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2-25 22:06:13
낯선 오늘을 미망하는 시선
영화 <미망> 리뷰
미망 (Mimang, 2024)
낯선 오늘을 미망하는 시선
개봉일 : 2024.11.20.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 92분
감독 : 김태양
출연 : 이명하, 하성국, 박봉준, 백승진, 정수지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종로 길거리. 한 남자가 통화를 하며 길을 찾고 있다. 그는 자신이 서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가다 보면 알겠지”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그의 말대로 그가 아는 길이 나타난다.
영화 <미망>은 이 남자와 같은 태도로 정처 없이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변화하는 길과 시간 위를. 걸을수록 낯선 길은 익숙한 길로 변하고 멀리 떨어져 있던 시간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다. 참으로 멜랑꼴리한 경험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특히 도시, 서울은 정말 쉴 틈 없이 변화를 반복한다. 정신 차려보면 무언가 사라져 있고 익숙해졌다 싶으면 낯선 무언가가 생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것들이 과거로 빨려 들어가지만 나는 과거로 갈 수 없기에 그것들을 잊은 채 낯선 오늘을 살아간다.
가끔은 이 낯선 오늘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오늘 하루 난 뭘 했지? 오늘 하루가, 오늘 있었던 만남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지?. 그저 시곗바늘을 따라 똑같은 자리를 달린 기분. 이런 찜찜함을 안고 잠들었던 밤이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미망>은 나의 이러한 의구심과 찜찜함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똑같은 자리를 달린 게 아니라는걸, 지금의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나를 잡아줄 변치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미래의 나도 길을 잃지 않을 거라는 걸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든다.
과거 연인이었던 남자와 여자는 길 위에서 재회한다. 어딘가 낯설어진 길과 과거 연인의 모습. 이 길이 맞나, 지금 내가 말 걸려는 사람이 그 사람이 맞나. 두 사람은 반신반의 상태로 그 길을 걷지만 여전한 남자의 걸음걸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 추억 같은 그대로 남아있는 익숙한 것들을 찾아낸다.
두 사람이 다시 각자의 길을 가면서 잠깐의 만남은 다시 과거가 되고 그 위로 현재의 새로운 만남이 덧씌워지지만 남자는 한 가지를 깨닫는다. 오늘 나는 12시부터 12시. 같은 자리로 돌아온 시계가 아닌 어제와 다른 나로서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을.
남자와 여자는 과거를 미망(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 하며 낯선 길 위를 미망(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한다. 그러다 작은 익숙함과 재회하고 자신의 발자취를 미망(멀리 넓게 바라봄) 한다. 마지막 미망은 잠깐의 위로를 주고 그들은 다시 각자의 낯선 길로 발을 돌린다. 미망과 미망과 미망. 낯섦과 익숙함, 인연의 과거와 현재. 이 단어들의 조합은 우리의 인생을 표현하기에 한치 부족함이 없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길이 바뀌고 사랑이 지나가고 서울 극장이 사라지고 친구가 죽는다. 남자와 여자의 마음은 아직 과거에, 서울 극장에, 또 떠난 친구에게 머물고 있는데 변화는 너무 빠르게 일어난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길을 헤맨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
동상 하나에도 얽힌 이야기가 수십 개인데 인연에 얽힌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남자와 여자. 그리고 친구는 추억을 떠올리며 지나간 과거와 새로운 현재를 다시 체감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과정이 그렇게 서글프기만 한 건 아니란 거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에 담긴 추억과 감정들은 오래도록 남는다. 모든 게 변한 길거리의 구석, 좁은 골목 한 편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소우처럼 일부는 유실됐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오래된 영화 <미망인>의 필름처럼. 도시가 변하고 극장이 사라지고 남자가 화가가 되고 친구가 택시 운전사가 되고 또 여자가 엄마가 되어도 지난 추억과 감정은 마음속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있다.
여자의 새 연인은 매번 길을 헤맨다는 여자에게 ‘자세히 보면 변치 않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을 보고 길을 찾으면 된다’고 말한다. 언제나 길 한편을 지키며 보행자들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무언가처럼 변치 않은 추억과 인연은 우리의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맬 때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오늘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어 내 마음속 변치 않는 무언가로 남을지 모르니 실망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며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낯선 길 위에서 여자와 재회했던 남자는 새 연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12시에서 12시. 똑 같은 거 같아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네요.”.
낯설고 허탈한 오늘의 끝에서 <미망>을 만난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12시에서 12시를 지나온 건 어제와 같지만 오늘의 나는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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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쑤저우강', 환상과 현실에 얽힌 두 개의 사랑
영화 <쑤저우강(蘇州江)>은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의 흐름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두 개의 사랑 이야기를 매혹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쑤저우강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시인 소주(蘇州)에서 상하이의 황포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강입니다. 쑤저우강의 물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마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유영하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로우예(婁燁) 감독은 1965년 생으로 상하이가 고향입니다. 이 영화는 3O대 중반에 익숙한 장소에서 찍은 감독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비디오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고 들은 사실에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쓴듯합니다. 영화는 이름도 얼굴도 나오지 않는 비디오 촬영기사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화자(話者)의 시선은 관객이 무대 뒤를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그로 인해 영화는 어딘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감독은 영화를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영상을 구성했습니다. 핸드헬드 촬영으로 흔들리는 영상이 주는 불안정한 감각은 등장인물들의 혼란을 관객이 느끼게 하며, 영화 전체에 미묘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해 내는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들을 영화에 빠져들게 합니다.
여주인공 저우쉰은 1인 2역(메이메이와 무단 역)을 맡아 두 개의 사랑 이야기를 서로 다른 캐릭터로 풀어냅니다. 각기 다른 두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두 사람의 공통된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두 사랑 이야기가 결국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1인 2역의 여주인공을 보며 두 사람이 결국 같은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화자(話者)는 우리의 생각을 깹니다.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은) 하나도 안 닮았다."라고 말하며 상황을 모호하게 남겨둡니다.
남자 주인공 자홍성(마다 역)은 쑤저우강의 탁류처럼 혼란스러운 청춘의 내면을 절제된 연기로 담아냅니다. 말보다 눈빛과 몸짓으로 많은 것을 전달하며, 이루지 못한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씨네랩의 영화 크리에이터로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좋은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시사회 이후 정성일 평론가가 진행한 라이브러리 톡도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영화는 아날로그 필름 원본을 디지털로 변환해 24년 만에 고품질 영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스크린을 통해 쑤저우강의 풍경과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를 경험하면 감동은 배가될 것입니다. 핸드헬드 촬영으로 전달되는 불안하면서도 환상적인 감정을 극장에서 직접 느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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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니의 존재와 질문, <3000년의 기다림>
세상 모든 이야기에 통달한 서사학자 알리테아(틸다 스윈튼)가 우연히 소원을 이뤄주는 정령 지니(이드리스 엘바)를 깨워낸다. 그녀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세 번.
영화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때때로 매우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내용을 전할 때 이야기를 통해 전달한다. 영화 또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야기가 내용 전달의 수단이 되기 위해서 서술자는 익숙한 내용을 재밌게 전달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기도 한다.
<3000년의 기다림>은 알리테아와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통해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지니는 표면적으로 알리테아의 ‘소원’을 묻지만 이를 통해 상대방의 ‘갈망'을 알아낼 수 있다. 반대로 알리테아는 지니의 이야기들을 통해 지니의 갈망을 느낀다. 알리테아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갈망을 포기했던 지니의 이야기에 사랑과 갈망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또한 사랑으로 자신의 갈망 덮었던 알리테아는 사랑으로 인해 상대방의 갈망을 지켜주는 선택을 한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스웨덴의 공포영화 <렛 미 인>이 떠오른다. 알리테아는 마법과 같이 정령 지니를 만나게 되지만 이는 판타지 영화가 아니라 상상력이 풍부한 알리테아가 들려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알리테아는 지니를 처음 만나고 자신의 상상친구였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줬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세상 모든 이야기에 통달했지만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알리테아에게 지니가 들려주는 3000년의 이야기는 이미 알리테아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의 재구성 또는 재기억이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결국 알리테아는 지니와의 대담을 통해 자신의 사랑, 갈망, 삶, 죽음 그리고 시간에 대한 질문을 하고 답을 알아가는 과정을 가졌다고도 해석해볼 수 있다.
세 가지 소원, 예전부터 많이 들어온 소재이지만 영화를 보기 전 떠올렸던 세 가지 소원과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세 가지 소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이 영화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오랜만에 잔뜩 기대를 했고 그 기대에 한 치의 부족함 없이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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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 마니아들도 보긴 할까?
이번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연출을 맡은 "페이튼 리드"는 "MCU"로서는 처음으로 3부작을 완성시킨 감독이 되었다. - 물론, 이번 5월에 개봉하는 <가오갤>의 "제임스 건"도 있지만...
이만해도, 그의 능력을 알 수 있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바뀌지 않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있다.
근데, 이를 온전하게 그의 영화로만 볼 수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1편은 "에드가 라이트"의 각본이었고 감독 본인이 하차를 요구해 "떔빵(?)"으로 들어갔으며, 무엇보다 "세계관(MCU)"에 맞춰졌으니 말이다.양자 영역으로 신호를 보내는 기계를 발명한 "스콧"의 딸 "캐시"의 행동에 "재닛"은 '얼른 기계를 꺼라'라고 말하지만, 이내 사고가 일어난다.
그렇게, 양자 영역으로 빨려 들어간 이들은 이곳을 빠져나가려 하나 이곳을 포함해 향후 지구에 위험을 줄 악당 정복자 "캉"을 만나는데...1. 따라 하지 말라고 했잖아!
흥행으로만 따져본다면, <앤트맨>시리즈는 "MCU" 영화들 가운데 저조한 측면에 속한다. - 제목처럼 "개미 똥구멍"만 한...
그럼에도, 개성만큼은 뚜렷했던 작품이다.
"배스킨라빈스는 항상 알아내지"라는 대사를 시작으로 "루이스"의 떠버리 장면, "커트 - 데이브"까지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은 계속해서 이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3편에서 이들의 부재 소식으로 <앤트맨>도 "세계관"에 맞춰야 하는 눈치를 본다는 게 가장 안타까운 소식이었다.결국,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평범한 블록버스터로 전락한다.
어느 블로거의 말마따나 <스타워즈> 시리즈 혹은 같은 회사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스페이스 오페라"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나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이는 앞선 작품들이 지우기엔 이번 <퀀텀매니아>만의 장면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무엇보다 '이게, 양자역학과 무슨 연관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이런 모호함은 캐릭터들 소개에서도 이어지는데, 이번 이야기의 빌미는 만드는 "캐시"는 아버지 "스캇"과 갈등을 빚어내는 인물이다.
도움을 주는 데에 선과 악을 바라보는 기준을 얇게만 설명하다 보니 캐릭터의 매력을 느끼기에도 앞서 관계가 빠르게 해결된다.
이런 문제는 메인 빌런 "캉"에게도 해당되는데, 드라마 <로키>에서 소개했다고 하나 해당 작품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는 "복수"와 "탈출"만을 반복할 뿐이다. - 설정상. 멀티버스마다 성격이 다른데, 이마저도 "쿠키 영상"과 드라마 <로키>에서 소개된다!2. 예고된 실패였을까?
이런 번잡스러운 부분은 더더욱 이전의 빌런 "타노스"와 비교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지구를 비롯한 온 우주의 절반에 대한 철학을 내세웠던 "타노스"의 모습은 영화에만 국한되었기에 "드라마"까지 확장된 현재의 "MCU"를 더 곱씹게 한다.
물론, 120분 내외의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최근에 나온 영화들 가운데 적은 분량에 속한다.
하나 정해진 "MCU"의 노선을 생각하면 자신만의 개성도 뽐낼 수도 없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근데, 이런 문제들을 건너뛰고 의문스러운 점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렇게, 몇 세기나 진보된 기술에도 "앤트맨"의 줄었다 늘었다 하는 "핌입자"는 만들지 못한 점(옆에 그 녀석도 있는데...)과 "타노스" 다음으로 지목되는 강한 캐릭터의 마무리가 영 좋지 않다.어찌 보면, 계속해 지적되는 설명의 부족은 "추리 소설"을 좀 읽어본 독자들에겐 익숙하지 않을까?
대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데에 "치정 - 복수 - 돈"까지 이 3개의 조건이 많이 언급되는 앞서 언급한 "치정 - 복수"는 단어 자체로 감정인데 "돈"은 감정이 아니다.
결국, 그 안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돈을 벌어야 하는 영화가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 - 예정된 실망이다!· tmi. 1 - 1편과 2편에서 "커트"를 맡았던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은 이번 양자 영역에서 나오는 "베브"로 출연하며, 시리즈 개근을 챙겼다! - 다음에는 사람으로 나와줘...
· tmi. 2 - 쿠키 영상은 2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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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자식의 친구를 죽인 살인자를 면회하는 이유
범죄자의 인권은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까?
중범죄자도 경범죄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할까?
흉악범은 교화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을 위협하는 강력 범죄가 나에게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오늘날의 범죄 사회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수시로 머릿속에 차오릅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제 대답은 항상 변덕스럽습니다. 범죄자도 사람이므로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우리 가족을 해친 사람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있다고 상상하면 절로 피가 거꾸로 솟죠.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은 이처럼 선악, 가해자와 피해자, 인권에 관한 고민을 다시 한번 촉발하는 영화였습니다.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
Kaneko′s Commissary
Summary
폭력으로 수감된 '가네코'는 면회 온 아내에도 화부터 내는 남자였다. 개차반이던 그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내와 아이, 삼촌이라는 가족의 힘이었다. '가네코'는 과거 자신처럼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영치물품을 넣어주고 대신 면회를 해주는 영치품 매점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평화는 아들의 친구인 어린 여자아이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Cast
감독: 후루카와 고
출연: 마루야마 류헤이, 마키 요코, 미우라 키라
'옥바라지'도 대행이 됩니다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은 구치소와 교도소에 영치품을 대신 전해주거나 면회를 대행해 주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전과자였던 '신지'의 과거와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영치품점의 역할을 소개합니다.
영치품점은 이른바 옥바라지 대행 서비스입니다. 정부 시설의 특성상, 구치소와 교도소는 주민센터와 같은 평일 낮 시간에만 방문객을 받는데요. 아무래도 평일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방문이 쉽지 않은 데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우려해 일부러 발길을 끊기도 합니다. 영치품점은 그 빈자리를 메꾸며 옥바라지를 대행해 주는 서비스지요. 취재 과정에서 영치품점의 존재를 알게 된 후루카와 고 감독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영치품점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폭행 전과자였지만,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에 힘입어 새 삶을 살고 있는 '신지'는 삼촌이 운영하던 영치품점을 물려받아 수감자와 가족들을 잇고 있습니다. 영치품과 면회는 수감자들의 권리이며, 이를 대행하는 자신의 업을 부끄러워하지 않죠.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아들 '카즈마'의 동네 친구 '카린'이 묻지 마 살인으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남일로만 여겼던 강력 범죄가 내 일이 된 동네 사람들은 '가네코' 가족이 범죄자를 돕는 일을 한다며 거리를 두기 시작하죠. '신지'는 그 과정에서 무력함과 회의에 사로잡힙니다. 그렇게 혼란을 겪던 그에게 '카린'을 살해한 범인의 어머니가 영치품과 면회를 대행해 달라며 찾아오면서 ‘신지’는 또 다른 괴로움과 직면합니다.
영화는 사회가 규정하는 선악을 모두 경험한 '신지'라는 인물을 통해 선을 망치는 악과 악을 품는 선에 관한 통찰을 전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선을 일순간에 파괴해 버리는 것이 악이지만, 그러한 악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바로 선이지요. 선과 악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철옹성 같은 벽이 세워져 있는 것 같더라도, 이 세상에 절대불변의 가치란 없고요. 관객은 교정 시설을 오가는 '신지'의 혼란을 스크린 너머로 체험하며, 선악에 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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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허무는 것, 결국 가족
<가네코의 영치품 매점>에는 선과 악을 오가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우선 '신지'가 그렇습니다. 그는 동료를 폭행해 징역 3년을 받고, 감옥에서 난동을 부려 1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출소 이후에는 이전의 삶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베푸는 선한 사람이 되었죠.
엄마를 살해한 야쿠자를 면회하기 위해 매일 교정 시설을 찾는 고등학생 '사치'도 그렇습니다. '사치'의 이야기는 '신지'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서브플롯인데요. 초반에는 '사치'가 그저 강도에 의해 엄마를 잃은 불쌍한 아이로 보였지만, 실은 엄마의 강요로 성매매에 시달리는 소녀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야쿠자는 성매매를 위해 그 집에 들렀다가,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어린 '사치'를 구하기 위해 엄마를 공격했던 것이었죠. 그 과정에서 엄마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린 사람은 바로 '사치'였습니다. 선이었다가도 악이 되고, 악이었다가도 선이 되는 인물들. 이처럼 영화 속 선과 악은 손바닥 뒤집듯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생각해 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선과 악을 오가며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를 선의 방향으로, 또는 악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지'가 다시 설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미와코'의 단단한 지지와 아들 ‘카즈마’를 향한 부성애 덕분이었습니다. 살인이라는 분명한 악의 편에 서 있던 '사치'와 야쿠자는 어떨까요? 가족에게 이용당한 '사치'와 출소 후 가족 같았던 조직의 해체를 맞닥뜨린 야쿠자는 혈혈단신인 서로를 가족으로 인지하면서 서서히 악에서 벗어납니다. 이렇듯 영치품점을 소재로 벌어지는 여러 선과 악의 이야기 아래에는 따스한 가족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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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허무는 가족의 힘을 말하는 영화지만, 메시지를 소구하는 과정에서 인물의 감정선을 다소 과장하거나 불필요한 이야기들을 삽입해 영화의 탄력을 저해했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식 신파가 무릇 그렇듯이 어쩐지 다정함이 넘쳐, 다 보고 나면 괜히 마음이 포근해지는 작품이랍니다.
극 중 '카린'을 살해한 범인이 늘어놓은 궤변이 떠오릅니다. 100마리 개미를 모아 놓으면 그중 20%는 일하지 않고 농땡이를 피우는데, 일하던 80마리를 따로 떼어 놓으면 또 그중 20%가 일하지 않다는 실험을 언급하며 성악설을 주장하는 장면이었죠. 영화를 곱씹어 보니, 이처럼 쉽게 뒤바뀌는 선악 속에서도 언제나 80%의 보편적인 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외려 희망적으로 느껴집니다. 일하지 않는 20마리를 따로 떼어놓으면 그중 80%는 다시 선해진다는 사실까지도 말입니다.
One-Liner
누구나 흐릿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악으로도, 다시 선으로도.
Schedule in BIFF
2024.10.03(목) 영화의전당 소극장 19:30
2024.10.04(금) CGV센텀시티 3관 19:30
2024.10.10(목) CGV센텀시티 7관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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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 The Pianaist
/ 감상 /
_ 사실 저번에 본 피아니스트보다 이 피아니스트를 더 보고 싶어했었는데...
전쟁의 참상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인 것 같다.
내가 여태 본 전쟁영화는 대부분 군인들의 전쟁터에서의 삶을 보여준다거나,
수용소에서의 삶을 보여주었는데,
이 영화는 실제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갔던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성을 극대화 시키고 보는이로 하여금 공감을 잘 이끌어 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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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슈필만의 인생의 버팀목이다.
위기의 순간마다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그가 낙담하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질때면 피아노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더이상 가라앉지 못하게 지탱해준다.
그리고, 그의 목숨을 실제로 살려주었다.
후반부에서 독일장교를 만났을 때, 만약 슈필만의 직업이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면 어떘을까?
과연 슈필만을 살려주었을까 싶다.
피아노의 선율에 녹아들어간 슈필만의 감정이 장교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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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었던 씬은 앞에서 말한 슈필만이 장교앞에서 연주했을때이다.
슈필만이 그렇게 치고 싶어했던 피아노..
그는 이게 자신의 마지막 연주라 생각하고 모든 감정을 담아 연주하였던 것 같다.
그 장면을 보고 전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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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젠펠트가 결국 슈필만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게 된다.
난 호젠펠트의 마지막에 대하여 그리 안타깝지 않다.
그가 아무리 슈필만을 도와주었어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집단의 우두머리 급이었으니
그거대로 대가를 치르는게 맞다고 본다.
그를 인정하는건 그 이후에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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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연기에 박수를..
난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그 특유의 우울하고 슬픈 연기가 너무 좋다.
아련하고 우울한 연기 원탑 에이드리언 브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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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쓸 필요가 없었던 단어 비상선언
헐. 눈 뜨니 8월이다. '그래도 올해는 시간이 좀 빨리 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런 건 좀 너무하다. 영화 몇 편 보니까 전반기가 끝났다. 팬데믹 초반부, 기대작들의 보도자료를 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미 개봉됐다. 물론 현재 사회복무요원인 나. 올해가 최대한 빠르게 후다닥 가는 것은 나를 위해 무조건 일어나야 할 일이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니까 시간이 야속해진다. 나 진짜 20대 후반이 되는 거야? 20대 후반은 싫은데 다음 즐거운 일은 빨리 오면 좋겠다. 비단 이런 내가 나한테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근데 시간은 앞으로만 달려간다. 우리는 점점 나이를 먹고 있다.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뭐 방법이 있어? 그냥 맞이하는 수밖에! 각자의 즐거움을 찾아 좇는 게 현명하게 나이를 드는 방법이 아닐까? 그렇게 쏜살같이 달려간 끝에 어느새 2022년 8월이다. 여름 빅 4 영화 중 세 번째 차례가 왔다. 주인공은 <비상선언>이다. 작년 12월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 연기가 되었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마치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그 시간이 벌써 지나갔다. 전도연, 송강호, 이병헌이라는 큰 이름에 많은 분들이 기대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근데 2년을 돌아 개봉한 만큼 영화가 숙성되지는 않았던 느낌이다. 앞으로의 운행이 성공적으로 이륙할지 비틀거리다 불시착할지는 봐야 알 것 같다. 2020년의 인천 국제공항으로 가서 이 비행기에 탑승해보자.
물러설 곳 없는
사람 많은 바글바글한 공항. 여러 사람들이 보인다. 몇 명은 여행 준비에 들떴고 누구는 이별하느라 슬플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을 공항이지만 비행기 부기장 현수는 뭔가 이상한 것을 본 것 같다. 아닐 거야. 다시 비행기로 가는 현수. 현수를 비춰주던 카메라는 의문의 승객 진석에게로 옮겨간다. 진석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다. 인천 국제공항 항공사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진석. 금세 직원과 대화하기 시작한다. "여기, 사람이 가장 많이 타는 비행기가 뭐예요?"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답을 거부하는 항공사 직원. "이야기 못 할 이유가 없지 않냐"라고 말했지만 답을 끝끝내 거부한다. 진석은 언짢은 표정으로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뒤로 물러서다 못해 한마디 덧붙인다.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요. 걸레 같은 게" 진석은 하와이행 티켓을 끊고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에서 진석은 무언가 하고 있다. 겨드랑이를 살짝 열어서 무슨 통을 넣고 있는 진석. 사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인물이 있었다. 수민이었다. 진석은 탑승수속 대기줄에서 수민이를 발견한다. 말을 거는 진석. 수민이 옆에는 수민의 아버지 재혁이 있었다. 이혼했어요? 왜 엄마는 없어요? 불필요하게 꼬치꼬치 캐묻는 진석에게 '이상한 사람이네’ 대응하고 비행기에 탑승한다. 탑승한 지 머지않아 화장실로 들어가는 진석. 진석은 화장실의 천장에 어떤 가루를 뿌려놓고 혼자 나온다. 이륙한 비행기. 비행기 안, 다들 즐거워 보인다. 교복을 입고 비행기를 탄 학생들도 보인다. 휴가를 앞둔 경찰 인호의 아내도 보이는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일어난다. 어떤 아저씨가 눈에 피를 뿜으며 끔찍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이때 이 아저씨는 비행기 내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온 게 전부였다. 끔찍한 살인 수법에 경악하는 승객들. 금세 이 범인의 진범인 진석이 승객들 앞으로 나서며 '이 비행기에 탄 모든 이가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도망칠 곳 없다.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고 한다. 이 전대미문한 전염병과 함께 비행기를 탄 승객들. 이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땅에선 경찰 인호가, 하늘에선 승격 재혁이 최선을 다한다.
압도적인 첫 시퀀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큰 장점은 초반부라고 말할 수 있다. 진석이 항공사 직원에게 욕설을 하는 전반부. 이때 카메라 잡는 구도는 뭔가 몰래 훔쳐보는 느낌이다. 이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진석은 우연히 만난 악 같은 존재다. 이 사람의 범죄 동기는 초반부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정석적으로 빌런이 누구인지 딱 보여주기엔 뭔가 엇나간 진석. 진석의 첫 등장부터 시작해 관객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생각해야 한다. 또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잘생기고 선한 만큼 뒤틀려있는 진석의 성격을 효율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한 대비를 위해 항공사 직원과 진석의 표정이 나란히 제시되어야 한다. 이 영화의 촬영은 이를 위해 일거양득의 선택지를 보여준다.
이 시퀀스의 촬영 구도만 좋았던 것은 아니다. 바로 임시완 배우의 연기력은 이 장면에서 임팩트를 쾅 주고 시작한다. 이 인물의 대사들을 살리는 이 연기뿐만 아니라 대사들도 잘 썼다. ‘걸레 같은 게’라는 단어도 잘 골랐다. 또 욕 하기 전에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라고 여직원에게 말하는데 이 마저도 진상 손님의 한 부분을 잘 구현한 좋은 작문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소소한 장면에서 진석 캐릭터의 내면을 보여주니 영화가 좋은 시작을 한 셈이다. 그리고 그다음 시퀀스가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바로 테러 모의하는 장면을 넣은 것이다. 가타부타 설명할 필요 없이 '이 놈은 이러고도 남을 놈'을 보여주는 좋은 장면 구성과 연출이었다. 또 이렇게 빌런이 누구인지 바로 보여주는 건 과감하게 미스터리를 포기하겠다는 말도 된다. 이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중후반부가 넘어가서 이야기의 전환이 이뤄지는데 그 하이라이트 신을 위한 준비 자체로서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초중반부 진석 캐릭터가 왜 이렇게 하나? 의 이유를 경제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연출이었다.
제작진 칭찬해
이 첫 시퀀스에서 이 영화가 쏘아 올린 시발점은 중반부까지 내내 힘차게 작동한다. 일단 비행기 이륙 장면이 사실적으로 잘 찍혔다. 아마 비행기 이륙 자체는 실제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비행기 출발할 때의 연출은 사실적으로 잘 뽑혔다. 또 이 도입부 외적으로 비행기 안에 빛이 들어오는 구도를 잘 잡았다. 또 비행기 내부의 공간감 역시 탁월하다. 비행기 안이라는, 폐쇄라는 속성이 이 영화에 있어 굉장히 중요할 것이다. 일단 갑갑해야 빠져나올 구멍 없는 진석의 잔혹함이 극대화가 될 것이다. 안 그래도 답답한 것이 시각적으로도 강조되는 역할인 것이다. 또한 전염병의 위험함을 묘사할 때 공간이 좁아야 '저 사람 저렇게 되는 것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너무 좁지도 넓지도 않은 비행기 연출을 보여줬다. 또 비행기 운행 동안 빛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하와이까지의 비행이 1시간 땡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이 때문에 당연히 비행기 안에서 들어오는 햇빛의 색이나 발현 구도 등등 때마다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 또 비행기 세트장을 잘 만들었다. 적당히 비좁은 비행기라 결함이 없이 무난하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비행기 내부 구조도 그렇지만 비행기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화면들도 깔끔했다. 조종석에서 바라보는 하늘, 관객들 쪽 창가에서 보이는 모습까지 CG를 썼다고는 믿기 살짝 어려울 정도다.
이 탁월한 비행기 구현에서 시작해 영화는 초중반부까지의 서스펜스를 압도적으로 유지한다. 일단 중반부까지 사운드를 활용한 강약 조절은 아주 뛰어나다. 인호가 아내와 통화하는 신의 사운드, 진석에게 깔리는 배경음악, 현수와 재혁의 관계까지 나름 빠른 탬포의 정박으로 이어지는데 가사가 없이도 인물을 설명하는 좋은 연출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일단 흑막 진석이 자기를 드러낼 때 가운데에서 나온다. 그런데 비행기 내부의 길이 가운데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부여된 설정일 것이다. 이때 진석에게 집중되는 촬영은 제작진의 열일이 빛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첫 번째 희생자가 피를 토하며 죽을 때 굉장히 끔찍한 방식으로 죽는다. 이제까지 본 재난영화 중 아예 본 적 없던 느낌? 그 신체부위가 터지는 건 실제로 본 적 없었던 것 같다. 아이디어의 창의성이 돋보였던 부분이다. 또한 진석이 흑막임을 직감하고 누군가가 그의 집에 방문하는 시퀀스가 있다. 거기서 나온 시체 역시 미술팀이 디자인을 잘 구현했다. 비닐로 칭칭 쌓여있음에도 피가 범벅인 시체를 보면 이 병의 잔혹함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진다.
이렇게 소소한 요소들을 살려 1차적인 목표는 잘 충족하는 이 영화. 이야기가 한번 변하는 터닝포인트가 있다. 이 터닝포인트까지의 이야기 구성이 적절하게 잘 분배되어 있다. 인물 간의 사정 이런 거 필요 없다. 땅에서 경찰 인호의 범죄/미스터리 영화가, 비행기에선 악역 진석의 재난영화가 벌어지는데 이 두 이야기가 각자의 장르적 특색을 잘 살리며 극을 이끈다. 일단 범인이 누구인지 뻔히 드러나는 영화가 이 작품이다. 이는 후반부의 메시지 전달과 비행기에서의 상황에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범인은 이미 위에 있으니까 찾을 필요가 없다. 그럼 뭐를 쫓을까? 당연히 백신이다. 이 백신을 쫓아가는 과정을 나름의 뚝심을 활용해서 이끈다. 반대로 비행기 안은 무섭다. 테러 때문에 내가 걸렸는지 알 수가 없다. 이때의 막연함을 드러내기 위해 진석의 특성 중 하나가 괄호 처리된다. 이 괄호 처리가 무엇인지 보고 싶은 분들은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는 분명히 의도된 것이며 비행기에서의 상황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소재다. 이 외에 항체군이 있는 인물들 팔에 기포가 생기는데 이런 섬세한 부분도 영화의 초중반부를 이끄는 아주 좋은 원동력이 된다. 잘 만든 두 편의 스릴러를 보는 느낌?
고래 사이에 있는 새우
사실 이것을 선회하는 압도적인 장점은 임시완 배우의 캐스팅이다. <변호인>과 <미생>에서 시작한 이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아마 이 영화가 정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기했던 첫 시퀀스에서 임시완 배우의 모든 것이 전부 완벽했다. 눈빛, 말투, 목소리 톤, 발음, 대사 내용까지 초반부의 긴장감을 부여하는 훌륭한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 비행기에 탄 사람이 전부 죽었으면 좋겠어요" 장면에서 역시 이 인물의 광기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사실 같은 영화에 나온 전도연, 이병헌, 송강호 배우가 좀 전형적인 역을 맡아서 두드러지는 것도 있다. 엄청난 차이점이 있는 사이코패스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임시완식 사이코패스'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극을 이해하는 배우의 이해도가 빛난 지점이다. 초중반부 서스펜스가 유지되는 이유 중 한 50%이 임시완 배우의 눈빛 연기 덕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가령 극 중에서 자기가 흑막인걸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비행기 안에서 일종의 소동이 있다. 이때 영어를 뭐라 하다가 몸싸움이 벌어진다. 분명 이 임시완 배우는 연기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 짧은 2~3분짜리 유사 액션신에서도 인물의 악랄함이 벌어진다. 신기한 일이다. 좀 몇 번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인물의 성격이 드러난다니. 극을 보다 보면 이 장면이 주는 광기에 많은 분들이 감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두 영화를 붙였다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의 최종 흑막으로 충분한 연기였다. 아마 주요 시상식에서 이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실패할 수가 없는데?
미술도 좋고, 음향도 좋고. 핵심 조연 임시완 배우의 연기도 좋고. 우리나라 영화에서 가장 위대한 대배우 3명이 나오는 만큼 주연진들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송강호-이병헌-전도연 세 배우는 연기 잘한다는 말이 아까울 정도다. 또 박해준-김소진-김남길 세 배우는 든든하게 자기 몫을 해낸다. 이 세 배우가 조연으로 출연한다고 하면 뭐랄까 극이 탄탄해지는 느낌이다. 특히 김소진 배우 엄청 좋은 배우인 것 같다. 어? 이 영화 잘 안될 리가 없는데? 비경쟁이지만 칸에도 초청되고. 배우들도 대단하고. 소재도 신선하고. 악당 캐릭터 설정도 정말 색다른데? 완성도도 깔끔해서 이 영화에는 결함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러닝타임의 반환점을 돌아 중후반부가 된다.
너무 많은 걸 희생하는 것이 아닌가
빠른 템포에 섹시한 몰입감까지 영화는 단점이 없다. 그나마 찾자면 박해준 배우 대사가 잘 안 들리고 전도연 배우 비중이 별로 없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굉장히 많은 양의 비판을 들어야 했던 건 후반부에 나온다. 일단 이 영화의 장르는 사회에 대한 풍자극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테러에 대응하는 재난영화, 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스릴러 영화 두 축은 결국 가장 중요한 러닝타임 1시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케이. 이건 그럴 수 있다. <부산행>부터 시작해서 여러 영화에서 이런 시도를 했었으니까.
그런데 이를 위해 너무 소재가 막 소비된다. 일단 이 영화에서 외국 국가 두 나라가 등장한다. 지금 2022년이다. 이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엄청 잘 나가는 국가들이다. 이 나라들이 그 선택을 거부한다? 이거부터가 뭔가 이상하다. 이는 단지 선진국이라서만 그럴까? 그 외에 분류되는 나라들도 굳이 이걸 거부할 이유가 없다. 심지어 어떤 나라는 이 '영화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무언가'를 거부하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기까지 한다. 이거 이럴 필요가 없다. 뭐 나라 간의 외교 이런 것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셈이다. 그냥 이 나라 수장한테 좀 연락하고 그냥 끝난다. 단순히 주인공의 고난을 묘사하기 위해 허술하게 이야기를 짠 셈이다.
또 예고에도 나오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영화 전반적으로 확인하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어떤 소재는 희생된다. 일단 전도연 배우가 맡은 역할 숙희는 국토부 장관이다. 숙희는 경찰인 인호와 함께 TF팀을 구성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근데 장관이라는 이름값이 있음에도 인간들이 말을 안 듣는다. 뭐 영장 없으면 말 안 듣는 게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지만 나라 여론이라는 것이 있다. 저렇게 전면에 나서는 부처 수장을 무시할 수 있는 집단과 조직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있을지 의문점이 든다. 역시 마찬가지로 극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납작하게만 극에서 사용한 셈이다.
그리고 몇몇 소재는 좀 불필요하기까지 하다. 초반부에 인호와 동료 경찰이 진석이 사는 곳으로 조사를 나가는 장면이 있다. 그때 아이가 인호에게 "이 아저씨 영어 못해서 못 알아먹는 것 아냐?"라고 한다. 이 대사가 엔딩까지 아~무 영향도 없다. 또 첫 번째 희생자가 화장실에서 감염될 때 "이코노미 석 화장실 수준 참"이라고 승무원에게 폭언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 역시 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계급적인 코드를 섞에서 우리나라의 한 단면을 비꼰다? 근데 그게 뚝심 없이 대사 몇 줄로 소비되니까 실없는 소리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어떤 여학생들이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교복 입고 나온다. 무슨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친구들끼리 여행 가는데 교복 입고 여권 써서 비행기 타고 간다. 내가 고등학생 때는 등하교 시간 외에 교복을 입고 싶은 마음이 단 1도 들지 않았다. 그냥 어린 배우를 써도 될 텐데 교복을 굳이 입힐 이유가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재혁의 딸 수민은 여자임에도 남자 화장실에 들어간다. 이 설정도 굳이 필요하나? 싶다. 그냥 애초에 수민이 남자여도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는 없다. 이에 대한 이유로는 '이 배우가 연기를 잘하기 때문에 이 엇갈림을 꼭 넣어야 함'이라고 답할 수 있겠지만 만약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이건 아닌데' 싶다. 단지 그 장면을 위해서 여자애가 남자 화장실에 몰래 가는 꼴이 좋은 건 아니니까.
그런데 상기한 이런 허술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큰 단점이 있다.
좀 아니라고 생각했어
이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단점이 되는 지점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우리 현대사에서 겪었던 몇몇 사건들이 생각난다. 처음에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이런 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진일보했나?'라고 묻는 게 아닐까 싶었다. 또 전염병이 사람들을 떠다니면서 병세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묘사도 뭐 갈라 치기를 소재로 삼고 싶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딩은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모든 메시지들을 전부 뒤집는다. 이야기의 맥락상으로서 아예 불필요하면서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구체적으로 인물들은 후반부에 굉장히 중요한 선택을 한다. 이 선택이 영화의 초반부와 부분적으로 모순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선택을 할 것이라고 극 내내 암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100여 명의 승객이 모두 동의한다(애초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도 신기하다). 그냥 단지 엔딩부에 힘을 주려고 그 많은 인과관계와 핍진성, 개연성을 전부 깔아뭉개버렸다. 그리고 아름답지도 않은 그 광경을 바람직한 덕목으로까지 연출로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에 힘입어 작위적인 신파극도 있어 이 선택이 감동적이라는 메시지까지 영화에 내포했다. 난 이 감동적이라고 보여주고 싶은 연출이 굉장히 폭력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때가 어느 땐데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 선택지를 고를까? 그리고 그게 이뤄진다 한들 어느 철학자가 그걸 정의롭다고 말할까? 각본가의 마음에는 이 선택이 자유로운 것이 되는 걸까? 다수만큼이나 소수가 중요해졌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이 개인 소셜 미디어로서 탁월하게 기능하는 시대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메시지가 제시된 것은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굉장히 안타깝고 아쉬우며 두렵기까지 하다. 내가 앉은자리 옆자리에선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해 할 말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2022년이다. 물론 다수 중요하다. 그게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지점 하나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전하는 혹평이 사실 납득이 간다. 이 혹평이 한국영화가 성장하는 지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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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드라마, 액션
감독: 류승완
각본: 류승완
제작: 강혜정
출연: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김소진, 정만식, 구교환, 김재화, 박경혜 외
촬영: 최영환
조명: 이재혁
편집
미술
음악
의상
주제곡
촬영 기간: 2019년 11월 ~ 2020년 2월
제작사: 대한민국 외유내강, 덱스터 스튜디오, 필름케이
배급사: 대한민국 국기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대한민국 국기 2021년 7월
화면비
상영 시간: 121분
제작비: 240억 원
- 시놉시스
내전으로 고립된 낯선 도시, 모가디슈
지금부터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생존이다!대한민국이 UN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기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일촉즉발의 내전이 일어난다.
통신마저 끊긴 그 곳에 고립된 대한민국 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북한 대사관의 일행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문을 두드리는데…목표는 하나, 모가디슈에서 탈출해야 한다!
- 캐릭터
대한민국 대사관
한신성 대사 (김윤석 분)
강대진 참사관 (조인성 분)
김명희 (김소진 분)
공수철 서기관 (정만식 분)
조수진 대사관 사무원 (김재화 분)
박지은 대사관 막내 사무원 (박경혜 분)
북한 대사관
림용수 대사 (허준호 분)
태준기 참사관 (구교환 분)
2021년 개봉예정인 대한민국의 영화. 류승완 감독의 11번째 연출작.
1991년 소말리아 내전으로 인해 고립되어 버린 남북대사관 공관원들이 목숨을 걸고 함께 탈출했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영화 제목이 캐스팅 과정에서는 '탈출' 이라는 가제로 알려졌으나, 이후 '모가디슈'로 확정되었다.
2020년 여름 성수기 개봉작품으로 준비중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개봉이 1년 가까이 지연되었다.
영화의 배경은 소말리아 모가디슈지만 현재까지도 위험이 발발한 지역인지라 실제 촬영은 모로코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모가디슈 #모가디슈예고편 #모가디슈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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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6구역까지 가야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낯선 땅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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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난 남자친구 ‘왕취안성’을 잊지 못한 주인공 ‘황위쉬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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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똑닮은 남학생 ‘리쯔웨이’를 만나 벌어지는 메가 히트 타임슬립 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