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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2025-03-04 00:16:39

유약한 한줄기 빛에 담긴 것들

영화 <화이트버드> 리뷰

 

 

화이트 버드 (White Bird, 2025)

유약한 한줄기 빛에 담긴 것들

개봉일 : 2025.03.12.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21

감독 : 마크 포스터

출연 : 아리엘라 글레이저올란도 슈워드브라이스 게이사르질리언 앤더슨헬렌 미렌

 

감동적인 성장 영화로 사랑받았던 <원더>의 세계관을 일부 이어받은 <화이트 버드>는 다정하고 따뜻한 영화다. <원더>의 주인공 어기와 친구들의 여정을 통해 알 수 있었듯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우주를 가진 소중한 존재다하지만 수많은 우주로 가득 차다 못해 매 순간 충돌과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이 세상은 모든 우주를 존중하고 박수 쳐 줄 여유가 없다.

그래서 우리의 우주삶은 항상 반짝일 수 없고 언젠가는 깊은 어둠에 잠기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이렇게 삶이 어두워졌을 때가장 필요한 건 빛이다광대한 태양까진 아니더라도 그저 눈앞을 비춰주는 따뜻한 한 줄기 빛이라도 생긴다면 다음을 기대할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화이트 버드>는 누군가에게 이 한 줄기 빛이 되려 태어난 영화이자 빛의 소중함을 잊은 이들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설화다이야기는 낯익은 소년 줄리안의 일상에서부터 출발한다. <원더>에서 외모를 이유로 동급생 어기를 무시하고 따돌렸던 줄리안은 결국 강제전학을 가게 된다그리고 몇 년이 지나 중학생이 된 현재의 그는 새로운 동네에 정착해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학생을 목표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조용해진 모습이지만 줄리안은 여전히 다정하고 평범한 소년과는 거리가 멀다.

 

줄리안은 별다른 감흥 없이 첫 등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후드를 푹 뒤집어쓴 그는 바깥 소음을 모두 차단시켜주는 헤드폰으로 커다란 음악을 들으며 자신만의 세상에 푹 빠져있다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줄리안이 헤드폰을 내려놓자 그의 할머니 사라가 깜짝 손님으로 등장한다사라는 오랜만에 만난 손자를 저녁 테이블로 이끈다그리고 줄리안의 세상을 덮고 있던 커다란 음악 대신 자신이 만났던 다정하고 용감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그의 귀에 잔잔히 흘려보낸다.



 

사라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이렇게 말한다. “삶이 편안하면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라고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줄리안은 당연히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기에 다른 소년 어기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사라는 줄리안을 보며 한 소년을 만나기 전의 자신을 떠올렸고자신이 그러했듯 줄리안이 그 소년이 보여준 용기와 다정함을 느끼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길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1942년 오베르빌리에의 소도시유복한 집안의 딸인 사라는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친절한 동급생들과 선생님부족할 것 없는 생활과 꿈을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렘사라는 이런 아름답고 밝은 것들 한가운데 앉아있는 아이였다하지만 나치의 세력이 급성장하며 세상엔 깊은 어둠이 내려앉았고 사라의 삶에 드리웠던 빛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남은 작은 빛을 끌어모으기 위해 사라의 가족과 유대인들을 따돌리고 죽음으로 몰고 간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사라에게 손을 내민 건 따돌림당하던 동급생 줄리안이었다. (이후 글에 나오는 줄리안은 사라의 손자가 아닌 동급생 줄리안을 의미함사라가 빛 한가운데 앉아있는 소녀였다면 줄리안은 어둠 속에 있는 소년이었다.

이야기의 초반부사라가 친구들과 함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사라는 밝은 스크린을 앞에 두고 친구들과 웃고 있고 줄리안은 어두운 영사실 창문 너머로 사라를 바라보고 있다이는 이 지순한 로맨스의 모든 것을 응축하고 있는 장면이다.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줄리안은 언제나 사라에게 빛을 보내고 있었지만 충분히 밝은 곳에 있었던 사라는 그 작은 빛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한다하지만 예쁜 새 구두로는 지나가기 힘든 가파른 눈밭을 가까스로 해치고길고 어두운 하수관을 걸어간 끝에 마주한 어두운 곳간에서 사라는 작은 빛 속으로 조심히 들어가게 된다.

사라와 줄리안이 처음 곳간에 발을 들이는 장면을 보면 천장 반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에 어둠이 내려앉은 것을 볼 수 있다이때 줄리안은 사라에게 건초더미에 숨으면 된다고 알려주는데 그가 알려준 장소엔 밝은 빛이 한줄기 떨어지고 있다줄리안의 안내를 받고 올라간 사라는 어둠을 벗어나 다시 빛 아래 서게 된다.



 

줄리안이 사라에게 보낸 빛 한줄기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처음 줄리안이 사라에게 보냈던 영화관 영사기의 빛은 심심풀이 영화 한편과 한 소년의 짝사랑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그다음 곳간에서 줄리안이 사라를 빛이 떨어지는 건초 더미에 올려줬을 땐 소녀의 생명을 구한 소년의 다정한 용기로줄리안이 곳간에 튼 영사기의 빛은 두 사람이 함께하는 무한한 세상과 영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희망 그 자체로 의미가 확장된다.



 

<화이트 버드>는 사라의 영원한 빛이 된 줄리안처럼 관객에게 쉽게 잊을 수 없는 따뜻한 무언가를 남긴다세상이 어두워져도 빛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영사기와 영화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는 희망까지.

인류는 잔인한 실수를 반복하고 어둠은 수시로 찾아온다하지만 줄리안과 사라처럼 어둠에 갇힌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이들이그 빛을 받아 새로운 길을 찾는 손자 줄리안 같은 이들이그리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 상영관을 밝혀주는 이들이 있는 한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


작성자 . 혜경

출처 . https://blog.naver.com/hkyung769/22378250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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