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두codu2024-12-03 13:33:56
죽음을 옆에서 바라봐 주는 사람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룸 넥스트 도어>(2024)
해당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생한 삶의 복판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생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이 주는 공포를 크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죽음을 외면한 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신의 두려움에 용감하게 맞서기도 한다.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자신이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책으로 쓴다.
강렬한 붉은색 옷을 입고 ‘환희와 우울’을 오가는 자궁경부암 3기의 시한부 환자인 마사(틸다 스윈튼)는 항암 치료뿐 아니라 새로운 치료법들의 피험체가 되어 암과의 투쟁을 치르고 있다. 자신의 몸 상태를 받아들이고 이미 죽음까지 결심했던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창백하고 건조한 얼굴로 화면을 가득 채우며 등장하는 틸다 스윈튼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겪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배우임을 몸소 보여준다. 마사라는 인물 자체는 모든 색을 빼앗긴 듯 창백하지만,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은 생동감 넘치는 색의 향연이다. 집은 감각적인 미술품과 소품들로 꾸며져 있다. 마사가 마지막을 보낼 장소 역시 붉은색과 녹색을 주축으로 살아있는 색의 생기로 가득하다.
오랜만에 마사와 만난 잉그리드는 그의 말을 들어주며 언제든 곁에 있어주려 노력한다. 마사는 그런 잉그리드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곁에 있어줄 것을 부탁한다. 자신이 안락사를 실행에 옮길 어느 밤에 자신의 옆방에 있어줄 것을, 이 여정에 동행해 주기를 부탁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잉그리드에게 이는 어렵고, 불편하고, 무서운 부탁이다. 마사의 선택을 존중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왜 하필 잉그리드 자신이어야 하는가? 잉그리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글로 쓰는 것을 넘어 죽음 그 자체를 마주할 위험, 혹은 기회를 마주하게 된다.
원래 마사의 계획은 잉그리드가 옆방에서 닫힌 문으로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잉그리드는 마사의 옆방에 있지도 않았고, 닫힌 문이 아닌 투명한 테라스 유리창 너머에서 초록색 선베드 위에서 선명한 노란 정장을 입고 영면에 든 마사를 보게 된다. 마사의 죽음은 고통스럽기보다 평안해 보인다. 그가 원하던 ‘평화와 정적’이 거기에 있다. 문 뒤에 도사리는 죽음을 예감하며 문을 여는 것과 선 베드에 누워 흐드러지게 누워 있는 죽음을 통유리로 마주하는 것 중 무엇이 잉그리드에게 나은 지는 알 수 없으나 품위를 지킨 죽음의 이미지로 그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아름다운 날에 좋아하는 새소리를 들으며 떠난 마사는 딸 미셸의 모습으로 살아 돌아온다. 극 중 마사는 계속해서 자신과 사이가 소원한 딸 미셸을 언급한다. 마사의 죽음 후 엄마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공간을 찾게 되는데 틸다의 1인 2역으로 인해 그 건물은 마사와 잉그리드 외에 다른 인물은 허락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잉그리드는 “집이 너로 가득”하다고 말하며 마사이자 미셸인 그 존재를 애틋하게 바라본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만든 <룸 넥스트 도어>라는 공간은 죽음 직전에 잠시 거처하는 유예의 시공간이다. 그곳에서 마사와 잉그리드는 죽음을 기다리고 두려워하며 때로는 즐겁게 죽음의 시간을 보낸다. 마사의 죽음 옆에서 우리는 그저 그의 죽음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애도 마주한다. 짧지만 분명한 플래시백으로 보여지는 마사의 과거는 약간의 단서만 제공하며 마사의 삶을 가늠하게 한다. 다소 전형적으로 그려지는 삶의 단편들은 오히려 삶과 죽음의 보편성을 부여한다.
<룸 넥스트 도어>는 안락사를 이상적이게 그려낸 듯도 하고, 저 정도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평온하고 안정적인 안락사를 할 수 있다는 감상도 준다. 저 아름다운 풍경과 안전한 환경은 분명 이상적이며 환상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이상적인 안락사 세트장 같다. 그러나 어떤 삶을 미화할 수 있듯이, 어떤 죽음도 미화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지막을 꿈꾸는 것이야말로 큰 욕망이자 환상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 모든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함께 죽음을 동행해 주는 친구 잉그리드다.
감독은 비단 개인의 죽음에 대해서만 다루지 않는다. 인물의 입을 빌어 기후위기로 인해 전쟁터가 되어버린 지구와 사회가 맞이한 시한부의 상태를 개탄하기도 한다. 마사가 겪는 시한부의 삶은 모든 지구인이 겪어야 할 삶과 다르지 않다. 성공적인 치료법을 통해 개선될 수도 있지만 고통스러운 삶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이제 죽음은 더 이상 나이의 문제도 아니다. 잉그리드의 책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얻는다. 젊은 세대의 불안과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만큼 젊은 죽음은 적지 않다. 우리 모두는 전쟁 같은 삶의 비극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잉그리드 “비극 속에서 사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마사의 폭풍 같은 삶과 선택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잉그리드는 마사의 전쟁 같은 삶과 평화로운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애쓴다. 그것은 그가 좋은 관찰자이자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의 죽음, 인류의 죽음 나아가 문명의 죽음을 말하는 영화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누구와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할지 고민해 볼만한 영화들을 계속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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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베테랑2>가 10분간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류승완 감독 "영화를 칸에서 상영하게 돼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
칸에 오기까지 50년이 걸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무척 짧을 것 같다"
"칸 영화제 관계자분들과 오늘 극장을 찾은 관객분들, 이 영화를 아직 만나지 못한 미래의 관객분들,
그리고 이 영화를 함께해준 배우들과 가족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베테랑은 오는 하반기에 개봉 예정이며, 1편 개봉 이후 9년 만에 나오는 시리즈 작품
? 아주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이 될 것이며 정해인이 멋지게 나온다고 힌트를 남김
?칸 영화제 초청 후 시놉시스가 유출되며 메인 빌런은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짐
5월 4주차 씨네뉴스 함께 해요!
<베테랑2> 류승완 감독 50년 만에 칸 입성
<베테랑2>가 칸국제영화제에 입성했습니다.
제77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베테랑2>가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상영 후 10분간 관객의 기립박수가 이어졌으며 영화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은 “여러분은 칸까지 오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셨나요? 저는 50년이 걸렸습니다”라는 말로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디즈니랜드 비공개 레스토랑 <클럽 33> 영화화
디즈니랜드 내에 비밀리에 존재하는 회원제 비공개 레스토랑 <클럽 33>이 영화화됩니다.
<클럽 33>은 미국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상하이, 도큐 부지 내의 레스토랑으로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주로 스폰서인 법인 회원과 개인 회원만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실사판 영화는 미스터리한 극비 클럽 33에 초대장을 받은 탐정 지망생 청년이 주인공으로 그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해 단골손님들이 젊은 탐정에게 사건 해결을 의뢰하는 이야기입니다.
트럼프 전기 영화 칸 영화제서 기립박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 <어프렌티스>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습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며 이 영화에는 트럼프 전 대통려이 첫 부인 이바나를 상대로 강제 성관계를 갖는 장면이 담겨있어 가장 주목받는 화제작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시사회 참석한 관객들로부터 약 8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 <부고니아> 요르고스 감독 연출 확정
한국의 SF 코미디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작 연출을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맡게 되었습니다.
주연은 <라라랜드>, <가여운 것들>에 출연한 미국의 대표 배우 엠마스톤과 <파워 오브 도그>, <시빌 워>로 얼굴을 알린 미국의 배우 제시 플레먼스가 주연에 캐스팅되었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엠마스톤과 <더 페이버릿>, <가여운 것들> ,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으며 <부고니아>는 음모론에 빠진 두 젊은이가 대기업의 CEO가 지구를 파괴하려는 외계인이라고 확신하고 그를 납치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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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연니버스는 후회 없을 선택
시청했던 작품을 한 패키지로 모아서 간단 리뷰를 하려고 한다. 대상은 '기생수: 더 그레이', '삼체'다.
'기생수: 더 그레이'
연상호 감독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타고난 이야기꾼인 건 동의하나, 그가 구축한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 인장이 찍힌 작품들에 대한 관객들의 호불호는 극명하다. 하지만 이와아키 히토시 작가의 '기생수'를 드라마화한 '기생수: 더 그레이'는 후회 없을 선택이 될 것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설정만 그대로 가져왔을 뿐, 원작 만화와는 다른 방향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판을 키우기보단 충청남도 남일군이라는 가상 지역 내로 의도적으로 축소하면서 동시에 서사, 캐릭터들의 전사 등을 속전속결로 풀어낸다. 여기에 '기생생물과 인간의 공존'이란 주제를 바탕으로 '기생생물을 지키려는 자, 막으려는 자, 공생하는 자'로 단순하게 공식화하면서 '인간성'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19세 관람가'가 붙었을 만큼, 소름 끼치는 비주얼 재현도 합격점이다.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가는 전소니와 구교환의 합, 시즌 2 여지를 남겼던 마지막 장면 또한 인상적이었다. 만약 시즌 2가 제작된다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는 조금 더 손을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
'삼체'
SF 소설가 류츠신의 동명소설을 드라마화한 넷플릭스 '삼체'는 흥미롭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400년 뒤에 지구에 도착해 폭격을 가하겠다는 낯선 외계 문명을 대처하는 지구인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으니 말이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지우려고 했던 광기의 결정체 문화대혁명의 피해자 예원제(자인 쳉/로잘린드 차오)는 복수를 위해 외계문명을 불러들였으나, 같은 가해자의 길을 걷게 돼 또다시 소중한 이를 잃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게 인상적이다. 또 과학과 이성이 상상치도 못하게 계속 고꾸라져 절망을 안겨주는 광경도 이목을 끌었다. 거듭된 실패와 절망, 비탄 속에서도 더 나은 해답을 찾아 나서려는 태도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비과학적인 인물들까지 과학적 사고를 하는 모습도 매우 신선하다.
여기에 넷플릭스의 거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은 화려한 시각효과 및 스케일도 압권이다. VR 세계관과 우주의 윙크는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것이 원작소설의 초반부를 압축해서 담아냈다는 사실이 놀랍다. 시즌 2가 제작된다면 얼마나 더 대단한 스토리텔링과 SF요소들이 나올까 기대감만 높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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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부하다고 해야할지, 새롭다고 해야할지
올해 상반기의 영화계의 흥행을 캐리한 작품이 나타났다. 개봉과 동시에 반응이 폭발적이라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라도 내가 감당할 만한 수위가 아니라고 여겨지면 보진 않는데, 요새 오컬트에 관심이 생겨서였을까 이전보다 용기가 생겨서였을까 결국을 보러 갔다. 무서워하는 와중에도 오컬트는 밤에 봐야 한다면서 친구까지 대동해서 봤다. 보고 나서 무서웠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관람하는 동안에는 언제 어떤 상황이 들이닥칠지 모르니 오는 긴장감이 있었는데, 다보고 나니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서운 영화 못본다고 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건 봐도 괜찮을 것 같다.
<눈을 사로잡는 초반부, 힘이 빠져버리는 후반부>
초반에는 쉴새없이 몰아치니 재미는 있다. 초반부의 메인 스토리라인인 파묘를 요청한 한 부잣집 이야기는 영화 시작 한 시간만에 그 비밀이 탄로난다. 그리고 그 부잣집의 비밀이라고 해서 그렇게 놀라운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phase2를 위한 연막일 뿐이다.
그 밑도 끝도 없는 부잣집에서 의뢰한 파묘 요청은 아주 작은 계획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 부잣집은 한 때 친일파로 이름을 날리던 집안이었고, 더이상 일본의 손아귀에 있지 않은 한국에서 일본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는 것을 굳이 알려서 좋을 게 없었을 뿐이었다. 그저 그게 다였다.
이후 갑자기 파묘를 끝낸 묘에서 새로운 묘가 등장한다. 심지어 묘 속에서 새로이 찾아낸 관은 땅에 수직으로 꽂혀있는 모습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이게 숨겨진 진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갑자기 국면이 일본이 등장하면서 도깨비가 등장한다는 데 있다. 어떤 가족의 비밀 파헤치기에서 넘어서서 한국과 일본의 경쟁 구도가 수면에 올라온다. 그래서 일본 귀신인 정령과 한국의 귀신의 대결 구도까지 나오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약간 엥스럽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왔을 때에는 이 부분에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물론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귀신 간의 대결 장면이 집중하게 만들긴 하지만 과연 이 장면을 두 번 보게 될까 싶었다. 아니, 또 보면 느낌이 달라지려나.
웬만한 영화는 기승전결이 있기에 끝으로 갈수록 메시지가 보이는데 너무 뻔한 메시지를 숨기기 위해서 여러 레이어로 감싸 미스터리처럼 보이게 포장한듯한 느낌이 있다. 그 레이어에 무속이 들어가니 더 신비해보이는 효과가 배가된다. 결론적으로 그게 이 영화의 흥행요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메시지에서 승부수를 둘 수 없다면 그 메시지를 어떻게 포장할 것인가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긴다.
그리고 그 포장에 배우들의 열연이 큰몫을 했다. 역시 서사만으로 감동을 주는 영화는 잘 없기에 이래서 그 극본을 살려내는 배우의 역할이 그래서 큰 것 같다. 소위 '연출의 미학'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매개체에서 점점 그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여러모로 신기하면서도 아쉬운 작품이었다. 보는 순간에는 재밌었는데 곱씹을수록 아쉬움이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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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레즈비언 ‘루저’의 미래 만들기
6★/10★
루저만이 그만둔다(Only losers quit). 보디빌딩 대회를 준비하는 재키는 루저가 아니고 싶다. 사격장에서 일하는 재키는 총 쏘기를 배우기가 마뜩잖다. “총이 아닌 나의 힘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런 재키가 대회를 준비하며 스테로이드를 맞고 총으로 누군가를 살해한다. 그러니까, 자기 힘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힘으로 사건을 벌인다. 자신의 호기심을 배반하는 재키의 실패는 예정되어 있다. 재키는 루저다.
재키의 연인 루가 일하는 허름한 헬스장에는 ‘루저만이 그만둔다’와 같은 문구가 여기저기 걸려 있다. 대체로 강인한 정신력으로 몸을 가꾸자는 말들로, 끊임없이 이용자들에게 몸에 대한 정신의 통제가 ‘가능’하다는 주문을 건다. 루는 흡연이 독毒을 먹는 것과 같고, 몸이 세뇌당하는 것과 같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도 계속 담배를 피운다. 루는 흡연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루저다. ‘루저만이 그만둔다’는 명제는 담배 피우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루에게는 반대로 적용되지만 상관없다. 재키와 루와 같은 사람들, 즉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남자에게 섹스를 해주고(재키) 가정 폭력의 피해자이면서도 남편을 ‘사랑’하는 언니 걱정에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루) 사람들은 스테로이드 복용과 총 쏘기, 담배 피우기뿐 아니라 무엇을 그만두든 그만두지 못하든 언제나 루저일 테니까.
두 루저가 처음 만난 건 어느 허름한 헬스장이다. 루는 땀 흐르는 커다랗고 근육질의 몸을 과시적으로 전시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주변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운동에 열중하며 대회를 준비하는 재키에게 한눈에 반한다. 대회 때까지 머물 곳이 없던 재키도 루의 호의에 반응하고 둘은 금세 레즈비언 연인이 된다.
루저인 두 사람의 관계는 시작부터 루저답다. 영화에는 루가 《마초 걸레들Macho Sluts》을 읽는 장면이 두어 번 나온다. 게이 사우나, SM 섹스, 난교 파티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긴 이 책은 아마존 도서 소개에 따르면 “여성 간 섹스의 변태적kinky 잠재력”에 대한 “가장 솔직하고 잘 쓴” 텍스트다. 그러나 바로 이 이유로 1988년 출간 당시에는 격렬한 비난에 시달렸다. 특히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도 그랬다는 점이 중요하다. 페미니즘/퀴어 진영에서 성을 어떻게 이야기할지에 관한 논쟁(친포르노 vs 반포르노 등을 논쟁한 이른바 ‘sex war’)에서 초기에는 《마초 걸레들》과 같은 책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난타당했다는 점을 고려해보자. 루는 문학 취향에서마저도 루저의 운명을 타고났다. 어쩌면 혐오스러운 몰골로 루에게 집착하다 손쉽게 죽어버리는 또 다른 레즈비언 여성 데이지는 《마초 걸레들》을 핍박한 주류 레즈비언에 대한 루의 적대를 투영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존재를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는 장면은 거의 없다. 루가 온 동네에 레즈비언이라고 소문이 난 상태인데도 그렇다. 루는 외톨이고, 그래서 루저다.
그러나 재키와 루, 두 루저 사이에도 차이는 있다. 재키는 미래를 꿈꾼다. 보디빌딩 대회에서 입상하면 캘리포니아에서 트레이너 일을 구해 바닷가의 멋진 집에서 근사한 삶을 살아가는 미래 말이다(물론 재키는 스테로이드에 취해 루저답게 대회를 스스로 말아먹는다). 그러나 루는 실패할 미래마저 없다. 루는 남편에게 맞는 언니를 떠날 수 없다. 재키와 루의 로맨스가 꼬이는 건 여기서부터다. 두 사람은 하나의 미래를 공유할 수 없다. 재키가 루를 위해 폭력적인 형부의 문제를 살인으로 ‘해결’해주었는데도 그렇다. 결국 두 사람이 다시 사랑하려면 공통의 미래를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사업을 위해 온갖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옥죄는 루의 아버지(가부장적 남성 권력)를 거슬러야만 한다. 재키는 “총이 아닌 나의 힘”을 탐색해야 하고, 루는 가족이라는 질곡을 잘라낼 결심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둘은 그렇게 한다. 물론 처참히 실패한 보디빌딩 대회의 여파로 재키가 꿈꾸는 미래는 수정되어야 할 것이고, 루는 지금껏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미래를 그리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국에는 두 사람이 꿈꾸는 미래의 포개짐은 허름한 트럭을 타고 떠나는 그 기나긴 길 위에서의 시간 어딘가에서 피어날 것이다.
전반부 전개와 두 사람이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엔딩은 이 영화가 〈델마와 루이즈〉의 2024년 판, 즉 죽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는 두 레즈비언의 이야기임을 암시한다. 죽지 않은 레즈비언은 어떻게든 살아가며 실패하더라도 언젠가 현재가 될 미래를 이야기할 것이다. 때때로 조악하고 엉뚱한 전개와 캐릭터 재현의 윤리적 문제(데이지)에도 불구하고 몇몇 인상적인 장면(특히 레즈비언 관능에 관한)은 두 사람이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기대를 이어가게끔 만든다. 두 루저는 ‘그만두지 않음으로써’ 루저가 아닌 혹은 루저여도 상관없는 세계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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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말도 못하는 공룡 박사들, 미안해!
<브로커>와 <헤어질 결심>의 칸 영화제 수상 소식으로 영화팬들의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렸듯이 아이들의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가 극장에 찾아왔다.
1993년을 시작으로 29년간 총 6편의 영화로 제작된 <쥬라기> 시리즈는 '공원에서 월드까지' 이름을 바꿔가며 스케일도 키워나갔다.
이 앞전 <월드>시리즈 2편의 총 수익 10억 달러를 가벼이 넘길 만큼 흥행에 대한 기대치는 남다를 것이다.
특히, 18년에 개봉한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은 국내 기준 일일 관객수 118만명으로 당시 최고 기록을 경신했으니 국내에서의 성적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근데, <쥬라기> 시리즈의 후속작들은 그렇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2편과 3편을 제외하면, 모든 시리즈의 총 수익이 10억 달러를 넘겼으나 2편은 <쉰들러 리스트>의 조건부 영화였고, 3편은 "티라노사우루스(aka. 티렉스)"를 죽여버렸다!
이 결과로 <쥬라기 공원 3>을 마지막으로 14년 만에 <쥬라기 월드>로 리부트로 겨우 개봉할 수 있었다.1. 공룡들은 다 좋아!
90년대생들에게 미의 기준을 세워준 <그리스 로마신화> 누구나 가정에 한 권씩은 구비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은 작품이었다.
근데, 갑작스레 그림체가 바뀌며 손이 가지 않았다. (전혀!)
그런 점에서 관객들이 생각하는 <쥬라기> 시리즈는 영화의 제목이자 극 중 "테마파크"의 명칭답게 '공룡들이 나온다'라는 점은 최고의 엔터테이닝을 선사한다.
특히, 대체불가의 마스코트 "티라노사우루스(aka. 티렉스)"를 '세대교체'라는 이유로 죽였으니 "스피노 사우루스"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있을까!그렇기에 <쥬라기 월드>는 대체불가한 매력을 계승하되 나를 비롯한 앞전 공룡 박사들의 노여움을 거둬내어야만 한다.
이에 새로이 선보인 "안도미누스 렉스"를 "티라노사우루스(aka. 티렉스)"에게 퇴장시켜 졸업한 수많은 공룡 박사들의 마음을 달래주었고, 이후 <폴른 킹덤>에선 "하우스 호러"를 빗대어 극장에서 이불을 찾게 만들 정도로 무섭게 만들기까지 해 "월드"가 "공원"보단 재밌음을 입증했다.2. 또 이러네?
극장 안을 가득 메운 공룡 박사들의 머리들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번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에 거는 기대치는 이전과 달랐다. (피하려고 일찍 갔는데, 참...)
서로 각자의 지식을 뽐내며, 격론을 펼칠 것만 같았던 극장은 이내 도서관으로 변했는데 이는 옆에 동석한 부모님 때문이 아니다.
관객들이 생각하는 오락과 다르게, 이번 <도미니언>은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인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직면한 큰 변화는 "농경"으로 이는 소를 이용한 "우경" 등의 '목축'으로 발전한다. - 이는 1편에서 "오웬"이 "블루"를 비롯해 "랩터 조련"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발생되는 "잉어 생산물"은 '계급의 탄생'과 함께 '전쟁'으로 이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6편뿐만 아니라 전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과도한 발전의 공포"는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적되어 새삼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근데, 2편 <폴른 킹덤>에서 화산섬의 구조와 공룡을 풀어주는 장면으로 시리즈는 처음으로 "과학 발전의 공포"가 아닌 "공존"을 제시한다.3. 뭐, 이리들 어설퍼...
노선의 변화로 영화는 공룡이 아닌 사람 캐릭터들로 서사를 대신하지만, 설명이 진전되긴 할 정도로 <도미니언>의 이야기는 더디기만 하다.
이번 영화의 시작과 함께 "공존이 가능한지?"에 대한 뉴스가 나오며, 갈등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여기에 "과도한 발전의 공포"를 직접 몸으로 느낀 구 시리즈의 주인공들까지 등장하며 이는 확신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첨예한 갈등보단 새로운 시리즈로의 협조로 돌아선다. (어찌 보면, <쥬라기 공원 3>의 "세대교체"가...)그리고 앞서 말한 "과도한 발전의 공포"는 이번 6편뿐만 아니라 전 시리즈의 악당들이 쓰는 지론이다.
재탕만 하더라도, 진부하다고 말하는 것을 생각하면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혀진 무미건조한 악당으로 남겨진다. (비서의 배신을 눈치 못 챈다!, 아니 "말콤"은 알았잖아!)
물론, 1편에서의 "딜로포 사우루스"를 오마주하는 엔딩으로 이를 무마하려 하나 여러모로, 아쉬움이 생긴다.
이외에도 중간 보스로 나오는 "소요나 산토스"의 어설픈 액션까지 마지막이라고 예고한 것을 생각하면 이래도 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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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러시아군의 침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이야기!
감독:이리나 칠리크
출연: 돈바스 지역의 한 가족
시놉시스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군이 쳐들어오자 그 속에서 일어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인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는 영화 맨 초반에 어느 한 가족이 나오는 장면과 함께 포격 소리가 크게 들리고 폭탄이 터지는 전장 속에서 일반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자신들의 삶을 보여준다. 트라우마로 남는 전쟁의 현장 속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피난을 가거나 그 도시에 남아있기도 한다. 이 영화는 가족이 등장인물로 나오면서 전쟁에 대한 참혹한 이야기를 여러 가지 씬으로 보여준다.
러시아군이 침공한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에 있는 이 가족은 어린아이부터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여학생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대학 장학생이 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목표를 이루는 장면도 나오는데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게 어머니뿐만 아니라 주위 친척들까지 입시에 성공하면 포옹을 하거나 놀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적군인 러시아군에게 맞서 싸우는 모습도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점점 러시아에 있는 많은 미국 기업들이 떠난다고 한다. 그러나 푸틴은 자신들에게 경제 보복하려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일본,우리나라까지 천연가스를 수출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평화를 원했던 러시아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을 무너뜨리고 독일 통일에도 기여했으며 평화를 위해 앞섰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고르바초프가 러시아를 망쳤다는 이야기를 하는 극우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전쟁이 금방 끝나지 않을 것으로 나오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다치고 피해를 입는 사례들이 들려오고 있다.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면서 트라우마가 일어나거나 죽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느낌이 많이 들기도 한다.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겹게 살아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어서 기쁜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08/25(목) - 09/01(목)
2022-08-27 16:00 - 17: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4관
2022-08-31 16:00 - 17: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5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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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감정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영화! 스펜서!
다이애나 황태자비에 대한 영화 스펜서가 개봉했습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재구성한 영화라기보다는 실제 그녀가 이혼 전 느꼈을 감정을 압축해서 담은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고독과 외로움이 영화 전반에 강하게 묻어나고 있죠.
그 외로움이 이렇게 제대로 표현된 건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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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셀럽은 회의 중> 공식 예고편
100% 실제 상황! 아니, 이런 말까지 한다고?? 노필터링 "삐-"처리가 난무하는 대환장 회의 현장! 셀럽파이브의 4인 4색 美쳐버린 코미디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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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티저 예고편
[2021년 6월 18일, 넷플릭스 공개]
국적, 다 다르다.
성격, 제각각이다.
외국인 학생들이 모인 한국의 한 대학 국제 기숙사.
이곳에서 그들은 우정을 쌓고, 사랑에 들뜨고, 세상을 배운다.
대부분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