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11 14:01:10
11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청설> 가을에 불어온 로맨스 돌풍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청설>이 기분 좋은 출발을 했습니다. <베놈: 라스트 댄스>를 밀어내고 누적 관객 수 23만 명을 돌파하며 주말 관객 수 1위에 등극하였습니다. 그러나 손익분기점이 약 120만 명이기에 앞으로의 추이가 중요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수능이 끝난 수험생들이 가볍게 보러 오기 좋은 영화인만큼 금주 성적도 기대되고 있습니다.
한편, <베놈: 라스트 댄스>가 주말 관객 수 16만 명, 누적 관객 수 150만 명으로 2위를, <아마존 활명수>가 주말 관객 수 7만 명, 누적 관객 수 52만 명으로 3위를 차지했습니다.

북미에서는 누적 수익 1억 달러를 돌파한 <베놈: 라스트 댄스>가 여전히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2위를 차지한 <The Best Christmas Pageant Ever>는 바바라 로빈슨의 1972년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장난꾸러기 여섯 형제가 교회에 몰래 들어갔다가 마을의 연례 크리스마스 연극의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코미디 배우 피트 홈즈와 앤트맨 출연진 주디 그리어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아트하우스 영화의 명가 A24가 제작하고 휴 그랜트가 출연하는 스릴러 공포영화 <Heretic>이 3위에 올랐습니다. <Heretic>은 잘못된 문을 두드려 사악한 미스터 리드(휴 그랜트)와 마주하게 된 두 젊은 선교사들이 그와의 치명적인 생존 게임에 휘말리며 신앙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이야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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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붐은 이미 시작되었어!
콜드플레이 콘서트를 가는 이들을 영원히 시기하고, 질투하고…
밴드 콜드플레이가 지난 16일부터 내한해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죠!
역시 밴드 붐은 온 것 같습니다.
스크린으로도 우리가 사랑한 락 밴드들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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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역시 짝 찾기와 퇴사
전쟁 같은 사랑
마치 첫 만남에 내 사랑을 찾은 것 같았다. 그냥 일개 변호사였던 렌필드. 비서를 구한다는 누군가의 공고에 이끌리듯 성으로 들어갔다. 도착한 곳은 이유가 무엇인지 어두컴컴하다. 여기요? 주인을 부르는 질문에 남자가 등장한다. 말투가 이상하다. 뭔가 중 2병의 느낌을 풍기는 남자. 알고 보니 중 2병 무드만 품기면 다행이었다. 남자의 정체는 드라큘라였다. 영생과 무한한 능력을 하사 받은 렌필드. 벌레를 먹으면 모든 걸 다 씹어먹는 빌런이 되어 사람의 팔다리 다 뜯어버린다. 이렇게 초자연적인 힘을 그냥 무료로 얻을 리는 없다. 드라큘라와 렌필드가 만나게 된 계기는 직장이다. 그러니까 렌필드가 드라큘라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었던 셈이다. 피를 먹어야만 생을 연장할 수 있던 렌필드. 렌필드는 순수한 체하며 인간의 피를 구해오거나 사냥꾼들을 드라큘라와 때려잡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 일이 떳떳할리는 없다. 도망자 신세인 렌필드. 드라큘라는 별생각 없어 보이지만 렌필드는 이런 삶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저 그만두고 싶습니다!" 용기 내어 드라큘라에게 고백한다. 드라큘라의 대답은 온화했다. "그래. 뭐 그만둘 수도 있지." 바로 정색하는 렌필드. 드라큘라의 대답은 곧바로 차가워진다. "내 힘으로 이 삶을 누리고 있으면서 감히 퇴사?"라는 말로 맞받아친다. 바로 렌필드를 빈사상태로 만드는 드라큘라. 드라큘라는 렌필드를 구워삶기 시작한다. "오직 나만이 너에게 사랑과 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드라큘라. 가스라이팅이 시작됐다.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렌필드의 독립은 좀 멀리 있는 듯하다. 과연 그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거 좀 기다렸어
2주 전인가? <곰돌이 푸 : 피와 꿀>이라는 영화를 봤다. 본 시기가 주말이었고 cgv 공식 어플의 3천 원 할인쿠폰을 적용해서 봤으니 12000원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서 나올 때 엄청 후회했다. 그냥 <리바운드> 볼 걸. 뭐랄까 극장에서 모욕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어떤 이유에서 모욕을 당했을까. 한 35가지의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곰돌이 푸'를 활용한 방식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콘셉트는 인간에게 버림받은 곰돌이 푸와 피글렛이 살육극을 벌이는 내용이다. 퍼블릭 도메인을 패러디해서 영화를 만든 것이다. 단점 중 하나는 이 지점에서 온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 푸, 피글렛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와 반대로 드라큘라와 렌필드를 활용한 이유를 보여주는 편이다. 일단 드라큘라라는 캐릭터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피를 빨아먹어야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렌필드와 드라큘라의 관계를 은유하는 특성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과도 관련이 있다. 영화 초중반부 렌필드에게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 덕에 렌필드는 시각이 넓어지는 성장을 겪게 된다. 이 시퀀스에서 하이라이트처럼 반복되는 대사가 있는데 이 문장도 생각해 보면 영화의 어떤 부분을 반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영화에서 핵심 소재 중 하나인 '나쁜 관계 모임'을 들여다보면 역시 흥미롭다. 이 모임에 소속한 인물들이 빨아 먹히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에서 드라큘라의 속성을 빗대 영화의 갈등구조로 활용한 방식은 그냥 단지 재밌으려고 영화의 핵심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은 영화의 강점으로 칭찬받을만하다.
또 영화에서 드라큘라 원작의 디테일을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점 역시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 앞에서 언급한 <곰돌이 푸 : 피와 꿀>은 그냥 등장인물만 갖다 놓은 수준(일례로 푸와 피글렛이 사람들에 상처받아서 극단까지 간다는 것 자체가 인물들이 지나치게 평면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정도)인데 이 <렌필드>는 다르다. 우선 원작에서 렌필드가 어떤 걸 먹으면 힘을 얻는다. 이는 원작에서도 알 수 있는 속성이다. 그러나 렌필드라는 인물의 특성을 갖고 온 지점이 원작에만 있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직업인 변호사에 대한 것도 다른 창작자가 만든 부분을 갖고 왔다. 게다가 영화에서 중후반부에 제시되는 드라큘라의 목표와 관련된 부분도 다른 작품에서 갖고 온 듯하다. 이렇게 이것들 말고 다른 드라큘라들의 특성을 갖고 와서 오마주한 것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분명한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액션 칭찬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코미디적 요소나 자아 찾기라는 테마가 들어있는 대사들이 아니다. 바로 액션이다. 이 영화에서 액션은 필수적이다. 렌필드가 드라큘라에게 자아를 의탁했다는 콘셉트를 살리려면 당연히 렌필드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묘사해야 한다. 영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쉽다. 캡틴 아메리카는 혈청을 맞고 인간의 운동능력 이상의 것을 가진 인물이다. 그걸 기점으로 빌런을 두들겨 패는 캡틴 아메리카. 뭐 빌런들이 붕 날아가는 것도 그의 파워를 보여주는 방식이겠지만 글쓴이는 살짝 다르게 생각한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처럼 악당들의 팔, 다리를 뽑아버리는 묘사도 그 인물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연출 방식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영화는 이를 그대로 구현한다. 렌필드 역을 맡은 니콜라스 홀트는 그 큰 피지컬을 활용하며 합을 잘 맞춘 액션을 보여준다.
그중 글쓴이가 ‘액션 좋다’라고 느낀 부분은 초반부다. 렌필드가 모임을 참석하고 만난 인연이 있다. 이 인연을 괴롭히는 나쁜 인간들을 혼내주러 간다. 이 장면에서 시각적인 효과나 사운드를 잡은 방식이 경제적이었기 때문에 렌필드라는 인물을 설명하기가 용이해진다. 사실 이 시퀀스보다 좋았던 건 후반부/극후반부에 들어가는 액션이다. 이 장면들은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적인 특성을 잘 활용했다는 느낌이 든다. 렌필드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고, 지형지물을 뜯을 수도 있고, 벌레를 먹기에도 용이하다는 특성은 필연적으로 이곳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이 장소의 특성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인물들을 묘사하는 것에도 강점을 가진다. 니콜라스 홀트가 범주가 넓은 배우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케서방과 아콰피나
이 영화에서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은 당연히 드라큘라다. 원작을 드라큘라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드라큘라라는 역할은 많은 드라마/영화에서 수도 없이 등장했기 때문에 살짝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독이 든 성배 같은 역할을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베테랑이 맡았다는 것은 어느 관점에서 신선하게 느껴진다. 니콜라스 케이지 이 영화에서 연기 정말 잘했다. 이 영화 사실 굉장히 잔인하다. 팔다리 뜯기는 건 기본이고 피가 철철 흐른다. 이는 영화의 스타일을 가로지르는 연출 방식이 된다. 반대로, 영화가 호러영화로서의 특성을 가지는 것은 이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 덕분이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정통파 빌런처럼 연기한다.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잭 니콜슨의 ‘조커’가 생각이 났다. 장난스럽고 익살스럽지만 그만큼 괴기스러운 한 방을 갖고 있는 느낌? 자기 파괴적인 면모를 가졌던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 광기에 사로잡힌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선데이 / 기분 나쁜 느낌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더 배트맨>의 조커, 리들러보다 더 클래식에 가까운 빌런을 연기한 것이다. 실제로도 니콜라스 케이지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쩌면 예상 가능하게 행동한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의 서스펜스를 극대화시키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또 니콜라스 케이지는 이 영화를 받자마자 자기가 할 수 있는 롤을 그대로 이해하고 연기하는 듯하다. 이런 그의 연기는 전작에서도 볼 수 있었다. <피그>에서 보여줬던 1인 캐리를 이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지금 4월이라 속단하긴 이르지만 아마 내년 초 유수의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아콰피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맡아 잘 맞는 옷을 입은 듯 활약한다. 사실 이 아콰피나가 맡은 역도 좀 뻔하다. 뭔가 이 사람의 이면에 무언가가 있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겉으로 센척하는 그런 인물 타입이다. 어찌 보면 장르의 관습에 기댔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전형적인 캐릭터세팅은 영화의 단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아콰피나는 이를 본인만의 화법으로 주파한다. 글쓴이는 이 역할에서 개성을 부여한 방식이 눈빛연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렌필드를 대하는 방식이 점점 변하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 이를 투사한 표정연기가 이야기의 핵심이 될 만큼 영화에서 악센트를 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강강강
뭐 니콜라스 케이지 연기 잘하고 니콜라스 홀트, 아콰피나가 매력적인 데다 영화가 품고 있는 메시지도 건강한 데다 액션까지 잘 뽑아서 적당히 재밌는 영화 같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영화는 잔인한데도 불구하고 팝콘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을 만큼 보기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의 템포가 내내 빠르게 후다닥 진행된다는 점은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한 지점이다. 보면 좀 생략되어 있는 부분도 많고 불필요하게 고어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또 캐릭터들을 사용하는 방식이 살짝 전형적이라는 느낌은 좀 아쉽다. 아이디어가 창의적이었던 것은 맞다. <조커>를 통해 악인의 발생을 탐구해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문제점을 제시했던 것과 유사하게 <렌필드>를 통해 자아 찾기의 의의를 조명한 것이다. 그러나 <렌필드>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메시지만을 표현하기 위해 공장에서 찍은 듯한 느낌이 드는 감이 있다. 왜? 인물들이 다 배우의 이미지에 어느 정도는 의존한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글을 쓰는 시점에서 드라큘라에게 인상 깊던 장면은 있어도 렌필드와 레베카에게 인상 깊던 장면이 뭘까하면 생각이 안 난다. 심지어 이 글을 쓰면서도 아콰피나가 맡은 역을 검색했으니 말이다. 이런 공산품적인 특성은 영화의 후반부 때문에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느 정도 있다. 편의적인 엔딩인 셈이다. 굳이? 싶은 것도 맞지만 영화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을 클리셰에 기대느라 불필요하게 사건을 벌였다는 것이 아쉽다. 영화라는 예술의 한 장르에서 엔딩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엔딩을 너무 상투적으로 만드니 ‘안 그래도 뻔한’ 영화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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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에서 로버트 패틴슨과 만날까?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던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소식인데요!
미국의 에드워드 애쉬튼 작가의 아직 출간되지 않은 <미키7>이라는 제목의 원작소설을
봉준호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하여 영화화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려 주연배우로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테넷>, 그리고 <굿타임> 등으로
세계적으로나 국내팬들에게도 너무 유명하고 올해 상반기 최고 기대작인 <더 배트맨>으로 돌아올
'로버트 패틴슨'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영화 <트와일라잇>
영화 <굿타임>
영화 <테넷>
'물론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100% 확정이 날때까지는 기다려봐야겠지만
봉준호 감독과 로버트 패틴슨의 만남 가능성만으로 많은 영화팬들이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전작인 <옥자>를 제작한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인 플랜B와 영화 <기생충>의 TV시리즈를 공동제작하는
케이트스트리트픽처스컴퍼니,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프로덕션 회사인 오프스크린이 공동제작하고
워너브라더스가 투자/배급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영화의 원작이 될 <미키7> 소설은 미국 현지에서 2월에서 출판될 예정인데,
먼저 지난해에 봉준호 감독은 <미키7>의 원고를 받아봤다고 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원고에 큰 흥미를 보였고, 워너브라더스 경영진과 현재 할리우드의 30대 할리우드 A급 스타들과 미팅을 가졌고,
그 중에서 로버트 패틴슨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키7>소설의 주된 내용은 얼음 행성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파견된 인간 원정대의 복제인간 '미키7'이 주인공인 공상과학 SF장르입니다. '미키7'이 또 다른 복제인간 '미키8'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내용은 물론 다르지만 봉준호 감독의 이전 공상과학 SF장르물인 <설국열차>가 연상되는데요.
그 이유는 <설국열차> 또한 프랑스의 만화 원작을 기반으로 한 SF장르물로 봉준호 감독이 직접 각색을 하고 연출을 했습니다.
그에 따라 원작내용과는 조금 다르게 연출됐죠. <미키7> 또한 봉준호 감독의 이전 각색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원작소설과는 조금 다른 내용으로 전개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봉준호 감독이 원작 소설에 큰 흥미를 보여 제작이 빨리 결정됐다고한만큼 곧 제작확정 소식과
캐스팅 라인업이 결정되어 많은 영화팬들에게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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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생활에 주먹질로 파벌을 나눈다는 일본 영화
타나카 나오코는미츠후지라는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여직원이다. 그 회사에는 3개의 파벌들이 존재한다. 바로안도 슈리파와사타케 사오리파,칸다에츠코파이다. 학창 시절에 주먹 꽤나 썼던 인물들이라 회사 안의 여자들의 세계에서 주목을 받지만 평범한 여직원들은 그들을 피해 다닌다. 한편란이라는 신입 여직원이 들어오게 되자 서열 정리를 하려는 세 파벌들의 대장들이그녀에게 시비를 걸다가 싸움에서 지게 된다. 그 이후로 회사는 평화로운 직장 생활을 겪게 되나톰슨이라는 회사의 깡패들이타나카 나오코를 납치해 자신의 인질로 삼아미츠후지의 최강자란을 부르게 만든다. 하지만란에게 버거웠던 걸까? 란은톰슨의 총무부와 싸우지만 압도적인 힘에 굴복하여 기절하고 만다. 과연타나카 나오코는 앞으로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타나카 나오코와 란은 사실 우연한 계기로 친해지게 된다. 그 이후로 란은 자신보다 약한 타나카 나오코를 지켜준다.
일본 학원물의 요소들을 평범한 회사 생활에 담은 영화!
회사의 여직원들이 세 게의 파벌로 나뉘어 싸움을 한다는 내용인 이 영화는 코미디적인 요소들을 관객들한테 접근하면서 만화처럼 독백을 하는 타나카 나오코의 또 다른 매력도 보여준다. 또한 일본 소년 만화에 나오는 요소들을 더해 관객들에게 보는 재미를 더한다. 딱딱하기만 하던 회사 생활에 여직원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주먹질을 한다는 게 신선하기도 했지만 주인공이 엄청난 싸움 실력을 숨긴 평범한 여직원이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마치 학원물에서 볼 듯한 대사와 중 2병 넘치는 패기를 보며 다소 유치할 수도 있지만 관객들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 일진이나 폭주족들이었던 여직원들을 미화시키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 영화다. 그래서 평소에 학원물을 재미있게 보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할 수 있는 일본 영화이다.
힘을 숨긴 주인공의 싸움 실력이 후반에 드러나는 영화!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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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하고 따뜻하게 꿈틀거리는 관계의 성장통
뉴욕 맨해튼. 도그는 혼자인 게 외롭다. 누군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다른 동물을 보며 부러워한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은 무료하게 반복되고 그럴수록 도그의 외로움도 커진다. 여느 때처럼 소파에 늘어져 TV를 보던 어느 날이었다. TV에 반려 로봇 광고가 나오고, 도그는 홀린 듯 로봇을 주문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주문한 로봇은 도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만 같다. 둘은 함께 산책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며 차곡차곡 우정을 쌓아 나간다. 그럴수록 둘의 행복도 함께 커진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바닷가로 향한다. 역시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뜻밖의 사고가 생긴다. 바닷물이 로봇의 몸을 굳게 만든다. 도그는 하는 수 없이 내일 다시 와 녹이 슬어 움직이지 못하는 로봇을 데려가기로 한다. 하지만 다음 날 다시 찾은 해변은 폐장 안내와 함께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다. 도그는 몰래 해변 진입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경찰에게 가로막히고, 로봇을 되찾기 위해 시에 민원을 넣어보지만 끝내 출입을 반려당한다. 몇 개월 동안 둘은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
둘은 몸과 마음을 다해 서로를 무한히 그리워한다. 기분 좋게 재회하는 꿈, 어렵게 찾아갔더니 버림받는 꿈……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와 원치 않는 이별을 했을 때 겪을 법한 감정의 파고가 이어진다. 아기자기한 작화에 담긴 감정의 크기가 만만치 않다. 이 '부조화'가 오히려 이별의 아픔을 증폭한다. 원치 않는 우정의 단절이 주는 감정으로 힘든 시간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자칫 이야기가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만큼 섬세하게 도그와 로봇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좇는다.
영화는 누군가를 간직하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네가 없더라도 삶은 어떻게든 이어진다. 그러나 결코 이전과는 같을 수 없다. 일상의 모든 곳에서 너의 흔적을 떠올린다. 공연히 빈자리를 그리워한다. 심지어는 네가 없다는 데 화가 나기도 한다. 새로운 관계를 꾸려 또 다른 행복을 만끽하는 순간에도 불현듯 옛 기억과 현재가 겹친다는 자각에 움찔할 때도 있다. 요컨대,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겠지만 그 모든 것에는 너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길고 긴 그리움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로봇은 도그를 찾는다. 둘은 이전처럼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서로를 그리워한 이들의 마음은 어떻게 연결되고 이어질까?
대사 하나 없이 감정을 차곡히 쌓아 올리는 영화는 깜짝 놀랄 만한 결말로 나아간다. 아마도 영화의 메시지를 더 강렬하기 부각하기 위한 선택인 듯하다. 아니,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꽤 여운이 남는 결말이다.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봄 직한, 그로 인해 조금은 더 성숙해졌을 관계의 성장통이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금 꿈틀거린다. 비인간 존재들이 주인공이라 그런지 때로는 잔혹하기도 한 인간관계의 또 다른 측면은 잠시 잊게 된다. 그저 따뜻하고 다정한 우정이라는, 어쩌면 판타지일지도 모르는 관계에 몰입하게 된다.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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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로 열리는 제안
<콘클라베(Conclave)>(2024, 에드워드 버거)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 올해 3월에 완성한 글
“우리의 확신 사이에” 있는 것
의심을 선택한 사람들
로렌스의 가쁜 숨소리가 들린다. 뒤이어 화면이 들어온다. 한밤중의 도로변, 굽은 등과 가방을 쥔 손이 보인다. 바쁜 걸음, 숨소리와 자동차의 소음은 불협화음을 이룬다. 엘리베이터에 이르자 카메라는 모자를 꽉 쥔 손을 클로즈업한다. 다다른 곳은 교황의 방, 로렌스는 교황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 왔다. 엄숙한 추기경들의 표정에 얹히는 것은 긴박한 연주곡이다. 화면은 탁하고 어둡다. 교황의 반지를 가르거나 시신을 다루는 행위는 음악의 박자에 맞춰 짧은 클로즈업들로 흐른다. 랩핑된 채 흔들리는 시신 위로 타이틀이 오버랩된다. <콘클라베>의 오프닝은 각종 수단을 동원해 스릴러의 톤을 설정한다. “이제 교황의 자리는 공석”이라는 트랑블레의 발단 선언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로렌스의 얼굴은, 그중 이질적이다. 그에게 드리워진 이질감/어긋남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실마리가 된다.
대부분 실질적 로멜리(영화의 로렌스)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로버트 해리스의 원작을 <콘클라베>가 영상화하는 방법은 은유와 관찰이다. 카메라는 로렌스의 눈이 돼주기보단 그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와중 주위 배경과 인물을 우회한다. 로렌스가 자신의 의중과 콘클라베를 바라보는 시선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짐작한다. “기도에 어려움을 겪는” 그는 잘 열리지 않는 지퍼백에 화풀이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 잠들어 버린다. 내면의 불신과 불안은 그가 시선을 외부로 돌려 ‘사소해 보이는’ 것에 질문을 던지도록 돕는다. 추기경 단장인 로렌스는 어떤 면에서 자발적으로 고립된다. 그 신호들은 물리적으로 혼자 있을 때만 나타나지 않는다. 로렌스의 연설이 끝나자 마치 그와 적대하듯 앉아 있는 추기경들의 군상이 효과음과 함께 내려앉는다. 아데예미나 트랑블레의 방에서 대화를 나눈 후, 영화는 방 구조를 이용해 안쪽에 있는 상대방을 가리고 문간에 선 로렌스만이 보이도록 촬영한 숏을 끼워넣는다. ‘편’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신 매초의 감각을 흡수해 유동하는 자, 로렌스에겐 동료들과 거리를 두고 사고할 시공간이 필요하다.
로렌스가 옷깃을 잡은 테데스코의 손을 뿌리치거나 베니테스를 향해 박수를 보내는 장면에서 프레임은 손이 보이지 않도록 잘려 있다. 카메라가 찍고 있는 것은 행위가 아닌 안면의 진동, (어느 쪽으로건)흔들리는 심리의 노출이다. 예상치 못한 사건의 연속으로 진행되는 스릴러지만 효과적인 서스펜스와 쇼크 전달은 사실 주목적이 아니다. 영화는 비밀을 수면 위로 올려 사건으로 다루는 주체, 로렌스의 태도와 심리 변화에 주목한다. 이 ‘주체’는 뚜렷한 욕망과 목표를 가지고 성큼성큼 걷는 대신 짙은 안개를 더듬으며 힘겹게 나아간다. 의심을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는 “조종사”(-벨리니), 그의 선택들은 확신할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
거리를 두는 자는 로렌스만이 아니다. 콘클라베의 선장이 태운 낯선 자- 영화는 추기경 떼숏을 촬영하며 첫 등장처럼 홀로 동떨어져 있는 베니테스를 놓치지 않는다. 의중 결정 추기경으로 막 로마에 도착한 그의 상황에 맞는 자연스러운 배치다. 허나 유력 후보를 논하거나 편을 갈라 선거운동을 하고 소문을 부풀리는 정치적 움직임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제스처이기도 하다. 그의 이질성은 비자발성과 자발성을 모두 내포한다.
원작이 그러했듯 영화는 추기경들의 권력다툼과 뒤이어 드러나는 트랑블레의 비리를 중심에 두고 서스펜스를 구성하는 와중, 베니테스의 ‘컨디션’에 관한 정보를 복선으로 끼워 두었다. 지나가듯 꾸준히 언급되던 미스터리의 정체는 갈등이 전부 해소되었다고 여겨질 무렵 새로운 사건의 발단처럼 공개된다. 그러나 이 ‘갈등’/미스터리는 밝혀지더라도 해소되지 않는 것, 아니 해소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분열된 추기경들을 한데 모으는 영웅으로 보였던 그의 교황 선출은 기성 정치의 통합 성공보다는 그 해체의 시작이고 의도치 않은 반역이다. 로렌스가 확신을 지양하고자 하는 이라면, 베니테스는 그 자신의 말대로 “사람들의 확신 사이에 존재하는” 이다. 인터섹스인 그의 몸은 여성/남성으로 성별을 구분하는 '확신의 과학' 사이에 있다. 서구권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같은 수준의 의료 혜택을 받지 못했기에 신체를 규범에 끼워 맞추는 수술도 받지 않았다. 또한 그는 남아를 선호하는 문화권에서 태어나 남자아이로 길러졌기에 성직자가 될 수 있었다. 소외된 환경이 그가 비규범에 비규범이 얹힌(확신의 성별이분법과 종교의 확신-관습을 깨는) 형상이 되도록 이끈 것이다. 저도모르게 틈새의 몸이 된 그는 교회가 아닌 가치를 따라 종교인의 길을 걸으며 전쟁(:거듭된 확신의 극단적 결과) 피해 여성들을 도왔다. 그가 틈새를 어루만지는 데에 종교를 ‘사용해 온’ 과정에는 선택이 포함된다. 전 교황이 그를 대주교로 임명한 것 역시 선택이고 로렌스가 그를 선거인단에서 배제하지 않은 것도 작은 선택이다. 몸과 정체성, 사명에 관해 오랜 세월 끊임없이 고민/의심했고 끝에 “나는 신이 만드신 그대로”라고 여기게 되었다. 베니테스는 스스로를 ‘남성’/‘여성’으로 확언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낡고 거대한 가부장제”(-피터 스트로겐, [Deadline])를 유지해 온 가톨릭 교회 내에서 노동은 하지만 발언권은 없는 여성들의 지위를 재정립해야 하지 않겠냐고 묻는 <콘클라베>는, ‘여성과 남성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아이디어까지 담고 있다.
모든 성sex과 모든 언어를 인식하는
바깥과 연결되는 정치
영화는 여러 언어들을 등장시키며 그것들이 평등하게 취급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테데스코는 일관되게 이탈리아어를 쓰며 라틴어 사용을 주장하고, 그와 로렌스의 대화는 영어도 섞이나 대개 이탈리아어로 이루어진다. 로렌스와 베니테스의 대화는 영어로 이루어지고, (아마도)나이지리아어는 아데예미와 샤누미가 방에서 언쟁할 때만 뭉개져 들릴 뿐이다. 그러나 로렌스의 연설은 그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시작할 무렵 영어로 바뀐다. 베니테스의 식전기도와 연설은 영어로 주의를 환기한 후 스페인어로 전환된다. 그 전환과 함께 작품은 핵심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발화한다. 일부에게 맞춰 구성된 기준에서 탈락되고 소외된 것들을 복기해야 한다고 -자신의 제1언어first language로 먹고 마시지 못하는 이들을 상기시키고 수녀들의 노고를 기리는 베니테스를 통해-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서구의 식민지배가 앗아간 언어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분열된 모든 언어는 들려야 한다. 베니테스가 마법같은 일치를 획득한 듯 보임에도, 원작에 적힌 투표 결과는 만장일치가 아니었다. 영화에도 새 교황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거나 기꺼워하지 않는 인물들이 있다. ‘라틴어로 하나되기’ 식의 통합은 위험한 환상이다. 그의 ‘정체’가 알려진다면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테다. 베니테스는 비난을 걱정하는 대신 “신이 주신 내 몸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서로 엇갈리고 충돌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뭉뚱그리지 않고) 계속해서 조율하며 새로운 가치를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가 할 일이 아닌가. 이슬람을 악마화하는 테데스코의 연설을 듣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벨리니처럼 손가락질하는 것보다는, 베니테스처럼 외부로 시야를 넓히며 설득을 시도하는 행위가, <콘클라베>가 지향하는 정치에 가깝지 않을까.
그 정치가 인식하고 요구하는 행위자는 발언권을 쥔 이들만이 아니다. 영화는 로렌스 외에 한 명의 관찰자-화자를 더했다. 아그네스다. 오프닝에서 첫 번째 시선인 로렌스가 소개된 후, 콘클라베 당일 아침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아그네스가 보여지며 두 번째 시선이 소개됐다. 로렌스에 비해 비중은 훨씬 적지만 그의 관점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와 더불어 가시화되는 바는 수녀들의 구체적인 노동이다. 로렌스가 실패한 복사를 아그네스가 해주는 장면은 묵언의 지지를 나타낼 뿐 아니라, 수녀들의 노동 없이는 추기경들의 ‘중요한 업무’ 수행도 불가능함을 상징한다. 앞서 샤누미와 로렌스가 대화하지 못하게 막았던 아그네스가 언성을 높여 트랑블레를 폭로하는 것 역시 로렌스에 대한 동의 이상을 의미한다. 베니테스의 식사 기도를 듣고 미소짓는 얼굴이나 로렌스의 연설을 듣는 얼굴, 교황의 방 문 봉인이 깨진 것을 보고 긴장하는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등, 영화는 아그네스의 마음이 움직이는 찰나에 주목했다. 그것들이 모여 ‘으레 그렇게 해 왔던 것’에 대한 의심으로 형상화된 순간, 목소리가 삭제되었던 존재가 침묵의 봉인을 깨는 장면을 <콘클라베>는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투표권이 없는 그의 선택은 투표에 영향을 미친다.
베니테스는 ‘예상 밖이지만 예정되어 있던’ 리더의 재목이나 초월한/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의 득표는 느닷없는 우연이나 종교적 계시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권력다툼으로 얼룩진 콘클라베를 지나는 동안- 목격하고 감각한 것들이 쌓이고 베니테스의 연설에 다다라 낳은 결과다. 신의 호통처럼 연출된 폭발은 추기경들을 바깥 세상과 연결되게 했다. 교회는(정치는) 전통에 매몰되고 바티칸에 밀폐되어서는 안된다. 세상의 바람wind/hope을 느끼며 내일을 바라보고 현재를 어루만져야 한다. 뚫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 추기경들은 그것을 감지하고 종이에 이름을 적었다.
‘무결’한 교황의 탄생은 검은 우산이 흰 우산이 되는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허나 <콘클라베>는 잘 짜인 연극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영화가 살짝 바꾸고 추가한 엔딩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일단 원작은, 교황으로 선출된 베니테스와 독대를 마친 로멜리에게서 시선을 빼앗는다. 전통의례를 거부하고 추기경들 각자와 악수하는 “인노켄티우스 14세”와, 그의 온화함에 경쟁자들이 안도하고 테데스코마저 떨떠름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전지적 작가가 묘사한다. 로멜리의 위치에선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를 “볼 수가 없었다”. 멀리서 함성이 들려올 따름이다. 세밀하게 내면을 서술하며 아끼던 주인공을 그 지점에 내버려둔 채로, 로버트 해리스는 오말리가 연통에 불을 지피듯 독자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려는 것 같았다.
영화는 또 하나의 확신이 깨진 로렌스의 성찰을 관찰한다. 눈물의 방을 나온 그는 멍하니 앉아 있다. 홀을 가로지르는 거북이 보인다. 거북을 들고 ‘밖으로 나간’ 로렌스의 귀에 거대한 함성이 들린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가 덧붙인,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엔딩이 이어진다. 로렌스의 방, 침대에 앉아 있는 그는 홀가분하고 허탈해 보인다. 닫혀 있던 덧창이 올라가고 빛이 들어온다. 로렌스는 창밖을 내다본다. 수녀 셋이 문을 열고 나와 대화를 나누며 광장을 건너 화면을 나간다. 바티칸의 가장 ‘낮은’, 자주 비가시화되는 곳을 응시하며, 아래에서 위로 퍼져나가는 목소리를 로렌스는 들었을 것이다. 그에게 미래의 방향을 보여주고 거기 포함시키며, 영화는 관객에게 화면 바깥을 의식할 것을 주문한다. <콘클라베>의 끝에는 연극무대와 함께 닫히는 선명한 판타지보단 현실로 열리는 모호한 제안이 있다. (신을 믿든 아니든) 관객이 기억해야 할 것은 로렌스와 베니테스의 여정과 태도, 그리고 같은 쪽을 바라보는 듯했던 그들이 충돌했을 때 이루어지는 대화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로렌스의 태도다. 피터 스트로겐의 말대로 “양극화된 세계”[Deadline]다. <소셜 딜레마>(2020)가 우려했고 <시빌 워>(2023)가 상상-경고한 내전을 (분명 미국의 특수성이 있지만) 미국에 한정된 이야기로 넘겨도 되는가. 이러한 시대에 의심의 태도를 제안하는, <콘클라베>는 소중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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