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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LAB2024-12-19 10:35:58

기대와 상상을 품은 마음에 피어난 기적

영화 <34번가의 기적>(1994) 리뷰

 

 

 

 

 

 

“당신은 산타를 몇 살까지 믿었나요?” 

 

산타는 연말이 다가오면 한 번씩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이다. 이 흐뭇한 주제는 의외로 열띤 대화를 만든다. 산타를 기다리며 지새우던 밤에 대한 기억, 선물을 주던 부모님과 눈이 마주쳤던 기억, 산타에게 선물을 받기 위해 했던 착한 일에 대한 기억 등 ‘산타’라는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존재가 자신에게 남긴 기억에 관해서 말이다. 

 

우리가 이토록 이 주제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타가 아이들의 마음에 가져다주는 기대와 설렘, 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다시 말해 아이의 상상력을 지키기 위한 선의, 순수함에 대한 애정, 돌아갈 수 없는 마음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 이것을 모든 사람이 공통되게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산타를 믿지 않게 된 어른이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산타의 존재를 말한다.

 

 

 

 

 

 

 


“산타는 여러 사람에게 의미 있는 상징이오!” 

 

크링글은 산타의 가치를 지키고 싶어 한다. 산타를 믿지 않는 워커에게 산타라는 존재, 즉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이기심과 증오를 누를 수 있는 인간 능력을 상징하는 인물이죠.” 

 

영화는 크링글의 입을 빌려 말했듯, 산타를 믿을 마음의 여유 한 줌 남기지 않은 사회는 이기심과 증오만 남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잔은 어른처럼 말하는 아이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이 없는, 아이 같지 않은 아이. 그녀는 퍼레이드의 썰매 위 손을 흔들고 있는 남자가 엄마의 선택으로 고용된 남자라는 것을 알고, 원하는 선물은 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엄마가 사준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느 날 나타난 진짜 산타 같은 크링글은 계속해서 수잔에게 원하는 것을 묻는다. 수잔은 크링글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조금의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산타는 그런 존재다. 사람들의 마음에 기대를 품게 하는. 그리고 기대는 사람들의 일상에 원하는 미래를 상상할 힘을 갖게 한다. 크리스마스에 트리 아래 놓인 선물을 기대하고, 이루어질 소원을 기대하는 일은 사람들의 마음에 피어나는 작은 여유이자, 기쁨일 것이다. 그렇기에 크링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들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었다. 돈과 경쟁, 그 외의 현실은 그에게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익스프레스 백화점 직원들은 본인이 진짜 산타라 주장하는 크링글을 믿지 않았다. 그저 연기할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미치광이 취급한다. 그러고는 산타를 보기 위해 모인 아이들에게 모인 아이들 앞에서 산타는 거짓이라 말하고, 폭행을 사주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크링글을 악으로 끌어내린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을 위한 마음은, 그가 보여준 미소를 사랑한 사람들을 위한 마음은 전혀 없다. 경쟁사를 끌어내리며 그를 발판 삼아 그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이기심과 증오, 경쟁과 대립뿐이다. 

 

 

 

 

 

 

 

 

믿는다는 것

 

 

크링글의 재판에서 브라이언은 “웃음을 자아내는 거짓을 선택할 것인지, 눈물을 자아내는 진실을 선택할 것인지.” 판사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크리스 크링글이 산타인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믿음’을 가진 마음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를 통해 유약하고 보잘것없던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힘은 바로 '상상력'이었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일은 비웃음당할 일이 아니다. 그 자체로 살아갈 동력을 주는 일이다. 영화 속 산타를 믿지 않는 어른들은 자신이 진짜 산타라고 말하는 크링글을 비웃고, 미쳤다고 말하고, 심지어는 정신 병동에 가둔다. 하지만 그를 믿는 어른들과 아이들은 달랐다. 그를 믿고, 믿음이 실현되는지 기대하는 것이 전부였으며, 그를 응원하며 ‘I BELIEVE’라는 슬로건을 내 걸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에게 드리운 표정은 매우 달랐다. 검사와, 익스프레스 사장의 얼굴에는 당장의 경쟁에서 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의 다정함을 증언하는 증인들, 응원하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본인의 믿음에 대한 기대와 생동감이 담겨 있었다.

 

냉소는 현실을 보게 만든다. 하지만 미래로 나아가게 만들지는 못한다. 돈과 힘이 정의인 세상은 윤택한 삶을 보장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비싼 옷을 입고 비싼 술을 사 먹을 수 있는 하루를. 하지만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24일 밤에 산타로부터 받을 선물을 기대하기 위해 1년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행위가 가치를 잃는다면, 우리의 삶에 어떤 선()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동전과 명함만 남는 세상에는 온기가 없다. 

 

하지만 믿는다는 것은 온기를 주는 행위다. 삶에서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혼자는 외로울 뿐이다. 부모들이 산타의 도움을 받았듯, 워커가 브라이언의 도움을 받았듯, 산타가 시민들의 도움을 받았듯, 타인을 믿는 다정함,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다정함은 선()이 다른 선()을 낳도록 도왔다.

 

 

 

 

 

 

믿음이 준 온기는 워커와 수잔에게도 역시 동일했다. 워커는 환상과 신화를 믿는 건 불행을 가져다줄 뿐이라며, 자신이 믿던 것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불행해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도 어렸을 때는 산타를 믿었다. 하지만 살면서 믿음을 주었던 것으로부터 상처를 입었기에 그녀는 믿음을 지웠다. 

 

수잔 역시 믿음을 지웠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상상력의 공간을 지웠다. 워커의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산물이었지만 아버지가 없는 상처를 안은 아이의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진짜 갖고 싶은 것은 가질 수 없는, 엄마가 주는 ‘가능성’ 안에서만 마음을 키우는 편이 더 이상의 상처를 만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믿었던 것들로부터 상처받고, 주변을 돌아볼 정신이 없던 워커는 크링글을 통해 잊었던 미소를 되찾는다.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어 믿고 싶은 것을 믿지 못하게 된 수잔 역시 어린아이의 마음을 되찾았다. 크링글이 그들의 얼어붙은 마음에 심은 기대의 씨앗이 믿음이라는 온기를 품고 자라난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게 뭐니?’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해 원하는 것을 생각할 틈을, 그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키워준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믿었던 것들은 우리를 배신한다. 하지만 그 사랑과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자명하다. 사랑하고 믿는 동안 나를 채우는 행복,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또 다른 것을 사랑하고 믿을 용기.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충만한 삶을 만들기에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영화의 엔딩. 수잔이 원했던 집과 워커와 브라이언이 함께하는 소원이 이뤄진 모습을 보며, 기적을 만드는 연금술은 사실 무척 간단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금의 상상력과 그것을 믿을 용기, 이 두 가지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상상한 미래 앞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ditor. Hannah

작성자 . CINE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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