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4-12-27 00:07:07
흐릿한 얼굴 위로 하얀 빛
영화 <밀레니엄 맘보> 리뷰
SYNOPSIS.
그녀는 하오하오와 헤어졌지만 그는 늘 그녀를 찾아냈다. 주술이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늘 돌아왔고 스스로 다짐했다. "은행에 있는 50만 대만달러를 전부 써 버리면 그를 영영 떠날 거야"
그녀는 클럽에서 잭을 만났다. 잭은 항상 그녀를 데리고 다녔고 그녀를 가장 친한 친구처럼 대해 줬다.
이 일은 10년 전인 2001년의 일이었다. 세계는 21세기를 맞이했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축하했다.
POINT.
✔️ <비정성시>, <카페 뤼미에르>, <쓰리 타임즈>, <자객 섭은낭>... 대만 뉴웨이브의 대표자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작품
✔️ 세기말 청춘의 정서를 흠뻑 느껴볼 수 있는 작품.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요즘 젊은이들"의 빠른 속도 속 젊음을 담았다고 평한 바 있습니다.
✔️ 대배우 서기의 저력을 볼 수 있는 작품. 시나리오 없이 시놉시스로 시작해서 촬영한 영화라고 (아니 뭐라고?) 해요.
✔️ 금마장 영화제 촬영상, 영화음악상, 음향효과상 + 겐트 영화제 감독상. 칸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초청받았어요.
✔️ (재)개봉은 2024년 12월 31일. 밀레니엄처럼 찾아올 새해의 새벽에 어울리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빛이 어슴푸레한 터널 안으로 배우 서기가 분한 '비키'가 터널을 가로질러 걸어간다. 뚝뚝 비트가 떨어지는 음악 위로, 긴 머리가 흩날리고, 현란한 무늬의 옷에 감싸인 팔을 휘적거리기도 하고... 그 위로 영화 시놉시스가 내레이션으로 등장한다. 헤어져도 계속해서 찾아오는 연인과 매인 듯 자꾸 돌아가게 되는 연인. 3인칭으로 담백하게 풀어낸 내레이션 이후 터널 끝에서 계단을 내려간 비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나면, 방금 들은 내레이션이 영화에 그대로 펼쳐진다. 영화 전반은 비키의 내레이션이 나온 후 그 내용을 화면으로 풀어내는 식이다. 내레이션은 2001년으로부터 '10년 후', 즉 2001년작인 이 영화를 기준으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비키는 '나'라는 1인칭 대신 '그녀'라는 3인칭을 사용해 내용을 풀어낸다. 우연히 만나 불 같은 사랑에 빠져 모든 걸 버리고 서로에게 엉겼던 진득한 풋사랑은, 회상의 말보다 영상 속에서 더 지리멸렬하다.
어리고 철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연인의 관계는 대부분 어두운 조명 속에서 흘러간다. 밤의 간접 조명, 거의 블랙라이트 조명에 가까워 흰 옷이 푸르게 비치는 클럽의 조도, 희미한 빛, 깜빡이는 불빛 아래서나 그들은 서로를 원하고 있다. 그들에게 투명하고 올곧은 직사광선은 내리쬐는 법이 없다. 아침이 되어도 빛은 간유리나 비닐이 덕지덕지 발린 창을 투과하여 들어오며, 그나마도 끊임없이 소리를 빚어내는 유리 문발에 걸려 갈가리 조각난다.

유리알 부딪는 소리는 이내 관계의 파열음으로 발전한다. 목욕 수건과 샤워 타올 차림으로 경찰을 맞이하는 이 커플의 결말은 결국 (이 시대 창작물에 흔했던 방식 중 하나로) 비키를 몰아넣으며 일단락되지만, 내레이션에서 "주술" 같다고 표현했던 것처럼 이 사랑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파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까닭은 아마도... 파멸의 원인이 남긴 자욱이 너무 깊어, 설령 내게 해롭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떼어내기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무감하게 삐그덕거리며 공허하게 지속된다. 하오하오가 몇 번이나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강조하듯 상반된 빛이다. 검푸른 클럽 디제잉의 빛을 집안에까지 가져오는 하오하오와 달리, 붉은 계열 물건이 많은 비키의 방은 언제나 난색 조명으로 밝혀져 있다. 간유리와 유리 발로 깎이고 깨져 들어오는 빛일지언정 같은 빛 안에 있던 날들은 이미 바랬다.

사랑이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와도 발을 내딛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는 사랑을 징검다리처럼 밟아야만 발을 내딛는 이들이 있다. 땅 위에 단단히 두 발을 딛고 서는 대신, 사랑에서 다음 사랑으로, 때로는 불안한 발을 서서히 옮기느라 두 개의 돌 위에, 발을 괴고 있는 것이다.
휘적휘적 걷던 비키는, 유리알 같은 파열음을 남기며 끈질기게 이어져온 하오하오와의 인연이 잠시 소강 상태에 들어섰을 때 잭을 만난다. 잭은 의아하리만큼 충성스러운 자세로 비키를 보호한다. 억지로 약을 빼앗아야 했던 하오하오와 달리, 그는 부엌에 서서 비키에게 먹일 무언가를 요리한다. 끊임없이 괜찮다는 말을 해준다.

그러나 잭의 요리는 비키의 입맛에 맞지 않아 매운 소스를 몇 번이나 다시 뿌려야 하고, 반대로 잭의 담배는 비키에게 너무 강하다. 도무지 맞지 않는다. 내레이션이 먼저 펼쳐진 후에 영상이 펼쳐져 비교적 알기 쉬웠던 전반부와 달리, 잭의 시간은 영상이 먼저 펼쳐진 후 내레이션으로 정리된다. 하오하오에 비해 잭은 알기 어려운 인물이다.
엉망진창으로 자기를 좀먹는 관계라는 걸 알았다 해도, 요즘 같으면 인터넷에 올리자마자 헤어지라는 댓글이 빗발칠 (아니면 <무엇이든 물어보살> 나와서 서장훈에게 한 소리 씨게 듣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박제될) 하오하오여도, 그와의 관계는 최소한 비키에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잭이 아무리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해도 그는 비키에게 미지의 세계다. 그가 해결하려고 애쓰는 일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알 수 없다.

결국 잭과의 관계 속에서도 비키의 얼굴은 내내 흐릿하다. 잭의 집 부엌에는 큼직한 창이 나 있지만, 비키에 앉아있는 거실은 여전히 난색 조명으로만 겨우 밝혀져 있다. 잭의 자동차를 타고 그에게 얼굴을 온통 기대고 있을 때조차, 비키의 얼굴은 터널 속에서 스치는 조명으로 짧고 흐릿하게만 보인다.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조차 햇빛이 유리에 푸르게 반사되어 얼굴은 흐릿하다. 손에 쥔 머그컵에도 흐린 얼굴 무늬가 찍혀 있다.
영화 내내 비키의 얼굴은 흐릿했다. 흐릿한 간접 조명에 그림자 져서, 클럽의 검푸른 조명에 실루엣만 남아서... 심지어 일본 혼혈 형제와 함께 향했던 유바리 시에서 신나게 눈밭을 뛰어 다니던, 모처럼 생기 있어 보이던 그 날조차 눈밭에 푹 찍은 얼굴은 흐릿한 흔적만을 남겼다. 사랑 비슷한 것에서 사랑 비슷한 것으로, 제 발로 땅 딛고 가기보다 불안하고 빠른 발걸음으로 겅중겅중 넘어온 비키의 사랑이 그랬듯.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서 눈 쌓인 유바리 영화의 거리를 걸을 때, 낯선 외국어를 입내 내어 따라할 때 비로소 비키의 얼굴은 환하게 빛난다.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내레이션은 잭과 하오하오의 순간들을 무감하게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에 대한 감상을 밝힌다. 그리움이 묻어 있던 잭의 외투를. 해가 뜨면 사라져 버리는 눈사람처럼 느껴졌던 하오하오, 그의 불안을 끌어안고 사랑을 나눈 추억을. 비로소 비키는 사랑의 온전한 서술자가 된다.
그 자리에 영화가 있다. 정갈하게 낡아 가는 오래된 포스터들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우리의 흐릿한 얼굴을 비춘다. 흰 눈처럼 빛을 반사해 우리 마음을 들여다 보게 하고, 1인칭의 언어로 나의 사랑을 서술하게 한다. 아무 것도 없이 흰 눈만 내리는 것 같은 그 거리에, 영화가 있다. 우리의 마음이, 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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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미디 영화 스물
여러분의 스물이 기억이 나시나요?!
여기, 지금 막 20대의 첫 시작인 스물을
시작하는 세 친구가 있습니다.
자체발광 코미디를 펼치면서
어른임에도 아직 어리고,
어리지만 아직 뭐든 할 수 있는 스물!
가장 아름다운 청춘의 시작 영화 스물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코미디, 드라마
감독 / 각본 : 이병헌
출연진 : 김우빈, 이준호, 강하늘
개봉일 : 2015년 03월 25일
평점 : 8.61
스트리밍 : tvN , NETFLIX, Wavve, Whatch
기획 의도
인기 많은 놈 '치호'(김우빈)
생활력 강한 놈 '동우' (이준호)
공부만 잘하는 놈 '경재'(강하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잉여의 삶을 지향하는 인기 절정의 백수,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위해 쉴 틈 없이 준비하는 생활력 강한 재수생,
대기업 입사 목표인 최강 스펙의 엄친아이지만
술만 마시면 돌변하는 새내기 대학생까지
인생의 가장 부끄러운 순간을 함께 한 스무 살 동갑내기 세 친구의 자체발광 코미디 영화
여담
영화 스물은 이병헌 감독의 특유의 코미디와
김우빈, 이준호, 강하늘이라는 청춘들이 한 대 모여 관객 몰이에 흥행할 수 있었다.
영화 스몰의 경우 억지 감동을 쥐어짜는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클리셰를 정면으로 깨부수고, 마지막 결말까지 찌질한 캐릭터들이 확실한 웃음을 선사해 줬다.
워낙에 찌질미 강력한 캐릭터 들과
영화 초반과 마무리까지 웃을 수 있는 코미디 영화라서 심심치 않게 OCN 추석 특선영화 등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스물 결말
그들의 아지트인 소소 반점에서
그들은 스물이라는 나이에 연애 고민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으면서 한심한
청춘들의 무게감 없는 고민이라며 웃게 된다.
소소 반점으로 나타난 용역 깡패들과의 한바탕 싸움으로 그들은 입대 일주일 전 국토대장정을 떠나며 나란히 입대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스물은 탄탄한 각본 속에
캐릭터 들의 찌질함의 최고봉을 달려주며
우리에게 웃음과 그때 그랬지라는 회상과 함께
공감을 한대 이끌어 냈다.
개인적으로 스물 영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김우빈의 용돈 주세요 장면이 가장 기억에 오래오래 남는다!
(용돈 주세요!!! 용돈!!!!!!!!
용돈 주세요 오 오오!!!!!!!!!!)
영화 스물에 나온 배우들이
지금은 모두가 멋지게 한층 더 멋지게 성장해 있어서 다시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 스물!
심심할 때 코믹한 영화를 찾는다면
영화 스물 추천드립니다!
한줄평 : 우나? 지금 힘들다고 우냐?
울지 마. 내일도 힘들어
-영화 스물 대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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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파이브 | 필요조건만 겨우 갖춘 한국판 '샤잠!'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증세로 인해 꿈을 접은 태권도 선수 '완서‘(이재인). 의문의 장기 기증자로부터 심장을 이식받은 뒤 초인적인 속도, 근력, 내구성을 얻은 그녀는 능력을 시험하던 중 또 다른 초능력자의 존재를 깨닫는다. 각각 폐, 신장, 간, 각막을 이식받은 후 초능력이 생긴 작가 지망생 ‘지성’(안재홍), 프레시 매니저 ‘선녀’(라미란), FM 작업반장 ‘약선’(김희원) 그리고 힙스터 백수 ‘기동’(유아인)이 그녀 앞에 나타난 것.
다섯 초능력자는 몸에 새겨진 표식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팀을 결성하기로 의기투합하지만, 능력도 성격도 취향도 제각각인 나머지 좀처럼 협동하지 못한다. 그러나 췌장을 이식받은 후 다른 생명의 기력을 흡수하는 능력을 얻게 된 새신교 교주 ‘영춘’(신구/박진영)이 평생 꿈꿔온 절대자가 되기 위해 나머지 이식자들을 찾기 시작하자, 그들은 공통의 적 앞에서 마침내 한 팀, '하이파이브'로 거듭난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두 기둥
슈퍼히어로 영화는 두 개의 기둥이 지탱한다. 하나는 액션이다. 상상이나 만화책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초인적인 능력을 실감 나게 맛볼 수 있는 직관적인 재미라고 할 수 있다. <토르> 시리즈 같은 판타지부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까지 다양한 장르의 볼거리를 선사하기도 한다. 다만 주인공이 능력을 얻고 계기나 활용하는 동기를 보여주지 못할 슈퍼히어로 영화의 액션은 유치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그렇기에 슈퍼히어로 영화는 현실에 닻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다른 기둥인 성장 서사가 바로 그 닻이다. 관객은 히어로의 역경과 성장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고, 그들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며, 그 과정에서 자칫 허무맹랑한 능력이나 상황도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MCU의 캡틴 마블이나 아이언하트처럼 영웅이 되려는 계기나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한 캐릭터들이 관객의 외면을 받는 게 그 반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강형철 감독의 신작 <하이파이브>는 슈퍼히어로 영화로서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충족했다.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초능력자들의 활약상도, 그들이 히어로로 거듭나는 과정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두 기둥 모두 아 단단하지는 않다. 주인공들의 서사는 수박 겉핥기고, 액션 연출도 부족함이 많기 때문. 그 결과 <하이파이브>는 <샤잠!>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를 다시 보는듯한 기시감까지는 떨쳐내지 못했다.
몸도 마음도 고치는 초능력
<하이파이브>에 현실감을 불어넣는 소재는 '결함'이다. 선역과 악역 모두 장기이식을 받은 덕분에 초능력을 얻었다. 흥미롭게도 장기이식과 초능력은 그들의 신체적 장애를 고치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은 신체적 장애로 말미암은 심리적 결점도 초능력으로 서서히 극복해 나간다. <하이파이브>는 주인공들이 결점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그들이 슈퍼히어로로 거듭나는 과정과 동치 보여준다.
일례로, 유전적으로 심장이 약한 완서는 태권도 시합 도중 심장마비를 경험했고, 1년간 병원 신세를 졌다. 그로 인해 그녀에게는 두 가지 심리적 장애가 추가로 생겼다. 하나는 태권도나 다른 운동을 다시는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었다. 일상생활 중에도 심장 박동이 너무 빨라지지 않도록 매 순간 관리해야 하니까. 그와 동시에 그녀는 외로움에 빠졌다. 병원 생활로 인해 친구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완서에게 주어진 새로운 심장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 우선 그녀는 이제 심장이 멈출지도 모른다는 걱정 없이 마음껏 운동하고 몸을 쓰면서 좌절감을 이겨냈다. 새 심장이 초인적인 속도와 괴력, 내구도라는 선물을 그녀에게 줬으니까. 이에 더해 그녀는 새 친구도 만들면서 외로움을 극복했다. 자신처럼 능력을 갖게 된 다른 초능력자들을 만나 '하이파이브'라는 팀을 결성한 덕분이다.
초능력자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법
다른 주인공들도 완서와 유사하게 자신들의 장애와 결함을 극복한다. 새신교에 빠져 있던 약선은 초능력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계획한다. 신도들의 목숨을 부품처럼 낭비하는 공동체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주어진 치유 능력을 살릴 수 있는 간호사가 되겠다는 것. 선녀는 자살 시도를 했을 때 구급대원을 중상에 빠트린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이겨낸다. 본인 초능력을 활용하면 본인 때문에 다친 구급대원을 완치할 수 있으므로.
하나의 팀을 이루면서 같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도 한다. 어릴 적 과학관에서 전기 실험 장치에 손을 댔다가 시력을 잃는 사고를 겪은 기동. 자신을 부추겼던 친구들이 정작 사고가 났을 때 도망간 경험으로 인해 그는 타인을 불신하는 태도를 방어기제로 취한다. 지성도 다르지 않다.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하던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은 경험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대한다.
자연히 기동과 지성은 초능력자를 모아 팀을 만들고자 하면서도 좀처럼 협력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서로 목숨을 구해주면서 비로소 팀을 이룬다. 지성은 숨을 강하게 내뱉는 능력을 살려 화재 속에서 기동을 꺼내주고, 기동은 전자기파 조작 능력을 활용해 납치 후 감금된 지성을 풀어주면서 경험적으로 터득한 타인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마침내 놓아준다.
심지어 악역인 영춘도 다르지 않다. 새신교 교주인 그의 결함은 노화다. 그가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딸 '춘화'(진희경)과 절친 '병춘'(장광)은 그의 권력과 부를 강탈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새로운 신장은 그의 문제를 깔끔히 해결해 준다. 다른 생명의 기력을 흡수해서 자신을 더 젊게 만드는 능력을 얻은 그는 20대로 돌아가고, 그의 권세는 더 강해진다. 신도들이 젊어진 그를 기적으로 여길수록 새신교 교세는 더 확장될 테니까.
'하이파이브'의 책임감
문제는 그들의 서사가 관객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 초능력자 6명의 이야기를 진득이 다룰 여유가 없다 보니 <하이파이브>는 완서를 중심에 놓고 기승전결의 완결성을 높였다. 그 대가는 분명하다. 주인공들의 갈등도, 그들이 팀을 만드는 과정도 빠르게 지나간다. 그 결과 주인공과 관객 간에 유대감이 형성될 기회는 부족해진다. 아무리 코미디 장르를 차용했더라도 편의적이고 가벼운 인상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이처럼 얕은 스토리텔링은 사이비 종교 교주라는 악역의 설정에 담긴 함의를 부각하는 데 실패한다. 영춘은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의 실낱같은 희망을 착취해서 자기 돈을 불리는 데에만 혈안이다. 부흥회 장면이 대표적이다. 불치병을 앓거나 장애를 지닌 이들을 대상으로 전도하면서 세력을 확장하는 게 그의 전략이다. 선녀의 사고 당시 중상을 입은 구급대원의 아내가 부흥회에 참석한 것이 그 방증이다.
'하이파이브'는 영춘의 반대급부를 상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의 희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있다. 운 좋게 장기이식을 받기 전까지는 같은 처지였으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영춘과 달리 다른 이들의 희망을 실질적으로 이뤄주고자 한다. 선녀를 도와 구급대원을 치료하고, 영춘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면서 사이비 종교에 빠질 뻔한 이들에게 다른 선택을 할 기회를 주는 식으로.
예전처럼 운동할 수 있어서 기쁘고, 도박장에서 슬롯머신을 조작하는 데만 초능력을 활용하던 이들은 그렇게 슈퍼히어로로 거듭난다. 배트맨이 박쥐의 의미를 깨닫고 영웅이 되듯이, 자신들과 같은 처지이지만 행운이 따르지 못한 이들을 위해 초능력을 활용하면서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의 의미를 비로소 체득한 셈이다. 이처럼 심층적인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지 못했기에 <하이파이브>의 스토리텔링은 결코 만족스러울 수 없다.
레트로한 액션
그렇다고 해서 서사의 부족함을 액션으로써 보완하지도 못했다. 물론 강형철 감독의 장점이 돋보이는 장면들은 재기 발랄하다. 도박장에서 시비가 붙은 건달과 추격전을 벌이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레트로한 음악을 삽입해서 흥겨운 분위기를 내는 연출은 카 체이싱 장면에 나미의 '빙글빙글'을 배경 음악으로 삽입한 감독의 전작, <타짜: 신의 손>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세련되지 않았다. CG의 퀄리티도 아쉽지만, 무엇보다도 액션의 레퍼토리가 한정적이다. 사실 여러 히어로가 등장하는 팀업 무비에서는 서로 다른 히어로 간의 능력이 합쳐진 색다른 볼거리를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를 들어 <어벤져스> 시리즈에서는 토르의 번개를 아이언맨이 에너지로 활용하고, 캡틴 아메리카가 방패를 던져주면 토르가 망치로 때려서 날려 보내는 식의 장면을 여러 차례 맛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하이파이브>는 조스 웨던의 <저스티스 리그>에 가깝다. 슈퍼맨이 나타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듯이, 액션의 분량과 비중이 모두 완서에게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사도, 볼거리도 완서에게 집중되어 있다 보니 다른 캐릭터들은 병풍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액션 배경도 단조롭다. 체육관 지하 시설 내에서만 액션이 이뤄다 보니 비슷한 그림이 반복되고, 덩달아 시각적 쾌감도 빠르게 사그라들고 만다.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한 한국판 '샤잠'
더 나아가 <하이파이브>는 불친절하다. 오프닝 크레디트 장면에 그림으로 암시되는 장면을 제외하면 세계관과 설정을 설명하는 데 박하다. 처음 능력을 지닌 존재는 누구인지, 초인적인 내구성과 능력을 지닌 그가 장기 이식을 선택한 이유를 영화만 봐서는 알기 어렵다. 웹툰과 같은 2차 창작물을 활용해 보완하기는 했지만, 이는 뒤집어 말해 영화의 완결성이 부족하다는 자백이나 다름없다.
부족한 설명으로 인해 <하이파이브>는 기존의 슈퍼히어로 영화, 특히 <샤잠!>과의 유사성을 내보인다. 주인공 완서와 빌리는 둘 다 청소년이고, 고대의 존재로부터 능력을 받았으며, 다른 능력을 지닌 동료가 추가적으로 있고, 능력을 공유하는 이들의 숫자도 6명으로 동일하다. 코미디적인 요소를 적극 활용한 나머지 영화의 톤과 분위기도 비슷하다. 설명의 부재가 독창의 실종으로 이어진 셈이다.
결과적으로 한국판 <샤잠!>, <하이파이브>는 여러 아쉬움을 안기며 막을 내린다. 만약 OTT 시리즈였다면 각 캐릭터의 서사와 매력, 주제 의식, 액션의 완성도를 모두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그래도 <하이파이브>가 한 가지 성취는 이뤄냈으니 다행 아닐까 싶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불모지인 한국에서도 슈퍼히어로 영화의 필요조건을 충족하는 작품이 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은 증명해 냈으니까.
Poor 형편없음
슈퍼 히어로 영화 최저 등급을 간신히 맞춘 한국판 '샤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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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한 번쯤 꿔 본 도피의 꿈
영화 <한국이 싫어서>
주연 고아성, 김우겸, 주종혁
감독 장건재
“행복을 찾아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왜 한국을 떠나느냐고?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계나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좇아 떠나기로 했다.
때때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밀어 넣는다거나, 일정에 늦을까, 늦지 않을까를 마음속으로 재 보며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서 있다거나, 상사에게 혼이 났을 때,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그 수많은 순간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아, 못 살겠다.
그리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한국이 싫어서>의 주계나와 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1. 한국이 싫어서 – 남들 눈에는 안정, 내게는 불안정!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주계나는 이미 취직한 회사원이다. 그녀에게는 기자를 꿈꾸는 남자친구가 있다. 아직 학생이고, 취업을 준비 중이긴 하나 곧 취직할 예정인, 장기연애 중이라 특별히 적응할 것도, 불안감을 가질 것도 없는 남자친구.
다만 그렇다고 해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곧 이사를 갈 예정인 부모님은 선택할 수 있는 두 평수 중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자며, 계나에게 동생과 합해 삼천을 보태라고 말한다. 동생은 어엿한 직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로, 사실상 계나 홀로 삼천을 보태야 하는 셈이다. 자신에게 삼천이 어디 있냐고 하소연을 해 보지만, 엄마는 적금 든 게 있지 않냐며 태연하기만 하다. 아빠는 신경쓰지 말라고, 우리가 해결하겠다고 말하지만, 답답한 마음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다니는 회사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운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점수 미달인 업체와의 거래를 터 주기 위해 점수 조작을 눈 감아줘야 하는 상황 앞에 선 계나는, 입버릇처럼 내뱉었던 말을 또 한 번 내뱉는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계나의 말에 당황한 상사는 뒤늦게 계나의 마음을 헤아리는 척 계나와 조건부 합의를 보고 계나의 퇴사를 막아선다.
남자친구와의 연애는 안정적인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남들 눈에는 ‘너 아직도 걔랑 잘 만나고 있구나’ 같은 말을 듣는, 평탄하고 안정적인 장기연애의 주인공처럼 보일지 몰라도, 계나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뜻이다. 계나가 꿈꾸는 해외로의 도피를 가장 크게 반대한 건, 다름 아닌, 계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남자친구, 지명이다. 지명과는 가깝지만 멀고, 또 멀지만 가까운 사이다. 남자친구인 지명의 취업을 축하할 명목으로 지명의 부모님과 식사 자리를 마친 뒤, 계나와 지명은 함께 웃으며 서로를 안아주는 대신 마주 보고 다툰다. ‘너는 내가 뭘 못 먹는지도 모르잖아’에서 시작한 다툼은 결국 계나의 답답한 속을 또 한 번 건드린다. 지명의 부모님께서 챙겨주신 상품권을 마주한 계나. 좋은 뜻으로 챙겨주신 거라고, 동정 같은 게 아니라고 지명이 말해보지만, 계나에게는 이미 상처가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계나는 떠난다.
이번엔, 말만이 아니라 정말로.
춥고 외로운 대한민국을 떠나, 따뜻한 낯선 나라, 뉴질랜드로.
2. 일상이 싫어서 – 낯선 공간에서 시작한 새로운 삶, 목적은 없어도!
계나가 뉴질랜드로 떠난 주목적은 그저 ‘한국에서의 생활로부터 도피’다. 다시 말해, 여기에는 어떤 부담이나 책임도 없다. 책임져야 할 가족도, 다니고 있던 회사도, 함께하고 있던 남자친구도, 모두 한국에 남겨둔 채 계나는 뉴질랜드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슷한 처지의 한국인, 재인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사실 우리도 한 번쯤 도피성 짙은 모험을 꿈꾸곤 한다. 여행이 될 수도, 연수가 될 수도, 그곳에서 정착할 수도 있는, 모험의 시작을 꿈꾼다. 그러나 그를 꿈꿔본 이들이 쉽게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이유는 두려움과 막연함 때문이다. 낯선 공간으로의 도피를 꿈꿨을 때, 그 이상에는 설렘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로 옮겨졌을 때는 말이 다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지, 자금 마련과 언어 장벽 등 고려해야 할 여러 문제들이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이 과거 ‘헬조선’이라는 단어로 불렸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이 ‘천국’과 같은 삶만을 보장한다고 볼 수는 없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처럼, 계나가 도망치듯 떠난 뉴질랜드도 완전한 이상향에 가까운 나라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계나의 ‘새로운 삶’은 꽤 희망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계나는 흔들리다 도망친 인물이지만, 도망친 뒤로는 방황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한 ‘계나’가 문제가 아니라, 계나가 안정적인 하루를 보내도록 만들어주지 못한 ‘한국’이 문제인 것처럼. 한국에 남겨둔 가족과 이제는 전 남자친구가 된 지명,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책임을 덜었기 때문일까. 목적은 없고, 노후가 보장된 직업을 가지지도 못했지만, 계나는 뉴질랜드에서의 삶에 잘 적응해 나간다.
3. 경쟁이 싫어서 – 경쟁에서 도망친 계나, 계속해서 경쟁하는 경윤
계나가 스스로 돌아본 '주계나'라는 인물은 '경쟁력 없는' 사람이다. 경쟁력은 없고, 추위는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건 없지만 지나치게 까다로운 인물. 이런 인물은 특별하거나 특이하지는 않다. 경쟁력 없는 청년, 뭘 치열하게 하지 못하는 청년, 까다로운 청년. 우리 주변에 한 명쯤 있을 법한 특징이 아닌가. 그러나 이 ‘평범함’은 또 다른 영화의 특별함을 가져온다. ‘공감’할 수 있다는 것. 계나가 흔들리면서 느낀 것, 계나의 일상, 그 일상을 살아가는 계나의 심정에, 한 번쯤 계나와 같은 생각을 해 본 사람들은 쉽게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꿈꾼 것은 계나만이 아니다. 작중 계나가 우연히 만나 연을 다시 이어가게 되는 인물, ‘경윤’은 계나보다도 더더욱, 치열하게 ‘살아야만’ 하고, 경쟁력을 ‘챙겨야만’ 하는, 그래야만 자신이 꿈꾸는 꿈에 다가가 지금의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인물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경윤은 꽤 긴 기간 동안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시험 준비를 이어가고 있는 공시생이다. 계나와 경윤 모두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다는 점은 같지만, 그 조건은 정반대에 있다. 회사원이었던 계나는 추운 한국을 벗어나 따뜻한 뉴질랜드, 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꿈꾼다.
반대로 경윤은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인물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번번이 시험에 떨어져 여전히 취직에 성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공’한 상태를 꿈꾸는 단계인 셈이다. 직장도, 현재 상태도, 재정 상태도, 모든 게 다르지만, 경윤과 계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
작중 행복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경윤은 계나에게, 나침반의 미세한 떨림은 방향을 맞추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흔들려야 청춘이라고. 흔들리고 있던 계나에게, 그리고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에게, 그 말은 꽤나 위로가 된다. 그래서 계나가 뉴질랜드로 떠난 뒤, 한국에 남아 있던 경윤에게서 전해져 온 소식이 경윤의 죽음이었다는 건 더 큰 충격을 안긴다.
한국으로 돌아온 계나는 경윤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던 이들을 다시 마주한다.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던 여동생은 밴드 공연을 하는 남자친구를 따라 함께하고 있고, 기자가 되었다던 전 남자친구, 지명은 혼자만의 어엿한 집을 가지고 있다. 일상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나아간 이들, 그리고 일상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삶을 시작한 계나. 그 앞에 서 있는 계나에게, 지명은 다시 한번 손을 내민다. 한국에서, 다시 함께하지 않겠냐고.
4. 한국이 싫어서, 그래서?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릿속에 들었던 의문은 단 하나, ‘그래서?’ 였다. ‘한국이 싫어서’ 라는 문장 뒤에 무언가가 더 붙지 않을까, 그러니까 ‘한국이 싫어서,’ 같은 반점 뒤에 이어지는 문장을 찾아내고 나면 영화가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내가 깨달은 건, 이 영화의 제목 뒤에는 반점이 아니라 온점이 붙는다는 점이었다. 떠난 이유, 한국이 싫어서. 건조하고 간단한 답이지만 그게 전부다. 영화는 한국이 싫어서, 다음으로 계나가 찾은 어떤 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계나는 그저 뉴질랜드에서 일하고, 또 하고 싶은 대로 삶을 꾸려볼 뿐이다. 그건 ‘뉴질랜드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저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삶이다.
현실의 여러 문제들을 붙여놓고 보면 영화가 보여주는 계나의 삶은 너무 희망적이기만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이 영화가 보여주는 ‘한국이 싫은 이유’는 많지 않고, 영화의 끝에는 ‘한국이 싫어서 떠났다’는 결론만이 남아 있으니까. 뉴질랜드로 가더라도 그곳에서 노후를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한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면 뉴질랜드가 자유롭고 따뜻한 곳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마저도 한국에 사는 한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영화가 보여주는 건 ‘답’이 아니다. 그저 또 하나의 삶을 시작한 누군가의 삶, 그 여정일 뿐. 그래서 이것저것 생각을 하려다가도, 결국 가만히 앉아 지켜보게 된다. 또 다시 이어질 계나의 내일을.
지명의 제안을 마주한 계나는 잠시 고민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다시 해외로 떠난다. 여전히, 한국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떠나는 계나에게 여동생은 가족 걱정은 하지 말고 계나만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계나는 또다시 나아간다. 이 발걸음이 ‘나아가는’ 발걸음이 될지, ‘도망치는’ 발걸음이 될지는, 이제 떠나는 계나의 발끝에 달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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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을 기다리며
영웅을 기다리며
6일에 개봉한 <드래곤 길들이기>가 3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흥행 중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15년 전 개봉한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의 인기에 힘입어서일까? 비행 장면을 실사로 멋지게 구현해냈기 때문일까? 주인공 ‘히컵’이 잘생겨서? 반려 드래곤 ‘투슬리스’가 귀여워서?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이번 작품의 흥행을 서사를 중심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주인공 히컵은 바이킹의 섬 버크에 살고 있다. 바이킹들은 일곱 세대에 걸쳐 드래곤과 긴 전쟁을 벌여왔다. 바이킹의 사회에서는 드래곤을 쓰러뜨릴 수 있는 공격성과 용맹함이 최고의 덕목으로 평가된다. 히컵은 족장 스토이크의 외동아들이지만 바이킹의 자질을 타고나지 못했다. 스토이크는 히컵이 자신과는 달리 ‘바이킹답지 않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히컵은 ‘아버지의 인정’을 욕망하고 그로 인한 결핍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히컵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드래곤을 사냥하고, 계속된 도전 끝에 자신이 만든 무기로 미지의 드래곤 ‘나이트 퓨리’를 맞힌다. 그러나 이는 히컵이 본격적으로 보통 세계를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 히컵은 드래곤을 자신과 다른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드래곤에게서 두려움이라는 공통 정서를 발견하고, 드래곤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나’ ̄‘세계’의 이항 대립 구조에서 벗어난 히컵은 ‘자기와 같은 존재’를 죽일 수 없다. 그에게 모든 ‘세계’는 결국 ‘나’와 같기 때문이다. 히컵은 자신의 비범함을 깨닫고 ‘아버지의 인정’을 스스로 포기하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토이크는 히컵에게 보편 규범 안으로 들어올 기회를 다시 내민다. 히컵이 그토록 원하던 드래곤 트레이닝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히컵은 더 깊은 갈등의 단계로 들어선다.
히컵은 친구가 된 ‘나이트 퓨리’에게 ‘투슬리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둘만의 유대를 쌓아간다. 히컵은 투슬리스와 함께할 때 진정한 ‘나’를 발견한다. 히컵이 드래곤 트레이닝에서 두각을 드러낼수록 주민들과 훈련생들은 그에게 동조한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히컵에게 위협이 되기도 한다. 히컵과 그들이 꿈꾸는 이상 세계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히컵과 투슬리스의 연대가 강해지고 버크 섬 내에서 히컵의 입지가 커질수록 두 세계의 간극은 더욱 벌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히컵은 결정적인 시련에 직면한다.
‘투슬리스’의 정체가 발각되자 스토이크는 히컵을 감옥에 가두고 ‘투슬리스’를 드래곤 둥지를 찾는 일에 이용한다. 하지만 영웅에게는 언제나 조력자가 있는 법. 히컵은 짝사랑하던 아스트리드를 든든한 동료로 얻고, 다른 훈련생들도 히컵을 도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선다. 아버지가 지키려던 이상 세계는 더 큰 폭력의 논리 앞에서 무너지고, 히컵은 힘의 논리를 뒤집어 연대로 맞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구해낸다. 히컵은 이렇게 ‘아버지의 인정’이라는 결핍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한다.
바이킹 부족은 최후의 적인 레드 데스를 물리친다. 히컵은 죽음의 위기를 겪고, 다리 하나를 잃지만 살아 돌아온다. 히컵은 버크 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바이킹들은 이제 드래곤을 더 이상 적으로만 보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하나의 공동체로 받아들인다. 히컵은 내면적으로 완전한 성장을 이룬다. 다리를 잃은 그는 더 이상 예전의 히컵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아버지의 인정’, ‘아스트리드의 사랑’, ‘마을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며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난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전형적 영웅 서사이며, 주인공 히컵은 ‘평범 속의 결핍’, ‘용기와 모험심’, ‘남다른 운명’, ‘조력자와 동료’, ‘내면적 성장’, ‘희생과 책임’, ‘초월성’을 두루 갖춘 전형적 영웅이다. 우리가 이토록 전형적인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언제나 영웅을 필요로 한다. 세계의 폭력과 갈등 속에서, 자신만의 비범함으로 낡은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영웅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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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독일] <타인의 삶>을 보면서 배우는 정치
<타인의 삶>을 보면서 배우는 정치
- 감시자의 눈으로 본 인간의 본성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국가를 위해 감시하고, 의심하고, 고발한다. 인간의 숨결까지 탐지하려는 국가의 냉혹한 눈, 바로 슈타지의 비밀요원 게어트 비슬러. 그의 존재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듯하지만 정작 인간의 마음은 닫힌 채 살아온 그림자다. 그러나 그가 감시하던 한 예술가 커플의 삶, 그 속의 자유와 사랑은 서서히 그를 흔들게 된다.
이 영화는 감동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역사적 증언이 된다. 배경은 1984년 동베를린. 철의 장막 이편, 동독은 사회주의라는 이념 아래 국가가 개인의 삶을 철저히 지배하던 곳이었다. 슈타지(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국가보안부는 그런 통제의 최전선이었다. 이들은 말 그대로 '국민을 보호하는 척, 국민을 감시한' 조직이었다. 1950년부터 90년까지 존재한 이 기관은 소련의 KGB를 모델로 창설해 서방 세계의 자유주의를 '적대적 사상'이라 규정하고, 이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시민들의 일상까지 침투했다. 이 조직은 이웃, 연인, 가족의 신뢰까지 파괴해버린다.
이 냉혹한 국가 장치는 바로 냉전의 부산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됐다. 서독은 마셜플랜과 NATO의 보호 아래 자유주의 진영의 전진기지가 되었고, 동독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일원이자 소비에트 블록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이념은 경계를 만들었고, 경계는 인간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밀어냈다.
영화 <타인의 삶>은 냉전기의 동베를린이라는 단절된 시간 속에서 감시라는 절대적 권력 아래 무너져 가던 인간성을 기적처럼 다시 일으켜 세운 이야기다. 이 영화는 한 비밀경찰의 ‘변화’나 ‘감동적 회개’를 그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감시라는 구조적 억압이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포위하고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며 그 틈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인간적 연민의 가능성을 직조해간다.
<타인의 삶>이 보여주는 비극은 총성이아닌 침묵 속에서 벌어진다. 그것은 독재가 강요한 '침묵의 사회'며 감시가 개인의 내면까지 잠식한 체제의 결과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은 사람을 위해 변한다. 비슬러는 감시를 중단함으로써 처음으로 누군가의 삶에 진심으로 '참여'한다. 이것이야말로 정치가 놓친 인간의 가능성이다.
동독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붕괴의 길을 걷는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숨겨진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결국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이뤄냈다. 이 통일은 국경이 아니라 체제와 기억, 억압과 저항의 통합이기도 했다.
출처 : 나무위키
이 영화는 국가와 체제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서다. 동독이라는 나라는 소련의 영향 아래 세워진 ‘작은 전체주의’였고, 감시는 단지 정치적 기술이 아닌 일상적 감각이자 언어였다. 믿음은 분해되었고, 관계는 해체되었으며, 침묵은 권력이 되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반도를 생각하게 된다. 독일은 수십 년 간 동서독 정상회담과 베를린 협약 등 정치적 협상을 통해 꾸준히 준비해왔고, 주변국 특히 프랑스의 협력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Asia Paradox’의 그림자 아래 있다. 경제적으로는 상호의존이 깊지만 정치와 안보는 대립의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균열을 극복하지 못한 민족주의, 그리고 '존재론적 안보'에 집착하는 주변국들의 태도는 탈냉전의 기회를 아시아에서는 아직 꽃피우지 못하게 한다. 북한의 핵 위협과 중국의 부상, 미중 체제경쟁과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까지 지금의 동아시아는 냉전의 유산 위에 여전히 군림하는 긴장 상태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어디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까. 혹은 들여다보는 그 순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일 수 있을까? 우리는 체제의 감시자이면서 동시에 양심의 증인이 될 수 있는가?
비즐러는 이 질문에 대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응답한다. 침묵하는 감시자에서 말없이 도운 구원자로의 여정은 곧 인간이 시스템을 넘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변주다.
여전히 감시의 언어가 살아있는 북쪽, 그리고 여전히 분단을 일상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남쪽. 우리는 아직도 역사 속에 머물러 있다. <타인의 삶>이 동독의 폐허 속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양심’의 존재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한반도 분단 현실에서도 중요한 울림을 남긴다. 우리는 언제쯤 타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함께 살아낼 수 있을까?
감시의 균열에서 피어난 양심. 그 서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이제 우리의 서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 가능성을 우리가 믿는다면 언젠가 이 땅에도 장벽이 무너질 수 있으리라
<영화에서 보는 정치> 교양 수업에서의 영화 <타인의 삶>을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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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살과 13살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5월은 푸르른 나무들이 싹을 틔우는 계절이고, 12월은 잎을 거두고 추위를 견디는 계절입니다. 영어권에서는 'May-December'가 5월과 12월의 간극처럼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커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하는데요. 영화 <메이 디셈버>는 관용어를 사용해 제목에서부터 영화의 소재를 내걸고 시작하는 작품입니다. 5월의 남자와 12월의 여자, 그들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요? 그들의 사랑은 정말 '사랑'일까요?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메이 디셈버>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메이 디셈버>는 2024년 3월 13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메이 디셈버
May December
Summary
신문 1면을 장식하며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충격적인 로맨스의 주인공들인 ‘그레이시’와 그보다 23살 어린 남편 ‘조’. 2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영화에서 그레이시를 연기하게 된 인기 배우 ‘엘리자베스’가 캐릭터 연구를 위해 그들의 집에 머물게 된다. 부부의 일상과 사랑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엘리자베스의 시선과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는 그의 잇따른 질문들이 세 사람 사이에 균열을 가져오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나탈리 포트만, 줄리안 무어, 찰스 멜튼
강렬한 스캔들을 둘러싼 세 인물
: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갇힌 사람
이 영화의 'May-December' 커플은 60살이 다 된 아내 '그레이시'와 36살 남편 '조'입니다. 23년 전, 유부녀였던 '그레이시'는 자신이 일하던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자 아들의 친구였던 13살 '조'의 아이를 가집니다. 감옥에서 아이를 출산한 '그레이시'와 '조'의 이야기는 뉴스 1면을 장식하는 희대의 스캔들이 되었죠. 강렬한 그들의 사랑은 이십여 년이 지나 영화화가 결정됐고, 연기 인생의 또 다른 한 획을 그을 작품을 찾던 배우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 역을 맡습니다. <메이 디셈버>는 'May-December' 커플의 이야기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엘리자베스'가 부부의 집을 찾으면서 시작됩니다. 영화는 세 인물을 가까이에서, 또 멀리서 바라볼 수 있도록 시점을 조금씩 바꿔가며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리고 이십 년 전의 스캔들을 중심에 둔 세 사람을 각각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갇힌 사람으로 정의하죠.
말하는 사람은 과거의 스캔들을 '엘리자베스'에게 들려주는 '그레이스'입니다. 당시를 회상하는 '그레이스'에게는 부끄러운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36살 유부녀가 13살 소년과 사랑을 나눠 아이를 가졌는데도, 아들 친구와 바람이 났는데도, 심지어 아들의 생일 전날에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는데도요. 손자와 자식이 같은 날 졸업하는 진 광경의 자리에도 당당하게 '엘리자베스'를 부릅니다. '그레이스'는 진실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더 중요시하는 인물로 비칩니다. 그래서 언제나 태연하고 뻔뻔할 수 있었죠. 그는 자신이 순진한 사람이길 원하고, '엘리자베스'가 자신들의 사랑을 완벽한 사랑으로 보길 원하며, '조'가 영원히 이 관계를 사랑으로 보길 원합니다.
듣는 사람은 완벽한 연기를 위해 부부를 취재하는 '엘리자베스'입니다. 그는 '그레이시'와 '조' 사이에 자리 잡은 진실을 파헤치려고 노력합니다. 이를 빌미로 부부의 과거를 헤집고, 진실에 더 가까운 이야기를 들으려 애쓰죠. 그런데 단순히 취재라고 포장하기에 '엘리자베스'의 취재 여정은 다소 기만적입니다. '그레이시'와 '조'의 딸이 있는 자리에서 "배역을 선택할 때는 '도덕적으로 모호한 인물'에 매력을 느낀다"라고 말하거나, 13살에 '그레이시'를 유혹한 '조'의 매력을 가늠하기 위해 그와 잠자리를 갖는 것도 마다하지 않죠. 어느새 진실 찾기는 핑계가 되고, '엘리자베스'의 눈빛에는 야심만이 이글거립니다.
갇힌 사람은 스캔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어린 남편 '조'입니다. 영화 초반부의 '조'는 공동체의 기억 속에 남은 강렬한 이야기와는 달리 더없이 다정하고 화목한 가정의 가장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상 '조'는 그때 그 이야기 속에서 조금도 크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사람이었죠. "네가 나를 꼬신 거야", "나는 순진해"라는 '그레이시'의 함정에 빠져 죄책감과 부도덕함을 느끼고, 속죄와 책임감을 느끼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자신이 원한 삶이라고 굳게 믿으면서요. 나비의 알을 주워다가 성체로 키워 날려 보내는 것만이 유일한 감정의 배출구였습니다. 이러한 삶을 평화로운 일상으로 여겨왔던 '조'에게 '엘리자베스'의 등장은 균열이었습니다. 진실을 찾는 '엘리자베스'로 인해 마음속 물음표가 떠오른 '조'는 외면해 왔던 진실에 향한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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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모호한 회색의 스펙트럼
영화를 만든 토드 헤인즈 감독은 <메이 디셈버>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한 거대한 거부감"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말했습니다. 세 인물의 공통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 '자기 자신'이라는 진실을 대하는 방식 말입니다. 세 인물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진실을 바라보길 거부합니다. '그레이시'는 원하는 대로만 말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가렸고, '엘리자베스'는 남의 이야기를 파헤침으로써 자기 자신을 덮었으며, '조'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숨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잘못이 있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기꺼이 들여다보려 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가 그랬듯이, 함부로 직시하죠. 이렇듯 세 인물의 도덕성과 옳고 그름에 관해 끝없이 생각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이런 생각에 가닿습니다. 극 중에서 나오는 '도덕의 회색지대'라는 말처럼, 바로 그 검은색도 흰색도 아닌 모호한 회색의 스펙트럼이 곧 인간의 본질이구나.
<메이 디셈버>는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이 인간의 모호함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샘솟는 질문들도 모두 비슷한 철학적 물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 36살 여인은 정말 13살 소년을 사랑했을까?
- 13살 소년은 정말 36살 여인을 사랑했을까?
- 13살 소년을 사랑한 36살 여인의 잘못은 무엇일까?
-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 도덕이 먼저일까, 사랑이 먼저일까?
- 타인의 진실을 향한 '엘리자베스'의 열망은 인간으로서의 도덕인가, 배우로서의 야심인가?
- '엘리자베스'의 선을 넘는 야심과 '그레이시'의 순진한 가면 중 어느 것이 더 부도덕한가?
질문의 답을 고민하다 보면 머릿속은 계속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정확한 답 하나 없이 모호함만이 두둥실 떠다닙니다. '누가 옳은가?', '누가 그른가?', '옳은 사람이 있긴 한가?', '옳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아, 하지만 복잡하고 모호한 인간처럼 흥미로운 것이 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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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디셈버>는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맛을 크게 살렸습니다. 가히 연기 대결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었는데요. 줄리안 무어의 '그레이시'를 완벽하게 내재화해 연기하는 나탈리 포트만의 모습은 그야말로 소름 돋을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조'를 사랑의 감옥에 가두는 '그레이시'의 순진한 얼굴을 그려낸 줄리안 무어의 얼굴은 또 어떻습니까. 여기에 이 작품으로 연기상 21관왕을 휩쓴 찰스 맨튼의 활약도 빼놓으면 섭섭하지요. <리버데일>의 반가운 얼굴을 다시 만나 기뻤습니다. 쉽지 않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그에게 손바닥에 불나도록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One-Liner5월과 12월, 알과 나비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으나, 인간만은 그럴 수 있다고 착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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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션과 스토리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로드하우스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배급사)의 사용 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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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씽2게더> 메인 예고편
대국민 오디션 이후 각자의 자리에서 꿈을 이루고 있는 버스터 문(매튜 맥커너히)과 크루들에게
레드 쇼어 시티에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상 최고의 쇼가 펼쳐진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버스터 문과 크루들은 도전에 나선다.
그러나 최고의 스테이지에 서기 위한 경쟁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하고,
버스터 문은 완벽한 라이브를 위해 종적을 감춘 레전드 뮤지션 클레이(보노)를 캐스팅하겠다는 파격 선언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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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원티드 킬러> 메인 예고편
전설적인 총잡이 ‘빌리 더 키드’(데인 드한)는
미국을 뒤흔든 희대의 현상 수배범으로 쫓기고 있는 상황.
여기에, 자비 없는 추격자 ‘개릿’(에단 호크)까지 합류하며
‘빌리 더 키드’는 벼랑 끝에 내몰려 결국 체포되고 만다.
이에, ‘빌리 더 키드’는 탈옥을 하고자
미국을 향해 선전포고하며 전면전을 감행하는데…
쫓고 쫓기는 무법 질주 액션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