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1-03 08:59:48
오징어 게임 2 |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위선자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2>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 우승자가 되어 456억 원이라는 거액을 손에 넣었지만, 게임에서 죽은 친구와 동료를 잊지 못하는 '성기훈'(이정재). 그는 사람들이 돈을 위해 서로를 죽이는 이 게임을 중단시키기로 결심하고, 게임 진행의 총책임자인 '프론트맨'(이병헌)을 쫓는다. 그 출발점으로 기훈은 2년간 서울 지하철을 뒤진 끝에 게임 참가자 모집책인 '딱지남'(공유)을 찾아낸다.
딱지남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기훈은 마침내 프론트맨을 만나만, 곧바로 그의 계략에 당한 나머지 다시 한번 오징어 게임에 끌려간다. 경험을 살려 경마장 친구 '박정배'(이서환)를 포함해 모든 참가자를 살리고, 게임을 멈추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기훈. 그러나 '타노스'(최승현) 등 상금에 눈이 먼 참가자들은 그의 말을 부정하며 혼란을 초래하고, 그 사이 가명으로 게임에 참여한 프론트맨은 기훈과 그의 계획을 더 자세히 파헤친다.
1승을 더한 속편의 저주
<오징어 게임>이 쌓아 올린 금자탑은 화려했다.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흥행한 작품 중 하나였고, 제74회 에미상에서도 남우주연상과 작품상을 비롯해 여섯 부문을 석권했다. 자연히 시즌 2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겉모습은 기대를 충족시키기도 남았다. 주연 이정재는 <스타워즈>에도 출연하면서 더 중요한 배우로 성장했고, 임시완, 강하늘, 이진욱 등 각각 드라마 한 편의 주연을 맡을 수 있는 배우들도 결집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공개된 <오징어 게임 2>는 전 세계적인 흥행력과는 별개로 실망스럽다. 시작은 좋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힘이 부족하다. 여러 이유가 있다. 다음 시즌을 위한 징검다리라는 점이 명확하다 보니 극의 완성도가 부실하다. 지난 시즌에 비해 캐릭터들의 매력도 명확하지 않다. 새롭게 등장한 게임들도 지난 시즌에 비해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메시지다. <오징어 게임>은 잔혹하고 원초적인 자극을 통해 적자생존, 계급사회, 승자독식 같은 자본주의의 병폐를 고발했다. 3년 만의 속편은 주제의식을 계승하고, 확장시키려는 듯하다. 그러나 속편의 완성도와 존재 자체가 작품과 브랜드 간의 갈등을 극대화한 결과, <오징어 게임 2>는 위선자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했다.
<오징어 게임>과 경제적 합리성
자본주의 질서는 한 가지를 전제한다. 모든 사람이 경제적 합리성을 갖췄다는 가정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돌아올 효용이 극대화되는 선택지를 자율적으로 고른다. 이익이 되는 행동을 선택하고, 피해를 주는 선택은 포기한다. 3년 전, <오징어 게임>은 경제적 합리성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상황을 보여줬다.
'상우'(박해수), '일남'(오영수)과 기훈의 대립이 그 예시다. 상우는 456억 원을 얻기 위해서 우정, 연민처럼 인간적인 가치를 기꺼이 포기한다. 일남은 기훈과 마지막까지 내기를 한다. 눈 오는 밤에 얼어 죽기 직전인 노숙자를 아무도 돕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는 인간의 선악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인간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명제에 대한 판단이다. 일남이 보기에 남을 도와서 얻는 정서적 만족은 경제적으로 무의미하다.
기훈은 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이유로도 타인을 수단화하거나 타인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없다면서 상우를 끝까지 설득한다. 우승 상금도 다른 참가자의 목숨값이라 여기며 쓰지 않는다. 일남과 달리 사람들이 아직 경제적인 효용보다 중요시하는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사람은 경제적 가치 외에 인간성, 신뢰 같은 의미도 같이 고려한다는 것. 기훈은 극단화된 현실의 구조와 논리에 이상적으로 맞서는 인물인 셈이다.
그렇기에 오징어 게임 속 놀이들은 기훈의 이상과도 같았다. 언제나 아름답고, 소중했다. 하지만 어릴 적 추억은 막대한 상금 앞에서 피로 물들었다. 참가자들은 자기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타인을 속이고 죽이며 인간성을 내버렸다. 경제적 합리성이 극에 달한 오징어 게임이라는 시공간에서 기훈의 믿음은 추억의 놀이처럼 변색되고 타락했다. 이 간극은 다른 데스 게임보다 오징어 게임이 특히 잔혹하고, 충격적인 이유였다.
무승부로 끝난 러시안룰렛
<오징어 게임>이 기훈의 신념을 외적으로 무너뜨리는 이야기였다면, <오징어 게임 2>는 그 반대다. 기훈 스스로 자기 믿음의 모순에 빠지는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두 번째 시즌의 첫 화가 특히 인상적인 이유와 맞닿아 있다. 딱지남이 노숙자들에게 빵과 복권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대목, 그리고 기훈과 딱지남이 러시안룰렛을 하는 장면에 에피소드 7개가 전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빵과 복권 중 합리적인 선택지는 빵이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극히 낮으니까. 그러나 노숙자 대부분은 복권을 고른다. 딱지남은 그런 그들 앞에서 남은 빵을 짓밟는다. 일종의 세리머니다. 게임 요원이었던 그는 게임에 참가했던 아버지를 직접 죽인 후 조직에서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했다. 즉, 그는 일종의 신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을 체화했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낮은 확률에 인생을 거는 게임 참가자들은 도태된 쓰레기일 수밖에 없다.
오징어 게임을 내재화한 딱지남과 기훈의 러시안룰렛은 향후 펼쳐질 싸움의 함의를 암시한다. 그가 보기에 기훈의 대의는 모순 범벅이다. 뺨을 맞는 대가로 돈을 받을 때 그는 이미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존엄성을 포기했다. 인간적 가치 대신 물질적 효용을 선택했고, 그 끝에서는 우승 상금도 획득했다. 모든 이득을 챙긴 후에야 게임을 파괴하겠다고 날뛴다. 딱지남의 시점에서는 기훈의 정의가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러시안룰렛으로써 기훈의 모순을 드러내려 한다. 기훈이 먼저 게임의 규칙을 어기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기훈은 규칙을 깨지 않았다. 이에 딱지남은 규칙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먼저 규칙을 어기는 것은 기훈의 모순을 인정한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자기 인생까지도 부정한다는 말이니까. 다르게 보면 기훈도, 딱지남도 승리하거나 패배하지 못한 셈이다.
모순 끝에 패배한 2라운드
러시안룰렛이 1라운드였다면, 오징어 게임은 2라운드라고 할 수 있다. 프론트맨은 기훈의 바로 옆에서 게임에 참가하며 그의 신념과 믿음을 시험한다. 지난 게임 속 일남과 기훈을 연상시키는 언행을 보여며 기훈을 혼란에 빠트린다. 더 나아가 기훈을 자기모순 속에 가두고자 한다. 그 중심에는 새로운 규칙인 투표가 있다.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이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그때마다 기훈은 딜레마를 마주한다.
거액의 상금보다 생명과 도덕성 등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믿는 기훈의 이상은 투표 때마다 부정당한다. 그의 선의와 이상은 게임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합리성에 앞에서 무력하다. 지금까지 번 상금으로는 게임장 밖의 삶을 바꿀 수 없다는 논리는 기훈의 친구와 동료도 설득될 정도로 강력하다. 기훈이 핏대를 높일수록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게임은 중단되지 않는다"던 프론트맨의 말만 거듭 증명될 뿐이다.
결국 기훈은 1라운드와 달리 2라운드에서는 패배한다. 현실의 벽 앞에서 힘없는 이상주의가 얼마나 무용했는지를 증명하고 만다. 딱지남 앞에서와 달리 기훈은 자기 규칙과 소신을 저버린다. 인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던 그가 게임의 중단이라는 '대'를 위해 일부 참가자라는 '소'를 희생한다. 밤 사이 참가자 간에 솎아내기가 자행될 때, 기훈은 싸움에 휘말린 참가자들을 돕는 대신 사망자로 위장해 진행 요원을 공격할 기회만 엿본다.
따라서 <오징어 게임 2>의 클리프행어는 시작과 동시에 예정된 결말에 가깝다. 자신의 영웅 행세가 위선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기훈은 모순 없이 딱지남과 프론트맨의 논리를 진정으로 파훼할 방법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 신념을 고수한 캡틴 아메리카와 루크 스카이워커도 한 번 패배한 후에야 타노스와 다스 베이더를 꺾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난 데 없는 클리프행어
문제는 만듦새다. 설령 서사적으로 필요했더라도, 허술한 전개와 불완전한 내용 때문에 클리프행어는 작위적이다. 기훈의 위선을 드러내는 쿠데타만 해도 설득력이 없다. 그의 쿠데타 시도 자체는 자연스럽다. 기훈은 애초에 오징어 게임을 파괴할 작정이었으므로. 그러나 게임 중단을 원한 참가자들이 쿠데타에 순순히 가담하는 전개는 부자연스럽다. 지금까지 챙긴 상금만으로도 그들은 빚을 갚고 수술비를 낼 수 있기 때문.
즉, 기훈과 프론트맨이 대면하는 엔딩을 위해 이야기가 작위적으로 설계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오징어 게임 2>는 전반적으로 산만하다. 시즌 3을 위해 포석을 두는 데만 열중한 나머지 서사를 깔끔하게 갈무리하는 인물도, 눈에 띄는 새 캐릭터도 없다. 극을 주도한 딱지남과 프론트맨은 기존 캐릭터이고, 그 외의 인물들은 조상우나 '장덕수'(허성태)만큼의 생동감을 갖추지 못했다.
그나마 성전환 수술 비용을 벌기 위해 게임에 참가한 특전사 군인, '조현주'(박성훈)가 눈에 띈다. 희생정신과 의리, 정의감과 풍부한 전투 경험을 다 갖춘 그녀는 트랜스젠더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파괴하면서 유의미한 서사와 분량을 챙기는 데 성공했다. 탈북자 문제, 전세 사기 피해, 미혼모와 낙태 이슈, 청년층의 영끌 투자 열풍 등 여러 사회적 문제를 투영하려 한 시도 중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이기도 하다.
시즌 2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분량을 늘린 듯한 구성도 발목을 잡는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기훈과 준호가 섬으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준호의 섬 탐색은 곁가지로 밀려난다. 시즌 2에서 아무런 활약도 보여주지 못할 캐릭터를 위해 에피소드 하나를 날린 셈이다. 그 결과 클리프행어를 마주했을 때, <오징어 게임 2>가 다음을 위한 7시간짜리 티저처럼 느껴지는 실망감을 지울 길이 없다.
긴장감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오징어 게임 2>가 시청자의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킨 것도 아니다. 기훈과 프론트맨의 대립각을 강조하기 위해서 장르적 쾌감을 일부 포기한 대가다. 물론 게임 자체가 재미없지는 않다. 새로운 게임을 활용해 긴장감을 조성하는 시도는 나름대로 유효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직후에 제기차기, 공기놀이, 비사치기, 팽이 돌리기 등과 같이 지난 시즌에 없었던 게임을 배치해 예상을 빗겨 나간 구성이 대표적이다.
짝짓기 게임을 전환점으로 활용한 선택도 영리했다. 게임과 투표를 진행하면서 참가자들은 나름대로 서로 의지할 팀을 만든다. 그런데 짝짓기 게임을 기점으로 참여자들의 본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로 인해 불신의 씨앗이 커지고, 참가자들의 관계는 변곡점을 맞이한다. 짝짓기 게임이 일반적으로 단합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활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과 정반대 되는 양상은 더욱 흥미롭다.
하지만 두 번째 시즌이라는 예상된 함정을 피하지는 못했다. 동화 같은 세트와 동요가 배경으로 깔린 살육 장면은 본질적으로 지난 시즌이 보여준 폭력적인 스펙터클과 다르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더 지루하다. 한국 한정으로는 캐스팅이 이 문제를 심화한다. 지난 시즌과 달리 각자 드라마 주연을 맡아도 될 배우들이 대거 합류한 결과 누가 살고 죽을지 모르는 스릴을 거의 느낄 수 없다.
게임이 끝날 때마다 치러진 투표도 역효과를 낸다. 투표는 일종의 사회적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대화와 협상, 토론과 설득이 잘 통하지 않을 정도로 양극화된 한국 정치 지형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아슬아슬하게 갈린 투표 결과에 불복하는 모습 등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 투표도 세 번째에 이르면 긴장감보다는 지루함의 비율이 높아진다. 투표가 어떻게 진행되든 간에 게임이 계속 진행될 거라는 사실이 뻔히 보이기 때문.
위선자의 상술
결과적으로 <오징어 게임 2>는 속편의 존재 자체가 내재한 모순점을 노출하고 만다. <오징어 게임>의 메시지는 상술했듯이 명확했다. 탐욕으로 인해 극한으로 나아간 자본주의의 끝에 위치한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였다. 가난한 이들이 생존하기 위해 서로를 죽일 때, 그 과정마저도 상업화하고 즐기는 현대 사회의 구조와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 2>는 본말이 전도됐다. 날카로운 풍자는 잊고, 어린 시절 놀이를 잔인하게 만들면 성공한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췄다. 즉, 철저히 돈벌이를 위한 작품으로 변했다. 매텔, 크록스, 조니 워커를 비롯해 콜라보 대열에 합류한 수많은 브랜드는 그 방증이다. 황동혁 감독도 시즌 1의 금전적 보상이 충분하지 못한 나머지 계획에도 없던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으니 예견된 상황일지도 모른다.
물론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판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이미 <오징어 게임 2>가 갖가지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으니까. 넷플릭스 드라마 최초로 서비스 중인 모든 국가(93개국)에서 동시 1위를 달성했고, 첫 주에만 6,800만 시청수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드라마 역대 첫 주 최다 시청수도 경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 2>는 빚 좋은 개살구에 불과해 보인다. 시즌 1에 비해 덜 흥미롭고, 짜임새도 부족한 어린 시절 놀이만으로는 노골적인 상업성과 지독한 돈 냄새가 다 가려지지 않기 때문. <오징어 게임>이라는 브랜드가 <오징어 게임>이라는 작품의 메시지를 지운 셈이고,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시즌 3의 전개에 따라 시즌 2가 재평가될 여지가 있다' 정도가 아닐까.
Poor 형편없음
돈에 미친 개가 돈 냄새 묻은 개를 나무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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