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2-25 22:06:13
낯선 오늘을 미망하는 시선
영화 <미망> 리뷰
미망 (Mimang, 2024)
낯선 오늘을 미망하는 시선
개봉일 : 2024.11.20.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러닝타임 : 92분
감독 : 김태양
출연 : 이명하, 하성국, 박봉준, 백승진, 정수지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종로 길거리. 한 남자가 통화를 하며 길을 찾고 있다. 그는 자신이 서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가다 보면 알겠지”라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그의 말대로 그가 아는 길이 나타난다.
영화 <미망>은 이 남자와 같은 태도로 정처 없이 걷고 걷고, 또 걷는다. 변화하는 길과 시간 위를. 걸을수록 낯선 길은 익숙한 길로 변하고 멀리 떨어져 있던 시간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다. 참으로 멜랑꼴리한 경험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특히 도시, 서울은 정말 쉴 틈 없이 변화를 반복한다. 정신 차려보면 무언가 사라져 있고 익숙해졌다 싶으면 낯선 무언가가 생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것들이 과거로 빨려 들어가지만 나는 과거로 갈 수 없기에 그것들을 잊은 채 낯선 오늘을 살아간다.
가끔은 이 낯선 오늘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오늘 하루 난 뭘 했지? 오늘 하루가, 오늘 있었던 만남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지?. 그저 시곗바늘을 따라 똑같은 자리를 달린 기분. 이런 찜찜함을 안고 잠들었던 밤이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미망>은 나의 이러한 의구심과 찜찜함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똑같은 자리를 달린 게 아니라는걸, 지금의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나를 잡아줄 변치 않는 무언가가 있다면 미래의 나도 길을 잃지 않을 거라는 걸 다시 한번 인식하게 만든다.
과거 연인이었던 남자와 여자는 길 위에서 재회한다. 어딘가 낯설어진 길과 과거 연인의 모습. 이 길이 맞나, 지금 내가 말 걸려는 사람이 그 사람이 맞나. 두 사람은 반신반의 상태로 그 길을 걷지만 여전한 남자의 걸음걸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 추억 같은 그대로 남아있는 익숙한 것들을 찾아낸다.
두 사람이 다시 각자의 길을 가면서 잠깐의 만남은 다시 과거가 되고 그 위로 현재의 새로운 만남이 덧씌워지지만 남자는 한 가지를 깨닫는다. 오늘 나는 12시부터 12시. 같은 자리로 돌아온 시계가 아닌 어제와 다른 나로서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을.
남자와 여자는 과거를 미망(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 하며 낯선 길 위를 미망(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한다. 그러다 작은 익숙함과 재회하고 자신의 발자취를 미망(멀리 넓게 바라봄) 한다. 마지막 미망은 잠깐의 위로를 주고 그들은 다시 각자의 낯선 길로 발을 돌린다. 미망과 미망과 미망. 낯섦과 익숙함, 인연의 과거와 현재. 이 단어들의 조합은 우리의 인생을 표현하기에 한치 부족함이 없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길이 바뀌고 사랑이 지나가고 서울 극장이 사라지고 친구가 죽는다. 남자와 여자의 마음은 아직 과거에, 서울 극장에, 또 떠난 친구에게 머물고 있는데 변화는 너무 빠르게 일어난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길을 헤맨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
동상 하나에도 얽힌 이야기가 수십 개인데 인연에 얽힌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남자와 여자. 그리고 친구는 추억을 떠올리며 지나간 과거와 새로운 현재를 다시 체감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과정이 그렇게 서글프기만 한 건 아니란 거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에 담긴 추억과 감정들은 오래도록 남는다. 모든 게 변한 길거리의 구석, 좁은 골목 한 편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소우처럼 일부는 유실됐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오래된 영화 <미망인>의 필름처럼. 도시가 변하고 극장이 사라지고 남자가 화가가 되고 친구가 택시 운전사가 되고 또 여자가 엄마가 되어도 지난 추억과 감정은 마음속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있다.
여자의 새 연인은 매번 길을 헤맨다는 여자에게 ‘자세히 보면 변치 않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을 보고 길을 찾으면 된다’고 말한다. 언제나 길 한편을 지키며 보행자들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무언가처럼 변치 않은 추억과 인연은 우리의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맬 때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오늘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어 내 마음속 변치 않는 무언가로 남을지 모르니 실망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며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낯선 길 위에서 여자와 재회했던 남자는 새 연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12시에서 12시. 똑 같은 거 같아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네요.”.
낯설고 허탈한 오늘의 끝에서 <미망>을 만난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12시에서 12시를 지나온 건 어제와 같지만 오늘의 나는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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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끼리 보기 좋은 영화 추천 '스위치' 스포일러 포함
스위치
(23.01.04 개봉)
감독: 마대윤
출연: 권상우, 오정세, 이민정 등
제목엔 추천이라고 써 놓았지만사실은 정말정말정말x100 비추천입니다 ;; 서프라이즈 쿠폰인가 그거로 2,000원에 봐서 망정이지 14,000원 제값 내고 봤으면 더 화딱지가 났을 거 같아요
저는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스위치 예고편... 딱 봐도 코미디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아바타나 영웅보다 기대했던 영화기도 합니다. 그 두 영화 때문에 입소문을 못 탔나 내가 다 아쉽다 싶기도 했고요 ㅠㅠ 근데... 그 두 개 아니었어도 관객 못 받았을 영화 같아요
무작정 비판하면 안 되겠죠? 일단 스토리는 다들 익숙한 내용이실 거라고 생각해요. 시크릿 가든부터 폴링 포 크리스마스까지 영혼이 바뀌는 드라마 영화 굉장히 많잖아요. 물론 '스위치'는 영혼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바뀌긴 합니다. 인기 펑펑 누리며 살던 개차반 탑스타와 그 아래서 일하는 배우가 꿈이던 매니저의 삶이 바뀌는 건데요. 저는 사실 그렇게 바뀌게 되었기 때문에 매니저 조윤이 개차반 성격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개차반 연예인한테 당하며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는...?? 근데 조윤은 박강이 배우 데뷔할 수 있도록 챙겨 주고 본인보다 더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도 나름 축하해 주고 굉장히 착해요,, 반성할 기미가 없게 만들어 버리죠. 오히려 매니저로서의 박강이 갑이 된 상황이랄까요?
대형 스포일러 하나 하자면 이 둘의 인생을 바꿔 버린 장치인 택시 기사님이 바로 박강의 돌아가신 아빠였는데요 이건 좀 놀라긴 했어요. 그러나 또또 아쉬웠던 건 아빠와의 스토리가 깊게 나오지 않았던 것? 아빠와 사이가 안 좋았다는 거, 그리고 택시 기사의 꿈이 배우였다는 떡밥까지 뿌렸는데 과거 회상은 물론 둘의 대화도 더이상 나오지 않아요
아 사소하게 아쉬웠던 거 하나 말하자면, 박강과 수현의 자녀가 왜 하필 쌍둥이였는가? 쌍둥이라는 걸 쓸 수 있을 만한 내용도 딱히 없던 거 같고 한 명은 똘똘한 딸, 한 명은 순수한 아들 역할인데 그냥... 한 명만 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무엇보다 '스위치'가 재미없다고 느낀 건 뻔하디 뻔한 대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가끔은 한 번 더 꼬아 주고, 또 가끔은 한 번 더 농담으로 툭 던지고 하는 센스가 필요한데 무조건 직관적으로 말하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만한 정말 필요한 말만 하거든요. 웃기라고 만든 씬 같은데, 솔직히 권상우 배우 오버 액션 아니었으면 안 웃겼어요. 제작진의 센스가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배우님들 연기가 다한 영화,,
어쨌든 너무 유연하게 흘러가는 스토리가 2시간 내내... 주인공 앞에 극한의 벽이 오는 게 재미있을 텐데 매니저로 일하면서도 탑스타가 되는 기회가 생기고 1년 내내 나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즐기며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1도 안 하는 거 같고...
물론 절정은 택시 기사가 현재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 부분인 거 같긴 합니다만 돌아가고 나서도 수현한테 다시 가서 결국은 해피 엔딩,,
차라리 현재의 조윤 아내가 수현이고 잘못 고른 한순간의 선택이 미래를 완전히 바꿔 버렸다 라는 식으로라도 가는 게 좋았을 듯해요. 박강에게 힘든 상황은 1도 없는 화...... ㅠㅠ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재관람의사: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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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년에게 돌 던질 자 누구인가.
이 글은 2023.05.03일 개봉 예정인 영화 [클로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오(에덴 담브린)와 레미(구스타브 드와엘)의 인생은 서로의 모습으로 가득 찬 시간들을 벽돌 삼아 쌓아 올린 성벽과도 같았다.
둘만이 할 수 있는 가상의 전쟁놀이에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적을 피해 달아나고 숨기도 했으며. 때로는 적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꽃이 가득한 들판을 숨이 헐떡일 때까지 달음박질치기도 했다.
견고한 성벽 안의 두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소년은 내달리고 온 날의 밤이면 잠 못 이룬 채 속살거리며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알 수 없는 불안을 가셔야만 했다.
그런 레미를 위해 레오는 노래를 불렀다.
무리에서 떨어진 오리와 도마뱀의 노래를.
절대 어울릴 수 없는 두 생명체이지만. 같은 감정을 나누고 있는 그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듯한 레오의 노래를 들으며. 레미는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마치 두 소년의 모습도 영원히 그러하기를 바라는 꿈을 꾸면서.
하지만 누가 와서 두들겨도 무너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둘 만의 성은. 또래 친구들의 눈길 몇 번에 주저 없이 금 가기 시작했다. 성벽 밖에 선 채로 레오와 레미의 보호막을 와르르 무너지게 한 친구들의 얼굴이 무너진 성 안에서 보이던 순간. 레미는 늘 곁에 있던 레오에게 손을 뻗었지만. 레오는 성큼성큼 걸어가 친구들의 손을 잡고 멀리 떠나고 있었다.
레미는 깨달았다.
오리와 도마뱀은 절대 함께할 수 없음을.
도마뱀;살기 위해 꼬리를 잘라야 하는.
레미의 모습은 영락없는 도마뱀의 그것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에 그 어떤 거부감이 없어, 시시각각 변하는 한 아이의 감정을 얼굴 표정 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그 감정이 혼자 오케스트라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이건.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것에 그 어떤 거부감도 없었다. 그것이 혼자 오케스트라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이건. 레오를 향한 다각화된 마음이건.
숨길 이유가 없었다.
그 마음들은 모조리 진심이었고, 레미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데 있어 감정 앞에 솔직한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레오는 어쩐 일인지 자신의 손을 놓고 자꾸 저 멀리 떠나가려는 듯했다. 레오는 더 이상 가상의 적군들을 볼 수 없었다. 아니. 보려는 의지를 상실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레오가 성벽 밖으로 주저 없이 발걸음을 옮긴 그 무렵부터, 레미는 함께 달리는 레오의 옆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보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축구, 다음엔 아이스하키. 그리고 영원히.
레오는 효과적으로 레미를 멀리했고. 그렇게 레미는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혼자 남게 되었다.
처음엔 배가 아픈 것만 같았다. 레오와 멀어질수록 생기를 잃어가는 자신을 걱정하는 아버지에게도 배가 아프다고 말했지만. 기어코 그 말과 함께 눈물이 터져 나왔을 때. 레미는 배가 아닌 가슴이 아픈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것이다. 고통의 근원지는 몸과 가까우면서도 멀었고. 정확하게 말할 수 없었지만 존재했으며. 실존하지 않길 바랐지만 생생하게 존재하는 생전 처음 느낀 이 고통에 레미가 과연 어떤 이름을 붙이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다.
도마뱀은 살기 위해 꼬리를 자른다고 했다.
하지만 레미에게 레오는 꼬리 정도가 아니었고. 새로운 꼬리도 레미에게는 필요 없었다. 레오는 레미에게 모든 것이었으며. 자신의 감정을 널뛰게 하는 장본인이었다.
오리의 곁을 떠나기로 한 도마뱀은 주저 없이, 레오의 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여행길을 선택했다. 영원히라는 단어의 무거움을 생각했을 때. 레미는 다시 한번 배가 아닌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어쩌면 아빠에게 둘러댈 때는 배와 가슴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었을지도 몰랐지만. 그때만큼은 명확하게 알았을 것이다.
오리;물 위에 떠 있기 위해 보이지 않는 발짓을 해야만 하는.
성 외곽이 무너지고, 친구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레오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친구들과 몇 걸음이나 멀어져 있는지를 계산할 수 있었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이미, 그것도 꽤나 멀어 보였지만.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그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심이 선 순간. 레오는 레미의 손을 뿌리쳤다. 무리에 섞이기 위해서라면 레미의 슬프고 상처받은 모습 정도는 기꺼이 나중에 위로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한 집단 속에서 효과적으로 섞이고 난 뒤에는.
레오의 모습은 겉으로 볼 때는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완벽히 무리에 섞여 있다고 해도 이질감이 없었다. 그러나 레오의 갈퀴 달린 발은 그 누구보다도 필사적으로 물을 움켜쥐며 무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레미와 처음 다툰 그날도. 점점 더 자신의 마음속에서 커튼 뒤에 숨어 있기를. 아니 숨기기 편해지는 레미를 향한 마음을 보면서. 레오는 괜히 레미의 모습이 눈에 밟히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레오는 나중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자신이 완벽하게 무리에 속하고 나면. 그때는 레미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허우적거리는 필사적인 발짓 자체에 집착하고 있었다는 것도 애써 외면한 채. 그마저도 나중엔 괜찮아질 것이라는 마음으로. 레오는 얼굴에서 모든 감정을 지워버리고는 열심히 갈퀴질을 했다.
그러나 레오에게 그 나중은 영원히 오지 못했다.
변명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속죄의 순간은 그렇게 영원히 레오의 인생에서 레미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문득 자신이 레미에게 불러주었던 노래가 생각났다.
왜 하필 두 도마뱀도, 두 오리도 아닌, 도마뱀과 오리였을까.
왜 같은 종에 속하는 두 마리라고 하지 않았을까.
레오는 이미 레미와 자신은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져. 결국 레미에게 상처를 입혔음을 알게 되자. 그제야 레오의 눈에서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레미는 배가 아프다고 했었다.
레오도 지금 만큼은 배가 아프다고 둘러대고 싶었겠지만.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레미가 그랬던 것처럼 아픈 곳은 배가 아니라 마음이었음을.
시선;그리고 동일화
영화 속의 소년들은 시종일관 달린다.
때론 그 수단이 자전거이기도 하고, 자동차일 때도 있으며 달리기일 때도 있다. 레오와 레미는 그 어떤 배경을 두고서도 앞으로만 달릴 뿐. 절대 시선을 뒤로 주지 않는다. 허투루 낭비되어 공허함을 좇는 시선이 없다.
특히 레오의 시선은 레미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로 정면보다는 측면의 모습을 많이 담고 있다. 아무런 표정, 감정도 없는 레오의 얼굴이 화면 가득 담길 때마다 과연 레오의 시선이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지도 궁금하지만. 문득 레오를 바라보는 이 카메라의 앵글이 레미의 시선이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미가 평생을 보았지만 결국 자신의 생 후반부에는 허락되지 않았던 레오의 옆얼굴. 레미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내 잊히지 않고 존재감이 가득한 이유도 아마 이런 앵글 처리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가장 큰 모티브가 되는 도마뱀과 오리는 처음엔 너무도 당연하게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레오가 눈물을 터뜨리는 말미에 가면 그 경계마저도 희미해진다. 무리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했던 레미의 모습이 오리 같기도 하고. 무리에 섞이기 위해서라면 꼬리정도는 뭐.라는 생각으로 레미를 밀어내는 레오의 모습은 도마뱀 같기도 했다.
그러나 두 인물의 선택과 행동이 달랐으며. 이로 말미암아 절대 넘을 수 없던 차이가 있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서로의 처지가 완벽히 달랐음을 레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이 장면이 주는 울림은 매우 크다. 레미와 웃으며 상상 속의 적군들에게서 도망쳤던 꽃이 만개한 들판에서. 시종일관 앞만 보던 레오가 단 한 번 뒤돌아 보는 장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레오라는 꼬리를 잘라내기 싫어 스스로를 내다 버리는 선택을 한 레미가 문득 생각난 듯. 레오는 뒤를 돌아보고 자신이 기꺼이 잘라낸 꼬리의 흔적을 슬며시 바라본다. 이해할 수 없었던. 혹은 계속 회피해 왔던 자신의 아픔과 레미의 아픔을 함께 이해한다는 듯이.
그리고는 시선을 들어 자신의 뒤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카메라의 앵글로 대변되는 레미의 시선과 눈을 마주치며 결국 레미에게 온전한 얼굴을 보여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최고의 장면이자 뼈아픈 성장의 증거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면서
한 사람이 생을 마감했음을 알리는 순간을 이보다 고급스럽게 표현한 영화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서진 화장실 문을 보여준 채 머무는 단 몇 초의 시간은 그 어떤 영화에서 묘사된 것 보다도 정확한 정보와 복잡한 감정을 한 아름 던져주었다.
느린 전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런 섬세함을 단 한숨도 놓치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감정들이 마음에 와닿을 때마다 수백만 개의 파편으로 흩어져 그에 상응하는 숫자만큼의 상처를 영화 내내 마음속에 남겼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경험 속에서도 화면에서 눈을 감히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영화는 아름답고도 슬펐다.
과연 레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레오도 마음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조금 더 자라났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다시 한번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씨네랩으로 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이 글의 TMI]
1. 독일어 공부는 잘하고 있습니다.
2. 공부하느라+번아웃이 너무 심하게 와서 다 내려놓고 잘 쉬었습니다.
3. 매우 많이 회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클로즈 #씨네랩 #루카스돈트 #에덴담브린 #구스타브드와엘 #에빌리드켄 #레아드루케 #영화리뷰어 #munalogi #최신영화 #영화시사회 #브런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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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짠내나는 철수들의 분데스리가
이 글은 영화 [선데이 리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인용하거나 퍼가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주세요.
사진출처:다음 영화
준일(이성욱)은 자신의 인생이 우성에게 태클당한 그 순간부터 곤두박질쳤다고 생각했다. 축구와 자신의 인생은 늘 하나였으니까.
그러니 내일모레 마흔인 나이까지도 대기선수처럼, 늘 벤치에만 있는 삶을 살았다. 가능성은 대기하는 인생의 길이와 반비례해 쑥쑥 줄어가고. 남들은 젊다며 부추겨 세울 법한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에는 소복하게 먼지가 쌓여있었다.
축구 경기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피할 수 없었던 그 태클에서 영원히 넘어져 있는 준일이니. 가족이라는 팀 안에서의 역할에 있어서도 잘 해낼 리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혼이라는 선수는 준일의 코 앞에서 입김을 내뿜으며 자신을 밀착 마크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혼만큼이나 더 압박감을 주며 저 멀리서부터 놀라운 속도로 다가오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실직이었다. 외통수도 이런 외통수가 어디 있을까.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외우던 말이었지만. 이 오합지졸을 너머 콩가루라 불러도 아무 이질감 없을 “철수 축구단”을 궤도에 올려놓아야 하는 일에서 만큼은 제아무리 가오가 육체를 지배한 준일이라 해도 피할 수 없었다. 여기서마저도 객기를 부렸다가는 정말 남은 건 레드카드 밖엔 없었으니까.
이름 짓는 센스도 참. 철수 축구단. 이라니. 무언가가 어디서 물러난다를 뜻임과 동시에 평범하기로 따진다면 홍길동만큼이나 흔해빠진 이름이 아닌가. 영희는 오징어 게임에 나와서 유명해지기라도 했지.(?) 철수라니.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러나 이 시답잖은 네이밍 센스에 그 어떤 반격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자신의 인생이 그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했다. 더 이상은 정말 물러설 수 없었고. 그 물러서지 못하는 전장에서 겨우 지켜내야 하는 것이라고는 평범해빠진 스스로의 삶이었으니.
그들의 삶은 철수 풋살팀의 훈련과정과 같았다. 시뮬레이션 속의 자신들이 벌이는 모의 시합은 완벽하다 못해 당장이라도 실현 가능할 것 같았지만. 현실은 오버헤드킥을 하려다 금쪽같은 득점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에 가까운. 마치 될 것만 같았던 매주의 로또 결과와 눈앞까지 아른거렸던 국가 대표 자리처럼. 가능성은 잔뜩 묻어있지만 현실과 이상의 간극만을 매번 알게 해주는 것만 같은 삶.
이름만큼이나 특출 날 곳 없는 신생 풋살팀이 경기에서 단번에 승리할 리가 없었다. 패배에 익숙한 삶을 잘도 눅눅하게 쌓인 먼지로 숨겨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물리적으로 맞닿은 패배는 그렇게나 시리고도 아팠다.
평소 같았으면 욕 몇 번 들어먹을 각오로 손 놓고 잠수를 타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루트였다. 그러나 소갈머리를 휘날리며 되지도 않은 상대를 악착같이 버텨내던 철수들은 준일의 마음에도 달라붙어, 그들을 향한 관심마저 완전히 철수할 수는 없게 만들었다.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처지의 정도는 다를지언정. 다들 마음속의 그 무언가를 해소하는 창구인 이 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만큼은 어렴풋이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사진출처:다음 영화
MOM(Man of Melona 아니고 Man of Match)이었던 박 씨의 부상은 코치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철수이기도 했던 준일을 기어코 그라운드로 복귀시켰다. 도망가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지만. 엉망진창 실력으로도 재미있다며 웃던 박 씨의 얼굴이 떠올라 준일은 결국 박 씨의 축구화를 신었다. 자신의 인생처럼 발에 전혀 맞지 않는 축구화를.
도망가지 않아서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물론 결과는 패배였고 예전 같지 않은 체력 덕에 그라운드 위에 널브러져 있어야 했지만. 준일은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려 넘어진 채 머물러 있던 그 순간에서 다시 일어섰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부상 이후 처음으로 아무 걸리는 것 없이 후련하게 웃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과 꿈의 거리는, 이혼한 부인과 아들이 사는 집 사이의 거리인 딱 두 정거장의 거리 같았다. 제일 움직이기 귀찮은 거리이면서. 코 앞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놓고 있느라 더 가기 힘든 곳처럼.
하지만 이제 준일은 조금은 달라졌음을 스스로도 느낀다. 축구를 향한 재미를 찾은 것처럼. 인생을 향한 애착도 조금은 되찾은 것 같다. 상대팀을 밀착 마크하던 철수들이 마치 자신의 인생에 남은 장애물도 대신 막아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고 표정을 잔뜩 찌푸린 채로. 이 지긋지긋한 동네 박지성들이 생각나 준일은 이사도 뒤로 미룬 채 핸들을 꺾었을 테지. 이젠 꽤나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마치면서
나는 늘 작은 영화들이 미네랄과 같은 요소라고 생각했다. 3대 영양소인 탄단지만큼 자주 거론되지는 않지만. 무시한다면 결국 거대한 몸도 쓰러뜨리고야 마는. 거대한 탄단지가 메울 수도, 볼 수도 없는 틈 사이를 단단히 메워주는 마지막 실리콘 역할을 한다고 말이다.
이 영화는 그만큼 소중하기도 하고, 마침 내게 정확하게 필요한 영화이기도 했다.
요새 나는 “모든 게 재미없음”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 어떤 것에도 웃을 수 없어 조금은 단조로운 삶에서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것도 너무 자주.
그러나 화려한 중고 신인(?) 준일의 복귀를 보며. 그리고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인물들을 보며 내게도 그런 초심이 있었음을 조금은 더듬어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았다. 이렇게 현실적인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분들이 없었다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애초에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재미.
어쩌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결국 마음속에서 나를 설레게 해 여기까지 이끌게 한 북두칠성을 다시 한번 어디 있는지 쳐다보게 해 준 영화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 되어준 영화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을 때까지. 혹은 다시 확신을 찾기 까지. 어쩌면 영화 리뷰어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의 TMI]
1.사랑니 진짜 카운트 다운 중. 짱구 됨.ㅠ
2. 너무 웃겨서 몇 번이고 터짐. 진짜 연기의 신들임.
3. 영화 시간이 짧은데 딱 좋음. 딱 축구 전반 후반 같음.
4. 과카몰리 먹고 싶어서 아보카도 1Kg산 나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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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근차근 새로운 블랙팬서의 등장을 설득해낸다
엄청나게 힘든 순간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특히나 주변 가족들이 하나둘씩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 남은 가족들의 상실감은 엄청나다. 그렇게 아주 가깝게 마음을 주고받던 사람들이 하나 둘 없어진다면 많은 시간을 애도와 마음 정리해 보내더라도 그 상실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자신을 떠나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 사람이 하려던 꿈이나 목표를 대신 이뤄줄 수도 있고 그가 했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그 트라우마를 멀리 쳐내려는 시도는 그 상실감을 벗어나려는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아마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상실감이 가족의 죽음일 것이다.
영화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는 죽은 가족의 상실감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블랙팬서> 1편에서 블랙팬서였던 티찰라(채드윅 보스만)는 영화 속에서 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나온다. 실제 그 역할을 맡았던 배우 채드윅 보스만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역할을 맡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동일하게 사망처리되었다. 영화 초반에는 1편의 주인공이었던 티찰라의 장례로 시작된다. 티찰라의 어머니인 라몬다(안젤라 바셋)을 중심으로 티찰라의 동생 슈리(레티티아 라이트)가 주도적으로 참석하는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지게 되고 아주 성대하게 영웅 블랙팬서의 죽음을 기린다.
블랙팬서 티찰라의 장례식으로 시작하는 영화
사실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는 1편의 동어 반복이 될 수도 있었다. 1편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진정한 블랙팬서라는 영웅으로 탄생하는 이야기고 그 영웅의 사명감을 깨닫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편의 실제 주인공인 티찰라가 죽었다는 것으로 출발하는 영화는 누가 다음 블랙팬서가 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어떤 방식으로 다시 블랙팬서가 등장할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영화의 극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티찰라라는 인물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굉장히 고결하고 훌륭한 리더로 그려졌었기 때문에 그다음 블랙팬서를 맡을 인물이 받는 부담감은 무척 크다. 그 모든 부담감을 가지고 출발한 영화는 그 부담감에 억눌리지 않고 차근차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영웅 블랙팬서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나간다.
영화 속 세계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와칸다라는 국가가 드러난 지 얼마 안 되었고 와칸다가 가지고 있는 금속물질인 비브라늄은 온 세계가 탐내는 물질이 되었다. 영화의 초반에도 드러나지만 국제회의에서 여러 나라들은 비브라늄을 세계와 나누라는 요청을 하지만 실제로 몇몇 나라들은 뒤에서 비브라늄을 얻기 위해 특수 부대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세계의 모습이 영화 초반에 그려진다. 또한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이용해 바다 깊숙이 묻혀있는 비브라늄을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 집착은 바닷속 깊은 곳에 있던 숨겨진 국가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만든다. 그 국가는 탈로칸이고 물속에서 살 수 있는 몸을 가진 존재들이 거주한다. 그리고 그들도 비브라늄을 바탕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무기를 만들어왔다. 탈로칸을 이끄는 리더 네이머(테노치 우에르타 메히아)는 세계가 그를 위협한다고 느끼고 세계와 전쟁을 하려고 한다.
혼란스러운 세계 그리고 새로운 위협의 등장
이 복잡한 세계의 문제에 직면한 와칸다의 지도부, 특히 라몬다는 최대한 평화적인 방식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네이머의 계략과 공격적인 전략에 의해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 안에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슈리는 미국의 젊은 기술자 리리(도미니크 손)를 구하러 갔다가 탈로칸의 위협을 맞이한다.
이번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는 상실감과 두려움을 같이 다루고 있다. 슈리는 가족을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삶의 의지를 많이 잃어버린 상태다. 상실감에 빠져있는 그가 맞이하는 건 세계가 자신들의 공간을 망가뜨릴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네이머다. 영화에서 네이머가 등장하는 초반만 하더라도 그가 가진 감정이 분노인 것 같지만 그가 더 파괴적이고 강력하게 행동하는 건 자신의 세계가 망가질 것에 대한 두려움의 감정이 더 크다.
비밀 국가인 와칸다와 탈로칸이라는 국가도 비슷한 구석이 많다. 인류와는 접촉하지 않는 은둔형 국가들이고 그들만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지만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연히 세계와 연결되면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고 큰 결정을 해야 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래서 이번 영화를 이끌어간다고 할 수 있는 슈리와 네이머는 자신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두려움을 서로 이해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접근하려 애쓴다. 그 접근방식의 차이는 결국 와칸다와 탈로칸의 전쟁이라는 엄청난 비극과 가까워지게 만든다.
블랙팬서를 이어받은 누군가가 슈트를 입고 활약하는 모습은 영화의 후반부에만 등장한다. 영화의 제목이 <블랙팬서>이지만 관객이 설득되고 받아들일 때까지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 과정을 차근차근 밟고 올라간다. 사실 2세대 블랙팬서가 누군지도 이미 공개가 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마블 팬들이 정말 그가 블랙팬서에 어울리는지에 대해 많은 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새로운 블랙팬서의 각성과 활약은 어느 정도 마블 팬들을 설득할 수 있다. 그만큼 새로운 블랙팬서가 왜 영웅이 되어야 하는지를 잘 설득하는 이야기로 구성이 되었다.
차근차근 새로운 블랙팬서의 등장을 설득하는 이야기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은 긴 러닝 타임이다. 161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다소 길게 느껴진다. 새로운 블랙팬서를 등장시키기 위해 세계의 혼란과 와칸다의 위기, 그리고 새로운 위협의 등장을 한꺼번에 설명하면서 중간중간에 너무 자세한 설명조의 이야기들이 포함되게 되었다. 이런 부분은 영화 중반부를 다소 지루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1세대 블랙팬서인 티찰라를 명예롭게 보내고, 2세대 블랙팬서를 꽤 멋지게 등장시켰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블랙팬서는 나쁘지 않은 모습으로 활약한다. 여기에 리리 라는 새로운 캐릭터는 향후 마블에서 아이언 하트라는 새로운 영웅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러니까 과거의 영웅을 제대로 떠나보내면서 새로운 영웅을 등장시켜 다음 마블 페이즈의 이야기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번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는 마블 페이즈 4의 마지막 이야기다. 사실 이번 페이즈 4에도 마블의 많은 영화와 시리즈가 있었지만 과거처럼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많은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지만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이야기도 뚜렷하게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새로운 블랙팬서의 모습은 관객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마블 시리즈는 내년 2월 페이즈 5의 첫 작품 <앤트맨 : 퀀텀마니아>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향후 새로운 블랙팬서의 활약도 기대된다. 이번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의 쿠키는 1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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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리들리 스콧. 거장이죠
이 글은 영화 [글래디에이터 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결혼이나 승진 같은 이벤트일 수도 있고, 인생의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얻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순간이 만약 배우에게 다가온다면. 당연히 자신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역할을 만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러셀 크로우라는 배우에게는 극 중에서 그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원수인 황제 앞에서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 내뱉는 순간이 바로 그렇게도 기다리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검투사들 앞을 스쳐 지나가는 그의 모습은, 화면상에서 봤을 때 상대 배우들에 비해 비교적 작은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압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의 극 중 이름에도. 그리고 배우로서의 이름에도 남다른 무게감이 생긴 뒤에 느낄 수 있는 후광효과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후광 효과를 만들어 낸 위대한 감독 리들리 스콧에게도 [글래디에이터]는 매우 특별한 영화다. 24년이 지난 지금에도 막시무스의 이름을 들으면 전율을 느끼는 관객들에게 속편을 선보이며 자신의 이름값뿐만 아니라 영화의 이름값도. 게다가 불세출의 영웅 막시무스에게도 톡톡이 값을 치러줘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님 개연성 어디 갔어요
사진출처:다음 영화
사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해도 겨우 본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그 우려(?)는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현실이 되어버렸다.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들은 1편에서 따왔지만 안타깝게도 개연성과 임팩트는 24년 전 영화에서 신나게 써 버려 이미 멸종한 것처럼 느껴진다.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는 루시우스(폴 메스칼)의 눈에 분노가 있다고 말한다. 전쟁 중 자신의 아내를 비롯한 시민들을 잃었으니 분노의 계기는 명확하다. 그러나 분노의 방향과 깊이는 애처로울 정도로 얕아서 영화 상에서 주인공에게 몰입하기 힘들다. 그나마 쌓아 올린 나노단위의 분노조차도 결국 마르쿠스(페드로 파스칼)를 경기장에서 만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덕분에 영화의 초반부에는 이렇게 말 잘 듣는 전쟁노예가 있었던가.라는 어이없는 생각마저 하게 한다.
초반부에서 자신의 뿌리를 다시 한번 알게 된 각성한 주인공이 후반부에는 독자적으로 "로마황제 프로듀스 101"을 찍고 있는 마크리누스에게로 칼끝을 겨누는 과정도 그다지 인상적이라거나 매끄럽지 않다.
그 연결고리로 선택한 것은 쌍둥이 황제의 존재이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그들이 잘못한 것이라 해봐야 화장을 무당처럼 하는 바람에 밤에 마주치면 무섭게 보이겠다 정도일 뿐. 인간성의 잔인함을 강조하는 것 외에 주인공과 크게 관련된 이벤트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 황제의 존재 이유는 마크리누스의 귀걸이보다도 작고 하찮게 보이고, 그로 인해 과연 그만큼의 품을 들여서 이들을 없앨 이유가 있었던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진출처:다음 영화
또한 2편이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주인공의 태생적인 한계에서부터 온다.
주인공에게 고유함과 더불어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막시무스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루시우스는 자신의 이름보다는 아버지의 이름 덕에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글래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가 등장하는 극초반부의 장면은 정말 많은 정보를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그것도 전장을 둘러보는 막시무스를 향해 인사하는 동료 병사들의 표정으로. 그를 향한 믿음과 존경. 전우애와 의지를 꽉꽉 채운 눈빛으로 말이다.
막시무스는 촉망받는 장군이었으며 분노를 장착한 정치게임의 패배자였고. 죽음이 그를 덮친다 해도 무릎 꿇기는커녕 어서 나를 갈기갈기 찢어보라며 포효할 인물이었다. 잔인한 전투 장면이 없이도 그의 걸음걸음마다 위엄이 느껴졌다.
그러나 루시우스에게 주어진 서사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너무도 옅은 데다 유약했고. 그 덕분에 루시우스는 아버지에게 그저 만담실력을 물려받은 호탕한 사람 정도로만 느껴진다.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힘이 실리지 않는 이유는 너무도 명백하다. 그는 로마 제국의 단 하나 남은 후계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핏줄을 아무리 영화라지만 살해할 리는 없다.
우리는 막시무스가 그토록 살아남기를 원했고. 화면 속에서 시간이 흐를 때마다 죽어가는 그를 보며 눈물과 안타까움을 삼켰지만. 아들은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온 세상 인물이 다 죽는다 해도 자신은 절대 죽지 않을 테니. 믿는 구석이 애초에 있는 사람의 전투가 간절해 보일 리가 없다.
거장의 장기자랑 타임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장이 자신의 이름을 지키는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십분 살려내 화면과 남은 시간 가득 채워내는 것.
혼란스럽고 실망스러운 초반부가 지나고 나면 후반부에는 우리가 감독에게 기대했던 모든 장면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관객의 눈에 안긴다. 소위 "큰 영화"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가진 요소들인 거대한 스케일과 장엄한 장면에서 갖추어야 할 카타르시스들을 모조리 느낄 수 있다. 기존의 검투 장면들 역시도 작정한 듯 화려하게 준비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거의 장면들은 아름답다 못해 심장을 뛰게 만들기 충분하다. 이런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감독은 지구상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 밖에 없을 것이며. 그의 존재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후반부 덕에 앞부분의 불쾌함이 조금은 날아간다.
물론 영화가 주는 장대함과 압도당하는 힘이 스토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장면 자체가 주는 웅장 함이라는 것은 아쉽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보상은 완벽히 가능하고. 정해진 결말로 가는 그 길마저도 조금은 기대로 채울 수 있다.
마치면서
내가 존 스노우 시절(대충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뜻) 두려움이 너를 구할 것이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꽤 오랫동안 내겐 미스터리와도 같았다.
한낱 평범한 사람인 나 조차도 두려움을 이토록 피하고 싶은데. 자신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버린 작품의 감독에게 이번 영화는 얼마나 피하고 싶은 과제였을까.
두려움에서 자신을 구해내기 위해. 거장은 스스로가 가진 모든 "치트키"를 활용했다. 주어진 두려움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응한 덕에. 이 두려움의 바다에 빠졌을(?) 거장은 뭍까지는 떠밀려 올 수 있었다.
머금은 모래를 내뱉고 따끔거리는 바닷물이 코에서 흐르는 걸 느끼며 진절머리를 쳤겠지만. 비로소 폐 한가득 신선한 공기를 마실 때는 안심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결과 또한 아마도 조금은 매콤하지만 다행인 평이될 것이다.
또한 다음번에 두려움의 바다에 빠졌을 때 무사할 행운이 다를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 글의 TMI]
1. 베이글 그만 먹고 싶은데 그게 안 됨
2. 아침 운동 너무 힘들다.
3. 너무 추워서 난로를 사고 싶은데 전기세가 걱정된다.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munalo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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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행 피해자의 상처와 결단
씨네랩의 초대로 개봉 전 시사회로 먼저 관람하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아줌마'라는 말을 들으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이기적이고 고집 있고 예의가 없는 촌스러운 이미지가 얼핏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사실 남성을 지칭하는 '아저씨'라는 말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왠지 더 어감이 좋지 못한 건 '아줌마'라는 단어다. 여러 미디어나 사람들 사이에서 무수히 전해지는 예의 없는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들은 현대 사회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어져 왔고 그렇게 소비되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모습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반화의 오류다. 많은 아줌마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일을 하거나 무언가를 하고 있다. 제 3자의 눈에 그들의 모습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보이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삶과 공간을 지키고 있다.
만약 시장에서 일하는 어떤 아줌마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면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아줌마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선뜻 쉽게 믿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그 피해에 대한 명확한 증거나 증인이 없다면 더더욱 그런 의심은 짙어질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깊숙이 박혀있는 그 고정관념의 이미지는 꽤 강력하다. 분명히 피해자인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깨끗하지 않다. 그 피해자가 아줌마라서 피해 사실의 신뢰성을 의심하거나 피해를 받았음에도 그 정도는 참고 넘기라는 의견도 생겨난다. 그런 시선들 때문에 피해받은 이후 어떤 사람들은 그 피해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조차 포기하기도 한다.
시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 오복의 이야기
영화 <갈매기>는 시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에게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주변에 무수하게 스쳐 지나가는 아줌마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 존재는 가까운 엄마 또는 이모와도 가깝다. 우리 주변에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그저 평범하게 보이는 중년 여성 오복도 그렇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줌마다.
영화는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일로 세 딸을 낳아 기르고 이제 둘째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오복(정애화)이 겪는 일을 차분히 보여준다. 둘째 딸(고서희)의 결혼식 준비에 약간은 들떠있는 모습의 그는 시장 사람들과 저녁 술자리에 참석할 정도로 시장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던 인물이다. 그가 어느 날 저녁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같은 시장 사람인 기택(김병춘)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 사건 이후에 오복의 행동과 감정은 매우 어둡고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가 주변 사람, 심지어 가족에게도 그 사실을 선뜻 이야기하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깝게 느껴진다. 영화는 피해 이후 오복의 시선을 줄곧 보여주며 그의 뒷모습을 영상에 담는다.
영화 속 오복은 왜 자신의 피해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못할까. 아마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자신을 향한 비난과 시선이었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한 두려움과 혼란이 그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렵게 했을 것이다. 이제 나이가 든 중년인 자기 자신의 모습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딸에게 나쁜 영향이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영항을 주었을 것이다. 피해 직후 오복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카메라에 그대로 잡힌다. 그의 표정과 행동을 가만히 보여준다. 그저 혼자 앓고 있는 그의 주변에 있는 가족들은 그가 그저 몸이 아프다고만 생각한다. 혼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혼자 출혈이 난 흔적을 지우면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하는 모습에서 무력감이 느껴진다.
영화에는 성폭행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저 잠깐의 검은 화면 전환으로 간단하게 넘어간다. 그런 잔인한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그 사건 이후 오복의 표정과 행동으로 그 피해에 대해서 설명한다. 빨간 피가 묻은 속옷을 목욕탕에서 씻는 오복의 표정은 마치 감정이 없는 것처럼 텅 비어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어두운 방에 누워있는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그의 표정과 피 묻은 속옷을 봤을 때, 그가 누군가에게 나쁜 일을 당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영화는 끝까지 직접적이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여타 비슷한 종류의 영화들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오직 그 인물을 비추면서 그 사건으로 인한 파장에 집중하고 있다.
피해자 오복의 시선으로 제시되는 피해의 잔상들
오복의 모습을 통해 피해자가 느낄 수 있는 답답함과 상실감이 잘 담겨있다. 이를 테면 그나마 가장 가해자와 관계가 가까운 어르신에게 가서 사과를 받아달라는 요청을 하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다. 가해자와 친한 이들은 오히려 오복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시장의 다른 사람들에게 증언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러 다니면서 힘들게 부탁하는 모습에서도 그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답답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작지만 오복은 그 피해에 대한 사과를 받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 속 시장 사람들은 정부 혹은 지자체와 시장의 권리나 보상에 대한 투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시장 사람들 간에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그냥 덮고 넘어가길 바란다. 각자의 보상금에 영향이 있을까 봐 오복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기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행동한다. 오복이 받은 심한 상처는 얼마 전까지 같은 곳을 보고 같이 투쟁했던 그 집단에서 마저 치유받지 못하고 오히려 오복은 그들에게 계속된 거절과 비난을 받는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대부분 그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심지어 오복의 남편(이상희)이 술에 취해 성폭행 피해를 받은 아내를 보고 좋았냐고 웅얼거리기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렇게 오복을 외면하는 그들을 비추는 화면에선 피해자인 오복보다 그들이 더 죄인 같고 초라해 보인다.
오복이 나이 들고 보잘것없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성폭행이라는 행위를 당했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일을 무심하게 생각해버린다. 우리 주변에도 그저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아줌마인 오복과 같은 일을 겪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꼭 성폭행이 아니더라도 어떤 피해를 받았다고 해도 온전히 도움이나 위로를 받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은연중에 자리한 나이 든 여성, 아줌마라는 색안경은 사람들의 올바른 생각을 방해한다.
오복은 어린 시절 다른 형제자매의 교육을 위해 자신은 돈을 버는 것에 집중했다. 결혼 후 세 명의 딸을 낳고 그 뒷바라지를 위해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일을 했다. 날개가 있음에도 육지 근처에서만 생활하는 갈매기처럼 그는 시장과 집이라는 그만의 울타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영화의 제목인 갈매기는 오복이 살아온 삶과도 닮아있다. 영화는 사건 이후, 늘 육지 근처에서만 지내던 오복이 날개를 피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가기까지의 과정이다. 그것을 돕는 건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두 딸뿐이고, 남편은 전혀 그를 돕지 못한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오복, 그 가치를 보여주는 영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오복이 다른 시장 상인들에게 증언을 요청하려고 각 상인들의 집을 하나하나 방문하는 장면이다. 마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주인공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가 자신의 직업을 되찾기 위해 동료들을 하나하나 만나서 설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데, 산드라가 그랬듯 오복도 거절이라는 벽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포기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각각 찾아가 설득하는 모습은 영화의 초반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망한 표정을 짓던 오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영화의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면 다양한 생각이 스치게 된다. 내 주변에 있는 아줌마들을 나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어디선가 1인 시위를 하는 누군가를 봤을 때 나는 그 사람이 왜 그런 시위를 하는지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피해자가 하는 말을 얼마나 신뢰했던가. 그들의 숨겨진 노력과 감정, 행동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나. 영화를 연출한 김미조 감독은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어떤 감정과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가 어두운 주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오복이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꽤 흥미롭고 긴장감이 넘쳐 계속 집중하며 영화를 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다양한 화두를 던지는 여성영화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지난 21회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대상을 공동 수상한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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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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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8] 살인자와 몸이 바뀌었다구? 내 몸으로 살인을 하고 있어!
해피데스데이 1편과 2편의 감독이 새로운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프리키 데스데이라는 영화로 지난 영화들과 비슷하게 코믹호러에 드라마적인 요소도 가미가 되어 있는 영화에요. 전작들과 코드가 맞았던 분들은 관람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잔인하고, 적당히 웃겨서 너무 타협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들을만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적정 수준의 재미를 보장하고 있어요.
여주인공 릴리 역을 맡은 캐서린 뉴튼이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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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모로우 워」 외계인 때문에 재입대하고 미래세계로 간다고?!ㅣ투모로우워 리뷰ㅣ아마존 프라임 비디오ㅣ아마존 프라임 영화추천ㅣ
? "투모로우 워(2021)" 영화소개 및 영화리뷰(*결말포함 아님)
#투모로우워 #아마존프라임 #투모로우워_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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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킹덤: 아신전> 공식 예고편
[2021년 7월 23일, 넷플릭스 공개]
비극과 배신이 삶을 덮친다.
기이하고 불길한 뭔가를 발견한다.
한순간에 가족과 동족을 잃은 여인.
오직 복수를 꿈꾸며 살아온 그녀가 짙은 어둠을 마주한다.
<킹덤>의 스페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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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무파사: 라이온 킹> 예고편
세상에 홀로 남겨진 고아에서 세상을 지배한 위대한 왕이 되기까지👑 라이온 킹, 그 시작의 이야기 [무파사: 라이온 킹] 12월 극장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