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5-03-24 23:56:57
우연이 우리를 청춘에 데려다줄 거야
영화 <스윙걸즈> 리뷰
SYNOPSIS.
“빅밴드 재즈? 그게 뭐하는 건데?”
지루한 보충수업을 째고 싶었을 뿐, 토모코(색소폰)
야구부 선배에게 홀딱 반했을 뿐, 요시에(트럼펫)
남들보다 폐활량이 뛰어났을 뿐, 세키구치(트럼본)
어쩌다 친구 따라왔을 뿐, 나오미(드럼)
심벌즈가 적성에 안 맞았을 뿐, 나카무라(피아노)
짝사랑하는 재즈 덕후일 뿐, 수학 선생님(지휘)
대단한 이유 없음! 눈부신 재능 없음! 거창한 목표 없음!
그래서 우린 스윙한다♬ 그 누구보다 재미있게♬
POINT.
✔️ 우에노 주리가 실제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촬영한 영화. 조금 엉뚱하고 풋풋한 매력이 빛납니다.
✔️ 그러나 배역 준비는 풋풋하지 않음. 실제로 배우들이 악기를 배워서 연기했다고 해요.
✔️ 교복 입고 무언가에 열정을 불태우는 청춘 영화... 안 좋아하는 법 아시는 분?
✔️ <워터 보이즈>로도 사랑받은 야구치 시노부 감독 작품입니다.

교복 입은 아이들이 해맑게 나와서 각자의 청춘을 향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사실 이렇게 말한다는 자체가 특정 시대 콘텐츠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다. 요즘 교복 입은 애들은 해맑게 청춘 타령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괴생명체랑 싸우고, 좀비 바이러스 퍼진 학교에 고립되고, 성매매에 연루되고, 온갖 폭력에 맞서고, 기껏 공부 좀 해보려는 애도 타고난 재능이 싸움이고 뭐 그렇다... 다시 말해 학원물 또한 액션물과 장르물의 파도를 타는 시대다. 갖은 욕망들이 드글드글 서로의 머리채를 잡는 빨간 맛 드라마가 각광 받는 시대. 다이나믹한 스토리에 강한 K-콘텐츠 특성이기도 하고, 다이나믹한 현실을 노련하게 담아낸 창작물이라는 뜻도 되겠지만, 유순하고 말간 학원물이 이따금 그리울 때가 있다.

청춘 영화가 좋은 이유
콘텐츠조차 숨가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맹한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영화는 그냥 그 자체로 귀엽다. 특히나 <스윙 걸즈>는 2004년에 개봉한 영화다. (한국에서는 2006년 개봉했다.) 불과 20년 전이지만 분명 다른 시대 정신이 그 안에 분명 있다. 그 시절 시골에는... 정말 <스윙 걸즈> 같은 느낌의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가 그저 타성에 젖어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교 풍경, 여름 방학 보충 수업이라고 그 타성조차 늘어진 날들. 학교에서 덥다는 생각으로 교복 깃을 풀풀 흔들며 매미 소리나 듣고 있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그래서 외국 영화임에도 <스윙 걸즈>의 풍경이 아주 낯설지는 않다.
그다지 치열하지 않아도 되는 (관념 속의) 학교와 교복, 지방의 작은 열차를 타고 다니는 푸릇푸릇한 (관념 속의) 시골 풍경, 바쁘기보다는 무료할 정도로 단조로운 날들, 거기에 반짝 빛을 더해주는 친구들과의 시간, 집 전화로 서로를 부르던 시절의 감각, (역시나 관념 그 자체인) 여름 쓰르라미 소리, 기분 좋아질 수밖에 없는 음악까지... 이 영화는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영화다.

동양권 청춘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이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청춘의 파릇파릇 예쁜 면을 가득 보여주고, 조금씩 배경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한국-일본-대만 정도의 권역에서는 무리 없이 그 감성을 고스란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나라 애들은 수능 말고 무슨 시험을 보는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청춘의 표면만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20여년 전 일본 영화, 10여년 전 대만 영화 등 이런 "청춘물"이 우수수 쏟아지던 시절을 한 번 훑고 나면 그건 시대의 기억이 된다. 실제로 이 영화를 나도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땐가 봐서, 내 청춘의 기억과 중첩되어 더욱 푸릇푸릇하게 느껴진다. 나이 들면서 좋은 점 중에는 이렇게 기억의 중첩으로 감각이 더 진하게 우러난다는 점도 있구나.
나이 들어 좋은 점은 하나 더 있다. 그 시절 '언니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였던 <스윙 걸즈>는, 얼추 두 배의 나이가 되어서 보니 마냥 귀엽기만 하다. 기껏 정 붙은 악기를 내어주고 자리를 비켜 주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나, 친한 친구여도 옆자리 친구와 기묘하게 경쟁하게 되는 마음, 꿈 같던 여름이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묘하게 어색해진 친구와의 거리감 같은 것들이 죄다 귀엽다. 그 시절에 가장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감각임을 알기 때문이다. 바쁜 일이나 정해진 일정 같은 것들에 얽매이는 삶을 아직 시작하기 전, 그 시기 특유의 감각.

우연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무료하리만큼 고요한 날들도, 그 시절의 청춘도 모두 아름답지만... 오랜만에 본 이 영화가 옛날과 달리 마음에 남긴 것은 또 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되는 것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하는 질문이다. 여름에 우연히 손에 쥔 관악기들이 아이들을 전혀 다른 겨울로 데려갔듯이, 우연한 시작은 우리를 생각지도 못한 길에 데려다 놓는다. 그런 마법은 어릴 때만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언제든 새로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비록 시작이 마법 같다고 그 여정이 즐겁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악기를 갖고 준비를 하기 위해 나름대로 들인 시간과 공이 있었듯, 무언가가 되어가는 과정은 언제나 지난하고 쉽지 않다. 그러나 조금씩 해냈을 때의 즐거움도 있으니까. 이 아이들처럼, 그렇게 그 길을 가게 된다.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과 함께 은은한 유머 감각이 빛나는 장면이나, 모로 가든 어찌됐든 문제가 얼렁뚱땅 해결되는 뻔뻔한(positive) 전개, 타카하시 잇세이나 키노 하나, 에구치 노리코(악기점 점원이었다!) 같은 배우들의 한껏 젊은 시절을 보는 일, 뭐 그런 것도 즐겁긴 했지만... 이 영화가 가장 산뜻하게 즐거웠던 이유는 역시 그 우연한 시작을 정말로 무언가 '되게' 만드는 여정을 담았다는 지점이 아닐까.
우연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몰라도, 그 길을 박수 짝짝 치며 친구들과 즐겁게 걷다 보면 우린 어딘가에 다다른다. 그 지점은 청춘 영화에서 계속 본 그 싱그러움을 닮아 있다. 어쩌면 청춘의 외피를 더덕더덕 붙여 바른 것처럼 느껴지는 이 영화는, 그 속살을 따라갈 때 가장 싱그러운 청춘에 도달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치면 청춘은 나이의 개념이라기보다, 마음의 상태에 더 가까운 개념인지도. 고등학생 귀엽고 나이 들어 좋은 점이 있다고 글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싱그러운 자리의 빛에 가슴이 뛰고 있으니까.

그러니 오늘도 좋아하는 걸 마음껏 좋아하고, 그 길이 우리를 어떤 싱그러운 자리로 데려다 주는지 기쁘게 바라보자. 잘하든 못하든, 기회가 있든 없든. 우연이 우리를 청춘에 데려다줄 테니까.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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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틸라트로즈: 아프간의 기자들> 리뷰
감독] 압바스 리자이
시놉시스]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에 의해 카불이 함락되고, 아프가니스탄의 일간지 에틸라트로즈 소속 기자들은 기로에 선다. 이대로 피신할 것인가, 탈레반의 만행을 고발할 것인가. 결국 신문사 대표는 탈레반에 저항하는 시위를 취재하기로 결정을 하지만, 혹독한 시련에 직면한다. 다섯 기자가 체포되고, 두 명이 끔찍한 고문을 당한 것. 영화는 그렇게 탈레반의 거짓 약속과 아프가니스탄의 비통한 현실을 고발한다.
작년 카불공항에서 IS테러가 일어나면서 전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사실 개인적으로 IS라는 무장단체의 테러 자체는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무자비함은 지속적으로 봐왔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항에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활주로까지 가득차있었고, 비행기 바퀴와 날개를 잡아서라도 이곳을 떠나려는 저 간절함과 극박함이 굉장히 충격적이고 안타깝게 다가와서 아직도 카불공항 테러는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이번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에틸라트로즈: 아프간의 기자들>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관한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있었다.
리더의 존재
영화 <에틸라트로즈: 아프간의 기자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바로 편집장이다. 이 팀의 리더였던 그는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언론에 대한 사명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이 두 가지 원칙이 동시에 지켜지기는 솔직히 어렵다. 현실적인 판단에 따른다면 기자의 사명감이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편집장은 솔직하게 말한다.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서 이 현실을 계속해서 취재하고 기사를 써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왜 그래야 하죠?라고 반문한다. 탈레반 하에 있는 언론사는 그들에게 이용될 뿐 언론의 기본적인 원칙조차 지켜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끝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지키며 남아있는 것은 허영심에 불과하다는 것을 꼬집은 것이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비통한 현실을 보도할 수 있는 방법은 아프가니스탄 내부가 아니라 외부이기에 편집장은 어떻게 해서든 기자들을 무사히 다른 나라로 망명을 보내려 한다.
직원들을 안전하게 망명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관련 기관에 직원들의 서류를 등록시키고, 우선적으로 비행기를 배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을 점점 압박해오는 탈레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국제기구 및 단체들과 화상미팅을 가지며 현재의 상태와 보급, 망명에 대한 도움 요청을 지속적으로 한다.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고, 직원들이 탈레반에게 잡혀들어갔다가 고문을 당하고 돌아올 때에도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던 편집장이 회의에서 자신의 직원을 살리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리더의 무게와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남겠다는 직원을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편집장의 모습은 끝까지 직원의 안전부터 생각한 이 시대의 참리더가 아니었나 싶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그토록 카불공항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비행기 바퀴에, 날개에 매달리면서 까지 아프가니스탄을 벗어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안전일 것이다. 내일의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그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이유는 안전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탈레반은 굉장히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같은 코란을 보지만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했던 기존 아프가니스탄과는 달리 탈레반은 엄격한 잣대로 코란을 해석했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 속에서 굉장히 큰 제약이 따랐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옷을 입을 수 없었고, 여성들의 경우에는 직업을 가질 수도, 눈을 제외한 몸의 모든 부분을 가려야 하는 등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용납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그동안 누려왔던 자유와 선택을 지키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을 질 수 있었던 환경이 파괴되면서 그들은 기본적인 자신들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다른 나라로의 망명을 원한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선택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자유의 부재는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의 공포와 비슷하다는 것을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에틸라트로즈는 과연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 카불의 일간지로서 아프가니스탄 독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자유를 회복할 수 있을까? 에틸라트로즈의 기자들이 다시 한 데 모여 보도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시간표
2022-09-24 11:00
메가박스 일산벨라시타 103호
209
2022-09-28 10:30
메가박스 백석점 2관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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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부하더라도 말해져야 할 희망의 가치
사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는 많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인류의 삶에 끼친 영향이 막대했기 때문이겠다. 같은 소재를 사용한 작품이 많아질수록, 작품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는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작품들을 바라볼 때 소재를 얼마나 색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지, 어떤 추가적인 소재를 활용하는지를 통해 본다.
사실 이제는 소재의 싸움이 어느 정도 그 한계를 맞고 마무리되어 가는 시기다. 다양한 소재를 통한 예술 작품들이 출품되고 상영된 지는 이미 꽤 지났다. 이런 상황일수록 같은 소재라 하더라도 독특한 연출법과 패러다임들이 작품을 빛내게 된다. 이를테면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인터미션까지 있어 화제가 된 <브루탈리스트>가 있다. 이 작품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주인공이 가지는 성격인 이민자, 건축가라는 요소를 중점으로 내러티브를 전개하고, 주제 의식을 풀어간다. 앞서 말한 ‘많이 사용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색다른 요소를 첨가한 것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작품에 대한 관점 또한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평단의 호평을 받아 올해 개최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여러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는 성과를 쥐었다.
<화이트 버드>는 그런 점에서 인상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이야기, 홀로코스트라는 일종의 “흔한 소재”를 차용했다. 그러나 당시 소련과 나치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관객에 주입하는 데에 사용됐던 ‘영화’라는 매체를 돋보이게 한 점이 눈에 띈다. 핵심적인 시퀀스는 사라(아리엘라 글레이저)가 줄리안(올랜도 슈워드) 가족의 헛간에서 숨어 지내며 희망을 잃어갈 때,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영사기를 활용해 실제 영상을 봄으로써 희망을 찾는 과정에 있다. 당시에는 나치의 이데올로기나 사상을 선전하는 데 사용됐던 영화가 사라와 줄리안에게 만큼은 희망과 미래의 상징으로써 사용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이트 버드>가 희망을 말하는 방법
희망을 말하는 여러 상징물이 등장한다. 앞서 말했던 영화에서부터 시작해, 영화의 제목이며 가장 중요한 심볼로 등장하는 ‘화이트 버드’, 하얀 새가 있다. 영화에서는 하얀 새를 의도적으로 반복해서 등장시키고 강조한다. 주로 사라가 헛간에 숨어 지내는 과정에서 등장하는데, 희망을 잃을 위험에 처하는 상황들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장치로서 등장한다. 하얀 새가 ‘평화, 자유’라는 의미를 뜻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88 올림픽’ 당시 날렸던 수많은 비둘기가 흰색을 띠기도 했다. 이는 자유와 희망, 평화 등의 상징적 의미를 올림픽을 관람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퍼포먼스였다.
이 ‘화이트 버드’는 사실상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상징물로서 작용한다. 사라의 희망을 위한 것에서부터,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의 희망을 위해. 그리고 줄리안이 소아마비로 불편했던 두 다리로부터 자유로워지는(영화 종반부에서의 장면인데, 꽤 슬픈 상황이지만 작 중 사라가 “어쩌면 줄리안이 자유로워진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라는 대사를 남긴다.) 순간에서 등장한다. 사라가 줄리안으로부터 선물 받은 목각 새 인형 또한 그런 상징성을 가진다.
단순 새라는 상징물뿐 아니라 사라와 줄리안, 그리고 그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사라를 둘러싼 그 주변 사람들 모두. 그들은 모두 서로를 의심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돕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치당원들의 감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 사이에서 서로를 돕고 좌절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정함은 다른 이를 끌어내리고 무너뜨리려 하는 악의보다 강하고, 끈질기며 가치 있다고 여긴다. 실제로도 그렇다. 타인에게서 미움받은 경험보다, 타인에게서 받은 호의와 사랑의 힘은 양에 비해 강력하고 지속적이다. 다만 영화에서 일종의 “감동 유발 장치”로 사용되는 ‘노래’는 다소 작위적이고, 전개 과정에서 등장의 수미상관을 이룸으로써 “플래그” 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쉽다. 의도 자체에 아쉬움을 표하고 싶진 않다고 하더라도, 그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음에 매우 아쉬움을 느낀다.
원작이 있는 영화의 딜레마
원작이 있는 영화는 항상 딜레마에 휩싸인다. 어떤 장면과 연출을 살려둬야 할지, 아니면 각색해야 할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장면과 요소들이 다르기 때문에, 특히 원작이 있는 작품은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비판과 아쉬움을 낳게 된다. <화이트 버드> 또한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 ‘무엇을 각색할 것인가, 무엇을 보존할 것인가’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나는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면 원작을 관람 전후로 무조건 확인해보는 편인데, 그렇지 않으면 영화가 원작을 얼마나 참고했는지와 원작을 잘 각색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원작과는 다르게 각색된 부분들이 몇 있었는데, 특히 노인이 된 사라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링의 방식이 영상통화를 통하는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사라가 직접 손자의 집에 방문해서 전하는 것으로 택한다. 과연 의문이다. 원작을 보존했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을 흐름이었음에도 불구, 오히려 보존했다면 더욱 과거와 현재에 대한 구분이 지어지면서 스토리텔링과 현재의 시공간이 자연스럽게 왕복하는 듯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게 됨으로써 현재와 과거의 비슷한 컬러 톤이나 미장센 등의 유사성으로 인해 자칫 두 시공간이 같은, 어쩌면 크게 시간적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여지가 남겨지게 됐다. 이는 원작 고증과 각색의 딜레마에서 오히려 패착이 될 가능성에 대한 결정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화이트 버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어났던 인종 말살 행위에 대한 무도함에 대한 매체적 비판을 행함으로써 그 가치를 보여주기를 택한다. 그것을 얼마나 정교하게 보여주는가에 대한 물음에 날카로운 대답을 던지지는 못했으나 작품이 가진 소재의 가치와 메시지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자부심을 드러냈다.
세계가 급변하고 어떤 가치가 이 세상을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게 되는 요즘일 것이다. 기존에 믿고 있던 가치가 흔들리게 될 수도 있고 종잡을 수 없던 마음이 오히려 단단히 굳어지는 과정에 놓여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영화가 주목하는 ‘자애와 박애, 그리고 선의’라는 가치를 넘겨짚어서는 안 된다. 전쟁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21세기, 특히 생명이라는 가치의 소중함이 점점 희박해지는 이 현실에서 그 가치를 지켜야만 인류는 미래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생명과 존엄함의 가치 아래서, 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기를. 그리고 관람 후에도 그 가치에 대한 평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나의 간청을 모든 관객에게 바친다.
* 이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한 뒤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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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 스포일러 포함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
(23.02.08 개봉)
감독: 임성용
출연: 윤시윤, 설인아 등
안녕하세요! 씨네랩 크리에이터 에깸입니다 ♥ 윤시윤 설인아 님 주연인 로맨스 영화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 시사회에 다녀왔어요. 먼저 말씀드리자면 제 취향은 아녔어요 ㅠㅠ 실제로 아쉬웠다는 평이 많은 영화더라고요. 일본 3류 드라마급 대본이었고, 주연 배우님들의 비주얼 합은 대박적이었습니다.
향수 냄새를 맡는 순간 상대가 내 첫사랑으로 보이는 말 그대로 판타지 로맨스 장르입니다. 모태솔로 창수와 남자에 관심 없는 아라의 이야기인데요. 아라는 지금껏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가 없었기에 창수의 향수 냄새를 맡는 순간 고대로 창수에게 사랑에 빠져 버려요 소재는 아주 굿!
그런데 위기-절정 부분이 이해가 안 됩니다...... 이 향수는 치매에 걸린 아내가 자신을 다시 사랑했으면 하는 어느 기업 회장님의 지시로 만들어진 건데요. 창수가 이 실험의 대상자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회장님이 빌런의 위치로 가야 하죠. 근데 회장님은 굉장히 착하고 따스하신 분이에요. 창수의 괴로운 사랑 이야기를 본 회장님은 당장 이 실험을 멈추고 폐기하라고 지시합니다. 사알짝 애매한 결말이었어요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에요! 아라의 전 남자 친구인 제임스도 연루되어 있었어요 제임스는 아라의 첫사랑이 본인일 줄 알았는데 창수가 첫사랑으로 보이니까 화가 난 것이죠. 그래서 창수를 패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부분에 자기한테 향수 뿌려서 아라 눈에 창수로 보이게 하는 그 장면은 영화 자체적으론 긴장되고 스릴 넘치는 부분일 텐데 다들 개웃었어요. 어이가 없는 장면으로 연출이 되어서... 웃어야 할 때 웃고, 울어야 할 때도 웃는 영화랄까요
무엇보다 캐릭터가 지나치게 넘쳐서 떡밥은 잔뜩 뿌려 놓고 회수를 못한 게 문제 같아요
아라는 집안에서 등골이 휘는 가장이에요. 동생은 무작정 가수를 한다고 춤 연습만 하고 있고 엄마는 동생만 오냐오냐 하며 홈쇼핑으로 30만 원을 질러요. 이렇게 캐릭터 설정을 해 놨으면 뭔가 이들도 스토리상으로 치고 나와서 아라에게 더 못되게 굴고, 아라가 힘들어해야 하잖아요. 근데 그냥 지나가는 씬일 뿐이었는지...... 에필로그에서 동생이 가수로 성공하는 장면만 나와요. 그리고 동생 일급 아라 통장에 넣었다고 모녀가 화해함
제가 이해 못한 걸까요? ㅠㅠ,,
아라 동료랑 창수 동료가 사귀는 건...... 웃긴 조연 캐릭터로 빠져서 코믹 요소로 좋았구요! 창수네 점장이 창수한테 사랑에 빠진 것도...... ㅋㅋㅋㅋ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었어요
근데 창수 회사에 있는 AI 같은 여자 직원 분 역할이 뭔지 정말정말 궁금해요. 그렇게 눈에 띄는 조연이었으면 하다못해 창수한테 반한다거나 하는 역할이라도 해야지 그것도 없고 걍,, 창수 옷만 꼬매 줘서 너무나 아쉬운 캐릭터라는 후기입니다
아아 저는 시사회에 참석한 거라 특전으로 핸드크림을 받았는데요!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라서 핸드크림을 주신 게 넘나 센스 있었다고 생각 ㅎㅎ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본 포스팅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관람, 리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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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묘하게 맛난 영화
* 대략적인 줄거리 포함.
영화 <프렌치 수프>는 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미식의 세계를 그린 영화다. 연출은 베트남계 프랑스 영화감독 트란 안 홍이 맡았다. 트란 안 홍은 장편 데뷔작 <그린 파파야 향기>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씨클로>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영화 <프렌치 수프>로 감독상을 받아 칸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선택을 받았다.
영화는 사계절의 자연 속에서 음식을 만드는 <리틀 포레스트>처럼 음식이 만들어지는 주변 환경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채소가 가득한 정원, 요리에 쓰일 재료를 솜씨 좋게 채취하는 장면, 보랏빛으로 무성한 들꽃과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숲, 넘실대는 물살에 햇빛을 반사하며 흐르는 강물......
줄리엣 비노쉬(외제니 역)와 브누아 마지멜(도댕 역)은 각각 당대 최고의 요리사와 미식 연구가로 출연한다. “맛있고 좋은 요리를 발견하는 일은 새로운 별을 발견하는 일보다 인류에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음식을 향한 도댕의 자부심. 급이 다른 창의적인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 준비부터 요리 과정까지 모든 절차를 섬세히 다루며 두 인물의 심리와 미묘한 관계를 영화는 세심하게 담아낸다.
20년간 최고의 요리를 함께 탄생시킨 외제니와 도댕. 그들은 함께 요리를 만들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키워나갔다. 인생의 가을에 다다른 두 사람. 도댕은 기어이 외제니에게 청혼을 한다. “결혼은 코스 요리 중 디저트를 먼저 먹는 거와 같다.”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자유를 누리며 온전히 두 사람의 사랑이 깃든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 외제니는 요리사가 아닌 아내가 되기를 거절한다.
그녀가 쓰러져 눕게 되자, 도댕은 오직 그녀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도댕은 모든 정성으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외제니에게 맛보게 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고민하여 만든 최상의 음식은 지극한 사랑의 풀코스 선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행위는 달콤한 사랑의 언어보다 더 강렬한 시적 표현이었다.
실제 부부였고 칸 영화제에서 각각 남녀 주연상을 받은 두 사람의 연기 호흡과 존재감은 화면에 빨려 들어가게 했다. 다만, 대화 중에 나오는 19세기 후반의 갖가지 프랑스 요리나 다양한 와인 브랜드만으로 맛이나 향취를 상상하기 어려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책이나 원작인 만화로 보았으면 구글을 검색했으리라.
극장을 나서면서 영화의 원제가 ‘The Taste of Things’라는 게 가슴에 와닿았다. 사물, 혹은 인생의 맛이 달콤(sweet)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쓰라린(bitter) 고통을 주기도 하지 않는가. 두 남녀 주인공의 운명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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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한 유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족
가족은 한 개인의 성장과 안착된 환경을 만들어주는 버팀목 같은 존재다. 어린 시절에 부모는 절대적인 존재이고 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도움을 준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이겨 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는 부쩍 성장해 자신의 길을 가게 된다. 하지만 그 지점으로 가기까지는 많은 인내심이 따르고 한 순간 한 순간 이겨내는 것이 어려운 시기도 있다. 그 어려움을 결국은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위로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버팀목이 되어 한 걸음씩 나아가면 그래도 그 고난함이 견딜만하다.
하지만 어려움이 심각해지면 앞으로 나아가는 그 발걸음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 어두운 시기를 끝까지 참아내지 못하고 무너진 가족의 일원이 있다면 그 일원은 가족의 분위기를 바꾼다. 술이나 도박에 중독되어 가정에 소홀하거나 자신의 희망을 다른 이성에게 찾아 여러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불행의 책임을 자녀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여 뒤쳐진 그 가족의 일원에게 손을 뻗어 같이 가려는 노력은 꽤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암흑 같은 시기에 약간은 원망스러울 그 가족족의 손을 잡으며 걸어가다 보면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미국 백인 노동자 가정에서 자란 남자아이의 이야기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특히 미국의 백인 노동자 가정에서 자란 한 남자아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는 주인공 JD(가브리엘 바소)의 유년기 시절과 현재를 담는다. 현재 그는 예일대 법대생이고 중요한 인턴십 면접을 앞두고 있다. 그는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누나 린지(헤일리 베넷)의 연락을 받게 되고, 엄마 베브(에이미 아담스)가 헤로인을 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돌아가는 과정과 함께 JD의 청소년 시기의 이야기들이 플래쉬백으로 교차로 보인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유년기 시절 엄마 베브의 모습은 망가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이혼을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고, 새로운 이성을 만나지만 금방 헤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그렇게 감정적인 안정을 찾지 못하면서 가끔 아이들에게도 심한 폭언이나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의도치 않게 자신의 몸을 자해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이기도 한다. 엄마와 아주 잘 지내면서 따뜻한 모습을 보던 JD는 갑자기 급격히 감정이 변하는 엄마를 볼 때 많이 흔들린다. 그렇게 흔들리는 엄마를 보는 JD의 눈동자는 점점 초점을 잃어간다.
영화에는 엄마와 누나 이외에도 할머니(글렌 클로즈)도 중요한 가족의 일원으로 등장한다. 공장 노동자였던 할아버지(보 홉킨스) 옆에서 가족을 챙기며 살아왔던 그에게 자신의 딸인 베브가 그렇게 삶의 끈을 놓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려고 하는 손주 JD를 보면서 그것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약함을 잠시 감추고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대마초를 피워대는 JD를 다시 잡아 자신의 길로 돌아가게 만든다.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고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JD
주인공의 현재 모습을 보면 굉장한 우등생이며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JD가 성장했던 마을은 그렇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공장 노동자들이 주로 지냈던 그 지역을 바라보는 외부인의 시선은 JD가 면접 전 참여했던 변호사들 간의 만찬 자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대부분은 그 마을과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촌구석이나 부끄러운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JD는 그 인식에 굉장한 불만을 토로하며 반론을 제기한다. 그에게는 자신이 자라고 자신을 만들었던 그 마을을 하찮게 생각하는 그 발언들이 부당하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JD에게 가족은 무엇이었을까. 영화를 보다 보면 굉장히 불편한 장면들이 있다. 특히 엄마 베브가 JD에게 무차별한 감정적 폭발을 쏟아내고 폭력을 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화가 난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던 JD와 누나 린지가 다행히 문제없이 자라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 어쩌면 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엄마가 채워주지 못한 자리를 할머니가 대신 채웠다고 할 수 있다. 다른 길로 빠지려고 하는 순간을 직감적으로 눈치챈 할머니는 자신의 딸 베브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했을 때, 손주들을 지키려 최선을 다한다.
적어도 할머니는 JD와 린지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 두 손주가 거의 성장할 때까지 그들을 가르치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 특히 JD를 할머니 본인 집으로 데려와 생활할 때, 나쁜 길로 나아가던 JD가 할머니의 노동과 고생하는 모습을 경험하고는 올바른 길로 변화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JD가 시험에서 1등을 했을 때, 할머니의 표정에서 보이는 기쁨은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일 것이다. 아마도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JD는 가족이란 어떤 것이고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JD는 과거부터 약에 중독된 엄마를 보아왔다. 보통의 경우라면 성장한 후 다시 보기 싫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엄마가 다시 헤로인에 손을 댔다는 말을 듣고는 고향으로 곧장 돌아온다. 그의 할머니가 그랬듯이 자신에게 남은 가족인 누나와 엄마의 손을 놓지 않는다. 영화 말미, 한 모텔의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가 JD에게 손을 잡아달라고 손을 내밀 때, JD는 그 손을 뿌리치지 않고 잡는다. 그리고 가만히 손을 잡으며 이야기한다. 면접 때문에 잠시 학교로 가야 하지만 다시 돌아올 거라고,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영화가 던지는 질문, 가족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비록 가정의 환경 자체가 불우하더라고 포기하지 않고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현실적으로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가는 걸음을 포기해버리면 그건 엄마 베브가 선택한 길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아주 훌륭한 삶은 아닐지라도 계속 먹고 마시며 살아갈 힘 정도는 얻어지지 않을까. 그런 긍정적인 인식이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
베스트셀러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JD가 실제로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약에 중독되었던 엄마를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할머니 역을 맡아 실제 외모까지 비슷하게 분장한 글렌 클로즈의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약해진 몸에도 불구하고 강인함을 보여주며 손주들을 끝까지 챙기는 할머니의 모습은 글렌 클로즈의 연기와 목소리를 만나 한층 돋보인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트럼프 지지층으로 대표되는 백인 노동자층 가정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는 정치적인 영화이고 아주 보수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인 색깔을 걷어내고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는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그렇게 불편하지 않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다. 비록 아주 좋은 가족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JD를 비롯한 가족의 모습과 그들의 선택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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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서울독립영화제 후기 (2)
4.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국내에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여자 없는 남자들> 이 원작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로 가장 잘 알려진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타 작품들을 워낙 재미있게 봤던 터라, 기대를 안고 가장 먼저 티켓팅에 도전한 영화이다. 역시나 좋았고, 전작들과는 색다른 느낌을 주는 이야기였다.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난 후 진행된 시네토크에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에서 시작해서 픽션으로 끝나는 영화’라고 하신 평론가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이보다 이 영화를 더 잘 설명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자연을 보호하고자 하는 거주민, 그리고 그 반대쪽에 서서 어떻게든 글램핑장을 건설하려는 회사 직원들의 이야기. 와중에 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엔딩에 이르러서는 충격적인 장면이 묘사된다. 어떠한 순간순간들이 문학적으로 다가와 좋았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말을 아껴야겠다. 정보없이 봤을 때 오는 놀라움이 크다)
광활한 풍경, 유머러스한 대화, 그리고 오프닝이 정말 볼만하다.
그리고,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5. 백탑지광 (감독 장률)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디>, <경주>, <춘몽>으로 잘 알려져 있는 영화감독 장률. 이번 영화 <백탑지광>은 한 편의 시를 닮았다.
영화 <군산>과 <경주>
영화 <춘몽>과 <백탑지광>
백탑은 그림자가 지지 않아요
영화 제목 '백탑지광'에서의 백탑은 베이징에 있는 탑으로, 그림자가 지지 않는다. 이는 곧 한 등장인물이 '우리에겐 그림자가 없다'라고 상대에게 말하는 것과 연결된다. 각자의 아픔과, 말 못할 서러움들을 내면에 꾹꾹 눌러담고 있어서일까.
속에 자리한 그늘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은 각자의 힘으로 묵묵히 생을 버텨내고 있다.
내가 안아줘도 될까요?
용기내어 이렇게 물어보며 자신의 그림자를 꺼내 보인다. 조금은 다른 모양일지라도,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포갠다.
너의 그림자와 나의 그림자를 겹쳐본다.
괴로움, 죄책감, 고독감 모두. 나의 아픔과 너의 아픔까지도.
그 순간에는 조금 쓸어내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음껏 봤고 마음껏 좋아했다.
12월의 압구정 cgv의 온기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영화인들 틈에 끼어 12월 4일부터 7일까지, 4일간 출석했던 서울독립영화제. 2024년에는 또 어떤 좋은 영화들을 만나게 될까. 영화가 가진 힘을 믿으며 앞으로의 2024년도,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좋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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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한화이글스 : 클럽하우스> 메인 예고편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만년 꼴찌팀 한화이글스, 변화를 꿈꾸다! 한화이글스 리빌딩의 치열한 기록 왓챠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한화이글스: 클럽하우스〉 3월 24일 왓챠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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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라 브레아> 공식 예고편
어느 날 LA에 갑자기 생긴 미스터리의 싱크홀 때문에 헤어진 가족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