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또비됴2025-03-03 22:22:30
사랑으로 점철된 봉준호식 살아남기!
<미키 17> 리뷰
<기생충> 이후 약 5년 만의 신작이다. 시간이 흐른 만큼 세상은 변했다. 그리고 사회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봉준호 감독의 시선도 그러한 듯하다. <기생충>을 통해 한 줌의 빛도 행복도 허락하지 않았던 감독은 <미키 17>을 통해 희망을 얘기한다. 그것도 사랑으로 점철된 희망을. 물론, 그 도착 지점까지 가는 과정은 다수의 작품에서 보여준 세상의 불합리함이 가득하다. 그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힘 없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달라졌다. 이게 관객들에게 덜컹거림으로 작용할 듯 하지만 어쩌면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건 희망이라는 감독의 메시지는 더 확고해보인다.
인생은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매듭을 풀기 어렵다. 미키(로버트 패틴슨)의 인생이 그렇다. 친구 티모(스티븐 연)의 꼬드김에 마카롱 사업을 하다가 폭삭 망한 그는 무서운 사채업자를 피해 티모와 함께 지구를 떠나려 한다. 외계 행성 개척 우주선을 타기로 마음먹은 것도 잠시, 미키는 자신에게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고, 가장 고된 일을 도맡고,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익스펜더블로 지원한다. 이 비인간적 기술로 반복 재생되는 미키는 부속품처럼 우주선 내 노동자로 살아간다. 17번째 복제로 태어난 미키는 얼음 행성 생명체인 ‘크리퍼’를 만나 죽을 위기에 놓인다. 다행히 살아 우주선으로 복귀한 안도감도 잠시, 왓더~~ 자신의 옆에 미키 18이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행성 당 1명만 허용된 익스펜더블이 법규를 위반한 ‘멀티풀’ 상황.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그럼 누가 죽어야 할까? 17? 18? 에잇 신발~~
| 이름 없는 노동자의 이름(실존)찾기
미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수없이 등장하는 이 질문. 어쩌면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키는 이 질문을 매번 듣지만, 대답을 피한다. 정확히 말하면 대답하지 못한다. 그는 죽음을 반복하는 복제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운명을 가진 이에게 죽음의 개념은 우리와 좀 다르다.
그런 그에게 미키 18이 나타나고 처음으로 실존에 대한 고민을 한다. 미키 17은 큰 범주안에서는 본인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객체로 받아들인 미키 18을 본 후, 자신의 삶이 빼앗길까봐 두려워한다. 특히 멀티플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미키 17은 자신의 생존권을 주장하며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동안 바보처럼 수동적인 삶을 택했던 미키 17은 이 상황을 통해 비로소 능동적인 삶을 취한다. 그는 장대한 미래를 위한 목적으로 실험 쥐처럼 쓰이고, 부속품처럼 사용됐던 자신의 삶이 정작 자신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나의 삶은 어떤 의미고, 나의 죽음은 존중받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이 그것.
극 중 되풀이되는 그의 죽음은 존중받고 있지 않다. 죽는 게 직업이지만, 다수의 이익과 생명을 위한 목적에 사용되는 일회용품 취급을 받는 건 참혹할 따름이다. 복제품임에도 생명을 갖고 태어났지만, 독재자 케네스(마크 러팔로)는 보란 듯이 그 생명을 박탈까지 한다. 일말의 존중 없이 그게 직업이니 그 본분을 다하라는 말뿐이다. 이는 위험하고 질 낮은 노동 현실에 놓인 이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고, SF 장르를 뚫고 현실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이처럼 지난한 과정을 통해 펼쳐지는 후반부는 존중받아야 마땅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미키 17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복제 인간이지만, 어엿한 생명체로서 인간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 그 노력과 결단의 값은 다행히도 긍정적이다.
| 봉준호 필모그래피의 집대성, 복제품?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집대성한 작품이기도 하다. 우주선 안에서 벌어지는 사회는 <설국열차>의 사회와 비슷해 보이고, 행성의 원래 주인인 크리퍼는 <옥자>의 슈퍼 돼지를 연상시킨다. 나사 빠진 듯한 미키의 모습은 <괴물>의 강두(송강호)를, 크리퍼와의 대화를 위한 통역기는 <설국열차>의 통역기의 초기 버전처럼 보인다.
그동안 쌓아 올린 봉준호 감독의 이력, 그리고 영화 속 장치들이 이 영화 곳곳에 보이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감독 자신의 모든 걸 갈아 넣어서 만든 게 영화라면, 제목처럼 이 영화는 ‘봉준호 8’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장편 8번째 작품이다.)
그만큼 <미키 17>에는 그동안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 비판, 계급에 따른 불평등, SF 설정을 가져와 희망 없는 현실을 빗댄 이야기 등이 들어있다. 이런 소재와 주제 이곳저곳에 섞여 있는데, 이를 찾는 재미는 쏠쏠하다. 하지만 그 활용 면에서는 물음표다.
<기생충> 정도는 아닐지라도 이번 영화는 사회 문제로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깊은 구렁텅이에 빠질 것 같은 우려 때문인지, 웃고 넘어간다. 때때로 깊이 들어가도 될 듯한 부분도 살짝 발만 담근다. 물론, 이 부분이 크게 모난 구석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기생충>을 생각하고 온 관객들이라면 아쉬운 지점인 건 맞다.
| 서구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봉준호식 일갈, 흘러넘치는 건 흠!
아쉬움을 메우는 건 동양인으로서 서구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비판 의식에 있다. <미키 17>은 우주선 내 개척 사회를 이끄는 케네스와 일파(토니 콜렛) 부부를 통해 멍청한 독재자의 민낯을 보여주고, 정치와 종교(특히 개신교)와의 결탁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지를 오롯이 보여준다. 이는 현 미국 사회는 물론, 유럽을 포함한 서구 사회를 비판하는 요소로 활용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얼굴 마단인 케네스와 뒤에서 조종하는 일파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어떤 부부가 생각난다.
우주 행성을 개척한다는 목적으로 모인 독재자와 그를 신봉하는 이들의 모습, 그리고 행성 주인인 크리피를 열등한 벌레로 보고 이들을 말살하려는 모습은 개척이라는 목적 아래 영토 및 물적 확산을 위해 식민지를 단행했던 서구 사회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서 존중 대신 하대하고, 약탈하고, 이용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매스껍다. 특히 크리피 꼬리를 잘라 믹서기에 갈고 최고의 소스라 칭하는 일파의 모습은 혀를 내두를 정도. 중요한 건 이들의 만행을 정작 자신들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3자의 시선이자, 동양인의 시각으로 서구 사회를 그린 영화는 객관성을 확보하며 비판 어린 시선에 무게감을 더한다. 이에 때때로 고민과 통쾌함을 번갈아 갖는 재미가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이런 이야기들이 흘러넘친다는 것이다. 앞서 미키를 통해 하위 계층 노동자의 현실과 권력과 종교의 결탈, 독재자의 만행, 서구 사회의 어두운 역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137분에 넣다 보니 과부하가 걸린다. 보기보다 인풋이 많고 그에 따른 생각이 번지다 보니 순간순간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동안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탓일까?
| 파워 오브 러브, 사랑만이 살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한 줄을 남길 수 있는 건 ‘사랑’ 덕분이다. 영화에서 ‘사랑’은 그 중요성이 크다. 먼저 감독의 첫 번째 멜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키와 나샤(나오미 애키)의 사랑은 그 위력을 발휘한다. 많은 이들에게 소모품처럼 여겨지는 미키지만, 오로지 나샤에게는 중요하고 사랑스러운 한 사람이다. 복제 번호는 다르지만 그 또한 미키로 인정하는 유일한 사람, 시험체로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그 옆을 지키는 사람이다. 어쩌면 미키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 주는 이가 바로 나샤다.
이들의 멜로 라인을 견고하게 쌓는 건 이 힘든 시기에 필요한 건 ‘사랑’이라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극 중 관계를 맺는 이들은 각자 필요에 의해서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서로를 이용하고, 착취한다. 하지만 미키와 나샤는 무조건적인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한다. 독재자 및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없는 그 마음이 이들에게는 있다.
후반부 크리퍼와 전쟁을 치를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를 면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미키 17, 18과 나샤 등이다. 마음속에 사랑과 존중이 있는 이들이기에 비로서 크리퍼와 소통을 할 수 있고, 참혹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감독이 극 중 산재한 문제를 ‘사랑’이라는 단어로 손쉽게 해결한다는 생각을 뿌리치기는 힘들다. 하지만 혼란스럽고 혼탁한 현실 사회가 더 심화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사랑’의 의미는 위대하고 더 커 보인다. 사랑 또는 존중이 실종된 시대에 살고 있어서 더 그런 느낌이 크다. 이 잔혹한 사회 실상이 염세적이었던 감독의 마음마저 바꾼 듯하다. 그만큼 사랑은 위대하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덧붙이는 말: 극 중 미키의 삶을 바꾼 매개체로 빨간 버튼이 나온다. 그 버튼을 누른 후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그는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빨간 버튼이 있을 터. 그 버튼을 또 한 번 누를 때가 오기 마련인데, 두렵지만 막상 누르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자아가 보인다. 미키처럼 말이다. 생존 자체가 힘든 세상에서 자신만의 빨간 버튼을 찾고 눌러보면 어떨까! 사랑도 하고!
사진 제공: 워너브라더스
평점: 3.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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