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0-19 10:01:34
나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 모음 _망원동 팝업 공지
[클로저 팝업 공지] @closer_kr
본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영화 주인공들을 소개합니다. 오늘, 20일(금)부터 ~22일(일)까지 망원동에서 영화 팝업을 진행하는데요. <나를 찾아가는 시간> 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모습을 진정으로
찾아가는 영화 주인공들의 모습들이 담긴 명대사, 굿즈, 각종 이벤트까지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셔서 가을, 겨울 향취 듬뿍 담긴 영화 같이 느껴보아요자세한 일정은 맨 끝장을 참고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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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새로운 방식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새로운 방식
넷플릭스 오리지널 <퀸메이커> 리뷰감독] 오진석, 문지영
출연] 김희애, 문소리, 류수영, 서이숙, 이경영, 진경
시놉시스]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이자 대기업 전략기획실을 쥐락펴락하던 황도희가 정의의 코뿔소라 불리며 잡초처럼 살아온 인권변호사 오경숙을 서울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판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스포일러 유의#
이토록 여성을 강조하는 정치물이 있었던가
퀸메이커를 보는 내내 상당히 이질감을 느꼈던 부분이 바로 ‘여성’에 대한 강조였다. 과연 현실 정치판에서 여성에 대한 공약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선거가 어디에 있었을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만큼 현실 정치에서는 여성의 인권을 앞세운다기 보다는 보통의 인권을 주력하고, 당장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 개발 및 유치와 같은 경제 중심의 정책이 앞세우곤 한다. 하지만 퀸메이커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여성’에 초점을 맞춘다. 공약 설명이나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의 1분 발표 시간에는 여성을 위한 서울시라는 문장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부분이 기존 정치물과 상당히 달랐던 요소였다.
기존 정치물에서는 남성 중심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정경유착을 주로 보여주면서 현실과 너무나도 비슷한 모습을 보며 관객에게 깨달음을 주었다면, 퀸메이커에서는 현실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정치의 주요한 쟁점이 되면서 오히려 시청자들이 이렇게까지 쟁점화되고 전면에 나올 수 있는 요소들이 왜 현실에서는 부각되지 않는 것일까? 그저 편을 가르고 서로를 비난하는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황도희의 복수는 왜 시작되었을까은성그룹의 전략기획실장 황도희. 그녀는 여론을 주무르는 이미지 메이킹 전략의 귀재다. 기업의 골치 아픈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면서 오너 일가의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충성을 바쳐왔던 은성그룹을 배신하고, 그들의 적이었던 오경숙 인권변호사를 서울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거 캠프의 단장을 도맡는다. 황도희는 그간 오너 일가의 수많은 범죄행위들을 무마하면서 리스크 관리를 해왔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죽었던 적이 없진 않았으나 한이슬의 죽음은 그녀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왜일까?
그 동일한 궁금증을 은성그룹의 사위 백재민 상무도 황도희에게 물어본다. 이제까지 수많은 리스크들을 처리해왔으면서 왜 갑자기 이젠 못하겠다고 하는지. 자신 역시 활도희 당신이 지켜야하는 오너그룹의 일가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작품을 보는 내내 활도희가 왜 은성그룹을 돌아섰는지, 이제껏 이보다 더한 일들도 해온 그녀가 이 일로 돌아설만큼 정말 큰 일이고, 충격적인 일이었는지 의문을 가졌었는데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백상무라는 캐릭터를 통해 짚고 넘어가주고 있었다.
백상무는 어찌보면 오너일가로 편입된 사람이다. 본인도 그것을 느꼈기에 항상 황도희와 개인적으로 술을 마실 때면 자신은 황도희와 같은 입장이고 상황이라며 우리는 이 은성그룹 안에서 유일한 동지와도 같다는 표현을 자주한다. 외부에서 보기엔 은성그룹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권력을 누리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실질적인 힘을 크게 가지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자신의 은성그룹의 사위라면서 저지른 성폭행을 무마해달라고 황도희에게 노골적으로 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저지른 살해 행위에 대해 거짓으로 황도희에게 말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황도희에게 들키게 되고, 황도희는 이런 백상무에게 윤리적인 경멸과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배신감이 동시에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은성그룹 일가에게서는 느끼지 않았던 배신감이 기폭제가 되었고, 성폭행이라는 같은 여성으로서의 모멸감이 작용하여 백상무에 대한 복수심으로 은성을 떠나 오경숙에게 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이 승리하는 사회를 희망하며
전략가 황도희를 잃은 은성그룹은 사위의 과오를 덮고 서울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전설적인 킹메이커로 유명한 칼 윤을 섭외해 온다. 그 과정에서 아주 다양한 음모와 범죄행위가 발생하는데, 황도희는 이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고 만다. 그저 백재민 상무를 시장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은성그룹을 망하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복수로 확장된다.
아내 은채령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백재민은 회사 주변의 여성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이용했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더 높은 자리에 앉혀주면서 그에 대한 보답을 했다. 국지연은 이러한 관계에 만족하면서 임신을 하게 되고, 이를 무기로 백재민을 잡고자 하지만 권력에 눈이 먼 백재민은 국지연을 살해하려고 한다. 정치인으로서 불륜과 혼외자는 너무나도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지연을 자살로 위장하려 하지만 이를 알아챈 황도희와 오경숙은 결국 국지연을 살려내며 백재민의 추악한 모습을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만천하에 알린다.
어쩌면 드라마기에 짜릿한 권선징악으로 끝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현실이었다면 권력과 자본을 가진 백재민과 같은 캐릭터가 국지연이라는 인물을 자살로 위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퀸메이커는 계속해서 백재민이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선택할 때마다 그 모든 행위를 하나씩 하나씩 벗겨나가면서 결국에는 진실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론을 통해서 우리 사회 속에서도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에는 진실이 승리한다는 희망을 넌지시 심어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퀸메이커는 남성이 강조되었던 기존 정치물과 달리 캐릭터와 소재 모두 여성을 내세우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현실 정치와 비교할 수 있게 만들어준 웰메이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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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호한 희망에서 초록빛 진실로
델핀(마리 리비에르)은 휴가 기간 동안 몇 차례 눈물을 흘린다.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는 탓이다. 친구와의 휴가 계획이 무산되고 혼자 긴 여름휴가를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델핀은 막막함을 느낀다. 어디에서 누구와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알 수 없다. 델핀은 그저 삶의 지겨움과 무료함을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델핀의 우울이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 탓 만은 아니다. 확고한 이상을 지니고 매사에 진지한 사람은 환영받기 어렵다. 채식을 하고, 가볍게 다가오는 남자들을 거부하며 종종 울적함에 눈물을 흘리는 여자를 골치 아프게 바라보는 시선은 델핀을 위축시킨다. 테이블 위를 오가는 수많은 대화 속에서 델핀은 고립된 섬처럼 동떨어져 있거나 위태로운 배처럼 흔들린다. 델핀은 언제나 자신의 입장을 증명하거나 태도를 지적받는 상황에 놓인다. 나는 당신과 다르다. 이 당연한 명제는 ‘우리가 서로 다르다’라는 관용이 아닌 ‘너는 우리와 다르다’라는 분리의 의미로 쓰인다. 왜 남자를 가볍게 만나지 않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지 그리고 왜 고기를 먹지 않는지에 대한 논쟁은 모두 분절적인 ‘다르다’로 끝난다. 델핀은 갈 곳이 없다고 아무 곳이나 가고 싶지 않고, 만날 사람이 없다고 아무나 만나고 싶지 않다. ‘귀찮은 녀석’이 아닌, 낭만적인 남자와의 만남을 원한다. 타협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 완고한 델핀은 어찌해야 할지 모를 긴 휴가기간 동안 내면의 우울을 마주하게 된다.
낯선 타인과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을까? 문제는 마음에 달렸지만 조심스러운 델핀에게는 쉽지 않다. 델핀은 누구에게도 쉽게 답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만 그저 호기심 많은 아이의 질문도 재차 의심한다. 사람들을 향한 무관심한 태도는 이런 예민함에서 비롯된다. 외부의 자극과 내면의 감정에 예민한 델핀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틈이 없다. 델핀은 온몸으로 ‘나를 내버려 둬’라고 외치는 동시에 자신의 인생에 누군가가 다가와 주기를 바란다. ‘녹색 광선’은 델핀의 낭만이다. 관계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타인과 진심으로 교감할 수 없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는 소망이다. 우리가 아주 잠깐이라도 타인의 진심을 알 수 있다면 복잡한 관계 속 외로움이 한층 덜어질 것이다. 타인의 진심을 알 수 있다는 미신을 믿어보는 것은 델핀 자신이 타인에게 진실로 대하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만난 친구 엘레나처럼 관심 없고 싫은데도 좋은 척, 관심 있는 척 가벼운 관계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델핀은 자신이라는 모습 외에 꾸며낼 가면이 없기 때문에 “보여줄 모습이 없다”. 델핀은 자신의 믿음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 스스로를 속여 가며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 델핀은 상대방 역시 그러하길 바라나, 타인은 나와 다르다.
녹색 광선은 쉽게 볼 수 없으며 찰나의 순간 빛났다가 사라진다. 델핀은 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와 녹색 광선을 기다린다. 인생에 무언가 찾아오길 바라지만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기다리던 델핀은 이제 선명한 녹색 빛을 기다린다. 낭만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걸까? 그러나 델핀이 무작정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자신만의 미신을 따라 특별한 표시들을 찾아왔다. 직감이 이끄는 대로 뭔가를 예고하는 듯한 녹색 카드를 줍고 온갖 녹색의 단서들을 마음에 담았다. 델핀의 마음을 이끄는 것은 이 작은 미신적 단서들이다. 몇 개의 카드와 전단지, 상점의 간판이다. 에릭 로메르는 이 미신적 단서들을 갑작스러운 클로즈업과 의뭉스러운 음악과 함께 비춘다. 한 걸음 떨어져 델핀을 관찰하던 카메라가 그의 내면을 포착하는 순간이다. 미신적인 내면의 시점은 델핀에게 이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델핀에게 이입하지 않고 믿지 않을수록 희망의 모호함은 두드러진다. 델핀의 내면에서 모호한 희망이 확신으로 변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별 것 아닌 카드도 녹색이라는 이유로 의미 있는 물건이 된다. 델핀은 누군가가 자신을 선택하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미신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기준으로 선택을 내린다. “녹색이 행운의 색깔“이라는 미신은 세상을 보는 하나의 관점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정하고 해석한다. ‘녹색 광선’이라는 희망은 현실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허구처럼 보인다. 아무도 모르고 믿지 않을지라도 델핀은 내면의 나침반을 따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희망은 내면의 상태다. 녹색광선이 진짜이든 아니든, 그것이 정말 진심을 알게 해주는 힘을 지녔든 아니든 그것을 보는 순간 타인의 진심을 헤아릴 틈이 생긴다. “오! 시간이 되니 심장이 뛰는구나” 영화가 시작하기 앞서 등장한 랭보의 시 한 구절은 논리적이지 않은 내면의 희망을 확신에 찬 어조로 노래한다. 영화적 거짓이든, 미신이든 상관없이 델핀은 초록빛의 진심을 보았다. 우리는 델핀의 진심을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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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담쪽이는 5천 년을 자서 신경이 예민해
봉인이 풀리다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 가상의 왕국 칸다크는 인터갱이라는 군사 집단이 지배하고 있었다. 폭압에 시달리는 사람들. 사사건건 검열하는 군부에 주민들은 진절머리가 났다. 이 동네는 혁명이 필요하다.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도 혁명을 꿈꾸는 사람은 있었다.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아드리아나. 아드리아나는 팀을 이루어 전설로 전해지는 왕관을 손에 얻기 위해 모험 중이었다. 유적으로 접근하는 데 성공한 아드리아나 일행. 노력을 기울인 덕에 왕관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왕관을 손에 넣자마자 인터갱이 들이닥쳐 아드리아나 일행을 공격하려고 한다. 위기일발의 상황. 아드리아나는 주문으로 왕관을 통해 칸다크의 수호신 ‘테스 아담’을 소환한다.
부활한 테스 아담. 엄청난 덩치에 카리스마까지 대단했다. 겁에 질리는 인터갱 군인들. 의문의 남자에게 발포한다. 신에게 총알이 통할 리가 없다. 총알을 맨손으로 잡고 ‘하찮은 마법이다’ 조롱하는 테스 아담. 순식간에 무덤(유적) 안을 이동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바람소리만 휙휙 날리며 가볍게 인터갱 군인들을 몰살하는 아담. 아담은 손으로 군사들을 지져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유적 내부의 병사들을 해치우고 밖으로 나온 아담. 무덤 밖에도 인터갱 군사들이 아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순식간에 전부 군사들을 태워버리며 손쉽게 1대 다수 싸움을 이긴 아담. 이 테스 아담을 제지할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칸다르를 죄다 부술 것 같은 테스 아담. 이 아담을 제지하기 위해 초능력자 집단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등장한다. 아담 일행과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만 대립하고 끝나면 다행일 텐데, 칸다르를 앞에 두고 거대한 빌런 집단이 이상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다. 과연 테스 아담은 블랙 아담이 되어 칸다르를 지킬 수 있을까?
지지고 볶고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액션이다. 2시간가량의 영화지만 체감상 1시간 10분 정도는 액션에 비중을 둔 것 같다. 또 그 와중에 이야기 전개도 성실하다. 가령 극초반부 블랙 아담이 등장할 때 병사들을 해치우는 신을 봐도 그렇다. 아담이 샤샤샥 하는 카메라 워킹에 인물의 전지전능함이 어떤지를 삽입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액션신을 쭉 하다가 이터니움으로 된 폭탄을 맞고 기절한다. 여기서 이터니움 폭탄 묘사도 극에서 어느 정도 중요하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액션을 삽입한 느낌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먼저 깔고 액션을 삽입한 부분은 러닝타임 후반부까지 지속된다. 닥터 페이트라는 인물이 있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맡은 역할이다. 이 인물은 이 <블랙 아담>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이 이유가 영화 전체적으로 주요한 터닝포인트마다 배치된다. 캐릭터가 영화 동안에 살아 숨 쉰다고 느껴진 이유가 이 좋은 설계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호크맨이라는 캐릭터도 이 영화에서 무조건 필요하다. 영화는 무자비한 안티히어로 '블랙 아담'을 조명한다. 그 뜻은 즉 아담의 악랄함과 선함을 양가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같은 액션을 넣어도 둘 다 성립할 수 있게 배치한 각본가의 큰 그림이 돋보였다.
또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는 번개와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블랙 아담이 신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묘사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번개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블랙 아담. 이에 걸맞게 번개를 활용한 시각화가 잘 들어갔다. 영화에서 드웨인 존슨이 그렇게까지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뚱한 표정으로 '나는 히어로가 아냐'라고 말하는 것이 영화의 1/2 가량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억에 블랙 아담이 남는 이때 활용했던 시각화 비주얼이 잘 뽑혔기 때문이다. 이 또 영화에서 이 히어로의 기원을 다루기도 한다. 그럼 과거의 칸다르도 나오고 그 나라를 지켜보고 있는 신(마법사)들도 제시돼야 한다. 전자 과거의 칸다르는 살짝 빛바랜 느낌으로 촬영하고, 후자 마법사들은 색마다 특이점을 부여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설득력을 갖게 만든다. 이 시각화는 후에 나오는 사이클론과 닥터 페이트에게도 강점으로 작용한다. 사실 사이클론과 스매셔는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에서 존재감 그렇게 안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클론 캐릭터를 활용해 형형색색 아름답게 제시한 액션은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인물을 활용한 시각화의 정점은 닥터 페이트다.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를 활용하는 방식은 좀 아쉬웠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와 싸우던 그 닥스는 어디로 갔을까? 이상한 음표 가지고 싸우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주인공이 닥스인데 마법사로서의 능력치는 완다에게 더 갔으니 후속작에서 주인공의 존재감을 묘사하는 것이 약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닥터 페이트의 마법 능력은 대단하다. 인물이랑 어울리기도 어울린데 진짜 멋있게 잘 뽑혔다. 주로 투명한 유리를 활용해서 액션 신을 보여준다. 엄청난 박력으로 히어로들을 요리하던 완다와는 다른 느낌의 마법이다. 가령 유리를 통해서 피사체가 여러 각도로 보이는 마법을 보여준다. 이 마법은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닥터 페이트와의 캐릭터성과 어울리는 좋은 연출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이상한 캐릭터들
그렇게 눈요깃거리는 충분한 영화지만 사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영화의 이야기 구성에 대해 말해 볼 수 있다. 이 영화에 모녀 두 사람이 나온다. 그중 아들이 말하는 대사 퀄리티가 아쉬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히어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명대사들이 있다. <블랙 팬서>에는 '와칸다 포에버!' <캡틴 아메리카>는 'I can do this all day!'같은 것이다. 여기서 영화에서 소년이 대사를 치는 걸 보면 이 명대사 삽입을 지나치게 의식한 티가 난다. 대사가 삽입되는 방식이 좀 뜬금없기도 하고, 아들 캐릭터 자체가 이야기 전개에서 비중이 크지 않음에도 물리적인 시간이 많아 불필요하게 느껴져 이 지점이 두드러진다. 보통 이런 히어로들의 명대사들이 밈이 되어 유행이 되는 건 그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도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하루 종일 무엇이든 할 수도 있다! 는 걸 전달하기 위해 뱉은 말이다. 그런데 극 중에서 블랙 아담이 내내 정색하고 있어서 유머러스하지도 않고 그 말이 영화에서 중요하지도 않다. 그냥 말장난일 뿐이다. 이 심심한 표정연기는 인물 전체를 관통한다. 뭔가 입체적인 모습이 있어야 이 사람의 개성이 살아날 텐데 내내 똑같은 표정으로 같은 말만 한다. 내내 부수기만 하고 끝난다. 후반부로 간다. 이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이후 맨몸액션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오! WWE 전설의 경험치를 볼 수 있나? 내레이션만 기억나고 카메라를 계속 흔들어서 잘 안 보여준다. 그래서 블랙 아담이라는 캐릭터가 멋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내내 부수는 것만 보니 캐릭터의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이다. 영화에서 테스 아담이 감정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이 없지 않다. 충분히 나옴에도 불구하고 내내 정색한 표정으로 연기하니까 주인공이 등장하니까 1절 못하고 2,3절까지 계속되는 유머를 보는 느낌이다. 이 히어로의 철학도 맥 빠진다. 자유를 추구하는 건 좋다. 왜? 그냥 주인공이 세니까 칸다르는 자유를 찾아야 해? 단순히 자유가 왜 중요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그냥 무작정 이상만을 좇는 캐릭터가 나오니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빌런 캐릭터를 설계하는 방식도 아쉬움이 있다. 전반부. 가장 첫 번째 시퀀스에서 내레이션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칸다르 왕국과 그 나라를 지켰던 수호신에 대해 쭉 전달하는 영화. 살짝 길긴 하지만 친절한 전개 덕에 이해가 어렵지는 않다. 다시 러닝타임 중반으로 지나간다. 블랙 아담이 자기 이야기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내레이션이 한번 더 사용된다. 중후반부쯤으로 넘어간다. 그럼 최종 흑막으로 지목된 인물이 그동안 있던 일을 쭉 설명한다. 비슷한 연출 방식이 세 번이나 쓰였다. 2시간 동안 같은 말을 세 번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런 식의 연출을 세 번이나 써서 안 그래도 전체적으로 진부한 영화가 더 지루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또 그 사실이 빌런 개인의 입장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중요한 사실인데 후반부 잠깐 쨘 하고 나온 부분은 아쉽다. 이걸 초반부에 제시해서 빌런 캐릭터가 갖는 긴장감을 유지하면 좋았을 걸 중반부가 넘어가고 나서야 부랴부랴 보여준다. 염소 같은 빌런 디자인만 기억이 날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몰개성한 작법으로 캐릭터를 만든 것이다. <공조 : 인터내셔날>의 진선규 캐릭터가 연기했던 빌런 역이 생각난다.
이 아쉬운 캐릭터는 피어스 브로스넌이 맡은 닥터 페이트에도 이어진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 캐릭터를 좋아할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계획 없이 내내 부수기만 하는 블랙 아담 / 감정적인 호크맨 / 무계획으로 깔아뭉개는 아드리아나 모자 / 존재감 없는 흑막까지 내내 이성적이고 사려 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닥터 페이트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닥터 페이트의 행보는 글쓴이의 예상대로 전부 흘러갔다. 더 과장해서 말하면 '닥터 페이트'라는 캐릭터만 듣고도 이 사람의 행보가 예상될 정도다. 이는 닥터 페이트가 들어간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역시 전형적으로 설정됐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작용으로 이 인물이 이렇게 단조롭게 느껴졌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보다 마법은 멋있게 썼어도 그와 차이점을 못 느끼겠다. 이게 원작 코믹스는 닥터 페이트가 원조라고 한다. 그럼 오히려 오리지널리티를 더 살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전형적인 이야기 톤, 사려 깊음, 운명론이 남고 이 사람이 왜 멋있는지는 어떤 창의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브로스넌이 멋있는 자세로 앉아서 중저음의 톤으로 노년의 섹시함을 드러냈던 것만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그건 피어스 브로스넌이 멋있는 거지 닥터 페이트가 멋있는 것이 아니다.
안전한 선택지만 골랐어
이런 아쉬운 점은 영화 전반적인 연출 방식으로도 이뤄진다. 정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반복되는 연출 방식이 있다. 바로 슬로모션이다. 이 슬로모션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가령 사이클론의 캐릭터성을 묘사하기 위해서 인물의 동선을 꼼꼼하게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다. 또 블랙 아담이 광속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슬로모션 연출이 필요하다. 슬로모션을 넣어야 이 인물의 무력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떤 맥락에서는 슬로모션을 넣는 게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한 1/10쯤 된다. 그렇지 않아도 될 부분에도 슬로모션이 들어가는 것은 아쉽다. 가령 사이클론에 슬로모션이 들어가는 방식을 보면 한 10번 이상은 쓰였다. 빠르게 회전해서 형형색색의 바람을 유발하는 사이클론. 여기서 사이클론이 몇 바퀴 돌고 정자세로 서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이 정자세로 서는 자세에 슬로모션이 반복해서 쓰인다. 이거 슬로모션으로 넣을 이유가 없다. 이 행동이 서사에서 차지하는 비중 그냥 없다. 단지 멋있게 보이려고 넣은 것이다.
이 뿐일까? 전체적인 장면 구성이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따온 듯한 기시감은 어쩔 수 없다. 이는 닥터 페이트 캐릭터의 사용법과도 이어진다. 다른 예로는 블랙 아담의 입장 변화에서 따올 수 있다. 블랙 아담의 첫 등장이 있다. 그리고 굴곡이 생긴다. 또 그 굴곡을 상회할 만큼 문제가 생겨서 다시 부활한다. 이거 <아이언맨> 시리즈에서 다 봤던 내용이다. 첩보물로 장르의 변주를 줬던 <캡틴 아메리카>나 코미디/스릴러로 장르를 병치시켰던 <앤트맨>과는 영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패턴이 전부 예상 가능하고 장면 구성도 거의 모든 시퀀스가 어디서 본 느낌이며 액션도 템포 조절 없이 강한 리듬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중반부로 방향키를 틀면 지루해진다. 볼거리는 많은데 진부한 영화처럼 느껴지는 것이다(이 글 쓰는 것도 어려웠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거 다른 영화에서 봤는데'만 생각나서). 예술가적인 창의성이 안 느껴지는 느낌? 이거 DC 코믹스의 영화다. 그럼 DC 코믹스 다운 전체적인 톤이 있어야 한다. 글쓴이는 그게 멋있는 시각화와 뭔가 어두운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에 유머(같이 느껴지는)와 모자 캐릭터 중 소년이 말하는 부분을 보면 딱히 그런 걸 노리고 만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 닥터 페이트 / 호크맨을 제외한 두 히어로는 그냥 둘이 다른 영화 찍고 있는 느낌이었다. 청춘들의 로맨스를 넣을 거면 두 히어로를 주연으로 한 다른 영화를 만드는 게 좋았을 텐데?
올해 5월 개봉했던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있다. 이 영화가 만듦새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어도 <블랙 아담>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물론 <닥스 2>도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런데 적어도 감독 샘 레이미의 인장과 운명론을 벗어나 미래를 개척하는 히어로의 이야기라는 주제는 기억에 남는다. 또 같은 DC 코믹스 영화인 <더 배트맨>은 이 <블랙 아담>보다 훨-씬 낫다. <더 배트맨>은 다 기억에 남는다. 반 폐인 같은 얼굴로 쓱 나타나서 악당들에게 맞기도 하고, 곤궁에 빠지기도 하지만 희망을 향해서 날아가는 브루스 웨인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난다. 리들러나 캣우먼 같은 캐릭터도 연출에서 힘을 줬던 지점이 분명해서 이 배역들의 특장점을 글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냥 어디서 통했던 것들만 그대로 갖고 왔다. 영화가 기억에 남아야 하는데, 드웨인 존슨과 피어스 브로스넌만 장점으로 기록될 영화가 돼버렸다.
성공적인 시행착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이야기가 그래도 있는 편이고 몰입하기도 어렵지 않아서 친구들끼리 극장을 찾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또 영화에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쿠키 영상이 있다. 이 히어로의 행보가 오리무중에 있었기 때문에 DC 유니버스의 팬이라면 두 사람의 대결을 기다려 왔을 것 같다. 또 DCEU가 들인 돈에 비해 영화판에서 존재감이 없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선택지만 골랐다. 이에 따른 단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시도도 있어야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2시간 동안 이 쿠키영상의 예고편이 된 건 아쉽지만 화려한 볼거리로 여러분의 시간을 불태울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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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별에 필요한 | 한국형 우주 로맨스 애니의 명과 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엄마의 뒤를 이어 NASA 화성 연구원이 되고 싶은 '난영'(김태리). 최선을 다했지만 아슬아슬하게 합격선에 걸친 그녀는 부족한 연구 실적도 쌓고, 약간의 휴식도 즐길 겸 한국으로 되돌아온다. 오랜만에 들린 집을 정리하던 중 엄마의 유품인 턴테이블을 고장 내 버린 난영. 그녀는 턴테이블을 고치기 위해 나선 길에서 우연히 음향 기기 수리 아르바이트 중이던 '제이'(홍경)를 만나고, 얼떨결에 그에게 턴테이블을 수리받는다.
우연한 만남은 이내 운명적인 사랑이었음이 드러난다. 난영이 미국에서 지낼 때 반복 재생할 정도로 좋아한 미완성곡의 주인이 제이였던 것. 남다른 접점과 비슷한 취향을 발견한 난영과 제이는 빠르게 사랑에 빠지지만, 이내 시련이 닥친다. 화성 연구원으로 발탁된 난영이 엄마와 자신의 꿈을 위해 화성으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지구에 홀로 남은 제이는 난영이 좋아하던 곡을 마저 완성하면서 그녀의 귀환만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명암이 확실한 한국 애니메이션의 도전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이후 큰 변화 중 하나는 한국 영화 및 드라마 크리에이터들의 도전 정신이 아닐까 싶다. 제작 과정에 간섭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된 덕분에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와 소재를 다룬 작품이 다수 탄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 내에 국한된 변화가 아니었다. <킹덤>, <인간수업>, <오징어 게임> 등의 성공에 자극받은 다른 OTT나 방송국도 변화의 물결에 올라탔으니까.
한지원 감독의 신작, <이 별에 필요한> 또한 넷플릭스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증명한다. <이 별에 필요한>은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물었던 애니메이션 영화이기 때문. 세계 5위권을 오가는 한국 영화 시장의 규모를 고려하면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는 철저한 비주류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저연령층 애니메이션은 <사랑의 하츄핑>처럼 흥행력을 보여준 사례가 있지만, 고연령층 애니메이션 중에는 흥행에 성공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제작된 <이 별에 필요한>은 한국 영화계에 남아있는 또 하나의 벽에 도전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빛을 강조한 그림체만큼이나 명과 암이 뚜렷하다. 마치 사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보는 듯한 작화는 그 자체로 눈을 즐겁게 한다. 그에 반해 기존 로맨스와 SF 작품을 답습한 서사는 개성이나 독창성을 살리기에는 짜임새가 부족하다.
눈이 즐거운 기술적 성취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중에서도 셀 애니메이션 영화는 특히 찾아보기 어려운 장르다. 3D 애니메이션 중에는 최근에 개봉한 <퇴마록> 같은 사례가 있지만, 셀 애니메이션으로는 그나마 <마당을 나온 암탉>,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이나 <사이비> 정도가 있을 뿐이다. 척박한 현실을 고려한다면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눈을 즐겁게 해 주는 <이 별에 필요한>은 존재 자체로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특히 미래의 서울 풍경을 그려낸 배경 작화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한국 영화 속 미래의 서울은 디스토피아적으로 묘사된 경우가 많았던 반면, <이 별에 필요한>은 낙관적인 희망이 담긴 2060년대 서울을 그려냈다. 종로나 청계천, 세운 상가 등 익숙한 풍경을 큰 틀에서는 유지하면서도 홀로그램 간판이나 고가도로, 고층 빌딩 등을 덧대서 현재와 미래의 분위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에 더해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유사한 연출 방식은 로맨스 영화에 적합한 청량한 분위기를 빚어낸다. 풍경을 묘사할 때 렌즈 플레어를 활용하고, 캐릭터와 배경에 동일하게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배경 음악을 적극적으로 삽입해서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고조하고, 카메라를 360도로 회전하며 그 감정선을 강조하는 방식 또한 <너의 이름은.>과 같은 작품에서 효과가 검증된 연출법을 빌린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기술적으로 100% 만족스러운 영화는 아니다. 일부 장면에서는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 표정 표현이 어색한 지점이 노출되기도 한다. 이에 더해 전문 성우가 아니라 배우에게 더빙을 맡긴 것도 물음표를 남긴다. 영화 캐릭터의 개성보다는 배우의 존재감이 먼저 각인되다 보니 다소 따로 노는 영상과 음성으로 인해 몰입감이 순간적으로 저해하는 때도 있다.
익숙하다 못해 궁금하지 않은 로맨스
반면에 <이 별에 필요한>의 서사는 새로운 성취를 보여주지 못했다. 흔히 한국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도전적인 작품은 외관에 비해 알맹이가 아쉬운 경우가 많은데, <이 별에 필요한>도 예외는 아닌 셈이다. 우선 로맨스 영화로서 <이 별에 필요한>은 클리셰를 답습한 결과 지나치게 무난하다. 지구와 화성이라는 독특한 배경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한 나머지 평범한 롱디 커플의 연애사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구와 화성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로맨스는 그 자체로 여러 변수를 상상할 수 있는 소재다. 그런데 <이 별에 필요한>은 정작 그 공간적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난영과 제이의 우연한 만남, 연애의 시작, 화성으로 떠나려는 난영과 만류하는 제이의 갈등 등 대부분의 이야기가 지구에서 펼쳐지기 때문. 난영이 화성이 아니라 아프리카나 남미의 오지로 떠나는 것으로 설정해도 둘의 로맨스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지구와 화성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오히려 서사의 균형감이 무너뜨리기까지 한다. 화성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가 너무 무거운 나머지 두 연인의 갈등 상황에서 한쪽의 문제나 입장은 너무 사소하게 느껴진다. 난영은 고민은 가족의 역사가 걸린 결단이다. 그녀는 화성에서 사망한 어머니의 꿈을 대신 이뤄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지녔다. 그렇기에 운명처럼 만난 제이와의 관계가 무너질 각오를 하고서라도 화성으로 떠난다.
그에 반해 제이는 밴드 멤버들과의 의견 차이로 그만둔 음악을 다시 시작할지를 고민한다. 물론 자아실현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가족사가 얽힌 도전과는 그 층위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SF적인 배경까지 더해지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꿈을 응원한다는 연결고리가 있더라도 제이의 서사는 서서히 난영의 서사에 가려진다. 결국 <이 별에 필요한>의 로맨스는 보기에만 예쁜, 마치 향기 없는 모란꽃과 같아진다.
물리법칙을 뛰어넘는 사랑
후반부를 장식하는 <이 별에 필요한>의 SF적인 전개 또한 좋게 말해 무난하고 나쁘게 말하면 기시감이 진하다. 난영이 화성에서 고립되듯이 우주를 탐사하는 우주비행사가 조난되는 전개는 사실 SF 작품들에 없어서는 안 될 클리셰다. 화성이 배경이라는 점은 리들리 스콧의 <마션>을 연상시킨다. 여성 주인공이 조난됐다는 점에서는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를 떠올릴 수도 있다.
다만 <이 별에 필요한>에서는 특히 <인터스텔라>와의 유사점이 두드러진다. 우선 상황이 비슷하다. 두 영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 우주로 떠난 뒤 연락이 끊겼고, 그저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또 두 작품은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사랑을 상징하는 명확한 오브제가 등장하고,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도 비슷하다.
<인터스텔라>에서 '쿠퍼'(매튜 매커니히)는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지구에 있는 딸 '머피'(맥켄지 포이/제시카 차스테인)에게 자신이 관찰하고 알아낸 데이터를 알려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블랙홀 속에 진입한다. 5차원 세계에서 깨어난 후 그는 중력을 이용해 딸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그가 우주로 떠나기 직전에 선물한 손목시계 초침을 조작해서 데이터를 모스 부호로 표현한 것.
이처럼 쿠퍼와 머피에게 손목시계가 있다면, 난영과 제이에게는 턴테이블이 있다. 화성에서 조난된 뒤 의식을 잃었던 난영은 마치 턴테이블처럼 생긴 우주 속에 빠지고, 제이의 음악을 들으면서 턴테이블의 중심에 있는 지구를 향해 우주를 거스르는 환상 끝에 의식을 되찾고 생존하는 데 성공한다. 이는 턴테이블 때문에 성사된 두 사람의 우연한 첫 만남을 <인터스텔라> 속 손목시계처럼 활용한 묘사라 할 수 있다.
<인터스텔라>가 되지는 못했다
다만 <이 별에 필요한>은 <인터스텔라>만큼의 감동이나 전율까지는 안기지 못한다. 오브제를 활용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상대적으로 덜 정밀했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는 쿠퍼와 머피 모녀의 애증을 손목시계 하나로 보여주기 위해 여러 단계의 설계를 해놨다. 쿠퍼가 머피에게 손목시계를 선물로 남기는 장면을 초반부의 하이라이트에 배치하고, 손목시계에 관련된 복선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식이다.
그에 반해 극 중 턴테이블은 난영과 제이의 관계 시작점이기는 하나, 손목시계만큼 뇌리에 각인되는 오브제라고 하기는 어렵다. 둘의 사랑이 시작된 후로는 우산처럼 턴테이블을 대신하는 소재도 등장하고, 턴테이블보다는 난영이 반복 재생할 정도로 좋아한 제이의 음악 그 자체가 더 강조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턴테이블처럼 생긴 우주가 등장하는 장면은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질 여지가 존재한다.
부족한 짜임새는 작품을 관통하는 '아날로그'라는 주제 의식을 약화하기에 더욱 아쉽다. <이 별에 필요한>은 초반부터 의식적으로 디지털 세상을 거스르는 아날로그 기기를 등장시키며 손과 마음이 직접 닿는 아날로그적 감성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화상채팅으로 모든 의사소통을 하는 난영과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고 종이와 펜으로 메모하는 제이를 반복해서 대비하는 식이다.
아날로그 기기의 역할은 후반부에서 다시 한번 강조된다. 난영이 화성에서 조난당했다는 뉴스를 본 제이가 난영의 아버지에게 빌린 안테나를 설치해서 난영에게 연락을 시도하고, 오래된 무전기를 통해 극적으로 재회한 둘이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는 우주를 턴테이블처럼 묘사하고, 미래 시점인데도 2020년대 풍경을 섞은 작화의 특징과도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 별에 필요한>의 극본이 이 주제 의식을 구조적으로 뒷받침하지는 못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인터스텔라>를 볼 때와는 다르게, 제이와 난영이 무전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장면에서는 감동보다 과학적으로 가능한지 의구심이 먼저 들기도 한다. 이는 그만큼 충분히 관객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나 다름없다.
첫술에 배부르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이 별에 필요한>은 군더더기 없이, 상당한 세련미를 자랑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삼각관계처럼 답답한 클리셰는 꺼내지 않기 때문. 영화 곳곳에 짧게 삽입되어 임팩트를 주는 밴드 음악도 청량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에 더해 구도적으로도 신선한 그림이 있다. 우주로 떠나는 사람을 여성, 지구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남성으로 설정한 덕분에 일반적인 SF 구도를 탈피할 수 있다.
단지 기시감이 짙은 플롯의 구조와 짜임새가 부족한 스토리텔링으로 인해 고유의 개성과 장점이 돋보이지 못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종합하면 <이 별에 필요한>은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에 충실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삭막한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의 현실을 고려하면 기술적으로는 분명히 가능성을 보여준 도전이기에 인상적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첫술'이라는 한계에 안주한 것은 아닌가 싶은 아쉬움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Acceptable 무난함
도전이라는 지구와 안정감이라는 화성 사이에서 빛이 바랜 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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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상실과 잃을 수 없는 그리움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클로즈> Close 2022
벨기에 / 드라마 / 104분
감독: 루카스 돈트
잊을 수 없는 상실과 잃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클로즈>
레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아 잠을 자지 못하는 레미에게 작게 속삭인다. "상상해 봐 넌 방금 알에서 나온 아기 오리야, 난생처음으로 눈을 뜬 거야. 넌 다른 오리보다 훨씬 아름다워, 특별해." 계속 뒤척이던 레미는 레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레오는 아기 오리가 도마뱀을 만났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넌 도마뱀이 무섭지 않아, 사실 처음 봐서 잘 몰라, 하지만 넌 걔가 좋아. 너처럼 특별하거든. 아기 오리와 도마뱀은 같이 길을 떠나 그리고 함께 트램펄린을 뛰어." 레미는 그제야 깊은 보조개를 보이며 눈을 감는다.
레오가 언급하고 레미가 집중한 특별함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피부로 느낀 특별함은 한때 내가 느꼈던 얼룩덜룩한 색깔이다.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특별하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으니까. 어두컴컴하고 외롭고 공허한 감정을 숨기고, 타인들 틈에 섞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애써 좋게 표현하기 위해 '특별'로 나를 포장했던 기억. 지극히 개인적이라 내밀했고, 따라서 언제든 각자의 안전지대가 있었던 순간들….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나만의 기준을 처음 정립하고 보낸 유년 시절의 기억은 잊을 수는 있어도 결코 잃을 수는 없다는걸.
<클로즈>가 두 아이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이 특별함에서 시작한다. 우린 이미 이 특수한 특별함의 결말을 알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마음으로 벼랑 끝에 섰던 그 시절의 나, 내가 반드시 앓아야만 했고 그리하여 놓쳐버렸던 관계, 하나를 잃는 순간 전부를 잃은 것만 같았던 순간. <클로즈>는 삼분의 일도 채우지 못한 '나'의 나이테를 스스로 도려내면서까지 제 세상을 지키려고 한 두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출처: 영화 <클로즈> 스틸(다음)
다른 아이, 틀린 사람, 특별한 존재, 그리하여 쉽게 외톨이가 되는 나. 두렵고 무서운 세상을 견디는 데 필요한 건 나와 똑 닮은 이방인이다. 딱 한 명이면 된다. 세상의 편협한 기준에 맞춰 사는 게 어렵고 힘든 '특별한' 내가 '특별한 나'를 운명적으로 만나 제삼자들의 노골적인 힐난에서 안전하게 벗어나는 것이다. 중요한 건, 탈출하는 순간 특별이란 단어엔 조금의 부정도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 레오와 레미가 직접 울타리를 세워 강한 연대를 형성한 것처럼 말이다. 두 사람 사이엔 공유하지 않는 감정도, 나눌 수 없는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가능성과 모든 불가능성을 어떠한 기준 없이 전달하고 전달받는다. 일방적인 것 같지만, 엄연히 그들이 정한 룰이며 합의된 사랑이자 우정이다. 이 절대적인 포용과 충만한 상호교류는 레오와 레미의 세계를 같은 도형으로 찍어내는 것도 모자라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단일 세계로 보이게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 세상이 존재했을 때부터 너와 나는 함께였다는 믿음, 그 결과 견고한 울타리는 보이지 않는 경계로 완벽하게 변모한다.
수년간 함께 같은 계절을 지나왔던 레오와 레미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서로 다른 곳에서 혹독한 계절을 맞이한다. 단단하고 강력했던, 그래서 조금의 이질감도 느낄 수 없었던 울타리를 먼저 넘어 도망친 건 레오였다.
출처: 영화 <클로즈> 스틸(다음)
"너희 둘이 사귀니? 친구라기보단 너무 가까워 보여서."
장난기 섞인 농담 반 진담 반, 레오는 쫓기듯 부정했고 레미는 침묵했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동일한 언어를 쓰는 일은 희박하다. 각자가 정의한 단어를 조합해 서로의 의견을 파악하고 이해해 받아들일 뿐이다.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며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는 면역력도 갖고 있어야 한다. 반 이상이 어긋나기를 택하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들어간 레오와 레미는 이제 막 작은 사회에 던져졌다. 어른도 갖지 못한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고로 그들에겐 농담 반 진담 반은 있을 수 없다, 오로지 날카롭게 파고드는 냉혹한 악담뿐이지.
레오는 달라진다. 레미와 거리를 두고 적성에 맞지도 않는 아이스하키를 배우고 새로 사귄 친구들 틈에 섞여 주파수가 다른 웃음 코드에 반응한다. 특히 아이스하키를 배우는 레오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레오가 아이스하키를 자신의 남성성 표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그는 자신의 남성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상태다. 무엇이 남자다움이며 어떤 시각이 다른 아이들이 원하는 시각인지 모른다. 목적 없고 보이지 않은 불안에 발이 걸린 채, 자기 확신과 의지를 버리고 형태조차 잡히지 않은 세계에 들어가려 애쓸 뿐이다. 레오가 타인의 잣대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잃는 건 찰나였고, 레미는 이를 막을 힘도 명분도 없었다. 그들의 울타리는 이미 망가진 후였다. 누구나 때가 되면 자기만의 세상에서 나와 더 큰 세상을 맞닥뜨려야 한다지만 이를 제삼자가 무차별적으로 관여한다니, 참 애석한 일이다. 더 기분 상하는 건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는 걸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점점 더 노골적으로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레오에 레미는 혼란스러워한다. 레오에게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다가가 돌변한 이유를 묻지만, 돌아오는 건 대답을 품은 침묵이다. 레오는 레미에게 냉랭한 태도를 유지한다. 동시에 레미가 현재 자신의 상황을 헤아려주길 바란다. 레미라면, 나와 같은 세계에 사는 나라면 당연히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레미는 레오와 다른 사람이다. 두 사람의 세계가 같은 모양으로 빚어졌을 뿐이다. 늘 같이했던 놀이도 나눴던 대화도 사라진 지 오래다. 끝내 레미는 처참히 부서진 울타리 앞에서 자신의 형체를 영원히 지우기로 한다. '나와 나'가 아닌 '나' 홀로 남은 세계에서 탈주하는 건 레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레오에게 자기 존재를 부정당한 것만큼 슬픈 일이었다.
출처: 영화 <클로즈> 스틸(다음)
레미의 죽음으로 학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심리상담을 진행한다. 레오는 더욱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공동체 안에 무난히 섞이기 위해 학교생활에 더 몰두한다. 악착같이 레미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 아이스하키를 하고 새로운 친구 집에 놀러 가 잠도 자고, 부모님 화훼농장 일을 돕기도 한다. 가족은 온 마음을 다해 반쪽을 잃은 레오를 살피고 위로한다. 그러나 레오는 계속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레미가 부서진 울타리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며, 레미에게 마지막으로 건넸던 자신의 침묵이 사실은 엄청난 폭언이었다는 것을. 그는 레미에게 한 대답을 자신에게 똑같이, 수백 번 되풀이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혹독한 벌을 주기 위해 아이스하키를 했던 거고, 레미 엄마와의 대화를 피하면서도 모든 시선 끝엔 그녀를 담았으며 매일 고통을 삼켰다.
죄책감, 슬픔, 분노, 자책, 공포, 두려움. 처음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과 원치 않는 상황들.
마침내 팔을 다쳐 더 이상 아이스하키를 못하게 되자 레오는 레미의 부서진 화장실 문과 형언할 수 없는 슬픔, 그리고 죄책감에서 자신이 평생 벗어나 수 없을 거란 진실을 받아들인다. 레미를 향한 참을 수 없는 그리움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때 그 시절 우리가 반드시 마주해야만 했던 현실이었고, 온전한 내 편과 나였던 너를 다신 볼 수 없는 미래였다. 이전과 다르지 않게 흐르는 시간과 표면적으로만 바뀌는 계절 속에서, 괜찮아질 거란 믿음과 이별과 작별하는 이상적이고 획기적인 방법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아기 오리와 도마뱀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아름다운 동화는 두 아이의 밤을 포근하게 해줄 수는 있어도 책임져주진 않으니까. 레미 엄마를 향한 레오의 고백이 유독 고통스럽고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출처: 영화 <클로즈> 스틸(다음)
레오와 레미의 특별함에서 시작했던 <클로즈>는 레오가 비로소 혼자가 되자 속도를 올려 우리 모두가 걸어야 했던 순간들을 빠르게 지나친다. 카메라는 더 가깝게 레오를 향하고, 이야기는 더 담담하게 레오를 통과한다. 이를 가슴 아픈 성장이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레오의 모든 반응을 세밀하고 집요하게 관찰한다. 무엇보다 ‘지나간다’, ‘흘러간다’, ‘멈추지 않는다’에 몰두한다. <클로즈>의 초점은 상실한 레오가 아니라 상실한 레오의 뜀박질에 맞춰있기 때문이다. 충분히 감각적이고 심미적이지만 그 이상 선을 넘지 않는다. 동시다발적으로 솟구치는, 도저히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레오를 집어삼키는 걸 손 놓고 지켜보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이에게 계속 상황을 안겨준다. 아이스하키도 심리상담도 꽃밭을 트랙터로 밀고 다시 그 땅에 모종을 심는 화훼농장 일도, 레오의 사랑하는 가족도 모두 레오의 이야기를 끊기지 않게 한다, 하루를 살게 한다. 덕분에 레오는 멈추지 않고 달린다.
무뎌짐이 당연한 세상 속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할 방법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
둘이 뛰었던 농장을 혼자 뛰는 레오가 잠깐 멈칫거려도 더는 마냥 불안하지 않듯이.
잊을 수 없는 상실과 잃을 수 없는 그리움이 그날의 나를 아주 가까이서 이끌었음을 부정하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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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주 차 최신 씨네뉴스
7월 1주 차 최신 영화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샤를리즈 테론, 크리스토퍼 놀란 신작 ‘오디세이’ 합류🎬
샤를리즈 테론이 한 행사장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에 ‘키르게’ 역으로 합류한 것에 대해
“무척 부담되고 긴장된다”고 털어놨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엄청난 캐스팅까지..!
캐스팅 찾아보면서도 믿을수가 없었네요 🔥
맷 데이먼 - 오디세우스
톰 홀랜드 - 텔레마코스
젠데이야 - 아테나
로버트 패틴슨 - 헤르메스
샤를리즈 테론 - 키르게
루피타 뇽오 - 클리타임네스트라
베니사프디 - 아가멤논
지금까지 캐스팅은 이렇게 공개되었구요
이 밖에도 배우 존 번탈, 미아 고스도 합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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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애플스튜디오, F1: 더 무비 흥행 성공으로 후속작 논의 중
❷ 배트맨: 파트2 각본 완성, 2027년 10월 1일 개봉 예정
❸ 폴 워커, 분노의 질주 마지막 시리즈 장식…2027년 4월 개봉
❹ 샤를리즈 테론, 놀란의 ‘오디세이’ 합류, "무척 부담되고 긴장된다"
❺ CGV, 서비스 리뉴얼로 7월 14일 전국 상영관 임시 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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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이 영화를 공개합니다. 전세계 언론이 극찬한 영화.[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헌터킬러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배급사)의 사용 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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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이 은근슬쩍 준비하고 있는 어벤져스 (feat.영어벤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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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2021. 01. 15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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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타임라인*
00:00 인트로
00:59 케이트 비숍 in 호크아이
01:58 카말라 칸 in 미즈마블
02:52 캐시 랭 aka 스태쳐 in 앤트맨 퀀터마니아
04:19 아메리카 차베즈 in 닥터 스트레인지2
05:10 대선배 피터 파커 in 스파이더맨
06:35 그 외 영어벤져스, 청소년 히어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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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스위트홈 시즌3> 공식 예고편
괴물화의 끝이자 신인류의 시작을 비로소 맞이하게 된 세상, 괴물과 인간의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이들의 더 처절하고 절박해진 사투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 시즌3 7월 19일,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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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탄적일천> 메인 예고편
하루아침에 안개처럼 증발해버린 남편의 실종 소식을 듣게 된 '자리'. 사랑을 포기하고 정략결혼을 택한 오빠의 불행한 인생을 지켜보다 집을 떠난 '자리'는 연인 '더웨이'와 타이페이에 정착하지만 결혼생활은 한없이 외롭고 위태롭다. 하루아침에 함께할 미래를 그리던 이의 손을 놓쳐버린 '웨이칭'. 유학길을 떠난 지 13년 만에 유명 피아니스트가 되어 타이페이로 돌아온다. 귀국 공연을 몇 시간 앞둔 그녀에게 옛 연인의 동생 '자리'가 찾아온다. "그날 해변에서 사고가 있었어" 어느 덧 소녀에서 여니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간절할수록 잡을 수 없었던 사랑과 행복을 바랏던 지난날을 돌아보는데 ..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