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샤2024-10-26 17:47:30
영화 <쑤저우강> 리뷰 - 다층적 해석의 거미줄에 걸린 지독한 사랑 이야기
영화 <쑤저우강> 리뷰
어릴 적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세차게 흐르는 흙탕물에 발을 담가 본 적이 있다. 사전에 수심이 얕은 곳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탁류에 들어가는 것은 무척 두려운 일이었다. 혹시나 물살에 휩쓸려 자빠지면 현세의 흙탕물이 순식간에 황천길로 바뀔 판이니 당연했다. 양발을 하상(河床)에 안정적으로 고정했다는 안도감이 들고 나서야 제멋대로 흘러가는 거대한 물줄기를 응시할 수 있었다. 흐르는 시간의 힘을 시각적으로 절감했던 순간이었다. 10대 중반이었지만 모든 것은 변화하고 종내 사라진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느꼈을까?
러우예(로예) 감독의 영화 <쑤저우강>은 흙탕물이 흐르는 중국 상하이의 쑤저우강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청춘들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다. 과감한 1인칭 시점 숏, 때로는 불편할 정도로 흔들리는 핸드헬드 촬영,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데 필수적인 주인공의 내레이션 등 내용과 형식 면에서 왕가위(왕자웨이)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적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영화의 핵심적 이야기 줄기를 바탕으로 영화의 내적 의미만을 고려한다면 <쑤저우강>은 인어공주 동화를 변주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만 해석하기에는 영화가 관객에게 마련해 준 해석의 공간이 너무 드넓다. 기묘한 액자식 구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레이션만 하고 얼굴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 남자 비디오 촬영기사가 도대체 누구인지, 배우 저우쉰이 1인 2역으로 연기한 여자 주인공 메이메이와 무단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마다와 무단의 전설적인 사랑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관객은 의심과 혼란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하게 된다. 러우예 감독은 <쑤저우강>을 명쾌한 해석이 불가능한 영화로 만든 것이다.
<쑤저우강>은 '다층적 해석의 거미줄에 걸린 영화'라는 생각을 하며 정성일 평론가가 진행한 라이브러리 톡에 참가했다. 장장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라이브러리 톡에서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의 내적 구성 요소만으로는 <쑤저우강>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러우예 감독이 직접 경험했던 현대 중국의 비극적 역사를 <쑤저우강>에 겹쳐 놓고 보아야 흙탕물처럼 속이 보이지 않는 감독의 연출 의도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영화의 안과 밖을 두루 살펴야 영화의 진짜 얼굴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에 대한 열정, 고민의 폭과 깊이가 정말 대단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자리를 지킨 관객들에게 따듯한 유대감을 느끼면서 집으로 향했다. (끝)
* 씨네랩의 초청으로 10월 16일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된 <쑤저우강> 상영회와 라이브러리 톡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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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멀티버스가 열려야 하는 이유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은 마블이 만들어 갈 새로운 신화의 서막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작품이었다.
'멀티버스'라는 전제 하에, 예전 소니에서 탄생한 두 명의 다른 스파이더맨들까지 총출동하여, 스파이더맨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종합 선물세트' 같은 작품이 되었다.
한 공간에 모이게 된 세 명의 스파이더맨
엄청난 감동을 안겨준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와 함께, 이번 작품 속 주인공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은 '역대급 민폐 캐릭터'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저 놈만 아녔어도.... 이 대환장파티가 안 열렸을 텐데.."라는 이야기가 많이 쏟아져 나온다.
스파이더맨의 민폐력(?)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를 멀티버스 전쟁으로 이어진다.(<닥터 스트레인지> 2로 연결될 멀티버스 전쟁...)
멀티버스 전쟁의 새로운 시작을 열게 되는 '스파이더맨'과 '닥터 스트레인지'
얼굴이 알려진 스파이더맨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피터(톰 홀랜드)는 자기 때문에 친구들이 피해를 입자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피터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마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자기 입맛대로 몇몇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고 싶던 피터의 욕심 때문에 마법이 흔들리고, 시공간이 뒤틀리면서 멀티버스가 열린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인물, 바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 = 아이언맨
스스로 자기 가면을 벗어버리고, 당당히 세계 앞에 "내가 아이언맨이다"라고 말한 유일한 히어로.
스파이더맨과 DC의 배트맨, 모두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자기 가면을 철저히 지키고자 한 히어로들이다.
반면, 토니 스타크는 스스로 가면을 벗어버리고 만천하에 선포한다. "내가 바로 아이언맨이다!"
토니 스타크는 토니 스타크의 삶과 아이언맨의 삶을 분리시키지 않았다. (그 대가도 만만치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은 늘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결국 그는 사랑하는 가정도 지키고, 인류도 지켜냈다!)
피터 파커는 피터 파커의 삶과 스파이더맨의 삶을 분리하고자 하였다.
두 개의 다른 삶을 동시에 가지고자 했던 그 분열된 마음이, 멀티버스를 열게 만든 핵심 요인이 된다.
닥터 스트레인지도 그 점을 꼬집는다. 피터가 두 개의 다른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그렇다면 길은 두 가지이다.
두 개의 삶 중 하나는 철저히 포기하거나, 두 개의 삶을 통합시키거나!
이번 영화에서 스파이더맨은 '하나의 삶은 철저히 포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앞으로 3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더 나온다고 하니, 그 과정에서 어떠한 변화가 생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스파이더맨을 역대급 민폐 캐릭터처럼 보이게 만든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
왜 스파이더맨이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는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행동이었는지, 그래서 뭘 얻었는지,
멀티버스는 왜 열려야 했는지......
그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 작품 하나만으로는 충분한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드라마 <로키>와 연결되었을 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멀티버스' 개념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드라마 <로키>
드라마 <로키>에 의하면, '1차 멀티버스 전쟁'이 발발했을 때 '남아 있는 자'에 의해 전쟁이 종식되었으며, '신성한 시간선'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간의 어벤저스 시리즈는 이 '신성한 시간선'이 유지되는 가운데 진행된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신성한 시간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변종들, 변이들, 차원과 차원을 넘나드는 모든 행위들은 제거되어야 한다.
바로 TVA라는 조직에 의해.
<로키>의 결말 부분에서는 이 '신성한 시간선'이 노출되면서 모든 차원이 다시 뒤섞이는, 2차 멀티버스 전쟁의 서막이 열린다.
'신성한 시간선'이 노출되는 그 순간, '남아 있는 자'는 뭔가 바깥세상에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감지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드라마 <로키>의 '남아 있는 자'
"우린 방금 문지방(threshold)을 넘었어!"
<로키>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 순간 '남아 있는 자'가 감지한 '바깥세상의 심상치 않은 변화'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일 가능성이 높다.(이 부분이 <닥터 스트레인지 2>와 연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파이더맨의 부탁으로 시작한 마법은 어렵사리 유지되어 오던 '신성한 시간선'을 노출시킨다.
<로키>와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 (+<닥터 스트레인지 2>) 이후, 이제 '신성한 시간선'은 사라진다.
신성한 시간선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멀티버스가 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신성한 시간선은 무엇을 상징했나.
<로키>의 '남아 있는 자'는 자신을 죽이러 온 두 로키의 변종에게 이렇게 말한다.
억압하는 질서(신성한 시간선을 지키는 일)냐, 격변하는 혼돈(멀티버스)이냐!
너희는 독재자(신성한 시간선)가 싫겠지만 그를 없애면 훨씬 더 나쁜 게 그 빈자리를 채울 거다....
'신성한 시간선'은 이를테면 다른 시간선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지켜져 왔다.
다른 시간선에서 끼어 들어오지도 못하고, 다른 시간선으로 잠깐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철저히 방어하고 억제하고 감시하며 지켜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희생이 뒤따랐다.
(신성한 시간선을 위협하는, 조금의 변이도 인정하지 않기 위한 철저한 억압과 감시!)
그러나 '남아 있는 자'는 그 희생은 실리를 따지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 '억압하는 질서(자유의지억압)'vs.'격변하는 혼돈(자유의지사수)'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에서, 피터는 진작에 다른 차원의 우주에서 넘어온 빌런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메이 숙모의 가르침과 타고난 피터의 성품 등이 결합하면서, 피터는 다른 우주에서 넘어온 빌런들을 원래 우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새로운 우주에서의 새로운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참혹했다. 다른 우주에서 넘어온 빌런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라고 가르친 메이 숙모는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그 빌런, 그린 고블린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피터는 그린 고블린을 마침내 마주하고, 직접 죽이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1기 스파이더맨(토비)의 방해(?)로 피터는 살인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뭔 일? 1기 스파이더맨도 그린 고블린에게 당한다.(죽지 않을 정도로.) 그린 고블린은 자신을 살려준 인물들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죽이고 찌른다. 그런데도...
스파이더맨은 다른 시간선에서 넘어온 나쁜 놈들에게 왜 계속 기회를 주는가. 나쁜 놈들을 살려주어서 정작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피해를 입는데, 그런데도 이 스파이더맨들은 이 악당들을 계속 살려주고, 기회를 주려고 한다. 자기들이 자꾸 당해도...
이것이 설령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의 핵심 정체성이라 할지라도, "스파이더맨들은 왜 저래"라는 답답함이 생긴다. 진작에 다른 시간선으로 되돌려 보냈으면 되는 일이었는데...왜 그들을 제거하지 않았나...
왜 그는 다른 차원의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였나....
굳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스파이더맨은 '신성한 시간선'을 지키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신성한 시간선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러한 스파이더맨의 선택은 그의 '민폐력'을 증가시키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드라마 <로키>의 한 장면을 같이 살펴볼 만하다.
'신성한 시간선'을 관리하는 TVA의 두 관료, '재판장'과 '모비우스'의 대화가 의미심장하다.
'재판장'과 '모비우스'
재판장 : (신성한 시간선에서 벗어난) 시간선 제거 안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모비우스 : 어떤데요?
재판장 : 혼동, 죽음...
모비우스 : 자유의지는요?
재판장 : 그건 한 사람에게만 있어요. 책임자에게만.
다른 차원으로 넘어오거나 넘어가는 인물들을 가차 없이 제거하는 TVA의 재판장.
그녀는 자신들이 그렇게 '잘못된' 시간선을 제거했기에, 혼동과 죽음을 방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모비우스가 되묻는다. 제거된 사람들의 자유의지는?
이 자유의지의 문제는 다시 '남아 있는 자'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설령 개인의 '자유의지'를 억압하게 되더라도, 질서 정연한 '신성한 시간선'을 지키느냐, 아니면, 격변하고 혼돈하는 세상이 되더라도 '자유의지를 지키는 길'을 선택하느냐.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의 스파이더맨은 결과적으로 '억압된 질서'를 통해 '신성한 시간선'을 지키기보다는, '격변하는 혼돈'이 찾아오더라도 '자유의지를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실리에는 어긋난다 하더라도, 끝까지 지키고 싶은 '개개인의 자유의지 수호'에 대한 의지가 멀티버스를 열고야 만다.
예견된 혼동이며, 죽음이고 고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지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혼동과 고통 끝에 어떤 결말이 따르게 될지...
# 사라진 '신성한 시간선', 여정을 통해 바뀌지 않으면 끝까지 못 간다.
이제 '신성한 시간선'은 사라졌다.
본격적인 멀티버스 전쟁은 시작된다.
멀티버스 전쟁의 종식을 위한 스파이더맨만의 역할이 분명 있겠지!
드라마 <로키>에서 '남아 있는 자'가 로키에게 날린 대사가 인상 깊다.
"여정을 통해 바뀌지 않으면 끝까지 못 간다."
(you know you can't get to the end until you've been changed by the journey)
비단 로키에게만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스파이더맨의 진정한 성장도, 다시 시작될 세 편의 스파이더맨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겠지!
개인적으로는, 스파이더맨의 영원한 스승 '아이언맨'처럼,
스파이더맨 또한 두 개의 삶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어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길 희망한다.
가면을 벗어던져도 여전히 그 가면의 무게를 견디고 감당할 수 있는 그런 히어로로 성장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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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불이 꺼져도 멈출 수 없는 사랑의 힘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살갗을 파고들듯 마음에 상처를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그 순간을 이들만의 사랑의 화법으로 이때까지 본 적 없었던 상상 이상의 로맨스를 펼쳐낸다. 사랑의 의미를 잃어가는 요즘과 딱 어울리는 이 영화는 어떤 색의 사랑을 띌지라도 함께하고 싶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티모시 샬라메와 테일러 러셀이 출연하는 영화 '본즈 앤 올'은 11월 30일에 개봉했다.
평온한 풍경과 그림, 그리고 적막과 함께 흐르는 피아노 소리 속 잔잔한 목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잠든 밤, 몰래 빠져나와 친구들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내면에 자리 잡아 있는 미지의 존재와 마주하게 된 매런이 본능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홀로 남게 된 매런은 그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알게 되며 내면에 휘몰아치는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떠난 아빠의 목소리를 노래 삼아 들으며 사라진 엄마를 찾아 떠난다. 매런은 자신과 비슷한 존재의 '이터'를 알게 된다.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매런은 같은 종족의 사람들을 만나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된다. 종족의 이름은 ‘이터’이며 일종의 규칙으로 같은 종족이지만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과 함께하며 비밀을 공유함과 동시에 이유도 없이 찾아오는 식인성을 마주한다. 기억에 남지 않던 욕망의 기억을 떠올리며 죄책감을 느낄 새도 없이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된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다른 규격의 공간을 명확하게 했다. 서로 다른 영향력이지만 장면 장면 겹치는 사랑과 살해의 기억이 매런으로 하여금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바로잡게 한다.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지만 그가 느꼈던 따뜻한 온기는 피로 번져가도 놓을 수 없는 명확한 사랑의 형태로 바뀌고 뼈째로 집어삼켜도 괜찮을 사랑은 앞으로의 여정이 어떤 형태를 만들어갈지 궁금해지게 만든다.
카니발리즘을 통한 이야기 전개가 다소 낯설고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받아들이는 순간을 넘어 그 존재 자체의 인식에 초점이 맞춰지며 개연성을 충족시킨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에 대한 물음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핏빛으로 얼룩진 배경과 대치되는 아름다운 풍경이 대비되며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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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지는 관점 덕에 즐거운, <굿모닝 에브리원>
* 본 리뷰는 영화의 반전과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굿모닝 에브리원 Morning Glory, 2010미국 | 코미디 외 | 2011.03.17 개봉 | 15세이상관람가 | 107분
감독: 로저 미첼
달라지는 관점 덕에 즐거운, <굿모닝 에브리원>
<굿모닝 에브리원>는 '사악', '어둠'과 같은 부정적인 언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언제든 볼 수 있고, 영화 끝까지 그 마음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품이 들지 않는 마법 같은 영화랄까. 말 그대로 참 보기 쉽다. 특히 정신적, 감성적으로 목화솜의 촉감처럼, 안정감과 기분 좋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수다쟁이 베키 풀러(레이첼 맥아담스)의 쉼 없는 말과 행동에 잠깐 집중력과 흥미를 잃을 수도 있고, 자칫하면 '그들만의 세상'이란 관점을 관객에게 심어 그들에게서 완전히 도태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맹점이 너무 드러나있는 점이 살짝 아쉬움을 남기지만, 무료한 시간을 그냥 보내기 싫은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봐도 좋을 영화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조화로워 메인 주인공 베키의 변화하는 감정선이 잘 보인다. 스토리의 모든 요소에 깃든 유머가 꽤 매력적이고, 아침 방송국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들이 충분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채운다. 마이크(해리슨 포드)의 무표정과 한쪽 눈썹을 씰룩거리는 불만 가득한 표정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또 사실상 베키의 수다가 아니었다면, <굿모닝 에브리원>은 시작하자마자 풀썩 주저앉았을 것이다.<굿모닝 에브리원>이 흥미로운 점은 관객에게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외면과 내면을 동시에 성장시키는 것을 초점으로 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같은 형식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표면적 측면일 뿐이다. 베키의 바쁜 삶을 시작으로 그녀가 악명 높은 방송국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동시에 사랑을 어떻게 쟁취하고 지켜가는지는 앤드리아(앤 해서웨이)와 똑같다. 하지만 <굿모닝 에브리원>가 온전히 베키만을 내세우고 있는가? 그녀는 앤드리아와 달리 홀로 해낼 수 없는 한계를 가진 주인공이다. 방송 PD란 직업은 본래 다른 이들과의 협업이 없이는 불가능하니까. 시청률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사라질 위기에 놓은 아침방송 프로그램 '데이 브레이크'를 되살린 건 베키 혼자가 아니다.
따라서 <굿모닝 에브리원>이 내세운 첫 번째 관점은 '나'가 아닌 '우리'다.
베키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열정을 다 쏟으며, 자신의 존재가치와 위치를 증명하는 데 성공한다. 고집불통인 마이크까지 변화시키는 사건은 베키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서사적 장치였기에 실패는 더더욱 예견되지 않았다. 망해가는 '데이 브레이크'를 살린 건 포기하지 않는 베키의 열의와 그녀의 역량을 진작에 알아차린 마이크와 그녀의 진심을 깨달은 데이 브레이크의 소속 스텝들의 합심이었다.그녀가 일 중독자가 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꿈을 가진 건 좋아.
여덟 살 때는 귀여웠지.
열여덟 때는 당차 보였어.
스물여덟 먹고도 그 모양이니 창피해 죽겠다.
상처 받기 전에 현실에 눈뜨란 말이야.베키의 엄마는 베키가 지방방송 PD에서 해고당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속마음을 딸에게 털어놓는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욕망과 욕심을 자식이 대신 성취해야만 하는, 그런 전형적인 부모의 입장으로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방송일을 꿈꿨던 소녀가 꿈을 이룬 후, 더 이상 꿈이 주는 희열감과 행복감에서 빠져 살 수 없었던 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거란 얘기다. 따라서 베키는 자신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 아닌 일자리임을 엄마의 현실에서 또다시 깨닫게 된다.
다 좋다. 바쁘게 사는 것도, 쉼 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며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도 전부다. 하지만 베키는 점점 지쳐갔다.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어렵게 들어온 회사에서는 프로그램 폐지를 하겠다고 통보까지 하니 말이다. 결정적으로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다. 그리고 때마침, 마이크가 등장한다. 그는 베키에게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말라 조언한다. 일에 미쳐 가족에게 소홀했던 자신이 지금 얼마나 외로움과 사투를 하고 있는지 보여주면서 말이다. 또한 평생 가장 명예로운 자리에 앉아 뉴스를 진행하며, 영향력 있는 앵커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될 거라 믿었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단편적인 인간이었는지를 털어놓는다.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 중 세 번째란 타이틀을 가진 것도 올라가는 것만 인생의 값진 보물이라 생각한 마이크 본인 탓임을 시인한 것이다.
이후, 베키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당연히 고민이다. 베키는 그를 보며 자신의 삶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심을 해야만 한다. 그게 보통 이야기들의 흐름이니까. 가령, '정말 나에게 일이 전부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일에 미쳐있는 걸까?'란 생각에 묻혀, 일과 개인생활의 중심을 잡지 못하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매번 순기능을 하지 못하는 '자기 검열' 말이다.여기서 <굿모닝 에브리원>의 또 다른 관점이 등장한다.
사랑스러운 베키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개인적 시선은 그저 시선으로만 기능했다는 점.
희한하게도 베키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보다 직접 행동하는 방식을 취한다. 마이크의 조언과 애인의 배려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일과 삶의 균형점을 찾는 게 아니라 '조정'한다. 균형을 찾는 것은 베키 개인의 몫이니까. 그녀가 일에 더 미친다고 해서 베키의 삶이 불행할 거란 예측은 아주 불필요한 선입견이란 얘기다. 일과 사랑을 모두 충분히 만족하게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타인에게 확인시킬 이유가 베키에겐 전혀 없다. 베키는 정말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도, 매번 사랑에 조급해하는 마음도 그녀의 삶을 유지하는 투명하고 깨끗한 사이클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베키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이상적인 삶의 균형을 섬세하게 조정하면서 완벽한 '나'로 변화한다.베키 스스로는 변화했다고 느끼지만, 타인은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키포인트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볼 때, 카메라 앞에서 앞치마를 결코 두르지 않겠다는 고집쟁이 마이크를 카메라 앞에 세운 장본인은 '마이크나 애인에게 영향을 받아 180도로 바뀐 베키'가 아니라 '처음부터 한결같았던 베키'인 셈이다. <굿모닝 에브리원>은 베키의 성장담을 그린 것이 아니다. 베키의 진면목을 타인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면서, 결정적인 순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친절하게 확인시켜주고 있을 뿐이다. 나아가 보이지 않던 계획이 본 작품의 힘이란 자신감까지 덧붙인다.
마냥 재미있기만 한 영화가 아니다. 분명 당신의 마음을 간지럽게 하는 메시지가 있다. 끝내 '데이 브레이크'를 떠나지 않는 의리의 베키가 <굿모닝 에브리원>의 뻔한 결말로 치부되지 않는 이유, 영화를 본 이들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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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반의 칼은 백성에게, 백성의 칼은 적에게
과거 한국 사회는 양반과 노비로 철저하게 나뉜 계급 사회였다. 이런 계급적 대비는 많은 한국 영화에서 주요 소재로 사용되곤 했다. 예를 들어 <사도>는 왕과 그의 일족이 주인공이 되어 왕권의 억압과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야기를 다루며, <관상>은 다양한 계급의 인물들이 얽히며 당시 사회 구조의 이면을 드러낸다. 또 <변호인>은 권력자와 일반 국민의 대립을 현대적 맥락에서 보여주면서, 권력과 억압 속에서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억눌려 있는지 조명한다. 이런 계급적 대립 구도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 맥락을 기반으로 하여 관객들에게 친숙한 주제를 다루며,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극적인 이야기를 제공한다.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전, 란> 역시 양반과 백성 간의 대립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의 불일치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양반과 노비의 갈등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양반과 노비가 서로 이해하고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도 포함이 되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진정으로 서로가 섞일 수 있는지, 친구가 될 수 있는지를 계속 고민하게 한다. 영화 속에서는 양반인 종려(박정민)와 노비인 천영(강동원)이 등장하여 그들의 관계가 변화해가는 과정을 통해 당시 임진왜란 시기의 복합적이고 아이러니한 상황을 조명한다. 양반과 왕, 그리고 노비들이 각기 다른 선택을 하며 서로 엇갈리는 모습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 계급과 권력이 어떻게 얽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첫 번째 감정: 노비 천영의 허망함
천영은 억울하게 노비가 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양인이었지만, 가난 때문에 어머니가 노비로 팔려가면서 천영도 덩달아 노비가 되고 만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억압된 삶을 살게 된 천영은,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하면서 삶의 허망함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 자라왔기에, 그가 느끼는 세상은 차갑고 무의미한 곳이었다. 모든 행동에 감정이 없는 듯 보이는 천영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쌓인 허무함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차가운 인물로 그려진다.
천영은 양반 계급에 대한 분노를 내면에 쌓아가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다른 노비들과 깊은 연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부정하고 싶어하며, 자신이 노비라는 사실에 대한 억울함과 허무함 속에서 끊임없이 어디론가 도망치고자 한다. 천영은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이를 통해 양반인 종려에게 무술을 가르치고 대신 과거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천영의 내면에 있는 허망함은 더욱 커진다. 그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압박감을 느끼는 종려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결국 자신의 노력이 종려를 왕의 최측근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되면서 더욱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
천영의 삶은 그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만 흘러간다.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수록 그 결과가 다른 사람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점점 더 깊은 무력감에 빠져든다. 천영에게 삶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며, 그의 존재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그의 허망함은 단순히 억울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이용당하는 현실 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점에서 천영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그의 내면은 점점 더 차갑고 어두워져 간다. 변해가는 그의 모습에서 점점 어둡고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일반 백성과 노비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두 번째 감정: 종려의 분노
종려는 계급적 위선이 없는 인물로, 천영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어한다. 양반으로 태어났지만 권력욕이 많지 않은 종려는, 백성이나 노비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과 공감하고자 노력한다. 영화 전체에서 종려는 양반 중에서도 비교적 순수하고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양반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노비와 함께하고 싶어하며, 그들에 대한 인식 개선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려의 태도는 천영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나며, 그는 천영을 단순한 노비로 보지 않고 진심으로 친구로 대하려고 한다.
그러나 시대적 강요에 의해 종려의 삶은 달라지게 된다. 그는 원치 않게 벼슬을 가지게 되고, 왕의 곁에서 권력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종려는 자신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그는 권력자들의 위선을 보면서도 특별히 노비나 백성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에 대한 연민과 인식 개선을 바라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이상은 점점 현실의 무게에 눌리게 되고, 그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노비들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종려의 상황은 급격히 바뀐다. 반란 속에서 그의 가족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종려는 그 충격과 슬픔 속에서 결국 권력자들의 위선을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왜군이 쳐들어오면서 왕과 권력자들을 호위하며 도성을 떠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이 장면에서 종려는 처음으로 제대로 칼을 휘두르게 되는데, 그 칼끝은 모두 백성들을 향하고 있다. 분노에 사로잡힌 종려는 자신도 모르게 권력자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되며, 백성들을 억압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 그의 변화는 시대의 무게에 짓눌려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리 선한 마음과 좋은 의도를 가졌던 인물이라도, 하나의 오해와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백성들에게 해를 가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세 번째 감정: 왕의 위선
<전, 란>에서 천영과 종려의 관계가 중심에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왕 선조(차승원)의 위선이다. 영화 속 선조는 당시 백성들의 고통과 왜군의 침략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불타버린 왕궁을 다시 화려하게 재건하는 것이며, 백성들이 따르는 장군이나 영웅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그는 백성들이 자신 이외의 영웅을 따르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는 백성들이 오직 자신만을 우러러보기를 원하며, 그들이 다른 누군가를 영웅으로 여기면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전쟁 중에도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만 몰두하며, 전쟁의 영웅들과 백성들의 목숨을 가볍게 여긴다.
왕의 모습은 전쟁 속에서 백성들을 위해 싸우는 다른 인물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천영과 종려가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왕은 오직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한다. 이러한 왕의 위선적인 모습은 종려와 같은 양심적인 벼슬아치들조차 악당으로 변하게 만든다. 왕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신하가 있으면 쉽게 그들을 처형해버리며, 백성들을 위한 정치가 아닌 자신을 위한 정치를 펼친다. 이는 결국 권력이 어떻게 사람들을 변하게 만들고, 그 권력이 백성들에게 어떤 고통을 가져오는지를 보여준다.
왕의 위선은 현재의 정치 상황과도 연결될 수 있다. 여전히 많은 권력자들이 백성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모습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영화 속 선조의 모습은 권력의 본질이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권력자들의 위선이 백성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해 반복되는 권력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며, 관객들에게 권력의 본질과 그로 인한 고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양반과 노비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영화 <전, 란>은 나라를 위해 싸우는 노비 천영과 백성들을 베는 양반 종려를 대비시키며, 역사와 사회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천영은 노비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사회가 그를 그런 방향으로 몰고 갔다. 종려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스스로 양반이라는 계급을 선택한 것이 아니며, 권력을 원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관직을 얻고, 계급적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상황은, 마치 임진왜란이라는 혼돈의 시대 속에서 아무도 얻은 것이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듯하다.
특히 천영과 종려는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친구로서 서로를 바라보며, 그 관계는 매우 애틋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적이 되어야 했던 그들의 눈빛은 영화의 마지막까지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김상만 감독의 연출로, 당시 시대의 혼란과 인간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뛰어난 색감과 캐릭터 대비를 통해 잘 표현해냈다. 강동원과 박정민, 그리고 차승원 등의 배우들은 각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며,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액션 장면들은 그들 간의 갈등과 시대적 배경을 잘 반영하며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과 시대적 상황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권력과 억압,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 간의 연대와 고뇌를 진지하게 성찰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역사적 배경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길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qTnCGpfn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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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야말로 봄날의 햇살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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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편성 : ENA, 16화 완결 │ 장르 : 한국, 법정·드라마연출 : 유인식 │ 극본 : 문지원 │ 등급 : 15세 이상 시청가출연 : 박은빈(우영우), 강태오(이준호), 강기영(정명석), 하윤경(최수연), 주종혁(권민우) 외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
과연 봄날의 햇살 같은 이야기
봄날의 햇살.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최고의 단어가 아닌가 싶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야기다.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봄날의 햇살 같다. 나는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허황되게 동화 같은 이야기에는 극한의 거부감을 느끼는 매우 까다로운 시청자인데, 이 드라마는 영리하게도 그 경계에 머문다. 차별을 향한 혐오의 시선을 녹이는 따뜻함은 있지만, 그것이면 다 된다는 식의 허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작열하지 않고 은은히 내려앉는 봄날의 햇살처럼.
우 to the 영 to the 우.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인 주인공 ‘영우’는 뛰어남과 모자람을 동시에 지녔다. IQ 164로 천재에 해당하는 지능을 가졌지만,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고 소통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어서다. 그래서 그녀는 법전을 달달 외우는 천재성을 보이지만, 남들은 다 통과하는 회전문도 통과하지 못하는가 하면, 자신이 하는 고래 이야기를 남들이 싫어하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
영우의 캐릭터는 허황인가 현실인가
그런 영우를 둘러싼 세상에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영우를 같은 인격체로 대하는 시선과, 그렇지 못한 시선. 전자는 영우의 천재성과 특별함을 귀히 평가하지만, 후자는 어울리지 못하는 영우의 사회성을 지적한다. 이 드라마는 어쩌면 두 가지 시선 모두를 지녔을 시청자를 영우의 세계관에 데려다 놓으며, 천천히 자폐인을 이해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외부인의 시선이었던 시청자는 어느새 영우의 세계관에 들어와 세상 밖을 보게 된다.
우리는 자폐인에 대해 잘 모른다. <말아톤>에서 본 조승우의 모습이 내게는 유일한 자폐인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자폐를 가지고 과연 변호사라는 유능한 직업을 할 수 있는지. 이게 현실성이 있는 건지. 자폐 스펙트럼 장애도 수많은 결이 나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탓이다. 영우는 실제로 자폐를 앓았던 미국의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을 모티브로 한다. 템플 그랜딘은 영우처럼 취약하고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대학교수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자폐가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못할 수준의 장애라고 여기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매체를 통해 한정적인 모습만 보아왔기 때문은 아닐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
이런 법정 드라마는 처음이지?
이 드라마가 매력적인 것은, 그런 자폐인을 올곧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영우가 좌충우돌 사건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들에서도 착실하게 재미가 쌓여간다. 자폐인에게는 편견이 없다. 따라서 어떤 대상에 대한 과도한 연민이나 편향된 잣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점은 공교롭게도 감정을 배제하고 공정해야 하는 변호사의 직업 특성에 특화된다. 그런 시선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영우를 보는 것은 과연 이 드라마의 큰 즐거움이었다. 정의롭되 휩쓸리지 않고, 감정을 덜어내되 치사해지지 않는 공정함. 패소와 승소를 번갈아 하지만 영우가 맡은 여러 가지의 사건들은, 그녀에게도 그리고 시청자에게도 묵직한 교훈을 남긴다.
더불어 이 따뜻한 드라마에서 영우만큼이나 애정이 갔던 캐릭터를 굳이 굳이 한 사람 꼽고 싶다. 단연 ‘정명석’ 변호사다. 영우에게 봄날의 햇살이었던 최수연 변호사도, 그녀를 훌륭히 키워낸 아버지도 좋았지만, 진정으로 영우에게 후광을 안겨준 이는 바로 정명석 변호사가 아니었을까. 대형 로펌 ‘한바다’의 선배 변호사였던 그는, 신입으로 들어온 우영우 변호사를 진심으로 대했다. 장애가 있다고 약자로 취급하지도 않았고, 천재라고 해서 시기하거나 적대하지도 않았다. 그는 선배 변호사로서 후배 변호사가 특정한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로운 시선으로 사견을 풀도록 돕는다. 그런 두 사람의 선하고도 바른 시너지를 보는 것은 또 하나의 묘미였다. 살면서 그런 멘토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인생의 행운일지. 정명석 변호사를 연기한 강기영 배우에게도 인생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
모든 차별과 편견을 녹이는 이야기의 힘
세상에는 다양한 결의 변호사가 존재한다는 걸 안다. 주로 권력과 자본의 편에 서서 의뢰인을 담당하는 변호사도 있겠고, 주로 소외계층의 편에 서서 어깨를 내어주는 변호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를 그 둘로만 나누는 것 역시 나의 편견은 아니었을지 이 드라마를 보고 반성하게 됐다. 수임료가 비싼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에게는 정의감이 없을 거라는 생각, 돈과 권력을 가진 의뢰인은 모두 범죄자일 거라는 생각. 하지만 ‘한바다’ 같은 대형 로펌이라고 권모술수가 남발하는 곳은 아니었다. 돈 많은 의뢰인들에게도 억울한 사연은 있으며, 돈 잘 버는 변호인에게도 정의감과 의협심은 존재했다. 다채로운 자폐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로펌과 법정의 세계 역시 다채로웠다. 한바다에 영우와 정명석이 있는 것처럼. 흰고래 무리 속에 외뿔고래가 있는 것처럼.
이것 아니면 저것. 가난하고 착한 변호사와 돈 잘 벌고 부패한 변호사. 비장애인과 장애인.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경계선을 지워나가게 만드는 이 드라마가 유난히 좋았다. 봄날의 햇살은 경계를 따지지 않고 어디에든 공평하게 내려앉는다. 초록색 들판에도, 차가운 아스팔트에도, 흑백논리로 세상을 보려 했던 누군가의 마음에도. 누군가가 이 드라마를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그래서 나는 ‘봄날의 햇살 같은’ 드라마라고 하고 싶다. 차별과 편견이 만연한 세상의 모든 곳에 이 따뜻한 이야기의 햇살이 가 닿기를..., 바라본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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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에서 로버트 패틴슨과 만날까?
안녕하세요!
영화/OTT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던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소식인데요!
미국의 에드워드 애쉬튼 작가의 아직 출간되지 않은 <미키7>이라는 제목의 원작소설을
봉준호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하여 영화화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려 주연배우로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테넷>, 그리고 <굿타임> 등으로
세계적으로나 국내팬들에게도 너무 유명하고 올해 상반기 최고 기대작인 <더 배트맨>으로 돌아올
'로버트 패틴슨'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영화 <트와일라잇>
영화 <굿타임>
영화 <테넷>
'물론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100% 확정이 날때까지는 기다려봐야겠지만
봉준호 감독과 로버트 패틴슨의 만남 가능성만으로 많은 영화팬들이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전작인 <옥자>를 제작한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인 플랜B와 영화 <기생충>의 TV시리즈를 공동제작하는
케이트스트리트픽처스컴퍼니,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프로덕션 회사인 오프스크린이 공동제작하고
워너브라더스가 투자/배급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영화의 원작이 될 <미키7> 소설은 미국 현지에서 2월에서 출판될 예정인데,
먼저 지난해에 봉준호 감독은 <미키7>의 원고를 받아봤다고 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원고에 큰 흥미를 보였고, 워너브라더스 경영진과 현재 할리우드의 30대 할리우드 A급 스타들과 미팅을 가졌고,
그 중에서 로버트 패틴슨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키7>소설의 주된 내용은 얼음 행성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파견된 인간 원정대의 복제인간 '미키7'이 주인공인 공상과학 SF장르입니다. '미키7'이 또 다른 복제인간 '미키8'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내용은 물론 다르지만 봉준호 감독의 이전 공상과학 SF장르물인 <설국열차>가 연상되는데요.
그 이유는 <설국열차> 또한 프랑스의 만화 원작을 기반으로 한 SF장르물로 봉준호 감독이 직접 각색을 하고 연출을 했습니다.
그에 따라 원작내용과는 조금 다르게 연출됐죠. <미키7> 또한 봉준호 감독의 이전 각색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원작소설과는 조금 다른 내용으로 전개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봉준호 감독이 원작 소설에 큰 흥미를 보여 제작이 빨리 결정됐다고한만큼 곧 제작확정 소식과
캐스팅 라인업이 결정되어 많은 영화팬들에게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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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 가 이제 할리우드 주연급 배우로 성장을 했다니!!
*결말포함 영화리뷰 아닙니다#맥켄지포이 #멕켄지포이 #인터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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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에이이치로가 그린 사상 최고 인기 만화를 실사로 옮긴 작품, 그 대망의 첫 영상을 지금 공개한다. 《원피스》, 8월 31일 출항.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