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2-15 00:11:41
거침없이 돌아가는 혐오, 옹호, 풍자의 트라이앵글
영화 <서브스턴스> 리뷰
서브스턴스 (THE SUBSTANCE, 2024)
거침없이 돌아가는 혐오, 옹호, 풍자의 트라이앵글
개봉일 : 2024.12.11.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스릴러, 고어
러닝타임 : 141분
감독 : 코랄리 파르쟈
출연 : 데미 무어, 마가렛 퀄리, 데니스 퀘이드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보통 예리한 칼을 다룰 땐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다르다. <서브스턴스>는 여성을 향한 혐오(일부 남성의 눈으로 담아낸 불쾌한 장면들이 있음)와 옹호, 사회 풍자라는 세 개의 날카로운 칼을 손에 쥐고 정말 거침없이 휘둘러댄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심장을 자극하는 음악과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 화면, 귀를 지나 손끝까지 생생히 촉감을 전달하는 음향. 이제 끝인가 싶을 때 한걸음 더 나아가는 파격적인 흐름. ‘이만하면 뭘 말하는지 지나가는 강아지도 다 알아듣겠어!’싶은데.. 그럼에도 이 영화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 아니 탱크처럼 미친 듯이 밀고 나간다.
<서브스턴스>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한때 아카데미상을 2번이나 받고 명예의 거리에 입성할 만큼 사랑받는 대스타였다. 별 안에 박힌 ‘엘리자베스 스파클’이라는 이름. 엘리자베스는 별, 스타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은 빛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대중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그는 이제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만 간간이 카메라에 얼굴을 비치는 신세로 전락한다.
엘리자베스가 50살이 되던 날, 그는 쇼의 프로듀서 하비에게 해고 통보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 사고까지 당한다. 꽃다발, 케이크 하나 없이 가볍게 흩어지는 초라한 생일 축하로도 모자라 50살이 되었다는 이유로 해고까지 되다니. 최악의 생일이다. 엘리자베스는 환자복을 입은 채 눈물을 터트린다. 그때 그를 지켜보던 젊은 남성 간호사가 엘리자베스에게 인생을 바꿔줄 약물을 권유하고 엘리자베스는 그 약물을 통해 아름답고 젊은 여성 ‘수’의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
<서브스턴스>는 아름다움과 사랑이라는 목줄에 묶인 중년 여성 엘리자베스와 당연하게 그 목줄을 쥐고 있는 남성들. 그리고 그 남성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존재, 생생하고 아름다운 여성 수(SUE)의 기묘하고 질긴 관계성을 그린다. 엘리자베스는 남성에 의해 스타가 되었다가 남성에 의해 버림받고 수가 되어 다시 남성들의 위로 올라탄다. 엘리자베스는 언젠가는 그들에게 버림받고 다시 추락할 거란 걸, 자신이 망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 위험한 기회를 놓지 못한다.
영화는 서서히 깨지며 분열하는 엘리자베스의 삶을 속도감 있게 담아낸다. 카메라에 담긴 조각난 엘리자베스와 수의 모습은 매혹적이면서 역겹고 눈물겹다. 금이 가버린 별과 그 위로 쏟아지는 수많은 오물들. 나에겐 그것들을 자연히 받아들일 무던함이 모자라다.
새우처럼 탈피하는 엘리자베스와 새우를 게걸스레 먹는 하비
여성의 삶을 좀먹는 남성들
50살이 된 엘리자베스는 남성들이 원하는 사회적인 여성성을 모두 잃은 사람이다. 촬영을 마친 엘리자베스가 긴 복도를 따라 화장실로 향하는 장면, 엘리자베스가 들어가려던 여성 화장실에 사용 불가 안내문이 붙어있다. 그는 눈치를 보고 남성 화장실로 향한다. 사용 불가가 된 여성 화장실은 남성들의 눈엔 더 이상 소비할 여성성이 남아있지 않은 엘리자베스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남성 화장실, 엘리자베스는 충격적인 하비의 통화 내용을 듣는다. 여자는 어려야 해, 섹시해야 해, 25세부터 임신 가능성이 줄어든대, 새로운 애 구해! 온갖 더러운 말을 쏟아내는 하비의 뒤에서 엘리자베스는 숨죽인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엘리자베스는 여배우, 여성으로서의 인생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이제 그가 받을 수 있는 꽃다발은 프로그램에서 정리되었음을 알리는 꽃다발뿐이고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장난 아닌 중년의 남성이 됐다. 반짝반짝했던 명예의 거리 속 별 모양 타일은 금이 갔고 다시는 촬영장의 조명을 맛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늙어가는 것뿐인, 다시는 주목받지 못할 공허한 중년의 인생. 엘리자베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헛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USB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건다. 약물을 받아온 엘리자베스는 욕실에 서서 활성제를 주사한다. 이내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던 그는 몸을 구부린 채 움직임을 멈춘다. 이후 그의 척추를 따라 피부가 갈라지며 새로운 여성 수가 나타난다.
이는 새우의 탈피를 떠올리게 만든다. 새우는 성장하며 낡은 껍데기를 벗고 새 갑각으로 탈피하는데, 엘리자베스는 성장하는 새우처럼 낡은 중년 여성의 껍데기를 벗고 새로운 갑각인 젊은 여성의 몸으로 탈피한다.
엘리자베스는 수가 되어 거실에서 스트레칭을 한다. 엘리자베스의 오래된 액자가 보이고 몸을 숙였던 수의 상체가 올라오며 액자 위에 겹쳐진다. 이때 컴퓨터의 부팅 소리 같은 효과음이 삽입되며 엘리자베스의 인생이 새롭게 재부팅됐음을 알린다.
하지만 이 탈피를 마친 생생한 새우를 노리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극 중에 등장하는 모든 남성 캐릭터다. 대표적인 인물은 에어로빅쇼의 프로듀서 ‘하비’. 그는 엘리자베스에게 해고를 통보하는 자리에서 나이 든 여성에 대해 말하며 게걸스레 새우를 먹어치운다. 하비가 떠난 자리에 남은 수많은 새우 껍질들은 그가 남성으로서 얼마나 많은 여성의 삶을 뜯어먹었을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 외에도 하비는 자신의 여성 비서 이사벨라의 이름을 신디로 바꾸면서 이게 더 부르기 편하다고 우기고 아무렇지 않게 쇼에 출연했던 여성들의 액자를 싹 갈아치우면서 자신의 권력을 자랑한다.
처음엔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오디션에 찾아간 수는 스케줄 따위는 상관없이 너를 원한다는 둥.. 하비에게 온갖 칭송을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결국은 하비가 만들어준 ‘새해 전야쇼’라는 목표에 휘둘리며 무너져가는 몸에 다시 활성제를 주사한다.
하비 외에도 극 중엔 여러 추한 남성 캐릭터와 그들의 시선을 암시하는 연출이 나온다. 이름보다 신체, 나이를 먼저 물어보며 이상한 품평을 하는 쇼의 심사위원들, 스파클 씨인 줄 알았다며 문을 쾅쾅 두드리다가 수를 보자마자 추파를 던지는 이웃, 수에겐 친절하고 엘리자베스에겐 위협을 가하던 트로이(수가 파티에서 데려온 남성), 새해 전야쇼에서 헐벗은 여성 댄서들을 반기는 하비와 백발의 남성들. 그리고 수의 가슴과 엉덩이만을 찍으며 열심히 화각을 조정하는 펌프 잇 업 쇼의 카메라 렌즈 움직임은 수축과 확장을 반복하는 사람의 동공을, 수의 몸을 탐내는 남성들의 시선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나마 동창 ‘프레드’는 극 중에서 가장 친절한 남성으로 표현되긴 하지만 그가 처음 엘리자베스를 만났을 때 한 칭찬마저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구나.”라는 점에서 그의 친절이 진심으로 따뜻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수의 생생한 빛깔을 따라할 수 없었던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가 수를 놓지 못했던 이유
엘리자베스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다. 영화는 이 슬픈 욕망 중 일부인 ‘남성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을 매우 확대해 보여준다.
7일, 7일. 이 밸런스가 무너진 건 수가 첫 쇼를 녹화한 후 파티장에서 트로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수는 남성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몸 교체를 미룬다. 수의 남성을 향한 욕망은 ‘7일마다 교체 예외 없음’이라는 문장에서 ‘예외’라는 단어에 집중하게 만들고 그는 정해진 양 이상의 안정제를 뽑아낸다. 다시 안정을 찾고 돌아온 수의 엉덩이를 감싸는 트로이의 손길이 화면 가득 채운다. 그것은 악마의 손길처럼 압도적이고 위협적으로 느껴지며 그 손길 한 번의 대가는 고스란히 엘리자베스의 손가락으로 돌아온다.
깨어난 엘리자베스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리필을 받으러 창고로 향한다. 그리고 무언가에 쫓기며 들어간 카페에서 자신에게 약을 권한 젊은 간호사의 원래 몸을 만나면서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고민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오래된 물건’ 박스를 엎어 오래된 엘리자베스의 몸으로 받았던 프레드의 쪽지를 찾는다. 흙탕물로 오염된 너저분한 쪽지.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가슴에 폭 안으며 안도한다.
엘리자베스는 어떻게든 수가 아닌 엘리자베스가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는 갈라진 척추의 상처를 다시 봉합하듯이 척추를 따라 이어지는 원피스의 지퍼를 올리며 프레드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준비를 모두 마치고 수가 누워있는 욕실 벽을 닫고 나가려는 찰나, 생기 가득한 분홍빛 수의 입술이, 아름다운 수의 가슴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아름다운 분홍빛의 수의 입술과 새빨갛게 칠해진 텁텁해 보이는 엘리자베스의 입술. 분홍 바디 슈트 사이로 보이는 탄력 있는 수의 가슴과 빨간 원피스 아래 크게 눈길이 가지 않는 엘리자베스의 가슴. 엘리자베스는 다시 거울 앞에 서서 치크와 립글로스로 생기를 덧칠하고 스카프를 덮으며 가슴을 가린다. 과도한 화장으로 얼굴은 점점 부자연스러워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젊은이의 분홍빛을 아무리 따라 해보려 해도 진한 붉은빛을 가진 중년은 그 빛깔을 따라갈 재간이 없다.
엘리자베스는 생생한 여성이 되어 사랑받고 싶다. “They are going to love you. 모두가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수에게 배달된 꽃다발 속 한마디. 그는 종료 주사를 손에 들고도 그 한마디에 흔들려 수를 죽이지 못한다.
욕심이 늘어가며 분리되는 두 사람
척추에서 안정제를 뽑는 이유
7일, 7일. 이 밸런스가 깨지기 전 엘리자베스와 수는 한 사람 같았다. 처음 쇼 오디션을 보러 갈 땐 엘리자베스가 수의 몸으로 하비에게 복수를 하러 가는 느낌이었고, 수는 엘리자베스의 또 다른 슈트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밸런스가 깨지고 점점 욕심이 늘어갈수록 원형인 엘리자베스는 수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카페에서 만난 남성 간호사의 원형은 엘리자베스에게 묻는다. “그쪽도 시작했나요? 당신을 먹어치우는 것.”
앞서 엘리자베스-수의 변화를 새우의 탈피에 비유했었다. 이 탈피 이후 엘리자베스의 척추를 따라 남은 검은 흉터는 새우 등에 있는 검은 내장과 비슷해 보인다. 수는 자신의 원형이 되는 엘리자베스의 척추, 즉 그의 내장에 주사기를 꽂고 한도 끝도 없이 안정제를 뽑아낸다. 속부터 점점 망가지기 시작한 엘리자베스의 몸은 조금씩 썩고 굽어간다.
굽은 몸으로 TV를 보던 엘리자베스는 당장이라도 부서질듯한 다리를 겨우 펴고 하비가 준 퇴사 선물을 꺼내본다. “시간 보내기 딱 좋은 걸 샀어요.” 하비의 목소리와 함께 프랑스 요리책이 모습을 드러낸다. 엘리자베스는 이를 악물고 요리를 한다. 네 바람대로 빨리 시간을 보내고 남성들에게, 수에게 복수를 하러 가겠다는 듯이.
피순대, 칠면조, 송아지 뇌 조림… 의미심장한 요리들이 지나가고 TV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단 수의 모습이 나온다. 분노한 엘리자베스는 수의 말들을 하나하나 비난하며 거칠게 칠면조 내장을 손질한다. 이때 영화는 칠면조와 수의 신체 부위를 번갈아 보여주는 편집을 통해 엘리자베스의 분노를 살벌하게 표현한다. 엘리자베스가 당장이라도 수의 내장을 뜯어 죽일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한 분노
누군가에겐 케첩과 다르지 않을 엘리자베스의 피
하나였던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서히 분열되며 서로를 죽이기에 이른다. 엘리자베스와 수를 망친 건 그들을 ‘남성에게 사랑받는 여성’이라는 상품으로 길들인 남성들의 권력이지만 엘리자베스와 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이 사태의 책임을 남성이 아닌 서로에게 돌린다.
엘리자베스는 수가 자신의 시간과 생명을 뺏어가는 게 싫고 수는 굳어가는 엘리자베스가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죽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엘리자베스와 수는 서로를 타인처럼 지칭하며 비난한다. 이들의 갈등은 동일인의 내면의 갈등이 아닌 타인 간의 갈등, 세대 갈등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엘리자베스는 생명을 뺏어가는 수에게, 수는 종료 주사를 꽂으려 하는 엘리자베스에게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하나라는 충고를 잊고 서로를 죽이려 달려든다. 수는 엘리자베스를 죽이고 수도 엘리자베스가 죽은 후 서서히 망가진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수는 다시 한번 몸에 활성제를 투여해 엘리자베스와 수가 합쳐진 몬스트로 수로 부활한다. 그는 한껏 치장한 채 새해 전야쇼에 서지만 남성들은 그를 죽이려 한다. 이 세계에서 아름답지 않은 여성을 사랑해 줄 남성은 없다.
아름다웠던 여성의 절규와 피가 전방위로 뿌려진다. 그리고 더 이상 스튜디오에 설 수 없는, 스타로서의 생명을 다한 왕년의 대스타는 길거리에서 산산조각 나버린다. 마지막까지 남은 엘리자베스의 얼굴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별 타일 위에 안착한다. 그리고 별이 가득한 하늘에 닿지 못한 3그루의 나무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녹아내린다.
엘리자베스가 남긴 피는 영화의 초반부, 누군가 떨어트린 햄버거의 케첩과 비슷하게 표현되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청소차에 의해 닦인다. 이는 사랑받기 위해 모든 걸 다 바친 여배우의 역겹고 눈물겨운 마지막 흔적이지만 하비와 같은 누군가에겐 길바닥에 엎어진 빨간 케첩과 다를 바 없는 더러운 오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영화도 누군가에겐 새로운 충격이 누군가에겐 그저 뜻 모를 B급 호러 무비 정도로 평가될지도 모르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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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알 수 있었던 당신의 몸짓 그 모든 것
봄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영경(한예리)과 수환(김설진)이다. 친구의 결혼식, 외로운 영경의 눈에 누군가 들어온다. 과묵한 남자 수환. 둘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지만, 깊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이미 서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국어교사였던 영경, 사업에 실패한 수환. 두 사람의 마음에는 깊은 흉터가 있고, 몸은 이미 망가지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건 무엇일까? 사는 길은 있는 걸까? 거리의 나뭇잎과 꽃은 환하지만, 두 사람은 시들어간다. 더 시들기 전에,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죽음으로 향하듯
이 영화에 나오는 두 사람은 세상과 멀리 떨어져있다. 이 거리감을 표현하는 방식은 이 영화의 첫 시작부터 잘 드러난다. 기본적인 설정 중 하나는 두 사람이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영화 역시 새롭게 시작한다. 영경과 수환의 첫 만남. 운명처럼 만났다. 대화가 통하는 두 사람. 글쓴이가 어제 본 <슈퍼맨>처럼 대화가 통하는 남녀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 수많은 사람들이 다 검은 옷을 입고 엎드려있는 장면을 보여줄 뿐이다. 검은 옷을 입고 누워있다는 건 자연스럽게 죽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대화하는 남녀가 엎드려있는 군중 속에 있다. 결혼식이라는 행사에 고의적으로 생기를 없애버렸다. 심지어 결혼식에서도 죽음에 가까운 두 사람. 세상과의 거리감과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 사이들 중 가장 죽음에 가까운 남녀의 모습을 초현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후에 이어지는 장면. 두 사람이 포장마차에서 만난다. 서로의 사연을 공유하는 수환과 영경. 영경은 국어교사였다. 남편과 헤어진 영경. 영경에겐 아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친권을 뺐겼다. 마음에 흉이 졌다. 술로 빈자리를 채웠던 영경. 마흔셋의 이른 나이에 교직을 내려왔고 술로 일상을 보내야만 한다. 수환은 결혼에 실패했다. 사업에도 실패했다. 병이 생겼다.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는 수환. 온 몸이 아파 심지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육체는 살아있을지 몰라도 두 사람은 죽어있다. 여기서 수환이 내뱉는 대사는 이 영화의 플롯을 한 번에 요약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시에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기 전 각자가 쌓아온 사연을 함축한 대사이기도 하다. 죽음으로 향하다가 새롭게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죽음 사이에서 나누는 사랑이 남는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이 소설이었다는 점 역시 본작이 죽음에 관한 작품이라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원작 권여선의 <봄밤>은 두 주인공의 일대기가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가족들이 나온다. 영경의 자매들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심지어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이 12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있기도 하다. 이야기로서의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원작. 영화는 이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인물들의 사연은 캐릭터들의 대사로 짧게 묘사된다. 과거회상을 통해 극적으로 몰입되는 감정선도 배제한다. 거두절미하고 딱 죽음 사이의 인물만 보여준다. 여자는 여자의 삶을 살다가 죽어가고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그 둘이 서로를 만나 함께 죽어가고 있다. 영화는 그 이미지와 고유의 리듬감이 핵심인거지 이야기로 구구절절 설득할 생각 없다. 카메라도 동선을 최소화한 방식을 차용한다. 수환이 영경을 업을 때 업는 동작마다 짧게 잘라서 숏을 구성한다던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던가하지 않는다. 그냥 행위와 잔상만 남는다. 편집도 마찬가지. 위의 촬영방식과 연장선상으로 죄다 분절되어있다. 감정을 극적으로 몰아붙인다던가 하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던 듯 하다. 인물들은 움직이기만 하고 그 움직임만 영화가 보여준다. 죽어있지만 단 한가지만 살아있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영화라는 점을 영화가 표현하고 있다. 아마 감정이입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 하다. 어차피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가 동정이나 연민을 허락한다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처연함과 모순된다는 점에서 타당한 선택이다.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이 영화는 생동감을 보여주는 장면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며, 그 반복의 중심에는 김수영 시인의 시 ‘봄밤’이 있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영경이 수환에게 업혀가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며, 사랑이 깊이 자리잡힐 때까지 반복된다. 영경은 자주 이 시를 읊고, 수환은 그 곁에서 듣는다.
영화는 마치 1시간짜리 음악처럼 각기 다른 장면과 상황을 이 시의 반복으로 이어간다. 시의 각 구절이 달라지지만,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 오오 봄이여’와 같은 후렴은 매번 같아, 인물들의 변화 없는 삶을 암시하는 듯 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시를 읊음으로서 느껴지는 리듬감이다. ‘삶은 결코 죽은 동일성의 복제가 아니다. 매 순간 새로운 차이를 생성하는 생성의 운동’이라고 말한 들뢰즈처럼 이 시는 죽음을 형상화한 플롯에 생기를 부여한다. 그 사이 시의 이미지들은 영화의 배경이자 정서적 풍경이 되고,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않는 두 사람의 태도처럼, 이들의 사랑 또한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조용히 스며든다.
몸짓과 눈빛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적 요소는 몸짓이다. 몸짓은 죽어가는 삶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가장 단적인 증거다. 대사가 아닌 몸의 움직임, 그 느릿하고 무거운 동선 속에 인물들의 감정과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다. 영경이 수환에게 업히는 장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 병든 몸을 간신히 이끄는 수환의 걸음걸이. 잠시 떨어져있던 두 사람이 재회할 때. 영경의 외로움. 그 외로움을 못이겨 술을 들이키는 영경. 이 모든 몸의 궤적이 말보다 선명하게 인물의 상태를 보여준다. 간단하지만 명료한 상태. 이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지만, 서로 사랑하고 있다.
이 몸짓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선은 몸짓을 보여주는 단적인 연출방법 중 하나다. 표정을 보여주면서 감정적인 여운을 부각시키기도 했지만 이 시선은 타인의 존재를 기본적으로 전제했다는 점에서 이야기에 맞닿는다. 움직이는 몸이 있고 그 움직이는 몸을 바라보는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한다. 감정이 오고감에 따라 영향받는 캐릭터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선을 보여주는 카메라워킹은 결국 후반부로 갈수록 하나의 키워드로 이어진다. 사랑이 죽었다는 건 물리적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결국 사랑이 인간에게 남기는 유산은 상대가 나에게 선물했던 모든 몸짓이라는 점이다.
영화에 서린 밤
볼 때는 내내 무표정이지만 보고 나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아프다면서 왜 저렇게 술 마셔? 너무 거리두는 거 아닌가? 술 살 돈은 어디서 났대? 하지만 이런 무던함이 무색하게 극장을 나오고 나서는 길에 그 아팠던 상처가 나에게도 생겼다. 언제는 운명처럼 반해야만 사랑이었나. 나에게 기억에 남았던 건 사랑하던 것/사람들이 생생하게 펼치던 몸짓이었다. 그 몸짓이 나의 밤에 선명하게 남았다. 이 영화는 이 밤을 상기시키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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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낮에 경험하는 보험사기 스릴러
예상치 못한 반전이 많아서 희열을 느끼며 봤던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뻔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가 한 방을 날리는 작품이었고, 환한 낮에 경험하는 스릴러다 보니 스릴러를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는 나에게 제격이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시놉시스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간단한 부탁에서 시작된 간단하지 않은 사건. 멋진 커리어우먼, 매력적인 아내, 아름다운 엄마, 모든 걸 다 갖춘 완벽한 여자 ‘에밀리’가 어느 날 사라진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되는데요. 모든 것이 내 것이 됐다고 생각한 순간, 사라진 에밀 리가 돌아온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인플루언서를 보여주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속 스테파니는 브이로그 컨텐츠를 만드는 인플루언서로 나온다. 인플루언서가 나오는 작품을 보면 필자가 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는 인플루언서인 스테파니가 자신의 친구인 에밀리의 실종 사건을 파헤치는데 자신의 브이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SNS가 이렇게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못했고, 물론 부산경찰SNS가 사람들을 찾는데 많이 활용된다고는 익히 들었지만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브이로그로 찾고 경찰 관계자가 아닌 개인이 수사를 하는 모습에, SNS가 참 여러 가지고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파급력이 굉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귀신은 없는데 소름돋은 1인
영화 속 장면 중 가장 소름이 돋았던 것은 에밀리의 옷장을 다 치우고 스테파니의 옷들로 다 채워넣었는데 그 다음날 다시 애밀리의 옷들이 옷장 속에 다 채워져 있어서 진짜 주스 먹다가 뿜을 뻔했다. 극중 스테파니와 함께 소리를 질렀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에밀리의 흔적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서 깜짝깜짝 놀랐고, 갑자기 에밀 리가 쌍둥이라고 해서 작가... 천재인가? 하는 생각과 서로를 속고 속이는 계략 속에서 결국 스테파니가 에밀리를 경찰에 넘기는 장면들을 보며 진이 빠질 정도였다. 반전이 적재적소에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고 텐션감이 높아 다른 생각할 틈 없이 영화에 빠져서 볼 수 있었다.
스릴러 보험사기
그렇게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 결론적으로는 보험사기구나! 하는 생각에 허탈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험사기를 소재로 코미디나 범죄물은 만들어도 이렇게 스릴러물로 만들어진 경우는 별로 없어서 색달랐다. 그리고 영화 장면들이 대부분 대낮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환한 빛 속에서 공포감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조금 색다른 스릴러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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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세대 여배우 리즈시절 작품 모아보기
모태미녀 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성형도, 피부보정도 없었던 그때 그시절, 과한 화장 없이도 빛났던 1세대 여배우들 제가 한번 모아왔습니다. 3세대까지 내려왔지만 난 1세대가 최고다!!! 80~90년대생들을 다 1세대일꺼야..그럴거야 분명....반응 좋으면 2세대, 3세대까지 재빠르게 준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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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말죽거리의 봄, 현수(권상우)는 강남의 정문고로 전학온다. 정문고는 선생 폭력 외에도 학생들간 세력다툼으로 악명높은 문제학교. 이소룡 열혈팬이라는 이유로 금새 죽고 못사는 친구가 된 모범생 현수와 학교짱 우식(이정진). 하교길 버스안에서 올리비아 핫세를 꼭 닮은 은주(한가인)을 보고 동시에 반하는 현수와 우식. 하지만 은주는 다정한 현수보다 남자다운 우식에게 빠져든다. 한편, 학교짱 자리를 놓고 선도부장 종훈과 한 판 붙은 우식. 종훈은 비열한 방법으로 우식을 이기고, 우식은 그 길로 학교를 떠난다. 우식 없는 틈을 탄 종훈의 괴롭힘, 열반으로의 강등, 더해가는 선생들의 폭력, 게다가 은주마저 결국 우식을 택하자 현수의 분노는 폭발한다. 현수는 밤새 연습한 쌍절곤을 들고 학교 옥상으로 향하는데.
1999년 8월부터 당시 대학생이던 "견우74"란 ID를 쓴 네티즌이 나우누리 유머란에서 연재를 하며 엄청난 호평을 받았던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두 남녀 대학생의 엽기발랄한 러브 스토리.
인적이 드문 시골, 이름 모를 들꽃들이 소담하게 피어 있는 신작로 끝에 일본식 목재 가옥이 홀로 서 있다. 낮이면 피아노 소리가 들려 올 듯 아름다운 그 집은 그러나,어둠이 내리면 귀기 서린 음산함을 뿜기 시작한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서려 있는 이 집에서 어른도 아이도 아닌 아름다운 두자매. 수미.수연이, 아름답지만 신경이 예민한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된 그날. 그 가족의 괴담이 시작된다. 수연.수미 자매가 서울에서 오랜 요양을 마치고 돌아 오던 날. 새엄마 은주는 눈에 띄게 아이들을 반기지만, 자매는 그녀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함께 살게 된 첫날부터 집안에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가족들은 환영을 보거나 악몽에 시달린다. 수미는 죽은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 무현과 동생 수연을 손수 챙기려 들고, 생모를 똑 닮은 수연은 늘 겁에 질려 있다. 신경이 예민한 은주는 그런 두 자매와 번번히 다투게 되고, 아버지 무현은 그들의 불화를 그저 관망만 한다. 은주는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며 집안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가고, 동생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수미가 이에 맞서는 가운데, 집안 곳곳에서 괴이한 일들이 잇달아 벌어지기 시작하는 데.
세 번째 자살도 실패한 그 해 겨울, 모니카 고모의 손에 이끌려 교도소에 갔다. 내키진 않았지만, 정신병원에서 요양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독해 보이는 창백한 얼굴의 사형수. 내내 거칠고 불쾌하게 구는 저 녀석이나 잘못한 거 없이 쩔쩔 매는 고모나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부유하고 화려한 여자와 가난하고 불우했던 남자. 너무도 다르지만, 똑같이 살아있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하던 그들. 처음엔 삐딱하고 매몰찬 말들로 서로를 밀어내지만, 이내 서로가 닮았음을 알아챈다. 조금씩 경계를 풀고 서로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두 사람. 그들은 비로소,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진짜 이야기’를 꺼내놓게 된다. 상처로 상처를 위로하고 다독이면서 그들의 절망은 기적처럼 찬란한 행복감으로 바뀌어간다. 이제, 여자는 스스로 죽을 결심 따위는 할 수 없게 되고, 남자는 생애 처음 간절히 살고 싶어진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대 .도시락은 밥만 2개 싸주고, 매일 가는 집조차 찾지 못하고 헤매는 귀여운 아내 수진. 철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수진의 건망증은 점점 심각해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은 병원에서 수진은 자신의 뇌가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진은 철수에게 말한다.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대...' 결국 기억이 사라진 수진은 철수를 난생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기 시작하는데....
여름만 지나면 신부수업 완성!...그러나!! 순풍에 돛 단 듯 착착진행 중인 일등급 신학생 규식의 신부수업. 한달만 지나면 고대하던 신부서품이다. "성모님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요..." 감격도 잠시, 교황이 성축한 귀한 '성작'을 깨뜨리는 대형사고를 친 규식은 날라리 신학생 선달과 함께 치욕스런 '영성강화훈련'의 주인공이 된다! '하늘이 사랑한 남자'와 '하늘도 포기한 여자'의 예측불허 만남이 시작된다! 모범신학생 규식은 봉희의 무차별한 태클을 뚫고 무사히 신부가 될 수 있을까?
18세기 후반, 조선조 제22대 임금 정조 이산의 인생을 담은 드라마
원래 집주인이었던 지은이 사기를 당해 영재에게 자신이 살던 풀하우스를 내주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드라마
글로벌 그룹의 외아들인 송주는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쌓게 되고, 유학을 준비한다.
피아노에 관한 탁월한 능력을 지닌 송주는 유학가기 전, 놀이공원 야외 특설무대에서 정서에게 아름다운 세레나데를 연주한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앞날을 알지 못한 채 마냥 행복하게 천국 같은 시간을 보낸다.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면서...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를 타고 천국으로 올라가자는 재회의 꿈을 안고...
유학을 떠나기 전 서로의 영혼을 나누듯 목걸이를 교환하는 두 사람, 그러나 이것이 이들의 사랑을 갈라놓는 시발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모른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은 맺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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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울음의 세계
마트 주차장에서 시작된 에이미와 대니의 시비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간다. 도로 위 분노의 추격전은 상대방의 집과 사업장에 대한 소변 테러와 별점 테러로 이어지더니, 점차 집착에 가까운 복수로 변하고 만다. 에이미는 자수성가한 CEO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업과 가장의 역할로 지쳐있다. 계약은 뜻대로 되지 않고 자기가 산 큰 집을 누릴 시간조차 없다. 도급업자 대니 또한 가족 사업이 망한 후 다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은 실은 각자 일상에서 꾹꾹 누르며 안고 살던 시한폭탄을 우연한 기회로 서로에게 터뜨린 셈이다.
에이미와 대니는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에이미는 이민자로서 살아남아야 했던 부모님의 영향 아래 많은 것을 묻어두며 살아왔다. 최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그녀의 부모님이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에이미의 감정은 용인되지 않았고, 부정적인 경험은 오랜 시간 응어리로 남았다.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으므로 그녀는 늘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에이미는 여전히 자신의 본 모습이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남편과 딸 앞에서도 편히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대니 또한 한국계 이민자 2세로서 어릴 때 겪은 인종차별로 인해 부모님과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살아왔다. 그는 부모님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효자 장남인 동시에, 동생에게 인정받고 싶어 비열한 짓을 하는 형이다. 대니의 대사처럼 ’부모가 자식에게 트라우마를 배설한다‘면, 이들의 불행과 분노는 모두 부모 세대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에이미의 남편 조지는 다정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에이미의 감정에 무관심하다. 조지는 에이미의 분노 앞에서 뜬금없는 명상이나 감사 일기 따위를 권한다. 하지만 그것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에이미의 고통을 모르기 때문이다.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 안에서도 조지와 에이미의 위치는 다르다. 조지는 선망받는 일본인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치열할 필요 없는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에이미가 버는 돈으로 편하게 예술 활동을 한다. 에이미는 매사 태평한 조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돈 많은 사람들만 돈이 안 중요하고, 부처가 부처가 된 것은 왕자였기 때문"이라고.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에서 정희진은 고통에 관해 말한다. 그에 따르면 고통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으며, 비가시화 자체가 고통이다. 또한 자기 고통을 말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들어주는 이가 없고, 자신도 자기 고통을 모르기 때문인데 이는 모두 미국에서 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온 에이미와 대니에게 해당된다. <성난 사람들>의 1화 제목은 ‘새들은 노래하는 게 아니야 고통에 울부짖는 거지’이다. 가족과 제대로 된 소통을 못 하던 대니가 한인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대성통곡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자기 자신의 고통을 모르는 자가, 고통을 표현할 언어가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울부짖기’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속에 울음이 살지만’ 표현할 길 없던 이 고통은, 언어화됨으로써 치유되는 것처럼 보인다. 죽음의 위기 앞에 선 에이미와 대니는 속마음을 꺼내어 나누며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모를 경험을 한다. 고통을 말하고 들어주는 것은 비로소 긴 울부짖음과 분노를 끝내게 만들었다. 에이미와 조지의 관계와 에이미와 대니의 관계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비슷한 모양의 흉터를 드러낸 이들은 가족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 자신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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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이야기의 공명, 이야기로 묻고 삶으로 답하다
소통의 부재는 영혼의 부재
우리 집에는 네 명의 인간과 두 마리의 개가 함께 살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같은 종의 동물이라도 각각 전혀 다른 소통방식을 구사한다. 이를테면, ‘네가 먹고 있는 것을 줘.’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도 “달라”라고 부탁하는 인간이 있고, 손으로 뺏어 먹는 인간이 있다. 개는 엎드려서 침을 흘리거나 양손(앞발)을 사람에게 올리기도 한다. 각각의 종은 서로 같은 언어 체계를 공유하지만, 같은 소통방식을 구사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손이 먼저 나가는 인간은 앞발을 올리는 개와 가까운 소통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개도 인간도 종과 언어를 막론하고 저마다 소통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진정한 언어는 침묵일 수도 있고, 육체적 관계일 수도 있고, 운전 방식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어와 같은 언어 체계는 진정한 소통방식을 번역한 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언어를 뛰어넘어 소통하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진정한 소통방식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히로시마 연극제의 상주 예술가에게 배정되는 운전사 와타리 미사키(미우라 토코)는 말수가 적지만 차와 상대를 세심하게 배려한다. 그가 밟는 액셀과 브레이크 역시 하나의 소통 수단이다. 미사키는 이를 통해 차 안의 공기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미사키의 운전은 중력도, 운전하는 사람도 잊게 할 정도로 부드럽다. 이 무저항의 운전은 미사키의 고향 가미주니타키무라에 내리는 눈송이처럼 고요하다. 자신의 존재를 지우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 준다. 미사키가 배워야만 했던 소통방식은 그런 것이었다.
배우이자 연극 연출가인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자신의 진짜 마음을 숨기는 방식으로 소통한다. 그의 언어는 침묵 또는 회피라고 할 수 있다. 가후쿠와 드라마 각본가 오토(키리시마 레이카)는 이상적인 부부처럼 보인다. 블라디보스톡 연극제의 항공권 예약이 미뤄져 집으로 돌아간 가후쿠는 아내 오토의 외도를 목격하고 아무 말도 없이 뒤돌아 나간다. 가후쿠가 외면한 진실은 아내의 외도만이 아니다. 그들의 결혼 관계는 사실상 끝났고, 두 사람은 함께할 수 없다는 진실을 그는 끝끝내 마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토의 죽음으로 가후쿠는 자신의 마음과 진실이 마주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단 한 번의 식사 장면이 등장한다. 히로시마 연극제 담당자 윤수(진대연)가 마련한 저녁 식사 자리에는 유나(박유림), 가후쿠, 미사키 그리고 래브라도 리트리버 한 마리가 함께한다. 이 식사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대부분 번역된 말이다. 전혀 다른 언어들이 오가고 누군가의 입을 빌려 다시 변환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만, 영화의 어떤 장면보다도 따뜻하고, 안정적이며 소통과 공감이 느껴진다. 이 장면은 언어를 뛰어넘는 따뜻한 소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가 소통의 부재를 겪는 것은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영혼이라 부르는 그것이 언어 안에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와 텍스트의 관계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언어와 텍스트는 닭과 달걀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 가후쿠 부부는 4살 딸을 폐렴으로 잃은 후로 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잉태하기 시작한다. 오토의 음성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가후쿠의 번역을 거쳐 오토에게 전해진다. 다시 오토에게 돌아온 이야기의 잔상들은 각본, 즉 텍스트로 태어날 준비를 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이야기는 단순히 캐릭터와 플롯이 아니라 무의식과 욕망의 집합체와 같다. 오토의 음성과 그것을 양분 삼아 만들어진 이야기는 오토의 창조물이지만, 독립된 생명체처럼 타인에게 다른 모습으로 뿌리내리게 된다. 가후쿠에게 오토의 이야기는 진실이 드러나기 직전의 두려움과 불안의 기척을 품은 채 마무리되었지만, 다카츠키(오카다 마사키)에게 그 이야기는 불길한 고요함으로 가득 찬 세상의 모습이다.
각본으로 만들어진 텍스트는 결국 발화함으로써 완성된다. 그렇기에 오토는 자신의 이야기와 무의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완성해줄 누군가를 찾았고, 그가 바로 다카츠키였다. 가후쿠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며 감동하고, 오토의 열렬한 팬인 다카츠키는 ‘바냐’라는 인물에는 쉽게 이입하지 못한다. 다카츠키는 체호프의 ‘바냐’보다 오토의 이야기 속 칠성장어의 전생을 가진 소녀를 닮은 인물이다. 그는 체호프의 성실하며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세계보다 무의미한 기다림과 충동과 욕망의 세계에 끌린다. 불가해하고 불길한 무언가로 가득한 오토의 텍스트야말로 다카츠키의 삶을 담을 텍스트다. 그는 오토와 같은 언어, 즉 같은 소통 방식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이다. 다카츠키는 오토의 텍스트를 완성했으나 바냐가 되어 체호프의 텍스트를 완성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이와 반대로 이성적이며 통제적인 가후쿠는 오토의 텍스트를 똑바로 마주할 수 없다. 가후쿠가 오토에게서 듣는 것은 오직 이야기뿐이다. 자기 안의 진실을 마주하지 못한 가후쿠는 이야기 안의 오토를 외면한다. 가후쿠가 오토의 목소리로 듣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녹음된 ‘바냐 아저씨’의 대본이다. “대사를 입에 올리면 나 자신이 끌려 나와” 오토의 음성으로 울리는 체호프의 텍스트는 가후쿠에게 계속해서 진실보다 깊은 것을 묻는다. 가후쿠는 체호프와 오토가 자신에게 걸어오는 말을 애써 피하고 있다.
오토의 죽음으로부터 2년이 지난 후 히로시마 연극제에 초대된 가후쿠는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의 연출을 맡는다. 가후쿠의 연극은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그리고 한국 수어까지 서로 다른 언어가 한데 어우러진다. 이 특별한 공연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대본 리딩이다. 어떤 감정도 없이 아주 천천히 대본을 읽는 것이다. 배우들은 불완전한 언어를 뛰어넘어 소통하는 동시에 온몸으로 체호프의 텍스트를 체득해야 한다. 언뜻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한 이 과정을 가장 먼저 이해한 것은 수어를 사용하는 유나다. 자신의 언어가 타인에게 닿지 않는 것이 평범한 일인 그에게 보고 느끼며 공감함으로써 기능하는 연기는 몸에 잘 맞는 옷과 같다. “체호프의 글이 내 안에 들어와 움직이지 않던 몸을 움직이게 해 줘요” 체호프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유나와 소통하고 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지만, 영화의 영혼은 체호프의 텍스트에 담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는 ‘바냐’가 한때 누이동생의 남편이자 존경하는 학자였던 교수 세레브랴코프를 원망하고, 교수의 두 번째 부인 옐레나를 사모하게 되며 겪는 갈등을 다룬다. 체호프는 우리가 갈등과 절망, 적의와 증오를 넘어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고난과 슬픔보다 미래의 희망과 기쁨을 꿈꾼다. 체호프의 텍스트는 하마구치 류스케가 선택한 많은 인생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그릇과 같다.
대본 리딩이 주를 이루는 연극 연습과 오토의 목소리로 녹음된 ‘바냐 아저씨’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붉은색 사브 900을 오가며 영화는 체호프의 텍스트를 반복한다. 체호프의 텍스트는 대사뿐만 아니라 이야기로도 반복된다. 누이동생을 잃고, 존경하던 교수에게 실망을 거듭하며 바냐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다. 바냐가 교수를 위해 바쳤던 청춘은 이미 흘러갔고 옐레나에 대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소냐의 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것은 여전히 엉망이지만 바냐와 소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일을 계속한다. 딸과 아내를 잃은 상처를 마주하게 되는 가후쿠 뿐만 아니라 아이를 잃은 상실을 견뎌내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유나와 애정과 증오의 대상이었던 엄마를 잃은 미사키의 삶 역시 체호프 텍스트의 또 다른 변주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언어의 불완전함을 뛰어넘어 공명을 시도하는 이야기의 작동방식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는 일견 언어의 무용함을 말하는 듯 하나 각자의 언어와 이로 만들어진 텍스트는 호응하는 삶과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가깝다. 감독은 언어의 가면을 쓴 이야기를 단지 텍스트가 아닌 독립된 생명체처럼 마주 보게 한다. 그렇게 언어와 텍스트는 계속해서 삶과 사람에게 호응을 시도하고 영화는 그 순간을 담아낸다.
삶과 사람을 담는 그릇
가후쿠와 미사키가 지나온 터널처럼 우리가 지나온 궤적을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가 모두에게 필요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이처럼 불완전한 언어와 불가해한 텍스트에 사람과 삶을 담음으로써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는다. 언어와 텍스트가 사람과 삶을 만나는 순간 발생하는 에너지는 영화 안팎으로 퍼져나가 관객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카츠키와 가후쿠가 차의 뒷좌석에서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후 가후쿠는 처음으로 미사키의 옆에 앉는다. 차 안에서 흡연을 피하던 가후쿠는 미사키에게도 담배를 권한다. 차 위를 향해 뻗은 두 사람의 손에서 담배 연기는 망자를 위한 향처럼 피어오른다. “넌 엄마를 죽였고, 난 아내를 죽였어” 오래된 죽음을 놓지 못하고 있던 두 사람은 도망치고 미뤄왔던 애도를 시작한다. 카메라는 나란히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멀어져 익스트림 롱숏으로 이리저리 얽혀 있는 도로와 어찌 됐든 앞으로 나아가는 차들을 바라본다. 그 속에서 점처럼 작아진 사브 900도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 믿으면서.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세상에 가서 이야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겠지요. 그러면 우린 기쁨에 넘쳐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우린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소냐 역의 유나가 바냐 역의 가후쿠를 감싸 안고 수어로 전하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연극을 보는 듯한 롱숏으로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이를 응시하는 미사키의 곧은 정면 얼굴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체호프의 텍스트에 대답한다. 체호프의 텍스트와 유나의 언어 그리고 미사키의 삶이 만난 이 장면 하나로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다. 감독이 전작 <해피 아워>(2015)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무게를 기대며 중심을 맞추는 소통에 집중했다면,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사람과 텍스트가, 이야기와 이야기가 마주하는 소통에 집중한다.
가후쿠가 히로시마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시작했던 영화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미사키의 뒷모습을 보며 끝난다. 도망치듯 떠나왔던 가미주니타키무라를 뒤로 하고, 멈춰 설 수밖에 없었던 히로시마를 벗어나 새로운 땅에서 미사키는 앞으로 향한다. 사브 900을 타고 한국 부산의 도로를 달리는 미사키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드라이브를 즐긴다. 끝없이 이어진 도로처럼 삶은 계속 이어지고, 언제나 또 다른 슬픔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멈추지 않는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마침내 텍스트와 언어에 담긴 사람과 삶은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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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어찌 잘 마무리했습니다만
1년 반에 걸쳐 2부작으로 구성한 영화 '외계+인' 시리즈가 완결됐다. 비록 전반부에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며 갈지(之) 자 행보를 보였지만, 후반부에는 펼쳐놓았던 떡밥과 얼개들을 회수하며 비포장도로를 무사히 완주했다.
1부에서 혹평을 면치 못했던 '외계+인'은 최초 계획했던 것(2022년 연말 개봉)과 달리 장고 끝에 수차례 편집을 거쳐 2024년 새해가 되어서야 2부를 선보였다. 관객들이 1부를 선관람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개봉 텀이 너무 길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외계+인' 2부는 1부의 이야기를 축약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안(김태리)과 가드(김우빈), 썬더의 여정부터 삼각산 두 신선 흑설(염정아), 청운(조우진)이 무륵(류준열), 이안과 얽히는 과정, 외계 죄수 설계자(소지섭) 등 행방까지 숨 가쁘게 보여준다.
1부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를 간략 소개한 뒤, 2부를 통해 본격 얽히고설킨 캐릭터들 관계 및 서사들이 하나로 이어진다. 이때 최동훈 감독 작품의 시그니처인 각양각색의 선수들이 입담을 발휘하고 몸을 쓰고 합을 이루는 플레이들이 펼쳐진다. 1부보다 캐릭터 수가 늘어났고 세계관은 훨씬 커졌지만, 이를 적절한 밸런스로 풀어낸다.
그러면서 '전우치'를 연출하던 시절 선보였던 적절한 웃음과 경쾌한 액션이 부각된다. 덕분에 1391년과 2022년, 과거-현재를 쉴 새 없이 넘나들어도 페이스를 유지함과 동시에 관객들을 쉽게 이끌고 간다.
이와 함께 전편에서 웃음을 유발했던 일부 캐릭터들의 분량도 늘어났다. 1편에서 신스틸러 역할을 해냈던 흑설, 청운 콤비를 연기한 염정아, 조우진은 한 층 더 업그레이드된 입담과 도술로 활력을 더했고, 1부 말미에서 중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민개인 역의 이하늬 또한 웃음과 액션 모두 맛깔나게 소화하며 제 몫을 다 한다.
특히 2부에서 2022년으로 넘어가 함께 싸우는 후반부 48분은 '외계+인' 시리즈의 모든 것이 쏟아진다. 열차가 공중으로 탈선하고, 각종 도술이 난무하는 장면 속에서 인간-도사들이 한 팀이 되어 액션 케미를 펼치는 그림이 꽤나 볼 만하다. 전편의 실패를 거울삼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최동훈 감독의 노력이 느껴진다.
다만 '외계+인'이 2부작 동안 이끄는 동안, 정작 극의 중심축이 되어야 할 빌런 외계인의 존재감이 다양한 매력을 갖춘 주인공 및 서브 캐릭터들에 비해 약하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는 이유나 밀도 등이 부족하다 보니 주요 캐릭터들과 외계인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걸 '구경'하는 수준에 그친다.
'외계+인' 2부만 놓고 봤을 때는 걸작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난한 수준의 외계인 퇴치극으로 완성했다. 하지만 호불호 갈렸던 1부의 빌드업 방식이 관객들을 다가오게 만드는 데 장벽 역할을 했었기에 2부로 만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비슷한 성격을 지닌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내리막길 타고 있는 시점에 공개됐기에 관객 모으기는 더욱 어렵지 않을까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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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블쟁입니다!!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일단 손풀기로 아주 짧게 영상 하나를 올립니다.
영상 이제서야 올리는데 성의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곧 좋은 영상으로 다시 돌아올 테니 그냥 재미있게 영상 즐겨 주세요~
감사합니다!
2018. 00. 00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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