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5-01-28 12:27:10
로히림의 전쟁 | '반지의 제왕'이라서 눈감는 안일함
<반지의 제왕: 로히림의 전쟁>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공주로서의 삶을 답답해하며 전사가 되고 싶어 하는 로한의 공주 '헤라'(가이아 와이즈). 어느 날, 그녀는 소꿈친구이자 웨스트마크 영주 '프레카'(숀 둘리)의 아들 '울프'(루크 파스콸리노)의 구혼을 받는다. 그러나 곤도르와 혼약을 맺은 로한의 왕 '헬름'(브라이언 콕스)도, 연심이 없었던 헤라도 구혼을 일언지하로 거절한다. 헬름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낀 프레카는 결투를 청하고, 헬름은 결투 중 예기치 못하게 프레카를 죽이고 만다.
이에 격분하며 복수를 다짐하며 자취를 감췄던 울프. 그는 수년 뒤 로한의 적인 던랜드인을 이끌고 나타나 로한의 수도 에도라스를 습격한다. 헬름과 두 아들 ‘할레스’(벤자민 웨인라이트)와 ‘하마’(야즈단 카푸리)는 기마대 로히림과 함께 전투에 나서지만, 내부의 배신이 겹치면서 대패한다. 두 왕자를 모두 잃은 헬름과 헤라는 울프의 군세에 밀려 나팔 산성에 그대로 고립되고,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킬 방도를 찾기 시작한다.
높고도 험한 <반지의 제왕>이라는 벽
영화팬들 사이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도는 말이 있다. 20년 전 <반지의 제왕> 포스터가 과장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팩트였더라. 아직까지도 '21세기 최고의 판타지 영화'라는 마케팅 문구는 <반지의 제왕> 몫이기 때문. 피터 잭슨 본인이 만든 <호빗> 삼부작도, 아마존 프라임이 심혈을 기울인 <힘의 반지> 드라마도 10억 달러 흥행과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동시에 달성한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에는 비견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판타지 영화 팬들은 <반지의 제왕>을 늘 그리워한다. 이 시리즈를 처음 본 전율을 언제 다시 느껴볼까 궁금해하면서. 이는 <반지의 제왕: 로히림의 전쟁>(이하 <로히림의 전쟁>)이 낯선 외양에도 불구하고 특히 궁금한 이유였다. '반지 전쟁' 250여 년 전 로한의 왕 헬름과 그의 딸 헤라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피터 잭슨과 앤디 서키스가 제작할 영화 <반지의 제왕: 골룸 사냥>에 앞서서 팬들을 가운데땅으로 초청했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약 한 달 늦게 공개된 결과물은 다소 실망스럽다. 원작에서는 이름조차 없었던 주인공 '헤라'의 서사는 평범하고, 그녀의 활약상을 보각한 각색은 부자연스럽다. 카미야마 켄지가 맡은 애니메이션 작화도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그러나 판타지와 <반지의 제왕>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로히림의 전쟁>을 싫어할 수 없다. 곳곳에 삽입된 <반지의 제왕>과의 연결고리를 찾다 보면 아쉬움이 절로 잊히기 때문이다.
에오윈을 넘지 못한 헤라
<로히림의 전쟁>의 성패는 헤라에게 달려 있었다. 애초에 원작에 없는 인물의 재조명이 기획 의도니까. 그런데 정작 헤라는 새로울 게 없다. 그녀는 공주로서의 삶을 답답해하며 전사가 되길 꿈꾼다. 공주로 태어났기에 다른 왕족과의 혼인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헤라는 모든 구혼을 거절한다. 대신 그저 말을 달리며 모험을 떠나는 삶을 꿈꾼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주 접한 말괄량이 공주가 바로 헤라다.
문제는 헤라와 똑같은 캐릭터가 이미 20년 전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등장했다는 것. 로한 제2왕조의 마지막 왕인 세오덴의 조카딸이자, 제3왕조의 첫 번째 왕 에오메르의 동생인 '에오윈'(미란다 오토)이 주인공이다. <로히림의 전쟁>에서 내레이션도 맡은 그녀는 전투에 나선 남자들을 기다리기만 하는 처지를 답답해하며 남몰래 무술을 연마했다. 심지어 왕명을 어긴 채 '펠레노르 평원의 전투'에 나서서 마술사왕까지 죽였다.
그런데 두 캐릭터가 겹쳐 보일수록 헤라는 에오윈에 비해 매력이 부족하다. 에오윈과 달리 헤라는 완성형 캐릭터이기 때문. 에오윈은 공주에서 전사로 변모해 가는 인물이었고, 관객도 그녀의 좌절과 성장을 함께 겪으면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헤라는 이미 완성된 전사다. 그러다 보니 관객은 그녀의 감정선에 이입하기 어렵고, 그저 활약상을 구경할 수밖에 없다. 헤라에게서 에오윈의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는 이유다.
<반지의 제왕 2> 다시 보기
그 결과 <로히림의 전쟁>에서는 프리퀄 겸 스핀오프만의 매력이 돋보이지 않는다. 사실 영화가 다루는 사건 자체의 한계가 명확하다. 사건의 전개나 세부적인 전투 양상이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이하 <반지의 제왕 2>을 반복하기 때문. 아이센가드의 적, 수적 열세 상황에서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는 주인공, 그 순간 헬름 협곡 위에서 등장하는 로히림 등.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적군이 오크가 아닌 인간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헤라는 이처럼 <반지의 제왕 2>의 반복에 불과한 이야기에 변수를 창출할 수 있는 존재였다. 원작 소설은 그녀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으니까. 그저 헬름에게 딸이 있었고, 그녀를 향한 울프의 구혼을 거절했다는 내용만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헤라를 어떤 캐릭터로 묘사하고 그녀에게 어떤 이야기를 붙여주느냐에 따라 <로히림의 전쟁>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극 중 헤라는 기존 캐릭터들의 조각모음에 불과하다. 그녀는 그저 세오덴처럼 농성하고, 아라고른처럼 최후의 돌격을 결심하고, 레골라스처럼 숱한 적군을 무찌르고, 간달프처럼 지원군을 끌고 온다. 기존에 못 본 역할을 선보이는 게 아니라, 여러 캐릭터가 맡았던 역할을 혼자 해낼 뿐이다. 결국 <로히림의 전쟁>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는 <반지의 제왕 2>를 일본풍 애니메이션으로 그린 것에 불과해 보인다.
실수는 반복된다
오히려 헤라의 존재가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장애물이 되는 구간도 적지 않다. 기존 서사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헤라의 활약상을 부각하려다가 전개가 꼬이기 시작한다. 단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은 헤라의 활약상을 덧댄 흔적이 가려지지 않은 셈이다. 이는 <호빗> 3부작에서 소설에 없던 오리지널 캐릭터, '타우리엘'이 중심이 된 로맨스가 등장할 때마다 영화의 흐름이 끊겼던 문제점과도 유사하다.
특히 헤라가 등장할 때마다 전투 시퀀스의 흐름이 꼬이는 경우가 잦다. 아이센 여울목에서 펼쳐진 전투와 수도 에도라스의 함락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시퀀스에서는 크게 세 주체가 등장한다. 헬름과 군대는 전투를 펼치고, 울프와 그의 본대는 헬름의 군을 우회해 수도 에도라스로 진격하고, 헤라는 울프의 공격으로부터 사람들을 대피시키며 수도를 방어한다.
그런데 전투가 진행될수록, 특히 헤라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시점부터 세 주체의 행적은 꼬이기 시작한다. 분명 여울목에서 부왕 옆에서 전투 중이었던 헬라스가 에도라스로 먼저 진군한 울프를 갑자기 앞지르는 식이다. 본편에서 엘프인 레골라스가 간신히 대적한 무마킬을 헤라가 혼자 죽이는 과장된 묘사도 시리즈의 일관성을 저해한다. 헬름 협곡에서 헤라와 그녀의 시녀 올윈이 숱한 적군을 대적하는 전개도 같은 맥락에서 의아하다.
프리퀄을 지탱하는 각색과 작화
안일하게 전편의 영광에 기댄 것 같은 헤라 캐릭터의 만듦새는 군데군데 몰입도를 높인 장점과 대조되기에 더욱 아쉽다. 각색한 울프의 서사가 대표적이다. 원작에서 그는 아버지를 죽인 헬름을 향한 복수심 때문에 로한을 침략한다. 반면에 영화는 울프의 동기를 더 구체화한다. 그가 헤라에게 품은 연심이 집착으로 변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 덕분에 승전하기 직전 그가 헤라를 놓지 못해서 패배하는 전개도 그저 허망하지는 않다.
헬름의 아들 하마의 최후를 변경한 각색도 인상적이다. 원작에 그는 나팔 산성 앞에 주둔한 울프의 군대를 기습하다가 사망한 반면, 영화에서는 울프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헬름이 보는 앞에서 처형당한다. 이는 헬름의 좌절감, 광증, 복수심을 강조하며, 더 나아가 헬름 협곡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이유를 알려주는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처럼 <로히림의 전쟁>은 원작이 간략히 다룬 감성적인 측면을 깊이 파고든다.
각색 외에는 작화가 놀랍다. 카미야마 켄지가 본래 배경을 그리는 미술 스태프 출신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원경에서 보여주는 가운데땅 풍경은 그림인지 실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밀하다. 일례로 오프닝의 경우 평원에서 말을 타는 헤라와 그 위를 날아가는 독수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순간적으로 실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시를 유발한다. 나팔 산성의 전경을 비추는 순간도 실사 영화 부럽지 않은 장엄함이 느껴진다.
다만 전투 시퀀스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로히림의 전쟁'이라는 부제만 보면 실사영화 속 로한의 기병대의 웅장한 돌격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림만으로 실사영화 수준의 장대한 전투 시퀀스를 보여주기에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그나마 보름달을 배경으로 프레알라프가 이끌고 온 지원군이 울프의 군대를 공격하는 장면만큼은 명장면으로 뽑기에 손색없다.
가운데땅은 여전히 반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히림의 전쟁>에는 <반지의 제왕> 팬이라면 아쉬운 대목이 눈에 밟혀도 모른 척 넘어가 줄 수밖에 없는 포인트가 적지 않다. 사루만의 재등장 때는 작고한 크리스토퍼 리가 <호빗> 촬영 당시 더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헤라가 반지만 찾는 모르도르의 오크들을 만나고, 그 순간을 궁금해하는 간달프와 헤라가 연락을 취하는 대목 또한 '반지 전쟁'과의 연결고리를 암시하기에 흥미롭다.
전반적으로는 <호빗: 다섯 군대 전투>와 유사하다. <반지의 제왕>에 못 미치는 완성도가 아쉽지만, 아라고른과 레골라스의 우정을 암시하는 대목이나 노년의 빌보 배긴스를 연기한 이안 홈이 출연한 순간에 결국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뉴라인 시네마 로고가 등장하고 로한의 테마 음악이 흘러나올 때부터 예견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Acceptable 무난함
'반지의 제왕' 향이 소량 첨가된 판타지 애니메이션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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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온라인상영관 오픈 안내 (9/5~9/10)
제12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가
9/5(목) ~ 9/10(화), 총 6일간 개최되는데요,
이번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온라인상영을 저희 씨네랩에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9/5(목) 오후 7시에 오픈되는 'Online Screening' 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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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2개 부문의 상영작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상영작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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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온&오프라인, 야외 상영에 대한
자세한 사항 및 티켓 예매 안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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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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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의 두 가지 꿈과 가족의 사랑을 담은 기차역
기적 (Miracle, 2020)
개봉일 : 2021.09.15
감독 : 이장훈
출연 : 박정민, 이성민, 윤아, 이수경, 김강훈, 정문성
소년의 두 가지 꿈과 가족의 사랑을 담은 기차역
올 추석 가장 볼만한 가족영화. 보는 이를 웃기고 울리는 휴머니즘 가득한 영화. 다소 진부하긴 해도 <기적>이란 영화를 이렇게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이 또 없을 것이다.
<기적>은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 위치한 최초의 민간 역사 양원역을 베이스에 두고 그 위에 주인공 준경의 가족과 준경이 가진 꿈을 얹어 완성한 이야기다. 준경이란 인물과 그의 꿈이라는 픽션에 최초의 민간 역사 양원역이라는 실제 장소를 섞어서 리얼리티와 감정선을 한층 살려낸 이 영화는 적절히 가볍고 귀여우면서도 썩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한국 영화, 가족영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신파'를 완벽하게 털어낸 것은 아니지만, 이정도의 신파라면 난 일단 환영한다고 말하겠다.
<기적>은 코로나 대유행이라는 특수한 시국 때문에 몇 차례 개봉을 연기하며 내 속을 엔간히도 태웠다. "대체 준경이는 언제 만날 수 있지!" 아쉬움에 발길질을 해대던 찰나, 추석 연휴라는 대목을 끼고 개봉한 이 영화는 마치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를 기다려왔다!"는 듯 영화가 가진 매력을 사정없이 내뿜으며 추석 연휴 극장을 찾을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기적>의 매력 포인트를 몇 가지 꼽아보자면 가장 먼저 사랑에서 피어난 따스함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추억을 불러오는 ‘그때 그 시절’의 모습, 아름다운 계절을 품은 기찻길의 모습 정도가 있겠다. <기적>은 누군가의 꿈 이야기이자 첫사랑의 두근거림, 가족 간의 깊은 사랑에서 피어난 따스함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영화다. 또한 시대 배경을 따라 맞춰 입은 배우들의 스타일링은 “촌스럽다.”라기보단 귀엽고 정겹게 다가온다. 거기에 비디오테이프와 플레이어, 흰 편지지와 연필, 세월을 담은 집과 가구 같은 것들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시동>에 이어 새로운 느낌의 10대 소년 역할에 도전한 박정민 배우의 뚝뚝하지만 쑥스러움이 살짝 묻어나는 사춘기 소년 연기와 초반부의 발랄한 분위기를 책임지는 임윤아 배우님의 첫! 학생 연기, 원칙을 지키는 아버지와 준경을 벅찰 만큼 사랑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오가는 이성민 배우님의 안정적인 연기, 사실상 준경과 관객들에게 가장 큰 감정의 동요를 선사하는 인물, 보경 역을 맡은 이수경 배우님의 연기가 <기적>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이자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도로도 차도, 기차역도 없이 기찻길만 놓여있는 마을에 살고 있는 준경은 마을을 얄짤없이 지나쳐가던 기차가 아주 잠시라도 설 수 있는 안전한 기차역을 만들고 싶어 한다. 기찻길도, 마을에 내려야 할 사람도 있는데 정작 기차역은 없다 보니 마을 사람들은 마을 밖에 나가고 돌아올 때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정해진 시간이라도 있는 여객 기차는 대비하고 피할 수 있지만 수시로 지나다니는 화물 열차는 도저히 피할 겨를이 없다. 탈 사람이 없어 현실적으로 역을 만들 수 없다는 이유로 준경의 기차역 건설에 대한 꿈은 매번 '제정신 아닌 소리'로 취급받고, 사람들은 역 만들기를 포기한다.
하지만 준경은 기차역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다. 준경은 마을 사람들이 위험한 기찻길을 걸어가며 놓쳐야 했던 소중한 인연들을 보며 마음 아파했고, 그것을 지키고자 청와대에 50통이 넘는 편지를 쓴다. 준경이 왜 이토록 마을에 기차역을 만들고 싶어 하는지, 왜 더 큰 세상에 나가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뽐내는 일보다 위험하게 철교를 지나는 마을 사람들을 더 생각하게 됐는지. 그 이유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차역 만들기와 별을 보고 싶다는 두 가지 꿈을 꾸는 소년과 소년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 하는 첫사랑 라희와 태윤, 보경. '꿈'과 '가족' 그리고 '사랑'을 한곳에 뭉쳐낸 이 이야기에서 진한 사람 냄새가 풍긴다.
<기적>은 제목 그대로 누군가에게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게 되는 영화다. 역을 만들겠다는 준경의 꿈이 이루어지는 기적이, 등장인물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기적이, 준경이 또 다른 꿈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길.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꿈도 기적처럼 이루어지길. <기적>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수많은 기적을 바라게 되고, 또 그것이 이뤄질 거라 믿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반짝이는 반딧불이로 가득 찬 기찻길을 보며 힘든 현실을 밝게 비춰줄 기적을 꿈꿔본다.
무뚝뚝한 말투에 덤덤한 표정, 고맙다, 사랑한다. 같은 감정 표현에 사뭇 서툴러 보이는 소년이 오래도록 품어온 이 꿈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피할 틈 없이 빠르게 지나쳐가는 기차의 앞, 옆모습이 아닌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을 기차역에 서있는 기차의 앞모습을 보는 날이 올때까지. 그리고 항상 흘깃거리며 볼 수 밖에 없었던 진짜 꿈에 얽혀있던 아픔을 풀어내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그 순간까지 준경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기적 시놉시스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 오늘부로 청와대에 딱 54번째 편지를 보낸 ‘준경’(박정민)의 목표는 단 하나! 바로 마을에 기차역이 생기는 것이다.
기차역은 어림없다는 원칙주의 기관사 아버지 ‘태윤’(이성민)의 반대에도 누나 ‘보경’(이수경)과 마을에 남는 걸 고집하며 왕복 5시간 통학길을 오가는 ‘준경’. 그의 엉뚱함 속 비범함을 단번에 알아본 자칭 뮤즈 ‘라희’(임윤아)와 함께 설득력 있는 편지쓰기를 위한 맞춤법 수업, 유명세를 얻기 위한 장학퀴즈 테스트, 대통령배 수학경시대회 응시까지! 오로지 기차역을 짓기 위한 ‘준경’만의 노력은 계속되는데...!
포기란 없다. 기차가 서는 그날까지!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경상북도 1등 과학 영재이자 5분 만에 시험지를 후딱 풀어내는, 또라이 같은 천재. 준경. 준경이는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되었다. 마을에서 학교까지는 편도 2시간 이상. 준경은 위험하고 긴 등하굣길을 오래전에 떠난 누나 보경과 함께 걷는다. 매일같이 .
영화는 준경이 경시대회에서 1등 상을 타던 날, 보경이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알려주기 전까지는 준경의 첫사랑과 라희, 그리고 간이역을 짓겠다는 준경의 두번째 꿈에 집중한다. 밝고 통통 튀는 분위기가 반복되고 어느 순간엔 가벼운 웃음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라희와의 대화와 과거 기억들을 통해 준경이 별과 우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흘린다. 경시대회 상을 받기 전, 계절별로 나눠진 별자리 그림을 쳐다보던 준경은 수많은 별자리들로 가득 찬 하늘 한가운데 가장 특별한 엄마 별을 그린다.
준경에겐 별에 대한 꿈이 있다. 하지만 준경은 그 꿈을 당당하게 내보이지 않는다. 준경은 간이역을 짓겠다는 꿈은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청와대에 수많은 편지를 보내면서도 “니는 우주가 그래 좋나?"라고 묻는 라희에겐 그저 "별이 좋다. 그런 게 있다.”고 얼버무릴 뿐이다.
오래전 자신을 낳다 세상을 떠난 엄마와 경시대회 트로피를 지키려다 물에 빠진 누나. 준경은 보경에 대한 죄책감에 빠져 자신의 진짜 꿈을 가슴 깊숙이 숨겨놓고 마음의 짐을 덜어낼 두 번째 꿈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너무 어린 나이에 찾아온 큰 이별을 건강하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보경을 놓아주지 못한다. 준경은 모두가 “이 마을에 주저앉으면 안 된다. 밖으로 나가라.”고 말해도 누나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떠나지 못한다.
보경이 실제로 살아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준경의 기억과 마음속에 담긴 보경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남매가 얼마나 각별하고 가까운 사이였는지 척- 짐작이 된다. 꼬맹이라고 부르며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는 보경의 모습, 라희는 한 번에 찌르지 못했던 준경의 볼을 익숙하게 한 번에 찌르는 보경의 모습.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기찻길을 걷는 보경의 모습. 초등학교 4학년을 지나 어느덧 보경의 마지막 나이를 넘어선 동생 준경은 여전히 두려울 때면 보경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누나는 모른다. 내가 양원역을 왜 그래 만들고 싶었는지 아나?"
"아버지한테 칭찬도 받고 용서도 받고 싶었다."
"니를 사랑하는 걸 들킬까 봐. 니까지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워서."
"이제 네 짐은 덜어내야지."
준경과 태윤은 이제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지만, 서로를 의지하지 못한다. 엄마와 보경을 지키지 못했다는 각자의 후회와 유일하게 남은 가족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준경은 태윤을 사랑하기에 태윤에게 용서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누나를 잃게 된 오래전 그날의 실수를 만회할 기차역을 만들려 했고 태윤은 준경을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마음에 준경과의 거리를 넓힌다. 항상 서로의 옆얼굴만 바라봤던 두 사람은 각자의 마음속에 묵혀온 아픔을 내보이며 짐을 덜어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돌아 드디어 함께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무뚝뚝한 옆모습만 보이던 아빠 태윤이 준경의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는 순간, 힘 빠진 태윤의 등을 토닥이는 남매의 손을 보며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준경의 꿈에 나와서까지 태윤을 걱정했던 보경. 그런 꿈을 꿀만큼 태윤과 보경을 가장 사랑했던 어린 준경의 마음. 죄책감과 또다시 사랑하는 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껴안고도 준경을 키워내기 위해 견뎌왔던 태윤의 무거운 사랑. 그리고 빼놓으면 섭섭한 준경의 첫사랑이자 뮤즈, 준경의 꿈에 대해 "꿈꾸는 게 뭐 어때서?"라며 처음으로 꿈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 라희의 한결같은 사랑. 여러 가지 모습을 한 사랑과 빛나는 꿈이 한곳에 뭉쳐 만들어진 기적 같은 양원역과 기적 같은 준경의 꿈을 향한 첫 날갯짓이 참 예쁘다. 준경이가 오래, 더 높은 곳에서 행복하게 빛났으면 좋겠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죄책감에 붙잡혀 어쩔 수 없이 나는게 아닌, 그의 비행을 바랐던 사람들의 사랑을 힘으로 삼아 마음껏 더욱 힘차게 날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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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위한 잔혹함인가.
나름 잔인한 영화를 잘 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는 진짜 아니었다. 써는 것도 모자라 도려내고 찢어내서 짓이기는 행위를 반복하는 장면들의 연속이 보는 내내 괴롭게 만들었다. 재미가 없어도 영화 신작 리뷰는 꼭 쓰려고 하는 편인데도 나에게 그런 의지를 앗아갔다. 청소년 불가의 범죄물이 고어물로 넘어가기까지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늑대 사냥에 대한 리뷰를 해본다.
영화는 필리핀에서 부산항으로 향할 프론티어 타이탄이라는 배에서 시작된다. 동남아시아로 도피한 범죄자들과 그들을 맡을 베테랑 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긴장감과 더불어 불안함이 스친다. 그렇게 모두가 배에 타게 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형사들이 범죄자들을 수갑으로 채워둔 상태로 절대적인 우위에 놓여있다. 하지만 언제부터 계획된 일인지 종두를 중심으로 하나 둘 씩, 배의 구석구석을 점령해가며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뀌어간다. 다른 이들의 일말의 가능성도 끊기 위해 달려간 곳에 있는 존재로 인해, 전반부의 이야기는 말끔하게 사라지며 한올의 희망도 찾을 수 없다.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이 배에서 그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가짜 피를 2.5톤가량을 썼다고 들었는데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많은 노력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에도 무엇을 위한 잔혹함인지, 누구를 위한 잔혹함인지를 알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공포 그 자체의 공간으로 변화해가며 또 다른 움직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빼곡하게 트라우마를 새길뿐이다. 잔인함을 싫어하는 관객이라면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영화다. 남자판 마녀를 그리고 싶었던 것인지 이야기의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아쉬움만 가득하다. 어떤 것도 맺어지지 않은 이야기가 속편까지 바란다면 그건 너무 큰 욕심이 아닌가. 날 것을 탐하기엔 너무 상해버린 혐오 사냥이다. 누군가가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거리를 두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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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도시'로는 성공, '콘크리트 유토피아'로는 실패
사랑하는 수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망가진 세상 한가운데에 살고 있는 지완(이준영)이다. 활을 메고 있는 지완. 눈앞에 악어괴물이 보인다. 활시위를 당긴다. 악어에게 적중한다. 죽은 것 같다. 악어에게 다가가는 지완. 하지만 악어가 갑자기 살아나서 지완에게 달려온다. 질겁하는 지완. 근처에 있는 차에 잽싸게 숨는다. 위기에 처한 지완을 도와주는 건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남산(마동석)이다. 악어의 목을 자른 남산. 악어 사체를 가지고 가서 마을 사람들과 식량을 나눈다. 남산 덕에 위기를 넘긴 지완. 지완과 남산은 가족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친한 사이다. 지완이 턱없이 어린 탓에 둘이 친구야?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남산은 정이 많다. 한편 지완이에겐 짝사랑하는 여자 애가 있다. 바로 수나(노정의)다.남산은 어릴 때 수나의 목숨을 살려준 적이 있어 안면이 있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지완의 연애 이야기는 남산과 대화하기에 적합하다. 남산에게 수나 이야기만 하는 지완. 이 두 사람에 일상에 큰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수나가 양기수(이희준)에게 납치된 것이다. 무너진 세상. 남산과 지완, 그리고 또 다른 손님이 기수 일당의 본거지로 직진한다.
형은 좀비를 찢어
<황야>는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한 영화에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을 200% 활용한다. 우리가 마동석 배우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가 액션스타라는 점이다. <황야>는 마동석 배우가 구현 가능한 액션을 전부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각종 ‘~파이팅’이 다 있다. 총기액션, 나이프파이팅, 맨손 격투 등 온갖 방식으로 나쁜 놈들을 두들겨 팬다. 영화 줄거리도 이 액션 역량을 다 보여줄 수 있게끔 짜여 있다. 가령 빌런 무리들에겐 특별한 점이 있다. 이 부분을 주인공 일행이 금방 간파한다. 그러나 이 약점을 공략하기 전엔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이 과정을 마동석 배우의 액션연기로 채웠다. 그리고 디스토피아라는 설정은 주인공 남산이 총기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음과 동시에 나쁜 놈들이 활개 치기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권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자잘한 요소들을 나름 근거를 제시하며 살려 액션 보는 맛이 좋다. 이 액션이 와일드하기만 하면 뭔가 맥이 빠질 것이다. 이에 당위성이 생긴 폭력 묘사가 극의 재미를 돋군다.
그리고 이 영화가 나름 ‘마동석 액션영화’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보인다. 바로 이은호 역을 맡은 안지혜 배우의 등장이 이것의 근거다. 후술하겠지만 이 영화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설정 자체를 잘 살린 편은 아닌 것 같다. 이것 때문에 생기는 이야기의 느슨함을 안지혜 배우의 액션연기로 끌고 간다. 처음부터 영화가 연출로 이 인물이 ‘중요해!’라고 강조한 것이다. 가령 이 이은호 캐릭터가 처음 등장할 때 장면을 보면 강렬하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에서 이은호 캐릭터가 이렇게 등장할 이유가 크게 있는 건 아니다. 장영남 배우가 맡은 캐릭터 처럼 초반부에 등장해도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관객이 신선함을 느껴 주의를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영화가 관객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연출을 보여줬다. 이후에도 <황야>의 이은호는 이 신선한 동력을 충분히 이행한다. 글쓴이는 첫 번째 공간을 바꾸고 나서 이 인물 중심으로 테이크를 길게 짠 장면을 최고로 뽑는다. 확실히 허명행 감독이 무술감독 출신이라 어떻게 해야 생동감이 사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 이 배우의 이 장면은 여태까지 본 한국영화의 여성 캐릭터 액션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다.
용감한 시민
글쓴이는 이준영 배우를 좋아한다. 왜? 이 분 잘생겼는데 연기도 잘한다. <D.P>와 <마스크걸>에서 양아치 연기를 생각해 보면 뭔가 스테레오 타입의 나쁜 놈 같으면서도 자기만의 색이 굵었다. 그러나 글쓴이는 두 드라마보다 <용감한 시민>에서의 연기를 더 좋아한다. 이 <용감한 시민>에서 한수강이라는 인물 역시 액션이 중요했는데 시원시원하게 잘 소화한다. 본작 <황야>에서도 똑같이 액션연기를 보여주는데, 남산과 안지혜와는 다른 결의 액션을 보여준다. 이 두 인물과의 차이점을 눈 크게 뜨고 보면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는데 글쓴이는 이준영 배우가 디테일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여기는 황궁아파트
사실 액션만큼이나 이 영화에서 중요했던 것은 디스토피아 묘사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세계관을 공유한 작품답게 이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용하는 것은 대지진이다. 대지진이 일어난 지구. 당연히 온 세상은 폐허가 됐다. 시각적인 묘사에 있어 이 난장판을 잘 묘사했냐? 고 묻는다면 글쓴이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노란색으로 색감을 뺀 부분이나 무너진 건물을 구성하는 적지 않은 요소들까지 나름 상상력이 돋보이는 장면이 보인다. 하지만 글쓴이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부산행>과 겹쳐 보이는 점이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폐허가 된 세상을 묘사하는 데에는 좋았지만 고유의 색이 흘러넘친다고 보긴 어렵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디스토피아 묘사가 개성이 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어떤 관객들에겐 비판 요소로 읽힐 수도 있다.
어디서 봤는데
사실 이 영화에 대해 글쓴이가 가장 아쉽다고 느끼는 부분은 문제 해결 방식이다. 이 영화의 플롯을 대략적으로 써보겠다. 주인공이 있다. 이 주인공을 둘러싼 세상은 온갖 나쁜 놈들 천지다. 나쁜 놈이 나쁜 짓을 한다. 푸근하지만 주먹 하나는 살벌한 주인공이 이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다. 우리는 비슷한 플롯을 알고 있다. 바로 ‘범죄도시’ 시리즈다. 마동석 배우가 속해있는 빅펀치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시그니처를 못 보고 지나가도 ‘이거 그거 아닌가’ 느낄 수 있을 만큼 <황야>가 개성이 뚜렷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물론 마동석 배우가 가진 매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그러라고 캐스팅한 것 아닌가? 하지만 글쓴이는 ‘범죄도시’ 시리즈와의 기시감을 문제 해결 방식에서만 근거를 찾고 싶지 않다. 바로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어떤 캐릭터가 있다. 이 캐릭터는 수많은 빌런들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이는데, 마동석 배우의 전작에서 이와 비슷한 인물이 있었다(심지어 유행어가 돼서 인기도 끌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 <황야>를 보고 생각한 점 중 하나는 이야기가 텅 비어 보인다는 점이다. 왜? 이 영화는 무언가를 시도하려다가 말았다. 이 시도하다 만 것은 장르적인 특성이다. 우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시리즈의 전작인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대해 써볼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라는 공간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사회를 탐구한다. 이 아파트를 둘러싼 사람들을 양분해서 ‘한국 사람들은 이곳(아파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 시도는 분명 의도가 있다. 바로 공동체가 지켜야 할 윤리의식을 한 집단 하의 두 사람(명화/영탁)을 중심으로 관객에게 질문한다. 이것을 왜 아파트라는 배경을 통해 질문할까? 바로 우리 한국사회는 사는 곳으로 서로에게 편견과 혐오를 표현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출을 통해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외국영화 중 <블레이드 러너 2049>나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도 각각의 철학적인 물음을 건네는 영화다.
하지만 이 <황야>에는 그런 장르적인 특성이 안 보인다. 물론 몇 번 시도는 한 것 같다. 양기수(이희준) 배우의 캐릭터의 대사 몇 줄이나 영화에서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 분명 어느 부분에 대해 지적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 대사 몇 줄 빼고는 문제를 심화시킨다거나 하는 장치가 많이 부족하다. 단지 주인공 일행을 위기에 더 밀어놓는 것 말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아파트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면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 <황야>의 내적 논리는 플롯 안에서 구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물들이 하는 몇 마디로 끝낸다. 이렇게 나사 빠진 토대 위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사건의 끝마무리가 깔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느껴졌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마무리가 된 것이다.
반쪽짜리 성공
이러다 보니 이 영화가 굳이 디스토피아라는 배경을 가져온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만약 이게 범죄도시 7쯤 돼서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뒤집어 패버리는 마석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솔직히 그렇게 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영화의 기획의도에 구멍이 생기는 결함이 된 것이다.
반대로 영화의 액션은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범죄도시 2>의 액션이 극찬받았던 이유는 사운드 덕분이다. <황야>는 <범죄도시 2>처럼 사운드를 살리고, 또 촬영에서도 카메라를 흔들지만 나름 동선도 잘 포착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허명행 감독이 액션 하나는 정말 잘 살렸기 때문에 글쓴이는 <범죄도시 4>가 기대된다. 뭐 어차피 이 영화 각본 쓴 사람이 <범죄도시 4> 각본 쓴 것 아니잖아? 드라마가 어떻게든 보완이 됐을 테니 K-채드 스타헬스키(<존 윅 4>의 감독)가 허명행 감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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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첫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모아나 2>와 <위키드>가 치열한 순위 싸움을 하고 있는 가운데, 금주에는 한국 영화들도 경쟁에 참전합니다!
송강호, 박정민, 장윤주 배우를 필두로 탄탄한 출연진과 배구계의 전설 김연경 선수가 출연 소식을 알려 화제가 된 <1승>과 홍제동 방화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방관>이 오는 4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소방관> 역시 주원, 유재명, 이유영, 김민재, 이준혁, 장영남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여 어떤 앙상블 연기를 펼칠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독창적인 데뷔작 <더 길티>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구스타브 몰러 감독이 이번에는 교도소로 공간을 옮겼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강렬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냈던 구스타브 몰러 감독이 신작 <아들들>에서는 어떤 연출을 보여줄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위키드>에 이어 금주에도 음악 영화가 개봉합니다. 존 레논, 척 베리, 더 도어즈 등 전설적인 뮤지션들을 무대에 세웠던 1969년 '토론토 로큰롤 리바이벌'을 다룬 다큐멘터리 <리바이벌 69'>도 12월 4일부터 극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승
One Win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07분
감독: 신연식
주연: 송강호, 박정민, 박명훈, 장윤주, 이민지
개봉: 2024.12.04.
배급: ㈜아티스트유나이티드
줄거리
"그래도 한 번은 이기겠죠?"
지도자 생활 평균 승률 10% 미만! 파직, 파면, 파산, 퇴출, 이혼까지 인생에서도 ‘패배’ 그랜드슬램을 달성 중인 배구선수 출신 감독 ‘우진’은 해체 직전의 프로 여자배구단 ‘핑크스톰’의 감독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에이스 선수의 이적으로 이른바 ‘떨거지’ 선수들만 남은 팀 ‘핑크스톰’은 새로운 구단주 ‘정원’의 등장으로 간신히 살아나지만 실력도, 팀워크도 이미 해체 직전 상태.
그 와중에 막장, 신파는 옵션, 루저들의 성장 서사에 꽂힌 ‘정원’은 ‘핑크스톰’이 딱 한번이라도 1승을 하면 상금 20억을 풀겠다는 파격 공약을 내세운다. 모두가 주목하는 구단이 됐지만 압도적인 연패 행진을 이어가는 ‘핑크스톰’. 패배가 익숙했던 ‘우진’도 점점 울화통이 치밀고, 경험도 가능성도 없는 선수들과 함께 단 한번만이라도 이겨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소방관
FIREFIGHTERS
개요: 드라마 | 대한민국 | 106분
감독: 곽경택
주연: 주원, 곽도원, 유재명, 이유영, 김민재, 오대환, 이준혁, 장영남
개봉: 2024.12.04.
배급: ㈜바이포엠스튜디오
줄거리
살리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가 마지막 현장인 소방관 팀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화재 진압과 전원 구조라는 단 하나의 목표로 의기투합한다. 어느 날, 다급하게 119 신고 전화로 홍제동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긴급 상황이 접수되자 팀원들은 위기를 직감하는데…
누군가의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 이름 <소방관>.
2001년 가장 빛났던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겠습니다.
아들들
SONS
개요: 드라마 | 덴마크, 스웨덴 | 98분
감독: 구스타브 몰러
주연: 시드 바벳 크누센, 세바스찬 불 사르닝, 다 살림
개봉: 2024.12.04.
배급: 해피송
줄거리
재소자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성실한 교도관 ‘에바’(시드 바벳 크누센). 어느 날,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 ‘미켈’(세바스티안 불)이 그녀가 일하는 교도소로 이감된 사실을 알게 된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진 ‘에바’는 그가 수감된 최고 보안 시설인 중앙동으로 자진해 근무지를 옮기고, 그를 직접 마주하기로 결심하는데...
“내 아들을 죽인 살인자, 나는 그를 마주해야 한다”
리바이벌 69’
Revival69: The Concert That Rocked the World
개요: 다큐멘터리 | 미국 | 98분
감독: 론 챕맨
주연: 존 레논, 오노 요코, 리틀 리처드, 척 베리
개봉: 2024.12.04.
배급: 스튜디오 에이드
줄거리
존 레논,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더 도어즈, 보 디들리 그리고 오노 요코 1969년, 무모한 전화 한 통에서 출발한 전설의 뮤직 페스티벌 ‘토론토 로큰롤 리바이벌’.
그 믿을 수 없는 시작과 전 세계를 뒤흔든 열광적인 무대의 기록.
Let’s Do it, Let’s Rock N 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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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퀴어>, 사랑은 죽어야 끝난다
<퀴어>, 사랑은 죽어야 끝난다
퀴어 영화의 핵심에는 주로 성 정체성에 대한 탐문이 있었다. 특별한 계기를 통해 그간 눈치채지 못했거나 애써 감춰왔던 성 정체성의 발현을 감지하는 장면은 퀴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영화들의 정당한 클리셰처럼 형상화되곤 했다. 또한, 성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만천하에 드러낼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개인적 고뇌의 시간을 담아내는 장면이,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감정이입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거의 필수적으로 제시되곤 했다. 그런데 <퀴어>에는 그런 장면들이 없다. 영화의 첫 대사가 “너 퀴어 아니지?”라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 <퀴어>의 세계는 마치 퀴어가 아닌 사람이 더 이상하고 낯설게 여겨지는 특별한 시공간처럼 세공되어 있다. 이 독특하고도 뻔뻔한 이질감이 퀴어를 상대로 갖기 마련인 반사적인 편견과 차별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퀴어를 바라보는 어떤 특별한 정동, 예컨대 연민과 혐오 따위의 일차원적 감정 상태를 무화시킨다.
퀴어이기에 부득이 감수해야 하는 사회적 불편과 차별이 전무한 것처럼 그려지는 <퀴어>에서 성 정체성은 오직 사랑의 가능성을 점쳐보는 일종의 판별기 정도로 축소된다. 퀴어면 가능하고, 퀴어가 아니면 불가능한 세계. 마치 여기서 사랑은 퀴어에게만 허락된 신성하고도 속된 특권처럼 비친다. 퀴어는 사랑할 수 있지만 퀴어가 아닌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는 전제. 그러나 문제는 그 전제가 그들만의 전제라는 점이다. 단숨에 중년의 주인공 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청년 유진은 퀴어가 아님에도 사랑을 나눈다. 그것이 정신적 교류와는 유리된 육체적 탐닉에 국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육체와 육체의 교통을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할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육체적 접촉을 맺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촉진된다. 유진이 여자인 메리를 비롯하여 다른 남자들과 어울려 다니는 통에 리를 멀리하자 리는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괴로워한다. 급기야 리는 유진에게 남미 여행 경비를 전부 내줄 테니 일주일에 두 번만 그를 만질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한다. 호소라고는 썼지만 사실상 이것은 거래다. 자본주의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사랑에는 거래가 없다. 거래가 전제하는 등가물의 교환이 사랑에서는 작동되지 않는다. 사랑의 영역에서 우리는 받은 만큼만 돌려주려 하지 않고, 준 것 이상으로 돌려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리가 유진을 거래의 영역으로 초대한 순간 둘의 사랑에 커다란 균열이 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부와 달리 2부와 3부에서 리와 유진이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장면이 공허하고 때로는 해괴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사랑의 순수성이 탈색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리가 유진의 속마음을 알아내기 위해 주술사를 만나 텔레파시를 나누는 대목은 사실상 사족처럼 보인다.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금전을 대가로 만남을 이어가진 않는다. 유진은 답한다. “난 퀴어가 아니에요.” 그 말에 숨은 뜻,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리는 유진을 사랑하지만 유진은 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리는 유진을 가질 수 없지만 유진은 리를 가질 수 있다. 여기서 리의 성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실제로는 퀴어이든 그의 말마따나 퀴어가 아니든 그는 사랑받는 존재이다. 사랑은 언제나 받는 쪽이 권력을 쥔다. 그 권력을 나눠 갖지 못하면 평생 짝사랑의 고통에 허덕여야 한다. 그 고통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광인이 되거나 자신을 죽이거나. 이때 상대를 죽이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망자와 사랑하게 되는 꼴이 된다. 상상 속에서 리가 유진에게 권총을 쏘아 죽이는 장면은 그런 점에서 아찔하고 동시에 현명하다. 그것은 아무쪼록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평생 유진을 그리워하던 리가 마침내 숨을 거두는 장면은 똑같은 이유로 희극적이다. 이때 방점은 죽기 직전까지 그리워할 만큼 리가 유진을 열렬히 사랑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리가 죽음을 통해서나마 비로소 지긋지긋한 사랑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거칠게 귀를 긁어대던 숨소리가 점차 잦아지고 괴로워 보이던 얼굴이 평안해지는 대목이 그 희극성을 증거한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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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 최고, 최악의 CG 장면들
#산돌구름 #마블CG #엔드게임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1. 28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마블의 CG
01:02 아이언맨3 가짜 로다주
02:09 에이지 오브 울트론 마크45
02:53 디에이징 효과
03:52 시빌워 토니&스파이더맨
05:04 닥터스트레인지의 마법
05:57 CGI 팬서
07:08 엔드게임 Final Battle
07:57 헐크버스터 in 와칸다
08:28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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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8월 19일 개봉예정 영화 팜스프링스 시사회 관람 리뷰입니다. 100만번째 하루를 반복하고있는 남자의 사연은? 믿고 보는 타임루프물!! 솔직한 감상평과 함께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시사회 초대는 영화 전문 플랫폼 [씨네랩]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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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선포로 벨기에 앤트워프 낯선 호텔에 고립된 배우 유태오,
영화라는 감수성이 통한 가상의 세계에서 찾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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