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1-26 00:48:40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가 허물어진 자리
영화 <위키드> 리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가 허물어진 자리.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
- 진실을 짓누르는 거짓을 깨는 엘파바
- 글린다가 엘파바에게 준 모자와 망토의 의미
- 엔딩 결말 해석
위키드 (Wicked, 2024)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가 허물어진 자리
개봉일 : 2024.11.20.
관람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판타지,뮤지컬
러닝타임 : 160분
감독 : 존 추
출연 : 신시아 에리보, 아리아나 그란데, 조나단 베일리, 에단 슬레이터, 양자경, 제프 골드브럼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소설 [위키드]는 고전 명작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악당 서쪽 마녀의 어린 시절을 담은 이야기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영화, 뮤지컬, 연극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리메이크 되었다. 그리고 2024년. 몸집을 제대로 부풀린 실사 뮤지컬 영화 <위키드>가 세상에 나왔다.
6,0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 뮤지컬 원작, 1억 4,500만 달러의 제작비, <스텝 업>, <나우 유 씨미> 등의 영화로 환상적인 영상미를 보여준 존 추 감독의 신작, 아리아나 그란데, 양자경, 신시아 에리보 등 호화로운 오리지널 캐스트와 박혜나, 정선아, 고은성, 정승원 등 탄탄한 국내 더빙 캐스트까지.
말 그대로 소문난 잔칫집이었던 영화 <위키드>는 맛있는 음식을 한가득 차려놓고 뮤지컬 팬과 영화 팬 모두의 배를 든든히 불려주는 작품이었다. 물론 16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의 모든 순간, 모든 조건들이 만족스러웠다고 하긴 어렵지만 최대한 다양한 관객들의 기대에 응답하려는 마음이 한가득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사악함을 상징하는 초록색. 그 초록색의 피부를 타고난 엘파바와 누가 봐도 호감을 느낄 외모를 가진 핑크 공주 글린다. 양극에 위치한 두 사람은 얼떨결에 룸메이트가 된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서로를 밥맛이라 생각하며 시도 때도 없이 다투지만, 그런 시간이 늘어갈수록 남들은 보지 못하는 상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꿈꿔온 마법사 오즈의 도시, 에메랄드 시티로 가는 기차에 함께 몸을 싣는다. 그리고 환상적인 그 도시에서 새로운 운명을 맞이한다.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가 허물어진 자리.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
자신이 사악하다고 외치는 사람도 물론 위험하지만 자신의 선함을 필요 이상으로 어필하는 사람 또한 완전히 믿을만한 이는 아니다. <위키드>는 나도 모르게 믿기 쉬운 완연한 선과 악의 경계에 숨겨져 있던 것들을 꺼내 보인다.
영화는 서쪽 마녀가 한 소녀(오즈)가 끼얹은 물에 녹았다는 뉴스와 함께 시작된다. 오즈민들은 “우리가 믿는 선이 악을 이겨냈다”라며 사악한 마녀의 죽음을 기뻐한다. 오즈의 조수인 착한 마녀 글린다는 오즈민들이 부르는 승리의 노래에 동참하면서도 사악한 이의 고독을 생각하는 가사를 흥얼거린다.
마녀의 죽음을 축하하는 의식과 노래가 끝나고 오즈민들은 글린다에게 묻는다. “사악함은 왜 생겨나는 걸까요?", “서쪽 마녀와 정말 친구였어요?". 글린다는 “좀 아는 사이였어요.”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과 함께 엘파바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쪽 마녀의 그림이 땅으로 떨어지고 그를 따라 만든 거대한 인형이 불태워지는 등, 많은 오즈민들이 믿고 있던 ‘사악한 마녀’라는 이미지가 모두 소멸된 후 그 이미지 뒤에 가려져있던 엘파바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진실을 짓누르는 거짓을 깨는 엘파바
입학식 날 엘파바가 광장을 어지럽히는 장면의 의미
엘파바는 피부 때문에 이상한 오해들을 받으면서도 착하고 단단한 심성을 가진 어른으로 자란다. 동생 네사의 대학교 입학 날, 수많은 학생들의 시선을 받게 된 엘파바는 자신의 피부를 두고 온갖 생각을 하고 있을 그들 사이에서 "그래. 원래부터 난 초록색이었어.”라고 말한다. 엘파바는 ‘초록색 피부’라는 이미지에 주눅 들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을 믿으며 학교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엘파바는 여전히 학생들 사이에서 조롱과 폭탄 취급을 받고 그와 방을 나눠쓰는 글린다는 순교자로 취급받으며 더 큰 인기를 얻는다.
엘파바, 글린다, 피예르와 몇 인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보이고 들리는 것을 모두 그대로 믿고 그것을 기준 삼아 상대방을 정의한다. 엘파바의 초록색 피부, 네사의 불편한 몸, 보크의 작은 몸집, 글린다의 아름다운 외모 같은 일차원적인 이미지부터 시작해 사실 무능력하지만 전능하게 포장된 오즈의 모험기, 엘파바가 사악한 마녀고 그의 초록 피부가 사악함의 증거라는 오즈의 말, 학교 광장에 있던 오즈의 석판과 얼굴 동상, 위압감을 주는 오즈의 가면까지. 에메랄드 시티는 이런 수많은 이미지와 가면들로 가득 차 있다. 통치자인 오즈는 이러한 가면 뒤에 숨어 몰래 악한 일을 행하지만 오즈민들은 진실엔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그저 누군가의 외면을 평가하고 따돌리기 바쁘다.
엘파바는 다수와 다르게 어떤 가면과 외면이 아닌 진실과 내면을 보는 사람이다. 입학식 날, 네사를 마음대로 데려가려는 기숙사 사감을 말리려던 엘파바가 마법을 쓰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 장면. 의자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여러 구조물들을 부수는데, 그중엔 오즈의 모습이 새겨진 석판도 있다. 석판이 부서지자 원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동물들이 새겨진 석판이 드러난다. 엘파바는 진짜 석판을 짓누르고 있던 오즈의 석판을, 진실을 짓누르고 있던 오즈의 거짓말을 부수고 그에 대항한다.
또한 엘파바는 네사의 불편한 신체라는 외면에 집중하고 그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것 대신, 네사가 혼자서도 잘할 거라는 그의 내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보내는 선택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네사의 외면만 보는 어른들은 엘파바에게 무조건 네사를 도와주라 말하거나 허락 없이 네사의 휠체어에 손을 얹는다.)
서로를 채워준 엘파바와 글린다
글린다가 엘파바에게 준 모자와 망토의 의미. 엔딩 결말 해석
하지만 이런 엘파바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내면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내면이다. 주변인들은 엘파바를 ‘남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을 그렇지 않다. 엘파바도 상처를 받고 흔들리기도 한다. 특히 엄마의 죽음에 얽힌 상처와 죄책감은 그가 어른이 될 때까지 마음에 짙게 남아있었는데 이 상처를 보듬고 엘파바에게 용기를 준 건 바로 글린다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처음엔 상징색인 연두색과 분홍색처럼 서로를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보색인 두 색은 (색상환에서) 거리 상으론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가장 평행한 관계이기도 하다. 거리를 좁히기만 하면 그 어떤 색보다 맞닿기 쉬운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서로에게 한 걸음 나아간 두 사람은 엘파바를 무시하는 동급생들 사이에서 마주 선 채 춤을 춘다. 이후 엘파바와 글린다는 각별한 친구가 되어 서로의 꿈을 이루도록 도움을 주는 사이가 된다.
엘파바는 에메랄드 시티행 기차가 떠날 때 글린다에게 손을 내밀어 글린다가 에메랄드 시티를 여행하고 오즈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글린다는 엘파바의 아픔을 위로하고 그가 새로운 세상에 나갈 용기를 준다. 글린다가 엘파바에게 준 모자는 엘파바가 ‘첫 파티’라는 새로운 경험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엘파바가 창문 너머로 떠나기 전에 둘러준 망토는 통치자에게 대항하는 험한 길을 선택한 그에게 전하는 용기와 온기를 선물한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진한 우정을 등에 업고 착한 마녀와 나쁜 마녀, 명성을 가진 위대한 마법사와 동물들을 돕는 마법사라는 각자의 길로 날아오른다.
숨겨져 있던 두 마녀의 이야기는 새로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준다. 기세 좋게 시작된 이 환상의 나라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Part1의 성적표는 얼마큼의 상승 곡선을 그릴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대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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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영화/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지난 주말은 날씨가 너무 좋았죠! 낮에는 완연한 봄날씨였는데요, 이번 주도 날이 따뜻하다고 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바람이 차니 외투를 단단히 챙기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 주말 동안 치열한 공방전이 있었던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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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3월 첫 주 극장을 찾은 관람객 수는 총 212만 2천 명, 그중 주말 관람객 수는 104만 3천 명으로 지난주보다 34% 증가한 수치를 보였습니다. 박스오피스 1위는 영화 <악인전>을 성공적으로 연출한 이원태 감독의 신작 <대외비>에게 돌아갔는데요,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호평과 달리 영화에 대한 전체적 평이 아쉬운 가운데 좌석 판매율은 12%를 기록했습니다. 2위의 경우 기존의 애니메이션을 극장판으로 재구성한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에게 돌아갔으며 누적 관객 384만 3천 명을 기록해 역대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작 순위를 다시 쓴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박스오피스 3위를 차지했습니다. 뒤를 이어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 실황을 담은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이 4위를, 지난 주말 1위를 차지했던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네 계단 내려온 5위를 기록했습니다. 개봉 2주 차인 <서치2>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며 6위에 머물렀고, 차태현과 유연석이 주연을 맡아 여러 마리의 개들과의 동행을 그린 힐링 로드무비 <멍뭉이>는 7위로 데뷔했습니다. 아래에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이어나가 볼게요 :)
1. <대외비>(NEW)
한국 영화 <대외비>가 주말 관객 25만 7천여 명을 동원하며 근소한 차이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외화의 강세 속에서 1위라는 칭찬할 만한 성적이지만, 2위를 차지한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와의 관객 수가 2만 명 남짓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 힘겨운 싸움이었습니다.
앞서 <대외비>는 개봉 첫날이었던 지난 1일 18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출발했으나 뒤따라 개봉한 <귀멸의 칼날>에게 곧바로 밀리며 목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틀 연속 2위에 머물렀습니다. 이어지는 주말 동안 간신히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에 서는 데 성공했으나 현재 예매 관객 순위가 6위로 떨어진 상황, 오는 8일 개봉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 할리우드 스릴러 <똑똑똑>, 기개봉작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보다 낮은 순위입니다. 어렵게 손에 얻은 박스오피스 1위지만, 돌아오는 주말 <대외비>의 극장 성적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2.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NEW)
이번 편에서 탄지로, 젠이츠, 이노스케, 그리고 음주 우즈이 텐겐이 혈귀 규타로, 다키 남매와 벌이는 전투를 담은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가 주말 23만 5천여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습니다. 좌석판매율은 무려 46.9%로 충성 팬덤의 위력을 입증했는데요, 해당 작품은 극장판 <귀멸의 칼날> 중 7번째 작품으로, 앞서 2021년 개봉했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은 코로나 사태 와중에도 218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흥행에 성공한 바 있습니다.
3. <더 퍼스트 슬램덩크>(⬇︎1)
지난 1월 4일 개봉해 무려 두 달간 국내 박스오피스를 점령하며 장기 흥행 중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주말 관객 수 11만 4806명을 기록하며 3위에 올랐습니다. 누적 관객 수는 384만 3529명으로, 6년 동안 역대 국내개봉 일본영화 흥행 1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너의 이름은>의 누적 관객 380만 명의 성적을 제친 기록입니다. 이로써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국내에서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되었는데요, 그간 어느 작품도 도달하지 못했던 400만의 고지를 찍고 그 이상의 신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한편, 슬램덩크에게 역대 흥행 순위 1위의 자리를 빼앗긴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을 통해 이번 주말 다시 한국 관객들을 만날 예정에 있습니다.
이렇게 3위까지의 순위를 확인해 봤는데요, 그럼 씨네픽의 이번 주 142회 예측 이벤트였던 3월 1주 차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의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월 1주 차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
정답자 비율(%)
이번 한 주 동안에도 많은 씨네픽 유저분들이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 주셨습니다! 전체 참가자 중 <대외비>의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예측한 유저는 47%에 머물렀으며, <귀멸의 칼날>이 2위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3위에 오를 것으로 예측한 유저는 각각 9%, 18%에 그쳐 낮은 정답률을 보였습니다. <대외비>와 <귀멸의 칼날>이 예상치 못한 접전을 벌이게 되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 듯한데요,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이번 주 토요일에 더 재미있고 유익한 예측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이어서 나머지 박스오피스 순위도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4.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NEW)
지난해 12월 10일부터 11일 양일간 개최된 가수 임영웅의 전국 투어 앵콜 공연 'IM HERO'를 담은 영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이 CGV 단독 개봉에도 불구하고 박스오피스 순위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개봉 전에도 압도적으로 높은 예매율 때문에 관심이 모아졌었는데요, 주말 관객 6만 5780명, 누적 관객 13만 4622명을 기록하며 실제 극장가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한편,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은 임영웅의 해외 팬들을 위해 오는 4월 중순 미국과 말레이시아, 태국, 홍콩에서의 개봉 또한 확정 지었다고 밝혔습니다.
5.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4)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MCU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개봉 후 2주간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유지했지만 눈에 띄는 하락세에 여타 마블 영화의 흥행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 때문에 큰 우려의 대상이었는데요, 결국 이번 주말 관객 수 6만 5403명, 누적 관객 150만 9941명으로 간신히 박스오피스 순위 5위를 달성했으며, 좌석 판매율 역시 7%에 머무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다음은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입니다. 복싱 영화 <크리드3>가 미국 개봉 첫 주말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를 제치고 미국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습니다. <크리드3>는 <록키> 시리즈의 스핀오프인 <크리드> 시리즈 3번째 영화로, 국내에서도 지난 3월 1일 개봉했지만 박스오피스 23위에 그치며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작들의 개봉 첫 주말 성적이 각각 2960만 달러, 3550만 달러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크리드3>는 이번 주말 5865만 달러를 벌어들여 시작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뒤를 이어 지난주 각각 1위와 2위를 기록했던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코카인 베어>는 한 계단씩 떨어져 2위와 3위를 기록했으며, 국내에서는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이 매출액 1011만 7806 달러로 4위에 올랐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적 각성 운동의 하나로 평가받는 1960~70년대 '예수 운동'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지저스 레볼루션>이 5위를 차지했는데요, 해당 영화는 업계 최대 예상치였던 700만 달러를 한참 웃도는 3054만 1391달러의 누적 매출액을 기록하며 눈에 띄는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기독교 영화의 예상치 못한 흥행에 업계는 모두 놀라는 분위기라고 하는데요,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55%로 평단의 외면을 받았지만 팝콘 지수와 A+ 시네마스코어는 99%의 점수로 관객들의 호응이 무척 좋은 편입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5>
1. <크리드3> 5865만 달러 (누적 5865만 달러)
2.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1247만 달러 (누적 1억 8679만 달러)
3. <코카인 베어> 1102만 달러 (누적 4128만 달러)
4.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 1011만 달러 (누적 1011만 달러)
5. <지저스 레볼루션> 865만 달러 (누적 3054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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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3월 첫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더 좋은 콘텐츠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리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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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잘 지내나요, 조제.
영화의 국경이 없다는 말이 있듯 개인적으로 로맨스 영화는 나라를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로맨스를 즐겨보는 편인데 양국의 로맨스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매력이 있다. 한국 로맨스는 빠른 전개속도를 가진 현실적인 맛으로 본다면, 일본 로맨스는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이나 특별한 소재들을 보는 맛이 있다. 다만, 2000년대 로맨스는 양국을 불문하고 조금씩 닮아있다. 좀 더 간단명료하고 편안하고 담백하지만 깊은 후유증을 남긴다는 것. 영화의 전개 속도는 느릿한 반면, 인물들이 세세한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전달하려고 노력한다는 것. 때문에, 2000년대 일본 로맨스 영화도 국내 영화만큼이나 좋아하는 편인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 중 가장 좋았던 영화로 꼽을 수 있겠다.
일본 로맨스가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조금 특별하다는 데에서 시작된다. 불치병이라던가 환상이라던가 같은 것들 말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이런 소재들을 활용하는데 조금 유난하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2000년대 일본 로맨스는 이런 유난함의 적절한 균형을 잘 맞추는 듯 하다. 주인공 조제(이케와키 치즈루 분)또한 마찬가지다. 배경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조제는 걸을 수 없다. 영화 전반적으로도 이유는 알 수 없다. '걸을 수 없다' 라는 전제 조건에서 이미 영화는 시작되어있다. 다만, 유난한 소재에 비해 사건진행은 사소하게 진행된다. 연출상 일본 특유의 문화가 보여 조금 당황스럽지만 뚜렷한 자극 없이 천천히 로맨스의 전개 방식을 따라간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런 면에서 매력적인 영화였다. 자칫하면, 로맨스 영화라는 틀을 벗어나 뒤죽박죽이 될 수도 있는 표현하기 어려운 소재를 두고 관객으로 하여금 완전한 한 편의 로맨스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뒤로 미뤄놓고 ... 영화 속 첫번째 관람포인트는 영화 속 여백에 있다. 배경음악과 필름화된 사진들의 적절히 교차시켜 영화 사이에 짧은 여백을 만들어낸다. 전반부에서는 오프닝의 느낌을 살려주려 한 것이 느껴지지만, 후반으로 돌입하며 감정선을 길게 이어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둘째로, 당시 년도의 시대상과 배경을 보는 것에 재미가 있다. 국내 정서와는 다른 모습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함에서 오는 재미도 영화가 주는 특별한 요소 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전반적인 배치와 연출에 있다. 영상미는 둘째치고, 전개속도와 더불어 시점의 큰 변화 없이 영화를 끌어가는 것이 흥미롭다. 영화 속 인물들의 양상은 다양하고 시점은 츠네오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것이 영화를 후반부까지 잘 이끌어간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제목부터 아이러니한 조합에 이끌려 영화를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제목의 의미는 영화만큼이나 특별하다. 주인공인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와의 만남에서 그녀는 자신의 본명인 '쿠미코'라는 이름을 숨기고 '조제'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현실에선 움직일 수 없고 무엇도 할 수 없는 몸이지만 소설 속 '조제'라는 이름을 통해 사랑을 하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 전반적으로 그녀는 '조제'로 남아있다. 무엇을 하든 어떤 삶을 살든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쿠미코는 어디에도 갈 수 없기에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인 '호랑이'는 그녀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다만, 츠네오를 만난 뒤 츠네오와 함께라면 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 츠네오는 상쇄시킬 수 있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제는 아주 외로운 곳에서 살았다. 그녀의 공간은 몇 평 되지 않는 방안이었고 만나는 사람은 할머니가 전부였으며 그녀에게 탈출구는 오직 이른 아침에 나가는 산책이 전부였을 뿐이다. 그런 그녀의 삶에 불쑥 등장한 츠네오였다. 함께 밥을 먹고, 외출을 하고, 시간을 나누며 둘은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한다. 그녀의 할머니가 나타나 조제에게 이런 삶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를 다시끔 찾아간다. 어쩌면 물고기는 그녀의 삶을 간접적으로 비추는 소재가 아니었을까. 일정한 공간과 틀에서 제 몸을 벗어나지 못한 채 한정적인 삶만을 살아야 했던 그녀 스스로를 물고기에 투과했을 수도 있고, 결국 츠네오 덕분에 한계에서 벗어나 바다로 떠나게 되어 그녀의 삶이 한층 더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일 수도 있고, 그와 함께 묵은 숙소에서 물고기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물고기라 칭하며 쓸쓸함에 오는 동질감이었을 수도 있다. 앞선, '조제'와 '호랑이'에 비해 '물고기'의 의미는 어느 쪽으로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내용으로 돌아와, 전반적으로 재미있었던 점은 츠네오가 그녀를 단순 장애인으로써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를 '장애인'으로써 동정하는 것이 아닌 '한 여자'로써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한다. 그의 행동에 특별한 배려는 없다. 그녀를 업어주는 것 외에는 가끔 그녀가 걷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영화 전반적으로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평범히 연애하는 남녀' 그렇게 느껴지게끔 연출을 이어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렇기 떄문에 오히려 사랑의 평범함에 대해서 잘 드러나지 않았을까. 주인공 둘 다 극적인 가상의 인물이기는 하나 둘의 행동에 큰 변화를 두지 않음으로써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꽤나 적나라한 베드씬을 넣어놓은 이유도 여기 있지 않나 싶다.
영화에 대해 알아보면서 조금 아쉽게 느껴졌던 건 이 영화가 마치 '장애'에 관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화처럼 비춰진다는 것이다. 물론 놓칠 수 없는 부분이고 감독의 주제의식이 어느정도 엿보이는 장면들도 여럿 볼 수 있다. 다만, 본질이 로맨스인 이 영화에서 더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사랑'에 관한 고찰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제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장애에 대한 극복으로 당당한 삶' 같은 것들이라기 보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변화와 여정'이라고 이야기 하고싶다. 무엇보다 영화 속 조제의 설정이었던 '장애'가 사실 신체적인 불편함 그 자체를 의미하기 보다 '일상 속 일반인들이 사랑하며 마주하는 일종의 장애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사람을 만나며 우리가 겪는 장애는 신체, 감정, 불안, 재력, 환경 등 어떤 요소도 될 수 있다. 영화 속 설정에서는 신체를 토대로 장애물을 구축해, 사랑하는 사람끼리 마주칠 수 있는 차이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 츠네오를 누구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츠네오는 진심으로 오열한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 담백하게 이별을 말하고서 말이다. 누가 있든 개의치 않고 그저 울기만 할 뿐이다. 그런 그의 모습은 조제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동정으로서 그녀를 배려한 것이 아닌 짧고도 길었던 1년하고도 몇 달간의 연인 관계였던 조제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담담한 이별이었지만 조제를 두고 돌아서야 했던 츠네오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조제를 데리고 가족들에게 인사하러 가는 길에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랑에 대한 책임감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진 츠네오의 모습도 이해가는 슬픈 양면성이 가슴에 남는다.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질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라는 무기력한 말과 다르게 전동휠체어를 타고 일상을 보내는 조제의 모습이 한편으론 마음이 놓였다. 넘치는 슬픔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이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고나서 깊은 후유증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그건 남아있는 조제를 위하는 마음이자 둘의 사랑을 옆에서 직관한 후에 오는 상실감일지도 모르겠다. 둘이 결국 이별했으니 비극적인 엔딩이라고 말해야할까? 어쩌면, 우리가 바랬던 것 처럼 '둘은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와 같은 엔딩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원하던 엔딩에 도달한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 꼭 영화가 결말이 나야만 엔딩이 아닌 것처럼 주인공 둘도 결국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또 다른 사랑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몇 평짜리 공간에서 발을 뗀 조제의 앞에도 어떤 날들이 기다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삶을 기대할 수 있다. 조금 억지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해피엔딩이 아닐까. 사랑에 대한 본질과 동시에 사랑이 가진 연약함을 깊게 엿볼 수 있는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아쉬움을 달래고 글 몇자로 영화를 담아낸다. 영화 속 츠네오가 그랬듯 조제같은 여자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만 같다.
사진 출처 : <ジョゼと虎と魚たち .>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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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마음으로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태어나길 잘했어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지금까지 세자매, 축복의 집 등등 여러 독립영화들을 봤었는데 대부분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이번에도 제목만 밝은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고 긍정적인 편이어서 가볍게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감독님이 영화에 애정이 많다는 게 느껴졌다. 포스터 뒤에부터 감독님의 손편지를 읽으면서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 보기 전 무대인사때부터 배우들과 친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 느낌이 영화에도 녹아있었다. (๑・̑◡・̑๑)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의 분위기하고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분위기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독립영화만 느낄 수 있는 바이브와 편하게 볼 수 있어서 기분좋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내가 생각하는 독립영화의 감성 그대로여서 좋았다. 하지만 러닝타임이 꽤 긴편이라 살짝 늘어지는 부분도 있다. 또한 절정 부분이 약하게 끝나서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가장 재밌었던 장면은 춘희와 주황의 데이트 씬이었다. 서로의 결핍을 보듬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주황과 춘희의 어수룩하지만 솔직한 모습에 나도 같이 어색했다가 설렜다가 했다. 태평소 부는 주황은 뜬금없어서 웃겼음.
기획적으로도 어린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서 '내가 나를' 치유해준다는 설정도 좋았다. 나를 위로해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다. 이 영화의 메세지라고 생각한다. 사실 맞지 않을까. 내가 힘든건 내가 가장 잘 알고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른 사람이 위로해주기보단 나를 통해서 나를 알아가고 치유해간다는 설정이 이 영화의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나를 꼭 안아주고 싶어
주황
<태어나길 잘했어>
평점 6.5 점!
한줄평
나에게 꼬옥 안아주면 돼
-파노라마 이가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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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다비전> 완다가 보여주는 MCU의 새 비전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시리즈와 영화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이야기를 펼치는'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성공리에 안착시킨 처음이자, 모범이고, 유일한 성공 사례인 MCU. 그러나 이들도 두 가지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우선 영화라는 미디어의 본질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2시간 내외라는 시간의 한계로 인해 주인공들을 제외한 인물들은 편의에 따라 플롯의 소재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야 했다. 심지어 '인피니티 사가'의 대미를 장식하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3시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브루스 배너와 헐크의 화해나 토니가 시간 여행 기술을 발명하는 과정 등을 대사 한 줄이나 몇 초 간의 장면으로 처리했다.
또한 모든 영화들이 큰 그림을 위한 스케치이자 하나의 부품으로써 다루어지다 보니 스토리텔링, 연출, 편집, 액션, 음악, 영상미 등이 균등한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특출 난 독창성과 신선함을 조금씩 잃어 갔다. 자신의 실명과 정체를 당당히 공개하며 슈퍼히어로 영화의 클리셰를 파괴했던 <아이언맨>과 진지함과 무거움을 내던지고 유쾌함과 감동을 모두 갖춘 음악으로 무장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새로움이 들어설 자리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신 그 자리는 안정적인 유머와 화려한 볼거리, 익숙한 서사로 무장한 채 제2의 <아이언맨>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노리는 작품들이 대신했다. <아이언맨>과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한 같은 해에 DC에서 각각 <다크 나이트>와 <조커>를 선보인 역사는 이러한 MCU의 문제점을 요약해 보여준다.
그러나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의 부실한 액션을 지적하자 <윈터 솔져>와 <라그나로크>로 응답했으며, 인상적인 빌런의 부재라는 빈틈은 타노스로 채워버린 의지의 MCU는 페이즈 4의 첫 작품인 <완다비전>을 통해 자신들의 단점을 비교적 깔끔하게 해결했음을 증명한다. 미국의 한 마을 웨스트 뷰에서 이웃들처럼 평범한 회사원과 주부의 삶을 누리는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와 '비전(폴 베타니)'. 어느 날 그들은 외부의 소음과 함께 마을에서 보지 못한 남자와 흑백의 세상에 나타난 빨간 장난감 헬리콥터처럼 이상한 사건들을 연이어 목격한다. 완다는 시간을 돌려 해당 사건의 존재를 부정하고, 비전은 그런 완다와 완다를 도와주는 이웃 '애거사(캐스린 한)'를 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완다가 만든 가상현실 장벽의 밖에서 '모니카 램보(티오나 패리스)'와 '헤이워드(조쉬 스템버그)' 국장을 비롯한 S.W.O.R.D.는 가상현실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고 완다와의 소통을 시도하기 위해 장벽 안으로의 진입을 시도한다.
우선 <완다비전>은 조각나 있던 완다와 비전의 서사에게 온전한 모습을 되찾아준다. 사실 안드로이드 로봇과 마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MCU의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명쾌하고 충분히 설명될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 등 팀업 영화에서만 모습을 비추다 보니 완다의 불우한 과거사와 감정선은 다른 히어로들의 그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분량을 할당받았고, 완다와 비전이 호감을 느끼다 연인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갑작스러웠다. <인피니티 워>에서 연인을 파괴해야 하는 둘의 애절한 로맨스가 어벤져스의 이길 수 없는 저항을 더욱 비장하게 만들었지만 비전의 이름은 엔드게임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마침내 그 둘의 이야기는 처음으로 온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완다가 빚어낸 가상현실 속 세계는 그녀의 내면이 처음으로 시청자들에게 선보여지는 채널이라는 점에서 특히 인상적이다. 초능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부부가 자아내는 웃음은 부모, 오빠, 히어로의 삶을 가르쳐주던 멘토들, 연인과 연달아 이별해버린 완다의 외로움, 고독함, 슬픔, 덧없음을 은연중에 노래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하나로 모아준다. 타노스에게 마인드 스톤을 뺏긴 후 완다의 힘에 의해 다시 태어난 비전 역시 자신의 진정한 기억, 존재, 신체를 되찾기 위한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여정을 경험한다. 이처럼 그간 무대 밖으로 밀려나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겠다는 마블의 각오는 <앤트맨>의 우, <토르>의 달시, <캡틴 마블>의 모니카 램보처럼 잠시 잊혔던 캐릭터들을 소환해 같은 사건을 상이한 시점에서 다루는 대목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형식의 스토리텔링과 연출의 도입이다. 이를 통해 마블은 단지 안정적인 흥행과 시리즈의 유지는 물론 가능성과 독창성의 확인 및 도전도 자신들의 목표에 포함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드라마는 크 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우선 1~3화, 그 뒤의 몇몇 에피소드들은 1950년대의 흑백 시트콤부터 90년대의 홈비디오를 거쳐 <모던 패밀리>에 이르는 미국 시트콤의 형식을 차용한다.
한편 4화부터는 현재 시점에서 완다가 만들어내는 혼란을 목격하고 대응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면 비율부터 의상과 색상에 이르는 디테일의 차이를 통해 같은 사건을 대하는 인물들의 시점 차이는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사실 마블 작품들이 상당히 높은 타율의 유머를 선사한다는 점은 언제나 다른 시리즈와 차별화된 지점이었지만, 시트콤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이전까지는 기대하기 어려운 선택이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완다의 수상한 이웃인 애거사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장면을 마치 고전 뮤지컬을 보는 듯한 연출로 풀어낸 대목도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완다비전>은 단순히 영화적 형식을 새롭게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그 변화 자체를 하나의 스토리텔링 장치로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시도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각 시대를 상징하는 시트콤의 형식과 내용은 시종일관 마음속 한 구석에 있던 어두움을 애써 억누르고, 희망을 쫓아 어두움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던 완다의 이야기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 시트콤을 보는 것이 유일한 인생의 낙이었던 완다는 잃어버린 부모님, 오빠, 연인을 대신할 수 있는 남편과 쌍둥이 아이들을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세계 안에서 다시 만난다. 이처럼 TV 쇼는 현실 속 그림자, 절망, 슬픔을 빛, 희망, 행복으로 탈바꿈시키는 도구이자 탈출구이기에 단순한 연출 방식의 변화 이상의 감동을 준다. 이는 완다가 마침내 '스칼렛 위치'로 각성하고, 자신의 마법을 마음껏 선보이는 마지막 회보다도 현실을 TV 속 공간으로 바꾼 그녀의 능력, 그녀의 과거사, 이 드라마가 시트콤으로 시작한 이유를 알려주는 8화의 임팩트가 더 강렬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완다비전>은 MCU라는 건물을 올리는 것은 물론 그 외양을 다채롭게 만들고,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완다비전> 역시 드라마 내외적으로 여전한 한계점을 노출한다. 드라마 내적으로는 기존의 MCU 작품들이 보여준 것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한 선악의 대립 구도를 선보인다. 드라마는 한 마을에 사는 이들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거대한 혼란을 낳은 완다에게 시종일관 동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완다가 초래한 온갖 문제는 그녀와 과거사와 개인사 앞에 무게감을 잃고, 그녀의 손에는 면죄부가 주어진다. 더 나아가 그녀를 대량살상무기로 취급하며 단순히 악인으로만 묘사되는 S.W.O.R.D.의 헤이워드 국장 덕분에 면죄부는 그 반대편에 위치한 완전한 선인인 완다의 면죄부는 더욱 강한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는 그간 마블이 보여준 것과는 다른 선택이다. 선악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존재, 그리고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는 이들의 서사가 선사하는 뭉클함은 그간 마블이 수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은 이유였다. 이 세계의 히어로들은 본질적으로 선하지만, 때때로 악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토니 스타크는 선의였지만 울트론을 만들고, 이로 인해 캡틴 아메리카와 크게 대립했다. 캡틴 아메리카도 생명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했다가 타노스를 막지 못했고, 토르 역시 복수심에 눈이 멀어 영웅으로서 타노스를 죽이지 못하는 과오를 범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결과적으로 행한 악을 외면하지 않는다. 고뇌하면서 해결책을 강구한다. 그러나 <완다비전>은 완다에게 이러한 복합적인 면모를 심어주지 않았고, 이 선택은 회차가 진행될수록 완성도가 낮아지며 초반부 회차에서 선보인 독창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사실 이러한 작품 내적 문제는 MCU 시리즈 특유의 패턴과도 관련이 있다. 많은 마블 작품은 극 중 발생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대신 의문을 남기거나 일부분의 엔딩만 보여준 채 일단락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떡밥은 항상 후속 작품의 발단으로 이어진다. <어벤져스>에서 파괴된 뉴욕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발단이 된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파괴된 소코비아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속 사건의 원인이 되고, <시빌 워>에서 마무리되지 않은 토니와 스티브의 갈등은 <엔드게임>에 이르러서야 종결된다. 또 <엔드게임>에서 평행우주로 도망간 로키는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MCU의 패턴은 일장일단이 있다. 시리즈 간의 연계가 긴밀해지는 것이 장점이라면, 한 작품이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단점이다. 완다의 선한 면모와 안타까운 사연만 강조하는 연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연출은 설사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는 다소 해칠 지언정 그녀가 초래했거나 직접 행한 악의 결과물들이 <닥터 스트레인지 인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에서 다루어질 것임이 이미 확정되었기에 가능하다. 향후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것은 덤이다. 이처럼 <완다비전>은 그 도전적인 시도와는 별개로 하나의 기계를 만드는 부품으로써 존재하기에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완다비전>이 MCU의 새로운 시대, 페이즈 4의 미래를 환히 비추는 것은 분명하다. 마법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 것이나 완다와 비전처럼 독자적인 서사를 부여받지 못했던 캐릭터들이 향후 디즈니+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칠 것이라는 점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속편을 비롯한 다음 전개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또한 당장은 허사에 그쳤으나 다시 한번 던져진 엑스맨 등장의 떡밥은 덤이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구조나 문법에서 벗어나고도 훌륭한 드라마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완다비전>이 보여준 완다, 비전, 그리고 마블의 비전은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충분히 만족스럽다.
A(Acceptable, 무난함)
앞으로의 발전이 더 기대되는 마블의 착실한 오답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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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상수의 고루한 예술론
5★/10★
한국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이리스의 교수법은 독특하다. 단어장도, 문법책도 없다. 수업은 이런 식이다. 수강생이 피아노를 치고 나면 이리스가 무엇을 느꼈는지 묻는다. 처음에는 행복을 느낀다고 답한 수강생은 이리스가 또 무얼 느꼈느냐고 캐묻자 멜로디를 느꼈다고 말하고, 그다음에는 짜증이 났다고 말한다. 자기 생각만큼 연주가 되지 않았다는 데에 대한 짜증 말이다. 산책을 하다가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빌라 근처 석비 앞에서도, 또 다른 수강생이 기타를 연주한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이리스는 계속 수강생에게 진짜로 무엇을 느꼈는지를 묻고 또 묻는다. 그러고는 그 내용을 카드에 적고 상대에게 건네주며 지금의 감정을 말하는 법을 연습해오라 한다. 이렇게 해서 언어가 늘겠느냐는, 제대로 된 교수법이 맞느냐는 수강생의 질문에는 외국어로도 마음속 깊은 곳의 진심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근 고안한 방법이라고 답한다. 검증된 적이 없는 교수법이라는 소리다. 자연스레 질문이 생긴다. 도대체 이리스는 누구이고, 무엇을 대변하는가?
홍상수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가를 이리스 캐릭터에 구현한 듯하다. 이 점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영화 후반부다. 중년의 프랑스 여자 이리스는 젊은 남성 시인인 인국의 집에서 살고 있다. 인국은 어느 날 공원 벤치에 앉아 피리를 부는 이리스의 모습에 이끌려 그녀와 대화했고, 그녀에게 거처를 제공했다. 그러던 중 인국의 어머니가 급작스레 집을 방문하고 아들이 낯선 외국 여성과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의 장광설이 시작된다.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는 아느냐, 네가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고 생각하느냐 등등. 어머니의 말은 구구절절 합리적이다. 하지만 시인인 인국의 관점은 어머니와 다르다. 그는 벤치에 앉아 피리를 부는 모습만으로 이리스를 ‘안다’. 인국은 어머니에게 이리스가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 삶은 진지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다. 인국은 곤란해하며 머뭇거리지만 하고 싶은 말을 감추지는 않는다. ‘엄마는 열심히 사는 것이고, 이리스는 진지하게 산다.’ 이것이 인국의 답이다.
이리스와 어머니는 각각 예술가와 예술가가 아닌 시민을 대변한다. 이리스의 프랑스어 교수법에서도 알 수 있듯, 그녀는 표층이 아닌 심층의 진실이 궁금하다. 그래서 연주 후 ‘행복’했다는 수강생 마음속에 실은 ‘짜증’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끌어낸다. 즉 이리스는 자신조차 몰랐던 내면의 진실을 발굴하고 일깨워주는 사람, 사실에 근거하여 진실에 접근하는 사람이다. 이리스의 교수법이 검증된 적 없는, 최근에 직접 고안한 방법이라는 점도 그녀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직감에 따라 행동하는 유형의 사람, 즉 예술가임을 알려준다.
이리스의 진실은 ‘열심히’ 삶을 사는 인국의 어머니와 같은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인국을 거듭 다그치는 데서 알 수 있듯 이리스와 인국의 어머니 사이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즉, 예술가와 예술가가 아닌 시민의 거리는 서로 조금도 맞닿지 않을 만큼 멀다. 자기 어머니의 아들임에도 이리스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인국이 ‘시인’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진지한 태도로 삶을 사는 예술가의 유대는 핏줄을 넘어선다.
홍상수 감독은 두 세계 사이를 균형 있게 다루는 데 별 관심이 없다. 노골적, 편파적으로 예술가와 그의 세계를 옹호한다. 인국의 어머니는 이리스와 살며 ‘빵과 샐러드’를 주로 먹고 그 생활에 만족하는 인국에게 끝내 ‘김치찌개’를 끓여 먹인다. 그러고는 네가 어릴 때 매운 음식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상기시키고, ‘빵과 샐러드’만 먹고서는 도저히 살기가 어렵다고 또 한 번 강조한다. 감독은 예술가가 끊임없이 자기 세계를 위협당하고 회유당한다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인국은 고뇌에 빠진다. 계속 이리스가 집에 머물도록 할 것인가(즉 예술가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 아니면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이리스의 삶 궤적을 캐묻고 심문할 것인가(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스포일러라 할 것도 없다).
그러나 홍상수 감독이 그려낸 예술가와 시민의 불화라는 구도가 과연 얼마나 적확한지는 따져볼 일이다. 동시대의 명망 있는 창작자 대부분은 영화가 그려내는 예술가와 같이 창작하지 않는다. 예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산업 기반 자체가 이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즉, 예술가/시민의 구도로 단순화할 수 있을 만큼 예술가가 예술을 생산하는 조건이 단조롭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 자신이 집요하게 이리스의 길을 걸어와 예술적 성취를 인정받았다고 해도 그것이 예술/가 일반에 적용할 구도일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가 이 영화를 통해 자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창작하는 특정 예술가 부류만을 옹호하고자 했다고 변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영화가 이리스와 그녀가 놓인 상황을 재현하는 방식이 시종일관 단호하다. 즉, 우리는 이리스를 통해서 다른 예술/가 유형을 상상할 수 없다. 영화가 전개될수록 이리스와 인국 어머니가 각각 대변하는 세계의 경계선이 더욱 깊고 짙어질 뿐이다. 이런 양자택일의 세계에서 관객은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이번에도 영화가 제시하는 정답은 정해져 있다).
과연 이런 주제 의식이 거장이 던질 만한 화두일까? 나는 부정적이다. 이 영화에는 동시대 예술 지형에 대한 통찰이나 물음이 담겨 있지 않다. 심지어는 그저 자기변호를 위한 영화라고도 보인다. 어느 모로 봐도 홍상수 감독이 ‘머물 집이 없는 예술가’는 아니다. 그런데 수십 년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감독이 이와 같은 예술가 자아상을 내비친다니 조금은 당혹스럽다. 준국과 이리스의 나이와 성별이 감독 개인사를 교묘히 뒤집은 듯 보이는 것도 이 영화가 자기변호의 수단이라는 의혹을 증폭시킨다. 어쩌다 보니 홍상수의 영화를 보지 못하다가/않다가 최근에야 〈물안에서〉(2023)를 보고 윤리적‧영화적으로 커다란(그리고 생산적인)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실망감은 더욱 크다.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천착한 주제를 조망하려면 토마스 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트리스탄‧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찬찬히 읽어보는 게 훨씬 낫다. 100년도 더 전에 쓰인 이 책이 같은 주제를 훨씬 더 입체적이고 섬세하게 다룬다. 물론, 이미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생존한 이 고전에서도 예술가와 시민의 불화라는 구도가 단조롭다는 느낌은 떨칠 수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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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순 | 운전대 주인이 바뀌는 과정을 차분히 쫓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견과류 식품 공장에서 일하는 '정순'(김금순)은 외롭다. 남편과는 사별했고, 딸 '유진'(윤금선아)은 결혼을 앞두고 있으니까. 그런 그녀 앞에 '영수'(조현우)가 나타난다. 공장에서 같이 일하고, 동료들과 등산도 같이 하면서 정순은 그에게 빠져든다. 정순은 주변의 시선을 걱정하며 더 나아가지 못하지만, 영수의 거듭된 구애에 마침내 마음을 연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뿐, 정순의 일상은 이내 파괴된다. 영수가 공장 직원들 사이에서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겠겠다며 정순과 찍은 은밀한 영상을 젊은 관리자 '도윤'(김최용준)에게 보여준 것. 영상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면서 정순은 충격에 빠지고 칩거한다. 유진이 엄마를 대신해 가해자들을 경찰에 신고하지만, 정순은 딸을 만류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추스르고 새로운 내일을 열기 위해서.
세련된 범죄 드라마, <정순>
범죄, 특히 성범죄 사건을 소재로 삼는 영화는 두 가지 문제를 마주한다. 성범죄를 어떻게 묘사할지, 그리고 피해자의 서사를 어떻게 구성할지가 관건이다. 범죄의 양상과 경과를 관객에게 전달할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얼마나 구체적으로 보여줄지, 어느 정도의 자극까지 허용할 지에 대한 판단이 늘 애매하기 때문.
이에 더해 피해자에게 어떤 서사를 부여할 지도 문제다. 만약 피해자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묘사한다면 범죄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서는 범죄 사건과 수사 과정으로부터 쾌감과 재미를 끌어내기 위해 피해자를 플롯의 도구로만 활용한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박훈정 감독의 <브이아이피>처럼 해당 이슈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작품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매혈기>와 <버티고>로 주목받은 정지혜 감독의 신작 <정순>은 흠잡을 데가 많지 않다. 주인공 정순의 성범죄 피해를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그 심각성을 명확히 인지시키는 연출이 인상적이기 때문. 그뿐만이 아니다. 중년 여성 피해자의 감정선을 우직하게 쫓으며 그녀의 고통뿐만 아니라 재기 과정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즉, <정순>은 세련됐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드라마다.
엄마, 아줌마, 노동자의 틀을 깨다
<정순>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우선 전반부는 정순의 일상을 비춘다. 정순이라는 인물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모습인지를 약간의 거리를 둔 채로 차분히 포착한다. 이때 정순의 일상 속에 정작 '정순'의 모습은 없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녀는 직원, 엄마, 아줌마의 탈을 쓰고 바쁘게 살아간다. 공장에서는 다른 여직원의 화장이 너무 진한 거 아니냐고 참견하는 오지랖 많은 아줌마다. 그러면서도 친한 동료들과는 등산도 같이 가는 활달한 직원이다. 또 집에서는 평범한 엄마다. 결혼을 앞둔 딸이 결혼식 준비는 잘하고 있는지 걱정을 놓지 못한다. 그 사이에서 한 개인이자 주체로서 정순의 모습은 많지 않다.
하지만 영수가 공장에 취직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정순이 영수의 작업을 도와주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그들의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한다. 물론 엄마로서 결혼을 앞둔 딸과 예비 사위의 반응을 걱정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흉을 보지 않을까 우려도 한다. 하지만 그 걱정마저 떨쳐내면서 정순은 영수 앞에서 온전한 자기 자신을 되찾는다. 그 순간 엄마, 아줌마, 노동자로서는 맛볼 수 없는 짜릿한 행복이 그녀를 감싼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그러나 <정순>의 분위기는 일순간 전환된다. 영수 앞에서 찍은 은밀한 영상이 주변인들에게 유포된 것. 대명사로만 불리던 그녀가 '정순'을 맛본 바로 그 순간이 동의 없이 타인에게 공개되어 버렸다. 그녀가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은 이제 그녀에게 가장 큰 고통과 수치를 안긴다.
그녀의 일상으로 가득한 전반부가 평화와 행복으로 가득하다 보니 정순의 추락이 초래한 분위기 전환은 유달리 날카롭고 뼈아프다. 이는 카메라의 구도와 움직임에서부터 느껴진다. 사건 이후부터는 전반부와 달리 핸드헬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또 대상을 보다 가까이에서 포착하며 인물들의 호흡과 변화를 보다 역동적으로 담아낸다. 그 덕분에 혼란상도 더 자세히 느껴진다.
특히 정순의 심경 변화를 포착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범죄 해결보다는 피해자에게 철저히 초점을 맞추면서 자칫 그저 변덕처럼 보일법한 괴로움을 절절하게 묘사한다. 정순을 온종일 누워서 집에 칩거하다가도, 경찰 수사에 협조하기도 하고, 이내 빨리 일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다가도 특정한 계기로 인해 참아둔 분노와 한을 토해내기도 한다.
이러한 묘사 덕분에 <정순>은 평범해 보이면서도 세련됐다. 범죄 자체의 잔혹함을 강조하고, 선정성을 윤리적 경계선까지 끌어올리면서 범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화법을 피해 가기 때문. 오히려 피해자의 심경 그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 관객 뇌리에 경각심이 더 강렬하게 각인되기도 한다. 애써 일상으로 돌아오던 정순이 엄마를 목놓아 오열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정순이 운전대를 잡는 방법
이에 더해 <정순>은 정순을 피해자라는 틀에 가두지 않는다. 그녀가 스스로 틀을 부수고 나오는 모습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 과정은 고정관념을 역이용하기에 더 인상적이다. 영화는 고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이라는 설정을 살려 정순으로부터 주체성을 계속 뺏으려 한다.
하지만 정순은 그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다. 기꺼이 대항한다. 이 대목에서는 김금순 배우의 열연이 특히 두드러진다. 그녀는 노래 '지나가'를 반복해서 부르는데, 노래 가사와 노래 속에 담긴 정순의 감정선 변화만 따라가도 영화 전체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다.
정순의 변화는 다른 장면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운전대를 잡는 사람이 달라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중반부까지 정순은 운전을 할 줄 모른다. 영수나 유진이 운전하는 차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출퇴근을 한다. 그러나 운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달라진다. 가해자를 피하거나 숨는 대신, 당당하게 맞서는 법을 깨우친다. 엄마, 아줌마, 공장 노동자라는 역할과 지위에 갇혀 있다가, 자기 힘으로 탈출하는 법을 익힌다.
비슷한 장면은 또 있다. 영수가 머무르는 모텔 앞에는 노숙자가 한 명 있다. 처음에 정순은 그 노숙자를 경계한다. 모텔을 드나들 때마다 그녀가 혹시 자기 얼굴을 알아보고 소문을 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종국에는 자기 힘으로 술 한 병, 담배 한 개비도 구하지 못하는 그녀를 안쓰러워한다. 이처럼 커져가는 정순의 주체성은 다른 피해자에게 전하는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처럼 보인다.
단 한 가지 옥에 티
다만 <정순>에도 옥에 티가 존재한다. 흡입력이 다소 부족하다. 독립영화임을 감안해도 관객을 휘어잡는 힘이 약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특히 초반부에서 문제가 두드러진다. 정순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제시하는 화법은 필연적으로 관객을 휘어잡는 힘이 떨어지기 때문. 기술적인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특히 음향이 아쉽다. 대사와 주변 소음이, 혹은 대사끼리 겹친 나머지 극장에서도 대사가 안 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도가 떨어지는 중년 여성의 일상 공간을 스크린 위에 비범하게 재구성하는 힘만큼은 확실히 남다르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수상, 제17회 로마국제영화제 2관왕인 이유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늦은 개봉이 꽤 아쉽다. 영화제 출품과 수상이 대체로 작년, 재작년에 이뤄졌다 보니 화제성 면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
Acceptable 무난함
담백하게 불타며 빛을 발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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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 종말에 대처하는 지구인들의 다양한 자세!
돈 룩 업은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에요.
현실에서 벌어질만한 상황을 계속 보여주죠.
특히 과학자들의 의견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면서부터 대중들도 정치인들도 종말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저 정치적인 싸움만 하게 됩니다.
꽤 신랄하게 이런 사회적인 이슈를 지적하고 있어요.
블랙코미디이지만 꽤 심각하고 무서운 영화가 될 수도 있겠네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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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스트버스터즈: 오싹한 뉴욕> 티저 예고편
한 여름, 뉴욕이 얼어붙었다! 공포로 얼어버린 세상을 구하라! ? [고스트버스터즈: 오싹한 뉴욕] 4월 극장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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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 30초 예고편
손에 땀 마를 날 없는 ‘다한증’ 춘희는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로 수술비를 모으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별로 안 좋아한다며 홀로 살아가던 씩씩한 춘희,
부끄러움과 외로움이 전부였던 그에게 봄처럼 새로운 인연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