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롬2021-04-11 14:07:31
어머니라는 지위에 불이 붙었을 때
<마더> ⭐⭐⭐⭐
<마더> 네이버 스틸컷
-봉준호 감독 영화에 공통점은 빈부격차나 정부의 잘못된 태도 등 사회적 문제들을 그만의 유머러스가 섞여 만들어내는 일종의 블랙코미디일 것이다. 하지만 <마더>는 이런 사회적 문제들도 역시 선보였지만, 엄마의 모성애를 기름 속 불씨처럼 강력하게 표현해내어 어머니라는 지위에 불이 붙었을 때 얼마나 처절하도록 몸부림치는지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 필모그래피 중 가장 불편하고 애잔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연기에 놀라고 스토리에 더 놀란 영화. 영화 장면에는 버릴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일명 떡밥을 떨구고 치우는 마지막이 되면 먼지 하나없이 김혜자 선생님의 붉은 노을에 맞춘 모든 어머니를 향한 춤을 보며 깔끔하고 애잔한 영화로 남는다. 붉은 노을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많지만 처량하다고 생각한 적은 처음이었다.
-모성애를 제외하고 본다면 영화가 말하고픈 주제는 경찰 공무원의 안일한 조치와 무능한 능력, 사회적 약자에 대한 미숙한 대처를 비판한다. 그들이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했다면 어머니의 불도 이렇게 큰 화마로 번지지 않았을 텐데 어리석은 대처들이 필자의 마음에도 불을 붙이게 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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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테스와 보낸 여름> 눈부신 싱그러움과 흐뭇한 성장기
테스와 보낸 여름 (My Extraordinary Summer with Tess , 2019)
<테스와 보낸 여름>은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떠난 바닷가 근처의 휴가지 여행을 떠오르게 합니다. 휴가지의 낯선 풍경과 함께 여름을 간 다양한 사람들,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 그들이 주는 낯선 느낌은 이제껏 겪어왔던 세상과는 달랐던지라 신비스럽기도 하고, 다양한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아름다운 휴양지 테르스헬링에서 펼쳐지는 조금 엉뚱한 소년 샘과 그보다 더 엉뚱한 미지의 소녀 테스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함과 동시에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하고, 코로나로 집에 발이 묶여 있던 모든 이들의 마음을 환기 시켜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영화일 것입니다.
포스터의 색감만 봐도, 눈이 정화되는 기분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온 샘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공룡이 어떤 심정이었을지를 궁금해하는 조금 엉뚱한 소년입니다. 자연의 시간 순리 상 부모님과 형이 먼저 떠나게 될 것이므로 나중에 자신이 홀로 남겨졌을 때를 대비하여 휴가지에서 휴가보다는 외로움 적응 훈련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던 와중 만난 소녀 테스!
만나자마자 샘에게 살사를 추자고 권하는 샘보다 조금 더 엉뚱하고 발랄한 이 소녀는 무언가 꿍꿍이를 감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테스의 엄마가 운영하는 민박집에 어른 남자인 휘호를 숙박 이벤트 당첨자로 초대하고, 어쩐지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은 테스가 야속한 샘. 그런 샘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그 비밀로 새로운 일들을 맞이하게 되는 두 사람. 생각지 못했던 테스의 비밀은 직접 확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
(※ 아래부터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언젠가 혼자 남겨질 것을 걱정하는 건 어리석은 걱정일까?
아쉽게도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세상에 혼자 남겨질 운명입니다. 아마 샘처럼 가족 중 막내인 경우라면, 그럴 확률이 조금 더 높아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제 기억으로, 저도 이런 두려움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엄마에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만큼은 무조건 나보다 하루 더 살아야 돼!라고 말한 적이 있었죠. 샘도 그런 두려움이 있었는지 외로움 적응 훈련을 하느라 하루의 정해진 시간만큼 혼자 바닷가에서 놀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홀로 외로움 적응 훈련을 하던 도중, 밀물이 들어오는 갯벌에 발이 빠져 그의 노력과는 다르게 갑작스럽게 모두를 두고 가장 먼저 떠날 뻔하게 되죠. 그때 만난 바닷가 근처의 할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로부터 혼자이지만 기억할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이 많아 괜찮으니, 더 늦기 전에 많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죠.
외로움 적응 훈련중이랍니다.
아이가 하는 걱정이나 어른이 하는 걱정이나 맥락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은 세상에 혼자 남겨질 걱정을 하며 외로움 적응 훈련을 하진 않지만, 그와 비슷한 부류인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걱정,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 등 매우 기우 스러운 걱정을 하며 현실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을 방해 받습니다.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되면 이런 부류의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들에 노출되지만, 선택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될 것들을 걱정하며 지금 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있지 않은지, 그렇다면 그 걱정을 지속할 것인지 벗어날 것인지를요. 영화는 매일에 충실하고 순간의 추억을 만들며 기억할 수 있는 추억들을 쌓아가는 것의 중요함을 샘을 통해 묻고 있는 듯합니다.
▶ 사랑스러운 배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이름도 어려운 두 배우, 소니 코프스 판 우테렌, 조세핀 아렌센은 영화 내내 사랑스러움 그 자체입니다. 이전 연기 경력이 없는 배우로 캐스팅했다더군요! 그래서인지 연기를 꽤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서툴고 풋풋하고 싱그러운 느낌이 들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와 잘 어울립니다.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사춘기 소년소녀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또 또래이더라 하더라도, 그 나이 때 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이 키가 더 큰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영화에서도 테스 역의 조세핀 아렌센이 키가 조금 더 큽니다. 감독의 디테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네덜란드 아동 문학가 안나 왈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2019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제너레이션 K플러스 부문 국제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 영화제 통산 16개의 수상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제너레이션 K플러스 부문은 어린이 영화 대상으로,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심사위원들이 선정하는 상이라고 합니다.)
또 영화를 보는 내내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오게 하는 영화의 배경지, 테르스헬링 섬(Terschelling)도 분명 영화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전체 매력 포인트에서 약 1/3가량은 차지할 듯 ㅎ ) 네덜란드의 서 프리지아제도에 딸린 섬이라고 해요. 가져올 수 있는 이미지가 없는 게 아쉬운데, 그쪽으로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의 블로그에서 확인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멋져요!
▶ 한 줄기 영화
두 소년 소녀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조조 래빗>입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 소년단에 입단한 소년 조조와 그의 집에 몰래 숨어있던 소녀 엘사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입니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2차 세계대전과 나치 통치하의 세상, 히틀러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시종일관 밝은 톤을 유지하고 있으나, 찬찬히 관찰해보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극과 참상은 더 슬프고 잔인한 것 같습니다. 조조의 상상 속의 친구 히틀러를 연기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유쾌한 연기가 더해져 제 기준 작년 최고의 영화로서 매우 강력히 추천해드리고자 합니다. ?
두 소년소녀의 싱그러움에 흐뭇하고, 그들을 보며 나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는 <테스와 보낸 여름>, 코로나로 따로 멋진 휴가지를 가지 못하셨다면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예쁜 이야기들과 경치에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처럼 좋은 영화를 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주관 가득 별점 : ★★★★
- 여름 휴양지, 못 다녀오셨다면 꼭 보세요!
- 음악, 색감, 연기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눈도 마음도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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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7월 22일>, 영화가 고통을 재현하는 이유
넷플릭스 <7월 22일>, 영화가 고통을 재현하는 이유
2011년 7월 22일 오후 3시 반에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의 정부청사에 폭탄테러가 발생해 총리실 건물이 크게 파손되고 7명의 사망자와 19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같은 날 오슬러 북서쪽 30km에 위치한 우퇴위아 섬에서는 총기난사 테러가 발생했다. 우퇴위아 섬은 당시 집권 여당인 노동당 청년캠프 행사가 열린 장소였고, 700명이 넘는 10~20대 청소년이 캠프에 참여 중이었다. 고립된 장소에서 테러의 범인인 아네르스 브레이비크는 아무런 방해 없이 68명의 청소년을 죽였다. 2018년에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7월 22일>은 바로 이 노르웨이 테러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7월 22일>처럼 비극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언제나 해당 사건을 얼마나, 또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에 빠진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관음증적인 성격을 지닌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철저히 제 3자의 시각에서 카메라에 담긴 인물들의 삶의 단면을 감상한다. 문제는 스크린에 펼쳐지는 인물들의 삶이 아픔과 고통으로 가득할 때다. 카메라는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을 뿐,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더라도 결코 도울 수 없다. "누군가의 상처를 엔터테인먼트로써 바라만 보는 것이 윤리적인 일일까?"라는 의문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특히 그 상처가 가상이 시나리오가 아닌,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라면 해당 사건을 재현해서 관객들에게 오락으로 제공하는 영화의 윤리성에 대해서는 더더욱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전쟁 영화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프닝 시퀀스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상황을 가장 완벽히 구현해 강렬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평가받는다. 영화는 관객들이 이 장면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전쟁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조국을 위해 희생하는 주인공들의 행동에 개연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재현의 윤리를 잊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꼭 제2차 세계 대전이 아니더라도 전쟁터에 복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오프닝 시퀀스는 보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철저히 고증을 하고 생생한 카메라 구도로 당시의 상황을 보여줄지라도 관객들은 결코 전쟁터를 실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재현은 철저히 기만이라고 볼 수도 있다.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과 총을 맞고 다리가 잘려 나간 군인들의 비명소리는 스크린 속의 가상에 불과하다. 영화를 보면서 다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의자에 앉아서 고통스러운 이미지와 음성을 접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그 현장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이는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다루지 않는다면 그 또한 문제다. 영화의 존재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극 예술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극 예술의 시작이 등장인물의 고통과 비극에서 비롯된 강렬한 페이소스와 카타르시스에 기반을 둔 그리스 비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길을 그 어떤 미디어보다 생생하고 쉽게 열어준다는 점은 영화의 가장 뛰어난 장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7월 22일>은 왜 영화가 때로는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재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내놓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초반부만 놓고 보면 이 영화 역시 재현의 윤리를 잊은 듯 보인다. 테러를 준비하는 범인의 모습, 테러가 발생한 정부청사, 범인이 우퇴위아 섬에 들어가는 과정과 그 안에서 벌어진 학살극, 무방비로 죽고 부상당한 학생들과 수많은 유가족들의 눈물과 비명까지 영화는 감독 특유의 핸드헬드 기법을 활용해 결코 길지 않지만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당시의 상황을 전달한다. 이 대목에서 <7월 22일>은 분명 반인류적 범죄를 오락으로 소비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의 구성은 테러 사건의 고통스러운 이미지와 음성을 왜 되살려야만 했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7월 22일'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고, 테러의 전후 사정과 흐름을 구체적으로 짚는 것과 별개로 영화의 초점은 테러가 아니라 테러 이후 피해자들의 삶에 맞춰져 있다. 실제로 작중 테러를 묘사하는 장면은 2시간 중 첫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총격을 당해 뇌수술을 받은 '빌야르(요나스 스트란 그라블리)'와 그의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과 범인인 '아네르스(아네르스 다니엘센 리)'가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을 번갈아 비추면서 그 이후 러닝 타임을 가득 채운다.
이러한 구성은 보는 것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실감은 못할지언정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며, 더 나아가 영화의 메시지를 강조한다. 힘겹게 법정에서 증언하는 빌야르는 이렇게 말한다. "(범인이) 나를 죽일지 살릴지 알 수 없었어요. 그러나 지금 저는 선택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게는 아직 가족이 있고 친구들, 추억, 꿈, 희망, 그리고 사랑이 있어요.(...) 저는 살기로 선택했어요." 세상에 끔찍한 일이 많지만 이를 피해서는 안된다고, 두려움과 공포가 뺏지 못한 것을 믿고 이겨나가야 한다며, 가해자에게 그가 성공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힐난하는 이 대사는 물론 그 자체로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친구들을 잃고, 재활 과정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빌야르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모습을 옆에서 보며 최소한의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영화가 참극을 굳이 재현하는 이유다.
한편 <7월 22일>의 재현은 테러 당시와 현재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유의미하기도 하다. 사건의 범인인 아네르스 브레이비크는 극우적인 이념의 소유자로, 늘어나는 무슬림 이민자들이 유럽을 망치고 있으며 백인들을 위한 유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테러를 일으켰다. 그리고 2020년 현재 모든 인류의 공통된 위기인 판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아네르스의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민족주의가 흑인과 동양인을 대상으로 여전히 살아있음을 목격한 바 있다. 이러한 차별과 억압의 결과가 어떤 모습일지 <7월 22일>은 9년 전 사건의 재현하면 일깨워 주고 있으며, 이는 과거의 아픔을 재현하는 작품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이다.
E(Exceed expectations, 기대 이상)
때로는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영화가 고통을 되살려내는 이유
* 본 콘텐츠는 브런치 DAY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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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엄마를 부르는 숲, 가족이 되는 순간
Director
Jerome YOO
Cast
JIN Sein, KIM Jae-hyun, NAM Da-nu, KANG Sangbum, Jedd SHARP, Candyce WEIR, Morgan DERERA
시놉시스
1991년 여름, 슬픔에 잠긴 어느 한국인 가족이 야생 들개의 침입으로 고초를 겪고 있는 캐나다의 대초원으로 이민을 간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면서 이들은 가족 사이의 깨져버린 유대감과도 직면해야 한다.
들어가며,
이민 2세대인 제롬유 감독의 영화는 캐나다를 배경으로 한 한 이민가정의 생활을 독특한 스토리텔링과 화면구성 방식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God, Cowboy, Blond라는 부제를 붙은 세 파트에선 아버지(광선), 아들(하준), 딸(하나)이 돌아가며 주인공이 된다. 같은 집, 같은 시간에 살고 있지만 진실의 층위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감각하는 이민생활의 최우선 문제 역시 다르게 인식된다. 한국에 정주하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선 ‘이민’이라는 한 단어로 퉁쳐지는 문제가 그를 받아들이는 각 세대마다 이토록 섬세하고 다양한 양상을 가질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된 영화이기도 했다.
잡종에 대해서,
표면적으로 잡종의 의미는 이것저것이 섞여 순종이 아닌 어떤 종류를 말한다. 모국을 떠나 타국인이 되어야 하는 이민세대의 고충을 뜻하는 뜻이기도 하겠으나 <잡종>은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을 ‘집을 잃어버린 떠돌이 개’로 확장시키며 인물들이 가진 결핍의 구심점을 만든다.
집을 잃어버린 채 마을과 숲을 오가며 사는 이들 들개는 어느 경계에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자로 해석된다. 이것은 한복을 입고 매니큐어를 칠한 한나, 영어를 쓰고 금발의 친구들과 놀지만 엄마의 노래를 듣는 하준, 땅주인을 위해 들개들을 잡을 때 한국식 위령제를 지내는 광선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제목의 필연성을 생각케 한다.
#1. GOD : 광선은 자식들에게 자꾸 강해지라고 한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바다를 건너왔다. 먹고 살기 위해 들개를 잡아 죽이는 사냥꾼이 되었다. 그들 가족에게 살 곳을 제공해준 마을의 목사 스캇은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유산을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들개들을 죽이고자한다. 광선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스킬로 들개를 다루어 단번에 스캇의 팀에 들어가게 되지만 밤이 되면 자신이 개들의 울음소리에 괴로워한다.
사냥을 망설이는 큰아들에게 ‘빨리 죽여주는 게 걔한테 도움되는거야!’라고 소리치지만 사실 그는 사냥을 시작할 때마다 나무에 오색실을 묶어두고 산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사람이다. 먹고 살기 위해 짐승을 물어뜯는 들개와 자신이 다를 것 없다는 죄책감이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이다.
#2. COWBOY : 하준은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반면 하준은 죽은 들개의 사체 위에 들꽃을 올려주는 마음을 가진 소년이다. 그러니 광선이 하준에게 거칠게 대하는 이유는 아마 그 모습에서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보이는 것은 그의 고통이 아니다. 그저 소리치거나 고성방가를 하는 무서운 아버지일 뿐.
하준은 노아를 비롯한 캐나다인 친구들인과 어울릴 땐 ‘그들’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여동생 하나와 같이 있을 땐 여전히 ‘집’에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노아가 친구 이상으로 느껴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하준이 원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아버지와 싸워도 돌아오게 되는 원점은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극과 극을 향해 달리던 아버지와 아들은 상실의 공감대로 연결된다. 그들은 이제 하나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려야 한다.
#3. BLONDE : 그리고 가족을 하나로 모으는 ‘하나’.
하나는 비행기 100개를 먹으면 소원을 빌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을 믿고 착실하게 비행기를 찾아다니는 소녀다. 목사의 부인인 로라는 딸이 없는 아쉬움을 하나에게 투영하며 엄마처럼 잘해주려한다. 옆자리, 생일파티, 기도문화, 선물, 매니큐어까지 하나는 아버지가 오빠가 자리를 비운 빈 집에 혼자 남아 엄마를 그리워 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알아줄 여유가 있는 가족은 없다. 로라처럼 노랗게 머리를 탈색하려던 하나는 불현듯 숲으로 뛰쳐들어간다.
철없는 아이의 가출이라 생각했던 광선은 엄마가 올 때까지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하나를 보며 말문을 잃는다.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그리움을 두려움없이 꺼내버리는 천진난만함에 결국 무너지고 만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끈을 잡고 있던 가족은 다시 조금 가까워지게 된다.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엄마’라는 단어
하나가 숲 속에서 엄마를 부르고 광선이 (돌아올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함께 아내를 부르는 장면은 꼭 초혼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성인인 아버지와 아들이 각자의 이슈로 미루어두었으나 사실 가장 선행되어야 했던 ‘애도’는 막내딸 하나의 챕터에 와서야 이루어지게 된다. 여담이지만 이민가족들은 전통문화에 대한 보수성과 현지 문화에 대한 개방성이 묘하게 섞이게 되는데 높은 확률로 보수성의 일면은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발현되는 것 같다. 아버지는 아버지인데 엄마는 엄마가 되는 사례도 꽤 많은 것 같다. 현실의 사례에서 채택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이 호칭의 차이가 이 가족이 가진 거리감과 상실감의 깊이를 유추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섬세한 포인트였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한국식 요리를 해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한나가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단순히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그리움만이 아니라 어머니가 이들 가족의 구심점으로서 가족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어머니가 사라진 뒤 심화 된 갈등은 이들 각자의 정신적 위기로 확장되어 서로가 모르는 시간에 존재론적 위기를 겪게 만들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잡종이란 뿌리를 잃어버린 것이라는 해석으로 재정의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비단 한 이민가족의 개인사적 위기를 그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불안한 시대를 ‘영혼의 집’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로 확장된다.
긴 방황 끝에 같은 그리움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 세 명의 가족이 들개의 울음소리로 뒤늦을 애도를 함께 하는 장면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영혼의 집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샤론 최와 함께하는 <영특한 대화>
<잡종>은 사실 각각 부제를 붙인 세 편의 다른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인물 각자가 마주하고 있는 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특한 클래스>의 모더레이터로 참석한 샤론최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균질’한 서사인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영화가 담고자 한 이민세대의 진짜 고충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는 그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녀의 모더레이팅으로 영화가 사용한 각기 다른 화면비와 색감, 음악의 테마가 이 불균질과 충돌을 다루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었다. <영특핸 대화>에서는 디아스포라와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 외에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통역한 통역사로 명성을 얻었지만 제롬유 감독과 시네마 스쿨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신인영화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준비중인 샤론최의 커리어패스와 작업 근황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Schedule in JIFF
2025.05.02.(금) 17:30 CGV전주고사 1관
2025.05.03.(토) 17:00 CGV전주고사 1관
2025.05.07.(수) 17:00 CGV전주고사 2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4.30 ~ 5.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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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되기 위한 세 번째 조건
작가란 누구일까? 작가가 되려면 우선 글을 써야 한다. 작가란 글로 무언가를 짓는(作) 사람이다. 작가의 첫 번째 조건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냥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수많은 사람이 글을 씀에도 그들이 모두 작가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작가로 인정하려면, 그에게 독자가 있어야 한다. 독자는 작가의 두 번째 조건이다. 우리는 혼자만 읽는 글을 쓰는 사람을 작가라 부르지 않는다. 많든 적든 그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글쓴이는 비로소 작가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사람일 수 있다.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 영화가 말하는 작가의 세 번째 조건은 바로 독자와의 상호성이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조안나 래코프의 책 《My Salinger Year》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작가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J. D. 샐린저(J. D. Salinger)다. 샐린저는 지독할 정도로 대중 앞에 서는 걸 꺼린 것으로 유명한 작가다. 명성에 비해 발표한 작품의 숫자도 적은데 그마저도 철저하고 까다로운 저작권 관리를 받아 접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는 작가 에이전시에 취직해 샐린저를 담당하게 된 조안나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은둔자적 삶을 이어가는 샐린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관해 철저히 교육받는다. 제일 중요한 업무는 샐린저에게 온 독자 편지에 응대하는 일인데, 샐린저가 독자의 편지를 받아보기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조안나가 적당한 형식에 맞춰 답을 써야 했다. 샐린저에게 오는 편지는 이미 에이전시가 유형화해놓았을 정도로 다양하다. 소설에 감동했다는 독자, 자기 문제에 조언을 요청하는 독자, 인터뷰를 요청하는 언론 등등. 조안나는 샐린저에게 온 수많은 편지를 분류하고 매뉴얼대로 답장해나간다.
그런데 점점 의문이 생긴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수많은 독자의 내면을 강렬히 사로잡았기에 샐린저에게 온 편지도 대부분 절절한 이야기다. 그들은 모두 갈급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인 홀튼 콜필드를 창조해낸 샐린저에게 자기 내면의 혼란을 털어놓으며 교감을 추구한다. 조안나의 고민은 여기서 생긴다. 진정성 가득한 편지에 기계적으로 답변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건 샐린저의 태도가 적절한지를 고민하는 조안나 역시 샐린저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안나가 뉴욕으로 온 후, 고향에 있는 그의 남자친구는 연락 없는 그녀에게 계속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조안나는 이를 읽지 않고, 읽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답장도 하지 않는다. 연락이 끊긴 채 멀어져버린 연인에게 쓴 편지의 애절함이 샐린저에게 쏟아진 편지에 담긴 감정에 뒤처질 리 없다. 조안나는 샐린저의 처신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정작 자기 역시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닫는다.
사실 조안나는 작가 지망생이다. ‘지망생’이란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이미 《파리 리뷰》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안나는 그 이후 별 다른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작가’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작가 에이전시에 취업한 것도 이 일이 그녀의 꿈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데 보탬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에서였다.
영화의 마지막, 조안나는 결국 작가가 되기 위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다. 샐린저를 품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연락을 끊었던 남자친구와도 만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물론 샐린저는 위대한 작가다. 조안나는 그의 작품에 진정으로 감탄하며, 작가로 살아가는 태도와 방법에 관한 그의 조언에 감동한다. 그러나 조안나는 샐린저가 아니다. 샐린저가 독자와 엮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데 반해, 조안나는 고향의 남자친구가 편지 서문에 자신의 애칭을 부른 것만으로도 과거 기억이 떠올라 편지를 읽지 못할 정도로 섬세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다. 직장 상사가 상업적이고 딱딱한 태도로 작가를 대하는 걸 보며 마음 아파하는 장면도 조안나의 여린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
때문에 그녀가 스스로 작가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는 분명 샐린저와는 다른 작가가 될 것이다. 독자의 반응 하나하나에 설레거나 상처받으며, 이를 소중히 품은 채 다음 작품에 그들이 남긴 흔적을 반영할 것이다. 외골수처럼 자기만의 주제를 파고드는 작가도 좋지만, 독자와 함께 호흡하며 작가 주체성‧정체성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작가도 좋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복잡한 문학이론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작가의 의미를 질문한다는 점에서 꽤 흥미로운 영화다.
한편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작가론을 다루는 영화인 동시에 꿈꾸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내가 그랬듯, 많은 사람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조안나의 모습에 위로 받을 것이다. 샐린저의 궤적을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미래를 꿈꾸는 조안나가 만들어갈 미래를 상상하는 게 퍽 즐거웠다.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와 그녀가 선택한 미래를 비교해보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어떤 목표를 정하고 본격적으로 매진하려는 초심자에게, 〈마이 뉴욕 다이어리〉가 잔잔한 위로와 재미로 다가갈 것을 확신한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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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재를 노리는 게 잘못된 건가요?
올해 5월에 개최된 제77회 칸 국제영화제의 대상 격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만한 작품이다. 지난 6일 개봉한 신작 '아노라'를 본 관객들, 영화를 좋아하는 씨네필들에게 이 영화는 올해 남은 기간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탠저린', '플로리다 프로젝트' 등으로 국내외 관객들에게 주목받은 션 베이커 감독이 '레드 로켓' 이후 3년 만에 신작 '아노라'를 들고 나왔다. 이민자, 성노동자 등 하위문화에 속하는 버림받았거나 소외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왔던 그답게, '아노라' 또한 성노동자(스트리퍼)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아노라'는 미국 뉴욕에서 스트리퍼로 일하는 아노라(미키 매디슨)의 일상으로 포문을 연다. 화려한 조명 스쳐 가는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며 돈을 번다. 자신이 일하는 바에서 에이스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 벌이로는 영 시원치 않다.
어느 날, 가게에 놀러온 철부지 러시아 재벌 2세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이 만나게 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이반은 아노라에게 첫눈에 반했고, 아노라 또한 자신에게 끊임없이 호감을 표시하는 이반에게 충동적인 감정을 느끼며 빠져들었고 신분 상승까지 꿈꾼다. 이후 특별한 만남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충동적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이렇게만 보면 줄리아 로버츠를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만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 '프리티 우먼'의 21세기 버전처럼 흘러갈 것이라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션 베이커의 '아노라'는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결혼 사실을 알게 된 이반의 부모가 무효화하기 위해 하수인들을 보내면서 판타지를 와장창 깨뜨린다.
결혼 무효화 소동이 본격화되면서 아노라는 자신의 직업(성노동자) 때문에 따라붙는 꼬리표들(매춘부, 꽃뱀짓 등)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난도질당한다. 비록 사회가 가장 천시하는 일이나, 그녀가 자신의 생계를 위해 온갖 수모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아노라를 넘어 모든 아웃사이더·소수자로 향한다. 아노라-이반의 결혼 무효화를 위해 합심한 토로스(카렌 캐러글리안), 가닉(바체 토프마산), 이고르(유리 보리소프) 또한 이반의 부모에게 고용되어 이들에게 잘 보여야 생존할 수 있는 처지 아니던가.
약자들의 이야기를 그리되, 으레 자주 활용되는 '약자들의 연대'는 명확하게 거부한다. "매춘부, 깡패, 빌어먹을 아르메니아인, 싸이코" 등 서로를 향한 거친 욕설을 퍼부으며 가까워지지 않는다. 사실 이들 모두 연대 없이도 각자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따라가는 여정의 끝인 마지막 장면은 매우 강렬하게 다가온다. 횡재를 노리는 아노라가 그렇게 잘못한 생각을 한 걸까, 그녀도 잘해보고 싶었을 것인데 이를 몰라준 게 아닐까. 마지막 장면을 본다면 '악깡버'로 버텨온 아노라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아노라'를 관람한 관객들은 주인공을 맡은 미키 매디슨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 그의 실감 나는 연기가 아니었다면 션 베이커 감독의 훌륭한 블랙 코미디는 화룡점정을 찍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년에 개최 예정인 오스카 시상식 여우주연상 강력 후보로 급부상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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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영화 워크 잇 Work It 후기 / 댄스 영화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작품들을 찾아보다가 이번에 선택한 영화는 <워크 잇>이다.
오랜만에 보는 유쾌한 하이틴 댄스 영화다.
댄스 영화는 한참 좋아했지만 한동안 보지 않고 있었던 장르이다.
<워크 잇>은 다른 댄스 영화와 비슷한 형태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따라하는 뻔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주인공이 훈련을 통해서 실력을 향상하는 부분이나 특정 부분의 특기를 가진 멤버를 모아서 스페셜 팀을 구성하는 형태의 이야기는 댄스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방식이다.
하지만,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와 중간중간의 유머는 이야기의 전개를 예상하면서도 재미있다.
주인공의 춤 실력은 영화의 설정 그대로 그다지 훌륭하지 않지만 연기는 좋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Positive.1. 주인공인 모범생 퀸을 연기한 사브리나 카펜터의 연기가 좋다.
디즈니 채널 출신 답게 연기가 좋은데 춤을 못 추는 몸치 연기는 아주 그럴 듯하다.
과장되지 않으면서 진지한 듯 코믹한 연기도 웃음을 준다.
2.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특정 장면을 지루하게 가져가지 않는다.
3. 중간 중간의 유머가 과하지 않으면서 재미를 준다.
4. 춤을 배워가는 과정이 어울리는 음악과 함께 유쾌하게 그려진다.
5. 줄리아드는 개성 있고 실력도 있고 독재적인 댄스 팀 리더를 잘 표현하고 있다.
팔다리가 길어서인지 춤추는 모습도 멋지다.
| Negative.
1. 댄스 영화임에도 주인공 팀의 댄스 안무는 조금 실망스럽다.
특히, 마지막 공연 장면은 우승팀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실망스러울 정도이다.
준우승한 팀의 안무가 차라리 낫다.
2. 마지막에 줄리아드가 갑자기 변한 것은 뜬금없다.
별다른 계기도 없고, 갑자기 성숙해졌다.
끝까지 악해야 통쾌함이 있을 텐데, 갑자기 모두가 착하게, 모두가 잘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3.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퀸을 끝까지 도와주는 재스는 비현실적으로 착하다.
줄리아드가 목표인 댄서이면서도 퀸을 위해 최고의 댄스팀을 나와 미래가 불확실한 팀에 합류한다.
퀸이 자기 때문에 만들어진 팀을 버리고 자신을 위해 돌아섰다가 돌아왔을 때도 다시 도와준다.
4. 운전 못하는 퀸이 운전하는 장면은 그다지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5. 새로 구성한 댄스 팀 멤버들의 역할과 비중이 너무 적다.
팀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댄스 대회 이야기이지만, 팀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 총평
가벼운 마음으로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댄스영화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줄거리를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끌어가고 있다.
워크 잇 평점 7.0 (작품 7, 재미 7)
 ̄
워크 잇 예고편
* 본 콘텐츠는 블로거 네레이드 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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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59 제목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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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2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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