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 soyo 2025-03-10 12:54:09
[영화 ‘사랑을 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보고] 그래, 난 자기를 사랑해. 근데 사랑하지 않아
[영화 ‘사랑을 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보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항상 끌리는 장르가 있다. 바로 로맨스다.
여름이 끝나가는 요즘 어김없이 제목에 ‘사랑’이란 단어가 들어간 제목을 고르던 중 ‘사랑’과 ‘최악’ 두 모순적인 단어들의 조합에 매료돼 이를 저절로 재생하게 됐다.
주인공 ‘율리예’(Yulriye)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며 본인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작품은 율리에를 중심으로 코믹(Comic) 작가 ‘악셀’(Axel)과 카페 직원 ‘에이빈드’(Abind) 간의 사랑과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의사나 사진작가 등 직업을 바꿔 나가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율리에지만 사랑의 감정에선 쉽사리 그렇지 못한다. 나는 초반 율리에의 이러한 행동의 원인으로 자기애 부족을 떠올렸다. 진정 사랑을 하기 위해선 ‘자기애’라는 토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선 사랑을 향한 어떤 노력도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자기애란 누군가에게 받고 싶어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자기 자신에게 준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평소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았으면 하고 꿈꿨던 사랑을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나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 나를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고 긍정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닌가.
‘세상 최악의 인간(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이란 원제에선 20대 후반 여성의 심리묘사와 함께 새로운 이성에게 본능적으로 끌리는 미묘함을 포착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란 우리나라 개봉판 제목을 보면 ‘누구’란 인칭 대명사 덕분에 최악의 사랑의 범인을 찾으려고 했다. 영화 속에서 율리에는 타인과 스스로에게 여러 번 질문을 받는다. ‘너는 뭐 하고 싶은데?’ 혹은 ‘너가 좋아하는 게 뭐야?’와 같은 질문들을 받는 율리에는 ‘모르겠다’라고 답한다. 영화 내내 율리에는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이 없다.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 의대에 진학하고 사진 찍는 게 좋아 사진도 찍어본다. 하지만 어떤 것에서도 확신을 느끼지 못한다. 늘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곧 바뀐다. 이런 율리에의 모습을 통해 이 영화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묻는다.
관객 모두가 율리에가 영화 속에서 하는 결정과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저 율리에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학 입시의 재도전으로 인해 1학년 삶을 못 누렸다는 왠지 모르는 억울함과 아쉬움 때문에 이번 1학기를 1년같은 6개월을 보내기로 다짐했다. 이후 내가 여태 해보고 싶었던 △기자△영화 제작△창업 등 여태 관심있던 분야를 경험해봤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나는 무엇이 돼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계속 하고 있다. 즉 나도 여전히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조금씩 방향을 바꿔나가며 평생 고민하지 않을까.
율리에의 선택이 충동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선택한 길에 으늑히 충실했다. 고민의 선택에 있어서 분명히 실패와 후회의 불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고 곧바로 선택하고 경험한다. 율리에도 나도 조금은 과감한 방식으로 방향을 틀어나가지만 결국 많은 경험과 도전으로 쌓아올린 시간들이 모두 자아를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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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하루의 총합
전쟁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굉음이 터지고 피가 터지고 시체가 터지고 마음이 터지는, 뭔가 많은 것들이 팡팡 터지는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반대쪽이다. <덩케르크>도 "이것은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는 카피가 아니었으면 보지 않았을 테고, <1917>도 그다지 볼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1917>을 보고 너무 좋았다고 할 땐 좀 놀랐다. 자꾸 같이 보러 가자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친구 얼굴 봐서 한 번 보러 갔다. 그리고... 같이 미쳤다. 용산 아이맥스에 출근 도장을 찍고 포토티켓을 뽑아대는 우리는 누가 봐도 과몰입 오타쿠였다. 아무리 정상인인 척 리뷰를 써보려고 해도 잘 안 된다. 그래서 또 <러브레터> 때처럼 과몰입 오타쿠답게 구구절절 써보려 한다. 스포일러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영화 전체를 서술하고 있으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해 주시길.
영화 <1917>의 수식어는 항상 "원 컨티뉴어스 숏" 이야기다. 2시간짜리 원테이크처럼 보이게 촬영했다는, 물론 당연히 2시간을 원테이크로 찍은 건 아니고 그렇게 보이게끔 잘 연결한, 즉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기법을 활용한 것이라는. 최신 기술을 집약한 영화라는.
어마어마하긴 하다. 그렇게 찍기 위해 모든 세트장을 직접 제작하고, 그 세트장 동선에 맞춰 대사 길이까지 세밀하게 조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6개월의 리허설 끝에 찍었다니 부분적으로 연극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자본과 기술의 냄새가 물씬 나는 설명에 압도되어서인지, <1917> 이야기는 평론부터 리뷰까지 기술 이야기 일색이었다.
그러나 <1917>은 기술 이야기만 하고 떠나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과시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가 탄탄한 영화다. 풀어가고 싶은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기법이라 그렇게 찍은 것뿐이다. 배우들의 세밀한 연기, 탁월한 연출, 감정 머리채를 잡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가 가진 장점 중 하나지 전부는 아니다. 이 모든 장점들을 모아 더없이 주제에 집중한 영화다.
영화는 노란 꽃과 흰 꽃이 섞여 산들거리는 들판에서 시작한다. 관 속의 시체 같은 자세로 누워있는 블레이크와, 나무에 적당히 기대 눈을 감은 스코필드. 블레이크를 부르며 누구 한 명 데려오라는 목소리를 듣고, 블레이크는 스코필드에게 손을 내민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 채.
두 사람은 참호로 들어가 장군에게서 임무를 받는다. 적진이 후퇴했으며, 데번셔 제2연대가 후퇴한 적군을 총공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항공사진을 보면 적군은 작전상 한 발 물러난 것뿐이라, 위기에 빠진 건 오히려 데번셔 제2연대라는 것. 적군이 통신망을 끊고 갔기 때문에 인편으로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해야 한다는 것. 해당 연대의 1,600명 중에는 블레이크의 형도 있고, 블레이크는 지도를 잘 보기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것. 그리고 얻어걸린 스코필드도 함께 간다는 것.
참호를 빠져나가 허허벌판을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스코필드는 경악한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었다. 대량 살상 무기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말 타고 창 찌르고 칼 휘두르던 전쟁은 종말을 맞았고, 공격을 피하기 위해 참호를 파는 것이 당시 전쟁의 기본 포맷이 되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어깨와 등을 따라가면서 좁은 참호를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시작부터 보여주고, 짐짝처럼 참호에 몸을 기대어 죽음의 냄새를 맡는 병사들의 얼굴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시체가 그대로 썩어 지저분해진 진흙, 시체를 파먹고 자란 큰 쥐들을 보면 적군의 공격 못지않게 비위생적인 환경 또한 1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의 생존을 위협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그 참호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상상 못 할 일이었다.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블레이크에 비하면, 솜 전투에도 참전했다는 스코필드는 전쟁의 참상을 좀 더 겪어보고 그만큼 노련해진, 동시에 내상도 더 깊게 입은 병사로 보인다. "정말 적군이 후퇴했다면 보급품에 수류탄을 왜 줬겠냐"라고 꼼꼼히 따져보지만, 형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씩씩거리고 있는 블레이크를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참호를 벗어나기 전 그는 "Age before beauty," 장유유서라고 억지로 웃어 보이며 블레이크보다 앞서 미지의 위험에 발을 딛는다.
스코필드도 높은 직급은 아니지만, 무자비한 살육 현장이었다던 '솜 전투'를 경험했고, 거기서 훈장도 받았다. 목숨이 오가는 장면을 많이 보았고 또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순간순간 구체적인 두려움과 싸우고 있고, 말을 아낀다. 아직 순진한 블레이크에 비해 그가 좀 딱딱해 보일 수 있지만, 그가 참 좋은 사람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장면도 그랬다.
두 사람은 아군의 참호와 적군의 참호 사이 무인지대를 지나간다. 질척한 진흙에 썩어가는 시체들만이 가득한 곳. 나무와 철조망이 기이한 형태로 뒤틀려 있는 공간. 시체가 마치 지형지물처럼 늘어져 있는 이상한 광경이다. 총검을 세우고 엄폐물을 찾으며 그들은 적진의 참호로 천천히 다가간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말 시체를 한 번 더 뒤돌아보는 표정을 봐도, 철조망에 쉽게 걸리거나 미끄러운 진흙을 올라갈 때 손 잡아달라고 이름 부르는 걸 봐도 블레이크는 전쟁터에 있기엔 아직 너무 어린 소년이다.
스코필드는 그런 블레이크를 알게 모르게 잘 챙긴다. 철조망을 잡아주다 손을 찔려도, 그 손을 썩어가는 시체에 푹 담그게 되어도 블레이크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블레이크가 앞만 보고 가면 그 뒤에서 총으로 엄호하고 있다. 두 배우의 섬세하고 탁월한 연기가 돋보이는 대목들이다.
정말 비어 있는, 그러나 적군이 떠난 지 오래되지는 않은 적진의 참호는 반파되어 있다. 땅굴로 들어서니 곰팡이 냄새 날 것 같은 병사 숙소가 보인다. 누군가 미처 챙기지 못한 흑백 가족사진 앞에 잠시 멈춰서는 스코필드와 침대에 앉아 방방 스프링을 튕겨보는 블레이크. 두 사람은 부비트랩을 발견한다.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처음부터 거슬렸던 커다란 쥐 때문에 목숨의 위기를 맞는다.
사실 둘이 출발했으니 하나는 죽거나 다치겠구나 싶긴 했다. 두 사람이 이 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단순한 플롯이면 분명 중간중간 위기를 맞고 그 위기를 해결하고 그러면서 더듬더듬 나아가는 이야기일 것이고, 그러는 동안 두 사람 모두가 무사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영화니까. 그럼 여기서 죽나, 하는데 블레이크의 발 빠른 대처로 스코필드는 목숨을 구하고, 첫 위기는 다행히 벗어난다.
전쟁터의 긴장감은 사람을 순식간에 옥죄었다 풀었다 한다. 사지를 벗어나고 블레이크의 농담으로 풀어지는 것 같았던 공기는 하늘을 가르는 정찰기 소리로 단숨에 다시 굳어진다. 블레이크는 때마침 나타난, 다 뭉턱뭉턱 베어졌지만 아직 꽃이 하늘거리고 있는 체리나무로 다시 분위기를 풀어본다. 5월이면 형과 함께 어머니의 과수원에서 체리를 딴다는, 아마도 가족에게 다정하고 싹싹한 둘째 아들일 그는 전장에 비현실적으로 나부끼는 꽃잎 사이를 거닐며 몇 마디 대사만으로 자신의 전사를 풍성하게 풀어놓는다.
영화가 사용한 기법 상, 그리고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 로드무비 느낌을 전쟁에 버무려놓은 배경 상, 게임 스테이지를 하나씩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참호의 위기를 체리 꽃잎으로 마무리하고 꼭 '2단계, 버려진 농가' 같은 느낌으로 눈앞에 집 한 채가 나타난다. 젖소 한 마리와 우유 한 통이 있을 뿐 별스러울 건 없는 공간이었다.
퇴각하던 독일군은 협상국 군대의 식량 확보와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나무도 베고 젖소도 죽였는데, 한 마리가 비현실적으로 살아남아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한 연대가 이런 젖소를 발견했고, 암소를 연대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스코필드는 어쩐지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예감은 현실이 된다.
공중전에서 패한 적기가 추락하고, 몸에 불이 붙은 독일인 파일럿을 "편히 가게 해주"려던 스코필드와, 안 된다며 물을 가져오라고 하던 블레이크. 사제가 되는 걸 고민했던 만큼 자연스러운 반응일지 모르지만 전쟁은 나이브한 선의를 봐주지 않는다. 스코필드는 자신이 폭발에 쓰러졌을 때 블레이크가 그랬듯, 칼에 찔린 블레이크를 들어올려 보려 하나 이번에는 되지 않는다. 블레이크는 결국 눈을 감는다. 힘없이 떨군 그의 손 옆에 마지막 노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아무나 한 사람 골라잡은, 처음부터 이 작전에 반대할 수 있었다면 반대했을 이는 그렇게 유일한 전령이 된다. 동시에 군사적인 사명뿐 아니라 친구의 유언을 건네받은 개인적인 사명까지 그의 어깨에 얹힌다.
블레이크의 시체를 움직여보려 할 때 아군이 나타난다. 여태까지 두 명에 몰입해 따라가고 있다 보니 아군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이건 전쟁이고,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뿐 아니라 어딘가에서 모두가 다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그 상대가 적군이든, 시간이든, 죽음이든, 부상이든, 적막이든.
스코필드의 사정을 들은 스미스 대위는 가는 길이니 태워주겠다며 스코필드를 사병 트럭에 태운다.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사병들과 어깨를 부딪혀 가며, 스코필드는 혼자서만 다른 곳을 멀거니 바라본다. 멀어져 가는 블레이크의 시체를,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를 생각하며 전해야 할 편지를 틴케이스 안에 소중히 집어넣는다.
트럭을 타고 가는 길도 쉽지만은 않다. 독일군이 길을 막도록 베어놓은 나무를 치우고, 진흙탕에 빠진 차를 밀어가며 스코필드는 시간과 싸워야 하는 간절함을 드러낸다. 그를 이상히 여기며 묻는 사병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그들의 태도가 묘하게 바뀐다. 다들 말을 아끼지만,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은 작전과 무의미하게 터덜터덜 실려가는 그들의 현실은 곧 1차 세계대전 자체의 현실이다.
무너진 다리 때문에 다른 길로 에둘러갈 사병 트럭에서 내려, 스코필드는 조심스레 무너진 다리를 건넌다. 그 앞 버려진 저택에 있는 저격수와 맞붙게 되고, 명중 확인을 위해 들어간 곳에서 저격수와 대치하며 그도 죽음 코앞까지 다녀오게 된다. 영화가 잠시 암전되는데, 인도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아마도 여기서 인터미션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노골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끊어냈다. 다시 눈을 뜬 스코필드는 뒤통수에서 피를 흘리고 있고, 시계가 깨져 더 이상 시간을 알 수 없게 되었으며, 어느덧 세상은 어두워져 있다.
카메라는 죽은 저격수를 넘어 창문으로 쭉 내려가고, 음악은 서서히 고조되면서, 반쯤 무너진 마을로 스코필드가 천천히 들어가는 장면. 살아있는 적군을 찾아 끝까지 말살하려고 적기가 조명탄을 쏘며 날아다니고, 조명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한 번씩 낮처럼 밝아지는 광경, 적기의 움직임에 따라 건물 그림자가 유유히 자라나듯 펼쳐지는 광경은 너무나도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보이는 것과 음악이 어우러져 가슴을 쥐어잡게 하는, 놀라운 장면이다.
평화로웠던 시절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분수대와 커다란 교회가 있는 광장. (저 장면을 조명으로 만들었다니 놀랍다.) 역시 무사한 시절에 붙였을 서커스 공연 포스터. 그러나 구석에 피 묻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곳. 이 뒤틀리고 모순적인 공간에서, 그만큼이나 반대되는 상대들을 마주치게 된다. 얼굴도 나오지 않지만 금방이라도 닿을 듯 추격해 오던 독일군과, 그를 피해 들어가다가 만난 프랑스 여성과 아기.
이 영화에 나오는 단 두 명의 여성이자, 체리나무 장면 이후 처음으로 평온하게 숨 고르기를 하는 장면이다. 짤막한 프랑스어와 영어를 섞어 두 사람은 대화한다. 독일군이 아님을 설명하며 여성을 안심시키고, 여성은 스코필드의 뒤통수에서 피를 살짝 닦아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던 스코필드가 고개를 든 건 아기 울음소리가 났을 때였다.
그는 아기를 보고 가방에 있던 부식과, 이렇게 쓰일 줄 모르고 담아뒀던 우유까지 모두 꺼내준다. 조심스럽게 아기의 손을 어루만지고 시를 읊어주는 걸 보며, 아마도 그가 "집에 가는 게 더 괴롭다"라고 할 만큼 괴로워한 데에는 후방에 아이까지 두고 떠나온 이유가 있겠거니 느끼게 된다. 더불어 이 시는 무모해 보이지만 단단한 의지가 돋보이는,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시이기도 하다.
They went to sea in a Sieve, they did,
In a Sieve they went to sea:
In spite of all their friends could say,
On a winter’s morn, on a stormy day,
In a Sieve they went to sea!
그들은 바다로 갔네 체를 타고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모든 친구가 말려도
폭풍우 치는 한겨울 아침이었어도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And when the Sieve turned round and round,
And every one cried, ‘You’ll all be drowned!’
They called aloud, ‘Our Sieve ain’t big,
But we don’t care a button! we don’t care a fig!
In a Sieve we’ll go to sea!’
체가 빙빙 돌고 돌아갈 때
모두가 "너희 다 익사할 거야!" 소리칠 때
그들은 외쳤네 "우리 체는 크지 않지만
신경 안 써! 하나도 신경 안 쓴다고!
체를 타고 우리는 바다로 갈 거야!"
Far and few, far and few,
Are the lands where the Jumblies live;
Their heads are green, and their hands are blue,
And they went to sea in a Sieve.
저 멀리 점점이
머리가 초록빛이고 손이 푸른빛인
점블리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영화에서는 1연의 처음 5행과 마지막 5행만 읽는다. 가운데 5행은 읽지 않는다.)
때마침 시계탑 종이 울리고, 시간을 가늠한 스코필드는 단꿈에서 서둘러 일어난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이름을 모르는 아기를 거둬 기르고 있을 만큼 인간애 있고 단단한 프랑스 여인은 스코필드를 걱정하지만 그는 고마운 마음을 유감으로 전하고 단호하게 일어선다. 그리고 독일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강에 뛰어든다.
힘이 빠진 나머지 본인이 읽(지 않)은 시 구절처럼 익사할 뻔했지만, 때마침 거짓말처럼 하얀 벚꽃 잎이 흩날리고 새 소리가 들린다.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의 큰 축인 블레이크를 떠올리며 그는 다시 한번 힘을 낸다. 아름다운 벚꽃잎과 퉁퉁 불어 터진 시체들까지 건너 그는 목숨을 건졌지만, 이미 사위는 밝아져 있다. 참아온 눈물을 터뜨리는 것도 잠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간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이승인 듯 저승인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장송곡을 듣는다.
그들이 데번셔 2연대 후발대라는 사실을 알고 그는 마지막 전력을 다해 뛴다. 몸을 웅크린 이들, 정신을 놓고 울음을 터뜨린 이, 동료를 붙드는 이들... 다양한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나치다가, 이렇게 가서는 시간 내 닿을 수 없음을 깨닫고 참호 위로 올라서 평야를 달린다. 포탄 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리면서도, 부딪혀 넘어지면서도, 병사들과 종횡을 달리해 그는 뛰어간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가 내게로 뛰어온다. 전쟁의 내상과 외상을 모두 가진 이가, 전쟁을 막기 위해 달린다. 모두가 무의미하고 적막하게 괴로워하며 앉아있다가 우르르 뛰어가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때, 그 흐름을 끊고 달리는 사람이 된다.
영화 내내 궁금해하게 만들었던, 이전의 대사들을 통해 어쩌면 답 없는 전쟁광일 수도 있겠다 싶었던 인물 매켄지 또한 이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희망을 품었지만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며 머리를 쓸어내리고,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Last man standing.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스코필드는 고개를 든다.
자막에는 "마지막 단 한 사람까지 죽는 것"이라고 번역되었다. 매켄지의 캐릭터를 감안하면 맞는 번역이지만 사실은 중의적인 문장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 전투를 끊어낸 이가 고개를 꼿꼿하게 들어 반듯하게 서는 순간.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몰살도 있지만, 이건 아니라고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인간 그 자체도 있다.
전투를 막았다고 그의 사명을 마친 것은 아니다. 그는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유품을 건넨다. 이제 다시는 두 형제가 함께 체리를 딸 수 없겠구나, 슬퍼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블레이크의 형은 인사를 나누며 스코필드의 이름을 묻는다. 윌리엄. Thank you, Will. 고맙다는 인사를 짧게 건넨다. Will은 의지의 이름이었다. 시작부터 형에게 갈 거라고, 내가 할 거라고 단단하게 말하던 블레이크의 의지가 스코필드의 이름에도 들어있었다.
모든 사명을 마친 그는 더 이상 노란 꽃이 없는 들판에 혼자 앉는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마다 열어보던, 소중해진 것을 집어넣던 틴 케이스를 열어본다. Come back to us. 꼭 우리에게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담긴 가족의 사진. 일상은 비일상이 되고, 비현실은 현실이 되고 만 전장에서 그는 잠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는다.
이 영화는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 알프레드 멘데스를 비롯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일화에서 따와서 만들었다. 특정 실화를 모티프로 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실화의 가닥가닥을 엮어 만든 것이다. 참호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부식을 먹고 개를 쓰다듬고 서로의 상처를 싸매는 사람들의 시간,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거둬 기르고 낯선 군인의 상처에서 피를 닦아주는 사람들의 시간으로.
이들은 생각보다도 많고, 다양한 곳에 있다. 심지어 인도계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참호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 중엔 인도 남부 출신임이 틀림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고, 스코필드가 노래를 들으며 나무에 몸을 기댈 때 그 자리에는 흑인도 있었으며, 사병 트럭에는 터번을 쓴 시크교도 병사가 등장한다. 가볍게 억양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딱히 희화화하는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에 비해 철저하게 유럽 중심이었던 1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영화 속 이들의 존재는 놀랍다.
(실제로 1917년은 인도 남부에 있는 하이데라바드 토후국에서 영국군에 전투기를 선물한 해다. 토후국의 왕 니잠은 엄청난 부와 탄탄한 사회를 이룬 군주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패권 다툼이라는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 싸움에 가담하여 자신도 당당히 패권국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인도계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것은, 실제로 그들이 참전했음을 고증하는 것임인 동시에 자본의 영향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인도 최대 기업인 릴라이언스의 엔터테인먼트사가 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므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서 찾아와 뜻밖의 만남을 가진 이들이 실은 각각 고립되어 있다시피 한 것. 각자 자기의 죽음과 싸우고 있다는 것. 그게 전쟁의 무의미한 본질이다. 그러나 전쟁은 보통 큼직한 것들로만 기억된다. 솜 전투, 인천 상륙 작전, 한산도 대첩 같은 웅장한 이름들로. 수많은 전쟁 영화도 그런 순간들을 많이 담곤 했다. 일반인들의 미시사는 전쟁의 본질이 아니라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전쟁이 깨뜨린 일상의 대조점으로 주로 담기곤 했다.
그러나 전쟁 자체를 이루는 것은 거대한 전투와 군함, 장군보다 그냥 수많은 보통 사람들임을 이 영화는 담는다. 스코필드는 그중 한 사람이다. 참호 속 혹은 트럭 속의 다른 병사들은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했으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시계가 깨져도 잔혹하게 흘러가던 스코필드의 하루는 그런 여상한 하루하루의 총합이 전쟁임을 알려준다. 그냥 보통 좋은 사람들의 얼굴로, 그들의 하루하루의 총합으로 전쟁은 이루어진다. 스코필드의 어떤 하루는 전쟁이라는 전체를 닮은 프랙탈이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선이정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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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토피아, 우정, 사랑, 구원 그리고 희망의 영화
9★/10★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이 영화는 성장통에 관한 영화일까 아니면 지극한 순애보를 그려낸 영화일까. 근미래의 일본. 유타와 코우는 늘 육교 위에서 헤어진다. 육교를 쭉 같이 걷다 보면 양 갈래 계단이 나온다. 유타가 말한다. “넌 저쪽이야. … 난 너무 외로워.” 내일이면 또 볼 친구를 향한 장난스러운 인사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같이 걷다 갈라설 수밖에 없는 매일의 작별은 두 사람의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근미래의 일본은 지금보다 조금 더 음울하고 긴장감이 높은 사회다. 나라엔 외국인이 너무 많고, 지진 경보/오보는 수도 없이 울린다. 이 모든 건 안전을 명분으로 하는 권위적 통치의 근거가 된다. 일본 총리와 두 사람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은 모두 안전을 이유로 각각 일본 국민과 학생들을 감시한다. 그리고 그 감시에 기반해 직접적이고 억압적인 통치를 이어간다.
코우는 자이니치다.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와 함께 산다. 교장이 장학금 추천서를 써주지 않으면 대학에 가지 못한다. 반면 ‘순혈’인 유타의 부모님은 돈이 많다. 그러나 유타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배경의 두 사람은 음악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어울린다. 이를 통해 점점 옥죄어 오는 것들로부터 자신들만의 영토를 구획하며, 그 안에서 제한된 자유나마 만끽한다.
그러나 안전 경보는 날로 요란해진다. 두 사람과 친구들이 만든 자유의 공간, 숨 쉴 곳은 점차 위협당한다. 무엇보다 코우와 유타 사이에 후미가 끼어든다. 자이니치로서 많은 설움을 겪은 코우는 저항 정신이 투철하고 변혁 운동에 적극적인 후미와 친해진다. 이후 어릴 때부터 단짝이었던 유타가 알지 못하는 코우만의 세계가 생긴다. 코우는 유타와 음악 말고도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눈을 뜬다. 그러자 점차 유타와 거리가 멀어진다. 코우는 또 다른 친구에게 만약 자신이 지금의 상태로 유타를 처음 만난다면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코우는 음악과 유치한 장난에만 매달리는 유타가 답답하다. 그러나 유타는 과거에 머무르며 성장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 코우를, 그와의 관계를 지키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로 코우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코우가 계속 음악을 매개로 자신과 함께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아이러니하다. 유타는 코우와 함께 친 장난의 죄과를 혼자 뒤집어쓰고 퇴학당한다. 유타의 희생으로 코우는 장학금 추천서를 받고 대학에 진학한다. 혁명을 모색한 일본 사회의 ‘외부자’ 코우는 대학을 매개로 체제에 진입할 계기를 마련한다. 반면 안락한 곳에서 출발한 유타는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딱딱한 체제의 외부로 밀려난다. 유타는 자신만의 방식(음악)으로 코우와는 다른 미래를 도모해야만 한다.
영화의 엔딩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여느 때처럼 두 사람은 육교를 함께 걷는다. 양 갈래 계단이 나온다. 유타가 코우에게 손을 뻗어 그를 붙잡는다. 잠깐 화면이 멈춘다. 영화가 끝난 걸까? 그렇지 않다. 정지 화면이 끝나면 유타와 코우는 각자의 길을 간다. 그 몇 초간의 정지에는 코우를 붙잡고 싶은 혹은 마지막으로 코우와 연결되고 싶은 유타의 소망이 담겨 있다. 소수자를 혐오하고 권위주의적 통치가 횡행하는 근미래의 일본에서, 유타는 자신을 희생하고, 우정으로(아니, 사랑으로) 코우를 구원한다. 코우는 유타에게 고마워하면서도 그를 철부지로만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타 덕분에 ‘외부자’의 설움을 조금은 덜고, 자기 자신을 비롯한 또 다른 ‘외부자’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이것이 ‘철부지’ 유타가 피워낸, 지극한 사랑의 가능성이다. 그러니까, 〈해피엔드〉는 디스토피아 영화이자, 우정과 사랑의 영화이자, 구원의 영화이자, 희망의 영화다. 코우를 바라보는 유타의 표정과 눈빛이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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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일루셔니스트》, 환상은 어디까지가 좋은 것일까?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다시금 내가 애니메이션 감상에 최적화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보는 내내 격하게 화가 나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고, 작품을 보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영화 《일루셔니스트》 시놉시스
세월이 흘러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일루셔니스트는 자신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찾아 이곳 저곳을 떠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스코트랜드의 한 선술집에 머물며 공연을 하다 그곳에서 앨리스라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일루셔니스트의 무대에 반한 어린 소녀 앨리스는 다음 무대를 찾아 떠나는 일루셔니스트와 함께 여행을 나서고 뒤이은 그들의 모험은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비언어극 같았던 영화 《일루셔니스트》
영화 《일루셔니스트》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언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국어가 아니기에 대사가 많은 영화의 경우네는 자막을 읽는데 집중을 하다보면 장면장면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 작품은 불어였기 때문에 자막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일종의 비언어극처럼 대사보다는 인물의 행동과 주변 환경에 관객들이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하고 있었다. 앨리스의 달라지는 모습과 함께 점점 낡아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부각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앨리스가 빛이 날수록 오히려 영화 자체의 색감이나 조명은 점점 어두워지는 등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심은 언제까지 지켜줘야 하는 걸까?
영화 《일루셔니스트》를 보면서 화가 나고 답답했던 것은 도대체 왜 할아버지는 앨리스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걸까? 였다. 자신의 생계를 위협하면서까지 앨리스의 세상을 마치 환상 속에 있는 것처럼 만들어준 것일까? 답답했다. 영화를 본지 꽤 됐지만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잘 알 수가 없다. 앨리스는 자신이 점점 화려해지면서도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마법으로 얻은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결국 앨리스에게 마법사는 없다는 말을 남기면서 앨리스의 곁을 떠난다.
둘 모두에게 별로 좋지 않았던 방법인데 왜 그것을 고수했는지 의문이 들었고, 순간적으로 그렇다면 아이들의 동심은 언제까지 지켜줘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던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마법사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앨리스의 곁을 떠난 할아버지는 기차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그림을 열심히 그리다가 연필을 떨어트린 소녀는 기차 의자 바닥에서 연필을 찾는다. 그 연필을 주운 할아버지는 기다란 자신의 연필과 비교하며 소녀가 원래 가지고 있던 짧은 연필 대신 긴 연필을 줄까 잠시 고민하지만 원래 소녀의 것은 소녀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나는 할아버지가 더 이상 마술을 이용해서 아이들을 환상 속에 두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마술 한번으로 아이들이 헛된 생각을 품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마술을 보여주되 그 마술은 순간적인 재미일뿐임을 알려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이 장면을 영화 《일루셔니스트》의 명장면으로 꼽고 싶었다.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대사가 많이 없어서 영화 그 자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던, 그래서 작품의 여운과 의미가 많이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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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화학물질로부터 대탈출 중
2019년에 우리는 괜찮은 코미디 영화들을 많이 만났다. 연초에는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이었고, 중반에는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였다.
<엑시트>라는 영화는 대학생 때 산악 동아리에서 이름 좀 떨쳤지만 이제는 만년 취업준비생인 용남과 용남의 옛 짝사랑이자 용남 어머니의 칠순 잔치의 웨딩홀에서 일하고 있는 의주가 알 수 없는 유독가스를 피해 탈출하는 영화다. 장르는 액션과 코미디. 분명히 무섭고 진지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과 해학으로 풀어나가는 감독님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유독가스는 '화학물질'이다. 화학물질이라는 말이 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화학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즘은 일반적으로 공업용으로 쓰이는 것들을 화학물질이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화학물질의 결합이나 화합을 통해 발견된 대표적인 물질은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셀룰로스에 질산과 황산을 가해서 얻어진 물질이기 때문이다.
온 도시를 유독가스로 뒤덮은 범인은 어떤 기업의 연구자였고, 연구 결과를 빼앗긴 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 행위로 가스를 살포한 것이었다. 실제로 악덕 기업에서 연구자의 특허권을 빼앗든지, 연구 결과를 훔쳐 가는 사건은 종종 발생한다.
영화에서 유독가스라고 불리는 그 화학물질은 호흡을 곤란하게 하고 피부에 기포를 생기게 했으며 종례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아주 독한 물질이다. 우리는 이런 화학물질을 '유해화학물질'이라고 부른다. 유해화학물질은 독성이나 발암성을 띠고 있어서 사람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화학물질인데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아서 노출되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이 직접 닿거나 섭취하였을 때 건강과 관련된 부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유출되어 공기 중의 물질과 반응하여 폭발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끝까지 이 물질의 정체는 나오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 부분은 아주 현실적인 부분이다. 왜 현실적일까?
많은 기업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화학물질들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화학물질들을 혼합하여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생각보다 우리나라에는 화학물질과 관련된 법들이 많이 있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학물질 관리법」 이 두 가지 법을 대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간단히 '화평법', '화관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원래는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이었는데 2012년 휴브글로벌의 불산(불화수소산) 가스 누출사고와 2013년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의 불산 누출사고를 계기로 법을 분리하여 관리하게 된 것이다. 화평법은 국내에 들어오는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정보를 만드는 것이고, 화관법은 화학사고 문제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시행 이후에도 사고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나쁘게 말하면 <엑시트>에 나오는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환경부의 화학물질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2만여 개의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5억 5천만 톤을 유통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화학산업이 세계 2위 규모이고 국내 최대 수출 분야로서 매년 400여 종의 새로운 신규 화학물질이 제조되고 수입될 만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에 반해 화학물질 취급 시설은 점차 낡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화학단지 대부분이 7~80년대 가동되기 시작해서 적게는 20년, 많게는 50년 이상 가동된 시설이라고 한다. 실제로 2014년에서 2020년 4월 사이에 발생한 화학 사고의 522건 중 취급시설 관리를 소홀하게 해서 발생한 사고가 전체 화학사고 중 46%나 차지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고의로 살포한 것이었지만 노후 시설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 노후시설을 관리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고의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영화에서 이 물질이 어떤 물질인지 정확히 말해줄 수 없는 것은 정말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해화학물질을 관리하는 곳은 환경부와 그 산하기관인데 화관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시설의 수, 규모, 업종 등 전체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이 바뀌면서 영업허가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시설이 정기 검사와 안전진단을 받아야 하는데 영업 허가가 면제된 시설은 신경 쓰지 않고 있기도 하다. 감사원 감사 결과 정기검사를 받지 않는 곳이 39%나 되었고 정기검사를 받지 않고 영업하다가 적발된 곳도 있었다. 사업자가 영업허가를 신청하지 않는 이상 영업허가가 면제된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에 대해 정부도 지자체도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원주의 경우도 문막 공단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약품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원주시에 문의하면 강원도와 원주지방환경청에 문의하라고 민원을 돌린다. 하지만 돌려받은 두 곳도 대답해 주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강릉의 수소 폭발 사고가 있었을 때는 관리·감독에 대한 책임을 서로 미루기도 했다. 이처럼 유해화학물질과 관련해서 법적으로는 명확한 관리 주체가 있지만 현장에서는 적용되지 못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사고가 터지면 책임 공방을 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는 사람을 구조하는 중에 끝이 났지만 이런 현실이 있기 때문에 과연 도시가 회복될 수 있었을지 궁금했다.
정말 모르기 때문인 이유는 또 있는데 이는 기업의 '영업비밀' 때문이다.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다루는 회사에서 어떤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지 공개하면 문제가 터졌을 때 빨리 대비할 수 있게 되는데 이를 영업비밀로써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인들이나 다른 회사에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공개 시 정말 영업상 손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에까지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가 있다니… 우리나라는 기업의 이득과 국민의 안전을 동일 선상에서조차 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 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탄올 대신 '메탄올'을 사용하여 실명한 노동자들에 대해 뉴스를 통해 보신 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고가 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 2020년에 들어서야 사업장의 잘못이 인정되었다. (참조: KBS 뉴스7, '메탄올 실명' 파견노동자들 4년 만에 손배 인정..."안전관리 방치 책임") 우리는 또 하나의 가족을 외치는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도 마주한 적이 있다. 이 사건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화학물질은 하나의 물질일 때는 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다른 물질과 만나서 반응하면서 문제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하루하루 새로운 화학물질이 나오고 있고, 현시점에 있는 모든 화학물질의 특성도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정말 조심히 다뤄야만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가져다준 불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 바로 화학물질이다.
<엑시트>에서 유독가스로부터 피해를 받는 존재는 '인간'으로 한정되어 있다. 사람이 그렇게 죽을 정도라면 나무와 동물은 분명한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불산 누출의 피해가 있었던 동네의 사진을 보면 나무들이 붉은색으로 모두 죽은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아주 힘겹기는 하지만 사람은 두 다리가 있어서 도망이라도 갈 수 있는데 나무는 그러하지 못하니 얼마나 애석했을까.
그리고 걱정이 되었던 것은 하천이었다. 영화에서 유독가스는 결국 물을 뿌려서 잡는다. 물에 녹는 성질을 가진 수용성 화학물질이었던 것이다. 물과 비로 눈에 보이는 가스상 화학물질을 잡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화학물질의 성격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물질이 하천으로 유입되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될지는 정말 어느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떼죽음 맞을 수도 있고, 시간이 걸려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도 있고, 식수로 활용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생태계는 연결되어 있고, 눈에 보이는 위험이 사라졌다고 해서 위험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낙동강에서 과불화화합물과 1.4-다이옥산이 검출되어서 식수로서의 기능을 의심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화학물질로부터의 위험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공단이나 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서만 사고가 일어난다는 법은 없고, 우리의 삶의 모든 곳에 화학물질과 유해화학물질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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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은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덮치는 것
#26회전주국제영화제
은퇴한 불문학 교수 기스케는 아내가 죽은 뒤 홀로 지내고 있다. 기스케는 X-day라 칭하며 저축한 돈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해가며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컴퓨터에 ‘적이 온다’라는 불길한 메시지가 나타난다.
기스케는 꼼꼼하고 깔끔하다. 대단히 주부력이 있다기보다, 자신만의 확실한 루틴을 가지고 있다. 업에 있어서도, ‘강의비는 100만 원, 교통비는 별도’라는 철칙을 가지고 움직인다. X-day라 칭하며 저축한 돈으로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해가며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악취, 비누와 똥
기스케의 창고에는 가장 무난한 선물인 비누가 쌓여있다. 이 선물은 괜스레 기스케를 주눅 들게 한다. 옆집에 사는 노인은 반복적으로 개를 산책시키는 젊은 여성에게 똥을 치우라며 소리친다. 젊은 여자가 얼굴을 찡그리자, 자신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것이냐며 버럭 한다. 옆집 노인은 막무가내로 젊은 세대를 탓하는 노인들의 초상이고, ‘냄새’를 상징한다. 노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악취. 며칠에 한 번 씻는 옆집 노인의 냄새라기보다, 노인이 되어 생리학적으로 나는 악취. 자신에게서도 냄새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에 들어와 비누로 벅벅 씻어댄다.
‘죽음’이 온다
냄새나는 난민이 북쪽에서 밀려온다는 불길한 스팸 메일이 나타난다. ‘적이 온다’ 여기서 ‘적’은 ‘죽음’이다. 사의 이미지인 흑백 필름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자신이 한발 물러서야 할 때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려 하지만, 사실 물러난다는 것은 기스케에게 큰 공포이다. 유언장을 세세하게 고치며 죽음에 대해 초연한 척 일관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죽음과 늙음에 대해 공포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노인이 가질 수 있는 공포들을 전개한다. 주류에서 벗어나고 도태된다는 공포, 더 머물고 싶지만, 후대에게 밀려난다는 공포, 구시대적 사고에 머무른다는 공포, 악취가 난다는 일반화에 대한 공포, 생물학적으로 노쇠해져가는 공포. 추한 퇴장에 대한 공포 등 말이다. 이는, 우리 인간이 나이가 듦에 따라 모두 느낄 공포이다.
성욕에 대한 죄책감
기스케의 꿈, 환상에서는 반복적으로 부인과 여제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괜스레 금기시되는 노인의 성욕에 대한 이미지가 등장한다. 여제자를 생각하며 자위를 하고, 여제자가 자신을 유혹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부인의 환상을 본다. 기스케 내면의 죄책감이 들 때마다 부인이 등장한다. 부인의 환상은 먼저 떠나보낸 부인이 지켜보고 있다는 죄책감, 잘해주지 못했다는 후회, 젊은 여성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의 총체이다.
기스케의 환상
젊은 편집장, 기스케, 부인, 여제자. 흔히 개꿈과 같이 연관 없는 남녀 넷이 모여 집에서 밥을 먹는다. 기스케는 자신의 반복되는 자신의 환상에 성찰하고 지쳐간다. 더 이상 추하게 죽고 싶지 않아서인지 기스케는 자살을 시도한다. 그리고, 기스케의 집에 적이 찾아온다. 죽음. 결국, 그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한다. 기저에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기스케를 죽지 못하게 한다.
퇴장, 그리고 이어짐
기스케는 자신의 꼿꼿하고 존엄한 퇴장을 바란다. 기스케는 증조할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오셨다고 했다. 여름에서 봄까지 사계절이 지나고 기스케는 퇴장한다. 영화 종반부, 증조할아버지를 본 줄 알았지만, 사실 자신이 유언장에 남긴 조카인 것이 밝혀진다. 선대에서 기스케로 이어지듯, 기스케에서 후대로 이어지며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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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의 드라마, 선의의 경쟁 리뷰
※줄거리 스포주의
요즘 SNS와 틱톡 등 숏폼으로 자주 보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U+TV에서 나온 ott인 <선의의 경쟁>이다.
특히나 선의의 경쟁의 주연인 혜리(제이 역)와 정수빈(슬기 역)의 키스신이 연일 화제다.
GL의 불모지라고 불릴 수 있는 한국에서 꽤 유명한 배우의 동성 키스신은 SNS를 뜨겁게 불태웠다.
# 자극적인 내용과 코드
이 드라마는 19금 드라마로 학교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자극적인 요소가 대거 등장한다.
주인공이 주선하는 마약 거래부터 시작해서 자살, 성관계, 납치, 감금, 학교폭력, 불법 수술, 살인 및 은폐 등 심지어 성인과 미성년자 간 교제나 장면 묘사는 없었으나 성매매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도 나온다. 학교 배경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보면 꽤나 충격적일 내용이다.
한국은 그간 스카이캐슬, 펜트하우스 등 우리나라의 학업 열풍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을 많이 내왔고, 대다수 흥행하며 하나의 계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와중 이 선의의 경쟁은 다른 드라마와 다르게 불법적인 행동을 성인이 아닌 학생들이 주로 한다는 점, 학업보다는 개인적 성장에 초점을 둔 점이 조금 다르지만 그럼에도 위에 적힌 드라마들에서 꼭 나오는 '극성 학부모', '경쟁 상대', '마약', '시험지 훔치기', '학원 특별 과외'는 빼놓지 않고 나온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전개는 다른 드라마와는 조금 다르게 흐른다.
# 슬기의 성장 일기
드라마를 한 줄 요약한다면 "슬기의 성장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슬기(정수빈)는 어렸을 때부터 존재감이 없던 학생으로 그 탓에 유치원에서 간 소풍에서 미아가 되고, 보육원에서 자랐다.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왕따를 당했고 어쩌다 시작한 공부로 왕따를 면하게 되어 공부에 집착하게 되는 캐릭터다. 그런 슬기가 고등학교 때 명문고를 가면서 제이(혜리)를 만나며 자신을 찾고, 어떻게 보면 우정과 사랑도 찾게 된다.
드라마의 시작 부분도 그렇다. 모든 화의 시작은 각 캐릭터들의 과거나 비밀을 슬기의 내레이션으로 보여준다. 슬기는 관찰자이자 주인공으로 다른 캐릭터와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점점 동화되는 캐릭터다. 처음에는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였다가 나중에는 이 드라마의 진짜 빌런인 제이네 아빠와 대격할 정도로 성장한다. 그 성장의 비밀에는 당연히 슬기의 짝인 제이가 있다.
제이는 그 학교의 짱,, 말하자면 인싸이자 실세로 아버지가 학교의 이사장이자 돈줄이다. 선생님도 제이 말에는 껌뻑 죽고 학생들도 마찬가지. 그리고 비밀리에 학생들에게 마약을 유통하는 어두운 면도 있다. 제이는 처음에는 호기심 혹은 약간의 끌림으로 슬기와 친해진다. 슬기는 항상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던 탓에 그 관심이 낯설기도 고깝기도 하다. 처음 슬기가 제이의 집에서 잔 날 슬기는 제이와 키스하는 꿈까지 꿀 정도로 제이에게 휘둘린다. 다만 그날 제이가 슬기에게 순진한 의도로 접근한 것이 아님을 알고 둘은 친해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한다. 사실 드라마 전반이 슬기와 제이가 싸우고 친해지고 싸우고 친해지고의 반복이다.
# 제이와 슬기의 관계 (경이와 예리의 관계)
이 드라마는 사실 경쟁 드라마를 빙자한 성장, 그리고 우정 사랑 드라마다.
넷은 겉으로는 문제없이 화목하고 좋아 보인다. 다만, 경이는 부모님의 관심과 자위 문제를, 예리는 돈 문제와 외모 문제를, 슬기는 애정과 마약 문제를, 제이는 아버지 문제를 겪고 있다. 그 관계들도 그렇다. 슬기가 바라보는 제이는 어딘가 수상하지만 완벽하고 꿍꿍이가 많은 여자애다. 슬기는 제이를 좋아하면서도 경계하고 그러면서도 믿고 싶어 하는 사랑과 우정 어딘가의 감정을 품는다. 제이가 슬기에게 갖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장면은 없지만, 제이가 "나는 소중한 존재가 생기면 그 존재가 죽는 상상을 해. 나는 그래서 너를 만난 후에 네가 죽는 상상도 해."라고 말한 부분에서 제이도 슬기를 소중하게 생각함을 알 수 있다.
제이는 끝내 슬기를 위해서 원래 죽으려고 했던 목표도 버린다.사실상 제이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큰 문제아다. 거진 사이코패스인 아버지는 제이를 제2의 자신으로 만들고 싶어 애가 탔고, 제이의 목적은 자신이 가장 위로 올라간 그 순간 모든 걸 망치고 추락, 즉 자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이가 극 중에서 계속 다이빙을 하며, 자신은 물속에서 춥고 숨을 쉬지 못하는 공간에 있을 때 가장 자유롭다고 언급한다. 그런 부담을 없애주고 제이에게 살고 싶다는 감각을 깨워준 것은 슬기다. 슬기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기억해 주지 않는 세상에서 학업만이 전부라고 생각할 때 마약을 끊고 슬기가 마음을 다잡게 해준 것은 제이이다. 경이와 예리에게 세상에 자리를 만들어 준 것도 어른들이 아닌 서로의 존재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기승전결을 따라 계속 숨 가쁨과 자극적임의 가도를 달리는데도 중간중간 나쁘게 말하면 김이 세는 어린아이가 노는 것 같이 해맑은 장면들이 계속 나온다. 집중력을 흐리는 그 장면들이, 오히려 제이와 슬기, 그리고 경이와 예리가 진짜 나이대로 돌아가서 성장하는 유일한 장면들처럼 보였다.
# 마무리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이 세련되거나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OTT 드라마의 한계인지 사용하는 배경이 조금 한정되어 있고, 가끔 이게 뭘까 하는 대사들도 종종 들린다.
그리고 어두운 장면과 밝은 장면이 너무 갑작스럽게 교차되어 몰입이 중간중간 끊기는 단점도 있다.
스토리도 모든 부분 매끄럽게 이어지진 않고,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서 무리수를 둔 듯한 부분도 보인다.
다만, 나는 워맨스 불모지인 한국에서 이 정도 퀄리티와 스토리를 가진 작품이 나온 것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특히나 처음에는 여자들의 케미를 보여준다고 홍보해놓고, 나중에 뜬금없는 남자와 엮어 우리의 뒤통수를 세게 친 작품들이 많기에 마무리까지 억지 헤테로 로맨스 없이 여자들의 우정과 사랑으로 끝난 스토리가 너무 만족스럽다.
현재 태국이나 대만에서는 퀴어 드라마가 넷플릭스 TOP 10에 올라갈 정도로 인기다.
우리나라처럼 워맨스, 브로맨스로 어영부영 퀴어 코드를 넣을 듯 말 듯 하는 수준이 아니라 작 중에서 키스신은 물론 결혼식까지 보여준다. 이런 것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퀴어 콘텐츠는 아직 글로벌 작품 수준으로 올라가기에는 너무 느리고 약하다. 다만, 선의의 경쟁처럼 꽤 좋은 퀄리티와 퀴어 코드를 가진 작품이 종종 등장하는 추세이고 우리나라 작품 특유의 좋은 퀄리티와 귀에 꽂히는 대사, K - 막장 코드들이 중국이나 태국에서도 인기가 된다고 하니 이런 작품들이 점차 늘어났으면 하는 바이다.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틀에 박히지 않은 다양한 작품들은 언제나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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