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4-10-02 11:18:06
트랜스포머 ONE | 너무 늦게 도착한 이야기의 시작
<트랜스포머 ONE>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이버트론 행성의 지하 광산에서 일하는 '오라이온 팩스'(크리스 헴스워스). 변신도 못 하는 하급 로봇이지만, 그는 오래전 사라진 에너존의 근원인 매트릭스를 찾아내려 한다. 사이버트론의 영웅이 되기 위해서. 그 일환으로 오라이온 팩스는 둘도 없는 절친 'D-16'(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수다쟁이 로봇 'B-127'(키건 마이클 키), 카리스마 넘치는 '엘리타 원'(스칼렛 요한슨)과 함께 출입이 금지된 지상에 도달한다.
그들은 과거 '쿠인테슨'과의 전쟁 이후 지상에 잠들어 있던 프라임, '알파 트라이온'을 찾아내고 그의 도움을 받아 잠재되어 있던 변신 능력을 얻는다. 하지만 빛과 그림자는 함께 따라오는 법. 그들은 사이버트론의 구원자로서 군림하던 '센티널 프라임'이 사실 쿠인테슨과 손잡은 변절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에 오라이온 팩스와 친구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변신 능력과 힘을 살려 센티널과의 전쟁을 개시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고질병
<트랜스포머> 실사영화 시리즈. 10억 달러 돌파 작품을 두 편이나 배출했지만, 눈을 의심케 하는 화려한 CG만큼이나 허점투성이인 스토리텔링으로도 악명 높은 프랜차이즈였다. 특히 마이클 베이가 메가폰을 잡은 첫 5편이 유독 문제였다.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 5편 내내 싸웠지만, 정작 그들이 충돌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 적은 없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렇다. 내전으로 인해 황폐화된 그들의 행성, 사이버트론을 구할 에너지원과 자원이 하필이면 지구에 숨겨져 있었다는 것. 이에 메가트론은 지구를 정복하고 인간을 노예로 부려서 행성을 구하려 하고, 옵티머스 프라임은 메가트론의 욕망을 저지한다. 하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옵티머스 프라임이 메가트론에 반대한다는 것만 보여줬을 뿐, 그가 메가트론을 저지하는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시리즈 내내 옵티머스 프라임의 행적은 다소 억지스럽다. '왜 그에게는 인간의 자유가 사이버트론보다 중요할까?' '대체 옵티머스 프라임에게 자유는 무슨 의미일까?' '인간이 그를 죽이려 하는 데도 그는 왜 인간을 도울까?'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 보니 <트랜스포머> 시리즈만의 볼거리만으로는 관객들의 관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마침내 드러난 근본 원인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트랜스포머 ONE>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실사영화만 본 입장에서는 17년 만에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 갈등을 빚은 근본적인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 둘도 없는 절친, 오라이온 팩스와 D-16는 사이버트론 사회의 최하위 계급이었다. 그들은 행성을 지탱하는 에너지원, 에너존을 채굴하는 광부 로봇으로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였다.
<트랜스포머 ONE>은 그런 그들이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으로 거듭나고, 사이버트론의 영웅으로 알려진 센티넬 프라임의 실체를 깨달은 뒤 그에게 맞서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이 그토록 중시한 자유의 의미가 마침내 드러난다. 노예나 다름없었던 그와 동료들에게 자유는 추상적으로 선한 가치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존을 뒷받침하는 생명력 그 자체였던 것.
더 나아가 옵티머스 프라임에게 자유는 보편적인 가치였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 센티넬 프라임 치하에서는 언제든 폐기될 수 있었던 로봇들이 대우받을 수 있는 원동력도 그들이 직접 쟁취한 자유로부터 나왔으니까. 따라서 옵티머스 프라임이 보기에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살아남아야 했고, 그가 보호해 줄 이유가 충분했다. 설령 그들이 그를 배신하고 공격하더라도.
흥미롭게도 메가트론에게 자유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누구보다도 신뢰했고 경외했던 영웅, 센티넬 프라임에게 배신당한 그에게 생긴 자유의지는 복수와 동의어였다. 자기가 느낀 충격과 분노를 되돌려 줄 수 있는 힘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입장에서 인간은 보호받을 이유가 없다. 그들의 자유의지를 표출하고 지켜낼 힘조차 없는 존재니까. 따라서 그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필연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가치관과 신념의 차이를 보여준 덕분에 <트랜스포머 ONE>은 시리즈 중 가장 몰입도가 뛰어나다. <엑스맨> 시리즈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도 유사하지만,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더 높다. 사실 두 영화는 유사점이 적지 않다.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라는 캐릭터의 관계성도, 두 절친이 적이 되고 각자의 팀을 모아 내전을 벌인다는 이야기도 모두 겹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인상은 사뭇 다르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는 두 주인공의 사연을 더 깊게 알 수 있지만,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를 반복하기에 신선함이 떨어진다. 그에 반해 <트랜스포머 ONE>은 17년 간의 공백을 마침내 채워 넣었기에 더 새롭고, 흥미롭다. 과거 실사 영화에 등장했던 범블비, 재즈, 스타스크림과 쇼크웨이브 같은 오토봇과 디셉티콘을 찾아내는 재미가 더해지기에 더욱 그렇다.
다만 완성도만큼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 미치지 못했다. 억지스러운 전개가 종종 보이기 때문. 특히 오라이온 팩스에 비해 D-16만의 서사가 부족하다 보니 그가 메가트론으로 거듭나는 감정선의 변화는 작위적으로 느껴지기 쉽다. 오라이온 팩스와 D-16가 전쟁 도중 실종된 프라임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를 손에 넣는 경위, 센티넬 프라임과 쿠인테슨의 관계를 알게 되는 과정 역시 다소 기능적으로 제시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단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포머 ONE>의 몰입감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살린 액션 연출이 평이하거나 작위적인 전개를 잊게 만든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실사 영화에 비해 연출과 표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데, <트랜스포머 ONE> 이 장점을 극대화했다. 일례로 공중에서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를 자주 등장시켜 360도로 움직이는 현란한 연출로 관객의 눈을 현혹한다.
또 트랜스포머다운 변신 기능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트랜스포머끼리의 레이스 경기 도중에 신체 일부만 차량으로 변하거나, 전투 도중 차량과 로봇 형태를 빠르게 오가는 식이다. 이는 실사 영화와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실사 작품이 변신하는 과정 그 자체를 하나의 퍼포먼스로 활용했다면, 애니메이션은 변신이라는 기능 자체를 마치 하나의 무기로써 활용하는 듯하다.
액션 외의 볼거리도 인상적이다. 항상 오프닝 시퀀스 배경으로만 잠시 스쳐 지나간 사이버트론의 전경을 구석구석 구경하는 재미가 대표적이다. 물론 애니메이션다운 장점은 그 자체로 단점이 될 여지도 충분하다. 아무래도 <트랜스포머>만의 매력이 덜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전체적인 연출이 가볍고 빠르다 보니 실사 영화에서 맛볼 수 있었던 로봇다운 무게감은 느끼기 어렵다.
너무 늦게 도착한 근본
종합하면 <트랜스포머 ONE>은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 <트랜스포머> 1편 이후로 재미와 완성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리부트 이후로 흥행력도 관심도 예전 같지 않은 현 상황을 타개할 작품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실사 작품에 비해 애니메이션 작품의 소구력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트랜스포머 ONE>은 너무 늦게 도착한 듯 보인다. 탄탄한 이야기와 화려한 액션의 조합은 시리즈에 새 숨결을 불어넣기에 충분했지만, 실사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론조차 되지 않아서 파급력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근본은 마침내 되찾았지만, 조금만 일찍 도착하거나 실사 영화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Acceptable 무난함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되기에는 이미 한계가 명확한 시리즈의 생명력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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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거야" 빈티지 무드 영화 8편을 소개합니다.
낭만이란 배를 타고 떠나갈거야
낭만은 청춘에게도, 어린아이에게도, 중년에게도 있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릿해지는 낭만 가득 + 빈티지 무드 영화 8편을 소개합니다.
버팔로 66
빌리 부모는 그가 감옥에 있었던 사실을 모르고 빌리는 이를 숨기기 위해 ‘라일라’를 납치해
아내 노릇을 해달라고 위협한다. 낯선남자에게 겁을 먹으면서도 매력을 느끼게 되고
빌리 또한 소중한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데
CINEPICK
음악가, 배우, 영화감독을 겸하고 있는 빈센트 갈로 감독의 작품이며 실제로 본인이 출연한 작품입니다.
독립영화중에서 꽤 많이 알려진 팬층이 탄탄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밀레니엄 맘보
비키는 집착하고 하는일 없이 빈둥대는 그녀의 남자친구 하오하오에게서 벗어나고싶어한다.
몇 번이고 떠나려 하지만 그의 애원으로 다시 주저앉고, 우연히 클럽에서 알게 된 잭이
하오하오에게 벗어나도록 도와주려하는데
CINEPICK
대만의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허우샤오시엔 거장 감독의 영화이며 허우샤오 시엔 감독이 "요즘 젊은이들이 속한 세상은 굉장히 빠르다. 그들은 끊임없이 변하는 시간 속을 살아간다.그들에게 젊음은 피자마자 시들어 버리는 꽃과 같다.< 밀레니엄 맘보>는 시간을 통해 그 젊음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해피 투게더
홍콩을 떠나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보영’과 ‘아휘’ 이과수 폭포를 찾아가던 중
두 사람은 사소한 다툼 끝에 이별했다가 다시만나지만 보영의 변심이 두려운 아휘와
아휘의 구속이 견디기 힘든 보영은 다시 틀어지는데
CINEPICK
90년대 영화의 아이콘인 왕가위 감독의 작품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허무, 고독의 주제를 다룬 로맨스, 드라마 영화들을 주로 연출하고, 각본도 집필했습니다. 독특한 영상미로 90년대 중후반에 엄청난 붐을 일으켰으며 스탭프린팅 기법으로 "기억에 관한 예술"을 만들어낸 감독입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자기가 싸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소녀 ‘영군’이 정신병원에 들어온다.
싸이보그는 밥을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점점 야위어만 가는 영군을 위해 일순은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한다. 싸이보그가 고장 나면 언제든지 달려가겠다며 ‘평생 AS 보장’을
약속하는 일순과, 싸이보그는 그러면 안되지만 일순 때문에 자꾸 맘이 설레는 영군.
CINEPICK
흥행에 실패하고, 작품성에 대한 평가도 갈리지만, 이 작품에서 임수정이 보여준 연기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임수정에게 연기파 배우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준 작품입니다. 박찬욱 감독님이 딸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쉘브르의 우산
프랑스 작은 항구도시 쉘부르, ‘쥬느비에브’와 ‘기’는 사랑에 빠진다.
팍팍한 현실과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어린 연인들.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의 군 입대로 둘은 원치 않은 이별을 하게 되는데…
CINEPICK
라라랜드에 큰 영향을 준 작품이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등장인물의 모든 대사가 노래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색에 가까운 파스텔톤의 색채로 아름답게 스크린에 담아내었습니다. 또한 크리스찬 디올에서 모든 의상을 맡은걸로도 유명합니다.
바그다드 카페
황량한 사막 아래 ‘바그다드 카페’ 남편을 쫓아낸 카페 주인 ‘브렌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육중한 몸매의 ‘야스민’ 둘은 서로가 낯설지만 어느새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해가고,
두사람의 행복한 시간이 카페에 깃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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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려낸 영화로 페미니즘 영화로도 명작이지만 영화 자체로도 명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시애틀 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물두 살 엄마와 매직 캐슬이라는 월트 디즈니 월드 근처의 모텔에서 살고 있는 무니.
조숙한 여섯 살 무니와 그녀의 천방지축 친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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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독립 영화 감독 중 하나인 션 베이커가 연출했으며, 영화 속 배경 그대로 비현실적인 느낌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미국 빈민층의 현실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현실적인 드라마다.
"난 늘 그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왔는데, 사람들은 고독해지면
똑같다는 걸 깨달았다." -해피투게더-
잊지못할 추억들, 아 낭만이었다요번주 폭염 조심하시구요. 다음주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큐레이터 AMY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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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발만 멀쩡하면 살 수 있어
이 글은 영화 [미나리],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무 모양조차 다르고, 잔디조차 다르고.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처음 외국, 그러니까 영국 공항에 내렸을 때가 기억납니다.
마음 가득 꿈뿐만 아니라 걱정도 함께 쑤셔 넣는 바람에 두 마음이 싸우느라 울렁거리는 속을 끌어안고 싸늘한 공항에, 캐리어 두 개와 함께 한참 동안이나 덩그러니 서 있어야 했죠. 그 와중에도 영국의 스타벅스는 또 어떤 맛인가 싶어 들어간 공항 커피숍에서 인생의 흑 역사를 하나 더 얻고, (참고 1) 기가 많이 꺾인 상태에서 제 픽업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그때의 제 위치였습니다.
픽업하러 온 훈훈하게 생긴 청년은 제 짐을 트렁크에 싣고는 제게 웃으며 운전석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얘는 보자마자 차를 맡기네. 내일은 결혼하자 그러려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어째서) 영국은 운전석의 방향이 반대였죠.
난생처음으로 외국에 나와 연타로 흑역사들을 호로록 만든 제게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마저도 낯설기만 했습니다. 나무의 모습도, 공기도. 풍경도. 하다못해 젖소마저도 생긴 것이 달랐죠. 이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하는구나. 앞으로 최소한 6개월 동안은.이라는 생각에 울컥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꾹꾹 삼켰지만.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아 그저 콘크리트 덩어리 같기만 한 집에 도착한 순간 저는 결국 현관에서 무너져 내렸었습니다.
아마 한예리(모니카)가 남편이 약속했던 곳과 너무도 달랐던 집을 보았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을 겁니다. 울고 싶고 속상하고. 그런데도 아이들이 앞에서 보고 있으니 당장 싸울 수는 없는. 이 낯선 곳이 주는 생소함과 남편에 대한 서운함에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는 한예리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제게는 이미 여기서부터 내적 오열 포인트가 시작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처럼 집 떠나면 모든 것이 서러운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영화 [미나리]는 세밀하게, 그리고 잔잔하게 우리에게 풀어냅니다. 너무 사실적이라 아프기까지 해서 눈을 감고 싶어버리기까지 했던 이야기들을 담은 영화였습니다.
남이 보기엔 웃프기만 한 고단한 이민자들의 이야기
겪어 본 사람은 아는 디테일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사진 출처:구글 조선일보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울음을 터뜨렸던 장면은, 딸 한예리(모니카)에게 비닐봉지 한가득 싼 멸치와 고춧가루를 건네는 윤여정(순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요샌 밀폐용기도 좋은 게 참 많이 나오는데, 세련되지 못하게 꼬깃꼬깃한 하늘색 비닐봉지 한가득 담긴 그 보물들을 아무렇지 않게 모니카에게 내밀죠. 밀폐 용기 무게라도 더 줄여 조금이라도 더 담아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다섯 개의 비닐봉지로 한국에서 날아온 그 정성을 보며 오열했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참고 2)
가족 사이에 생긴 불화로 인해 아이들을 훈육하는 장면 역시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부부의 아이들은 이미 한국어보다도 영어에 익숙해 보이는데 제이콥(스티븐 연)은 회초리를 가지고 오라고 하죠. 이미 할머니에게서 한국 냄새가 난다며 자신과의 이질감이 얼마나 큰 지를 깨달은 어린 아들 데이빗이 아무 말 없이 회초리를 가지고 오는 장면에서 이들의 삶이 얼마나 보기 좋게 뒤죽박죽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이 가족의 모습이야말로 미국 사회에서 그들이 겨우겨우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엉망진창인 채로 사는 모습이 영화 내내 우리를 웃게도, 또 울게도 합니다.
농사, 수탉, 미나리.
포기하지 못하는 것, 쓸모 없어지지 않으려는 노력.
사진출처:SBS/수도꼭지 꽂을 때 진짜 어휴.
가장이지만 제이콥은 미련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로 농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부인 모니카마저도 고개를 저을 정도죠. 그것이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온 소망이었다.라는 말로 치부하기엔 가장 소중한 가족마저도 뒷전으로 미루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어떤 배경 때문에 그런 집착을 보이는지도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직업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옵니다.
제이콥은 솜씨 좋고 잘 훈련된 병아리 (성별) 감별사입니다. 십 년이 넘게 일해온 커리어 덕에 버칸소에서도 칭찬받고, 아내에게도 전수한 듯 보입니다.
암탉은 알을 낳기 때문에 "상품 가치"가 있어 살려두지만, 수탉은 그렇지 않아 병아리인 상태에서 그대로 소각장으로 가게 됩니다. 그것을 십여 년이 넘게 보아온 제이콥은 양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익숙하죠. 하지만 어린 아들에겐 단지 저 연기가 무엇인지 물었을 뿐인데 쓸모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완벽히 이해될 리가 없죠 .그런 아들에게, 제이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쓸모 있는 수컷이어야 한다.
정확한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실패한 모습만 보인, 쓸모없는 수탉 같기만 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마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쓸모"에 대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또 다른 "쓸모"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농사의 성공 유무였겠죠.
그러나 이 영화가 제이콥의 농사에만 모든 초점을 맞췄다면 이 영화의 제목은 농사였거나 제이콥 포레스트였거나, 혹은 제이콥의 동물의 숲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미나리.이고 그것이 바로 당시에 제이콥이 놓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자신들은 이미 충분히 미나리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죠.
물만 있으면 더러운 물이라도 상관없이 뿌리를 내리는 미나리. 씨가 있어도 자랄 수 있지만 튼튼한 줄기만 있어도 꺾어 심으면 잘 자라는 미나리.
반드시 농사를 성공해야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닌,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대도시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가 아니어도, 이미 충분히 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을 영화의 마지막에서야 겨우 받아들인 제이콥은 아들과 함께 묵묵하게 미나리를 땁니다. 마치 자신들처럼 엉망진창인 채로 자라고 있지만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장하고 맛있어 보이는 미나리를 말입니다. 그 시간 동안 제이콥의 머릿속에서 " 쓸모"라는 단어가 재정비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엔딩 요정, 윤여정 배우
윤여정 유니버스의 시작
사진출처:상상대로 이뤄지는 꿈/ 이 장면이 오버랩 된다.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실 스티븐 연의 경우가 제일 걱정이었습니다. 한국어로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컸는데 오히려 영어를 어눌하게 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공을 들였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딜 가나 남들 걱정하지 말고 저만 잘 하면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소싯적에는 연기가 아닌 배우들의 허우대만 보았습니다. 그러니 잘생기고 신체 조건이 좋은 배우들을 보며 제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죠. 이젠 제 마음을 울리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에게 제 지갑과 시간을 갖다 바치고 있지만, 그런 관심조차 "이미 나이가 든" 배우들에게는 많이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윤여정 배우는 이 영화로 인해 내가 너무도 좁은 측면에서 배우들을 바라보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손자의 말처럼 할머니 같지 않은 철없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이 기분 좋은 불청객은 손자의 마음도 돌리고 우리의 마음마저도 쓸모를 찾느라 밖으로만 내도는 제이콥을 대신해 영화의 초점조차 가족으로 구심점을 잡아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이 배우의 또 다른 영화인 [지푸라기라고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까지 합니다. 불에 타버린 자신의 전부인 집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오열하는 아들 배성우 배우를 보며 치매 걸린 어머니인 윤여정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아들의 등을 쓰다듬습니다. 손발만 멀쩡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단다.라는 말을 무덤덤하게 읊조리면서요.
마치 [미나리] 영화의 포인트를 이미 대사로 다른 영화에서 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꼴 보기 싫거나 거슬리지 않죠. 오히려 윤여정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단 한 번의 사고로 인해 다시 영화의 처음과 같은 사정으로 돌아가 버린 가족들을 조용히 쳐다보는 엄마 순자의 시선이기에 더더욱 말입니다.
마지막의 비참함을 영화는 끝까지 따라가며 비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침묵하고 툴툴 터는 또 다른 시작을 보여주죠. 아마 순자도 알았을 것입니다. 이 사고 때문에 아예 맨땅에서 다시 시작을 또 한 번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딸 부부가, 그리고 자신도 잘 해낼 것이란 걸 말입니다. 그들이 다시 겪을 고통에 가슴이 아파 흘린 눈물이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그게 부모가 자식을 보며 갖는 마음일 테지요.
가족애 역시 이 영화의 다른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단지 작정한 것처럼 이야기 안에 집어넣으려고 하지 않죠. 그러나 결국 힘들 때 자신이 기대야 하는 것은 가족이고, 가장 힘들고 절체 절명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결국 생각나는 것이 가족이란 메시지를 참 절묘하게 집어넣었습니다.
함께 있으면 지옥 같을 수 있지만. 떨어져 있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인 가족. 그들과 함께 질척이는 땅에서도 미나리처럼 꿋꿋하게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일상인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윤여정 배우의 여우조연상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어요.
참고 1
아이엘츠 점수가 each 7.0인가 했을 때여서 자신감이 눈썹까지 차 있을 때였음. 공항 스타벅스로 가서 Can I have iced americano, tall size with extra ice to stay, plz?라고 했고, OK라는 말을 들었음. 당당하게 영어 이름을 말하고 결제를 하려고 했는데 Black or white?라고 묻는 거임. 그래서 뭐래 아메리카노 달라고.라고 했더니 그래 인마 블랙이야 화이트야.라고 묻는 거임. 이걸 한 세 번 반복하고 나니 직원이 웃으며 설명해 줬음. 우리가 원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반드시 블랙이어야 함. white는 아님. 아니라고. 아니라고요.
참고 2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영국에서 한국으로 보내는 택배 비용이 그 당시에 1킬로다 1만 원이었음. 그래서 너무 비싸니 정말 없는 것들만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엄마가 무게 줄인다고 모두 비닐봉지에 싸서 보내줬었음. 터질까 싶어 꽁꽁 묶은 비닐봉지에 싸인 고춧가루와 기타 등등을 보면서 울고 울고 또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 글의 TMI]
1. 영화 보며 마시려고 커피를 샀는데 진짜 핵노맛이었음. 하. 내 돈
2. 휴지 가지고 가세요. 꽤 울 수 있어요.
3. 패딩 드디어 찾았음. 세탁소 주인분도 드디어 오셨군요.라고 하셔서 빵 터짐.
4. 오늘도 만오천보 걸었다. 이러다 지구 횡단할 기세.
5. 내일 첫 번째 팟캐 녹음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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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격 비교! 넷플릭스 vs 왓챠 장르별 추천작
추적추적 비도 오고 우울한 요즘,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우울함을 달래고 계시나요?
'영화'만큼 집에서 우울함을 달래줄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여러분! 넷플릭스/왓챠 중 하나만 구독하고 있나요? 혹은 넷플릭스/왓챠 중 어떤 걸 구독해야 할지 고민중이신가요?
여러분들을 위해 씨네랩이 장르별 추천작을 가지고 왔습니다.
넷플릭스에만 있는 영화! 왓챠에만 있는 영화! 함께 보시죠!
1. 멜로 / 로맨스
Netflix
▶ 8월의 크리스마스 Christmas In August (1998) - 허진호
"좋아하는 남자 친구 없어요?" 그 남자 l 한석규
변두리 사진관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정원’.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이고 가족, 친구들과 담담한 이별을 준비하던 어느 날, 주차단속요원 '다림'을 만나게 되고 차츰 평온했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저씨, 왜 나만 보면 웃어요?" 그 여자 l 심은하
밝고 씩씩하지만 무료한 일상에 지쳐가던 스무 살 주차 단속요원 '다림'.
단속차량 사진의 필름을 맡기기 위해 드나들던 사진관의 주인 '정원'에게 어느새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 synopsis
Watcha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2000) - 왕가위
같은 날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온 ‘첸 부인’과 ‘차우’.
이사 첫날부터 자주 마주치던 두 사람은 ‘차우’의 넥타이와 ‘첸 부인’의 가방이 각자 배우자의 것과 똑같음을 깨닫고 그들의 관계를 눈치챈다.
그 관계의 시작이 궁금해진 두 사람은 비밀스러운 만남을 이어가고 감정이 깊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서로에게 점점 빠져들기 시작한다.
"많은 일이 나도 모르게 시작되죠"
<화양연화> synopsis
2. 스릴러
Netflix
▶ 콜 The Call (2020) - 이충현
거기 지금 몇 년도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서연’(박신혜). 집에 있던 낡은 전화기를 연결했다가 ‘영숙’(전종서)이란 이름의 낯선 여자와 전화를 하게 된다.‘서연’은 ‘영숙’이 20년 전, 같은 집에 살았던 사람이란 사실을 깨닫고 그때부터 두 사람은 우정을 쌓아간다. "내가 말했지, 함부로 전화 끊지 말라고.” 그러던 어느 날, ‘서연’과 ‘영숙’은 각자의 현재에서 서로의 인생을 바꿀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20년 전 죽은 ‘서연’의 아빠를 살려주고, ‘서연’은 ‘영숙’의 미래를 알려준 것. 그러나 자신의 끔찍한 미래를 알게 된 ‘영숙’이 예상치 못한 폭주를 하면서 ‘서연’을 위협하기 시작하는데…!
금기를 깨버린 전화 한 통.
살인마가 눈을 뜬다.
<콜> synopsis
Watcha
▶나를 찾아줘 Gone Girl (2014) - 데이빗 핀처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가는 완벽한 커플 닉&에이미. 5주년 결혼기념일 아침, 에이미가 흔적도 없이 실종된다. 유년시절 어린이 동화 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 여주인공이었던 유명인사 아내가 사라지자, 세상은 그녀의 실종사건으로 떠들썩해진다. 한편 경찰은, 에이미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숨겨뒀던 편지와 함께 곳곳에서 드러나는 단서들로 남편 닉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미디어들이 살인 용의자 닉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기 시작하고, 시간이 갈수록 세상의 관심이 그에게 더욱 집중된다.
과연 닉은 아내를 죽였을까? 진실은 무엇일까?
<나를 찾아줘> synopsis
3. 코미디
Netflix
▶ 좀비랜드 Zombieland (2009) - 루벤 플레셔
좀비가 우글대는 세상.
조심성 많은 외톨이가 부모의 생사를 확인하러 고향으로 향한다.
그러다 터프가이, 사기꾼 자매를 만나 좀비가 없단 곳으로 동행을 시작하는데.
텍사스에서 LA를 향해, 괴짜 일행 나가신다!
좀비들아, 길을 비켜라!
<좀비랜드> sysnopsis
Watcha
▶쉬즈 더 맨 She's The Man (2006) - 앤디 픽맨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쌍둥이 오빠 세바스찬 행세를 하기로 결심한 바이올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세바스찬으로 변신한 바이올라는 남자 기숙사 잠입에 성공한다.
점점 룸메이트 듀크가 남자로 느껴진다.
그러나 듀크가 좋아하는 학교 퀸카 올리비아는 엉뚱하게도 바이로라가 남자인 줄 알고 좋아하게 되고 듀크는 올리비아와 데이트하기 위해 바이올라의 도움을 청한다. 과연 듀크와 바이올라, 올리비아와 세바스찬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될 것인가?
<쉬즈 더 맨> synopsis
4. 액션
Netflix
▶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Kingsman : The Secret Service (2015) - 매튜 본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면접이 시작된다!
높은 IQ, 주니어 체조대회 2년 연속 우승!
그러나 학교 중퇴, 해병대 중도 하차. 동네 패싸움에 직장은 가져본 적도 없이 별 볼 일 없는 루저로 낙인찍혔던 ‘그’가‘젠틀맨 스파이’로 전격 스카우트됐다! 전설적 베테랑 요원 해리 하트(콜린 퍼스)는 경찰서에 구치된 에그시(태런 애거튼)를 구제한다.
탁월한 잠재력을 알아본 그는 에그시를 전설적 국제 비밀정보기구 ‘킹스맨’ 면접에 참여시킨다. 아버지 또한 ‘킹스맨’의 촉망받는 요원이었으나 해리 하트를 살리기 위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에그시. 목숨을 앗아갈 만큼 위험천만한 훈련을 통과해야 하는 킹스맨 후보들. 최종 멤버 발탁을 눈 앞에 둔 에그시는 최고의 악당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을 마주하게 되는데…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synopsis
Watcha
▶킬빌 Kill Bill (2003) - 쿠엔틴 타란티노
어느 한적한 오후, 행복한 결혼식을 앞둔 '더 브라이드'와 그녀의 신랑, 그리고 모든 하객들이 의문의 조직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피로 얼룩져 결혼식장은 아수라장이 되는데.. 그로부터 5년 후, 코마 상태의 '더 브라이드'는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어렵게 깨어난다. 그리고 피로 얼룩진 과거가 그녀의 뇌리에 스치면서 서서히 복수의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더 브라이드'는 전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살인조직 '데들리 바이퍼스'의 일원이었고, 조직의 보스인 '빌'을 포함한 5명의 일원이 그녀를 처참하게 무너뜨렸음이 밝혀지자, 그녀는 텍사스, LA, 멕시코, 중국, 일본을 차럐로 방문하며 가장 잔인한 복수를 실행하게 되는데..
<킬빌> synopsis
5. SF
Netflix
▶ 스토어웨이 Stowaway (2021) - 조 페나
3인의 대원이 우주선에 몸을 싣고 화성을 떠난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그 여정에 합류한 네 번째 승객.
이제 모두의 생명이 위험하다.
그들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스토어웨이> synopsis
Watcha
▶ 에이 아이 A.I Artificial Intelligence (2001) - 스티븐 스필버그
어느 먼 미래, 하비 박사에 의해 감정을 가진 최초의 인조인간으로 태어난 데이비드. 엄마가 들려준 피노키오 동화를 떠올리며 진짜 인간이 되어 잃어버린 엄마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이빗은 자신의 친구, 보호자, 장난감인 테디 베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도중에 만난 남자 로봇 지골로 조가 데이빗과 동행하고 두 사이보그는 힘겨운 여정을 거치며 수몰된 멘하탄까지 찾아가지만..
<에이 아이> synopsis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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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딩드레스로부터 도망가기
결혼식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신부의 웨딩드레스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그리고 결코 빠지지 않는 장면이 그 드레스가 어떤 드레스인지 설명하는 장면이다. 유명 브랜드의 신상 드레스라거나(ex.<신부들의 전쟁>), 유명한 디자이너가 주인공만을 위해 디자인한 드레스라거나(ex.<섹스 앤 더 시티>).. 제니퍼 로페즈의 신작 영화 <샷건 웨딩>에서도 어김없이 드레스가 주인공이 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달시(제니퍼 로페즈 분)가 필리핀의 한 섬에서 치르는 결혼식에서 입는 드레스는 신랑 톰(조쉬 더하멜 분)의 가족에게서 전통적으로 물려 내려온 드레스다. 설정 덕분에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이 웨딩 드레스는 달시의 행동을 영화 내내 제약하는 장애물이다. 애초에 본인이 고른 것도 아닌, 신랑의 가족에게서 받은 드레스라는 점부터 이 웨딩 드레스는 달시에게 작용할 가부장제를 비유한다. 신랑의 어머니 캐롤(제니퍼 쿨리지 분)에 따르면 이 드레스는 캐롤이 입었고, 신랑의 동생인 지니가 이어서 입었다. 달시의 웨딩드레스는 달시를 숨도 쉬기 힘들 만큼 조이면서 캐롤과 지니가 겪었고, 겪고 있으며, 겪어야 할 가족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대놓고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달시의 결혼식은 인질극으로 변모한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톰과 설전을 벌인 후 혼자 신부대기실에 돌아온 달시는 과자를 먹으며 어떻게든 웨딩드레스를 벗으려 애쓴다. 말 그대로 숨쉬기 힘들 만큼 조여오는 웨딩드레스의 코르셋은 달시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톰조차 이 드레스를 벗기지 못한다는 점인데, 와중에 톰은 드레스의 불편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달시에게 주어질 여성으로서의 역할은 달시의 숨통을 조이지만 톰에게는 당연한 것이며, 달시가 호흡 곤란을 호소함에도 원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눈 앞에 문자 그대로 생명의 위협이 다가와도 달시는 드레스로부터 탈출하지 못하는데 이는 톰과의 설전에서 집어던진 결혼반지와 상반된다. 달시는 쉽게 반지를 뽑아 톰에게 던지지만 톰은 가볍게 잡아내며 결국에는 그 반지를 달시에게 도로 끼우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도 달시는 드레스에서 온전히 탈출하지 못하는데, 이는 아무리 달시가 발버둥쳐도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사하는지도 모른다.
톰과 함께 해적에게 발각된 달시는 결국 같이 손목을 묶이는 신세가 된다. 반지를 집어던지고도 톰에게서 달아나지 못한 달시는 결국 드레스를 입은 채 톰과 함께 도망다니기 시작하는데,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이 모든 것을 가부장제의 비유로 본다면 무시무시한 장면이다. 편한 바지를 입은 톰은 도망다니면서도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다. 하지만 달시의 드레스는 계속해서 찢어지고, 달시의 머리에 얹어진 비싼 가발은 달시가 달리기 어렵게 만든다. 결국 가발을 벗어던지면서도 비싸다는 이유로 버리지 못하고 톰의 주머니에 쑤셔넣는 달시는 종국에 그 가발이 구원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톰이라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다. 아마도 불편한 구두를 신고 있었을 달시는 어느 순간 맨발이 되고, 결국 해적에게서 부츠를 벗겨내 신지만 드레스로부터는 여전히 도망치지 못한다.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달시의 드레스는 영화 내내 제니퍼 로페즈의 신체를 눈요깃감으로 활용하는 도구로 변모하고, 카메라는 노골적으로 드레스의 가슴선 위로 로페즈를 잡아 관객으로 하여금 로페즈의 나신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부엌에서 해적의 공격을 막아내던 톰과 달시는 자신들을 묶고 있던 끈을 끊어내는 데 성공하지만 톰의 출혈을 수반하게 되고, 이는 톰의 신체적 약화로 이어지는 대신 달시의 약점(기절)을 드러내는 데 사용된다. 가부장제의 미약한 상징으로부터 탈출하면서도 달시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신체적인 자유를 얻는 대신 혼절하여 무방비로 노출되고, 톰의 도움이 없이는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비유된다. 이전 장면에서 용감하게 짚라인을 타고 수류탄을 적기에 던져 해적을 물리친 달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인 것을 감안하면 이 장면이 상징하는 바는 다소 노골적이다. 톰은 달시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가부장제에 속박하기 위해 해적을 물리치며, 이 과정에서 약간의 출혈 정도는 감내한다. 달시는 결국 드레스의 일부를 찢어내지만 온전히 달아나지는 못하고, 결국 톰과 함께 가부장 그 자체를 상징하는 양가 가족들과 하객을 구하기 위해 풀장으로 돌아온다.
영화 내내 달시는 단곗수가 적은 계획을, 톰은 단곗수가 많은 계획을 선호하는 양상을 보인다. 달시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입는 데도, 벗는 데도 많은 단계를 요구하는 데다 드레스 이외에도 머리와 화장 등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달시가 단순한 계획을 선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결혼식에서조차 신랑에 비해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는 신부인 달시는 나머지 계획은 단순하길 바랄 수밖에 없다. 반면 탈착이 자유로운 정장을 입은 톰은 단순해 보이는 자신의 역할이 단조롭다고 느낀다. 또한 복잡한 단계를 거쳐 가부장제 속으로 달시를 끌어들여야만 달시가 쉽게 떠나지 않을 것임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마치 단순한 계획을 선호하던 달시가 진정한 사랑을 만나 계획의 단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주지만, 실상은 단계가 몇이든 이미 가부장의 덫에 걸려든 달시에게 필요한 계획은 단 한 단계뿐인지도 모른다. 결혼을 포기하고 웨딩드레스를 벗어던지는 것이다.
마침내 풀장에 도달한 톰과 달시는 그 곳에서 놀랍게도 결혼의 실체를 목격한다. 이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결혼이 모두 이상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를 상처입히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달시와 톰은 결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달시는 해적을 처단하는 영광마저 야구선수인 톰에게 돌린다. 아무도 보지 못할 때에는 적재적소에 수류탄을 던졌던 달시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는 수류탄을 톰이 쳐내도록 던지는 장면은 결혼제도 안에서 모든 영광은 신랑을 향할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바다 위로 가서야 톰과 달시는 그나마 동등하게 마지막 적과 겨룰 수 있게 되지만 목격자는 본인들과 망자뿐이다.
헐리웃에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웨딩 로맨틱 코미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며 이성연애를 찬양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세지들을 읽어내는 관객이 있다면 언젠가 웨딩드레스는 폐기될지도 모른다. 다 찢고서야, 그리고 해적의 부츠를 빼앗아 신고서야 해변을 자유롭게 달리는 달시의 모습은 결혼식이라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은 여성의 희생을 은유적으로 보여주지만 읽어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 이미지 출처는 모두 다음 영화입니다.
* 본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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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 모든 금쪽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시청각교재!
이 영화를 우리 아이들에게 바칩니다. 우린 너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오은영 박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 문구는 <인사이드 아웃 2>의 엔딩크레딧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제작진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 같은 이 문구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13살 사춘기에 접어든 라일리의 변화와 성장을 다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복잡다단한 감정에 사로잡혀 사는 10대는 물론, 그 시절을 관통했던 것을 잠시 잊고 올바르다고 생각한 방향으로 아이들의 자아를 만들려는 어른들의 그릇된 마음이 담겨 있다. 중요한 건 애나 어른이나 모두 보듬어 준다는 것. 그래서 눈물이 나고,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사춘기 가족에게 이 영화를 바치고 싶다.
세월은 참 빠르다. 고향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지 못해 힘들었던 라일리가 벌써 13살이 되었으니 말이다. 13이란 숫자는 즉, 사춘기가 왔다는 것!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은 라일리의 소중한 감정과 좋은 기억만 담기 위해 노력하고, 기쁨이는 매일 안 좋은 기억 구슬을 먼 곳을 보내는 일까지 도맡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에게 뜻밖의 친구들이 등장한다. ‘불안’, ‘부럽’, ‘따분’, ‘당황’이 그 주인공. 예상했듯 이들은 한 팀이 되지 못하고, 이 중 기쁨이와 불안이는 서로 대립만 한다.
<인사이드 아웃 2>는 기존 감정들과 새로운 감정들이 대립하다가 정신적으로 위험에 처한 라일리를 구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모험을 그린다. 전편의 수장이었던 피트 닥터의 바통을 받은 켈시 만 감독은 전편의 장점을 오롯이 이어받고, 여기에 확장성을 더한다. 극 중 라일리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는 설정과 더불어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그 안에서 사회관계망을 넓히는 등 내외적으로 세계관을 넓혔다. 성장의 폭과 감정의 수가 비례한다는 기준 아래, ‘불안’, ‘부럽’, ‘따분’, ‘당황’이란 새로운 감정들이 대거 투입되는데 그 중심에는 불안이가 있다.
온전히 나의 감정에 충실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사춘기에 접어들면 불안, 자신감 결여, 타인의 시선, 외로움 등 기쁨보다 슬픔의 영역에 가까운 감정들이 마구마구 생겨나기 마련. 전편에서 슬픔의 우울한 기운을 어떻게든 배제하려는 기쁨이처럼, 불안이 또한 그 어둠의 영역이 라일리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자신의 계획을 무리하게 밀어붙인다. 이에 희생양은 기존 5가지 감정들인 셈.
하지만 전편의 기쁨이가 그렇듯 불안이 또한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진전되는 라일리의 모습에 당황한다. 점점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듯, 불안이의 멋들어진(?) 계획은 실행하면 할수록 라일리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점점 악화되는 라일리의 모습은 청소년들의 불안장애 과정이 이렇게 진행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은 물론, 그 시기를 지나온 이들에게는 안쓰러움까지 전한다.
기쁨이 또한 혼란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올바른 자아를 만들기 위해 나쁜 기억을 저 먼 곳으로 날려버린 기쁨이는 이 사태를 겪고, 자기 잘못을 깨닫는다. 하나의 자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꼭 좋은 기억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것. 더불어 한 사람의 자아는 감정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에 의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내외적으로 기쁨이와 라일리의 성장통을 잘 그린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자식을 둔 부모라면 마음이 뜨끔해진다. 이 작품의 프로듀서인 마크 닐슨은 한 인터뷰에서 “라일리의 감정뿐만 아니라 부모로서 10대를 바라보는 시각도 녹였는데, 특히 기쁨이를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기쁨이에게서 육아 예능 <요즘 육아 금쪽 같은 내 새끼>에 출연한 부모의 모습이 겹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부모 관객이라면 기쁨이를 보며 자식을 위해서 컨트롤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행동 자체가 되레 악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지라는 반성 어린 생각을 할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답이 아니라는 것, 부족한 것을 숨기지 않고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이 영화는 묵직하게 던진다.
후반부 모든 갈등 요소가 해소되는 장면은 사춘기를 관통하고 있는, 관통했던 모든 이들의 눈물 버튼이 된다. 특히 괜찮은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친구들 무리에 들어가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지난날의 과거,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이 노력이 현재진행형인 이들에게 이 작품은 그 자체가 작은 위로를 전한다.
켈시 만 감독은 이 영화에 접근할 때 속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아쉽게도 전편의 아우라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전반적인 갈등, 해결 과정이 전편과 비슷하게 흘러가 설정에 따른 신선함과 개성은 떨어진다. 그럼에도 관객의 기억에 침투해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 이를 바탕으로 감동을 전하는 픽사의 장점은 이번에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춘기 자녀를 둔 가족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덧붙이는 말: 극 중 라일리도, 까칠이도 마음을 빼앗긴 이가 있었의니 바로 ‘랜스’다. 라일리가 즐겨하는 게임 캐릭터인데, 허당미가 장난 아니다. 필살기 또한 너무 매력적이라고 할까. 전편의 빙봉처럼 감동적인 장면을 선사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진중함과 코믹함이 믹스된 씬스틸러로 제 몫을 한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이동욱이 이 캐릭터의 목소리 연기를 책임지고 있다. 궁금하면 더빙판으로~~
사진 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평점: 3.5 /5.0
한줄평: 이 세상 모든 금쪽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시청각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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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이 기지개를 켜다 말고 갑자기 퇴근한다면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형제 페드로(에지킬 로드리게스)와 지미(데미안 살로몬)이다. 살인사건을 추적하고 있던 형제. 맨 정신으로 볼 수 없는 시체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잔혹하게 살해된 시체에 경악하는 형제. 형제는 연이은 살인사건의 원인을 찾아보기로 한다. 멀리 가지 않아 도착한 결론. 마을 안에 악령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본거지로 찾아가 보기로 한다. 한 할머니의 집에 찾아간 형제. 노인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악령에 씐 채로 썩어가고 있었다. 끔찍한 모습. 형제는 노인의 아들 우리엘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한다. 하지만 악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퇴장하지 않는다. 금기를 어기는 사람들 때문에 서서히 봉인이 풀린다. 서서히, 그리고 잔혹한 지옥도가 형제를 기다리고 있다.
진짜 도사리고 있을 때
이 영화에서 잔인한 장면을 활용하기 위해 사용된 연출방식은 흥미로웠다. 전면에 나타나는 것은 템포조절이었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끔찍한 장면이 나타나는 데 있어 규칙이 없다. 카메라가 영화의 배경을 멀리서 찍는다. 시점쇼트로 형제의 관점이 영화의 카메라가 된다. 여기서 형제가 인식하는 대상을 보여주고 싶으면 사체를 그냥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게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래에서 위로 형제와 사체를 함께 보여준다. 이게 되게 별 거 아닌 연출 같아 보이지만 이 영화가 가진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 악을 대단하지 않게 묘사한다. 그런데 제목 그대로 인물들 근처에 도사리고 있다.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돌리기만 해도 악이 드러나고 있다는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영화가 처음으로 보여주는 비극에서도 이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초반부에 해당하는 장면인데, 카메라에 영화의 핵심인물 중 하나 루이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동물이 있다. 동물을 살해하려는 루이스. 아내가 루이스를 만류한다. 이유는 금기를 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위 세 문장만 읽으면 영화가 ‘루이스가 금기를 어길 것인가’에 대한 서스펜스를 만들 거라고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예상을 세련되게 빗겨나가며 초장부터 기선을 제압한다. 구체적으로, 루이스가 선택하는 과정이 굉장히 짧았다. 그리고 그 이후 상황을 짧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테이크를 최소한으로 잡았다. 금기를 어길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가 영화 후반부에도 이어지는데 이것에 비하면 이 과정이 굉장히 짧다. 이 연출이 후반부의 서스펜스에 있어 ‘언제부턴가 도사린 악이 우리를 덮칠지도 모른다’라는 공포감을 주기 충분했다. 또 이 장면을 촬영하는 방식도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핵심인 ‘선을 넘는다’라는 점에 있어 거리를 두고 대상을 포착한 것이 종반부 다다르기에 충분한 초석이 됐다.
하지 말라는 걸 하는 편
영화의 핵심 테마는 금기다. 금기라는 테마가 두 가지 맥락에서 작동하고 있다. 첫째. 플롯에서 금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가 플롯을 끌고 가는 방식은 과제를 연이어서 주는 것이다. 악령이 씐 우리델을 어떻게 처리할 지부터 시작한다. 이 우리델을 둘러싸고 있는 금기가 있다. 이 금기에 금기를 물어 서서히 영화가 이야기의 품을 넓힌다. 이것은 영화가 장르적인 문법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가 2부로 넘어가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을 둘러싼 형제의 개인적 일화가 특별하다. 살짝 작위적인 것 같지만 일반적인 선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밀도 있는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인물은 심지어 영화 내에 다른 금기를 제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누군가의 입을 통해 금기가 제시된다. 한 가지만 빼고 말하는데, 이 인물이 그 빼먹은 하나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영화가 금기를 다룬다는 테마를 충실하게 이행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시각적으로도 영화가 금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꼼꼼했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열광할 것 같으면서도 '이거 별로야' 싶은 것이 같다. 바로 폭력성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호러영화가 있다. <쏘우> 시리즈,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큐브> 같은 영화다. 이 영화(내지는 시리즈)들의 공통점. 다 큰 성인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건 할리우드 내지는 전 세계의 영화시장이 룰처럼 지킨 것이다. 사실 굳이 이 룰 외의 무언가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윤리적으로 '굳이 아이들까지 폭력에 노출시킬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이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이 금기를 널뛰기한다. 이게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이질적이면 굉장히 비겁해 보이기 쉽다. 단순히 자극적인 톤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라면 감독이 미학적으로 뭘 고려했는지 전혀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이 영화는 후반부 폭주하는 이미지와 플롯을 보여주기 위해 전초를 잘 깔았다. 그리고 앞 문단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줄거리부터 금기를 다뤘기 때문에 소모적이지 않다. 글쓴이가 이렇게 써도 이 영화를 보고 싶은 여러분은 쉽게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외로, 나름 창의적인(?) 잔혹함을 보여준다.
변화무쌍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리듬감이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보여주고 싶은 것을 힘주어 보여주지 않는다. <스마일> 같은 영화가 있다고 해보자. <스마일>은 저주에 걸린 사람들을 힘 빡 줘서 보여준다. 점프 스케어를 통해 사운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기괴한 웃음으로 저주의 이미지를 강화한다. 아니면 <곡성>처럼 템포를 빠르게 전달하는 것도 호러영화의 문법과도 같았다. 이 영화는 반대다. 금기를 넘는다는 테마에 적합하게, 하지만 내내 빠르거나 느리지 않게 유효타를 적절하게 먹인다. 영화가 중후반부에서 템포가 루즈해지기 전까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끌고 갔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디에서 자극적인 게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인물들을 덮치는 것이다. 끝까지 이야기를 몰입시키는 힘이 영화의 장면을 기획하는 데 있다는 점이 '이 영화는 노작이다'라는 생각이 들기 충분하다.
편의적으로 기대다
이 영화에 대해 가장 아쉽다고 느끼는 것. 주인공이다. 주인공 페드로는 공포영화의 클리셰 그 자체인 인물이다. 다른 인물들은 금기를 넘니 마니 하는데 이 인물은 굉장히 안정적으로 편안하게 간다. 대표적으로 중반부. 이 인물이 공간을 두 번 옮긴다. 첫 번째로 공간을 옮길 때 이 인물이 누군가와 함께 동행한다. 이 일행을 구성하는 방식이 굉장히 안일하다. 이 선택은 영화의 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영리한 것이 핵심인 영화에 인물은 바보 같은 선택을 하기 때문에. 두 번째. 이 두 번째 공간 이동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그렇게 감독이 의도했다). 변화무쌍한 리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 것과는 정반대로 이 장면에서 인물들에 감정이입할 토대가 빈약하다. 서서히 집중했다가 후반부의 광기로 이어져야 하는데, 중반부까지 쌓아놓은 플롯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이렇게 상투적으로 대처할 거라면 동생이 누굴 짝사랑했고, 이 인물이 현실적으로 처한 상황이 뭐인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모티브를 내내 반복해서 보여주면 뭐 하나? 결과적으로 주인공이 그걸 거부했는데.
또 이 영화에서 마무리 짓기 위해 마무리지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주인공의 가족과 관련된 부분이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이 주인공의 어머니는 다른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이질적으로 행동한다. 가령 형제는 이 마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다. 어머니도 어렴풋이는 들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악마의 존재에 알고 있을 것이다. 이걸 굳이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작위성을 덧붙이는 선택이었다. 뿐만 아니라 극후반부 이 인물의 행방을 보여주는 방식도 뒷심이 부족했다. 페드로가 굳이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데, 다른 인물들에 비해서는 인과관계가 희미해서 대충 마무리지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글쓴이가 한국 영화 팬이라는 것이 조금 얄궂게도 느껴졌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특정 한국 영화에 영향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국 팬들 입장에서는 이 영화의 후반부가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단점은 치명적이다. 아드레날린을 최대치로 분비하며 질주하던 플롯이 후반부가 되어 '에이 이거 그거 아닌가'로 끝나기 때문이다.
뭉뚱그린 악
전체적으로 흥미로웠지만 후반 마무리에서 힘이 빠졌다는 게 총평이다. 어떤 걸 생각하고 각본을 쓰고 이 영화를 위해 장르적인 문법을 어떻게 연구했는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그리고 그걸 위해 파격적인 수위로 폭력을 묘사한 것도 나름 근거가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후반부에 힘이 빠지다 못해 전면적으로 대치되는 선택을 해 중반부까지의 서스펜스가 얕아지는 선택지를 뒀다. 그래서 악이 도사린다는 게 설명하려다 말았다. 전지전능한 악의 존재가 중반부까지 계속 등장하다 갑자기 카메라를 반대편으로 돌렸으니 선택과 집중에 있어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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