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5-01-28 22:36:20
욕먹지 않을 정도의, 딱 그 정도의
소방관
사실 이 영화, 꽤 오래 전에 보았다. 아무도 내 게으름의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겠지만 현생이9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야 적는 점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경위는 아주 간단했다. 그저 해가 바뀐 기념으로 영화나 보러 가자는 가족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내가 영화관까지 가서 찾아볼 의지가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물론 반응이 나쁘지는 않은 영화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요 근래 나는 영화관을 갈 심적, 물리적 여유가 모두 없어 영화관까지 갈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아무런 정보를 찾아보지도 않고, 그저 관람했다. 그 어떤 편견도 없이, 그 어떤 기대도 없이. 그것이 영화 관람에 있어 장점이었을지, 악영향을 미쳤을지는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싶다.
< 재난 영화가 가져가야할 서사는 모두 다 있다. 그게 전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재난 영화가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이다. 재난 영화란 모름지기 재난이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안타까움을 유발하면 반은 성공한 서사라고 본다. 그런 지점에서 이 영화는 매 순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공무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방관들이 받는 처우들을 보고 있자면 1차적으로 안타깝고, 매번 불과 싸우며 다치고 데이고, 목숨을 담보로 구조작업에 들어가는데, 나라에 지원을 요청하려면 총대를 매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또 안타깝다. 그런데 이 모든 서사가 예상이 가능하다. 뭐, 재난영화로 이미 장르가 정해진 상황에서 어떻게 더 대단한 서사가 나올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건 영화가 가진 단점이라고 할 수도, 그렇다고 장점이라고 추켜세울 수도 없는 그저 이 영화의 특징 쯤으로 생각하자.
말하자면, 이 영화는 재난 영화가 가져가야할 서사는 빠짐없이 있지만 다 있어서 이 영화는 기타 다른 재난영화와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재난 영화란 서사에 일종의 공식 같은 것이 존재하기에 다른 영화들 중에서 특출나게 대단한 서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금 머리를 스쳐가는 재난 영화는 '투모로우'인데, 투모로우를 왜 인상깊게 보았을까 생각해보면 폭설이 와 도시가 황폐해진 그 비현실적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던 기억과 함께, 주인공이 미션처럼 닥친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을 응원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소방관에서는 그런 경이로운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인물 간의 관계에 주목한다. 주인공인 철웅은 계속 고뇌하긴 하는데, 그 시간이 길어지며 소방관들의 애환을 이해하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을 보면서 보는 입장에서는 지루함이 유발되었던 것 같다. 영화 속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관객과 비슷한 입장이어야 할 철웅에게 공감이 되지 않고, 철웅이 방황하는 시간 동안 오히려 다른 캐릭터들을 이해하게 되어 버려서 보면서도 이게 맞는 건가 한참 생각했었다. 다만, 인물의 관계성에 집중하는 만큼 영화가 진행될 수록 신파스러운 서사가 등장하는데, 그 신파가 비교적 오글거리진 않는다. 재난 영화 상 당연한 수순 아닌가.
이 영화는 딱히 대단한 흠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만큼 대단히 매력적인 서사는 아니다. 너무 많이 접해온 서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방관이라는 공무를 집행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큼 이 영화에 대단한 오락성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이것이 최선이었던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불을 낸 원흉이었던 경호 캐릭터는 그렇게 모자라보이는 캐릭터로 그릴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화재 참사의 원인이 한 멍청한 모지리 때문에 일어났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극대화 시키긴 하지만 차라리 방화 이유는 변하지 않을 지언정 그 캐릭터는 조금 멀쩡하되 다만 비열한 캐릭터였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경호 같은 모지리 같은 사람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짜증이 나는 것이 표면적 이유이다. 그리고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현실 상황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일을 저지르고 심신미약 등의 이유로 도망가는 일을 많이 봐왔으니 굳이 그런 일말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은 내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계속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움을 유발하고 싶은 거라면 그저 악역의 비열함만을 보고 싶지, 경호 캐릭터에게 도망갈 당위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 말이다.
그것 말고는 이 영화는 존재 이유를 달성했고, 딱히 너무 별로인 지점도 없다. 하지만 이 영화를 두 번 이상 관람할 것 같냐고 하면 솔직히 말하면 그건 아니다. 이 영화 관람료가 좋은 일에 쓰인다던데, 그런 좋은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뜻 있는 분들이 한 번쯤 관람하기는 좋으나 N차 관람은 내용의 매력이 넘쳐나야 가능한 일인데, 그런 지점까지 도달했는지는 아직 미지수이기 때문이다.99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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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제목의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께 또 어떤 영화를 추천드릴까 하다가
최근에 봤던 흥미로운 제목의 영화가 있어, 흥미로운 제목을 가진 영화를 추천드려볼까 합니다!
흥미로운 제목의 영화! 이 영화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한번 살펴볼까요?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흥미로운 제목의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The Gue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 2018
ⓒ 네이버 영화
synopsis
전쟁 중에 결성된 외딴 섬의 북클럽. 런던의 작가가 그들을 찾아 떠난다.
유쾌하고 용감하게 나치의 점령을 견딘 사람들. 그들을 통해, 그녀의 삶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cine pick!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영 인디아나 존스>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해리포터와 불의 잔>을 연출한 마이크 뉴웰이 감독을 맡은 작품입니다. 원작보다 로맨스에 조금 더 중점을 뒀으며, 영화 속에 나오는 풍경이 매우 매력적이다.
런던시계탑 밑에서 사랑을 찾을 확률
Man Up, 2015
ⓒ 네이버 영화
synopsis
매번 실패하는 연애에 어느덧 연애지수 제로가 되어버린 ‘낸시’는
부모님 결혼기념일 파티에 가던 중 우연히 만난 ‘잭’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게 된다.
낸시는 얼떨결에 잭의 가짜 소개팅녀 행세를 하게 되고,
두 사람은 런던에서 생애 최고의 유쾌한 데이트를 즐긴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낸시 앞에 나타난 옛 친구덕분에
거짓말로 시작된 데이트는 위기를 맞게 되는데..cine pick!
판타지에 가까운 사랑 이야기를 담았고, 사운드트랙이 무척 매력적인 영화이다.
대사 보는 재미가 있으며, 뻔하지만 사랑스러운 영화이다.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
When I Get Home, My Wife Always Pretends to be Dead, 2018
ⓒ 네이버 영화
synopsis
어느 날부턴가 ‘준’이 집에 돌아오면 항상 ‘치에’가 죽어 있다.
어제는 악어에게 잡아먹혔고, 오늘은 외계인에게 납치당했고,
내일은 공동묘지를 떠도는 귀신이 될 예정이다.
도대체 왜! 치에는 매일 죽어 있는 걸까?cine pick!
조금은 당황스러운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매일 죽은 척을 하는 아내를
맞이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담은 굉장히 신선한 소재의 영화이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2021
ⓒ 네이버 영화
synopsis
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아홉 율리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 세상으로 나온다.
파티에서 만난 만화가 악셀과 사랑에 빠진 율리에,
하지만 삶의 다른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걸 원했고 조금씩 어긋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달려나간다.cine pick!
원제와 번역된 제목 모두 굉장히 흥미를 자아내는 제목이다.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주인공의 성장에 조금 더 초점을 둔 영화이다.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잡으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작품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Let Me Eat Your Pancreas , 2017
ⓒ 네이버 영화
synopsis
스스로를 외톨이로 만드는 ‘나’, 학교 최고의 인기인 ‘그녀’
어느 날, 우연히 주운 [공병문고]를 통해 나는 그녀와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
“너 말이야, 정말 죽어?” “...응, 죽어”
그날 이후, 너의 무언가가 조금씩 내게로 옮겨오고 있다.cine pick!
2016년 일본 서점에서 2위를 하고, 연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당시에도 파격적인 제목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제목과 상반된 따뜻한 이야기를 담아
진한 감동을 선사한 작품이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The Tokyo Night Sky Is Always the Densest Shade of Blue , 2017
ⓒ 네이버 영화
synopsis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낮에는 간호사, 밤에는 술집에서 일하는 ‘미카’.
일용노동직으로 일하며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지만 막연한 희망을 꿈꾸는 ‘신지’.
이들은 화려함과 고독함이 한 데 섞인 도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서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사랑은 없을 것 같던 도쿄의 밤하늘 아래,
방황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며
삶에 대한 희망을 함께 품기 시작한다.cine pick!
원작은 시집으로, 시의 내용을 재구성한 영화이다.
일본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영화 전문 잡지인 키네마 준보에서
선정한 2017년 일본 영화 1위이다.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Turtles Swim Faster Than Expected, 2005
ⓒ 네이버 영화
synopsis
평범하다 못해 어중간한 삶을 살고 있는 주부 스즈메는 무서울 정도로 단순한 일상 속에서
어느 날, ‘스파이 모집’ 광고를 발견한다. 무심코 전화를 해버린 그녀는 뻔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cine pick!
일본 특유의 감성과 개그 코드가 가득 담긴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평범했던 일상을 조금은 특별하게 보내게 될지도...?!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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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문제를 다이나믹하게 풀어낸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놉시스
톰은 달시를 위해 필리핀의 어느 섬에서 결혼식을 올리지만 해적들이 습격해 난장판이 되어버린다. 하객들이 인질로 잡혔지만 톰과 달시는 해적들과 싸우기 시작한다. 해적들이 노리는 건 달시의 아버지인 로버트의 재산이다. 당장 4500만 달러를 송금하지 않으면 하객들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데...
과연 해적들의 위협에서 톰과 달시의 결혼식은 무사히 성사될 수 있을까?
하객들 중에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각자의 사정이 하나씩은 있었다. 달시의 전 약혼자이자 연인인 션은 베일에 감쳐진 인물이며 달시를 디디라고 부른다. 달시의 아버지인 로버트도 또 다른 애인이 있었으며 바로 지압 마사지사인 해리엇이다. 로버트는 결혼식에서 자신의 아내인 레나타 앞에서 해리엇과 지나친 뽀뽀를 한다. 그리고 달시와 친한 제이미와 성관계를 한 남자도 나이가 40살이 되어서도 연인이 없던 사람이었다. 이곳에 와있는 결혼식 하객들은 무언가 문제 하나쯤은 갖고 있었다.
톰이 결혼식에서 이혼율이 50% 이상 되는 현실이라고 말하는데 결혼식과 맞지 않는 뜬금없는 유머성 발언이지만 이혼 문제는 국가마다 심각한가 보다. 그만큼 금방 사랑에 빠지고 금방 식어버리는 선결혼 후이혼이 추세여서 원나잇 스탠드나 섹스파트너가 많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는 노골적으로 성적인 대사가 많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미국의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특징인가 보다. 무언가 씁쓸하지만 코믹함으로 잘 풀어냈다.
액션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마이너한 야구선수 출신인 톰의 단짝인 달시가 겁은 많지만 신랑이 될 톰을 구하기 위해 해적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인질로 붙잡혀 갈 때 머리에 불을 질러 빠져나온다. 그러나 남자인 톰이 전혀 부각이 되지 못하고 희생적인 남자로 나온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에일리언의 여전사인 리폴리처럼 여자를 강한 존재로 묘사했다. 샷건을 들고 톰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모습은 정말 상여자다운 보기 드문 모습이다.
결혼식을 아무리 망쳐도 사랑은 영원하다는 게 이 영화의 메세지가 아닌가 싶다. 성대한 결혼식을 원하지 않는 달시는 톰의 진정한 사랑을 원했고 결국 둘은 해적들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낸다. 하지만 불륜 문제와 이혼 문제 등이 심각한 현실에서 샷건 웨딩이라는 영화는 유쾌하게 풀어낸다. 성적 농담이 많은 영화이고 약간 성적인 장면이 나오지만 15세 영화로 판정되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어쨌든 팬데믹의 시기에서 이 영화를 보고 정말 많이 웃기도 했다.
결혼 문제를 코믹하게 풀어낸 <샷건 웨딩>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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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프링 블라썸> 사랑이 피어나고, 소녀는 성인이 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스프링 블라썸>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이 난 '수잔(수잔 랭동)'. 맘껏 재잘거리는 친구들 사이에 있음에도 그녀의 세상은 조용하고 무료하다. 어느 날 그런 그녀에게 우연한 만남이 찾아오고, 수잔은 극장 앞에서 연극배우 '라파엘(아르노 발로아)'을 만난다. 수잔은 라파엘도 자신 못지 않게 권태로운 삶에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라파엘 역시 수잔의 고요한 일상에 깃든 공허함을 눈치 챈다. 서로를 엮어주는 공통점은 동질감으로, 더 나아가 호감과 사랑으로 이어지며 수잔과 라파엘은 연인이 된다. 그러나 우연히 찾아왔던 사랑은 이내 위기를 맞이하며 강한 애착으로 엮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시험대에 오른다.
수잔 랭동 감독의 데뷔작인 <스프링 블라썸>은 16살의 수잔이 35살의 라파엘을 만나 사랑의 싹을 틔우는 과정을 담은 영화로, ‘16살의 봄’이라는 뜻의 원제인 ‘Seize Printemps’에 충실한 작품이다. 사실 작중 수잔과 라파엘의 관계처럼 나이 차이가 큰 연애와 사랑은 편견 가득한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연인 중 한 명은 성인이고 다른 한 명이 미성년자라면, 순수한 사랑의 감정보다는 그 이면에 있을지도 모를 추악한 흑심이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스프링 블라썸> 속 사랑이 관객에게 소구력이 있으려면 영화는 불편한 사회적 시선이라는 장애물을 영리하게 피해 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수잔 랭동은 사랑의 시작과 그 감정선을 영리한 기교로 풀어내며 미션을 훌륭히 완수해낸다.
우선 영화는 수잔과 라파엘의 공통점을 부각하며 그들의 관계를 철저히 순수하고 낭만적인 사랑의 영역에 국한시키는 데 성공한다. 수잔과 라파엘은 권태에 빠진 이들이다. 수잔은 여자 친구들, 남자 친구들, 선생님, 자기 자신에게도 어떠한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지쳐있고, 무료하고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라파엘도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 같은 연극을 반복해서 하고 있고, 나무 역할을 연기해야 되는 날도 있는 그도 일상에 지쳐 있다. 당장 연극이 행복한지, 연극을 즐기고 있는지 묻는 수잔에게 연기하는 법을 잊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고 말할 정도로.
또한 수잔과 라파엘은 신이 속해있는 곳에서 소속감에 들려고 하지 않는 아웃사이더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수잔은 남자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파티에서 춤추자고 권유하는 친구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한다. 친구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도 그 손을 뿌리치기 일수이며, 그러다 보니 그녀는 자신이 속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한다. 라파엘도 마찬가지다. 그는 연극 후 회식 자리에서 도망치기 바쁘고,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도 대화에 쉽게 끼지 못한 채 묘하게 겉을 맴돈다. 무대가 끝난 뒤 커튼콜을 할 때도, 인사를 하거나 퇴장하는 타이밍을 한 박자씩 맞추지 못한 채 따로 행동한다. 이렇게 라파엘 역시 자신이 속한 곳에서 잎을 피우지 못한다.
이처럼 수잔과 라파엘이 각자 자신의 나이대에 맞는 사람이나 주변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두 주인공의 사랑을 순수한 감정의 영역에서 접근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스무 살가량 차이 나는 이들의 로맨스에서 현실적인 맥락을 제거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두 인물의 공통으로 갖는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부각하면서 그들을 여성과 남성, 미성년자와 성인 이전에 한 명 한 명의 개인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공통의 공허함은 빨간 석류 에이드를 함께 나눠 마시고, 아침을 같이 먹으며, 좋아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감으로 이어진다. 이는 동질감에서 비롯된 연대감으로 나아가고, 두 개인 사이에서 피어난 연대감은 마침내 사랑이라는 방점을 찍는다. 이렇게 영화는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오직 '나' 같은 '너'와 '너' 같은 '나'가 만나는 그 순간에만 주목하도록 유도하고, 뿌리내릴 곳 없던 두 사람이 함께 뿌리내리고 사랑의 꽃잎을 피우는 과정만 스크린 위에 띄우는 데 성공한다.
실제로 영화는 공감과 동질감이 낳은 연대가 사랑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서 그들을 둘러싼 여러 구체적이고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펼쳐놓지 않는다. 사랑이 위험에 빠지고 두 사람이 이별하더라도 그 이유나 사연을 설명하기보다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저 그 사랑의 궤적을 쫓으며 그 순간순간마다 두 연인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표현하는 데에 집중한다.
이러한 의도는 여러 기술적인 요소에서 엿보인다. 음악과 댄스가 대표적이다. <스프링 블라썸>은 두 연인이 춤추는 장면을 거듭 보여준다. 이때 평범한 서사에서 춤 장면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상당히 어색하다. 두 사람의 감정이 깊어지고 있고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며 교감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려는 찰나에 직접적인 스킨십이나 대사 대신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들은 춤을 춘다. 그래서 카페 테이블에 앉아서, 연극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춤은 서로가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상상 속 교감에 가까워 보인다. 또 그렇기에 이 댄스신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합을 잘 맞춘 몸짓은 아니지만, 그 약간의 빗겨나감에서는 역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단단해지고 깊어지고 있는지가 자연스레 묻어난다. 수잔 랭동이 무용에 연극적인 요소를 결합한 ‘탄츠 테아트르’(Tanztheater, Dance Theatre) 형식의 퍼포먼스를 주로 선보이는 세계적 무용가 ‘피나 바우쉬’(Pina Baush)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이 새감 실감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스프링 블라썸>에서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이제 거의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스마트폰이나 소셜 미디어가 일절 등장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작중 시대적 배경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빈자리는 종이 책과 휴대용 CD 플레이어가 대신하며, 이는 영화 전반적으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불어넣는다. 달리 말하자면 시대를 막론하고 10대 시절을 겪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이 77분의 러닝타임 안에 가득한 것이며, 수잔을 보다 보면 <라붐>(1980)과 <귀여운 반항아>가 떠오르는 이유다. 이 역시 두 사람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 대신 그들의 감정 자체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사랑의 판타지 속으로 마냥 젖어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수잔과 라파엘의 차이점, 성인과 그렇지 않은 이의 간극도 분명하게 또 반복해서 잡아주고 있다. 두 사람이 상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는 장면만 보더라도, 라파엘은 자신의 담배를 사면서 동시에 수잔에게는 사탕을 선물해준다. 10대와 30대의 사랑과 그 간극이 동시에 느껴지는 순간인 것이다. 사탕과 담배 외에도 10대와 30대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소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석류 에이드와 맥주다. 맥주는 아직 수잔이 먹기에는 어린 나이에 해당되고 보통 어른들이 주로 마시므로 성인에 해당되고, 석류 에이드는 그에 반대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 같아 10대와 30대 간의 간극이 잘 보이는 순간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스쿠터를 타고 수잔 집 앞에 간 라파엘과 그런 그에게 스쿠터가 무섭다며 타지 않겠다고 말하는 수잔의 모습에서도 석류 에이드와 맥주의 차이점이 엿보인다.
그리고 이 간극 덕분에 <스프링 블라썸>은 단순히 사랑이 시작되는 간질거림을 간직하는 데서 그치는 대신, 10대가 바라본 사랑의 경험과 그로부터의 성장, 곧 성인으로의 발돋움을 그려내는 듯 보인다. 식음료의 차이는 수잔과 라파엘의 권태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지언정 속사정이 꽤 다름을 보여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수잔이 겪는 일상의 무료함은 평균적인 또래 집단과 수잔 본인의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그는 여자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파티에서 어울리지 못하며, 수업 시간 중 수준 낮은 질문을 하는 친구에게 큰 애정을 베풀지 않는다. 반면에 라파엘이 겪는 권태로움은 보다 인생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같은 배역이 반복됨으로써 작품을 계속하고픈 열정이 희미해진 시간만이 지속되고 있다. 그는 약간의 번아웃 속에서도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하는 오페라 아리아 곡과 같은 작은 요소에 기대어 일상을 이어나간다.
이러한 차이에 주목하면, 수잔과 라파엘의 동질감에 주목할 때 보였던 로맨스는 수잔의 성장영화로 바뀌어 보인다. 후반부에 들어서 수잔은 라파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또 그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이별을 고한다. 사실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이지 않은 이 대목의 전개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듯 느껴지기도 하며, 의문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수잔의 권태로움이 라파엘의 그것과 미묘하게 달랐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소녀가 여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또래들이 시시해 어른스러운 고뇌에 가득 찬 남자에 끌리는 수잔이 그려낸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템포 더 어른이 된 그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스프링 블라썸>은 한 편의 성인식 같기도 하다. 오프닝 장면에서 친구들의 수다가 지겨운 수잔은 자신이 마시던 빨간 레모네이드를 빨대로 휴지에 뱉으며 하얀 휴지를 빨갛게 물들이는데, 이 장면이 마치 여성들의 초경을 암시하는 듯 보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영화 내내 빨간색의 색감이 두드러지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수잔이 늘 가지고 다니는 프랑스 작가 ‘보리스 비앙’(Boris Vian)의 소설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표지, ‘라파엘’이 타고 다니는 스쿠터와 카페에 가면 늘 먹는 딸기잼이 발라진 빵 등 <스프링 블라썸>에는 빨간색이 포인트 색상으로 꾸준히 등장한다. 이는 사랑을 통해 성인이 되는 한 소녀의 성인식을 시각적으로 비유한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사실 <스프링 블라썸>은 앞서 보았듯이 초점이 두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시작 지점부터 빠져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강하게 나뉠 수밖에 없다. 또 뭔가를 설명하기보다는 그저 두 남녀의 일상과 그 일상의 찰나가 어떻게 특별해질 수 있는지를 따라가야 하므로 더욱 그렇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이 지닌 힘에 기대 지적될 수 있는 난점들을 가리려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우연을 가장한 운명적인, 혹은 그 반대인 사랑을 꽃피우고, 하나 되는 경험을 하고, 그 결과 그 사랑의 끝이 어찌 되든 한 단계 성장하는 경험을 누구나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수잔 랭동의 초대를 받아 넘실거리는 감정선에 한 껏 빠지는 경험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A(Acceptable, 무난함)
막 시작되는 사랑의 순간순간을 담아낸 장면들의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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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랩 홈시네마 추천작 3편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12월 마지막 주 씨네랩이 추천하는 홈 시네마 추천작 3편을 선정하는 콘텐츠입니다.
오늘은 넷플릭스 시리즈 <피어 스트리트>시리즈 속의 2편과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이렇게 3편을 선정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작품의 선정 이유와 간단한 콘텐츠 소개를 전해드리도록 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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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ETFLIX <피어 스트리트 : 1978> 2편
<피어 스트리트 파트 2> 영화 - 공포ㅣ109분
- 콘텐츠 소개 : 세 편으로 구성된 시리즈를 한 번에 제작한 작품의 공포/ 호러 시리즈로 넷플릭에서 모두 볼수 있습니다. '셰이디사이드'라는 마을에서 뿌리내린 저주의 실체를 파헤치는 스토리.
- 선정 및 추천 이유 : 로튼 토마토 지수 89%, 팝콘 지수 82%, 그리고 IMDM 6.8점으로 꽤나 재미있다는 호평이 많은 작품입니다. 팝콘 무비로써 보기 알맞은 영화로 추천드립니다.
넷플릭스에서 1, 2, 3편 모두 공개되어있기 때문에 정주행 하기 좋은 영화인데요. 각 편당 러닝타임도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어 지루하기 않게 볼 수 있는 공포/호러 영화입니다.
특히 2편을 추천드리는 이유는 1편은 영화에 등장하는 살인마 캐릭터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장면에 치우쳐 슬래셔 무비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부담감이 있었다면
2편은 어떻게 마을에 저주가 내려오고 그럼으로써 어떻게 마을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의 스토리적 감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NETFLIX <프라미싱 영 우먼>
<프라미싱 영 우먼> 영화 - 범죄ㅣ114분
- 콘텐츠 소개 : 7년 전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당한 비극적인 사건에 충격을 받고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카산드라'가 친구를 위해 완벽하고 치밀한 복수를 실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 선정 및 추천 이유 : 먼저 배우 '캐리 멀리건'의 팬으로서 영화를 선정했고 또한 '캐리 멀리건'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그녀의 연기 변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영화로써 사회에 대한 메시지는 물론 독특한 이야기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78회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 그리고 각본상까지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던만큼 인정을 받은 작품이니, 꼭 한번 시청해도 좋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3. NETFLIX <나의 문어 선생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 다큐멘터리 ㅣ 90분
- 콘텐츠 소개 : 남아프리카의 바다에서 한 영화감독이 매일 특별한 문어를 만납니다. 경계에서 교감, 그리고 우정으로 발전하는 두 생명체의 관계. 그 세계의 숨은 신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 선정 이유 : 일단 다큐멘터리의 장르를 좋아합니다. 허구의 세계를 이야기를 잘 구성하고 연출하는 극영화의 매력과는 또 다른
날 것 그대로의 있는 그대로의 현실 속에서는 감동과 충격을 선사하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먼저 다큐멘터리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실제로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본 많은 분들은 인생 최고의 다큐멘터리라며 호평하고 있는데요.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조금은 생소한 동물 '문어'를 통해 우리 인간의 닮아있는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의 고난과 역경, 아픔, 희생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과정 속에서 넘치는 감동을 느낍니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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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하게' 유쾌한, 어떤 바다 위의 풍자극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해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그렇게 호평이 자자하던 <슬픔의 삼각형>을 보고 왔다. 이 영화는 정말이지 '지독하고' '통렬하며' '유쾌한' 풍자극이다. 여러 각도에서 인간 사회의 모순을 꼬집으면서 재미까지 모두 담보했다고나 할까. 한없이 가벼운듯하면서도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무겁다. 막이 내리면, 이 영화를 끝없이 곱씹게 되는데, 이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대단한 인상을 주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크루즈와 무인도 씬들은 무더운 여름날(이제 여름이나 다름없다!)에 보기에 아주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에서는 몇 가지 관람 포인트를 소개하겠다. 지극히 주관적이겠지만.
1. 변화무쌍한 주인공의 지위
주인공인 '칼'의 지위 변화는 정말이지 흥미롭다. 직장, 여자친구 앞, 크루즈, 그리고 섬에서 그는 모두 제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칼은 떵떵거렸다가 빌빌 기고, 빌빌 기다가도 큰 소리를 친다. 어라, 이런 남자, 이런 사람. 우리 주변에도 즐비하다.
그의 이러한 변화는 그가 처하는 환경에 기인한다. 그가 상대하는 다른 사람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들의 연결고리를 잘 살펴보는 것은 영화의 이해와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2. 대사에 주목하라: 말이 씨가 되는 법
이 영화 속의 대사와 장면 하나하나는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다. 가장 첫 장면부터 가장 마지막 장면까지! 촘촘하게 연결된 인간 사회에서 갑의 작은 진상짓은 처참한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키고, 그러한 나비효과는 이윽고 전복적인 결말에 이르곤 한다. 재미있는 것은, 갑들은 언제나 자신이 갑질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거다! 이 안의 다양한 '갑'들의 대사와 그들의 행위에 주목하라. 그리고 그들이 어떤 나비효과를 낳는지를 관찰해보라.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모순되었는지를 알아차려 보라!
3.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풍자적 비유들
소위 '갑'의 갑질로 의해 배가 뒤집힌다든가, 걸어가는 백인 부자 손님들이 등장한 바로 다음 씬에 바닥을 닦거나 '보이지 않는' 직원실에 숨어서 개미처럼 일하는 유색인종 직원들의 모습 등은 아주 효과적이고 알기 쉬운 방식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낸다. 이러한 장면적 연출들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리라.
아, 주의해야 할 것도 있다.
이 영화는 시원하면서도 지독하다. 문자 그대로, 아주 원초적인 방식으로 지저분한 씬들이 나오기 때문에, 비위가 많이 약한 사람이라면 몇몇 장면에서 눈을 가리고 귀를 막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보러 가고 싶다. 여러분도 한바탕 크루즈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저 멀리, 바다의 한복판에서 우리 삶의 또다른 단면을 되돌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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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인’이라는 은유, 그 미친 사랑의 노래
7★/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17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전 세계적 호평을 이끌어낸 루카 구아다니노의 차기작은 1977년 개봉한 〈서스페리아〉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공포·스릴러 영화였다. 반응은 엇갈렸다. 누군가는 ‘마녀’에 대한 영화의 재해석과 감각적인 연출에 호평을 보냈지만, 다른 누군가는 지나친 난해함과 인위적 기괴함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리고 몇 편의 영화를 거친 후, 루카 구아다니노는 두 영화의 특장점인 로맨스와 기괴함을 버무려 〈본즈 앤 올〉로 돌아왔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매런은 소심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기도 한 여성 청소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매런은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라는 친구의 초대를 받는다. 매런은 당장이라도 응하고 싶지만 아버지가 문제다. 아버지는 매런이 잠을 자러 방에 들어가면 문 밖에서 방문을 걸어 잠근다. 창문도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만들어두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친구와 놀고 싶었던 매런은 몰래 연장을 활용해 창문을 뚫고 친구네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매런의 아버지는 권위적이거나 통제욕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매런이 남에게 피해를 끼쳐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밤마다 매런을 가둔 것이었다. 매런은 식인 식성을 갖고 태어났다. 세 살 때 유모를 물어뜯어 죽게 했고, 아버지는 그런 매런을 데리고 도망쳤다. 너무도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아버지는 매런을 사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혐오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잘 교육하면 끔찍한 식성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여겼고 매런을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매런은 그날 밤 자신에게 다정히 대해주는 친구의 손가락을 물어뜯어버린다. 결국 아버지는 매런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녀를 혼자 남겨둔 채 몰래 도망간다. 그래도 자신이 보듬어야 할 딸이라는 괴로움과 선량한 시민이라는 자의식 사이에서 타협한 결과였을 테다.
아버지는 매런을 떠나며 그녀의 어머니에 관한 단서를 남긴다. 매런은 자신의 식성과 어머니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아버지가 남긴 단서를 따라간다. 어머니를 향한 여정에서 매런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식성을 가진 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자신이 남들과 다른 존재라는 사실 앞에서 큰 혼란을 느끼던 매런은 리와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다. 자신 역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 역시 깨닫는다. 그리고 여러 위기를 겪은 후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리와 ‘하나’가 됨으로써(죽어가는 리를 먹음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완성한다.
매런이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끝내 사랑으로 구원받는다는 영화의 서사는 퀴어 정치와 닮은 데가 있다. 아버지가 떠나 혼자가 된 후, 매런은 설리라는 이름의 나이든 남자를 만난다. 설리는 매런에게 식인 식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점을 알려주고, 사람을 먹는다는 죄책감을 넘어서야만 진입 가능한 세계가 있음을 일깨워준다(퀴어 역시 이성애와 성별 이분법이 규범인 세상에서 혼란스러워하다가 선배들이 먼저 구축한 세계를 만나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핵심은 죄책감의 극복이다. 이들은 자신의 본성이 도덕적,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죄책감을 떨쳐내야만 계속 살아갈 수 있다.
매런이 리와의 사랑으로 절망을 딛고 미래를 상상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매런이 그러하듯, 퀴어들은 내가 남들과 다른 괴물, 괴짜라는 수치심과 고립감에 자신을 혐오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기존 도덕과 규범을 거스르는 존재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랑은 그들 역시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기존 사회에 충격과 공포, 두려움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퀴어와 식인 습성은 공통점을 지닌다. 〈본즈 앤 올〉의 식인 소재는 용인 가능한 정도에 관한 선을 파격적으로 넘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본즈 앤 올〉, 이 미친 사랑의 영화가 끝내 도달한 곳은 수용할 수 없는 자들의 존재론이다. 모든 배제된 자들의 가장 극단적인 은유인 식인 습성을 지닌 자들은 사랑으로 스스로를 구원했다. 남은 것은 ‘공존’*이다.
*식인 습성을 가진 부족을 조사한 문화인류학 연구를 보면, 식인 풍습은 사냥하듯 누군가를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존속, 사회적 유대 차원의 의례로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본즈 앤 올〉에서는 식인을 은유의 차원에서만 다루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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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4」 시리즈 속 모든 상징과 철학 뽀개기 #01 | 매트릭스 인문학 리뷰 | 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뷰 | 매트릭스4 리뷰 | 매트릭스4 해석 | 매트릭스 리저렉션 해석 |
?《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리뷰 / 매트릭스4 리저렉션 리뷰
《매트릭스 1~3》 인문학 결말포함 영화리뷰 #1
*후속영상
#2 [현실은 진짜일까?] https://youtu.be/wfvqm5HBRb0
#3 [빨간 옷의 여자] https://youtu.be/X_fQcoytk70
#4 [오라클은 악마다?] https://youtu.be/fLgWf7NWkn8
#5 [스미스는 왜 졌을까] https://youtu.be/Uas0KZDCQec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간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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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넘는 동심파괴(?)의 현대적 해석 / 내가 알던 백설공주가 아니야 / 새로운 캐릭터의 매력 / 단순한 스토리의 영화화 한계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백설공주"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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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공식 예고편
한여름 찾아온 수상한 손님으로 인해, 평온한 일상이 무너지고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8월 23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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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461개의 도시락>
15살 코우키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뮤지션인 아빠 카즈키와 단 둘이 함께 살게 된다. 아빠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매일 도시락을 사줄 것을 약속하고, 대신 코우키는 학교에 빠지지 않고 등교하기로 약속한다. 학교에서 아빠의 도시락이 때로는 시한폭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절친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1년을 유급하여 한 살 어린 친구들과 같은 반에서 생활하는 것도 부모님의 이혼도 적응이 안 되는 코우키는 방황을 하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