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2-25 22:06:13
낯선 오늘을 미망하는 시선
영화 <미망> 리뷰
미망 (Mimang, 2024)
낯선 오늘을 미망하는 시선
개봉일 : 2024.11.20.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 92분
감독 : 김태양
출연 : 이명하, 하성국, 박봉준, 백승진, 정수지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종로 길거리. 한 남자가 통화를 하며 길을 찾고 있다. 그는 자신이 서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가다 보면 알겠지”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그의 말대로 그가 아는 길이 나타난다.
영화 <미망>은 이 남자와 같은 태도로 정처 없이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변화하는 길과 시간 위를. 걸을수록 낯선 길은 익숙한 길로 변하고 멀리 떨어져 있던 시간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다. 참으로 멜랑꼴리한 경험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특히 도시, 서울은 정말 쉴 틈 없이 변화를 반복한다. 정신 차려보면 무언가 사라져 있고 익숙해졌다 싶으면 낯선 무언가가 생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것들이 과거로 빨려 들어가지만 나는 과거로 갈 수 없기에 그것들을 잊은 채 낯선 오늘을 살아간다.
가끔은 이 낯선 오늘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오늘 하루 난 뭘 했지? 오늘 하루가, 오늘 있었던 만남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지?. 그저 시곗바늘을 따라 똑같은 자리를 달린 기분. 이런 찜찜함을 안고 잠들었던 밤이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미망>은 나의 이러한 의구심과 찜찜함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똑같은 자리를 달린 게 아니라는걸, 지금의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나를 잡아줄 변치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미래의 나도 길을 잃지 않을 거라는 걸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든다.
과거 연인이었던 남자와 여자는 길 위에서 재회한다. 어딘가 낯설어진 길과 과거 연인의 모습. 이 길이 맞나, 지금 내가 말 걸려는 사람이 그 사람이 맞나. 두 사람은 반신반의 상태로 그 길을 걷지만 여전한 남자의 걸음걸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 추억 같은 그대로 남아있는 익숙한 것들을 찾아낸다.
두 사람이 다시 각자의 길을 가면서 잠깐의 만남은 다시 과거가 되고 그 위로 현재의 새로운 만남이 덧씌워지지만 남자는 한 가지를 깨닫는다. 오늘 나는 12시부터 12시. 같은 자리로 돌아온 시계가 아닌 어제와 다른 나로서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을.
남자와 여자는 과거를 미망(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 하며 낯선 길 위를 미망(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한다. 그러다 작은 익숙함과 재회하고 자신의 발자취를 미망(멀리 넓게 바라봄) 한다. 마지막 미망은 잠깐의 위로를 주고 그들은 다시 각자의 낯선 길로 발을 돌린다. 미망과 미망과 미망. 낯섦과 익숙함, 인연의 과거와 현재. 이 단어들의 조합은 우리의 인생을 표현하기에 한치 부족함이 없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길이 바뀌고 사랑이 지나가고 서울 극장이 사라지고 친구가 죽는다. 남자와 여자의 마음은 아직 과거에, 서울 극장에, 또 떠난 친구에게 머물고 있는데 변화는 너무 빠르게 일어난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길을 헤맨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
동상 하나에도 얽힌 이야기가 수십 개인데 인연에 얽힌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남자와 여자. 그리고 친구는 추억을 떠올리며 지나간 과거와 새로운 현재를 다시 체감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과정이 그렇게 서글프기만 한 건 아니란 거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에 담긴 추억과 감정들은 오래도록 남는다. 모든 게 변한 길거리의 구석, 좁은 골목 한 편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소우처럼 일부는 유실됐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오래된 영화 <미망인>의 필름처럼. 도시가 변하고 극장이 사라지고 남자가 화가가 되고 친구가 택시 운전사가 되고 또 여자가 엄마가 되어도 지난 추억과 감정은 마음속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있다.
여자의 새 연인은 매번 길을 헤맨다는 여자에게 ‘자세히 보면 변치 않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을 보고 길을 찾으면 된다’고 말한다. 언제나 길 한편을 지키며 보행자들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무언가처럼 변치 않은 추억과 인연은 우리의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맬 때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오늘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어 내 마음속 변치 않는 무언가로 남을지 모르니 실망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며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낯선 길 위에서 여자와 재회했던 남자는 새 연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12시에서 12시. 똑 같은 거 같아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네요.”.
낯설고 허탈한 오늘의 끝에서 <미망>을 만난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12시에서 12시를 지나온 건 어제와 같지만 오늘의 나는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Relative contents
-
- 영화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줄거리 결말은?
제가 얼마 전에 영화를 보고 왔어요!!영화를 보면서 맛있는 팝콘도 먹으면서 즐거운 영화관람을 하고 왔는데
영화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라는정말 기이이이이인~~ 영화를 보고 왔어요 왜 아바타 안 보고 이거 봤어요?! 라고 물어본다면! 영화 시간이 이게 맞았어요... 하하?! 그래서 그냥 보고 왔어요~
기본 정보장르 : 로맨스, 멜로, 드라마감독 : 미키 타카히로각본 : 츠키카와 쇼, 마츠모토 하나출연진 : 미치에다 슌스케, 후쿠모토 리코개봉일 : 2022.11.30평점 : 7.90기획 의도"카미야 토오루에 대해 잊지 말 것"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기억을 잃는'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소녀 '마오리'"내일의 마오리도 내가 즐겁게 해줄 거야"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무색무취의 평범한 소년 '토오루'매일 밤 사랑이 사라지는 세계,그럼에도 불구하고,다음 날 서로를 향한 애틋한 고백을 반복하는두 소년, 소녀의 가장 슬픈 청춘담여담일본에서는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라는 열풍이 대단하다고 한다. 역대 일본 로맨스 영화 '러브레터'에 이어 흥행 2위라는 성적을 거머줬다. 한국에서 반응은! 초반에는 입소문으로 퍼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모두의 기억 속에 사라져 조금의 뒷심을 발휘하면서 몇 개 없는 상영관에서 상영 중에 있다.후기 및 결말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결말을 살펴보자면 마오리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극복하며 점차 기억을 하기 시작한다.하지만 토오루는 심장마비로 죽어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지며 그동안의 일기장에 적어뒀던 토오루를 기억하며 영화는 마무리가 된다.나는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책이 원작인지 몰랐다. 아니.. 책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영화 시간 때가 맞는 게 이 영화라서 본 것이지만?~ 나름 재미있었고 살짝 슬펐고! 그럭저럭! 지금 시기에 딱 볼만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영화에 가장 중요한 쿠키는 없었다!아바타가 강세인 요즘~ 상영관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라는 영화 한편 어떠실까요?~
-
- 피로 물들었던 그 바람과 돌들이 말할 때까지
다큐멘터리의 근본으로
이 영화가 취한 전략은 특이하면서도 다큐의 특성을 살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여러분에게 있어 다큐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글쓴이는 어렸을 때 봤던 다큐 '인간극장'이다.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어 PD와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 모든 모습을 담는다. 영화는 이 '인간극장'형 방식을 택했다. 아마 영화의 스태프인 것 같은 사람 몇 명이 제주 4.3 사건의 목격자이자 피해자들에게 인터뷰를 진행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인터뷰를 따라 그때 겪었던 일들을 세세하게 증언한다. 영화는 이게 전부다. <비욘드 유토피아>처럼 서스펜스를 외부에서 끌고 들어오지도, <물방울을 그린 남자>처럼 미술작품 같은 시각화를 사용하지 않고 딱 논픽션의 근본 그 자체를 다룬 것이다. 이런 탓에 약간 영화가 원위치 제 자리를 맴돈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에피소드를 다큐처럼 표현하는 것이 아닌 그 당시의 증언만 푸티지로 남겼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취할 수 있는 1차적인 줄거리를 가진 이유는 지극히 당연하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 때문이다.
첫째. 왜 이 영화는 단적인 에피소드를 보여주지 않는 병렬형 구조를 취한 것일까? 이는 곧 영화가 왜 편집을 이런 식으로 했을까? 와도 이어진다. 바로 이 영화에서 할머니가 입으로 전달하는 4.3 사건의 상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영화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터뷰와 제주의 풍광을 포착한 영상으로 이이루어 져 있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로 전개되면 될수록 어떤 요소가 사실상 이 풍광을 특정 방식으로 묘사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가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관객과 거리를 둔 의도가 이해가 된다. 이 의도와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출한 방식은 영화의 분명한 강점이다. 실제로 이 장점은 영화의 제목이 '돌들이 말할 때까지'에서도 읽을 수 있는데, 비관적이라면 비관적일 수도 있지만 역사가 개인과 한 지역에게 남긴 상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골랐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 영화가 격정적인 톤을 유지했다면 윤리적인 선을 어긋나는 셈이 된다. 무슨 말이냐. 제주 4.3 사건의 전체적인 개요와도 관련이 있다. 4.3 사건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글쓴이가 제주에 나고 자라면서 들은 것은 '이념 대립을 핑계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라는 점이다. 핵심은 핑계라는 점이다. 이 핑계라는 뜻은 굉장히 부당하면서도 동시에 시대적인 맥락이 있다는 뜻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빼곡히 묘사하는 좋은 수를 보여준다. 만약 이 부분이 영화 안에서 픽션 형식으로, 내지는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으로 구현됐다고 생각하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해칠 수도 있다. 왜? 감독의 감정이 틈입해서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위력이 옅어져 분노만 느껴지는 것이다. 왜 분노를 표출하겠어? 당연히 폭력의 잔혹함 때문이다. 이 폭력의 잔혹함을 고발해 당시 행정부의 극악무도함을 고발하는 것도 좋은 의도가 될 수 있겠지만 영화는 그 이전에 깔려있는 악을 고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내적 트라우마에 집중한다. 또 만약 이 영화가 자칫 개인에게 해한 폭력을 과시하고 또 영화적 재미로 활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이 부분을 유연하게 벗어난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이야기의 재미와 박진감이 아니라 그때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라는 걸 그대로 암시하면서.
좋은 빛, 좋은 공기
영화가 구술이라는 특성을 활용한 것은 나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구술은 곧 '입을 통해 말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술이 가진 고유의 특성이 뭘까? 바로 개인의 기억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 기억이 사람에 따라서는 신빙성이 떨어지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개인을 통해 역사의 거대한 부분을 보여주고자 했던 시도는 충분히 탁월했다. '고양이 대학살'로 대표되는 역사의 미시성에 대해 아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 측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듯하다. 어떻게? 인터뷰를 통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구체적인 진술과 다섯 명이라는 인원을 통해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다섯 명의 할머니들이 같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조명하는 것이다. 이 다섯 명이라는 인터뷰이는 구술이라는 특성이 가진 약점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다'를 다른 방식으로 피해 가는 선택이기도 한데, 반복되는 진술이야 말로 한 개인이 가진 트라우마가 일시적인 게 아닌 것임을 보여주는 반증이 된다.
또한 이 '개인에 의한 구술'이란 부분이 영화의 외부 맥락에서도 대비되는 지점이 있다. 4.3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굉장히 중요한 재판이 2019년 제주지방법원에서 있었다. 이 재판은 영화 안에서나 밖에서나 굉장히 중요했다. 이 재판을 영화 내적으로 어떻게 묘사했는지, 그리고 4.3의 폭력을 온몸으로 겪은 분들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하는지가 '구술'이라는 의미와 대치되면서 그 나름의 의미를 공고히 다진다. 글쓴이가 영화의 이 연출을 보면서 연상됐던 영화는 <좋은 빛, 좋은 공기>다. 이 영화는 광주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일어났던 각각의 민주화운동을 보여준 다큐멘터리다. 두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을 보여주는 것이 그 영화의 핵심이었는데 이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그 반대다. 공간을 특정 지역에 좁혀놓고 공통점을 가진 다섯 명으로 좀 더 구체화시켜 사건이 가진 비극성을 덧붙이는 것이다. 만약 이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를 보고 인상 깊으셨다면 <좋은 빛, 좋은 공기>를 추천드린다.
신뢰도 최상
글쓴이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으로 인터뷰의 퀄리티를 뽑고 싶다. 왜? 제주 선주민인 글쓴이는 2021년에 대학의 소속 학회에서 현장실습생 일을 한 적이 있다. 이 학회의 임무 중 하나는 4.3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 사실 커뮤니케이션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물론 정정하신 분이 대다수지만 고령이다. 찾아가는 과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인터뷰 내용은 5명의 할머니에 각자 변형을 주면서 핵심만 쏙쏙 빼내는 정교한 인터뷰 능력을 보여준다. 가령 A 할머니는 사람들이 죽는 모습 그 자체를 목격한 분이다. B 할머니는 의사소통이 어렵다. 왜? 언어를 평생 배운 적이 없으니까(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영화 안에서 확인하시라). C 할머니는 공부 열심히 하셨다. 당시에 사회구조가 여성이 날개를 펼치기엔 어려운데 이 분은 예외다. D 할머니는 위의 분과 이유로 의사소통이 어렵다. 이 이유는 영화가 이데올로기에 의한 폭력을 묘사할 때 볼 수 있었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D 할머니의 존재는 영화에서 분기점이 되면서 4.3 사건을 겪은 이들을 한 데로 묶는데, 영화 안에서 이 인물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확장시키는지가 아주 흥미롭다. 어떤 대상에게 신뢰도를 불어넣는 방식은 각자 다르다. 이 영화는 다양한 인물군으로 특정 인물을 빛내는 선택지를 골랐는데 이야기의 형식의 측면에서 훌륭했다고 쓰고 싶은 부분이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
나이를 들며 영화에 관심이 생기면서 깨달은 건 내가 다양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영화가 결국 책과 이어지는 취미라서가 아니다. 이런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방법론을 존중하는 방식을 어느정도는 알게 된 것 같다.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보고 다시 느낀 것은 생명의 고귀함이다. 결국 살아있다는 것. 그 후에 떠나간 사람들을 기억한다는 것. 역사의 부조리함에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 <너와 나>에서 '너와 나'를 이루는 이 세상이 붕괴되는 비유가 아니더라도, 인간 하나가 이 세계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장점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이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 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고 자랐던 제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글이라도 쓰는 것 말곤 없다는게, 이제 세상에 없다는 것이 이렇게 슬픈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 속상하고 씁쓸하다. 나 역시 제주의 수많은 돌들이 말할 때까지 이 기억을 오래오래 가지고 있어야겠지.
-
- 아이 옆엔 누군가가 필요해
개봉 전 시사회에서 먼저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누구나 홀로서기를 꿈꾼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면서 가장 원하는 건 자유일 것이다.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잔소리를 듣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수많은 구속된 상황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목표다. 자유에 대해 바라보다 보면 주변의 도움이나 지원이 별거 아닌 듯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해나갈 수 있다는 느낌은 어떤 사람의 도움도 거절하게 만든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특히나 아주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면 더욱 그 도움은 받기 어려울 것이다. 한참을 보이지 않거나 옆에 없었던 사람이 나타나 도움을 주려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의 진의를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가능하면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노력할 것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데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 조지
영화 <스크래퍼>의 주인공 조지(롤라 캠벨)는 얼마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조지는 아주 어릴 때 엄마 곁을 떠난 아빠의 존재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주변에 바로 도와줄만한 어른이 없다는 의미다. 정부의 지원으로 성인 보호자를 지정받아야 하지만 조지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우면서 손쉽게 정부의 관리에서 벗어난다. 그렇게 십 대 초반의 아직 어린 조지는 혼자 모든 걸 관리하며 생활을 이어나간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조지는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훔쳐 용돈과 생활비를 해결하고 있다. 영화는 그 모습을 심각하게 보여주기보단 경쾌하면서도 조금은 건조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 자체는 범죄지만 그 일은 조지가 어쩔 수 없이 생활을 하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지의 독립적인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집으로 아빠 제이슨(해리스 디킨슨)이 찾아오면서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조지와 제이슨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것이지만, 제이슨의 등장으로 혼란을 겪는 조지의 감정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조지는 아직 엄마를 잊을 수 없는 나이다. 그는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보고 싶은 엄마를 보기 위해 집 밖을 나와 작은 골목에 들어가 휴대폰에 저장된 엄마의 동영상을 본다. 마지막으로 저장된 엄마의 모습에는 조지의 모습과 엄마의 모습이 함께 담겨있다. 그 동영상을 보는 순간은 조지에게 엄마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그렇게 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아무렇지 않게 해야 할 일을 한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등장
갑작스러운 아빠의 등장은 조지에게 굉장한 혼란을 준다. 아빠 제이슨도 마찬가지다. 조지가 커가는 걸 보지 못했고, 시간을 보낸 적이 없는 딸의 앞에 나타나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제이슨은 조지에게 따뜻한 모습을 할 수도, 잔소리하는 모습을 할 수도 없다. 아빠지만 사실은 아빠 노릇을 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이다.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지난 과거에 대한 사과다. 영화 속 제이슨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것을 깨닫는다.
제이슨이 선택한 건, 잔소리하는 아빠도 아니고 따뜻한 아빠도 아니다.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친구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조지가 자전거를 훔치러 갈 때 슬쩍 따라가 같이 그 도둑질에 동참한다. 그리고 경찰로부터 도망가고 기차역에서 한참을 어린아이처럼 조지와 놀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두 사람의 거리감은 조금씩 줄어든다.
엄마와 아내를 잃은 두 사람은 서로 교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두 사람이 만나서 가까워지는 과정이 <스크래퍼>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다. 무척 우울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영화는 이 두 사람의 모습을 우울하게 그리지 않는다. 어떤 때는 경쾌하게 또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아주 슬픈 일을 경험하고 나서도 누군가에게 의지할 존재가 있다는 것을, 어쨌든 서로 의지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영화의 맨 처음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그 문구는 혼자서도 자랄 수 있다는 식의 문구로 수정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아이가 자라는데 누군가는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지에게 아빠 제이슨이 나타났고 제이슨은 주변 이웃들과 교류도 시작한다. 완전히 혼자 있던 조지는 조금씩 마을 속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제이슨의 등장이었고, 그 끝은 제이슨이 조지의 집에 살기로 결정한 순간이었다.
우울하지 않고 따뜻한 이 영화의 정서
조지와 제이슨이 좋은 부녀 관계가 되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은 서로가 어떤 결핍이 있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각자에게 서로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첫 만남에서 서로의 마음을 긁으며 속을 썩였지만 두 사람은 이내 상대방을 품어 안는다.
영화에는 조지가 방에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 탑을 쌓는 장면이 나온다. 하늘에 있는 엄마에게 닿으려는 듯 쌓아 올린 작은 탑은 조지가 우울할 때마다 누워서 쉬는 방이다. 그 방은 일종의 치유의 공간이다. 제이슨이 그 방을 처음 본 순간, 아마도 그때가 제이슨이 조지의 아빠가 되기로 결심한 시점일 것이다. 그 공간은 추억의 공간이면서 위로의 공간이다. 조지가 만든 그 추모의 탑은 마치 조지의 마음속에 있는 잡다한 추억들의 집합소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조지의 마음이 바로 그때 제이슨의 마음에 닿았다.
영화 <스크래퍼>는 무척 따뜻한 영화다. 태어나 처음 만난 아빠와 딸이 조금씩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 무척 잔잔하게 담겨있다. 영화를 연출한 샬롯 리건 감독은 이번 영화가 첫 장편 데뷔작이다. 이 따뜻한 이야기로 39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영화는 결국 아이가 자라나는데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무척 따뜻한 방식으로 조지의 삶을 비추는 영화는 슬픔을 억누르고 있는 조지가 다시 누군가의 도움으로 따뜻한 가족이 함께하는 삶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무척 경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실 수 있어요.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
- 귀농에 대한 영화가 아닙니다, <리틀 포레스트>
- 리틀 포레스트 (Little forest, 2018)
제작 : 한국, 드라마 │ 감독 : 임순례
출연 : 김태리(혜원), 류준열(재하), 진기주(은숙), 문소리(혜원母) 외
등급 : 전체관람가 │ 러닝타임 : 103분만인의 힐링 영화가 될 줄 알았지
리틀 포레스트.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영화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힐링 영화로 자리 잡게 되리란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소하고 슴슴한 맛의 이 영화를, 그래서 나도 무려 다섯 번이나 보았다. 언제 어느 부분에서 틀어도, 또는 배경으로 쭉 틀어놓아도, 모든 장면이 위안이 되는 그런 흔치 않은 영화이기에.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다섯 번이나 본 사람으로서 이 영화가 결코 달콤한 영화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도 어여쁜 시골의 사계절과 요리 장면, 세 청춘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 관계 등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청춘들이 결코 시골에 와서 아무 걱정 없이 지내고 있는 것만은 아님을 느껴서다. 그래서인지 어딘가에서 이 영화를 두고 ‘귀농에 대해 미화하는 영화’라고 부르는 것이 영 탐탁지 않았다. 그 말은 오히려 이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보았음에도 영화의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에.
그보단 청춘의 성장통을 그리는 이야기
주인공 ‘혜원’만 보더라도 그렇다. 임용고시에 실패 후 고향인 시골마을로 내려온 혜원은 도시를 떠나왔다고 해서 마냥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얼마간은 정말 순수한 힐링과 도피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곧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재하의 말대로 ‘그런다고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혜원은 시골에 정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러 내려온 셈이었다. 자신이 잘하고 있는 건지, 행복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자신을 정립하기 위해서.
‘재하’도 마찬가지다. 도시에서 회사생활을 하며 상사의 폭언을 견디지 못했던 재하도 도피하듯 시골로 내려왔지만, 그렇다고 시골에 와서 마냥 이것저것 뚝딱 농사를 성공했던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그는 태풍으로 사과농사를 망치는 것이 얼마나 익숙한지 아주 덤덤하게 낙과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울에서 만난 여자 친구와도 시골로 오면서 이별해야 했다.
시골에만 붙박이처럼 있었던 은숙의 삶도 만만치 않다. 어르신들이 주를 이루는 은행에서 그녀는 여름이면 공짜로 믹스커피를 타다 바쳐야 하고, 아무리 작은 단위의 은행이라도 회식자리에서 부장을 위해 맘에도 없는 탬버린을 쳐야하는 비애는 똑같다.
과연 이들의 어떤 지점이, 귀농을 미화한다는 걸까. 이 영화는 시골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보여줌과 동시에 세 청춘의 쓰라린 성장통도 훌륭히 보여주고 있는 것을. 단지, 군데군데 자연이 내뿜는 푸르르고 여유로운 장면들이 배치되어 있어 그들의 성장통이 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이런 이야기 방식을 띈 작품들은 많다. 이를테면 <라라랜드>. <라라랜드>는 유쾌 발랄한 뮤지컬 형태를 띠고 있지만 결국 서로의 꿈을 위해 사랑을 포기했던 연인을 노래하는, 그러니까 사실은 ‘슬픈’ 영화가 아니었는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도 마찬가지다. 막상 읽어보면 “청춘은 원래 아픈 거니까 쭉 아파라”라고 말하는 책이 아닌데도, 어쩐지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리틀 포레스트>도 그런 외형을 띈 영화가 아닌가 싶다. 혜원이 형형색색 아름다운 자연의 식재료로 요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시골의 풍부한 사계절을 뛰어난 영상미로 담아냈다고 해서, 이 영화가 시골생활을 가볍게 그리는 영화는 아닌데...., 들여다보면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 즉 청춘남녀들이 자신만의 작은 숲을 일구기 위해 자신의 삶을 아프게 고민하고 성찰하는 이야기에 가까운데, 외피만 놓고 오해하는 경우가 생겼던 게 아닐까.
작은 숲을 가꾸기 위하여
물론 나는 이 영화를 오해하는 많은 이들처럼, 혜원이 요리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얇은 튀김옷을 입힌 아카시아 꽃과, 무지개색으로 쪄낸 시루떡, 보기만 해도 달큼해지는 밤 조림, 꼬들꼬들 말라가는 주홍색 곶감을 보면서 정말 많이도 시각적 힐링을 했더랬다. 그렇지만 그런 요리를 하는 혜원에게 아픔이 있음 또한, 영화를 볼 때마다 여지없이 느낀다. 그러면서 나는 늘 혜원의 행복을, 그리고 혜원에 투영된 나의 행복을 빌었다.
영화는 혜원과 재하, 은숙 세 사람이 그래서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밝히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 혜원이 ‘자신의 작은 숲’을 찾았음을 암시하는 미소로 관객들을 안심시키며 끝이 난다. 영화가 그렇게 시시하게 끝났던 것조차도, 어쩌면 혜원이 찾은 숲이 ‘시골로의 정착’이냐 ‘도시로의 회귀’냐 하는 형식적인 문제가 아님을 시사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그 시시한 결말과, 처음부터 끝까지 소소하고 슴슴한 맛의 이 영화가 참 좋았더랬다.
청춘과 인생은 자연의 섭리를 많이 닮아있는 듯 싶다. 그래서인지 리틀 포레스트에는 ‘인생’에 대입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는 좋은 대사들도 많다. 긴 요리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어린 혜원에게 혜원의 엄마가 하는 말 “기다려, 기다릴 줄 알아야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어”라던지, 재하의 “겨울에 심은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라는 말이라던지. 기다림과 긴 긴 겨울에 대해서 자연은 늘 그렇게 단단한 통찰을 준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귀농을 해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 없지만, 때때로 내 숲을 가꾸는 일이 힘들게 느껴질 때 다시금 이 영화를 찾는다. 혜원이 힘들 때 고향을 찾아가 위로받았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그렇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글쓰는우두미
INSTAGRAM https://www.instagram.com/woodumi/
BRUNCH https://brunch.co.kr/@deumji
-
- 사골육수처럼 진한 세 사람의 두터운 우정 이야기. 게다가 실화?!
안녕하세요-!
이번에도 눈물을 쏙 빼앗아가는 감동 실화 영화를 소개해드리려 왔답니닷!!
일단, 이 영화를 소개하기에 앞서
제 주관적인 소견이 들어간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는 꼭 봐야한다는 겁니다..!!!!
제가 줄곧 보면서, 그리고 끝나는 순간까지 느꼈던 건,
이 영화를 보길 잘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까지 꼭 추천해주고 싶었던..
다시 한번 또 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뜻깊은 영화였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거든요,,,
저 역시 누가 볼세라 눈물 훔치기 바빴습니다..ㅠㅠㅋㅋ
이 영화가 무슨 영화이냐구요??????
지금 소개해드릴게요!!
제가 이번에 소개해드리고 싶은 영화는,
2023년 11월 22일에 개봉하는
아워 프렌드
라는 영화랍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출연했던 '다코타 존슨',
<오펜하이머>에 출연했던 '케이시 애플렉'
등등
익숙한 배우들이기도 하죠!
그럼 이제 영화 <아워 프렌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간단히 살펴볼게요~
간단한 줄거리
앞서 영화 <아워 프렌드>는 간단히 요약하여 말하자면,
주요 인물인 '니콜'과 '맷', '데인' 세 남녀의 깊고도 진한 우정을 담은 이야기인데요.
여기에서 '니콜'과 '맷'은 부부 사이이기도 하고요.
평범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그들에게
갑작스럽게 '니콜'이 말기 암 진단을 받으면서 전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죠.
그러한 상황에서 서로 도와가며 친구의 우정이 무엇인지 강렬히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영화의 시작은
분위기가 다운되면서 심상치 않은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됩니다.
남편인 '맷'의 움직임과 표정에 초점을 맞춰 아내인 '니콜'과 현재 어떤 상황인 것인지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죠.
이제는 말해야할 것 같다고.
미리 쓴 편지의 내용대로 당신이 말해주면 좋겠다고.
아이들을 불러오라고.
'니콜'은 말합니다.
그런데 반해, 집 밖의 상황은 집안의 분위기에 비해 다소 밝은데요.
어딘가 복잡미묘한 모습인 그들의 친구 '데인'과 맷과 니콜의 두 딸이 그려내는 천진난만함은 왠지 모르게 구슬픈 짠함을 자아냅니다.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시간의 흐름대로 영화의 내용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암 진단을 받기 전에,
암 진단을 받은 후의 모습을
서로 번갈아가며 보여주고 있어요.
처음엔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전 오히려 이렇게 진행되는 전개가 인물들 각각의 스토리와 감정선에 더욱더 집중하면서 볼 수 있도록 해주어서 몰입감이 뛰어났답니다.
앞뒤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보게 되니 눈물이 더 날 수밖에 없었던 듯 합니다..
인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면 영화 장면 곳곳에서 보여지는 각자의 상황이 더 돋보이더라구요.
그래서 간단히 살펴보자면
먼저 남편 '맷'은 기자를 직업으로 삼은 인물로서, 기사를 잘 써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가족보다는 일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아내인 '니콜'은 그러한 남편으로 인해 외로움을 많이 타게 됩니다.
미혼모처럼 사는 것과 별 다를 게 없지 않냐고.
그렇게 살기 싫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니콜'은 뮤지컬 배우이면서 '맷'과 결혼하여 두 딸을 두고 있는 인물이죠.
말기 암에 걸리게 되면서 그 이후로 점차 변화하게 되는 인생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는 인물이에요~
앞서 말했듯이 '니콜'은 남편의 빈자리로 인해 외로움을 타는데, 친구인 '데인'에게 자신의 서러움을 토로할 정도로 말이죠.
결국엔 남편과 자식을 두고 잠시 잘못된 선택을 하긴 하지만요..
그들의 친구인 '데인'은 코미디언의 길을 꿈을 꾸지만 잘 되지 못하여 할인 매장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인물이에요.
굉장히 의리 있고, 니콜&맷 부부와 두 딸까지 지극정성으로 살피죠.
거기에다가 유머 센스까지 있어서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주는 중요한 역할도 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과거에 말 못할 사정이 있었죠..
(전 '데인'의 센스 있는 입담이 영화의 중요한 요소 중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칫 슬프게만 흘러갈 수 있던 영화가 데인으로 인해 중간중간 풀어지기도 하고 웃겨서 마치 단짠단짠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니콜은 갑작스럽게 암 판정을 받게 되고, 맷은 아내를 간호하며, 데인은 그러한 자신의 친구들을 보살펴주며
이로써 세 사람 간의 찐한 우정, 관계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위기가 세 사람의 관계를 더욱 두텁게 만들어준 것이지요.
저는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의문을 가지고 봤던 인물이 바로
'데인'이었어요.
왜 데인은 친구들에게 그토록 헌신적인가?
자신의 애인보다도 더 큰 우선순위였죠.
어쩔 땐 남편 맷보다도 더 잘 챙겨주어서 왜 그는 자신의 삶보다 친구들의 삶을 더 보살피는 것일까 하고 항상 의문점을 갖고 영화를 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데인이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죠.
데인은 과거 코미디언 쪽으로 길을 가고자 하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그래서 데인은 혼자 짐을 싸서 사람이 없는 자연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곳에서 중년의 여자를 만나며 위로를 얻고,
오랜만에 연락 온 자신을 보고 싶어하는 맷과 니콜, 그의 딸들이 남긴 메세지를 여러 번 들어보며 웁니다.
아마도 이렇게 자신을 생각해준 맷과 니콜에게 고마워서, 큰 힘이 되어줘서 이를 계기로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데인 자신이 힘들었을 때 그들이 위로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데인도 그렇게 그들에게 보답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한편, '니콜'은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며 버킷리스트를 이루고자 노력합니다.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자신이 없을 때를 대비하여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편지들.
자신이 좋아하는 책 마저 읽기.
파란 색깔로 머리 염색하기.
무대 다시 서서 노래부르기.
등등.
니콜은 버킷리스트를 차차 이루며 자신에게 다가올 변화에 맞섭니다.
특히 니콜은 암 판정을 받은 이후의 삶을 굴곡적으로 입체감 있게 너무나도 잘 표현합니다.
그렇게 서서히 조용히 자신을 내려놓게 되죠..
느낀 점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세 사람의 우정 관계는 정말 끈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런 친구들이 곁에 있다면 정말 부러울 게 없을 정도로 말이죠.
특히 데인이 친구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존경스럽고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니콜과 맷도 마찬가지이구요.
얼마나 서로를 의지하고 중요하게 여기는지 관계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는 따뜻한 이야기였어요.
어려움이 생겼을 때 나를 생각해주는 친구가 있는 건 엄청난 든든함이잖아요.
데인이 어려울 때 맷과 니콜이 안부를 남기며 위로해주고,
반대로 니콜과 맷이 어려울 때 니콜을 보살펴준다던가,
맷을 데리고 자신이 했던 방식대로 산으로 데려가 기분전환을 해주며 위로해주는 방식이
영화에서 너무 깊게 다가왔고 저의 마음을 울렸답니다.
그리고 전 다코타 존슨의 연기에 너무나도 매료되었습니다....
어찌나 그렇게 절절하게 나타낼 수 있는지...
자신이 맡은 인물을 정말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암환자가 된 이후로 점점 변화하게 되는 상황과 행동들을 실감나게 표현하여서 감정이입이 잘 되었어요.
흡입력도 강했고요!
가족에 대해, 친구에 대해 여러 생각과 다짐을 하게 만드는 영화 <아워 프렌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충격적이었던 건...
전 이게 실화인 줄 모르고 봤었어요...
마지막에 실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니까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찡하게 다가오더라구요..ㅠㅠ
이로 인해 여운이 더 짙게 남았답니다..
여러분께 강력 추천합니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
-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 리뷰
"우린 그저 운이 좋았던 거죠. 당신과 나."
꼭 보겠다고 말한 다짐이 무색할 만큼 난 오랫동안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지 않았다. 《스포트라이트》가 수작이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마이클 레젠더스 역을 맡은 마크 러팔로의 연기가 대단히 훌륭하다는 것도. 그럼에도 내가 차일피일 감상을 미룬 건 영화의 소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기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기자들이 추적한 논란이 바로 가톨릭 아동 성범죄였으므로. 내가 가톨릭 신자인 것은 아니나 선하다고 믿고 싶은 인간 종족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결국 고개를 들 만한 이야기는 늘 보는 것이 망설여지기에(그래도 늘 보긴 본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영화 제목인 ‘스포트라이트’는 미국의 일간지인 보스턴 글로브 내 탐사보도 팀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인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마땅한 사건을 추적하겠다는 기자들의 직업정신과 열의가 돋보이는 작명이다. 재미있게도 팀 내에 등장하는 네 명의 기자는 국내에 소개된 포스터 속 문구처럼 '세상을 바꾼 최강의 팀플레이’를 해냈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영상 속에 끊임없이 비쳤음에도 개개인으로 기억에 남진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영화의 주인공은 ‘네 기자’가 아니라 네 기자가 포함된 ‘스포트라이트’라는 유기체적 팀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로비 로빈슨(마이클 키튼)과 마이클 레젠데스(마크 러팔로)의 대립을 통해 정의를 추구하기 위한 팀플레이일지언정 얼마든지 갈등이 존재할 수 있고, 샤샤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가 비치는 가톨릭에 대한 회의 등을 통해 기자 개인의 내면적 갈등을 지켜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을 개인이 아니라 팀으로 설정한 전략은 사건의 피해자/가해자 측에도 비슷하게 사용된다. 즉, 작가인 조지 싱어와 감독이자 작가인 톰 매카시는 가톨릭 교구의 아동 성범죄를 추적하기 위해 실화를 극화하면서 단 한 명의 피해자에 매달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피해자 한 명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게 망가졌고 교회 권력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끔찍하게 망가뜨렸는지를 전시하거나 소비하지 않은 대신, ‘생존자’라 불리는 피해자들이 모임을 통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바로 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얼마나 무심해질 수 있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주며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또한 영화 내에선 집착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리에게 거듭 강조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한 명의 신부/사제의 일탈처럼 비치지 않도록 사건을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취재를 열심히 한들 가톨릭 교회 관계자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이 사과가 몇 알 썩었다고 박스채 버릴 순 없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더더욱. 가장 돌봄이 필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취약한 환경에 처한 어린아이들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건들 뒤에 숨겨진 인간의 추악한 면모는 죄책감 없는 개인의 범죄적 계산과 그 모두를 눈 감은 무소불위의 권력일 것이다. 피해자가 너무도 많아 병리적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는 전문가의 말이 흘러나오는 세상 이건만 한편으론 천상에서 지상으로 걸음 한 신의 말씀을 경건하게 받아들인 양 설교하는 종교적 지도자인양 행세하면서도 무수한 개인을 짓밟은 범죄자는 권위에 보호받으며 그저 교구를 옮겨다니기만 하였다. 이렇듯 영화는 스포트라이트팀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이 사건의 뒤엔 얼마나 많은 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었으며 스포트라이트팀이 받은 퓰리처상에 대한 언급을 삭제함으로써 사건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또렷하게 각인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시사 고발 영화는 단순한 사건의 재현이 아니다. 지나간 일을 다시금 들추고자 할 뿐이었다면 기자들의 회고록을 찍거나,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되는 일 아닌가. 존재했던 진실을 서사적으로 엮어 내면서도 전달해야만 하는 메시지를 러닝타임 내에 예술의 이름으로 삽입하여 시민의 성찰과 각성을 불러내는 것이야말로 고발 영화의 미덕이지 않을까. 모든 시사 고발 영화가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기법을 따르며 관객을 소외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엄연히 부당한 억압에 따라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을 단순히 상업 영화라는 미명 하에 왜곡시키고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흥미만을 좇아선 안된다는 이야기다. 영화라는 미디어는 결국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원하든 원치 않든- 재생산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무너진 사회 정의를 조명하는 고발 영화에 조금의 윤리의식도 기대할 수 없거나, 예민하게 다뤄야 하는 사건을 단순한 감정의 배설구로 사용하는 것은 적지 않은 모순일 테다. 이런 점에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언론에 대한 경의를 표하면서도 무감각한 사회로 인해 비극이 심화된 사건의 본질을 해치지 않았고, 피해자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실화를 각색하였다. 또한 영화 내 등장하는 변호사 미첼 개러비디언(스탠리 투치)의 대사, "이건 명심하세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에요."를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기까지 하니, 훌륭한 시사 고발 영화라 아니할 수 없다.
★★★★☆
-
-
- 미션 임파서블 / 시리즈의 화려한 피날레 / 파이널 레코닝 / 톰형의 씹어먹는 액션 / 톰형이 찢었다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네요.
-
- 영화 <청춘시련> 메인 예고편
떠났다, 모두가. 분명 날 사랑한다고 했는데도. 어느 대낮, ‘밍량’은 데이트 중인 ‘유팡’에게 칼을 휘두르고 도주한다 그는 자신이 ‘유팡’의 전 애인이라고 주장하고, 사건에 휘말린 네 명의 청춘이 서로를 마주한다 도시를 충격에 빠트린 최악의 사랑 난, 떠나지 않는 사랑이 하고 싶어
-
- 티빙 <더 라임하우스 골렘> 예고편
잔인함과 극악무도의 끝, '골렘'이 런던에 나타났다
1880년 런던의 빈민가 라임하우스에서 세상을 발칵 뒤집은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언론사들이 이 사건의 반인륜적인 잔인함과 극악무도함에 대해 '골렘'의 소행이라고 연일 기사를 쏟아내는 가운데, 사건을 맡게 된 '킬데어' 경위(빌 나이)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극작가 '존 크리'가 사건과 연관이 있음을 직감하고 '골렘'의 흔적을 추적하며 점차 베일에 감춰진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 지는데...
살육과 욕망의 무대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