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1-05 23:23:31
빈 가지 위에 남은 두터운 온기
영화 <룸 넥스트 도어> 리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스스로 가지를 끊어내는 잎새, 마사.
- 마사를 통해 죽음을 알아가는 잉그리드
- 잉그리드가 남긴 온기
- 엔딩 결말 해석
룸 넥스트 도어 (The Room Next Door, 2024)
빈 가지 위에 남은 두터운 온기
개봉일 : 2024.10.23.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07분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 틸다 스윈튼, 줄리안 무어, 존 터투로, 알렉산드로 니볼라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유명 작가인 잉그리드는 친구를 통해 젊은 시절 잡지사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 마사의 암 투병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간다. 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그들이 처음 만났던 젊은 시절엔 상상할 수 없었던 삶과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사의 병은 점점 깊어지고,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죽음의 순간을 함께 해달라’고 부탁한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젊은 시절엔 주로 사랑, 예술을 향한 도발적이고 뜨거운 욕망과 파격적인 여성의 삶을 그리는 감독이었다. 그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욕망, 삶의 뿌리가 되는 어머니와 예술, 고통으로 이야기의 범위를 넓고 깊게 확장해왔다. 이젠 노년의 나이가 된 그가 만든 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부당함과 남성 권력이 넘치는 삶 속에서도 자신만의 싸움을 이어가는 한 여성과 그의 곁을 지킨 따스한 여성에게 바치는 헌시이기도 하다.
이별, 고통 속에서도 다시 삶의 불씨를 찾아냈던 전작들에 비해 <룸 넥스트 도어>는 강렬한 붉은빛과 치열함을 조금 덜어낸 미적지근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흘러간다. 영화의 끝에서 고요하게 마지막을 담아내고 그 뒤에 남겨진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눈은 여느 때보다 영별하고 다정하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스로 가지를 끊어내는 잎새, 마사
의학의 발전, 안정된 사회 등의 이유로 기대수명과 평균 수명 모두 80세가 넘어가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노화와 죽음을 피해 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직 정확히 정의되진 않았지만 우리의 몸은 보통 25세~30세쯤이 되면 노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자라나는 건 길어야 30년, 늙어가는 건 50년. 게다가 낡은 몸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도 버릴 수도 없다니. 살아간다는 건 참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이다.
마사는 이 부당함을 거부한다. 대부분의 사회는 환자에게 스스로 죽을 권리를 주지 않고 심장 또한 주인의 마음에 맞춰 멈춰주지 않는다. 모두가 마사가 죽기보단 병과 싸워 이겨내길 최선을 다하길 바라고 그의 심장은 지나치게 열심히 뛰고 있다. 마사는 암 환자에겐 ‘암과 싸워 이기면 대단한 것, 지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회의 시선이 따라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시선과 튼튼한 심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삶을 마감할 계획을 세운다.
마사는 열려있던 빨간 문을 닫은 후 초록 선베드에 누운 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한다. 그는 가지에서 떨어질 날만을 기다리는 시든 잎새가 되는 것 대신 스스로 몸을 털며 가지를 벗어나는 생생한 잎새가 되길 선택한다. 마사는 원색인 노란색 옷을 차려 입고 스스로 생을 마무리한다. 그 어떤 색을 섞어도 흉내 낼 수 없는, 더 분해하려 해도 분해되지 않는 고유한 샛노란 색의 옷을 입고 말이다. 이 노란색 옷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마사의 확고한 삶과 죽음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평생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전쟁에 뛰어들며 치열하게 살아온 여성 마사는 투병이라는 전쟁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싸우고 병이 할 일을 빼앗으며 끝내 승리를 거머쥔다.
마사를 통해 죽음을 알아가는 잉그리드
처음 카메라에 담긴 마사의 얼굴엔 밝은 빛과 그늘이 반반 공존하고 있다. 마사를 만나러 온 잉그리드는 햇빛 반, 그늘 반으로 구성된 병원 로비로 들어오고 직원의 안내를 따라 그늘진 복도 방향으로 걸어간다. 항상 인생의 밝은 면. ‘삶’만을 생각하며 살던 잉그리드는 그늘 진 복도의 끝에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는 마사를 만나고 그의 죽음을 지켜보며 지금껏 미지의 영역이었던 죽음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간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죽어가고 있기도 하다. 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죽어가는 이인 마사와 집 밖에서 자라나는 푸른 풀이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삶과 죽음도 딱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생명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기 전까진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종군 기자로 일하며 수많은 죽음을 봐온 마사와 다르게 지금껏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없는 잉그리드는 여전히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회피하고 싶어 한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함께 숲속 집에 머물며 죽음을 준비하고 삶을 기대한다. 마사가 삶이라는 빨간 문을 스스로 닫을 준비를 하는 동안 잉그리드는 보색(반대색)인 녹색 스탠드. 즉 죽음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며 죽음이 만든 그늘을 두려워하고 내일도 우리가 살아남길 바란다.
하지만 죽음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찾아오고 잉그리드는 마사의 죽음을 목격한다. 이후 경찰 조사를 마치고 마사의 딸 미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잉그리드는 2층에 올라간다. 삶만을 생각했던 자신이 머물던 1층이 아닌 삶과 죽음을 함께 생각했던 마사가 머물던 2층에. 그리고 그곳에 앉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죽음과 마사를 생각한다.
다음 날 잉그리드는 미셸과 함께 선베드에 누워 마사가 죽음을 결심하며 읊었던 [죽은 사람들]의 구절을 변주하여 읊는다. “눈이 내린다. 네 딸과 내 위로.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그는 열려있는 문 너머와 마사와 똑닮은 젊은 생명인 미셸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자신도 언젠가 마사처럼 죽음에 가까워질 운명임을 받아들인다.
함께 고독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마음
죽음을 앞둔 마사는 고독하다. 치료를 중단한다고 했을 때 미셸은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무심한 반응을 보였고 남편이었던 프레드는 미셸이 어릴 때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제 남은 건 친구들뿐이다. 그래서 마사는 친구들에게 ‘죽음의 순간을 함께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자주 왕래했던 친구들은 모두 그의 부탁을 거절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남에 가까웠던 잉그리드만이 마사와 함께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잉그리드는 왜 자신이 마사의 부탁을 수락했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숲 속집에 머물면서도 매일 마사가 죽지 않길 바랐고 생판 모르는 트레이너 앞에서 죽어가는 친구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왜 부탁을 들어주었냐는 데이미언의 질문에 그럴싸한 답변을 하지도 못하고 스스로도 마사와 자신이 ‘죽음을 함께할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잉그리드는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이 마사의 손을 잡고 그의 옆자리에 누워 잠을 청한다. 마사는 옆자리에 누운 잉그리드의 기척을 느끼며 슬쩍 웃어 보인다. 아무 조건 없이 누군가의 고독을 함께 바라보고 그것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마음. 그 마음이 남기는 온기는 가히 두텁고 따뜻하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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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유체이탈
12시간마다 몸이 바뀐다면 어떨까요?
여기, 주인공은 자신이 모르는 몸으로 변하면서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신박한 스토리 소재와 화려한 액션이 돋보였던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 유체이탈자
그럼, 영화 유체이탈자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액션, 스릴러, 미스터리, 판타지, 느와르, 범죄, 드라마
감독 / 각본 : 윤재근
출연진 : 윤계상, 박용우, 임지연
개봉일 : 2021년 11월 24일
평점 : 7.50
스트리밍 : tvN , NETFLIX, 쿠팡
기획 의도
"누가 진짜 나인지 모르겠어요"
교통사고 현장에서 눈을 뜬 한 남자.
거울에 비친 낯선 얼굴과 이름,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 바뀌었어, 낮에도 바뀌더니 밤에도 또"
잠시 후, 또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난 남자.
그는 12시간마다 몸이 바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시작한다.
그가 12시간마다 몸이 바뀌었던 사람들,
가는 곳마다 나타나는 의문의 여자까지,
그리고, 이들이 쫓고 있는 한 남자,
진짜 나를 찾기 위한 본능적 액션이 시작된다.
여담
영화 유체이탈자는 초반 신선한 설정을 잘 나타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이다.
영화는 원래 2020년 개봉 예정이었으나,
1년 후인 2021년도에 개봉되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유체이탈자 결말
강인아(윤계상)은 메인 빌런인 박실장(박용우)의
거래 정황을 포착해 검거 예정이었으나,
이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약이 터지면서
이안의 몸에 들어가게 되면서 사건이 발생된다.
여기저기 몸이 바뀐 이안의 진짜 몸은
병원에 있었고, 백상사가 숨을 거두게 되자
그의 영혼이 진짜 몸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영화 유체이탈자의 초반 이야기 스토리와
짜임새와 연출 능력은 아주 좋았지만,
갈수록 아쉬운 스토리가 맘에 걸린다.
연진이로 아직도 핫한 인물
임지연의 또다른 연기력을 볼 수 있는 영화
윤계상의 1인 7역이라고 해도 아쉬울 게 없었던
영화 유체이탈자, 킬링타임 영화로 딱 좋은
영화라 추천드리고 싶다.
한줄평 : 화려한 액션과 연출력이 매력적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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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 되는 게 무섭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전화기. 컴퓨터. 팩스. 모니터. 프린터. 우리 집이나 회사에서 쓰는 기계는 아주 많다. 작게는 스마트폰 충전기도 있고 좌변기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특히 컴퓨터로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게임도 할 수 있고, 지금의 나처럼 글도 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으로도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영상을 볼 수도 있고, 전화도 할 수 있으며 카카오톡도 할 수 있다. 프린터는 또 얼마큼 중요해? 우리 일상의 중요한 문서들을 뽑으려면 프린터기가 없으면 말짱 꽝이다. 발달한 현대문명 덕에 우리는 편한 생활을 살고 있다.
근데 이렇게 발달한 현대문명 때문에 많은 문제들에 부딪힌다. 난 감성적인 사람이라 '이거 예쁘다' 싶으면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 얼굴이 보이면 그것이 안 나오게 비스듬히 찍거나 아예 촬영을 안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게 불편한 건 아니다. 모두의 얼굴은 소중하지 않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기 때문에 뭐 귀찮다 말다 할 것도 아니다. '난 이래서 이런 이유가 있어'라고 주장하기보다 타인의 존재부터 인식하는 것이 이 사회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그렇게 누군가의 얼굴을, 또 신체를 찍어 올리는 것이 본능적인 선에서 꺼려지기도 한다. 나만 이렇지는 않겠지?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으니까 유럽에도, 아시아에도, 아프리카에도 이런 특성을 가진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나름 현대문명이 만든 일상 속의 싫지 않은 페널티쯤 되겠지. 당연한 상식이기도 하고. 자.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 이 상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 한 편이 만들어졌다. 이제까지 보기 드물었던 방식으로 우리에게 색다른 이야기를 한다. 한 번 인도네시아로 날아가 보자.
1.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제목이 <복사기>인 것과는 다르게 스마트폰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극 내내 스마트폰이 굉장히 중요한 도구로 쓰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변곡점이 되는 사건이 있는데 이게 스마트폰이 없었으면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의 연극 팀이 흥행에 성공함에 따라 열린 파티다. 주인공 수르는 이 연극팀의 웹사이트 디자인 팀이었다. 팀원들과 파티에서 함께 노는 주인공 수르.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있는 학교의 장학금 심사에 겨우겨우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심사장에 가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당신은 자격에서 탈락했습니다. 왜냐고요? 인스타그램에 술 먹고 노는 사진을 올렸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이다. 근데 이게 그러다 못해 가족들에게 알려지고 수르는 집에서도 쫓겨나게 된다. 그렇게 도망치듯 빠져나와 수르는 베프 아민과 함께 이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나간다. 그리고 영화의 중후반부에 이르러 우리에게 진짜 이 사건의 범인은 누구인지 반문한다.
2. 어떤 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1)에서 쓴 시놉시스를 보면 미스터리/스릴러물로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맞다. 이것은 스릴러 영화가 맞다. 그리고 후반부의 전개를 통해 이 영화가 통념이 만든 혐오와 사회 시스템에 대해 고발하는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생활에서 벌어지는 한 에피소드로 시작해, 근 몇 년간을 관통했던 세계의 핫 토픽으로 결론을 마무리짓는다는 뜻이다. 또한 연대. 통념. 혐오. 억압. 보수성. 빈부격차에 의한 권력 차이. 이런 것들에 의해 꽉 잡혀있는 한 국가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이야기하는 탁월한 작품이기도 하다. 아, 영화 엔딩 크레딧까지 보고 나면 웅장해지는 기분도 느껴질 것이다. 난 감독이 성격이 따뜻한 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3. 난이도가 있는 영화인가요?
사실 장르영화서도 탁월하기 때문에 어렵다거나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배드 지니어스>를 재미있게 본 분들이라면 코드가 맞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 중반부에서 사건의 전말이 역전되기까지 살짝 전개가 루즈한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형식이 좀 해석이 필요한다던가 그렇지는 않다.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큰 구멍은 없으니 무리 없이 볼 수 있을 듯. 지금 극장에서 볼 수 없으니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하는 게 유일한 방법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극장과는 다른 되감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이해하기 쉬울 것 같으니 모바일 시청이 가능한 분들에게 추천한다.
4. 배우들의 연기는 어떤가요?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 언어를 쓰는 나라라고 한다. 난 이 인도네시아를 살면서 처음 들어봤다. 나에게 있어 언어는 영화를 보는데 살짝의 비중이 있다. 한글이나 영어를 쓰는 배우들의 대사는 이해하기가 쉬운데 나머지 영화들은 나에게 있어 몰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난생처음 보는 인도네시아어가 낯설기는 했지만 영화를 보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아. 조연급의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엄청 이질적인 느낌은 아니라서 보는데 역시 이상은 없을 듯. 굳이 저예산이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아도 감독의 연기 디렉팅은 충분히 좋았다.
5. 플롯 외의 부분은 어떤가요?
이게 인도네시아의 아름다운 미장센이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촬영을 한 티가 팍팍 나긴 한다. 메시지, 연기 빼고는 이런 점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듯. 아, 스마트폰의 영화라고 해서 제목 <복사기>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복사기도 나름 핵심 키워드로 작용한다.
6.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없다. 아마 엔딩부의 사건에서 연상되는 몇몇 사건이 있긴 할 것이다. 그런데 그거 굳이 뭐다 설명 안 해도 다들 알고 있잖아? 재미있게 볼 각오만 장전되어 있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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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 체험으로 태어난 다중인격 히어로의 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런던 대영 박물관의 이집트관 기프트샵에서 일하는 온순한 성격의 직원 '스티븐 그랜트(오스카 아이작)'. 이집트학과 고대 이집트의 신전, 그리고 신들에 대해 공부했지만 끝내 박물관 도슨트가 되지 못한 그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스티븐은 갑작스럽게 고대 이집트의 달의 신 ‘콘슈(F. 머레이 에이브러햄)’를 만나고, 그로부터 또 다른 자아이자 콘슈의 명령을 따라 그의 아바타인 ‘문나이트’로 활동해 온 '마크 스펙터'의 존재를 깨닫는다. 자신에게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있으며 마크와 몸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은 스티븐은 마크의 아내인 '라일라(메이 칼라마위)'의 등장과 함께 죽음의 신 '암미트'의 힘을 빌리려는 빌런 '아서 해로우(에단 호크)'를 막기 위해 이집트로 향한다. 그렇게 마크와 스티븐은 자신의 복잡한 정체성 문제를 풀어감과 동시에 강력한 이집트 신들의 미스터리를 파헤칠 여정에 나선다.
등장한 히어로만 30명을 훌쩍 넘긴 가운데,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 MCU의 새 히어로 '문나이트'가 유달리 큰 관심을 모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다름 아닌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지닌 히어로라는 이유가 커 보인다. 이는 다중인격 연기를 선보인 오스카 아이작의 퍼포먼스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식 억양과 미국식 억양을 자유로이 오갈 뿐만 아니라 불과 몇 초 사이에 전혀 다른 과거를 지닌 두 인격을 오가는 그의 연기는 극의 흡입력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오스카 아이작 연기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작품이 스티븐과 마크의 자아 분열을 다루는 방식이다. 그들의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극적 긴장감을 조성하는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스티븐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초중반부 에피소드에서의 팽팽한 긴장감과 급박한 템포 덕분에 마크의 시점으로 전환되어 스티븐이라는 인격이 탄생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후반부 반전과 그 임팩트가 극대화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콘슈를 만나는 이 모든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니면 그저 마크/스티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를 두고 극 중 등장인물들과 시청자들을 모두 안갯속에 던져 놓는 구성 역시 극에 집중하게 만드는 용도로는 일품이다. 하얀 정신병원 시퀀스처럼.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마크와 스티븐의 서사에 이집트 신화의 요소가 더해졌다는 점이다. 사실 서로 다른 두 인격의 화해를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하나 된 자아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어떤 MCU 작품보다도 종교와 신화의 분위기가 짙은 덕분에 <문나이트>는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개성을 뽐내고 있다. 단순히 이집트 신화의 신들이 등장하고, 피라미드와 왕가의 계곡 등이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은 아니다. <문나이트>는 모든 종교적 체험의 근원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신비 체험'과 마크와 스티븐의 이야기를 연결 짓고 있으며, 이때 이집트 신화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내러티브로서 모든 신비 체험을 상징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종교학자인 윌리엄 제임스에 따르면 인간 의식은 고정불변의 단일체가 아닌 다양한 상태들로 구성된 일련의 ‘흐름’이다. 이때 평상시의 자아가 아닌 변형된 의식 상태에서 인간은 존재의 궁극적 원인, 궁극적 실재, 자신의 참된 본성 등을 체득하는 '신비 체험'을 할 수 있다. 갑작스럽게 신과 같은 존재를 만나거나 그와 하나 되는 경험을 통해 이전까지 알 수 없었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관상 기도, 만트라와 같은 진언 수행 등의 수행법은 자아의 경계를 무너뜨려 또 다른 의식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또 신비 체험으로부터 체험적 앎과 지상적 삶을 연결시키고, 보이는 차원과 보이지 않는 차원의 관계를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마크와 스티븐의 경험은 그 자체로 신비 체험이자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와 신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스티븐의 인격은 수행의 측면을, 콘슈와 직접 만나고 계약을 맺은 후 콘슈의 힘과 갑옷을 얻어 그의 아바타가 된 마크의 인격은 체험의 측면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마크가 입는 슈트와 스티븐이 입는 슈트가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니는 이유다. 특히 스티븐의 풍부한 지식 덕분에 암미트의 무덤을 찾을 수 있고, 콘슈와 하나 되어 수천 년 전의 밤의 모습으로 하늘을 되돌리는 장면은 마크와 스티븐이 콘슈와 한 몸이 되는 신비 체험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마크와 스티븐이 콘슈가 말하는 정의에 동의하여 암미트의 정의를 실천하려는 아서 해로우와 대립하는 것은 신비 체험으로 말미암은 사상적, 이론적 측면을 보여준다. 심판과 죽음의 신인 암미트의 저울을 이용해 세상에서 정의를 이루겠다는 아서 해로우는 사람들의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 있으므로, 모든 악인과 악인이 될 가능성을 지닌 이들을 제거하여 세상에 균형을 가져와야 한다고 믿는다. 반면에 콘슈와 스티븐 그랜트, 마크 스펙터는 모든 사람에게는 미래에 어떤 선택을 내리고 행위를 할지 결정할 자유가 남아있기에, 오직 악행을 저지른 이들에 한해서만 단죄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들의 차이는 "콘슈가 복수의 주먹으로 벌할 때, 사람들은 이미 다친 뒤야. 암미트님은 이걸 너무 잘 알고, 나쁜 행동을 하기 전에 심판을 내려. 악의 근본부터 잘라내시지"라는 해로우의 대사에 집약되어 있다.
또한 마지막 에피소드의 클라이맥스도 문나이트와 아서 해로우의 대결이 단지 히어로 대 빌런의 가치관 대립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신과의 경험으로부터 말미암은 전쟁임을 환기시킨다. 문나이트는 카이로 시민들의 영혼을 일괄적으로 심판하여 암미트의 힘을 강화하려는 해로우 앞을 막아서는데, 이때 이들 뒤에서는 거대해진 콘슈와 암미트 역시 치열하게 싸움을 펼치기 때문이다. 이 혈투의 끝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암미트가 깨어날 기회조차 다시 주면 안 된다며 해로우를 단죄하라는 콘슈의 명령을 스티븐과 마크는 거부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미래를 단정 짓지 않고 그들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악인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상을 스스로 파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본인들도 콘슈로부터 자유의 몸이 된다. 즉, 콘슈와의 만남을 통해 신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천하고, 스스로도 한 단계 성숙해진 인격으로 거듭난다.
이때 마크와 스티븐이 콘슈와 하나 될 뿐만 아니라 현실 너머에 실재하는 저승이라는 초월적 세계를 체험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어릴 적 동생을 잃은 비극에 아파하고, 그로 인해 어머니에게 학대당한 마크. 그는 즐겨 보던 모험 영화의 주인공인 스티븐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해 왔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가 아닌 오시리스의 저승을 마주하며 마크와 스티븐은 마침내 서로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두 인격이 몇십 년 간 이어온 갈등을 끝낸다. 그렇게 그들은 신을 매개로 한, 죽음과도 같은 신비적 체험 안에서 하나 된 존재로 거듭나며 자유로이 두 인격을 오가며 히어로의 역할을 완수한다. 이는 가톨릭의 성녀인 '아빌라의 데레사'가 저서인 <내면의 성>에서 "신의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느라 영혼은 육체를 떠난 듯한 감미로운 죽음"을 겪었고, 신과 하나 되는 체험 이후 "모든 일에 있어 스스로 나아가는 것을 느꼈고, 아무리 일을 많이 하고 고생을 하더라도" 영혼의 본질이 분열되는 일이 없었다고 고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나이트>에서 엿보이는 신비 체험과 종교적 맥락은 단지 종교적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인격을 오가며, 인격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는 스티븐과 마크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구성원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그 정도만 상이할 뿐, 여러 개의 자아가 내재해 있는 ‘멀티 페르소나(Multi Persona)’ 현상을 공통적으로 겪는다.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착용한 가면인 페르소나는 사회가 요구한 도덕, 질서, 의무를 따르기 위해 타인에게 보일 이미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본캐 대신 부캐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볼 수도 있다. 반대로 보면 페르소나는 자신의 본성을 숨기거나 억압하는 기제로, 곧 정신분열의 한 양상을 야기할 수도 있다. 본캐인 마크가 엄마로 대변되는 사회적 질서와 억압으로부터 틈을 내서 부캐인 스티븐을 통해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풀고자 하지만, 그 결과 마크는 자신의 정체성 자체를 잃을 위기에 처하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삶의 목표와 육체를 스티븐에게 빼앗기고, 거울 속에 갇혀서 진정한 자신의 인생이 아닌 삶을 구경하는 처지가 된다.
‘도구적 이성’과 근대 합리주의에 힘입은 물질적 풍요를 향유하면서도 그 피로감에 괴로워하는 현대인들도 마찬가지다. 문수영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빠른 변화 속에서 표면적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사잇 사람'"이고, 이들은 본질적인 '나'와는 다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수많은 자아를 가진 것과 같이 분열된 삶을 산다. 따라서 현대인의 정신분열적 측면에 대한 경각심과 그로 인한 문제 및 해결책도 제시하는 마크와 스티븐의 서사는 신화와 종교의 내러티브를 빌렸을 뿐, 그 본질은 지극히 현대적인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겪은 콘슈와의 합일 경험, 그리고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경험은 통합되어 성숙해진 자아로의 성장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도구일 따름이다. 콘슈라는 신과의 만남 역시 분열된 인격 간의 인식과 소통을 가능케 한 계기일 뿐이다. 그보다 마크와 스티븐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종교적 방식이든 아니든 분열된 자아를 통합해야만 온전히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특히 쿠키영상에 드러난 세 번째 인격인 '제이크'의 존재가 미리 암시하는 장면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나이트>의 액션 시퀀스에서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카메라 워킹과 순간적으로 단절되는 장면 전환 이후 마크와 스티븐이 모두 의식을 잃은 사이 유혈이 낭자해진 싸움의 현장을 비추는 장면을 접할 수 있다. 이처럼 마크, 스티븐, 제이크 사이의 남은 이야기를 암시하는 편집과 연출, 그리고 쿠키영상의 조합은 분열된 인격의 위험성을 드러내기에 매우 효과적이며, 시청자들에게도 서로 다른 인격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과제의 중요성을 귀띔해주는 듯 보인다.
이처럼 <문나이트>의 주제의식과 메시지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의의를 갖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액션이라는 영역에 한해서는 <팔콘과 윈터솔져> 혹은 <호크아이>와 같은 MCU 드라마들처럼 낮은 퀄리티를 보이기 때문이다. 거대해진 몸집으로 콘슈와 암미트가 육박전을 펼치고 있는데, 마치 옛날 괴수물을 보는 것처럼 지나치게 느리고 단순한 주먹싸움 식으로 연출되어 박진감이 부족한 게 대표적이다. 다양한 능력을 구사하는 문나이트, 라일라, 그리고 해로우 간의 액션씬과 교차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다만 이 아쉬움이 매번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연출, 예측 불가능한 스토리, 다른 작품들과의 적은 연계로 인한 낮은 진입장벽이라는 장점보다 크지는 않다. 그래서 단독 드라마로 <문나이트>의 완결성에는 호평이 아깝지 않다.
<이터널스> 개봉 당시 케빈 파이기는 MCU를 현대의 그리스 로마 신화로 만들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그 포부는 진정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대신하겠다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수천 년간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처럼 마블 역시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는 고전이 되어 길고 큰 문화적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의미가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문나이트>의 등장은 케빈 파이기의 포부에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간 MCU에는 다양한 영웅들이 있었다. 사익만 쫓았던 방탕한 인물은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고(아이언맨), 국가의 도구에 불과했던 이는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갔으며(캡틴 아메리카), 타고난 신분과 운명의 무게에 짓눌리던 이(토르)는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찾아 우주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마냥 비장하거나 엄숙하지만은 않은 영웅상은 알렉산더 대왕이 트로이의 성문 앞에 선 아킬레우스를 동경했듯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제각기 삶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 마크와 스티븐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성장 이야기는 분열된 자아 때문에 괴로워하는 현대인들에게 희망이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게 <문나이트>는 수많은 히어로들의 활약상으로 가득 채워진 마블 스튜디오의 로고, 곧 현대의 판테온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문명, 종교, 신화의 시작점에서 과거의 활기와 신선함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 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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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서로의 손을 잡고 벗어나자
SYNOPSIS
1999년, 폭력이 만연하던 종말론의 시대. 무엇 하나 쉽지 않던 그 시절, 어느 여름보다 뜨거웠던 소녀들의 사랑과 친구들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
PROGRAM NOTE
고교 태권도 선수 주영(박수연)에게 그해 여름은 서글프고 찬란하다. ‘정상’여고 태권도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 같이 비정상적이라 세상이 소문대로 멸망이라도 해버렸으면 싶은데, 우연히 만난 예지(이유미)와 사랑에 빠진 다음부터는 자꾸 영원을 꿈꾸게 된다. 세상은 그렇게 두 갈래로 간극을 넓혀 나간다. 한쪽은 폭력과 비리로 얼룩져 있고, 다른 한쪽은 설렘과 애틋함으로 물들어 간다. 영화는 삐삐와 공중전화 같은 소품, 향수를 자극하는 가요 등으로 시대를 다채롭게 재구성하면서 두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는 여성 청소년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나이와 성별, 신분을 이유로 위계를 나누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시스템의 부조리를 목격하는가 하면, 사랑과 우정이 북돋는 용기에 힘입어 이에 저항하고자 나선다. 영화는 사각지대에 내몰린 청소년을 조명하고 체육계 미투 운동을 상기시키는 에피소드를 전개하면서 어른의 역할에도 질문을 던진다. 다만 인물 곁에는 못되고 못난 어른뿐만 아니라, 제 한계를 확인하며 고민에 빠지거나 타인의 감정을 그 자체로 수용해 주는 어른 또한 자리한다. 덕분에 소녀들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경직된 시선에 압도당하지 않고 저마다 소망하는 방향으로 애써 나아간다. 그 길은 미래의 천국보다 현재의 사랑을 기꺼이 택하는 것이기에, 영화는 끝내 반짝이는 순간을 꺼내 보인다. [차한비]
유행은 돌고 돈다. 똑딱이 디카와 DSLR이 ‘보급형’이 된 세상에서 필름 카메라가 아성을 되찾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캠코더가 유행하더니 뉴진스의 <Ditto> 뮤직비디오를 통해 캠코더를 위시한 2000년대 카메라들까지 유행이 돌아왔다. 그래서일까. 1999년은 내가 아직 문화를 향유하기엔 너무 어렸던 나이임에도, 어쩐지 자꾸 대중문화 속에서 소환된 덕분에 기묘한 감각으로 흐릿하게 돌아보게 되는 것은. 대중문화에서 그리운 그 시절로 회고하니 자꾸 그리운 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러는 동안 약간의 위화감이 들었다. 그건 ‘과연 그립기만 한 시절이 맞나?’ 하는 것이었다. 비위가 약했던 어린 날의 나는 그 시절 웬만한 공중화장실이 괴로웠던 것도, 버스 뒷자석이나 페인트 칠해진 벽 위에 수정액 혹은 매직으로 적혀 있던 낙서들이 얼마나 날 서 있었는지도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이 좀더 익숙하던 시대였다. 1999년은 분명 그랬다.
그 시절의 몽글몽글한 감성과, 그 시절의 폭력성을 동시에 재현하는 영화는 그래서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이하 우천사)가 필요했다. 물론 <오징어 게임>으로 이제 그의 연기력 모르는 사람 없게 된 배우 이유미, 담담해 보이는 표정으로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는, 내겐 너무나 ‘믿고 보는’ 배우 박수연에 대한 기대도 한 몫 했다. 그리고 <담쟁이>로 우리에게 찾아왔던 한제이 감독까지. 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영화였다.
영화 미술팀이 얼마나 꼼꼼하게 노력을 기울였는지 느껴진다. 델몬트 유리병, ‘사랑’ 액자, 야광 별, 옥색 가구… 90년대 집의 무드가 물씬 풍겨 나는 곳. 그 집에서 자란 주영(박수연)은 정상여고 태권도부에 속해 있다. 학교명은 올라야 할 ‘정상’을 지향하고자 하지만, 정상에 오르기 위해 비정상을 감내해야만 한다. 방관은 숱하게 일어나고, 심지어 교육을 빙자한 폭력조차 만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벽면에는 “방관도 폭력이다” 혹은 “제3자도 가해자다” 같은 ‘맞는 말’이 적힌 포스터가 잔뜩 붙어있을 뿐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 학대 같은 조건도 “다 하는 건데”라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정하고 청소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어머니가 있음에도, 주영은 그 비정상의 세계를 벗어날 수가 없다. 구조화된 폭력의 세계니까.
거기에 사이렌을 울리며 뚜벅뚜벅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다 주고 싶은 첫사랑, 생각만 해도 행복하고, 같이 있으면 다 아름다운 두 개의 거울 같은 사랑을 외면할 자신이 있는지. 그러나 아직 어린 소녀들의 주변은 부서지기 너무나 쉽다. 세기말의 흉흉한 세계에서는 더더욱.
폭발할 것 같은 세계였던 동시에, 그 폭발을 핑계로 폭력을 숨겨보려는 이들이 있는 세계이기도 했다. 세기말의 흉흉한 소문들과 권위 의식이 뒤섞이는 이상한 세계이기도 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손길들이 작은 삶들을 짓뭉개려 했지만, 세계는 멸망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햇볕이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듯 말랑말랑한 첫사랑의 안온한 온도와, 그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 가장 차가운 세상에서 가장 뜨거워져야 했던 온도까지 하나에 모두 담았다. 그 극명한 온도 차를 오가다 보면 관객은 목도하게 된다.
소녀가 소녀를 구한다는 것을. 거칠고 폭력적이고 꼬여 있는 세상에서. 사랑이든 우정이든 운동이든, 동기가 무엇이든 그들 모두에게 자유롭게 뛰는 체육관 하나가 필요했음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무관하게 지구 종말은 부분적으로 사실이었을지도 모르다. 사랑이 없고, 깨어진, 그 모든 날들이 어쩌면.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다. 수정액으로 여기저기 날 선 낙서가 적혀 있는 세상을 막연하게 거칠다 느꼈던 어린 시절에서, 수정액과 수정 테이프를 섞어 사용하던 학창시절을 지나, 이제는 오래 전 한 개 사둔 수정 테이프가 집 어딘가 굴러다니지만 좀처럼 쓸 일이 없는 그런 날들을 산다.
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준 마음들은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자신을 태워서라도 모든 걸 내어주고 싶은 첫사랑의 애틋함, 가볍고 즐겁지만 그 이상을 분명 간직하고 있는 우정, 같은 상처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스크럼을 짜고 연대할 수 있는 마음. 부디 주영과 예지, 다른 아이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 사랑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서로 손을 잡고 벗어나자. 사랑 없음으로 종말에 이르는 세상을.
2023. 08. 26. 10:30-12:22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4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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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강의 <세이레>
본 글은 시사회 참석 후 씨네랩에서 리뷰 작성을 요청받아 작성한 것.
첫인상은 그저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져 헤드>를 떠올리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많다. 어떤 영화인지도 모르고 신청한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영화에 관련한 정보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포스터를 스크린에 띄워주는 바람에 배우들의 이름과 영화의 분위기만 짐작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상영되는 영화의 정보가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감독의 이름과 배우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여하간 그렇게 만나게 된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한국 공포 영화의 발전 가능성과 한편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영화를 만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혹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은 알겠지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많은 이유가 있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수백 번 읽어야 하고, 생각해야 하며, 대화를 나눠야 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어 본 사람은 영화를 만들 사람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니가 좋아하는 걸 해.” 영화가 끝난 후 기자 한 명이 감독에게 미신을 믿는지 질문을 던졌다. 감독의 대답이 이 영화의 아쉬운 부분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충족시켜 주었다. 감독은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미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관객은 믿음이 갈 턱이 없다. 이 영화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불가사의한 일은 마치 감독이 믿음이 가지 않아서 가려놓은 것처럼 가라앉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미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공포 영화의 새로운 인상을 만들어낸 까닭은 호러 영화의 공식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공식에 충실하다는 의미는 컨벤션의 의미가 아니다. 호러 영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억압”을 다룬다. 나는 공포 호러 영화를 볼 때 억압의 논리가 정당하지 않으면 그 영화는 실패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여하간 <세이레>는 미신이 소재이지만 영화를 끌고 나가는 원동력은 “죄책감”이다. 미신으로 영화를 끌고 가지 못하고 죄책감으로 영화를 끌고 가기에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보다는 밑으로 파고 내려간다는 느낌이 든다.
파고 내려가면서 영화는 종종 다른 길로 새는 듯한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썩은 사과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사과가 영화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라 사족처럼 느껴진다. 겉은 멀쩡하고 속은 썩어있는 사과의 모습이 우진의 모습과도 닮았다는 감독의 대답은 더욱 사족 같다. 이 영화에서 사과가 계속 등장하는 것도 이상할 뿐 아니라 장모의 등장, 건강원 등은 어딘가 영화에 어울리지 못하고 그 주변을 배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부분은 발아되지 못한 씨앗의 느낌을 주는데 이것들만 가지고도 하나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중 단연 으뜸은 죽은 전 여자친구를 쌍둥이로 설정한 것이다. 이 부분은 나름 밀도가 있다. 긴장감도 충분하고 영화를 끌고 가는 원동력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이 설정 자체가 중간에 멈춰버린 느낌이다. 사실 쌍둥이 동생이 우진을 집 안으로 들이는 것과 집 안에서 속옷을 바라보는 이상한 쇼트들은 진전되지 않는다. 이것이 후반부에서 둘의 꿈속 정사 장면으로 이어지기는 하지만 무언가 구멍이 뚫린 느낌이다.
이 정사 장면의 대응 장면은 우진의 마지막 꿈인 것인가. 영화에서 반복되는 악몽의 장면은 굉장히 많다. 마지막 악몽은 그의 아내가 그의 목을 찌르는 것이다. 이것은 죄책감에 대한 징벌적 장면으로 읽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동안의 악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꿈의 개념으로 해석해도 된다고 보았을 때 왜 세영이는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한 걸까. 그러니까 영화는 중요한 죄책감이라는 감정 자체로 영화를 이끌고 가지만 거기에 붙어있는 곁가지들은 영화를 멈춰 세우게 만든다.
그러나 몇 가지 디테일들은 인상적이다. 꿈 장면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도 시시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이유는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점이 존재하고 꿈이 현실보다도 더 우진을 설명해 주는 장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영화에서 지속되는 불길함 또한 지적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세영의 부고 문자를 받는 장면은 문자를 받기 전 줌이 먼저 들어간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줌 인 쇼트. 그러니까 카메라는 뭔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카메라와 편집은 이런 방식으로 불길함을 조성한다. <이레이져 헤드>로 향하는 마지막 쇼트까지 우진과 우진의 아이는 접촉을 했을까? 아직 한 번 본 것이어서 정확하지 않겠지만 접촉이 없다. 우진은 분유를 타기만 할 뿐 아이를 안거나 아이에게 스킨십을 하지 않는다. 감독은 영리하게 우진이 아이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아내가 막는 방식으로 연출한다. 결국 세영이가 유산했다고 했을 때 안도의 한숨은 현재의 아이에게 이어진다. 우진은 아이가 싫다. 그렇다면 그는 왜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게 되었을까? 이 질문이 영화를 위태롭게 만든다. 시사회에서 한 기자가 감독에게 왜 와이프의 말을 안 듣고 장례식에 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난 그 부분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세영이와 헤어진 지 1년 된 설정이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만약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맞다면 현재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는 무엇인가. 영화는 우진이라는 인물을 위태롭게 만든다. 자연 유산이었어도 마치 그가 아이를 유산시키려고 노력했던 뉘앙스를 부여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진의 아이는 우진의 죄책감이 된다. 이것은 이 영화가 영화를 전개시키면서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던 공포를 모두 모아서 마지막 쇼트에 담은 것이 된다. 그렇다, 이제 우진은 평생 이 아이를 키워야 한다. 그가 죽을 때까지.
2022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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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 21세기 최고의 괴수 영화... 가 될 수 있었으나..
서론
2014년 샌프란시스코 사태에 의해 아들을 잃은 엠마 러셀과 마크 러셀 부부는 서로 떨어져 쓸쓸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모나크' 기지에서 테러리스트 집단의 습격으로 인해 엠마와 그녀의 딸 매디슨 러셀이 납치당하게 되고, 괴수와 소통할 수 있는 기계인 '오르카'까지 훔쳐 가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에 마크는 모나크 사람들과 함께 이를 구출하러 가나, 엠마의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얼음 속에 잠들어 있던 괴수인 '킹 기도라'가 깨어나게 되고, 온갖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모나크와 마찬가지로 큰 위협을 감지한 '고질라'는 기도라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자신의 적수를 죽여 괴수의 왕으로 각성하는 이야기를 그린 '몬스터버스'의 3번째 영화다. 일단 굉장히 실망했다. 2019년 최고의 기대작이었음에도 완성도가 너무 낮아서 쓸쓸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 작품이었다.
비주얼과 원작 오마주는 인정!
단점을 말하기 전에 우선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인 비주얼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비주얼만 놓고 보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한참 뛰어넘었을 정도로 압도적인 영상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괴수들 CG는 물론이고, 불을 뿜는 장면이나 날개를 펼치는 장면은 영화의 단점을 잠시나마 가려줬을 정도로 임팩트가 넘치는 시퀀스였다. 거기다 1편과 달리 괴수들의 비중을 굉장히 늘린 덕분에 시종일관 눈이 즐겁고, 원작에 대한 오마주도 빼먹지 않으면서 괴수물 팬들에게는 2시간짜리 선물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필자는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고질라의 오리지널 테마가 흘러나오는 모든 장면들에선 소름이 제대로 돋았고 중반부부터는 몰입해서 봤으니, 재미의 측면에서만큼은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나쁘지 않았고, 엑스트라 괴수들에게도 나름의 특징을 부여하여 개성을 챙겼다는 점도 그나마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라고 본다.
캐릭터 묘사는 최악
그러나 위에 장점들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대목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각본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각본은 '끔찍하다.'라는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그저 괴수들의 액션을 향한 길목일 뿐, 기본적으로 담겨 있어야 할 서사나 심리 묘사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흝고 지나가 버린다. 이 때문에 인물들의 행동에 개연성이나 설득력 따위는 전무하다시피 한다. 특히 이 점이 가장 부각된 엠마는 기도라를 풀어준 이유랍시고 내뱉는 말이 '인간은 병균이야.' 따위의 대사고, 심지어 기도라와 같은 괴수들에 의해 아들을 잃었음에도 왜 엠마가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고 인간을 혐오하게 되었는지를 묘사해 주질 않으니 관객 입장에서는 고구마 100개 정도는 먹은 듯한 답답함이 느껴지게 된다.
괴수 액션마저 엉망일 줄이야...
심지어 이 정도는 양반인 게, 남편 마크는 초반부에 괴수를 끔찍하게 혐오하다가 어떠한 계기도 없이 갑자기 괴수에게 반하질 않나, 메디슨은 본인 아버지가 같이 도망가자고 손을 뻗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머니만 바라보다가 괴수들이 깨어난 걸 보고 '엄마는 괴물이야.' 대사를 내뱉는 등 캐릭터 묘사에 완벽하게 실패했다. 주연 캐릭터가 이 정도니 조연 캐릭터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그저 설명충일 뿐 그 이상의 매력 포인트가 없으니 인간 서사는 굉장히 지루하다. 그렇다면 괴수 액션으로 이 지루함을 해소시켜줘야 하는데, 문제는 이것 또한 제대로 못했다. 그러니까 스케일이 크고, 화려한 장면들이 나오긴 하는데 막상 전투신에 도입하면 시점을 계속 끊어먹어서 괴수들의 깽판을 제대로 즐기기가 힘들다. 개인적으로 이게 이 영화의 최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이 영화를 보러 온 대다수의 관객들은 분명 화끈한 괴수 액션을 기대했을 텐데 결과적으로 그 기대를 처참히 짓밟은 것이니 말이다.
결론
생각 없이 괴수 액션을 보려니 액션신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스토리에 집중하려니 각본이 너무 엉망이고, 배우들을 보려니 캐릭터들이 너무 엉망이고 (특히 샐리 호킨스라는 명배우를 그 따구로 소모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로지 원작 팬들만을 위한 선물세트. 킬링타임 용으로는 적당히 즐길 만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는 없는 졸작이다. 정말 명작이 될 수 있었는데... 너무나 안타까운 작품이었다.
평점: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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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인 캐스팅에도 아쉬움을 남긴 원더랜드 / 눈과 귀가 즐거운 / 로맨틱 드라마 / 탕웨이 박보검 연기는 굿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원더랜드"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 전 재미난 쿠키영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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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위도우를 보고 아쉬움이 더 남는 이유 (블랙위도우 스포 리뷰, 쿠키해석)
#블랙위도우 #나타샤 #호크아이
2021. 07. 10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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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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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마블다운 영화
01:15 나타샤의 마지막
03:47 호크아이가 만약..?
04:33 엔딩크레딧
05:33 걱정되는 세대교체
06:36 아쉬움과 더욱 여운이 남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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