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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5-03-04 12:36:54

케빈의 에바에 대하여

<케빈에 대하여>(2012)

 

 

 

 

토마토 축제 속 행복해 보이는 표정과 대비되는 대사. 토마토와 글씨, 빛 모두 마치 피를 상징하는 듯 에바의 표정은 점차 무표정으로 변화하며 빨간색으로 가라앉는 모습부터 누군가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데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마저 감수한 듯한 모습까지. 에바는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빨간색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이 시선 때문에, 에바 스스로가 옭아맨 족쇄 때문에. 이 영화는 어쩌면 케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에바, 즉 케빈의 앞에서 엄마의 '연기'를 시작하게 된 에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케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케빈을 통해 에바를 보여줘야 했기에.

 

 

 

 

 

괴성을 지르며 시끄럽게 울던 갓난아이인 케빈을 아이의 울음소리가 먹힐 정도로 시끄러운 공사장 근처까지 데려가는 순간 마치 해방한 듯 평온해진, 혹은 처연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에바의 모습에서 흔히들 말하는 '정상적인' 모성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에바와 케빈 둘 중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관계이지만 결국 에바에게 모성애는 생겨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어긋난 모자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케빈은 마치 에바에게 복수하듯 에바의 신경을 긁어놓고 화를 돋우는 행동들을 한다. 이러한 케빈의 행동은 자신의 엄마인 에바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아챘고 이 잔인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자기 스스로 사랑받지 못하는 게 당연한 아이가 되는 결정을 내렸던 것 아니었을까. 언제 자신을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혹여나 에바가 자신을 버리게 된다면, 케빈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상황을 이해할 만한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 상황을 당연하다고 합리화할 만한. 그렇다면 과연 '정상적인' 모성애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디까지가 정상적이고, 또 어디까지가 비정상적일까. 그에 대한 기준은 누가 만들어내는 것이고, 우리는 '정상적'인 기준에서 에바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가? 

 

 

 

 

 

우리는 ‘엄마’라는 단어가 가지는 힘을,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정상적인’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의 어떤 행동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케빈을 괴물로 만든 것은 결국 에바인 건가? 에바는 영원히 아들이 저지른 죄를 마치 자신이 저지를 죄처럼 속죄하며 죄책감에 살아야 하는 것인가,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에바는 엄마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에바는 흔히들 말하는 ‘좋은 엄마’가 되는 것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바’의 인생은 실패한 것인가? 에바의 입장에서 케빈이라는 아이를 낳는 순간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아꼈으며 케빈을 낳기 전의 에바만의 인생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실패가 아닌 강제적인 소멸에 가깝다. 

 

 

 

 

 

서로가 서로를 원하지 않았던 관계 속에서 에바는 케빈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랐고, 케빈은 에바에게 어떻게 사랑받아야 할지 몰랐다. 사건이 일어나고 2년이 지난 후, 에바는 케빈에게 묻는다. 이제는 말해달라고, 왜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갔는지. 케빈은 대답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복수라는 단어의 탈을 쓴 채 했던 행동들은 전부 엄마에게 진정한 사랑을 원했기 때문에 했던 것이라고. 그것이 뒤틀린 사랑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작성자 .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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