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샤2024-12-09 00:18:45
석탄의 온기를 머금은 아름다운 손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리뷰
연말연시의 달뜬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것은 무엇일까? 지나간 한 해를 아쉬워하는 마음도 크겠지만 '내년은 올해보다 낫겠지, 조금은 더 행복하겠지'라고 되뇌며 두꺼운 먼지로 뒤덮인 희망의 자리를 쓸고 닦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이에게는 희망을 떠올리는 짧은 순간조차 호사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쉴 틈 없이 불행의 융단폭격을 견뎌야 하는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손을 잡아 줄 다른 사람의 손이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단 한 사람의 손이 미술품 복원가처럼 섬세한 손길로 부스러진 영혼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에서 아내, 다섯 딸과 함께 살면서 석탄을 파는 '빌 펄롱(킬리언 머피)'. 그는 단조롭고 평온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커다란 상처를 품고 있다. 그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아서 시도 때도 없이 그를 엄습해 그의 수면을 방해하고 급작스러운 눈물을 유발한다. 빙하의 크레바스(crevasse, 빙하의 표면에 생긴 깊은 균열)처럼 깊은 상처를 지닌 그가 어떻게 타인에게 온정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천애고아가 된 그를 윌슨 부인과 네드 아저씨가 보살펴 주었기 때문이다. 빌의 유년 시절은 그에게 평생 동안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남긴 동시에 곤경에 처한 타인을 도저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빌이 사는 아일랜드의 소도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아는 작은 공동체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에는 수녀원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수녀원 내부에서 발생하는 사건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귀를 닫고 입을 닫는다. 오직 빌만이 고통받는 소녀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삽으로 석탄을 푸고, 포대에 담고, 운반하느라 빌의 손은 늘 거무튀튀하지만 그의 손은 이 세상 그 누구의 손보다 맑고 따듯한 손이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빌처럼 마음이 여린 사람이 어떻게 이처럼 거대한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 찬찬히 보여준다. 빌의 마지막 선택은 진정한 크리스마스 정신이 무엇일지 곱씹게 만든다.

'빌 펄롱' 역을 맡은 킬리언 머피뿐만 아니라 수녀원장 '메리' 역의 에밀리 왓슨, 빌의 부인 '에일린'을 연기한 에일린 월쉬, '사라' 역의 자라 데블린 등 주조연들의 연기 앙상블이 빛난다. 정중동의 카메라 워크는 특정 공간과 인물들의 관계성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여러모로 마음이 무거운 연말이지만 빌처럼 사심 없는 이타심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합친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끝)
* 씨네랩의 초청으로 12월 4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이처럼 사소한 것들>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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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아먹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
공포영화는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 귀신, 악령 등 초자연적인 현상에서부터 잔혹한 살인마와 같은 실질적인 공포까지. <에이리언 시리즈>는 호러영화 중에서도 크리쳐물에 속하는 장르지만, <쥐라기 공원>, <죠스>, <피라냐>등과는 다른,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와 절망을 자극한다. 바로 이성과 본능의 선과 악을 뒤집는 내용들과 무자비한 성폭력의 메타포 때문이다.
영화 안에서 '제노모프'로도 불리는 이 괴생명체는,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인간과 제노모프의 기원을 다루는 <프로메테우스>에서도 나오듯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창조주들이 만들어 낸 생물이다. 이 제노모프는 알에서 태어나 '페이스허거'로 불리는 상태로 숙주를 찾아 얼굴에 들러붙고 입에 삽입해 제노모프의 유충을 넣는다. 제노모프의 유충은, 숙주의 DNA와 결합해 숙주에 따라 다른 형태의 성체로 자라난다. 인간의 DNA와 결합한 제노모프는 뛰어난 지능과 포악한 본능으로 생물들을 잡아먹는다.
<에이리언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그 특유의 미술은 기괴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던 화가 H.R. 기거가 만들었다. 제노모프의 디자인도 애초에 그가 그렸던 한 그림에 나오는 괴물을 모티브로 했다. 바이오메카니즘으로도 불리는 기거의 그림들은, 뼈와 기계 관들을 반복적으로 밖으로 드러내면서 반투명한 미끌거리는 질감을 넣어 무척이나 기분 나쁜 느낌을 준다. 특히 제노모프의 머리는 남성 성기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이러한 기거의 디자인은 후에 다양한 곳에 영향을 주었는데, 만화 <베르세르크>의 사도와 5인의 천사들 디자인이 그 예다.
디자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페이스허거는 강제로 얼굴에 들러붙어 삽입을 해서 유충을 몸속에 넣고, 나중에 체스트버스터가 되어서 가슴에서 튀어나오게 된다. 이 과정은 그저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라서 무섭다기 보단 성폭행에 의한 강제임신과 출산을 연상시켜 더 끔찍하게 만든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전부 여성이고, 여성이 침을 질질 흘리는 남성 성기모양의 머리를 가진 폭력의 화신인 괴물과 대항해 싸우는 내용이다. 그 세세한 영화 뒷이야기를 모르더라도 영화 미술이나 디자인, 연출들이 그걸 느끼게 해 주기 때문에, 끔찍함을 넘어서서 불쾌함으로 다가가 영화 자체를 보기 힘들어할 수도 있다.
또한 제노모프는 태어난 본능으로 인간의 뇌를 주식으로 먹는다. 본능이 이성을 잡아먹는 것이다. 본능과 이성의 뒤집힘은 작중에서 여러 번 나오는데, 앤디와 같은 합성인간이 이성적이라면 제노모프는 본능적이고, 인간은 그 중간에서 이성과 본능을 다 가지고 있다. 인간의 본능은 모두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을 전혀 하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살려는 본능이나, 친구를 살리려는 본능에 이끌려 죽음을 자초한다. 이 와중에 이성만이 극대화된 합성인간들은 합리적인 생각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주인공들이 들어가게 되는 우주정거장은 로물루스와 레무스 모듈로 이루어져 있는데,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로마를 건국한 형제의 이름이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도 전쟁의 신 마르스의 강간으로 낳은 자식이다. 또 로물루스 모듈은 모두 제노모프의 근거지가 되어 승무원들이 잡혀가 숙주가 되어있는데, 역사에서도 로물루스는 로마에 여성이 부족하다고 이웃나라의 여자들을 납치했었다. 레무스 모듈이 그나마 웨이랜드 유타니의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모듈이라면, 로물루스의 연구소는 그들의 끝없는 탐욕의 본능을 드러내는 모듈이다. 이 탐욕은 제노모프보다 더욱 끔찍한 것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모든 본능이 나쁜 것이고, 이성은 합리적이며 옳은 것일까? 망가진 합성인간이 인간성을 되찾고, 인간성은 죽음을 무릅쓰고 친구를 구한다. 모든 것이 계산대로 완벽할 순 없다. 제노모프도 통제할 수 있다는'합리적 이성'으로 통제하려는 사람들을 본능으로 끔찍하게 이성의 상징인 뇌를 잡아먹으며 죽이지 않은가.
수많은 시리즈를 낳은 <에이리언>이지만,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그 근본의 메시지에 가장 충실하다. 70년대 사이버펑크가 지닌 우주선의 디자인부터, 남성의 성폭력과 여성이 대항하는 힘, 본능과 이성의 줄다리기. 그리고 <이블데드>를 리메이크하면서 인정받은 페데 알바레즈의 뛰어난 연출력까지. <에이리언 시리즈>가 가진 특징과 재미를 그대로 살려냈고, CG가 아닌 실물이 보여주는 질감과 레트로한 감성은 <에이리언>을 처음 접하는 젊은 관객들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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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 일본스러움, 혹시... 나도?
* 이 리뷰는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 지금은 기후위기라고 쓰지만 그 당시에는 기후변화가 더 익숙했기에 기후변화라고 씁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스스로를 '외계인'이라고 지칭했다. 나의 영감 노트는 'Inspiration of Alien(외계인의 영감)'였고, 고등학교 때 선생님은 출석을 부를 때 공식적으로 외계인이라고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재밌게도 나의 장래 직업에 꽤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천문학자였다.
사실 이 영화는 알고 본 영화가 아니었다. 원래는 영화를 보기 전에 그래도 사전 탐색을 좀 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책(영화의 원작을 쓴 작가의 다른 책)을 구매하면서 쓴 기대평이 당첨되면서 보게 되었다. 그래도 조금 찾아보긴 했다.
감독이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다는 것, 원작에 핵에 관련된 것을 기후변화로 변경했다는 것 정도, 작가의 다른 책인 '목숨을 팝니다'를 읽어본 바로는 이 영화도 좀 난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것 정도였다.
시사회였지만 시사회 같지 않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영화는 시작되었다. 아무런 광고도 없이 시작되었다. 그런 시작은 처음이었다. 왜 청소년 관람불가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청소년 관람불가라고 할 만한 장면은 한 장면뿐이었데 잘라내도 무관한 장면이어서 오히려 잘라내고 등급을 낮추는 게 흥행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잘라내고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싶었다.
일본식 유머 코드가 잔뜩 배어 있으면서 끝으로 가면서 그 웃음기가 사라져 버리는 그런 영화다.
아빠는 화성인, 엄마는 지구인, 아들은 수성인, 딸은 금성인.
진짜인지 아닌지 끝까지 애매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책을 읽어보고 싶은 느낌이었다. 근데 아마 책을 읽어도 비슷했을 거다. 목숨을 팝니다의 결말도 비슷했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하는 생각은 다른 곳에서 왔다.
지난 환경의날에 환경영화를 본다고 <킹 오브 썸머>라는 영화랑 <판도라>를 봤다. 그런데 환경영화제에서 상영을 했다던 <킹 오브 썸머>보다 이 영화가 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해 더 잘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인은 지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한 고민, 그 다양한 고민들을 영화 속에 모두 담고 있었다. 사실 그게 재미있다.
기후변화는 인간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원래 지구가 가지는 속성(간빙기)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라는 주장(나는 사실 이것도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을 수성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외운 것이 아니니까 정확한 워딩은 아니다.
"지구인은 오만하다. 지구를 자기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자기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처럼 생각한다.
자신들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화성인인 아빠는 모든 것(직장, 가족)을 포기하면서 지구인들이 변해야만 지구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주 연합이었던가!?
위에서도 언급했듯 원작은 기후변화 대신 원자력발전소와 핵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책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가까운 시일에 누군가 나에게 환경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아름다운 별'을 추천해 줄 것 같다.덧 1. 하지만 일본식 개그가 재미없다면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덧 2. 은근 유명한 배우들 많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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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분동안 숨 못쉬게 질문하는 마스터피스
마음이 찝찝하다. 왜? 방금 붕어빵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가격이 1000원이라 쌌기 때문에 내면의 변명을 대고 먹었다. 근데 맛을 보고 난 한 중간쯤에 '아놔'하는 마음이 들었다. 왜냐면 난 오늘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먹었기 때문이다. 500원이라는 가격에 혹해 사치 아닌 사치를 부렸다. 밑도 끝도 없이 당뇨에 걸릴 것 같은 기분이다. 건강검진에서 당뇨의 ㄷ자도 볼 수 없었지만 유달리 단 걸 좋아하는 나의 성격이 왠지 모르게 화를 부를 것 같다.
근데 사실 이 불안감은 익숙하다. 왜냐하면 밤에 자기 전에 뭔가를 먹는 습성을 고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또 안 먹으면 뭔가를 입에 넣기 전까지 잠이 안 온다. 여러모로 나 자신에게 지는 듯한 나. 매일 밤이 될 때마다 작은 불안감이 든다. 이러다가 사고를 치면 어떡하지? 진짜 당뇨에 걸리면 어째? 강박증이라는 트리거가 의심에 불을 붙일 수도 있다 생각하니 뭔가 마음이 찜찜해진다. 어느덧 여름이다. 2022년이 되고 <매그놀리아>에 대해 쓰며 나 자신에게 뭔가 말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되어버렸다. 콜린성 두드러기 때문에 여름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지만 그래도 아이스크림같이 스테디 한 영화는 종종 생각이 난다. '올 때 XXX'라는 유명한 밈이 있지 않나. 그 아이스크림의 제품명처럼 이 영화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현대인의 공포로 자리 잡을 것 같다. 또 정식 개봉이 처음으로 이뤄진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 맛집이 될 것이다. 아마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당신의 머릿속에 서늘하게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영화 정말 무섭고, 빠져나오기도 어렵다. 텅 비어버린 내면을 가진 남자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당신. 누구야? 극장에서 무슨 영화 볼 거야?"
끔찍하고 찝찝한 살인사건
베테랑 형사 타카베는 한 사건이 일어나서 머리가 아프다. 기이한 사건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살인했다. 그런데 그 살인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끔찍하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목에 X자를 그려 끔찍하게 살인했다. 경악하는 타카베. 첫 번째 피해자는 매춘부였다. 옷이 발가벗겨진 채로 피투성이인 시체를 바라보는 타카베. 벌거벗겨진 채로 도망갔다는 부사수의 말에 호텔 구석구석을 찾아보기로 한다. 소화전 문을 연 타카베. 가해자는 다 벗은 채로 벌벌 떨며 숨어 있었다. 심문을 시작하는 타카베. 이 살인사건들이 더 끔찍한 건 가해자들의 기억이 죄다 사라졌다는 점이다. 왜 죽였는지, 피해자에게 갖고 있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까맣게 잃어버린 범인들. 잔혹했던 범죄 수법이었는데 이걸 기억 못 한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근데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니었다. 정보가 밖으로 새어나가지도 피해자들이 만나지도 않았는데 마치 우연처럼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는 점이다.
수사를 지속하는 타카베를 뒤로하고 카메라는 어느 해변으로 이동한다. 어딘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남자. 남자는 26살의 교사다. 교사인 남자는 뭔가 창백해 보이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이 교사에게 남자가 말을 건다. "오늘이 며칠이지?" "2월 26일이요." 교사와 남자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 이상한 질문을 건네는 남자. 교사는 이끌리기라도 한 듯 계속해서 대답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도와줘. 부탁이야.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교사는 남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서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남자의 이름이 마미야인 건 어렵지 않게 알았지만 남자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자기의 이야기를 한 교사. 교사는 마미야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해 주세요"라고 답한다. 마미야는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난 바다에 있던 적이 없다"라고 답한다. "난 아무 생각도 안 나"라고 답하는 마미야. 금세 이야기의 화두는 교사의 아내로 향한다. 아내는 하는 일 없는 전업주부라고 답한 교사. 그 말을 듣고, 마미야는 라이터를 켠다. 그리고 말한다. "부인 이야기 더 해봐." 교사는 초점을 잃었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됐다. 가해자는 교사였다.
형사 타카베
타카베는 가정을 꾸리고 있다. 아내가 있다. 아내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도 힘들어 보이는 아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카베는 아내를 사랑한다. 사랑했기 때문에 집에 올 때마다 돌아가는 빈 탈수기는 아무렇지 않다. 쉬운 길도 잃어버리는 것도 별일 아니었다. 사랑했기 때문에 겪는 고통도 감내해야 했다. 사람의 심리에 관심이 많았던 타카베. 타카베는 친구 정신과 의사인 사쿠마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하나, 둘 씩 파헤쳐나가기 시작한다.
영화의 신 왔다 간 듯
이 영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감정은 살기다. 이 영화는 살기가 느껴지는 영화다. 연쇄살인을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살기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이기 때문은 아니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압도적인 서스펜스를 서서히 목을 조르는 게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죽기 전을 유지한다. 일단 첫 번째,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다카베의 아내가 어느 병원에서 책을 의사 앞에 낭독한다. 그리고 한 남자가 발가벗고 있는 여자를 파이프로 무차별 폭행한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에서 물이 쏴-하는 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 귀염 뽀짝 한 노래가 들린다. 세상 졸려 보이는 타카베의 표정과 함께 'CURE'라는 자막이 나타난다. 배경음악과 장면이 대조되는 연출 방식은 거의 정석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어서 25년 전 영화의 연출 방식이 지금까지 먹힌다는 걸 생각하면 이 영화가 가진 놀라운 지점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 귀염 뽀짝 한 삽입곡을 지나고 나면 처음 가해자가 카메라가 잡힌다. 이 가해자가 처음 제시된 이후부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대사 작문이나 장소 설정, 연기 디렉팅까지 거의 신기가 들린듯한 탁월한 연출 능력을 선보인다. 별 것 아닌 거 같은 이미지에서 만드는 기괴함이라는 정서가 영화 전반을 이끄는데, 이것은 영화를 단순히 범인이 사이코패스여서 오는 공포감으로만 영화가 구성한 게 아니라는 의미다. 처음 가해자는 옥내 소화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체였다. 타카베가 취조하는 장면이다. 이것도 타카베의 시선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심지어 모니터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화면에 갇힌 가해자의 모습이 비친다. 확실히 답답하다. '기억이 나지 않아요'라는 답변과 잘 어울린다. 사실 간단한 비유다. '관객이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직간접적인 무언가를 확인할 수 없다' 혹은 '타카베 역시 구체적인 무언가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와 통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감독은 메시지와 장면 구성이 이질적이지 않게, 꼼꼼하게 설계했다.
이는 다음 장면과도 이어진다. 바다에서 무언가를 그리는 교사. 해안가에서 그렇게 멍-때리고 있는데, 마미야가 교사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렇게 모래사장 안에서 먼발치로 두 사람을 바라본다. 그냥 바다에서 사람들이 하는 대화다. 마미야는 교사에게 먼저 말을 건다. "여기가 어디야?" "XX 해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마미야가 사라진다. 다시 또 먼발치에서 카메라가 교사를 찍는다. 다시 등장하는 마미야. "오늘 며칠이지?" "여긴 어디야?" "내가 누군지 알아?" 이상한 질문을 한다. 근데 더 이상한 건 이 질의를 하는 인물들의 자세한 부분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얼핏 보면 바다에서 남자 둘이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보이는 게 전부라 이상할 게 없다. 이상한 건 단 하나뿐이다. 마미야가 하는 질문들이다. 이 질문은 굉장히 아무렇지도 않게 쓱 묘사된다. 얼마나 쓱 묘사되냐면, 살인이 벌어지고 나서야 관객이 '아 이래서 이랬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이런 상황을 차곡차곡 쌓아올라 후반부까지 이야기가 점점 폭주하게끔 만든다. 행동 하나, 하나 단적으로 잘라서 보면 ? 싶은 순간을 점점 차곡차곡 누적해서 광기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순간은 이 영화가 호러 분위기를 내는 방식과도 비슷하다. 일상 속에 내재되어있는 두려움을 노린, 구로사와 기요시의 창의적인 발상이 뒷받침됐다고 볼 수 있다. 신기한 영화다. 조그마한 균열이 모여 목을 조르는 서스펜스가 만들어진다. 문장만 보면 러닝타임이 한 네 시간쯤 되려나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111분이다. 두 시간도 안 되는 영화 상영시간 안에 모든 에너지를 집약시켜 관객을 홀리게 만든다. 아마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이 영화의 신에 홀려 연기 디렉팅, 청각 효과, 시각효과, 장소 섭외까지 저세상의 명작을 만든 게 아닐까 싶다;
무섭고 두려운 것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와 이거 미쳤다'라는 생각과 함께 숨을 굉장히 오랜만에 쉰다는 느낌이었다. 초중반부에 두 번째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나서는 그냥 아예 눈을 뗄 틈도 없이 집중해서 봤다. 이는 몰입감이 뛰어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몰입감이 왜 뛰어날까? 내가 이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불만을 가질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리고 나 역시 내면의 한 구석에게 정복당해 미친 짓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나 역시 살아오며 내면에 품고 있는 분노가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잠식당해서 끔찍한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몇 번 했었다. 당연히 영화는 영화고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는 이성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일상적인 방식으로 일반적인 호러영화의 문법을 탈피했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우리 내면에 갖고 있던 분노를 상기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특정 장면이 주는 공포감보다 내면의 두려움이 먼저 떠오른다. 이 두려움이 영화를 이끌다 보니 평범한 일상이 제시돼도 너무 무섭다. '너 이거 무섭지?'가 아니다. '네가 무서워하는 거 알아서 일일이 말해라'다. 그래서 이 영화의 몰입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 단점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일본 송강호
글쓴이가 일본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야쿠쇼 코지 이 아저씨 얼굴은 기억하고 있다. <바벨>에서도 본 적 있다. <세 번째 살인>이나 <도쿄 소나타>에서도 본 적 있다. 뭔가 일본의 거장들 픽을 몇 번 받으신 게 뭐랄까 우리나라의 송강호 배우가 연상되는 부분이었다. 이 느낌은 연기가 엄청 다르면서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송강호 배우의 장점은 감정연기가 입체적이라는 것이다. <사도>에서 영조 역을 맡으며 "미쳐-서~"라고 톤을 변조하는 송강호 배우의 열연은 창의적이면서도 깊이가 있는 연기였다. 이 영화의 중후반부를 지나면 긴장감이 한번 터지는 부분이 있다. 아마 영화를 본 후라면 잊히지 않을 장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때 야쿠쇼 코지의 연기는 압권이다. 물론 이 하이라이트 신의 연기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톤을 왔다 갔다 하는 참는 연기가 극의 생기를 부여한다.
또 하기와라 마사토의 연기는 '돌아이'라는 말이 굉장히 어울린다. 이 인물을 연기하는 난이도는 아마 높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텅 비어버린 내면이라고 하는 게 말이 쉬운 거지 사실 상상이 그렇게 잘 되는 모습은 아니다. 근데 글쓴이는 이 '텅 비었다'라는 속성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은 광기로 가득 차 있다. 뭐 자기 이름도 모를 수 있고 얼굴도 모를 수 있다. 근데 이 사람은 최면으로 살인을 교사한 연쇄살인마다. 아닌 거다. 텅 빈 인물이 살인을 교사한다? 나머지는 다 비어있어도 내면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는 셈이다. 이를 위해서 가져야 할 연기 준비물이 있다. 순수한 척하는 연기다. 어찌 보면 이중적인 이 역할을 내면의 광기로 잘 소화해낸다. 이 두 배우의 연기가 극의 배경이 되어 전반적인 서스펜스를 이끈다.
마스터피스가 어울려
우리는 호러영화의 걸작 두 작품을 알고 있다. 바로 <곡성>과 <유전>이다. 전자 <곡성>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지점에서 불행에 스며든 인간의 발악을 다뤘다. 이 발버둥은 참 여러모로 관객의 기를 빨아버린다. 뭐가 옳지? 선택을 고민하지만 사실 그런 건 없다. <곡성>을 본 분이라면 이 영화의 엔딩을 선명하게 기억할 것 같다. 이는 우리 일상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난 아니라고 믿었지만 사실 미끼를 물었다는 두려움은 우리 삶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는 <큐어>와 <곡성>이 오컬트 소재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일상 속, 내면의 두려움을 다뤘다는 점에서 <곡성>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마음에 들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들을 딱 골라서 유효타를 쳤다.
또한 이 <큐어>는 이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을 극을 이끄는 에너지로 활용하고 있다. 이 점에서 <유전>역시 <큐어>의 후배 격인 영화다. <유전>의 공포 중 하나는 예상이 간다는 점이다. '설마 이렇게 되는 거 아니겠지?' 생각하면 바로 그게 이뤄진다. 근데 그게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클리셰를 부수며 이뤄진다. 즉 운명론적인 관점이 작용한다. 이 <큐어>의 공포 역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뭔가 똑 부러지고 똘똘한다고 해서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직업 다 좋다. 열심히 살았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뭔가를 피할 수 있었냐? 아니다. 이는 인물들이 삶의 선택지를 고르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선택지를 고른다는 건 당연히 단점이 딸려온다. 그러니까 이 단점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비극은 어찌 보면 인간에게 필연적일 수도 있다. 이는 앞서 쓴 바와 같이 <유전>의 공포와 일맥상통한다. 아마 <유전>을 좋아하셨던 분 역시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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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으로 예술을 살아낸 여성들
여성들이 만든 무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는 그 질문에 대한 섬세한 대답이자, 여성의 자리와 욕망, 그 안의 모순을 함께 비추는 다층적인 기록이다.
여성국극은 여성들만으로 꾸려진 무대로, 출연 배우는 물론, 제작사도, 팬덤도 모두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무대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자리인지 영화는 고요하지만 선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그 무대가 단순한 대체재가 아니라,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만들어낸 자기완성적인 문화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 무대조차 완벽히 자유롭지는 않다. 남성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절대적인 존재감이나, 여성 역할을 맡은 배우는 더 ‘여자다워야’ 한다는 암묵적 기준은 여성국극 안에서도 바래지 않고 작동하는 어떤 규범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치 있는 이유는, 이 장르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에게 열정과 꿈, 소속감을 안겨주었는지를 따뜻하게 기억해낸다는 데 있다. 여성국극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 이 모순적 문장이야말로 여성들이 만들어온 문화의 본질이 아닐까. 영화는 그 시간을 고요히 복원하고, 사라진 무대 위의 목소리들을 다시 우리 앞에 데려온다.
<여성국극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하다>를 보며 조용히 바랐다. 자신의 자리를 구하는 여성들에게 마땅히 그 장이 주어지기를.
※ 본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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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꿈은 내가 이룰 거야.
어린이가 있는 집이라면 일년에 세번 큰 고민에 빠진다. 어린이날, 생일, 그리고 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고 싶어서 한달 전부터 착한일을 하고, 울지 않고, 카드를 쓰는 덕에 크리스마스는 미리 미리 준비했던 것 같은데, 어린이날은 벚꽃놀이다, 봄이 왔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어느새 코 앞에 닥쳐 있는 때가 많았다. 부랴부랴 준비해 보지만, 4월말엔 인기 있는 장난감 가격이 평소 대비 비싸져 있다. 배송을 받기에도 시간이 촉박할 쯤 되면 나는 작전을 바꾼다.
“어떤 선물을 받고 싶어?” 에서 “가고 싶은 곳은 없어?” “하고 싶은 게 뭐야?”로 ! 소원이라는 거창한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루고 싶은 작은 소망 하나를 들어줄 수는 있으니까.
소원, 소망, 바람….어떤 것을 바라는 소중한 마음.
영화 <위시>는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으로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법사 ‘매그니피코 왕’ 이 만든 마법의 왕국 ’로사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총명한 소녀 ‘아샤’는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일을 돕고 싶어, 왕의 수행비서로 면접을 보러 찾아 갔다가. 그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
혼란에 빠진 ‘이샤’의 간절한 기도에 특별한 ‘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별의 능력으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아샤의 염소친구 ‘발렌티노’와 친구들과 함께 진심 어린 소원과 용기가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증명하기 위해 매그니피코 왕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을 눈치챈 매그니피코왕은 본인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주하기 시작하고, 아샤와 친구들은 예상 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사실, 영화 자체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클리셰범벅인듯한 장면들과 이해가 안되는 서사와 사건의 해결과정, 입체감이 없는 캐릭터등등 사실 거의 총체적 난국에 가깝다. 이런 나의 실망과 달리 우리집 8세 어린이는 이 영화를 본 후, 매일 OST노래를 부르며 말했다. “엄마, 내 마음은 내 꺼야. 나의 꿈은 내가 이룰 거야.”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했지만 실패해버린 영화의 단순한 주제를 아이는 심플하고 담백하게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어른의 마음으로 모든걸 판단해버리지 말자 싶었던 순간이다.
갖고 싶은 것을 선물하기엔 조금 늦은 어린이날 D-2 나는 그 핑계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로 한다. “이번 어린이 날엔 우리 어떤 시간을 보낼까?”
지금이야. 너의 바람이 이루어질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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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저번주와 동일한 성적을 기록한 이번주 박스오피스 ! 오펜하이머가 230만명을 넘기고 1위 유지, <콘크리트 유토피아> 2위, <달짝지근해: 7510>가 3위를 유지했습니다. 한편 <엘리멘탈>이 누적관객수 700만을 넘어섰다고 하는데요! 8월 4주차 주말 박스오피스 누적관객수와 분석까지 함께 하실까요?
[국내박스오피스]
<엘리멘탈>이 700만을 넘기며 픽사 작품중 한국에서 가장 흥행한 영화가 되었고, <밀수>가 500만 명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오펜하이머>가 개봉 2주 차에도 1위 유지에 성공하며 꺾이지 않는 기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매율 역시 여전히 1위를 지키고 있어 <오펜하이머>를 대적할 작품은 없어 보입니다.
이어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개봉 3주 차 누적관객 수 320만 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북미박스오피스]
게이머에서 레이서가 된 소년의 실화 스토리를 담은<그란 투리스모>가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지난주 1위였던 <블루 비틀>이 3위까지 떨어졌으며<바비>가 2위, 7천8백억 원이 넘는 수익을 기록하며 올해가장 크게 흥행한 북미 영화가 되었습니다.이어 <오펜하이머>는 4위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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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틀린 집 - 집 구조를 잘못 지으면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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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영상은 홍보마케팅사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이 집 뒤틀린 거.. 아세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외딴집에 이사 오게 된 가족.
엄마 ‘명혜’는 이사 온 첫 날부터 이 집이 뒤틀렸다고 전하는 이웃집 여자의 경고와
창고에서 들리는 불길한 소리로 인해 밤잠을 설친다.
아빠 ‘현민’은 그런 ‘명혜’를 신경쇠약으로만 여기고
둘째 딸 ‘희우’는 가족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마주하지만 그 사실을 숨긴다.
그러던 어느 날,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려 잠겨있던 창고문을 열고 만 명혜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는데…
뒤틀린 틈에서 시작된 비극이 가족을 집어삼키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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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분노의 질주 : 라이드 오어 > 어셈블 영상
대한민국 전세계 최초 개봉 확정! 5월 17일, 시리즈 역대 최강의 캐스트로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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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트레인지 월드> 메인 예고편
전설적인 탐험가 패밀리 '클레이드' 3대 가족의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 디즈니의 판타스틱 비주얼 어드벤처 [스트레인지 월드] 메인 예고편 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