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2-07 11:25:56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영화 9선
연출 차력쇼란 바로 이런 것!

단조로운 공간 활용의 단점을 극복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영화 9편을 준비했습니다.
현대인에게 안성맞춤인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들로 준비했으니, 영화와 함께 금요일 저녁을 즐겨보아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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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5일 | 언론이 놓친 미덕을 비극으로부터 찾아내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을 현지 생중계 중이던 미국 ABC 방송국 스포츠팀. 어느 날 새벽, 올림픽 선수촌에 총성 여러 발이 울러 퍼진다.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대표팀 숙소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인 것. 사건의 심각성을 깨달은 ABC 스포츠 사장 '룬 알리지'(피터 사스가드)는 본사 국제부 대신 스포츠팀이 뉴스를 보도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스포츠 운영 총괄자 '마빈'(밴 채플린)은 타 방송국과 위성 시간대를 바꾸는 협상에 돌입하고, PD '제프리'(존 마가로)도 독일인 통역사 '마리안네'(레오니 베네쉬) 도움을 받아 인력과 카메라를 새로 배치한다. 갑자기 시작된 인질극 단독 생중계에는 시청자 9억 명이 몰리며 대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ABC 스포츠팀의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된 순간, 테러범들도 자신들의 방송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
피할 수 없는 비극을 파헤치다
1972년 9월 5일. 뮌헨 올림픽이 한창이던 때에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인 '검은 9월단'이 비밀리에 올림픽 선수촌에 난입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올림픽 대표팀 선수 5명, 심판 2명, 코칭스태프 4명, 총 11명을 인질로 잡고 이스라엘에 구금된 팔레스타인 포로 234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서독 경찰에 의해 범인들은 모두 사살 또는 체포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경찰 한 명과 인질 전원도 사망했다.
'뮌헨 올림픽 참사'의 원인으로는 여러 요소가 지목된다. 서독 경찰의 경우 대규모의 조직적 민간인 인질극을 예상하지 못한 나머지 테러 진압 작전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언론도 경찰 못지않게 비판받았다. 사건 당시 선수촌 상황이 TV로 생중계된 나머지 테러리스트들이 TV를 보면서 서독 경찰의 진압 작전을 실시간으로 파악한 후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
물론 언론 입장에서도 변명거리는 있다. 대규모 테러 인질극 보도는 전례가 없었기에 발생한 실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9월 5일: 위험한 특종> (이하 <9월 5일>)은 참사 당시 언론의 대응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며, 그보다는 언론 내부의 메커니즘이 필연적으로 만들어낸 오류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9월 5일>의 건조한 비판은 살이 아리듯 날카롭다. 반 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유효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내부만 들여다보다
<9월 5일>의 가장 큰 특징은 선택과 집중이다. 영화는 뮌헨 올림픽 참사를 다루고 있지만, 직접 묘사하지는 않는다. 테러리스트가 작전 계획을 짜고, 선수촌 내부로 진입하고, 인질을 사로잡고, 경찰과 대치하는 식의 이미지는 단 한 컷도 등장하지 않는다. 애초에 카메라는 ABC 올림픽 스튜디오 외부 광경 자체를 안 비춘다. 테러리스트와 인질이 탄 헬리콥터를 보기 위해 주인공들이 밖으로 나가는 장면 정도가 몇 안 되는 예외다.
그 대신 간접적인 수단을 활용해 상황을 연출한다. 선수촌에 몰래 잠입한 현장 기자들의 전화나 무전, 선수촌을 내려다보는 카메라에 잡힌 장면, 도청한 서독 경찰의 무전 및 경찰의 공식발표가 적힌 팩스 등. 이는 두 가지 효과를 가져다준다. 우선 등장인물도, 관객도 외부 상황을 알 수 없기에 매 순간 서스펜스가 극대화된다. 한편으로는 이미 유명한 사건보다는 사건을 다루는 언론에게만 집중하겠다는 선언처럼도 느껴진다.
흥미롭게도 <9월 5일>이 묘사하는 언론의 모습은 다른 영화에 등장한 언론과는 다르다. 언론을 다루는 영화는 대체로 기자 개개인의 취재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스포트라이트' 팀 기자들이 가톨릭 사제 아동 성추행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취재원과 접촉하고, 과거 자료를 분석하는 모습을 따라가는 구성을 취했다.
<9월 5일>은 다르다. 이 작품은 기자들이 어떻게 취재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 영화는 오로지 언론 내부의 의사결정 상황에 주목한다. 누가 선수촌으로 가고 앵커와 PD는 누가 맡을지, 경찰 소식은 어떻게 확인할 것이며, 스포츠팀이 테러 소식을 전할지 아니면 미국에 위치한 본사에서 이 뉴스를 담당할지 등. 뉴스 한 꼭지가 만들어지기까지 언론 내부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침착하게 따라간다.
신속함과 생생함이라는 허상
그 덕분에 <9월 5일>은 언론인을 혼란에 빠트리는 두 가지 딜레마를 포착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매번 선택을 내려야 하는 분기점마다 현장감과 윤리, 신속함과 정확성 사이에서 고뇌한다.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언론의 가치이지만, 양립하기는 어렵기 때문. 결국 그들은 윤리보다는 현장감, 정확성보다는 신속함을 우선순위로 두기로 결정한다.
이 선택은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일례로 제프리는 ABC 스튜디오가 선수촌 바로 옆에 위치했다는 이점을 살리기로 결정한다. 스튜디오 카메라 두 대를 밖으로 빼서 선수촌을 생중계하여 가장 생생한 그림을 시청자에게 보여주겠다는 것. 하지만 이는 상술했듯이 비극적 결과를 초래한다. 경찰의 선수촌 진입 작전을 테러리스트에게 일러바치는 꼴이 됐기 때문. 현장감을 살리려다가 뉴스 당사자들을 고려하지 못한 우를 범한 셈이다.
정확성보다 신속함을 우선순위에 둔 결과물도 처참하다. 경찰이 공항에서 테러범을 모두 사살하고 인질을 구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프리는 이를 곧장 속보로 내보낸다. 다른 방송사나 언론사보다 늦을 경우 ABC의 신뢰성과 지위가 손상될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 그 결과 오보가 전 세계에 퍼져 나간다.
두 장면 모두 저널리즘의 본질적 약점을 보여준다. 다른 방송사, 언론사와의 경쟁 때문에 필연적으로 평가절하되는 가치와 우선시되는 가치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다른 방송사보다 신속하게 생생한 현장을 보여줘야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으니까. 마빈처럼 현장감에 앞서서 윤리를, 신속함보다는 정확성을 고려하자는 의견은 최초, 단독, 속보라는 타이틀이 가장 중시되는 언론 생태 내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의 미덕
이 지점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이 눈에 띈다. 바로 영화가 호흡을 고르는 컷들이다. <9월 5일>은 급박한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한 번씩 템포를 늦추면서 템포를 조절한다.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 선수와 코칭스태프 사진을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크기를 키우고, 생중계 화면에 자막을 삽입하기 위해 알파벳 모형을 재배치하며, 현장 기자가 찍은 영상 중 필요한 장면만 편집하는 모습을 비추는 식이다.
흥미롭게도 모든 작업은 아날로그로 이루어진다. 사진 크기를 키우려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재촬영한 뒤 인화해야 한다. 알파벳 모형도 담당자가 손으로 배치하고, 필요한 영상도 전체에서 직접 잘라내야 한다. 현재 방송사의 디지털화된 뉴스 제작 방식에 비하면 일견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이처럼 품을 들이는 과정 덕분에 제프리와 그의 팀은 시청자에게 정보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방법을 충분히 검토한 뒤 결정할 여유가 생긴다.
바로 이 지점에서 <9월 5일>의 의도는 명확해진다. 아무리 급박해도 언론은 한 템포 끊을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 실제로 룬과 마빈은 생중계 도중 인질이 살해당할 경우 뉴스를 끊어야 할지를 두고 대립한다. 하지만 그들이 뉴스 스튜디오 밖에서 한 박자 쉬어가자 제프리의 입에서 둘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절충안이 튀어나온다.
그와 반대로 단독과 속보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 제프리는 인질 구출 소식을 크로스체크해야 한다는 마빈의 의견을 묵살한다. 그 순간 ABC는 제프리가 한 템포만 끊고 현장에 나간 마리안네의 연락만 기다렸어도 막을 수 있었던 희대의 오보를 내보내고 만다. 이 두 장면의 대조는 한 번 쉬어갈 줄 아는 미덕과 여유의 중요성을 강조해 준다.
반 세기 전 사건을 다시 보는 이유
이는 1972년에 발생한 사건을 2025년에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요즘 언론에게 신속한 정보 전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언론이 다루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가 SNS에서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시대이기 때문.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의 뼈아픈 실수를 조명하는 <9월 5일>의 함의는 분명하다. 지금은 속보, 단독 경쟁이 아니라 한 호흡 쉬어가는 여유를 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보도 형태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과연 언론이 변화할지는 <9월 5일>도 명확히 답하지 못한다. 제프리는 자신이 오보를 책임지겠다며 자책한다. 하지만 룬은 다음 날을 위해 쉬라고 격려할 뿐 별다른 질책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풀 죽은 제프리가 룬의 사무실을 나설 때, 다른 동료는 잔뜩 흥분한 채로 룬에게 새로운 아이템을 제안한다. 총격전이 발생한 공항에 헬기를 비롯한 잔해가 남아 있을 테니 가장 먼저 그 현장을 찍어서 보여주자고.
그 순간 제프리의 자책에서는 언론의 변화를 바라는 소망이, 다른 동료의 아이디어에서는 이전 관습을 되풀이하려는 언론에 대한 회의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바로 이 장면 때문에 희망과 의구심이 순간적으로 교차되는 <9월 5일>의 결말은 특히 인상적이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선택권을 넘기면서 균형성과 공정성이라는 저널리즘의 가치를 손수 실천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
물론 <9월 5일>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캐릭터가 단순히 도구에 머무른다. 각 주인공의 개인사가 일절 언급되지 않다 보니 관객은 그들과 교감할 방법이 없다. 그들이 자기 결정에 대해 후회하고, 그 결과 때문에 좌절하더라도 감정적 동요가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차분하고 침착한 수준을 넘어서서 건조해진다.
이는 비슷한 결의 작품인 <스포트라이트>와의 결정적인 차이다.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교회와 연이 있는 기자들이 가톨릭 교회의 범죄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배신감, 회의감, 고뇌를 직간접적으로 녹여냈다. 이러한 감정선의 부재 때문에 <9월 5일> 마치 재연 다큐멘터리 같다. 언론 내부 사정에 관심이 없을 경우 급박한 상황 전개마저 지루하게 느껴질 가능성도 농후해진다. 역사가 곧 스포일러라서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세기의 차이를 뛰어 넘어서 언론의 본질, 가능성과 한계를 꿰뚫어 보는 <9월 5일>의 통찰력만큼은 충분히 인상적이다. 이 작품이 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제8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작품상, 제30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각본상, 편집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는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2025년의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을 본격적으로 즐길 시작점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반 세기가 지나도 여전한 한계와 반 세기가 지났기에 기대하는 가능성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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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라이트만 담백하고 나머지는 어수선한
전설과 함께
이 영화의 주인공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과 1947년 보스턴 마라톤대회 우승자 서윤복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부분이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손기정. 하지만 우승의 기쁨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시상식에 올라가는 손기정. 입고 있던 옷에 그려있는 일본 국기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묘목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다. 뒤집힌 조선 총독부. 손기정을 겁박한다. ‘내 개인의 승리가 아닌 우리 일본 국민의 승리’라는 말을 마지못해 기록한다. 손기정의 육상선수 커리어는 그때 끝났다.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1947년에서 시작된다. 냉면집에서 서빙 일을 하는 서윤복은 돈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 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손기정은 나라가 일제에게 벗어났다 하더라도 영 즐거운 일이 없다. 아들과 떨어진 일상. 매일을 술로 보낸다. 국민적인 영웅이라 ‘손기정 상’ 같은 시상식에 초대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그가 친한 동료 남승룡, 냉면집 아르바이트생 서윤복과 함께 보스턴 마라톤 대회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강제규 감독은 충무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1996년 <은행나무 침대>로 데뷔한 강제규 감독은 3년 후의 <쉬리>로 당시 한국영화 관객 신기록을 경신한다. <쉬리> 이후 4년이 지난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로 11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다. <실미도>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일이라 당시의 충무로도 반향이 컸다. 이렇게 강제규 감독이 상업영화라는 분야에 있어 두각을 드러냈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감정적으로 진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고, 큰 규모의 신을 찍을 때 인물들을 깔끔하게 정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묘사하는 끔찍한 전쟁의 참상은 영화의 후반부를 위해 필수적이다. 격렬하고 광폭한 전쟁이 이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걸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몇 인물들은 전쟁의 광기에 혹해버렸다. 광기에 취한 인물들이 전투 도중이나 군 막사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이 영화에서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전투 장면을 시각화하는 방식에도 감독의 장기가 들어가 있다. 이 <태극기 휘날리며>의 전투 장면은 좋은 의미에서 너절하다. 후반부 진태(장동건)가 피 흘리며 전투를 벌이고 난 후 다음 장면은 깔끔하게 씻은 진석(원빈)이다. 심지어 진태가 처절하게 싸우는 반면 진석은 누군가와 조용한 분위기에서 대화한다. 당연히 진태의 상황이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데, 두 인물 간의 시각적인 대비로 전쟁의 속성을 묘사한 것이다. 이렇게 <태극기 휘날리며>는 칙칙한 색감, 깔끔한 인물 동선, 처절한 전장의 분위기를 카메라로 담으며 한국전쟁이라는 지옥도를 구현한다. 이 지옥도가 격렬하면 격렬할수록 후반부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신이 감동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번 강제규 감독의 신작 <보스턴 1947>는 강제규 감독의 장기들이 알차게 들어가 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하이라이트 신은 당연히 마라톤 장면이다. 이 장면은 <태극기 휘날리며>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핵심이 되어 한국사회의 강인함과 서윤복의 단단한 내면을 상징한다. 인물이 뛰어가는 모습을 촬영한 방식이 영화의 몇 사건을 비유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영화는 주인공 3인방을 보스턴에 곱게 보내지 않는다. 몇 가지 위기를 만드는데, 그 위기 이면에는 당시 한국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1947년은 미군정이 한반도를 통치하는 시기였다. 한국정부가 들어서기 전이라 대회 참여의 금전적, 행정적 부분에서 지원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대응하는 과정은 혼자 하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마라톤과 유사하다. 사실상 1부의 초중반부와 2부의 후반부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암시하는 서윤복의 마라톤은 영화의 웅장함에 안성맞춤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이전에 글쓴이를 포함한 적지 않은 관객들이 '또 억지로 눈물 쥐어짜는 요소 넣었겠네' 우려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는 이 우려를 무색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인간의 결기와 의지를 영화 후반부에 방점 찍어 마무리했다. 이 장중한 하이라이트를 위해 강제규 감독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당시 보스턴의 날씨를 구현하기 위해 호주에서 촬영한다거나, 임시완, 배성우 배우가 러닝 연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이나 400여 명의 외국 배우와 함께했다는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화라는 양날의 검
이 영화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세 사람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이를 경제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야기 안에서 한국정부가 수립되기 전이라는 설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1,2부의 이야기 이면에 깔려있는 시한폭탄임과 동시에 강제규 감독이 전달하고 싶었던 국민성을 보여주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 설정이 정직하게 작동하는 경우도 있다. 초반부 주인공 3인방은 선수 엔트리 등록을 위해 관련 부처를 찾아간다. 이 장면에서 담당 공무원이 손기정 일행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라고 설명하는 장면은 사실적이다. 영화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손기정 선수와 관련한 부분이 몇 등장하는데, 이 문제와 1947년의 보스턴은 큰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정부의 지원 없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한 것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만 봐도 비슷한 예시가 몇 있다. 또한 궁핍한 한반도를 보여주는 방식도 극 중 등장인물들이 마라토너라는 점에 잘 어울린다. 신발은 이 영화의 인물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영화는 신발을 수급하는 문제를 무작정 으쌰 으쌰가 아니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길 만큼 합리적으로 해결한다. 이 현실성과 관련한 부분은 2부에서도 마찬가지다. 2부에는 역사의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은 꼼꼼함이 느껴진다. 영화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후일담을 찾아보면 이 인물들을 꽤나 잘 살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마라톤 장면에서 특정 사건이 약간 영화적인 왜곡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장면 역시 1947년의 보스턴에서 실제로 이뤄졌던 일이라는 것이 놀랍다. 영화가 실화라는 점을 잘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실화라는 틀에 안주한 흔적이 아쉽다. 어쭙잖은 신파극을 가볍게 벗어난 후반부의 하이라이트가 아니더라도 플롯의 나머지 부분들은 예상가능하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인물들이 납작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박은빈 배우가 맡은 역할은 이야기에서 비중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단지 서윤복에게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데에만 그치고 있다. 박은빈 배우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기 전의 작품이 아니었어도 이 인물에 대한 아쉬움은 남을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이 어렵게 대회에 참여해서 상을 받았어. 그럼 곱고 순한 여성 캐릭터는 영화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할 것 같은가? 이 문제의 답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또 영화 1, 2부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무례하다. 구체적으로 2부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어떤 두 미국인이 갖고 있는 비중이 크다. 이 두 인물은 관객들에게 '빨리 화 내!' 겁박하는 느낌마저 든다. 인종차별에 대한 논의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던 1947년이라지만 현실감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것이다. 또한 2부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위기를 해결하는 방식은 더 차갑고 냉정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 서윤복이 어떤 모습으로 달리기를 했는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차라리 이 부분을 구현하는 게 이야기의 현실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합리적으로 보인다. 영화의 기획의도에 희생된 인물들이 아쉬웠다.
슬렁슬렁 넘어가다
영화는 인물들의 욕망과 관련한 문제를 손쉽고 전형적으로 해결한다. 먼저 이야기할 것은 주인공 서윤복이다. 서윤복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어머니다. 서윤복은 아픈 어머니를 위해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초반부에서 영화는 서윤복의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하지만 서윤복은 실행력이 있는 사람이다. 서윤복이 초반부에 달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몇 번 대사를 치는 부분에서 주인공이 마냥 이상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준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영화의 1부가 가진 큰 과제 중 하나였을 것이다. 영화는 이 문제를 굉장히 쉽게 해결한다. 물론 그 사건이 이 인물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그건 인물의 동기부여에 대한 문제인거지 실제 이 인물이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진다. 사실 이 문제는 2부에서 원인만 달라진 채로 반복된다. 영화 2부에서도 이 부분을 다루기 때문에 1부의 어설픈 마무리가 더 아쉽게 느껴진다. 남승룡의 경우에도 문제를 맺고 끝는것이 불확실하다. 이 인물은 달리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다. 하지만 이 욕망을 가진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남승룡은 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한다. 단 조금의 과정도 없이.
영화가 가진 아쉬운 점 중 하나는 통일성이다. 이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가장 큰 이물감 두 개는 배성우와 하정우 배우다. 우선 배성우 배우와 하정우 배우는 다른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하정우 배우가 맡은 손기정 역은 <수리남>의 강인구와 별 차이가 없다(심지어 헤어스타일도 비슷하다). 이러다 보니 손기정과 남승룡이 아니라 하정우와 배성우 배우 각자가 대화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는 임시완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달리는 신이 아닌 선에서, 이 영화에서 본 임시완 배우는 어쩐지 <미생>과 <불한당>에서 본 기시감이다. 김상호 배우도 이 배우가 등장했던 사극의 어느 장면처럼 연기한다. 대표적으로 이 인물들이 2부에서 밥을 먹는 신이 있다. 배우들의 일상연기에서 자연인으로서의 모습이 더 두드러져 강제규 감독의 역량을 생각한다면 아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비단 연기 말고도 편집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신파극에 대한 반발심리를 너무 의식해서인지 이야기는 생략된 것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특히 남승룡의 서사에서 더 느껴진다. 아마 배성우 배우의 개인적 에피소드 때문인 듯). 이것 덕분에 뚝뚝 끊긴다. 심지어 인물이 오롯이 대사를 칠 때에도 컷전환이 캐릭터를 방해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대표적으로 손기정이 남승룡, 서윤복과 대화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서로 대화하는 신인데 말 중간에 시점이 바뀐다. 그동안 강제규 감독이 규모가 큰 신을 깔끔하게 연출했다는 점과 반대로, 소수의 인원이 대화하는 신에서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밑반찬이 아쉽네
앞에서 쓴 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기획의도에 충실하다. 스포츠 신파극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관객들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휴먼 드라마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마지막 장면은 멋진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변 등장인물을 콘셉트 아래에 가둬놓은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큰 덩어리들은 있는데 중간단계들이 좁고 얕다. 이 얕은 깊이 덕에 영화 자체가 올드하게 느껴진다. 정작 영화가 우려하는 점은 다 보완했지만 이를 덮기 위한 수가 반대로 단점이 되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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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 스프링스>, 여름의 열기를 식힐 수 있는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영화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팜 스프링스>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팜 스프링스>는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나일스(앤디 샘버그)와 세라(크리스틴 밀리오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세라의 여동생의 결혼식이 열리는 날, 팜 스프링스 리조트는 사랑과 신나는 열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혀 '오늘'만을 살아가는 나일스는 이미 셀 수 없을만큼 많은 결혼식을 겪은 상태이다. 수많은 '오늘 결혼식'의 경험으로 앞으로 이어질 모든 사건들을 아는 나일스는 능숙하게 결혼식 축사를 얘기하고, 파티를 즐긴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인해 세라가 이러한 나일스의 세상에 개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일 없이 사는' 두 남녀의 썸머 코믹 로맨스가 시작된다.
우연히 나일스의 타임루프에 함께 갇히게 된 세라는 '오늘만 살게 된 시공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여러 시도를 해보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나일스도 '오늘'에서 벗어나고자 많은 시도를 하였지만 결국 실패하였고, 현실에 순응해서 살아가고 있던 것이었다.
현실을 인정한 세라는 나일스와 함께 파란만장하고 유쾌한 '오늘'을 살아나간다.
많은 '오늘'을 함께한만큼 둘이 나눈 이야기도 많았는데,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도 이 중 하나였다.
'오늘 하루가 반복되는 일'의 영향을 받은 나일스는 '현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도 흘러가고 있고, 결국 남는 것은 '현재'이기 때문이다.
반면 세라는 그 사람에 대해 더 알 수 있기에 다른 사람의 '과거'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 장면을 보고, 이 대사를 들은 순간 잠시 나는 영화의 내용에서 벗어나 '나는 과거와 현실 중 어느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였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이 생각은 계속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누군가의 '과거'에 더 중점을 두는 것 같다.
이 이야기의 또다른 주요 인물은 나일스와 함께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로이(J.K. 시몬스)이다.
로이는 세라가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히기 전, 여러 번의 '오늘'을 겪고 있던 나일스와 파티에서 만났다.
나일스와 함께 술을 마시며 신나게 놀던 로이는 '오늘 같은 날이 계속되었음 좋겠다'라는 말을 했고, 나일스는 술김에 오늘만 살게 해줄 수 있다면서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히게 되는 동굴 속으로 로이를 안내했다.
술이 깬 로이는 이 사실에 분노했고, 여러 번의 '오늘'이 반복되는 동안 계속 나일스를 죽이면서 복수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죽으면 또다른 '오늘'이 시작된다. 빠져나갈 수 없는 무한의 굴레인 것이다.
세라가 타임루프 세계관에서 빠져나가기로 결심하고 떠난 후, 혼자 남은 나일스는 세라의 빈 자리를 크게 느끼고 상실감을 겪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동안 자신을 죽이기 위해 찾아왔던 로이를 '직접' 찾아간다.
로이는 현실에 적응하고 본인만의 '안식처'를 찾아 살고 있었다.
로이의 안식처는 바로 아내와 두 딸이었다. 하지만 두 딸이 커 가는 모습을 로이는 영영 보지 못한다.
왜 이제 자신을 죽이러 오질 않느냐는 나일스의 질문에 로이는 이렇게 답한다.
- 상황은 변하는거야. 우선순위도 변하는거고.
그리고 세라의 빈 자리를 크게 느끼고 있는 나일스에게 말한다.
너의 안식처를 찾아보라고. 사람은 누구나 안식처를 가지고 있다고.
이러한 로이의 대사는 영화 속 상황에도 적합하지만, 동시에 우리 현실에도 적용되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타임루프'라는 소재 자체는 현실과 어울리지 않지만, 영화 속 인물이 건네는 대사들은 대부분 현실과 매우 어울렸고 적합했다.
이 점이 이 영화의 여러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세라가 다시 나일스를 찾아온다. 그리고 함께 이 타임루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사실 그 동안 세라는 이 타임루프가 양자물리학과 관련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공부하러 간 것이었다.
'오늘이 무한히 반복되는' 타임루프의 이점을 이용하여 세라는 전문가보다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되었고, 직접 실천하기 전 실험까지 마친 상태였다.
(세라가 영화 속에서 나일스에게 이것저것 설명했지만 사실 나는 한 번에 명확히 이해하진 못했다.
세라는 이과인 것 같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세라와 나일스의 의견은 갈린다.
세라는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나일스는 현재의 타임루프 굴레에 남으려고 한다.
나일스가 계속 남아있으려는 이유는 '진짜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이 점에서 나일스가 '과거'와 정상적인 시간 속에서 펼쳐질 '미래'들을 회피하려고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모습은 마치 과거나 미래, 혹은 현실마저도 회피하려는 내 모습 같다고도 생각하였다.
나는 가끔씩 지난 일들, 혹은 내가 마주한 현실이나 마주할 일들이 두려워서 무작정 회피하곤 한다. 숨곤 한다.
사실 회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없는데 말이다.
그 일이 무엇이든 일단 부딪혀보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일이든, 내 눈앞에 펼쳐진 일이든, 앞으로 일어날 일이든, 뭐든.
결국 나일스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세라를 따라 이 세계관에서 벗어나고 '진짜 현실'을 마주하기로 결심한다.
진짜 이 타임루프에서 벗어나기 전, 계속 자신을 보면 질릴 수도 있다는 세라의 말에 나일스는
이미 우린 질릴만큼 봤다고, 난 괜찮다(좋다)
라고 대답한다.
나는 이 나일스의 대사가 유독 더 좋았다. 그냥 좋았다.
그리고 당신(나일스)과 함께라면 덜 지루할 것 같다는 세라의 말에 나일스는
기준점이 낮으니 됐다
라는 대답을 한다.
상대방의 기분까지 좋아지는 긍정적인 말을 한다는 것이 바로 나일스의 장점인 것 같다.
그가 가진 긍정적인 분위기는 스크린 바깥의 관객인 나에게도 와 닿았다.
참 밝고 무해한 인물이다.
정말 '밝고 무해한 웃음'을 주는 영화였다.
웃음코드가 나랑 엄청 잘 맞았는데, 특히 나일스와 세라가 함께 무한히 반복되는 '오늘'을 즐기며 살아가는 장면이 다 웃겼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영화관을 빠져나온 내게
과거와 현실 중 나는 어느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혹시 나는 지난 과거를 회피하고 있진 않은지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남겼다.
영화가 끝나고 집을 가는 길에서 계속 이 두 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예측할 수 없는 내용이 펼쳐지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 <팜 스프링스>는 다가오는 19일에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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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함이라는 어려운 세계
<멋진 세계>(감독 니시카와 미와)는 살인 후 13년간의 복역을 마친 한 인간이 평범한 일상에 진입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번에는 진짜 평범하게 살아야지"라며 막 교도소를 나온 미카미 마사오(야쿠쇼 코지)는 다짐한다. 신원보증인 변호사의 도움을 받고 생활보호대상자가 된 덕분에 그는 도쿄의 작은 집을 구하지만 생활은 넉넉지 않다. 일자리를 구하려 하지만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자신이 잘하던 운전 실력을 발휘해 트럭 운전수가 되려 하지만 면허증을 갱신하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따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자존심은 무너지고 돈마저 넉넉하지 않은 미카미는 자주 욱한다. 이 욱하는 성격 때문에 그는 자주 목소리를 높이고 날카롭게 타인에게 반응한다. 오랜 기간 사회와 단절되었다고 그 사람의 본능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괴롭힘을 당하는 걸 목격한 그가 폭력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 역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그가 착실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어느 순간 그가 다시 경찰에 잡혀갈까 봐 나는 조마조마했다. 일상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미카미를 보며 나는 문득 그의 입장에서 영화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울분에 찬 표정을 짓다가도 아침에 일어나 조용히 간장계란밥을 해 먹고 정장을 입고 거울을 보는 해맑은 미소를 짓는 야쿠쇼 코지의 안정된 연기가 돋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왜 나는 살인을 저질렀던 그가 웃으면 마음이 포근해지고 사람들에게 뾰족한 말을 들으면 슬픈 감정이 스며들었던 것일까. 그건 일종의 동정심이었을까, 아니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삶의 긍지가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마 그건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카미는 태어나서 얼마 안 돼 부모의 버림을 받고 보육원에서 자랐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비뚤어진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 어른들의 버팀목 아래에서 성장하고 안 하고의 차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방황해 14살부터 소년원을 드나들고 이후 야쿠자 조직을 거친 미카미가, 사실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곳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한창 칭찬받고 싶은 나이. 어린 나이에 당연히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은 미카미가 갈 수 있는 곳이란 몸과 힘만 잘 쓰면, 조금은 단순해도 환영받을 수 있는 곳이었을 테니까. 어쩌면 그곳에서는 누가 더 크게 욱하느냐에 따라서 서열이 정해졌을지도 모른다.그런 세계에서 환대받던 한 인간이 이제 평범한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화를 절제하고 부당한 상황에서도 인내해야 하는지 영화는 그려낸다. 역시 쉽지 않다. 미카미가 병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친절하던 의사가, 미카미가 성실히 생활하다 아파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날카롭게 말을 건네며 태도가 돌변하는 것처럼. 이를 바라보는 미카미의 당황한 눈빛처럼, 어쩌면 이 세계는 당황스럽고 이상한 것 투성일지도 모른다. 이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이 평범하지 않은 세계에서 참을성을 길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 때문에 영화 중간 중간 미카미가 인상을 찌푸리고 입을 벌리는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혈압이 올랐을 때 나오는 반응인데 화를 많이 내면 낼수록 몸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욱하는 성질을 가진 데다 이 세상은 참아야 할 것투성이인데 '너 정말 인내하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다'는 차가운 경고 메시지처럼 느껴졌다.다행히 미카미 주변에는 그를 달래줄 좋은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강하지 않다" "도망치는 건 실패가 아니야"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세요"라며 미카미의 주변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미카미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어르고 달래줄 사람들. 외로운 미카미를 진심으로 보살펴 줄 사람들이 근처에 있다. 어쩌면 이 세계는 따뜻할 수도 있겠구나, 라며 안도할 수 있는 장면이 펼쳐진다. 미카미 주변에는 이미 그를 도와줄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게 다 잘 되고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알게 됐다. 평범한 삶을 산다는 건 어쩌면 냉혹하고 차가운 세계와 정겹고 따뜻한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연속이 아닐까 하는 사실을. 미카미가 평범함이라는 제일 어려운 세계에 진입하려고 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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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진짜로 봐야 할 건...
돈 룩 업
줄거리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와 그의 담당 교수 랜들.
이들은 여느 때처럼 관측을 하다가 엄청난 크기의 혜성이 지구로 날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고에 보고를 거쳐 소식은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지만, 대통령은 별것 아니라는 듯 그들을 집무실에서 내보낸다.
결국 이 급박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토크쇼까지 나가게 되지만,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인기 스타의 스캔들뿐.
대체,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을까?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봐야 할 건...
숨은 의미 찾기
“미안한데 모든 대화를 재치있고 매력적이고 호감 있게 할 순 없는 거예요.
어떨 땐 할 말을 제대로 전해야 하고 듣기도 해야 해요.”
거대한 혜성이 충돌한다는데도, 토크쇼는 가볍고 즐거워야 한다는 mc들에게 민디는 소리친다. 이성적이고 침착하게, 그들의 장단에 맞춰주려던 시도는 처참히 실패해버린다. 민디는 공포에 절은 눈빛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며 디비아스키가 울면서 했던 말을 반복한다. 지구가 파괴된다는 소식은 재밌으면 안 된다고, 무섭고 불편해야 한다고.
영화에 등장한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들에 대한 풍자는 차치하고,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바로 대중들이다. 지구 멸망에 대한 이슈를 누군가는 선동하고, 누군가는 이용하고, 누군가는 조종하고 있다. 이 영화를 넷플릭스로 시청했을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따르는 해석보다는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이들에 대한 해석이 훨씬 중요하고 긴박하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쿨’한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사람을 ‘덕후’라고 부르며 그들의 말과 행동을 ‘오글거린다’는 단어로 일축한다. 쿨하지 못하고 지질한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다. 길게 늘여 쓴 글씨들과 렌즈를 밀착해서 찍어낸 사진들은 우스운 취급을 받는다. 그런 것들은 너무 뜨겁거나 본격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보다는 훨씬 더 짤막한 글과 멀리서 찍은 몇 장의 사진들을 선호한다. 이른바 ‘세 줄 요약’이 되어 있지 않으면 쳐다도 보지 않는 현상과 같은 것이다. 왜? 그런 것은 ‘쿨하지 않’으니까.
이른바 ‘쿨’해지기 위해선 주변을 면밀히 살피지 않아야 하고, 상대에 크게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한 마디로 세상에 무심하면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나 쿨해서 냉방병에 걸릴 지경이다.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모두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탓에 날아오는 혜성을 눈치채지 못한다. 아니, 사실은 눈치채지 못한 게 아니다. 정작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혼자 있을 때면 속으로 안절부절하면서도 거울 속 진실을 바라보기는 두려워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
디비아스키와 민디의 말마따나 모든 것이 ‘쿨’해서는 안 된다. 때론 오글거릴지라도 뜨거워야 하며 구질구질하더라도 물고 늘어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우리를 진실에 접근하도록 도와주고,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
포스터의 문구는 유머 넘치게도 영화가 실화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걸 마냥 우습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내가 속한 세상에 열심히 관심을 가지려고만 한다면, 영화가 실화가 될 거란 우려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 속에서 우리의 시야를 가리려고 하는 모든 인물들을 걷어내고 본질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영화가 실화가 될까 걱정스러운 이유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에 있다.
“우린 그 혜성이 주는 일자리에 찬성이야.”
거대 기업 ‘배시’의 창립자인 ‘피터 이셔웰’의 말 한마디에 혜성의 궤도를 돌리려던 계획은 전면 무산된다. 그 대신 엄청난 양의 광물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이 혜성의 가치를 다시금 판단하게 되고, 인류는 이 혜성을 지구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몇몇 사람들은 그 혜성이 지구를 멸망시킬 것이라 우려하지만, 대부분은 배시와 정부에서 하는 광고를 보고 마음을 돌린다. 혜성에서 얻은 광물들로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고, 지구를 더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그 광고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에베레스트 산만한 크기의 혜성이 시시각각 지구로 다가오고 있다. 그 정도 크기면 인류가 이루었던 모든 업적들은 산산조각 날 것이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질 것이다. 그런 순간조차 혜성을 돈으로 환산해 소유하겠다는 오만한 생각은 인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늘 자연을 인간의 것으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파괴하고 부수어서 인간에게 유리한 모습으로 꾸며오지 않았던가. 자연을 마음대로 다루고 조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과거가 만들어놓은 현재를 보라.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남극은 녹아내리고, 섬이 잠기고 있다. 혜성이 지구에 닿는 순간 미래는 없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끝없는 욕심 때문에 자신들이 만든, 아니, 누군가가 속길 바라며 만든 환상 속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이쯤에서 제목을 살펴보자. 대체 왜 ‘돈 룩 업(Don’t loook up)’일까? 영화 내용에 따르면 제목은 ‘저스트 룩 업(Just look up)’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고개를 숙이고 앞에 놓인 길을 보세요. 그리고 한 발을 내디디세요.
한 발 또 한 발, 하루 또 하루.”
대통령인 '올리언'은 연설한다. 아마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늘에 다가오는 진실을 올려다보지 않는 대신, 텔레비전을 들여다 보라는 소리니까. 조금 재치 있게 보자면, 올리언이 외쳤던 구호를 굳이 제목으로 쓴 이유는 비꼬기 위해서다. ‘그래, 그냥 그렇게 평생 진실을 외면하면서 핸드폰이나 들여다보고 사세요.’ 하고 말이다. 올려다보지 말라는 말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올려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제목이다. 실제로 제목이 ‘저스트 룩 업’ 이었다면 너무 단순해서 재미가 없었을 것 같은데, 감독의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하지만 제목에서의 ‘돈 룩 업’은 조금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몇몇 나라에서 혜성 궤도를 바꾸기 위해 미사일 발사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결국 배시의 계획이 성공하기를 바라야 하는 때가 오고야 만다. 배시의 미사일을 발사하는 당일, 디비아스키와 민디는 뉴스도, 하늘도 바라보지 않은 채 집으로 향한다. 내내 하늘을 바라보라고 외쳤던 그들이지만, 그날만큼은 하늘 위의 혜성이 아닌 둘러앉은 가족들을 바라본다. 그저 소중한 사람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소소한 우스갯소리를 하며 대화를 나눌 뿐이다.
“아무 일 없는 듯 굴어도 되지만 이건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
축하하든 울든 기도하든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어떻게든 바로잡아.
내일은 오지 않을지 모르니까.”
‘돈 룩 업’이라는 제목은 올리언의 연설과 같이 미래를 보고 전진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현재를 살아가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극 중 라일리 비너의 노래 가사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민디가 홀로 외롭게 죽을 것이라는 피터의 예측과 다른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쳐다보며 발만 동동 구를 바에야, 지금 당장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조금이라도 더 눈을 맞추는 것은 어떨까.
그 눈빛과 마음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 가슴에 담는 것이, 어쩌면 지구 멸망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닐까.
이것은 우주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감상평
‘우주’라는 주제는 내가 그다지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다. 고등학교 지구과학 시간에 열심히 수업 궤도를 따라가려 애썼지만 결국 어느 한순간에 놓쳐버렸고, 다른 학생들이 열심히 이름이나 숫자와 싸우고 있을 때 나는 그냥 무심히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다. 특별히 우주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을 거라면 ‘수금지화목토천해’만 외워도 그만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허블 망원경이니 뭐니 하는 것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기에, 우주를 관측할 만한 호기심이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주와 관련된 영화나 소설은 가끔 챙겨 본다. 실제 우주를 내다 보기엔 어렵고 광활한 것들도 작품 안에서는 축약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주 속에 있는 사람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가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주야장천 쏟아내기만 했다면 딱히 즐거운 시청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지구에서 우주로 나가는 이야기가 아닌,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이야기였다. 한 발 더 들어가서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신경을 자극했고, 덕분에 제법 즐겁게 영화를 시청했다.
영화는 결국 ‘케빈 인 더 우즈’와 비슷한 결말을 맞이한다. 보통의 영화와 달리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며 끝난다. 이런 결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현실적이라서보다는, 겸허히 사랑하는 이들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미 일어난 일들에 대해 후회하고 되돌리려는 쓸모없는 노력을 하기보단,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맞으니까.
덧붙여서, 마지막 쿠키 영상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올리언의 아들인 제이슨이 홀로 폐허가 된 지구에서 핸드폰을 바라보며 ‘구독과 좋아요’를 외치는 모습 말이다. 어쩌면 진짜로 최후의 인류는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오싹함과 결국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구나 하는 깨달음. 어쩌면 본편을 축약한 쿠키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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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그룹 있지가 있기 전에 헬렌 레디가 있었다.
호주 출신 불법체류자, 헬렌 레디는 미국에서 뮤지션으로서의 성공을 위해 그저 버티는 중이다. 성공을 위해 딸까지 데려온 미국은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자신의 매니저가 되어주겠다는 남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이 남자는 헬렌의 성공을 도와주기는 커녕 본인의 일에만 열중이다. 과연 헬렌은 이 남자의 도움을 받아 과연 데뷔라도 할 수 있을까?
1. 2020년대 한국 여자가수 음악에도 헬렌 레디의 정신은 살아있다.
요새 인기있는 여자 아이돌 음악에는 걸크러쉬 무드가 아주 진득하게 배어있다. 예를 들면, 인기 여자 걸그룹인 있지의 icy의 가사를 살펴보면,
차갑게 보여도 어떡해, 쿨한 나니까, 눈치 볼 마음 없어,
너의 틀에 날 맞출 맘은 없어, 다들 참 말이 많아, 하지만 난 괜찮아, 계속 블라블라,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계속 걸어갈거야
라는 주체적인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는 가사도 있고, 같은 가수의 wannabe라는 노래의 가사만 봐도 더 노골적으로 주체성을 외친다.
잔소리는 stop it 알아서 할게,
내가 뭐가 되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좀
평범하게 살든 말든 내버려둘래
어차피 내가 살아, 내 인생 내 거니까.
차라리 이기적일래,
말해버릴지도 몰라, 너나 잘하라고
누가 뭐라해도 난 나야, 난 그냥 내가 되고 싶어
굳이 뭔가 될 필요는 없어. 난 그냥 나일 때 완벽하니까.
등의 가사를 보자니, 헬렌 레디의 노래는 지금 이런 노래들과 비교해봐도 그리 공격적이지도 않은데, 70년대의 미국은 얼마나 보수적이었던 걸까. 그 때, 헬렌의 노래를 여자 가수가 노래하기에는 너무 공격적이라는 레코드사 사장의 반대가 왜 나에겐 남자가 듣기에는 기분 나쁜 가사라는 뜻으로 이해가 되었던 걸까. 한 여자 가수가 노래를 발표하는 데까지 남자의 비유를 상하게 하는 노래는 발매조차도 힘들었던 그 시대에 소외받던 여자, 그것도 결혼한 여자들을 타겟으로 삼아 그들에게 공감이 되는 가사로 어필이 되었던 헬렌의 존재는 가히 상징적이었다고 본다. 그 때, 헬렌의 노래를 여자가 부르기엔 가사가 공격적이라고 비난했던 레코드 사의 사장이 지금 현재 한국에서 걸크러쉬 열풍 아래 발매되고 있는 여자 가수들의 가사를 보면, 얼마나 뒷목을 잡을 지가 궁금하다. 솔직히 그 모습을 조금은 보고 싶다.
2. 여자가 강한 것은 남자의 거세와는 관련이 없다.
여자가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고 자신의 강함을 어필하는 것이 왜 그 시대의 남자들의 눈에는 거슬려보였던 걸까. 영화에서 한 기자가 헬렌의 남편을 상대로 헬렌의 성공이 남편의 기를 죽이기라도 한다는 것을 인정이라도 하라는 듯이 몰아붙이는 장면은 상당히 영화의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기자의 질문은 마치 헬렌의 성공이 남편을 정신적으로 거세라도 한다는 듯이 물어본 것이었고, 그 질문의 이면에는 헬렌의 성공에 대해서 탐탁치 않아하는, 여자들이 향유하는 문화는 대단할 것이 없다는 성별적 차별이 70년대에는 분명히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시대 미국은 여성의 참정권 조차 없었던 시절이었는데, 여자가 조금만 말을 세게 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을 것인가.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누군가는 이 영화는 여성의 관점에서 '여자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요'라고 징징대기만 하는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인터넷 댓글창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감정적으로 싸워대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누군가가 단지 "여자들은 차별을 당하고 있는 존재이고, 그 차별은 남자 때문이다" 라고 생각해 영화의 메시지가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남자들을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그저 성별이 여자일 뿐인 한 인간의 성공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영화를 봐주었으면 좋겠다. 이 여자의 성별을 가진 인간의 성공을 위해 그녀의 남편을 포함해 수많은 남자들이 이 여자에게 협력했는데, 일부 남자들의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여자의 성공을 논할 때, 남자의 기나 죽일거라는 평가는 이 여자에게 협력한 남자들의 공을 무시한 것이 된다.
그런데 2020년대에도 여자들은 여전히 차별을 당하고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결코 간단히 이야기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영화를 보고, 한 가지 위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 영화의 배경이 70년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시대 속에서 살아간 여성과 현재 2020년대의 여성이 입장이 같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논리적인 지적이라고 우선 박수 쳐주고 싶다. 그렇다. 그 때의 여성과 지금 시대의 여성은 확실히 삶이 다르긴 하다. 그 때의 여성들은 남자들이 벌어다주는 돈을 가지고 알뜰살뜰히 살림만 잘 하면 되는 시대에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니 사회생활하는 남자들로부터 은근히 무시받기도 했지만 지금 여성들은 직업적인 사회생활은 필수적으로 해야 하고, 최소한 표면상으로라도 남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대우들을 받고 살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여자들은 말하는 표현에 있어서 기세보여서는 안되는 분위기가 있다. 여자들이 자신의 불만을 정확하고, 명료한 톤으로 이야기하면, 그런 여자들은 기센 여자라고 칭해지며, 시집도 제대로 못갈 거라는 둥의 말을 듣는 경우가 아직 근절되지 않은 것을 보면, 헬렌이 살았던 시대보다는 여성들의 대우가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헬렌이 가사가 조금이라도 센 노래를 내려면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들처럼 여전히 강하게 주당하는 여자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는 70년대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는 이 영화가 2020년대를 살아가는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아직 효과가 있을 듯하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조금 내용상 답답한 부분도 있고, 루즈해지는 내용도 있지만 노래빨로 끝까지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인터넷 상에서 싸움이 될만한 관점이 조금은 보여서 이 영화 인터넷에서 호불호가 어마무시하게 갈리겠다 싶었지만 나는 여자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호감이었다. 우선, 그 시대에 이런 노래를 발매했었던 헬렌 레디의 강직함에 박수를 치고 싶었고, 요새 우리나라 음악에서 걸크러쉬라는 개념이 나온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사실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개념이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원조 걸크러쉬 팝가수라고 칭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 영화는 여자의 성공을 위해서는 남자들을 향해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헬렌 레디라는 여성의 성공은 여성, 남성 가를 필요없이 두 성별들이 협력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고, 감독의 의도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미국에서 살림만 하며, 기에 눌려 살고 있던 다른 여자들에게 활력을 선사해준 그 콜라보레이션의 선한 영향력을 모두가 잊지 말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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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도그로 잃어버린 몸찾는 액션 스릴러!
윤계상 배우가 주연을 맡은 유체이탈자가 개봉했습니다.
12시간 마다 유체가 이탈하여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간다는 신기한 설정인데요.
게다가 다른 사람을 옮겨다니는 사람이 기억을 잃은 상태라 더욱 긴장감을 높이죠.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긴장감은 높습니다.
핫도그와 노숙자를 통해 실마리를 찾아가게 되는데요.
근접액션, 차량 액션, 총기 액션 등 다양한 액션이 포함되어 있어 볼거리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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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walke starring actor Yoon Kye-sang has been released.
It's a strange setting that the fluid escapes every 12 hours and enters another person's body.
In addition, it raises tension even more because he who move around people have lost his memories.
The movie lead the story with limited space and limited characters, but the tension is high.
the main character track clues through hot dogs and homeless people.
There are many things to see as it includes various actions such as close action, vehicle action, and gun action.
Please refer to the video for detailed re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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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볼버 - 전도연, 임지연 배우 두 명 빼고 모두 오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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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돈을 받는데 무슨 각오가 필요해”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경찰 수영은 뜻하지 않은 비리에 엮이면서 모든 죄를 뒤집어쓰면 큰 보상을 해준다는 제안을 받고 이를 받아들인다. 2년 후 수영의 출소일, 교도소 앞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윤선 뿐 수영은 일이 잘못되었다고 직감한다.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보상을 약속한 앤디를 찾아 나선 수영은 그 뒤에 있는 더 크고 위험한 세력을 마주하게 되는데…#리볼버 #전도연 #지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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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메인 예고편 공개 정유미 X 이선균 미스터리 공포 극장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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