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025-03-06 12:38:38
변화의 바람에 몸을 맡기다.
영화 [콘클라베] 리뷰
이 글은 영화 [콘클라베]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 단절, 내부의 적.
사진 출처:다음 영화
차세대 교황 프로듀스 101을 진행하는 동안, 단장인 로렌스(랄프 파인스)를 비롯한 추기경들은 성당에 갇혀 있게 된다. 공명정대한 결과를 위해 엄격한 과정을 견뎌내는 추기경들의 여정이 사뭇 답답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건하며 사명감마저 느껴진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견고해야 할 설정인 이 "단절"은 (물론 제목 자체에서도 쉽게 알 수 있지만) 굳게 닫힌 문으로 대변되고, 물 샐 틈 하나 없이 모조리 굳게 닫혀 있다 못해 봉인까지 되어 있는 문들을 보고 있자면, 알게 모르게 인물들이 겪고 있을 긴장감이 얼마나 클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은 외부와의 단절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내가 고립되거나 무언가를 숨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 속의 회의들은 거의 모두 밀실(?)에서 이뤄지는 반면 로렌스가 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은 복도에서 이뤄지는 것 또한 그러하고. 비밀을 가진 후보들과의 진실게임(?)이나 서거한 교황의 숨겨둔 진실을 파헤치는 일도 모두 방으로 침입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영향을 받을 만한 외부와의 단절을 위해 등 뒤로 세상을 가린 채 문을 쾅하고 닫았건만. 진정 자신들이 조심했어야 할 것들은 그 안에 함께 있는 추기경들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목을 옥죄며 천천히 함께 썩어가고 있었지만. 로렌스마저도 그 냄새가 자신들의 갇힌 세계에 퍼질 때까지 알지 못했다.
냄새를 감지한 된 순간부터 로렌스의 귀에는 누군가 문을 쾅쾅 쳐대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안에 갇힌 자신들인지. 아니면 밖에 있는 자신들인지는 알 수 없었으리라.
다수와 소수, 차별을 그리는 법
사진 출처:다음 영화
또한 영화는 다수와 소수로 대변할 수 있는 메시지를, 아름다움이라는 치사한(?) 방법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주로 인물들의 배치, 움직임의 방향, 혹은 의복으로 이뤄진다. 이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전해지는 메시지 덕에 영화를 보는 동안 그들의 입장차이, 의견의 일치 정도 등을 헷갈리지 않게 습득하고 따라갈 수 있다.(오히려 여러 버전으로 불리는 이름이 더 헷갈릴 지경)
이 아름다운 선물을 보는데서 오는 기쁨이 매우 커서, 종잡을 수 없는 추기경들 사이의 암투 속에서도 숨 쉴 수 있는 틈이 충분히 생긴다. 마치 크게 내뱉은 심호흡 후에 다시 잠수하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이 와중에도 직업병이 도져버린 내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인,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차별 혹은 구별을 볼 수 있는 장면을 말하라 한다면, 가만히 서 있는 추기경들 사이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수녀들의 모습을 비출 때 라고 할 것이다.
마치 적혈구와 백혈구 사이를 조심해서 돌아다니는 수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낼 수 없는 수녀들의 처지도. 단 한 번의 눈길도 그들에게 주지 않는 추기경들의 모습도. 그러면서도 정적임과 동적임으로 표현되는 그들의 움직임도. 이 영화가 말하려는 점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그 장면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이 신(Scene)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바람, 이 모든 폭발의 시작.
사진 출처:다음 영화
폭동에 의해 이 완벽하다 생각했던 밀실(?)에 틈이 생기고 난 후. 가장 먼저 이곳으로 넘어온 것은 다름 아닌 바람조각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로렌스는 크고 견고한 문으로 성추문이나 매점매석 같은 큰 것들만 막아내면. 교황이 될 자를 쉽게 고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바람은 아주 사소하지만 모든 썩은 냄새들을 품에 안고 유유히 등을 보이고 멀어지면서 그에게 큰 물음을 던졌다.
자격. 그리고 변화를 대하는 마음가짐.
극 중 로렌스는 콘클라베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괴로워했다. 공적인 임무는 물론이고 자신이 성직자로서 가진 의심까지 안은 채 그 어떤 인물보다도 쓸쓸하며 갇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작은 공기의 날갯짓 덕에,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 대해 단언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순간부터. 로렌스는 묘하게 안정되고 편안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분명 불청객이라 생각했을 바람이었지만. 그 덕에 자신이야 말로 스스로가 갇혀 있는 콘클라베 안에서 두꺼운 문을 부수고 나올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거북이를 고이 풀어(?) 주고, 수녀들에게도 따스한 시선을 던지는 모습에서. 로렌스의 성직자 생활이 다시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확신을 의심하는 과정에 언제나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제목인 콘클라베(Conclave)는 라틴어로 (열쇠로) 잠글 수 있는, 혹은 잠근 방을 의미한다.
[이 글의 TMI]
1. 어제 산 타는 바람에 몸살 나서 오늘 하체 못함.
2. 이틀만 회사 나가면 이번 주 끝!!
3. 당근 5킬로 샀음. 라페 가즈악!!
#콘클라베 #영화리뷰 #최신영화 #랄프파인즈 #에드바르트베르거 #영화리뷰어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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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아가는 그 작은 순간들
1990년대 중반 뉴욕의 따뜻한 정취와 시대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레트로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리뷰입니다. 미국 작가 조안나 래코프가 2014년 출간한 자서전 ‘My Salinger Year’을 원작으로, 2013년 〈라자르 선생님〉으로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고 제36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최우수캐나다작품을 수상한 필리프 팔라도 감독이 각색을 맡아 2020년 열린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수작이지요. 20대의 주인공이 꿈을 찾아 성장하는, 어떻게 보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로 지난주 배급사 시사회를 통해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마이 뉴욕 다이어리〉 출연진, 줄거리 정보
수잔나, 당신은 작가입니까?
미국 버클리에 살던 20대 작가 지망생 조안나, 방학을 맞아 잠시 뉴욕에 사는 친구 제니의 집에 머물다 그곳의 분위기에 심취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결심합니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일자리가 필요했고, 마침 인력사무소를 통해 작가 에이전시에 취직, 지적이고 똑 부러지는 상사 마가렛의 업무 보조일로 그녀가 담당하는 작가들과의 일정 조율과 그중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에게 온 팬 레터를 파쇄하고 팬들에게 편지를 받지 않는다고 답장하는 일을 주로 하게 됩니다. 그렇게 매일 똑같은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답답해하던 어느 날, 샐린저가 30년 만에 출간하는 책과 관련된 일을 맡게 되면서 단지 유선으로의 대화이지만, 작가임을 깨닫게 해주며 글쓰기를 독려하는 그의 말에 용기를 얻게 되는데...
예고편 │Trailer
https://tv.naver.com/v/23976657
원제 : My Salinger Year│감독·각본 : 필리프 팔라도│원작 : 2014년 조안나 래코프의 동명 소설│출연진 : 마가렛 퀄리, 시고니 위버, 팀 포스트, 더글러스 부스 외 多│장르 : 드라마│상영 시간 : 101분│개봉일 : 2021년 12월 9일│국가 : 캐나다, 아일랜드│등급 : 12세 관람가│평점 : 로톤 토마토 신선도 71% 팝콘 65%, IMDB 6.4, 메타 스코어 50점│시청 가능 서비스 : 현재 극장 상영 중(9일부터)
신입과 대표,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
트렌디하고 책임감이 넘치는 에이전시 대표 마가렛에는 오랜만에 찾아온 시고니 위버가 역시 관록을 보여주며 탄탄한 연기력으로 부드럽지만 단호한 카리스마를 가진 캐릭터를 선보입니다. 여기에 주인공 조안나에는 넷플릭스 〈조용한 희망〉, 근래 〈세버그〉 등에서 조금씩 입지를 다지고 있는 마가렛 퀄리가 맡아 대선배 앞에서도 크게 위축되지 않은 매력을 발산하며 신입사원의 풋풋함과 패기를 드러내주죠. 더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주지만 실루엣과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제3의 주인공 J.D. 샐린저(팀 포스트)의 매력은 관람한 후 자연스럽게 그의 책을 읽고 싶게 만들고 이들이 함께하는 90년대 뉴욕 문학계의 향수와 거리를 재현한 풍경 또한 이야기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려 줍니다.
조안나, 하루에 15분이라도 글을 쓰세요
젊은 시절을 지나온 관객이라면 누구나 그려봤을법한 자신만의 이상향이 있을 것이고, 5개 국어를 구사하며 전 세계를 여행하는 작가를 꿈꾸는 주인공의 모습에 금방 빠져들어 꿈을 위해 뉴욕 생활을 단박에 결정하는 단호함에 박수를 쳐줄 수 있을 듯합니다. 물론 사회 초년생의 패기로 치부될 용기이지만, 원작자 본인이 오래된 작가 에이전시 ‘해럴드 오버’에서 1년여간 일했던 경험을 엮은 회고록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당시 자신의 느꼈던 현실적 감정들이 잘 녹아들어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찬란하게 빛났던 그 시기를 잘 묘사해 주죠.
일정 부분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떠올리실 듯한데, 개인적으로는 적은 분량에도 주인공에게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은 얼굴 없는 작가 제리 때문에 〈인턴〉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벤이 생각났습니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의 관계, 분위기 등은 추워진 날씨를 녹여줄 만큼 따뜻했고, 결말에 이르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각성하는 장면에서 무한한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되죠. 아마도 인터넷에 글을 쓰거나 출간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대목에서 많은 공감을 하실 듯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흘러가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시련이나 고난이 없이 무난히 흘러가는 것에 너무 잔잔하다라 볼 수 있지만, 그마저도 90년대 배경의 뉴욕에 기분 좋게 보실 수 있을 듯합니다. 저야말로 슬럼프 아닌 슬럼프였는데 이걸 보고 다시 한번 파이팅을 외쳐보는 계기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네요. 즐거운 밤 되시고요, 이상 글쓰는 식팔이 모모파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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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감정의 파노라마
정말 마음이 아팠던 순간을 만나면 누구나 울음을 터뜨린다. 마음껏 눈물을 흘리면서 그 슬픔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면 마음속에 있는 무거움과 압박이 조금 해소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매 순간이 기쁨으로 가득 차있다면 물론 행복하겠지만, 실제 인생에선 기쁨을 느낄 시간보단 아픔과 슬픔을 느끼는 시간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슬픔의 감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 영화가 바로 <인사이드 아웃> 1편이다.
2015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기쁨, 슬픔, 까칠, 분노, 소심이라는 감정들이 11살 라일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무척 흥미롭게 보여줬다. 디즈니의 픽사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 감정들과 기억을 처리하는 공간을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창조해 냈다. 기쁨을 담당하는 조이가 조종간을 잡으면 라일리도 기쁨을 느끼고, 분노를 담당하는 버럭이가 조종간을 잡으면 화를 낸다. 실제 라일리가 느끼는 상황에 따라 감정이 변화하는 모습을 무척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쉽게 화면으로 담아냈다.
[첫 번째 감정] 불안
이번 <인사이드 아웃2>는 사춘기가 된 라일리의 감정들을 다룬다. 더 확장된 감정에 어찌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라일리의 모습과 감정들을 보여준다. 특히나 불안은 라일리의 행동을 흔드는 가장 큰 감정이다. 라일리는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 그리고 학업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불안은 라일리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불안으로 인해 라일리는 자주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영화는 라일리가 시험 성적에 대한 불안으로 밤잠을 설치고, 친구 관계에 대한 걱정으로 식사도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사춘기 청소년들이 겪는 공감할 만한 상황이다.
영화는 라일리의 불안이 어떻게 그녀의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불안한 감정에 휩싸인 라일리는 종종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작은 실수에도 크게 자책한다. 이러한 모습은 불안이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두 번째 감정] 당황, 따분, 부럽
불안만 있는 건 아니다. 불안이 주로 영향을 주긴 하지만 중간중간 당황이나 부끄러움을 느끼는 포인트도 늘어난다. 라일리가 학교에서 발표를 하다 실수를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말을 더듬는 순간들이 그 예이다. 특히나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반응했다가 실수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한 상황이다.
따분함을 느껴 누군가를 비꼬거나 무시하는 감정도 자주 찾아온다. 라일리는 수업 중에 딴짓을 하거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청소년들의 전형적인 태도로, 영화는 이를 통해 라일리의 감정 변화를 더욱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부러움도 청소년기에 많이 나오는 감정이다. 라일리는 반에서 인기 많은 친구나, 학업 성적이 우수한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이는 사춘기 시절 많은 이들이 겪는 감정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면서 생기는 부러움이 자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 번째 감정] 자아 형성
영화 초반 자아의 모습은 하얀색이거나, 빨간색이다. 단색으로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던 자아는 영화 후반에는 다채로운 색깔로 변화한다. 상황에 따라 색깔이 이리저리 변화되며, 이는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을 상징한다.
자아 형성의 과정을 사회심리학적 이론과 연결해 보면, 이는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과 관련이 깊다. 에릭슨에 따르면, 사춘기 시기는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라일리는 영화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며 자신의 자아를 찾아간다. 이는 에릭슨의 이론이 제시하는 자아 정체성 확립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이 과정을 통해 라일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점점 더 명확히 하게 된다. 이는 청소년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영화는 이러한 자아 형성의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내며, 라일리가 성장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담아낸다.
결론적으로 1편의 신선함에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훌륭한 픽사의 감정 세계와 감정의 작용 방식을 영상으로 무척이나 쉽고 감동적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라일리의 감정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사춘기를 겪는 모든 이들에게 큰 위로와 공감을 줄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감정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다양한 감정들이 조화를 이루며 우리의 자아를 형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사이드 아웃2>는, 감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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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들은 가라~ 마블리 표 19금 액션
<범죄도시> 시리즈의 마석도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생지옥에서 살아남았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황야>는 국내 대표 프랜차이즈 영화 캐릭터의 장점과 우리나라 특징을 잘 살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가져와 섞은 작품이다. 두 영화의 서로 다른 장점을 취했지만, 신선함은 떨어지고, 예상보다 캐릭터와 세계관은 잘 붙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딱 하나! 악어도, 갱단도, 돌연변이도, 심지어 미친 과학자도 주먹 하나로 때려잡는 마동석의 속 시원한 액션이다. 이번에도 액션으로 대동단결! 마동석의 주먹은 죽지 않는다.
대지진이 일어난 후, 세상은 무법천지로 변한 서울.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남산(마동석)은 지완(이준영)과 함께 사냥하러 다니고, 얻은 고기는 친딸처럼 여기는 수나(노정의)의 마을로 가져가 물물교환으로 판매한다. 어느 날, 수나 앞에 의문의 선생님(장영남)이 나타나고, 10대 청소년들이 인류의 미래라며 자신과 함께 물과 식량이 충분한 아파트로 가자고 제안한다. 아픈 할머니와 함께 좀 더 나은 곳에서 생활하기 위해 수나는 어렵게 이주를 결심한다. 하지만 그곳엔 미친 과학자 양기수(이희준)가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뒤늦게 이를 눈치챈 남산은 지완과 조력자 은호(안지혜)와 함께 아파트로 향한다.
<황야>는 그동안 마동석 표 액션 영화와는 같은 듯 다른 느낌을 준다. 기시감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눈에 띈다. 바로 19금 액션과 다채로움이다. <범죄도시> 표 액션의 장점이자 단점은 타노스가 와도 마석도 형사의 원 펀치로 모든 게 정리된다는 것, 그리고 혼자 모든 적을 소탕한다는 것이다. 1편부터 3편까지 이 기조는 계속 반복되어 왔는데, 3편은 적의 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차별화를 보여줬지만, 그 효과는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이번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이는 <범죄도시> 시리즈의 무술감독이었던 허명행 감독. 그동안 얻었던 시행착오를 통해 <황야>에서는 액션의 수위를 높이고, 다양한 액션을 구사하는 인물의 수를 늘린다.
양기수 박사의 미친 실험으로 파충류와 이종교배가 되어 찔리고 잘려도 재생되는 돌연변이들은 목이 잘려야 끝이 난다. 이런 설정을 통해 남산 이하 지완, 은호는 손에 피를 흥건하게 묻힌다. 특히 은호의 부하들이 갇힌 지하 감옥 장면에서 돌연변이와의 한판 대결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지는 총격 액션은 보는 맛을 더한다. 감독은 캐릭터의 성격과 파워에 따라 각기 다른 총을 부여하고 그에 따른 액션을 선사한다. 더불어 총은 총알을 발사할 때만 사용하는 무기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게 하는 장면도 나온다.
마동석의 액션이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주변 인물이 합세한 액션도 볼거리다. 특히 안지혜의 액션은 발군이다. 마동석의 액션은 무게중심을 땅에 박고 강한 파워로 적을 제압하는데, 안지혜의 액션은 긴 다리를 이용한 킥, 빠른 스피드와 지형지물을 이용한 액션을 구사하며 그 재미를 더한다. 극 중 군인 출신으로 나이프를 자유자재로 적의 몸에 꽂는 움직임이 너무 좋다. 뭐랄까. 마동석 사단 비장의 무기랄까. 다채로움 측면에서 그녀의 액션은 플러스 알파다.
이에 마동석 액션에도 다변화를 꾀한다. 전직 복서 출신으로 등장하는 남산은 아파트 복도에서 적과 대적하는데, 이때 등장하는 액션은 프로레슬링 기술이다. 달려가며 상대방의 목이나 가슴을 팔로 걸어서 넘어뜨리는 ‘클로스라인’ 등 마치 복도를 사각의 링처럼 사용한다. 복서보다 전직 프로레슬러 출신이라고 하는 게 맞을 정도. 더불어 치유 능력을 지닌 군인과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원 히어로 액션에 허들을 더 부여해 균형감을 맞추려고 했던 시도도 눈에 띈다. 물론, 그래도 마동석, 아니 남산이 이기지만 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허명행 감독이 누구인가. <신세계>의 엘리베이터 액션 장면 <범죄도시2>의 버스 액션 장면을 만든 그는 좁은 공간에서 펼치는 액션에 일가견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아파트의 길고 좁은 복도를 배경으로 액션을 구사하며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보여준다. 빠른 카메라 워킹으로 속도감을 높이고, 액션과 사운드로 파워를 실은 장면들로 긴장감을 높이는 등 액션 장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헐거운 스토리 짜임새, 디스토피아 영화에 자주 나오는 캐릭터들이 반복되는 듯한 느낌의 인물 설정, 강한 액션에 비집고 들어오는 유머, 잘 붙지 않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세계관 접목 등 종종 영화의 질주에 빨간불을 밝힌다. 하지만 이 영화의 중심은 액션! 액션! 액션! 허명행 감독은 불도저처럼 뚝심 있게 액션으로 밀고 나간다. 그에게 필요한 건 흡입력 있는 이야기보다 기시감을 줄일 수 있는 참신한 액션이다. 오는 5월 개봉 예정인 <범죄도시 4>에서는 어떤 액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다리는 동안 마블리의 19금 액션을 맛보기 바란다.
사진 제공: 넷플릭스
평점: 2.5 / 5.0
한줄평: 마블리표 액션, 못 먹어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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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처럼 천천히 잠식당하는 영화
**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관람한 시사회입니다.
더 웨일
개봉 : 2023.03.01
감독 : 대런 아르노프스키
등장인물 : 브랜든 프레이저, 세이디 싱크 외
평점 : ⭐️⭐️⭐️⭐️
너무 많은 생각들과 느낌들이 스쳐지나간다.
상처를 낸 건 되돌릴 수 없다.
에세이처럼 고치고 고쳐서 완벽하게, 실수가 없게 만들수가 없는 것이다.
딸인 엘리는 아빠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빠를 떠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이기에. 사악하다는 말까지 듣는 엘리이지만 그 안에 채워진 것은 분명히 결핍된 사랑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보이는 엘리는 많은 문제가 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보이지만 나는 영화 안에서 엘리가 매우 안쓰럽기도 했다. 8살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가장 가까운 가족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큰 상처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사랑하는 것은 변함없다. 사람은 참 신기하다. 관심 없고 아무도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라는걸 사람들은 솔직히 말하지 못한다. 가족간의 감정이 골이 깊고, 아직까지 셋의 마음 속을 파고들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미 상처받은 마음을 풀 실마리조차도 보이지 않는 상황들 속에서 서로는 흘러간다.
더 웨일은 연극이 원작인 영화이다. 그런만큼 영화의 연출도 어딘가 연극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마치 세트장처럼 집 안에서만 진행되는 영화와 카메라 움직임이 원래라면 두 쇼트로 나눌 것 같은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이어서 찍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인물들이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리액션 쇼트가 되거나 하는 부분도 찾아볼 수 있었다.
더 웨일은 기대하고 본 영화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좋은 영화였다. 나도 많이 울었기도 하다. 왜 인생연기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바다처럼 천천히 잠식당하는 영화였다. 나라면 혼자 볼 것 같다. 혹은 친구들과 이 영화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듯 하다. 왜 혼자 볼 것 같다고 생각했냐면 영화는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을 신경쓰며 보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혼자 우직히 앉아 솔직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충분히 눈물흘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웨일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인물의 평가가 천차만별일 것 같다. 딸인 엘리부터, 엘리의 엄마, 전도사(인줄 알았던 남자), 피자 배달부, 심지어 온라인 강의를 듣는 친구들까지 모습이 다양하다. 인물을 잘 만든 영화는 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더라도 나중에 돌아봤을때 나도 이 인물이었다면 나라도 그랬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가족을 버리고 떠난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나라도 그랬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위 말은 영화가 충분히 주인공의 이야기를 풀어내어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 포인트라고 해두자.) 아무튼 그런 면에서는 캐릭터를 외적이든, 내적이든 잘 만든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에 대해 주인공이 후회하고,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하게되는 행동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양한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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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트> 시대를 바꿀 개인의 역동성을 담은 액션의 향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일정 중 예상치 못한 테러 공격을 받고 가까스로 범인을 제압한 안기부 해외팀 팀장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팀장 ‘김정도’(정우성). 뒤이어 도쿄에서도 북한 고위 관리의 망명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조직 내에 북한의 간첩인 '동림'이 침투했음을 확신한 박평호는 스파이 색출 작전에 돌입하고, 상부의 지시를 받은 김정도 역시 뒤질세라 동림을 쫓기 시작한다. 서로서로를 용의선상에 올려둔 채 조사에 박차를 가하던 해외팀과 국내팀은 먼저 찾지 못하면 첩자로 지목될 위기 속에서 치열하게 대립한다. 그러던 중 박평호와 김정도는 서로 숨기고 있던 은밀한 비밀에 접근하고,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의 실체를 깨닫는다.
사극이나 시대극을 보다 보면 유달리 영상화가 잘 되는 특정 시기가 있다. 여말선초가 대표적이다. 조선이라는 새 국가가 설립되던 혼란기를 배경으로 정도전, 이방원, 이성계, 정몽주와 같은 인물들의 피 튀기는 암투는 수없이 조명되고, 또 재조명되었다. 사무라이의 전성기가 열렸던 일본의 전국시대, 한나라가 무너지고 긴 혼란기의 시작을 알린 중국의 삼국시대, 이에 더해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도 수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시대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적 질서가 무너지고, 국가와 법의 영향력보다 주먹과 칼, 총의 힘이 더 강하며, 개인들의 역동성이 두드러지는 시기다. 격동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본래 지녔던 신념과 명분을 고수하거나 포기하는 이들의 대립, 과거의 질서를 따르는 이와 새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갈등. 이러한 분열과 싸움은 심지어 한 개인 안에서도 치열하게 펼쳐진다. 그저 시대에 순응하여 장기 말처럼 살 것인지, 아니면 설령 꺾기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의 주체로서 시대에 맞설 것인지. 그 덕분에 이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는 감독 이정재의 첫 연출작인 첩보 액션 영화 <헌트>에서 화려한 액션보다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두 주인공의 에너지가 눈에 먼저 들어오는 이유다. 1980~83년을 관통하는 팩션 영화인 <헌트>는 '이웅평 대위 미그-19기 귀순 사건'과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사건들을 선보인다. '장영자 금융사기 사건'도 잠시 스쳐 지나가며 '5.18 광주 민주화운동' 역시 한 축을 차지한다. 이에 더해 작중 북측 간첩을 지칭하는 암호명 동림은 안기부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의 간첩 조작 사건인 '동베를린 사건', 일명 '동백림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들은 여말선초만큼이나 혼란했던 전두환 신군부 초반부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안기부의 고문 및 간첩 조작은 전두환 정권 치하의 불안정성을 상기시킨다. 간첩을 침투시키고 전면전을 준비하는 북한은 군사 정권을 위협하면서도 그들에게 명분을 주는 양날의 검이다. 대학 운동권들은 뚜렷한 목표나 수단에 대한 합의도 없는 뜨내기일 뿐이고, CIA로 대변되는 미국은 인권보다는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 유지에만 관심 있는 존재다. 이들은 한데 모여 좀처럼 올바른 선택지를 알 수 없는 카오스와도 같은 무채색의 시대상을 그려낸다. 그래서 <헌트>는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이지 않는다. 영화는 특정 사건에 대한 정치적 입장에 관심이 없다. 그저 사건에 휘말린 개인들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고, 그들이 어떻게 시대의 풍파에 맞서고 있는가에 주목한다.
덕분에 <헌트>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대의 파도를 헤쳐 나가는 개인들의 발버둥에 주목할 수 있다. 당장 <1987>, <택시 운전사>, <화려한 휴가>, 그리고 살짝 앞선 시간대의 <남산의 부장들> 등만 보더라도 생사와 옳고 그름의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개인들을 그려낸 바 있다. <헌트>도 다르지 않다. 그 결과 <헌트>는 첩보 액션 영화 중에서도 <007> 시리즈보다는 시대극과 스파이 장르물을 오가면서 개인의 고뇌와 선택에 주목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가깝다.
이 혼란의 중심에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와 ‘김정도’가 위치한다. 안기부 해외팀 팀장인 ‘박평호’는 조직 내 침입한 스파이 동림으로 인해 도쿄에서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 실체를 맹렬히 쫓는다. ‘김정도’는 안기부 국내팀 팀장으로, 안기부 내에서의 스파이를 색출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이행한다. 박평호는 김정도를 동림으로 몰아가기 위해, 김정도는 박평호를 동림으로 몰아가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본 적 있는 2인자가 되기 위한 두 세력의 다툼이 이어진다. 이때 <헌트>는 영화 내외의 다양한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갈등의 양상을 다채롭게 변주한다. 우선 스타의 존재감을 활용해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정재와 정우성이 23년 만에 한 작품에서 조우했다는 화제성을 오프닝부터 영화의 동력으로 삼아 두 주인공의 관계를 단숨에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한 첩보 영화의 정체성을 모범적으로 살려낸 구현해낸 구성과 연출도 인상적이다. '첩보'는 '상대편의 정보나 형편을 몰래 알아내어 보고'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잘 만든 첩보 영화는 극 중 인물들에게 언제 정보를 공개할지 그 타이밍을 정확히 잡아, 긴장감을 지속시킬 줄 안다. 또 스토리텔링이 결국 관객들에게 어떤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고려하면, 정보를 둘러싼 줄다리기는 첩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완성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그래서 안기부 내의 첩자인 동림의 정체를 두고 전반부와 후반부가 극명히 갈리는 <헌트>의 구성은 영리하다. 서로 다른 의미의 '사냥(hunt)'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대책 없이 부딪히는 전반부의 박평호와 김정도는 양극단에 서서 다른 극단을 제거하는 데 혈안이 된 권력의 장기짝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림의 정체라는 정보가 공개된 이후 그들은 같은 목적을 쫓는다. 서로가 감추고 있던 '불꽃 작전'과 '베드로 사냥' 계획의 일부에 대해 알게 된 두 주인공은 이제 동시에 1호라는 사냥감을 추적한다. 그런데 박평호와 김정도가 한 팀이 되었는데도 영화의 갈등선은 오히려 입체적으로 변한다. 북한의 전면전 계획이라는 정보를 알고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마지막 사냥의 목적과 의미를 두고 서로 다르게 판단하고 선택한다. 두 인물 간의 외적 갈등에 자기 자신을 쫓는 내적 갈등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는 수많은 사건 사이에서 권력의 장기 말이었던 이들이 시대를 거스르는 한 명의 개인으로서 움직이는 새로운 페이지의 시작을 알린다. 그렇기에 영화가 박평호와 김정도의 비밀을 공개할 때 그들이 문자 그대로, 또 상징적으로 손을 맞잡으며 사냥의 의미가 달라지는 장면의 임팩트는 대단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마지막까지 끝나지 않는 사냥의 중심에 위치한 두 인물의 타협할 수 없는 신념 간의 충돌, 곧 영화의 메시지에는 자연히 힘이 실린다. 남한과 더 나은 평화 협상을 끌어내기 위해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던 북한 간첩 동림과 대통령을 암살하고 독재를 청산하여 광주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의 넋을 달래주고 민주주의 실현을 꿈꾸었던 군인. 이들은 정당하지 않은 국가의 폭력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고, 대규모 유혈 사태가 필연적인 전쟁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도 남북의 군사적 대립과 유신정권의 붕괴, 쿠데타와 실패로 귀결된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시대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트>가 진정으로 비판하는 것은 그저 한 명의 독재자가 아니다. 서슬 퍼런 권력과 혼돈 앞에서 자기 자신을 포기한 개인의 무기력함이야말로 숨어 있던 진짜 내부의 적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방콕 테러 사건은 이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풀어낸다. 블록버스터에 걸맞은 액션으로 가득한 클라이맥스이자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한 곳으로 집약된 고통의 현장을 그려낸다. 표면적으로 보면 두 인물은 모두 자신의 신념을 실천에 옮기는 데 실패한다. 한 명은 우려했던 대규모 살상 사태를 막아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온전히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는 실패한다. 다른 한 명은 죄책감을 씻어낼 암살 미션의 성공을 목전에 두었지만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가는 모래 마냥 놓치고 만다. 하지만 모든 것이 파괴되고 무너져 잿빛 가득한 테러 현장에서 기어코 다시 총을 쥐고, 또 총을 쥔 이를 막아서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그들의 신념이 강렬하게 전해진다. 권력에 충실했던 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역동적인 개인들의 에너지가 스크린 위로 분출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박평호와 '조유정(고윤정)'이 바통 터치하는 <헌트>의 에필로그는 희망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혼란한 시대의 파도 앞에서 개인의 신념과 뜻이 꺾이는 듯 보이더라도, 끝내 한 발 더 나은 세상과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포기하지 않으며 반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줄 아는 개인들의 역동성을, 아이러니하게도 시대를 극복하지 못한 개인들의 실패가 담아낸다. 이처럼 1980년대라는 시대의 틀에 갇히지 않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확장되는 영화의 끝은 강렬한 액션만큼이나 여운이 길다.
이러한 구성과 주제, 메시지는 <헌트>가 상당히 영리한 영화이기에 더욱 눈에 띈다. 사실 <헌트>는 단점도 적지 않다. 전반적인 이야기 구조가 꽤 복잡할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한국 현대사를 일정 수준 알지 못하면 100%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또 쉬어가는 틈이 없이 전력으로 내달리는 영화라서 피곤할 수도 있다. 스릴러라 하더라도 긴장감과 압박감을 조절하는 리듬감이 있어야 마지막까지 관객을 몰입시킬 수 있는데, 끝없이 정보와 사건이 쏟아지기에 벅차게 느껴질 여지가 있다. 이에 더해 폭발음과 총성이 난무하는 가운데 대사를 알아듣기 힘든 고질적인 음향 문제도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는 데 온 힘을 쏟은 결과 위와 같은 단점은 눈에 크게 띄지 않는다. 액션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헌트>의 액션은 기본적으로 양도 많고, 현장감을 잘 살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부닥친 주인공이 주도권을 잡지 못한 채 상황에 끌려가는 장면이 대다수라서 긴장감도 상당히 높다. 보여주기 위한 액션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꼭 필요한 암시와 복선을 액션에 담아낸 것도 인상적이다. 액션씬을 보다 보면 선뜻 이해되지 않는 의문점이 있는데, 그 의문점들이 한데 모이다 보면 영화의 반전과 전체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에 더해 핵심적인 인물들의 감정이나 행동에 변화를 주는 분기점을 액션으로 표현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대표적인 것이 박평호와 김정도가 한데 뒤얽혀 싸우고, 계단을 뒹굴며 떨어지는 모습으로 끝나는 사내 난투극이다. 작중 유일한 일대일 맨몸 액션으로, 둘 중 누가 우위에 있고 누가 감정적으로 쫓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의 모든 메시지가 집약된 방콕에서의 테러 장면도 개인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숱한 폭발 장면을 통해 분출시킨다. 그러다 보니 관객은 자연히 숨어 있는 단점을 굳이 들춰내는 것보다 확연하게 드러나 있는 장점에 집중할 수 있다. 이렇게 감독 이정재의 데뷔작은 묵직하고 씁쓸한 첩보 액션의 참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총성과 폭발음 안에서 주체로 거듭나는 장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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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사의 손꼽히는 거인
7★/10★
〈길위에 김대중〉은 탄생부터 이른바 ‘양김 분열’ 직전까지의 김대중의 삶을 다룬 영화다(그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진다고 한다). 90년대생인 내게, 이 영화는 그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정도로만 막연히 알고 있던 양김 분열 이전의 김대중의 정치적 여정을 살필 수 있던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후 정치인 김대중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다. 민주주의, 평화, 지식인, 연설가의 이미지가 흐릿하게 중첩되어 있을 뿐이었던 그가 신념을 가진 협상가, 전술가, 의회주의자의 이미지로 재각인되었다.
1924년 전라도의 한 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사회에서는 해운회사를 세워 승승장구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는 사업을 지키기 위해 우익 단체에 가입했던 것이 빌미가 되어 인민군에게 큰 고초를 당했고, 전후 부산에서는 권력을 향한 이승만의 야욕(이와 반대로 이승만의 ‘건국’과 ‘호국’ 업적을 기리는 영화로는 〈기적의 시작〉이 있다)에 크게 분노했다. 이 두 경험은 정치인 김대중의 향로를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민주주의를 해야 공산당을 이긴다’라는 확신을 얻은 것이다.
사업과 달리 정치인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연이어 낙선하다 38의 나이에 국회에 입성했다. 김대중은 정치 입문 초창기부터 탁월한 언변과 논리로 주목받았다. 박정희가 왜 장관이고 국회의원이고 김대중 하나를 못 당하느냐고 닦달했다는 대목은 정치인 김대중에게 말이 평생의 든든한 무기가 되어주리라는 걸 짐작케 한다.
김대중에게는 평생에 걸쳐 추구할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있었다. 국가 주도 경제가 아닌 대중 경제론, 중앙집중이 아닌 지방 자치제 등은 이를 위한 구체적 정책 제언이었다. 더불어 의회가 필연적으로 협상을 통해 굴러갈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점을 인식한 그의 현실 감각이 흥미로웠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을 무조건 반대하는 대신 이를 국가 발전과 민주주의 제도 확립과 연결할 방안을 제시했다. 즉 그에게 정치는 전부냐 제로냐(all or nothing)의 문제가 아니라 이득을 보는 협상을 이끌어내는 행위였다. 이런 태도가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운동가‧혁명가라면 타협할 줄 모르는 불굴의 정신으로 목표하는 바를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의회에 소속된 국회의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대중과 함께하는 정치인이라면 늘 그럴 수만은 없다. 이들의 방법론은 달라야 한다. 전제정치의 수장이나 왕이 아니라면 협상과 타협은 불가피하다. 영화는 정치인 김대중이 꺾이지 않는 신념과 협상할 줄 아는 현실감을 함께 가진 정치인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그를 현대 한국 정치의 손꼽히는 거인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박정희 집권기에 정치 활동을 하면서 김대중은 여러 고초를 겪었다. 100만 명이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이고, 당시 여당이 엄청난 금권 선거를 했는데도 간신히 대선에서 승리하자 본격적인 견제가 시작된 것이다. 김대중의 성취는 지역감정으로 줄곧 폄훼되었고(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는 어떻게 김대중에게 지역감정의 족쇄가 씌어졌는지를 다룬다), 심지어 정보기관에 의한 암살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탄압은 전두환 정권에서도 이어졌다. 그와 뜻을 함께하는 많은 이가 고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대중은 멈추지 않았다. 해외에 망명 중일 때도 유수의 언론사에 기고문을 보내거나 인터뷰에 임했고, 강연을 진행하는 등 정치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또 다른 민주화의 상징 김영삼과는 미묘한 연대를 이어가며 끝내 직선제를 쟁취해냈다. 그리고 언제나 김대중의 곁에는 그를 지지하는 국민이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가 김대중 석방이었다는 데서 그가 많은 사람에게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적확히 시대를 진단하고, 미래의 시대정신을 제시하며, 단호하면서도 유연하게 원하는 것을 얻어낸 그의 정치 행로는 뭇 정치인들의 그것과는 달리 사뭇 감동과 감탄을 자아내는 데가 있다.
정치인을 회고하는 영화는 모두 나름의 관점이 있다. 〈기적의 시작〉(2023), 〈노무현입니다〉(2017), 〈문재인입니다〉(2023) 등의 영화는 모두 대중에게 해당 정치인을 어떤 가치로 기억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리고 이 가치는 그 정치인이 살아온 시대를 대변한다. 〈길위에 김대중〉은 신념을 가졌으되 협상할 줄 아는 정치인 김대중의 가치를 관객에게 제시한다. 소구력이 있는 가치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집요함은 탄압‧협상‧개척의 질곡을 건너 끝내 꽃을 피웠다. 그가 살아간 시대는 지났고, 이제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이유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김대중과 그의 시대가 빚어낸 무언가에 빚지고 있다. 대중 정치인과 운동가, 의회주의자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국면에 맞추어 대중과 함께 자기 영역을 넓힐 줄 알았던 정치인. 인물에 대한 호불호와 업적에 대한 평가가 갈릴 순 있겠지만, 누구도 김대중이 우리 현대사의 손꼽히는 거인이었음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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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틴 아메리카의 등장, 그리고 2대 캡틴아메리카의 탄생기
#산돌구름 #팔콘앤윈터솔져 #2대캡틴아메리카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3. 23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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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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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4 US 에이전트, 존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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