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 soyo 2025-02-23 15:30:55
[영화 ‘세인트빈센트’를 보고] 그럴 수 있지, 모든 행동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
영화 <세인트비센트>
나는 영화 초반 ‘세인트(Saint)란 호칭과 어울리지 않는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 ‘빈센트(Vincent)’를 마냥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빈털터리면서 도박과 유흥을 즐기고 상대방 기분을 생각하지 않으며 말하는 빈센트였기에 그를 싫어하는 영화 속 사람들처럼 나 역시 그를 고약한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며 그를 싫어했다. 그러나 한부모 가정인 초등학생 ‘올리버(Oliver)’와 엄마 ‘메기(Megi)가 그의 옆집에 이사오기 시작하면서 빈센트의 진짜 내면과 사정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메기 대신 올리버를 돌봐주기 빈센트는 왕따를 당한 올리버에게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은 물론 ‘미움은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을 알려주며 누구보다 온전한 인생의 가치를 알려줬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묵묵히 곁에서 지켜내고 자신은 정어리를 먹더라도 반려묘에겐 고급 사료를 먹이는 그의 행동에서 그는 그저 표현이 딱딱할 뿐 따뜻한 내면으로 주변의 모든 존재들을 밝게 채워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내 인생 좌우명이며 동시에 남을 이해하거나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마법의 말이 있다. 바로 “그럴 수 있지" 라는 말이다. 무심한 듯 다정하고 가벼운 듯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말은 상대를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게 만들고 나와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나 또한 그저 나와 성격이 다른 빈센트가 올리버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 같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이 내 오해였음을 금방 알게 됐다. 나는 그저 빈센트의 성격 일부분만 보고 그의 모든 것을 본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게 아니다. 하나를 보면 단지 하나를 안 것 뿐이다. 어쩌면 타인의 인생에 대한 섣부른 편견이 우리가 더이상 인간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모든 이들에겐 무엇이든 배울 점이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그만한 존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을 ‘세인트’로 바라보며 한 걸음 뒤에서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자.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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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승부를 그려내다
조승우 필모깨기를 열심히 하며 발견한 작품 <퍼펙트 게임> 2010년대만 하더라도 스포츠 관련 영화가 굉장히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이후로는 딱히 흥행하는 것이 없어보인다. 영화 <퍼펙트 게임> 역시 그 무렵에 나온 작품이다.
영화 <퍼펙트 게임> 시놉시스
대결을 원한 세상 속으로 꿈을 던진 두 남자, 최동원 선동열의 고독하고도 치열한 맞대결!! 불안과 격동의 1980년대, 프로야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전국민을 사로잡고 있었다!
노력과 끈기로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로 자리잡은 롯데의 최동원! 그리고 최동원의 뒤를 이어 떠오르는 해태의 천재 투수 선동열! 세상은 우정을 나누던 선후배였던 두 사람을 라이벌로 몰아세운다.
전적 1승 1패, 그리고 1987년 5월 16일, 자신들의 꿈을 걸어야 했던 최동원과 선동열의 마지막 맞대결이 펼쳐진다! 선동열 앞에서만은 큰 산이고 싶었던 최동원. 그 산을 뛰어 넘고 싶었던 선동열.
*해당 내용은 네이버 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퍼펙트 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비지엠 하나는 정말 잘 썼다
관객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자이를 꼽아보자면 아마 영화에서 그 역할을 음향이 하지 않나 싶다. BGM을 비롯한 다양한 음향 요소들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미세한 감정을 증폭시키면서 순간적으로 영화의 몰입도를 극대화 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화의 매력을 가장 잘 활용한 것이 영화 <퍼펙트 게임>이 아닐까 싶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가장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이 와,,, BGM하나는 정말 잘 썼다! 였으니 말이다.
야구 경기의 스펙타클하고 빠른 전재를 보일 때와 최동원이 좌절하는 장면, 그리고 선동렬이 이 악물고 연습하는 장면 등 그때 그때의 캐릭터의 감정과 경기장의 분위기를 정말 잘 살릴 수 있는 음향적 요소를 굉장히 잘 활용해서 2시간이 넘는 조금은 긴 러닝타임 속에서도 지루함 없이 집중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관객을 울리는 영화
개인적으로 영화를 감사하는 태도는 감독이 정해놓은 포인트대로 감상하며 눈물을 쏟아주고, 웃어주고 다 해놓고 비판하는 타입이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영화 <퍼펙트 게임>은 울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든 작품이었다.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두 선수를 응원하며 두 선수를 중심으로 규합하는 롯데와 해태의 선수들을 보면서 그 찐한 우정과 승부욕에 감동을 안받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 장면이 과했다. 약간 스리스을쩍~ 넌지시 포인트를 잡는게 아니라 울어라!! 여기서 안 울면 이상한거다!! 이렇게 연출을 하고 있어서 그리고 그 당시에는 최동원과 선동렬이 거의 스포츠계의 영웅과 같은 사람들이었겠지만 약간 너무 신화화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싶었다. 물론 그 때 살지 않았고 직접적으로 그들의 경기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두 선수의 빅매치가 어떠한 무게감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뭔가 그들의 이야기를 너무 극단적으로 신화화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신화화를 통해서 애써 감동포인트를 주려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그래도 연기력만큼은 뛰어났던 작품
최동원과 선동렬의 경기를 직접 봐본적이 없다. 심지어 유튜브를 통해서 남은 자료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나에게는 조승우와 양동근이 연기한 캐릭터로써 존재할 뿐이었다. 실제 인물과의 비교는 어렵겠지만 문외한으로써 느낀 영화 <퍼펙트 게임>은 야구선수들이 저렇게 훈련을 하고 경기에 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점점 감정을 고조시키는 스토리라인만 제외한다면 약간 시대를 풍미했던 야구와 야구 선수들의 다큐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조승우와 양동근은 극 중에서 조승우와 양동근이라는 배우로 보인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초반 캐스팅이 됐을 때는 미스캐스팅이라는 말이 돌았다고 하던데 외적으로는 닮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최동원과 선동렬 선수의 캐릭터와 야구를 대하는 진심, 그들의 내적인 모습을 잘 캐치해서 표현했다고 느껴졌다.
시대의 이야기를 모르더라도 충분히 재밌었던 영화 <퍼펙트 게임>. 감정과 신파에 예민하지만 않다면 뜨거운 승부를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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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기다리는 동안,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결정하지 않는 것도 결정이라니. '무의사결정'이란 말 참 매력적이다. 처음 들었을 때 인생의 진리를 한 마디로 정리한 기분같았다. 결정하지 않는게 대체로 No를 뜻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결정하지 않는 것에도 책임감과 무게감을 부여하고 있다. 좀 더 쉽게 접근하자면 의사결정을 확률에 맡기는 것도 비슷한 종류일 것이다. 확률에 내면의 자신감과 책임감 문제를 맡길 수 있다. 앞면의 이순신이냐, 뒷면의 숫자가 나오냐에 따라 결정이 달라진다. 이파리를 하나씩 뜯어서 기다 아니다를 정한다. 요즘엔 기계가 대신 결정해주기도 한다더라. 여긴 아예 있던 일도 없던 일로 만드는 시공간초월 무의사결정이 있다. 바로 영화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에서.
취향의 문제겠지만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무려 최근에 본 눈이 부신 <너의 이름은>을 보고도 아직은 그렇다.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명언 때문덕이기도 하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던 순간이 많아서 탐이 났다. 대리만족도 됐고 시간을 바꿔봐야 어차피 별로 대단하게 바뀌지 않는 걸 보고 안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늘 눈에 아른거리는 건 마코토의 모습이었다. 바보같고, 오지랖 넓고, 당당한 마코토.
우연히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었을 때 마코토는 바보같았다. 대단한 걸 바꾼게 아니었다. 동생이 대신 먹은 푸딩, 엊그제 먹은 철판구이 고기, 노래방 계속 가기. 갑자기 닥쳐온 쪽지시험은 그렇다 치자. 절친인 치아키와의 캐치볼 공의 노선을 다 알아서 잡는 용도로 쓴다. 세상에, 그 능력을 그렇게 쓰는데도 마코토니까 이해가 간다. 그렇게 평범하게 써서 좋았다. 용돈은 다시 타서 쓰게 시간을 되돌리지만 복권당첨번호를 써먹으려고 쓰진 않는다. 주가조작도 안했고 누구 돈을 뺏지도 않았다.
물론 그 중엔 정말 바보같은 결정도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치아키가 고백한 게 두려워서 없던 일로 만들었다. 한두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어떻게 말할지 잘 생각하고 돌린 것 같지도 않다. 맨날 할말 없으면 뜬금없이 동생 얘기를 해버리니까. 그래놓고 고백받은 기억 때문에 어색해서 치아키를 피해다녔다. 몰랐던 것이다. 때로는 같이 용기내 문을 열지 않으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 코 앞에서 영영 닫혀버리는 것이다. 상대는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순간으로 내 마음은 이미 살금살금 문이 열려버렸는데 덫에 걸려버린 것이다. 거절하지도 승낙하지도, 듣도 보도 못한 고백은 이제 그녀의 기억에만 존재한다. 치아키는 아프지도 않게 차였고 마코토는 아무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아야 한다. 잔인하다.
자신이 치게 될 사고를 남이 치게 만들고 나니 엄한 사람들이 다쳤다. 자신에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변수처럼 일어났다. 괴롭힘 당하던 친구는 억눌린 화풀이를 했고 그 결과 친한 친구 유리가 다치고 말았다. 유리는 다치긴 했지만 그 일로 좋아하던 치아키가 남자친구가 되었다. 마코토는 가장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이 순간에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시간을 돌리는 이 축복같던 무의사결정에 기뻐했던 자신에게 주는 벌일지도 모른다. 이미 그녀는 그 고백도, 치아키도 놓쳤고 유리와 같은 반 친구에게 없어도 될 상처를 주었다. 많은 여주인공이 무너져버릴 순간, 그녀는 울지 않는다.
마코토는 이 상황에서 오지랖이 넓다. 변화가 있다면 그녀 자신을 위해서 쓰던 타임 리프가 이제 소중한 다른 이들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던 무의사결정 대신 시간을 돌려 능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친한 친구 고스케의 여자친구 만들어주기에 남은 기회를 거의 다 써버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다시 바보같았다. 치아키의 타임리프 질문에 얼어버려서 다시 회피용으로 시간을 되돌려 버렸다. 결과는 참혹했다. 소중한 고스케를 잃는 것이 분명해졌다.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시간 앞에서 그녀는 주저 앉아 미친 사람마냥 시간을 멈춰달라며 절규했고 그 소원을 들어주면서 치아키는 마코토와 이별해야 했다. 하고픈 말도 하지 못하고 괜한 소리만 하면서 마코토는 멋없이 치아키를 보내야 했다.
다시 한번 시간을 돌릴 기회가 생겼을 때 마코토는 이상하고도 멋진 결정을 한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열심히 달려가서 이 모든 것의 시작으로 돌아가 끝낸다. 이번엔 회피하지도 않고 치아키와도, 모든 사실과도 당당하게 마주한다. 그녀가 치아키를 좋아한다는 것마저도. 모든 상황을 치아키에게 털어놓고 그를 그가 있던 미래로 보내는 것. 굳이 그를 돌려보내는 건 대체 왜일지 생각해봤다. 여러번 볼 때마다 미래에서 기다리겠다는 치아키의 멋진 말에만 심취해서 그 뒤로 당당해진 마코토는 잘 생각하지 못했다. 치아키는 미래에서 시간을 되돌아왔고 이미 일찍 떠났어야 하지만 떠나지 않고 여기 시간의 흐름에 맡겨버렸다. 그조차도 무의사결정을 한 건 마찬가지다. 그 먼 시간을 지나 보고 싶었던 소중한 그림도 보지 못했고, 마코토도 좋고, 그에겐 과거이지만 여기선 현재인 이 시간이 좋아서라는 멋진 핑계가 있을 뿐.
그래서 마코토는 치아키를 위해 결정한다. 자신이 울어버릴 일인데도. 이제 시간을 되돌리는 게 얼마나 본인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잔인하고 아플 수 있는 일인지 마코토는 알고 있다. 어쩌면 치아키의 그 고백, 마코토 모르게 치아키도 꽤 여러번 고백했다가 없었던 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소중한 친구 고스케가 이미 여러 번 죽을 운명이었던 것을 구해주었던 것을 마코토가 몰랐듯이. 아무도 모르는데 나만 감당해야하는 괴로움을 알기에 마코토는 좋아하는 치아키가 더 이상 시간을 오가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현재이자 마코토에게는 미래인 그 시간에서 치아키가 행복하길 바라기에, 그가 좋아하는 그림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게 여기 남아 그가 그의 시간에서 행복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치아키를 찾아가는 게 그녀가 내린 결론일 것이다. 그렇게 치아키는 미래에서 마코토를 기다리고 마코토는 현재에서 치아키에게 달려간다.
기다린다, 달려간다, 문이 열린다. 나도 모르게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와 연결짓고 있던게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것을 글의 끝자락에서야 깨달았다. 글의 방향을 정하지 않고 쓴 무의사결정적 글이라니 부끄럽지만.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어쩌면 내겐 생애 첫 시다. 언니의 책상에서 어릴 적부터 의미도 모르고 읽었던 시였다. 애기 때는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아서 이 시가 어디가 좋아서 언니가 책상 안에 끼워넣었을까 했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가만히 있다가 생각나곤 하는 시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엔딩이 혹시나 아쉬웠거나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나는 치아키와 마코토의 모습을 보여줄 시로 이 시를 꼽겠다.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마코토는 달라져있다. 여전히 덜렁대고 바보같지만 당당하다. 여전히 무의사결정을 생의 곳곳 틈틈히 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치아키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아주 어렵고도 쉬운 결정을 했다. 마코토는 시간을 달리지 않으면서 시간을 달리고 있다. 타임 리프도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먼 곳에서 오지 않는 치아키에게, 아주 먼데서 오는 치아키에게 가고 있다. 달려가고 있다. 치아키가 그러하듯이.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쾅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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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2차 송환(The 2nd Repatriation)
South Korea/2022/156min/김동원 감독 작품
북한에서 지령을 받고 남한에 파견되었다 검거되어 오랫동안 전향하지 않은 사람을 비전향 장기수라 한다. 수십 년간 감옥 생활을 한 이들 중 일부는 양국의 협의를 거쳐 북한으로 돌아갔다(1차 송환).
〈2차 송환〉의 주인공 김영식은 ‘전향 장기수’다. 즉 그는 오랜 수감 생활 끝에 북한의 사회주의 사상을 ‘버렸고’ 이후 석방되어 쭉 남한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김영식이 정말 전향한 것은 아니다. 모진 고문과 끝을 알 수 없는 수감 생활이 그를 지치게 해 전향서를 썼을 뿐이다.* 김영식이 2000년에 발표된 6‧15 남북 공동 선언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내용의 어깨띠를 매고 지하철을 돌며 선전 활동을 하고, 자신을 촬영한 감독의 이전 영화가 민족의 아픔을 다루지 않았다며 혀를 차는 모습에서도 그가 여전히 외세에 의한 민족 분열에 커다란 분노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십 년의 수감 생활과 그 이후 또 수십 년의 남한 생활. 영화는 남북한의 경계에 선 장기수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펼쳐낸다. 언젠가 북한에 돌아갔을 때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강제 전향시킨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노인, 송환을 위해 남한에서 만난 부인과 이혼 절차를 진행 중인 노인,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어느새 익숙해진 남한 생활에 마음이 복잡한 노인, 남편이 ‘계속 남아서 싸워라’라고 말할지 ‘얼른 고향으로 돌아와라’고 말할지 상상해보는 노인 등등. 한 시민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김영식의 주장에 혀를 찬다. ‘쓰라린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놈만 저런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장기수가 상상조차 어려운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서 이 비난은 공허하다.
2차 송환을 신청한 장기수 46명의 복역기간을 합치면 898년이다. 장기수들은 죽기 전 고향 땅을 밟아보겠다는 마지막 바람으로 이 시간을 버텼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에도, 엄혹했던 시절에도 이들의 기다림은 늘 뒷전으로 밀렸다. 남북한의 위정자들이 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먼저 고민했기 때문이다.
2차 송환 운동은 20년 넘게 이어졌다. 그사이 많은 장기수가 세상을 떠났고 생존자 대부분은 90대가 되었다. 장기수 문제는 도대체 언제쯤 남북관계의 시급한 의제로 취급될 수 있을까? 영화의 내레이션이 말하듯 누군가는 장기수를 ‘빨갱이’라 부른다. 다른 누군가는 ‘국가와 민족을 운운하는 국수주의자’, ‘그저 불쌍한 노인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감독은 장기수를 당당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간 사람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공감한다. 나 역시 ‘민족의 아픔’과 ‘미제‧일제 척결’을 외치는 김영식보다 오랜 세월 집요함으로 자기 삶을 꾸려온 김영식이 더 좋았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장기수 2차 송환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길 바란다.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김진언의 구술사를 담은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양경인, 2022)에는 남한 당국이 비전향 장기수를 어떻게 고문했는지가 잘 나와 있다.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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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에반게리온> 완결 극장판 재개봉소식과 브루스 윌리스의 은퇴 전 마지막 액션영화 <파라다이스 시티>까지, 1월3주차 개봉작 같이 만나보아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The End Of Evangelion
ⓒ 네이버영화
개요: 애니메이션 | 일본 | 87분
감독: 안노 히데아키
출연: -
개봉: 2024.01.17.
배급: -
시놉시스
‘신세기 에반게리온’ TV 시리즈의 완결판- ‘카오루’의 죽음 이후 공황 상태에 빠진 ‘신지’. 한편, 네르프 총사령관 ‘겐도’는 ‘서드 임팩트’ 즉, ‘인류보완계획’을 놓고 ‘제레’와 갈등을 벌인다. 이에 ‘제레’는 양산형 에바를 투입해 네르프 본부와 에바 파일럿들을 향해 총공격을 감행하고 맹공에 혼수 상태였던 ‘아스카’까지 완전히 폭주한다. ‘신지’는 ‘미사토’의 도움으로 겨우 초호기에 오르지만, 인류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데…
CINE PICK!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이자 완결 편입니다. 시종일관 암울한 분위기, 선정적이면서 잔인한 장면들이 많아 일반 관람객은 물론 기존의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개봉 당시 눈을 뗄 수 없는 신선한 연출과 파격적인 연출을 선보이며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 ‘재패니메이션’의 명성을 입증한 작품입니다.
무티: 주술 살인
The Ritual Killer
ⓒ 네이버영화
개요: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 | 미국 | 92분
감독: 조지갤로
출연: 모건 프리먼, 콜 하우저
개봉: 2024.01.17.
배급: (주)제이씨엔터웍스
시놉시스
강력계 형사 루카스 보이드는 딸과 아내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중 매우 기괴하고 잔인한 수법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사건현장을 둘러본 루카스는 평범한 살인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해 맥클스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범인이 고객의 의뢰를 받고 무티라는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제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남아공 출신의 흑주술사 랜도쿠를 뒤쫓는다.
CINE PICK!
주연을 맡은 배우 모건 프리먼은 작품에서 아프리카문화 전문 교수 역을 맡아 난관에 빠진 수사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며 범인을 추적하는 지적인 연기를 보여주지만 영화는 스토리의 완성도를 미루어보아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모건 프리먼의 이름에 기댄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파라다이스 시티
Paradise City
ⓒ 네이버영화
개요: 액션, 스릴러 | 미국 | 93분
감독: 척 러셀
출연: 브루스 윌리스, 존 트불타, 스티븐 도프 등
재개봉: 2024.01.18.
배급: ㈜누리픽쳐스
시놉시스
현상금 사냥꾼 ‘이언 스완’은 ‘마약 밀매 조직의 두목을 쫓다 살해당한다. 이후, 그의 아들 ‘라이언’은 아버지의 마지막 메시지를 듣고 살인범을 찾으러 하와이로 향한다. 라이언은 아버지의 옛 동료인 로비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이언의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 ‘사바나’도 두 사람의 추적에 합류한다. 한편 하와이의 권력자인 ‘버클리’는 하와이에 국제마약항을 건설하려는 야심을 품고, 주지사 자리에 꼭두각시 현지인 후보를 당선시키려고 한다. 이후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로비를 납치하는데…
CINE PICK!
‘브루스 윌리스’의 마지막 액션 영화 <파라다이스 시티>는 은퇴를 선언하기 전 완성된 액션 영화입니다. 40년간 할리우드에서 액션 영웅으로 불리며 50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입을 기록한 전설적인 배우 브루스 윌리스는 2022 실어증 진단을 받고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은퇴하게 되었는데요 90~00년대 함께 시대를 풍미한 동료 ‘존 트라 불타’와공동 주연을 맡으며 경력을 마무리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서치 : 데스게임
#Blue_Whale
ⓒ 네이버영화
개요: 스릴러 | 러시아 연방 | 94분
감독: 안나 자이체바
출연: 안나 포테브냐, 티모페이 엘레츠키, 다이나 슐미나 등
개봉: 2024.01.18.
배급: ㈜영화사 빅
시놉시스
동생의 목숨을 앗아간 죽음의 챌린지를 쫓아라! 어느 날, ‘다나’의 여동생 ‘율리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다. ‘다나’는 동생이 남긴 노트북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율리아’가 참여한 죽음의 챌린지 ‘블루 웨일 게임’의 흔적을 발견한다.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범인, 즉 게임의 주동자를 찾기 위하여 ‘다나’는 직접 게임에 참가하게 되고, 점차 위험해지는 챌린지에 빠져드는데…
CINE PICK!
영화 <서치3 : 데스게임>은 스크린라이프 스릴러로 신선한 장르적 기법으로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전 세계적인 화제성은 물론 국내에서도 295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한 스크린라이프 장르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킨 프로듀서 티무르베크맘베토프의 신작입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네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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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타스틱 4 | 지나치게 반듯한 히어로 가족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잘 만든 MCU 영화'의 조건
'잘 만든 슈퍼 히어로 영화'는 공통점이 있다. 싸움을 잘 붙인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센티넬',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속 '그린 고블린'과 '닥터 옥토퍼스' 같은 빌런들이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라고 할 수도 있다. 히어로와 빌런의 갈등과 대립이 주목받을수록 빌런 고유의 서사와 특성도 덩달아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합의 범위를 '잘 만든 MCU 영화'로 줄이면 다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여전히 싸움은 잘 붙이지만, 히어로와 빌런 대신 히어로와 히어로가 싸움의 주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어벤져스>에서는 뉴욕 전투가 시작되기 전까지 6명의 영웅과 닉 퓨리가 뒤엉켜 말다툼을 벌였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는 아예 어벤져스가 둘로 나뉘어 전투를 치렀으며, 토리와 로키는 시리즈 내내 싸웠다. <썬더볼츠*>도 다르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이는 MCU가 여러 시네마틱 유니버스 중 가장 성공적인 팀업 무비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이었다. 히어로들끼리 싸우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드는 동안, 관객들도 그들의 신념과 철학, 한계와 약점을 목격하고,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유대감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으니까. 그 덕분에 수많은 캐릭터가 한 작품에 등장해도 각각의 개성과 존재감은 묻히지 않을 수 있었다.
<판타스틱 4: 새로운 시작>(이하 <판타스틱 4)은 정반대다. '잘 만든 가족 드라마'이지만, '잘 만든 MCU 영화'는 아닌 듯하다. 가족애, 특히 모성애에 집중한 드라마는 인상적이다. 윤리적 딜레마의 활용도, '가족'의 중요성을 시의적절하게 환기하는 메시지도 영리하다. 하지만 정작 관객들과 상호작용을 해야 할 네 명의 주인공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MCU 팀업 무비답지 않게, 싸울 줄 모르나 싶을 정도로 반듯했기 때문이다.
판타스틱 4가 딜레마를 푸는 법
지구-828의 수호자인 '판타스틱 4'. '수 스톰/인비저블 우먼'(바네사 커비)의 임신을 축하하며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하던 그들은 돌연 위기에 빠진다. '실버 서퍼'(줄리아 가너)가 나타나 행성 파괴자 '갤럭투스'(랠프 아인슨)의 공격을 경고했기 때문. 자신을 막으려 우주로 향했 판타스틱 4에게 갤럭투스는 제안한다. '리드 리처즈/미스터 판타스틱'(페드로 파스칼)과 수의 아들이자 우주적 능력을 지닌 '프랭클린'을 넘기면 지구와 인류를 살려주겠다고.
그 순간 판타스틱 4는 '트롤리 딜레마'라고도 불리는 공리주의적 딜레마에 직면한다. 이 딜레마는 고장 난 기차가 다섯 명의 작업자가 있는 선로로 달려가고 있을 때, 레버를 당겨서 한 명의 작업자가 있는 선로로 변경할 수 있다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판타스틱 4의 입장에서는 작업자 다섯 명의 목숨이 온 인류와 지구의 운명이고, 한 명의 작업자가 그들의 가족이라는 게 차이점일 뿐이다.
이때 판타스틱 4는 철저히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선택을 내린다. 어렵게 임신한 아들인 만큼 리드와 수는 절대 프랭클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다섯 명의 작업자가 기다리는 선로, 곧 지구와 인류가 기다리고 있는 선로를 선택한다. 이에 시민들은 판타스틱 4를 의심하고, 그들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그들이 보기에 판타스틱 4의 결정은 특별한 힘에 따르는 책임을 포기하고 도망친 꼴이니까.
흥미롭게도 그들의 사적인 선택 덕분에 딜레마는 해결된다. 시민 앞에서 수는 연설한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두려워하는 그들의 심정에 공감을 표한다. 판타스틱 4가 본인들의 가족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하며 시민들을 설득한다. 그 덕분에 판타스틱 4의 신뢰도가 다시 높아지고, 리드는 갤럭투스와의 전면전을 피할 전 지구적 프로젝트를 실행할 기회를 잡는다.
수의 연설이 특별한 이유
혹자는 이러한 전개를 작위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고, 분명 일리 있는 지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극 중 판타스틱 4에 대한 이중적인 묘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수의 연설 이후 편의적인 전개가 의도된 것임을 눈치챌 수 있다. 지구-828에서 판타스틱 4는 그 어떤 MCU 히어로보다도 독특한 지위를 누린다. 그들은 토니 스타크만큼 유명하고, 캡틴 아메리카만큼 존경받고, 토르만큼 고결하며 브루스 배너보다 영민하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조니 스톰/휴먼 토치'(조셉 퀸)와 '벤 그림/씽'(에번 모스배크랙)은 모든 아이와 시민들의 완벽한 우상이자 친구다. 수는 '닥터 둠'의 라트베리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의 협력을 끌어내는 범지구적 정치적 리더다.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과학자인 리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영감 그 자체다. 영화는 이들의 업적과 위대함을 중간에 삽입된 방송 인터뷰 화면, 과거 자료 등을 통해 계속해서 강조한다.
그와 동시에 정작 관객들에게는 그들의 일상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예상치 못한 임신 때문에 걱정이 많은 부모와 그저 신난 삼촌들의 모습은 바로 옆집, 옆 동 아파트에서 볼 수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반면에 초인적인 활약상은 그들의 능력을 확인하는 수준으로만 묘사된다. 영화 자체가 초능력자들의 영웅담보다는 조금 독특한 사람의 일상을 엿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처럼 소소한 히어로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덕분에 수의 연설은 특별해질 기회를 얻는다. 모두가 바라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그녀에게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새로운 <판타스틱 4>는 정치, 사회, 경제적 지도층과 그 외 계층 간의 심리적 거리감이 그 어느 때보다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일종의 영화적 위로처럼 기능한다.
지금, 필요한 가족 드라마
근래에 많은 사람들은 의심한다. 과연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사회적 문제를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는지를. 더 나아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세계에서 같은 걱정거리를 공유하며 살고 있는지, 같은 미래를 대비하고 있는지 문을 표한다. 지도자들이 공익보다는 그저 사익만 추구한다고 의심하는 시민들이 늘어남에 따라 포퓰리즘에 기반한 극단적 정치 세력도 나날이 발흥하는 중이다.
MCU의 판타스틱 4는 시민들이 품은 의심과 느끼는 거리감을 해소하는 존재다. 그들은 시민들 앞에서 솔직하다. 가족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다시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을 누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을 안다는 수의 공감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아무리 우월하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라 해도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는 솔직함이 사람들에게 믿음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즉, 수의 연설은 철저히 개인적이라서 오히려 공동체적이다. 가족애라는 공통점을 확인하면서 시민들은 판타스틱 4, 곧 사회적 지도층과 자신들이 같은 목표와 걱정, 미래를 공유하는 한 공동체이자 가족임을 실감하고 거리감을 좁힌다. 이는 단지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을 자기 가족처럼 보호하기 위해 갤럭투스와 싸울 것이라는 판타스틱 4의 다소 뻔해 보이는 다짐에 전 지구적 차원의 신뢰가 모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판타스틱 4를 영웅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가족을 그려내는 데 주력한 선택이 서사적으로 영리한 이유다. 하나의 공동체나 하나의 가족과도 같다는 연대 의식보다는 개인과 집단 간의 차이가 주목받고 갈등과 분열이 확산는 현시점에 꼭 필요한 영화로 <판타스틱 4>를 포장해 냈으니까. 설령 그 희망이 비현실적인 꿈과도 같을지라도, 지금 누구나 바라는 정치적, 사회적 희망을 선사하는 영화가 바로 <판타스틱 4>인 셈이다.
가족은 보이는데, 히어로는 안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에 히어로 영화로서, 특히 MCU 영화로서 <판타스틱 4>는 한계가 명확하다. 프랭클린을 지켜야 한다는 수의 모성애가 갤럭투스와 갈등을 빚는 핵심적인 동기인 이상 그녀를 제외한 세 히어로의 존재감이나 역할이 눈에 띌 수가 없는 상황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리드의 천재성도, 조니의 유쾌함도, 벤의 내적인 고뇌는 돋보이지 않을뿐더러, 캐릭터의 매력으로도 기능하지 못한다.
만약 판타스틱 4 내에서의 갈등이 강조되었다면 다른 캐릭터들에게도 기회가 있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갤럭투스의 요구를 두고 수와 리드는 다툰다.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수와 달리 리드는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두어야 한다며 비교적 이성적으로 문제 상황에 대처한다. 이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을 부각한다면 리드만의 신념, 개성, 존재감이 돋보일 수도 있었다. 아이언맨과 대립각을 세운 캡틴 아메리카가 그랬듯이.
하지만 이들의 갈등은 단순한 견해 차이 정도로 비치고, 화해도 신속하게 이뤄지다 보니 기대한 효과는 찾아볼 수 없다. 도리어 극을 평면적으로, 모범적으로 느껴지게 할 뿐이다. 마치 판타스틱 4라는 이상적인 가족상을 통해 가족애와 모성애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정작 그 구성원들이 완벽한 가족이라는 이데아에 눌려버린 꼴이다. 심지어 수도 예외는 아니다. 헌신적인 어머니라는 이미지 외에는 드러난 바가 없으니까.
조니와 씽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조니는 실버 서퍼와의 접점 덕분에 비중을 챙겼지만, 씽은 그조차도 없다. 변하기 전 외모를 의식하거나 대중들의 반응에 싫증을 내고, 연애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려 보려는 모습은 있지만 수의 모성애에 비하면 깊이가 충분치 않다. 이 불균형은 액션씬에서도 유지된다. 나머지 멤버들이 별다른 상황을 못 만들어낼 때, 수는 모성애로 증폭된 능력을 살려 압도적인 활약상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장점으로도 못 가리는 한계
다행이라면 시각적 요소가 단점을 일정 부분 상쇄한다는 것. 갤럭투스의 첫 등장 장면은 셀레스티얼 '아리솀'의 <이터널스> 등장씬에 비견될 수준의 위압감을 선보인다. 막상 지구에 도착한 후에는 기대에 비해 압도적이지 않지만, MCU에서 드물게 접할 수 있었던 우주적 공포감이 오랜만에 느껴지는 장면임에는 분명하다. 이에 더해 중성자별을 배경으로 펼쳐진 실버 서퍼와의 추격전도 MCU에서 기대하지 못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196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세계관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임신 테스트기, 주방 도구, TV 같은 일상적인 소품뿐만 아니라 뉴욕의 스카이라인에 이르기까지 복고적인 문화와 혁신적인 기술력이 결합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레트로퓨처리즘의 정수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이는 우주 개발을 비롯한 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한 낙관적인 분위기, 더 나아가 판타스틱 4를 향한 존경과 선망 어린 시선과도 조화를 이룬다.
그렇다고 해도 <판타스틱 4>의 한계를 완전히 숨기지는 못한다.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나머지 히어로 영화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쾌감 중 일부가 지워진 듯한 인상을 남겼다는 것. 또 공들인 가족 서사도 지나치게 모범적이라서 도리어 매력이 반감된다는 것. 이는 설령 MCU에 편입되기 이전에 제작된 과거 '판타스틱 4'에 비해서는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호불호가 나뉠 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MCU의 새 방향성으로 인한 문제 같기도 하다. 양보다는 질에 집중하겠다는 케빈 파이기의 발표 이후 공개된 <썬더볼츠*>와 <판타스틱 4>의 장단점이 같기 때문. 현대인의 정신 건강, 현대 사회의 정치적 갈등이라는 현실적 이슈를 반영한 서사가 전자라면, 기대에 못 미치는 액션은 후자다. 이러한 시도가 MCU의 진짜 부활로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도 쿠키 영상이 예고한 <어벤져스: 둠스데이>를 기다리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Acceptable 그럭저럭
MCU 답지 않게 너무 반듯한 팀업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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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메이커> 빛과 그림자로 빚는 정치의 본뜻
수 차례 국회의원에 출마했지만 낙선만 거듭하던 정치인 ‘김운범(설경구)’. 어느날 그 앞에 약방을 운영 중이던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가 찾아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그의 뜻에 동참하고 싶다고 밝힌다. 고민 끝에 선거 캠프에 합류한 서창대는 객관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선거 전략을 펼치며 김운범에게 연이어 승리를 선사한다. 마침내 김운범을 강력한 경쟁자 '김영호(유재명)'까지 제치고 당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 자리에 올려놓는 데 성공한 서창대.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동료이자 사제지간이라 할 수 있던 김운범과 서창대의 정치적 신념이 충돌하기 시작하고, 중앙정보부 '이 실장(조우진)'의 견제까지 더해지자 둘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변성현 감독의 신작 <킹메이커>는 1960-70년대 야당 국회의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선거 전략가였던 ‘엄창록’의 이야기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작품이다. 엄창록은 공권 선거와 금권선거 반발해 당시 기준으로 획기적이고 전략적인 방식과 유권자 심리를 이용하는 선거 전략을 수립한 인물이다. 그는 상대편 후보 캠프 사람인 것처럼 꾸며 비호감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등의 교묘한 선거 전략을 실행에 옮겼고, 이러한 전략은 중앙정보부가 그를 눈여겨봤을 정도로 대단했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제목답게 엄창록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캐릭터인 서창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이는 <킹메이커>가 단지 실제 사건을 영상화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역사를 벗어나 새로운 영화로 태어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승리의 수단을 취우선으로 고민하는 한 선거 기획자의 딜레마를 통해 정치의 본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이 수반된 승리만 의미가 있다고 믿는 ‘김운범’(설경구)'과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서창대의 갈등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이때 두 주인공의 충돌은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두 접근법의 차이를 함축하는 듯 보인다. 거칠게 말해 운범은 민주주의 정치에 규범적으로, 창대는 실증적으로 접근한다. 운범은 고전적인 이상을 지닌다. 그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반면에 창대는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가 정당, 후보가 공공선을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정당과 후보는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에, 시민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몰두한다. 그에게 선거는 철저히 권력 투쟁이 게임의 장일뿐이고, 이데올로기는 정보가 부족한 유권자가 표를 선택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지름길일 뿐이다.
두 주인공의 차이는 그들에게 국민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창대는 국민은 허상이라고 말한다. 그저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존재이기에 자신과 같은 선거 기획자가 계획하는 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그에게 운범은 국민이야말로 정의를 이루고 사회를 움직여 나갈 주역들이라고 일갈한다. 영화는 이와 같은 장면을 다채롭게 변주해 러닝타임을 두 주인공의 대담으로 채워 나간다. 표를 얻는 것이나 돈을 버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는 창대에게 운범은 그 둘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충고한다. 선거 전략에 있어서도 철저히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정책에 접근하는 창대와 달리, 운범은 국민들의 진심과 열망을 정책에 녹여내야 한다며 맞선다.
이때 <킹메이커>는 빛과 그림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출을 통해 정치의 의미에 대해 한 단계 더 깊이 숙고한다. 일견 빛과 그림자를 대비시키는 연출은 김운범의 방식이 옳고, 서창대의 방식은 틀렸다고 답을 내리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창대의 방식이 이전까지의 통념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의 정의와 이상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정치의 냉혹하고도 불편한 현실을 전면에 내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는 서창대의 선거 운동을 철저히 그림자 속에 가두면서 다른 캐릭터들의 대사대로 그에게 협잡꾼의 이미지를 덧씌운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의 표현에는 다른 의미도 숨어있다. 실과 바늘처럼 빛과 그림자는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이고, 또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빛과 그림자가 대비된다는 이미지와 빛과 그림자는 함께 한다는 심상을 모두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서창대와 김운범의 신념은 서로 상극이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바로 그렇기에 둘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나 될 수밖에 없다. "정치란 때로는 짐승이 되는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일"이라는 유시민 작가의 표현대로,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려는 운범과 짐승이 되는 비천함을 견딜 줄 아는 창대는 함께할 때 비로소 정치를 할 수 있다. 그래서 김운범은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믿으면서도 서창대를 멀리하지 못하며 선거 때만 되면 다시금 그를 불러올린다.
특히 이러한 빛과 그림자의 관계는 서창대라는 그림자와 중앙정보부의 이 실장이라는 그림자가 대비되는 장면 덕분에 더욱 돋보이기도 한다. 오로지 표를 획득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이들이지만, 둘은 결정적인 차이를 지닌다. 창대는 승리를 통해 획득해야 할 김운범의 대의인 민주화라는 궁극적인 믿음과 낭만을 지니고 있지만, 이 실장에게는 승리 그 자체가 곧 목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같은 그림자이지만 둘은 빛이 있는 그림자와 어둠만이 가득한 그림자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김운범과 서창대가 외적으로는 대비되는 빛과 그림자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동료 내지는 사제지간처럼 느껴지는 반면, 서창대와 이 실장은 같은 그림자인데도 정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영화는 빛과 그림자의 모티브와 연출을 단지 정치적 신념과 논쟁의 영역뿐만 아니라 정서적 경험으로 전환시킨다. 그 중심에는 서창대의 인생사가 위치한다. 그림자라는 별명을 본인도 싫어한다는 점에서 그의 내면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마음속에서 빛이 우선인지 그림자가 우선인지에 따라 영화의 감정선에는 또 다른 축인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축이 더해지고, 선거 기획자의 내적 딜레마가 전면에 나타난다.
창대는 목포에서 운범을 만나 그의 그림자가 될 기회를 잡는다. 이때 그들이 독대하는 방은 어둠으로 가득 하나, 순간적으로 밝은 빛이 들어왔다가 다시 그림자와 어둠으로 가득해진다. 이때 그 빛은 두 가지 의미로 보인다. 우선 자신이 믿는 대의를 위해 싸우고 함께 하고 싶다는 순수함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 빛이 순간적으로 있다 없어진다는 점에서는 보일 듯 말 듯 꽈리를 틀고 있는 욕망과 야심이 기회를 잡은 모습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서창대의 선거 전략 덕분에 빛이 강해질수록 순수한 대의는 공천에 대한 야심과 충돌하고, 초라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마음속에서는 원망과 좌절이 차오른다.
더 나아가 창대의 내적 갈등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전달된다. 김운범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어도 기념사진 속에 같이 서 있을 수 없는 아픔, 빛나는 김운범을 보면서 언제나 군중 속에 있어야 하는 씁쓸함, 혼자 있으면 빛나고 함께 있으면 기쁜 김운범과 달리 혼자 있으면 고독하고 함께 있으면 존재감 없어야 하는 그의 자격지심. 이 복합적인 감정들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설경구는 물론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김영호로 분한 유재명, 이실장 역을 맡은 조우진까지 배우들의 앙상블이 빛나는 가운데 이선균의 퍼포먼스는 유달리 돋보인다. 다른 캐릭터들이 러닝타임 내에 별다른 변화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준비가 되었는지 거듭 고민하는 서창대의 감정선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것이다.
사실 <킹메이커>는 본래 작년 12월에 개봉하려 했으나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공개 일정이 미루어진 작품이다. 그러나 정치의 이상과 현실, 목적과 수단, 정치를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에 대해서 넓게 또 좁게 들여다보는 영화라는 점에서 <킹메이커>는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욱 뜻깊은 작품으로 느껴질 것으로 보인다. 단지 영화가 시작부터 자막을 통해 실화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재창작한 작품임을 강조하는 만큼, 주요 연도나 배경이 되는 도시와 장소 등에 대해 조금 더 과감하게 상상력을 발휘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변성현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될 <킹메이커>는 이러한 일말의 아쉬움만 제외하면 흠잡을 틈이 보이지 않는 품격 있는 대담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정치의 본질에 대한 빛과 그림자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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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10] 각본가 맹키위츠가 바라본 그 시대의 위선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맹크가 넷플릭스에 공개 되었습니다.
고전 영화 시민 케인의 공동 각본가 맹키위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그가 시민 케인을 쓰게 된 이유나 쓰는 과정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영화사나 미국 당시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면 조금 흥미가 떨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에요.
마치 예전 흑백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이 드는데요. 흑백영화 특유의 화면 질감과 음향이 완벽히 재연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맹키위츠가 보고 들었던 그 당시의 할리우드 권력과 정치인들의 위선이 그대로 영화에 담겨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점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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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워닝 쇼트: 아이 엠 마더> 메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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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30일> 티저 예고편
강하늘 VS 정소민=찐관전잼 맑.눈.광들의 제대로 터지는 코미디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