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2025-01-17 22:24:45
빛과 어둠의 마에스트로: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 리뷰
씨네랩의 시사회초대로 아내와 함께 용산 CGV에서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를 감상했다. 영화는 바로크 시대를 여는 화가 카라바조의 삶과 예술을 흡인력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의 예술적 천재성과 인간적인 결함이 빚어내는 삶의 극적인 대비는 영화의 핵심 주제로, 카라바조의 명암대비 화풍을 떠올리게 한다.
이태리 감독인 미켈레 플라치도는 카라바조의 대표적 화풍인 명암대비 기법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섬세한 연출로 카라바조의 그림이 그의 개인적인 삶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빛과 어둠의 상징적 대비로 표현했다. 이는 관객들에게 영화전개에 따라 카라바조의 걸작을 하나씩 감상하는 즐거움을 준다.
영화는 역사적 인물 카라바조의 생애를 다루면서도 허구적 요소를 결합해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영화 제목에 등장하는 ‘그림자’ 캐릭터는 허구적인 인물이지만, 카라바조의 삶과 작품 속에서 어둠과 빛이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매개체다.
그림자 역을 맡은 루이 가렐은 표정과 눈빛으로 캐릭터의 신비로움을 유지하면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리카르도 스카마르초(카라바조 역)는 천재적 예술가의 예민함과 격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관객에게 그의 고뇌와 열정, 분노, 아픔을 생생히 전달한다. 루이 가렐의 차가운 시선과 존재감은 카라바조의 열정적인 저항과 강력한 대조를 이루며 스토리를 전개한다.
카라바조는 조화와 균형으로 이상적 아름다움을 찬양하던 교회 통치하의 르네상스 화풍에 도전하며, 현실 속 인간의 고통과 소외를 작품에 담아내었다. 영화 속 카라바조는 권위와 관습에 도전하며, 교회의 제단에 걸릴 성화(聖畵)를 그리면서 거지, 불량배, 매춘부와 같은 사회의 하층민을 모델로 삼았다. 이런 선택은 엄청난 도발이었으나 거리의 매춘부가 그림 속 성모 마리아로 승화하는 일은 단순한 파격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신성함을 발견한 예술적 통찰이었다.
카라바조가 말한 "내 죄를 사해 달라고 요청했소만… 내 그림은 사면이 필요 없소."는 예술이란 도덕적 판단이나 종교적 사면을 구하는 대상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카라바조의 이 대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예술과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오늘날도 종종 정치적, 종교적, 혹은 사회적 기준에 의해 예술이 검열되거나 제한되는 상황이 여전히 존재한다. 영화는 카라바조의 말처럼, 우리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인 예술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평가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림을 사랑하는 이라면, 혹은 카라바조를 더 알고 싶은 이라면, 이 영화는 새로운 시각적 경험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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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 최후의 밤 / 地球最後的夜晚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지구 최후의 밤 / 地球最後的夜晚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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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
(최대한 스포를 안하고 쓴..감상)
이 영화는 컨셉(?)이 되게 독특하다.
1막은 기본적인 2D 그리고 2막은 3D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왜 불편하게 처음부터 3D도 아니고 굳이 중간부터 저런 불편한 설정을 하였을까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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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1막은 주인공의 기억더듬기라고 볼 수 있다.
본인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그렇기때문인지 시간이 순차적이지 않고, 과거였다가 현재였다가 한다.
그래서.. 이런 비순차적 플롯나열 덕분에 일단.. 빡집중안하면 중간중간 헷갈리고..
이게 '우리가 모르는' 주인공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다 보니.. 흘러가는 상황이 머릿속에 쏙쏙 박히지 않는다.. 어리둥절 투성이..
그리고 굉장히 지루하다.
어쨌든 이 기억더듬기파트가 한 1시간 10분정도 된다.
이 70분이 굉장한 난관이다.. 이것만 버티면.. 버티면.. 엄청난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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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시간 12분쯤 되면 갑자기 뜬금없이 영화 타이틀이 뜬다.
빠밤!!
이때 진짜 소름돋음.
그러면서 카메라 기법(?)이 마치 스팀게임처럼 변하고..
영화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3D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변화였던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어진다.
근데 이게 새로운데.. 사실 새로운 사람이 아닌..
뭔가 기억을 곁들인..사람들이다..
아니 분명 아는 사람들인데 다들 몰라
이게 뭐야?
하던 도중 깨달은게.. '아, 이게 주인공의 꿈(상상)이구나..!'
그렇다.
2막은 주인공의 상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감독이 이 부분을 3D로 만든것이다!
(만약 내가 극장에서 봤다면 바로 알아챘겠지..난 이게 1,2막 구성인지 몰랐다)
이 꿈에서는 주인공이 1막에서 본인이 되짚어 본 기억들을 바탕으로 그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조합해 나간다.
그리고 이 꿈 자체가 주인공의 상상이다 보니,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얘기해주기보다는 모두 상징으로 그들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이게 정말 재미있는게, 1막에서 대사로 언급되었던 부분들이 시각적으로 보여지면서 진짜 기억을 맞춰나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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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1막이든 2막이든 가장 중요한 심볼은 '시계'이다.
영화를 볼 때 시계를 중심적으로 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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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정확한 대사보다 '상징'으로 설명해주는 어찌보면 불친절한 영화이기때문에.. 조금 어렵다..
솔직히.. 한번더 봐야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진짜 영화관에서 3D로 보고싶다..!!
재개봉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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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애증의 시리즈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애증의 시리즈”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판타지, 모험, 가족
러닝타임 : 142분
감독 : 데이빗 예이츠
출연 : 에디 레드메인, 주드 로, 매즈 미켈슨, 댄 포글러, 앨리슨 수돌, 에즈라 밀러, 칼럼 터너
개인적인 평점 : 3/5
쿠키영상 : 없음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줄거리
1930년대, 제2차 세계대전에 마법사들이 개입하게 되면서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 그린델왈드의 힘이 급속도로 커진다. 덤블도어는 뉴트 스캐맨더에게 위대한 마법사 가문 후손, 마법학교의 유능한 교사, 머글 등으로 이루어진 팀에게 임무를 맡긴다.
이에 뉴트와 친구들은 머글과의 전쟁을 선포한 그린델왈드와 추종자들, 그의 위험한 신비한 동물들에 맞서 세상을 구할 거대한 전쟁에 나선다. 한편 전쟁의 위기가 최고조로 달한 상황 속에서 덤블도어는 더 이상 방관자로 머물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고, 서서히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데…
수많은 걱정과 기대감을 등에 업고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이하 신동사)>의 3번째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이하 신동덤)>이 개봉했다. 해리포터가 태어나기 이전 이야기지만, 개봉 순으로 따지면 해리포터의 세계관을 이어가고 있는 <신동사>의 등장은 설렘 그 자체였다. 호그와트의 교과서중 하나인 신비한 동물사전을 집필한 ‘뉴트 스캐맨더’와 교과서에 등장하는 신비한 동물들을 중심으로 무궁무진한 마법 세계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고, 3편을 넘어 5편까지 예정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이 세계관을 더 오래 볼 수 있을 거란 사실에 기뻤다. 뉴트 스캐맨더를 맡은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 또한 훌륭했고 말이다.
1편 공개 당시에도 해리포터 덕후들 사이에서도 약간의 호불호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스타트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편이 공개된 후, 팬들의 민심은 말 그대로 떡락 그 자체였다. 그린델왈드와 알버스 덤블도어의 등장까지는 괜찮았으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세계관이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고 신비한 동물들과 뉴트의 존재감은 매우 흐리게 변했다. 그리고 3편 <신동덤>에서 제작진들은 마치 이 시리즈를 당장이라도 포기할 것처럼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세계관이나 개연성을 따지지 않는다면 영화 자체는 나쁘지 않다. 마법 세계라는 흥미로운 소재가 있기에 뭘 하든 시각적인 즐거움은 어느 정도 가져가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과 예고편에서 기대했던 것들을 찾아보기엔 약간의 무리가 있다고 느꼈다.
이제 <신비한 동물들>의 타이틀을 떼도 될 듯한 전개
영화의 제목은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이다. 2편에 비하면 뉴트와 신비한 동물들의 비중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이 시리즈에 있는 ‘신비한 동물들과’라는 제목을 납득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신비한 동물’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으나 시리즈가 지날수록 어째 볼드모트에 맞서 마법 세계를 지키던 해리포터 시리즈를 답습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예고편을 통해 볼 수 있었던, 당당히 “머글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라고 외치던 그린델왈드의 모습에서 자연히 기대하게 됐던 액션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신동덤>에서 마법을 이용한 전투와 박력 넘치는 액션을 기대했다면 이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그래서 언제 제대로 싸우는데요?”. 영화는 전쟁의 언저리에서 손만 몇 번 흔들다 그대로 끝나버린다.
결국 <신동덤>은 머글과 마법 세계의 전쟁이 아닌 덤블도어가의 비밀과 정직, 순수한 마음, 깨져버린 사랑에 대해 기대어 진행된다. 잠시 이 시리즈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그 몇 번이 강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거기에 아직 모든 캐릭터가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새롭게 등장한 얼굴들은 그저 헷갈리는 요소가 되어버렸을 뿐, 각자가 가진 매력을 제대로 뽐내지 못한다. 한 명 한 명 뜯어보면 배우 본체도 그렇고, 캐릭터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매력을 보여줄 틈도 없이 한 곳에 뭉쳐버리니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덕후라 자부했던 내 마음이 식어버린 것인지, 영화 자체가 딱딱한 것인지 애매한 상황이긴 하지만… 슬프게도 난 이 영화에 해리 포터처럼 큰 설렘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그나마 살아남은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그린델왈드의 교체
새로운 그린델왈드의 등장! 많은 관객들이 궁금해했을 부분이다. 배우의 사생활로 인해 배역 교체가 이루어졌고,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그린델왈드의 설정은 이 변화를 어색하지 않게 만들었다. 최근 <어나더 라운드>를 통해 중년의 무기력함과 멋짐을 모두 보여준 매즈 미켈슨 배우는 그린델왈드라는 캐릭터에 자연스레 스며들었고, 무자비하게 광기를 뿜어대던 그린델왈드의 이미지를 한결 묵직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의 모든 서사가 담긴 눈빛은 전 편에 비해 한층 깊게 표현된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사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만든다. 훌륭한 비주얼에 달달한 눈빛이 더해지니 부족했던 서사가 뚝딱 완성된다. 앞으로 그린델왈드와 덤블도어의 이야기를 풀어가게 된다면 조니 뎁보다는 매즈 미켈슨이 만든 그린델왈드의 이미지가 더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살아난 뉴트의 존재감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를 본 팬들이 크게 아쉬워한 포인트 중 하나가 바로 주인공의 존재감이었다. <신비한 동물사전>에선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뉴트의 존재감이 2편이 되자마자 급속도로 쪼그라들었다. 기억에 남는 건 그린델왈드와 급속도로 쓸려가는 설정들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선 덤블도어와 그린델왈드의 서사와 더불어 뉴트의 존재감도 묻히지 않을 만큼 보장됐다. 물론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2편에 비하면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신동사 시리즈>는 순수하게 뉴트의 이야기만을 풀어내기엔 너무 멀리 왔다. 만약 워너에서 <신동사 시리즈>를 포기하게 된다 해도 뉴트의 캐릭터를 이용해 스핀오프라도 제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마법 세계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지만 2편에 비해 조금은 발전한 3편을 보고 있으니 그래도, 어쩌면! 이 시리즈를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억지 추억팔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해리 포터를 떠올릴 수 있었던 호그와트와 여러 주문과 상징물들은 결국 이 세계를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거기에 제대로 오픈된 그린델왈드와 덤블도어의 애절했던 과거와 덤블도어가의 비밀, 뉴트와 티나의 관계, 시대의 변화를 예고하는 덤블도어의 말, 그린델왈드와 추종자들, 크레덴스와 내기니 등 풀어내고자 한다면 무궁무진할 이 소재들이 이대로 증발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꽤나 슬플 것 같다.
하지만 시리즈 자체의 흥행이 <해리 포터>에 비해 부진했기 때문인지 <신동덤>의 흥행 결과에 따라 속편 제작이 결정 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걸 보니, 이 시리즈가 여기에서 멈출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 <신동사 시리즈>는 분명 엄청 설레진 않는데 이상할 만큼 미련이 남는 시리즈다. 어디 가서 자랑하고 홍보하긴 애매한데 그렇다고 해서 마냥 미워할 수도 없는 그런 애증의 관계가 되어버렸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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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내밀한 욕망으로의 여정
욕망: 우리의 가장 내밀한 본능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망한다. 아니, 이 지구상의 생명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탐하고, 더 즐겁고 행복한 것을 탐닉하고자 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우리의 본능이며, 이러한 본능은 우리들을 헤아릴 수 없이 번화하고 다채로워지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욕망의 종류는 다양하다. 꿈을 향한 야망, 야욕, 야심이 있는가면,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인 의욕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성적 욕망을 말하는 애욕, 정욕, 성욕 등도 있다. 사실, 욕망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따라, 욕망은 무엇으로든 이름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많은 욕구들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지만 가장 괄시 받는 것이 있다면, 두 말할 것도 없이 성욕을 꼽을 수 있겠다.
요즘은 꽤나 개방적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문화권에서는 성애를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 성행위는 암묵적으로 '많은 수가 수행하고 있으나' '차마 발설되지 못할' 욕망으로 치부되며, 그것은 나아 사람들로 하여금, 욕구 그 자체를 스스로 거세해 버리게끔 압박하기도 한다.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는, 가볍고, 방탕하고, 차마 상종 못할 '짐승'이 되기도 하고, '싸구려 인간'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것이 바람직한 성이라면, 우리는 그 욕망을 반드시 억압해야만 할까?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이런 의문에 대한 재치있는 답을 담고 있다.
1. 인생이 재미 없는 여자, '낸시'
'낸시'는 삶이 재미없다. 종교학 선생인 그는 평생토록 학생들에게 그들의 욕망을 단속하기를 강요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그의 인생은 브레이크의 연속이었다. 이건 이래선 안돼. 이건 이렇게 보일 거야.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래, 나는 재미없어. 하지만 내가 ~할 순 없잖아. 이런 말들은 끊임 없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그것은 족쇄가 되어 그의 삶을 지치고 지루하고 지난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그는 그 대단한 오르가즘은 문턱에조차 다다른 적이 없었다.
남편을 잃고 선생 일도 은퇴한 어느 오십 줄. 그런 낸시는 오랜 결심 끝에 새로운 자유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 방법이랄 것은 바로, 젊고 매력적인 남자인 '리오 그랜드'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2. 고지식함과 방탕함
그렇게 고심 끝에 생전 처음 보는 남자의 시간을 샀는데, 낸시는 그럼에도 걱정할 것이 많다. 나이 들어 볼품 없어졌을 몸을 보이는 것도 걱정스럽고, 소위 매춘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사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수없이 갈등한다. 눈 앞에는 근사한 리오 그랜드가 앉아 있지만, 그는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욕망이라는 이름의 낯선 세계로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마치 처음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허둥지둥한다. 초보 운전수가 운전을 할 때 손에 땀을 쥐는 것과 같이, 누구나 처음은 녹록치 않다.
그러니 낸시가 새파랗게 젊고 아름다운 청년인 리오를 마주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네 어머니는 네가 이런 일을 하는 거 아시니?" 같은 고지식한 말들을 쏟아내는 것 뿐이었으리라.
한편, 리오 그랜드는 아주 능숙하다.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시간'을 산 사람들을 그 각각에 맞추어 즐거움을 선사하는 법을 알았고, 그것에 그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다. 그의 여유로운 태도는 여기서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그는 전문가답게, 조금 특별한 손님인 낸시를 차분히 기다린다. 이윽고 그는, 낸시와의 오랜 대화와 얼마쯤의 춤을 즐긴 끝에, 낸시가 바랐던 것을 선사한다. 그는 말한다. 당신은 아름다우며, 얼마든지 원하는 바를 욕망해도 좋다고. 그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고.
3. 무심한 어머니와 상처입은 아들
그러나 그 대단한 리오 그랜드조차도 완벽하지 않다. 끝없이 사적인 물음을 일삼는 낸시와의 대화를 통해 리오는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아프고 쓰라린 기억을 자꾸만 떠올린다. 그는 어머니의 눈에 지나치게 방탕했던 탓에 미움 받았고, 그 탓에 많은 것을 숨기고 숨으면서 안전한 그만의 요새에 다다랐다. 그는 '리오 그랜드'라는 가면을 쓰고 손님들의 돈을 받음으로써 안전한 곳에서, 마음껏 방탕할 수 있는 시간을 영위한다. 그곳에서 만큼은 그는 탕아가 아니라 전문가가 되므로, 그는 그 안락함에서 빠져나올 수 없으며, 그와 동시에, 그 밖과 안을 철저하게 유리시키고자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런 리오를 그만의 '방'에서 끄집어 낸 것은 다름 아닌 낸시다. 리오가 자유를 되찾아준 바로 그 손님 말이다. 낸시가 과격하고 무례한 방식으로 리오를 '커밍아웃'시킨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한 것이라고 한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행동이었으니까.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있다. 바로 낸시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는 것.
리오에게 낸시는 손님이기도 하고, 저를 매정하게 저버린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 낸시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 다시 말해, '리오 그랜드'라는 인물을 속단하고 고지식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자신이 만든 어떤 '틀'에 밀어넣으려고 했던 일에 대해 사과했다.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너는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낸시는 리오가 자신을 달래며 해주던 다정한 말들을 그에게 되돌려준다. 낸시는 그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리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스스로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남의 욕망을 서둘리 재단하던 과거의 일들을 반성했다. 그 고지식하던 사람이, 비로소 진솔한 인간으로 변한 것이다.
어쩌면 낸시가 리오에게 해준 말은, 그가 어머니, 혹은 그밖의 많은 모진 말을 던지던 이들에게서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른다.
3. 우리가 외면해왔던 내밀한 욕망에 대하여
꼰대와 탕아의 만남은 썩 어울리지도 않은데다가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낸시와 리오는 어떤 부분에서 닮아 있다. 어떤 형태로든 간에, 욕망에 충실한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낸시와 리오는 서로를 만남으로서 각자의 구원을 받았다. 영화의 말미에서 두 사람은 비로소, 그들의 욕망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의 짐을 벗어든 순간, 욕망을 마주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진다. 낸시는 마침내, 그가 50년이 넘도록 느끼지 못했던 오르가즘을 맞이한다.
4. 우리는 욕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 영화는 내내 말한다. 욕망은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좀 더 스스로와 세상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거울에 자신의 맨몸을 비춰보며 미소짓는 낸시처럼,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좀 더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에게 색안경을 끼는 일만큼 비극적인 일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조선 땅에서 나고 자란 유교걸이라 이 영화의 핵심적인 소재인 '매춘'(리오는 시간을 사고 파는 일이라고 했지만)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할지는 조금 더 고민된다. 이것은 보다 복잡한 사회적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벗어 던져야할 족쇄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그걸 차치한다면, 글쎄, 영화 자체는 즐거웠다. 엠마 톰슨은 귀여웠고, 데릴 맥코맥은 섹시하다.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구원했으면서도, 고루한 로맨스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좋았다.
나는 나의 욕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오래 고민해 볼까 한다. 혹시 아는가? 나 또한 누군가에게서 구원을 받거나, 그를 구원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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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
영화 <로봇 드림> 리뷰
반려 로봇(Robot)을 가지게 된 도그(dog)
마치 미래를 그린 SF같지만, 배경은 아이러니 하게도 1980년대 뉴욕이다.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빈티지 무드의 뉴욕에 사람같은 동물들과 로봇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소한 풍경. 하지만 그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물과 로봇은 지금의 우리와 너무도 닮아 있어,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 처럼 보게 되는 영화<로봇드림>
도그의 삶은 외롭다. 인스턴트 음식을 데워 먹고, 혼자 따분히 TV를 보는 삶 다른 건물의 따듯한창엔 다정한 커플들이 보이는데, 나만 외로운 것 같은 기분. 그러다 문득 TV속 광고중에 눈에 띄운 문구 ARE YOU ALONE? 도그는 눈이 반짝 빛나며, 주문을 한다. 로봇이다. 그 때 부터 도그의 삶은 달라진다. 종종걸음으로 택배를 기다리고, 조립 설명서를 읽으며 어려운 로봇 조립을 해낸다. 도그가 로봇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과정은 어쩌면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도그는 포기 하지 않고, 로봇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도그는 로봇과 ‘함께’ 라는 것의 기쁨을 누리는 일상을 살게 된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 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처음인 로봇에게 도그는 많은 것을 알려주고, 보여준다. 손을 잡는 법 부터, 음악을 듣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핫도그를 먹고 바다에 간다.
이 행복이 끝나지 않을 것 처럼 즐거웠지만, 도그도 로봇이 처음이라, 물놀이 후 멈춰 버린 로봇을 데려 올 수 없게 되어 헤어지게 된다. 로봇을 다시 일으킬 설명서를 찾고, 장비를 구해 다음날 다시 해변으로 달려 가지만 해수욕장을 문을 닫았고, 도그는 로봇을 데려오기 위해, 몰래 들어 가려다 경찰에 잡혀 가고 만다. 피치 못할 사정.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도그와 로봇은 그렇게 이별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기에, 도그는 해수욕장이 개장하는 날을 메모해 냉장고에 붙여둔다.
시간이 흐르며 도그는 다시 일상을 살아나간다. 둘이 함께 들었던 음악을 들으며 로봇을 그리워 하고, 다른 친구들을 만난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의 즐거운 순간을 느끼며, 로봇을 떠올리지만 그 감정의 모양은 로봇과 다름을 느낀다. 한편 로봇은 모래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도그를 기다린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로봇은 꿈을 꾼다. 서로를 행복하게, 삶을 무지갯빛으로 다채롭게 채워 준 존재지만, 지금은 함께 할 수 없는 사이. 꿈은 그립고 슬펐다. 일상을 살아가며 그리워 하는 것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것 어느 쪽이 더 괴로울까? 모래밭에 파 묻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하루를 보내는 로봇의 일상을 지켜보는 동안, 이별의 참담함을 마음의 동굴 속에 들어가 겪어내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대사는 없지만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해주는 귀에 익은 음악들이 영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고,세심하게 연출 된 장면들로 각자 다른 사정에, 다른 방법으로 관계의 변화를 지나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고 있어,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느끼게 해준다.
때로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들. 곁에 있는 사람의 눈과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 오히려 대사가 없어서 더 많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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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개봉 20일째인 11일 오전 누적 관객 수 7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천만 영화를 향해가고 있는 <서울의 봄>이 개봉 3주차에도 150만여 명의 주말 관객 수를 끌어모으며 식을 줄 모르는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편<노량: 죽음의 바다>가 오는 20일에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과연 오랜만에 붐비는 극장의 관객들을이어서 가져올수 있을까요?
개봉 3주 차를 맞이한 <서울의 봄>의 화력은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고 주말 관객 수 15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11일 누적관객 수 7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올해 두 번째 1000만 영화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 6일 날 개봉한 <3일의 휴가>, <나폴레옹>이 <서울의 봄>을 꺾지 못하면서 나란히
2,3위를 차지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북미 공개 첫 주에 매출액 1000만 달러를
넘겼습니다. 일본에서 지난 7월 공개되어 약 754억원의 매출액을 벌어들였고, 국내에서는 지난 10월에
개봉하면서 199만명을 기록중입니다. 한편 영화 <트롤: 밴드 투게더>가 전 세계 13개국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위시>를 꺾고 흥행 반전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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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알고 있는 <영웅>의 질문 '누가 죄인인가?'
꼭 이루고 싶은 꿈
"나 이번에도 가" 안중근은 쉽지 않은 말을 가족에게 전했다. 왠지 모르게 무덤덤한 어머니. 그와 반대로 안중근의 아내는 슬퍼하고 있다. 아이들 곁에 있어주는 아버지가 그렇게도 어렵나? 아내 김아려는 울며 사정하고 있다. "집도 팔고, 예물도 팔고, 온갖 물건 다 팔았소. 나라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라고!" 금방 온다는 약속도 무색하게 될 것 같다. 떠난다면 어쩔 수 없다. 안중근을 보내는 가족들. 대의명분을 위해서 아들과 남편을 희생해야 할 때가 여지없이 온 듯하다.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과의 이별을 겪으며 마음 안에서 울었다.
시간이 지났다. 독립군 부대에 도착한 안중근. 때는 경술국치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몇 전투에서 이긴 안중근. 전쟁 포로로서 일본군 몇을 잡아놨다. 독립군은 이 일본군 몇몇을 처형하려고 한다. 총을 발포하기 직전이다. 겁에 질린 일본군. 그러나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깐!" 처형하는 독립군을 멈춰 세우는 독립군 대장 안중근. 하나하나 비틀어 죽여야 할 놈들이지만 인도주의로, 대의명분을 위해 일본군을 풀어주기로 한다. 청산유수의 화법으로 다른 독립군을 설득한 것이다. 그 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갑자기 독립군 소대에 폭탄이 날아든다. 일본군의 급습이었다. 안중근이 풀어준 일본군이 독립군 소대를 습격했다. 너무 많은 희생을 한 독립군. 동지들의 시체 속에서 안중근은 일본군의 가슴속에 흉터를 내려 총구를 겨눈다. 과연 그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의외로 감탄한 것
영화에서 장점으로 뽑을 수 있는 부분은 때깔이었다. 초반부에 이토 히로부미와 설희가 어느 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에 그림자가 진 연출이 두드러진다. 그 밑의 일본군 졸개는 얼굴 정면으로 밝게 보여준다. 반대로 김고은 배우가 맡은 설희는 흰 화장을 하고 있어서 두 사람의 얼굴 톤 대비로 인물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뮤지컬 신에서 김고은 배우가 노래를 부를 때 굉장히 어둡다가 빛을 활용해서 스포트라이트를 주는 방식은 영화를 뮤지컬처럼 표현한 좋은 연출이었다. 또 실내, 실외 가리지 않고 빛을 이용한 주인공을 조명시키는 방법은 영화 화법을 좀 더 간편하게 만드는 나름의 해결방안 중 하나였다.
또 정성화, 김고은, 나문의 배우의 퍼포먼스는 어마어마했다. 김고은 배우가 맡은 설희는 사실 극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 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 결과를 알고 있다. 그래서 설희가 직면한 문제가 좀 싱겁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김고은 배우는 이를 전혀 싱겁지 않게 연기한다. 사랑하는 주변인을 잃고 분노하는 한 여성의 내면을 매번 다른 눈물연기로 소화하는 능력은 역시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설희라는 인물의 눈물이 조선의 분노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설희에게만 배당되기 때문이다. 즉 나라를 대표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를 보여주듯 김고은 배우는 강강강의 빠른 템포 연기를 잘 소화한다. 뿐만 아니라 나문희 배우의 연기도 영화의 강점으로 돋보일 만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윤제균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이 <영웅>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아니라 아들을 숭고하게 떠나보내야만 하는 조마리아 여사의 애달픈 감정'이라고 언급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이 부분을 어느 정도는 살린 건 사실이지만 굉장히 전형적이고 상투적으로 묘사한 느낌이 있다. 이런 식의 신파 연출은 우리가 자주 봐왔다. <부산행>에서 봤었고 <비상선언>에서도 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투적인 연출을 뚫고 보여주는 나문희 배우의 카리스마는 극에서 가장 압도적이었던 요소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 방에서 그림자 진 얼굴과 함께 보여주는 슬픈 표정연기는 영화의 모든 이야기와 정서를 내포하는 엄청난 연기다. 작년 <샹치 : 텐 링즈의 전설>에서 양조위 배우가 맡은 만다린의 연기처럼 극을 이해한 배우의 좋은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성화 배우가 맡은 안중근 역은 이 사람이 뮤지컬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안중근이라는 배역에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 군데군데 보인다. 목소리 톤과 눈빛연기로 영화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조악한 캐릭터들
두 시간 동안 영화를 강박적으로, 분석적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과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맞을까.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어디서 봤던 캐릭터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박진주-이현우 배우가 맡은 마진주-유동하는 극에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제시되는 캐릭터들이었다. 찾아보니 원작 뮤지컬 <영웅>에서도 이 두 캐릭터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영화를 위한 만능 치트키는 아니다. 그럼 뭐 하러 각색을 하나? 각색을 한 보람도 없이 이 두 인물은 안중근의 곁에서 단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옆에서 '우와 대단해요'만 할 뿐이다. 극후반부쯤에 영화에서 동귀어진하는 장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 동귀어진이 안중근 의사랑 그렇게 크게 상관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인물이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는 지점 덕에 조악하게만 느껴지면 다행이다. 이 박진주-이현우 두 배우는 한 영화를 기점으로 이미지 변화가 절실함을 느낀다. 박진주 배우는 오래전 <써니>에서, 또 올해 <정직한 후보 2>에서 봤던 캐릭터의 연장선상을 보여준다. 심지어 자연인 박진주의 <놀면 뭐 하니?>의 출연 행보도 겹쳐 보인다. 그냥 가창력이 좋고 코미디 잘할 것 같으니까 섭외한 게 너무 티가 나서 거의 모든 것이 다 예상이 된다. 이현우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이 이현우라는 배우는 머지않아 커리어의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봤던 이미지가 <종이의 집 : 공동경제구역>에서 나왔고, 역시 <영웅>으로 이어지는 것은 작지 않은 문제다.
또 우덕순, 조도선 캐릭터 역시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구멍이 많이 보인다. 일단 이 두 사람이 영화 전개에 구멍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이 두 인물이 어떻게 퇴장하는가? 에 대한 근거가 더 묘사돼도 영화의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조재윤, 배정남 배우는 낡은 연출의 피해자처럼 느껴진다. <한산 : 용의 출현>에서 잠깐 나왔던 일본 장수는 어디 가고 좀 실없고 유치한 아저씨만 영화에 나온다. 배정남 배우가 맡은 캐릭터 역시 이상한 연출의 희생양이 되었다. 가령 이 사람이 처음 등장할 때 상의를 탈의하고 나온다. 여기서 이 인물이 상의를 탈의할 이유가 단 1가지도 없다. 그냥 '너희들 이런 거 좋아하지?' 싶어서 넣은 것이다. 심지어 그 상의를 탈의하는 장면 자체가 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해외에서 독립운동했던 분들이 신분 숨기는 거 모르고 이 영화를 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그걸 몰랐다고 하더라도 짧은 장면, 대사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 아닐까? 또 이 배정남 배우의 조도선 캐릭터 역시 구석구석 보이는 '윤제균스러운 캐릭터 특징'이 보인다. 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싫어할 법한 캐릭터 설정이 나왔다.
이는 조연캐릭터들과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김고은 배우가 맡는 설희 역시 이 이야기에서 비중이 있어야 할 이유가 그렇게 선명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물론 영화에서 키포인트가 되는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할이긴 하다. 그런데 굳이 이걸 설희의 서사를 깊게 다 보여줄 이유는 없다. 위에서 '조선의 평범한 소시민'을 대표하는 인물로 설정했다고 적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거의 돌림노래처럼 '나라의' '꿈' '조선'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민족주의적인 소재가 이 인물로 표현되지 않아도 안중근 자체가 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극후반부에 안중근과 조마리아 여사와의 관계에서도 이것이 내포되고 있다. 이 덕에 설희가 갖고 있는 모든 인물 서사가 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이 불필요함은 설희의 퇴장 신 덕택에 더 두드러진다. 이 설희의 공간적 배경은 너무 대놓고 그린스크린 티가 난다.
이거 어디서 봤는데
윤제균 감독이 연출했던 전작 <국제시장>은 왠지 모르게 <포레스트 검프>를 연상케 한다. 뭐 그럴 수 있다. 한국의 현대사는 기이할 정도로 많은 영화적 소재를 만들어냈으니까.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아무나의 아버지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도 괜찮은 작품 하나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윤제균은 이 선을 잘 타며 많은 관객들에게 감정적인 설득력을 차곡차곡 전달하는 감독이었다. 어떤 평론가들과 소수 관객들은 싫어할지 몰라도 쌍천만이라는 스코어는 절대 부정할 수 없다. K-상업영화의 시발점 같은 느낌? 이는 윤제균 감독이 자기화에 능한 예술가라는 말과도 닿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오마주와 변용은 느껴진다. 일단 초반부에 독립군과 일본군의 전투 신이 있다. 어떤 장면은 롱테이크로 묘사된다. 롱테이크를 이용한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생각난다. 뭐 이건 <1917>도 시도한 바 있으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워낙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군데군데 보이는 장면전환과 색감, 조명, 상하 움직이는 카메라의 공간이동이 박찬욱의 영화들 특히 <박쥐>가 생각난다. 군중이 모여서 노래 부르는 구도는 <레 미제라블>(2014), 설희의 특정 뮤지컬 신은 <알라딘>의 'speechless'가 연상된다. 어떤 구도는 김지운의 <밀정>을 갖고 온 듯하다. 개인적으로 글쓴이는 창작자 윤제균의 작품들을 동의하기 어렵다. 글쓴이가 스노비즘이라? 아니다. 윤제균이 상업적으로 감각이 좋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감각으로 이렇게 소심한 연출을 보고 싶지는 않다. 좀 더 개인적인 안중근과 독립운동 서사가 나오길 바랐다. 이거 오마주 한 것 굳이 볼 바에 그냥 역사책 한 권과 <알라딘>을 한번 더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작지 않은 구멍들
영화에서 느껴지는 큰 구멍은 두 개였다. 우선 영화에서 하이라이트에 매가리가 없다는 점이다. 윤제균 감독이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서사 내내 쌓다가 터트리는 극후반부의 감정전달이다. 그러나 영화 러닝타임 2시간 전부 과한 연출만 반복되다 보니 이 후반부가 좀 얕게 느껴진다. 극에서 삽입되는 노래들 가사 거의 대부분이 '장부' '조국' '꿈'이 반복된다. 또 노래마다 고음역대를 지르는 하이노트가 하나씩은 있다. 웅장한 편곡이 대다수다. 이러다 보니 영화 내내 산만한 기운이 후반부 힘을 줘야 할 때 분산되는 느낌이 든다. 분명히 감동적이어야 하는데 '1절을 못하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내 반복되는 패턴이 후반부에 또 나오면 그게 왜 하이라이트일까?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이 '영웅'이고 주인공이 안중근 의사면 어느 정도 기대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 연출은 영화에서 굉장히 큰 단점으로 느껴진다. 뭐 윤제균 감독 본인이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전개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 바가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후반부 조마리아와 안중근의 대화만큼이나 영화 내적으로 물리적인 분량, 밀도가 얕은 영화 연출은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이렇게 분량이 부족하다보니 스릴러로서 과정이 주는 긴박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과정 묘사도 과한 연출때문에 기억이 잘 안 난다. 이게 어려워야 암살 당시의 쾌감과 모자의 이별에 감동이 느껴질 텐데 말이다. 이렇게 필요한 쪽에 이야기가 없는 것들은 안중근 가족의 서사에도 마찬가지다. 조마리아와 김아려의 서사에 몰입할 만큼의 양이 없으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후반부에 잠깐 나오는게 전부다. 오히려 이 가족애를 강조한 연출보다 만두가, 또 불필요하게 적나라하고 길었던 폭력 장면만 기억에 남는다.
동귀어진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동귀어진이다. 뜻은 '상대방과 같이 죽음으로서 뜻을 다한다'라는 의미다. 설희도, 안중근도 동귀어진을 목표로 조국의 독립을 바라고 있다. 이 분들의 숭고한 희생은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사실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역사를 다뤘다면 더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한다. 김지운 감독이 <밀정>으로, 박찬욱 감독이 <공동경비구역 JSA>으로 보여줬듯이 말이다. 그러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서사와 '너네 이거 좋아하지'식의 몇몇 연출 때문에 감독의 진정성이 그렇게 깊게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이 영화가 <아바타 : 물의 길>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둘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쓴이는 동귀어진의 이미지가 아닌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해 더 집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사건으로 희생된 건 아니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봤던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처연한 감정전달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내내 감정적인 이 영화. '누가 죄인인가'라는 질문에는 뭔가 설득력이 없다. 아픈 역사를 아는 우리 모두 다 누가 죄인인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릴 수도 있고, '누가 죄인인지' 동시에 물을 시대가 된 지금 윤제균 감독의 질문은 와닿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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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소공포증을 증발시킨 곧 역주행을 불러올 실화 영화[결말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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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도그로 잃어버린 몸찾는 액션 스릴러!
윤계상 배우가 주연을 맡은 유체이탈자가 개봉했습니다.
12시간 마다 유체가 이탈하여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간다는 신기한 설정인데요.
게다가 다른 사람을 옮겨다니는 사람이 기억을 잃은 상태라 더욱 긴장감을 높이죠.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긴장감은 높습니다.
핫도그와 노숙자를 통해 실마리를 찾아가게 되는데요.
근접액션, 차량 액션, 총기 액션 등 다양한 액션이 포함되어 있어 볼거리도 많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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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walke starring actor Yoon Kye-sang has been released.
It's a strange setting that the fluid escapes every 12 hours and enters another person's body.
In addition, it raises tension even more because he who move around people have lost his memories.
The movie lead the story with limited space and limited characters, but the tension is high.
the main character track clues through hot dogs and homeless people.
There are many things to see as it includes various actions such as close action, vehicle action, and gun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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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세자매>
- 각자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던 세 자매는아버지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는데...내 부모에게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었던,문제적 자매들이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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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흘> 1차 예고편
2024년 대미를 장식할 역대급 오컬트 호러 영화가 나왔다! 박신양X이민기X이레의 색다른 연기 변신! [사흘] 1차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