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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DAY2025-10-01 20:06:35

어쩔수가없다 | 웃음이 떠나야 비로소 시작되는 영화

<어쩔수가없다>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박찬욱의 AI 비극

 

2024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애스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의 저서 <권력과 진보>의 핵심 개념은 '대항 권력(counterveiling power)'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이 '진보'의 열매는 기득권층에게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기술 발전의 방향성을 유리하게 설정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보편적 이익과 공정한 분배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유 민주주의 사회는 '대항 권력'을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자본가들이 새로운 기술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집단적 역량을 제도적으로 구성하여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제고하고, 기술변화에 대한 사회적 대응력을 높여야 하는 것. 산업 혁명과 디지털 혁명의 대조가 그 방증이다. 산업 혁명 이후로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보통 선거권을 확립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디지털 혁명은 달랐다. 플랫폼 자본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사이 노동자의 협상력은 반대급부로 약화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는 AI의 발전이 있다. 예를 들어 2023년에 미국작가조합이 파업을 일으킨 원인 중 하나가 AI였다. AI에게 일부 작업을 맡긴 뒤 이를 공동 작업자의 1차 자료(source material)로 간주해 인간 작가에게 원고료를 반만 주는 식의 악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대항 권력 없이 마주할 AI 혁명을 체감시켜 주는 영화다. 블랙 코미디 버전의 <권력과 진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웃기 바쁘다. 재취업을 위한 '만수'(이병헌)의 계획과 실행 과정은 말 그대로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결말로 향할수록 웃음은 실종된다. 만수의 발버둥이 남의 일이 아니고, 그의 미래 또한 어둡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 블랙코미디가 비극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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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희극

 

아내 ‘미리’(손예진), 두 아이, 반려견들과 함께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누리던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만수는 회사로부터 돌연 해고 통보를 받는다. 목이 잘려 나가는 듯한 충격에 괴로워하던 만수는, 가족을 위해 석 달 안에 반드시 재취업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는 후배의 도움을 받으며 면접장을 전전하면서 1년 넘게 마트에서 일하고, 급기야 어렵게 장만한 집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유일하게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제지회사인 '문 제지' 사장에게 무릎 꿇은 채로 이력서도 내밀어봤지만, ‘선출’(박희순) 반장 앞에서 굴욕만 당한 채 재취업에 실패한 만수. 이에 만수는 피비린내 나는 재취업 계획을 세운다.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서 경쟁자들의 이력서를 먼저 받아본 후, 자기보다 점수가 높을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더 나아가 선출까지 제거한 뒤 '문 제지'에 있 그의 반장 자리를 본인이 차지하겠다는 것.

 

 

'범모'(이성민)와 '시조'(차승원)의 경력과 스펙이 자기보다 뛰어나다고 판단한 만수는 우선 1등으로 꼽은 범모부터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만수의 계획과 실행 과정은 웃음으로 가득하다. 야산에서 범모를 미행하며 관찰하다가 뱀에게 물린 만수에게 범모의 아내 '아라'(염혜란)가 잘못된 처치를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범모의 집에 잠입했다가 아라의 불륜을 알아챈 만수가 범모에게 그 사실을 숨기려고 애쓰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특히 세 인물의 삼자대면 시퀀스는 관객 관점에서 희극이 따로 없다. 범모는 만수와 아라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오해한다. 만수는 범모를 죽이려 온 것도 까먹고 그의 잘못을 열거하며 범모를 힐난한다. 또 범모를 제압하려던 아라는 만수의 말에 동의하면서 오히려 범모를 책망한다. '고추잠자리' 음악 때문에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채로 서로 대사를 주고받는 이들의 모습은 덤 앤 더머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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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보면 비극

 

그런데 이 희극을 가까이 들여다 보면 마냥 웃을 수 없다. 범모는 평생을 헌신한 직장에서 헌신짝처럼 버려진 뒤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간신히 극복해서 재취업을 시도했으나,은 배우와 바람난 아내를 목격한 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아라의 처지도 기구하다. 연극 배우인 그녀는 번번히 오디션에서 탈락하며 꿈을 이루지 못한 채로 중년을 맞이했고, 남편과의 사랑도 뜻대로 이루지 못했다.

 

 

범모와 아라의 비극은 만수에게도 닥친다. 범모 살해 계획에 혈안이 된 나머지 미리와의 댄스파티 일정을 까먹은 만수. 그는 뒤늦게 도착한 파티장에서 미리와 그녀가 근무하는 치과의 원장인 '진호'(유연석)가 춤추는 광경을 목격한다. 남 일인 줄 알았던 불륜이 자기 눈앞에서 펼쳐진 것. 마치 <건축학개론> 속 '재욱 선배'가 나이 먹은 것처럼 얄미운 진호의 모습 때문에 만수의 충격은 더욱 생생하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만수는 딸에게 줄 용돈을 마련하려고 최선을 다해 구두를 파는 시조와 자기 자신을 겹쳐본다. 딸의 첼로 과외 비용을 마련하려고 핏빛 재취업 계획을 세운 본인 처지와 다르지 않으니까. 꿈꾸던 집을 마련했지만 정작 아내가 그 집을 싫어한다며 괴로워하는 선출에게서도 동병상련을 느낀다. 간신히 되찾은 어릴 적 집이 너무나도 소중한 만수와 달리 미리는 필요하다면 언제든 주택을 팔 준비가 됐으니까.

 

 

이 과정을 통해 <어쩔수가없다>는 관객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만수는 세 명의 희생자에게서 자신의 단면을 발견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고민하기 시작한다. 관객도 마찬가지다. 만수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피비린내 나는 재취업 과정이 마냥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히 입가에 걸렸던 웃음도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희극으로 막을 올린 <어쩔수가없다>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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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의 대비

 

여기까지만 보면 <어쩔수가없다>는 특별할 게 없다. 경쟁 사회의 민낯과 비극을 보여주는 작품은 이미 많으니까. 하지만 <어쩔수가없다>의 결말과 엔딩 크레디트는 AI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맥락을 더하면서 앞선 내용을 차별화한다. 결말에서 카메라는 마침내 '문 제지'에 처음으로 출근하는 만수를 비춘다. AI로 자동화한 제지 공장에는 단 한 명의 관리자, 만수만 있다. 사람이 없는 공장 내부의 모든 조명이 꺼지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마무리는 흥미롭다. 오프닝 장면과 상반되는 이미지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만수가 실직하기 전 만수네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오프닝은 특히 태양광을 강조한다. 만수가 다니던 회사 이름도 '태양'이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포옹하는 순간에는 가을 햇빛이 내리쬔다. 구름이 가득 낀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는 날 처음으로 '문(Moon, 달) 제지'에 출근하고, 어둠이 잠식해 들어가는 공장이 배경인 결말과는 퍽 대조적이다.

 

 

시작과 끝의 대비는 180도로 달라진 만수의 태도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도 할 수 있다. '태양'에서는 해고 근로자들을 대변해서 외국계 임원들에게 항의까지 하던 만수. 그러나 '문 제지' 면접장에 앉은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공장을 자동화해서 관리자 한 명만 빼고 전부 해고할 것이라는 계획을 듣고도 그는 자기 자리가 있을지만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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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와 AI 사이에서 잃은 것

 

비슷한 장치는 하나 더 있다. 바로 만수의 충치와 음주다. 손찌검하는 주사 때문에 금주하기로 아내와 약속했던 만수. 하지만 그는 선출이 건넨 폭탄주를 들이더니 2년간 자신을 괴롭히던 충치를 뺀찌로 뽑아버린다. 이를 계기로 만수는 다른 사람이 된다. 범모와 시조를 죽일 때와는 달리 일말의 망설임도, 양심의 가책도 없이 선출을 죽인다. 금주를 포기하고 충치를 뽑은 순간, 마치 마지막 양심과 인간성마저 내던져 버린 것처럼.

 

 

즉, 만수의 변화는 공동체 의식과 인간성 상실을 의미한다. 이는 만수네 가족의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이기도 하다. 결말에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함께 살 뿐이다. 미리는 아이들을 위해, 안정적인 일상을 다시 영위하기 위해 알면서도 그의 거짓말에 속아준다. 아빠의 비밀을 알아챈 아들도 예전처럼 만수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심지어 딸도 아빠가 출근한 후에야 첼로를 연주한다. 오직 만수만 그녀의 연주를 듣지 못한다.

 

 

그동안 만수는 '어쩔수가없다'면서 결단을 내렸다. 그는 살 사람은 살아남고 아닌 사람은 죽어야만 하는 경쟁이 현실적으로 '어쩔수가없다'고 되다. 그렇게 그는 가정을 유지하고, 집을 지키고, 자기 인생을 되살리기 위해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는 공장에서도, 집에서도 철저히 혼자다. 생존만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고, 공동체도 유지하지 못한다는 뼈아픈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 메시지는 엔딩 크레디트에서 완성된다. 오래된 종이 위에 감독, 배우, 영화의 이름이 타자기로 새겨진다. 그와 동시에 자동화된 로봇이 숲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파괴하는 모습도 중간중간 삽입된다. 그 덕분에 <어쩔수가없다>의 끝은 아날로그와 AI 사이에서 나무처럼 잘려 나가는 사람들의 이미지로 각인된다. 최후의 승리자가 된 만수도 예외는 아니다. 구름과 조명 꺼진 공장에 갇힌 그의 모습도 결코 희망적인 이미지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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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어쩔 수가 없을까?

 

결국 그 누구도 승리하지 못하는 비극. 이 비극의 원인은 사회적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만수, 범모, 시조, 선출에게는 대항 권력이 전무했다. 각자의 일상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끼리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싸워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경영진에게 반장 자리를 하나 더 고용하라고 건의하는 게 어떻겠냐는 만수의 말에 선출이 듣자마자 안 될 소리라고 손사를 치는 장면이 그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쩔수가없다>는 이 섬뜩한 현실을 더 과장해서 보여준다. 경쟁에서 탈락한 이들의 삶과 자리는 공백이 되어 버린다. 만수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은 단순히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지워진다. 범모의 죽음은 만수와 아라만의 비밀이 되고, 시조의 죽음 또한 만수네 가족의 비밀로만 남는다. 심지어 선출의 죽음은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지조차 않는다. 즉, 그들의 이야기 자체가 지워지는 셈이다.

 

 

최악의 형태로 AI가 도래한 사회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어쩔 수가 없다는 이유로 이 상황을 방치해야 할까?' '나한테 닥칠 수도 있는 이 미래에 대한 대비가 시작됐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이는 원경에서 찍은 구도의 장면들이 유독 뇌리에 각인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수가 도로 한복판에서 시조의 시체를 치우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는 시체를 본인 차 트렁크에 담고 현장을 정리한다.

 

 

 

이때 스크린은 반으로 나뉜다. 파도치는 밤바다가 왼쪽에 있고, 기암괴석의 절벽이 경계선이 되며, 오른쪽에는 바삐 움직이는 만수가 조그마하게 등장한다. 이는 서로 죽고 죽이는 생존 게임을 그저 파도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방치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게 되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임박한 미래에 대한 논의와 협의 자체가 부족한 현실을 발견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어쩔수가없다>는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 <권력과 진보>나 다름없다. 대항 권력이 없이 마주할 극단의 현실이 스크린 위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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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몰입 장벽

 

다만 관점에 따라서는 <어쩔수가없다>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렵고, 의도나 메시지에도 동의하지 못할 수 있다. 블랙 코미디라는 장벽을 넘지 못한다면 이 영화는 시작부터 몰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오프닝 시퀀스는 이 작품이 블랙 코미디임을 알아달라는 신호를 열심히 보내고 있다. 실제로 만수네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을 보여주는 일련의 컷들은 사실 상당히 연극적이고, 부자연스럽다.

 

 

만수와 미리가 마당에서 장어 바비를 굽고, 춤을 추는 장면만 보더라도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만수네 가족과 반려견이 하나 되어 포옹하는 장면도 작위적이다.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한 상태인 것을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어쩔수가없다>의 전반적인 톤이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블랙 코미디가 될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호를 못 눈치채거나, 신호에 동의하지 않으면 <어쩔수가없다>의 짜임새는 의심스러워진다. 극 중 묘사된 만수의 범죄 행각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범모와 시조가 서로 아는 관계라면서 경찰이 만수를 조사하지도 않고 수사를 종결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증거가 없을 수 없는 만수의 어설픈 범죄 현장을 떠올려 보면 그를 용의자로 안 지목하는 전개는 설득력이 없다. 아무리 그럴싸한 증언과 알리바이가 있더라도.

 

 

이에 더해 블랙 코미디로서의 정체성이 부각된 것도 아쉬울 수 있다. 만수가 아내, 아들, 경찰에게 의심받는 서스펜스가 강할수록 그의 범죄 행각이 비밀로 남게 되는 순간의 부조리한 쾌감은 강해진다. 그런데 경찰의 수사 과정이 스릴러보다는 코미디에 가깝게 연출된 결과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오히려 느슨해진다. <어쩔수가없다>가 박찬욱이라는 이름값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껴진다면, 이 지점이 결정적인 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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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결국 스크린 안에서도, 밖에서도 웃는 사람은 없다

작성자 . KinoDAY

출처 . https://blog.naver.com/potter1113/22402877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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