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2-07 11:25:56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영화 9선
연출 차력쇼란 바로 이런 것!

단조로운 공간 활용의 단점을 극복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영화 9편을 준비했습니다.
현대인에게 안성맞춤인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들로 준비했으니, 영화와 함께 금요일 저녁을 즐겨보아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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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의 로망과 현실의 낭만을 잇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레이싱 게임 ‘그란 투리스모’의 덕후 ‘잔 마든보로’(아치 매덱)에게 꿈만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 게이머를 레이싱 선수로 탈바꿈시키는 소니와 닛산의 야심 찬 프로젝트, ‘그란 투리스모 콘테스트’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진 것. 잔은 혹독한 훈련을 버텨 내고,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다.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이루지 못한 꿈에 도전하기 위해.
'잭'(데이비드 하버)의 열성적인 지도와 '대니'(올랜도 블룸)의 아낌없는 지원 덕분에 프로 레이싱 선수 자격을 얻어낸 잔. 그러나 그에게는 또 다른 역경이 닥쳐온다. 상대팀 선수들은 잔을 게이머 출신이라며 비하하고, 트랙 위에서 위협적으로 그를 밀어붙인다. 이에 더해 게임과 달리 리셋 버튼 없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위압감도 잔을 조여오기 시작한다.
우려를 보기 좋게 뒤엎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같은 예외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게임 원작 영화는 걱정이 많다. 그간 여러 이유로 실패했기 때문이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시작>은 투자자와 제작진의 갈등 때문에 각본이 산으로 갔다. <어쌔신 크리드>는 배우만 화려했고, <던전 앤 드래곤>(2023)은 평단 반응만 좋았다.
비디오 게임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를 영화화한 <그란 투리스모>도 우려가 컸다. 원작 게임 시리즈의 인기는 하향세를 그렸다. 제작사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도 신뢰를 주지 못했다. 전작이자 첫 제작 영화인 <언차티드>가 게임과 무관한 오리지널 설정으로 점철돼 비판을 들었기 때문. 감독도 불안했다. <디스트릭트 9>로 데뷔한 후 <엘리시움>, <채피> 등으로 추락을 거듭한 닐 블롬캠프가 메가폰을 잡았다.
하지만 <그란 투리스모>는 모든 우려를 보기 좋게 뒤엎었다. 그 중심에는 색다른 접근법이 있다. 기존 작품들은 대게 원작의 영화화를 시도했다. 그러다 보니 현실과 게임 사이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이질감 때문에 외면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란 투리스모>는 반대다. 게임 자체를 영화로 옮기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현실에서는 말이 안 되는, 게임에서나 가능할 실화를 스크린 위에 펼쳐 놓았다.
게임이 아닌 게임의 사연에 주목하다
사실 <그란 투리스모>의 줄거리는 엉망이다. 소설에서나 가능한, 누군가의 헛된 희망을 포장한 이야기 같다. '너도 호그와트에 입학할 수 있어!' 수준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실화다. GT 아카데미 졸업생 출신으로 2011년 GT 아카데미 유럽 챔피언이 된 잔 마든보로가 실제 주인공이다. GT 아카데미는 소니와 닛산이 합작한 프로젝트로, '그란 투리스모' 게이머를 진짜 레이싱 드라이버로 키워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란 투리스모>는 다른 게임 영화와 차별화된다. 게임만의 로망과 낭만을 현실 세계에 접합하는 데 성공한다. 사람들이 게임에 열광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대리만족이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과 환상을 게임 속 세계에서 맛보는 재미다. 그런데 이 쾌감은 흔히 허무맹랑하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편견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그란 투리스모>는 이 편견을 전복한다. 게임 자체의 매력이 아니라, 게임을 통해 현실에서 편견과 불가능에 도전하고 성공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덕분에 <그란 투리스모>는 게임의 낭만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게임을 통해 느끼는 쾌감을 현실 세계의 카타르시스로 승화하기까지 한다. 더 나아가 게임을 바라보는 일부 부정적인 시선까지 깨부순다. 현실의 무게감과 게임의 낭만이 조화를 이룬 셈이다.
특히 영화 구성이 인상적이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원작 게임을 소개할 뿐,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란 투리스모>는 그저 게임 기반 판타지나 소년 만화 같다. 정보를 미리 접하지 않으면 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을 알 수 없다. 대신 잔 마든보로가 게이머 출신 드라이버이고, 직접 영화 스턴트를 맡았다는 사실을 마지막 순간에야 공개한다. 그 결과 영화는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며 쾌감과 감동이 극대화된 채로 끝난다.
신세대 레이싱 영화의 등장
게임의 매력을 현실 세계에 심으려는 노력은 레이싱 연출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란 투리스모>는 어설프게 게임을 재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원작 게임만의 효과를 레이싱 장면에 고스란히 삽입한다. 게임 속 시뮬레이션과 현장감, 게임 플레이어와 프로 드라이버의 간극을 없애 버린다. 그 결과 <그란 투리스모>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신선한 레이싱 영화로 태어난다.
일례로 차의 경로가 보이거나 플레이어의 현재 순위가 표시되는 식의 게임 속 효과를 현실에 입힌다. 현실 장면에 스톱 모션이나 슬로 모션을 걸어서 게임 세계로 이동시키기도 한다. 경기 도중 레이싱 카가 해체되고 잔이 게임 시뮬레이터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경기 후 자축하는 장면도 게임 속 세리머니와 현실 세리머니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현란한 드론 촬영도 게임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거나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닐 블롬캠프 본래 연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데뷔작인 <디스트릭트 9>부터 비디오 게임을 하는 듯한 카메라 워크와 연출로 유명했다. 또 필모그래피가 SF 영화로 가득한 데서 알 수 있듯이, SF 느낌을 주는 미술 프로덕션에 능숙하기도 하다. 블롬캠프는 평범한 레이싱이 아닌, 게임과 접목된 레이싱 경기를 보여주는 데 최적화된 연출자인 셈이다.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다. <포드 V 페라리> 같은 레이싱 영화와 필연적으로 비교될 운명이다. 이전까지의 레이싱 영화는 사람 가슴을 들뜨게 하는 엔진 소리에 주목했다. 운전자나 차의 측면에서 질주하는 차체에 집중하는 연출이 돋보이기도 했다. 레이싱 요소가 줄어도 <분노의 질주> 시리즈도 궤를 같이한 대목이었다. <그란 투리스모>에서는 이러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찾아볼 수 없다.
확실한 목적을 위해 희생된 스토리의 개성
이처럼 <그란 투리스모>는 게임 원작 영화로서도, 레이싱 영화로서도 나름의 새롭고 신선한 접근법이 돋보인다. 물론 그 대가로 희생한 대목이 있다. 시나리오의 개성이 현저히 부족하다. 관객에게 최소한의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 관습적인 플롯을 답습한다. 완성도는 준수하다. 초중반부에 뿌려진 여러 복선은 다 회수된다. 기대할 법한 요소도 빠짐없이 담았다. 풀어가는 방식이 편의적이고, 왕도적일 따름이다.
실제로 <그란 투리스모>의 시나리오는 소년 만화 클리셰로 가득하다. 재능은 있지만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 주인공에게 우연한 기회가 주어진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기회를 잡는다. 레이스에서 꼴찌를 기록하거나 완주를 못하는 시련을 겪지만 끝내 이겨낸다. 멘토의 도움을 받아 한계를 극복하고, 한때 경쟁자였던 친구들과 힘을 합쳐 또 다른 라이벌을 꺾고, 승리자가 된다. 좋아하던 여자친구와도 연인이 된다.
그래도 도식적인 전개 속에서 나름 차별화를 시도한 흔적이 엿보이기는 한다. 여러 사연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처리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가족사는 아버지와의 관계로 압축했다. 여자친구와의 로맨스도 으레 있어야 하니 삽입한 것에 가깝다. GT 아카데미에서 다른 후보들과 겪는 갈등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 덕분에 오히려 최근 트렌드에 부합한다. 개인의 영역에만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객을 끌어들인다. 예를 들어 라이벌과의 경쟁의식을 억지스럽게 부각하지 않는다. 대신 드라이버 라이선스를 따고, 포디움에 들기 위해 개인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 그 결과 잭과 잔의 멘토-멘티 관계는 의외의 울림을 주고, 게임의 로망과 현실의 낭만을 잇는 분위기도 한껏 살아난다.
완성도 대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다
그래서일까? <그란 투리스모>는 마치 <트랜스포머> 1편 같은 매력이 있다. 차와 소년이라는 매력은 간직한 채로 로봇 대신 콘솔 게임에 주목한 것처럼 보인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같기도 하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비해 완성도가 부족했다. 대신 팬들의 가슴을 감성적으로 휘어잡았다.
즉, <그란 투리스모>는 완성도나 작품성보다 더 중요한 목표를 이룬 영화일지도 모른다. '재밌다' '다시 보고 싶다' '가슴이 뛴다'는 느낌을 주면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으니. 닐 블롬캠프 입장에서도 멋지게 반등에 성공한 작품처럼 보인다. 데뷔작인 <디스트릭트 9>만큼의 충격이나 임팩트는 없어도 영화가 끝날 때 잔과 함께 레이싱을 한 것 같은 아드레날린을 뿜어내게 만들었으므로.
작은 흠을 꼽자면, 묘한 이질감이 있다. <더 울버린>이나 <불릿 트레인>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일본 기업 광고로 보일 만큼 일본풍이 두드러지기 때문. 물론 소니픽쳐스가 배급사이고, GT 아카데미 자체가 소니와 닛산의 프로젝트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부자연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Acceptable 무난함
더할 나위 없이 본분에 충실한 게임, 레이싱,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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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한국에서는 <잠> 북미에서는 <더 넌 2> 3주째 호러, 스릴러 돌풍이 불고 있습니다. 새로 개봉한 <가문의 영광: 리턴즈>가 2위를 기록했다고 하는데요 9월 4주차 박스오피스 순위 같이 알아볼까요?✍�
[국내 박스오피스]
영화 <잠>이 개봉 이후 3주째 정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6번째 시리즈를 맞이한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7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위, 할리우드 레이싱 액션 영화 <그란 투리스모>가 5만여명을 동원하며 3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가문의 영광: 리턴즈>는 개봉 첫 날 부터 혹평세례를 받고 있는데, 허술한 내용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반응이 대다수였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더 넌 2>가 매출액 84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3주째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익스펜더블4>는 매출액 830만 달러를 올려 2위로 출발,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이 3위를 기록했습니다. <더 넌>은 1956년 프랑스 한 성당에서 신부가 죽은 채 발견되고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아이린 수녀가 의문의 사건을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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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고로는 거들 뿐
스포일러 주의!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이하 <척안의 잔상>)은 10개월 전, 국립천문대 노베야마에 침입한 괴한을 추격하다가 눈사태로 인해 왼쪽 눈을 잃은 야마토 칸스케의 사연을 들려주며 시작한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난 어느 날, 모리 코고로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의 주인은 '와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메타니 코지라는 인물로, 형사 시절의 코고로의 동료였다. 와니는 코고로에게 나가노현에 있었던 눈사태 사고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며 급하게 약속을 잡게 된다. 약속 당일, 공원에서 코고로를 기다리던 와니는 누군가에 의해 총상을 입고 사망하고 만다. 이로 인해 코고로는 친구를 잃은 슬픔과 분노에 차오르면서 다른 형사들과 함께 필사적으로 범인을 추격하려 한다. 그와 동시에 코고로를 따라 현장에 있었던 에도가와 코난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공안의 도움을 받아 범인을 밝혀내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명탐정 코난>의 28번째 극장판이다.
시즈노 코분이 떠난 이후, <명탐정 코난> 극장판은 회복기에 들어선 모양새다. 본격적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알린 <명탐정 코난: 할로윈의 신부>(이하 <할로윈의 신부>)를 시작으로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이하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까지 최근에 나온 극장판들은 과거에 비해 나쁘지 않은 완성도를 이어왔다. 이번에 개봉한 <척안의 잔상> 역시 비슷하다. 이번에도 무난하게 잘 만들었다. 가장 긍정적인 지점은 추리 부분에서 많은 향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전까지의 극장판들, 그중에서도 완성도가 좋은 영화들조차 추리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척안의 잔상>의 경우에는 추리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이 눈에 띈다. 소소한 개그처럼 지나갔던 대목(모든 캐릭터들이 코고로에게 왜 코지로를 와니라고 부르는지 의문을 가지는 부분)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거나, 중간에 오토모 타카시라는 캐릭터를 추가하여 이전까지의 추리를 꼬는 방식은 근래 극장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미덕이다. 다만 캐릭터들이 무더기로 쏟아지다 보니 용의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여러 사연들이 얽혀 있는 각본의 구조 때문에 추리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추리 부분은 가까스로 회복했지만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구간도 있다. 바로 액션이다. 물론 이제 이 시리즈에서 (정도는 지킨) 과장된 액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는 일이다. 아예 제작진이 극장판의 전매특허로 내세우려는 심상인지, 뻔뻔하게 밀고 가는 듯한 태도가 몇 년 간에 걸쳐 여실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포부는 좋다. 그러나 초반부에 나오는 액션은 이를 감안해도 실망스럽다. 초반에 코난이 범인을 쫓기 위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추격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코난이 오토바이를 향해 정면으로 돌격하는 부분이나,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고 축구공을 차는 모습이 나오는데, 지나치게 과장된 것은 둘째치더라도 너무나 유치한 연출에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초반의 액션을 지나고 나면 후반의 액션은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연출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범인의 이동식 관측 차량을 쫓던 코난과 코고로가 함께 "절대 놓치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둘의 모습이 겹쳐지는 장면, 코고로가 범인의 차량을 향해 결정적인 한 발을 쏘는 장면은 코고로의 서사를 따라온 관객이라면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게 연출되었다. 이전까지 폭탄을 쓰거나, 비행기 위에서 칼싸움을 하는 액션보다 이런 식의 깔끔한 하이라이트를 원했던 관객에게는 나름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대목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경우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렇게 갈리게 된 이유는 이야기 때문인데, <척안의 잔상>의 각본은 전반적으로 난잡하다. 추리를 위한 복선도 넣고, 캐릭터들 활약도 챙기고, 액션도 넣고, 주요 인물의 드라마도 넣다 보니 내용이 산만해진다는 점은 다른 극장판들과 비슷하지만 <척안의 잔상>은 이게 유독 심한 편이다. 중심인물을 무려 네 명이나 세팅한 것이 원인이다. <할로윈의 신부>는 아무로 토오루,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이하 <흑철의 어영>)은 하이바라로 스포트라이트를 줘야 할 인물이 명확했는데 <척안의 잔상>의 경우에는 나가노 3인방에 모리 코고로까지 합세해버렸다. 이 때문에 피해를 보는 캐릭터가 생겼다. 나가노 3인방은 드라마가 상당히 잘 표현됐지만, 코고로는 작품의 중심을 차지하게 될 거란 초반의 기대와 달리 중반 이후부터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다가 결말부에 가서야 잠깐 존재감을 발휘하고 활약이 끝나버린다. <명탐정 코난: 수평선상의 음모>처럼 코고로가 직접 추리를 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식의 활약은 안타깝게도 이번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챙겨야 할 캐릭터들이 너무 많으니 마땅히 스포트라이트를 줘야 할 캐릭터를 챙기지 못한 각본 탓이다. 차라리 나가노 3인방과 코고로의 이야기를 별개의 극장판으로 제작했으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래도 <척안의 잔상>의 혼란스러운 각본을 지탱하는 것은 '상실'이라는 키워드다. 작중 캐릭터들 중 대부분이 주변 사람을 잃은 것으로 인한 상실감으로 가득하다. 나가노 3인방 중 한 명인 타카아키는 동생 히로미츠를 잃었고, 코고로는 절친인 와니를 잃었다. 작중 피해자로 등장하는 에이조는 자신의 딸 마키를 잃었고, 마키와의 혼인을 약속한 아츠노부 역시 상실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범행을 저질렀다. 나가노 3인방 중 남은 인물인 칸스케와 유이는 실질적으로 누군가를 잃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서로를 잃어버렸다고 봐도 될 만큼 서로 간의 관계에 흠집이 나 있는 상태다. <척안의 잔상>은 이러한 캐릭터들이 서로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상실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라는 주제로 나아간다. 이러한 대비가 범인 아츠노부와 그에 대적하는 인물들을 통해 형상화되어 있으며, 결말부에 경찰의 직업윤리를 읊는 장면에서 이러한 주제를 훈계에 가까운 수준으로 강하게 드러낸다. 물론 여타 상실을 그리는 영화에서는 수도 없이 반복된 주제이지만 이걸 작품의 주요 소재인 '사법거래'라는 사회 문제와 엮어서 하니까 나름 색다르게 다가온다. <흑철의 어영>에서 인종주의 텍스트가 발견된 것처럼 확실히 최근 들어 이 시리즈가 시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자세가 엿보인다.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은 충분히 만족스럽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극장판이다. 최근작들과 비교하면 <할로윈의 신부>, <흑철의 어영>보다는 살짝 아쉽지만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보다는 나은 완성도로 나와준 것 같다. 이전의 문제점들을 차례차례 해결하고 있는 노력에 대해서는 칭찬이 아깝지 않지만, 다음 작품은 무난한 정도를 넘어서 수작의 완성도로 나와주기를 바란다. 이제 엄청난 극장판 하나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나.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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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펜서>, 다이애나 스펜서의 고통과 자유, 그리고 고귀한 혁명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스펜서>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스펜서>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영화이다. 다이애나는 스펜서 백작의 셋째 딸로, 1981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찰스 왕세자에게는 오랜 연인인 카밀라 파커볼스가 있었고, 다이애나와의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이 아니었다. 다이애나를 향한 찰스의 사랑은 한 왕세자가 왕세자비에게 가지는 사랑에 불과했다. 왕이 되고 싶었던 찰스 왕세자에게 가장 적당한 왕세자비는 다이애나였다. 다이애나는 계속되는 왕세자의 부정, 과도한 언론의 관심과 노출 등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고 이 고통은 꾸준히 쌓이고 또 쌓였다.
다이애나의 버팀목은 두 왕자 윌리엄과 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아들은 다이애나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존재였으며, 왕실 속에서 다이애나의 숨통을 터 주는 존재였다. 그녀는 두 아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였고, 꾸준한 자선활동을 이어나갔다. 자연스레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런 다이애나를 사랑했다. 이후 다이애나는 왕실에서의 자신의 생활을 모두 고발하는 책을 발간하였고, 마침내 찰스 왕세자와 이혼하며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스펜서>는 실제 인물과 사건들을 바탕으로 쓴 '허구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영국 왕실에서 크리스마스 기간을 보내는 다이애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곳에서의 경험을 끝으로 그녀는 마침내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이름을 되찾기로 결심한 뒤, '해방'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기 시작한다. 특히 이 영화는 한 인물의 일대기 보다는 '내면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통해 표현되는 다이애나 비의 고뇌, 고통 등의 심경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녀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늘 남들보다 느린걸요.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자신의 차를 타고 왕실로 향한다. 왕실에서 이루어지는 3일간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서이다. 다이애나는 늦을까봐 서두르지 않는다. 가는 길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허수아비에 걸려있던 아버지의 옷을 발견한 뒤 그 옷을 가져오기 위해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뛰기도 한다. 이때의 다이애나의 얼굴은 길을 잃었다며 왕실 주위를 배회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왕실에 도착한 다이애나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현실이 펼쳐진다. 처음부터 다이애나는 왕실의 감시 하에 강제로 몸무게를 쟀고, 남편인 찰스 왕세자가 선물한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고, 왕실에서 정해준 옷을 입고 모임에 참석했다. 찰스 왕세자가 선물한 이 굵은 진주 목걸이는 왕세자가 자신의 내연녀에게도 선물한 목걸이였으며, 다이애나는 이 목걸이를 뜯어서 스프와 함께 삼키는 상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한편, 끊임없이 옥죄어 오는 왕실에서 다이애나를 숨 쉬게 하는 존재는 두 아들 윌리엄(잭 닐렌)과 해리(프레디 스프라이)였다. 다이애나는 두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랍스터와 게 인형을 건넨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단단한 껍질을 가진 존재들. 두 아들이 그렇게 강하고 단단하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자신도 단단한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모두 투영된 선물이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왕실의 다른 사람들이 잠든 밤, 다이애나와 두 아들은 서로에게 질문을 하면 솔직하게 답을 하는 놀이를 시작한다. 윌리엄은 다이애나에게 무엇이 엄마를 슬프게 하는 것이냐고 질문한다. 다이애나는 과거로 인해 슬프다는 답을 한다. 왕실에는 미래가 없다. 과거에 정해 놓은 규칙들로 인해 현재와 미래가 바뀌는 모습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곳이다. 현재나 미래를 한 개인이 쉽게 바꾸기도 어려운 곳이다. 다이애나에게 왕실은 그렇게 과거로부터 비롯된, 굳게 닫힌 새장이었다.
다이애나는 중간에 큰 아들 윌리엄에게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할 때면 막아달라'는 말을 전한다. 나는 이 말이 너무나도 아프게 느껴졌다. 문장 자체만으로 내 마음 속이 쿡쿡 찔리듯이 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의 경우 이 문장이 그랬다. 아프고, 또 아팠다.
다이애나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토해낸다. 그리고 왕실 사람들은 요리사들이 정성스레 만든 음식들을 제대로 즐길 수는 없냐면서 이런 다이애나를 질책한다.
한편,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상을 입은 다이애나가 음식을 토해내는 곳은 동화 같은 파스텔 색감의 화장실이다. 스크린 속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 인물이 서 있는 공간이 너무 이질적이어서 해당 인물의 심정이 더 고스란히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다. 바로 이 장면들이 그러했다.
오로지 자신만이 있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구토를 하고, 자신의 울분을 이렇게나마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그녀의 불행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더불어,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장면들과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화면, 마구 요동치는 듯한 사운드로 인해 다이애나의 숨막힘이 나에게도 느껴졌고, 영화 밖의 관객인 나조차도 '당장 저 왕실을 뛰쳐나가야 한다' 라는 생각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왕세자비' 인 그녀를 향한 언론의 지나친 관심은 그녀의 숨을 옥죄어 오는 또 다른 존재였다. 수많은 카메라를 마주할 때 그녀의 입은 웃고 있지만, 그녀의 눈은 항상 울고 있다. 혹은 울기 바로 직전의 위태로운 눈이다. 왕실에서는 언론에 비춰지는 그녀의 모습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꾸며나갔고, 다이애나가 의상 담당자가 정해준 옷을 입고 나가지 않았을 때는 질책하기도 했다. 다이애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렌즈들은 참 잔인하고 삭막하다.
그녀의 자해 횟수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그녀의 불안감과 고통은 커져만 갔다. 그녀는 다른 이들의 저지를 뚫고 오랜 시간이 지나 폐가가 된 자신이 어린 시절 살던 집에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앤 볼린'의 허상을 마주한다. 앤 볼린은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로, 헨리 8세에게 이용 당한 뒤 결국 간통죄라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채 참수형을 당한 인물이다. 다이애나는 계단 밑으로 떨어지는 상상도 하였지만,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굳은 결심을 한다. 찰스 왕세자가 준 굵은 진주 목걸이를 마침내 뜯어내고, 왕실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이애나가 춤추는 장면, 달리고 또 달리며 끝없이 뜀박질을 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어린 시절 발레를 좋아하던 그녀의 모습도 나온다. 다이애나는 이렇게 맘껏 춤을 추고, 바람을 가로지르며 뛰어다님으로써 자신의 내면 속의 어떠한 심정들을 마구 분출해냈다. 혼동, 고뇌, 동요를 겪고 있던 그녀의 춤과 뜀박질은 그 행위 자체로 '해방'과 '자유'에 대한 갈증이 마침내 해소될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장면들을 보는 순간이 영화의 러닝타임 중 내게 제일 벅찼던 순간이었다. 그저 '벅찼다'. 이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다이애나는 허수아비에 걸려있던 아버지의 자켓을 입고 꿩 사냥을 하러 간 두 아들에게 찾아간다. 총을 쏘기 위해 규칙적으로 서 있던 왕실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등장하는 다이애나의 모습은 한 마리의 '새' 같았다. 새장 밖을 빠져나온 새. 자유를 갈망하는 새.
그리고 다이애나는 총을 쏘기 싫어했던 두 아들을 데리고 자신의 차를 통해 왕실을 빠져나간다. 억지로 갇힌 새장을 숨 막혀 하던 새들은 모두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KFC에서 음식을 주문하며 자신의 이름을 묻는 직원에게 다이애나는 '스펜서'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 그리고 좋았던 부분은 모두 '매기(샐리 호킨스)'와 다이애나의 장면이었다. 매기는 다이애나의 전용 왕실 의상 담당자로, 두 아들과 함께 다이애나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존재였다. 다이애나를 버티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중간에 매기 대신 다른 왕실 의상 담당자로 교체되며, 다이애나의 고통은 더 심화되기도 했다.
- 전하의 무기는 전하 자신이에요.
자신을 무너뜨리지 말아요.
- 뜻밖의 말을 꺼내 (전하의) 어둠을 걷어내고 싶었어요.
- (전하의) 아이 같은 웃음을 좋아해요.
- 전하에게는 사랑, 충격, 웃음이 필요해요.
매기는 다이애나의 허상 속에 나와 다이애나에게 힘을 불어주기도 하고, 다이애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다이애나를 웃음 짓게 하기도 한다. 다이애나에게도, 그리고 관객인 나에게도 가장 큰 숨통이자 안식처, 미소 짓게 만드는 존재는 매기였다.
그리고 매기는 다이애나의 차에
'전하를 사랑하는 사람은 저 뿐만이 아닙니다.'
라는 메시지를 적어 남겨둔다. 다이애나를 가장 응원하고, 지지하고, 사랑하는 이의 찬란한 메시지.
샐리 호킨스의 모든 장면들이 찬란했다.
그래서 샐리 호킨스의 분량이 적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웠다. 샐리 호킨스의 장면이 더 많았으면 영화를 보는 나도, 영화 속의 다이애나도 고통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비극을 바탕으로 꾸며낸 이야기' 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영화와 영화의 토대가 되는 실제 이야기는 비극이다. 영화 자체는 다이애나 스펜서가 자유를 되찾으며 끝나지만, 실제 '다이애나 스펜서'의 삶을 알고 있는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다. 마음 한 켠에서는 계속 그녀를 향한 슬픔이 차오르고 있다.
그렇지만 왕실을 뛰쳐나오는 다이애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고귀한 혁명'을 느낄 수 있다.
숨 막히고 고통 뿐이었던 왕실이라는 사회를 주체적으로 벗어난 이의 혁명,
자유와 해방을 좇아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간 이의 혁명.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의 그녀의 고귀한 혁명을 마주함으로써 우리는 조심스레 그녀를 애도해본다.
'다이애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펼쳤고, 오직 표정과 눈빛, 몸짓 등을 통해 한 인물의 내면을 생생하게 표현해낸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만으로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스펜서>는 1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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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 빛을 담는 여성들의 두 눈,
내 안에서 영화의 개념화는 서양, 특히 유럽과 미국의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 시절 영화를 제대로 전공해보자고 결심한 이후 처음 수강한 강의가 프랑스, 미국, 영국 등의 영화들로 모든 역사적 자취를 설명하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영화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존재했는지, 하다 못해 아시아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수업을 탓할 수는 없다. 영화가 설명되는 방식이 으레 그랬으며, 눈을 돌려 관심을 가지더라도 그 범위를 벗어나는 정보는 알기 어려웠다. 서양 국가를 주제로 한 발표와 그 외 국가들에 대한 발표는 분량부터 차이가 났다. 유수한 영화제라 불리우는 국제영화제들은 모두 일부 국가들에게 집중되어 있으니 그럴 만했다.
영화를 더욱 넓고 깊게 소비하게 되었다고 자부하는 지금의 나 또한 변함 없이 몇 국가의 작품들과 그 방식에만 익숙해져 있었고, 다양한 국가영화를 접하고 싶던 차에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었다. 여성감독이 여성 주연들과 함께 연출한 작품이었기에 더욱 눈이 갔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으나 그들의 녹록치 않은 삶을 멀리서나마 접해왔기에 영화로 만나는 인도 여성들은 어떤 모습일지 하루 빨리 알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상상하는 게 어려워요” 시간을 훔치는 대도시 뭄바이,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에겐 해결되지 않는 사정들이 있다.
그러나 세 여자의 우정은 작은 빛을 만든다.
미리 말해두겠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여성영화는 아니다. '세 여자의 우정은 작은 빛을 만든다'라는 문장을 보고 당신은 무엇을 떠올릴 수 있는가? 여성들이 모여서 함께 주거공간을 꾸려 나가거나, 기혼/미혼/비혼 여성들의 각 가치관들이 모여 건강한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라 감히 예상해본다. 그렇다면 해당 작품을 관람하고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오히려 남성과의 연애와 결혼이 자연스럽게 스토리의 주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 내에 만연한 종교에 따른 가치관과 여성을 억압하는 뿌리 박힌 것들에 맞서는 요소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도 여성'들에게 동일시되어야 조금 더 잘 보이는, 하지만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는 섬세한 작품임은 명확하다.
* 뭄바이를 느낄 수 있는 오프닝 시퀀스
극의 첫 장면은 누군가가 인터뷰를 하는 듯한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뭄바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겪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다른 목소리들이 짧게 풀어낸다. 그리고 배경은 분주히 움직이는 도시의 밤을 그대로 담아낸 샷들이 나온다. 빠르게 이동하는 차량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 가운데 수많은 빛들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자동차 전조등, 조명, 기차 혹은 지하철이 뿜는 빛. 고스란히 빛을 받는 사람들은 어쩐지 지쳐보인다. 이렇다 할 주인공 없이 도시 그 자체를 담으며 꽤 긴 시간동안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는 흡사 다큐멘터리 영화 같기도 하다.
그만큼 도시의 모습을 충실하게 담아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복잡한 도로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토바이의 행렬은 베트남 하노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하노이에서 잠깐 머물렀던 적이 있다. 언어를 공부하며 영상도 제작하고자 했던, 도시를 마음껏 즐기다 떠나면 되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문득 외로움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버거운 마음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이렇게 상상만 하던 현지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된 느낌이었다. 눅눅한 공기와 도로의 소음, 즐비해 있는 길고 얇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가는, 도시의 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샷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 여성들의 사소한 일상 또한 상세하게 묘사된 덕분에 그들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 가는 극을 경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컸다.
** 감각적인 이미지와 사운드
초반부가 다큐멘터리 같았다면, 중반부는 실험영화 같은 면모를 보인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프라바'와 '아누'의 일상이 리드미컬한 사운드와 함께 독특한 편집으로 표현된다. 하루종일 좁디 좁은 사무실에서 고객 응대를 하고 있는 '아누'가 종종 나누는 문자 텍스트가 자막으로 화면에 보이는 호흡은 여느 극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힙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직관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장난기 서린 음악이 본능적인 호감을 자아냈다. '아누'가 단독으로 나오는 사무실 몽타주는 아주 귀엽고 익살스러운 연기가 매우 돋보인다.
시간을 훔치는 대도시는 주로 밤으로 표현되었지만 모든 걸 뒤로 하고 바닷가 마을로 모인 세 주인공의 시간들은 대부분 낮으로 구성된다. 어둠에 잡아먹힌 도시와 달리 한적한 바닷가는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차 있다. 푸른 나무들 사이로 뻗어 나가는 빛줄기를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화면에 담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세 주인공이 모인 장면에서는 ㅡ 알게 모르게 쌓아 두었던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린 채 ㅡ 새까만 하늘과 밤바다 속에 별과 조명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비로소 그들의 주변 환경을 이루던 모든 빛이 한 데 만난 것이다.
다만, 극영화로서의 힘은 약하다. 각 등장인물의 서사는 미약하며, 접점은 모호하다. 현재진행형의 일상을 제시하는 방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연락이 오지 않는 남편을 기억하는 '프라바'와 사랑하는 이가 있음에도 숨겨야 하는 '아누', 일평생 살아왔던 공간을 집이라고 인정 받지 못하는 '파르바티'. 각 사건들의 앞뒤상황이 제시되지 않는 만큼 그들의 감정선에 이입하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 플롯 자체는 느리고 차분하게 진행된다. 명확한 대사보다는 주어가 분명하지 않은 비유적 표현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스토리의 흐름에 탑승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면 수작이라고 판단했을 거 같다.
*** 어둠 속 빛을 담는 여성들의 두 눈
극중 '빅 클로즈업' 샷이 자주 사용되는 특징이 눈에 띄었다. 특히 얼굴, 그리고 얼굴 중에서도 눈 주위를 중심으로 샷을 잡는다. 눈은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사물의 상을 담는다. 그리고 그 눈은 항상 빛이 있다. 주인공 자체가 빛이기에 바라보는 모든 사물들에도 자연스럽게 빛이 옮기는 건지, 눈이 향하는 모든 곳에 빛이 있었고 그대로 담아냈을 뿐인지 알 수 없다. 정확한 건, 빛은 어둠이 있기에 인식될 수 있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상상할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 나자신 혹은 어둠 속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빛 그 자체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감독이 바라보는 인도, 여성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드러낼 줄 알고 그들의 우정이 존재하는 한, 그곳은 애써 빛을 상상하려 하지 않아도 애초부터 희망이 함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당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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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하디 흔한 천재의 이야기에서의 포인트
흔하디 흔한 천재의 이야기에서의 포인트
영화 <마거리트의 정리> 리뷰
감독] 안나 노비온
출연] 엘라 룸프, 장 피에르 다루생, 줄리앙 프리종
시놉시스] 명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가장 인정받는 수학 천재 ‘마거리트’는 세계 난제 ‘골드바흐의 추측’에 관한 연구를 증명하는 세미나에서 오류를 범하고 만다. 그날 이후 충격에 빠져 학교를 그만둔 ‘마거리트’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며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내가 증명하고 싶은 건 나일지도 몰라”
#스포일러 주의#
사회성 없는 천재를 표현하다
많은 영화에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천재들의 이야기다. 영화 마거리트의 정리 역시 마찬가지다. 마거리트는 수학교사 엄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두각을 보이고 할 줄 아는게 수학 밖에 없었던 수학이 인생 그 자체였던 삶을 살아온 소녀였다. 빠른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25살에 박사과정 졸업반에 들었으니 말이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많은 이들이 수학 천재 마거리트라며 그녀를 추켜세우고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증명을 열심히 탐구한다.
마거리트 역을 맡은 엘라 룸프의 연기를 보면서 이 배우가 수학과 출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수학 천재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터뷰 시간 조차 아까워하며 수학을 사랑하는 마거리트의 모습, 언제나 정답을 정답을 맞춰왔고, 정답을 찾아온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많은 이들 앞에서 오류를 범했을 때 밀려오는 자괴감, 그리고 수학 외의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굉장히 서툴고 순진한 모습을 너무나도 과장된 것이 없이 잘 표현하고 있었다.
사실 영화 마거리트의 내용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천재성을 보이는 요소가 '수학'이라는 장르만 바뀔 뿐 천재들이 보이는 양상들은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신선한 마스크의 엘라 룸프가 선보이는 연기는 사회라는 것이 버거운 천재의 어눌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녀의 삶에 대해 관객이 공감하게끔 만들었다. 관객이 수학자여서 수학을 증명해내는 과정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같이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가며서 그녀의 삶을 공감하게끔 만든 것은 그녀의 연기력이 일등공신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나에서 둘이 되다영화 마거리트의 정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마거리트가 타인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걸 표현하는 장면이었다. 마거리트는 자신의 논문 주제였던 증명을 세미나에서 발표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의 지도교수가 새롭게 영입해온 학생이 상수C를 어떻게 계산하냐며 반문을 던진다. 이에 증명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마거리트는 휘청거리며 칠판에 손을 짚는다. 그 과정에 칠판에는 마거리트의 손바닥 자국이 남고, 그녀를 둘러싼 것은 응원이 아닌 비난만이 남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는 이러한 상황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지도교수 베르너를 찾아가지만 베르너는 증명이 틀렸다고 해서 세미나를 그렇게 나갔으면 안됐다며 그녀를 질책하고 다른 지도교수와 함께 일하기를 권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마거리트는 그길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고 짐을 싸서 무작정 학교를 나와버린다. 그렇게 수학과 담을 쌓고 지낼 것 같았지만 그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마작을 시작하고, 마작의 규칙이 수학과 연관되어 있고, 그리고 자신의 연구 과제였던 골드바흐의 추측과 굉장히 밀접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다시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무리라는 생각에 자신에게 그 오류를 지적했던 줄리앙을 찾아간다.
그렇게 그 둘은 동료로서 함께 골드바흐의 추측을 연구해나가고, 줄리앙은 마거리트와 천천히 소통하면서 그녀가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그리고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받아들였을 때 칠판에 묻은 손바닥은 2개였다. 그렇게 칠판을 통해 소통하는 마거리트가 의지할 대상과 소통할 대상이 생겼다는 것을 영화 속에서는 이렇게 보여주고 있었다.영화 마거리트의 정리는 특별한 소재와 주제는 없었지만 엘라 룸프의 녀기력과 이를 받쳐주는 장치들의 조화가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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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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