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I2025-02-19 17:59:23
너에게 묻고, 내게 묻는다
영화 <러브레터> 리뷰
!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하얀 설원과 빨간 니트, 그리고 이 대사.
“오겡끼데스까”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이 장면만큼은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
다. 그만큼 <러브레터>는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실제로 <하나비>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 수입된 일본 영화면서도, 개봉한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 실사 영화 국내 관객 수 1위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이와이 슌지’는 이 영화로 영화계에 발을 내딛었고 <4월 이야기>, <릴리 슈슈의 모든 것>, <하나와 앨리스> 등 여러 대표작을 만들어내면서 큰 명성을 갖게 된다. 최근에는 <키리에의 노래> 라는 작품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는 등 꾸준한 작품 활동과 교류를 해오고 있다.
<러브레터>는 사고로 연인을 잃게 된 ‘와타나베 히로코’와 그녀의 연인이었던 ‘후지이 이츠키(남)’, 그리고 그와 성별은 다르지만 이름이 같았던 동명이인 ‘후지이 이츠키(여)’.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연인을 떠나보낸 ‘히로코’는 그리운 마음에 그가 어렸을 적에 살았던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연인이었던 그에게서 답장이 온다. 알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 그와 이름이 같은 또 다른 ‘후지이 이츠키’가 있었던 것이다. ‘히로코’와 ‘이츠키(여)’는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세상을 떠난 ‘이츠키(남)’를 추억한다.
남겨진 자들의 몫
이츠키(남)가 세상을 떠나고, 히로코는 시간이 지남에도 그를 잊지 못한다. 후회, 원망, 그리움 등이 뒤섞인 하나의 응어리가 그녀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 이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어도, 그 순간만큼은 처음인 듯이 아프게 다가온다. 쉽게 잊을 수 있다면 크게 아프지 않을 테지만, 지나간 시간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이 떠나간 자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그들이 가시에 찔리면서도 쉽게 놓지 못하는 이유는 줄기 위에 달린 꽃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히로코의 편지로 추억 속 이츠키(남)를 회상하는 이츠키(여)는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산다. 어린 나이 아버지를 폐렴으로 잃었고, 본인 또한 심한 기침 감기를 앓고 있다. 그녀는 병원에서 아버지의 환영을 본다. 추억 속 이츠키(남)의 죽음을 알게 된 이츠키(여)는 고열로 쓰러지고, 그녀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남겨진 자에게 주어진 또 다른 몫은 떠나간 자의 발자취. 즉, 떠나감의 이유이다.
눈과 추위를 ‘함께’ 맞이하다
각자의 몫을 짊어진 히로코와 이츠키(여). 그러나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그들의 고통은 커진다. ‘히로코’는 이츠키(남)가 자신을 좋아한 이유가 이츠키(여)와 닮아서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츠키(여)는 감기가 낫기는커녕 점점 심해진다. 히로코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그가 사고를 당했던 산을 찾는다. 학교를 찾은 이츠키(여)는 선생님으로부터 이츠키(남)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산을 찾은 히로코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온 이츠키(여)는 고열로 쓰러진다. 그녀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몫을 감당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때 누군가 손을 내민다. 사실 그 손은 이전부터 그녀들을 받치고 있었다. 그 손의 주인은 히로코의 선배와 이츠키(여)의 할아버지다. 선배는 오타루로 향하는 히로코의 동행자가 되어주었다. 할아버지는 쓰러진 이츠키(여)를 업고 병원으로 달린다. 그들의 입김은 지금의 추위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 그녀들 혼자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듯하다. 그러면서도 가슴 속 응어리를 먼저 풀어냄으로서, 비슷한 상황에서의 트라우마를 극복함으로서 그들 각자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너에게 묻고, 내게 묻는다
설원을 뛰어가 떠나간 인연을 마주하는 히로코, 병상에서 천천히 눈을 뜨는 이츠키(여).
그녀들의 입에선 똑같은 문장이 뱉어진다. “오겡끼데스까?” 히로코는 크게, 이츠키(여)는 작게.
히로코는 자신의 큰 목소리가 메아리로 울렸을 때 마치 이츠키(남)가 말하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이츠키(여)는 자신의 작은 목소리가 속에서 울렸을 때 살아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녀들은 각각 귀와 마음으로 목소리를 들었다. 동시에 떠나간 이츠키(남)의 평안을 바랬다.
“잘 지내시나요?” 네게 물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너는 대답했다.
“잘 지내시나요?” 내게 물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나는 대답했다.
그녀들은 그렇게 그와의 추억을 가슴 속에 묻었다. 기나긴 시간과 공간의 여정을 통해 이츠키(남)의 죽음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나카야마 미호
2024년 12월 6일. <러브레터>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일본 배우 ‘나카야마 미호’가 사망했다. 국내에서도 재개봉을 앞두었던 터라 그녀의 죽음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러브레터> 이후에도 여러 시리즈와 영화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던 그녀는 이와의 슌지의 <라스트 레터>(2020)에서도 조연으로 등장하며 보는 이들의 향수를 자극시켰다.
<러브레터>에서의 1인2역은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두 캐릭터의 살아온 배경, 성격, 스타일이 다를뿐더러 특수한 분장 없이 비슷한 외형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더욱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히로코와 이츠키가 되었다. 특히 “오겡끼데스까”를 내뱉는 교차편집 장면에서는 두 인물의 서로 다른 감정을 뛰어난 연기력으로 표현하였다.
이제는 우리의 추억 속에 자리 잡을 ‘나카야마 미호’.
그녀가 남긴 대사처럼 모두가 잘 지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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