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글다2025-04-01 00:10:24
위선으로 변한 위로, 그리고 불쾌함
영화 <아노라>
<아노라>는 스트리퍼와 성매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인공 ‘아노라(마이키 메디슨)’가 클럽의 손님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과 결혼 후 끊임없는 반대에 휩쓸리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린 아노라는, 스트립 클럽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고 성매매가 불법인 한국에서도 강한 호불호를 보인다. ‘<서브스턴스>를 꺾은 제97회 칸영화제의 주인공답다’와 같은 긍정적이거나 ‘이게 왜 상을 받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부정적인 후기. 이 글에서는 후자의 부정적인 의견을 다루고자 한다.
4명의 노동자(아노라, 이고르, 토로스, 가닉)가 비노동자 ‘이반’을 찾으러 여정을 떠나는 표면적인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의 주제는 노동자이다. 그러나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감독 자신이 가진 남성적인 시선을 사용했다는 이 영화에서, 아노라는 노동자라기보단 지나치게 성적 대상화 되어 물건처럼 느껴진다. 이와 관련해서 <아노라>의 첫 장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영화는 팝 그룹 테이크 댓의 노래 ‘Greatest Day’와 함께 성매매하는 매춘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중 한 명인 아노라에게 다다르며 시작된다. 이때 스트립 클럽을 비추는 카메라의 무빙은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시킨다. 그 위에서 카메라를 향해 엉덩이를 들이밀고, 가슴을 강조하는 매춘부들은 소비해야 할 물건인 것이다. 성행위를 하는 아노라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면서 타이틀이 뜨는(아노라의 이름이 뜨는) 연출도 아노라가 상품이라는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의 시선으로 표현된 아노라의 단편적인 모습은 영화의 주제에도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 아노라가 4대 보험에 대해 언급하며 따지는 장면은 ‘성 노동자에게도 기본적인 보장이 필요하다’는 감독의 의도임에도 아무런 어필이 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외설적인 모습만 표현하기에 바빠 이를 이해시킬 서술 장치를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한 아노라의 모습은 당차다기보단 감독의 전작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모텔비가 오르자,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핼리’의 이기적인 모습과 오버랩되어 다가온다.
노동자 계급의 절망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션 베이커 감독 영화의 특징이 이번 영화에 잘 드러났는지는 의문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신데렐라 이야기의 현실적으로 바꾼 오마주를 다시 한번 가져온 듯한 <아노라>는 독창성은 물론 현실과도 멀리 떨어져 하나의 쇼로 남는다.
영화에서 보여준 감독 자신의 남성적인 시선은 ‘소비자의 시선’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는 변질되는 것이 당연히 예정되어 있었고, 처음의 위로는 위선이 되었다. 매춘굴에 관객을 강제로 앉히고 펼쳐지는 화려한 쇼, 그리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 이를 보게 되는 관객들의 불쾌함. 그리고 아노라 역의 마이키 메디슨 배우가 인터머시 코디네이터 없이 수위 높은 장면을 찍었다는 사실은 영화의 의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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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버스로 표현한 무한한 가능성
우리는 일상을 지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한다. 과거의 행동이나 모습, 현재의 행동이나 모습, 미래의 모습 같은 것들을 생각하며 때론 후회도 하고 또 잘 되었다는 생각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생각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생각들이 늘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다. 특히나 나 자신의 과거와 미래 상황에 대해서도 다양한 생각을 한다.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때, 그것을 선택한 나의 모습과 선택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과 머릿속에 그려지는 선택 이후 바로 그 순간의 모습이 결정된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마다 그런 크고 작은 결정을 하면서 지나간다.
그런 생각과 상상의 중심에는 현재가 있다. 우리가 결정했던 수많은 순간들을 지난 이후,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어떤 결과를 받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현재는 각자의 마음속에 아쉬움이나 뿌듯함 같은 감정을 심어놓는다. 만약 현재가 초라하다면 그동안 겪었던 많은 실패의 순간들을 후회하면서 지내게 될 것이다. 현재가 성공한 모습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결정을 하고 좋은 현재를 살고 있어도 그것에 다 만족하기는 어렵다. 현재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들, 감내해야 할 쓰디쓴 일들이 어떠한 형태로든지 우리 주변에 자리한다. 아마도 인생은 그런 쓴 삶의 모습도 감내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 기발하게 이야기하는 영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인생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인 에블린(양자경)은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고 변변치 않게 보이는 남편(키 호이 콴)과 딸(스테파니 수)을 책임지고 있다. 화면에 첫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무척 지쳐있고 웃음기가 없는 모습이다.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도 그렇게 좋지 않아 보이고, 딸과의 관계도 나빠 보인다. 남편은 아내 몰래 이혼 서류를 준비하고 있고, 레즈비언인 딸은 자신의 여자 친구를 정식으로 소개하고 연인관계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에블린 주변의 상황은 쓰디쓴 현재인 것 같아 보인다.
에블린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그는 경제적인 문제도 위태로운 상황이고, 가족인 남편과 딸과도 쉽게 좋아질 것 같지 않다. 그러니까 에블린은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 있는 상태다. 여기에 몸이 불편한 자신의 아버지까지 에블린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에블린이 짊어진 짐은 그가 느끼는 현재를 더욱더 우울하게 만든다. 세무조사 때문에 세무서에 가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는 기묘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무척 이상하지만 모든 것이 에블린 자신과 관련이 있다.
세무서에 같이 방문한 남편에게 다른 차원의 우주에 속한 남편이 들어가고 그의 몸을 이용해 에블린에게 말을 건다. 그는 다양한 우주에는 수많은 에블린이 있고, 완전한 악의 존재가 각 우주를 망가뜨리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에블린도 그런 차원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기술도 활용하고 쿵후도 배워 이상한 존재들과 대결해 나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에블린은 수많은 다른 에블린과 접속하고 그 삶을 본다. 지금의 남편과 헤어진 에블린, 쿵후를 배운 에블린, 가수가 된 에블린 등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주된 자신의 삶을 보면서 혼란스러워한다. 영화는 이어폰과 간단한 시각효과로 차원을 넘나드는 에블린의 모습을 무척 실감 나게 보여준다.
간단한 아이디어로 표현한 멀티버스
영화에서는 에블린이 보는 다른 우주의 다양한 자신의 모습과 각각의 일생을 멀티버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보여준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다른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의 모습, 지금의 직장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의 모습 같이 다양한 선택의 상황에서 다른 결정을 한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건 나 자신이 가졌던 수많은 가능성들이고, 현재 이후의 미래에도 수많은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과 다른 나의 모습은 수만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에블린이 보는 수많은 자신들의 모습은 다양한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한 가능성들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 잠깐잠깐 보이는 다른 우주의 모습은 에블린의 일이나 가족의 위치만 다를 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남편과 헤어진 에블린의 모습은 근사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회한의 감정이 느껴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세탁소 주인 에블린은 그 모든 가능성을 보면서 자기 자신 그리고 남편과 딸의 다양한 모습들을 돌아보게 된다.
이 영화가 훌륭한 건, 그런 에블린이 될 수 있었던 다양한 가능성들을 현실로 끌어와 액션과 코미디로 채워 넣었다는 것이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멀티버스를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절대악의 존재를 막아내려는 에블린의 시도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고 긴장감이 넘친다. 여기에 아주 철학적인 문제도 같이 던진다. 인생의 의미와 가족의 의미 같은 무척 심오한 이야기까지 끌어오면서 다양한 해석과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영화에서 에블린 자신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 그리고 딸의 관계도 무척 중요하다. 영화는 중반까지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후반부에는 딸과의 관계로 이야기를 전환한다. 이 영화의 빌런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한 딸은 모든 우주에서 엄마 에블린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학대에 가까운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딸은 엄마에게 도망치길 원하고 더 나아가 모든 자신과 엄마를 파괴하길 원한다. 마치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영화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이야기에서 결국 주도적으로 자신의 결정을 하는 건 바로 에블린이다. 에블린은 그 모든 가능성 한가운데서 현재를 어떤 식으로 봐야 하고 집중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꿰뚫는다. 영화는 분명 액션 장르의 껍질을 가지고 있지만 무척 섬세한 드라마가 속을 꽉 채우고 있다.
양자경의 훌륭한 연기와 따뜻한 드라마
에블린 역할을 맡은 배우 양자경은 그가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얼굴을 모두 다 보여주고 있다. 쿵후를 잘하는 에블린부터 노래를 잘하는 에블린,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와 아내의 얼굴을 모두 보여주는 그의 연기는 이 영화 안에서 가장 큰 에너지다. 그가 이야기를 이끌고 관객의 감정까지 이끌어내면서 완벽하게 이 영화를 에블린과 양자경의 영화로 만들고 있다.
영화는 다양한 가능성의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과거의 선택들과 미래에 해야 할 선택들에 너무 신경 쓰지 않고 현재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미래에 어떤 일이 있든 그리고 현재의 모습이 조금 초라하더라도 지금의 내 모습과 곁에 있는 존재들이 바로 나 자신을 만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양한 가능성에 접속하느라 멍하니 상상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영화는 깨어나서 지금에 집중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기발한 상상력과 따뜻함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무척 기발하면서 완성도도 높고 인상적인 작품이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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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계 거장 vs 이미지 세탁한 재벌 가문
8★/10★
사진계의 거장과 예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재벌 가문이 맞붙었다. 전자는 낸 골딘이고 후자는 제약회사 퍼듀 파마의 소유주인 새클러 일가다. 시작은 옥시콘틴이었다. 퍼듀 파마는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을 개발한 후 공격적 마케팅에 나섰다. 옥시콘틴의 중독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 약이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극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만 말했다. 나아가 불법과 편법의 경계에서, 종국에는 불법으로 점철된 공격적으로 영업을 이어갔다(이 과정은 넷플릭스 영화 〈페인 허슬러〉 참고). 그 결과는? 수십만 명이 옥시콘틴에 중독됐다. 지금까지 60만 명 이상이 옥시콘틴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추정된다. 낸 골딘 역시 과거 수술 후 옥시콘틴을 처방받았고, 중독되었다. 이에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 투쟁을 더욱 확장하기로 결심하고 직접 행동에 나선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두 번째 다큐멘터리,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이 싸움을 담아냈다.
퍼듀 파마를 만나기 이전부터, 낸 골딘의 삶과 예술은 이미 투쟁이었다. 낸 골딘의 언니는 ‘마음이 병들었다’는 부모의 판단 때문에 정신병원에 머물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언니의 진료 기록에는 그녀가 평범한 정도의 반항심을 가진 청소년이었고, 오히려 부모가 문제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언니는 죽었고, 골딘은 언니에게서 유쾌한 반항심을 배웠다. 골딘은 집에 있으면 ‘언니처럼’ 될 거란 우려에 부모님 집을 떠나 위탁 가정을 전전했고, 한 히피 학교에서 마침내 구원받았다. 이후 골딘은 게이, 드래그퀸 등의 친구들을 사귀며 퀴어 공동체에서 생활했고 스냅사진으로 친구들이 뿜어내는 삶의 생동감을 포착했다. 섹스보다 사진이 좋았을 정도로, 골딘은 사진에 심취했다. 메리 올리버와 마이클 커닝햄이 각각 《긴 호흡》, 《그들 각자의 낙원》에서 아름다운 산문으로 예찬한 바 있는 ‘게이들의 천국’ 프로빈스 타운의 레즈비언 분리주의자 공동체 일원으로 지내기도 했다. 보수적 가족의 억압이 역설적으로 그녀를 동시대의 가장 급진적인 예술/사회/문화 공동체로 이끈 셈이다. 이후에는 필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댄서, 성노동자 등으로 일했고 그녀의 사진이 품은 탈규범적 생명력의 예술적 가능성을 알아본 한 큐레이터에 의해 마침내 정식으로 예술계에 발을 디뎠다(골딘은 큐레이터에게 지금껏 작업한 사진을 모은 박스를 옮기기 위해 택시 기사에게 오럴 섹스를 해줬다고 고백한다.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작업을 이어왔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데뷔 이후에도 녹록지 않았다. 남자친구와의 섹스 장면 등 그녀가 살아가는 일상의 생기를 포착한 사진은 조롱받았고, 기성 예술계의 인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때문에 투쟁으로서의 삶/예술도 이어졌다. 영화는 골딘이 미국의 에이즈 위기 당시 급진적 에이즈 운동을 벌인 단체 액트업과 함께 작업한 장면을 특히 자세히 비춘다. 정부의 무관심과 방치로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던 에이즈 감염인들과 당사자들이 벌이는 저항 운동은 퀴어 공동체에서 예술을 길어온 골딘이 옥시콘틴 중독자 당사자로서 퍼듀 파마와 싸우는 데 결정적 영감을 주었을 터다.
영화는 골딘의 삶/예술 여정과 퍼듀 파마를 상대로 한 현재의 싸움을 번갈아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 장면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다. 미술관 내 새클러관에서 골딘과 동료들은 퍼듀 파마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새클러관은 새클러 일가가 엄청난 돈을 예술계에 후원한 대가로 설치된 곳으로, 메트로폴리탄뿐 아니라 구겐하임, 루브르, 대영박물관 서구의 유수한 미술관‧박물관에 널리 퍼져 있는 상태였다. 그만큼 예술계에서 새클러 일가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문제는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느냐는 거다. ‘예술에서 후원자의 존재는 필수적인가’라는 물음에는 여러 입장이 있지만, 어쨌든 지금껏 예술에 늘 ‘큰손’ 후원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돈이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결과라면, 수많은 사람이 마약성 진통제로 고통받은 결과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문자 그대로 죽음을 대가로 한 돈으로 예술을 후원해 사회적 명성을 쌓는 일은 예술-후원의 문제가 아니라 포괄적 사회 정의의 문제다. 낸 골딘은 예술이 가장 더러운 돈을 위장하는 데 쓰이는 일을, 자신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의 삶을 모욕한 제약회사의 전시관에 자기 작품이 전시되는 일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퍼듀 파마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질 것을, 무엇보다 예술계가 새클러 일가와 그의 영향력을 완전히 퇴출할 것을 요구하며 긴 싸움을 펼쳐나간다.
골딘이 속한 P.A.I.N(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 즉각적인 처방약 중독 개입)은 새클러관이 있는 여러 미술관을 두루 순회하며 행위 예술, 저항 운동을 전개하고 마침내 예술계에서 새클러 일가의 이름을 걷어내는 데 성공한다. 저명한 사진 예술가로서 쌓아온 명성과 추구해온 예술적 가치를 결합한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물론 이 승리는 부분적이다. P.A.I.N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 활동가, 당사자의 싸움으로 퍼듀 파마는 파산했고, 새클러 일가는 60억의 합의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많다. 회사 파산으로 책임을 면피하고, 합의금으로 수천 건의 소송을 취하시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부분적인 승리가 감동적인 이유는, 낸 골딘의 싸움이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상적인 답변을 내놓아서다. 예술에는 후원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예술은 늘 후원자의 의도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낸 골딘이 그랬듯 예술과 정치를 도드라지게 결합할 수도 있고,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는’ 작품이라도 누군가의 내면과 사회의 심연에 근본적인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게 예술은 종종 예기치 못한 변화의 씨앗이 되거나 그 변화의 징후를 표상한다. 예술의 정치성을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예술이 최소한 기업가의 이미지 세탁보다는 더 정치적이라는 점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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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성 감독의 새로운 시도, 관객에겐 이질적인 시도
다시 또 혼자
뚜벅뚜벅 걷는 길. 수혁에게 혼자는 낯선 것이 아니다. 정확히 딱 10년 만에 나왔다. 만기출소일. 누군가가 두부를 들고 교도소 입구 기다렸으면 했지만 수혁에게 혼자는 익숙하다. 가족? 딱히 없다. 조직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헌신했지만 돌아오는 건 쓸쓸한 수혁 그 자체였다. 혼자 차를 탄다.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타인에게 충성하는 것이 질렸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찾아가는 수혁.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지만 수혁에게 민서는 냉담하다.
민서의 냉담한 반응은 당연하다. 갑자기 민서의 곁을 떠났던 수혁.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가 수혁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든다. 하지만 아프기만 한 건 아니다. 수혁을 어떤 사람에게 데려가는 민서. 민서와 수혁에겐 딸이 있었다. 발레를 배우고 있는 인비. 수혁에게 많은 것이 떠나갔지만 이것만은 지키고 싶었다. “인비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 됐다 싶으면 돌아와” 지금 당장 수혁이가 딸 인비에게 가기엔 마음에 걸리는 것이 너무 많다. 조금씩 시작하면 되겠지. 평범한 삶을 다시 꿈꾸는 수혁.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전에 일했던 조직에서 그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과연 수혁은 응국과 성준을 피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난 응원했어
지금의 충무로를 생각할 때 ‘정우성’이란 이름은 어느 정도 과소평가 된 감이 있다. <비트>라는 영화로 일약 청춘스타로 등극한 정우성. 지난 몇 년 동안 정우성이라는 이름은 해사하게 빛나던 청춘이었다. 정우성이 갖고 있는 청춘스타로서의 카리스마는 많은 작품에서 시너지를 냈다. 이 청춘스타로서의 이미지가 데뷔 이후부터 꾸준했던 탓에 이 배우를 두고 연기력 논란이 일부 있었다. 실제로 정우성 배우의 퍼포먼스가 아쉬웠던 작품이 몇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성수 감독의 <무사> 같은 영화를 보면 이 사람이 갖고 있는 톤이 변화가 없다. 캐릭터의 입체성이 잘 느껴지지 않았던 아쉬운 퍼포먼스였다. 비교적 최신작인 <아수라>에서는 욕하는 대사가 많았다. 이 영화에서 정우성 배우가 나쁘지 않은 감정연기를 보여주는 것과는 별개로 욕설 대사가 어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후에 <증인>이나 <헌트>로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긴 했다. 그동안 정우성이라는 배우는 액션 연기만 뛰어나지 예술가로서, 연기자로서는 호불호가 갈렸다.
정우성 배우의 필모그래피 중 좋은 연기를 보여준 작품 많았다. 일례로 <증인>에서의 변호사 연기로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으로 수상한 바가 있다. <아수라>에서도 이야기의 템포를 황정민, 곽도원 두 배우가 끌고 간다. 광기 어린 에너지가 영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아수라>. 두 베테랑에 밀리지 않게 한도경이라는 역할을 잘 수행한다. 욕설이 어색하다는 지적도 오히려 그 영화의 톤 앤 매너에 어울렸다. ‘강철비’ 시리즈에서의 연기는 두 캐릭터가 정반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어디에 방점을 둬야 할지를 분명히 조준한 퍼포먼스였다. 정우성 배우는 최민식, 송강호 배우처럼 화려하게 테크니컬 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연기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객관적인 능력치가 있어서 그걸 매 작품마다 일정치만큼 보여주는 건 불가능하다. 정우성 배우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와 카리스마가 있다. 그리고 그 카리스마를 가장 뛰어난 액션연기로, 또 마스크로 소화한다. 이런 점에서 정우성 배우는 좋은 배우다. 최근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나 <헌트>에서 연기자로서의 역량도 뛰어났다.
이 정우성 배우가 이번 작에서는 연출을 맡았다. 정우성 배우에 관련한 자료들을 찾아보면 이 분이 오래전부터 연출에 욕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감독 정우성’에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이정재’의 <헌트>다. 이정재 감독이 처음 메가폰을 잡아 칸에 초청됐다는 기사가 나올 때도 (글쓴이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 말고 감조차 잡기 어려웠다. 뚜껑을 열어본 <헌트>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장르적으로 피 말리는 액션/스릴러물이다. <헌트>가 손익분기를 넘김에 따라 다음 해에 <보호자>가 개봉한다는 사실에 시선이 집중됐다. 정우성 감독이 그 나름대로 만들 액션스타로서의 장르물이 기대됐기 때문이다. 유수의 국제문화제에 초청받았던 것과는 별개로 이 작품이 정우성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캐릭터들의 퍼포먼스도 훌륭했다. 그에 상응하는 단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정우성의 필모그래피
이 영화는 캐릭터로 승부하는 영화다. 일반적으로 빌런 vs 주인공의 대결구도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다. 한 명의 주인공이 나머지 악당 무리를 상대한다. 이 대결구도는 지난 5월에 개봉했던 <범죄도시 3>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 마석도와 주성철, 리키가 각자 대립하며 극에서 서스펜스를 부여한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에서도 두 스파이더맨이 등장하지만 다른 빌런들도 그에 상응하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린 고블린’이 영화의 메인 빌런이면서 ‘닥터 옥토퍼스’가 입체적인 캐릭터를 맡은 것이 극의 이야기를 이끄는 좋은 선택이었다. 이 영화는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과 <범죄도시 3>이 취했던 연출 방식과 유사한 태도를 취한다. 주인공 수혁과 대립하는 빌런은 네 명이다. 우진/응국/진아/성준이다. 이 네 명의 캐릭터들은 영화에서 나름의 입체성을 부여하기도 하고 스스로 치고받고 갈등도 일으키며 이야기의 중심으로 기능한다.
이 빌런 캐릭터들을 다수 등장시켜 캐릭터에 개성이 분명하다는 점은 영화의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이 인물들이 어디서 다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것은 오히려 단점처럼 느껴진다. 캐릭터를 다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응국은 ‘끝판왕’, 성준은 자격지심, 진아는 외유내강, 우진은 광기다. 각자 다 다른 톤으로 연기한다. 이 각기 다른 개성들은 정우성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봤던 것들이다. 응국과 성준은 <아수라>에서, 진아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나 <감시자들>에서, 우진은 <태양은 없다>에서다. 이 위에 나왔던 영화에 등장한 인물들의 내면 묘사가 본작에 이어진다. <헌트>가 견지한 처절함이 이야기의 개성이 되는 것과는 구분된다. 이렇게 기원과 결말이 어디에 향할지 예상이 된다는 점은 신선하지 않은 영화 대사들 덕에 더 두드러진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 인물이 ‘이런 대사를 할 것 같아’라고 예상하게 되는데, 타율이 낮지 않다. 이렇게 인물이 핵심이 되어 자기들끼리 싸우고 화해하고 이야기를 이끌어야 할 캐릭터들이 식상해진다는 점에서 이야기에 누수가 생기는 이유가 된다.
액션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이 영화가 액션영화로서 장르에 충실한가? 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이 영화는 액션영화이자 누아르영화다. 후자 ‘누아르영화’적인 측면은 박성웅 배우가 제 몫을 해 장르 구색을 맞춘다. 누아르영화 특유의 끈적하지만 처절한 분위기가 작품 내면에 잘 깔려있다. 더 큰 문제는 무려 정우성이라는 액션스타가 주인공이자 메가폰을 잡았음에도 장르적인 쾌감이 덜하다는 점에 있다. 이 영화 자체의 액션 시퀀스들은 아이디어가 빛난다. 이 장면 자체는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왔다. 하지만 이 장소의 특성과 이 도구를 활용했다는 점이나 이후 인물 대 인물의 액션신은 충분히 영화 내적으로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구성을 보면 이 액션이 영화에서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서사에서 이 액션 신들을 장르로서 보여줘야 하니까, 숙제로 풀어야 하니까 넣었다. 똑같이 정우성 배우가 출연한 <헌트>에서 5 공화국 시절 자유에 대한 갈망을 처절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박력이 극의 서스펜스가 된다는 점이 대비되니 더 단점으로 느껴진다. 액션은 좋다. 그런데 ‘액션 만’ 좋다. 이 예술은 서사라는 영화라는 종합예술이다.
또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신을 보면 이 작품의 기획의도가 궁금해진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 ‘기대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쓴다면 후반부 전개의 핵심이 되기 때문에 자세히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시퀀스들의 구성이 영화 전체적인 흐름과 어긋난다. 영화 전체적으로 누아르, 액션물이라고 초반부부터 드러내고 있다. 그럼 적어도 그대로 가는 게 좋지 않았을까? 전개 흐름이 이 그대로라면 이 영화가 굳이 주인공이 수혁일 이유가 없다. 반대로 우진-진아 커플이 광기에 찬 인물일 필요도 없지 않을까? 응국 캐릭터는 영화에서 이렇다 할 위기를 주지 않는다. 이 영화의 구멍을 각본 스스로가 이미 만들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단순히 몇 이미지만을 피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 영화가 액션물로 기획됐다면 감독님의 판단 착오라고 보인다. 진부한 이야기가 후반부액션에 힘이 들어가면 분명히 영화가 가진 장점이 됐을 것이다. 영화의 기획력에 아쉬움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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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 우리 안의 특별함을 깨닫는 신호
뉴저지주 패터슨에 살고 있는 패터슨(애덤 드라이브)은 어김없이 오전 6시 눈을 뜬다.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직장인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직장으로 향하는 도중엔 아침에 본 성냥갑에서 받은 영감으로 시를 구상한다. 사실 패터슨은 버스기사이자 시인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중에 그가 시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내인 로라(골시프테 파라하니)뿐이다. 로라는 패터슨이 언젠간 위대한 시인이 될 거라 굳게 믿지만 자신을 드러내기 꺼리는 남편의 모습에 답답해한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내고야 마는 로라의 성격으론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오늘도 반려견인 마빈과 밤 산책을 마친 후 돌아온 패터슨은 다음 날을 준비하며 잠자리에 든다.
<패터슨>은 참 굴곡이 없는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패터슨이라는 평범한 개인의 하루가 7번이나 반복돼서 나열되니 굴곡이라는 것이 없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루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다. 짐 자무시는 같은 인물의 하루를 극한으로 파고들어 간다. 한 우물만 파는 것만큼 지겨운 것은 없고 영화에서 지겨움만큼 힘겨운 적(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면 자무시 감독이 남겨 놓은 평범한 개인의 삶에 담긴 ‘특별함’을 만날 수 있다.
흔히 우리는 특별함이란 TV나 유튜브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정작 자신은 평범하다고 주장한다. 패터슨의 본업은 평범한(?) 버스기사다. 하지만 그의 비밀 노트엔 여느 시인들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시들로 가득하다. 아내인 로라만이 패터슨의 특별함을 알고 끊임없이 격려한다. 하지만 패터슨은 아내의 칭찬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 또한 아내의 꿈에 진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로라의 꿈은 일주일 동안 여러 번 바뀐다. 컵케이크 집 사장에 기타리스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인테리어 업자까지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매번 바뀌는 로라의 산만한 모습에 패터슨은 언제나 의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지만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의심이 무색하게 행동의 결과를 내는 것은 언제나 로라다.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기타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자신이 맛없어 남긴 컵케이크는 대박이 났다. 패터슨은 영화 속에서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지만 로라를 향한 그의 표정에서는 시기와 질투가 보인다.
분출되지 못하는 패터슨의 감정은 반려견 마빈을 통해 드러난다. 패터슨과 마빈은 사이가 안 좋다. 산책을 가도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은 기본이고 집 안에선 자리를 놓고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갈등이 펼쳐진다. 이는 이성과 본능의 충돌을 패터슨과 마빈의 모습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양분된 패터슨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은 세탁소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래퍼를 만났을 때다. 노랫소리를 따라간 세탁소에서 패터슨은 문 뒤에 숨어 조용히 노래를 듣지만 마빈은 래퍼 앞에서 대놓고 자신을 드러낸다. 장소에 상관없이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는 래퍼를 향한 두 캐릭터의 상반된 태도를 통해 이성과 본능을 재치 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를 놓고 보면 마빈이 패터슨의 비밀 노트를 찢어버린 것은 어느 정도 그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패터슨은 복사본을 원하지 않았다. “번역본을 만드는 것은 우비를 입고 샤워를 하는 기분”이라고 말한 일본 시인의 말에 공감하는 패터슨의 모습으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패터슨은 스스로 시인보다는 버스기사라고 생각한다. 버스기사는 시인이 될 수 없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 시인과의 대화를 통해 위대한 예술가들은 현재 기억되는 것과 다른 과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본 시인이 반복하는 ‘아하!’는 평범함에 빠져 확신을 갖지 못하던 패터슨에게 자신이 지닌 특별함을 상기시켜주는 신호인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한 번쯤은 자신을 평범하다고 소개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으로 통일하지 않고 홀로 짬뽕을 시키는 것조차 튀는 행동으로 간주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범함이 지나치면 참된 자신의 모습은 점점 잊혀지기 마련이다. 스스로 평범함의 늪에 빠져 자신을 잃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짐 자무시 감독은 <패터슨>으로 꺼지지 않는 열정이 있다면 누구나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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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그들의 손에서 내일이 태어난다
- Summary‘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인 조산사가 되기 위한 5년간의 교육을 마친 루이즈와 소피아. 두 사람은 마침내 모성, 때때로 죽음까지 다루는 조산사의 현장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들은 과연 이런 폭풍 같은 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까? (출처: 서울국제여성영화제)Cast감독: 레아 페네르출연: 카디자 쿠야테, 엘로이즈 장조, 미리엠 아케디우 외낯선 세계와의 조우는 언제나 신비롭습니다. 고귀한 탄생의 순간도 신비하기로는 못지않죠. 그럼, 출산을 돕는 조산사들의 삶을 담은 영화는 얼마나 신비로울까요? 레아 페네르 감독은 첫 아이를 낳을 때 곁에서 출산의 고통과 탄생의 기쁨을 제 일처럼 함께해 준 조산사들에게 깊은 감명을 얻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조산사의 세계를 조명한 영화 <조산사들>을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만났습니다.⊙ ⊙ ⊙<조산사들>은 신입 조산사 '루이즈'와 '소피아'의 이야기입니다. 바쁨에 형체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분만실은 정신없이 흘러갑니다. 분만실에 들어오는 산모들은 족족 '응급'. 조산사들은 화장실에 가거나 식사할 틈도 없이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니며 산모와 곧 태어날 아기를 보살핍니다.조산사들은 산모에게 방을 배정하고, 진통을 완화하는 마취 주사를 놓고, 고통을 줄여주는 호흡법을 안내하고, 원활한 출산을 유도하고, 활력 징후가 보이지 않는 위급 상황의 아기를 긴급하게 조치하는 업무를 수행합니다. 생과 사, 고통과 기쁨의 한가운데서 세상 밖으로 나온 내일의 생명을 맞이하는 것이 바로 조산사들의 소명이죠.바쁘고 번잡스러운 와중에도 그들은 산모와 가족에게 따뜻한 안심의 말을 건네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선배 조산사 '베네딕트'는 신입 조산사 '루이즈'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는 안심을 줘야 해."⊙ ⊙ ⊙<조산사들>은 러닝타임의 상당 시간을 업의 현장을 묘사하는 데 할애합니다. 극영화인데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노력하죠. 출산을 앞둔 산모의 동의를 얻어 진짜 아기를 출산하는 장면도 여럿 담아냈습니다. 실제 출산의 현장을 포착한 덕분에 산모의 고통, 탄생의 전율, 모성의 분출, 조산사의 직업의식이 관객에게 더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었죠.이렇게 사실적인데,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의 형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때로는 픽션이 다큐멘터리보다 더 강력한 진정성을 전달할 때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실제 현실을 반영하고, 이야기 속 인물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 군상의 일면을 극대화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이를 통해 좋은 이야기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현실을 더 효과적으로 알립니다.이 작품 역시 그러한 면에서 좋은 이야기입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산모와 아기를 죽일 뻔한 이후,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소피아'. 종종 실수를 저지르는 신입 조산사지만, 산모와 아기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성장해 가는 '루이즈'. 산모와 아기를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조산사의 업무 현실에 회의를 느끼는 '베네딕트'. <조산사들>의 인물들은 조산사 한 명당 세 명꼴로 산모를 맡는 높은 업무 강도를 버텨내야 하는 고된 현실, 그런 상황에서도 산모와 아기를 누구보다 배려하는 조산사의 투철한 직업 정신을 효과적으로 투영합니다. 픽션의 형식을 빌려 출산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버티고 나아가는 조산사들의 삶을 조금 더 세밀하게 그려낸 것이죠.⊙ ⊙ ⊙극중 조산사들은 의사와 간호사 사이에서 출산에 전문성을 가진 직업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아기를 낳기에 조산사의 존재 자체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조산사는 있습니다. 다만, 간호사와 그 역할이 혼재되고, 나날이 떨어지는 출생률로 인해 그 수가 매우 적을 뿐이죠. 2023년에 조산사가 된 사람은 고작 8명에 그쳤다고 합니다.영화의 내용이 우리나라의 현실과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지만, 견주어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를테면 소아청소년과의 폐과입니다. 조산사가 생명의 탄생이라는 거룩한 순간에 함께하는 것에 행복과 기쁨을 느끼며 그 밖의 힘듦을 이겨내듯이, 저출생 경향이 심해지는 상황에서도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한 의료진들은 아이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 하나로 그 길을 걸었을 겁니다. 그러나 소명 의식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낮은 수가, 전문 인력 부족 등의 문제가 곪아 터지면서 결국 폐과의 길에 들어서고 말았죠.<조산사들>은 산모 한 명을 더 제대로 보기 위해 시위에 나서는 조산사들의 모습으로 끝맺습니다. 조산사들은 "환자를 제대로 대하게 해줘!"라는 팻말을 들고 거리에 나서죠. 이런 모습에서는 자긍심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업무 환경의 고충을 호소하는 우리나라 교사들의 모습이 엇비쳐 보이기도 합니다.⊙ ⊙ ⊙낮은 출생률이 지속되는 국가에서 감히 조산사, 산부인과 의료진,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일 겁니다. 영화 <조산사들>을 내일의 세상을 위해 애쓰는 직업인들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요?Schedule in SIWFF2023.08.27(일)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1관 13:002023.08.29(화)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관 14:30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간: 08월 24일 - 0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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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서치
더 서치
체첸을 침략한 러시아 군인의 만행과 체첸 사람들의 고통, EU 인권위원회 조사원의 이야기를 엮은 영화. 영화의 배경은 2차 체첸전쟁이지만, 이야기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1차 체첸전쟁에 관해 먼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체첸공화국'은 아직 정식 국가가 아니어서 지도에 표기되어 있지 않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조지아 공화국,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이 러시아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체첸공화국은 조지아와 국경을 맞댄 러시아 영토의 작은 부분이다. 인구도 적어서 불과 130만 명 정도이고 인구 대부분이 이슬람을 믿고 있다. 이들의 종교로 알 수 있듯이, 체첸인은 과거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속했었는데, 1830년 이후 러시아군이 오스만트루크와의 분쟁을 이유로 체첸 지역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1859년, 러시아 제국에 강제 병합되었다.
체첸인은 비록 소수민족이지만, 이 지역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고, 그 역사는 무려 6천년이 넘는다고 한다. 주로 유목 생활을 하며 살았고, 소수민족이어서 이들이 독립국가를 만들 기회와 힘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발발하고, 러시아연방공화국(쏘비에트)가 탄생하면서 체첸도 쏘련연방의 자치공화국이 되었다. 이후 1991년, 쏘련 연방이 붕괴하면서 1993년, 새로운 연방법에 근거해 '체첸 공화국'이 되었다.
쏘련 연방이 붕괴하기 직전인 1991년, 체첸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람은 전 쏘련군 장군인 조하르 두다예프였다. 그는 체첸공화국 독립을 선언했지만 곧바로 내전에 휩싸인다. 체첸에는 독립 지지 세력과 친 러시아 세력이 갈등을 일으켰고, 이들이 내전을 일으킨 것이다. 이 내전을 계기로 러시아는 체첸에 병력을 보내게 되고, 이것이 1차 체첸전쟁의 시작이다.
1994년, 러시아는 체첸을 침공한다. 러시아 입장에서 체첸은 발가락의 때만큼도 안 되는 작은 지역이고, 군대를 보내면 곧바로 싸우지도 않고 승리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1차 체첸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한다. 이와 관련한 영화로 '연옥', '전쟁' 등을 참고할 수 있다.
1차 체첸전쟁에서 러시아군은 약 9만5천여 명이 참전했고, 체첸군은 4만명 정도였다. 러시아가 체첸을 얕보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러시아군은 6천 명 가까운 전사자가 나왔고, 체첸군은 훨씬 많은 1만 5천명 정도가 전사했다. 하지만 이보다 체첸 민간인이 약 10만 여명 사망한 것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전쟁은 1996년까지 이어졌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고, 러시아군이 철수한 것으로 미루어 체첸군의 승리라고 해도 좋은 전쟁이었다.
2차 체첸전쟁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저지른 테러로 촉발되었으며, 1999년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이 다게스탄 공화국 국경을 침범하고, 러시아 영토에서 테러를 저지르자 러시아군은 1999년 9월 23일, 체첸을 공격했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시기, 1999년 가을, 러시아군이 체첸을 습격한 이후의 상황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크게 세 줄기로 나뉘어 흘러가는데, 아홉살 소년 하지, 러시아군인 니콜라이, EU 인권활동가 캬홀의 이야기가 서로 맞물린다.
러시아 군인들이 체첸인을 심문하고 있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평범한 주민에게 테러범이라며 시비를 걸던 러시아 군인이 갑자기 총으로 두 사람을 살해한다. 그리고 젊은 여성을 끌고 사라진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한 러시아 군인의 비디오 카메라에 담긴다.
아홉살 하지는 집안에서 창문을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본다. 부모님이 러시아 군인의 총에 맞아 죽고, 누나는 어디론가 끌려갔다. 집에는 갓난 동생만 있을 뿐이다. '하지'의 상황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우리도 내전을 겪었고, 하지와 같은 수만, 수십만 명의 어린이가 불행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는 갓난 동생을 안고 집을 떠난다. 하지만 그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한다. 길을 걷다가 러시아 군인이 보이면 몸을 숨긴다. 공포와 두려움이 그를 사로 잡고 있는 것이다. 동생을 돌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하지는 어느 집 앞에 동생을 내려 놓고 떠난다.
니콜라이는 러시아의 평범한 청년으로, 사소한 일로 경찰에 체포된 후 강제로 입대한다. 군대는 기본적으로 폭력조직이고, 폭력적인 인간들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니콜라이처럼 어리고 순진한 청년이 군대에서 당하는 폭력은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자신도 폭력적 인간으로 변하는 것이다.
니콜라이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한 청년은 결국 자살한다. 부대장은 자살한 신병의 죽음도 '전투 중 사망'이라고 거짓 보고를 하는데, 이런 거짓과 기만, 폭력은 러시아 군대의 일상이다. 니콜라이는 전투 중 사망한 군인을 옮기고, 사망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다 전투요원으로 전출되어 체첸으로 향한다.
그 사이 니콜라이는 선임병들에게 심하게 폭력과 모욕을 당하고, 이런 경험으로 니콜라이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캬홀은 EU 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난민대피소로 몰려드는 체첸인을 대상으로 그들이 러시아군인에게 당한 폭력을 기록하고 있다. 전쟁범죄는 시대를 불문하고 군인보다 민간인에게 더 참혹하고 잔인한 피해를 안긴다. 전쟁은 인류가 가진 폭력성, 야만성, 악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현상이며, 원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쟁은 인간을 가장 참혹하게 만든다.
캬홀은 그런 전쟁범죄를 기록하고, EU 인권위원회에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하지만, 정작 각 나라의 대표들은 캬홀이 말하는 심각한 전쟁범죄를 듣는둥 마는둥 하는 태도를 보인다. 전쟁은 결국 강자의 논리대로 흘러가고, 인권을 부르짖어도 그것은 형식적인 과정일 뿐이라는 걸 보여준다.
캬홀과 하지는 우연히 만나 함께 지낸다. 그리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하지의 누나는 살아서 돌아와 하지가 어떤 집에 놓고 간 막내를 찾고, 하지를 찾아 나선다.
체첸은 러시아에서 분리독립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전쟁에 휘말렸다. 그들의 명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소수민족이 겪는 슬픔과 고통이 독립한다고 사라질 것이며, 독립이 원하는대로 될 것인지, 현실적인 상황과 해법을 고민해야 하는데, 체첸 지도부는 분명 이 점에서 성급했다.
결국 수십만 명의 체첸인들이 죽거나 다치고,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으며 잊을 수 없는 비극의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체첸의 경험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다 겪었던 역사였고, 지금도 분단된 민족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체첸의 고통을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우리는 남북한이 대치하고, 항상 전쟁의 위협 속에 살지만, 결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전쟁을 하는 순간, 남북한은 공멸하고 주변국들만 박수를 치며 좋아할 것이다. 체첸처럼 소수민족들이 세계에는 많고, 그들의 고통과 고난은 쉽게 끊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소수민족은 아니지만, 약소국가에서 이제 조금씩 힘을 갖춰가고 있다.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힘을 길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영화는 그나마 희망을 말하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겪은 그들에게 미래는 희망보다는 슬픔과 아픔이 더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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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8] 살인자와 몸이 바뀌었다구? 내 몸으로 살인을 하고 있어!
해피데스데이 1편과 2편의 감독이 새로운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프리키 데스데이라는 영화로 지난 영화들과 비슷하게 코믹호러에 드라마적인 요소도 가미가 되어 있는 영화에요. 전작들과 코드가 맞았던 분들은 관람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잔인하고, 적당히 웃겨서 너무 타협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들을만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적정 수준의 재미를 보장하고 있어요.
여주인공 릴리 역을 맡은 캐서린 뉴튼이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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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흩어진 밤> 메인 예고편
“그냥 같이 살면 안 돼?”
갑자기 집에 찾아드는 낯선 사람들.
엄마와 함께 공부에 집중하는 오빠.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아빠.
그리고 원치 않게 떠맡게 된 힘든 선택.
어둠 속에서 흩어지는 마음들을 바라보는 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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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생각의 여름> 런칭 예고편
뒹굴뒹굴 무기력증에 빠진 시인 지망생 ‘현실’.
공모전에 내야할 마지막 시가 데굴데굴 산으로 가자,
새로운 영감을 찾아 집을 나선다.
시가 산으로 가면, 산으로 가는 게 답?
‘현실’은 생각의 여름 속에서 집 나간 영감도 찾고,
호구 잡힌 자신도 찾을 수 있을까?
남다른 현실의 한여름 기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