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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정2025-02-15 21:05:40

우리는 모두 한 번 살고 한 번 죽지

영화 <두 사람> 리뷰

SYNOPSIS.

“가장 낯선 곳에서, 가장 깊은 사랑으로”

 파독 간호사로 낯선 나라 독일에 이주한 뒤 지역 사회와 소수자를 위해 목소리 내는 일에 앞장선 ‘수현’. 간호 학교를 졸업하고 신학 연구에 뛰어들며 이주민의 마지막 길을 동행하는 호스피스 리더 ‘인선’.40여 년 전, 재독여신도회에서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 이민 1세대, 이주 노동자, 그리고 레즈비언으로서 서로에게 쉴 곳이 되어주고, 곁에서 여생을 함께하기로 한다. 첫 황혼에서 두 손을 마주 잡은 <두 사람>의 무지갯빛 블루스가 시작됩니다!

 

POINT. 

✔️ 파독 간호사 다시 말해 이민자, 노년의 퀴어 커플.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이들의 이야기 자체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 많은 이야기가 사랑이 가장 화려하게 무르익는 시절을 주목하는 세상에서, 이미 무르익고 단단해져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노년을 맞이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일상 톤으로 담은 이야기는 늘 귀합니다.

✔️ 짧은 다큐멘터리이지만, 더 깊은 사랑과 더 넓은 돌봄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참 아름답습니다.

 

 

 

 

 

 

 

 

 

 

 

 

 

 

 

 

 

 

 

 

 

 

 

 

 

 

 

 

 

영화는 반박지은 감독이 처음 두 사람을 알게 된, 두 사람이 손을 단단히 맞잡은 사진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은 한때 파독 간호사라는 사회적 호칭으로 묶여 불리며 독일에 당도했고, 지금까지도 베를린에 살고 있다. 서로 사랑하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그렇듯 당사자들에게 처음인 오늘을 살뜰히 함께 보내고 있다.

 

모든 삶은 일면적이지 않다. 당연한 소리지만, 우리는 삶에서 다양한 역할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딸로서 존재하는 나, 교실에서 학생으로 있는 나, 직장에서도 상사와 있는 나와 후배와 있는 나는 각각 다르다. 다른 역할, 다른 위치의 면면에서 '소수자성'이라는 말도 이따금 교차한다. 어떤 순간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면서 불편을 경험하지만, 또 어떤 순간 이성애자여서 사회에서 '정상성'으로 규정되어 아무 불편을 못 느끼고 넘어가는 순간도 있다.

 

이민자, 노인, 퀴어. 사회에서 너무 쉽게 배제되고 이따금 논리 없는 혐오의 말조차 쏟아지는 단어들이지만, 이 영화는 두 사람을 이 정체성 안에서 규정하기보다 그냥 "두 사람"인 인선과 수현으로 바라보기를 택한다. 물론 두 사람의 삶에 이 단어들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럼에도 어떤 범주화되는 단어가 아닌, 개인의 삶을 가장 앞에 그려내겠다는 영화의 의지가 분명히 느껴졌다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인지되는 것은 두 사람의 일상 노동이다. 한 명이 요리를 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옷을 다리고 있다. 병에 살뜰히 담긴 피클과, 베를린에서도 콩나물을 준비해 간장에 밥을 비벼 먹는 모습. 둘 중 한 명이 더 강단 있는 성격이라는 점은 이내 드러나지만, 그런 성격의 차이가 노동의 불평등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영화 내내 식사를 준비하고 전등을 고쳐 달고 깃발을 수선하며 두 사람은 일상을 일상답게 만든다.

 

두 사람의 살뜰한 손길은 자신들의 집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은퇴한 간호사의 지식과 실력을 십분 살려 이웃집 노인을 방문해 그의 상처를 돌본다. 타향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방인의 삶을 감지하며,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살피고 돕는다. 이들의 삶의 궤적은 계속해서 돌봄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 공간에는 두 사람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깃든다.

 

 

 

 

 

 

 

 

 

 

 

 

 

두 사람은 서로의 수고를 당연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일일이 알아주고 고마움을 표한다.  마음 같지 않아 서운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의견 차이가 있고, 나는 같이 하고 싶은데 상대는 아닐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마음을 귀엽게 표현할  상대와 끝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 쿨하게 자기  일을 한다.  사람의 삶을 보며, 성숙한 관계의 일면을 어깨 너머 배운다.

 

 사람은 나가서 시위를 하기도 하고, 같이 걷다가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하고, 일을 하기도 하고, 장을 봐서 들어와야겠다며 따로 걷기도 하고, 교회에 따로 가기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집 노인을 함께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더없이 일상적인 이러한 순간들이 영화에서 올망졸망 예쁘게 맺혀 있다고 느껴지는 건,  영화의 영제이기도  unrehearsed life, 누구도 연습이 없이    사는 것임을  사람이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비슷한 하루하루를 적당히 굴리는  아니라, 유일한 하루하루를 알뜰살뜰 채우며 살아가는 것. 그럴  일상은 자연스럽게 돌봄과 온기를 품는다. 보라색 부분이 뜯어진 무지개 깃발을 수선하면서, 빨간색과 파란색 실을 엮어  자리를 메운 세심한 마음처럼. 일상은 이러한 모양이어야 할 것이다.

 

 

 

 

 

 

 

 

 

 

 

 

 

탄생과 죽음 사이, 삶은 하루하루 계속되고 생일은 매년 돌아온다.  안에는 모두에게 비슷하게 흘러가는 일상만 있지 않다. 유럽이고 독일이니까 아무래도 우리 나라보다는 편안하려니 싶지만,  사람의 관계가 미디어의 조명을 받는 것을 여전히 불편해하는 가족이 있고, 손을 잡고 걷는다는 가벼운 행위조차 혹시라도 유별나 보일까봐 조심스러웠던 시간이 있다.

 

아마 영화에 비추어지지 않은,  많은 시간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보면서  많은 이야기가 궁금했다. 호스피스 리더가  만큼 타향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생각하기까지 인선 씨가 어떤 시간을 보내 왔는지.  사람은 교회 신도 모임에서 만났고 지금도 한인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영화에서도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에 많은 번민이 있었음이 암시되는데,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 왔는지. 영화가 주목하지 않기로 결정한 뒷단의 시간들에 대해서도 언젠가  들을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아쉬운 마음도 있다. 일상을 주목하기로 했다 해도,  사람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켜켜이 쌓여야 하는데, 중간중간 당사자들에게는 너무 당연해 관객에게는 듬성듬성 전달되는 정보들이 있었다. 예컨대  사람  파독 간호사인 것도 자료에서 읽은 것이지, 영화만 보면 앞부분에서는    사람은 파독 간호사였고 다른  사람은 남편을  만나 공부만 하던 사람처럼 오독되기 쉽다.  사람이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시선으로 따라가는 장면들은 조금 아쉽긴 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나오는 발걸음이 산뜻했던 것은, "아픈   발라주고 등허리에 로션 발라주"는 이러한 날들을 찬찬히 보여주는 기획 의도가 선명하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과장과 희화화 없이 동성애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에, 숭늉처럼 깊고 산뜻한 이야기는 얼마나 속을 따뜻하게 하는가. 더 많고 다양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한 세상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작성자 . 선이정

출처 . https://brunch.co.kr/@sunnyluvin/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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