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또비됴2025-02-11 23:39:05
팬데믹 시대가 불러온 고딕 호러의 향취
<노스페라투> 리뷰
이건 운명이다! 고딕 호러 영화로,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기념비적 작품 F. 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와 <더 위치> <라이트하우스>의 로버트 에거스는 엘렌과 올록 백작처럼 언젠가 만날 운명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광팬으로 잘 알려진 감독은 원작의 으스스한 분위기와 고딕 호러의 요소를 재소환하면서도, 현시대에 맞는 새로운 변화보다는 고전미를 계승한다. 안전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로버트 에거스가 어떤 감독인가!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만 골라 골라 관객에게 잊지 못할 영상미를 전한다. 그리고 제목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염병’의 공포까지 소환한다.
어렸을 때부터 알 수 없는 악몽에 시달려온 엘렌(릴리 로즈 뎁). 토마스(니콜라스 홀트)와 결혼 후 조금은 나아진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토마스의 갑작스런 출장 소식은 잊고 지냈던 불안을 데려온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친구 하딩(애런 존슨) 부부에게 맡긴 그는 중요한 계약을 맺기 위해 타국에 있는 올록 백작(빌 스카스가드)을 찾아간다. 한편, 엘렌은 점점 환각 상태가 심해지고, 급기야 악몽을 다시 꾼다.
<노스페라투>를 색으로 표현하자면 회색, 잿빛이 가장 어울리듯 하다. 원작 자체가 흑백이었던 것을 소환하듯 영화는 높은 채도의 색 사용을 기피한다. 대부분의 호러 영화가 그렇듯 음울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이어 나가려는 방법으로서 보이지만, 감독은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지워나가는 것으로 그 영역을 확장한다. 당시 고딕 문학이 성행했을 때의 시대적 분위기는 철학, 과학 등의 경계가 모호하고 혼란스러웠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원작은 앞서 소개한 사회상을 반영했고, 감독은 이를 계승한다.
영화가 빛나는 장면은 이 모호한 경계를 공포로 치환하는 부분이다.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될 무렵임에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등장은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보이지 않는 것,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하는데, 감독은 올록 백작의 모습과 형상을 모호하게 보여준다. 빛과 어둠의 경계,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까지 기다려 서서히 조여오는 노스페라투의 존재, 점프스케어를 통한 공포는 관객으로 하여금 멋스럽게 다가와 섬뜩함을 안긴다.
이 클래식한 호러 영화가 시대착오적이지 않고 지금의 관객을 공포로 무장해제 시키는 건 다름 아닌 전염병이다. <노스페라투>란 제목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병을 옮기는 자’에서 따왔다. 이는 19세기 만연했던 흑사병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팬데믹을 상시기킨다. 극 중 올록 백작이 엘렌이 사는 도시에 뿌린 쥐 떼는 그 자체로 공포. 100년도 넘은 이 원작을 현시점에 소환한 것은 관객이 전염병의 공포를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악몽 같은 시간을 반강제적으로 체험하는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현실 공포와 맞닿게 된 것. 뱀파이어의 공포와 전염병의 공포를 동시에 전하는 1타 2피 격인 작품은 전자든 후자든 간에 한 번은 무서움을 느낀다.
두 가지 공포를 스크린에 재현한 영화는 원작의 에로티시즘도 놓치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시달리는 엘런, 그 빈구석을 채우고자 관에서 나와 먼 여정을 떠난 노스페라투의 기이한 앙상블은 그 자체로 묘한 섹슈얼리즘을 표방한다. 너무나 싫고 증오하지만. 원초적으로 올록 백작에게 끌리는 엘렌의 두 얼굴은 당시 결혼이란 제도 아래 여성의 억압된 성적 욕망과 탐험을 죄악시했던 사회적 현상을 대변하는데, 죽음의 화신으로서도 보이는 올록 백작과의 결합은 그 자체로 타나토스의 아름다움으로도 비춘다. 여튼 마지막 장면은 꼭 눈여겨 보기 바란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아래 배우들은 호연을 펼치는데, 특히 엘렌 역의 릴리 로즈 뎁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포제션>의 이자벨 아자니를 떠올리게 할 만큼 다양한 감정에 휩싸여 다층적인 불안을 입체적으로 연기하는 모습은 엄지척! 중후반부 토마스와 격렬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백미다.
<노스페라투>의 국내 관객은 2.4만명(2/11 기준)이다. 영화의 완성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 이는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관객들에게 소구 되지 못했다는 걸 증명한다. 숏츠 영상으로 도파민을 충족하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너무 클래식해서 그런것 인지, 아니면 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현실을 살고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이렇게 보내주기에는 뭔가 아쉽다. 참고로 <노스페라투>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 의상상, 분장상, 미술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 제공: 유니버셜픽쳐스
평점: 3.5 / 5.0
한줄평: 영화가 흡혈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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