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yun2024-11-07 11:59:15
횡재를 노리는 게 잘못된 건가요?
영화 '아노라' 리뷰
올해 5월에 개최된 제77회 칸 국제영화제의 대상 격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만한 작품이다. 지난 6일 개봉한 신작 '아노라'를 본 관객들, 영화를 좋아하는 씨네필들에게 이 영화는 올해 남은 기간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탠저린', '플로리다 프로젝트' 등으로 국내외 관객들에게 주목받은 션 베이커 감독이 '레드 로켓' 이후 3년 만에 신작 '아노라'를 들고 나왔다. 이민자, 성노동자 등 하위문화에 속하는 버림받았거나 소외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려왔던 그답게, '아노라' 또한 성노동자(스트리퍼)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아노라'는 미국 뉴욕에서 스트리퍼로 일하는 아노라(미키 매디슨)의 일상으로 포문을 연다. 화려한 조명 스쳐 가는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며 돈을 번다. 자신이 일하는 바에서 에이스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 벌이로는 영 시원치 않다.
어느 날, 가게에 놀러온 철부지 러시아 재벌 2세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이 만나게 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이반은 아노라에게 첫눈에 반했고, 아노라 또한 자신에게 끊임없이 호감을 표시하는 이반에게 충동적인 감정을 느끼며 빠져들었고 신분 상승까지 꿈꾼다. 이후 특별한 만남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충동적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이렇게만 보면 줄리아 로버츠를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만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 '프리티 우먼'의 21세기 버전처럼 흘러갈 것이라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션 베이커의 '아노라'는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결혼 사실을 알게 된 이반의 부모가 무효화하기 위해 하수인들을 보내면서 판타지를 와장창 깨뜨린다.
결혼 무효화 소동이 본격화되면서 아노라는 자신의 직업(성노동자) 때문에 따라붙는 꼬리표들(매춘부, 꽃뱀짓 등)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난도질당한다. 비록 사회가 가장 천시하는 일이나, 그녀가 자신의 생계를 위해 온갖 수모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아노라를 넘어 모든 아웃사이더·소수자로 향한다. 아노라-이반의 결혼 무효화를 위해 합심한 토로스(카렌 캐러글리안), 가닉(바체 토프마산), 이고르(유리 보리소프) 또한 이반의 부모에게 고용되어 이들에게 잘 보여야 생존할 수 있는 처지 아니던가.
약자들의 이야기를 그리되, 으레 자주 활용되는 '약자들의 연대'는 명확하게 거부한다. "매춘부, 깡패, 빌어먹을 아르메니아인, 싸이코" 등 서로를 향한 거친 욕설을 퍼부으며 가까워지지 않는다. 사실 이들 모두 연대 없이도 각자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따라가는 여정의 끝인 마지막 장면은 매우 강렬하게 다가온다. 횡재를 노리는 아노라가 그렇게 잘못한 생각을 한 걸까, 그녀도 잘해보고 싶었을 것인데 이를 몰라준 게 아닐까. 마지막 장면을 본다면 '악깡버'로 버텨온 아노라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아노라'를 관람한 관객들은 주인공을 맡은 미키 매디슨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다. 그의 실감 나는 연기가 아니었다면 션 베이커 감독의 훌륭한 블랙 코미디는 화룡점정을 찍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년에 개최 예정인 오스카 시상식 여우주연상 강력 후보로 급부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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