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0-18 01:24:53
폭력을 받아들인 자에게 열리는 다음 라운드
영화 <클라우드> 리뷰
클라우드 (Cloud, 2024)
폭력을 받아들인 자에게 열리는 다음 라운드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스릴러, 액션
러닝타임 : 124분
감독 :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 스다 마사키, 후루카와 코토네, 오구다이라 다이켄, 오카야마 아마네, 쿠보타 마사타카
개인적인 평점 : 3/ 5
쿠키 영상 : 없음
“하여간 특이해”, “이상한 애네”
한국인들의 사랑이 시작되는 대표적인 시그널로 통하는 말이다. 나도 이렇게 사랑에 빠졌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불분명하고 의아하고 이상하다. 그런데 그래서 다시 찾게 된다. 잠시 헛웃음이 나게 하다가도 금세 진지함을 보이는 그의 영화엔 미묘한 매력이 있다.
<클라우드>는 특히 이런 미묘함과 혼탁함이 빛나는 영화다. 주인공 요시이를 맡은 배우 스다 마사키는 혼탁함과 의아함이라는 애매한 요소들을 매력으로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는 몇 수 앞의 감정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신묘한 연기를 펼치며 영화 곳곳에 느껴지는 결핍을 메꿔내고 마치 솜사탕을 만들 듯 영화의 몸집을 몇 배로 불려내는 저력을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클라우드>는 아무에게나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스다 마사키를 좋아하는 관객에겐 큰 고민 없이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주인공 요시이는 리셀러다. 그는 낮에는 옷을 깔끔히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세탁 공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엔 구김살이 가득한 불법 리셀러 라텔로 활동한다. 그는 오직 감에 의지해 물건을 사재기하고 웃돈을 얹어 재판매하며 돈을 번다. 요시이의 물건이 비싸게 팔리는 요행이 반복될 때마다 그의 통장엔 숫자가 늘어나고 동시에 라텔을 향한 증오도 늘어난다.
세탁 공장 일과 리셀러를 병행하던 요시이는 최근에 사재기한 치료기로 크게 돈을 벌고 공장을 그만둔다. 그리고 한적한 호수 근처 저택을 임대한 후 그곳을 사무실 겸 연인 아키코와의 보금자리로 꾸민다. 요시이는 지금보다 더 큰돈을 벌길 바라며 사노라는 직원 한 명을 고용하고 더욱 본격적으로 리셀러 활동을 이어간다.
그 사이 온라인에선 리셀러, 사기꾼 라텔을 혼내주자는 피해자 모임이 생겨나고 누군가는 라텔을 향한 분노를, 누군가는 목적지가 없는 분노를 쏟아내며 하나의 팀을 조직한다. 이들은 라텔을 잡는 게임에 참가한 파티원이 되어 상식을 웃도는 폭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요시이는 살아남기 위해 이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결단을 내리게 된다.
<클라우드>는 ‘액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감독의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액션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몽롱한 꿈같은 작품이다. 이게 말이 되나 싶다가도 왜인지 말이 되는 것 같고 이런 놈들이 존재할까 싶은데 또 비슷한 놈들을 어디선가 본 것만 같다. 무지향성의 분노와 폭력, 집착이 범람하는 이 이상한 세계가 어쩐지 낯설지 않아 더 찝찝하고 흥미롭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요시이, 아키코는 돈과 물건에 대한 집착, 사노는 고용주 요시이와 그의 변화에 대한 집착, 괴한 무리는 자신의 분노를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다는 착각과 집착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이런 집착을 충족하기 위해 엉망으로 벌려둔 상황을 대략 ‘보상이 걸린 한 판의 게임’ 정도로 정의하고 합리화하며 곧 죽어도 자신의 폭력과 실수엔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요시이는 이 사달의 시작점인 리셀러 일을 그저 ‘아무리 말이 안 되는 물건이라도 살 사람이 있으면 팔리는 것, 그냥 도둑잡기 게임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괴한들을 자신의 업보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을 비난하고 경멸한다.
다른 곳에서 뺨 맞고 요시이를 잡으러 온 괴한들은 정확한 이유 없이(이 무리에서 요시이에게 제대로 된 사기를 당한 사람은 없다) 요시이를 죽이려는 이 상황을 그냥 모르는 사람들과 벌이는 게릴라 게임 또는 피해자들을 위해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 여기며 자신들의 폭력을 합리화한다.
이 상황에 끼어든 사노와 아키코는 사심을 채우기 위해 요시이를 새로운 측면으로 이끌거나 그를 이용할 계획을 세우며 함께 게임의 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평화로운 숲속과 어울리지 않는 총성이 이어지는 상황. 총을 든 괴한들과 사노는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다. 그런데 사노의 옆에 딱 붙은 요시이는 총을 쏘지 못하고 그저 사노의 뒤를 어색하게 따라다닌다.
요시이는 라텔로 활동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긴 했지만 신체적으로 누군가를 해한 적은 없었고 실제로 누굴 죽일 마음도 없었다 요시이는 이 상황에서도 누굴 죽이겠단 마음보다 물건을 챙기는 게 먼저다. 요시이가 1라운드에서 나무 막대기를 깔짝이며 상대를 기절시키고 있는 초보라면 요시이를 제외한 사람들은 다음 라운드에서 칼을 들고 상대를 죽이는 고수라고 할 수 있다. 타카모토는 가족을 죽인 살인범이고 다른 괴한들은 요시이가 숨었던 오두막의 관리인을 죽이고 유기한 동조자다. 사노는 과거를 알 수 없지만 총기를 다루는 어두운 일을 했음이 분명하고 아키코는 돈을 위해 요시이를 죽일 마음이 있다.
사노가 묶여있던 요시이를 풀어주는 순간, 요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순간 사노의 팔을 의지하지만 바로 손을 떼고 “원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말하며 사노와 한발자국 정도 떨어진다. 그리고 괴한들을 설명할 땐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인생의 패배자라고 말한다. 요시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괴한, 사노와는 다른 사람임을 의식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자 요시이도 1라운드를 넘어 사노와 다른 이들이 머물고 있는 다음 라운드로 이동한다.
요시이는 사노를 겨누고 있는 토도야마 (이온전자 치료기 사장)를 발견하고 사노를 구하기 위해 총을 쏜다. 사노는 요시이에게 총 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냐며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요시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 대신 타카모토를 잡기 위해 밖으로 달려나갈 때 사노의 속도에 맞춰 함께 달려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요시이는 결국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폭력을 받아들였고 그는 이제 사노와 같은 선상에 서있다.
마지막까지 함께 상황을 정리한 요시이와 사노는 비현실적인 하늘의 입구로 달려간다. 사노와 함께 새로운 라운드에 진입한 요시이는 이제 자신이 원했던 원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 폭력에 물든 사람과 폭력에 물들지 않은 사람의 삶은 같을 수 없으니까.
비정상적인 폭력성을 쏟아내는 괴한들, 폭력을 부추기던 사노,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고 변한 요시이. 이 들의 모습이 그다지 놀랍고 낯설지 않다는 점이 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큰 찝찝함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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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담은 영화.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요즘 길거리에 만개한 꽃을 보니 마음이 설레는데요.
밖에서도 꽃놀이를 즐기고, 랜선으로도 꽃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꽃이 나오는 영화를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٩( ᐛ )و
빅 피쉬 (2003)
출처: 네이버 영화
SYNOPSIS윌은 아버지 에드워드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향한다. 아버지의 모험담을 들은 윌은허풍 가득한 그의 이야기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기 위해 증거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CINE PICK!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한 번쯤은 봤을 사진, 1만 송이 수선화가 펼쳐진 꽃밭에서 프러포즈를 하는 장면이죠.
몽환적인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께 추천해 드립니다.
하나와 앨리스 (2004)
출처: 네이버 영화
SYNOPSIS단짝 친구인 하나와 앨리스. 하나는 앨리스가 점찍었던 선배 미야모토에게 첫눈에 반하고,문에 부딪혀 정신을 잃은 후 깨어난 미야모토에게 그가 자신에게 고백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만다.CINE PICK!
일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바로 벚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본 영화 중에 벚꽃을 담은 영화를 꽤 많이 볼 수 있다.
등교하는 두 소녀의 배경으로 보이는 벚꽃이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몽환적이고, 따뜻하게 만든다.
너는 내 운명 (2005)
출처: 네이버 영화
SYNOPSIS시골총각 석중은 동네 순정다방 레지 은하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결국, 석중의 진심을 받아들인 은하는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한다.힘들어 하는 은하를 위해 전재산을 처분한 석중. 그런데 어느 날 은하는 편지 한 통만 남긴 채 석중의 곁을 떠난다.CINE PICK!
<너는 내 운명>에서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은 과수원에서 데이트를 하는 석중과 은하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
출처: 네이버 영화
SYNOPSIS조그마한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에 살고 있는 사치, 요시노, 치카는 15년 전 집을 떠난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찾아간장례식장에서 홀로 남겨진 이복 여동생 스즈를 만난다.CINE PICK!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벚꽃 풍경이 아주 잠깐 나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다.
벚꽃이 나온 영화를 말하라고 하면 가장 많이 이야기할 것 같은 영화입니다.
플라워 쇼 (2016)
출처: 네이버 영화
SYNOPSIS자연과 정원에 대한 열정을 가진 메리는 유명 플로리스트이자 가든 디자이너인 샬롯의 팀원이 되지만, 기회를 얻는 데에 실패한다.메리는 식물학자 크리스티와 함께 에티오피아에서 자연의 새로운 모습을 느끼고 돌아와 첼시 플라워쇼에 도전한다.CINE PICK!
본 영화는 메리 레이놀즈의 자서전 『데어 투 비 와일드』를 바탕으로 한 실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가 꽃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보니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는, 눈이 즐거운 영화이다.
미녀와 야수 (2017)
출처: 네이버 영화
SYNOPSIS어느 날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아 폐허가 된 성에 도착한 벨은 저주에 걸린 ‘야수’를 만나아버지 대신 성에 갇히고, 야수 뿐 아니라 성 안의 모든 이들이 신비로운 장미의 마지막 꽃잎이 떨어지기 전에저주를 풀지 못하면 영원히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는 운명임을 알게 된다.CINE PICK!
'장미의 꽃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진정한 사랑을 하면 마법이 풀린다'는 신비로운 장미가 등장하는 <미녀와 야수>.
2017년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고,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과 미술상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이다.
막다른 골목의 추억 (2018)
출처: 네이버 영화
SYNOPSIS나고야에 있는 남자친구 태규를 만나러 간 유미는 그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뜻하지 않은 이별에 낯선 도시를 방황하던 유미는 우연히 막다른 골목에 위치한 카페에 들어선다.CINE PICK!
이 영화는 총 4개의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제1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수상하였다.
영화의 스틸컷을 보면 배경으로 만개한 벚꽃이 보이는데 정말 사진으로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예쁜 풍경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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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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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화한 강형욱
"개의 가장 큰 단점은 인간을 믿는다는 거죠"
개는 늑대와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하지만, 유전적으로 가장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다. 개는 태어날 때부터 인간을 사랑하는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다.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그런 방식으로 인간을 잘 따르는 개체를 선별하고 키우고, 인간과 동일한 탄수화물 식단을 먹게 되면서 그렇게 바뀌었다고 보고 있다. 절대 길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여우도 그런 방식으로 개처럼 사람을 잘 따르게 만든 사례가 방송에 나온 적도 있다.
뤽 베송의 영화 <도그맨>은 인간에게서 철저히 외면받고 개에게서 위로를 받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뤽 베송의 귀환이라고 해서 <존 윅>같이 개와 함께하는 엄청난 액션을 기대한다거나, 영화 초반의 모습으로 인해 <크루엘라> 혹은 <조커>와 비교하게 되기도 하는데, 사실 이 영화는 예상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떤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받는 한 백인 남성이 경찰에게 잡힌다. 그런데 그는 백여 마리의 개를 트럭에 싣고서, 피를 흘리며 여장을 하고 있는 기괴한 모습이다. 무언가 섬뜩한 느낌을 감지한 경찰은 총을 겨누며 내리라 하지만, 그는 태연하게 담배를 꺼내 피운다. 여장을 한 더글라스(케이럽 랜드리 존스)는 그렇게 유치장에 갇혀, 흑인 여성 의사인 에블린(조조 T. 깁스)과 심리 면담을 시작한다.
범죄자와의 면담을 통해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영화는 <데드맨 워킹>이나 <양들의 침묵>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사람이 범죄자라면, 그 범죄에 서사를 씌우게 되는 영화인가? 범죄자가 미화되는 영화인가? 혹은 광기의 탄생을 그린 영화인가? 하고 관객은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꽤나 흥미로운 사람이다. 아주 신사적이고 당당하다. 그가 두 다리에 보호대를 차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대체 어떤 범죄를 저질렀으며 왜 이렇게나 자신만만한 모습인지 궁금해진다. 에블린은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폭력과 혐오의 신과 사도
더글라스는 투견을 하기 위해 개를 기르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따르는 형, 아버지에게 맞고 사는 어머니에게서 자랐다. 아버지의 폭력이 지배하는 가정 분위기는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돈다. 특히 아버지는 투견에게 먹이나 정을 주는 걸 극도로 꺼린다. 아버지는 개에게 먹이를 주고 정을 주는 더글라스를 개 우리에 가둔다. 형이 일러바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폭력을 이기지 못한 어느 날 어머니는 도망간다.
이 집안에서 아버지가 가장 나빠보일 수 있지만, 더글라스가 가장 안 좋게, 위협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의 형이다. 아버지가 폭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자식을 개 우리에 몇 년이나 가두고 학대하는 인간 같지 않은 아버지지만, 그래도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아버지 나름의 정당성은 있었다. 하지만 그의 형은 폭력을 즐기는 인간이었고, 동생과 어머니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없었으며 아버지의 폭력성을 존경했다. 아버지는 삐뚤어지긴 했어도 아들을 우리에 가두는 것을 나름 교육이라 여긴 반면 형은 그저 동생이 고통받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거기에 어떤 이유에서든 아들을 총으로 쐈다는 생각에 멘탈이 붕괴된다. 그런 모습을 본 형은 아버지를 감싸고 또 동생에게 잘못을 돌린다. 이후 감옥에 가자마자 자살까지 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더글라스는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버지가 그 집에서 폭력의 신이라면 형은 폭력의 사도인 셈이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신을 자처하는 숭배의 대상 그 자체가 자신을 신격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종교를 만들고 제자들이 해당 존재를 신격화시켜 자신들의 세력과 종교를 만든 경우가 많다. 소크라테스를 신격화하고 그의 철학을 정립한 것은 플라톤이었다. 예수를 신격화하고 행적이나 말을 기록한 것은 12사도였으며, 사실상 그리스도교를 정립한 것은 예수를 생전에 본 적이 없는 바울이다. 아버지라는 신은 폭력이라는 교리를 자신만의 합리성으로 행했지만, 형이라는 사도는 폭력이라는 힘에 취한 사도-추종자일 뿐이다. 더글라스가 갇힌 철창에 'In the name of God'이라는 문구를 붙인 것이 그가 폭력의 신인 아버지의 사도역할을 한다는 걸 여실히 드러낸다.
성경에서 개는 하등하거나 나쁜 것으로 종종 묘사된다. 'In the name of God'이라는 문구가, 개 철창 안에서 더글라스가 본 시선으로는 뒤집히고 가려져 'DOG MAN'으로 보인다. 아버지와 형에게 개와 친한 더글라스는 교화해야 할 대상이며 형에겐 단죄해야 할 대상으로까지 변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에게 총맞은 일로 경찰에게 구조되고, 형은 감옥에 갔다. 감옥에 간 형이 출소하면 아버지의 죽음까지 몰아 동생을 죽이려 할 것이 자명했다. 더글라스가 형을 죽인 것은 복수였을 뿐 아니라, 혐오와 폭력에 대항하는 정당방위처럼 그려진다. 이 세상은 폭력과 혐오의 세상이고, 아버지는 폭력의 신이며 형은 폭력의 사도다. 더글라스 역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신을 신에게 대항하는 적그리스도인 도그맨으로 다시 태어난다.
차별에 대항하는 법
아버지가 자살하고 형도 감옥에 가 있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인 더글라스는 이후 청소년 보호소에서 자라게 된다. 애매하게 하반신이 마비된 채, 그곳에서도 폭력과 혐오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 더글라스에게 교사인 샐마(그레이스 팔마)와 연극은 한줄기 빛이었다. 연극 속 세상은 자신을 무엇으로든 만들어줄 수 있었고, 그곳엔 폭력과 혐오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차별이 가득했다. 장애인이자 보호소 출신인 더글라스는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개를 돌보는 것이 가장 적성에 맞는 듯했지만 이마저도 국가에 의해 쫓겨난다. 현실은 약자에게 가혹하다. 결국 샐마에게 가졌던 연정마저 짓밟히고 나자, 자신도 자신을 혐오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더글라스가 자신을 차별하고 혐오했던 이들을 단죄하기 시작했다면 다른 영화 속 범죄자와 다름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차별하고 혐오하던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갖지 않는다. 그에겐 그를 위로하는 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라는 말은 더글라스에게 딱 맞는 말이다. 그는 백여 마리의 개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더글라스가 불행에서 벗어나 자신을 긍정하게 된 계기는 드랙퀸으로서 무대에 서게 된 후다. 드랙퀸은 화려하게 여장을 하고, 립싱크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며 무대를 만드는 크로스 드레서들을 말한다. 드랙퀸이 겉보기에는 트랜스젠더나 게이처럼 보일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하기도 하지만, 그냥 이성애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하기도 한다. 드랙퀸으로 유명한 공연은 <헤드윅>이 있고, 유명한 사람은 인어공주의 우르술라의 모티브였던 '디바인'이 있다. 연극을 하면서 남녀역할을 바꾸는 것에 거부감이 없던 더글라스는 드랙퀸의 무대에 푹 빠지게 된다. 그리고 드랙퀸들도 사회에서 차별받는 존재라, 더글라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줬다. 결국 그는 무대에 서며 불행에서 치유된다.
여기까지 오면, 더글라스 - 도그맨은 크루엘라나 조커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크루엘라나 조커는 자신의 극악한 범죄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범죄자의 서사가 들어가 있다. 물론 상처 입은 영혼이라는 점은 비슷하나, 도그맨은 자신의 상처를 너무도 훌륭한 방법으로 극복하고 있지 않은가? 이쯤 되면 도그맨은 대체 어떤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이길래, 기괴한 모습으로 피를 흘린 채 잡히고 정신감정을 받고 있는 걸까.
도그맨은 누구인가
누군가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개를 도그맨에게 데려온다. 도그맨은 그 유기견을 받아들이고, 그의 말을 듣는다. 이 지역의 악질적인 조직이 세탁소 아줌마를 못살게 군다는 것이었다. 도그맨은 마치 늘 이런 일이 있던 것처럼, 개들을 이용해 약자들을 보호해 준다. 그 모습이 꽤나 능숙하다. 그리고 부의 재분배라는 명목아래, 부잣집에서 개들을 이용해 몇 보석을 훔쳐낸다. 부의 재분배를 외치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보석을 빨리 팔아치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도그맨 자신을 죽음으로 위협하는 사람들을 정당방위로 죽였다.
그리고 세탁소 아줌마를 보호하려고 폭력조직을 개로 위협한 일로, 조직이 도그맨을 죽이려고 찾아온다. 도그맨과 개들이 총을 든 조직과 상대하는 모습은 철저하게 준비되었다기 보단, 어설프고 처절하다. 도그맨은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세탁소아줌마를 위해 이런 위험한 짓을 했었단 말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더글라스의 말을 빌리자면, 더글라스 - 도그맨은 빌런도 안티히어로도 아니다. 그저 차별의 사회에서 살려고 몸부림치는 한 장애인이었고, 자기를 따르는 개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도둑질을 좀 하거나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을 개로 보호해 주는 일이 전부였다. 도그맨은 자신이 형과 보험조사원을 살해한 것을 담담하게 고백하고 인정한다. 비록 정당방위라고 할지라도. 도그맨의 트럭이 쫓기며 경찰에게 잡히게 된 그 사건도, 사실은 조직이 총을 들고 쳐들어와서 대항한 것뿐이었다. 도그맨은 빌런이라기엔 너무 착하고, 안티히어로라기엔 너무 소박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도그맨을 크루엘라나 조커와 같다고 생각했을까? 영화 첫 장면에서 보여준 그 무시무시한 기운, 경찰도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총을 겨누게 된 그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도그맨에게서 느껴지는 그 기괴함은, 사실 편견과 차별로 관객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현실에서 우리가 가지는 편부 편모가정이나 가정폭력에 노출된 사람에 대한 편견, 장애인에 대한 편견, 성소수자나 크로스 드레서, 드랙퀸에 대한 편견 등 말이다. 특히 그가 잡힌 사건은 그가 무시무시한 가해자라서가 아니라, 사실 피해자에 가까웠다. 경찰도 그걸 알고 그에게 안쓰러운 마음으로 담배를 준다. 엄청나고 기괴한 무서운 범죄잔줄 알았지?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야! 라고 감독은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차별받는 소수자가 발버둥 치는 휴먼드라마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 흐르는 신-개-더글라스로 연결되는 기묘한 연출로 인해, 이것이 무언가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개통령 혹은 개의 신
앞서 말했듯 개는 인간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정을 주면 금방 사람을 따른다. 사람을 따르고 애정을 가진 개는 굶주린 야생개보다 살의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에 나오진 않았지만 더글라스의 아버지는 투견을 하기 위해 개들을 따로 훈련시키기도 했을 것이다. 방식은 달랐지만, 더글라스는 애정으로 개들과 소통했고 별다른 훈련이 없이도 원하는 행동을 개에게 부탁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할까?
10년 전, 동물농장에서 <천재견 호야>의 사연이 나온 적이 있다. 주인 아저씨가 별다른 훈련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사람처럼 부탁하는 것을 척척 잘 알아듣고 하는 것이다. 수도꼭지를 틀고 닫고, 냉장고에서 음료를 가져오고, 말하지 않아도 일 끝나면 수건과 물을 가져오는 등,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천재견 테스트도 최상위권 점수를 받았다. 영화 <도그맨>에서 더글라스가 설탕이나 밀가루를 가져오라고 할 때 개들이 알아서 잘 가져오거나, 눈빛만으로 명령을 내리는 모습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호야도 주인아저씨와의 교감과 사랑으로 그런 일이 가능했고, 더글라스도 개들을 사랑으로 대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아버지가 개들을 함부로 다루는 집에서 자라, 개들을 사랑으로 대하게 된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개통령, 훈련사 강형욱이다. 강형욱은 개공장을 하는 집에서 자랐고,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아버지와 싸우기도 했으며 결국 개를 제대로 행복하게 키우는 일을 하며 살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더글라스는 흑화한 강형욱이며, 흑화한 천재견 호야의 주인이다. 더글라스가 흑화했다고는 해도 소소한 동네 로빈훗 느낌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도그맨>은 단순히 상냥한 훈련사, 혹은 애정 어린 개주인을 넘어선다. 이미 자신이 개 철창에 갇혔을 때, 형이 'In the name of God'이라는 문구를 달아주고 그것이 뒤집혀서 DOGMAN이 된 시점부터, 그는 적그리스도가 되기로 작정한 듯하다. 그가 개를 얼마나 사랑으로 대하는지는 사실 그렇게 많이 나오진 않는다. <도그맨>에서 의아한 지점은 이 부분이다. 영화에서 개들이 묘사된 모습이 철저하게 훈련받은 군대처럼 보인다. CG가 아니라 진짜 개들을 훈련시켜 그런 장면들을 찍었다곤 하지만, 교감보단 명령으로 느껴진다.
기독교에서는 신에게 의문을 가지면 안 된다. 신과 인간은 대등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관계가 아니라, 신에게 순종하고 신이 하는 행동은 그것이 인간을 위한 큰 그림이라는 것을 믿고 따라야 한다. 그래서 도그맨은 훈련사나 주인이 아니라, 개의 신인 것이다. 이렇게 신의 자유와 사랑을 순종으로 덧씌우는 것이 서양의 기독교서사에 자주 등장한다. 영화 중간중간, 더글라스는 스스로를 예수에 비유하는 행동을 하거나 행동을 하게 된다.
개 철창에서 손에 아버지가 쏜 총을 맞은 채 십자가 모양으로 쓰러진 더글라스는 그 일로 걷지 못하게 되었지만 아버지에게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신에게 버림받은 것인지 구원받은 것인지 혼란스럽다. 그가 세상의 차별로부터 구원받아 드랙퀸으로 구원받는 모습은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기적을 연상시킨다. 가난한 더글라스는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을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도둑질로 일으킨다. 또 조직이 기관총을 들고 쳐들어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그는 굳이 걸어가서 포도주를 마시며 최후의 만찬을 한다. 그저 동네 로빈훗에 불과한 사람이 이런 사건을 거치며, 더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여기게 변해간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기우일까?
그는 결국 개들을 이용해서 유치장을 탈출한다. 그러나 그는 멀리 도망가지 않고, 하나의 의식을 치르기 위해 걸어간다. 마치 십자가를 진 예수가 힘겹게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골고다 언덕을 오르듯, 바로 옆 성당의 십자가 그림자가 비치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정확하게 자신을 맞추려고 발걸음을 조금씩 조절하며 신에게 외친다. 십자가의 그림자는 더글라스에게 드리운다.
기독교의 4대 복음서 중 하나인 <루가의 복음서>와 외경인 <야고보 복음서>에 따르면,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는 장면을 '성령이 내려오셔서 너에게 그림자를 덮을 것이다(한국번역: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라고 천사가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한국 성경에는 잘못 번역되었지만, 원문에는 성령이 임한다는 것을 그림자가 드리운 것으로 표현했다. 이 장면은 '그림자 수태'라는 모티브가 되어, 마리아의 수태고지 장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장면의 그림으로 많이 묘사된다.
더글라스는 세상을 지배하는 폭력의 신에게 대항하는 적그리스도로써 더 완전히 새로 태어나려고 한다. 그가 그림자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는 것처럼 보이려는 자기 연출은, 그림자로 드리워진 성령의 힘을 받아 더욱더 강한 도그맨이 되려는 의식이다. 단순히 오래 서있다가 쓰러졌다고 해서 더글라스가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더욱 강인하게, 동네 로빈 훗에서 진정한 개의 신 도그맨으로 태어났다. 그러기에 불행이 있는 곳, 자신을 상담해 준 에블린에게 개를 보내지 않았던가. 왜냐하면 바로 자신이 신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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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그맨>은 <크루엘라>나 <조커>, 혹은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같은 빌런 서사 혹은 안티히어로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잔인하고 섬뜩한 장면이나 액션도 없고, 그의 수족이 된 개들은 CG가 아닌 실제 훈련받은 개들이라 살기가 느껴지지 않아 전혀 무섭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귀엽기까지 하다. 개를 죽이는 장면은 나오지 않고, 귀여운 개들은 천하무적이다. 끔찍한 인물인 줄 알았던 더글라스는 사실 불쌍하고 착한 사람이다. 그런 것들이 영화의 좋은 메시지를 조금 흐린다고 생각한다. 과연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라면서. 오히려 마케팅에서 크루엘라나 조커 언급을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았을까?
그렇더라도 날것으로 드러내는 뤽 베송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감각, 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만들어낸 더글라스의 캐릭터는 살아있다. 별것 아닌 것들을 별것으로 만들어내는 힘, 그리고 그 별것은 사실 우리가 만들어 낸 차별과 혐오에서 나왔다고 귀에 대고 소리치는 힘 말이다.
*여담으로, 주인과 그렇게 사랑으로 교감했던 천재견 호야의 주인아저씨는 4년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작년 <단짝>이라는 방송에서 주인아저씨의 아들이 호야를 아직도 키우고 있는 모습, 아저씨의 생전 목소리를 듣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나와 많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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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석도 3편'이 아닌 '범죄도시 3'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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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인천시. 사람들이 화가 나있다. 아마 차가 막혀서 그런 것 같다. 빼곡히 모여있는 사람들. 갑자기 차에서 남자들이 내린다. 시비가 붙었다. 화가 난 사람들. 몇몇 인간들이 엄한 시민들 서로 삿대질을 한다. 바로 주먹다짐이 벌어진다. 차를 타고 등장하는 한 남자. 왠지 이 걸음걸이는 두 번 본 적이 있다. 차에서 내리는 마석도. 마석도는 의외로 경찰이다. 싸움을 말려야 한다. 마석도에게 싸움을 말리는 일이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가볍게 두들겨 패고 행패 부리는 부랑자들을 잡아넣는 마석도. 마석도의 팀원이 바뀌었다. 새로운 반장 장태수가 부랴부랴 도착한다. “석도야. 고생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버스에서 강해상을 두들겨 팬지 7년이나 지났다. 많은 것이 변했다. 일단 마석도의 부서가 변했다. 허름한 컨테이너 박스가 아니다. 무려 건축물 안에 있다. 하지만 시설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것은 마석도가 지켜야 할 것도 더 생겼다는 의미다. 잡아온 범죄자들을 수사하던 마석도. 말을 더럽게 안 들어도 진실의 방을 외치기엔 약간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야 할 일의 난이도가 올라갔다.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그냥 나이트클럽에 놀러 갔던 20대 초의 여자가 마약 과다복용으로 인해 사망한 것이다. 원인을 추적하는 광수대. 몸통을 찾아올라 가는 마석도 일행.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몇 가지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7년 만에 터진 대형 사건. 마석도는 이번에도 나쁜 놈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까?
시리즈의 3편
1년 만에 돌아온 시리즈의 신작이다. 작년 <범죄도시 2>는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였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2편의 장점은 전편을 잘 승계했다는 것이다. 1편 왜 재미있었지? 마동석 배우의 캐릭터성과 코미디를 잘 살렸다는 점이다. 우선 마동석 배우가 1편 이전에 쌓았던 이미지는 ‘마블리’였다. 이 마블리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폴라로이드를 이용한 개그, 장이수와의 캐미 등등이 영화의 소소한 킬링포인트가 됐다. 또 하이라이트 신에서 장첸과의 액션신도 빼놓을 수 없다. 그전부터 마석도의 강력한 무력을 꼼꼼히 보여주다 하이라이트에서 힘을 빡 주는 연출로 액션에 강점을 준 것이다.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액션(장소적인 특성), 주고받는 방식, 이를 촬영하는 모습까지 장르물로서 잘 갖춘 영화가 <범죄도시 1>였다. 2편은 이거 그대로 살렸다. 다시 등장하는 장이수, 마석도의 원펀치 액션, 전일만 캐릭터를 코미디로 활용하는 방식까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은 잘 준비해서 영화로 만들었다. 이 선택지들은 적중해서 기록적인 흥행기록을 만들었다.
3편은 이 공식을 어느 정도는 승계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액션 강화했다. 2편에서 마석도 갖고 있던 액션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원펀치였다. 초반 짱구를 상대하는 액션 신부터 중후반부까지 웬만한 사람들을 한방 멋 내는 마석도의 괴력이 영화의 강점으로 작동했다. 이를 위해서 영화 자체적으로 사운드가 굉장히 중요했다. 3편 역시 소리가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운드가 잘 구현됐는가 와는 별개로 소리는 영화에서 두드러진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연속기를 구성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극 중 초반부에서 마석도가 이 운동을 배웠다는 대사가 나온다. 이를 보여주듯 영화는 격투게임 커맨드 누르듯 피하고 때리는 운동행위가 자연스럽게 설정되어 있다. 무술감독님의 열일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며 극에서 두 번째로 큰 장점이라고도 뽑을 수 있다.
또 2편만큼은 아니지만 3편이 시리즈를 연계한 부분이 있다. 영화의 공간적인 배경을 통으로 바꿨기 때문에 2편을 그대로 갖고 오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에서 전작을 오마주 한 흔적이 있다. 글쓴이는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주성철과 마석도의 개성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생각할 수 있는 선에서 한번 더 들어온 느낌? 그러나 이 장면이 오히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2편의 '어 싱글이야' '맞다가 죽을 것 같으면~'을 살짝 의식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단점이 된 장점
2편에서 좋았다고 느꼈던 부분은 사운드였다. 영화가 마석도의 주먹 한 방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에 이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것은 작품의 핵심 과제였다. 영화는 초반 첫 장면부터 이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도입부에 짱구를 제압하는 장면에서 얼굴에다 주먹 꽂고 시작한다. 한 방 맞고 전치 몇 줄을 끊는다. 이걸 뭐 디테일하게 일일이 다 촬영할 수도 없는 일. 소리 한번 시원하게 들려주면 설득력이 생긴다. 2편은 좀 비현실적이긴 한 마석도의 무력을 어렵지 않게 묘사했다.
그러나 3편에서 이 부분이 아쉽게 느껴진다. 일단 초반부. 마석도가 난장판인 길바닥을 수습한다. 시비 붙은 사람들. 여기서 마석도의 첫 번째 액션 신이 있다. 이 장면에서 사운드가 너무 인위적으로 편집된 느낌이 있다. 글쓴이만 그런 건진 모르겠는데 대충 때리는 듯한 연출이 몇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 끝나고 공간을 이동해서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데 이 장면에서 후시녹음의 티가 너무 대놓고 나서 몰입을 방해하는 감이 있다. 뭐 단순히 초반부뿐만 아니라 귀를 할퀴는 듯한 사운드 연출은 영화 내내 발목을 잡는다. 물론 이게 작품 몰입에 방해가 되고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서 지장이 있다고는 느낄 수 있다.
또 2편에서 소소하게 말장난으로 웃음을 줬던 부분이 있다. 영화의 공간을 활용한 방식이었다. 대표적으로 마석도가 라꾸의 도박장에 급습하는 장면이다. 라꾸의 고객 중 하나가 마석도에게 말 거는 장면을 보면 '버스 타고 왔어' '까불인데요'같이 자연스럽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3편에서 나이트클럽이라는 장소를 작위적으로 사용한 느낌이 있었다.
빌런의 존재감
기존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장점으로 뽑을 수 있었던 건 역시 빌런의 존재감이다. 위성락과 장첸을 연기한 윤계상과 진선규, 강해상을 손석구는 두 편의 영화에서 아주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우선 1편에서 영화의 강점으로 작동했던 부분은 빌런 무리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광기였다. 진선규와 윤계상은 감정전달에 있어 때에 따른 임팩트를 줘 효과적으로 극에 서스펜스를 부여한다. 가령 위성락이 잠깐 풀리고 난 다음 장첸과 나누는 대화 연기를 보면 진선규 배우가 얼마나 몰입했는가를 알 수 있다. 장첸 역을 맡은 윤계상 배우는 연기에 있어 핵심이 여유라고 생각한다. 이 인물은 그냥 대놓고 CCTV에 찍히고 횡단보도 있든지 말든지 신경조차 안 쓰는 인물이다. 후반부에 도망갈 생각은 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느슨했던 장첸. 이 인물의 여유과 악랄함선을 잘 지켰던 윤계상의 새로운 얼굴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2편의 강해상은 어린아이 같은 빌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냥 기분 나쁘다고 애 먼 의경을 칼로 찌른다던지, 자기감정에 휩쓸려서 인간관계를 그르치는 것이 그 근거다. 손석구 배우는 목소리 톤을 낮게 유지하는 식이나 돌발행동을 중심으로 한 액션을 깔끔하게 소화하는 등 빌런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을 아주 잘 이해한 듯 보였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주성철/리키의 존재감이 1,2편의 악당들과는 살짝 떨어지다고 느끼는 분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글쓴이는 이것이 의도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최종보스급 빌런이 두 명이나 필요했을까? 아니라고 본다. 우선 윤계상, 손석구 두 배우가 악당 역 연기를 너무 잘했다. 둘 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악역을 해석했다. 그러나 두 캐릭터 세팅에는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다. 글쓴이는 '영화에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나?'라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 두 편은 '마석도가 까부는 장첸과 강해상을 두들겨 팼다'로 요악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이 재미있어서 글쓴이도 좋았지만 스릴러물로서는 영 부실한 느낌? 이야기가 단면적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3편에서 주성철, 리키를 묘사하는 방식은 이 영화가 스릴러, 범죄물로서의 역할을 한 다고 본다. 나쁜 놈들 때려잡을 때의 순간에 임팩트를 준 연출과 과정에 주안점을 둔 이야기가 차이점을 갖는 것이다. 본 작은 3편이니까 후자에 대해서만 써 보겠다. 영화는 이것저것 들어간 것이 많다. 우선 첫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빌런들이 아니다. 강해상과 장첸이 사람 죽이는 걸 제지했던 전작들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둘째. 주성철의 캐릭터 세팅이다. 영화관을 예고만 보고 그냥 들어간 분들은 이 사람의 설정에? 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또 세 번째로 리키의 등장 시점이다. 이 세 가지 요소를 고려했을 때 글쓴이는 이상용 감독이 빌런의 존재감들을 장르적인 특성으로 치환시키려고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것들이 매끄럽게 연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 번째인 주성철의 캐릭터 세팅에서 현실감이 살짝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시리즈가 5편이나 남았고, 이 모든 영화들을 악당 역 배우의 열연으로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이야기의 변주가 필요했다. 시리즈를 위한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저런 거 다 따져서라도 이준혁 배우의 열연은 어마어마했다. 본인이 가진 선한 이미지와 캐릭터 비주얼로 풍기는 악랄함의 선을 잘 탄 셈이다.
그러나 살짝 아쉬운 점은 역시 초반부에 있다. 첫 장면. 이 장면은 기본적으로 강해상의 '너 납치된 거야' 신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시작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시퀀스에서 주성철에게 힘이 안 실렸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임팩트를 주려고 했는데 밋밋한 것이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극의 최고 단점은 이 부분이다. 시작이 밋밋해서 별로 기억이 안 난다. 다시 캐릭터로 들어와서 리키라는 인물도 액션 시퀀스가 더 들어갔으면 이야기가 박진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린 팀이야
이 3편이 전작들에 비해 추가된 부분은 동료 캐릭터들이다. 2편에도 경찰들의 액션 신은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마석도만큼 강력해 보이지는 않았다. 장 씨 형제들을 펀치 셋방으로 제압한 마석도와는 다르게 가까스로 악당을 제압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작품에서 경찰 캐릭터들은 2편만큼 무능력하지는 않다.
특히 글쓴이가 영화에서 좋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김만재 캐릭터다. 적당히 현실감 있으면서 영화의 안전지대 같은 역할이었다. 전작의 오동균, 강홍석, 전일 만보다 훨씬 유능했고 파트너십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 김민재 배우가 마동석 배우와 합을 맞춰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극의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사람을 캐스팅 한 건 좋았다. 또 초롱이 역을 맡은 고규필 배우는 이 영화 모든 캐릭터들 중에서 연기를 가장 잘했다. 인터넷상에서 밈처럼 소비되는 건달 이미지가 있다. 이를 구현하며 건들거리는 말투와 행동으로 범죄도시 시리즈를 연계받았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장태수 역을 맡은 이범수 배우는 뭔가 아쉽다. 글쓴이는 너무 전형적으로 연기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 친근한데 전일 만이랑 공통점 있다!!'를 강조하는 느낌? 이 이질감은 초반부 경찰서에서 뭔가를 먹는 신에 더 두드러진다. 안 그래도 작위적인 장면 전개에서 더 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물의 분량조절에 있어서도 의문점이 드는 지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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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자식의 친구를 죽인 살인자를 면회하는 이유
범죄자의 인권은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까?
중범죄자도 경범죄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할까?
흉악범은 교화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을 위협하는 강력 범죄가 나에게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오늘날의 범죄 사회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수시로 머릿속에 차오릅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제 대답은 항상 변덕스럽습니다. 범죄자도 사람이므로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우리 가족을 해친 사람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있다고 상상하면 절로 피가 거꾸로 솟죠.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은 이처럼 선악, 가해자와 피해자, 인권에 관한 고민을 다시 한번 촉발하는 영화였습니다.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
Kaneko′s Commissary
Summary
폭력으로 수감된 '가네코'는 면회 온 아내에도 화부터 내는 남자였다. 개차반이던 그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내와 아이, 삼촌이라는 가족의 힘이었다. '가네코'는 과거 자신처럼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영치물품을 넣어주고 대신 면회를 해주는 영치품 매점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평화는 아들의 친구인 어린 여자아이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Cast
감독: 후루카와 고
출연: 마루야마 류헤이, 마키 요코, 미우라 키라
'옥바라지'도 대행이 됩니다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은 구치소와 교도소에 영치품을 대신 전해주거나 면회를 대행해 주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전과자였던 '신지'의 과거와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영치품점의 역할을 소개합니다.
영치품점은 이른바 옥바라지 대행 서비스입니다. 정부 시설의 특성상, 구치소와 교도소는 주민센터와 같은 평일 낮 시간에만 방문객을 받는데요. 아무래도 평일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방문이 쉽지 않은 데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우려해 일부러 발길을 끊기도 합니다. 영치품점은 그 빈자리를 메꾸며 옥바라지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지요. 취재 과정에서 영치품점의 존재를 알게 된 후루카와 고 감독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영치품점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폭행 전과자였지만,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에 힘입어 새 삶을 살고 있는 '신지'는 삼촌이 운영하던 영치품점을 물려받아 수감자와 가족들을 잇고 있습니다. 영치품과 면회는 수감자들의 권리이며, 이를 대행하는 자신의 업을 부끄러워하지 않죠.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아들 '카즈마'의 동네 친구 '카린'이 묻지 마 살인으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남일로만 여겼던 강력 범죄가 내 일이 된 동네 사람들은 '가네코' 가족이 범죄자를 돕는 일을 한다며 거리를 두기 시작하죠. '신지'는 그 과정에서 무력함과 회의에 사로잡힙니다. 그렇게 혼란을 겪던 그에게 '카린'을 살해한 범인의 어머니가 영치품과 면회를 대행해 달라며 찾아오면서 ‘신지’는 또 다른 괴로움과 직면합니다.
영화는 사회가 규정하는 선악을 모두 경험한 '신지'라는 인물을 통해 선을 망치는 악과 악을 품는 선에 관한 통찰을 전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선을 일순간에 파괴해 버리는 것이 악이지만, 그러한 악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바로 선이지요. 선과 악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철옹성 같은 벽이 세워져 있는 것 같더라도, 이 세상에 절대불변의 가치란 없고요. 관객은 교정 시설을 오가는 '신지'의 혼란을 스크린 너머로 체험하며, 선악에 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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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허무는 것, 결국 가족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에는 선과 악을 오가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우선 '신지'가 그렇습니다. 그는 동료를 폭행해 징역 3년을 받고, 감옥에서 난동을 부려 1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출소 이후에는 이전의 삶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베푸는 선한 사람이 되었죠.
엄마를 살해한 야쿠자를 면회하기 위해 매일 교정 시설을 찾는 고등학생 '사치'도 그렇습니다. '사치'의 이야기는 '신지'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서브플롯인데요. 초반에는 '사치'가 그저 강도에 의해 엄마를 잃은 불쌍한 아이로 보였지만, 실은 엄마의 강요로 성매매에 시달리는 소녀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야쿠자는 성매매를 위해 그 집에 들렀다가,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어린 '사치'를 구하기 위해 엄마를 공격했던 것이었죠. 그 과정에서 엄마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린 사람은 바로 '사치'였습니다. 선이었다가도 악이 되고, 악이었다가도 선이 되는 인물들. 이처럼 영화 속 선과 악은 손바닥 뒤집듯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생각해 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선과 악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를 선의 방향으로, 또는 악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지'가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미와코'의 단단한 지지와 아들 ‘카즈마’를 향한 부성애 덕분이었습니다. 살인이라는 분명한 악의 편에 서 있던 '사치'와 야쿠자는 어떨까요? 가족에게 이용당한 '사치'와 출소 후 가족 같았던 조직의 해체를 맞닥뜨린 야쿠자는 혈혈단신인 서로를 가족으로 인지하면서 서서히 악에서 벗어납니다. 이렇듯 영치품점을 소재로 벌어지는 여러 선과 악의 이야기 아래에는 따스한 가족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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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허무는 가족의 힘을 말하는 영화지만, 메시지를 소구하는 과정에서 인물의 감정선을 다소 과장하거나 불필요한 이야기들을 삽입해 영화의 탄력을 저해했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식 신파가 무릇 그렇듯이 어쩐지 다정함이 넘쳐, 다 보고 나면 괜히 마음이 포근해지는 작품이랍니다.
극 중 '카린'을 살해한 범인이 늘어놓은 궤변이 떠오릅니다. 100마리 개미를 모아 놓으면 그중 20%는 일하지 않고 농땡이를 피우는데, 일하던 80마리를 따로 떼어 놓으면 또 그중 20%가 일하지 않다는 실험을 언급하며 성악설을 주장하는 장면이었죠. 영화를 곱씹어 보니, 이처럼 쉽게 뒤바뀌는 선악 속에서도 언제나 80%의 보편적인 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외려 희망적으로 느껴집니다. 일하지 않는 20마리를 따로 떼어놓으면 그중 80%는 다시 선해진다는 사실까지도 말입니다.
One-Liner
누구나 흐릿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악으로도, 다시 선으로도.
Schedule in BIFF
2024.10.03(목) 영화의전당 소극장 19:30
2024.10.04(금) CGV센텀시티 3관 19:30
2024.10.10(목) CGV센텀시티 7관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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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는 그릇은 예쁘지만 정작 음식은 상해있는 느낌
피할 수 없던 공 하나
유달리 말이 없었다. 이경의 고등학교 생활.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이어폰을 끼고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많았다. 오늘도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왠지 자세가 굽은 이경. 그녀가 뭔가 기가 죽은 듯한 느낌을 풍기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날아온 공. 땅만 보고 가던 습관이 원인이 됐다. 안경이 부서졌다. 후다닥 달려오는 수이. "괜찮아?" 수이는 운동을 꽤나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피부가 까무잡잡했던 수이. 왠지 모르게 다가오는 듬직한 카리스마에 이경이의 마음이 흔들렸다.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아본 두 사람. 거짓말같이 두 주인공의 인연이 시작됐다.
미안했던 것일까. 수이는 이경이를 자주 찾아갔다. 딸기우유를 가져갔던 수이. 그렇게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간다. 뭔가 첫 만남부터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직관은 금세 사실이 됐다. 사랑에 빠진 둘. 2002년 월드컵 전후의 시간적 배경에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아슬아슬한 첫사랑을 시작하는 두 사람. 사실 둘은 너무나도 달랐다. 수이는 실업팀 축구선수를 목표로 하고 있고, 이경이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한다. 다른 길로 들어선 두 사람. 과연 둘의 사랑은 영원할 수 있을까?
소설 원작과 애니메이션
일단 영화의 가장 큰 특성 두 개는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과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징이다. 우선 전자의 경우에 이 영화는 ‘쇼코의 미소’의 원작자 최은영 작가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고 볼 수 있다. 최은영 작가의 작품 전부를 읽어본 건 아니지만 ‘쇼코의 미소’는 기억난다. 섬세한 필체로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동선을 형상화한 능력은 최은영만의 문장이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영화 군데군데 이 최은영 작가의 시각화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있다. 영화의 각색이 이 인물 간의 내면묘사를 얼마나 잘 살렸는지는 별개로 두고, 이야기의 구성이 인물의 내면묘사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서사들이 전개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가 아니라 소설이었다면 섬세한 문장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몇 개 있었다. 또 최은영 작가에게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받았던 걸까? 아쉬운 이야기 전개와는 반대로 반짝이던 대사 몇 줄이 있었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장르적인 특성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는 직접 그린 작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 있어 시각적 쾌감을 전달하는 데 있어 모자람은 없다. 특히 영화 초반부 두 사람이 싹트는 과정에서 학교를 묘사하는 방식은 대단했다. 여름의 풍광을 보여주는데, 영화의 로맨스적 특성이 계절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왔다고 볼 수 있는 정도다. 대사의 문장력만큼이나 큰 영화의 강점이었다. 물론 후반부에 겨울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전체적인 색감을 활용하던 것이 두 사람을 둘러싼 분위기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좋았다고 뽑을 수 있다.
두 사람
사실 글쓴이는 소설 원작이라는 점과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특성을 활용한 시각적 쾌감 말고 영화의 강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 장점으로 느꼈던 것 중 몇 안 되는 것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다. 여기서 왜 두 사람이 좋아하고 뭐 딜레마가 있고 가타부타 설명하는 것보다 본론만 딱 보여주는 전개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로맨스 장르 영화에서 여운을 남겨주기 위해 이 부분을 디테일하게 묘사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핵심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난 다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부분에 사족을 붙이면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 ‘소수자와 다양성’에 영향이 갈 수도 있다. 이야기의 응집력이 딱 안 붙는 것이다. 초반부 이후 이야기 전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별개로 두고 이 선택은 감독이 좋은 수를 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물 세팅에 대해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 영화는 퀴어 로맨스물이다. 퀴어 로맨스라는 장르적인 세팅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캐럴>이나 <해피 투게더> 같은 영화도 퀴어 장르로서 로맨스 걸작으로 우리의 곁에 남아있지 않나. 두 영화에서 퀴어 로맨스라는 인물 세팅이 강점을 가졌던 부분은 주인공들의 설정이다. <캐럴>에서 루니 마라와 케이트 블란쳇이 맡았던 역할은 입장차이를 보여주되 내적인 설정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특정 이미지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에 집중해서 인물을 보여줬던 느낌이었다. 특히 이 <캐럴>에서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하는 두 장면은 인물이 어떤 인간인지만 보여주고 이미지에 편승하지 않았다. <해피 투게더> 같은 경우는 보영이 약간 여성적인 느낌이 있긴 하지만 후반부까지 가면 입장이 전복된다. 이는 영화의 핵심 소재인 ‘돌아가야 할 곳’이라는 소재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연출이었다.
이 <그 여름>은 좀 진부한 이미지들에 기대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원작이 그렇다? 원작이 그런 결이라고 해도 각본가에겐 각색이라는 것이 있어서 딱히 이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첫째. 수이는 운동선수다. 이경은 소심한 인물이다. 전형적으로 안경을 쓰고 더 패턴화 되어있듯이 자기 의견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경. 왠지 우리가 아는 로맨스물의 캐릭터성을 그대로 쌓아가고 있다. 수이는 여성들에게 멀리 떨어져 있던 스포츠 선수라는 점과 쇼트커트 헤어스타일로 남자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데 이경은 전형적으로 약한 인물로 묘사했다. 이게 퀴어 로맨스에서 품을 수 있는 섬세함이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너무 대놓고 성격 특성을 강조해서 상투적으로 이야기를 끝냈기 때문이다. 성별만 여자로 설정하고 운동선수라는 세팅을 갖다 놓으면 여성성을 탈피하는 서사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 걸까? 두 사람의 자유로운 사랑을 보고 싶었던 관객이라면 이 부분을 아쉽게 생각할 만하다. 그리고 수이의 파트너 이경의 내면묘사 역시 평면적이라는 점이 아쉽다. 뭐랄까 이 영화가 다른 작품들과 차이점을 가질 수 있던 지점 중 하나는 이경의 감정선일 텐데 내내 영화 후반부까지 이 부분을 직접 설명하고 있어 느낌이 잘 안 산다. 이 내용도 문제지만 전달하는 방식도 아쉬웠던 것이다.
다 짜여 있는 듯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두 개는 수이와 이경의 사랑이야기이자 성소수자들에 대한 다양성 문제다. 이 중에서 영화에 배경처럼 깔려있는 연출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시선이다. 영화는 이경이가 대학을 가는 시점을 기점으로 찍고 1,2부로 이어져 있다. 이 다양성의 측면에서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문제는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소재들을 군데군데 넣어서 이야기에 종합시킨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장면에서는 영화의 메시지를 위해서 인물들이 약간 희생된 감이 있다. 우선 1부. 어린 이경이가 누군가에게 폭언을 듣는 장면이다. 이때 이 시기에 있던 사람들이 이 단어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알고 있냐?는 차치하고 나서라도 이 장면이 주는 전달력이 부족했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 두 사람은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작동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눈치’는 영화에서 소모적으로 툭 던져진 느낌이 강하다. 특히 수이의 경우 역시 이경처럼 전형적인 학교생활을 겪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많은 학생들 중에 그걸 다 짚어낼 사람이 만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높을까?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2부로 넘어간다. 2부에서는 두 사람의 공간을 바꾼다. 공간을 바꿈에 따라 두 사람이 어떤 장소를 알게 된다. 여기서 연극이 벌어진다. 이 연극의 의미가 극 중에서 비중이 적지 않다. 나름 중요하게 보여주는데, 정작 여기서 제시되는 연극의 내용이 과연 영화의 핵심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에 대한 의문이 있다. 엔딩이 약간 비슷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작 이 연극 파트가 없다고 해도 엔딩까지 가는 전개에 아~무 지장이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 두 사람의 로맨스가 연극에서 다루는 토픽과 관련이 있을까? 아니다. 왜 이 부분이 들어갔을까? 영화에서 다루고 싶었던 것이 과연 선택과 집중을 골라 만들어진 것일까 의문점이 드는 부분이다. 후술 하겠지만 각본 상에서 어떤 인물이, 또 특정 사건이 영화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소모적으로 쓰이는 것이다. 이게 로맨스의 장르특성이랑 아~무 관련이 없으니 이런 이면에 깔려있는 창작자의 관점이 몰입이 안 되는 작위적인 느낌만 든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아마 많은 분들이 가장 큰 단점으로 뽑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글쓴이는 이 점이 굉장히 아쉬웠다. 배우들의 연기다. 목소리 톤이 다 천편일률적으로 다 똑같아지는 듯한 사운드 연출은 영화의 분위기가 축축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경이와 관련된 목소리 연기는 안 그래도 평면적인 인물 연출을 더 두드러지게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다.
빛을 잃어버린 이야기
이 영화의 장르는 로맨스다. 주인공 둘의 러브 스토리를 중심으로 품은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글쓴이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이 부분이다. 과연 이 영화가 사랑 영화로서 뛰어난 인사이트를 보여주고 있을까?라는 점에서는 솔직히 전혀 이입되지 않았다. 영화의 엔딩부에 다다라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결론 때문이다. 2부의 이야기가 내팽개쳐져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인물의 행보를 동성애라는 소수자 코드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냥 변명에 가깝다. 이 영화가 성소주자들에 대한 존중과 로맨스라는 두 가지 코드 다 놓쳤다는 나의 의견도 여기서 온다. 사랑이 왔다가 떠나간 자리는 로맨스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묘사되어 왔다.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장난과 관련된 시퀀스, <이터널 선샤인>의 기억 삭제라는 소재, <팬텀 스레드>에서 습관과 사랑이라는 양면성, <박쥐>에서 ‘빨아먹어’야 이뤄지는 로맨스까지 이 부분이 로맨스 영화에서의 승부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61분이라는 러닝타임 때문인지 그렇게 둘이 행복했다는 몰입이 쉽게 이뤄이지 않는다. 러닝타임이 짧아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있지만 군데군데 조악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우선 이경이의 외적 부분에서 남들과 다른 특성이 있다. 이거 로맨스에서 중요할까? 전~혀 중요하지 않는다. 감정선이 얕은 것이다. 오히려 이와 관련된 인물 설정이 조악하다고 느껴본 적은 있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소재 역시 마찬가지다. 이 것이 이 사랑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책으로만 읽으면 유효타로 작동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 관련된 부분이 진부하다고 느껴진다. 또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공간이 중요하게 언급된다. 이 공간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경이가 살던 곳이 어디인가? 에 대한 논의가 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끝까지 보고 나서 이 장소에 대한 딜레마가 굳이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점은 아쉽다. 이 공간과 관련된 딜레마가 아니더라도 수이의 입장이 확 반전되는 사건이 있다. 여기서 벌어지는 사건의 리얼리티는 축구를 어느 정도 아는 글쓴이 입장에선 약간 갸웃거리게 되는 장면이었다. 이 폭력적인 장면이 굳이 들어가야 했을까? 영화의 기본 세팅을 깰 정도로? 이런 식의 ‘여성성이 아닌 것’에 대해 태클을 거는 사회 묘사가 한 번이 아니었다는 점은 말하는 방식의 조악함이 느껴졌다.
시도'만'좋은 것
글쓴이는 이렇게 이 <그 여름>이 장점보다 단점이 압도적으로 많은 작품이라고 봤다. 특히 참을 수 없었던 건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인 척한다는 셈이었다. 물론 이 영화가 전하려고 하는 말에 반대 입장을 펼치고 싶지 않다. 연극에서 다뤘던 소재는 한국에서 더 심화된 채로 논의될 필요가 있고, 성소수자라고 기본권이 파괴되는 일은 많이 불합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 여성성이라는 핑계로 사람의 역할이나 기댓값이 달라진다면 그 역시 억울하고 서러운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영화가 아름다운 작화로 논쟁적인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미학적 가치가 올라가고 그럴 일은 없다. 영화는 로맨스영화로서의 귀결이 약하기 때문에 메세지적인 측면의 설득력에 영향을 끼쳤고, 반대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로맨스물로서의 장르특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완성도에 금이 갔다. 이 영화들 둘러싼 호평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은데, 글쓴이는 <해피 투게더>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캐롤> 같은 걸작들이 소수자들에 대한 친밀도를 높여놓은다는 점에서 작품이 갖고 있는 한계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단순히 그림체만 예쁘고 아름다워서 좋은 영화가 아닌 이야기의 구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작품이 탄생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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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상가들 / The Drea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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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한 줄거리 /
프랑스로 유학 온 미국인 유학생 영화광 매튜가 시네마 테크에서 이사벨,테오 남매를 만난다.
세 사람은 관심사도 같고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매력에 이끌려 급격히 친해지게 된다.
테오와 이사벨 남매의 부모님이 한달간 여행을 떠난 틈을 타
매튜는 그들과 함께 남매의 집에서 살게 된다.
같이 살면서 알게 된 남매의 특이한 관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 그들의 행동.
그러나 결국 매튜 또한 그들의 행동과 생각에 물들게 되고,
서로 친구 이상의 정신적 육체적 교감을 하게 된다.
/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평 /
영화의 분위기와 색감
좀처럼 보기 힘든 독특한 스토리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세 박자가 너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영화다.
(그래서 영화가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근데 이 영화의 매력은 딱 여기까지.
사실 꽤 많은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꼽는 영화여서
보기 전에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내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명작이라고
꼽을 만한 부분이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영화의 내용이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몇번 내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이게 뭐 아름다운 청춘(?) 사랑(?) 여름밤의 꿈(?) 정도로
바라볼 수 도 있지만.
나에게는 쫌 힘들었다.
그러나
내용은 쫌 비상식적이긴 해도
서로에게 퀴즈를 내며
중간 중간 다른 영화를 삽입하여 보여주는 편집방법은
꽤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았다.
그들만의 퀴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뭔가 관객도 그 퀴즈에 참여하는 한 사람이 되게끔 한달까.
그리고 중간중간에 테오와 매튜가 서로의 생각이 더 옳다며
주장할때도 나도 모르게 어떤 배우, 어떤 기타리스트가 더 나은지
혼자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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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 /
몽상가들
The Dreamers
왜 제목이 몽상가들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나만의 해석이 나왔다.
몽상 :
[명사] 1. 꿈속의 생각. 2. 실현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함. 또는 그 생각.
1-1. 비상식적인 그들의 관계와 행동들 자체가 결국
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점으로 보아
이 내용자체가 몽상이라는 것이다.
1-2. 1-1의 근거(?)라고 생각 되는 부분은
마지막 씬.
영화가 끝나고 제작진들의 이름이 올라갈때
뒷 배경은 점점 색을 잃고
마지막엔 흑백으로 물들어 있다.
흑백으로 바뀌어 버린 배경은
결국 이 또한 영화(몽상)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 몽상가들은 1960년대 배경으로 영화 중강중간 삽입 된 모든 영화들은 모두 흑백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이 영화에서 결국 '몽상가들 또한 영화다' 라고 알려주는 근거로
흑백배경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
(그러므로 감독이 '이 또한 영화니까 비상식적인 내용에 대하여
윤리적 잣대를 들이밀지 마시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2. 테오와 이사벨.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생각만 옳다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라 했던 테오.
그러나 그는 사실 영화 내내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하는 행동은 성숙하고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언제나 테오에게 의지하고
집착하며 테오의 의견만 따르는 미성숙한 이사벨.
결국 자신의 이상향을 따라할 뿐
제대로 실현시키지 못 한 그들은 몽상가들에 불과하다.
꿈꾸는것도 좋지만 언젠간 깨어나야해!
매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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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티저 예고편
처음부터 사랑에 빠졌던 그 이름 구찌. 내 것이 될수록 더욱 갖고 싶었던 이름.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었던 그 이름. 구찌를 갖기 위해 구찌를 죽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