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ong2022-03-27 23:56:48
아무도 믿을 수 없어서 일어나는 지옥
<불신지옥>, 스포일러 없이 추천합니다!
부럽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친구에게 한 말이다. 보통 취업준비로는 타인을 부러워해 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그런 기분이 많이 든다. 450여 일의 노예생활이 지나면 자취도 하고 내 돈으로 월급도 벌어서 효도도 하겠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야.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아. 나 진짜 열심히는 했는데 말이지." "야. 네가 안되면 누가 안 되냐?" 친구는 나를 위로해줬다. 이 한국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온갖 혐오가 판치고 취업난 구직난이 바글바글한 우리나라에서 1인분 하며 일상을 버틴다는 것은 참 많은 것들을 수반하는 일인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한참 하다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지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었는데. 이미지와 첫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주욱 말했다. 그게 뭐야라고 대답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으로 귀결 지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말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내가 누군지만 아는 그 사람이 구린 이유는, 예민한 게 너무나도 많아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 사람을 직접적으로 아는 건 아니라서 내가 뭐라 하는 것 자체가 우습긴 하지. 그런데 우리나라는 좀 멀리 오기는 했다. 사람같이 살려면 참 많은 게 필요하니 말이다. 16년 전 한 신인 감독이 한국사회의 단면과 초자연적인 것들을 가져와 오싹한 공포영화를 만들어냈다. 한국 호러 영화의 수작, <불신지옥>이다.
영화 개요로 다 함축할 수 없는, 압도적인 이야기
동생이 사라졌다. 언니 희진이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아빠는 없고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희진. 희진은 곧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 태환은 아픈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장이기도 하다. 태환은 부랴부랴 희진을 만난다. 태환은 그렇게까지 희진에게 협조적이지 않다. 동생 소진의 실종이 단순 가출로 가정하고 주변 아파트 주민들을 취재하는 태환. 점점 이상한 게 눈에 띄기 시작한다. 태환은 경비 아저씨부터 옆집 아줌마 경자까지 '그 집에는 무언가가 있다'라는 증언을 듣게 된다. 태환의 조사는 점점 진행되고, 희진에게 계속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이 과정 속에서 두 영화는 이 희진과 소진 자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일이 영화의 주요 소재라고 볼 수 있겠다.
과연 어떤 것이 지옥인가
여러분은 무속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각자 생각하는 무속의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또한 기독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들을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각각 다를 것이다. 영화는 두 종교가 제시했던 지옥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무속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초자연적인 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적인 이미지를 차용해서 역시 초자연적인 두려움을 묘사한다. 그러나 이 둘이 갖고 있는 신적인 공포와 두려움이 전부가 아니다. 영화 안에서 묘사하고 있는 다른 지옥들이 몇 개 있다. 하나는 타인에 대한 폭력적인 시각이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어떤 공포를 주고 있는가'에 대해 쓰면 깊이에 지장이 갈 것 같아 더 쓸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영화 내적으로 묘사하는 인물 갈등이 탁월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희진과 엄마와의 대립, 또 경비 아저씨와 태환과의 대립, 태환과 희진의 갈등까지 누군가가 어떤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를 묘사하는 꼼꼼한 인물 구성이었다.
또 영화가 조명하는 이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일단 아파트라는 건물 속성 자체가 사람들이 작은 공간에서 빼곡히 사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 덕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밀도가 높다. 영화 안에서 이웃이 태환에게 소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보면, 이 고밀도에 의해 쉽고 가벼운 말을 던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이외에도 군인 출신들의 사회 적응, 대학생이 살기 너무나도 어려운 사회 현실, 타인을 이용하기 충분한 한국사회, 가해자로서의 한국의 위치까지 신의 존재로 넓은 이야기 범주를 호러라는 키워드 안에 무리 없이 담는다.
깔끔하게 짜인 무서운 이미지
흔히 호러 영화의 클리셰로 '점프 스퀘어'라는 말을 쓴다. 갑자기 유령이 튀어나오거나 하는 것이 그 정의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이 점프 스퀘어가 한 번도 안 쓰인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공포를 만드는 방식은 이와 살짝 다른데, 이 작품은 이미지를 사용해서 무서움을 만들어 낸다. 영화 초중반부 어떤 인물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이야기를 태환에게 전하는 장면이 있다. 이때 인물이 대사를 치며 하는 표정, 그 말의 내용, 이 인물의 다음 처지까지 감독은 자칫하면 뻔할 수도 있는 공포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또 이 인물의 의문스러운 행동을 받아주는 태환이라는 인물의 성격도 이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신들림'의 이미지 역시 탁월했다. 신들림은 현실과 신 사이의 3의 존재쯤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인물이 빙의되며 변하는 표정연기나 기타 미술까지 현실감 있는 두려움을 묘사했다. 이 신들림과 비슷한 느낌이 운명적인 죽음 아닌가. 특정 인물들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방식 역시 여태까지 봤던 공포영화의 결과는 다를 것이다. 이런 강력한 이미지들이 인물의 행동으로만 쨘하고 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이니 만큼 특정 쇼트들이 관객에게 제시되는데 이 역시 탁월했다. 감독 이용주의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종교적인 이야기?
<불신지옥>이라는 제목을 보고 이 작품이 반종교적인 작품으로 읽힐 수도 있다. 난 영화의 소재가 한국사회의 이기주의라고 본다. 그러니까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 주가 되는 작품은 아닌 셈이다. 영화는 두 가지 종교를 키워드로 전개한다. 바로 무속과 기독교다. 이 영화가 반종교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어머니 캐릭터가 어떤가에 대해 써야 하는데, 극을 보다 보면 그렇게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또한 이 영화에서 종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아파트라는 공간적 배경이다. 물론 극단적인 믿음이 만들어낸 끔찍한 이야기라는 데에는 여지가 없으나, 난 이 영화의 주요 갈등은 '타인에 대해 폭력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본다. 이 폭력적인 시선이 아파트라는 고밀도의 장소에서 바글바글 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점이 영화 안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 유령이 등장하는 것도, 소진이 실종했던 것도, 태환이 출동했던 것도 다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다. 다들 아파트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쉽게 보고 가볍게 이용한다. 영화 끝까지 반복되는 '맹신'의 모티브가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후반부 특정 두 인물 간의 갈등을 굳이 묘사한 부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장면이 굳이 있어야 할까? 난 아니라고 본다. 굳이 그렇게까지 장면을 만들지 않아도 그런 느낌은 충분히 줄 수 있다. 근데 굳이 그 장면과 대사를 넣은 이유는 그럴 위치에 있음 안 되는 사람 역시 뒤틀렸을 정도로 한국사회가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닌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정도로 잘했나 싶어
심은경 배우가 1994년생이니까 지금 스물아홉이다. 이 영화 개봉 연도가 2009년이니까 정확히 15살 즈음에 작품을 찍은 것이다. 15살 때 나는 방구석에서 소설책 읽기 바빴는데 이 배우는 극의 설정이 되는 빙의 연기를 해냈다. 또, 영화의 주요 인물인 김보연-문희경-장영남-이창직 배우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 네 명의 배우가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아침 드라마에 자주 나오던 배우들이었다. 특히 문희경 배우는 너무 자주 나와서 얼굴만 봐도 '이렇겠네' 싶을 정도다. 그런데 이 배우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패턴들에서 더 깊은 퍼포먼스가 나온다. 각본의 힘으로만 묘사되기 어려운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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