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4-12-13 14:04:55
단점으로 쏘아 올린 장점
넷플릭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리뷰
이 글은 넷플릭스 작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리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장르물을 다루는데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나 설정들이 있다. 예를 들어 수사물에서는 발바닥에서 땀난다는 말 외엔 묘사할 방법이 없는 형사들의 고군분투가 그려진다던가. 주인공은 조사를 해야만 하는 세력과의 갈등을 겪으며 숨길 수밖에 없는 비밀을 가진 채 초조해한다던가. 흑막이라고 불리는 최후의 빌런이 나타났을 때 아니 네가!!라는 말이 나오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장르마다의 특성은 대다수의 사람이 기대하는 점이면서도 식상함을 느끼기 쉬운 포인트이기에, 기본적인 규칙은 지키면서도 작품만의 변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 이중고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변주로 가득하다고 하기보다는 단점으로만 가득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화면은 어둡고 사건 전개는 느리며 수사물에서 볼 법한 장면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이런 단점을 뒤집어 모조리 장점으로 만들어버린다.

12.3일 이후로 가르마 위치만 달랐지 우리나라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히틀러의 인기는 스포트라이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두컴컴한 곳의 가장 정중앙에 우두커니 선 채로 그는 마치 자신만이 계시를 받은 듯 밝은 빛 아래에 존재했고. 모두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가운데 반짝반짝 홀로 빛나며 말빨 하나로 군중들을 홀라당 사로잡았다.(아 물론 누구는 그마저도 못해서 전 세계인의 욕만 홀라당 얻어먹었으니 그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이렇듯 스포트라이트는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주지만 수사물에서는 그다지 각광받는 시점은 아니다. 그리고 이 포커싱을 위해서, 극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태수(한석규)의 집은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어두워야만 한다는 위험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이 단점을 완벽하게 커버하기 위해. 위대한 배우 한석규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한석규는 허탈함을 표현해 낼 줄 아는 세상 몇 안 되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의 진가가 모든 장면에서 발휘된다.
태수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담은 숨결 한 번에. 시청자들은 마음 바닥까지 훑는 듯한 저릿함을 느끼기도 하고, 애처롭게 딸을 쳐다보는 눈빛에서 쏟아지는 태수의 복잡한 심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도 한다.
극 중 분위기와 너무도 닮은 태수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침착하고 냉철하며 묵직한 태도를 취하지만. 마치 혼자만 벚꽃을 뿌린 듯 샤랄라 빛나는 군도 속의 강동원처럼. 태수는 자신을 에워싼 어둠에 조금도 잠식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좋은 배우를 보는 카타르시스 자체가 스포트라이트가 되어 확실하게 태수를 비춘다.

수사 장르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속도로 수사가 진행되려면 계엄에서 해제까지의 속도쯤은 되어야 할 텐데, 이 작품은 프로파일러라는 태수의 직업상, 수사의 진척이 마치 국민의 짐 때문에 탄핵이 자꾸 미뤄지는 것만큼 느릿느릿하고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각본의 거의 대부분을 태수와 딸 하빈(채원빈)에게 집중시키는 두 번째 스포트라이트를 씀으로써 흩어지는 이야기를 없애고 극 중에 덩그러니 두 사람만을 남겨둔다.
여러 용의자와 더불어 결국에는 밝혀질 최종 빌런을 이리저리 꼬아 놓으려면 주변에 대한 설명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극을 따라가는 데 있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과연 이 등장인물이 필요했는가?라는 물음이 생기기도 하고. 소위 말하는 떡밥이 완벽하게 설명되지 못해 물음표를 남기거나 실패한 수사물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외롭게 뻗은 두 가지 외에 모든 곁가지를 없앰으로써 극 전체는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딸과 아버지 사이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으로 시청자를 단단히 동여맨 채 수사의 방향과 속도를 받아들이게 한다.

행여나 그 와중에도 이탈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이라도 되었던 듯. 작품은 세 번째 트릭을 쓰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버릴 것 하나 없이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형사들의 냄새나는 양말도, 목에서 피맛이 느껴질 것 같은 추격전도. 흠씬 두들겨 맞아 정신이 혼미해지는 폭력 장면도 없다. 오로지 극의 분위기를 십분 닮은 태수의 집이 존재할 뿐이다. 그의 집은 과연 김건희의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정도가 아니고서야 프로파일러의 월급으로 이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아름답지만. 동시에 어딘가 비밀을 감춘 듯 모든 문이 닫혀 있으며 대척점을 이루는 부녀관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듯 그들은 늘 식탁의 끝과 끝에 존재한다.
장면들이 가진 아름다움과 선으로 구분한 상징들은(마치 영화 [기생충]처럼) 배우들과 어우러져 최종적인 장면을 구성한다.
분명 비어있거나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위험요소를 이 마지막 트릭이 완벽하게 없애준다. 덕분에 배우들은 빛나고, 극의 진행 또한 매끄러우며, 비밀을 숨긴듯한 아름다움을 보면서 만족할 수 있는 드라마가 완성될 수 있었다.
마치면서 (좀 길다)
1. 한석규 베우는 나이에 맞는 역할을 언제나 따박따박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만큼 그의 나이와 시간과 때에 맞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 하나의 거짓 없이 진실과 진심만으로 뭉친 대배우를 보는 이 마음이 얼마나 감사하면서도 코끝이 찡한 건지 모르겠다.
2. 비질란테로 대변할 수 있는 "사이다"물이 아니지만. 가장 현실적인 마지막을 선사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이런 결말은 한석규 배우가 있었기에 더 진실되었다고 생각한다.
3. 개인적으로는 제목조차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딸만 아버지를 배신한 줄 알았으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관계의 인물들이 서로에게 비수를 꽂다 못해 더 이상 고통을 호소할 수 없을 때까지 서로를 괴롭힌다. 그들의 관계에서 오는 배신감 때문에 모든 장면이 아름답지만 동시에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최근 누군가는 알량한 신뢰를 업고 온 국민을 배신했다.
이 배신이 가진 파급은 너무 커서 열흘이나 지난 지금도 일상에 온전히 발을 붙이지 못하고 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덕분에 불안장애 약을 안 빼먹고 자알 먹는다)
제목이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라는 극 중 대사는 가르마 타는 거 외엔 그 어떤 관심도 없어 보이는 당신에게 선사하는 메시지 같기만 하다.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당신 혼자 빠진 그 망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를 이용했다는 히틀러처럼. 당신 또한 그의 말로를 따라갈 것이니. 그대의 최후가 오거든 단 한 번만이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그대로 보기를 바란다.
당신은 우리에겐 친밀하지는 않았을지언정 배신자였으며. 주지 않은 신뢰마저도 이용하려 했다는 것을. 앞에 펼쳐진 이 모든 처참함은 당신이 자처한 것임을.
[이 글의 TMI]
1. 도시락 싸놨는데 안 들고 옴
2. 나 잡혀가면 좌표 좀 찍어줘요.
3. 냄비밥 해놓고 깜빡해서 밥 다 쉬었음.ㅠㅠ
#넷플릭스 #영화리뷰 #OTT리뷰 #이토록친밀한배자 #munalogi #한석규 #신작리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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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됐지만 그 끝은 알 수 없던, <미드 90>
* 글에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드 90 Mid90s, 2018 제작
미국 | 드라마 | 85분
감독: 조나 힐
시작됐지만 그 끝은 알 수 없던, <미드 90>
출처: 영화 <미드 90> 스틸컷
여기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랑스러운 손길을 느껴본 적 없는 아이가 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나, 진정으로 함께 산다고 확신할 수 없어 외로운 13살 사춘기 소년, 스티비. 아빠의 존재는 궁금하지 않고 엄마의 관심은 오직 생계유지이며, 형(이안)은 무차별적인 폭력만 가한다. 가족이지만, 큰아들 생일에 남자친구 얘기를 하며 부끄러워하는 엄마와 동생이 건넨 선물을 똥 씹은 표정으로 내던지는 형을 어린 스티비가 온전히 이해하기란 힘든 일이다. <미드 90>는 스티비의 삶을 이루는 시공간을 담아내는 일에 주력한다. 왜 왜소한 아이의 몸에 푸른 멍이 가득한지 설명하지 않는다. 처음엔 그를 방황하는 청춘으로도 표현하지 않는다. 매일 가족 눈치를 보며 아슬아슬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하기 바쁜 아이에게 ‘방황’과 ‘청춘’은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가혹한 처사니까. 따라서 스티비의 세계는 외줄타기처럼 아찔하다. 불안이 가득한 사건들은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그 사건들은 전부 시작만 존재할 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 어떤 사건이 스티비를 무자비하게 삼켜버릴지 짐작할 수 없기에 영화 <미드 90>은, 해피엔딩은 물론 치유 과정도 섣불리 기대할 수 없는 이야기로 우리를 맞이한다.
스티비는 형의 방 안에서 세상을 배우며 산다. 양아치 같은 형을 혐오하면서도 동경하고 닮고 싶어 한다. 우연히 거리에서 어른의 기세에 눌리지 않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동네 형들을 발견하기 전까진 그랬다. 형의 주먹질에 무방비로 노출됐던 스티비는 보드를 타고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낯선 그들에게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저들과 함께라면, 자신을 옭아맨 현실에서 탈주할 수 있을 거란 강한 확신에 다음 날부터 동네 형들의 아지트 보드 가게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서클 눈치를 보며 며칠을 보냈을까, 마침내 서클 일원 로벤이 스티비에게 악수를 청한다. 스티비는 로벤의 ‘함부로 고맙다고 말하지 말라’는 첫 번째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들의 언어를 열심히 배우고, 행동강령을 습득하며 서클에 스며든다.
출처: 영화 <미드 90> 스틸컷
"땡볕! 너도 갈래?"
서클의 입단 조건은 명확했다, ‘우리와 똑같이 하며 살 것’. 스티비는 거친 욕설과 도를 넘는 일탈을 일삼는 서클에 온전히 소속되기 위해 정말, 죽도록 노력한다. '멋들어진 보드를 타면서 술과 담배를 하고, 여자를 옆구리에 끼고 틈틈이 섹스를 즐기는 어른'이 되고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활용한다. 서클은 스티비에게 자유이자 꿈이며, 우정이자 사랑이 꿈틀거리는 곳,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자 유일한 자부심으로 정의된다. 형의 낡은 보드를 가장 아끼는 노래 테이프와 바꾸고, 위험한 도전을 서클 일원으로 함께하고, 엄마 돈을 훔치는 등 숱한 노력 끝에 스티비는 새 보드와 서클의 일원임을 인증하는 별명, ‘땡볕’을 얻는 데 성공한다. 아이러니하지만 드디어 그도 험악한 세상으로 내던져진, 방황하는 청춘이 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과거, 엄마 돈을 훔치기 전에 빗으로 자기 허벅지를 세게 문지르며 자신을 체벌했던 아이는 달라진다. 집 안에서 혼자 고독과 외로움을 피하고자 했던 자학을, 보드를 타는 서클 친구들과 함께 차들이 다니는 도로 위에서 마음껏 행한다. 그들에게 자학은 자학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는 세계에선 당연한 일과였고, 맥없이 흐르는 시간 속의 즐거움이었으며, 자연스러운 경험 축적이었다. "어차피 우린 여기서 이렇게 살다가 죽어, 그러니 그냥 즐겨!" 서클 일원, 존나네의 말처럼, 불합리와 불안정, 불건전함은 곧 삶의 규칙이자 지혜였으니까.
출처: 영화 <미드 90> 스틸컷
서클과의 교류에도 스티비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형의 무시무시한 폭력과 엄마의 강압적인 폭언은 계속됐다. 스티비는 하루빨리 그 누구도 함부로 자신을 건들 수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분노를 표출하고, 느껴보지 못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껴야 했으며, 이는 가족을 이해하는 일과 가족과 함께 사는 과정보다 훨씬 중요했다. 그 결과 스티비는 더 위험한 상황 속에 뛰어든다. 한 손에는 담배를, 다른 손에는 술병을 들고 다니며 기꺼이 몸을 땅바닥에 내리꽂는다. 그가 내놓을 수 있는 거라곤 종잇장 같은 몸뿐이고, 친구들과 평생 함께할 수만 있다면 온몸이 부서져도, 심지어 죽을 뻔해도 좋으니까. 스티비의 결연한 목표가 서클 일원들의 삶으로 연결되고 흡수되자, <미드 90>은 기다렸다는 듯 스티비에서 멈추지 않고 서클 개개인이 가진 속사정을 이야기 곳곳에 털어놓는다.
레이, 존나네, 4학년, 루벤도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동시에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중이다. 영화는 서클 활동을 통해 이들이 사실 자기 미래를 향한 희망을 잃지 않고 있음을 설명한다. 사회는 물론 가족에게까지 보호받고 도움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자발적으로 탈출해 자기와 같은 동족을 만나, 새로운 가족을 결성한 이들을 응원한다. 세상 밖으로 나온 스티비의 필연적인 성장통과 서클 친구들의 내일을 향한 의지를, 넘어지고 깨져도 끝끝내 일어나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스케이트보드로 전달한다. 또한 서클 이야기를 비행 청소년들의 사건 사고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가 낳은, 묵과할 수 없는 문제임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문제투성이인 서클이 이들의 유일한 안식처로 이해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스티비가 보드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 게 아니라 오히려 안도감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는 이유이다. 이후 스티비는 존나네의 음주운전으로 크게 다치고 만다. 그러나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친구들의 우정과 연대에 활짝 웃는다.
출처: 영화 <미드 90> 스틸컷
영화 속 어른들은 행동하지만, 서클의 멈추지 않는 보드 질주에 한없이 무력하게 비친다. 도로의 무법자들을 막는 일과 비행 청소년과 자기 아들을 구분하는 일에 급급할 뿐이다. 하지만 <미드 90>은 어른을 절대 생략하지 않는다. 방관자든 제삼자든 구경꾼이든 상관없이 보드를 타는 서클 주변에 항상 위치하게 하고, 두 세계를 한 화면에 담는다. 본 영화가 시각적으로 더욱 의미 있는 건 서클의 성장통을 단독으로 노출하지 않고, 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혼란을 매 순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목적은 당연히 두 세계의 통합. 영화는 그 귀중한 결과를 마지막 장면에 수놓는다. 병원에 입원한 아들을 찾아온 서클을, 아들의 진정한 친구들로 받아들이는 스티비 엄마의 깊은 이해와 따뜻한 눈빛으로 말이다.
<미드 90>은 그 나이를 겪어야만 하는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그린 작품이다. 성장을 위해 방황을 필수적으로 엮었고,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이들의 모습을 따스하게 비췄다. 이따금 현란하고 화려한 보드 곡예가 눈물짓게 하는데, 우린 이미 이 눈물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시작됐지만 끝은 알 수 없어 고통스러웠고 또 다행스러웠던 우리의 그때를, 그 간절했던 순간들을 잊었을 리 없으니까‥. 단언컨대 <미드 90>이 단순히 가혹하기만 한 영화였다면, 많은 이가 자전적 얘기를 담은 조나 힐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에 무한한 찬사를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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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제일 조선인들에 대한 비극과 공포를 보여주는 작품
감독: 금선희
출연진: 제일 조선인들
시놉시스
일본에 살던 제일 조선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당시 한반도에서는 북한과 남한의 이념 대립으로 인해 북한에 있던 제일 조선인들은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다. 일본에서도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살기 힘들었으나 북한을 탈출한 이들에게는 제대로 머물 곳이 없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여기 있다. 이 작품은 금선희 작가가 만든 작품으로 식민지 시대의 조선인들부터 지금의 제일 조선인들로 오기까지 여러 차례의 고난을 겪어왔단 것을 3중 스크린으로 통해 볼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혼란스럽지만 하나만 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시선을 고려했기에 3개로 된 장면들이 영상에 나타났다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과연 금선희 작가가 전해주는 메세지는 어떤 것일까?
제일 조선인들의 슬픔과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금선희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들은 여러 개가 있다. 타국의 하늘(Foreign Sky)이라는 작품과 비스트 오브 미(Beast Of Me)가 대표적인 예시인데 제일 조선인들처럼 소외받는 소수자들이나 약자들을 영상으로 표현해낸다. 그들이 가진 역사적 아픔과 겪어왔던 고난들을 금선희 작가는 영상으로 재현해낸다. 일본에게 식민 지배를 받던 조선인들과 6.25 전쟁이 일어났던 일들을 영상으로 담아 파운드 푸티지라는 영상 기법으로 관객들의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이런 역사적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숨은 의도의 메세지를 공개한다. 북한으로 돌아간 제일 조선인들이 탈출을 결심할 정도로 북한이란 나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조차 반역죄로 여길 만큼 자유가 없는 곳이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북한에서 도망쳐 갈 곳 잃은 이들을 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준비된 역사의식이 필요한 것 같다.
제일 조선인들에 대한 비극은
그들이 갈 곳 없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2022.09.24 (토) 메가박스 백석 컴포트 4관
DMZ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09월 22일 - 0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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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산과 낙하산과 시간
나는 홍콩을 딱 한 번 가보았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기내식을 4번씩 먹으며 두 번의 경유를 거쳐 아프리카 남단을 일주일 만에 왕복하는, 짧고 굵은 여정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경유 시간이 떠서 홍콩 시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동안 홍콩 공항을 종종 경유했지만, 공항 바깥으로 나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별유천지가 따로 없었다. 왜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라는 가사가 나왔는지 피부로 이해했다. 시간이 먼지처럼 소복소복 쌓인 골목은 어디를 툭 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스며 나올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양조위나 장국영이 고개를 내밀 것만 같은, 바라보면서도 더 바라보고 싶은 골목들이었다. 꼭 다시 와야지 생각했다. 밀크티 마시며 이 골목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참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몇 달 후. 홍콩은 당분간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페이스북 담벼락 기본 문구를 바라보는 기분으로 깜빡깜빡, 빈 곳을 응시했다. 바라보고 싶었던 골목 대신. 삶의 아귀가 맞지 않는 기분이 들 때마다 열어보던 홍콩 영화들 대신. 우산과 까만 마스크, 거리에 나서면 누구나 닮아 보이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영화제마다 다큐멘터리에 홍콩 이야기가 있는지 둘러보며, 조각조각 찾아 헤맸다.
같은 질문을 품어 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2022년 10월 13일 국내 개봉한 다큐멘터리 <시대혁명>이다.
주제의 무거움에 한 번, 152분이라는 러닝타임에 또 한 번 멈칫하게 될 이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당신을 무거운 감정 안에 혼자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끔찍한 폭력을 목도하게 될까 봐 멈칫하겠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본 것은 오히려 희망이었다. 홍콩에 대해서도, 시대에 대해서도.
시대혁명 속으로
거친 상황을 담은, 강렬한 포스터의 영화지만 당신에게만큼은 참 친절한 영화일 것이다. 152분의 러닝타임은 여러 챕터로 나뉘어 있어,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매우 적절한 소제목과 함께 각 장이 똑똑하게 분절되어 있다. 홍콩 상황을 잘 몰라도 충분히 씹어 삼킬 수 있도록, 한입 크기로 잘라 준다. 친절한 가공을 잔뜩 거쳤음에도 너무나 생생해서, 잠시 2019년 홍콩으로 시공간 이동을 하는 기분마저 들게 만든다. 연대하는 마음 외에는 큰 기대 없이 본 영화였는데, 너무나 훌륭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2019년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을 계기로 일어난 시위를 담았다. 홍콩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중국으로 송환되어 재판받게 된다는 조항은, 당시 들려오던 수많은 의문사와 실종 사건들과 맞물려 공포를 자아냈다. 홍콩 사람들은 최루액에 우산으로 맞섰던 2014년 '우산 혁명'을 기억하며 다시 거리로 나선다. 영화는 2019년의 거리와 홍콩 사람들을 촘촘하게 담아낸다.
지도부가 없음에도 시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을 착착 찾아낸다.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각자의 직업을 선택하듯이. 시위가 진행하면서 변해가는 상황에 이들이 얼마나 유동적으로 움직이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얼굴과 이름을 가리고 나오지만, 그들의 생각과 역할과 의미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던 이들을 한 명씩 만나게 된다.
버스도 지하철도 끊긴 도시에서 시위 참석자들을 집에 들여보내는 '승용차 부대', 시위 최전선에 서는 이들을 돌보는 '엄마'와 '아빠', 전경의 위치와 최루탄 정보 등을 파악해 전달하는 '감시 부대'... 시위 안에서의 역할 차이는 물론 시위 바깥에서도 체계적으로 각자의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만약 모든 것이 죽는다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 누구의 행동과 말에 당신의 시선이 가장 깊게 머물렀을지 궁금하다. 돌아보면 나는 세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70대 노인 '찬 아저씨Uncle chen'. 그는 수십년 째 농부로 살아왔는데, 아이들이 죽어가고 끌려가는 걸 더 볼 수 없어 길을 나섰다. 경찰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너희가 들어가야 나도 들어간다"며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다른 노인들과 손을 맞잡고 경찰의 폭력을 막는다. 종내에는 경찰이 그의 노구에까지 손을 올리면서 더 이상 시위에서 '전력'이 되지 못하지만, 당연하고 상식적인 말을 하는 노인의 존재에는 큰 울림이 있다. 더불어 홍콩을 향한 중국의 야욕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존재했는지도 살짝 보여준다. 중국은 주민들이 농사짓던 땅을 아무 합법적 절차 없이 집어삼키고 쫓아냈던 것이다.
14살 소년 모닝Morning. 그는 알레르기가 있어 최루 가스를 조금만 맡아도 기침이 나오는 몸이고 아직 어리지만, 구조대로 시위 현장을 뛰어다닌다. 최루 가스 때문에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결연한 얼굴로 제 방독면을 벗어 씌워주고 함께 안전한 곳으로 뛰어가는 모습은, 아직 어리지만 곧고 힘차다. 한국 웹사이트에도 영상이 퍼졌던, 경찰이 지하철 속의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때리던 그 현장에도 그는 달려갔다. "총을 쏘든 때리든 다 맞겠으니 사람만 구하게 해달라"고 엉엉 우는 그의 모습을 보기 괴롭고 속상했다. 구조대를 막는 것은 국제법상 불법이지만, 홍콩 경찰은 국제법과 관례를 어긴 지 오래다. 그러나 다시 그는 여전히 올곧은 눈빛이다. 그는 아마도 조슈아 웡처럼 자랄 것이다. 단단한 신념을 뿜어내는 눈으로
마지막으로는 영화에서 많은 인터뷰를 했던, 사회복지사 중년 여성 재키. 상황을 차분하게 조망하고 움직인다. 얼굴이 벌게진 백인 남성이 삿대질하며 "너희가 홍콩을 다 망치고 있다. 부동산도 경제도 망치고 있다!"고 천박한 욕 섞어가며 소리치는 앞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법 없이도 살 사람 같은 표정이지만, 시위 현장에 늘 서 있다. 그 차분한 시선으로 본질을 진작에 꿰뚫었기 때문이다. 정치가 죽고, 자유가 죽은 땅에서는 사회복지사도 없다고. 그 땅에는 인권이란 게 없을 테니까. 자유가 없는 땅에서는 돌봄도 죽는다. 그 지적은 '좋은 것이 좋은 것' 식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찌른다.
써놓고 보니 나는 '맞서 싸우는 힘'보다 '살리는 힘'에 마음이 기우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살리는 힘은 싸우는 힘과 연합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죽은 땅에서는 아무것도 살릴 수 없을 테니까. 죽이는 힘에 맞서야만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바로 그 마음으로, 흙을 바라보며 살아온 노인이, 단단한 눈빛의 소년이, 법 없이도 살 얼굴의 사회복지사가, 시위 현장에 서 있다.
우리의 무기, 기록과 희망
승산이 높지 않았다. 2019년의 시위는 결국 끝났다. 다만 흔한 역사 속 시위들처럼 '지도층의 내분' 같은 건 없었다. '지도층'조차 없이, 물방울 같은 각자가 모여 강처럼 흘렀을 뿐이다. 화염병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몰라서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던 (당연히 기름이 다 흘러 못 쓰게 되었다) 아이가 화염병을 던지게 하고, 구글 맵을 볼 줄도 모르던 아이가 지도로 경찰 정보를 보내는 첩보 작전을 펼치게 만든 홍콩 경찰은 마침내, 시민들을 전쟁 상대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캐리 람을 죽여도 또 다른 캐리 람이 나타날 테니 결국 보통 선거권을 쟁취해야 하는 싸움임을 똑똑하게 인지하고 있는데.
경찰은 횡단보도 한복판에서,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사람의 심장을 겨누어 총을 쏘았다. 시위를 무력 진압하다 못해, 일반적인 국제관례를 어기고 퇴로까지 차단하고 정말 몰살시킬 각오로 공격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만큼 잔인하게 짓밟았다. 영화가 잔인한 장면을 자주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홍콩 경찰은 정말 잔인했다. (여담이지만 SNS에 홍콩 경찰 지지 의사를 올렸던 수많은 중국인 아이돌들이 떠올라 또 화가 났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돈 벌면서 최소한의 상도덕도 없는 행위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걔네가 지지한 게 이거라고요?)
시위의 마지막 순간은 홍콩 이공대를 배경으로 한다. 퇴로를 차단하고 시위대를 몰아세우는 홍콩 경찰 앞에서, 시위대에게 남은 길은 죽음 혹은 10년 징역형밖에 없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시민들이 움직이고, 수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내지만, 경찰은 동일한 스탠스를 유지한다. 수천 발의 최루액과 물대포로 사람을 날리고, 총을 쏘고, 끝내 아이들을 무릎 꿇리고, 구타하고, 질질 끌고 가고...
그렇게 홍콩은 국제 사회에서 조금 잊힌다. 미얀마에서도 괴로운 일이 생겼고, 우크라이나에도 전쟁이 났으며... 중국의 굴기는 계속되었다. 2020년에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을 시행했고, 가까운 시일 내에 대만을 무력으로라도 통일하겠다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고, 한국 문화와 역사에도 자꾸 손을 대서 우리를 불편하게 또 긴장하게 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 뇌리에 마지막으로 남은 홍콩의 인상은, 진압되기 전 마지막으로 홍콩 이공대 벽에 누군가 남겼다는 짧은 편지다.
세상 사람들에게
중국 공산당은 당신의 정부에 침투할 것이고
중국 기업은 당신의 정치적 입장에 간섭할 것이다
위구르족에게 한 짓처럼
당신네 나라를 털어먹을 것이다
정신을 똑똑히 차려라
그렇지 않으면 다음은 당신 차례가 될 테니까그렇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훗날 홍콩 역사에 아마 2020년에서 2022년 사이는, 2019년이나 우산 혁명의 2014년보다 고요하게 기록될 것이다. 사실 그래서 본 영화였다. 어둠 속에서 연대하는 마음으로. 최루액에 맞서는 우산을 함께 받치는 마음으로, 의문의 추락사로 사라진 이들에게 낙하산을 달아주고 싶었던 마음으로.
그런데 정작 내가 등장인물들의 우산 아래 들어간 느낌을 받았다. 10년 징역형을 받고 나와도 아직 이십 대 혹은 삼십 대라고 말하며 웃는 얼굴들. 또 싸워야 하는 상황이 오면 더 잘 싸울 거라고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들. 변조와 모자이크를 뚫고 여기까지 전해지는 그들의 생생한 에너지가, 젊음이, 푸른 꿈이 기묘한 희망을 주었다.
하긴 그렇다. 비루하고 추레하게 제국을 바라는 이들은, 푸른 자유를 꿈꾸는 이들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아무리 경찰이 총을 쏘고 쇠봉을 휘둘러도 모든 시민 모든 아이를 죽일 수는 없으므로. 모든 관례를 부술 만큼 비겁해지지 않고서는 싸울 수도 없었던 그들과 달리, 시위대에 있던 이들은 모든 희생과 고민과 절망을 다 끌어안고도, "우리를 기록해 주세요"라고 울먹이면서 말하고도, 여전히 싸울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든 것이 끝난 어둠 속이 아니라, 신발 끈을 다시 매면서 장기전을 바라보는 휴지기의 어둠 속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홍콩에 우산을 받쳐줄 수도, 낙하산을 달아줄 수도 없는 우리지만, 단 하나 희망의 시간만큼은 함께 보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 안에 있으므로. 힘들어하면서도 함께 지켜볼 것이다. 우리의 무기는 기록과 희망이고, 그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면 공유를 통해 힘이 부여된다는 점이니까. 전작에서 우중충한 향후 10년을 상상하며 <10년>을 만들었던 감독이 앞으로 새로운 <10년>을 상상해 펼칠 날을 기대하며, 촛불에서 촛불을 옮기듯, <시대혁명>으로 작은 힘을 함께 나누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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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우리가 ‘은혜씨’의 얼굴을 들여다볼 차례
누구나 생각만으로 그저 웃음이 나는 얼굴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을 보고 나면, 거기에 하나의 얼굴이 더 추가될 것이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발달장애인 ‘은혜씨’의 얼굴 말이다.
〈니얼굴〉은 여러 예술가가 모여 물건을 판매하는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는 은혜씨의 이야기를 담았다. 은혜씨에게 자기 얼굴 캐리커처를 맡긴 사람은 4천여 명에 달한다. 집에서 뜨개질만 하던 은혜씨는 화가인 어머니가 운영하는 그림 교실에서 우연히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후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인기 셀러(seller)로 거듭났다. 마주 앉은 사람의 얼굴을 정성 들여 그려주다보니 ‘니얼굴 작가 은혜씨’라는 별명도 생겼다. 인기가 너무 많아서 골치 아프다는 은혜씨의 너스레에서 그녀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장애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내내 밝은 분위기로 전개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아니, ‘밝은 분위기’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니얼굴〉은 엄청나게 웃긴 영화다. 은혜씨는 내내 재치 있는 말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렇다고 또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영화에는 은혜씨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장생활 안내서에 삽화를 그려달라는 의뢰에 답하는 장면이 있다. 제안을 들은 은혜씨는 “중요하다, 이거”라고 말한다. 그녀가 자신의 문제에 깊이 있는 고민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요컨대 발달장애인인 은혜씨는 유쾌하고 성숙한 시민이다. 차이를 차별로 환원하지 않는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서 은혜씨의 ‘다름’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애를 다루는 영화라고 해서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영화관에 왔다면, (내가 그러했듯) 〈니얼굴〉을 본 관객은 아마도 어떠한 반성의 계기를 마주할지도 모른다. 밝고 유쾌한 은혜씨에게도 불행한 순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장애인은 마땅히 불행할 것이다’라고 생각한 우리들의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장애인이라서 불행한 게 아니라, 장애인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우리의 가정이 불행의 원인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은혜씨의 웃는 얼굴은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뒤바뀌었음을 자각시키는 계기이기도 하다. 동료 시민들의 애정과 지지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다면, 장애인의 얼굴은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은혜씨의 웃는 얼굴 옆에 있는 돌봄 제공자의 얼굴도 기억해야 한다. 은혜씨의 기쁨, 짜증, 투정, 행복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반응하는 은혜씨의 어머니이자 화가인 장차현실, 그리고 화면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아버지이자 감독인 서동일의 얼굴 말이다. 아무리 은혜씨의 그림 재능이 탁월하고 그녀의 성격이 활발하다 하더라도, 두 사람의 헌신이 없었다면 은혜씨는 여전히 집에서 다소 우울한 얼굴로 뜨개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두 사람은 사회‧공동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사적인 공간에서 오롯이 떠맡은 채 은혜씨의 삶이 빛나도록 지탱하고 있다. 그들은 많은 순간 행복을 느꼈을 테지만, 그만큼 많은 순간에 괴로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비장애중심주의가 상식인 사회에서 장애인과 그의 가족이 마냥 행복하길 바란다면 그건 기괴하게 뒤틀린 환상에 불과할 테니까.
장차현실과 서동일이 가능케 한 은혜씨의 웃는 얼굴은 우리를 그다음 질문으로 인도한다. 돌봄과 헌신을 제공받지 못해 자기 내면의 빛을 꺼내 보일 수 없다면, 장애인은 웃지 못할 수도 있다(은혜씨의 문제가 비단 장애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은혜씨와 장차현실, 서동일이 촉발한 질문은 계급, 성별, 인종 등의 이유로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질문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니얼굴〉을 봤으면 좋겠다. 그들이 은혜씨의 밝은 얼굴과 그녀의 유쾌한 농담에 웃음 짓고 감동받았으면 좋겠다. 나아가 그들이 은혜씨가 선물한 웃음을 또 다른 질문으로 전환해 더 많은 은혜씨‘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은혜씨는 이미 4천 명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 얼굴의 구체성을 포착하여 정성 들여 그려줬다. 이제 우리의 차례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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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각자의 누에고치 안에서
Director] 팜 티엔 안 PHAM THIEN An
Program note]
호치민시의 시끌벅적한 야외 식당. 세 남성이 대화를 나누던 중 바로 옆 도로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난다. 늘 있는 일이라 별 관심이 없는 티엔. 하지만 알고 보니 사고 피해자가 다름 아닌 티엔의 형수이다. 티엔은 졸지에 사망한 형수의 시신과 홀로 남겨진 다섯 살배기 조카를 시골 고향으로 데려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이들을 남겨놓고 떠난 형을 찾는 것도 티엔의 몫이다. 베트남의 신예 감독 팜 티엔 안의 장편 데뷔작. ‘신예’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놀랍도록 아름다운 영상과 흡입력 있는 연출로 삶과 믿음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올해 칸영화제에 출품되어, 1993년 트란 안 홍 감독의 <그린 파파야 향기> (1993) 이후 30년 만에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베트남어 영화로서 평단의 극찬과 함께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알렸다. (부경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좋아하는 순간이 참 많지만, 영화가 상영되기 전 감독의 짤막한 인사 영상을 보는 순간도 내게는 큰 즐거움이다. 팜 티엔 안 감독은 영화의 호흡이 아주 느리다면서, 1/3만 참고 보면 그 이후로는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나는 이 영화에 매료되고 만다.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내 눈에도, 미장센이나 사운드가 너무 훌륭해서 모든 장면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장면에서 장면으로 연결되는 방식 하나하나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껌 파는 인형 탈과 스포츠 경기를 보며 왁자지껄한 사람들, 맥주를 홍보하는 여성 아르바이트생과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고한 표정으로 영생을 말하는 친구. 그 대비 안에서 하나의 생이 거두어지는 사고가 일어나는 또 하나의 대비. 기차처럼 흘러가는 병실의 풍경을 지나고 지나, 고인의 유류품을 전달받는 병원 사무실은 공간을 뚫듯이 보여준다. 저녁거리를 사러 나왔다가 작은 새를 줍는 장면, 이어지는 결혼식 촬영 장면 또한 대비와 대비를 계속 이어가며 생(生)을 생각하게 한다. 분명 감독의 말대로 호흡이 느리지만, 미장센과 사운드가 들려주는 말이 워낙 많아서 느려도 느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영화를 잘 모르는 스스로가 아쉬울 만큼, 카메라의 시점이 흥미로웠다. 고향으로 돌아와 거행되는 장례 행렬은 마치 묘지에서 바라보는 듯한 시점으로 찍혀 있고, 이어 땅을 파는 장면은 관이 아닌 새를 묻는 장면이었다.
시신 염습을 도와준 이웃 노인과의 대화는 어둑한 집안이 보이지 않는 창문을 배경으로 목소리만 들려오다가 대화가 한참 진행된 후에야 노인의 집안 벽을 훑어 준다.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전달되는 것임을 암시하기라도 하듯이. 인생의 전리품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던 노인은 전쟁 당시 자신의 갈비뼈를 관통했던 총알을 보여주는데, 그 직후 갈비뼈 자리를 만져보는 티엔의 모습은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며 옆구리를 만져 보았던 제자 도마를 떠올리게 한다.
죽음은 영원한 기쁨이라는 말을 써 붙여 놓은 가톨릭 장례식 이후, 식구들은 장례 단 앞에 모여서 기도를 하고, 우중에 전깃불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데 황금빛 나비가 날아간다. 죽은 자의 영혼이 나비라면, 죽음이 나비가 되는 거라면,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은 삶이 아닐까.
티엔은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같은 삶에서 번민한다. 형수의 유류품에 있던 한 장의 결혼 사진, 사랑이 영원하길 비는 문구가 담겨 세월 따라 낡아 버린 사진 속 형과 형수를 가만 바라보면서. 신의 계획이란 과연 무엇인지. 왜 형은 떠난 것이며, 형수의 목숨은 거두어졌는지. 그러나 우리는 삶을 조망하면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고치 안 번데기는 차곡차곡 변신로봇처럼 모양을 바꾸는 게 아니라, 애벌레였던 몸을 완전히 녹였다가 새로이 만들어진다. 고요해 보이는 누에고치 껍데기 속에서는 격렬한 변화의 과정이 있는 것이다. 삶도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티엔이 사랑한 사람들이 자꾸 티엔의 삶을 떠나갈 때, 이해할 수 없는 삶을 티엔으로서는 결결이 살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별도 사랑도 모두 녹여내어 변태하는, 누에고치 안의 시간을 티엔도 겪어낸다.
후반부에 만난 마을의 할머니는 “사람이 온 천하를 얻어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겠냐는 성경의 말을 인용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자기 영혼을 얻는다면 온 천하를 잃어도 괜찮다는 대우 명제가 될 것이다. 티엔은 어두운 세상을 계속해서 걷는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도 있고, 궂은 비를 맞으며 지치는 시간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걸어가고 흘러간다. 각자의 누에고치 안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견고해질 삶을, 알 수 없어도 우리는 계속 그렇게.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2023. 10. 04-13) 상영시간표]
10월 06일 11: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9관 (106)
10월 10일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9관 (415)
10월 11일 16: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8관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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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벌써 12월의 반절 이상이 지났네요. 그 말은 새해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이전에 크리스마스도 곧 다가온다는 이야기겠죠?
그래서 오늘은 '크리스마스'하면 생각나는 영화
총 디섯 편을 추천드릴까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당신이 잠든 사이에
ⓒ 네이버 영화
synopsis
짝사랑하던 남자가 코마 상태에 빠져 위기에 처하자 이를 구해낸 루시는 본의 아니게 그의 가족에게
약혼녀로 소개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가족과 어울리면서 불안하면서도 행복감을 느끼는데…
cine pick!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
모두가 제목에 대한 호평을 보냈는데요. 90년대의 감성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당신이 잠든 사이에> 추천 드립니다.
노엘 다이어리
ⓒ 네이버 영화
synopsis
크리스마스 무렵, 어릴 때 살던 집을 정리하려고 고향에 돌아온 소설가가 생모를 찾고 있는 여자를
만난다. 과연 낡은 일기장이 두 사람의 과거와 마음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줄까?
cine pick!
베스트셀러 작가 리처드 폴 에번스의 소설 <노엘의 다이어리>가 원작인 영화 <노엘 다이어리>는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인간 관계를 다룬 따뜻하고 훈훈한 영화이다.
클라우스
ⓒ 네이버 영화
synopsis
편지 6천 통을 배달하라고요? 소통은커녕 싸움만 일삼는 마을에서요?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에
좌절한 우체부. 그냥 포기하려던 차, 장난감 장인을 만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줄 테니 편지를 쓰라고 하는 거야!
cine pick!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클라우스>는 산타클로스를
소재로 한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이다.
캐롤
ⓒ 네이버 영화
synopsis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 테레즈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그리고 두 사람은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cine pick!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감독상,
촬영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영화 속 필름의 질감과 50년대 뉴욕의 풍경이 영화의
매력을 더하였다.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 네이버 영화
synopsis
반복되는 할로윈 준비가 지겨운 호박 왕 잭은 모두에게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잭의 신나는 임무는 산타를 위험에 빠뜨리고, 온 세상의 착한 아이들에게는 악몽이 되고 만다!
cine pick!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 <크리스마스 악몽>은 개봉된지 13년 만에 3D
작업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따뜻한 감성과 뮤지컬의 요소가 곳곳에 들어가 재미를
더하였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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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주 최신 개봉영화(돈룩업, 마이 뉴욕 다이어리, 캅샵, 몬스타엑스 더 드리밍, 이상존재)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2월 1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돈룩업 #마이뉴욕다이어리 #캅샵 #몬스타엑스더드리밍 #이상존재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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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네메시스> 공식 예고편
정의의 철퇴로 악을 부수는 그리스 여신의 이름을 따온 탐정 사무소 네메시스.
그곳에 모인 탐정과 그의 조수는 난해하고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추리로 해결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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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tv+ <샤이닝 걸스> 공식 예고편
로런 뷰커스의 베스트셀러 원작을 기반으로 한 시리즈 '샤이닝 걸스' - Shining Girls. 주인공 커비 마즈라치는 잔혹한 공격을 당한 뒤 끊임없이 뒤바뀌는 현실을 겪게 된다. 수년 후, 시카고의 한 신문사 기록 보관소에서 일하다 최근의 살인 사건이 과거 자신이 받은 공격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커비. 그녀는 베테랑 기자 댄 벨라스케스와 함께 끝없이 바뀌는 자신의 현재를 이해하고, 마침내 과거에 직면한다. 엘리자베스 모스, 바그너 모우라와 함께 필리파 수, 에이미 브레너먼, 제이미 벨 등이 열연하며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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