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0-25 18:19:13
뿌연 유리창에 비친 나. 그리고 그 너머의 너와 나
영화 <폭설> 리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파도를 타는 수안과 파도에 밀린 조개껍질 윤설.
- 서핑, 조개껍질, 윤설 이름의 의미
- 어린 수안을 닮아가는 설이와 어린 설이를 닮아가는 수안
- 수안이 그리워했던 것과 잃어버린 것
- 엔딩 결말 해석
폭설 (Heavy Snow, 2024)
뿌연 유리창에 비친 나. 그리고 그 너머의 너와 나
개봉일 : 2024.10.23.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87분
감독 : 윤수익
출연 : 한해인, 한소희, 김그림, 황용욱, 노양호, 이광연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열아홉의 배우 지망생 수안과 아역배우 출신 스타 이윤설. 뿌옇고 차가운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은 함께 파도를 타고 고민을 나누며 특별한 친구가 된다. 하지만 사소한 오해를 계기로 수안과 설은 그 겨울이 채 가기도 전에 멀어지게 되고 함께했던 추억은 자연히 저 먼 곳으로 밀려난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수안은 어른이 되었다. 그는 이제 학교 작품도 하나 못 찍어본 배우 지망생이 아닌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인기 배우다. 그런데 수안의 마음은 배우를 꿈꾸던 그때보다 더 공허하고 외롭다. 술과 약에 취해 비틀거리던 그는 결국 마음 저 끝에 미뤄둔 그리움을 펼쳐낸다. 붙잡고 싶었지만 붙잡지 못했던 아름다운 눈. 윤설(贇雪). 수안은 설이를 찾아 다시 바다로 향한다.
<폭설>은 어느 날 폭설처럼 다가온 소녀에게 느끼게 된 사랑과 그를 놓친 순간부터 쌓여온 깊이를 잴 수 없는 그리움. 그리고 그를 통해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소녀의 시선을 담은 영화다. 퀴어 코드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동성애보단 그 너머에 있는 ‘너와 나. 그리고 나’라는 시선 그 자체다.
수안과 설이는 뿌연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다. 그리고 그 유리창에 비친 나를, 그 유리창 너머에 있는 너를 바라보며 사랑하고 후회하고 깨닫는다. 너 그리고 나를 잃어버린 상실의 아픔을. 어쩌면 우리는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유리창을 뒤덮고 있던 파도가 남긴 습기와 얼어붙은 눈을 긁어낸 수안은 마침내 숨겨져있던 슬픔을 마주한다.
우정 드라마와 멜로의 사이
처음 수안과 설이 만났을 때, 수안은 총을 든 채 자유로운 연기를 선보이고 아무도 나에게 연기를 시켜주지 않는다면 직접 영화를 만들어 출연할 거라는 단단한 포부를 갖고 있는 배우 지망생이었다. 설이는 배우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으나 그 부담감으로 인해 매일 사람들의 눈치를 봤고 하고 싶은 연기가 아닌 해야만 하는 연기를 하는 배우였다.
수안은 설이 낯설고 멀게 느껴진다. 그는 함께 차를 타기 전 “난 무슨 일이 생겨도 상관없는데, 넌 연예인이잖아.”라고 말하며 설이와 자신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다. 설은 “나 그런 거 상관 안해.”라고 말하며 아무렇지 않게 수안의 차를 탄다. 차를 탄 수안은 꽁꽁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고 설은 얼굴을 덮은 마스크를 벗는다. ‘상관 없다’는 설이의 한 마디와 동시에 작은 벽이 허물어지고 수안과 설은 서로에게 솔직해진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엔 솔직함, 우정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수안은 함께하는 순간들을 우정 드라마로 생각하고 설이는 멜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첫 키스를 기점으로 오해를 쌓게 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되고 그 겨울의 추억은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수안은 그 그리움을 다시 펼치며 설이를 찾아가고 자신 또한 어린 설이와 같은 어른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파도를 타는 수안과 파도에 밀린 조개껍질 윤설
수안이 자유롭게 파도를 타는 서퍼라면 설은 파도에 밀리다 결국 해변에 박혀버린 조개껍질이다. 처음 함께 바다에 갔을 때, 수안은 설에게 조개껍질을 주며 연기를 해보라고 한다. 설은 조개껍질에게 말을 건다.
“안녕. 넌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냐? 춥겠다. 괜찮아?” 그리고 조개껍질을 귀에 대고 무언가가 들린다며 너무 슬프다고 눈물을 터트린다. 설은 어릴 때부터 쭉 연기를 하고 있지만 왜 연기를 하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 건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있다. 나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설은 자신을 닮은 모래 속에 박힌 예쁜 조개껍질을 보며 슬퍼한다.
(‘윤설’이라는 이름에 어떤 뜻이 있는지 정확히 밝혀진 부분은 없지만 조개 패(貝) 빛날 빈(斌)으로 이루어진 한자 예쁠 윤(贇)이 윤설과 가장 잘 어울리는 한자가 아닐까 싶다.)
어린 설은 어딘가에 묻혀있고 갇혀있는 조개껍질 같은 사람이다. 수안과 설이 명동에 갔을 때, 설은 유리 너머 화장품 가게 안에 걸려있는 꾸며진 광고 속 자신의 얼굴을 본다. 처음엔 자랑스럽게 포즈를 취하던 그는 조심히 광고를 향해 손을 뻗다가 이내 거둬버린다. 유리 너머에 있는 배우 윤설. 사람들이 만든 유리에 갇혀버린 인간 윤설. 설은 투명하고 단단한 유리 안에서 자유를 찾고 있었다.
수안은 이런 설에게 자유를 알려준 사람이다. 설은 수안과 함께 파도를 타며 조금씩 편안함과 자유를 찾는다. 어린 설은 항상 화장한 얼굴과 코트, 구두 차림을 유지했지만 어른이 된 설은 편안한 점퍼와 신발, 서핑 슈트를 입고 바닷가를 거닌다.
너를 사랑하다 너를 닮아버린 나
변화한 수안과 설의 모습
수안은 유명한 설이가 부럽고 설이는 자유로운 수안이 부럽다. 수안은 예쁜 설이가 좋고 설이는 수안이 예뻐 보인다. 두 사람은 나와 다른 너를, 나와 다른 배우인 너를 사랑하고 부러워한다. 그래서 나를 잊고 상대방을 온몸으로 흡수하기에 이른다. 수안은 어린 설이를 닮아가고 설이는 어린 수안을 닮아간다.
어린 설이처럼 유명한 여배우가 된 수안은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며 하고 싶은 연기보다 그저 주어진 연기를 소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어린 설이처럼 긴머리, 코트, 구두, 화장을 유지한다. 어느 날 회의감을 맛본 수안은 약에 취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나는 되는대로 연기를 하고 있었어요.”
일을 그만두고 바다에 정착한 설이는 어린 수안처럼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설이의 옷차림은 어린 수안처럼 편안하게 바뀌었고 이제 그에게 다른 이들의 시선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이젠 수안이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린 조개껍질, 설이는 서퍼가 됐다. 서로가 되어본 두 사람은 이제 왜 수안이 멜로를 부정했는지, 설이 멜로를 말했는지.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아간다.
폭설 속에서 시작되는 두 사람의 멜로 영화
처음 함께 바다에 갔을 때 설은 수안의 캠코더를 통해 수안이 보는 세상을 함께 보고, 그가 스스로 세상(영화)을 만들어갈 거라는 말에 감탄하며 자신도 그 세상에 끼워달라고 부탁한다. 수안은 설이를 반겼지만 그 영화는, 우리의 세상은 멜로가 될 수 없다고 부정한다. 설은 계속해서 자신을 밀어내는 수안의 곁을 떠나고 수안은 멜로 영화의 첫 신을 쓰다 포기해버린다.
오래 정체되어 있었던 수안과 설의 멜로 영화는 아무도 없는 둘만의 세상에서 새롭게 쓰인다. 흉포하게 변한 파도에 치이던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무사히 한 섬에 도착한다. 그리고 저세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요하고 아름다운 눈밭에서 몸을 포개고 깊은 그리움과 사랑을 나눈다.
수안은 아픈 설이를 위해 눈밭을 헤매다 오두막으로 돌아온다. 어느새 기운을 차린 설이는 수안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도 너 찾아다녔는데 멀리도 갔다 왔나 보네.” 그날 저녁 설이의 품에 안긴 수안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 여기까지 왔을지 알겠다.”라고.
수안과 설이는 나를 향해 몰아치는 폭설 같은 시선을, 타인이 만들어둔 유리 상자 속을 참 오래 헤맸다. 자유를 포기하고 대중이 원하는 연기를 하고 대중이 원하는 삶을 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감정을 애써 밀어내면서.
하지만 설이는 자신을 알아주는 수안을 만남으로서 유리를 깨고 폭설을 묵묵히 견디는 법을 배웠고, 어른이 되며 폭설 속에 갇혀버린 수안은 설이와 재회하며 그가 겪었을 아픔과 자신이 밀어냈던 감정을 다시 포용하게 된다.
파도에 휩쓸린 것
수안과 설은 서로에게 서핑보드 타는 법과 파도와 인생을 자유롭게 즐기는 방법, 사랑이란 감정을 함께 알려준다. 어린 수안이 어린 설이에게 서핑보드와 사랑을 알려줬던 것처럼 어른이 된 설이는 지친 수안을 끌어안으며 그를 위로한다.
날이 개고 파도가 잦아들자 수안과 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로 나온다. 수안은 설이에게 “설아 나 타볼게. 잘 봐.”라고 말하고 앞장서서 보드에 오른다. 마치 다시 잘 살아볼 테니 나를 지켜봐 달라는 듯이. 하지만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고 수안은 홀로 뭍으로 나온다. 수안은 사랑하는 설이와 설이 안에 남아있던 어린 수안을. 이 세상을 헤쳐나갈 방법을 모두 잃어버린다. 그는 눈 내리는 해변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설이와의 재회. 진짜였을까 상상이었을까?
결말 엔딩 해석. 파도 서핑 설이의 의미
수안과 설이 재회하고 함께하는 모든 장면들은 왠지 현실이라기보단 몽롱한 꿈같은 느낌이 있다. 설이는 정말 그 해변에 머물고 있었을까? 수안은 정말 설이를 만나고 함께 그 섬에 갔을까?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이 모든 순간들이 100% 현실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확실해 보이는 건 수안이 설이를, 그때의 수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예쁘지 않은 배우 지망생’이라는 폭설처럼 무거운 시선과 파도처럼 끊임없이 울렁이는 감정에 용감히 올라탔던 자유로운 어린 수안과 그 시기를 함께한 예쁜 설이. 그때의 네가 된 나의 눈으로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그때의 나를 닮은 너.
수안은 열심히 시간의 파도를 헤치며 되돌아갔지만 그 끝엔 다시 덮쳐오는 커다란 파도와 깊은 상실만이 남는다. 이제 수안은 누구에게 위로받아야 할까.
Relative contents
-
- 시간, 기억, 그리고 무엇들, <1초 앞, 1초 뒤>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1초 앞, 1초 뒤(One Second Ahead, One Second Behind), 2024
일본, 로맨스, 판타지 등 119분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
시간, 기억, 그리고 무엇들, <1초 앞, 1초 뒤>
시간이 방대하게 축적된 추억을 연료 삼아 흐를 때, 기억은 위대함과 무력함이 공존하는 대자연의 힘으로 몸집을 키운다. 시간을 소유하고 싶은 염원은 망각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소망과 다를 바 없고, 기억을 되찾고 싶다는 말은 언제든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그만큼 기억과 시간의 거리는 가깝다. 아니, 하나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만큼 둘 사이는 깊고 밀접하다. 여기서 밀접함은, 서로에게 충분히 충족된다는 의미다. 두 개의 원이 각자의 영역을 확고히 하면서도 반드시 겹쳐있다는 점, 다르게 불리고 굴러가는 방식도 다르지만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시간(기억)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제동이 걸려 때때로 멈춤 현상이 발생하지만, 끝없이 흘러가고 이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 완전한 거부는 불가능하다. 물론 이 강력한 힘을 기억(시간)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삶을 흐르게 하는 바퀴가 고작 두 개일리 없고, 나아가 겹친 수가 겨우 두 겹뿐이겠는가. 시간과 기억, 그리고 무엇과 또 다른 어떤 것들. <1초 앞, 1초 뒤>는 여기에 ‘관계’를 겹쳤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관계, 너와 나의 사이, 우리와 그들의 차이, 거기서 발생하는 이야기. 영화는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의 개인사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면서 마지막엔 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다. 끝엔 합쳐진 이야기가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붙잡지 않고 풀어놓음으로써 해피엔딩을 완성한다. 남들과 달라 늘 혼자였던 두 인물이, 그 다름으로 인해 잊고 있었던 서로를 기억해 내고, 마침내 서로의 품에 녹아들며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 시작은 남보다 1초 빠른 하지메의 속사정으로 출발한다.
교토에서 태어나 한 번도 고향을 벗어나 본 적 없는 하지메는 어렸을 때부터 외로움과 함께 자랐다. 생강을 사러 간 아버지의 실종도 문제였지만, 태생적으로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사는 삶이 그를 결정적으로 혼자가 되게 만들었다. 달리기 시합을 하면 늘 먼저 출발했고, 말과 행동은 지나치게 많고 빨랐으며, 사진을 찍으면 셔터 속도보다 빨리 반응해 항상 눈을 감은 채 찍었다. 웃음 포인트 역시 반 박자 앞서서 본의 아니게 스포 빌런이 됐고, 우정은 물론 사랑 방식도 타인보다 급해 상대에게 먼저 차이기 일쑤였다. 성인이 된 후 집배원으로 일했지만, 속도위반을 밥 먹듯이 해 ‘분노의 질주남’ 별명과 함께 사무직으로 재배치됐다. 현재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조금의 여유도 허용치 않는 그의 업무 속도를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보통 이들이 그렇듯, 일을 적게 하는 걸 좋아하면서도 아예 하지 않는 건 또 꺼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의 하지메는 동료들과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레이카 역시 속도만 다를 뿐 하지메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어릴 적, 시험을 봐도 긴 이름을 쓰느라 문제를 반 이상 풀지 못했다. 느린 탓에 모기를 한 번도 잡아본 적 없고,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지만 움직이는 피사체를 순간 포착하는 건 버킷 리스트가 된 지 오래다. 웃음 포인트도 스포 빌런과 준하는 뒷북 빌런으로, 모든 사람이 웃고 넘어간 지점을 꼭 뒤늦게 밟아 매번 난처하다. 대학을 7년째 다니고 있고, 집 대신 사진 동아리 방에서 숨어 살고 있다. 현실이 팍팍하고 지난하지만, 죽은 아빠가 남긴 카메라로 세상을 찍으며 외로움과 슬픔을 조금씩 덜어내며 산다.
1초의 횡포도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던 두 사람은, 새로 생성된 관계들로 인해 충돌하듯 재회한다. 길거리 가수와의 연애로 30년 만에 행복을 느끼는 하지메와 그런 그의 시야에 레이카가 처음으로 들어온 순간이다. 사실 레이카는 하지메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과거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자신을 위로해 준 소중한 친구를 잊을 리 없었다. 두 아이는 헤어지기 직전 레이카 고모의 우편함 열쇠를 나눠 가지며 꼭 편지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꼬꼬마들의 소꿉놀이는 잊혔고, 시간 탓을 하든 기억 탓을 하든 둘이 다시 만나 서로를 알아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레이카가 그날, 그때, 버스 하차 벨을 늦게 누르지 않았다면 말이다. 1초 느린 여자가 1초 빠른 남자를 못 알아볼 리 없었고, 레이카는 그날부터 하지메에게 우표를 사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가 날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메에게 잊힌 시간보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삶을 산 기간이 더 길었으니까. 무엇보다 레이카는 하지메란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깊이 위로받고 있었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하지메와 가수, 가수와 레이카, 하지메와 실종된 아버지, 하지메와 가족, 레이카와 하지메까지, 둘의 이야기는 포개지는 관계들의 영향력으로 특별한 반전 없이 흘러간다. 하지메의 돈이 목적이었던 가수의 못된 심보가 레이카에 의해 밝혀지고, 돈 봉투를 챙겨 가수를 만나러 가던 하지메는 영문도 모른 채 하루를 잃는다. 그가 잃은 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무수히 많은 1초를 저장해 왔던 레이카의 1일이었고, 레이카는 멈춘 하지메를 데리고 바다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난다. 그녀와 같은 1일 무료 사용권을 가진 버스 기사의 도움으로 말이다. 하지메의 아버지도 집을 나간 날 세상이 멈추는 바람에 자살에 실패하고 지금까지 숨어 살고 있었다. 그는 레이카 덕에 아들과 사진도 찍고 가족들에게 못했던 미안하단 말을 하고 떠난다.
다음 날, 깨어난 하지메는 잃어버린 하루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연속된 우연으로 우편함 열쇠까지 찾아내 레이카가 그동안 보냈던 편지(사진들)를 발견하면서, 덮어뒀던 그녀와의 추억을 찾는 데 성공한다. 매 순간 어긋나기만 했던 둘의 시간이 딱 맞춰지는 그때, 늘 빠르기만 했던 하지메는 레이카를 기다리고, 늘 느렸던 레이카는 하지메를 위해 빠른 걸음으로 우체국 안으로 들어간다. 서로를 마주 보고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터트리는 두 사람, 영화는 잊지 않고 둘의 치유 과정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렇게 흐르게 놔둔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1초 앞, 1초 뒤>는 진옥훈 감독의 <마이 미씽 발렌타인>(2010)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굳이 원작을 언급한 건, 본 작품을 원작과 함께 음미하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작과 다른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주인공의 성별(원작은 여자가 빠르다)이 바뀌었고, 새로운 인물들이 추가로 등장한다. 둘째, 주인공이 잃어버린 하루가 밸런타인데이에서 커플 대회가 열리는 날로 변경됐고 하루 삭제가 가능하게 된 이유도 나름 보충됐다. 셋째, 인물들의 서사에 집중하면서도 배경(일본의 교토)을 보여주는 데 힘썼다. 세 가지 차이점은 단순히 이야기의 구성요소가 바뀌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화의 기본 시각과 주제가 달라졌음을 뜻한다. 두 작품은 ‘1초’를 활용하는 방식과 1초에 숨은 ‘기억’을 다루는 관점에서 차이를 보이며, 그로 인해 관객에게 각각 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출처: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스틸컷 (다음)
<마이 미씽 발렌타인>은 시간과 기억에 ‘방황하는 나’를 겹쳤다. 1초 빠른 여자와 1초 느린 남자는 군중 속 외톨이였다. 따라서 홀로 내면의 힘을 기르고 지키는 일이 먼저였다. 그런 그들이 나와 같은 사람이 세상에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상하게만 느꼈던 내가 사실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며, 더는 혼자가 아님을 확신하는 이야기가 영화의 주제다. ‘자신을 사랑하라, 아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니!’에서 ‘자신을 사랑하라,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로 바뀌는 자막도 한몫한다. 따라서 원작에서 ‘1초’는 인물들의 단순 ‘기질’로 표현된다. 여자 주인공은 말과 행동, 생각까지 타인보다 급한 성격을 가진, 그리하여 남보다 시간을 더 쪼개 쓰는 사람이지 <1초 앞, 1초 뒤>의 하지메처럼 특별한 초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원인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리메이크작의 차별화된 방식에 있다. <1초 앞, 1초 뒤>는 제삼자의 시점으로 하지메와 레이카의 평범할 수 없는 삶을 소개한다. 관찰자의 목소리는 원작의 코믹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줬던 ‘연민’이란 감정 외에, 하지메와 레이카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환상’을 덧입힌다. 보통 사람들과 함께 사는 ‘외톨이들의 웃픈 사랑’ 이야기가, 같은 시공간에 속해 있으나 ‘특별한 능력이 있는 자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바뀐 것이다. 시간이 멈춰 하루를 잃는 판타지적 요소도 <마이 미씽 발렌타인>에선 이야기 중반에 갑자기 튀어나오지만, <1초 앞, 1초 뒤>에선 처음부터 하지메와 레이카를 통해 풍기며 등장한다.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도마뱀 인간(정령?)이 <1초 앞, 1초 뒤>에선 생략된 이유다.
출처: 영화 <1초 앞, 1초 뒤> 스틸컷 (다음)
원작이 끝까지 집중한 한 겹은 ‘남들보다 유별난 나(자아)’이고, 리메이크작의 한 겹은 ‘태생적으로 조금 특별한 삶을 사는 우리(관계)’다. 일상 속의 나와 판타지 속의 우리. 사건 해결의 결정적 추도 ‘나’와 ‘우리’로 각자 진행된다. 원작의 인물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개인의 몫으로, 리메이크작의 인물들은 모두의 영역에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한다. 결말의 형태는 같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인물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함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러나, 결말이 주는 의미는 다르다. 원작의 끝엔 유별나도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나와 네가 있고, 리메이크작의 끝엔 오랜 그리움과 기다림을 버텨온, 서로에게만 각별한 연인이 있으니까.
두 작품 모두 재미있다. 원작과 리메이크작이지만, 다른 작품으로 봐도 좋다는 얘기다. 똑같은 로맨스 판타지 장르지만 각자 발산하는 매력이 다르다. <마이 미씽 발렌타인>의 맛이 서툰 삶과 풋풋한 첫사랑에 있다면, <1초 앞, 1초 뒤>의 맛은 순수함과 첫사랑을 향한 불가항력(초능력)에 있달까. 이는 대만 영화와 일본 영화가 가진 각각의 특색과도 연결돼, 보는 맛이 더 다채로울 것이다.
시간, 기억, 그리고 무엇들. 우린 매일 어떤 것이 어떻게 겹친 줄도 모르고 삶을 굴리고, 동시에 굴려지며 그렇게 물 흐르듯 산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하루를 더 보상받거나 하루를 잃고도 이를 전혀 모르고 사는, 그런 발칙한 정체 구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낙이라면, 분명 흐르는 데 좋은 연료로 쓰일 거다.
-
- ? 5월 다섯 번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개봉 전부터 높은 예매율을 자랑하고 있는 <범죄도시3> 부터
김선영 X 이윤지의 <드림팰리스> 까지!
다채로운 이번주 개봉작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범죄도시3
THE ROUNDUP : NO WAY OUT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개요: 범죄, 액션 | 대한민국 | 105분
감독: 이상용
출연: 마동석, 이준혁, 아오키 무네타카, 이범수, 김민재, 이지훈, 전석호, 고규필
개봉: 2023.05.31.
배급: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놉시스
대체불가 괴물형사 마석도, 서울 광수대로 발탁! 베트남 납치 살해범 검거 후 7년 뒤, ‘마석도’(마동석)는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살인사건을 조사한다. 사건 조사 중, ‘마석도’는 신종 마약 사건이 연루되었음을 알게 되고 수사를 확대한다. 한편, 마약 사건의 배후인 '주성철'(이준혁)은 계속해서 판을 키워가고 약을 유통하던 일본 조직과 '리키'(아오키 무네타카)까지 한국에 들어오며 사건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가는데... 나쁜 놈들 잡는 데 이유 없고 제한 없다. 커진 판도 시원하게 싹 쓸어버린다!
CINE PICK!
2017년 '범죄도시', 2022년 '범죄도시2'로 이어진 '범죄도시' 시리즈
세 번째 영화 <범죄도시 3>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 천만 영화를 달성한 <범죄도시 2>를 만든 이상용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배우 마동석과 함께 이준혁·이범수·김민재·이지훈·전석호·고규필 등이 출연하고, 일본 배우 아오키 무네타카가 출연해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라이드 온
Ride On
© (주)NEW
개요: 액션, 코미디, 드라마 | 중국 | 126분
감독: 래리 양
출연: 성룡, 류 하오춘, 곽기린
개봉: 2023.05.31.
배급: (주)NEW
시놉시스
한때 잘 나갔던 전설의 스턴트맨 ‘루오’(성룡). 유일한 파트너마 ‘레드 헤어’가 경매에 부쳐질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소원했던 딸 ‘바오’(류호존)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한다. ‘바오’는 자신의 변호사 남자친구 ‘미키’(곽기린)와 이를 해결하고자 하고, 조금씩 ‘루오’에게도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루오’가 ‘레드 헤어’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콤비 액션 영상이 SNS를 통해 화제를 모으게 되고, 유명 영화에 참여할 기회까지 찾아오는데…! 스턴트 생활을 청산하길 바라는 딸 ‘바오’와 인생 역전의 기회에서 고민하는 ‘루오’. 과연, 그는 가족과 커리어를 모두 지킬 수 있을 것인가?!
CINE PICK!
세계적인 액션 배우 성룡의 귀환! '루오'(성룡)과 스턴트마 '레드헤어'의 코믹 팀플레이어를 그린 영화로 세계적인 액션 스타 성룡이 주연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중국에서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중국의 라이징 스타 류호존과 관기린이 함께 참여해 유쾌한 케미를 기대케 한다.
드림팰리스
Dream Palace
©인디스토리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12분
감독: 가성문
출연: 김선영, 이윤지, 최민영, 김용준
개봉: 2023.05.31.
배급: 인디스토리
시놉시스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혜정’과 ‘수인’은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싸운 사이다. ‘혜정’은 합의금을 받고 싸움을 멈췄지만, ‘수인’은 다른 유가족들과 아직도 농성 중이다. 남편 목숨 값으로 분양받은 아파트 ‘드림팰리스’에서 새 삶을 시작한 ‘혜정’은 ‘수인’에게 새 집을 꿈꾸라고 부추긴다. 처음엔 단칼에 거절하던 ‘수인’도 어느새 ‘드림팰리스’를 꿈꾸게 되는데… 맞잖아요? 행복은 아파트 분.양.순.
CINE PICK!
김선영 X 이윤지의 웰메이드 영화 <드림팰리스>!
남편의 목숨값으로 장만한 아파트를 지키려는 두 여자의 고군분투를 담은 소셜 리얼리즘 드라마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후, 묵직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각본뿐만 아니라 흡입력 높은 연출력까지 주목받으며 걸출한 신예 감독의 데뷔를 알린 바 있다.
말없는 소녀
The Quiet Girl
©(주)슈아픽처스
개요: 드라마 | 아일랜드 | 95분
감독: 콤 바이레드
출연: 캐서린 클린치, 캐리 크로울리, 앤드류 베넷
개봉: 2023.05.31.
배급: (주)슈아픽처스
시놉시스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가난한 집의 어린 소녀 코오트는 여름 동안 먼 친척 부부에게 맡겨진다. 낯선 환경도 잠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다정함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고, 어느새 이들 사이엔 떼어놓기 힘든 특별한 우정이 싹튼다.
CINE PICK!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37관왕을 석권한 '말없는 소녀'는 전 세계 매체가 앞다투어 '올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하는가 하면, 해외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기대작!
'말없는 소녀'는 애정 없는 가족으로부터 먼 친척 부부에게 떠맡겨진 어린 소녀 코오트가 인생을 바꾸는 짧고 찬란한 여름을 보내면서 사랑받는 것이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내는가를 밀도 있게 다룬 작품이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Last Dance
©티캐스트
개요: 드라마 | 벨기에, 스위스 | 83분
감독: 델핀 리허리시
출연: 프랑수와 벨레앙, 라 리봇, 케이시 모텟 클레인
개봉: 2023.05.31.
배급: 티캐스트
시놉시스
사랑하는 아내를 갑자기 잃고 홀로된 제르맹은 자식들의 지나친 걱정과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시간표까지 짜서 자신을 돌보는 자식들의 극성에 시달리던 제르맹은 아내와의 오래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몰래 현대 무용단에 입단한다. 그의 어설픈 몸짓은 뜻밖에도 무용단을 이끄는 세계적인 무용가의 관심을 끌게 되고, 급기야 공연을 불과 4주 남기고 제르맹을 주역으로 한 새로운 안무가 만들어진다. 한편, 공연 사실을 비밀로 하고픈 제르맹의 행동은 그를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뜻하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CINE PICK!
제75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품 <사랑하는 당신에게>. 현대 무용을 통해 이별의 상처와 아픔을 이겨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세계적인 무용가 라 리보트와 생애 첫 현대 무용에 도전한 제르맹의 유쾌한 케미가 돋보이는 작품.
-
- 부정과 긍정 사이, 작별과 만남 사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유난을 떨어?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반문할 수 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찬란했던 순간, 나 역시 있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내 글을 옮기고 싶었다는 메일을 봤을 때나 선거에 참여했던 기억은 그 누구의 것들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것이다. 또 있다. 정신병에 신음하던 순간. 이걸 이겨내기 위해 했던 노력들. 그것도 나의 기억 속에서 빛나는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아무와도 맺지 않은 약속에 관한 것이다.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이 따르는 대로. <시네마 천국>을 쓰려고 했던 본래의 계획을 부숴 새롭게 다른 걸 쓰고자 한다. 난 21살이 돼도, 22살이 돼도, 23살이 되고 만남은 쉬운데 이별은 너무나도 어렵다. 떠나보낸다는 건 필연적으로 많은 후회를 풀게 되니까.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으니 나를 더 괴롭게 만든다. 난 그래서 약속했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하는 걸로. 그게 어떤 방식이든, 또 무엇이든.
<졸업>은 이별에 관한 영화다. 러닝타임이 22분 정도인 짧은 단편영화다. 또, 제주대학교 영화동아리 <시네필>이 처음으로 제작한 작품이기도 하다. 멀쩡히 돌아가는 메가박스도 영업 종료시킬 정도로 제주는 영화를 제작하기에 그렇게 원활한 곳이 아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거 그나마 <낙원의 밤> 정도? 근데 그것도 올해 나와서 그렇지 대부분 해녀에 횟집에 썼던 소재만 써서 영화 소개에 '제주'만 들어가도 접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같이 스무스하게 녹아들게 만들 순 없는 걸까?
이 작품 <졸업>은 제주라는 장소적 특성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제주라는 장소가 영화와 찰떡이다. 뭐 이건 필연적으로 이 사람들이 제주대학교 재학생들이니까 제주에 대한 이해도가 높겠지? 그리고 텀블벅으로 150만 원인가 받고 제작한 작품인데 비행기 타고 장소 섭외하고 그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것이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자는 이런 장소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이해도를 십분 잘 활용한다. (물론 이것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상실의 이미지'가 제주의 바닷소리, 풍광과 함께 시너지가 잘 나는 편이다. 혼자서 바다를 걸어본 적이 있는가? 바다는 넓고 행복한 사람들은 주위에 한가득인데 나 혼자만 덩그러니 있으면 외로움이 심해진다. 이렇게 낯이 애매하게 진 바닷가에서 두 친구가 손을 잡고 걷는 장면이 있다. 그 대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내가 그렇게 행동했으면 달라졌을까?' 하는 가정일 것이다. 친구 중 한 명인 예원이는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 대화는 현실성이 없다. 대사만 봐도 현실의 허전함을 강조할 수 있는데, 바다는 보여주고 배경은 페이드 아웃하는 연출법으로 통해 인물들이 상실로 인해 어떻게 고통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연출이다. 이렇게 이런 처연함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제주라는 장소적 특성(바다, 일몰의 아름다움)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결합해 영화의 무거운 정서를 이끌어나간다.
또 이 영화는 성숙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별. 어렵다. 이 '이별, 어렵다.'라는 말을 쓰자마자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었다. 근데 진짜 그 사람들이랑 이별한다고 하면 인생이 어려워질 것 같다. 이 이별이라고 하면 사별도 있고 결별도 있고 뭐 가지각색으로 있겠지. 근데 이별이 정말 아픈 이유는 행복했던 추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떻게 잊어. 난 그것들을 잊으라고 한다면 격하게 싫다고 반응할 자신 있다. 가슴에 품어라. 마음으로 잊어라. 말은 쉽지. 근데 그게 쉽게 되면 사람이 아니다. 인간의 기억이 그렇게 쉽게 잘라낼 수 있으면 기계지 그게. 내 주치의 선생님도 '생각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으니 정신건강의학적으로도 보장된 사실인 것이다. 물론 나는 '잊으라'라고 독려하는 이별에 관한 영화들을 좋아한다. 잊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잊으라는 뭐 그런 거.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이제 그만 끝낼까 해>와 같이 '이젠 정말 앞으로 나아가는 거 어때?'라는 말은 나에게 또 다른 힘이 되었다. 반대의 맥락에서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 <매그놀리아>인데, 이 작품은 인물이 완벽하게 잊어서 성장하는 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엔딩신에 여자 주인공이 빙긋이 웃는 장면으로 영화를 끝낸다. 이 <졸업>은 후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순간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물을 수밖에 없다. 그게 최선이었니? 그게 됐다면 넌 내 옆에 있었을까?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리움이 심해져 사람을 더 아프게 할 것이다. 그 상처들을 무조건 잊는다는 게 과연 능사일까. 아닐 것이다. 돌아본다는 건 완벽하게 지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매일이 고통스러운 인물에게 어려운 문제다. 그 사람을 정말 사랑했으니까 그렇게 자주 뒤를 돌아볼 것일 테니까. 아쉬우니까 미련이 생기는 것이니까. 이 영화는 삶에서 계속되는 난제에 대해 '니 잘못 아니야. 고마웠어'라는 말 한마디를 건넨다. 단적으로 딱 잘라서 잊으라는 말보다 더 사람 냄새가 나는 화법을 쓰는 것이다. 나는 상실의 아픔을 잊기에는 너무 어리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 아주 소중한 원동력이 되는 것인데, 그걸 다 잊기에는 나는 여전한 애새끼다. 이런 나 자신을 긍정해줘서 좋았다.
물론 아쉬운 지점이 있다. 중반부 와랑와랑에서 두 주인공이 술 마시는 장면에서 남자가 '너 그거 정신병이야'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근데 내가 아는 정신질환 중에 지나간 일을 돌이켜보며 힘들어하는 병 같은 건 없다. 각본의 사려 깊음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얼핏 보면 디테일이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사항이나 호흡이 느리다는 호불호 갈림의 요소도 영화의 진정성을 살린다는 점에서 왜 단점으로 지적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강점이 되는 부분인 것이다. 좋은 예술이 뭘까? 나는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는 것에는 재주가 없다. 그냥 좋으면 좋다고 감상을 풀어쓰는 사람이다. 이 <졸업>은 풀어서 쓰기 좋은 작품이다. 사람의 마음도 분석적으로 다 보기엔 어렵지 않나.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디테일한걸 굳이 풀지 않는다. 애초부터 어렵기 때문이다. 이별, 작별. 뭐 그런 순간들을 풀어쓰기에는 다들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날 것의 대사들과 이미지들로 인물들의 내면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근데 사실 생각해보면 그게 우리가 뭘 보고 좋다!라고 느끼는 이유 아닌가? 이런 연출법은 <메기>나 <꿈의 제인>에서 봤던 방식이다. 따라서 한국 독립영화들을 많이 봐 자연스레 배운 연출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누구나 마음속에 잊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온 것에 비해 사소한 것들을 놓쳤다는 회한에 사실 일상이 많이 아쉬운 사람이다. 그래서 아직 몇 가지를 이별하지 못했다. 또 내가 정말 사랑했던 순간들이 나를 떠나고 있는 것 같다. 불안한 게 많은 내 성격이라 지레짐작으로 겁을 먹은 것일 수도 있겠지. 근데 점점 예감이 현실이 된다는 생각은 나를 더 괴롭게 만든다. 이런 나에게, 또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나는 '그냥 그것들 다 잊지 말아라'라고 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단적으로 잊고 산다는 것은 더 비현실적인 것 같다. 그러니까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 정말 그 회한이 필요한 순간이 올 때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쓰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픔을 아픔이라고 생각하면 아픔이겠지. 난 근데 그것 때문에 내 즐거운 시간이 생겼다고 생각해서 잊고 싶지 않다. 정해종 시인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 <엑스트라>에서 이 시인은 '더 이상 지나간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라'라고 썼다.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지나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라. 그 대신,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라. 그게 우리를 만드는 모든 것이겠지. 난 정말 멀어지고 싶지 않은 것들이 분명해서, 아직도 여기서 살고 이곳에서 행복함을 느낀다. 이별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고 싶다. 그게 만남과 이별을 긍정하는 아주 좋은 방식이 될거라고 믿으니까. 뭐 확신할 순 없지만 각본가가 이 극을 썼던 방식이자 내가 글을 쓰는 이유고 이 뭐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바탕이다.
현재 '시네필'의 유투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EWNJ4JOK5M0
-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의 모든 것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 물 만난 영화, 바람난 음악"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이 7월 14일(목) 오전 11시 유튜브 생방송을 통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맹수진 프로그래머-조직위원장 김창규-집행위원장 조성우)
장성란 저널리스트가 사회를 맡아 진행한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은 온/오프라인으로 동시 진행되었으며, 김창규 조직위원장, 조성우 집행위원장, 맹수진 프로그래머가 참석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조성우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제18회를 맞아 큰 도약을 준비했다"며 세계 최고의 영화음악축제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 음악영화인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제천영화음악상은 세계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2017년부터 아시아 음악영화인으로 후보를 넓혀가며, 올해부터는 전 세계 음악영화인을 대상으로 진행합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올해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악영화 <위플래쉬>, <라라랜드>의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Justin Hurwitz)가 2022년도 제천영화음악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저스틴 허워츠는 하버드에서 작곡과 어케스트레이션을 전공했으며,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모든 영화 음악을 작곡했으며, <라라랜드>, <위플래쉬>, <퍼스트맨>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크리틱스 초이스 등 유수의 시상식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여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2017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 음악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영화음악계에 떠오르는 신성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2022년 제천영화음악상 수상자 저스틴 허위츠의 특별 단독 공연이 전 세계 최초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는 역대 최대 규모인 39개국 140편의 음악영화로 찾아왔습니다. 그 중 영화제의 시작을 알릴 개막작은 바르토즈 블라쉬케 감독의 <소나타>입니다. 영화는 현실적인 성장이야기로, 소피아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비행장)
이번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제천을 상징하는 의림지무대와 제천비행장에서 펼쳐집니다.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된 기존 영화제의 모습을 탈피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주 무대를 제천시 모산동에 위치한 제천 비행장으로 옮겼습니다.
조성우 집행위원장은 "올해는 주 무대가 의림지 야외무대, 제천 비행장이다. 제천 시민속으로 파고 들고 더 많은 관객이 영화제를 즐길 수 있도록 공간에 대한 많은 고민 끝에 선택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올해는 축제의 정체성을 한층 더 강화해 대표 음악 프로그램인 '원 썸머 나잇', '필름콘서트' 저스틴 허위츠의 '스페셜 콘서트' 등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축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원 썸머 나잇'은 역대급라인업으로, 첫번째 8월 12일 금요일에 열리는 '그루비 나잇'에서는 힙합 뮤지션 사이먼 도미닉, 로꼬, 릴보이, 릴러말즈가 무대를 채우고, 두번째 8월 15일 월요일에 열리는 '멜로우 나잇'에는 십센치, 선우정아, 이석훈, 폴킴, 잔나비, 이무진 등 감성 보컬이 무대를 꾸밀 예정입니다.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관객들의 관심을 이끌고 있습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올해부터 [영화와 음악]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습니다. [영화와 음악] 프로그램 섹션 중 하나인 올해의 큐레이터는 '조영욱'음악 감독이 맡았습니다. 그는 1997년 영화 <접속>을 시작으로 <조용한 가족>, <해피엔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등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작품들의 음악감독입니다. 조영욱 음악감독은 올해의 큐레이터 섹션을 위해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적인 6편의 영화 리스트를 선정하였습니다.
본인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무뢰한>, <공작>, <헤어질 결심> 3편과,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서스페리아>,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의 <말라버린 꽃>, 마이크 호지스 감독의 <겟 캇터>가 상영될 예정입니다.
출처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더불어 [영화와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고(故) 방준석 추모전 섹션이 준비되어있습니다. 한국영화음악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도 깊은 인연을 맺어온 방준석 감독을 추모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고(故) 방준석 추모전을 마련했습니다.
<자산어보>,<주먹이 운다>, <신과 함께 - 죄와 벌>, <후아유>등 방감독이 참여한 4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방준석 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든 이준익, 류승완, 김용화, 심보경 그리고 방준석 감독의 동생인 방준원과 각 영화 상영 후 릴레이 토크에 참여해 방감독에 대한 추모의 시간을 함께할 예정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세계 각국의 영화와 음악의 감동을 만끽할 수 있는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오는 8월 11일(목) ~ 8월 16일(화) 에 개최됩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홈페이지 : https://www.jimff.org/kor/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기획기사는? 씨네랩 홈페이지 : https://cinelab.co.kr
씨네랩 에디터 ria
-
- 말해줘요. 괜찮은 사람이라고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봤을 것이다.
‘내가 복권이 당첨이 된다면’
지금 집보다 넓은 곳으로 이사도 하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또 사고 싶었던 것도 사야지. 돈을 노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생활할 거야.라는 것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도 있다.
텍사스의 한 마을에서 복권에 당첨된 레슬리는 그 기쁜 순간이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다. 19만 달러 복권 당첨금 피켓을 두 손 높이 들고 소리를 지르며 온몸으로 기뻐하는 그녀는 아들의 생일 날짜로 복권이 당첨된 행운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어제와는 비교도 안되게 좋은 기분.
집도 한 채 사고, 아들에게 선물도 사주고, 친구들에게 술도 한잔 쏘고!
이제 인생이 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레슬리. 어제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 가능성을 선물 받은 그날 이후, 레슬리에게는 어떤 일이 생긴 걸까?
그로부터 6년 뒤, 레슬리는 모텔 방에서 쫓겨나고 있다. 이웃 방에 사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들 외면하고, 레슬리는 작은 슈트케이스 하나만 달랑 가지고 그곳을 떠난다. 도움을 요청할 것도, 갈 곳도 없는 그녀는 몇 년 만에 만나지도 모를 아들 제임스를 찾아간다. 어색함이 감도는 사이지만, 초췌하기 짝이 없는 엄마를 데리고 집으로 가고, 옷도 사주며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한다. 술은 마시지 말라는 조건을 걸지만, 호기롭게 대답한 것과는 다르게 아들이 일을 하러 가자, 바로 술을 사러 가는 레슬리. 게다가 함께 사는 친구의 돈 마저 훔친 것을 알게 되자, 제임스는 내내 억눌러왔던 감정이 터져 나오고, 자신을 돌보아 주었던 엄마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
엄마인 레슬리 보다, 엄마의 친구인 낸시와 더치에게 더 의지 해야 했던 제임스. 걔네들이 나빴다고 이야기하는 레슬리와, 그 사람들은 엄마를 도운 거라고 이야기하는 제임스의 태도에서, 레슬리는 복권에 당첨된 뒤, 고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생각하게 한다.
고향에 돌아간 뒤에도 레슬리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잘 곳은 생겼지만, 마음 둘 곳은 없다. 좁은 지역사회에서는 이미 레슬리의 귀향 자체가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십거리로 오르내리고, 가까이 지내는 것만으로도 전염병에라도 걸릴 것처럼 피하는 것도 모자라 강도 높은 비난이 쏟아진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인생을 시작하는 쪽이 더 쉬울지 모른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경멸과 비난을 쏟아 내는 것을 맞서며 일어서는 것은 더 큰 마음의 생채기를 내는 일이 되니까. 보란 듯이 기세등등해 보이려고 더 악을 써보지만, 어떻게 해도 나아지지 않을 것처럼 무너지고, 메말라 부서져 버렸다. 술에 취해 아들을 버려두고 도망간 엄마는 인간으로서 용서받기엔 너무도 큰 잘못을 저질렀음에 틀림없다.
희망이라고는 한 가닥도 없는 삶. 살아가는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치이고, 당장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조차 막막한 현실. 자신을 잘 아는 지인들이 있는 고향이건만, 문을 열어주는 사람도 재워 줄 곳도 없어, 빈 건물에서 노숙을 하는 레슬리에게, 외지에서 온 모텔 관리인 스위니가 다가와 숙식제공 일자리를 제안한다.
“당신한테 문제가 있다고 해서, 당신을 나쁘게 본 적 없어요.”라고 말하는 스위니의 편견 없는 태도는 서서히 레슬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바짝 말라 바스러진 인생에 물을 주고, 촉촉이 적셔 다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심어 주는 것은, 결국 단 한 명이 내민 손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엉망진창 나락으로 빠진 삶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지 모르는 레슬리에게, 만약 친구 중 한 명이라도 “잘 돌아왔어.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라고 마음을 다해 안아주었다면 , 레슬리는 어땠을까? 지난 6년의 삶에서 레슬리를 가장 경멸한 것은, 타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레슬리 자신이었을 것이다.
술집에서 만난 낯선 남자에게, 자신에게 필요했던 그 말을 해달라고 하는 장면에서 결국 누군가를 다시 세우는 것은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로 시작된 다는 것을. 다정한 눈빛과 편견 없는 태도는 인생을 구원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코올 중독에 빠져 아들은 버린 엄마라 할지라도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내 옆에 누군가가 흔들리고 있다면, 따스하게 말해주자.
“당신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그 말이 한 줄기 빛이 되어, 누군가의 세상을 구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
-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 Spider-Man: No Way Home, 2021
작년 '코로나19'가 뺏어간 "마블"의 21년도 끝을 짓고 있습니다.
여름 <블랙 위도우>를 시작으로 가을에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과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 그리고 <이터널스>까지 "창고 대방출"의 느낌도 없진 않으나 이로 확인한 건 아직도 관객들은 "마블을 원한다"였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을 장식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시작부터 제대로 터트렸습니다.
개봉 하루 전까지 예매량은 75만명에 달했으며, 개봉 첫날에만 634,948명으로 이번 "코로나19"이후 개봉일 기준 가장 많은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 "네영카"에서 유저들이 영화관별로 준비된 굿즈들의 현황이 반나절 만에 동이 나버렸으니 대충 감이 잡히실까요?
그렇다면, 영화는 어떠했는지? -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감상을 "SCREEN X"로 한 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전작 "미스테리오"가 준비한 "악마의 편집(?)"으로 "피터 파커"는 그동안 숨겨온 정체가 밝혀지게 됩니다.
이에 자신뿐만 아니라 "네드"와 "MJ", "메이 숙모"까지 피해를 끼치자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이를 지워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하지만 뭐가 추가되는 사항에 주문은 틀어지고, 그 때문에 다른 차원에서의 악당들이 스파이더맨을 찾게 되는데...이전 스파이더맨, 극장에서 못 봤다고?
진짜 재밌는데 ㅋㅋㅋ1. 1인분인데, 2인분 같단 말이지.
이번 <노 웨이 홈>은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3부작"의 마지막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MCU"를 전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많겠지만 솔로 타이틀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17년 <홈커밍>을 시작으로 19년 <파 프롬 홈>, 이번 21년 <노 웨이 홈>까지 생각보다 짧게만 느껴지는데요. (첫 등장한 16년 <시빌 워>를 합쳐도 7년이니...)
그래서, 늘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을까요? - 이번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3부작"은 어딘가 빠져있다는 느낌입니다.진짜 홀로서기는 아니었나?
단적으로 '프로레슬링'을 예시로 든다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적은 신인들은 한데 묶는 "태그팀" 혹은 "매니저"를 같이 대동하곤 합니다.
이런 이유에는 서로의 부족함을 메꿈으로 '누구와 함께 있느냐?'로 다양한 에피소드와 시너지를 발산시켜려는 것인데요.
그런 점에서 이전 <스파이더맨>들에게는 "MJ"와 "그웬"이라는 히로인들이 있었다면, 이번 <스파이더맨>에게는 "토니"와 "닉 퓨리" 등으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피터"에게 "같이 고생을 했어도 성장이 필요한 꼬마라는 사실을 까먹는다"라고 대사를 던집니다.
이는 즉슨, 이번 <노 웨이 홈>이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를 넌지시 말하던 건 이니었을까요?2. 언더테이커에 기립박수가 나오듯이!
앞서 말했듯이 이번 <노 웨이 홈>, 역시 "스파이더맨"만으로 이끌어가는 작품은 아닙니다.
요즘 세대들은 어색하겠지만, 저와 같은 올드팬들에게는 한없이 익숙한 "옥타비우스(aka. 문어 박사님)"와 "그린 고블린"을 시작으로 "일렉트로"와 "샌드맨", 그리고 "리자드맨"까지 <어벤져스>를 처음 봤던 그 희열을 되감기 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이외에도 마지막에 "MJ"를 구하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모습이나 "글라어더"로 희생당하는 "그린 고블린"의 오마주, 여기에 각 스파이더맨들이 대결을 펼친 빌런들의 무용담까지
'왜 다들 박수가 터져 나왔는지?'를 납득이 갈 정도로 팬심을 꾹꾹 눌러 담아냅니다.근데, 이젠 톰 홀랜드가 스파이디 잖어!
이렇게 기뻐하기도 잠시, 우리는 이번 <스파이더맨>이 "톰 홀랜드"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자꾸 깜빡깜빡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노 웨이 홈>의 "스파이더맨"은 어디까지나 "톰 홀랜드"이고 그 위상이 결코 깎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번 영화까지 세 번째이지만, <스파이더맨>을 꿰뚫는 교훈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에피소드는 늘 인상적입니다.
이런 이유에는 시리즈를 통해서, 쌓아올린 설명도 있겠지만 "그린 고블린"역의 "월렘 대포"의 연기가 가히 압권입니다.3. 악당들의 매력에는 차이가 많네.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분량은 148분으로 일반 영화와 비교해도, 굉장히 긴 시간을 가진 작품입니다.
근데, 이마저도 앞서 소개한 캐릭터들의 분량으로 부족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앞서 관객들에게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으로 완벽하게 이관된 것과 달리, 악당에서는 약간의 부족함이 느껴집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린 고블린"을 제외하면, "옥타비우스"정도 인상적이지만 추후 돌아서는 모습은 현재의 관객들에게 이해가긴 어려울 겁니다. (원작를 본 팬들은 이런 이유를 알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캐릭터들도 크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아 이런 점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당신의 악당에 1표를!
여기에 "SCREEN X"로 보는 액션은 그 스케일을 가늠케 하는데요.
단적인 예시로 시작과 동시에 도시의 빌딩에서 지하철까지 시원하게 활강하는 액션부터 앞서 언급한 다양한 빌런들과의 투탁거림은 이를 꼭 봐야 한다고 말하는 거 같습니다.
특히, "샌드맨"의 모래폭풍이나 "리자드"의 추격전까지 모두 "SCREEN X"로 보여주니 이 포맷도 한 번 관람을 고민해 봐도 좋을 겁니다.
여기에 거드는 <노 웨이 홈>의 이야기에서만큼은 역대 오리지널 작품들과 견주어도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4. 소니야, 잘 키워야 해!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번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3부작"은 솔로 영화임에도 혼자서, 이끌어가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이유가 뭘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닥터 스트레인지"가 말한 "같이 고생을 했어도 성장이 필요한 꼬마라는 사실을 까먹는다"라는 대사로 뭔가 알 거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이를 일으킨 원인만을 생각하는데, 이는 전작 <파 프롬 홈>에서도"토니의 유산"을 두고서 "미스테리오"에게 보여준 회피 행동과도 맞물려 보입니다.3번이나 우린 게 아니라 끓인 거야.
그런 점에서 보여주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에피소드에 지겨움보다 "클래식"으로 느껴지는 건 저뿐인가요?
이에 영화는 슈트로 그 책임감을 보여줍니다.
이전까지 "스타크"가 만들어준 슈트에서 마지막에는 자신이 만든 슈트를 입는데, 이는 "태그팀"에서 혹은 "매니저"를 막 떼어낸 솔로 레슬러의 포효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3부작을 마지막으로 "마블"과의 협업이 끝난 그이지만, 어디선가 다음 3부작의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특히, "소니"에서 준비하는 "SSU(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가 막 출범했기에 "어벤져스"가 아닌 "소니"를 이끄는 그의 모습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상대로, 쿠키는 2개인데 다음 <닥터 스트레인지 인 더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를 위해서라도 <완디비전>과 <로키>는 꼭 챙겨 봐야겠습니다. (필참!)
-
- [독립시대] 끝장리뷰 | 대만과 중국 | 에드워드 양의 양가성 | 예술에 대한 코멘트 | 오프닝, 결말해석 | 제목분석 | 아킴과 찰리 채플린 상징
[독립시대](199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대만
Chapter 2 예술
00:00 독립시대
01:20 대만 은유
02:45 유자의 곤혹
04:07 제목 분석
04:57 아킴과 채플린
08:18 양덕창 예술론
09:40 오프닝, 결말해석
11:39 별점 및 한 줄 평
11:56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립시대에드워드양 #독립시대해석 #독립시대리뷰 #독립시대 #독립시대영화 #영화독립시대 #에드워드양 #양덕창 #AConfucianConfusion #AConfucianConfusionmovie #AConfucianConfusionreview #EdwardYang
-
- 연말결산 - 리뷰는 못 했지만 추천하는 독립영화 7작품 l 상 2편 ( #최선의 삶 #비밀의정원 #좋은빛좋은공기 # 십개월의미래 )
-
오늘은 이렇게, 제가 극장에서 관람은 했지만, 여러 이유로 리뷰를 남기지 못했던 작품들, 그 중에서 특히 추천드리고 싶던 국내 독립영화 7편(로그인 벨지움, 빛과 철, 혼자 사는 사람들, 비밀의 정원, 좋은 빛 좋은 공기, 최선의 삶, 십개월의 미래)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해당 작품들은 [로그인 벨지움]을 제외하고 유튜브를 포함한 VOD서비스를 통해서 만나보실 수 있고요. 다들 좋은 작품들이니 한번쯤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영화등대 채널에서 준비한 2021년 독립영화 연말결산 [상1, 2]편 마무리 짓고요. 저는 다음번에 연말결산 중편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번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영화 <원티드 킬러> 메인 예고편
전설적인 총잡이 ‘빌리 더 키드’(데인 드한)는
미국을 뒤흔든 희대의 현상 수배범으로 쫓기고 있는 상황.
여기에, 자비 없는 추격자 ‘개릿’(에단 호크)까지 합류하며
‘빌리 더 키드’는 벼랑 끝에 내몰려 결국 체포되고 만다.
이에, ‘빌리 더 키드’는 탈옥을 하고자
미국을 향해 선전포고하며 전면전을 감행하는데…
쫓고 쫓기는 무법 질주 액션이 시작된다!
-
- 영화 <토베 얀손> 30초 예고편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 토베는
삽화 의뢰로 알게 된 연극 연출가 비비카와
강렬한 사랑에 빠진다
자신의 캐릭터 ‘무민’을 연극 무대에 올리고
시청 벽화를 그리며 인정받기 시작한 토베
하지만 비비카는 파리로 떠나는데…
‘무민’ 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그녀의 진짜 이야기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