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4-12-13 14:04:55
단점으로 쏘아 올린 장점
넷플릭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리뷰
이 글은 넷플릭스 작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리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장르물을 다루는데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나 설정들이 있다. 예를 들어 수사물에서는 발바닥에서 땀난다는 말 외엔 묘사할 방법이 없는 형사들의 고군분투가 그려진다던가. 주인공은 조사를 해야만 하는 세력과의 갈등을 겪으며 숨길 수밖에 없는 비밀을 가진 채 초조해한다던가. 흑막이라고 불리는 최후의 빌런이 나타났을 때 아니 네가!!라는 말이 나오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장르마다의 특성은 대다수의 사람이 기대하는 점이면서도 식상함을 느끼기 쉬운 포인트이기에, 기본적인 규칙은 지키면서도 작품만의 변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 이중고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변주로 가득하다고 하기보다는 단점으로만 가득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화면은 어둡고 사건 전개는 느리며 수사물에서 볼 법한 장면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이런 단점을 뒤집어 모조리 장점으로 만들어버린다.

12.3일 이후로 가르마 위치만 달랐지 우리나라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히틀러의 인기는 스포트라이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두컴컴한 곳의 가장 정중앙에 우두커니 선 채로 그는 마치 자신만이 계시를 받은 듯 밝은 빛 아래에 존재했고. 모두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가운데 반짝반짝 홀로 빛나며 말빨 하나로 군중들을 홀라당 사로잡았다.(아 물론 누구는 그마저도 못해서 전 세계인의 욕만 홀라당 얻어먹었으니 그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이렇듯 스포트라이트는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주지만 수사물에서는 그다지 각광받는 시점은 아니다. 그리고 이 포커싱을 위해서, 극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태수(한석규)의 집은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어두워야만 한다는 위험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이 단점을 완벽하게 커버하기 위해. 위대한 배우 한석규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한석규는 허탈함을 표현해 낼 줄 아는 세상 몇 안 되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의 진가가 모든 장면에서 발휘된다.
태수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담은 숨결 한 번에. 시청자들은 마음 바닥까지 훑는 듯한 저릿함을 느끼기도 하고, 애처롭게 딸을 쳐다보는 눈빛에서 쏟아지는 태수의 복잡한 심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도 한다.
극 중 분위기와 너무도 닮은 태수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침착하고 냉철하며 묵직한 태도를 취하지만. 마치 혼자만 벚꽃을 뿌린 듯 샤랄라 빛나는 군도 속의 강동원처럼. 태수는 자신을 에워싼 어둠에 조금도 잠식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좋은 배우를 보는 카타르시스 자체가 스포트라이트가 되어 확실하게 태수를 비춘다.

수사 장르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속도로 수사가 진행되려면 계엄에서 해제까지의 속도쯤은 되어야 할 텐데, 이 작품은 프로파일러라는 태수의 직업상, 수사의 진척이 마치 국민의 짐 때문에 탄핵이 자꾸 미뤄지는 것만큼 느릿느릿하고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각본의 거의 대부분을 태수와 딸 하빈(채원빈)에게 집중시키는 두 번째 스포트라이트를 씀으로써 흩어지는 이야기를 없애고 극 중에 덩그러니 두 사람만을 남겨둔다.
여러 용의자와 더불어 결국에는 밝혀질 최종 빌런을 이리저리 꼬아 놓으려면 주변에 대한 설명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극을 따라가는 데 있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과연 이 등장인물이 필요했는가?라는 물음이 생기기도 하고. 소위 말하는 떡밥이 완벽하게 설명되지 못해 물음표를 남기거나 실패한 수사물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외롭게 뻗은 두 가지 외에 모든 곁가지를 없앰으로써 극 전체는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딸과 아버지 사이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으로 시청자를 단단히 동여맨 채 수사의 방향과 속도를 받아들이게 한다.

행여나 그 와중에도 이탈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이라도 되었던 듯. 작품은 세 번째 트릭을 쓰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버릴 것 하나 없이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형사들의 냄새나는 양말도, 목에서 피맛이 느껴질 것 같은 추격전도. 흠씬 두들겨 맞아 정신이 혼미해지는 폭력 장면도 없다. 오로지 극의 분위기를 십분 닮은 태수의 집이 존재할 뿐이다. 그의 집은 과연 김건희의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정도가 아니고서야 프로파일러의 월급으로 이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아름답지만. 동시에 어딘가 비밀을 감춘 듯 모든 문이 닫혀 있으며 대척점을 이루는 부녀관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듯 그들은 늘 식탁의 끝과 끝에 존재한다.
장면들이 가진 아름다움과 선으로 구분한 상징들은(마치 영화 [기생충]처럼) 배우들과 어우러져 최종적인 장면을 구성한다.
분명 비어있거나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는 위험요소를 이 마지막 트릭이 완벽하게 없애준다. 덕분에 배우들은 빛나고, 극의 진행 또한 매끄러우며, 비밀을 숨긴듯한 아름다움을 보면서 만족할 수 있는 드라마가 완성될 수 있었다.
마치면서 (좀 길다)
1. 한석규 베우는 나이에 맞는 역할을 언제나 따박따박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만큼 그의 나이와 시간과 때에 맞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단 하나의 거짓 없이 진실과 진심만으로 뭉친 대배우를 보는 이 마음이 얼마나 감사하면서도 코끝이 찡한 건지 모르겠다.
2. 비질란테로 대변할 수 있는 "사이다"물이 아니지만. 가장 현실적인 마지막을 선사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이런 결말은 한석규 배우가 있었기에 더 진실되었다고 생각한다.
3. 개인적으로는 제목조차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딸만 아버지를 배신한 줄 알았으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관계의 인물들이 서로에게 비수를 꽂다 못해 더 이상 고통을 호소할 수 없을 때까지 서로를 괴롭힌다. 그들의 관계에서 오는 배신감 때문에 모든 장면이 아름답지만 동시에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최근 누군가는 알량한 신뢰를 업고 온 국민을 배신했다.
이 배신이 가진 파급은 너무 커서 열흘이나 지난 지금도 일상에 온전히 발을 붙이지 못하고 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덕분에 불안장애 약을 안 빼먹고 자알 먹는다)
제목이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라는 극 중 대사는 가르마 타는 거 외엔 그 어떤 관심도 없어 보이는 당신에게 선사하는 메시지 같기만 하다.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당신 혼자 빠진 그 망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를 이용했다는 히틀러처럼. 당신 또한 그의 말로를 따라갈 것이니. 그대의 최후가 오거든 단 한 번만이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그대로 보기를 바란다.
당신은 우리에겐 친밀하지는 않았을지언정 배신자였으며. 주지 않은 신뢰마저도 이용하려 했다는 것을. 앞에 펼쳐진 이 모든 처참함은 당신이 자처한 것임을.
[이 글의 TMI]
1. 도시락 싸놨는데 안 들고 옴
2. 나 잡혀가면 좌표 좀 찍어줘요.
3. 냄비밥 해놓고 깜빡해서 밥 다 쉬었음.ㅠㅠ
#넷플릭스 #영화리뷰 #OTT리뷰 #이토록친밀한배자 #munalogi #한석규 #신작리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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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뎌야만 하는 세상에서 만난 나의 그림자
소년시절의 너 (少年的你, Better Days)
개봉일 : 2020.07.09 (한국 기준)
감독 : 증국상
출연 : 주동우, 이양천새, 윤방, 오월, 주 이, 장예범
“견뎌야만 하는 세상에서 만난 나의 그림자”
“Was와 Used to는 둘다 과거시재지만, Used to는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야.” 아이들 앞에 서있는 선생님이 뭔가를 떠올리는듯한 표정으로 영어 지문을 설명한다.
이 영화는 이제 과거가 된 일에 사로잡혀있기보단 이젠 ‘그렇지 않은’ 현재를 살고싶은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소년시절의 너>라는 제목만 봐서는 왠지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처럼 하이틴 로맨스 또는 첫사랑에 관련한 아련한 영화가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을수도 있지만, <소년시절의 너>는 끝없이 버텨야만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개봉 당시 ‘충격적이었다’는 평이 많은 영화였는데, 그건 바로 폭력적인 장면들 때문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 영화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주인공인 영화다. 학창시절, 물리적 폭행 장면의 수위가 꽤 높아 누군가에겐 더 힘들고 울렁이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에 관한 트라우마가 크다면 이 영화를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폭력적인 장면에 더해 가난한 주인공의 집안 사정과 대입을 앞둔 상황이 더욱 무거운 압박감이 되어 보는이의 마음을 누른다. 아프고 또 두렵지만 성공하기 위해, 원하는 대학에 가기위해 꾹 참고 견뎌야만 하는 소녀와 거친 환경에 홀로 남겨져 강해질수밖에 없었던 소년. 그리고 ‘너희는 어리니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연약한 아이들을 지켜주려 노력하지 않는 무책임한 어른들. 부끄럽고 슬프고 미안했다. 거기에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말 한마디가 더 얹어지고 나니 더 부끄럽고 아팠다.
영화의 중심은 소년과 소녀의 그 나이대에 맞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다. 매 순간 포기하고, 벗어나고 싶은 세상에서 만난 나처럼 아픈 사람, 나의 안녕을 물어준 사람, 나를 위로하고 나를 위해 희생해준 사람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위로. 그리고 그 다음에 피어난 사랑. 풋풋한 소년소녀의 첫사랑이라기보단 아픔과 멍으로 가득찬 단단한 그 감정이 긴 계단밑으로 굴러떨어지는듯했다.
몰입도가 높고 여운이 긴 영화여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본 날은 밤새 주연배우의 사진을 찾아봤던것같다. 왠지 그들이 영화 주인공이 아닌 현실에서 웃는 얼굴을 봐야만 이 슬픈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것 같아서 말이다.
소년시절의 너 시놉시스
시험만 잘 치면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기댈 곳 없이 세상에 내몰린 우등생 소녀 ‘첸니엔’과 양아치 소년 ‘베이’.
비슷한 상처와 외로움에 끌려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 두 사람은 수능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첸니엔’의 삶을 뒤바꿔버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첸니엔’만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베이’는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 모든 것을 해결하기로 마음 먹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대입재수를 준비하는 학교.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첸니엔은 후 샤오디에와 함께 우유를 나르고 있다. 첸니엔은 반에서 그닥 눈에 띄지 않는 학생, 후 샤오디에는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었다. 아무것도 꽂혀있지 않은 우유들 사이에 유일하게 빨대로 뚫려있는 우유처럼 비슷한 학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게 망가져있는 학생. 후 샤오디에는 그런 존재였다. 같은반 아이들은 후 샤오디에의 괴롭힘을 모르는척하고 후 샤오디에는 “왜 너희는 보고만 있니?”라고 묻지만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죽은 후 샤오디에를 보며 “왜 뛰어내린거야?”라고 되물을 뿐이다.
후 샤오디에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은 사람은 첸니엔이 유일했다. 바닥으로 추락해 죽은 동급생의 모습을 보며 카메라를 꺼내드는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첸니엔은 체육복으로 후 샤오디에를 덮어준다. 그 사건을 계기로 첸니엔은 새로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된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에게 마지막 선행을 베풀어서, 어른들에게 가해자를 고발한것 같아서. 이유는 그뿐이었다. 의자위에 고인 피 위로 첸니엔의 얼굴이 반사되고 후 샤오디에가 당했던 모든 폭력은 다음 타겟인 첸니엔에게로 향한다.
어른들은 모든 사실을 외면한다. 폭력을 당한다는 피해자에게 “애들과 잘 지내도록 노력하고, 선생님이 얘기할게.” 그게 전부다. 형사들도 이유와 상황을 물을뿐,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후 샤오디에를 덮어준 행동에 더불어 엄마인 저우 레이가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부풀려진 소문까지 겹쳐지고 첸니엔은 더 심한 폭력을 당하게 된다.
불법장사가 아닌 또 다른 피해자라고 말하는 첸니엔의 엄마 저우 레이. 그녀는 자신의 정수리에 흰머리가 자라고 있는것도 모를만큼 열심히 일한다. 딸을 베이징 대학에 보내고 그곳에서 함께 인생을 바꿔가겠다는 희망으로 첸니엔을 키운다. 하지만 넉넉치 못한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매일 빚쟁이들만 찾아올뿐이다.
첸니엔은 마지막 희망인 ‘베이징 대학 입학’만을 바라보고 견딘다. 선을 넘은 폭력도, 불안한 가정 형편도. 심지어 자신의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텐데 뒷골목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는 남자(샤오 베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까지 하다니. 이토록 용기있고 착한 소녀가 또 어디있을까 싶다.
샤오 베이는 그날,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다. 홀로 살아남아야만 했기에 강하고 거칠어져야만 했던 소년 샤오 베이. 누구도 그 소년을 돌아보거나 챙겨주지 않았다. 같이 아파해주지도 않았고. 샤오 베이에게 첸니엔은 “처음으로 나한테 아프냐고 물어본 사람”이었다.
“날 보호해줄래?”
위를 막아도 아래를 향해 날아오는 공처럼, 막아보고 또 모르는척 하려해도 끝없이 이어지는 괴롭힘속에서 첸니엔은 어쩔수 없이 견디고 있었다. 그리고 샤오 베이를 만난 날,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새로운 방법을 찾게된다.
“다들 어리잖아. 두번째 기회는 줘야지.”라고 말하며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위하는 어른들의 이상한 법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건 ‘법’이 아닌 ‘물리적 힘’이었다. 첸니엔은 샤오 베이에게 보호 받으며 열심히 대입을 준비한다. 샤오 베이는 첸니엔이 책을 볼 수 있도록 전구를 하나 더 달고 첸니엔은 샤오 베이가 누워있는 침대 방향을 바라보며 잠이 든다.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사람. 첸니엔과 샤오 베이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다.
어른들은 첸니엔과 베이를 지켜주지 않는다. 폭력과 아픈 기억 또한 어른이 되면 잊혀질거라며 말도 안되는 위로를 한마디 던질뿐, ‘아픔을 잊는 법, 아픔을 잊을 수 있는 어른이 되는 법’ 같은건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세상속에서 첸니엔과 베이는 함께 앉아 머리를 밀며 눈물을 흘린다. 보호자 없이 향해야하는 수험장과 모독적인 희롱과 폭력을 견뎌야했던 골목. 첸니엔은 그 모든 순간들을 이겨낸다. ‘입시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런 첸니엔을 위해주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명뿐이다.
“넌 계속 걸어 네 바로 뒤에 내가 있을게.”
“첸니엔은 베이에게 갚을게 하나 있다.”
베이는 첸니엔을 위해 첸니엔의 과실치사 혐의를, 아니 살인죄를 뒤집어쓰기로 다짐한다. 사고로 인해 죽은 학교 폭력의 가해자 웨이 라이를 죽이고 여러 여성들을 성폭행 하려고 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든 베이는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첸니엔은 대입을 마치기 위해 끝까지 시험을 보고, 두 사람은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 ‘다음’과 ‘다시’가 꼭 돌아올거라는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첸니엔은 죄책감을 안고 베이징으로 떠날 준비를 하다가 정 형사의 거짓말 한마디에 무너진다.
왜 우리 둘을 그냥 두지 않냐며 울부짖는 가냘픈 소녀의 목소리가 너무도 슬프게 느껴졌다. 견디면 견디는대로 더 아팠고, 아프다 말하면 어른들은 잊혀질거라 대답하거나 임시방편을 내놓고 사건을 외면한다. 피해자를 아프게 했던 가해자는 ‘다 잊고 새로 시작하자. 친구로 지내면 좋았을걸, 이제 친구하자’와 같은 열불나는 말만 뱉어내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가해자가 두려워했던건 자신의 죄가 아닌 범죄자라는 낙인정도 뿐이었으니까.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만난 유일하게 나를 지켜주고 돌봐주는 사람. 첸니엔은 베이와 함께하길 선택한다. 베이는 항상 첸니엔의 뒤 또는 옆에서 첸니엔의 발걸음에 맞춰 걷고, 첸니엔은 베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어른들은 첸니엔과 베이가 ‘어려서 모른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 두 사람이 무책임한 어른들보다 더 강한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몰랐다. 이 소년과 소녀의 아픔을. 엄마에게 버림받은 소년의 절망과 혼자서 살아남아야했던 버거움을. 한줄기 희망을 잡고 버텨야만 했던 소녀의 떨리는 손과 어깨를. 이제는 알아야한다.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되도 않는 위로와 동정보다는 이런 아픔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법과 든든한 방패막이 필요하다.
최근 큰 이슈가 되었던 학교폭력에 대한 기사들을 접하며 이 영화와 처음 봤을 당시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젠가 상처를 입었던 내 마음을 되돌아봤다. 항상 외면하고 있었다. 내가 받았던 상처와 지금도 누군가가 받고있을 상처를.
<소년시절의 너>라는 영화는 힘들고 어두운 영화임은 분명하다. 10%쯤의 희망과 서로를 향한 사랑이 빛나고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아프고 울렁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봐줬으면 한다. 폭력이라는것이 얼마나 악랄하고 피해자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지. 그리고 세상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소년시절의 너>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끼고,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Kyung film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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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과 관음의 경계에서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무척 좋아하는 저는 실제로 벌어진 사건·사고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사건의 개요, 증거, 검거 과정 등 공개된 자료를 샅샅이 읽어보기를 즐겨 하지요. 그런데 가끔 그런 제 모습이 섬찟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려고 인터넷 세상을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실제 사건들을 단순한 재미와 흥미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그렇습니다. 그럴 때면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관심도 한순간에 관음으로 변할 수 있음에 몸서리치며, 서둘러 인터넷 창을 닫곤 합니다.
<레드 룸스>는 누구든 관심과 관음의 경계에 설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둘 사이를 넘나들며 극악무도한 살인 용의자를 주시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살인, 납치, 스너프 필름처럼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자극을 최대한 줄이는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죠.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레드 룸스>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레드 룸스>는 2024년 10월 9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레드 룸스
Red Rooms
Summary
10대 소녀 3명을 끔찍하게 살해하고 생중계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슈발리에’ 그리고 슈발리에의 재판을 매회 방청하는 모델 겸 해커 ‘켈리앤’. 심증만 있을 뿐, 물증 없는 재판이 길어지는 가운데 슈발리에를 추종하는 팬들과 희생자 가족이 대립한다. 한편, 존재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던 마지막 희생자 영상이 다크 웹에 등장한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파스칼 플란테
출연: 줄리엣 가리에피, 로리 바빈, 맥스웰 맥카비-로코스
무언의 방식으로 경계를 흔들다
영화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서스펜스를 만듭니다. 스릴러 영화에서는 일반적으로 관객이 아는 사실을 주인공만 모르게 하거나, 여러 시점을 교차하며 조금씩 사실을 드러내는 등의 방식으로 긴장감을 조성하죠.
<레드 룸스>는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만듭니다. 관객이 주인공 '켈리앤'에 관해 아는 내용은 극히 적습니다. 그가 컴퓨터에 꽤 해박한 것으로 보이며, 모델 일을 겸하고 있다는 정도지요. '켈리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목적이 있는지 관객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정보의 여백은 살인 용의자의 재판에 참석하고자 밤을 새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행동을 수상쩍게 만듭니다. 더불어 '켈리앤'이 선인인가, 악인인가에 관한 의문도 유발하죠. 이 사람의 행동을 관심으로 볼 것인가, 관음으로 볼 것인가? 그가 추구하는 것은 정의인가, 흥미인가? 의구심은 계속해서 커져만 갑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소리를 긴박하거나 과격하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느리고 묵직한 움직임, 적시에 최소한으로 사용된 음악과 효과음으로 한없이 강렬한 장면들을 만들어내죠. 그 무엇도 명료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관객은 저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러한 연출력은 영화 초반부의 법정 신에서 빛을 발합니다. 초점을 두는 대상을 바꾸어 가며 촬영한 롱테이크로 지루함 없이 사건의 개요를 전달하고, 프레임 안에서 서로 어긋나는 시선을 클로즈업으로 담아내며 관객의 주목도를 높이죠. 이러한 시선의 교차는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몇 차례 더 등장하는데요. 발화하지 않고 오직 영화적 기술만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레드 룸스>의 특별한 매력 중 하나입니다.
'클레멘타인'이라는 인물을 영리하게 사용해 '켈리앤'의 모호함을 강화하기도 합니다. '켈리앤'과 '클레멘타인'은 모두 노숙해서라도 살인 용의자 '슈발리에' 재판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입니다. 언론 매체는 그들을 모두 광팬으로 명명하죠. '클레멘타인'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켈리앤'과 달리 열정적으로 '슈발리에'를 옹호하는 전형적인 하이브리스토필리아(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끌림을 느낌) 성향의 광팬입니다. 그렇다면 '클레멘타인'과 같은 행동(재판에 참여하기 위해 노숙하기)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켈리앤'도 같은 성향이 있는 사람일까요? 대중이 미치광이라 부르는 '클레멘타인'마저도 진실을 목도하고 재판장을 떠나갔는데, 그 이후에도 노숙을 이어가는 '켈리앤'은 그보다 더 미치광이인 걸까요? 이렇듯 인물을 사용한 교묘한 연출은 관객의 생각을 쥐고 흔들며, 중후반부의 긴장감을 계속해서 고도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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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세계 속 산재한 공포
'켈리앤'이 인터넷 세상에서 사용하는 아이디 '샬롯의 여인'도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샬럿의 여인은 성안에서 오직 거울로만 세상을 바라보다가,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성밖으로 나가는 아서왕 이야기 속 인물입니다. 이때, 샬럿의 여인이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남성의 연인이 바로 극 중 '켈리앤'이 사용하는 인공지능 비서의 이름인 '기네비어'이기도 하죠.
현실에서는 언제나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세상의 면면을 속속들이 바라보는 '켈리앤'은마치 샬럿의 여인과도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가 아카이빙되어 있는 그의 메모장을 보면, '켈리앤'이 방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관음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켈리앤'과 샬럿의 여인을 동일시하여 바라본다면, 과감한 종국의 선택이 성 밖으로 나선 샬럿의 여인의 결단과 다를 바 없이 보입니다. 재판을 통해 디지털 세상 밖에서 처음으로 진짜('슈발리에')를 목격하고, 운명에 해가 되더라도 용감한 선택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죠.
결말에 당도해 '켈리앤'이 저지르는 행동은 정의롭지만, 사실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공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타자 몇 번, 클릭 몇 번에 손쉽게 각종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파악해 버리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는 다크웹 '레드 룸스'에서 가상화폐로 스너프 필름을 구매하는 과정이 말입니다. 우리의 디지털 일상이 얼마나 두려운 연결과 공유로 가득한지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공포 영화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이 세상은 달리 말하면 스마트폰에만 침투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세상입니다. 모든 것을 알 수 있음은 강력한 권능입니다. 어쩌면 정보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신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지요. 앞으로 우리가 필히 마주하게 될 범죄, <레드 룸스>의 이야기보다도 더 잔혹하고 낯설 디지털 세상의 개인정보 범죄가 더 두려워집니다.
One-Liner
계산된 여백과 영리한 연출로 만들어낸 강력한 저감도 서스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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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픽션보다 약간의 현실이 섞인 픽션이 더 재밌는 법
댓글부대 (Troll Factory, 2024)
100% 픽션보다 약간의 현실이 섞인 픽션이 더 재밌는 법
개봉일 : 2024.03.27.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범죄, 드라마, 스릴러, 블랙코미디
러닝타임 : 109분
감독 : 안국진
출연 : 손석구, 김성철, 김동휘, 홍경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짚고 갈 것은 <댓글부대>는 실화가 아니다. 영화의 도입부에 이건 실화고, 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피하기 위해 익명화했다는 상진의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이는 영화가 상진의 글과 생각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나오는 나레이션일 뿐이다. 영화의 크레딧을 보면 이는 허구라는 안내문이 추가로 나온다.
1980년대 중반, 개인 이용자 간 통신이 가능해진 일명 ‘PC 통신의 시기’가 시작된 이후 약 40년. 통신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여 현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하게 인터넷을 이용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 사이 같은 취미,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기능은 폭발적으로 확장됐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나와 뜻이 비슷한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으거나 함께 소통하고, 어떠한 사회적 문제가 생겼을 때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는 등의 순기능을 갖고 있지만 이것이 갖고 있는 단점 또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대표적인 단점으로는 익명화(본인 인증 후 가입을 한다 해도 실제 내 이름으로 활동하진 않으니까), 사실 확인이 불가능한 이야기의 확산(루머), 쉽게 형성되는 군중심리 등이 있다.
온라인상에 수많은 정보와 이야기가 범람하고 있는 시대. 항상 앞서 말한 것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영화 <댓글부대>는 이 자주 들어봤을, 살짝 삐끗하면 뻔해질 위험이 큰 주제를 지루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낸다.
동명의 소설 [댓글 부대]를 원작으로 한 영화 <댓글부대>는 한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가끔은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는 ‘여론 조작 댓글 알바’의 세계를 깊이 파내려 가는 이야기다. 그냥 ‘이 회사 제품 좋아요~', ‘제가 써보니 좋아요~’ 하는 식의 속이 빤히 보이는 댓글 알 바가 아니라 군중 심리를 이용해 여론을 움직이는 댓글부대 청년 3명과 사회부 기자 임상진의 이야기다.
임상진은 모두가 피하는 대기업 ‘만전’의 비리 폭로 기사를 쓰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로 오보 판명이 나며 정직을 당한다. 말이 정직이지 사실상 그 업계에서 매장된 거나 마찬가지고 비리를 제보한 피해자인 중소기업 사장은 죽은 상황. 사장의 장례식장을 찾아간 상진은 직원의 ‘경쟁사의 기술은 우리와 다른 것이며 사장님은 피해의식이 심했다’는 말을 듣고 오보 판정에 이어 두 번째 충격을 받는다. 갈 곳도, 할 일도 없어진 상진은 쇼파에 누워 자신에게 온 욕 메시지들을 천천히 넘겨본다. 그러다 “기자님 기사 오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한 언론학 교수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그와 만나기로 한다. 하지만 상진의 앞에 나타난 건 나이 지긋한 언론학 교수가 아닌 자신이 온라인 여론 조작을 하는 댓글부대라 주장하는 한 청년이었다. 과연, 이 청년의 말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현실과 픽션의 적절한 조합, 흥미로운 주제와 높은 몰입도
김성철, 김동휘, 홍경. 젊은 세 배우의 훌륭한 합
극 중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100% 진실보다 거짓이 섞인 진실이 더 진실 같다.”
100%의 진실, 100%의 거짓보다 약간의 거짓이 섞인 진실이 더 믿을만하고 재밌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야기도 100%의 픽션, 100%의 현실보다 약간의 진실이 섞인 픽션이 더 재밌게 느껴지는 법이다. <댓글부대>가 딱 그런 영화다. 너무 비현실적이지도 너무 현실적이지도 않은. 픽션에 약간의 현실을 섞어놓은 느낌을 주는 영화다. <댓글부대>는 2017년에 있었던 촛불 시위,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도둑질,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마녀사냥과 신상 털이, 댓글 부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흔히 볼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속 글, 밈, 갑자기 터진 의문스러운 마약 스캔들, SNS 등을 하나의 장치로 사용하며 이야기의 현실감을 높인다.
그리고 그 현실감 위에 손석구, 김성철, 김동휘, 홍경 배우의 연기력이 얹히니 영화 자체의 몰입도가 훨씬 올라간다. 손석구 배우의 우직한 연기력이야 이제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이번 영화에서 강조해서 언급하고 싶은 건 김성철, 김동휘, 홍경 배우다. 어울릴 거라 생각해 본 적 없는 이미지의 배우들인데, 셋 사이의 합이 정말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고 각자 연기력도 딱히 흠잡을 곳이 없다고 느꼈다. 이 중에서도 특히 홍경 배우의 연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감정을 막 내뿜는 게 아닌 딱 적절한 수준까지만 끌어왔다 다시 꾹 눌러 담는 표현 방식이 정말 좋았다. <악귀>를 통해 홍경 배우의 연기를 처음 봤을 때, “이 사람.. 곧 내 마음에 들어오겠다..”싶었는데 <댓글부대>를 통해 확실해졌다.
소설 원작과의 차이점
불쾌감은 줄이고 약간의 대중성을 더하다.
소설 [댓글 부대]는 국정원 여론조작 의혹 사건을 모티프로 시작되고, 영화 <댓글 부대>는 한 기업의 여론 조작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소설에 비해 한결 부드럽게 정리되었고 여론 조작의 결과에 죄책감을 느끼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소설에 나왔던 불쾌감을 주거나 논란이 될만한 부분들은 대부분 쳐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소설엔 숨길 수 없는 불쾌감이 둥둥 떠다니는데 영화에는 불쾌감이 아닌 의심과 경계심을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엔딩에 대한 호불호
직선이 아닌 돌고 돌아가는 이야기. 흥미롭지만 지루한 느낌도
<댓글 부대>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한 영화다. 어떤 게 진실이고 어떤 게 거짓인지 명확히 제시되지 않으며 사건을 직선적으로 풀어가기보단 사건의 조각들을 천천히 모으며 돌고 돌아가는 느낌이 강하다. 이러한 특징은 영화의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약간의 지루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나는 영화 속 사건들과 비슷한 현실 속 사건들을 떠올리며 영화를 봤기에 개인적으론 크게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빠르고 정확한 전개를 선호한다면 이 영화의 진행 속도가 다소 아쉽게 느껴질 수 있겠다.
그리고 <댓글 부대>의 큰 불호 포인트 중 하나, 엔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 물론 나도 엔딩이 아쉽게 다가오긴 했다. 이런저런 조각들을 모아놓고 한순간에 파앗- 흩뿌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영화의 주제를 생각했을 때, 더 좋고 깔끔한 엔딩 아이디어로는 어떤 게 있겠냐고 묻는다면.. 그건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이 영화의 엔딩은 꽤 괜찮은 편인 것 같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모이기 쉬운 만큼 흔들리기도 흩어지기도 쉬운 군중
인터넷 통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예전에 비해 더욱 쉽고, 빠르고, 넓게 인터넷 통신과 그를 통한 소통을 이용하고 있다. 인터넷 통신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절, 극중 인터넷 유료화 시위엔 큰 인원이 모이지 못했고 인터넷 통신이 활발해진 시대엔1600만 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이런 소통은 사회적 부당함을 무찌를 수 있게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한순간에 해체되거나 누군가를 해하기도 한다. 연예인 마녀사냥이나 일반인 신상 털이 사건, 스캔들이나 찌라시 글에 함께 달려들어 욕하다가도 "아니면 말고" 하며 뒤돌아서 흩어지는 익명의 아이디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보면 인터넷을 통한 소통과 여론 형성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위험한 것인지 확 와닿을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다. 게다가 익명성까지 주어지니 이 안에 있을 동안 '나'를 내려놓는 사람들이 참 많다. 자극적인 것에 바로 반응하고 달려드는 사람들. 극 중 댓글부대인 팀알렙은 이들의 심리를 이용한다.
찻탓캇과 임상진이 1인 시위 사건을 이야기하는 장면, 찻탓캇은 1인 시위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철폐를 주장하는 이용철의 시위를 막기 위해 그의 딸을 온라인 마녀사냥의 사냥감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는 한 그의 딸은 억울하게 욕을 먹는다 해도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진행하지 못할 테니 아버지가 시위를 그만둘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한다. 임상진은 '너희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랑 명예훼손이 다른 건 아냐'라고 묻는다. 찻탓캇은 당연히 알고 있다고 답한다. 그리고 뒤이어 '하지만 사람들은 사실적시인지 그냥 명예훼손인지 그런 거엔 관심이 없다.'라고 말한다. 찻탓캇의 이 말은 보통 이러한 자극적 여론 몰이에 달려드는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중요한 게 무엇인지 딱히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제대로 이용해 진실과 거짓을 섞어 여론을 조작한다.
가짜 이름의 믿을 수 없는 제보 / 사라진 루머의 유포자
"(제 이름은) 잊어버리기 쉬워요. 너무 평범해서."
찻탓캇은 상진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다가 마지막으로 신뢰의 한방을 날리듯 자신의 이름이 '이영준'이라고 말한다. 신분증같이 증명할 만한 것을 내밀진 않지만 지금껏 현실 같은 이야기를 들어온 상진은 영준의 말을 믿고 그의 이름과 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해둔다. 하지만 영준은 기사가 나온 뒤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웹 소설 카피 논란까지 생긴다. 이후, 이야기는 어떤 걸 믿어야 할지, 어디까지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말려들어간다.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글과 카더라들을 보면 대부분 최초 유포자를 찾기 어렵다. 누군가 피해를 보고 사회적인 파장이 일어나도 처음으로 그 글을 쓴 사람, 유포해선 안될 것을 유포한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흔한 이름과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댓글부대에 제보만 남기고 사라진 찻탓캇은 하나의 카더라를 퍼트리고 사라진, 찾을 수 없는 최초 유포자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상진은 찻탓캇이 지어낸 그의 제보를 착실히 옮겼고, 그가 미리 써둔 대본(웹 소설)이 세상에 공개되자 순식간에 정의를 구현한 대기업 저격수가 아닌 망상증을 가진 기레기가 된다. 사람들은 상진이 쓴 글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집중하지 않는다. 보이는 건 상진이 사라진 찻탓캇의 글을 카피했다는 것뿐이니까. 잊어버리기 쉬운 평범한 이름의 이영준(찻탓캇), 그는 잊어버리기 쉬운 자신의 이름 대신 더욱 강렬하게 각인될 카피라는 주제를 던져놓고 상진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한 번에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진실
여러 개의 문, 복도가 있는 복잡한 댓글 부대 팀알렙의 집
찻탓캇이 처음 댓글부대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 찻탓캇은 혼자 웹 소설을 쓰고 있고 다른 방에 있는 찡뻤킹과 팹택이 “빨리 와봐!” 하고 소리치며 다급하게 찻탓캇을 부른다. 찻탓캇은 책상에서 일어나 방을 통과하고 또 문을 열고, 긴 복도 같은 부엌을 지나 또 문을 연다. 댓글 부대의 집은 크기에 비해 꽤 복잡한 형태로 되어있고 찻탓캇을 부른 실체인 찡뻤킹과 팹택은 한 번에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댓글 부대>의 이야기 진행도 이런 형식이다. 사건에 숨겨진 실체와 진실은 한 번에 드러나지 않고 이야기는 돌고, 돌고, 또 돈다. 보는 이를 계속 헷갈리게 만들던 이야기는 결국 시원하게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진실, 어디까지가 거짓인가
영화의 엔딩, 결말 의미 해석, 관람차
조작 프로세스 글에 달린 조지 오엘의 댓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댓글 부대>는 진실과 거짓을 명확히 구별해 주지 않는다. 엔딩도 그렇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데?"라는 의문이 들것이다. 이는 영화가 남긴 찝찝함을 가진 채 군중 심리, 진실과 거짓, 커뮤니티의 맹점, 각자의 해석 등을 계속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려는 제작자의 의도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사이다처럼 범죄자, 대기업 때려잡기! 사회 정의 구현! 을 실현했다면 그건 또.. 멋이 없었을거다. 하지만 전혀 감이 오지 않고 답답함만 쌓여있는 상태라면, 다른 이들의 해석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상진이 주인공, 만전이 악당이라고 생각한다. 찻탓캇은 실제 만전의 댓글부대 중 한 명이고, 거짓으로 댓글 부대 제보 시나리오를 짠 다음에 그걸 웹 소설 사이트에 미리 올려둔 후, 상진을 자극해 다시 한번 기사를 쓰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카피 논란에 휩싸이게 만들어 사회적인 타격을 줬다고 생각한다. 상진은 처음 찻탓캇을 만났을 때, 찻탓캇의 얘기를 믿지 않기에 녹음기를 바로 켜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찻탓캇은 그런 상진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본인이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고, 누군가는 죄책감을 느꼈고,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 느꼈다.. 하며 어리고 약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이름을 알려주는 것 모두 상진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한 행위였고 상진은 결국 찻탓캇의 말을 믿었다 뒤통수를 맞는다.
찻탓캇이 말하는 팀알렙의 모습이 나올 때, 그들의 집 창가엔 커다란 관람차와 유원지가 보인다. 보통 이런 시끄러운 유원지 바로 앞에 가정집이 입주하는 경우는 흔치 않고, 반짝이는 관람차는 왠지 꿈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나는 찻탓캇이 말하는 팀알렙의 이야기가 모두 꿈같은 허상, 거짓이라고 느껴졌다. 찡뻤킹이 납치를 당하고 관람차의 불이 꺼진 모습이 나온 후 찻탓캇의 이야기는 끝나는데, 그 이후 상진의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시작된다. 관람차의 불이 꺼졌다는 건 그의 거짓 이야기가 끝났고, 이제 현실의 사건이 이어질 것임을 암시한 느낌이다.
극 중에서 댓글부대 프로세스 글에 '조지 오엘’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이거 올리고 살아계신가요?’라고 적은 댓글이 나온다. 이는 소설가 조지 오웰과 소설 [1984]를 떠오르게 만든다. [1984]는 1949년에 쓰인 오래된 이야기임에도 현대 사회의 문제를 정확히 짚어낸 소설로 정보 기술의 발달로 개개인의 사생활과 신상정보가 쉽게 노출되는 독재 국가에서 진실을 찾으려 노력하는 주인공의 윈스턴 스미스가 겪는 사건이 담겨있다. 모두가 국가의 감시를 받고 복종하는 사회에서 윈스턴 스미스는 감시를 피해 국가가 숨겨놓은 물건을 사고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을 키워간다.
<댓글 부대>의 이야기와 결은 다르지만 현대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짚어낸 소설이기도 하고, 어떠한 통제(여론 조작/독재 국가) 안에서도 진실을 찾으려 하는 윈스턴 스미스의 모습이 영화 속 상진의 모습과 닮아있기도 하니 한 번쯤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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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상가들 / The Dreamers, 2003
인터넷 방송을 보다 보면, "나작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를 풀어보면, "나만의 작은 스트리머"로 흔히, '나만 알고 싶은 음악 혹은 가게'처럼 일맥상통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유명해지면 그만큼 나에게 쏟아진 관심이 덜해지는 것을 비꼬는 의미로도 활용되기도 하는데요.
이처럼 옛날 영화를 보는 느낌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지금이야 유명한 배우들인데, 생각지도 못한 영화에 생각지도 못한 배역을 맡아 나타나니 신기할 따름이죠.
영화 <몽상가들>은 지금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에바 그린"의 데뷔작입니다.
워낙 나오는 영화들마다 인상들이 짙어 뭘 해도, "에바 그린"인데 이 영화는 이를 제외하더라도 평가가 좋더군요.
그래서, 보게 된 영화 <몽상가들>은 어떤 느낌을 남겼는지? - 한 번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한창 시위로 열기가 뜨거운 1968년, 파리에 유학을 온 미국인 "매튜"는 그곳에서 쌍둥이 남매 "테오"와 "이사벨"을 만납니다.
서로의 취향이 맞았던 그들은 급속도로 친해지고, 같이 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매튜"는 "이사벨"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이상하리만큼 "이사벨"은 "테오"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데요.
이에 세 남녀의 관계에도 급속도로 이상 조짐이 생기는데...제목부터 스포일러?
1. 진짜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영화 <몽상가들>은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네마테크"라는 실존 사건을 가져온 영화입니다.
이는 즉슨, 역사적인 사건과 가상의 이야기를 덧붙인 "팩션"장르의 영화라는 것이죠.
이만해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이겠지만, 영화 <몽상가들>로서는 이 실존하는 사건이 양날의 검일겁니다.
실존했던 사건을 가져와 관객들의 시선을 이끄는데 성공하나 문제는 결말도 이미, 예정되었기에 맥이 빠질 겁니다.
이에 영화 <몽상가들>은 해당 사건보다 캐릭터들의 관계와 이야기에 집중해 뒷이야기를 점점 궁금하게 만듭니다."팩션"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앞에서도 언급한 "팩션"은 진실을 뜻하는 "Fact"와 소설을 뜻하는 "Fiction"의 합성어입니다.
어찌 보면, 서로 상충되는 단어로 어울리지 않지만 영화 <몽상가들>은 이를 있을법한 이야기로 관객들을 설득시켜 나가는데요.
앞서 언급한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네마테크"라는 실존 사건을 크게 가져와 이에 있을법한 "매튜"와 쌍둥이 남매 "테오"와 "이사벨"이라는 캐릭터에 집약하는 것으로 말이죠.
그렇게, 시작한 <몽상가들>은 요즘 세대뿐만 아니라 앞으로 반복될 갈등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2. 반대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그동안 정치를 살펴보면 "보수"는 기성층, "진보"는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성향으로 생각하는데요.
이처럼 영화 <몽상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극 중 쌍둥이 남매 "테오"와 "이사벨"의 아버지는 유명한 시인으로 등장하는데,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 침묵만을 유지하니 "테오"는 이런 아버지를 비난합니다.
왜냐면, 자신은 시위를 통해서 목소리를 표출하니 그런 아버지와는 다르다는 것이죠.
이는 "이준익"감독이 연출한 <동주>의 "몽규"와도 크게 겹칩니다.
극 중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하려는 인물이나 온건적인 아버지 세대와 갈등이 있어 이와 반대로, 강경하게 나서는데요.근데, 네가 스스로 하는 건 있니?
다시 영화 <몽상가들>로 돌아와서, "테오"와 "이사벨"의 아버지는 아내와 함께 출장을 떠나게 됩니다.
이에 그들은 집이 비어있는 동안 자식들이 쓸 돈을 전하는데, 재밌는 건 이들이 이를 넙죽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다 쓰고도 모자랄 만큼 방탕한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그렇게, 아버지를 비난했는데 정작 아버지의 능력으로 살아가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요?
영화 <몽상가들>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관객들에게 말하고자는 바가 뚜렷한 영화입니다.
누구나 방구석에서는 그럴듯한 이상을 앞세우나 정작, 현실에는 한없이 위축되는 "몽상가들"의 실체를 고백하거든요.3. 이미, 예상된 결과로 간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 앞서 이전 대선은 사상 최초로 탄핵 정국에서 치러졌습니다.
이에 국민들은 반대되는 개념으로 투표를 했지만, 정작 받아들여진 인상은 색깔과 이념만 다른 똑같은 인상뿐입니다.
이처럼 영화 <몽상가들>은 그저, 아버지가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힌 캐릭터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를 빗댄 건지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들이 갇혀있다는 인상을 끊임없이 줍니다.
해당 주택에서 크게 활동 반경이 벗어나지 않고, 시야는 언제나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에만 고정되었고 이들이 하는 행동들도 보았던 영화를 따라 하는 것에 국한되었으니 무엇을 보여주고 말하려는지를 아실 겁니다.무조건, 반대가 옳은 것은 아니에요.
그렇기에 영화는 더 파격적으로 나갑니다.
사회적인 미양을 해치는 행위로 느껴질법한 벌칙들을 제안하고, 이를 수행하여 우월감을 느끼는 장면은 누굴 지칭한 건지는 몰라도 쿡쿡 찔리게 되는데요.
이런 가운데, 영화 <몽상가들>은 "모택동"을 꺼내듭니다.
그리고 그에게 따라오는 단어로 "문화 대혁명"이 연상될 텐데, 이 표어가 상당히 재밌습니다. - "옛 것은 모조리 숙청하라. 문화, 교육, 정치, 가족 등 모든 것을."
과거의 역사를 지우고 앞으로 찬란한 미래를 채우겠다는 야심이 엿보이나 결과는 아시다시피,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의 역사들을 탐내는 현재의 모습으로도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영화 <몽상가들>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래를 추구하나 정작, 하고 있는 행동은 과거의 산물인 영화를 따라 하는 것이니까요.4. 각자의 판단에 따라서...
영화 <몽상가들>의 결말을 살펴보면, "테오"와 "이사벨"은 끝내 진압대에게 화염병을 던집니다.
그리고 "매튜"는 이들과 달리,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에 "매튜"는 도망쳤고, "테오"와 "이사벨"은 자신의 의견을 실질적으로 표출함으로 대비적으로 보이나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이전부터 이들의 모습을 본 "테오"와 "이사벨"의 부모가 그들을 떠납니다.
결국, 채워질 수 없는 간극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매튜"도 "테오"와 "이사벨"에게서 그랬을 겁니다.
이에 영화 <몽상가들>은 결말에서 옳고 그름과 같은 확답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각자의 판단에 맞게 선택했을 뿐이라고 그렇게 말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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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새벽의 모든’에서 새로운 경계선을 발견하다! 미야케 쇼 감독님의 관람 포인트
(기자회견에서의 미야케 쇼 감독)
5월 1일, 25주년을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가 드디어 개막하였습니다! 개막작은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으로 선정됐는데요. 올해의 슬로건인 '우리는 는 선을 넘지(Beyond the Frame)'와 걸맞는 영화였습니다. 각자의 무수한 삶과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변까지 경계선을 넘어 모두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주연과 조연 그리고 엑스트라까지 각 인물의 하나하나가 궁금하고, 스며듦이 매끈한 영화였습니다.
'새벽의 모든'은 동명 소설을 원작 각색한 영화이며, 공황장애가 있는 야마조에와 주기적으로 PMS를 겪는 후지사와가 작은 연구소에서 만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부딪히며 각자의 결핍과 공백을 발견하고, 서로의 틈을 보게 됩니다. 그 틈에서 맞지 않았던 '어떤 사람'에서 어느새 곁을 내어주는 '동료'이자 '친구'인 관계가 확장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사회적 장애'에 관한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고 갖고 있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다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가 갖고 있던 틀을 인지하고 그 선을 넘게 하는 것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야마조에와 후지사와가 단순히 '남녀관계'로 뭉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호할 수 있는 주변인으로 존재합니다. (마치 지구 옆에 있는 위성처럼요!) 또 작품에서 이웃, 친구, 동료, 시설의 보호자와 의사 등 '혈연'과 이어지지 않는 다양한 보호자의 형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야마조에와 후지사와의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사회적) 보통적으로 '심리적 장애'와 관련해 간섭하고 지지하는 역할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보호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림으로 바로 연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마조에는 가족과의 왕래가 뜸하고, 후지사와는 어머니가 신체적 장애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야마조에의 주변 동료들이 야마조에의 안부를 늘 묻고, 후지사와 어머니는 늘 후지사와를 위한 식제품들을 마련해 후지사와에게 보냅니다. '보호자-피보호자'라고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는 일방적 관계가 아닌 경계선을 넘나드는 상호협력적 관계로 그려집니다. 야마조에는 후지사와의 PMS에 도울 수 있다며 설득하기도 합니다. 이에 서로의 느슨하지만 약간의 짐을 덜 수 있는 연대를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돌봄' 시스템에 관해 거대하게 혹은 사소하게 들여다보고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혈연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닌 대안적 관계들과 느슨하더라도 덜컥거리더라도 같이 짐을 나눠드는 느슨한 돌봄과 보호와 연대.
미야케 쇼 감독의 1일 기자회견 질의응답 시간에 간략히 주고 받은 질문과 답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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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원작이 있는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그 작품을 영화화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A) 원작 소설을 보면서 인물들의 행동에 큰 인사을 받았다. 자신의 상황에 그저 무력하게만 있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과의 질문과 답을 찾아냅니다. 이런 끈질긴 자문자답의 방식과 어떻게든 행동의 실천으로 이뤄지는 모습들이 우리가 갖고 있던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관해서 다른 시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든다. 더불어 현대의 질병이 불리는 것들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그 양상을 여러 시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마음처럼 일을 계속할 수 없으면서, 생각처럼 할 수 없는 것들에 그들을 조명하고 싶었다.
Q2> 작품에서 달력을 통해 세월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런 '시간의 흐름'의 배치 관한 의도가 궁금하다.
A) 공황장애나 PMS 같은 병은 간단히 해결하기가 어려우며 장기간 내 삶과 같이 지내야 하는 고통이다. 이런 질병은 오랜 기간의 치료 기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매우 놀랬었다. 자신의 장애와 삶을 쭉 이어가야 하는 이들의 시간을 영화를 통해 같이 느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주'라는 시간을 가져와 거대한 흐름을 표현해보았다.
Q3>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불안이 찾아오면 강박적으로 하는 일로써 '잡초 뽑기'가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왜 '걸레질' 같은 무언가를 닦는 행동으로 교체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책을 읽을 때 '잡초 뽑기'란 행동은 매우 유니크했다. 그러나 글로써 '잡초 뽑기'를 마주할 때 다가온 큰 인상이 영상에서는 잘 발휘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래서 대체할 수 있는 행동으로 '움직임'이 있고 '소리'가 있는 행동을 찾아봤다. 그렇게 찾던 중에 '무언가를 열중하며 닦는 모습'을 가져와 표현해봤다.
Q4>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무엇인지 궁금하며, 캐릭터 빌딩과 캐스팅과 관련하여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이번에 처음으로 (자신의) 영화에 다양하고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들을 단순히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닌 개성이 실린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가령 같은 '의사'라 해도 특유의 성격이 드러나도록 했다. 어떤 의사는 덤덤하고, 어떤 의사는 발랄해 보인다. 이렇게 개성이 잘 표현력에 주목하여 캐스팅하였다. 더불어 엑스트라에도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 봤다. 그러니 등장이 많든 적든 다채로운 등장인물들에 주목해주시면 좋겠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고, 두 번, 세 번, 많이 또 봐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장애와 같은 것이 없는 사람을 지칭할 때, '일반(보통) 사람'이라는 표현이 많은데 나는 '일반(보통)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공황장애가 있거나 PMS를 겪고 있다거나, 그저 다른 특징으로서 있는 것일 뿐이다. 이것의 유무가 보통을 정의하고 특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Q5> 공황장애와 같은 불안장애는 각 문화별로 다르게 느껴질 것 같은데, 영화를 선보이기 위한 작업으로서 이 다양성에 관한 어떤 리서치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A) 일단, 리서치는 원작 소설 작가가 공황장애가 당사자인 점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이후 인터넷과 책을 찾아봤고 공황장애 당사자들과 일본에 있는 전문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양성'에 관해 알아갈 수 있었다.
또 영화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시 여긴 지점 중 하나는 우리 영화에서 질병이 등장하고, 이것을 하나로 지정해버리는 것을 경계했다. 무수한 사례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가 일반화할 수 없다. 그리고 '공황장애'를 연기하는 순간들도 주의를 많이 기울렸다. 늘 현장에 의사가 대기된 상태에서 발작 연기를 촬영했고, 장면이 끝나면 배우의 심장박동을 확인하고 괜찮을 때에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배우에게 혼자 집에 있을 때는 발작 연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표현의 오류나 예측불가능함을 재현하는 과정을 경계하고 주의있게 임하고 싶었다.
Q6> 전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과 이번 개막작인 '새벽의 모든'의 공통점이 있다. 폐업 직전의 복식장과 AI 기술이 발전된 지금, 아날로그 연구소라는 공간이다. 한 마디로 두 공간은 소멸해가는 공간이라 느꼈는데, 감독은 이런 공간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했다. '소멸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A)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먼저 '영화관'이란 공간이 먼저 떠오르면서 가장 걱정되기도 하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영화관 수가 반이 줄어들었다. 그에반해 스크린 수는 다양한 형태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펜데믹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우려가 많이 된다. 그래도 낙관적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관'은 절대로 없어지진 않을 거라고 믿는다. 영화를 사랑하는, 지키길 노력하는, 이용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있는 이상 사라지지 않지 않을까. 이런 마음과 믿음을 반영하게 된 것 같다.
Q7> 한국 배우 중에 같이 작업하고 싶은 배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A) 개인적으로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한다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배우 중 참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배우가 있다. 바로, 심은경 배우이다. 존경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몇 분이 더 계시지만, 부끄러우니 그만두겠다.
Q8> 기자분들에게 마지막 한 마디.
A) 많은 분들이 모여 주셔서 매우 감사하다. 질문을 주시면 우리는 이야기하고, (기자분들은) 일로써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이 과정도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같이하는 시간들이 너무너무 좋았다. 남은 기간 동안에도 관객들과 함께 영화제를 즐기고 싶다.
이렇게 간략하게 미야케 쇼 감독의 '새벽의 모든'이란 작품에 관한 계기와 말하고 싶던 메세지를 살짝 들어 볼 수 있었습니다. '다양성'을 중점으로 인무들에 많은 공을 들인 영화라 느껴졌습니다. 그런 만큼 저는 여러 인물들이 말 그대로 눈에 밟히곤 했습니다. 또, 미야케 쇼 감독은 개막식에서 영화는 관객이 생각하는 것이니 각자의 생각과 이해를 마음껏 풀어주면 좋겠다고 말은 전했습니다. 경계선을 넘어 다양함을 마주하고, 분리되는 것이 아닌 이어짐으로, 분별이 아닌 스펙트럼의 속으로, 같이 존재함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의 삶 혹은 남의 삶에서 힘듦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어떻게 봐줘야 할지 고민된다면 '새벽의 모든'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저는 어쩌다 보니 영화를 두 번을 보게 되었는데요. 두 번째로 감상하였을 때,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감독님 말대로 두 번, 세 번, 많이 볼수록 좋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상영 정보>
05.01. 19:30 개막식 + 개막작: 새벽의 모든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05.02. 13:30 새벽의 모든 + 전주대담
(CGV 전주고사관 3관)
05.05. 10:30 새벽의 모든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영화제 기간>
5월 1일~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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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의 밤
낙원의 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방법
'너 혼자 있기 싫다며'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특별한 상황에 놓인 경우, 그 죽음의 의미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죽음'은 모두 시한부 삶으로 나타난다. 태구의 누나도 태구가 '이식'을 해주고 싶지만, 아버지가 다른 남매라서 가능하지 않았고, 그마져도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는다.
태구가 제주도에서 만난 재연도 시한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수술해도 살 수 있는 확률이 10%에 불과한 불치병을 앓고 있는 재연은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지금의 삶에 미련이 없다.
태구 역시 누나와 조카를 죽인 북성파 도회장을 살해하고 조직 두목인 양사장의 지시로 제주도로 몸을 숨기면서, 자신의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한다.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지만, 인물들 사이를 들여다보면 이 사건이 오래 전부터 시작된 두 조직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마지막 과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누가 승자인지, 패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느와르 장르를 보여주려 하지만,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농담이 마냥 웃기지만은 않는다.
태구가 찾아간 제주도의 쿠토는 한때 태구의 조직에서 최고 실력자였고, 상대 조직과의 전쟁에서 잔인하고 무서운 실력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의 가족들이 몰살당하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이 조카인 재연이다.
재연은 학생 때 부모와 동생이 살해당한 장면을 봤으며, 그 트라우마로 지금도 힘들어 한다. 재연은 삼촌인 쿠토를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민을 갖는 양가 감정으로 자신을 괴롭히는데, 이건 자식이 부모에게 갖는 감정과 거의 같다는 점에서, 삼촌 쿠토는 사실상 재연의 아버지다.
북성파의 마이사는 재연이 중학생 때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한때 마이사와 쿠토가 같은 조직에서 일했다는 것을 뜻하며, 어떤 사건으로 쿠토가 북성파 조직을 떠나 양사장과 손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쿠토는 제주도에서 농장을 하며 무기 밀매를 한다. 러시아에서 밀반입한 총기를 국내 폭력조직에 판매하는데, 이 총을 구입하는 조직은 서울의 조직과는 직접 연결되지 않는 제주도의 독자적 조직으로 보이지만, 나중에 보면 힘 있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어들어가서 북성파의 마이사 쪽으로 붙는다.
사건은 크게 서울과 제주도에서 발생한다. 태구가 서울에서 북성파 도회장을 살해하고 제주도로 내려올 때까지의 상황은 빠르게 진행된다. 거대 조직인 북성파는 양사장 조직을 찍어누르는 상태였고, 양사장은 조직 2인자인 태구가 도회장 쪽으로 빠져나갈 것을 몹시 걱정하고 있다. 이때 태구의 누나와 조카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양사장은 도회장이 한 짓이라고 말한다.
북성파 마이사는 양사장을 '양아치 새끼'로 부를 정도로 하찮게 여기는데, 그런 양사장에게 자기가 모시는 도회장이 당했다는 말을 듣고 이를 간다. 조직의 크기나 인물의 배포, 성격에서 양사장은 마이사의 발끝에도 닿지 못하는 '양아치'가 분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양사장은 경찰의 고위 간부에게 줄을 대고 있고, 폭력조직을 관리하는 경찰 간부 '박과장'은 마이사와 양사장을 불러 화해시킨다.
그 조건은 도회장과 북성파 조직원을 살해한 태구 하나를 없애는 것이다. 태구를 없애는 것은 마이사가 하되, 뒷처리는 양사장이 하는 것으로 세 사람은 합의한다. 이렇게 태구는 자신의 운명이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모른 채 제주도에 남아 있게 된다.
쿠토에게 무기를 사가던 지역 조직원들이 러시아 마피아와 직접 거래를 하겠다며 쿠토를 살해하자 재연과 태구가 이들을 전부 살해하고 농장을 떠난다. 이들은 이제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떠돌이가 되었는데, 평소 잘 알던 펜션하는 부부에게 펜션을 빌린다.
서울에서 양회장이 태구에게 전화해 자신도 쫓기는 몸이라 제주도로 내려오겠다고 말하고, 공항으로 마중나오라고 한다. 재연과 태구는 티격태격 하면서도 서로를 안쓰럽게 여긴다. 태구는 재연이 불치병으로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자신의 누나를 떠올린다. 그래서 재연이 맛있게 먹는 '물회'를 처음에는 먹지 못하지만, 재연과 함께 떠돌이가 되면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 '물회'를 맛있게 먹는다.
재연은 태구가 여느 깡패처럼 무식하고 멍청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태구의 눈빛에서 서늘하고 처연한 감정을 공감한다. 태구는 말하지 않았지만, 바로 얼마 전, 누나와 조카를 잃고, 삶의 희망이 사라진 태구의 눈빛은 제주의 바다만큼 짙고 푸르다.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애써 모른 척 한다. 그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두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사치라는 걸 알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심한 척 하는 두 사람의 마음은, 짧은 삶을 남겨둔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농장에서 재연을 인질로 잡은 마이사가 태구에게 전화해 '너 혼자만 죽으면 되잖아'라고 말한다. 태구는 재연과 조직의 동생 진성을 살리려고 마이사를 찾아간다. 그는 자기가 죽을 것임을 알고 있다. 다만, 재연 앞에서 죽게 된다는 것, 재연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간절하다. 재연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은 태구가 자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누나와 조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연은 이미 삼촌 쿠토로 인해 부모와 동생이 억울하게 살해당하지 않았던가.
마이사를 찾아 농장에 온 태구는 처음부터 죽도록 맞는다. 그런 태구에게 마이사는 누나와 조카를 죽인 놈이 누구인가를 말한다. 북성파 마이사는 태구를 죽이려고 태구의 누나와 조카를 죽일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도회장을 죽이려는 의도로 태구의 누나와 조카를 죽이고, 태구에게 도회장이 한 짓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태구의 두목 양사장이라고 말한다. 이때 옆에 있던 양사장도 그 말을 듣지만, 부인하지 않는 걸로 봐서 마이사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태구는 양사장을 죽이려 하지만, 마이사는 박과장과의 약속 때문에 양사장을 살리고 태구를 죽인다. 태구는 죽어가면서도 재연에게 농담을 건넨다. 두 사람만 아는 농담은 두 사람의 마음 깊은 곳으로 연결된다.
폭력조직에 몸담은 깡패 태구는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의외로 마음이 여리다. 재연과 만나면서 그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진다. 태구는 그동안 연애를 한 적이 없었을까. 아니, 마음을 울리는, 사랑의 감정으로 심장이 뛰는 그런 여성을 만난 적이 없었을까.
재연을 만나고 태구는 그런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시한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깨닫게 되고, 서로의 감정을 다치지 않도록 애쓴다. 재연도 평범한 여학생에서 권총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단단한 여성이 되지만, 그 과정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오히려 재연이 냉정한 킬러로의 면모를 보이는 것이 어땠을까. 그랬다면 마지막 장면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태구와 재연의 캐릭터는 잘 구축되었고, 배우 엄태구와 전여빈은 인물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느와르를 추구하고 있는 건 분명한데, 중간에 가끔 나오는 코믹한 대사는 느와르의 긴장을 풀고, 호흡을 쉬어갈 수 있는 여백이면서,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블랙코미디의 떠올리게 한다. 비극적 상황에서 오히려 농담을 할 수 있게 되는 부조리는 현실에서 종종 일어난다.
다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이 없는, 냉정하고 잔혹한 리얼리즘의 느와르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 잔혹하되 인물의 부조리를 드러낼 것인지는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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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같은사랑을했다 #일본영화 #로맨스영화
여기 누구보다 잘 맞는 한 커플이 있습니다
그렇게 설레는 시간도 잠시...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게 아쉬움만 커져가는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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