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11-19 07:29:47
시들어가는 영화의 운명에 대한 거장의 사색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
〈벌집의 정령〉, 〈클로즈 유어 아이즈〉
〈벌집의 정령〉(1973)에서도, 〈클로즈 유어 아이즈〉(2024)에서도 주인공은 눈을 감는다. 과거, 꿈, 기억에 조용히 침잠한 무언가를 환기해 현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벌집의 정령〉에서 어린 소녀 아나는 영화에서 본 프랑켄슈타인을 만나고 싶어 하고, 그런 아나에게 언니는 눈을 감고 정령을 부르면 그의 유령과 대화할 수 있다고 언질한다. 아나가 발 디딘 시공간은 파시스트이자 쿠데타 세력의 수괴인 프랑코가 좌파, 공화파, 아나키스트의 연합 정부를 무너뜨리고 승리를 거둔 스페인의 어느 시골 마을이다. 독버섯을 짓밟고 질서정연한 벌집의 세계에 몰입하는 아버지, 즉 프랑코의 분신이 곳곳에서 힘을 갖고 군림하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아나는 가족의 눈을 피해 계속 괴물 프랑켄슈타인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마침내 반反프랑코 세력 군인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에게서 괴물의 정령을 읽어낸다. 그러나 파시스트의 세계에서 ‘괴물’과의 교감은 ‘반역’이다. 아버지는 신속하게 아나를 원래 세계로 되돌려놓고, 의사는 시간이 지나면 아나가 그 충격적인 경험을 잊을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이렇게 〈벌집의 정령〉은 영화가 열어젖힌 가능성을 프랑코 치하 스페인의 암울한 현실에서 꽃피워내는 동시에, 일상에 녹아든 파시즘으로 그 가능성이 어떻게 폐제되는지를 보인다.
구체적인 시공간은 바뀌었지만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도 ‘눈’을 매개로 한 영화적 각성은 반복된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미겔은 과거 자신의 영화 〈작별의 눈빛〉의 주연이었으나 촬영 중 실종된 훌리오를 추적해보자는 탐사 프로그램의 제안을 받는다. 실종 후 무려 22년이 지난 때였다. 실체는 사라지고 소문만 무성하게 남은 훌리오. 미겔은 결국 한 정신병원에서 자신이 가르델이라고 알고 있는 훌리오를 만난다. 여기에는 앎의 엇갈림이 있다. 미겔은 지난 22년 동안 가르델로 살아온 훌리오의 삶을 알지 못한다. 함께 보낸 가르델 이전의 시간만 기억한다. 반면 병원 관계자들은 가르델이 훌리오로 살던 시절을 알지 못한다. 자신들과 함께한 시간만 안다. 이 엇갈림에서 미겔은 과거 훌리오가 출연한 영화를 함께 봄으로써 잠든 훌리오의 영혼을 깨우고자 한다. 아나가 눈을 감고 ‘괴물’의 정령에 접속했듯 영화를 본 훌리오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영화는 그 감긴 눈 안에서 훌리오/가르델의 엇갈림이 해소될 것임을 암시한다.
스페인의 빅토르 에리세는 국제적 거장으로 인정받는 영화감독이지만 1973년 〈벌집의 정령〉으로 데뷔한 이후 지금껏 단 네 편의 장편만 만들었다. 영화 한 편 한 편에 어마어마한 공력을 넣는 감독인 것이다. 데뷔작의 메타포(눈을 감는 행위와 영화로 가능해지는 것들)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창한다는 점, 그리고 그 마테포가 유전히 유효하고 감동적이라는 점에서는 예술가로서 그의 재능과 의지, 역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사이 영화의 위상은 변했다. 아나에게 그러했듯, 영화는 수많은 사람에게 감각과 상상력의 확장을 선물하며 분출하는 용암처럼 성장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포화의 지점을 맞이했다. 현재 영화는 동시대 콘텐츠 플랫폼의 문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웃 장르와 극심한 경계 갈등을 겪는 중이다.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매력, 즉 ‘영화적 순간’에 대한 예찬은 소수의 마니아에게만 고착되고 있는 듯도 하다.
영화를 사랑하는 빅토르 에리세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동시대 영화의 위기를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벌집의 정령〉에서 마을 아이들은 영화 필름을 실은 트럭을 격하게 반긴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틀어줄 거냐며 들뜬 목소리로 물으면, 영화관 관리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대단한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라며 으스댄다. 수용자와 공급자 모두 영화라는 단어에 지극한 설렘을 느끼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미겔은 〈작별의 눈빛〉을 완성하지 못했다. 훌리오의 기억을 찾기 위해 영화를 상영하는 장소는 폐업한 극장이다. 그러니까, 미지의 무언가와 조우해 자기 삶과 감정, 기억을 증폭시켜 세계를 확장하는 수단으로서의 영화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미겔처럼 특별한 목적을 갖고 문을 닫은 극장 주인을 설득해 먼지 쌓인 상영관을 찾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론 여기서 ‘영화’는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 즉 눈을 감으면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리는 통로로서의 영화다. ‘영화의 위기’에 누군가는 여전히 수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있다고 항변하겠지만, 그런 영화는 빅토르 에리세에게 영화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동시대 영화의 음울한 현실과 공명한다. 이 영화가 〈벌집의 정령〉 때 영화가 가졌던 위상을 그리워하는 향수로 은밀히 채워져 있는 이유일 것이다. 아나와 ‘괴물’의 교감이 꺾이고 마는 〈벌집의 정령〉이 슬프면서도 묘한 희망을 전하는 데 반해, 결국 훌리오가 기억을 찾을 듯 보이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기쁘면서도 어딘가 우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50년의 세월을 거슬러 ‘눈’이라는 통로로 영화의 가능성을 모색한 두 영화는 1970년대에는 희망적인 감동을, 2020년대에는 지나가 버린 영화의 전성기에 대한 아릿함을 선사한다. 그래서다. 내게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시들어가는 영화의 운명에 대한 거장의 사색처럼 보인 것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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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비판 영화 추천 '다음 소희' (feat.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
다음 소희
23.02.08 개봉
드라마, 15세 관람가
한국, 138분
감독: 정주리
출연: 김시은, 배두나 등
칸 영화제 국제피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다음 소희'!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을 소재로 하였대요
영화관 개봉했을 때부터 너무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넷플릭스에 떠서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 것들은,
특히나 이런 가슴 아픈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것들은
재미있다 재미없다 평가하기도 망설여지더라고요
영화를 영화로만 평가해야 하는데도 괜히 마음이 약해져서 ㅠㅠ
냉정하게 말해 보자면 평타는 친 것 같습니다
실화를 소재로 삼는 작품들은 어느 정도 픽션을 가미해서
재미있게 만들거나, 더 슬프고 화나게 만들던데
'다음 소희'는 딱 이야기 자체를 보여 준 느낌이었거든요
담담하고 우악스럽지 않은 영화입니다
이제 사무직 여직원이다?"
춤을 좋아하는 씩씩한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
오랜만에 복직한 형사 유진
사건을 조사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자취를 쫓는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언젠가 마주쳤던 두 사람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그 애를 만난 적이 있다
영화 <다음 소희> 줄거리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 먼저 설명 드리자면
2017년 1월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학생이
인터넷, 휴대전화 계약 해지를 방어하는 'SAVE팀'에서
현장 실습생으로 일하며
우울증과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는데요
현장실습 표준 협약서에 적힌 근무 시간 7시간도 지켜지지 않고
160만 5천 원이라는 월급도 지켜지지 않았대요
게다가 할당된 고객 객응대 횟수를 못 채웠다는 이유로
야근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근무 4개월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고요
다음 소희의 줄거리도 이와 똑같습니다
추가한 게 있다면 소희가 춤을 좋아한다는 것 정도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춤이었던 거 같아요
춤을 추다가 형사인 유진을 만나게 된 거기도 하고요
다만 소희만 유진이 춤추는 걸 지켜봤고
유진은 소희에게 관심이 1도 없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소희의 사망에 분개하는 게 개연성에 맞나? 싶긴 했어요
유진이 세상에 관심 없는 자신을 자책했기 때문이라면
또 말이 되긴 하지만요?
저는 이런 영화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차별받는 사람이 너무 많고
또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고
유일한 대기업 취업자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그만두지도 못하게 하고......
집은 가난해서 소희가 그만둘 수 있는 상황도 아녔고요
그렇다면 소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나요?
(영화 내에선) 오로지 유진뿐이었습니다
유진 역시 너무 늦게 알아 버려서 타이밍을 놓쳤지만
소희의 남자 친구인 태준에게는 자신이 힘이 되어 주죠
어른이 아이에게 꼭 보호자가 돼야 한단 건 아닙니다
그저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눈길 한 번 주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있는 사람들에겐 큰 힘이 될 수가 있잖아요
그리고 그 시작은......
콜센터 직원에게 막말하지 않는 것부터 아닐까요
받을 때 안녕하세요~ 끊을 때 감사합니다~ 하는 것만으로도
그 분들껜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하더라고요
다음 소희가 생기지 않도록
관심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이게 딱!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김시은 님 보니하니 오디션 때부터 봤었는데 ㅋㅋㅋ
이렇게 연기 뛰어난 배우로 성장하셨을 줄은 몰랐어요!
배두나 님 연기력은 당빠 믿고 보는 거였는데
소희 역 김시은 님이 다 이끌어 주신 영화 아닌가 싶습니다
*줄거리: 4/5점
*연출: 2/5점
*영상미: 1/5점
*OST: 1/5점
*연기: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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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디어 조이, 디어 재클린
편지로 영화 리뷰를 써보기는 처음입니다만, 당신들의 이름을 꼭 부르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고독의 지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명명해 주었듯이.
우선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대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감히 추측해보자면 수상이 당신들의 일과에 큰 변화를 줄 것 같지는 않아요. 조이는 여전히 매일 세이블 섬의 해안에서 죽은 새를, 말똥을, 쓰레기를, 물범을 살피겠죠. 재클린 당신도 어디선가 내가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끌어내고,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담아내며 작업을 계속할 같습니다. 우리 셋(이라고 묶어도 된다면) 중 이런 소식에 연연하는 사람은 저뿐일 것 같네요. 이 영화와 가장 무관한 사람인데 말이죠...
하지만 한 관객으로서, 이 이야기가 더 멀리 퍼져 나가길 바라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고 무작정 주장해 봅니다. 아무튼 기뻐요. 결과를 예상하고 예매한 건 아니었지만요. 뭐가 경쟁 부문인지 아닌지도 신경 쓰지 않고, 저의 일정과 영화에 붙은 짧은 소개글만을 보면서 영화를 고르거든요. 참고로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당신들의 영화는 한국어로 이렇게 소개되었습니다. 한번 보세요.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해역의 외딴곳, 세이블 섬에 두 여성이 있다. 환경 보호 활동가인 조이 루커스는 1970년대에 처음 이 섬에 당도했을 때 미술학도였다. 조이가 이 가느다란 땅에서 지낸 세월은 벌써 수십 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왔다."
"70년대 미술을 공부하던 조이 루커스는 캐나다 세이블 섬을 방문하고, 이후 그곳에 거주하기로 결정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섬의 식물과 동물을 연구하는 데 쓰고 있다. 카메라는 조이의 일상을 따라가며 섬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곳을 배회하는 야생마들을 비춘다. <고독의 지리학>은 감독과 그의 관찰 대상인 루커스의 삶과 작업에 대한 철학을 내포한 작품이기도 하다. 물질적 가치와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일에 대해 장인 못지않은 헌신적인 태도로 임하는 이들의 모습은 세상사와 관계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면서 기쁨을 찾는 두 여성의 행복감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비록 이런 삶이 외로움을 동반한다 하더라도 이는 진정한 예술가의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문성경]"
노바스코샤는 제가 사랑하는 빨간 머리 앤의 출생지예요. 프린스 에드워드 섬 에이번리 마을은 그가 자란 곳이고, 부모님이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기 앤은 노바스코샤에 있었죠. 게다가 야생마라니. 저로서는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말과 책만 있으면 된다고, 그렇게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던 사랑스러운 십대 시절의 그를.
내 어딘가가 잘못된 게 아닐까 스스로를 불안해한 적이 있고, 책을 좋아하며, 꿈이 많았던 여자아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앤과 조 마치를 그려봅니다. 저 또한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직도 사회가 기대하는 "삼십대 여성"의 삶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더 가깝게 느껴요. 그래서 그들을 연상시키는 단어에 끌렸고, 이어 당신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당신은 왜 그 섬에서, 왜 그 연구를 할까? 당신은 왜 거기서 그 모습을 촬영했을까? 무엇이 당신들을 그렇게 움직였을까?
언제부턴가 "이제 어디로 가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갈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많은 길 중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서요. 정답지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습니다. 오늘을 사는 건 처음이니까.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생을 톺아보다 문득, 지금이 나의 최전선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실 평생 동안 매일 마찬가지였는데 참 새삼스럽지요.
삶을 길에 비유하는 건 익숙하지요? 거긴 어떤지 몰라도 여긴 나이에 따라 할 일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어, 그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어떤 감정들에 부딪히게 됩니다. 내가 이상한 걸까 하는 고민부터, 내 선택을 행복과 성공으로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까지. 솔직히 저는 스스로가 아주 이상한 케이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평범과 거리가 멀다고 여기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긴 해요.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인생 전체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던 제 자신이 불안합니다. 내가 나를 책임져야만 할 것 같은데 방법을 몰라서요. 앞으로를 어떻게 그려갈 것인가 밑그림을 잡아두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직장인 생활을 몇 년 하고 나니 "커리어 패스career path"가 종종 입에 오르고, 주변에서는 결혼 계획을 묻습니다. 질문이 늘어갈수록 가볍게 떨쳐지지 않습니다. 훌륭한 직업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계획 없이 취미에 몰두하는 내가 너무 안일한 걸까?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 여기는 내가 이상한 걸까? 어른들이 인생의 지혜로 하는 말들을 나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걸까? 불안과 질문이 삶의 전방위로 거미줄처럼 뻗어갑니다.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내가 한 선택들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야만 할 것 같고요.
영화를 보면서 이 마음에 도움이 될 만한 실마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의 삶을 멋대로 기대해서 미안합니다만, 영화 속에 확신에 찬 당신들이 있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불안해지는 질문들 앞에 이 영화를 방패처럼 휘두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이유로 들어선 영화관에서, 기이하리만큼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파도가 깨진 자리에 빛이 튀기고, 바람이 풀밭을 쓸어주는 모습은 그래도 전에 좀 보았지만... 태어나 처음 보는 것들이 그토록 많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이런 걸 볼 수 있다 상상도 해보지 못했어요. 암실에서 작업하는 대신 별빛에 노출시키고 해초로 현상한 필름. 말똥에 묻었다가 들풀로 현상한 필름.
작업하면서 둘이 보냈을 시간을 상상해 봅니다. 잔잔하고 평온한 애정의 시간. 동시에 단조롭고 이따금 지치는 노동의 시간. 생이란 본디 그런 것일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무용한 것들이 정말 무용한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당신들의 작업에 자꾸 "왜?"를 붙이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말똥 속 벌레를 왜 잡아서 보는 거지? 물범이 새끼를 뱄는지 왜 살피지? 그걸 어디다 쓰지? 이 질문들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당혹하게 만듭니다. 나는 그걸 왜 묻지?
습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중구난방의 삶을 어떻게든 그럴듯해 보이도록, 멋진 일직선의 설계를 할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매 순간 저에게 하나하나 따져 묻고 있던 것입니다. 이걸 해도 되나? 왜 하려는 거지? 대신 저걸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들의 작업물에는 "왜"가 없었습니다. 단지 앎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기반으로 내린 수많은 선택이 있었습니다. 순간의 자잘한 선택들이요.
미대생이었던 조이 당신이 지금 모습이 되기까지, 그저 이 섬이 좋아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다는 오늘까지, 수많은 선택들이 중첩되었을 뿐. 무수한 선택들이 모여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갑니다. 3년용 프로젝트로 지은 집이 20년을 버티기도 하고, 때로는 한 번의 만남이 모든 걸 바꾸기도 하죠. 그러니 저는 예상할 수 없는 이 삶의 여정 각 단계를 설계하겠다고 아등바등 애쓰는 게 아니라,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내가 오래 바라봐도 지치지 않을 방향이 어디인가, 조용히 묻고 답을 찾으면 그만이었던 거예요.
"일단 해보자"는 재클린 당신은 또 어떤가요. 나무가 그림을 그리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는 사람이라니. 세상에 누가 개미의, 달팽이의, 딱정벌레의 음악을 전달해 주겠어요.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음악들이 있죠. 요즘 케이팝은 표절 시비를 피하기 위해 여러 곡을 믹스해 내기도 한대요. 그러다 보니 같은 곡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전혀 다른 곡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딱 케이팝이 복잡해진 만큼 세상 모든 게 다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알아야 할 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하나라도 놓치면 도태될까 두렵습니다. 이런 마음을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라고 부른다는데... 저는 이런 단어까지도 놓치지 않겠다고 아등바등, "포모"로 살아왔네요.
재클린, 당신이 음악에 조예가 깊은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만 당신이 포모가 아니었음만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일단 해보는 그 마음 하나로, 세상 가장 고유한 음악을 (저작권료 지불도 없이!) 여기까지 데려왔어요. 음악의 역사에 정통할 필요도, 지식을 섭렵할 필요도 없었을 거예요. 결국 세상이 뭐라든, 뭐가 어떻든, 자기 길을 가는 것만이 정답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알면서도 어딘가에서 더 손쉽고 덜 외로운 해답이 뿅 나와주지 않을까 기웃거리던 마음을 부정할 수 없네요.
두 사람이 내게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깊은 생각 하지 않고, 네 할 일을 하라고. 당장은 에둘러 가는 길처럼 보일 수도 있고, 뒤죽박죽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 보여도 괜찮다고. 굵직한 일 없어도 단지 계속하는 게 얼마나 강한 일인지 아느냐고. 물개 연구 모임에 취사 담당으로 자원해 세이블 섬을 다시 밟았던 조이, 당신이 지금 거기 남은 유일한 사람이듯이.
그 섬을 집이라 부르기까지 당신이 놓쳐버린 것들도 물론 많음을 인정하지만, 사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기에 그걸 인정하는 게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는 태도일 거예요. 그 끝에, 사랑이라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는 거겠죠.
저는 이제 저에게 "왜"라고 묻지 않으려 합니다. 이걸 해서 뭐에 쓸 거냐는, 생산성의 질문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무실의 일에서처럼 전체를 가늠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을, 제 인생을 대상으로도 해보겠다고 애쓰지 않을 거예요.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단지 바라볼 겁니다. 풀숲에 앉아서, 풀잎과 바람 속에서 녹색 바다를 보는 눈이 있다면 다 괜찮을 거예요. 오늘의 쓰레기를 줍고 숫자를 헤아리면서도, 조이 당신처럼 장미와 향나무 냄새를 느끼겠지요. 그거면 돼요.
재클린은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사랑으로 한 일a lavour of love"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이 삶을 들여다보려 해요. 지금 사랑하는 것들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아직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걸 지금 말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다만 우연으로 보이는 것들조차 첩첩 쌓이다 보면 상당한 무게가 생기고, 무게가 생긴 것들이 어디로 기우는지 보면 되겠죠. 놓치는 것도 낭비는 아닐 겁니다. 방목되다가 잊힌, 연안의 섬을 뛰어다니는 야생마들은 멋졌으니까. 제 삶에 그런 말들이 뛰어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무튼 끝에는 반드시 어딘가로 흘러갈 것만은 확실합니다. 당신들의 세이블 섬처럼. 직접 만든 드림캐처와 엽서가 가득 붙어 있는, 그 멋진 책상 위처럼. "일단 해본" 그 모든 아름다운 필름 위처럼.
거기서 다시 만날게요. 고독의 지리학도들에게 소실점은 그곳일 테니까.
전주국제영화제 정보
▶ 아쉽지만 이번 영화제의 모든 상영이 끝났어요.
▶ 자세한 정보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프레스로 참석하였습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2022년 5월 7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계속 진행됩니다.
일부 온라인 상영작도 있어요. 어디 계시더라도 우리 전주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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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람선 두 척으로 인류의 모든 갈등을 소환시키는 괴력
슬픔의 삼각형
왜 이걸 해야 하지? 무명 모델인 칼은 불편한 자리에 있다. 상의를 탈의한 채로 이상하게 서있는 남자들. 칼은 오디션을 보고 있었다. 모델돼서 뭐 하니? 인터뷰 현장에 취재하러 온 의문의 남자는 모델 지망생들에게 비아냥대고 있다. “매일 게이들이 집적대고. 여자 모델의 수입 중 1/3만 떨어지는 게 현실 아니야?” 하지만 이 오디션 참가자들에게 취업의 꿈이란 절실하다. 특히 칼은 더 그렇다.
왜? 칼에겐 여자친구가 있다. 역시 모델인 아야. 칼과는 다르게 아야는 인기가 많다. 유명 브랜드에 초청받아 패션쇼에 참여한 아야. 당당한 표정과 제스처, 걷는 포즈까지 그녀는 처음 보는 사람이 봐도 매력적이다. 아야에게 부족한 남자친구가 되기 싫은 칼. 어디 음식점에 갈 때 아야가 계산하는 경우가 잦았기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러나 이 자존심에 더 스크래치 가는 일이 생겼다. 뭔가 의미심장한 듯한 표정을 짓는 아야. 점점 서로 대화하다 보니 ‘얘가 진짜 나를 사랑하고 있나?’라는 의심이 들었다. 의심이 확신이 되어가는 칼. 아야는 실제로 칼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냥 인스타그램 상에서 인플루언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그런 척 연기한 것이다. 이게 다 돈 문제는 아니야! 체면 구긴 칼. 칼은 아야와 협찬으로 얻은 대형 유람선 티켓에 대해 이야기한다. 탑승객이 된 두 사람. 그리고 그 배 안에 있던 승객들과 직원들은 정말 끝내주게 웃긴 블랙 코미디 한 편을 완성한다.
웃긴 코미디
우선 영화에서 가장 큰 강점으로 뽑고 싶은 부분은 다층적으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후술 하기로 하고, 글쓴이가 두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작품 자체가 웃기다는 점이다. 글을 쓰면서 <웅남이>가 생각난다. <웅남이>는 뭐랄까 내내 정색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박성광 감독이 개그맨 출신 아닌가. 그 개그맨으로서의 경험치를 다 갈어넣어서 ‘이래도 안 웃어?’라고 계속해서 질문하는 듯한 느낌이 별로 맘에 안 들었다. 이 <슬픔의 삼각형>은 장르로서의 코미디를 잘 잡았다. 어떻게 웃길까? 바로 현실을 들여다보는 방식에 있었다.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하는 것은 제목에도 들어간 ‘삼각형’이다. 이 삼각형을 뒤집거나 똑바로 주시하는 것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니까 삼각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즉 시선에 대한 영화가 이 <슬픔의 삼각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똑바로 바라보는 것, 그건 어떻게 들어갔을까? 첫 장면이다. 이게 예고편에서도 자본주의 미소에 대해 다루면서 발렌시아가와 H&M 사이의 온도차를 다뤘다. 또 인분을 직업으로 다루는 사람이 영화에 등장한다. 여기서 ‘나는 똥 파는 사람이오’식의 말장난이 대사로 제시된다. 이 인물은 자본주의에 대한 감독의 코멘트가 들어간 캐릭터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가 사용하는 유머는 이런 것의 연속이다. 기본적인 설정에서 더 나아가 깊은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가령 2부에서 어떤 사람 둘이 대화하는 부분은 감독이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되 어떻게 비틀 것인가를 염두하고 각본을 쓴 티가 났다.
다음은 삼각형을 뒤집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 구조를 뒤집어서 영화를 본다는 의미다. 이 부분은 영화의 강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길게 쓰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의 코미디에 대해 쓸 때 이 장면들이 빠진다면 섭섭하다. 영화는 특정 러닝타임을 할애해서 작품에서 보여준 전반부에서 보여준 모든 세팅을 다 뒤집는다. 이 뒤집기 방식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웃음이 나오는 이유가 된다. 솔직히 감독도 영화 만들면서 킥킥 웃었을 것 같다. 이 부분에 관한 감독의 연출력은 정말 고점 중 고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을 전부 이해해서 일어날 만한 일만 딱딱 골라 이야기를 만들었다.
유람선 두 척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최고 강점은 다방면으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영화가 다룬 쟁점이 굉장히 많다. 첫 번째는 젠더라는 주제다. 사실 이 부분은 굉장히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영화 1부는 그냥 대놓고 ‘칼과 아야’가 주인공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 핵심으로 작동하는 문제는 두 사람의 수입이다. 매일 여자친구 아야가 다 결제하니 자존심이 상한 칼. 왜 상했을까? 영화는 이후 이야기 전개를 통해 '어떤 것이 문제였을까' 코멘트를 하는 듯하다. 또한 영화는 상황의 대비로 ‘왜 이것이 문제고, 이런 일들을 멀리 떨어져서 보면 얼마나 웃기는 짓인가?’를 보여준다. 이 연출 방식을 가만 보면 아이디어부터 특별하다. 남녀 간의 성차별적인 시선, 관습을 조롱하기 위해서 갖고 온 소재가 '모델'이다. 모델은 여성들이 주류가 되어 시장을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 역시 젠더의 관점에서 남녀차별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뭐 여자 형사나 남자 간호사같이 차별적 시선을 다루는 클리셰(?)를 다루지 않았으면서도 모든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이끌고 갔던 감독의 천재성이 느껴진다.
이 연출 방식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 각본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야기가 되게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지점이 있긴 있다. 2부에서 3부로 남아 가는 장면이 그렇다. 그런데 영화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코멘트를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 작품 이해가 더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의 내적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돈 때문에 돌아버려
상황을 대비시켜서 남성주의적인 인류 서사를 뒤집는다. 영화 주인공이 칼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은 인물 간의 가장 중요한 갈등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 젠더라는 소재만큼이나 중요하게 밑줄 쳐져 있는 부분은 더 있다. 우선 인류의 이기심 있다. 나만 잘 살면 남은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라는 그 멘탈리티가 2부에서 3부 지나가는 장면 중 핵심으로 제시된다. 또 계급문제에 대한 코멘트도 돋보인다. 영화의 실질적인 진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에 대한 리액션이 작품에서 흥미롭게 제시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갈등이라고 했을 때 빠질 수 없는 소재가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근현대사 고전 떡밥도 영화가 잘 다뤘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 안에 미국 사회에 대한 탄식과 조롱이 있었고 남녀관계 사이에서 이뤄질 수 있는 상하관계 문제도 있었다는 점은 영화가 색다른 접근법을 보여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이 원인일까 생각하는 것이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대신 2부에서 보여주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조롱이 눈 크게 뜨지 않고 보면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은 다른 관객분들에게 단점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일어나는 극 중 사건은 영화 이야기의 흐름이나 메세지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살짝 현학적인 느낌이 있어서 글쓴이도 살짝 딴생각을 했다. 여러분은 눈 크게 뜨고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과연 세계사의 어느 부분을 꼬집고 있는지 잘 보시길 바란다. 영화가 대사를 정말 잘 썼다고 느끼는 장면이다.
존재와 부재
영화에서 몇몇 인상 깊었던 부분 몇몇은 운동 에너지에 있다. 영화는 아래에서 튀어 오르거나 위에서 아래로 수직낙하하는 이미지를 잘 사용했다. 우선 영화 포스터에 누가 구토하는 신이 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기생충>에서 봤던 장면도 영화에서 보인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윗사람의 존재가 아랫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작품에서 중요하게 묘사된다. 왜? 우디 해럴슨이 맡은 역할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도 영화의 감상 포인트다. 이 사람이 등장하는 선후관계 인물 내적 묘사는 특별하다. 이 역시 사회 시스템에 대한 풍자가 된다는 점에서, 또 후반부에 반대로 우리들의 모순을 꼬집는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 영화의 운동 에너지는 작품을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와도 관련이 있다. 얼마 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라는 영화를 봤다. 글쓴이는 이 '진짜로~'와 <슬픔의 삼각형>이 다르게 느껴진다. 왜? 전자와는 다르게 후자가 뭔가 우화 같은 느낌이 있다. 이 카메라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에 대한 문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보여준 부분이지만 이 <슬픔의 삼각형>에서 더 도드라진다. 옆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느낌? 마치 내가 이 배의 탑승객이 된 듯한 그런 사실감이 아니라 철저하게 거리 두는 채로 이야기를 관람하는 것이다. 이 거리감의 존재는 영화 내내 이 작품이 웃기기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름 좋은 연출방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우화 같은 느낌이란 말을 뒤집는다면 이야기가 만들어진 틀대로 움직인다는 뜻과도 통한다. 그런데 영화 보시면서 그렇게 큰 지장이 되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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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혼돈의 멀티버스 속에서 굳건히 존재하는 미친 가족애
필자가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들을 관람했기에, 대다수의 영화들은 시놉시스나 예고편 정도만 보면 어느정도 스타일이 예상이 가는 편이다.
원래 장르에는 클리셰라는 것이 따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가끔씩, 시놉시스랑 예고편만을 보고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도저히 감이 안 잡히는 영화들이 종종 있다.
이번에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이러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민자 가족 이야기 같은데, 멀티버스라니? 대체 무슨 조합인걸까?
이러한 조합은 상상이 안될것 같지만, 이 영화는 이 조합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뿐만 아니라 정말 흡입력과 매력도 겸비하여 만들어냈다.
이 영화는 멀티버스라는 주제답게 정말 많은 장르와 표현들을 넘나든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호러, 액션, 드라마, 고전부터 통상적인 영화의 형태를 벗어난 실험영화의 형태로도 변주된다.
이러한 방식은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형태를 벗어나 예술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화려하고 세련된 영상미로 오락성도 겸비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존의 영화를 벗어난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보편적인 한가지 주제를 꾸준히 관통하는데, 그건 바로 '가족애' 이다.
이러한 주제가 있기에 앞에서 말한 기존적인 영화에서 벗어나는 많은 요소들이 있음에도 많은 사람에게 편하게 추천드릴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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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장르가 섞였지만, 맛있어요
- 당신에게도 풋풋한 첫사랑 같은 영화가 있나요? 제게는 구파도 감독의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그러합니다. 어느 계절에 떠올려도 첫사랑의 온기가 온전히 느껴지고, 생각만으로 아련한 추억에 잠기는데요. 그 영화의 감독과 배우가 다시 뭉쳤습니다. 판타지 로맨스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입니다.※ 2월 7일(월)에 진행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2022년 2월 9일 국내 개봉했습니다.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Till We Meet Again<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샤오룬'의 이야기로 막을 엽니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저승의 풍경과 죽음 이후의 절차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신과 함께>를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가 그리는 저승의 풍경은 <신과 함께>와는 사뭇 다릅니다. <신과 함께>의 저승이 한 인간의 죄악을 평가하기 위한 무시무시한 7개의 지옥이었다면,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저승은 무시무시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죠.영화 초반부, 죽음과 함께 저승세계에 입문한 '샤오룬'을 인도하는 방식에서부터 이 영화만의 색다른 저승 세계관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죄질을 평가하는 것은 무서운 창을 들고 서 있는 신이 아니라 스캐너가 달린 컴퓨터입니다. 스캐너로 이마와 혀의 바코드로 찍으면 한 인간이 지나온 전생과 이번 생의 공덕이 단번에 저승 컴퓨터로 전송되죠. 환생의 절차를 알려주는 것도 저승사자 따위가 아닙니다. 키치한 분위기의 비디오테이프 영상을 재생해줄 뿐이죠. 이 장면은 잘 만든 B급 영화로 유명한 <남자사용설명서>의 한 장면이 떠오를 만큼 과감하고 색다릅니다. 저승에서 일하며 이번 생의 부족한 공덕을 채우면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스토리와 저승의 대왕인 염라가 며칠은 안 씻은 듯한 꼬질꼬질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 또한 의외였습니다. 저승에서 활개를 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혹여 저들이 저승의 신에게 끌려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들은 조금의 꾸지람조차 듣지 않았습니다. 여태껏 봐왔던 저승은 그만큼 무섭고 음침한 분위기였지만, 이 영화 속 저승은 전혀 그렇지 않았죠.구파도 감독은 무지개별로 떠난 자신의 반려견 '아루'를 생각하며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저승이 조금은 명랑하고 활기차게 그려진 것도, 어떤 식으로든 환생이 가능하게끔 설치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샤오룬'과 '핑키'의 월노 생활, 두 번째는 이승에 남겨진 '샤오룬'의 여자친구 '샤오미'의 인연 찾기, 세 번째는 500년 전 자신을 죽인 동료들을 벌하고자 악귀가 된 '귀무성'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설명 등을 일절 보지 않고 영화를 감상한 저는 보는 내내 흠칫흠칫 놀라곤 했습니다. 세 가지의 이야기가 뒤섞여 진행되다 보니 영화의 장르가 쉴 틈 없이 바뀌곤 했거든요. 판타지 로맨스 같다가도 호러 같고, 스릴러 같다가도 코미디 같았습니다.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방문하신다면, 난데없이 들이닥치는 온갖 장르의 폭격에 당황하실 수도 있습니다.'샤오룬'과 '핑키'의 월노 생활은 웃음이 픽픽 새어 나오는 로맨스 코미디입니다. 이승의 인연을 붉은 실로 엮어주는 월하노인의 임무를 맡은 '샤오룬'과 '핑키'는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면서도 조금씩 진정한 파트너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샤오룬'을 향한 '핑키'의 사랑도 스멀스멀 싹트죠. '샤오미'의 인연 찾기는 절절한 로맨스입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겠다며 사랑을 맹세했던 '샤오룬'이 죽음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샤오미'의 새 인연을 찾아주는 과정은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을 선사하죠. 악귀가 된 '귀무성'의 이야기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호러 스릴러입니다. 이미 환생을 거듭해 전생의 기억이 없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공격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12세 관람가입니다.)그래서 재미가 없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다들 잡탕밥 드셔보셔서 아시겠지만, 잡탕밥은 그 오묘함이 맛의 핵심 아니겠습니까. 여러 가지 장르가 뒤섞여 버렸어도 맛은 있었답니다.⊙ ⊙ ⊙영화를 보다 보면 절로 생과 사를 골몰하게 됩니다. '샤오룬'이 동네 어르신들과 농구를 하다가 별안간 벼락에 맞아 죽었듯이, 어쩌면 저도 이렇게 글을 쓰다가 별안간 건물이 무너져서 죽을 수도 있지요. 요즘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보면 정말 그런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극 중에서도 월노로 활동하는 죽은 자 중에 노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 요절한 청년들이었죠. 이렇듯 죽음은 우리 곁에 매우 가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의 무작위성은 죽음을 두렵게 만듭니다.하지만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가 던지는 '만약'이라는 가정 덕분에 저는 죽음의 두려움을 한 꺼풀 벗겨냈습니다. '만약 죽음이 또 다른 생의 시작이라면? 내가 이미 열 번이 넘는 환생을 거쳐 몇백 년간 존재해왔다면? 사랑, 선의, 그리움 등의 감정이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면?' 이런 즐거운 가정과 함께라면 죽음을 두려워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좀 더 알차게 이 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인생 1회차 인간을 위해 앞으로 죽음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는 영화가 더 많이 더 자주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이라면 마지막 쿠키 영상을 보고 눈물을 훔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의 반려견 '아루'를 생각하며 만든 영화인 만큼,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아루'에게 전하는 소중한 메시지를 쿠키 영상에 담았거든요. 쿠키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시고,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소중한 마음들을 온전히 느끼고 나오시기를 바랍니다.Summary
샤오미(송운화)만 사랑해 온 직진남 샤오룬(가진동), 하지만 청혼하려던 순간 갑작스런 사고로 저승에 간다. 환생하고 싶으면 붉은 실로 커플 매칭을 하는 월하노인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데, 하필 사사건건 부딪히던 핑키(왕정)와 파트너가 된다. 드디어 이승으로 내려온 ‘월하노인’ 샤오룬과 핑키. 그런데 이게 웬 운명의 장난? 우리가 인연을 맺어줘야 할 인간이 샤오룬이 평생 사랑했던 단 한 사람, 샤오미란다! (출처: 씨네21)Cast감독: 구파도출연: 가진동, 송운화, 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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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 나이트> ★★ 초속 5mm
<그린 나이트>
21세기 들어 서서히 소재 고갈에 시달리는 영화계(특히 할리우드)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위기를 타개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널리 팔린 마블-DC 코믹스 기반의 히어로 영화를 만들고, 이미 나와있는 애니메이션을 실사영화로 리메이크하기도 하며, 오랜 설화와 신화에서 소재를 잔뜩 가져다 쓰기도 하죠. 아무렴 잘 닦아놓은 길을 걸어가는 게 머리를 짜내 새로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써서 황무지를 헤쳐나가는 거보다 평가+흥행적으로 훨씬 안정적일 테니까요.
▲ '원탁의 기사'를 소재로 하는 수많은 영화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전설 '원탁의 기사'는 쉴 새 없이 우려먹어도 뽑아낼게 많은 매우 훌륭한 기출 답안이 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 소재로 한 영화만 1년에 최소 1-2편씩 극장에서 매년 개봉하고 있으니 사골도 이런 훌륭한 사골이 없죠.
대충 최근 개봉작 생각나는 것만 해도 <킹 아서: 제왕의 검>(2015),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2017), <왕이 될 아이>(2019), <레드 슈즈>(2019)... 등등 넘쳐나니까요.
▲ 이번엔 A24가 이 전설을 각색했습니다
이번에는 예술영화 전문 제작사 'A24'가 또 이 원탁의 기사 이야기로 <그린 나이트>를 만들어 왔습니다. 정확히는 원탁의 기사 중 '아서 왕'의 친척이자 오른팔인 기사 '가웨인'의 이야기를 들고 말이죠.
참고로 영화는 개봉 이전에 '씨네랩' 초청으로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참석하여 보고 왔습니다. 관계자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 아서왕의 오른팔 '가웨인'의 이야기 <그린 나이트>
<그린 나이트>의 시놉시스
중세 시대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만찬을 즐기고 있는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타난 녹색 기사 '그린 나이트'(랄프 이네슨)가 나타나서 자신의 목을 내리치면 명예를 얻을 수 있지만, 1년 후 똑같이 목을 대야 한다는 게임을 제안합니다. 아무도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데브 파텔)이 이에 응하고 그는 손수 목을 칩니다.
그렇게 1년 후, 그는 연인 '에셀'(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소중한 사람을 등지고 명예를 위해 녹색 기사를 향한 아주 먼 길을 떠나게 되는데...
▲ 녹색 기사를 향한 여정을 담은 <그린 나이트>
★주의★
'영화의 주제와 특징'부분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스포 당하기 싫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부분까지
쭉 넘어가 주시길...<그린 나이트>의 주제와 특징
'중세 기사문학'하면 영웅이 되려는 기사가 모험을 나서서 종국에 영광을 얻고 돌아오는 시나리오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보통은 여기서 괴물이랑 싸우는 처절한 액션+가는 동안 만나는 여자와의 스쳐 지나가는 사랑 등을 이야기하기 마련이죠.영화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린 나이트>는 사실상 이 구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로드무비거든요.
▲ 로드무비 스타일을 따르는 <그린 나이트>
여기서 우리는 이 영화의 제작사 'A24'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A24가 과거에 만든 영화들
할리우드에서 '서치라이트 픽처스'와 함께 예술영화 제작사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A24는 <엑스 마키나>(2015), <플로리다 프로젝트>(2018), <레이디버드>(2018), <미드소마>(2019) 등등 개성 넘치는 수많은 작품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쯤 되면 슬슬 감이 오시겠지만 이 영화는 상업성과 거리가 매우 멀다는 걸 짐작하실 수 있겠죠?
▲ 영화는 상업성과 거리가 매우 매우 멉니다.
영화는 내용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원탁의 기사 중 '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라는 1500년대 장편 시의 스토리를 차분히 따라가죠.
그런데 녹색 기사의 목을 내리치는 순간부터 가웨인의 목을 치는 순간까지의 로드무비 모험극은 흔히 우리가 봐왔던 <반지의 제왕>이나 <왕좌의 게임>시리즈와는 결이 많이 다릅니다... 아니다. 하나도 같은 점이 없다고 봐도 무리가 없죠.
▲ 우리가 주로 보는 판타지 영화와 결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 <그린 나이트>
기껏 성수까지 뿌려준 방패는 10분 만에 써보지도 못하고 두 동강 나고, 모험을 나선 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가웨인은 칼이나 도끼를 단 한 번도 똑바로 휘두르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액션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도 없고, 당당함과 자신감이 넘쳐야 할 기사의 얼굴에는 근심과 서러움 만이 가득합니다.
계속 보다 보면 작중내내 가웨인 입가에 제대로 된 미소란 찾아볼 수 없는 데다, 날강도들에게 물건을 다 털리거나 독버섯 먹고 죽기 직전까지 가는 등... 이게 무슨 기사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게 됩니다.
처음엔 왜 이렇게 영화가 전개되는 건가 당황스러웠는데, 생각을 좀 해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군요.
▲ 일부로 주인공 심리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장치들
서양권 교도소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Dead Man Walking"
감옥의 사형수가 전기의자로 걸어갈 때 하는 말이죠.
마찬가지로 작중 인형극으로 수없이 언급되듯이 가웨인은 영웅이 되러 가는 게 아니라 죽으러 가는 게 너무나 명확하니까 고의적으로 이런 심리 상황을 영화로 진득하게 표현한 게 아닐까 싶더군요.
▲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는 너무 느~립니다
사람은 죽기 직전에 주마등(파노라마)처럼 인생이 스쳐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만큼 시간이 왜곡돼서 흘러간다고 하죠. 이를 반영했듯이 영화의 흐름은 아~~~주~~~느~~~리~~~게 전개됩니다. 마치 작중에 수없이 보여진 녹색 식물이 자라듯, 초속 5mm 정도로 천천히 전개되죠.
영화는 대충 잔가지 다 치고 썰 풀면 5분 안에 설명할 내용을 러닝타임으로 130분으로 늘렸고, 덕분에 감독 '데이빗 로워리'가 이걸 의도했든 안 했든 엄청나게 영화는 길게 늘어집니다.
▲ 일반적인 대중의 시선으로는 좋은 평가 주기 어렵네요.
늘어진 수준이 얼마나 지나치면 최소한 원작인 원탁의 기사 내용을 아는 사람이나 이런 영화에 익숙한 평론가라면 가웨인에 감정을 이입하면서 꽤 좋게 볼 수 있겠으나, 그런 기본 배경이 없는 일반인들은 '이게 뭐야?'하면서 황당해 할 정도입니다.
저도 웬만하면 예술영화 특성상 긍정적으로 봐주려고 했는데 이건 정도가 심해도 좀 많이 심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졸린 영화 만들어 놓고 예술영화라고 주장하는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 여러모로 기법이 훌륭하긴 한데...
그나마 중간중간 적절히 패닝(Panning)-롤링(Rolling) 등을 활용한 여러 가지 훌륭한 촬영기법과 끊임없이 현란한 색채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껏 살린 건 정말 좋았습니다. 이 점 덕분에 데브 파텔의 연기력이 더 부각되는 면이 있는 건 덤이고요.
그러나 이런 장점까지 종합해도 일반적인 관객들에게 합격점 맞기는 쉽지 않을 거 같네요.
▲ 종합적으로 잘 만들었으나 재밌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린 나이트>를 보고..
<그린 나이트>는 분명 잘 만든 영화입니다. 중세 시대 전설인 가웨인의 심리 변화를 중심으로 아주 천천히 전개된 영화는 연기, 촬영, 연출의 의도성 면에선 충분히 박수받을만합니다.
하지만 '잘 만든 영화'랑 '재밌는 영화'는 완전히 별개죠. 이건 흔히 볼 수 있는 재밌는 판타지 영화를 생각하면 제대로 뒤통수 맞을 수준입니다.
▲ 평가 꽤나 심각하게 나뉠 거 같네요.
이거 호불호 좀 심각하게 갈릴 거 같은데, 전 불호에 더 가깝습니다. 아직 제 뇌 속 평가 기준은 비평가보단 관람객과 일반 대중들에 더 가까우니까요.
게다가 영화가 다 끝날 때쯤(여우가 갑자기 말하는 시점)에 앞쪽에서 고개를 옆으로 숙인 채 졸고 있던 아저씨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개인적으로 <그린 나이트>를 섣불리 주위 사람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당신은 기사가 아니에요"
<그린 나이트>
★★
초속 5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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