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4-10-29 12:22:53
괜찮아! 잠시 멈춰도, 틀려도
- <괜찮아, 앨리스>(2024)
한국 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끝없이 달리게 만든다. 어쩌면 급속한 성장을 경험했던 어른들은 빠르게 달리는 것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들의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교육을 통해 더 빨리 달려야 한다고 요구한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달리다 보니, 교육 시스템 자체가 효율성과 결과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형성되었고,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성장이 정상적인 과정으로 느껴지게 된다.
영화 <괜찮아, 앨리스>는 인천 강화군에 위치한 꿈틀리 인생학교의 사람들을 보여주며, 우리가 지금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를 던진다. 꿈틀리 인생학교는 2016년에 설립되었으며, 설립자는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이다. 이 학교는 1년간 기숙 생활을 하면서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만의 삶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교육과는 다르게, 이 학교에서는 '멈추기'를 권장하며, 그 멈춤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첫 번째 감정] 아이들의 혼란
영화 속 아이들은 지금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 그저 앞으로 달리는 것에 지친 아이들이다. 그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치고 대학 입시에 매달리며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이러한 삶에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달리기만 하는 이 생에 회의감을 느끼던 아이들은 꿈틀리 인생학교에서 잠시 멈추고, 자신의 삶을 다시 계획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일부 사람들은 이들을 열차에서 떨어진 '낙오자'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묻는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들처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잠시 시간을 주어, 자기 삶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가? 우리는 아이들이 잠시 멈추어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순히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을 돌아보게 만든다.
아이들은 달리기만 하는 삶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목표는 중학교 입학, 고등학교 입학, 대학교 입학, 취업, 결혼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목표에 도달하면 또 다른 목표가 주어지며,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한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간다. 이렇듯 주어진 목표들만을 따라가던 아이들이 혼란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을 줄이고, 아이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
[두 번째 감정] 설립자의 안타까움
꿈틀리 인생학교의 설립자인 오연호 대표는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을 깊이 고민하며 이 학교를 세웠다. 그는 덴마크의 애프터 스콜레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에 이러한 전환기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했다. 애프터 스콜레는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 1년 동안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전환기 학교로, 학생들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길을 갈지 고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오연호 대표는 덴마크를 여러 차례 방문하며, 그곳에서 아이들이 더 많은 선택과 고민을 스스로 하도록 돕는 교육 과정을 보게 되었고, 이는 꿈틀리 인생학교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어린 학생들이 너무 일찍 경쟁에 내몰리며,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박탈당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현재의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마주한 경쟁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과거의 부모들이 겪었던 경쟁이 '성장'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끊임없는 평가와 비교 속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이들에게는 잠시 멈추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꿈틀리 인생학교는 이러한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설립된 공간이며, 오연호 대표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세 번째 감정] 아이들의 희망
꿈틀리 인생학교의 과정을 마친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가고 있다. 그들은 각자의 꿈을 꾸며,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 마음속에 자라나는 것은 '희망'이다. 영화는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을 비추며,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찾아가고 있는지 섬세하게 그려낸다.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 1년간의 시간이 없었다면, 그들은 여전히 앞만 보며 달리기만 했을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하고, 사회의 요구에 떠밀려 살아가며, 마음속의 혼란과 우울을 결코 떨쳐내지 못한 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꿈틀리 인생학교는 1년간 아이들에게 멈춤과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며,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이 메시지는 단순히 타인이 전하는 위로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며,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에게 이러한 말을 건네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희망을 키워나간다. 이러한 희망은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영화는 이 과정을 아름답고 진솔하게 그려냈다.
<괜찮아, 앨리스> 가 던지는 질문
<괜찮아, 앨리스>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의 아이들은 자신만의 모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자신만의 모험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나갔던 것처럼, 현재의 아이들도 다양한 모험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아이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영화 속 꿈틀리 인생학교의 학생들은 비록 소수일지라도, 그곳에서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으며, 이는 그들의 삶에 큰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 중요한 시기에 공부만을 강조하며, 아이들이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은 아이들을 병들게 할 뿐이다. 꿈틀리 인생학교와 같은 공간에서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꿈틀리 인생학교는 계속해서 운영되어야 한다. 달리기만을 강요하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꿈틀리 인생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고민을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괜찮아, 앨리스>는 관객들에게 지금의 교육 시스템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는 '괜찮아'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통해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며,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고민을 던져주는 작품이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괜찮아, 잠시 멈춰도 돼'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0OQgQlPHg1g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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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
한 사람의 인생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기억으로 들어가야 한다. 비록 보호 감호소에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노인의 몸이지만 그의 기억만큼은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치열하게 복수를 꿈꾸는 토마스와 엎드린 채로 발견된 한 사람 모습의 대비되면서 ‘혹시?’라는 생각을 품게 한다. 토마스는 복수에 성공했을까?
노년 토마스의 목소리와 유년의 토마스 목소리가 겹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불 속에서 태어난 두 명의 아기는 엄마들의 손에 의해 구출된다. 하지만 토토는 그 순간, 평생의 무언가가 바뀌었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알프레드가 부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알프레드 아버지의 부탁으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에 비행하던 토토의 아버지가 실종되어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알프레드의 아버지도, 알프레드도 토토에 있어서 원수가 된다. 알프레드를 인생의 거점에서 만날 때마다 계속되는 증오심에 사랑하는 이들을 늘 그렇듯 떠나보낸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보다 자신이 바라보는 눈에 집중하여 존재의 의미를 잃었다. 이루고픈 영웅의 꿈도, 사랑하는 사람들도 부정적인 감정이 주는 불행에 빨려 들어가 형태를 잃어버린다. 불행의 불씨는 자의적으로 집어삼켰지만, 그 불에 자신이 삼켜진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다. 토토에 있어서 깨달음은 자신이 불태워져 형태 없는 것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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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커: 폴리 아 되 | 형에게 맞서는 이란성 쌍둥이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상을 뒤흔든 고담시의 아이콘, 조커로 거듭난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그는 아캄 수용소에 갇힌 채 재판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간수 '재키'(브렌던 글리슨)의 권유로 참석하게 된 음악 치료에서 그는 운명의 그녀, '리 퀸젤'(레이디 가가)을 만난다. 짧은 대화만으로도 수많은 공통점을 찾아낸 두 남녀. 아서는 사랑을 속삭이는 그녀 덕분에 마음 한 편에 잠들어 있던 조커를 다시 한번 깨운다.
리와 함께 하는 삶을 위해 조커로서 당당히 재판에 출석한 아서. 변호인을 해임한 뒤 스스로를 변호하며 그는 법정을 자신의 코미디 쇼로 뒤바꾸려 한다. 그러나 조커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조커가 아닌 아서 플렉의 본모습을 알려주는 증언을 들으면서 조커로서의 삶이 과연 옳은지 고민에 빠진 것. 그렇게 그는 평범한 시민 아서 플렉으로 되돌아갈지, 아니면 고담시의 빌런 조커가 될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5년 전, 우리가 좋아했던 <조커>
조커.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잭 니콜슨, 히스 레저, 자레드 레토 같이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마피아, 무정부주의 테러리스트, 로맨티시스트 갱스터와 같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왔다. 그래서일까? 5년 전, 토드 필립스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가 만든 조커의 영향력은 새삼 놀라웠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할 만큼 반향이 거셌기 때문.
이유는 캐릭터의 해석과 작품의 구성에 있었다. 그는 단순한 가상의 캐릭터나 빌런이 아니었다. 사회 시스템과 체제의 부산물이었다. 정신질환자 아서 플렉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었고, 계속해서 이어진 재수 없는 사건들에 의해 조커로 거듭났다.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붕괴되면 언제든 등장할 것 같은 현실감이 물씬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여기에 기존 히어로 영화의 문법이 더해지자 예상 못한 파급력이 터져 나왔다. 조커가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 위치에 서자, 선악의 구도가 전복되어 버렸다. 살인, 파괴, 혼돈의 악은 정당한 분노의 분출로 변모했다. 처벌과 질서의 선은 차별적인 사회의 불합리한 시스템을 상징하는 악으로 의미가 뒤틀렸다. 그 결과 <조커>의 엔딩은 기존의 상식, 질서, 금기를 부정하는 묘한 쾌감(혹은 불쾌감)으로 가득했다.
이 기묘한 고양 상태는 조커와 관객 사이에 독특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대부분의 관객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상에서 아서 플렉을 곤경에 빠트린 경제 불황, 빈부격차,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느끼며 살아간다. 조커로 변해가는 아서 플렉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조커의 광기에 감정이입할 수에 없는 이유다. 이는 그의 탄생 배경을 오독한 인셀 논란, 모방 범죄에 대한 우려 같은 사회적 논쟁을 촉발시킨 힘이기도 하다.
아서 플렉과 조커, 조커와 아서 플렉
빌런과 관객 사이에 생긴 유대감과 정서적 고양 상태. 이는 5년 만에 나온 속편 <조커: 폴리 아 되>에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했다. 속편인 만큼, 어떤 방향으로든 이 호랑이 위에 올라타야만 했으니까. 토드 필립스 감독은 이 과제에 전편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다. 1편이 아서 플렉의 시점에서 조커의 탄생을 보여줬듯이, 조커의 다음 이야기가 아니라 조커라는 상징의 후광에 대처하는 아서 플렉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이 접근법은 오프닝에서 천언된다. 전편 후반부를 압축한 듯한 짤막한 애니메이션에 조커 분장을 한 아서와 그에게 딸린 그림자가 등장한다. 아서는 옷과 분장을 훔치려는 그림자와 격하게 싸우지만, 끝내 그림자에게 모두 강탈당한다. 토크쇼에 출연한 그림자는 자기 멋대로 '머레이 프랭클린'을 죽이고, 경찰이 오자 그 죄를 아서에게 뒤집어 씌운다. 경찰에게 구타당하면서도 농담을 건네는 아서를 비추며 애니메이션은 끝난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오프닝을 통해 다음 질문을 던진다. "아서 플렉과 조커는 동일인인가?" 영화의 구조와 구성도 이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전편의 연장선에서 이야기를 펼치는 것 같다가도 전편의 그림자와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새로운 캐릭터의 모습으로 등장한 전혀 다른 두 이야기가 서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며 긴장감을 산처럼 쌓는다.
단지 캐릭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르적으로도 로직이 전혀 다른 뮤지컬과 법정 영화를 오가며 오프닝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그 끝은 전편과 사뭇 다른 방향처럼 보이는 결말로 귀결된다. 그렇기에 <조커: 폴리 아 되>는 속편인데도 동생보다는 이란성 쌍둥이 같다. 같은 유전자(접근법)를 가졌지만, 전혀 다른 외양(결말)으로 귀결되니까.
폴리 아 되, 광란의 뮤지컬
실제로도 <조커: 폴리 아 되>는 중반까지 전편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중심에는 리 퀸젤이 있다. 의사 아버지를 두고 대학원까지 다닌 엘리트 여성. 하지만 조커의 광기에 매료된 그녀는 단지 그를 만나기 위해 아캄 수용소에 입원한다. 첫눈에 반한 조커와 함께 하는 삶을 꾸리기 위해서 아서 플렉을 계속 부추긴다. 그와 조커가 별개의 인격이 아니며, 조커야말로 그의 진정한 인격이고, 자신은 조커와 사랑에 빠졌다고 속삭이면서.
이 대목에서 등장한 뮤지컬은 1편 속 코미디쇼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코미디쇼는 차별당하고 주류에서 배제된 아서의 삶을 보여줬다. 뮤지컬은 그런 삶이 사랑을 찾아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들려준다. 병동에서 리를 만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조커로서 그녀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는 상상을 멜로디와 가사에 응축해 보여준다.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조커의 읊조림과 레이디 가가의 가창력이 만나 노래의 울림은 더 극대화된다.
그렇기에 그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는 '폴리 아 되', 곧 '공유정신병적 장애'라는 부제만큼 적절한 단어도 없다. 아서가 만들어낸 조커에 매료된 리. 그런 리의 희망과 상상을 토대로 더 커진 아서의 망상. 어느 한 사람에게 먼저 증상이 나타난 뒤 가까운 관계를 맺은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병의 증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따라서 개봉 전 우려와 달리 뮤지컬 시퀀스는 되려 전편의 조커를 볼 수 있는 귀중한 순간이다. 그들이 수용소에 불을 지른 후 함께 노래하며 철문에 매달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법정에서 증인 심문을 듣던 조커의 갑작스러운 망상도 같은 맥락에서 충격적이다. 그를 심문하는 검사 '하비 덴트'(해리 로티)와 판사를 모두 때려죽이고, 법정을 점거한 뒤 노래하며 춤추는 그의 모습은 전편 결말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법정에서 벗겨진 조커의 분장
하지만 법정에서의 분량이 늘어나면서 <조커: 폴리 아 되>는 점차 예상을 벗어난다. 법정의 쟁점은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다르지 않다. 하비 덴트는 아서와 조커가 동일인이라며 유죄를 주장한다. 반면에 변호인은 조커라는 별도의 인격이 모든 범죄를 저질렀으니 아서는 무죄라고 주장한다. 법정이라는 일종의 거울 안에서 아서는 본래 본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객관적으로 마주할 기회를 잡는다.
재판 초반에는 변호인의 전략에 순응하던 아서. 하지만 환상 속에서 리 퀸젤과 펼친 뮤지컬 공연이 분기점이다. 뮤지컬 안에서 그는 처음으로 의미가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토록 갈구했던 사랑과 관심을 마침내 찾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서는 리의 말을 따라, 그녀가 원하는 조커로서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조커와 아서를 분리하려는 변호인을 해임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두 번째 분기점이 주어진다. 왜소증을 앓는 '개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괴롭힐 때 오직 아서만 자신을 동등하게 대했다고 증언한다. 그 증언을 들으면서 아서는 깨닫는다. 설령 조커가 되지 않아도 사랑을 받고, 나눠주고, 의미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또 수용소에서 조커를 지지하던 환자가 간수에게 구타당해 사망하자 그는 조커라는 또 다른 자아의 의미에 관해 회의를 품는다.
마침내 아서는 답을 내린다. 조커는 허상이라고. 사랑과 관심을 갈구한 자신이 만든 존재일 뿐이라고. 따라서 6명을 죽인 자신은 유죄라고. 이 결정의 대가로 아서는 사랑도, 목숨도 잃는다. 아서가 아닌 조커를 사랑했던 리는 그를 떠나고, 병동에 있던 또 다른 조커의 지지자는 배신감을 이기지 못해 아서를 살해한다. 이러한 전개를 보면 <조커> 2부작이 사실은 <아서 플렉>이라는 한 작품을 구성한 게 아닌가 싶다.
조커는 죽지 않았다
그런데 조커와 아서 플렉을 분리시킨 <조커: 폴리 아 되>의 선택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더 있다. 결말을 곱씹다 보면 아서와 달리 조커는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조커를 포기한 아서를 대하는 주변인의 태도가 그 방증이다. 리는 그의 고백을 거절한 뒤 떠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조커 역할을 할 다른 누군가를 찾으면 그만이다. 세상이 조커에게 열광하는 가운데, 꼭 아서가 조커여야 할 필요는 없다.
아서 살해범도 마찬가지다. 조커의 열렬한 지지자인 그에게 아서와 조커는 동일인이 아니다. 오히려 아서가 세상에서 사라져야 그들이 원하는 조커가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 둘이 별개라면 아서의 결심과는 무관하게 조커가 존재할 수 있으니까. 조커라는 불이 이미 붙은 상황에서 아서라는 불쏘시개는 더 이상 가치가 없는 셈이다. 아서가 없는 세상에서는 누군가가 조커를 자칭하며 배트맨과 싸울지도 모를 일이니까.
즉, 조커라는 광기가 이미 아서의 손을 떠난 가운데 아서 플렉은 죽어도 조커라는 상징과 이미지는 그를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았다. 이 대목에서 부제 '폴리 아 되'는 이중적으로 읽힌다. 아서와 리의 관계뿐만 아니라, 조커와 조커의 지지자 간의 유대감을 설명하는 제목처럼도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아서 플렉이 조커를 포기하는 이야기인데도 <조커>라는 제목이 어색하지 않다.
동생이 아니라 쌍둥이였던 속편
물론 <조커: 폴리 아 되>는 실망스러워도 이상하지 않은 영화다. 예고편과 포스터를 비롯한 마케팅의 초점이 전부 빌런 '조커'와 '할리퀸'에게 맞췄으니 관객 입장에서는 속았다는 느낄 수 있다. 전편에서 탄생한 '조커'의 활약만 암시해 놓고, 정작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기를 거부하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보여줬으니 당연한 일이다.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뮤지컬 시퀀스도 과하게 삽입되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편을 부정하는 작품이라며 <조커: 폴리 아 되>를 비난하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다. 비록 아서는 조커가 아닌 채로 죽었지만, 조커라는 상징이 지닌 의미만큼은 아서의 비참한 결말로부터 여전히 살아남아 있으니까.
이에 더해 1편과 2편이 동떨어져 있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조커의 탄생을 아서의 시점에서 보여준 전편도, 아서의 몰락을 그려낸 속편도,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함으로부터 누구나 언제든 조커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 따라서 <조커: 폴리 아 되>는 형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생보다는, 형과 동생이 대등하게 겨루는 이란성 쌍둥이 속편에 가까워 보인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역할을 다 한 불쏘시개는 불 타 사라지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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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룸하우스 노하우 활용의 잘못된 예!
‘블룸하우스 = 호러 명가’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블룸하우스가 제작한 영화는 완성도를 떠나 궁금증을 갖게 한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인시디어스> <더 퍼지> 시리즈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메간> <프레디의 피자가게> 등 최근에는 홀로된 아이들 곁을 지키는 친숙한 것(장난감, AI 로봇 등)의 이면을 통해 공포감을 전했고, 그 전략은 시쳇말로 1~20대 관객에게 먹혔다. 젊은 세대 관객의 소구 포인트를 안 이상 제작사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터. 그 바통을 이어받은 <이매지너리>도 곰 인형이라는 친숙한 장난감이 공포의 대상으로 변한다는 설정을 가져왔다. 기획은 좋다. 문제는 블룸하우스의 여러 작품에서 봐왔던 요소들이 이곳 저곳에 덧칠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시카(드완다 와이즈) 자주 거대 거미에 쫓기는 악몽을 꾼다. 그 거미를 소재 삼아 만든 그림책으로 유명한 작가가 된 그녀는 돌싱남이자 두 딸의 아빠인 맥스(톰 페인)와 결혼을 한다. 남편과 두 딸이 생긴 제시카는 어린 시절 살았던 고향 집으로 이사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딸 앨리스(파이퍼 브라운)는 지하실에서 홀로 외롭게 앉아 있는 곰인형 ‘천시’를 발견한다. 이후, 앨리스의 상상 속 친구가 된 천시는 이 순수한 소녀와 재미있고도 무서운 놀이를 시작한다.
유년 시절의 경험을 통해 공포감을 극대화하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공감을 뒤틀면 관객이 불편함을 갖는다. 관객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을 비틀고, 거기서 공포와 서스펜스를 전한다.
<이매지너리>는 블룸하우스 대표 제이슨 블룸이 말하는 이 방법을 오롯이 반영한 작품이다. 영화는 누구나 유년 시절 갖고 놀았던 인형, 또는 상상의 친구를 데려와 공감을 갖게 하고, 이를 뒤트는 방식을 취한다. 일명 '큐렌들리(Cute+Friendly) 호러'라 불리는 영화의 중심에는 곰 인형 ’천시’가 있는데, 초반에는 외관상 귀여운 존재로만 각인된다. 감독은 반전 트릭을 강조하기 위해 천시의 정적인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마치 관객에게 안전하다고 느끼게끔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상상의 친구가 모두 ‘빙봉’은 아닐 터. 천시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은 작은 디테일에서 출발한다. 보통의 곰 인형처럼 보이는 천시는 감독의 말에 따라 5%가 부족해 보인다. 눈과 귀 크기가 다른 것은 물론, 점차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기 때문. 특히 앨리스에게 현실보다 더 나은 환상의 나라에 데려가 주겠다는 달콤한 말을 하며 위험한 미션을 하게 만드는데, 이를 발견한 제시카가 그 위험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천시의 위협이 더 거세지면서 잊었던 제시카의 진짜 유년 시절이 밝혀지고, 영화는 보다 호러 장르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문제는 익숙한 소재 활용법과 기시감 짙은 장면들의 나열이다. 지하실 공간, 벽에 남겨진 의문의 낙서, 수상한 이웃의 출현, 현실과 상상의 공간 등 기존 할리우드 공포 영화에서 봐왔던 소재들이 즐비하다. 차별화 포인트 없이 각 장면의 호러 요소로만 이 소재들이 사용되다 보니 긴장감은 떨어지기 마련. 이보다 더 아쉬운 건 블룸하우스의 성공한 영화의 장점들이 대거 활용되었는데, 영화에 잘 녹아들지 않고, 기시감만 든다. 천시의 활용은 <메간>, 지하실 파란 문과 그 안의 또 다른 세상, 그리고 그 세상 안에서 누군가를 구출해 오는 것은 <인시디어스> 시리즈, 잊고 지냈던 과거 속 공포의 근원을 찾는 과정은 <프레디의 피자가게>의 요소와 오버랩된다. 제작사의 노하우를 재활용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좀 더 다각적으로 고민해서 활용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든다.
표면적으로 이런 약점이 노출되다 보니 공포영화의 극적 긴장감은 다소 떨어진다. 하루아침에 두 아이를 키워야 하고 잘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계모로서의 현실 공포,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가며 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으로서 의미 또한 잘 살지 못한다. 올해 여름 시즌을 마무리하는 호러 영화로서 장르 팬들은 기대보단 실망이 더 클지도 모른다.
사진 제공: 올스타엔터테인먼트
평점: 2.5 / 5.0
한줄평: 검증된 소재, 게으른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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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죽음이 가스라이팅이 아니길
태어나는 것은 자유가 아니지만 죽는 것은 자유로워진 세상에서 노인들은 정말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 현대사회의 키워드 중에서 고령화는 모를 수가 없는 단어가 되었다.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져도 정신이 말짱해 고통 속을 해매는 경우, 몸은 비교적 건강하지만 정신은 온전치 못해 가족들이 고생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웰빙, 웰다잉 이라는 단어도 참 많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내 노후가 충분한 돈이 있는 안락한 삶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노인은 생활전선에서 제외되고, 거듭 제외당하다가 결국 비참한 말로의 주인공이 된다.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없는 삶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비참한 삶으로 이끌기에 살아갈 날은 남았지만 돈은 없는 노인에게 삶은 지옥과도 같다. 이 영화는 그런 노인들의 삶을 그리는 영화다.
1. 삶에 큰 화두를 던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서글펐다. 내 인생도 저렇게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자식이 있다면 자식들이 케어해줄 수도 있겠지만 내 인생은 자식이 없을 것이라는 가정을 두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기에 돈을 많이 모아놔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모아둔 돈이 없으면 결국 열심히 살아도 사회는 나를 점점 소외시킬 것이기에, 소외된 삶속에서 나는 점점 외로워져갈 것이다. 외로움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내 신념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 인생은 외로움을 넘어 비참함이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심오한 고민을 하게 되는 영화임은 틀림없다. 노인들을 대하는 사회의 분위기와 젊은 세대들이 바라보는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노인들의 모습 등등 노인들 중에서도 저소득층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영화일 것 같다.
2. 너무 답이 뻔히 보이는
하지만 영화는 노인들의 한정적인 모습만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지점이 조금 아쉬웠다. 물론 사회적으로 노인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아주 긍정적이진 않더라도 그들을 보호해야할 정부마저 플랜 75를 출시하며 어찌보면 노인을 위하는 척하지만 노인들을 사지로 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영화는 내용이 잔잔하다 못해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이 많다.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의 삶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동정의 요소가 참 많은데, 다른 노인들의 다양한 죽음의 선택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정부의 무관심, 사회의 무관심으로 체념해서, 혹은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어서 죽음이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만 보여주는 지점이 조금 아쉬웠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삶의 미련을 버리는 이유가 조금 더 다양하게 나왔더라면 더 공감이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저 버림받은 노인들의 불쌍한 모습만을 묘사하는 것만으로 제대로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결국 이 영화의 장르는 신파가 아닐까.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영화를 보면서 왜 이 가사가 계속 맴돌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신파라고 생각하면서도 주인공 할머니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걸 보면 어쩌면 난 아닌 척 하면서도 이 영화에 동화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조부모님이 생존해계신 나로서는 아주 무시할 수는 없는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다시 물어보겠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온다면, 당신은 정말 삶의 미련을 버리고 자의적으로, 더 아프기 전에 비참해지기 전에 하루라도 조금 더 건강할 때 죽음을 맞이할 것 같은가? 나는 별로 그럴 것 같진 않다. 누구에게나 삶의 이유가 있기에 삶에 대한 집착도 어느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쿨하게 자신의 인생을 포기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적당한 체념이 들어가겠지. 하지만 나의 삶의 끝이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누군가에게, 사회에게 알게모르게 가스라이팅당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음 좋겠다. 나의 죽음을 향한 선택이, 나의 안식을 위한 길이길 바란다.
이 영화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여한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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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질문을 던질 때
좋은 영화는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철학적인 논쟁이나 윤리적인 이슈가 있는 주제를 다루는 영화들은 대부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감독의 의견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서복> 이전에도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는 있었고 한국에서만 대성공을 거두었던 <아일랜드>의 경우 복제인간의 인권을 인정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일랜드>가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 논의의 여지를 주려고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황우석 박사의 논문이 발표되며 복제 이슈가 뜨거웠던 당시로서는 소재만으로도 질문을 던지는 것이 가능했다. 이후 여러 논란을 거쳐 생명체를 복제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이전처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지금 이용주 감독은 복제인간 소재를 꺼냈다. 소재가 낡았다고 해서 영화까지 낡으라는 법은 없지만 <서복>은 소재를 가지고 논의에 들어가기보다는 소재와 논의를 보여주는 데서 그친다. 복제인간 서복(박보검 분)이 기헌(공유 분)에게 하는 질문들은 질문 자체로는 의미가 있지만 영화의 맥락과 어울리지 않아 기헌을 당황시킬 뿐이다.
<서복>이 던지려고 했던 질문들은 서복의 존재에서 파생된다. 서복은 인류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탄생했지만 뜻밖의 부작용으로 염력을 가지게 됐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아쉽지만 서복을 만들어낸 임세은 박사(장영남 분)는 별도의 목적이 있었다. 임 박사의 서복 제작 동기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깊이 들어가지 못하며 서복의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고뇌를 잠깐 보여주는 선에서 머무른다. 비슷한 논의는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레플리카>에서 시도된 적이 있는데 역시나 액션영화로 마무리되었을 뿐이다. 아마도 임 박사의 동기에 대해서는 관객과 제작진 모두가 비슷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더 파고들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임 박사는 서복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감정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렸고 장영남이라는 배우치고 영화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퇴장한다. 서복의 탄생 동기를 둘로 나눈 건 확실한 패착이었다.
연구소의 실장 신학선(박병은 분)이 서복에 대해 던지는 질문은 '서복이 과연 인간인가'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고 사람처럼 말을 하고 성장하지만 서복은 실험실에서 태어났고 인간과는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 애초에 탄생 동기가 인류의 복지 향상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서복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신 실장의 의견이다. 따라서 실험체로서 서복이 겪어야 하는 고통들은 신 실장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관객에게 서복이 인간이냐고 묻는다면 대다수는 인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며 인간이 아니라고 대답하더라도 서복이 인류의 복지를 위해 영원히 고통받아서는 안된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대답을 기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복이 박보검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서복이 인간의 형상이 아닌 생명체였다면, 혹은 서복이 박보검이 아닌 다른 배우였다면 다른 대답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서복이 기헌과 함께 시장을 돌아다니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모두 서복을 인간이라 인지하며 심지어 기헌에게 동생을 잘 챙기라는 연민섞인 시선마저 보낸다. 그렇기에 서복이 인간이냐는 질문은 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거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동물실험마저 윤리적이지 않다는 논의가 나오는 시대에 복제인간이 인간인가/복제인간은 이용되어도 좋은가에 관한 질문은 신학선의 무자비한 캐릭터를 설정해주는 데 머무를 뿐이다.
서복을 탄생시킨 연구소 서인의 회장인 김천오(김재건 분)는 서복을 가지고 신의 역할을 하려 한다. 서복이 줄 수 있는 영생을 나눠줄 이를 악인이 선택하겠다고 한다는 발상은 꽤 낡았으며 그다지 유효하지도 않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런 일은 이미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의료 시스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와 받지 못하는 자로 나뉘는 사회에서는 이미 평균수명에서 차이가 나며 의료 혜택이 동등하게 분배되는 곳에서는 정작 의료진이 희생을 강요당하거나 의료 수준의 질이 낮다. 자세한 논의는 이미 <식코>에서 마이클 무어의 무자비한 카메라가 다룬 적이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다룰 수 있는 시대는 오래 전에 도래했으며 관련 논의도 마무리된지 오래다. 차라리 사형제도 폐지 쪽이 이제는 동일 주제를 다루는 쪽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영생의 무의미함에 대해서는 뱀파이어물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기록이 있어 <서복>은 늦은 감이 있다. 결국 회장이 다루는 주제도 마찬가지로 회장의 판에 박힌 캐릭터를 만들어 주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며 돈에 환장한 늙은이 캐릭터조차 식상해 주제도 캐릭터도 서사에서 별다른 특이점을 제공하지 못한다.
기헌이 서복에게 갖는 질문들은 보다 복합적인 편이다. 다만 기헌의 질문들은 본인 스스로가 갖는 의문이기보다는 서복이나 다른 캐릭터들이 던지는 질문을 흡수하는 것에 가깝다. 기헌은 서복을 통해서든 아니든 자신이 가진 질병을 치료하고 더 살고 싶어하는데 정작 그이유는 알지 못한다. 서복은 기헌에게 "내가 왜 민기헌 씨를 살려줘야 하는데요?"라고 묻지만 기헌은 대답하지 못한다. 이외에도 서복은 기헌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데 기헌은 잠시 생각해 보지만 결국엔 단 하나의 질문에도 스스로 답을 도출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헌은 서복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삶에 대해 생각해 보지만 이를 통해 기헌이 한 단계 성장했다는 증거는 서사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기헌은 서복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서복이 인간의 형상, 특히 박보검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복에게서 채취한 치료제로 삶을 연장하려던 기헌은 채취 과정을 알고 나서야 서복을 보호하려 든다. 서복에게서 치료제를 채취하는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서복이 실험실에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정도라면 서복에게서 치료제를 채취하는 것은 정당한가? 기헌은 서복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도로 실험실로 데려오지만 스스로는 질문조차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캐릭터다.
마지막으로 서복이 서복 자신에게 갖는 질문들은 꽤나 심오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해서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삶의 의미에 대해서까지 질문한다. 서복은 자신이 누구의 DNA로부터 탄생했는지 알고 있었으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기원을 탐구하고자 한다. 서복을 연기한 박보검은 연민을 자아내면서도 때로는 무자비하고, 사회적 규칙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서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배우의 역량 부족이라기보다는 서복이라는 캐릭터를 만들면서 서사에서 자리가 온전히 잡히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 서복은 자신의 기원을 찾아내고 인류에게 영생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탐구하면서도 결국엔 실험실로 돌아가길 자청한다. 단순히 기헌을 살려주기 위한 것이라면 영화 후반 서복이 내리는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 서복은 서사에서 가장 복잡하고 철학적인 인물이지만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행동하는 경향이 짙다. 서복의 질문들은 시사점이 많지만 논의를 시작하기보다는 철학수업 첫시간에 듣는 질문을 나열할 뿐이다.
<서복>이 비록 낡기는 했지만 매력적인 소재를 발견한 건 사실이다. 서복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고 나아가 연구 윤리와 트롤리 딜레마까지 다루려 했던 노력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가 시사하려 하는 바가 캐릭터 설정에 머무른다면 박보검과 공유의 조합으로도 커버할 수 없다. 이용주 감독이 이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밀도 있는 서사가 <서복>에서는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레이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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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링 타임용 코믹 영화 추천 '멍뭉이' (feat. 차태현 유연석)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멍뭉이
(23.03.01 개봉)
감독: 김주환
출연: 유연석, 차태현 등
청년경찰, 사자를 하셨던 김주환 감독님의 새로운 신작 '멍뭉이'!
개봉한 지 일주일 만에 보고 왔어용
예고편만 봐도 영화관 가서 볼 정도로...... 재미있는 영화는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어쩌다 보니 시간이 남아서 보게 된 하핫,,
아니나다를까 15,000원 값어치는 못하는 영화더라구요
전 11번가에서 티켓 구매해서 8,000원 정도에 봤는데
그거 아니었음 WOW 돈 아까워서 울 뻔했어용
사실 VOD 다시 보기로 1,200원 주기에 딱인 영화 같거든요
'멍뭉이'는 전형적인 한국st 코믹 영화예요
버려진 유기견, 안락사 직전의 강아지 등 약 8마리...?? 쯤의
강아지를 맡아 줄 곳을 찾는 민수와 진국의 여행기쯤이 되겠는데요
사실 애초 설정부터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에요
민수에게는 유일한 가족인 반려견 루니가 있어요
그런데 곧 결혼할 여자 친구가 개 침 알레르기가 있고요
여친이 막... 갖다버려라 어디 맡겨라 한 것도 아닌데
그 얘기 듣자마자 민수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맡기겠다고 해요
엄마 죽고 유일하게 남은 생명줄 같은 아이였는데
여친 알레르기 있단 말 한마디에 남한테 맡길 수... 있나요?
강아지 키워 보지 않은 저도 이해를 못하겠네요
심지어 그 결정을 10초 만에 했단 것도요
그리고 진국은 전 카페 사장, 현 PT 쌤 같은데요
핸드폰 액정 깨져서 돈이 급해지니까 고등학생 회원 꼬시는 장면을 길~게 보여 주길래
그 캐릭터를 앞으로도 데리고 가려나 보다 했거든요
근데 그냥... 돈 필요하단 떡밥용이었어요
게다가 진국이 인스타 팔로워가 3만이 넘는 인플루언서라길래
이를 이용한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딱히 없었고요
무엇보다 주인공이 지나치게 수동적이에요
루니(반려견) 맡기는 것도 여자 친구 때문,
인스타그램을 이용해서 찾아보자 하는 건 사촌 형의 생각,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것도 인플루언서 사촌 형 덕분,
루니를 다시 데리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미 때문이었죠
아미가 막 가족은 무슨 일이 있다고 버리지 않는다,,,
이런 명언 투척하니까 아앗 싶어서 다시 루니한테 달려가요
주인공 귀가 너무 얇은 거 아닌가요......
아아 그리고 민수한테 마당 딸린 집이 있는 걸 강조하길래
저는 당연히 루니랑 행복하게 살 줄 알았거든요
물론 이게 결말이긴 했습니다
근데 그 집을... 많이 이용하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집이라고 트라우마가 있다길래
그걸 이겨내는 과정이 좀 길게 나올 줄 알았는데
그냥... 먼지 청소하면서 꾹 참는 게 다더라고요
박진주, 김유정, 이호정 님 등 탑 배우님들 많이 나오셨는데
다 너무 지나가는 역할들인데다가 재미도 감동도 없는 역할들이었어서
그냥 배우 친구 파워가 좋구나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암튼 이 영화를 보고 뭘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시골에서 학대당하는 강아지 등 다양한 모습의 유기견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히 들 수밖에 없는 거고
확실한 빌런, 혹은 감동 포인트를 심어 줬어야 하는데
그냥... 강아지들 보는 맛밖에 없었네요
차라리 민수가 병에 걸려서 루니를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
뭐 이런 거였음 뒤에 가서 울기라도 했을 거 같아요
그리고!! 코믹한 장면을 너무 살리지 못했습니다
식당에서 차태현 님 인플루언서라는 거 알릴 때
사장이 흠칫했잖아요 팔로워 3만이라서
그럼 뭐 서비스 음식을 주거나... 식의 제스처를 보여서
민수가 인플루언서가 이런 거구나 하고 깨닫게 만들었어야죠
그리고 유기견 센터에서 차태현 님 무조건 오열했어야 해요
사장보다 더 울어서 강아지를 데리고 올수밖에 없게 만드는...
고런 웃픔 포인트 있었어야 했는데...... 많이 아쉬운 영화입니다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재관람의사: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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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친구가 이발하라고 만원을 쥐어주던데 [단편영화] Official short film
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영화를 좋아해서 결국...!! 영화를 찍어버린 씨네마사지!
오래전 수많은 사람들에게 레전드로 기억되는 썰
'여자친구가 이발하라고 만원을 쥐어주던데'를 본격 단편영화화!
제작 씨네마사지
원작 김봉철 [30대 백수 쓰레기의 일기]
출연
황보 김동영 오유나
여자친구가 이발하라고 돈 만원을 쥐어주던데
그다음엔 목욕탕 가라고 또 만원 주고
목욕 다 하고 탕 앞에서 바나나 우유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굴 뽀얘져 가지고 막 빨간 볼 하고 나오면서 바나나 우유 두개 들고오다
나 먼저 먹고있는거 보고 뒤로 감추고
상설매장가서 옷 깔끔한거 사주고 막 맞춰보면서 잘어울린다고 좋아해주고
나 수줍어하니까 귀엽다면서 막 웃고
집에 데려다 주는 길 집 앞에서
이제 깔끔해지고 말쑥해지고 멋있어졌으니까
자기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고
이게 마지막 사겼던 애랑 마지막 날 했던 일인데
내가 다시 연애같은걸 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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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특종의 탄생> 공식 예고편
한 시간 만에 모든 걸 바꿔놓은 TV 방송. 그 인터뷰는 어떻게 성사될 수 있었을까?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에게 불명예를 안겨준 뉴스나이트 인터뷰가 영화로 새롭게 탄생했다. 질리언 앤더슨, 킬리 호스, 빌리 파이퍼, 루퍼스 슈얼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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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 티저 예고편
아이들의 낙서가 사라져 붕괴 위기에 처한 낙서왕국은
낙서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지구 침공을 시작한다.
낙서왕국의 위험한 작전을 막기 위해
지상의 용사로 선택 받은 짱구는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미라클 크레용’을 얻게 된다.
쓰윽 쓰윽~ 그려 그려~!
짱구가 미라클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자
브리프, 가짜 이슬이 누나, 부리부리 용사가
스케치북 밖으로 튀어나오는데..!
과연, 크레용 용사 짱구는 낙서 용사들과 함께
위험에 빠진 떡잎마을과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