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2-08-31 19:15:39
재밌으랬지, 우스우랬나?
영화 [토르;러브 앤 썬더]리뷰
이 글은 영화 [토르;러브 앤 썬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토르 시리즈는 마블에서도 조금 독특한 위치에 놓여있다.
어벤저스들 가운데 죽음에 대한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적어 그 어떤 위협에도 마지막 믿을 구석이 되어주는 동시에. 인간계의 문화에는 익숙하지 않아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는 토르의 모습이 그가 가진 지위(혹은 위치)에 비해 순수해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시리즈에서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거의 모든 것을 잃은 토르였지만. 라그나로크를 기점으로 해 밝고 키치 하면서도 조금 더 친근한 위치로 살짝 내려온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이번 영화 [토르;러브 앤 썬더]에서는 옛 연인이었던 제인이 마이티 토르로 등장하기도 하고, 아스가르드의 왕이 된 발키리와 아주 잠깐이지만 등장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까지 합세해 마블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마블 특유의 시원한 액션과 볼거리들로 앞다투어 개봉하는 큰 영화들 사이에서도 묠니르 만큼이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팔 하나 정도의 거리는 필요해 보인다.;재밌으랬지 우스우라고 한건 아닌데.
기존 토르 시리즈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무거움"에 있었다.
길고 장황한 대사. 북유럽 신화 속 신(God)을 모티브로 한 특이한 위치와 어두운 설정이 합쳐지면서 토르 시리즈의 시작은 그다지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또한 신이라는 위치만 빼면 햄릿을 연상시키기도 남을 정도의 기구한 운명을 겪는 토르를 보며. 히어로물에서 기대하는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또한 이 시리즈에는 약간의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벤저스라는 이름 하에 승승장구하는 다른 히어로들의 솔로 무비에 발맞추고자. 토르는 [라그나로크]에서 여태까지 가졌던 진중함을 약간 벗어던지는 작전을 선택했다. 눈에도 들지 못할 거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토르를 손에 닿을 만큼 친근하게 만든 전략은 성공적이었고. 소위 말하는 대박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어쩌면 거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된 듯하다.
가장 큰 적은 바로 직전에 거둔 승리라는 말을 이번 영화는 잊어버렸다. 승리의 늪에 빠진 채 나올 생각조차 없는 것이 눈에 빤히 보이고. 이로 인해 주인공 토르는 가볍다 못해 경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덕분에 영화 속 토르를 상징하는 모든 것이 가짜, 혹은 장난처럼 보인다. 위엄과 강인함을 대변해야 할 토르의 갑옷마저도. 잘 봐줘야 아동용 완구 코너에서 파는 제품처럼 조잡해 보인다.
재밌으라고 했지, 우스워지라고 한 적은 없는데. 영화는 그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웃음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제멋대로 흐른다. 영화 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팔 하나 정도의 거리는 있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지킬건 지켰어야 했다.;이건 신성 모독 아닌가?
그저 막무가내 사이코패스의 살육극이 아닌 이상. 마블 시리즈의 빌런이라면 응당 그에 해당하는 서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영화는 무려 크리스천 베일에게 메인 빌런인 고르 역을 주고서. 악역에게 당위성을 주는데 완벽히 실패하는 그 어려운 것을 해내고야 만다. 고르가 신에 대한 분노를 축적하는 모든 과정이 잘못되었다.
비록 신화 속에서 제우스가 여색에 집착했던 것은 사실이나. 위엄마저 없지는 않았다. 토르가 제우스에게 썬더 볼트를 날리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가히 신성 모독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또한 제우스를 비롯한 거의 모든 신들은 하찮다 못해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 충분하게 그려진다. 이토록 가볍고 엉망인 신(God)이라면. 없어지는 것이 맞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고르가 한 짓이 과연 “나쁜 짓”인가에 대한 의문도 슬며시 들기 시작한다.
고르가 신의 살육자라고 영화에서는 말하지만 정확하게 이로 인해 아스가르드를 포함한 다른 종족들에게 어떤 나쁜 일들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언급도 자세히 없다.
가장 나쁜 짓이라고 해봐야 아이들을 납치했다. 정도가 될 텐데. 신에 대한 분노를 어째서 아이들에게 풀었어야 했는지에 대한 연관 고리도 약하게 느껴진다.
마블 영화에서 이제는 그만큼 일회성 악역이 난립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히어로의 대중화. 이대로 괜찮은가.;선택받음과 받아들임에 대해서.
영웅의 탄생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영웅으로 선택받는가. 와 더불어 그 간택의 순간을 당사자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이다.
배트맨 시리즈, 혹은 (이미 마블에서는 너무 머나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아이언맨 시리즈를 보면 그 두 가지의 고뇌를 몇 편에 걸쳐 맺고 끊고 다시 연결하며 담아냈다.
선택의 과정에 있어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고결함과. 영웅이 기꺼이 짊어져야 하는 짐에 대한 부담감은 오로지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함께 경험한 관객들만이 알아챌 수 있는 은밀한 비밀 같은 것이다. 이 유대감 이야말로 마블을 지금껏 끌어온 가장 큰 힘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캡틴 아메리카가 엔드 게임에서 묠니르를 자유자재로 다루었을 때 의아해하지 않았다. 그는 토르 정도의 “고귀함”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림없었고.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가 가진 성품과 책임감을 관객들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제인의 손에 들린 묠니르는 더더욱 이질적이고 납득할 수 없다. 묠니르가 나를 선택했다.라는 말 한마디로 퉁치기엔 어벤저스가 쌓아올린 그 모든 것들은 비브라늄 만큼이나 견고하다.
그뿐인가. 아스가르드의 미래라는 말로 얼렁뚱땅 뭉뚱그려진 아이들에게 기꺼이 능력을 나눠주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겠으나. 토르가 여태 지켜온 묠니르로 대변되는 고귀함과 주특기가 사라진 이상. 과연 그의 존재 자체가 대체 불가능한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의 답은 그 누구에게 물어도 아니오. 일 것이다.
명품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느끼는 순간은. 학생들이 그것을 소지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전투(?)를 보면서. 이제는 Bring me Thanos를 외치며 묠니르를 내리꽂던 토르는 더 이상 볼 수 없음을 직감했다.
마치면서
앞서 제작된 모든 마블 Phase 4영화에서 좋지 않은 요소들을 모두 끌어다 놓았다. 다시 말하면 여태 나온 마블 영화를 통틀어 가장 좋지 않은 영화라 말해도 손색이 없는 영화였다.
가벼움이 지나치다 못해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토르를 보며 미소는커녕 실소도 나오지 않았다. 충성심 하나로 버텨온 많은 팬들에게도 이번 영화는 마블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면서도. 속이 많이 상한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이 글의 TMI]
코로나가 얼마나 길고 힘들었는지를 정말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관이다. 집에서 OTT 서비스로 영화를 볼 때나 하던 행동들을 그대로 가지고 영화관으로 나온 사람들이 많다. 덕분에 흔히 말하는 "빌런"들을 최근 한 달 넘게 영화관에 갈 때마다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만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지켜야 할 규범을 숙지하는 것을 우리는 사회화라고 부른다. 코로나로 수많은 것이 리셋되었다고 해도 사회화만큼은 리셋 리스트에서 빠져야만 한다.
당신의 무례함을 참아줄 의무 따위는 다른 사람들에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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