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11-19 07:29:47
시들어가는 영화의 운명에 대한 거장의 사색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
〈벌집의 정령〉, 〈클로즈 유어 아이즈〉
〈벌집의 정령〉(1973)에서도, 〈클로즈 유어 아이즈〉(2024)에서도 주인공은 눈을 감는다. 과거, 꿈, 기억에 조용히 침잠한 무언가를 환기해 현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벌집의 정령〉에서 어린 소녀 아나는 영화에서 본 프랑켄슈타인을 만나고 싶어 하고, 그런 아나에게 언니는 눈을 감고 정령을 부르면 그의 유령과 대화할 수 있다고 언질한다. 아나가 발 디딘 시공간은 파시스트이자 쿠데타 세력의 수괴인 프랑코가 좌파, 공화파, 아나키스트의 연합 정부를 무너뜨리고 승리를 거둔 스페인의 어느 시골 마을이다. 독버섯을 짓밟고 질서정연한 벌집의 세계에 몰입하는 아버지, 즉 프랑코의 분신이 곳곳에서 힘을 갖고 군림하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아나는 가족의 눈을 피해 계속 괴물 프랑켄슈타인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마침내 반反프랑코 세력 군인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에게서 괴물의 정령을 읽어낸다. 그러나 파시스트의 세계에서 ‘괴물’과의 교감은 ‘반역’이다. 아버지는 신속하게 아나를 원래 세계로 되돌려놓고, 의사는 시간이 지나면 아나가 그 충격적인 경험을 잊을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이렇게 〈벌집의 정령〉은 영화가 열어젖힌 가능성을 프랑코 치하 스페인의 암울한 현실에서 꽃피워내는 동시에, 일상에 녹아든 파시즘으로 그 가능성이 어떻게 폐제되는지를 보인다.
구체적인 시공간은 바뀌었지만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도 ‘눈’을 매개로 한 영화적 각성은 반복된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미겔은 과거 자신의 영화 〈작별의 눈빛〉의 주연이었으나 촬영 중 실종된 훌리오를 추적해보자는 탐사 프로그램의 제안을 받는다. 실종 후 무려 22년이 지난 때였다. 실체는 사라지고 소문만 무성하게 남은 훌리오. 미겔은 결국 한 정신병원에서 자신이 가르델이라고 알고 있는 훌리오를 만난다. 여기에는 앎의 엇갈림이 있다. 미겔은 지난 22년 동안 가르델로 살아온 훌리오의 삶을 알지 못한다. 함께 보낸 가르델 이전의 시간만 기억한다. 반면 병원 관계자들은 가르델이 훌리오로 살던 시절을 알지 못한다. 자신들과 함께한 시간만 안다. 이 엇갈림에서 미겔은 과거 훌리오가 출연한 영화를 함께 봄으로써 잠든 훌리오의 영혼을 깨우고자 한다. 아나가 눈을 감고 ‘괴물’의 정령에 접속했듯 영화를 본 훌리오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영화는 그 감긴 눈 안에서 훌리오/가르델의 엇갈림이 해소될 것임을 암시한다.
스페인의 빅토르 에리세는 국제적 거장으로 인정받는 영화감독이지만 1973년 〈벌집의 정령〉으로 데뷔한 이후 지금껏 단 네 편의 장편만 만들었다. 영화 한 편 한 편에 어마어마한 공력을 넣는 감독인 것이다. 데뷔작의 메타포(눈을 감는 행위와 영화로 가능해지는 것들)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창한다는 점, 그리고 그 마테포가 유전히 유효하고 감동적이라는 점에서는 예술가로서 그의 재능과 의지, 역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사이 영화의 위상은 변했다. 아나에게 그러했듯, 영화는 수많은 사람에게 감각과 상상력의 확장을 선물하며 분출하는 용암처럼 성장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포화의 지점을 맞이했다. 현재 영화는 동시대 콘텐츠 플랫폼의 문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웃 장르와 극심한 경계 갈등을 겪는 중이다.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매력, 즉 ‘영화적 순간’에 대한 예찬은 소수의 마니아에게만 고착되고 있는 듯도 하다.
영화를 사랑하는 빅토르 에리세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동시대 영화의 위기를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벌집의 정령〉에서 마을 아이들은 영화 필름을 실은 트럭을 격하게 반긴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틀어줄 거냐며 들뜬 목소리로 물으면, 영화관 관리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대단한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라며 으스댄다. 수용자와 공급자 모두 영화라는 단어에 지극한 설렘을 느끼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미겔은 〈작별의 눈빛〉을 완성하지 못했다. 훌리오의 기억을 찾기 위해 영화를 상영하는 장소는 폐업한 극장이다. 그러니까, 미지의 무언가와 조우해 자기 삶과 감정, 기억을 증폭시켜 세계를 확장하는 수단으로서의 영화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미겔처럼 특별한 목적을 갖고 문을 닫은 극장 주인을 설득해 먼지 쌓인 상영관을 찾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론 여기서 ‘영화’는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 즉 눈을 감으면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리는 통로로서의 영화다. ‘영화의 위기’에 누군가는 여전히 수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있다고 항변하겠지만, 그런 영화는 빅토르 에리세에게 영화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동시대 영화의 음울한 현실과 공명한다. 이 영화가 〈벌집의 정령〉 때 영화가 가졌던 위상을 그리워하는 향수로 은밀히 채워져 있는 이유일 것이다. 아나와 ‘괴물’의 교감이 꺾이고 마는 〈벌집의 정령〉이 슬프면서도 묘한 희망을 전하는 데 반해, 결국 훌리오가 기억을 찾을 듯 보이는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기쁘면서도 어딘가 우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50년의 세월을 거슬러 ‘눈’이라는 통로로 영화의 가능성을 모색한 두 영화는 1970년대에는 희망적인 감동을, 2020년대에는 지나가 버린 영화의 전성기에 대한 아릿함을 선사한다. 그래서다. 내게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시들어가는 영화의 운명에 대한 거장의 사색처럼 보인 것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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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가 아니어도 박스오피스 1위한 이 배우
액션 전문 민머리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작은 민머리를 맡고 있는 제이슨 스타뎀은 <트랜스포터> 시리즈부터 <메카닉>까지 액션배우로서 꾸준히 활동하던 중 2013년, 시리즈 제 6편인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에 합류하였는데요. 시리즈 제 6편은 역대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흥행작이었고, 제이슨 스타뎀 역시 액션 스타로 완벽히 자리매김하며 ‘흥행 보증 수표’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노의 질주> 스핀오프작인 <분노의 질주: 홉스&쇼>에서 드웨인 존슨과 완벽한 콤비를 선보이며 시리즈 한국 최고 관객을 끌어냈는데요. 하지만, 본편인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에는 출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2021년 여름, 다른 작품으로 극장가를 찾았다고 하는데요! 5월 7일 북미에서 개봉한 케이퍼 무비 <캐시 트럭>은 개봉주 주말에만 9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며 할리우드 여름 시장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당초, 북미 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여름 시장에 불을 지펴줄 것이라 기대했던 마블의 <블랙 위도우>가 7월로 개봉을 미뤄 아쉬움을 샀는데요. 2020년 이후 최대 기대작이라 꼽히는 <블랙 위도우>가 개봉하기 전, 5월 19일 한국에서 최초 개봉될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에 이어 5월 26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최초 개봉될 디즈니의 <크루엘라>, 그리고 6월 말 게 될 <콰이어트 플레이스 2>와 <킬러의 보디가드 2>까지 많은 영화들이 여름 시장의 불씨를 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 미디어 분석가에 따르면, 할리우드의 여름 시장은 텐트폴 영화인 <크루엘라>와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개봉하는 5월 28일 이전까지는 크게 타오르기는 힘들 전망이라고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팬데믹 이후 아직 회복되지 않은 박스오피스를 뚫어낸 <캐시트럭>의 약진이 의미가 크다고 합니다. 특히, 이번 <캐시트럭>의 흥행은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5월 31일) 연휴 시장을 위한 도화선이 되어주었습니다.
백신 접종과 함께 뉴욕을 시작으로 L.A까지 점차적으로 규제가 완화되며 개봉을 미뤄오던 많은 신작들이 개봉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요. <고질라 vs. 콩>과 <극장판 귀멸의 칼날>의 흥행이 이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액션 전문배우 '제이슨 스타뎀'의 복수극 <캐시트럭> (원제 : Wrath of Man)은 팬데믹 아래 개봉했던 워너브라더스의 <고질라 vs. 콩>과, 디즈니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 각각 자사 스트리밍 플랫폼 HBO Max와 디즈니+에서 동시 개봉한 것과 달리, 전통적인 극장 개봉을 따랐는데요.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을 보유하지 않은 MGM사의 영화였기에, 극장에서 단독 개봉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제이슨 스타뎀'의 죽여주는 액션을 그리던 팬들은 자연스레 극장으로 향한 것입니다.
시네마스코어 A- 를 기록한 <캐시트럭>은 캐시트럭을 노리는 거대 강도 조직에게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현금 호송 회사에 위장 취업 후 처절한 응징을 예고하는 액션 영화로, 관객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렬한 복수 액션이 눈길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찐 액션배우와 허당 매력을 넘나들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제이슨 스타뎀과 <알라딘>으로 1200만 관객을 모은 가이 리치 감독은 데뷔작을 함께한 사이인데요. 1998년,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로 데뷔한 그들은 이후 <스내치>, <리볼버> 등 여러 작품에서 함께해온 '콤비'입니다. 이런 그들이 15년만에 뭉친 이번 영화는 5월 10일 중국 개봉을 통해 '대박'을 기대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국내에서는 <분노의 질주>보다 늦게 극장을 찾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캐시트럭>의 흥행으로 인하여 오랜만에 북미 박스오피스 순위 변동이 있었는데요. 3주동안 불타올랐던 <귀멸의 칼날>이 한 단계 하락한 2위에 안착했고, 한국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한 <모탈 컴뱃>이 3위를 기록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두 영화가 꾸준히 관객을 모으며, 2020년 3월 팬데믹 이후 북미에서 가장 큰 매출을 올린 영화 <고질라 vs. 콩>을 위협하고 있는데요. 역대급 흥행을 기록하며,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귀멸의 칼날>의 흥행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자료 출처 : BoxOffice Mojo, Comscore
극장이 조금 더 활기찬 여름을 맞이할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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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멸이 예정된 두 모성의 사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이 태어나기 172년 전, 칠왕국의 왕 '비세리스 타르가르옌(패디 콘시딘)'은 아들이 태어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나 왕비 '아엠마 아린(시안 브루크)'는 출산 중에 사망하고, 갓 태어난 아들도 곧이어 세상을 뜬다. 이에 비세리스는 야망 가득한 다혈질 동생 '다에몬(맷 스미스)'의 반발을 무시한 채 유일한 딸 '라에니라(에마 다시)'를 후계자로 임명하고, 가문의 비밀인 '약속된 왕자'에 관한 '얼음과 불의 노래'를 들려준다. 몇 년 뒤, 비세리스는 라에니라의 소꿉친구이자 절친이었던 '알리센트 하이타워(올리비아 쿡)'와 재혼하고, 그들 사이에서는 왕의 장남 '아에곤 2세(톰 글린-카니)'가 태어난다. 이에 칠왕국은 왕의 공인을 받은 후계자이자 장녀인 라에니라를 지지하는 '흑색파'와 왕의 적자이자 장남인 아에곤 2세를 지지하는 '녹색파'로 분열된다. 이렇게 왕국과 대륙의 운명을 건 거대한 전쟁 '용들의 춤'이 발발한다.
HBO 오리지널 드라마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성황리에 첫 시즌을 마쳤다. 8월 21일에 공개된 첫 화는 당일 북미 시청률만 천만 명에 육박했고, 마지막 회는 9천만 명이 시청했다. 전작인 <왕좌의 게임>의 각 시즌 피날레 시청률을 압도하는 엄청난 흥행이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실망을 안긴 <왕좌의 게임> 때문에 기대감이 낮았기에 더욱 놀라운 결과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판타지 드라마 <반지의 제왕: 힘이 반지>를 압도한 건 덤이다. 그 원동력은 흥미롭게도 꽤나 고전적이다. 예정된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두 주인공의 비극, 특히 두 여성의 운명적인 비극이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왕과 왕자가 아닌 공주와 왕비의 이야기, <하우스 오브 드래곤>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는 <왕좌의 게임> 못지않게 수많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주인공 감으로 손색없는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눈에 띄는 주인공을 꼽으라면 당연히 라에니라 타르가르옌과 알리센트 하이타워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세계의 질서와 관습에 도전하는 여성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 파멸하는 여성의 서사시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왕좌의 게임> 버전 <선덕여왕>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라에니라와 알리센트는 주위에 가득한 수많은 남성 사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여성적인 리더십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이들의 리더십은 그 남자들이 칠왕국을 분열과 붕괴로 이끌 획책을 꾸미고 있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우선 라에니라의 옆에는 다에몬이 있다. 선왕인 비세리스 1세의 동생이고, 라에니라의 숙부이자 남편인 다에몬 타르가르옌은 용의 불같은 성질로 악명이 높다. 형의 서거 직후 공인된 후계자인 라에니라의 왕위를 녹색파가 찬탈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즉각적인 선전포고와 수도를 향한 포위 공격을 주장한다.
한편 알리센트의 옆에는 아버지이자 왕의 수관인 '오토 하이타워(리스 이판)'가 있다. 그는 왕비인 알리센트 몰래 그녀의 장남이자 자신의 외손자인 아에곤을 왕위에 올릴 공작을 꾸민다. 또 후계 구도에 필연적인 위협이 될 라에니라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여성의 리더십을 부각하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두 여성은 각자의 진영에서 가장 이성적인 리더로서 상황을 통제한다.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정세를 읽고, 마지막까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라에니라는 왕이 후계자에게만 직접 알려주는 왕가의 비밀을 무기 삼아 다에몬의 폭주를 제지한다. 왕의 동생이자 후계자의 부군인 다에몬은 라에니라 못지않게 철왕좌에 가까운 인물이다. 하지만 라에니라는 다가올 겨울과 약속된 왕자에 대한 '얼음과 불의 노래'의 존재를 다에몬이 모른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주도권을 빼앗아 온다. 아무리 혈연적으로 왕좌에 가깝다 하더라도, 왕의 자격이 그에게 없음을 일깨운다.
항상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던 알리센트도 녹색파와 흑색파의 전면전이 눈앞에 다가오자 리더의 면모를 보여준다. 행방이 묘연했던 아에곤을 오토보다 먼저 찾아내 그의 음모를 좌절시킨다. 타르가르옌 왕가의 가장 큰 어른이라 할 수 있는 알레니스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타협안을 제시한다. 라에니라가 목숨을 건 정적이 되어 버린 순간에도 어릴 적 둘도 없는 친구였던 추억을 상기시키며 마지막까지 전쟁을 피해보려고 애쓴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갈등, 권력 투쟁일 수 있었던 두 절친의 대립에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여성 리더십이 실패한 이유, 모성애
아이러니하게도 분쟁을 막아보려는 필사적인 여성적 리더십은 피비린내 나는 왕위 쟁탈전의 서막을 알리고 만다. 그들의 통솔력이 그 자체로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그들이 딛고 서 있는 발판의 근본적인 한계까지는 가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모성애라는 왕비와 공주의 공통분모가 왕국을 절반으로 쪼갤 전쟁을 유발하는 결정적 원인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알리센트는 라에니라가 공인된 후계자로서 왕위를 계승한다면 자신이 낳은 아들들이 모두 정치적 이유로 죽거나 탄압받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라에니라에게는 이미 아들들이 있으니, 왕위 계승 구도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라에니라가 배다른 동생들을 숙청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무조건 왕좌를 가져와야 한다.
라에니라의 판단도 다르지 않다. 이미 자신의 아들들이 사생아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서 정치적으로 위협을 느끼던 그녀는 아에곤이 왕이 될 경우 곧장 숙청될 수 있다는 위협을 직감한다. 그런데도 그녀는 가능한 전쟁을 피하려고 애쓴다. 심지어 녹색파가 왕의 소협의회와 수도를 모두 장악하고, 아에곤을 일방적으로 왕위에 올린 후에도. 그녀는 가급적 평화적인 방식으로 자신이 지지 세력을 규합한 후 계승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할 뿐이다. 하지만 사절로 떠났던 차남 루케리스가 녹색파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결국 다음 시즌에서 본격화될 흑색파와 녹색파의 전면전을 예고하고 만다. 다혈질인 다에몬의 충동까지 이성적으로 자제시키는 데 성공했던 그녀였지만, 결국 그녀의 이성도 모성애를 통제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중요한 건 모성애가 결국 혈육에 대한 애착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모성애는 끝내 라에니라와 알리센트의 발목을 잡는 고질적인 문제다. 모성애는 결국 피로서 이어지는 관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그들이 패망하는 근본적인 원인 바로 혈연이기 때문이다.
피에만 의존하는 이들의 사투
라에니라 개인은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왕가의 일원이자 정치인으로서 라에니라는 그렇지 않다. 그녀의 힘은 온전히 피에서 비롯된다. 장녀이자 공인된 후계자라는 명분을 제외하면 그녀에게 왕의 자격은 없다. 칠왕국에서 가장 힘이 강한 가문 중 하나인 발레리온 가문을 포섭하는 데 성공한 것도 타르가르옌과 발레리온 가문 간의 혈연관계에 기댄 바가 크다. 그녀가 다에몬의 폭주를 막을 수 있었던 이유인 '얼음과 불의 노래'도 존재 자체로 핏줄의 상징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왕에 걸맞은 통치력, 지도력, 정치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그러니 다른 대가문을 포섭할 때도 그녀는 혈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아버지의 권위로 만들어낸 과거의 맹세를 상기시켜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내려 한다. 혼인을 통한 동맹이라는 녹색파의 열매에 비하면 결코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 없다.
알리센트도 핏줄에 얽매어 상황에 끌려다닌다. 초반부에는 아버지 오토의 졸에 불과해 보인다. 그녀는 아버지의 명령에 충실한 딸이 되기 위해 아내와 사별한 비세리스 1세에게 접근한다. 한 번도 원한 적은 없지만 왕을 유혹해 왕비가 되고, 끝내 새로운 후계자가 될 왕자들을 낳는다. 알리센트는 왕가의 외척이 되어 자신의 피를 받은 왕을 만들고자 하는 오토의 도구에 불과하다. 또 비세리스 1세가 죽은 뒤 오토의 공작을 저지한 후에도 다르지 않다. 라에니스가 지적했듯이, 그녀는 핏줄 때문에 다시 주도자가 될 기회를 놓친다. 경쟁자를 제거하고 장남인 아에곤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결국 알리센트는 훌륭한 딸이자 엄마였을지는 몰라도 자신을 둘러싼 외적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라에니라와 알리센트는 '왕좌의 게임'에서 처절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게임의 규칙은 두 개다. 왕좌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또 왕에게서 후계자로 넘어가야 한다. 라에니라는 후자에는 해당되더라도 전자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신의 능력이나 힘 대신 아버지로부터 받은 피의 권위에 의존해 왕좌를 요구한다. 알리센트도 마찬가지다. 아에곤은 전자에는 해당되나 후자의 조건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의 이유만을 앞세워 또 다른 정당성을 확보한 정적을 제거하려 한다. 완전히 다른 판에서 새로운 규칙을 내세워야 할 이들이 누구보다도 혈통이라는 기존 규칙을 따르기에 급급하다. 결국 이 굴레를 끊어내지 못하는 이상 두 여자는 원작대로 대부분의 아이를 잃고 죽거나 죽을 때까지 유폐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끝내 자신들을 파괴할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는 듯하다.
왕실의 비극을 보여주는 방식 역시 인상적이다. <왕좌의 게임>의 후반부 시즌에서 '하드홈 전투', '서자들의 전투', 바엘로르 대성소 폭파 장면 등을 연출한 바 있는 미겔 서포크닉 수석 감독의 역량이 온전히 발휘된 듯 보인다. 우선 설명이 아닌 묘사에 초점을 맞춘 연출이 두드러진다. <왕좌의 게임>과는 다른 시대적 환경과 인물 및 가문들의 관계를 내레이션 등을 활용해 읊지 않는다. 라에니라, 다에몬, 비세리스 1세에 집중하여 그들의 상호작용 안에서 타르가르옌 가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 기회가 나면 새 가지를 내어 하이타워 가문과 벨라리온 가문 등 다른 캐릭터들의 서사도 하나하나 덧붙여 간다.
이로 인해 사실 자칫 호흡이 느려지거나 템포가 끊길 수도 있었다. 다만 애초에 왕실의 비극을 다루는 작품이다 보니 시대극다운 웅장함과 결연함, 비극으로 향하는 인물들의 우수를 세밀하게 담는 게 실보다 득이 클 것이라 판단한 듯 보인다. 또 단점을 상쇄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성과를 거두면서 우려는 기우에 그친다. 드래곤의 존재가 대표적이다. 타르가르옌 왕조의 전성기답게 수많은 드래곤이 개성적인 외양을 뽐내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액션 시퀀스나 협상 장면 등 적재적소에 등장하여 순간적으로 극의 흐름을 휘어잡기도 한다. 징검돌 군도 전쟁과 같은 이벤트도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어지면서 정치극에 부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 2는 이미 제작이 확정됐다. 다음 시즌의 과제는 적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다음 시즌에서는 스타크 가문의 크레간 스타크를 비롯한 더 많은 캐릭터, 더 많은 전투 시퀀스와 액션씬이 등장해야 한다. 주인공들의 감정선도 한층 더 복잡해지고 깊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시즌 1의 완성도를 보았을 때,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왕좌의 게임>의 전철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 시대적 흐름을 담으려는 야심과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한 우수가 뒤섞인 웅장하고 결연한 사극 판타지를 거부할 팬들은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시대적 변화를 담으려는 야심과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한 우수의 만남. 이보다 완벽한 출발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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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은 킥, 영화는 후킹!
음식에서 킥(kick)은 기본적인 맛에 자극을 더해주면서 전체적인 요리의 풍미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영화에서 후킹(hooking)은 초반에 관객의 관심을 강하게 끌어들이는것을 의미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킥'이 중요하고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면 '후킹'이 중요하죠.
오늘은 킥과 후킹 모두를 잡은 맛도리 영화들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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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산어보> 믿고 보는 이준익, 사극, 흑백의 조화
정조의 총애를 받던 '정약전(설경구)'은 그가 죽고 터진 신유박해와 황서영 백서 사건으로 인해 외딴섬, 흑산도로 유배된다. '동생 정약용(류승룡)'과 이별한 슬픔에 빠진 그의 눈에 문득 글공부를 하는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가 들어온다. 어류와 조개류, 해초류와 바닷새들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꿰뚫고 있는 그를 보면서 약전은 오랜만에 호기심이 샘솟는다. 이에 그는 창대에게 서로의 지식을 거래하자고 제안하고, 죄인을 도울 수 없다던 창대도 못 이기는 척 동의한다. 갈등을 빚다가도 좋은 추억을 쌓으면서 사제의 연을 맺는 둘. 그러나 서로 추구하는 공부와 학문의 길과 목표가 다르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창대는 약전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흑산도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한다.
이준익 감독은 한국사를 영화화하는 데 특출난 능력이 있다. 그의 영화는 통념을 벗어나는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생존을 위해 전쟁을 펼치는 장면을 담은 <황산벌>, 무정부주의자와 일본인의 독립운동을 다룬 <박열>은 민족주의적 시각을 배제한다. 또 그의 영화는 주로 조명되지 않았던 개인들의 이야기와 관계를 스크린으로 불러온다. <왕의 남자>에서는 연산군, 장생, 공길의 미묘한 애정, <사도>에서는 정치투쟁과 권력 다툼 기저에 깔린 애증의 부자관계를 들여다본다.
<자산어보>에서도 그의 능력은 빛난다. 우선 사극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세상 물정 모르고 이상향을 꿈꾸는 양반(혹은 귀족) 주인공과 현실의 냉혹함을 일갈하는 백성의 구도를 탈피한다. 약전이 조선 사회의 한계를 체감하고 현실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에 비해 창대는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의 가르침을 직접 실천하려는 이상주의적 태도를 보여준다. 자연주의적, 경험주의적 관점에서 실학을 추구하는 약전과 달리 창대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존재와 의미를 탐구하는 추상적인 성리학을 추구한다. 이는 입에 '상놈'이라는 표현이 붙어버린 양반과 물고기만 잡던 상민의 만남으로부터 흔히 기대할만한 구도는 아니다.
또한 신유박해, 황사영 백서 사건, 세도 정치와 같은 굵직한 사건은 철저히 배경으로 밀려난다. 대신 흑산도로 시선을 돌려 정약용이라는 동생의 이름에 가려진 정약전과 신분의 벽에 막혀 역사에 몇 줄 남기지 못한 창대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영화는 이들의 서사를 정반대로 흐르는 물결 위에 띄어 놓는다. 약전은 뛰어난 학식을 지녔으나 천주교를 믿었던 과거가 빌미가 되어 신유박해와 황사영 백서 사건의 가담자로 몰려 옥고를 치르고 유배를 떠나 흑산도로 향한다. 반대로 창대는 흑산도에서 육지로 나가 뛰어난 학식을 인정받고 꿈에 그리던 벼슬길에 나가지만 이내 옥고를 치른다. 이처럼 상반된 인생이 흑산도에서 조우한 결과, 둘이 우여곡절 끝에 사제 간의 연을 맺는 과정과 끝은 행복, 뿌듯함, 연민, 안타까움 등을 자아낸다.
이때 영화 전반에 걸친 백과 흑의 조화는 상반된 태도 사이에서 스승과 제자가 공유하는 접점을 강조한다. 흰색은 둘이 맛본 실패의 경험을 함축한다. 흰 옷이 대표적인 예시다. 함께 자산어보를 완성하자는 스승의 제안을 무시하고 뭍으로 나간 창대는 유달리 새하얀 옷을 입은 채 백성을 우선하고 부패를 근절하려는 목민관의 이상향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지방관과 아전들의 탐욕과 부패를 막으려던 그는 이내 상관의 심기를 거슬러 옥에 갇히고, 그의 옷은 더럽혀진다. 그렇게 더럽혀진 그의 흰 옷은 만민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꿈꿨지만 실현시키는 못한 약전이 흑산도에 첫 발을 내딛을 때 입은 옷과 겹쳐 보인다. 창대가 직접 생선의 배를 갈라서 연구하는 약전에게 흰 옷을 더럽히면서까지 양반이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물었던 것과 이어 보면 묘한 울림을 주며, 조선의 지배층이라는 집단에 대한 실망을 표한다.
한편 흑은 현실의 벽에 막힌 두 사람의 이상적인 시도를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다. 시대라는 파도를 타는 개인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며,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경험으로 승화한다. 약전은 창대가 자신처럼 이미 부패한 관료제를 개혁하지 못할 것임을 안다. 창대가 끝까지 신뢰의 끈을 놓지 못한 성리학이 더 이상 한 국가의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오징어) 먹물을 취하여 글씨를 쓰면 색이 매우 윤기가 있다. 그러나 오래되면 벗겨져서 흔적이 없어진다. 바닷물에 넣으면 먹의 흔적이 다시 살아난다고 한다. 그 뼈는 곧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 살이 나게 한다"면서 제자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그가 자신에게 전해준 지식을 목숨을 다해 책으로 묶는다. 이는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하지 않는 자산 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있지 않겠느냐"는 스승의 유언을 본 창대의 눈물 속에 담긴 참회, 후회, 반성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지는 이유다.
흥미로운 것은 흑백영화인 이 작품에 순간적으로 색채가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는 사실이다. 스크린에는 파란색이 순간적으로 세 번 등장한다. 한 번은 별이 비치는 밤하늘이 검푸른 빛을 띠고, 또 한 번은 성게를 비롯해 새조개, 누비 조개, 새꼬막 등에서 새끼 새가 나온다는 약전의 내레이션과 함께 작은 파랑새가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푸른 바다에 자리 잡은 흑산도의 풍경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영화를 끝낸다.
이때 가장 눈길이 가는 존재는 파랑새다. '자산어보'가 철저한 관찰과 자료 조사를 통해 집필된 책인 만큼, 바다 생물이 새로 변한다는 설명은 생뚱맞기도 하고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신화적인 상상력에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신화가 현실의 대안으로써 사람들 사이에서 생명력을 유지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파랑새에는 창대와 약전의 꿈과 바람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을 구속하는 바닷일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어서고자 하는 한 청년의 의지와 희망, 과거의 자신과 같은 꿈을 꾼 청년에게 전하는 앞 세대의 격려와 응원이 파랑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첫 장면은 창대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되찾는 순간이며, 마지막 장면은 두 사람의 꿈과 희망이 단지 과거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지금의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파란색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의 서'를 쓴 중세 화가 첸니노 첸니니가 "다른 모든 색을 뛰어넘는 빛나고 아름답고 완벽"하며 "여전히 독보적으로 뛰어난" 색이라고 평가한 파란색의 진가가 흑백을 뚫고 드러난다. 이렇게 <자산어보>는 백색에 담긴 실패와 비관, 흑색에 담긴 낙관과 깨달음을 거름 삼아 파란색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며 창대와 같은 이에게 힘을 보탠다.
<자산어보>를 보다 보면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특히 <동주>가 뇌리를 스치는 순간이 적지 않다. 단지 흑백영화라서가 아니다. 모순된 시대를 서로 달리 바라보는 정약전과 창대의 사제관계는 독립운동에 대해 가치관의 차이를 보여줬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우정을 보는 듯하다. 이에 더해 윤동주의 시인의 시가 흑백의 필름을 수놓으면서 마치 시집을 영상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것처럼, <자산어보>도 정약용과 정약전, 그리고 창대의 한시가 어우러지며 한 편의 수묵화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수묵화는 <동주>와 또 다른 멋이 있다. 배우들의 표정, 제스처, 연기는 물론 영화 속 배경이 되는 공간으로부터도 뿜어져 나오는 힘까지 흑백 필름과 찰나의 파란색에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안개로 뒤덮인 섬으로 향하는 정약전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씁쓸함과 고독함, 검은 하늘에 홀로 떠 있는 달을 바라보며 서로를 그리워하는 형제의 우애, 약전에게 학문을 배우려는 절실함과 열정을 증명하려는 창대를 괴롭히는 거친 바다가 담겨 있다. 이처럼 역사에 희미하게 남은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가 스크린 위에 담백하게 펼쳐지자 그들의 고동소리는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크고 감동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시대에 가려진 개개인의 아픔과 희망을 흑, 백, 청 삼색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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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리뷰] 키싱부스
넷플릭스에서 유명한 하이틴 영화들이 몇 개 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키싱 부스 등등. 하이틴 영화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에는 나름의 이유는 있지 않을까 싶어 보았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예전에 후기를 남긴 적이 있고, 키싱 부스는 출퇴근 때 가볍게 보기 좋았다.
하이틴 영화에 늘 나오는 관계답게 주인공인 엘과 엘이 짝사랑하는 노아는 이루어지면 안 되는 사이다.
노아는 엘의 오랜 절친인 리의 형으로 엘과 리는 친한 친구의 법칙으로 서로의 가족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하게 엘은 노아를 짝사랑하고 노아도 알고 보니 엘을 짝사랑한다. 미국 하이틴 영화에서 늘 나오듯 남자 주인공은 싸움만 하고 여자관계가 복잡한 문제아지만(그런데 하버드를 간다.) 여주인공은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이다. 여느 영화와 똑같이 축제나 자선행사 같은 이벤트가 벌어지고 그 와중에 여주인공에게 위해가 되는 사건사고가 발생한다. 그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등장하는 백마 탄 왕자가 노아다. 그러니 둘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대외적으로 사귀는 사이임을 공표하지 못한다. 리의 존재 때문이다.
엘과 노아의 관계만큼이나 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친구와의 관계이다. 엘은 리에게 "사실 너의 형과 사귀고 있어. 너와의 약속은 깨버렸어."라고 말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계속 리에게 관계를 숨기지만, 우리 모두 이 노래의 끝을 알고 있다시피 당연히 관계는 들킨다. 관계를 들킴으로 리는 형과 엘에게 실망하고 셋의 관계는 파국을 마주한다. 파국을 마주했지만 긴장감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나는 이 노래의 끝이 무엇일지 알고 있다.
주인공은 친구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사랑도 중요함을 리에게 말하고, 리도 그 관계를 존중해 줌으로 우정도 지키고 사랑도 지킨다.
영화의 제목이 '키싱 부스'이지만 키싱 부스가 제목으로 자리매김할 만큼 영화에서 특출나게 하는 역할은 없다.
영화 제작자는 아마 키싱부스를 플롯의 전환, 추억을 환기시켜주는 매개체 또는 10대들에게 운명적인 사랑 혹은 불타는 사랑의 매개체쯤으로 삼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중간중간 억지로 집어넣은 설정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리와 형의 관계 설정
"항상 형은 내 모든 것을 뺏어갔어. 그런데 이제는 너(엘)도 뺏어갔지."
엘과 리의 부모님의 관계 설정
"나는 너의 엄마와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자주 다투었지만 나중에는 왜 다투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살면서 정말 좋은 친구 한 명만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야"
이 외에 OMG 걸스나 리의 사랑이라든지 절친의 법칙 등등. 2020년에 키싱 부스가 공감이 갈만한 매개체인지, 자선행사나 학교 축제, 졸업파티가 설렘을 줄 수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미국인들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술술 보게 되는 이유가 있다면 최근 콘텐츠의 흐름을 기가 막히게 따랐다는 점이다.
이제 대중들은 갈등관계가 매우 복잡하거나 사건사고가 질질 늘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극이나 심각한 사건사고를 다룬 스토리 혹은 깊이 생각해야 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런 것들은 깊이 생각할 수 있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넷플릭스에도 "결혼 이야기" 나 "아메리칸 팩토리"를 비롯한 영화, 다큐 등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콘텐츠들이 있지만 이런 것들은 마음먹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선뜻 플레이 버튼을 잘 누르지 않는다.
키싱 부스는 플레이 버튼을 단순히 누를 수 있게 만든 영화다. 사람들이 플레이 버튼을 쉽게 누를 수 있도록 갈등구조는 단순하게, 설정이 억지 같지만 대충 납득할 수 있게 (이거 알지? 어차피 중요한 거 아니니까 대충 넘어가자 식), 판타지는 적절하게 실현시켜주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나도 플레이 버튼은 쉽게 눌렀지만 좀처럼 공감하지 못했는데, 이건 내 나이 문제다. 애초의 나와 같은 연령대를 겨냥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10대를 비롯한 20대 초반들을 겨냥했다. 보통 20대 중반 이후부터는 중요해지지 않는 "우정과 사랑을 양립할 수 있는가" 다. 거기에 빠른 교차편집, 단순한 갈등구조, 그들에게는 상식이지만 나에게는 공부해야 할 밈들이 애초부터 커트라인인 것이다.
나는 리의 어머니나 엘의 아버지 이 외 많은 등장인물들이 조명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는데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들의 역할은 그 정도까지 인 것이다. 나는 스토리에서 쓸데없는 등장인물들은 없다고 생각하고 만약 등장한다면 당위성과 개개인의 특성을 잘 살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10대들은 그렇지 않다.
10대들은 주변 인물들이 중요하지 않다. 주변 인물들이 내뱉은 말이나 상황이 중요하지 그 인물 자체가 꼭 있어야 할 당위성 같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이 영화가 속편이 제작되어 이미 개봉했다는 것도 보았다. 심지어 키싱 부스 3로 그 후속작까지 제작 중이라는 소식도 들었다. 좀처럼 공감할 수 없는 문화의 상대성이 혼란스러운 영화였다. 이제 나도 구시대의 반열에 한 다리 정도는 걸쳐있는 것 같다.
"아저씨. 꼭 설명해야 해요? 대충 알자나요... 넘어 갑시다. "
키싱 부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까마구의 까망책방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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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봐서는 안될 욕심을 눈에 담다.
기가 막히는 코믹 연기로 늘 웃음을 주었던 유해진 배우가 '왕'이 되어 돌아왔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다. 특히 유해진 배우의 인터뷰 중에 첫 등장부터 웃으면 어쩌나 라는 말에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기존의 친숙한 이미지와 왕의 이미지가 매치가 되지 않아 이질감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와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기대되는 가운데, 좋은 기회를 얻어 미리 시사회를 볼 수 있었다. 소현 세자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영화 ‘올빼미는 11월 23일 개봉 예정이다.
뛰어난 침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경수, 그는 동생의 병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형익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아 어의가 되어 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궁에 들어가며 꽤 오랜 시간 동안 동생과 떨어져야 했던 경수는 그럼에도 동생의 약값을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매사에 입조심을 해야 하는 궁중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반면 8년 동안 청나라에 갇혀있던 소현세자가 돌아오며 굴욕적인 역사를 마주한다. 아들이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인조의 불안감은 극도로 고조되며 전반적인 분위기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눈에 띄지 말아야 할 올곧은 시선과 알 수 없는 시선이 교차하지만 좁혀지지 않는다. 조선의 존폐보다는 그때의 치욕이 앞서는 모습이 그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형태를 비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권력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인조는 변화라는 낯선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조선의 존폐가 달린 문제에 서로 다른 욕망이 비치며 갈등이 극대화된다. 한편 보이지 않는 탓에 소리에 집중되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밤이 되며 스산한 분위기로 변한다. 그날 밤, 보지 말아야 할 핏빛 욕망을 눈에 담게 되며 그의 운명 또한 많은 변화를 맞이 한다.
욕심에 눈이 먼 자, 진실에 눈을 뜬 자의 영화의 갈래가 나뉘기 시작한다. 살기 위해 진실을 감출 것인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본 것을 말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저울질이 시작된다. "안 보는 게 좋다고 눈을 감고 살면 되겠는가. 그럴수록 더 눈을 크게 뜨고 살아야지."라는 말과 자신을 믿어주던 두 눈이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을 선명하게 만든다. 그 선명함에 온 힘을 다하여 진실을 지키지만 자신의 지키려 했던 진실이 권력의 힘에 짓눌린 모습을 마주한다. 무모함을 이길 정도로 그가 믿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모습보다는 권력에 눈이 먼 한 왕의 탐욕적인 모습을 그려 기존의 왕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왕으로서 느낄 수 있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끊임없이 손에 쥐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이용하면서도 내내 불안한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난다. 다만 근엄함과 중후함은 사라진 열등감과 욕망으로 점철된 광기 어린 왕만이 남아있어 조금 아쉬웠다. 그런 아쉬움에도 사실에 픽션을 가미한 미스터리 스릴러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펼쳐 그 단점을 감춘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틈 없는 연기가 영화에 잘 녹아들었기에 극의 몰입을 높였다. 특히 경수와 소현세자가 어둠 속에서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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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벌어 하루 살아도 행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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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예고편
죽이려는 자 ?? 지키려는 자
타오르는 산불 속! 뜨거운 추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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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보타지 1941> 메인 예고편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10대 소녀 ‘조야’
어느 날, 그녀는 전쟁에 참여했던
사랑하는 남자 ‘진’의 죽음을 알게 되고
자원입대로 사보타주 대원이 된다.
하지만 작전을 수행하던 중
나치군에 붙잡히게 되는데…
그들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은
‘조야’의 역사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