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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드레2025-05-05 17:20:32

[JEONJU IFF 데일리] 욕망의, 사랑의, 늙음의 적이 온다.

영화 <적이 온다> 리뷰

제18회 아시아 필름 어워즈 감독상, 제37회 도쿄국제영화제 도쿄 대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일본 영화제를 휩쓴 영화인만큼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기대작 중 하나로 꼽혔다.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적이 온다>는 월드시네마 섹션에서 상영된다. 위 영화는 야스타카의 소설 <적>을 토대로 만들어진 만큼 평범한 일상에 불쑥 나타난 '적'의 존재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기대가 된다.

 

 

영화 정보

요시다 다이하치
YOSHIDA Daihachi
Japan
2024
108min
DCP
B&W
Fiction
15세 이상 관람가
Korean Premiere

시놉시스
은퇴한 대학 교수인 기스케는 아내가 죽은 뒤 홀로 지내고 있다. 기스케는 저축한 돈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해가며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컴퓨터에 '적이 온다'는 불길한 메시지가 나타난다. 제18회 아시아필름어워즈 감독상 수상작 

 

 

영화리뷰

 

잠에서 깨어나 세수하고, 아침 식사를 정성스레 준비하여 식사를 하고, 양치 후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며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리곤 잡지에 실을 프랑스 문학 에세이 원고를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때론, 글이 막혀 기간을 연장할 때도 있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던 기스케. 평소라면 무시했을 스팸이지만 '적이 온다'라는 메일이 도착한다. 그 문장 하나가 기스케의 일상을 조금씩 뒤흔들기 시작했다. 과연 '적'의 정체는 무엇일까.

77세의 은퇴한 교수 기스케는 아내와 사별한 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왔다. 강연 요청이 와도 최저비용을 100만 엔을 기준으로 그 이하를 제시하면 거절하는 등 자신의 가치를 높이 산다. 더 떨어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요건인 것이다. 이 생이 얼마나 버틸지 계산해 봐. 의외로 삶에 생기가 돌아"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한편으로는 몰려오는 감정을 애써 감추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는 어느샌가 점점 더 깊어져가는 고독감과 노년의 쓸쓸함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자신의 마음을 마주한다. 삶의 유한함에 대한 자각과 함께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외로움이 어깨를 짓눌렀고 삶으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그의 안에 자리 잡았다. 최소한의 요건으로 살아가기엔 '버티는 삶'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벅찼기 때문이다.

영화 속, 한 노인이 젊은 여자에게 개똥을 치우라고  하며 윽박을 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가 코를 막는 순간, 노인은 '나한테 냄새가 나냐'며 발끈하고 '3일에 한번 씻는데,  그 정도면 잘 씻는 거 아니냐"라고 궁시렁하며 불쾌감을 표출한다. 그때 기스케는 움찔거리며 자신에게도 냄새가 나는 건 아닌지 걱정한다.  집에 들어가 자신의 몸 구석구석의 냄새를 맡아보며 귀 뒤, 사타구니, 겨드랑이 곳곳을 비누로 문질러가며 씻는다. 그는 오래전부터 제일 많이 받은 선물이 비누인데, 공교롭게도 일본인들이 가장 잘 선물하는 것이 '비누'라고 한다.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나도 다양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혐오'의 시선이 자리 잡아 있는 것 같다. '지혜로운 사람'을 의미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냄새나고', '무례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며', '고집불통', '우기기 좋아하는' 그런 사람으로 낙인찍혀 그 생각은 편견으로 이어진다. 그 편견은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태도로 자리 잡아 전 세대가 융화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노인은 우리의 '미래'이다. 노인을 혐오하는 것은 곧 우리의 미래를 혐오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도 모르게 늙음을 두려워하는 마음 가짐으로 이어진다.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으며 그토록 자연스러운 일이 부자연스럽고,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일이 되는 작금의 현실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 후에도 개똥으로 인해 한 노인은 지나가던 젊은 여자에게 또 화를 낸다. 그녀가 평소에 반려견이 똥을 싸면 치웠다고 말했기에 그녀의 반려견이 싼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 똥이 개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미지의 '적'과 관련되어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초반에는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세계의 위협이 될 경고음을 울렸으나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고, 가짜뉴스의 일부라고만 생각했다. 정보 과부하가 불러온 무관심의 결과는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현재의 삶을 위협할 정도의 재앙이 닥쳐오며 키스케는 선택해야만 했다. 재앙에 맞설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

그 재앙은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처럼, 적이 침략한 것처럼 갑작스레 닥쳐왔지만 자연스레 침투해 우리 주변에 늘 존재했고, 조금씩 침략하여 나중에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도착한 낯선 메일 한 통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그는 그 메일을 본 순간, 찾아온 내면의 변화가 꿈을 통해 표출된다. 시간의 자연스러움은 마치 적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고도 두려운 방식으로 찾아온다. 변명도, 위안도, 자책도, 욕망도 꿈을 통해 이루어져 비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기스케의 욕망은 주로 '꿈'을 통해 표출된다.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수 있으며 때론 그 속의 인물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현실에는 없을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꿈과 현실이 구분이 가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바로 그 혼란 속에서 우리는 가장 솔직한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초반, 망원경을 보면서 "인간의 부끄러움을 볼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은 외부 세계가 아닌 '자신'을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망원경은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그리고 내면을 비추는 자화상이다.   
그렇기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과연 현실인지 꿈인지는 알 수 없다. 만약 현실이 아니라면 이것은 뭘 의미하는 걸까? 영화는 쉽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조금씩 실마리를 제공하며 저만의 해석을 만들어가게끔 유도한다. 화면 자체를 흑백으로 설정하여 어떤 편견을 주입하지 않는 장치일 것이다. '적'의 존재를 막막하고 헤쳐나가야 할 두려움으로 표현했지만 사실 살아가는 이유를 의미했다. 삶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기스케에게 '용기', '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가 음식을 먹었던 것처럼, 투지 있게 삶을 살아가라는 어떤 의지로써 '적'이 탄생한 것일지도 몰랐다. 우리가 삶 속에서 종종 마주하는 장애물, 도전, 목표는 힘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살아가야 할 의지를 주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감독이 삶의 끝자락에서 소설 <적>을 통해 깨달은 그 감정이 오롯이 이 영화에 드러난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모를 이야기는 곱씹을수록 맛있는 맛이 난다. 지루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어딘가 모호해 보이는 영화 곳곳의 흔적을 조합해 가며 영화 속에 숨겨진 메시지들을 풀어가는 맛이 있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인생의 균열을 통해 보이지 않던 내면의 심연과 마주하게 된다. 내면이 붕괴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이 그것을 이겨내려는 의지 또한 드러난다. 영화는 그 모순적인 감정을 화면에 드러내며 '적'이라는 형체 없는 존재를 통해 한 사람, 아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꿈과 현실이 구분이 가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적은 외부의 침략자이기도 했지만 실은 기스케가 외면하고 싶었던 삶의 유한함과 고독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각자의 ‘적’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상영스케줄
2025.05.03 17:30 CGV 전주고사 2관
2025.05.04 11:00 CGV 전주고사 5관
2025.05.06 21:30 CGV 전주고사 5관

 

 

작성자 . 민드레

출처 . https://brunch.co.kr/@mindirrle/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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