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바다2025-03-15 11:57:47
‘죽는 준비가 되었는가?’ 질문에 ‘어떻게 살 것인가?’로 답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숨> 리뷰
▷한줄평 :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풍경, 다시 충실하게 채워 가야할 일상의 기록들
▷영화 : 숨(Breath), 2025.3월
※ 본 글은 씨네랩(http://cinelab.co.kr) 초청 시사회 참석 후기입니다.
오래전 티베트의 장례문화인 '천장(天葬)'과 ‘천장사(天葬師)’의 삶에 관한 다큐멘터리주1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 있다. 자신의 육신을 독수리에게 내어 맡기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보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구 유럽과 미주 등에서 합법화되고 있는 안락사와 존엄사주2도 죽음을 대하는 또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영화 <숨>은 문인산 할머니, 유재철 장례지도사, 김새별 유품정리사 등 죽음을 가까이하는 세 주인공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화두를 던진다. 영화는 시체를 염하는 모습, 화장을 하고 유골을 분쇄하는 모습, 관속에 시신을 내려놓는 모습, 고독사 현장의 부패물과 유품을 정리하는 모습 등 여럿 터부시되는 죽음의 모습을 감추지 않고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런 생경한 풍경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나 자신의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영화의 첫 장면과 같이 출렁이는 파도와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사라질 것이다. 죽음 이후 남는 것은 한 줌의 재와 한평 남짓 누울 관 그것뿐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시계와도 같다. 시간이 끝나면 또 다른 시간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죽음은 끝이 아니다. 들 숨과 날 숨이 번갈아 교차하듯 삶과 죽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따라서 죽는 준비가 되었는지 묻는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영화 <숨> 스틸컷
1. 문인산 할머니 : 죽음의 너머를 헤아리는 자의 이야기
나이가 들면 육신의 쇠락을 막을 방법이 없다. 왜소해진 작은 체구, 검게 그을린 얼굴, 굵게 팬 잔주름들은 할머니의 인생의 종착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노후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하루 종일 리어카와 유모차를 끌며 폐지를 주워봐야 손에 쥐는 돈은 고작 1,200원 남짓, 근근이 버텨내야 하는 삶이 참으로 고달프고 슬프다.
'사는게 슬퍼! 너무 허무하고' 영화 <숨>/문인산 할머니
영화 <숨> 스틸컷 / 문인산 할머니
젊은 시절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지금은 사업 실패로 작은 지하 독방에서 홀로 쓸쓸하게 노후를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어디 사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라며 회환이 밀려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쌀 씻고 밥 짓는 수고로움이 생존의 본능을 넘어서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더 이상 내재하지 못한다. 이 삶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어쩌면 문인산 할머니에게는 죽음은 그토록 기다리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애써 말을 아끼지만 표정은 그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는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일까? 준비되지 않은 죽음은 슬프고 허망할 뿐이다.
2. 유재철 장례지도사 : 죽음의 육신을 닦는 자의 이야기
지난 30년간, 6명의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유명 인사의 장례를 치르며 ‘대통령의 염장이’로 불려온 유재철 장례지도사도 어느덧 60대 중반을 맞이했다. 이제는 몸 여기저기 성치 않은 곳이 많다. 오래전 죽을 고비를 넘긴 교통사고의 후유증도 있지만, 오랜 세월 염습 과정에서 손목과 어깨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한 탓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단 한 번뿐인 특별한 순간이기에 그의 익숙하면서도 정성 어린 손길을 멈출 수 없다.
영화 <숨> 스틸컷 / 유재철 장례지도사
그렇게 수많은 장례를 치르면서 마지막까지도 부를 움켜쥐려고 안간힘을 쓰던 부자의 죽음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모습이 좋지 않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편히 극락 간다고 한다.
'어떤 부자가 팔을 구부리고 온 몸이 경직된 상태로 죽은 거에요. 관속에 시신을 넣기 위해서는 팔을 곧게 펴야 하는데 펴지지 않아서 얼마나 힘들던지……
마지막까지도 못 놓으셨던 것 같아요.' 영화 <숨>/유재철 장례지도사
죽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평등해 진다. 부자 이든 아니든, 권력이 있든 없든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공평해 진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일진대 삶의 외형보다는 삶의 본질에 충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권세가 있는 사람이나 돈이 많은 부자나 결국 한 평도 안되는 관으로 들어가면 그만이거든요.' 영화 <숨>/유재철 장례지도사
3. 김새별 유품정리사 : 죽음의 흔적을 보듬는 자의 이야기
김새별 유품정리사는 죽은 자가 남긴 흔적을 정리하는 일을 직업으로 한다. 특히 가족들조차 가까이하기 꺼려 하는 고독사의 현장에서 눌어붙은 부패된 시신의 진액을 제거하고, 오래된 냉장고의 음식을 폐기하고, 버려야 할 집기와 물품들을 정리한다. 유품을 정리하는 중에 발견한 '장영실 상장'은 이 고인이 한때는 촉망받는 기술자나 사업가였음을 짐작게 한다. 고인은 한때 사랑받는 아들이자,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행복했던 남편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유품정리사는 단순히 유품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버리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고인의 삶의 궤적을 떠올리며 그가 남긴 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일은 죽은 자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남길 ‘유품’ 이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고독사의 흔적은 늘 쓸쓸함만 남길 뿐이다.
'이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은요 관공서 컴퓨터 안에 이름 세 글자 밖에 없죠' 영화 <숨>/김새별 유품정리사
이렇게 폐기 처분해야 할 짐들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집 밖에 내다 놓으면 이웃사람들이 왜 거기에 그걸 두느냐고 나무란다고 한다. 죽음의 소산은 그렇게 모두가 꺼려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 집에도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살아야 할 곳이다. 죽음이 있었던 곳에 새로운 삶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다. 같은 장소에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는 것이다.
영화 <숨>/김새별 유품정리사
이제 다시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가?’라는 질문지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최근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키며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하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면서 임종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도 유재철 장례지도사 부부는 함께 기관을 방문하여 이를 작성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류의 답안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충분치 않다. 그래서 영화 <숨>은 ‘죽음의 일상’에 더하여 유재철 장례지도사와 그의 아내의 ‘삶의 일상’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사찰에 함께 들러 삼배를 하고, 숲을 거닐며 누가 먼저 죽을 것인지? 짓궂은 대화를 나눈다. 장례지도사의 손을 잡고 잘 수 있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그의 아내는 웃음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 <숨>은 이렇게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 순간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과업을 충실히 하며 일상을 의미 있게 살아내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죽음을 준비하는 최선의 방법은 죽음이 죽음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어떤 흔적을 남길지 생각하며 지금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다. 영화 <숨>은 그렇게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영화 <숨> 스틸컷 / 사찰에서 윤재철 장례지도사 부부
※ 참조자료(YouTube)
1. [EBS컬렉션] 망자의 시신을 독수리에게 내주는 티베트의 독특한 장례 문화 '천장'
https://youtu.be/UktSdfk0u_w?si=UFX9EzQ1vYzmTxPB
2. [MBC PD수첩] 죽음을 찾아 스위스로 떠난 사람들
https://youtu.be/FcgD79tYHFA?si=g8jooBXMH3Itxs3z
영화 <숨>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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