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13 19:36:22
11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고레에다 히로카즈 연출, 넷플릭스 시리즈 <아수라처럼> 포스터 공개

국내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이 제작 참여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아수라처럼>의 포스터와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본 시리즈는 2025년 1월 9일에 공개 예정이며, 7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수라처럼>은 이전에 방영되었던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1979년에 방영된 가족 드라마 시리즈의 현대판으로, 무코다 구니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해당 소설은 지난 2003년 장편 영화로 각색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수라처럼>에는 미야자와 리에, 오노 마치고, 아오이 유우, 히로세 스즈가 출연하며 19979년 도쿄,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네 자매가 노년인 아버지의 불륜을 알게 된 후 겪게 되는 사건들을 그립니다.
데이지 리들리, <스타워즈> 시리즈 복귀 예정

데이지 리들리가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에 복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향후 제작될 스타워즈 시리즈 중, 에피소드 X, XI, XII로 구성 예정인 사이먼 킨버그의 3부작과 샤민 오바이드 차노이가 연출하는 프로젝트에 핵심적인 역할로 등장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THR은 루카스필름이 레이를 “프랜차이즈의 다음 단계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사이먼 킨버그와 샤르민 오바이드-치노이의 프로젝트 외에도, 루카스필름은 제임스 맨골드, 데이브 필로니, 도널드 글로버, 타이카 와이티티, 라이언 존슨, 션 레비, 패티 젠킨스 감독이 참여하는 최소 7편의 스타워즈 영화를 개발 중입니다.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시간표 공개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가 상영 시간표 공개 일정을 알렸습니다.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에서 오는 15일 금요일 18시에 상영 시간표가 공개됩니다.
올해 50주년을 맞은 서울독립영화제는 풍성한 라인업을 자랑합니다. 부산국제영화상 4관왕을 휩쓴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차지한 조세영 감독의 <K-Number> 등 현재 주목받는 감독의 영화들이 상영됩니다. 또한 16mm 프린트가 유실되어 필름 디지털화 포맷으로 상영하지 못하고 있던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가 디지털화 버전으로 최초 공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홍경, 오경화, 노재원 등 이제는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들이 거쳐 간 ‘배우프로젝트’, 독립영화 감독과 배급사를 연결해 주는 ‘넥스트 링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미션 임파서블 8> 첫 예고편 공개
미션 임파서블 8의 첫 번째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이번 신작의 제목은 <Mission: Impossible — The Final Reckoning>으로 2025년 5월 23일에 북미 개봉 예정입니다.
18개월간의 긴 제작 기간과 여러 차례 지연되어 제작비가 4억 달러에 가까워졌다는 소식으로 시리즈의 위기가 거론되었던 가운데, 마지막 ‘무비 스타’라고 불리는 톰 크루즈가 과연 이번에도 큰 성공을 거둘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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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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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교섭>, 1월 18일 개봉 확정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의 신작이자 황정민과 현빈의 첫 동반 주연 영화 <교섭>이
2023년 1월 18일 개봉을 확정했다. <교섭>은 최악의 피랍사건으로 탈레반의 인질이
된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 외교관과 현지 국정원 요원의 교섭
작전을 그린 영화이다.
전종서, <웨딩 임파서블> 긍정 검토 중
ⓒ 네이버 영화
<웨딩임파서블>은 동성애자인 재벌 후계자와 위장 결혼을 준비 중인 무명 여배우, 그리고 그 꼴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야망덩어리 예비 시동생이 만나며 벌어지는 욕망 충돌 결혼 반대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이다. 전종서 배우는 극중 무명의 단역 배우 오다정을 연기한다.
<이두나!>, 수지·양세종 출연 확정
ⓒ 매니지먼트 숲, 블러썸 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에서 시리즈 <이두나!> 제작 더불어 배우 수지와 양세종의 출연을 공식화하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이두나!>는 평범한 대학생 원준이 셰어하우스에서 화려한 K-POP 아이돌 시절을 뒤로하고
은퇴한 두나를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드라마다. 동명의 원작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해외
<퀸카로 살아남는 법>, 뮤지컬 영화로 제작
ⓒ 네이버 영화
하이틴 영화의 대표작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뮤지컬 영화로 새롭게 제작된다고 한다. 영화에는
앵거리 라이스, 아울리이 크라발리오, 르네 랩, 자켈 스피베이를 비롯한 배우진들이 참여한다.
테일러 스위프트, 장편 영화 감독 데뷔 예정
ⓒ 네이버 영화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영화사 서치라이트픽처스와 함께 장편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지난 11월, 자신의 노래 'All Too Well(10 Minute Version)'을 배경으로
단편 영화 <All Too Well: The Short Film>을 직접 집필 및 감독하며 인기를 끌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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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이야기로 현재의 문제를 살펴보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논문을 쓰던 대학원생 무렵 논문 심사가 끝나고 보상으로 영화관에 가서 본 작품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었다. 여성 캐릭터 3명이 메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 끌려서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기대가 조금 컸기에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정말 오래간만에 영화관에서 눈물 흘리며 보고 나온 작품이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시놉시스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우먼” 1995년, 토익 600점만 넘기면 대리가 될 수 있다! 입사 8년차 동기인 말단 여직원들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모였다. 실무 능력 퍼펙트, 현실은 커피 타기 달인인 생산관리3부 오지랖 ‘이자영’과 추리소설 마니아로 뼈 때리는 멘트의 달인 마케팅부 돌직구 ‘정유나'. 그리고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 실체는 가짜 영수증 메꾸기 달인 회계부 수학왕 ‘심보람’은 대리가 되면 진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푼다.
내부고발이라도 하게? 나서지 마. 우리만 다쳐. 잔심부름을 하러 간 공장에서 검은 폐수가 유출되는 것을 목격한 ‘자영’은 ‘유나’, ‘보람’과 함께 회사가 무엇을 감추고자 하는지, 결정적 증거를 찾으려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 세 친구는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아이 캔 두 잇, 유 캔 두 잇, 위 캔 두 잇! 회사와 맞짱 뜨는 용감한 세 친구의 이야기다.
성장주의와 그림자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사는 '오늘의 너는 어제의 너보다 성장했어!' 이다. 마케팅팀 부장이 팀원들을 독려할 때 자주 사용하는 대사였다. 이 대사처럼 영화는 성장과 발전만이 대한민국이 살 길이라는 신념 아래 경제 부흥을 일궜던 1980, 90년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칠흙같은 어둠도 같이 있다는 것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우연하게, 한 순간의 실수로 페놀이 유출되었고, 이를 알아차렸지만 성장에 방해되는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덮어버리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성장에 중동되어 점차 곪아가는 부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그래서 결국 절단을 할 지경이 되어서야 후회를 하고 수습에 나서는 모습을 통해 비뚤어진 성장주의를 잘 드러낸 작품이었다.
연대의 힘을 보여주다1980, 90년대의 비뚤어진 성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이 영화는 현 시점에도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작품이었다. 현대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주의를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연대의 힘을 굉장히 강조하는 작품이다. 힘이 잆는 말단 직원 한 사람이 회사를 구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사람들이 여러명 모여서 힘을 합치면 권력과 자본 앞에서도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어쩌면 조금은 판타지적이지만 연대의 힘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이러한 연대 속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너무나도 개인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연대의 힘을 활용해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확장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워라벨의 의미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대사가 있었다. '내가 일하는 회사가 조금 더 좋은 일을 하는 곳이었으면 좋겠어.' 이자영이 사람들을 규합하는 장면에서 했던 대사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다. 어떤 사람도 나쁜 일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이자영은 그래서 자신이 회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자아실현을 회사와 함께 이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이 장면을 통해서 워라벨이 무엇일까?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조금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직장과 일상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워라벨은 그 이면에 직장은 '스트레스를 받는 공간',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돈을 버는 곳'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일상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직장에서 번 돈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시간을 의미한다. 워라벨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의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필자 역시 그렇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이자영의 모습을 보면서 하루에 최소 8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는 삶의 풍요를 느낄 수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라벨이라는 이분법적인 분리 때문에 직장 생활에 대한 회의감을 더욱 조성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내 삶의 풍요를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같이 일궈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학천재 보람에게 부장에 항상 하는 말이었던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라는 말이 회사 때려치우고 너 하고 싶은대로 살아라가 아니라 회사든 일상이든 내가 위치한 소속에서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살라는 말로 필자에게는 다가왔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유쾌하게 웃으러 영화관에 갔다가 감동을 받고, 사회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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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성범죄를 다루는 윤리적인 방식
6월 15일,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가 시작되었다. 신도림 테크노마트는 여전히 조용하지만 12층 씨네큐는 제법 소란했다. 어린이영화제인만큼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영화관에서 오랜만에 어린이들을 많이 봤다.
앞서 <키즈 크리에이티브2>를 관람하고 나와 라운지에 앉아 있었는데, 대략 스무 명쯤 되어 보이는 초등학생들이 엘리베이터에서 우르르 내렸다. 어린이영화제에 어린이가 참여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임에도, 어른 사회에 절여진 탓인지 '이 어린이들이 무슨 영화를 보는 거지, 나랑 같은 영화는 아니겠지' 등의 생각을 잠시 했더랬다. 그러고서 아, 이건 어린이영화제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 어린이혐오를 했구나 싶었다.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노 키즈 존'이 만연한 이 땅에서, '예스 어린이 존'을 표방한다. 우리는 어린이가 어른보다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하다고 해서 얼마나 이들을 보잘것없는 존재로 치부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는 내가 가는 카페, 영화관, 식당에 와서는 안 되지만, 뭔가를 잘하지 못하는 나는 스스로 '0린이'라고 부르는, 모순적이고 자기애적인 어른들도 이제는 좀 성장해야 할 때이다.
<오팔>은 카리브해 출신의 알랭 디바르 감독이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러닝타임이 85분으로, 길지도 짧지도 않다. 영화의 배경은 카리브해처럼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왕국이다. 왕국은 마법으로 유지되는데, 마법의 근원은 공주 '오팔'에게 있다. 오팔이 행복하면 마법의 기운도 세지고, 불행하면 마법의 기운이 약해진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꽃들이 시들시들 죽어간다. 세계를 관장하는 신, 이로코는 마법의 힘이 약해진 것은 공주에게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주는 성에 갇혀 있다. 누구든 들어올 수 있지만, 나가는 것은 열쇠를 가진 자만 가능하다. 공주에게는 열쇠가 없다. 매일 탈출 계획을 세우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공주가 탈출하고자 하는 까닭은 그의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밤중에 공주의 방에 찾아와 마법을 훔쳐간다. 공주는 고통스러워하며, 빌고 애원하지만 아버지는 그래야만 나라를 지킬 수 있다, 괴물과 싸우려면 너의 마법이 필요하다, 네가 마법을 주지 않으면 우리는 다 죽을 것이다, 등의 이유로 공주의 마법을 훔친다.
영화 시작 전 감독 인터뷰가 짤막하게 나왔는데, 감독은 이 영화가 친족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교과서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영화에서의 마법, 그것을 빼앗아가는 아버지는 친족성범죄의 알레고리(우화)이다.
친부, 계부, 친오빠, 사촌오빠 등의 성폭행 사례는 당장 포탈사이트에 검색해보아도 오늘, 어제, 이틀 전, 일주일 전, 끊임없이 쏟아진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기를 버릴까 두려워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가 가정이 깨질까봐, 자기 때문에 모든 걸 망칠까봐 어디다 털어놓지도 못한다. 범죄자 아버지여도 아이들은 부모를 쉽게 사랑한다. 부모의 사랑이 무조건적 사랑이라고 하지만, 사실 아이들의 사랑은 절대적이지 않은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온전히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음을 상처로 품고 사는 어른들이 많다.
오팔은 엄마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지만, 엄마는 믿지 않는다. 오히려 오팔을 거짓말쟁이로 몰고 가며, 오로코신 앞에 오팔이 불려갈 때도 입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그 말을 들은 오팔은 아무일 없다고 하지만, 신이 오팔에게 선물한 인형에는 눈과 입이 있어 모든 것을 목격한다. 이 역시 낯선 현상이 아니다. 친부, 계부, 또는 오빠의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딸의 입을 틀어먹는 엄마들이 숱하게 많았다. 자아를 남편, 아들에 의탁한 여자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 그 전에,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오팔이 무의식으로 들어갔을 때이다. '지하감옥'인 줄 알았던 그곳은 사실 오팔의 무의식이다. 그곳에서 그동안 억압해왔던 슬픔, 분노, 죄책감, 수치심, 좌절감 등을 만난다. 그들은 마치 <인사이드 아웃>의 캐릭터들처럼 살아있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괴물'은 그들을 잡아먹는다. 그들이 잡아먹힐 때마다 오팔은 억압해왔던 감정들을 마주하게 된다.
끝내 오팔의 마음속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무력해지도록, 더 이상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도록 만들었을 때, 오팔은 잠에서 깨어난다.
*아직 <오팔>을 볼 수 있는 OTT는 없는 것 같다.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6/22(수)에 재상영하니, 관심이 있다면 꼭 보기를 권하고 싶다.
'마법'은 다양한 사건으로 치환될 수 있다. 감독이 의도한 친족성폭행 문제일 수도 있고, 친족이 아닌 성범죄일 수도 있고, 각 개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상처나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우리는 너무 아픈 기억은 무의식 속에 숨겨놓고 꺼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 사건에 대해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며, 오히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프로이트식 방어기제이다.
영화는 지극히 프로이트적으로 접근하는데, 영화 도중 자아(EGO), 초자아(SUPEREGO)라는 글자가 수수께끼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모든 수수께끼는 마지막에 가서야 풀린다. 의식과 무의식을 통하여 프로이트식 정신분석에 가까운 과정을 볼 수 있고, 우리는 직접 정신분석을 받지 않았지만 영화를 통해 대리경험을 할 수 있다.
'날것'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자극적인 영화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중에 성폭력을 다룬 영화도 부지기수이다. 지금까지 성폭력을 다룬 영화들은 대개가 성폭행 장면을 아예 대놓고 보여준다거나, 성폭행을 당하는 여자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동안 영화 속에서 얼마나 많은 강간 장면을 목도하였나. 그것은 얼마나 비인간적이며, 피해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는, 고민 없는 연출인가.
<오팔>의 미덕은 성폭행의 장면을 묘사하지 않고도 충분히 문제의식을 드러냈다는 데 있다. 세계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이 애니메이션을 봤으면 좋겠다. 특히 그루밍범죄에 노출된 아이들, 어른들로부터 상처받은 어린이들이 보아야 할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어린시절에 받은 상처가 아직 낫지 않은 어른들 또한 <오팔>을 보고 치유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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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전 떠들석했던 어린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86분의 러닝타임 내내 아이들은 무척 정숙했고, 진지하게 영화를 보았다. 내 앞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앉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그들끼리 제법 진중한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아무리 요즘 아이들은 어쩌고 저쩌고 해도 대개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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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두 단어는 '로맨틱'과 '코미디'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받은 시사회 초대장에 근거해 작성했습니다.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지루한 일상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핀란드 어느 곳에 사는 평범한 여성 안사다. 매일같이 일만 해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안사.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노숙인들에게 폐기해야 할 샌드위치를 줬고, 관리자가 이를 이유로 그녀를 해고했다. 쓸쓸한 안사. 이미 지친 안사에게 위로가 필요하다. 재미있는 일을 만들기 위해 아는 언니와 펍으로 향한다.
영화의 시점이 반대편으로 돌아간다. 남자 홀라파는 공장 여기저기를 다니는 노동자다. 공장 안에 있는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홀라파. 어느 날 같이 일하는 형이 달콤한 제안을 건넨다. “여자 만나러 펍에 갈래? 노래도 부르고 하는 거지.” “상남자는 노래 안 합니다.” 일단 튕기고 보는 홀라파. 하지만 자연스레 홀라파는 펍에 도착했다. 일행이었던 형이 어떤 여자에게 작업 거는 걸 옆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동시에 홀라파의 사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안사를 보고 반한 홀라파. 두 사람의 사랑이 낙엽을 타기 시작한다!
로맨틱하다
이 영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단어는 ‘낭만’이다. 이 영화는 영화가 가질 수 있는 낭만으로 가득하다. 이 영화가 상정한 낭만은 사랑의 힘이다. 영화는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기본적인 설정부터 평범한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영화의 모든 미덕이 여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만약 두 사람이 재벌 3세쯤 됐다면 관객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돈이 많았으면 서로에게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고, 인맥이 좁아서 서로 다 알았을 것 같다. 또 그만큼 인물이 고를 선택지가 넓어지기 때문에 플롯에서 이것들을 다뤄야 할 당위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영화는 노동자 둘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게끔 이야기를 설정한다. 그런데 또 생략하고 싶은 것들은 아예 빼버렸다. 인스타그램/페이스북? 없다. 뉴스를 들을 때 어떻게 들을까? 라디오다. 심지어 두 주인공은 마블 영화같이 CG가 많이 들어간 작품들 안 본다. 짐 자무쉬 영화 본다. 이런 것들은 감독이 철저하게 사람과 사람사이에 오고 가는 온정을 보여주기 위해 넣은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통일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또 영화가 '영화'라는 예술을 사용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영화의 의미를 현실을 잊고 아름다운 세상에 잠시 도피하는 탈출구로 보고 있는 듯하다. 대표적으로 짐 자무쉬의 이 영화를 틀고 나서 어떤 인물이 내보이는 반응이 그 근거다. 좀비와 누벨바그 거장은 멀리 떨어져 있어 거리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 인물은 나름대로 영화를 즐겼을 것이다. 단지 누구보다 잘 즐기는 방식 중 하나로 허세 부리기를 선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감상을 삼삼오오 모여 나누는 것도 예술이 있는 이유다. 작품을 통해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것이다. 영화는 예술의 이 단면을 포착해서 이야기 안으로 집어넣었다. 예술이 가진 온기를 직접 관객에게 보여준 것이다.
이 영화가 가진 다른 특이한 점은 시간적 배경이다. 사실 어떤 관객들은 2024년이라는 배경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화가 명시하는 구체적인 시점과는 정반대의 일들이 이야기 안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목적 중 하나는 지친 현실을 겪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가?를 형상화하는 데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 현실과 예술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세태의 관객들에게 이 라디오 뉴스는 두 세계를 가로지르는 구분선이 되기 충분하다. 영화가 두 가치를 대조하기 위해 시간적 배경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 시간적 배경과 인물들의 리액션을 우화처럼 읽는 것을 추천드린다. 이거 영화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내내 사랑스러워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를 시/청각적인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선 시각적인 측면이다. 이 영화는 빛이 바랜 것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령 제목에서도 읽을 수 있는 낙엽이라는 소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해도 무방하다. 보통 낙엽이 진다는 건 가을에서 겨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시기의 끝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낙엽을 반대로 표현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담배꽁초 역시 마찬가지다. 담배꽁초도 누가 다 쓴 것이라는 점에서 소멸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야기에서 들어간 방식은 정반대다. 이런 사소한 의미부여가 별 것 아닌 거 같아 보이지만 영화의 낭만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는 필수적이다. 감독이 자그마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처럼
미장센의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 영화는 강박적으로 대칭을 고수하고 있다. 색감을 활용하는 방식도 동화 같다. 이런 연출법을 고수한 이유는 관객을 몰입시킴과 동시에 동화 같은 분위기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화면이 나타나야 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 영화가 인위적으로 조형됐다는 걸 강조하면서 시각적인 집중도를 높이는 게 최선일 것이다. 영화는 이런 목적으로 강박적인 미장센을 고수하고 있다. 부드러운 색감, 안정적인 대칭 등 눈을 편안하게 만드는 장면 연출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글쓴이는 특히 시각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방식에 대해 더 강조하고 싶다. 강아지와 대화하는 장면, 홀라파와 안사가 데이트하는 장면 등 별 것 아닌 거 같으면서도 재미있는 감독의 센스가 돋보였다.
이 영화의 톤을 유지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와 삽입곡이다. 이 영화에서 배우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연기한다. 어떻게 보면 고전 멜로 영화에서 봤던 연기가 이 작품에서도 오롯이 나타난다. 이는 이 영화의 코미디 요소로 작동하기도 한다. 뚱한 표정과 뭔가 뚝딱거리는 동선으로 기계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인물들은 시종일관 내내 말장난을 하며 관객을 웃기려고 한다. 이 둘이 묘한 불협화음을 내는데, 이것에서 풍기는 매력이 영화의 원동력이 된다. 아, 이 영화의 번역가분이 제 몫을 톡톡히 해내셨다. 올해의 번역상 드린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삽입곡들도 허투루 쓰인 것이 없다. 이 영화는 배경음악으로 클래식을 삽입하며 고전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어느 장면에선 가사로 인물의 내면을 설명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단편소설 하나 본 듯
이 영화의 단점은 딱히 없다. 굳이 뽑자면 이야기 전개다. 상대적으로 잔잔하기도 하고 우연에 의존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는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런 전개가 영화 보는데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원래 감독을 비롯한 모든 예술가들에겐 목적이란 게 있지 않나. 이 영화는 이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감독이 여러 요소들을 끌여들였다. 하지만 탄탄한 연출력에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 모든 것들이 한 가지의 맥락에서 빛을 발하면서 좋은 우화를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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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폐한 인간의 엇갈리는 역사, 닮고도 다른 찬란한 외면
※영화 〈피닉스〉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945년 베를린, 칠흑 같은 밤 검문소를 지나는 차의 조수석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넬리가 앉아있다. 군인들은 레네의 만류에도 끝까지 붕대에 감춰진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자 한다. 회유와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붕대 속 넬리의 얼굴을 본 군인은 사색이 되어 그제야 빗장을 열고 두 사람을 보내준다. 넬리를 포함한 그의 모든 가족이 죽은 줄만 알았던 레네는 재산을 대신 관리하던 중 생존한 넬리를 데려와 돌본다. 소식을 알 수 없는 남편 조니를 찾아 도시를 헤매던 중 클럽 ‘피닉스’에서 잡일을 하는 그를 발견한다. 하지만 전쟁이 아니었다면 살아있었을 다른 사람의 얼굴을 가진 넬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조니, 혹은 요하네스는 아내의 재산을 노리고 넬리에게 아내인 척 연기를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넬리는 이를 수용한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궤적에는 익숙한 몇 개의 발자국이 반복된다. 간절한 사랑은 누군가의 정처 없는 방황을 이끌고, 오인과 엇갈림, 배회의 이미지는 일관된 메시지를 내포하면서도 과거와 현재, 인간과 시간에 관한 우화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정중동의 서사가 진행되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가는 영화의 생명력은 독일 영화의 부흥기를 이끄는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매김했다. 기꺼이 자신을 던져버릴 듯 간절한 사랑의 감정과 알아보지 못하는 상대방 사이의 불협은 과거의 표면에서 배회하는 인간과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한 공간에 들여놓으며 경계를 흐리게 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역사의 고통을 돌아보지 못하고 과거의 인간으로 남은 군인들은 현존의 외형만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영화에서 넬리가 처음 마주하는 이들이 과거의 흔적인 전쟁을 암시하는 군인인 점도 눈길을 끈다. 하지만 넬리는 다르다. 영화 속 가장 연약한 존재에서 빛을 따라가 모든 경계와 고민을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 그는 외면 外面을 외면한 채 과거의 역사와 사랑, 억압을 모두 껴안은 채 당당히 해방의 길로 나서는 가장 강한 인간이 되어 세상을 박차고 나간다.
공포와 불신의 혼돈을 파고드는 악의 정체
인류를 혼돈에 빠뜨린 구체제를 청산하기 위한 법정에 선 아이히만을 바라본 한나 아렌트는 희생자를 향한 증오와 분노가 집단 학살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악한 의도나 동기가 없었고, 단지 수직적인 명령에 불복종했을 때의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한 일이므로 ‘잘못’이 아니다.
자신에게는 누군가를 죽일 배짱도 없을뿐더러 그러한 끔찍한 일을 막을 어떠한 힘도 가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공무를 수행하는 하급 관료의 평범한 책임의식으로부터 끔찍한 살인이 벌어질 수 있다는 모순을 아렌트는 ‘생각 없음’으로 초래한 ‘악의 평범성’이라고 명명했다. 근대적 이성의 준칙으로 완성된 정언명령은 그 본래 목적과는 달리 인간이 만든 ‘보편적 입법’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히틀러는 주어진 절차에 따라 집권당 총수가 되고, 헌법을 고쳤고, 법질서를 준수하며 20세기 가장 잔혹한 독재자가 되었다. 그리고 무해한 사람들은 기계적 순응과 제한된 선택지로 합리적인 악의 탄생을 함께 만들고 손뼉 쳤다. 관료주의의 폐해는 여기에 있다. 시민들은 자신의 행동에 어떠한 감정적 인식도, 이성의 비판도 없이 주어진 절차에 맞으면서도 가장 바람직한 변수의 배열을 찾아내는 데 급급하다. 영화 속 넬리는 왜 자신을 연기해야 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을까. 남편 조니가 그의 재산을 획득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은 죽은 줄만 알았던 넬리가 살아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으로 정한 순위와 절차와 재산상 이득을 모두 취하기 위해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아이러니는 최고 수준이라고 여겨졌던 근대 관료제의 합리성과 효율성이 만드는 공백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진리로 믿었던 우리의 근대적 이성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히틀러가 아우슈비츠를 만들 때도 그랬다. 타인의 적당한 고통과 불편으로 다수가 행복하다면 그 희생은 별 저항 없이 용인되었다. 그렇게 인간이 만든 악은 같은 인간을 향해 극악한 범죄와 살인이라는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폭격을 맞은 베를린의 거리는 어느 하나 성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광기의 나치즘에 휘말려 피해자와 가해자, 동조자와 방관자로 구분되었다. 유대인을 비롯한 소수자의 박해와 인종주의적 차별은 시민들이 오늘의 생존을 위해 어제의 이웃을 신고하고, 이분법적 논리에 사로잡혀 비인간적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도록 만들었다. 영화는 전쟁 이후 독일 사회의 인간 단면을 멜로드라마의 형식에 녹여낸다. 〈피닉스〉의 의도적인 기억의 공백은 방관자와 공모자가 가해자로 변모하는 과정이 상처받은 신뢰로 터져 나온 공포를 극복하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가른다.
전쟁이 끝나자 독일의 시민들은 모든 걸 잊은 것처럼 행동한다. 얼굴을 되찾은 넬리를 마주 선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방관, 침묵, 동조를 해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얼버무리며 그를 위로하고, 자신도 피해받았음을 성토하고, 더는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 자리를 피한다. 그들은 나치의 통치에 얽힌 시대의 가해자이며 피해자이다. 잡혀가는 유대인을 묵인하며 신고하는 대신 일상을 평온하게 유지했던 끔찍한 시절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굴레는 베를린의 전 시민에게 씌워진 비극이다. 적어도 공포를 당당히 대면하지 못하는 영화 속 사람들은 지배구조의 억압에 동참하는 행위자들이라는 과거로부터 능동적인 자기 형성을 이루지 못한다. 조니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를 잊고 과거의 영광에 남겨진 나치의 부역자와 피해자의 현현처럼 보이는 조니와 넬리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허물고 더 깊은 이해의 단계로 넘어선다.
영화에서 전쟁의 피해와 고통을 이야기하는 주체는 넬리와 레네 뿐이다. 하지만 같은 유대인으로 둘의 인식은 사뭇 다르다. 넬리는 끔찍한 수용소의 삶에서 겨우 벗어난 생존자다. 조니가 일반화된 대상으로서의 피해자성을 주장할 때 넬리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전달하며 과거의 기억을 딛고 스스로의 정체성과 가치를 찾아간다. 하지만 레네는 박해를 피해 베를린을 떠나 영국으로 이주하여 살아남았다. 인간의 처참한 기억을 간직한 넬리와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았던 레네의 선택은 기억의 공백에 스미는 새로운 악의 탄생을 예고한다. 1945년 그는 유대인이라는 피해자 정체성을 늘 강조하면서도 넬리와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계획을 세운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한 유대인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을 세웠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성경의 가르침을 빌미로 팔레스타인을 침공한다. 학살과 억압을 되돌리는 미래의 결론은 위치만 바뀐 전쟁범죄의 반복이다. 전쟁이 초래한 불신의 벽에서 좌절하는 레네는 목표를 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외출할 때마다 핸드백 안에 늘 권총을 지니던 레네는 평범한 악의 공포를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자주와 민족주의로 승화한다. 나치 정권과 그 부역자를 향한 강한 저항과 분노에도 외로움을 이기지 못했던 레네는 타인과 자신마저 신뢰하지 못했다. 누구든 아무 이유 없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는 이렇게 또다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다.
삶을 향해 걸어가는 찬란한 외면의 커튼콜
조니가 법의 허점을 악용해 과거의 배우자를 가장한 연극을 꾸미는 범죄를 저질렀다면, 아이히만은 자신의 평안과 태만, 일상적 행위의 반복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다. 전자와 달리 후자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겠지만, 법적으로 책임을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렌트가 간과한 본질이 빠져있다. 그는 아이히만의 범죄사실을 사유 능력의 상실이라는 책임의 부재에도 반인륜적 범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죄를 주장했지만. 실제로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범죄사실을 숨기기 위해 평범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관료로 자신을 변호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그는 유대인 학살에 능동적인 임무를 수행했고, 반유대주의 신념을 철저히 지켰던 인물이었다. 최소한 아렌트가 보았던 법정 연극은 그를 속이기에 충분했다. 인간이 만든 악이라는 불가항력은 들키지만 않는다면 언제든 자신의 행동을 숨길 수 있다. 다수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언제든 악은 모습을 감추고 서서히 몸집을 불릴 것이다. 넬리는 조니와 함께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며 거짓으로 조니가 원하는 넬리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걸음걸이와 필체를 연습하고, 새로운 알리바이를 만들며, 기차에 내리고 지인들을 만나는 장면을 만들고자 그 전날 다른 지역에서 하룻밤을 묵는 정성까지 들인다. 누군가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많은 진실이 가려지고 거짓은 커진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부분에서만 유효하다. 영화는 외면의 교체와 상실을 경험한 주인공을 내세워 역설적으로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크리스티안 페촐트가 보여주는 오인의 테마는 이름이나 얼굴과 같은 외적 표상을 부정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자기인식의 도달을 유도한다. 넬리는 집도의에게 자신의 원래 얼굴로 복원해 주기를 요청했지만, 의사는 아무리 똑같이 얼굴을 고치려고 해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며 거절한다. 이미 영화는 덧씌워진 얼굴에 남겨진 시간을 망각하려는 어떤 시도도 무의미하다는 예고된 결말을 암시한다. 어떤 얼굴이든 그것이 시간의 궤도 안에 들어선 인간의 것이라면 누구나 과거의 기억에 머무를 수 없다. 조니는 과거의 기억 속 넬리의 대상화된 이미지를 제시하여 이를 이용해 앞으로의 미래를 살아가고자 한다. 겉치레의 변화만으로 타인과 제도를 속일 수는 있더라도 인간의 기억과 내면, 그 안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다. 틀어지는 계획을 인정하지 못하는 조니는 점차 과거의 넬리와 겹쳐 보이고 마는, 살아있는 넬리를 의식하면서도 외면한다.
아이히만의 가짜 연극의 피해자가 된 아렌트처럼, 넬리 역시 조니가 제작하는 연극의 공동주연이 되어 그의 배역이 진정한 자신의 얼굴이라고 착각한다. 재산을 차지하려는 목적하에 그들은 연극의 배우이자 관객이 된다. 브레히트는 서사적 연극론에서 관객이 연극을 이해하는 세 단계의 과정을 제시한다. 처음은 연극과 배우를 가장 가깝게 동일시하고, 다음은 관객과 배역을 냉정한 자세로 소외시키며, 마지막으로는 둘 사이의 통합적 인식의 발현으로 연극의 사회적 의미를 포착하는 것이다. 〈피닉스〉는 연극의 변증법적 작품해석론을 달성한 넬리와, 그렇지 못한 조니를 나란히 세운 뒤 과연 인간은 역사를 딛고 넘어설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그리고 그 안에 작지만 강력한 희망을 숨겨놓는다. 계획의 주 무대인 조니의 방은 한정된 공간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등장인물 간의 합으로 연극적 상황을 연출한다. 넬리 본인을 연기해야 하는 넬리는 조니의 상상 속 자신의 이미지를 연기하며 조니의 상상 속 대상에 깊이 이입한다. 넬리의 인식이 바뀌는 순간은 남편이 자신을 고발하고 대신 풀려난 것이라는 의심에서부터 시작한다. 감추어진 진실이 드러나면서 배역과 끊임없는 소외를 통해 대상과 조니, 그리고 자신에게까지 거리를 둔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 상호 간의 관계와 그 관계를 둘러싼 사회적 상황을 직시하고 억압받는 자신을 발견한 넬리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마지막 시퀀스에서 스스로 무대와 관객을 만들어 ‘세 번째 연극’을 거행한다.
조니의 패착은 첫 단계를 의도적으로 건너뛰어 버렸다는 점에 있다. 그는 처음부터 넬리의 재산을 갖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어차피 이만 달러 정도 주고 떠나보낼 생각이었을, 죽은 넬리를 연기하는 이 여자와 깊은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배우의 첫 번째 조건인 몰입을 애초에 상정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 관객에게는 저 여자는 넬리처럼 보여야 한다. 넬리는 대상화된 본인을 연기하면서도 끊임없이 조니에게 자신이 그의 진짜 넬리라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하지만 조니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넬리의 존재를 의심하고 인지하면서도 그가 넬리가 아님을 애써 상기해야 하는 이상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하여 이 몰입 없는 연극의 거리 두기를 계속한다면, 세상은 절대 조니의 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했다.
마지막 순간, 이 연극에서 넬리는 처음으로 제작자의 자리에 선다. 조니의 극본대로 만들어진 자신의 삶을 자신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던 그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벗어나, 조니가 지휘하던 연극의 지휘봉을 빼앗아 자신이 깨달은 바를 게스투스적으로 표현한다. 영화 속 연극은 낯선 나와의 대면으로 역사를 직시하게 만든다. 넬리가 전하는 마지막 노래 ‘Speak Low’는 너무 빠른 순간을 한탄하다 어느 순간 너무 늦어버린 시간을 이야기한다. 넬리와 조니에게는 자신을 돌아보고 멀어지는 모든 순간을 받아들일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이를 성실히 이겨냈고, 다른 한 사람은 피하기만 급급했다. 그리고 커튼콜의 시간은 그렇게 그들에게 다가왔다. 넬리는 진정으로 자신을 발견하며 조니를 떠난다. 두렵고 낯선 나와의 대면은 지배적 담론에 고착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완벽한 장면인 마지막 시퀀스는 배우로 하여금 무대 위의 말과 몸짓으로 스스로 깨어있음을 강조하는 자기 반영적 메타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성경 속 욥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에 이유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신은 명확한 근거 대신 믿음이라는 무기로 모든 상황을 이해하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바꾸는 결정은 너무 신속하고, 예측할 수 없다. 자연이라는 이름의 악은 그렇게 인간의 삶을 어떤 의도도 없이 바꾼다. 욥은 끊임없이 내 삶의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에 관해 질문한다. 하지만 완벽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인류의 역사에는 수많은 우연이라는 악이 존재한다. 전쟁 역시 그중 하나다. 인간이 증오와 분노로 같은 인간을 살해하는 끔찍한 행위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주어지지 않은 평범한 이들에게 마치 자연재해와도 같이 아픔을 남긴다. 한 사람의 얼굴을 바꾸는 선택 또한 레네의 단순한 실수로 우연히 만들어진다. 피아노를 치던 조니가 마침내 넬리를 알아보는 순간은 그의 노랫소리와 팔뚝의 일련번호, 겉으로 드러난 옷가지나 얼굴이 아닌 감춰져 있던 것들이었다. 자신과 타인, 그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역사를 아우른 후에야 비로소 인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들, 예를 들자면 상대를 외면할 수 있는 넬리의 용기 같은 것들이 삶에 다가온다. 과거에 매여 현실을 외면한 채 주어진 삶을 바꿔보려 했던 조니에게는 절대 찾아올 수 없는 순간을, 넬리는 밝은 빛을 향해 걸어가며 당당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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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랩 개봉작 소개 <리코리쉬 피자>, <언차티드>, <굿보스>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
매 주 화요일!
한 주의 개봉작 중에서 여러분께 소개드리고 싶은 작품을
씨네랩이 직접 큐레이션하여 소개드리는 콘텐츠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힘차고 영화로운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면서,
그럼 다같이 주요 개봉작을 알아보도록 할게요. :)
1. 리코리쉬 피자
멜로/로맨스 | 미국 | 134분
감독 : 폴 토마스 앤더슨 | 출연 : 알라나 하임, 쿠퍼 호프만, 숀 펜, 톰 웨이츠, 브래들리 쿠퍼, 베니 사프디
개봉 : 2022년 2월 16일
배급사 : 유니버설 픽쳐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고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에 빠진 소년 개리와 불안한 20대를 지나고 있는
알라나 1973년 어느 찬란한 여름날 청춘의 한복판으로 달려가는 그들의 이야기"
*관전포인트* :
제93회 미국비평가협회(작품상) 수상 및 다수의 영화제에서 노미네이트 및 수상작.
무엇보다 영화의 기대 포인트는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일명 'PTA'의 신작이라는 점입니다.폴 토마스 앤더슨은 할리우드에서 스튜디오의 간섭을 받지않는 몇 안되는 영향력의 실력있는 명감독입니다.
아주 디테일하면서 장면마다 완벽한 구도를 구현하고,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연출 스타일로인간의 여러 감정을 표현하고 관객들에게 감동을 다양한 스타일로 선사합니다.
그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2017년 <팬텀 스레드>에 이후 오랜만에 내놓는 신작인만큼 기대를 안할 수가 없네요.
또한 출연하는 배우진들을 보면 또한 설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배우 중 한 명인 '필립 세이어 호프만'의 아들 '쿠퍼 호프만'이 청춘, 사랑에 빠진 소년 '개리'를 연기하고 밴드 HAIM의 가수인 '알리나 하임'이 배우로 데뷔하여 불안한 20대 소녀를 연기합니다.
그밖에도 숀 펜, 브래들리 쿠퍼, 베니 사프디 등 한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배우들이 총집합하여 이야기를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이라 짐작이 되는데요.
2월 16일, 드디어 개봉하는 <리코리쉬 피자> 여러분들도 많은 기대 하고 계실까요? :)
2. 언차티드
액션, 모험 | 미국 |
감독 : 루벤 플레셔| 출연 : 톰 홀랜드, 마크 월버그, 소피아 테일러 알리,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개봉 : 2022년 2월 16일 개봉
배급사 : 소니픽처스 코리아
"평범한 삶을 살던 ‘네이선’(톰 홀랜드)은 인생을 바꿀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그의 미션은 위험한 트레져 헌터 ‘설리’(마크 월버그)와 함께 사라진 형과 500년 전 잃어버린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트레져를 찾아내는 것. 그러나 몬카다(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위협과 추격 속, 누구보다 빠르게 미지의 세계에 닿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데…"
*관전포인트* :
<좀비랜드>, <베놈>을 연출한 루벤 플레셔 감독 신작.
무엇보다 <언차티드>의 가장 기대 포인트는 배우 '톰 홀랜드'의 출연일 것입니다.
아직까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꾸준한 관객몰이를 하는 가운데 올해 세계에서가장 사랑받은 배우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가운데 '톰 홀랜드'의 새로운 액션 어드벤처 블록버스터 출연이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또한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등 다수의 할리우드 작품에서 주연을 연기하며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배우 '마크 월버그' 도 출연하니 어떠한 모습의 연기를 보여줄 지 기대됩니다.
<언차티드>는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하고있다는데요.어떻게 보면 실사화를 하는 영화인만큼 게임이 아닌 영화 속에서
화려한 모험/액션 블록버스터 장면을 구현할 수 있을지도 기대됩니다.
3. 굿 보스
드라마 | 스페인 | 120분
감독 :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 출연 : 하비에르 바르뎀, 마놀로 솔로, 알무데나 아모르 등
개봉 : 2022년 2월 10일 개봉
배급사 : ㈜디스테이션
"우수기업상 최종 후보에 오른 '블랑코 스케일즈'는 골칫거리 직원들 때문에 수상이 물 건너갈 판이다.
사장 ‘블랑코’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지만 그가 개입할수록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게 되고
겉 보기에 완벽했던 ‘굿 보스’의 실체가 밝혀지는데…"
*관전포인트* :
스페인 고야상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 등 17개 부문 노미네이트작.
스페인의 국민배우이자 할리우드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의 주연작입니다.
국내에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의 무시무시한 사이코패스 연기로 큰 화제를 모은 배우입니다.
영화 <굿 보스>는 블랙 코미디 장르로 '하비에르 바르뎀'의 코미디 연기, 출중한 연기를 바탕으로새로운 매력의 모습을 선사할 예정인데요.
또한 영화를 연출한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와 '하비에르 바르뎀'의 만남은<햇빛 찬란한 월요일>, <에스코바르>에 이어 세번 째 협업이라고 합니다.
20년간 쌓아온 그들의 파트너쉽과 시너지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표현될 지 기대가 대목입니다.
씨네랩이 소개하는 개봉작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하루하루 안타까운 코로나 펜데믹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꼭 건강하고 안전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콘텐츠는 다음 주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안녕!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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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관계의가나다에있는우리는>
- 전혀 연관성이 없는 세 청춘에게냉혹하게만 보이는 한국 사회 속에서꿈을 위해 노력하는 청춘의 첫 설렘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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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룸 넥스트 도어> 2차 예고편
제81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 사자상 수상작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틸다 스윈튼 X 줄리안 무어 황홀한 미장센으로 2차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