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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인2025-02-28 00:26:43

‘우리 편’이 부재하는 전쟁 영화

<시빌 워>(2024)

 

<시빌 워: 분열의 시대(Civil War)>(2024, 알렉스 갈란드)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증오의 단면

작품은 이 가상의 전쟁을 설명하지 않는다. 내전의 원인, 각 편이 주장하는 이념이나 명분은 알 수 없다. 서부군의 중심 세력도 등장하지 않는다. 작품의 화자인 기자들의 대화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대표자로서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대신 수도를 성역처럼 봉쇄하기를 택하고, 역시 미국 국민일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선전을 지속한다. 기자들이 그를 비판하는 것은 그 때문이지, 서부군을 응원해서가 아니다. 궁금해진다, 서부군은 어떤 이들이며 어째서 분리 정부를 내세웠는가, 아무 군대에도 속하지 않는 미국인들은 어디를 지지하는가,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인가 공화당 출신인가?) 그러나 작품은 알려주지 않는다.

오프닝, 카메라는 연설을 연습하며 단어를 반복해 뱉는 대통령을 클로즈업한다. 자신만만한 연설문은 언어일 따름이다. 너무 가까이 맺힌 상은 오히려 흐리고 거의 비현실적이다. 그 사이에는 사실적인 전쟁의 이미지가 있다. 거리를 두어야 보이는 것들과 다가가 거기 머물러야 보이는 것들- 영화는 기자들에게 밀착해서, 때로는 그들의 렌즈를 통해 그것들을 담아낸다. 모든 폭발과 총질이 극적으로 시원하거나 짜릿하지 않고 끔찍하게만 다가오는 까닭은 일차적으로, 기자들의 시선을 따르는 촬영과 연출 때문이다. 더불어, 이들도 관객도 어쩌면 그들 자신도, 군인들의 편과 정체를 구별해 낼 수 없어서 이기도 하다. 영화는 전쟁을 수행하는 이들이 제 목소리라고 믿는 무언가를 삭제하고, 사실상 그들의 목소리가 된 총성과 폭발음, 비명과 신음을 조명한다.

이 전쟁의 한 실마리는 “트와일라잇 존” 근처 유원지에 있다. 리 일행은 한 군인의 시체를 발견한다. 조심스럽게 통과하려는 찰나 총알이 날아든다. 건물 근처로 숨자, 잠복해 있는 두 군인이 보인다. 조엘은 되풀이해 묻는다, 당신들은 어느 편이며 저 건물에는 누가 있는가. 그들의 답도 되풀이된다, ‘저쪽이 쏘므로 이쪽도 쏠 뿐이며’, ‘저 건물엔 총 쏘는 인간이 있다’. 물론 전쟁의 ‘양 쪽’을 거울의 양면처럼 다뤄선 안 되는 경우가 많다.(안타깝게도 우리는 현재진행형의 예시인 러시아 정부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군의 가자 지구 학살을 떠올리게 된다.) 분노도 다 같지 않다. 현재 미국의 법과 사회를 장악해가고 있는 조직화된 혐오(한국은 어떤가)에서 비롯된 분노와, 그에 저항하는 목소리들에 종종 실리는 분노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가 가상의 ‘내전’을 통해 들여다보려는 바는 아마도, 그 억압과 피억압의 권력관계를 따져 보는 행위가 무의미해진 전쟁이 끊임없이 생산하는 분노인 듯하다. 특히 반정부군이 최첨단 장비와 조직화된 군대를 갖고 있다는 설정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미국이라는 국가 내의, 총기(효율적인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도구)를 쥔 증오 말이다.

이에 이어, 또 하나의 실마리는 서부군 주둔지 근처에서 이루어진 끔찍한 조우에 있다. 예상치 못한 전개의 연속으로 영리하게 관객의 불안과 안도를 유도하던 영화는, 관찰자 입장에 있던 기자들이 자신을 정확히 겨냥하는 총구를 맞닥뜨리도록 한다. 거기 조건적 혐오에 기반한 무조건적 폭력의 예시,라고 할만한 무언가가 있다. 제시와 보하이가 시체를 매장하고 있는 군인의 포로가 된 상황, 리와 조엘은 둘 중 조엘이 말문을 열기로 합의한다. ‘남자 대 남자’ 토킹을 시도하자는 일종의 위기 대처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마초적인 군인의 눈엔 더 ‘중요’한 것이 들어왔던 모양이다. 핏빛 색안경을 낀 금발의 백인 군인은 공격적으로 기자들의 출신지를 물으며 누가 “진짜 미국인”인가를 가려내려 한다. 착취자가 ‘발견’한 땅에 건국된 이민자들의 나라에서 그가 말하는 “진짜 미국인”이란, 착취자와 가장 닮아 있거나 닮고자 하는 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는 정답이 없어야 할 질문에 정답이 생겼다. 그 정답은 답의 내용이 아닌 답을 강요당하는 자들의 생김새와 말투에 있다. 질문자가 보고 있는 것은 세 명의 기자가 아니다. ‘라틴계 남자’, ‘금발의 백인 여자’, ‘유달리 두려워하는 아시아인 남자’다. 토니가 거짓말은커녕 입도 제대로 떼지 못할 정도로 부들부들 떨었던 건, 홍콩 출신이어서 라기보단 아시안의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다. 그는 방금 보하이가 악센트가 두드러지는 영어를 구사하는 아시안이‘라서’ 살해당했음을 알고 있다. 그건 ‘피부에’ 곧바로 침투하는 공포이리라 감히 짐작한다. 조엘이 특히 패닉했던 것, 상황이 지나가고 만난 동료 기자들이 ‘새미와 다른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자 조엘이 ‘그들에게도 이름이 있다’고 반응했던 것도, 그 색안경 너머 시선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의 카메라와 거리

‘유원지의 저격수’ 시퀀스로 돌아가 본다. 리는 총알을 피해 몸을 낮추고 차 사이에 숨었다. 주위가 흐려지고, 꽃밭이 보인다. 그때 리의 긴장이 풀리고 스르르 눈이 감긴다. 어쩌면 그는 ‘트와일라잇 존’의 주민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옥상 위의 저격수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며 잔디밭에 물을 주고, 멋진 옷을 사고, 깨끗한 동네를 산책한다. 제시가 건넨 원피스처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일상. 리에겐 그런 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제시의 가족, 리의 가족, 옷가게의 점원처럼- ‘내 코앞으로 시야를 좁히고 그 바깥을 외면하는 삶’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허나 참혹한 현실과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건 때로 특권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그런 날을 보낼 수는 있어도, 리는 ‘그런 방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자주 카메라를 주변의 위험을 파악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그의 시야는 현장에서도 일관되게 넓다. 전쟁에 가까이 다가가지만, 그 일부가 되지는 않는다. 전쟁의 장면들을 곱씹으며 괴로워하고 스스로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는 리는, 자신이 몸담은 장면도 멀리서 관찰할 수 있는 자로 보인다.

서부군이 백악관을 폭격하는 아수라장에서, 자주 패닉해 울던 제시는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고 쉼 없이 사진을 찍는다. 반면 리는 패닉한다. 조엘과 제시가 세 기자의 죽음을 “프로세싱”하는 동안 리는 카시트에 범벅이 된 피를 닦아내기만 했는데, 뒤늦은 프로세싱이 시작된 것일까. 그게 전부는 아닌 듯했다. 수없이 겪었을 폭발과 총성도 근본적인 원인은 아닌 것 같았다. 승리를 앞두고 긴박하게 작전을 수행하는 서부군의 효율적인 움직임, 군복을 입은 동료 방송 기자들의 기묘한 미소, 집요하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제시의 번득이는 눈동자… 따위 모두가 리를 몰아가는 듯 보였다. 리는 그 순간, 그 장면에 ‘포함’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었을까.

이내 평정을 되찾은 리를 선두로, 기자들은 리무진을 공격하는 서부군을 등지고 백악관으로 향한다. 이제까지의 취재가 주로 기자들이 군인들의 뒤를 따르는 식으로 이루어졌던 것과 반대로, 군인들이 기자들의 뒤를 밟는다. 그러나 백악관 내부로 들어가자 다시 위치가 뒤바뀐다. 한 군인은 기자들에게 ‘우리 진로를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협박한다. 냉정한 명령이 아닌 흥분에 사로잡혀 토해낸 고함으로 들린다.

리가 사진을 찍다 얻어맞은 제시를 돕기 위해 카메라를 내리고 다가가며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이별 또한 리가 제시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총을 맞으며 이루어진다. “내가 죽는 장면도 찍을 건가요?”라는 물음에 리는 “어떨 거 같아?”라고 되물었다. 그 복선은 제시가 리의 죽음을 촬영함으로써 비틀려 완성된다. 영화는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을 멈추지 못하는 제시를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지금 무엇을 위해 찍는가,를 묻게 한다. 폭력의 잔상들을 집착적으로 좇는 몰입한 표정이, 달리는 차의 창문을 넘어가며 신나 활짝 웃던 얼굴과 닮아 보였다면 착각일까, 그가 군인들의 흥분을 공유하고 있는 듯 보였다면. 전쟁을 담다가 그 일부가 돼 버렸다면, 포착한 이미지로 무엇을 전할 것인가는 이제 상관이 없고, 그 이미지들 자체가 목적이 돼 버렸다면, 그래도 괜찮은가. 리가 고민하던 바도 이와 닿아 있는 것일까. 영화는 전쟁을 바라보는 매체로 기자의 카메라를 활용하면서도, 그 형태와 거리의 윤리 역시 탐구하려는 듯했다.

백악관을 나갈 용기도 없어 가장 안쪽의 방에 숨어 있다 경호실장을 내보내 투항 협상을 하려던 대통령, ‘적’의 죽음들을 축하하는 그를 클로즈업하며 시작되었던 영화는 그의 죽음으로 끝난다. 조엘은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냐고 묻고, 대통령은 “살려주세요, 저들에게 날 살려달라고 말해요.”라고 애원한다. 제시는 그가 총알에 살해당하는 모습을 찍는다. ‘우리 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군인들이 시체 곁에서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스틸컷- 이 가상의 르포, 위험한 로드무비, 폭력적인 ‘성장’ 영화는, 고요하고 섬뜩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작성자 . 않인

출처 . https://brunch.co.kr/@yonnu2015/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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