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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심2025-02-24 15:36:44

경계를 넘어 진화하는 인간 신체에 대한 명상

<미래의 범죄들>

인체는 매우 창의적이라서 항상 새로운 걸 만들어내죠. 다음 세대에 무엇이 남는 지 보려는 것 같아요.

 

 인간의 신체가 변화하면서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감염의 위험도 사라진 멀지 않은 미래. 예술가 ‘사울’과 그의 파트너 ‘카프리스’는 몸에 생겨나는 새로운 장기들에 문신을 새기고, 그것을 적출하는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은다. 인간의 신체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가속 진화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울은 전직 외과의인 카프리스의 도움을 받아 계속 자라나는 몸 안의 장기들을 제거해나가고 있다. 그에게 장기 적출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자 거부다. 하지만 계속되는 몸의 변화와 적출 수술로 인해 그는 제대로 된 음식 섭취는 물론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는다.

 

 어느 날 동료 예술가의 공연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에 사울은 ‘랭’이라는 남성으로부터 자신의 어린 아들의 시체를 해부하는 공연을 진행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사울과 카프리스는 어린아이의 시체 해부라는 일에 윤리적 죄책감과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새로운 퍼포먼스에 대한 기대를 떨쳐버리지 못한다. 한편 랭은 장기를 변형 및 이식해 플라스틱을 인류의 주식으로 삼고자 하는 운동을 이끌어가는 수장으로, 전 세계에 포진된 그의 조직은 일반적인 음식 대신 산업폐기물 등을 원료로 한 합성 플라스틱을 먹으며 살아간다. 그가 사울에게 해부를 부탁한 8살 아들 ‘브라켄’은 기적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자연히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소화할 수 있는 기관을 가지고 태어난 ‘신인류’로, 랭은 사울과 카프리스에게 이러한 신인류의 내부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을 요청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다. 하지만 아이의 배를 갈라 들여다본 내부에는 특별한 소화기관이 아니라 문신이 새겨지고 여기저기 꿰메진 장기들만이 있다. 그리고 아이의 오염된 장기의 배후에는 인간 신체의 변화, 즉 진화의 흐름을 부정하고픈 거대 권력의 ‘정상성’에 대한 고집이 존재한다.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피부 밑의 세계를 직접 열어 볼 수 있게 되면서, 영화 속 미래의 사람들은 가학적인 신체 훼손에 열광한다. 이제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피부 아래를 깊숙히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열광하는 피부 밑의 세계에 ‘의미’란 없다. 그곳에는 오염되고 변형된 피투성이의 장기들뿐이며, 예술가는 애써 이것들에 알량한 의미를 붙여보려 한다. 고통이 없어진 세계에서는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영혼과 미덕의 가치에 대한 감각마저 무뎌진다. 사울이 참가하는 ‘내면의 아름다움 선발대회’ 역시 인격이나 마음의 도덕이 아니라, 단순히 몸 안의 장기들의 생김새와 배열을 평가하는 대회라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렇듯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변화는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그것에 따른 상실 역시 불가피하다.

 

 해부 쇼가 끝난 뒤에도 사울은 여전히 음식을 씹어 삼키고 말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어느 날 아침 음식을 삼킬 수 없어 고통스러워하던 그는 결국 합성 플라스틱 바를 섭취해 보기를 선택하고, 마침내 자신도 계속된 몸의 변형 끝에 플라스틱을 소화할 수 있는 신인류로 거듭났음을 확인한다. 플라스틱 바를 씹어 삼키며 눈물을 흘리는 사울의 얼굴이 흑백으로 클로즈업되는 마지막 장면은 변화한 자신의 몸에 대한 절망을, 혹은 인류의 진화를 직접 체험한 이의 환희를 의미할 것이다.

 

 영화의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8년 만의 복귀작이자 20년 만에 다시 택한 바디호러 장르인 이 영화를 두고 “인류의 진화에 대한 명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변형되고 훼손된 인간의 신체를 꾸준히 다루어 왔고, 그의 영화 속에서 인간의 몸은 정상성의 범주를 교란하며 부서지고 절단되고 뒤틀린 채 관객들에게 공포와 더불어 신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선사했다. <미래의 범죄들>은 크로넨버그가 지금껏 구축해 온 세계관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 신체와 이를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정상성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자아가 자신의 신체의 경계를 확립하기 위해 비자아로서 배척한 것들(피, 체액, 적출된 장기 등), 즉 비체(abject)적인 것들을 적극적으로 스크린에 비추면서 인간의 신체를 중심으로 한 질서와 체계를 가로지르고, 끝내 그것들을 수용하면서 인간 신체의 변화를 암시한다. 관객은 영화를 통해 과도기적 상태에 놓인 인간이 경계선을 넘어 진화하는 변태變態의 과정을 목도하게 된다.

 

 

 

작성자 . 옹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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