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0-19 10:01:34
나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 모음 _망원동 팝업 공지
[클로저 팝업 공지] @closer_kr
본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영화 주인공들을 소개합니다. 오늘, 20일(금)부터 ~22일(일)까지 망원동에서 영화 팝업을 진행하는데요. <나를 찾아가는 시간> 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모습을 진정으로
찾아가는 영화 주인공들의 모습들이 담긴 명대사, 굿즈, 각종 이벤트까지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셔서 가을, 겨울 향취 듬뿍 담긴 영화 같이 느껴보아요자세한 일정은 맨 끝장을 참고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ive contents
-
- 추락의 해부 / Anatomie d'une chute
추락의 해부 / Anatomie d'une chute
.
.
프랑스에서 봐야지 봐야지하면서 결국 못보고, 드디어 한국에서 보게 된 영화.
/ 영화 소개 /
남편의 추락사로 한순간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유명 작가 ‘산드라’. 유일한 목격자는 시각장애가 있는 아들과 안내견뿐. 단순한 사고였을까? 아니면 우발적 자살 혹은 의도된 살인? 사건의 전말을 해부해 가는 제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네이버 영화-
/ 간략 줄거리 /
갑작스러운 남편 '사무엘'의 죽음이 불러온 법정공방.
개를 산책시키던 아들 '다니엘'이 땅에 추락하여 숨진 아버지를 발견하고 엄마 '산드라'를 부른다. 사망 경위를 조사하던 경찰들은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발견하고 사고사가 아닌 타살의 가능성을 논하게 된다.
이후, 사무엘이 사망할 당시 유일하게 같은 집에 있던 부인 산드라가 피의자로서 조사를 받게 된다.
그런 산드라를 도와주는 변호사 뱅상은 산드라와 오래전부터 알고지낸 사이인듯 보인다.
뱅상과 산드라 그리고 아들 사무엘은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지고 결백함을 주장하기위해 고군분투한다.
.
.
.
/ 감상 /
나는 영화를 보러가기 전, 트레일러나 별다른 홍보용 미디어들을 찾아보지 않는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도 그랬다.
나의 영화에 대한 '관람 전' 평가는 오직 영화의 포스터에 달려있다.
이 영화의 포스터는 나에게 조엘 코엔 감독의 영화 '파고 Fargo'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당연히 이 영화를 파고와 연결시켜 줄거리를 예상해 보았다.
'인적이 드문 산골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살인사건을 덮기위한 여정이겠구나' 하는 단순한 생각.
그러나, '추락의 해부'는 나의 예상과는 반대되는 행보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은 시작일뿐이다.
이후의 기나긴 법정공방이 영화의 중심을 차지한다.
영화 제목 '추락의 해부'.
이들은 왜 '해부'라는 단어를 썼을까?
갑작스러운 추락사를 해부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이 '해부'를 '관계의 해부'로 해석했다.
아내 산드라와 남편 사무엘의 관계의 해부.
법정에서 검사는 집요하게 그들의 관계를 해부한다.
그들의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그들이 그린,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남편 사무엘이 그린 미래까지.
사람의 신체를 해부하는 것보다 더 적나라하게, 그들의 정신상태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관계를 해부한다.
그리고 어쩌면 사무엘의 사망이 사고가 아니었을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도달한다.
판사, 변호사, 검사, 배심원, 수많은 언론사 그리고 자기 아들 앞에서 자신의 치부와 관계를 낱낱히 해부당한 산드라의 모습과 감정이 인상깊다.
산드라의 정신적 피폐,
이것이야 말로 사무엘이 원하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겪어온 정신적 고통을 산드라도 느껴보았으면, 한번만이라도 역지사지를 당해보았으면 어땠을까하는 그의 간절함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드러난다.
-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당연 아들 다니엘이다.
고작 11살 밖에 안된 다니엘이 겪은 신체적, 정신적 충격 그리고 이 고통 속에서 점점 성숙해져가는 그의 모습은 당연 인상적일수 밖에 없다.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아빠를 죽인 살인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을 먹음과 동시에 우리 엄마가 그럴 이유가 없다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녀의 결백을 증명해내려고 한다.
마지막 재판에서 한 그의 마지막 증언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 카오스에서 그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가히 중요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 말씀의 뜻을 마침내 깨달은 아들의 표정과 감정은 보는이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 증언이 재판의 판을 뒤집는다.
-
-
아들의 관점으로 보여주는 카메라 샷은 이 영화의 핵심 연출이다.
또한, 음악을 사용하여 긴장감을 주는 것도 인상적.
-
다만 아쉬운 점은,
모든 사람이 의문을 품었던 사무엘의 머리에 있던 흉터에 대한 명백한 결론 없이 넘어간 것과 애매하게 보여준 산드라와 뱅상의 관계.
사실, 그 흉터뿐만아니라 이 추락사와 관련한 물리적인 부분들 모두 깔끔하게 해결되지 못한채 무죄판결이 내려진다.
따라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과연 사무엘의 죽음이 과연 명명백백하게 그의 자살일까 싶기도하다.
-
나에게 몇가지의 의문을 남겨준 '추락의 해부'에
나는 5점만점에 4점을 준다.
-
+ 엔딩씬이 인상적.
이 엔딩씬이 없었다면 과연 나는 이 영화에 이러한 평가와 감상을 남길수 있었을까 싶다.
-
- 의심받고 고통받은 고라니에게 심심한 사과를-2
사실 영화의 초반에 차에 치인 고라니가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수도 있다. 바이러스가 잘 퍼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더욱이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로드킬을 당한 고라니 사체가 어떻게 돌아다니게 되었냐는 것이다.
로드킬, 말 그대로 동물이 도로에 나왔다가 자동차 등에 치여서 사망하는 사고를 말한다. 한글로는 ‘동물 찻길 사고’라 한다. 사람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운행 중에 야생동물이 갑작스럽게 도로에 침입해서 발생하는 차 사고라고 볼 수 있겠지만 동물 입장에서는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동물의 입장에서 강하게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동물을 피하다가 2차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고, 차량이 파손되면서 사람도 경제적인 손실을 입기도 한다.
로드킬은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잔인한 교통사고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로드킬의 숫자는 2018년 6월부터 체계적으로 수집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공동으로 「동물 찻길 사고(로드킬) 조사 및 관리 지침」을 공동으로 제정하였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굿로드'를 활용하였다. 수많은 야생동물이 죽은 뒤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특정 기관이나 단체만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신고할 수 있어서 시민들에게 오픈해 달라는 요구가 있는 상황이다. 즉, 제대로 집계하기 시작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2020년 7월에 로드킬 저감 대책을 수립한다면서 그동안의 통계가 발표되었다. 대부분의 로드킬은 국도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부산행>의 사고도 국도에서 발생했다. 그냥 생각하면 고속도로에서 더 많이 발생할 것 같은데 10배나 높게 국도의 사고량이 많다고 한다. 속도가 빠르다 보니 사체의 훼손이 심해서 발견하지 못하거나 보지 못했을 가능성도 높을 것이고, 아무래도 동물들도 건너야 할 거리가 멀다 보니 위험하게 느껴져서 시도하지 않은 것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5년과 비교하며 2019년에는 사고 발생량이 50% 정도가 증가하였다고 했다. 2018년 6월 이전에는 제대로 된 집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늘어난 것이기도 하겠지만 도로가 더 많이 생겼기 때문에 사고의 수가 많아지기도 했을 것이다.
로드킬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는 4월에서 6월까지, 그리고 10월이다. 아무래도 동물이 번식하고 이동이 많은 시기이기 때문인 것 같다. 역시나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동물은 고라니다. 그다음은 고양이, 너구리 순이라고 한다. 역시나 고라니는 억울하다.
우리나라에서 고라니는 농작물을 망치는 나쁜 동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허가 기간에는 사냥도 가능하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고라니는 멸종위기 동물이다. 심지어 IUCN적색목록에 '취약 등급'으로 분류가 되어 있다. 아주 귀엽다고 알려진 랫서팬더와 우리나라에서는 복원을 진행하고 있기도 한 반달가슴곰과 동급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 고라니 수의 반 이상이 한국에 살고 있다고 하니 많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IUCN적색목록>
절멸 가능성이 있는 야생생물의 명단을 만들어 그 분포나 생식 상황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안내 책자
- 절멸종: 디메트로돈, 아르젠타비스 등
- 자생지 절멸종: 바바리 사자 등
- 심각한 위기종: 샴악어, 수마트라오랑우탄 등
- 멸종위기종: 설표, 판다 등
- 취약종: 랫서팬더, 반달가슴곰 등
- 위기근접종: 흰손 기번, 큰 개미핥기 등
- 관심 필요종: 미어캣, 붉은여우 등
- 자료 부족종: 날개다랑어 등
- 평가불가종: 왕도마뱀, 목도리도마뱀 등
야생동물들이 도로를 건널 수 있게 해 주는 것에 '생태통로'라는 것이다. 말이 좋아 생태통로이지 사람의 입장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동물들이 제대로 쓰고 있다고 100% 확신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은 육교형 생태통로이다. 동물만 다닐 수 있도록 조성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환경영향평가 통과용으로만 계획하고 실제 조성은 산책로처럼 만들어서 사람이 쓰는 경우가 꽤 있다. 야생동물들은 길도 잃었는데, 선심 쓰듯 만들어준 대체 도로도 빼앗기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생태통로가 있어도 도로로 나오게 된다. 예전의 기록에 의하면 생태통로 주변에서 더 많은 로드킬이 발생했다고 한다. 미루어 보아 아마 동물들은 생태통로를 건너갈 수 있는 길로 인식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동물들은 우리보다 감각이 더 예민하고 생명에 위험이 되는 것에 더 민감할 텐데 평소에 다니지 않던 곳을 지나가는 것이니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분은 이런 이야기도 하셨다. 동물들은 습성상 배운 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고, 산에서 산으로 이동할 때는 오르고 내리는 길이 있어야 하는데 육교형의 경우 직선이다 보니 다녀야 할 길로 인식을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경우 생태통로를 언덕처럼 산처럼 만드는 곳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디자인은 대부분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싸고 쉬운 방식을 택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생태통로의 개수는 450개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개선하는 것이 너무나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생태를 단절하는 형식의 새로운 도로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속도를 즐기고 빨리빨리의 민족이기에 더 많은 도로를 원하겠지만 이 좁은 땅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도로에서 야생동물을 발견하거나 로드킬을 당한 동물을 발견할 수도 있고, 혹은 어쩔 수 없이 치게 될 수 있다. 영화의 농부가 그랬다. 운전하면서 한 눈을 팔지 말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말이다. 낮에는 잘 보이는 편이니 한눈만 팔지 않으면 잘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야행성이라서 밤에 다니는 동물이 많으니 밤에 마주치게 된다면 전조등을 끄고 속도를 줄이면서 경적을 울려주는 것이 좋다. 간혹 놀라거나 사람인 줄 알고 상향등을 켜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면 동물도 사람도 오히려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도 어두운 곳에서 카메라 후레쉬가 눈에 번쩍하면 한동안은 잘 안 보이는 것처럼 동물도 마찬가지다. 특히 고라니는 순간적인 반응이 오면 움직이지 못한다. 산이나 너른 들판에서 가끔 고라니를 만나게 되는데 사람을 만나면 무작정 도망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한동안은 움직이지 못하고 멀리서 쳐다보고 있다가 도망가기 일쑤이다. 야생동물들은 차량을 멈춰 잠깐 기다려주면 피할 것이고, 속도를 줄여서 운전하고 있었다면 안전하게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산에서 갑자기 내려오는 야생동물은 피하지 못할 수 있다. 주변에 차가 없다면 최대한 피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야생동물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그냥 치는 수밖에는 없다. 핸들을 갑자기 꺾는다든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2차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 사고만큼 인명사고도 마음 아픈 것은 똑같다.
로드킬을 당한 동물을 발견하거나 사고가 나면 고속도로의 경우 한국도로공사로 국도는 담당 도로관리청으로 신고하면 된다. 앞서 이야기한 애플리케이션이 일반인들에게도 오픈된다면 더 많은 사고와 유형을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자료로 예방할 방법도 알아내야만 한다. 영화의 고라니가 생각보다 빠르게 좀비화되긴 했지만 만약에 농부가 신속하게 로드킬을 신고하고 사체가 수습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면 고라니에 의한 좀비 바이러스 확산은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전화를 받으려고 운전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1차 책임은 있지만 말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코로나와 로드킬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로 통행 제한이 되니 차량의 수가 줄었고, 하루에 죽는 야생동물의 수 역시 급격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메인이라는 주에서는 45%나 감소했다고 한다. 결국 애석하게도 로드킬은 인간의 활동이 줄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우리는 자동차의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 그럼에도 사용해야 한다면 그 속도를 낮춰야 한다. 그러면 나 자신의 안전도 지킬 수 있고, 동물의 생명도 지킬 수 있다. 아무래도 빼앗는다는 말은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동물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서 도로를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
-
- 이 영화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
모든 존재는 태어난 이상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자주 품곤 한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탐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모호한 문제다. 때로는 그 질문을 깊게 고민하면서 존재론적인 문제에 매달리기도 하고, 때론 이 고민이 답답하고 불편해 외부로 짜증과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이런 고민들은 철학적으로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뚜렷한 답을 찾기 어렵다. 우리는 그저 삶의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불쑥 솟아오르는 의문들을 마주할 뿐이다.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순간들은 특별히 예측할 수 없다. 연애, 결혼, 아이의 탄생,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과 같은 중요한 사건들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인간 존재의 사이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특히 죽음은 삶의 끝을 알리는 동시에, 그 자체로 큰 고통을 동반한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삶의 고통과 죽음을 연결해 우울함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춘기는 이러한 생각들이 더욱 예민해지는 시기이다.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겪으며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이 더욱 깊어지고, 많은 청소년들이 불안과 혼란 속에서 이러한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이 성장의 시기에는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이 깊어진다. 청소년들은 자주 자신이 세상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철저히 질문하게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불안과 혼란을 동반하는데, 이 혼란을 잘 견뎌내는 것만이 삶의 복잡성을 받아들이고,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과정에서 죽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적인 화두로 등장한다.
[첫번째 감정] 리디아의 혼란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의 리디아(위노나 라이더)는 삶 전체가 혼란스러운 인물이다. 그녀는 과거 <비틀쥬스> 1편에서 이미 사춘기를 겪으며 죽음을 동경하던 청소년이었다. 당시 리디아는 세상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과 죽음에 대한 동경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 영화의 설정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죽음 이후에도 일종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간다고 묘사된다. 그래서 리디아는 죽음이 곧 끝이 아니라는 생각에 빠지며, 죽은 사람들조차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리디아는 죽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그녀에게 삶의 불편함과 혼란스러움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죽음이 곧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리디아는 죽음을 동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비틀쥬스(마이클 키튼)라는 혼돈의 존재와 마주하면서, 실제로 죽음이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삶 역시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며, 죽음도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1편에서 리디아는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힘을 얻었다.
이번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리디아는 중년이 되어 등장한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 리디아는 사춘기 시절과는 또 다른 혼란에 직면한다. 딸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와의 관계는 원활하지 않으며, 결혼 생활 역시 만족스럽지 않다. 그녀는 여전히 삶의 혼란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된 리디아는 자신이 청소년 시절에 가졌던 의문들을 다시 꺼내어 묻는다. 이번에도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녀는 딸에게 자신이 겪었던 혼란을 물려주고 싶지 않지만, 딸은 엄마를 부끄러워하고 그들 사이의 소통은 단절된다. 어쩌면 리디아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비슷한 시기에 혼란과 방황을 겪고, 그 답을 찾으려 애썼으니까.
[두번째 감정] 아스트리드의 혼란
리디아의 딸 아스트리드 또한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다. 어머니와의 소통 문제,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겹쳐 그녀는 끊임없이 불안감을 느낀다. 아스트리드는 어머니처럼 죽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거나 유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쩌면 이는 그녀가 아직 삶과 죽음의 경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스트리드는 죽음이란 것이 그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가족의 죽음, 특히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며 겪는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테마는 아스트리드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팀 버튼의 세계관에서는 죽음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처럼 묘사된다. 죽음은 삶의 일부일 뿐이며, 죽음 자체는 슬픔의 대상이 아니다. 아스트리드는 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결국 어머니 리디아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스트리드가 죽음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머니가 자신 곁에 늘 있었음을 깨닫고,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죽음은 한편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묘사된다. 팀 버튼이 창조한 이 세계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희미하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죽음조차 비극으로 다뤄지지 않으며, 그저 일상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이는 죽음이 곧 삶의 일부이며, 둘은 별개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세번째 감정] 비틀쥬스의 혼란
비틀쥬스는 그 자체로 혼란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그의 존재는 리디아와 아스트리드가 겪는 혼란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비틀쥬스는 스스로 혼란을 일으키는 존재이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가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누군가 그의 이름을 세 번 불러야 소환된다는 것이다. 이는 혼란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 누군가에 의해 촉발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리디아나 아스트리드가 겪는 혼란이 결국 비틀쥬스를 소환하게 된다는 설정은, 우리가 삶에서 겪는 혼란이 결국 외부의 영향과 내부의 불안이 결합해 터져 나오는 방식과 유사하다.
비틀쥬스는 단순히 악당이나 장난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그는 리디아와 아스트리드,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혼란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전달한다. 그가 끊임없이 일으키는 혼란은 마치 우리 삶의 불확실성과도 같다. 비틀쥬스는 우리가 직면한 혼돈을 극대화시키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나가는 인물들처럼, 관객들 또한 그 혼란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팀 버튼 감독은 독특한 상상력과 기괴한 미학으로 유명하다. <비틀쥬스> 1편은 80년대 당시에도 파격적인 연출로 주목을 받았고, 이번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그 후속편으로서 팀 버튼다운 세계관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그가 30년 만에 이 시리즈를 다시 꺼내든 이유는, 아마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시 한 번 탐구하고자 하는 그의 철학적 고민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1편이 내포했던 혼란과 유머, 그리고 기괴함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2편에서는 중년의 리디아를 통해 성숙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는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을 잘 전달한다. 위노나 라이더는 리디아로서의 혼란과 방황을 탁월하게 표현했고, 제나 오르테가는 신세대 캐릭터인 아스트리드를 통해 새로운 시각에서 삶과 죽음을 탐구한다. 비틀쥬스를 연기한 마이클 키튼 역시 특유의 괴짜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캐릭터의 혼란스러운 본질을 완벽하게 살려낸다.
결국 이 영화는 혼란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영화 속 리디아나 아스트리드는 자신의 삶 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따뜻함과 사랑을 영화 말미에서야 발견한다. 그것이 곧 삶의 의미이자 살아가야할 이유다. 또한 영화의 맨 마지막, 리디아의 새엄마인 딜리아(캐서린 오하라)이 죽음 이후 아무렇지 않게 저 세상 열차를 타는 모습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3QpAc6ioo
-
- 약한 그때의 힘
실패의 느낌을 나는 통각으로 기억한다. 무언가 잘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덜컥 접할 때, 불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라든지 실연당했을 때라든지 뭐 그런 때. 몸인지 마음인지 알 수 없는 어딘가 갑자기 주사기가 꽂힌 것처럼 그 자리에서부터 아릿하게 통증이 퍼지고 눈물이 고이는 그 기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하겠지만 사실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그런 느낌이 있다. 실패감과 자괴감, 무력감과 절망감이 몸을 뒤덮는 아픔.
그리고 그게 두렵기 때문에 때로는 올인해야 하는 순간에 주춤거리게 되기도 한다. 있는 힘껏 몸을 던져야만 공중그네를 탈 수 있는데 떨어질까 두려워서 몸이 빳빳하게 굳는다. 다음 그네를 잡지 못하고 떨어져 버리는 순간의 아찔함이 자꾸 뇌리를 울려와 뛸 수가 없는 그런 마음. 그러나 그럴 때야말로 있는 힘껏 뛰어야 한다. 공중그네를 잡지 못하고 떨어진다면 그 이유는 분명 그 두려움이니까. 그러니까 못 할 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될 일도 그르친다고, 그러니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말이야 쉽지. 모든 희망의 말에 냉소적이 될 만큼, 나는 계속 그런 두려움에 주춤거리고 있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이 영화가 너에게 많은 힘을 줄 것 같아.
나한테는 그런 영화였거든.그때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주연 배우는 마리옹 꼬띠아르라 했다. 그럼 시놉시스는? 복직을 앞둔 직원 산드라의 회사 동료들이 산드라의 복직과 보너스 중 보너스를 택했고 산드라에게는 이제 돌아갈 자리가 없어졌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러나 작업반장이 협박조의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월요일 아침 재투표가 결정된다. 산드라는 16명의 동료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그들을 설득해 보려 하고, 주어진 시간은 주말 이틀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deux jours, une nuit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고, 또 다른 제목은 '내일을 위한 시간'이다.
이게 논술 문제라고 하면 차라리 뭘 좀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인데... 영화 시놉시스라니 별로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아름답고 강한' 마리옹 꼬띠아르라면, 아마 부당한 현실에 목소리를 높이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꼿꼿한 인물이 투쟁을 하는 모습이 감동적인 그런 영화겠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된 지 5분 만에 내 예측은 무참히 깨졌다. 푸석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눈을 붙이고 있다가 받은 전화, 전화를 받는 그 짧은 시간에도 오븐에서 타르트를 꺼내고 칼로 자르는 그 일상적 허드렛일의 느낌... 거의 도망치다시피 뚝 전화를 끊은 산드라의 얼굴에는 마리옹 꼬띠아르가 보여주는 강인함도 아름다움도 없었다. 다만 실패의 통각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고통스러운 인간의 얼굴이었다. 억지로 신경안정제를 꾹꾹 눌러 삼키는 건 또 얼마나 익숙한 풍경인가. 울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저 표정을 지을 때의 마음과 생각과 얼굴 근육이 어떤 느낌인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일 것이다.
영화는 단조롭다. 처음에 전화를 걸어주고,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입장의 사장에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함께 내 준 동료도 있고, 전화 한 통으로 바로 산드라의 복직 찬성에 표를 던지겠다고 말해준 동료도 있지만, 그 외에는 모두 산드라가 주소를 알아내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상황을 설명하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산드라의 대사는 계속 똑같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이고,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재투표를 할 거고, 쉽지 않겠지만 날 위해 투표해 주면 좋겠어. 매번 벨을 누르기 전에는 긴장하고, 잘 되면 얼떨떨해하면서도 환한 웃음이나 감격의 눈물이 나오지만 잘 되지 않을 때는 또다시 나락으로 빠진다.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감정만큼은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다. 아니 오히려 그간의 노력을 다 수포로 돌리게 될까 봐 두려워서인지 점점 더 괴로워한다.
그만 하고 싶어, 그냥 관둘래,라고 말하며 울기도 여러 번 한다. 심지어 남은 신경안정제를 모두 다 한 입에 털어 넣기도 한다. 산드라는 많이 아팠고, 아프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아직도 건강하지 않다. 희로애락을 가파르게 오고 가야 하는 이 시간, 잘못한 게 없음에도 머리를 숙여야 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조르듯이 부탁해야 하는 이 입장이 산드라에게는 쉽지가 않다.
절망과 희망을 오고 가다 산드라가 주저앉을 때마다 붙잡아 주는 건 그 남편 마누다. 마누는 산드라의 아픔에 같이 한숨 쉬고, 단조로운 몇 마디 말을 건네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산드라가 울면서 그냥 다 관두겠다고 할 때도, 신경안정제를 한번에 먹어 버렸을 때도, 병원에 누운 산드라가 미안하다고 말할 때도, 마누는 그렇게 단조롭고 평면적이다. 산드라가 걱정하는 일들이 마누에게도 큰 걱정거리일 텐데도, 산드라가 신경안정제에 과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산드라를 신경 써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가사가 잘 들리지 않도록 소리를 줄일 만큼 예민하게 신경 쓰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기 톤을 고요하게 유지한다. 마누는 반짝반짝 웃는 얼굴로 희망을 말하지도 않고, 대본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지도 않을 단조로운 몇 마디 말만을 한다. 그러나 그 말과 눈빛과 행동 하나하나가 산드라를 지탱해 준 힘이었다. 그러나 산드라가 그 힘을 직접적으로 느끼거나 그런 마누가 빛을 발하는 장면 같은 건 없다. 그냥 산드라는 허덕이는, 절망에 빠진 사람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사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건 엄청난 대형 사건보다 매일 반복되는 것들일 때가 많다. 그리고 우리를 그런 일상에서 구원해 주는 것도 그런 사소함이다. 공원에서 같이 먹는 아이스크림, 점심 먹고 고르는 커피 한 잔, 뭐였다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없는 매일 비슷비슷한 반찬과 이불 무늬 같은 것들. 그리고 그 순간마다 계속 함께 있는 사람들. 마누는 산드라에게 그런 사람으로 있어 준다.
주변 인물이 마치 게임 속의 성직자처럼 몇 번 힘을 부어주고, 그러면 주인공이 빙의라도 된 것처럼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으랏차차 최종 보스를 무찌르고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 버리는 구도는 사실 만화 속에나 있다. 우리 사는 세상에 그런 슈퍼히어로는 몇 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고, 그러니 이 영화도 구태여 말하지도 강조하지도 않고 슥 담았다.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이라고 해서 "1박 2일"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절망에 빠져 날려버린 한 번의 밤을 제외한 이틀이었다. 산드라는 계속해서 동료들을 찾아다닌다. 동료들의 상황과 사정도 모두 다르고, 입장도 모두 다르다.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음에도 영화는 동료들을 범주화하지 않으려고 공 들인 느낌이 물씬 난다. 동료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는 것은 물론이다. 전화로 간단하게 찬성표를 약속한 동료조차도 이름이 카데르라는 걸 몇 번이나 불러준다.
또 한 가지 방법이 유사한 상황에서 다른 입장을 말하는 동료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료들 중에는 공교롭게도 이혼을 결심한 여자 동료가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지금 생활을 버리고 남자친구와 새 출발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며 딱 잘라 거절한다. 다른 한 명은 남편이 절대 안 된다고 돈이 빠듯하다며 펄펄 뛰는 걸로도 모자라 산드라에게 뻔뻔하다고 욕하는 걸 두고 그 집을 나와 버린다. 그리고 산드라를 위해 투표하겠다고 하며, 같이 차를 타고 가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클럽에라도 간 것처럼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가장 시원한 장면이다. 이 영화에 음악이 강조되는 부분은 자동차에서 음악을 듣는 두 장면뿐인데, 각각 가사를 유심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이민계 동료들도 있다. 부득이하게 둘 다 집을 비운 상황이다. 휴일이라고 쉴 수 없는, 다른 일을 또 해야 하는 고단한 생활이고 그러니 더더욱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한 집에서는 동료의 아내가 집을 비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산드라가 알아듣지 못하는 자기들의 언어로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고는 짤막하게 거절의 의사를 전했다. 나가는 길에 급하게 물을 사던 슈퍼마켓에서 마주친, 박스를 나르고 있던 그는 여전히 불편해하면서도 도저히 안 된다고 딱 잘라 이야기한다.
다른 동료는 축구장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일을 하고 있던 참이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와서는 준비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놓는 산드라에게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그런 투표를 해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고, 찾아와 주어 고맙다고, 당연히 네 복직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이야기한다. 미쟝센에 정말로 햇빛이 많았는지 아닌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 머릿속에서 이 장면은 축구장의 잔디밭 위로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는 장면처럼 기억되어 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를 노스탤지어를 자아냈다. 그의 이름은 티무르였는데, 나는 막연하게 그의 먼 선조를 상상해 보았다. 집에 들어온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고 여유로운 얼굴로 벙글벙글 웃고 있었을, 그의 머나먼 조상의 삶에 비하면 오늘 그의 삶은 얼마나 빠듯하고 이방인의 것이 되었나. 그럼에도 그 풍족한 마음은 잃지 않아서 그는 산드라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인사하며 눈물 흘릴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전의 동료가 보인 불편한 표정도 이 눈물과 다르지 않다고, 내가 상상한 선조 대였다면 분명 그도 넉넉하게 웃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산드라에게 벌컥 화를 낸 사람도 있고, 생활에 지친 얼굴로 삶의 경비를 헤아려 보며 안 된다고 조곤조곤 설명한 사람도 있었고, 산드라 복직의 당위성 자체를 못 느끼는 사람도 있었고, 집에 없는 척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린 제롬의 집에서 산드라만큼이나 어려운 제롬의 선택을 듣는다. 산드라의 복직에 찬성해야겠지만, 그러면 계약직인 제롬은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하게 될 게 뻔했다.
아, 계약직. 70-80년대 노동의 아픔이 집약된 단어가 저임금이라면 오늘날의 아픔은 계약직이라는 단어로 수렴되는 거 아닐까. 그 아픈 단어까지도 동료들 안에 담아낸 이 넓은 스펙트럼. 제롬의 말투가 덤덤해서 더 곤혹스러웠다. 아무튼 산드라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월요일 아침 8시, 작은 회사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누구도 악역은 없는데 누구나 괴로운 시간이었다. 협박조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는 작업반장조차도 산드라에게 자기 정말 그런 적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은 진실일까?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두세 명만 돌아와도 이야기는 와전될 수 있고, 입장의 차이가 첨예한 이런 때도 물론 예외는 아닐 테니까. 아무튼 작업반장까지 포함해 절대악은 없지만 피해는 생기는 괴로운 상황이 되었다.
투표의 결과는 8대 8. 최선을 다했지만 과반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산드라의 복직은 성사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소식,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소식, 누군가에게는 복잡 미묘한 심경이 드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산드라는 담담하다. 오히려 선심 쓰듯 산드라에게 '계약직 기간이 끝나면 복직시켜 주겠다'는 사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일어날 여유도 생겼다. 그리고 회사를 빠져나가며 마누에게 전화를 걸고 씩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우리 잘 싸웠지? 나 행복해.
맞다. 산드라는 싸웠다. 동료를 설득한 게 아니라 삶과 싸웠다. 그리고 이건 패배일까 승리일까? 객관적인 지표가 변하는 건 별로 없다. 처음에 산드라가 울면서 이야기했던 괴로운 일들이 다 일어날지도 모른다. 임대 아파트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고, 생활은 더 빠듯해질 것이며,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날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마누의 한숨이 늘고 산드라가 눈물을 훌쩍거리는 날들이 또 있을 수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은 정말로 내일을 위한 시간이었다. 산드라는 그 시간 동안 건강해졌다. 복직은 하지 못했지만 다른 일을 구해서 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여태까지와는 다를 것이다. 한 번 병원균에 맞서 본 몸은 항체를 만들어낸다. 한 번 싸워본 사람은 싸움의 감각을 익힌다. 그렇게 우리는 연약한 와중에 실패와 싸우며 역설적으로 강해진다. 실패한 사람도, 실패가 두려워 발을 떼지 못하는 사람도 다 그렇게 나아갈 수 있다. 대단한 업적이나 따스하고 예쁜 말이 아닌, 별 거 아닌 일상성으로 다르덴 형제는 우리를 위로한다. 나도 당신도 약하고 두렵지만 분명 그렇게, 괜찮을 것이다.
-
- 현재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향해.
줄리아 로버츠 그리고 조지 클루니라는 이름만으로도 보러 갈 이유가 충분한 영화 <티켓 투 파라다이스>는 <맘마미아 2!>를 연출했던 올 파커 감독의 새로운 작품이다. 10월 12일에 개봉한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딜콤살벌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두 베테랑 배우가 만들어내는 연기의 케미가 이 영화의 주요 이야기의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며 보다 많은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들이 조금씩 풀리며 또 다른 의미를 뻔하지만 따뜻하게 풀어나간다.
운명 같은 사랑을 느꼈던 데이비드와 조지아는 서로가 없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그때와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그들은 딸 릴리와 연관된 일이 아니면 대면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로펌 입사를 앞둔 딸이 발리에서 운명의 남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오게 되고 항상 의견이 맞지 않았던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게 되고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비행기에 올라타게 된다. 이들은 과연 결혼을 막을 수 있을까.
'나'가 아닌 '타인'을 중심으로 한 삶은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릴리 또한 자신의 목표가 아닌 부모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갔던 터라 목표를 이루고 나니 찾아오는 허탈함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릴리가 발리로 떠났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으며 그곳에서 느낀 것들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것이 부모님이 원하지 않을지라도 릴리는 그 사랑을 멈추고 싶지 않다. 사랑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지만 릴리가 마주했던 건 자신이 기존에 누렸던 모든 것들과는 정반대에 있는 삶이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자유보다는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사회에서의 자유를 택한 것이다.
현실과 상황은 성격을 드러내고 그들은 자연스레 반대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을 겪었기에 짧은 기간의 만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도 감정도 변하지만 변하는 것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늘 앞에 있는 것에 충실하며, 언제 찾아올지 모를 미래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이 사랑의 말보다 상처의 말을 꺼내어 긴 불행을 겪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고 서로를 위해 지금 건넬 수 있는 사랑의 말을 꺼낼 때다. 좋은 건 뒤로 미루는 게 아니다.
우리는 왜 운명적인 사랑에 끊임없이 빠져드는 걸까.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은 환상에 뒤덮여 있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아름다운 것 또한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순간,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다만 그 속에서도 진심을 다한다면 당신이 건넨 이 티켓이 정말 '파라다이스 행' 티켓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단번에 찾아오는 화해가 존재할지는 의문이다. 영화관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배우들의 연기에도 곳곳의 빈 공간을 메우지는 못하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
- 삶의 가능성을 대하는 태도
우리의 삶은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 일생에 한 번의 선택이 그 이후의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아주 어린 시절엔 그야말로 무수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선생님이 될 수도 있고 화가가 될 수도 있고,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작은 선택들을 해나가면서 그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어나간다. 아주 우연히 진행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나'라는 존재가 가지는 가능성은 '나'의 모습을 규정짓게 하는 일종의 길이다.
그렇게 가능성의 길을 뚫고 현재의 내가 탄생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재의 내 모습에서도 다양한 가능성이 따라온다. 미래의 내 모습을 결정할 다양한 가능성은 결국에는 우리가 할 작은 선택에서 나온다. 그런 가능성들을 영상으로 옮겨 보여줬던 <에브리웨어 에브리씽 올 앳 원스>는 다양한 멀티버스에서 존재할 수 있는 한 인물의 여러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모든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건 현재의 '나'라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줬다.
페이즈 5를 시작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페이즈 5를 여는 영화다. 앤트맨인 스캇 랭(폴 러드)의 평범한 삶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영화는 스캇과 그 주변인물들이 바라보는 다양한 가능성을 어떤 태도로 보는지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스캇은 평범함에 익숙하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어벤저스 멤버라는 자부심도 있지만 그 때문에 딸에게 잠시나마 자신이 없다는 상실감을 느끼게 했던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 스캇은 영웅 역할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
어쩌면 스캇은 평범한 삶을 선택하면서 '위험'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하려고 애썼는지 모르다. 타노스로 인한 블립으로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이 죽을 뻔한 상황을 경험하고 나서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스캇의 선택은 심심한 삶일지라도 옳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딸 캐시(캐서린 뉴튼)는 그 위험한 가능성을 피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아빠보다 좀 더 호기심이 많고 과학적 연구를 하는데 관심이 많다. 이건 1대 앤트맨인 행크(마이클 더글러스)의 영향이 컸다. 두 사람은 다른 가족 몰래 양자 영역 세계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고 그로 인해 스캇과 캐시, 행크를 비롯한 재닛(미셸 파이퍼), 호프(에반젤린 릴리)까지 양자영역으로 빨려 들어간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과거 앤트맨 시리즈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빌런인 정복자 캉(조나단 메이어스)을 등장시켜 좀 더 심각한 분위기로 끌어나가려고 한다. 정복자 캉은 작년에 선보였던 디즈니+의 시리즈 <로키>에 등장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빌런으로 등장한 건 이번 영화부터다. 처음엔 선한 얼굴을 보여주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악한 이미지가 드러난다.
앤트맨과 정복자 캉이 가능성을 대하는 다른 태도
정복자 캉은 멀티버스라는 다양한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려는 사람이다. 다양한 우주와 시간대로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그는 돌아다니면서 시간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모든 인물을 비롯해 그 우주 자체를 파괴하려 애쓴다. 그러니까 그에게 보이는 다양한 가능성을 억지로 줄이려는 캐릭터로 보인다. 그 무한한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배타적으로 접근하는 인물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스캇은 정확히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영화의 후반부 스캇이 어떤 물질의 코어에 접근하려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그 가능성들은 무한대로 많아지면서 어떤 가능성은 죽고 다른 가능성은 도망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능성들은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이내 힘을 합쳐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를 돕는다. 스캇은 그 수많은 가능성을 두려워하거나 배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최선의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가능성에 대한 다른 태도는 마블이 왜 정복자 캉을 영화 <앤트맨> 시리즈에 처음으로 등장시켰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사실 앞으로 정복자 캉은 많은 마블 영화에 등장하게 될 최종 빌런이다. 그가 가진 멀티버스에 대한 태도와 그가 악행을 벌이는 이유를 잘 설명하기 위해 스캇과 그 가족을 대척점에 세웠다. 그렇게 다양성에 대한 두 캐릭터의 대비는 정복자 캉이 어떤 인물인지를 뚜렷하게 만든다.
이런 대척점을 만들면서 포기한 건, 빌런으로서 가진 위압감이나 카리스마다. 그래서 몇몇 장면에서는 정복자 캉이 엄청난 힘을 가진 것 같이 묘사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힘이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발휘되면서 그 카리스마가 휘발되어 버린다. 인물의 태도와 성향에 대한 것을 뚜렷하게 하고 그가 가진 힘이나 능력은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그의 빌런으로서의 위압감은 다른 마블 시리즈의 빌런에 비해서 떨어져 보인다.
빌런의 위압감을 포기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발판을 만들다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앤트맨>1편과 2편을 연출했던 페이튼 리드 감독이 계속 연출을 맡았다. 그래서 양자 세계의 아기자기한 이미지나 스캇이나 그 가족들이 가진 캐릭터들의 특성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필요할 때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앤트맨 스캇의 활약과 1대 앤트맨 행크의 활약도 돋보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바로 미셸 파이퍼가 맡은 재닛이다. 양자 세계에 이미 갇혔던 경험이 있는 재닛은 이번 영화에서 꽤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며,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셸 파이퍼가 보여주는 매력이 무척 뛰어나다.
이번 영화는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마블 시리즈는 이제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멀티버스의 세계로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이전 페이즈에서도 멀티버스를 활용한 이야기를 보여주긴 했지만, 그 멀티버스가 탄생시킨 빌런 정복자 캉은 이제 막 등장한 셈이다. 향후 이어질 마블 영화들이 이 무수한 가능성들을 어떤 태도로 보고,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지가 마블 팬들이 중점적으로 봐야 할 관전포인트다. 어쨌든 기존 마블 팬이라면 계속 이어지는 시리즈를 챙겨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직은 무너지지 않고 있는 마블이 조금 더 좋은 이야기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실 수 있어요.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
- 왓챠 9월 1주 신작 영화
[WEEKEND CHOICE MOVIE] #왓챠#왓챠신작 #왓챠영화
#다만악에서구하소서 #파이널컷 #담보 #또하나의약속 #솔트 #피로미나의기적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
-
- 영화 <리뎀션 데이> 메인 예고편
약속했던 당신과의 내일,
반드시 구해낼 것이다!매일 밤 꾸는 악몽과 수시로 찾아오는 절망은
전쟁이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였다.
문화재 발굴 작업을 위해 모로코로 떠나는 ‘케이트’를 바라보며
‘브래드’는 새로운 삶, 새로운 시작을 꿈꿨다.
이러한 행복도 잠시,
‘케이트’가 테러단체로부터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브래드’는
다시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걸어 들어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 사람과 약속한 내일을 지키기 위해.
-
- 영화 <로그 인 벨지움> 메인 예고편
팬데믹 선포로 벨기에 앤트워프 낯선 호텔에 고립된 배우 유태오,
영화라는 감수성이 통한 가상의 세계에서 찾은
진짜 유태오의 오프 더 레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