “프랑스여자가 아니라 한국여자인데”라는 댓글을 보았다. 또한 이에 대해서 궁금증과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은 한국 사람이 아니고, 외국에서 사는 한국 사람은 외국 사람이 아닌 걸까. 이런 공간에 대한 경계성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제일 미스테리한 인물은 바로 ‘해은’이었다. 아마도 자살로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해은. 미라는 그에게 마치 죄책감을 가진 듯해 보이면서 알쏭달쏭한 포지션을 취한다. 마치 미라의 꿈으로 보이는 곳에서 미라는 해은에게 자기가 키운 고양이인 나비가 죽은 것이 자신 때문인지 물어본다. 이에 해은은 자신이 말해줄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면서 사라진다.
나는 이 장면이 미라가 해은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러나 확실하지 않다. 미라 본인부터가 그 감정이 확실하지 않고 안고만 있다. 20년 전 해은과 성우는 연인관계였다. 하지만 성우는 미라는 좋아하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 속에서 미라는 성우가 같이 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 성우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미라의 죄책감을 알 수 없는 마음에서 그저 짐작만 하는 듯해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꿈에서 보이는 해은의 모습은 무섭게 나타나며, 마치 그 장면들은 공포 영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것이 해은에 대한 미라의 심리라고 생각한다. 미라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프랑스여자는 시간, 공간, 감정에 대한 경계에 놓인 미라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여러 아이러니를 만나 관객들도 생각하게끔 만들어 준다. 시공간은 초월하며 감정은 알쏭달쏭하게 풀어지는 이 영화, 그래서 참으로 몽환적이다고 느낌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내가 처음에 느껴던 그 어렵다는 감정은 감독이 유도했단 감정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김희정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영화로만 만들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하셨다. 바로 이 프랑스여자가 그 말을 대변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경계의 모호함과 또 거기서 나오는 아이러니는 말로만 설명하기에 어려울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김희정 감독은 프랑스여자로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김희정 감독님의 영화이기에 이런 요소들은 풀어내고 겪을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이런 다양성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김희정 감독님의 영화는 참 매력적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매력적이다고 느꼈던 요소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개인적으로,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프랑스여자는 김호정 배우를 주연으로 김지영, 김영민 그리고 류아벨 배우가 주로 나온다. 류아벨 배우를 제외하고는 40-50대인 중년 배우들이 출현한다.
누군가의 엄마, 이모, 고모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년의 나이로 그 개인의 모습으로, 미라 자신으로 출현한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 쪽에서는 중년 여성을 독립적인 여성으로서 다룬 작품들이 별로 없었다고 생각한다. 젊은 여성 캐릭터들이 많아도, 이들 또한 독립적인 여성으로서 그려지는 작품들은 적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주제 없이는 여성 캐릭터를 거의 만나보기 힘들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캐릭터의 발견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저 타자화된 채로 만나기만 할 뿐. 그들의 서사는 매우 단편적이고 한정적이다. 아직 나는 중년의 나이가 되지 않았지만, 항상 나의 미래를 꿈꿔 보곤 한다. 하지만 한국 미디어에서의 나이 든 여성이란, 그저 엄마나 시어머니 사회적 역할로서만 보여준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작품들과 상상력이 많이 부족한 것이라 보인다. 언젠가 젊은 우리고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될 것인데 이렇게 미디어는 노출된 게 없다는 아주 아쉬웠다. 그래서 프랑스여자가 더욱 반가웠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아닌 미라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년 여성의 또 다른 모습을 하나 제시해준 셈이다.
프랑스여자는 영화 내용만큼이나 캐릭터 또한 다양성에 큰 영향을 줬다고 느껴진다. 우리 사고의 확장은 이런 다양성을 추구하는 영화에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앞으로도 이런 도전적인 영화에 응원하며 또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 김희정 감독의 작품들이 궁금하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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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보다 나은'이 아닌, '나보다 나은 나'를 꿈꾸며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베러맨> 언론 배급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
<베러맨>은 팝스타 로비 윌리엄스의 전기를 다룬 뮤지컬 영화로, 목소리 연기에 로비 윌리엄스 본인이 참여하였으며, 스스로를 침팬지라고 언급했던 그의 말에서 영감을 받아 주인공 인물이 모션 연기를 통해 침팬지로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한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 만큼 인물의 성장이 중점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인물이 마주하게 되는 사건에 대한 내면 갈등과 자아를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재능은 타고나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에도 불구하고 로비는 어린 시절부터 끼를 주체하지 못하며 무대에 오르고 급기야 팝밴드 오디션에 합격해 보이밴드그룹 활동을 시작하고, 큰 명성과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러나 명성 속에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끝나지 않는 비교와 경쟁은 로비를 낙담하게 하고, 팀에서 나와 솔로 활동으로 다시금 도약해보려 하지만, 외부의 수많은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내면에 들어선 불안과 두려움은 점점 커져 그를 압박해온다.
앞서 로비 윌리엄스가 스스로를 침팬지라고 언급했던 바를 그대로 캐릭터로 활용한 것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듯, 영화는 사건 자체나 그를 둘러싼 어떠한 것, 인물의 행위와 업적에 주목하기보다 영화 속 대중들이 보지 못하는 그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에 집중한다. 영화 속 대중들은 알지 못하는 로비의 내면을 <베러맨>이라는 영화를 보고 있는 대중은 알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 관객은 로비의 주변 인물처럼 마치 로비와 친밀한 관계에 놓여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 로비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모습은 라캉의 ‘거울 단계’ 이론을 떠오르게 한다. 자크 라캉이 제시한 ‘거울 단계’란, 아이가 거울을 보고 처음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자아를 형성하게 되는 시기로, 거울을 처음 본 아이가 외부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경험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아이가 거울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는 것처럼 로비는 대중을 비롯해 사회적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들을 거울 삼아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찰스 호튼 쿨리가 거울자아 이론을 통해 자아는 사회 속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며 타인이 바라보는 시선과 반응을 거울로 여기고 그에 따라 형성된다고 설명했던 것처럼, 로비 또한 내면 자아를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 특히 대중과 연예계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토대로 형성하고, 대중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반응을 거울로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거울 단계는 자아 인식 뿐만 아니라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로서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유년 시절 로비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받았던 아버지는 재능은 선천적이어야 한다며 로비의 재능과 가치를 제대로 봐주지 않고 심지어는 자신의 꿈을 위해 로비의 곁을 떠난다. 이에 로비는 스스로를 타고난 재능이 없는 아이로, 의기소침한 아이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말에 낙담하는 것도 잠시, 로비는 거리에서 몰래 버스킹을 하고, 팝 밴드의 막내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유명세를 누리게 된 로비는 점점 대중에 시선을 의식하며 이전과 다른 모습들을 가지게 되는데, 대중의 열광과 호응은 그에게 계속해서 불씨를 던지고, 그는 명성과 인기, 부라는 불 속에 점점 타오른다.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던 유명 밴드로서의 삶은 멤버, 그리고 회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마침표를 찍게 되고, 그는 솔로 복귀를 통해 다시 스타의 덤에 오르지만 그의 내면은 점점 자기혐오와 상처, 불안으로 검게 타들어가 그를 조여온다.
대중 앞에 선 로비가 극심한 환각을 겪고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그의 앞에 나타난 건 영화 속 로비의 얼굴과 동일한 얼굴을 하고 서로 다른 차림을 한 침팬지들로, 로비의 페르소나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여러 자아들이다. 특히 그들이 로비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여러 자아 사이에서도 그의 불안정하게 왜곡된 자아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타자 인식을 통해 스스로를 자각하고, 자신을 규정하고 평가하던 그는, 어느새 이상향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스스로를 비난하고, 타인의 평가에 의존해 자기 자신을 왜곡하며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 넣게 된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로비를 짓누르고 존재는 대중이 아닌 결핍된 자신의 자아, 왜곡 시킨 자기 자신이 된 것이다. 이렇게 로비의 불안정한 자아 인식은, 영화의 후반부 로비가 깨진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는 장면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는데, 여기서 깨진 거울은 여기저기 금이 가 로비의 모습을 왜곡하여 보여주는 존재로, 깨진 거울을 보고 있는 그는 자신의 진실된 본연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로비 윌리엄스가 아버지와 즐겨 불렀던 노래인 ‘My way’ 가 여러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의 삶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My way'의 가사처럼 사회적 기대나 규범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그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의 중요성의 이용이 증가하며 타자의 반응에 따라 왜곡된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 더욱 쉬워지고, 이상적인 자아의 기준이 점점 높아짐에 따라 자신이 이상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여겨 스스로를 비난하고, 결핍을 느끼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그러나 제목이 ‘Perfect man’이라던가 ‘The best man’이 아닌, ‘더 나은’이라는 뜻을 가진 ‘better’을 사용한 만큼, 잠시 평가에 대한 욕심과 기대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단지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의 나를 꿈꾸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오늘의 나를 다독이며 전진해 보는 건 어떨까? 걸어가는 그 길이 설령 가시밭길 같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걷기만 한다면 분명 내일은 오늘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갔을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저마다 지나온 시간 속 각자만의 길이 새겨져 있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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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석의 오류
최신 한국 영화를 리뷰하고 추천합니다
영화 '시동'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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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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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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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스맨 : 퍼스트 에이전트》 영국 역사 속 실제 기록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역사ㅣ킹스맨 프리퀄ㅣ
? 영화 '킹스맨:퍼스트 에이전트 (King's Man, 2020)' 예고편 분석영상
- 스태프
제작사: 20세기 폭스, 마브 스튜디오, 클라우디 프로덕션
배급사: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션 픽처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장르: 액션, 스릴러
감독: 매튜 본
제작: 매튜 본, 데이빗 리드, 애덤 볼링
각본: 매튜 본, 칼 가이듀섹
원안: 매튜 본
출연진: 해리스 디킨슨, 레이프 파인스, 젬마 아터튼, 다니엘 브륄, 자이먼 혼수, 스탠리 투치 외
음악: 헨리 잭맨
개봉일자: 2020년 9월 18일-킹스맨 시리즈 프리퀄
1차 세계대전 배경
#킹스맨퍼스트에이전트 #킹스맨 #킹스맨퍼스트에이전트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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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좋은 사람> 30초 예고편
고등학교 교사 '경석'의 반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같은 반 학생인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경석'은 '세익'을 불러 어떤 말을 해도 믿을 테니 진실을 말하라고 하지만,
세익은 무조건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날 밤, 학교에 데려왔던 ‘경석’의 딸 ‘윤희’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또 다시 ‘세익’이 범인으로 지목되는데…
의심하는 순간 모든 것이 흔들렸다
의심과 믿음 그 사이에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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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비상선언> 칸 영화제 공식 예고편
사상 초유의 재난상황에 직면해 무조건적인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두고 벌어지는 리얼리티 항공 재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