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5-03-07 13:16:22
봉준호 다운 캐릭터가 조화를 이루다
- <미키17>(2025)









봉준호 감독은 언제나 우리에게 묵직한 사회적 함의를 던지는 이야기꾼이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당시 수사 시스템의 허점을 통해 실체 없는 공포와 무력함을 그려냈고, <마더>에서는 극단적 모성애로 인한 폭주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기생충>에서는 계층 간 격차를 촘촘한 미장센과 인물 구도를 통해 묘사함으로써, 사회학을 전공한 감독 특유의 비판적 시선을 매섭게 드러냈다. 그 연장선 위에서 탄생한 신작 <미키17>은 우주라는 새로운 무대를 빌려, 우리의 현실 속 ‘계급’과 ‘정치’,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춰진 인간의 본능을 극적으로 펼쳐 보인다.
영화는 우주 이주 프로그램에 참여한 미키(로버트 패틴슨)를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그는 자신이 죽을 때마다 기억과 인격을 복제해 다시 깨어나는 ‘익스펜더블 프로그램’의 담당자로 설정되어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 위험천만한 프로젝트에 지원했을 뿐이지만, 반복된 죽음과 새로운 깨달음을 통해 결국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미키의 여정, 그의 연약함을 감싸는 나샤(나오미 애키)의 ‘사랑’, 그리고 이 모든 시스템을 악용하는 정치인 마셜(마크 러팔로)의 ‘욕심’이다.
[첫번째 감정] 미키의 두려움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감정은 미키가 품고 있는 ‘두려움’이다. 지구에서 엄청난 빚을 지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그는, 결국 우주로 도망치듯 떠나는 결정을 내린다.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그를 몰아세웠고,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실험체나 다름없는 ‘익스펜더블 프로그램’에 덜컥 지원한다. 이때 미키가 제대로 설명도 듣지 않고 서류에 사인을 하는 장면은, 그가 얼마나 궁지에 몰려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죽음이 두려워 도피한 곳이 하필이면 죽음을 반복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구역이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미키는 이내 ‘복제’를 통해 계속해서 부활하는 상황에 익숙해져 간다. 바이러스 테스트나 우주방사선 노출 실험처럼 잔인한 방식으로 소모되는 모습에서도, 그는 겉으로는 무감각해 보인다. 몸이 망가져 죽으면 또 다른 미키가 깨어나 동일한 기억을 잇기 때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이던 미키에게, ‘살아있음’ 자체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이기도 하다. “기억이 이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나의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가?”
진짜 문제는 미키17이 ‘미키18’을 마주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미키18은 기억과 외형은 비슷하지만, 분명히 성향과 태도가 조금 달라 보이는 존재다. 그제야 미키17은 깨닫는다. 죽는 순간 자신이 ‘영원히 소멸’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복제 기술이 완벽하다 생각했으나, 결국 매번 다른 개체가 나타날 뿐 ‘이전의 나’와 100% 동일할 수는 없다는 걸 체감한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라는 질문을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이 던질 때, 그것은 미키가 가진 두려움을 일깨우는 말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동안 답을 찾기 힘든 이 근원적 공포가, <미키17>에서 인간성을 탐색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두번째 감정] 나샤의 사랑
두 번째 감정은 미키를 헌신적으로 지켜보는 나샤의 ‘사랑’이다. 여러 차례 죽고 깨어나는 사이에서, 미키의 곁을 지키는 건 오직 나샤뿐이다. 그녀는 “죽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냐”처럼 끔찍한 질문을 미키에게 묻지 않는다. 죽음의 상처를 굳이 후벼팔 필요 없음을,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공감 능력은 미키가 가진 두려움을 일시적으로나마 잊게 만들어주고, 시종일관 곁에서 그를 안심시킨다. 영화 초반에는 이러한 관계가 단순히 ‘연약한 남성을 돌보는 강인한 여성’ 구도로 보일 수 있지만, 곧 나샤의 매력이 훨씬 깊고 다층적임이 드러난다.
특히 나샤는 ‘미키17’과 ‘미키18’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 상황에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둘 다 같은 미키임에도, 성향은 조금씩 다른 두 사람을 동등하게 받아들이고 사랑을 나눈다. 이중적 존재가 생겨난 불안한 상태에서도, “네가 누구든 사랑하고 지켜주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그녀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는 단지 연애 감정의 차원을 넘어, 이주 행성이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생겨난 새로운 ‘존재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를 배척하지 않고 소통으로 품어내는, 그런 태도가 이 영화에서 중요한 테마로 자리한다.
나샤가 특히 돋보이는 지점은, 이주 행성에서 만난 ‘벌레’ 같은 생명체를 지키려는 결심을 보여줄 때다. 우주정복이나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자원을 갈취하려 드는 정치인 마셜 집단과 달리, 나샤는 ‘이 생명체들도 우리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녀의 시선은 결국 ‘사랑’과 ‘공감’의 확장판이다. 미키를 받아들이듯, 우주 생명체와도 대화하며 공존하려 애쓰는 나샤의 모습에서 우리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타인(혹은 타종)을 소모하는 행태’에 대한 날 선 비판인 셈이다.
[세번째 감정] 정치인 마셜의 욕심
세 번째 감정은 마셜(마크 러팔로)이 상징하는 ‘욕심’이다. 그는 지구에서 정치적 입지가 별로였기에, 우주 이주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스스로 권력의 중심에 올라선다. 본질적으로 무능력하기에, 늘 아내(토니 콜렛)에게 모든 결정을 위임하는 모습이 반복해서 비춰진다. 사업가이자 정치인으로서 그는 한편으론 교묘하게 대중을 현혹하고, 다른 한편으론 미키 같은 존재를 마음껏 써먹으려 든다. 익스펜더블 프로그램은 이주 중 만날 수 있는 위험에서 유용하게 소모될, ‘하나쯤 없어져도 괜찮은 인력’이라는 발상으로 만들어진 제도다.
흥미로운 건, 마셜이라는 캐릭터를 보면 자연스레 한국의 정치 현실이 떠오른다는 점이다. 지지층을 어떻게든 확보하고, ‘뭔가를 해내는 척’ 무대만 만들어 놓은 뒤, 실제로는 구체적인 청사진이나 능력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지도자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권위자에게 줄을 서고 충성을 다하는 이들은 마셜의 비위를 맞춰주며, 그의 온갖 추한 면을 뒤처리한다. 그러나 막상 이주한 행성에서 어떠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듣기 좋은 연설만 반복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몫의 이득 챙기기에만 급급한 셈이다.
결국 미키와 그 곁을 지키는 나샤, 그리고 우연히 교류하게 된 외계 생명체가 보여주는 ‘공존과 연대’야말로 마셜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봉준호 감독은 “작은 존재가 모여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여러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기생충>이 그렇고 <설국열차>도 그랬다. 이번에도 무심코 버려졌던 미키와 외계의 작은 벌레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조화’가 정치적 거인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는 우리 사회 속 ‘무능한 리더십’이 불러올 참담한 결과를 예고하는 현실 풍자처럼 보인다.
<미키17>이 담은 봉준호 월드
한편, 마셜과 미키17의 대립을 ‘권력자와 청년 노동자’의 대립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마셜은 지구라는 기존 체제에서 기득권을 꽉 잡고 있던 권력자가 우주로 무대를 옮겨 권위를 재차 행사하는 인물이다. 반면, 빚 때문에 스스로 ‘소모품’ 역할을 떠맡은 미키17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기꺼이 위험한 임무를 감수하는 청년 노동자에 가깝다. 그들은 한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마셜에게 미키17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부품’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착취 구조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고용시장과 권력자-피고용인의 위계 질서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봉준호 감독은 어김없이 약자들의 연대와 소통을 통해 부조리를 깨부수는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미키17>은 반복되는 죽음과 복제라는 소재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을 던진다. 이 질문은 동시대의 다양한 사회문제와 절묘하게 맞물린다. 흥미로운 건, 지구에서 이 우주로 떠난 이들은 대부분 생존의 위협이나 경제적 압박, 혹은 정치적 이유로 도피해 온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지구를 버리고 떠나온 자들의 새로운 세계에서, 과연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을까? 결국 인간이란, 어디에서건 같은 고민과 탐욕, 그리고 소외 문제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영화가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결코 비관론으로 끝맺지 않는다. 미키와 나샤, 그리고 벌레라 불리는 생명체가 맺어가는 조화로운 관계는 ‘어울림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즉, 서로 다른 존재를 존중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태도가 바로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건넨다. 마셜처럼 권력을 쥔 자들이 제시하는 허황된 미래가 아닌, 작고 연약해 보이는 주체들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협력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주목할 만하다. 로버트 패틴슨은 겁에 질려 우주로 피난 온 미키의 불안하고 나약한 면을 능숙하게 표현하면서도, 복제체를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절묘한 차이를 두어 미키17과 미키18을 입체적으로 연기한다. 나오미 애키의 나샤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인물을 섬세하게 그려내, 영화 후반부 ‘복수의 미키’를 모두 감싸 안는 장면에서는 강렬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마크 러팔로와 토니 콜렛 커플의 괴이하고 익살스러운 정치 드라마 역시 봉준호 특유의 블랙코미디 감각을 살려내며, 관객들에게 씁쓸한 웃음을 선사한다.
연출 면에서 봉준호 감독은 우주라는 넓은 무대 안에 좁은 계급적 공간을 다시 구축해냈다. 탁월한 미장센과 대사, 그리고 캐릭터 간의 긴장감으로 <설국열차>와 비슷한 계급 구조를 만들면서도, 이번에는 스스로 우주로 나아가는 세계관을 선보인다. 행성 밖 생명체와의 교류라는 설정이 상징하는 것은, 결국 인류가 고집해왔던 ‘자기중심성’을 깨부수라는 요청처럼 보인다.
결국 <미키17>은 관객들에게 명쾌한 답을 내리기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질문을 던지도록 만든다. 나 자신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과연 ‘죽음’ 자체인가, 아니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실존적 공포인가? 그리고 사랑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권력을 쥔 자들의 배신과 무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모든 물음은 비단 우주 이주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 주소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분명하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사회적 메시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우주판 기생충’이라 불릴 만한 신선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흥미로운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행성에서 벌어지는 계급·정치·사랑의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죽음과 복제라는 철학적 소재가 어떻게 감각적인 장르 영화로 변주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미키17>을 꼭 극장에서 만나보길 바란다.
분명 그 안에서,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마주해야 할 근원적 질문들이 당신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나마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꿈꿔보게 될지도 모른다.
Relative contents
-
- [BIFF 데일리] 현대식 재해석: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간을 초월한 사랑.
켈리 오설리번과 알렉스 톰슨이 연출한 <고스트 라이트>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된 영화이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되어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실제 가족이 연기하여 현실감을 더하고 있다. 익숙한 소재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비극이라는 주제를 색다르게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노랫소리를 지나 공사 소음이 들린다. 아름다운 날, 모든 게 뜻대로 된다는 가사와는 달리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 댄. 설상가상 딸이 사고를 쳐 정학 처분을 받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며 골머리를 앓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리타가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다. 극단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던 댄은 점차 흥미를 느끼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외면하던 감정을 마주한다.
진정한 나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괜찮다"는 말로 회피하는 것보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황을 직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화 속에서도 댄이 아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은 나 자신이 괜찮지 않음을 털어놓고 나서부터였다. 영화 초반에 리타가 잠시라도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며 연극을 제안했듯, 댄 또한 아들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강박과 죄책감은 그가 상실을 직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댄뿐만 아니라 아내 샤론과 딸 데이지에게도 그 상실감은 깊은 영향을 끼쳤고, 결국 가족 모두가 서로의 아픔을 직시하지 못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을 감추게 된다. 이것은 결단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하며 댄은 자신이 숨기고 있었던 감정을 조금씩 표출하기 시작했고, 점차 분노 속에 숨겨진 상실의 아픔을 마주하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연극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소재로 하기에 결말을 바꾸고 싶었던 댄은 비극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직접 경험하고 아들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비로소 아들의 선택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가족들은 연극에 참여하면서 과거의 슬픔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한 집에 있지만 단절된 것처럼 느껴졌던 초반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영화의 제목처럼 고스트 라이트는 영화가 끝나도 계속 이어지는 모습이 잔잔한 위로가 된다. 연극을 비롯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불빛에 젖어들게 된다. 무의미하다고 느끼면 한없이 무의미해지고, 의미 있다고 여겨지면 그 의미는 더욱 명확해진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의미를 외부에서 찾기보다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판단이 아닌 이해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짐작하게 만드는 상황과는 별개로, 영화는 가족의 사정을 자세히 드러내지 않는다. '비극'을 손쉽게 소비하지 않으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정확한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가족의 아픔과 회복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감정을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또, 모두를 아우르고 있는 '사랑'만큼 더 중요한 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정해진 결말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정해지지 않은 미래는 바꿔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처럼 예술은 언제나 혼란스럽고 어려우면서도 우리의 삶을 구원한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복잡한 삶 속에서 잠시 쉼과 사색을 제공하며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줄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언어들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 속에서의 삶을 마주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영화 속의 댄 또한 변화를 맞이한 것이다. 그렇게 예술은 사람과 사람을 잇고, 단절을 연결로 바꾸는 힘이 있다. 늘 그래왔듯이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예술은 앞으로도 우리를 이끌어갈 것이다. 고통과 상실, 그리고 기쁨과 희망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 만큼 우리 선택과 태도에 따라 달라진 삶의 색깔이 어떤 모습일지 고민해 보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상영 일정
10월 4일 10: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10월 7일 13: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7관
10월 9일 20:30 CGV 센텀시티 6관
-
- 부모와 자녀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우린 살면서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한다. 태어나 처음 만나는 부모부터 주변에 하나씩 생기는 친구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각각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 각각의 세계가 만들어지기까지는 그 주변의 사람들이 영향을 준다. 가족부터 지역, 국가 단위까지 다양하게 확대되면서 어떤 문화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분위기나 외모, 습성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큰 영향을 준다.
그렇게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또 새로운 문화나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인류는 그런 식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과 만나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면서 우리 사회를 만들어 왔다. 이렇게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즐겁게 느껴지지만 한 편으로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사람을 만나고 좀 더 깊은 관계가 되고 나면 더욱더 잘 모르는 상대방의 내면에 있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신과 비슷한 문화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원소가 어우러져 사는 도시 엘리멘트 시티
픽사의 새로운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세계에는 물, 불, 흙, 공기라는 4개의 원소가 살고 있다.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엘리멘트 시티'는 이 네 가지 원소가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꽤 큰 대도시다. 여기에 살고 있는 엠버(목소리: 레아 루이스)는 불의 원소다. 불의 원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떠나 대도시로 온 엠버의 부모님은 힘들게 가게 하나를 만들어 대도시에 자리 잡으면서 엠버를 키워냈다.
이 영화는 미국의 이민자들이 흔히 겪는 부모와 자녀 간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시선을 한국 사회로 돌려보면, 우리 한국 부모 세대들이 은퇴 직전에 자식과 겪는 문제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부모세대들은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해 고등교육을 받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자리를 잡고 자녀를 낳아 키워낸 그 세대는 그 모습 그대로 영화 속 엠버의 부모에 대입할 수 있다.
엠버의 부모는 자신의 딸이 똑같은 속성을 가진 불 원소와 결혼하길 빈다. 완전 상극이라고 예상되는 물 원소와는 절대 만나서는 안된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엠버는 우연히 물 원소인 웨이드(목소리: 마무두 애시)를 만나 호감을 가지게 된다. 두 인물은 가게의 파이프 배관에서 물이 새는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욱 가까워지고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엠버의 부모는 절대적으로 자신들과 다른 모습을 가진 인물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이 그들이 살아왔던 삶 속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줬던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 부모세대들도 이런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경상도 출신 부모는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반대로 전라도 출신 부모들은 경상도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자녀들이 결혼할 때 자신이 싫어하는 지역 출신과는 결혼을 반대하기도 한다.
지금 부모세대가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
비록 이해를 빠르게 하기 위해 지역을 대입하여 설명하긴 했지만, 각각의 부모들이 생각하는 '절대 만나면 안 되는 종류'가 존재한다. 그건 출신지역이 될 수도 있고, 인종이 될 수도 있고, 국적이 될 수도 있고, 학력이나 재산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각각이 느끼는 것이 다양하지만 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부모가 원하는 것과 자녀가 원하는 것의 차이가 이런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국에도 이런 부모와 자녀의 갈등이 흔히 벌어지기 때문에 <엘리멘탈>이 한국에서 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녀들은 그동안 자신을 힘들게 희생하며 키워준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삶의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그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미안함의 힘일 것이다. 자신을 키우느라 부모 자신이 원하는 건 할 수 없었던 것을 그 자녀는 자라면서 계속 봐왔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가 바라는 이상향에 맞춰가려고 노력한다.
영화 속 주인공 엠버는 그런 삶의 한가운데 서있다. 부모는 자신의 가게를 딸에게 물려주고 싶어 한다. 엠버는 그 가게를 물려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부모가 당연하게 물려받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생각을 못한다. 여기에 부모가 가장 싫어하는 물 원소의 사람과 사랑에 빠지면서 엠버는 점점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거라는 엄청난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긴장감을 만드는 건 빌런이 아니라 부모와 엠버 간의 간극
엠버의 고민은 사실 많은 자녀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자신을 키울 때 어떤 고생을 했는지 보면서 자란 자녀라면 더욱더 부모의 말에 반하는 결정을 하기는 어렵다. 영화는 이런 자녀의 고민을 무척 섬세하게 담고 있다. 부모의 기대에 반하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분노조절장애가 되는 엠버의 이미지는 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엠버가 사랑에 빠지는 웨이드와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데다, 만나면 서로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것처럼 느껴지는 물과 불의 만남은 보는 입장에서도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둘이 손을 잡았을 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원소의 속성이 변화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진다. 부모가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이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나누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 둘을 응원하게 된다. 완전히 다른 두 캐릭터가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게 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영화 <엘리멘탈>에는 빌런이 없다. 대신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건 엠버가 원하는 것과 부모가 원하는 것의 간극이다. 그 둘 사이가 벌어질만한 일이 생기면 그 긴장감은 더욱 극대화된다. 어쩌면 이런 엠버와 부모의 갈등과 간극이 한국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포인트가 되었던 것 같다. <엘리멘탈>은 다른 나라에서는 큰 흥행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250만 명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피터 손 감독은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애니메이터 출신이다. 한국인 이민자의 자녀인 피터 손 감독은 동양적인 갈등 구소를 넣고 부모에게 하는 큰 절 같은 동양적 요소를 추가해 넣으면서 영화에 동양적인 색채를 가미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애니메이터 출신으로서 각 원소가 생활하는 모습이나 분위기를 독특하게 묘사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극장에서 관람하기 좋은 영화다. <엘리멘탈>에는 나쁜 인물이 등장하지 않고, 무서운 장면이다 선정적인 장면이 없기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부모와 자녀 각각의 입장으로 영화를 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아직 상영 중인 극장에서 가족과 관람을 추천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주간 영화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실 수 있어요.
https://contents.premium.naver.com/rabbitgumi/rabbitgumi2
\
-
- 나의 해피엔딩이 누군가에겐 새드엔딩일 수도 있다
감기
줄거리
전염되면 무조건 죽음에 달하는 최악의 바이러스가 한국에 퍼졌다.
너무 빠른 전염 속도에 결국 도시 폐쇄 조치가 내려지는데...
*해석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해피엔딩이 누군가에겐 새드엔딩일 수도 있다
숨은 의미 찾기
보통 이런 재난 영화 속 인물들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로만 나누기 힘들다.
그들을 구분 짓기 쉽지 않은 이유는 인물들에게 갈림길이 주어지고, 그중 하나를 무조건 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마치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사람들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연구원이 막상 자기 딸이 감염된 순간에는 그 사실을 숨기고 이기적 행태를 보이는 것과 같이 말이다.
하나 이 영화에서 평이한 인물은 앞서 말한 ‘인해’ 외에는 찾기 어렵다. 그 외의 인물들은 온전히 선이거나, 온전히 악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극렬하게 대립하는데, 이 과정 탓에 관객은 지루해진다. 완전한 선의 편에 서는 인물이 존재할 경우 99%의 확률로 선이 이기기 때문에 긴장감이 사라진다. 게다가 이에 맞서는 악인은 강할지언정 진부하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선한 인물로 대변되는 ‘지구’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정의감으로 무장한 구조 대원이다. 그는 조건반사적으로 타인을 돕고 무적이며 동료 조력자까지 있다. 그는 남들이라면 쉬이 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해낸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감염되지 않고, 민간인 금지구역에도 자유롭게 들어가며, 자신을 막는 열댓 명의 사람들에 맞서고도 아이를 업고 기어이 빠져나온다. 이렇게 무적의 주인공을 세워놓고 그토록 진부한 악인이라니. 영화 내용은 앞의 30분만 보더라도 어떻게 이어질지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리뷰하는 것은 순전히 ‘몽싸이’라는 인물 하나 때문이다.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밀항을 시도한 동남아인.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의문의 바이러스로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죽었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면역항체를 가진 사람이다. 그가 죽는 장면을 보는 순간부터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는데,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어떤 질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부 백인이고 몽싸이가 흑인이라면?
영화가 인종차별을 의도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앞뒤 맥락 없이 ‘한국에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설정을 할 수는 없으니 그 경로를 비교적 가까운 동남아로 설정했을 뿐이다. 해외에 다녀온 한국인이나 외국인 여행객이 바이러스의 원인일 수도 있었지만,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확산되었다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밀항’하는 ‘동남아인’이라는 인물을 택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의아한 것은 몽싸이라는 인물을 영화 내에서 소비하는 방식이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그는 대한민국에 감기 바이러스를 퍼트린 원흉이면서도 동시에 유일하게 항체를 가진 희망이기도 하다. 상반된 두 가지의 역할을 부여받은 그는 한 쪽에게는 쫓기고 한 쪽에게는 보호받는 기이한 상황에 놓인다. 그러다가 결국 쫓는 쪽에 붙잡혀 죽음을 당하고 만다. 원흉으로서도 희망으로서도 제 역할을 종료당한 그는 ‘희망’이라는 타이틀만 미르에게 수혈하고 사라진다.
사실을 짚어보자. 그는 가난한 집에 돈을 보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밀항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밀항을 주선한 브로커는 한국인이며, 그들을 운반하려다가 놓친 운반책 역시 한국인이다. 그에게 감기를 옮아 바이러스를 산발적으로 퍼트린 사람도 한국인이고, 이들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음에도 늑장을 부린 이마저 한국인이다.
그렇다고 몽싸이에게 처음 감염되어 죽은 병우를 탓하는 건 아니다. 다만, 몽싸이가 밀항을 '선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악으로 만들어버리고, 죽어도 안타깝지 않은 자로 만드는 영화의 구조가 아쉬웠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미르에게 가려져 '숭고한 희생'으로도 취급받지 못한다. 그저 한 명의 밀입국자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남지 않은 채, 영화는 끝나 버린다.
우리 엄마 쏘지 마세요!
게다가 문제를 하나 더 추가하자면, 어린아이를 해결책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긴박한 대치상태에서 뛰쳐나온 작은 아이가 평화를 요구하는 장면은 감동을 넘어선 한국식 신파에 가깝다. 거기에 '항체 보유자 김미르'라니. 아이는 우리 미래의 새싹입니다, 따위의 구호가 생각난다. 아무리 영화일지라도 고작 9살 밖에 안 된 어린 소녀에게 그토록 무거운 짐을 지워야 했을까?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스틸컷
이쯤에서 인정할 건 인정하자. 동남아 계열 외국인 노동자와 어린아이. 영화의 시작과 끝에 놓인 이들은 전부 사회적 약자다. 영화는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인류에게 닥친 재앙도, 인류에게 남은 미래도. 잘 생각해 보라, 영화 끝의 에필로그까지 지켜보아도 감염자의 시체를 대량으로 불태웠던 일에 대해 누가 책임졌다는 언급조차 없지 않은가.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모두에게 해피엔딩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누군가에게는 해피엔딩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새드엔딩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고,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그래야 새드엔딩도 언젠가는 해피엔딩이 될 수 있기에.
코로나 이후 보니 하이퍼리얼리즘 공포영화
감상평
개봉 당시엔 그저 그런 흔한 재난 영화인 줄 알았더니 WHO의 팬데믹 선언을 예언한 영화, 감기.
순위권 안으로 돌아갈 땐 안 보다가 문득 볼 것도 없고 해서 다시 봤다. 영화 속 결말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서 괴리감이 컸다. 금방금방 바이러스가 종식되는 영화에 비해 현실은 코로나가 장기화되는 걸로도 모자라 위대 코로나 시대로 접어드는 판국이니.
어쨌거나 코로나 사회를 살아가고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기침할 때 비말이 퍼지는 슬로 모션은 소름이 돋았다.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장면이 나올 때마다 아주 '불-편'했다. 중간중간 마스크도 안 끼고 손수건으로 대충 끼고 다닌 장혁이 대체 어떻게 감기 안 걸렸는지 그게 제일 의문.
보는 내내 그 짤이 생각났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캐릭터 중 하나가 ‘정의롭지 않고 불의를 보고도 잘 참는 장혁’이라던… 그 말이 딱 들어맞는 영화. 그야말로 장혁이 아니면 이 역할을 할 사람이 없겠다 싶은… 너무도 뻔한 캐릭터지만, 이런 뻔하디 뻔한 캐릭터에 딱 맞게 설정된 영화이다 보니 억지스러워도 이 이상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
- OTT 최근 공개작 Best & Worst
최근 OTT에 공개된 작품들 재밌게 보셨나요? 특히나 2023 하반기 작품들은 호불호 갈린 평가가 많았는데요.
혹평세례를 받은 작품도 있었죠.... 오늘은 OTT 화제작들의 best & worst 평가를 모아왔습니다.
-
- 피아니스트 / The Pianaist
/ 감상 /
_ 사실 저번에 본 피아니스트보다 이 피아니스트를 더 보고 싶어했었는데...
전쟁의 참상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인 것 같다.
내가 여태 본 전쟁영화는 대부분 군인들의 전쟁터에서의 삶을 보여준다거나,
수용소에서의 삶을 보여주었는데,
이 영화는 실제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갔던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성을 극대화 시키고 보는이로 하여금 공감을 잘 이끌어 내는 것 같았다.
.
.
피아노는 슈필만의 인생의 버팀목이다.
위기의 순간마다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그가 낙담하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질때면 피아노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더이상 가라앉지 못하게 지탱해준다.
그리고, 그의 목숨을 실제로 살려주었다.
후반부에서 독일장교를 만났을 때, 만약 슈필만의 직업이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면 어떘을까?
과연 슈필만을 살려주었을까 싶다.
피아노의 선율에 녹아들어간 슈필만의 감정이 장교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
.
가장 인상 깊었던 씬은 앞에서 말한 슈필만이 장교앞에서 연주했을때이다.
슈필만이 그렇게 치고 싶어했던 피아노..
그는 이게 자신의 마지막 연주라 생각하고 모든 감정을 담아 연주하였던 것 같다.
그 장면을 보고 전율이 느껴졌다.
.
.
호젠펠트가 결국 슈필만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게 된다.
난 호젠펠트의 마지막에 대하여 그리 안타깝지 않다.
그가 아무리 슈필만을 도와주었어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집단의 우두머리 급이었으니
그거대로 대가를 치르는게 맞다고 본다.
그를 인정하는건 그 이후에 할 일이다.
.
.
마지막으로,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연기에 박수를..
난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그 특유의 우울하고 슬픈 연기가 너무 좋다.
아련하고 우울한 연기 원탑 에이드리언 브로디..
-
- [DMZ DOCS]“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터
2차 송환(The 2nd Repatriation)
South Korea/2022/156min/김동원 감독 작품
북한에서 지령을 받고 남한에 파견되었다 검거되어 오랫동안 전향하지 않은 사람을 비전향 장기수라 한다. 수십 년간 감옥 생활을 한 이들 중 일부는 양국의 협의를 거쳐 북한으로 돌아갔다(1차 송환).
〈2차 송환〉의 주인공 김영식은 ‘전향 장기수’다. 즉 그는 오랜 수감 생활 끝에 북한의 사회주의 사상을 ‘버렸고’ 이후 석방되어 쭉 남한에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김영식이 정말 전향한 것은 아니다. 모진 고문과 끝을 알 수 없는 수감 생활이 그를 지치게 해 전향서를 썼을 뿐이다.* 김영식이 2000년에 발표된 6‧15 남북 공동 선언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내용의 어깨띠를 매고 지하철을 돌며 선전 활동을 하고, 자신을 촬영한 감독의 이전 영화가 민족의 아픔을 다루지 않았다며 혀를 차는 모습에서도 그가 여전히 외세에 의한 민족 분열에 커다란 분노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십 년의 수감 생활과 그 이후 또 수십 년의 남한 생활. 영화는 남북한의 경계에 선 장기수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펼쳐낸다. 언젠가 북한에 돌아갔을 때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강제 전향시킨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노인, 송환을 위해 남한에서 만난 부인과 이혼 절차를 진행 중인 노인,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어느새 익숙해진 남한 생활에 마음이 복잡한 노인, 남편이 ‘계속 남아서 싸워라’라고 말할지 ‘얼른 고향으로 돌아와라’고 말할지 상상해보는 노인 등등. 한 시민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김영식의 주장에 혀를 찬다. ‘쓰라린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놈만 저런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장기수가 상상조차 어려운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서 이 비난은 공허하다.
2차 송환을 신청한 장기수 46명의 복역기간을 합치면 898년이다. 장기수들은 죽기 전 고향 땅을 밟아보겠다는 마지막 바람으로 이 시간을 버텼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에도, 엄혹했던 시절에도 이들의 기다림은 늘 뒷전으로 밀렸다. 남북한의 위정자들이 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먼저 고민했기 때문이다.
2차 송환 운동은 20년 넘게 이어졌다. 그사이 많은 장기수가 세상을 떠났고 생존자 대부분은 90대가 되었다. 장기수 문제는 도대체 언제쯤 남북관계의 시급한 의제로 취급될 수 있을까? 영화의 내레이션이 말하듯 누군가는 장기수를 ‘빨갱이’라 부른다. 다른 누군가는 ‘국가와 민족을 운운하는 국수주의자’, ‘그저 불쌍한 노인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감독은 장기수를 당당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간 사람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공감한다. 나 역시 ‘민족의 아픔’과 ‘미제‧일제 척결’을 외치는 김영식보다 오랜 세월 집요함으로 자기 삶을 꾸려온 김영식이 더 좋았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장기수 2차 송환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길 바란다.
*사회주의 여성운동가 김진언의 구술사를 담은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양경인, 2022)에는 남한 당국이 비전향 장기수를 어떻게 고문했는지가 잘 나와 있다.
*이 글은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 받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기자단으로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제는 9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상영작은 온오프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 하루 벌어 하루 살아도 행복한 이유
-
-
- 영화 <키퍼스> 메인 예고편
고립된 섬에 나타난 시체와 금괴
그날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육지와 동떨어진 스코틀랜드의 작은 무인도.
이 섬의 등대를 관리하는 ‘토마스’, ‘제임스’, ‘도널드’는
난파된 보트에서 남자의 시신과 금괴가 든 나무상자를 발견한다.
시신을 없애고, 금괴를 나누어 가지기로 한 세 사람.
그러나 상자를 찾아 낯선 사람들이 섬에 나타나고,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100년간 풀리지 않은 ‘그날’의 미스터리
숨겨진 진실이 밝혀진다!
-
- 영화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티저 예고편
피터 파커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가 있는 뉴욕 생텀 생토럼으로 향한다. 갑자기 분위기 겨울왕국인 생텀에서 웡은 어디론가 떠나고 '닥스'는 이 세상 사람들이 스파이더맨의 존재를 잊기위한 마법을 시작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스파이더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