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남규2023-12-06 14:50:39
[사랑은 낙엽을 타고] 고전, 클래식, 그리움에 대한 예찬
당신이 영화를 좋아한다면
사랑은 낙엽을 타고
복고 바이브
촬영법부터 연출까지 90년대 영화들이 생각나게 만들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생각나기도 했고 어떤 장면에서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전에 정보를 모르고 본다면 오래된 핀란드 영화를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재개봉한다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1981년 감독으로 데뷔해 매해 꾸준히 영화를 촬영하고 발표하신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님의 최신작이다. 대놓고 영화 중간에 ‘고다르’나 ‘브레송’을 언급하며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고 설명해 준다.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자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였다.
뒤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굳은 얼굴로 해학적인 개그와 블랙 유머들이 가득했다. 세계 대전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고 두 체재로 갈라져 냉랭하던 당시 분위기가 느껴졌다. 대단한 반전은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라디오로 듣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감독님은 철저하게 응답하라 2023을 찍고 계셨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께서 간만에 데이트로 관람하시기에 좋을 것이다.
희극
크게 보면 유럽인 남녀가 어떻게 사랑하고 갈등하고 운명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영화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사랑 없이 관람하면 스타벅스용 재즈 리스트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루한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이런 후기를 적고, 이 영화를 관람할 여러분이 좀 더 흥미를 느끼며 몰입하길 원한다.
들여다보면 희극이다. 감독님
자신이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는지, 영화 예찬을 어떻게 하면 중독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남자 주인공이 영화관 앞에서 줄담배를 피우는 장면에선 어린 시절 영화관을 방문했을 기나긴 시간들이 묻어 있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개봉한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만 보더라도 90년대에는 영화관은 만남의 광장이자 수많은 약속이었다. 영화는 자신을 뽐낼 수 있는 영화관에서 일어날 기적과 추억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건 지금까지, 유튜브와 쇼츠, 릴스가 지배한 이 땅에도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비극
영화 배경이 핀란드, 북유럽이라는
점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쉽사리 웃거나 떠들지 않는다. 너무 침착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이것도 감독님의 특정 바람이 있었으니 그렇게 연기를 했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인물들에 대한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단순히 영상물로서 영화를 즐기는 태도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실험 영화처럼 눈을 아프게 하거나 난생처음 겪는 충격을 전하지는 않는다. 대신 다른 중독을 보여준다.
바로 술과 담배다. 남자 주인공은 서부 영화 속 카우보이들처럼 매번 담배를 맛있게 피며 험상궂은 얼굴을 자랑한다. 더 큰 문제로, 밤이든 낮이든 술을 마신다. 심지어 일터에서도 품 안에 숨겨둔 보드카를 꺼내 마시고 고단한 작업을 진행한다. 우스갯소리로 폐암으로 죽는다고 말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감에 그는 술 때문에 죽을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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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12월 20일
개봉 예정이다. 기분 좋게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관람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애정 합니다, 씨네랩 관계자분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사낙타’는 오아시스를
기억하는 낙타처럼 보실 수 있을 것이다. 로맨틱한 영화를 찾고 계신 커플이나 가족분들에게도 이 영화가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꽤나 복잡하지 않고 정직한 플롯으로 진행되기에 몰입하지 못한다면 자칫 지루할 수 있다. 지금 당신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하는 인연들이 옆에 있다면, 영화는 사랑이 될 것이고 새로운 양분이 되어 미래로 나아갈 낙엽이 될 것이다. 술주정뱅이 크리스마스보다는 잔잔한 와인 같은 이 영화가 선물로 더 좋은 선택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