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글다2025-04-01 00:10:24
위선으로 변한 위로, 그리고 불쾌함
영화 <아노라>
<아노라>는 스트리퍼와 성매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인공 ‘아노라(마이키 메디슨)’가 클럽의 손님 ‘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과 결혼 후 끊임없는 반대에 휩쓸리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린 아노라는, 스트립 클럽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고 성매매가 불법인 한국에서도 강한 호불호를 보인다. ‘<서브스턴스>를 꺾은 제97회 칸영화제의 주인공답다’와 같은 긍정적이거나 ‘이게 왜 상을 받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부정적인 후기. 이 글에서는 후자의 부정적인 의견을 다루고자 한다.
4명의 노동자(아노라, 이고르, 토로스, 가닉)가 비노동자 ‘이반’을 찾으러 여정을 떠나는 표면적인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의 주제는 노동자이다. 그러나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감독 자신이 가진 남성적인 시선을 사용했다는 이 영화에서, 아노라는 노동자라기보단 지나치게 성적 대상화 되어 물건처럼 느껴진다. 이와 관련해서 <아노라>의 첫 장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영화는 팝 그룹 테이크 댓의 노래 ‘Greatest Day’와 함께 성매매하는 매춘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중 한 명인 아노라에게 다다르며 시작된다. 이때 스트립 클럽을 비추는 카메라의 무빙은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연상시킨다. 그 위에서 카메라를 향해 엉덩이를 들이밀고, 가슴을 강조하는 매춘부들은 소비해야 할 물건인 것이다. 성행위를 하는 아노라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면서 타이틀이 뜨는(아노라의 이름이 뜨는) 연출도 아노라가 상품이라는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의 시선으로 표현된 아노라의 단편적인 모습은 영화의 주제에도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 아노라가 4대 보험에 대해 언급하며 따지는 장면은 ‘성 노동자에게도 기본적인 보장이 필요하다’는 감독의 의도임에도 아무런 어필이 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외설적인 모습만 표현하기에 바빠 이를 이해시킬 서술 장치를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한 아노라의 모습은 당차다기보단 감독의 전작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모텔비가 오르자,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핼리’의 이기적인 모습과 오버랩되어 다가온다.
노동자 계급의 절망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션 베이커 감독 영화의 특징이 이번 영화에 잘 드러났는지는 의문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신데렐라 이야기의 현실적으로 바꾼 오마주를 다시 한번 가져온 듯한 <아노라>는 독창성은 물론 현실과도 멀리 떨어져 하나의 쇼로 남는다.
영화에서 보여준 감독 자신의 남성적인 시선은 ‘소비자의 시선’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는 변질되는 것이 당연히 예정되어 있었고, 처음의 위로는 위선이 되었다. 매춘굴에 관객을 강제로 앉히고 펼쳐지는 화려한 쇼, 그리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 이를 보게 되는 관객들의 불쾌함. 그리고 아노라 역의 마이키 메디슨 배우가 인터머시 코디네이터 없이 수위 높은 장면을 찍었다는 사실은 영화의 의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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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디어 조이, 디어 재클린
편지로 영화 리뷰를 써보기는 처음입니다만, 당신들의 이름을 꼭 부르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이 <고독의 지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명명해 주었듯이.
우선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대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감히 추측해보자면 수상이 당신들의 일과에 큰 변화를 줄 것 같지는 않아요. 조이는 여전히 매일 세이블 섬의 해안에서 죽은 새를, 말똥을, 쓰레기를, 물범을 살피겠죠. 재클린 당신도 어디선가 내가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끌어내고,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담아내며 작업을 계속할 같습니다. 우리 셋(이라고 묶어도 된다면) 중 이런 소식에 연연하는 사람은 저뿐일 것 같네요. 이 영화와 가장 무관한 사람인데 말이죠...
하지만 한 관객으로서, 이 이야기가 더 멀리 퍼져 나가길 바라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고 무작정 주장해 봅니다. 아무튼 기뻐요. 결과를 예상하고 예매한 건 아니었지만요. 뭐가 경쟁 부문인지 아닌지도 신경 쓰지 않고, 저의 일정과 영화에 붙은 짧은 소개글만을 보면서 영화를 고르거든요. 참고로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당신들의 영화는 한국어로 이렇게 소개되었습니다. 한번 보세요.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해역의 외딴곳, 세이블 섬에 두 여성이 있다. 환경 보호 활동가인 조이 루커스는 1970년대에 처음 이 섬에 당도했을 때 미술학도였다. 조이가 이 가느다란 땅에서 지낸 세월은 벌써 수십 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왔다."
"70년대 미술을 공부하던 조이 루커스는 캐나다 세이블 섬을 방문하고, 이후 그곳에 거주하기로 결정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섬의 식물과 동물을 연구하는 데 쓰고 있다. 카메라는 조이의 일상을 따라가며 섬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곳을 배회하는 야생마들을 비춘다. <고독의 지리학>은 감독과 그의 관찰 대상인 루커스의 삶과 작업에 대한 철학을 내포한 작품이기도 하다. 물질적 가치와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일에 대해 장인 못지않은 헌신적인 태도로 임하는 이들의 모습은 세상사와 관계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면서 기쁨을 찾는 두 여성의 행복감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비록 이런 삶이 외로움을 동반한다 하더라도 이는 진정한 예술가의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문성경]"
노바스코샤는 제가 사랑하는 빨간 머리 앤의 출생지예요. 프린스 에드워드 섬 에이번리 마을은 그가 자란 곳이고, 부모님이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기 앤은 노바스코샤에 있었죠. 게다가 야생마라니. 저로서는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말과 책만 있으면 된다고, 그렇게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던 사랑스러운 십대 시절의 그를.
내 어딘가가 잘못된 게 아닐까 스스로를 불안해한 적이 있고, 책을 좋아하며, 꿈이 많았던 여자아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앤과 조 마치를 그려봅니다. 저 또한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직도 사회가 기대하는 "삼십대 여성"의 삶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더 가깝게 느껴요. 그래서 그들을 연상시키는 단어에 끌렸고, 이어 당신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당신은 왜 그 섬에서, 왜 그 연구를 할까? 당신은 왜 거기서 그 모습을 촬영했을까? 무엇이 당신들을 그렇게 움직였을까?
언제부턴가 "이제 어디로 가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갈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수많은 길 중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서요. 정답지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습니다. 오늘을 사는 건 처음이니까.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생을 톺아보다 문득, 지금이 나의 최전선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실 평생 동안 매일 마찬가지였는데 참 새삼스럽지요.
삶을 길에 비유하는 건 익숙하지요? 거긴 어떤지 몰라도 여긴 나이에 따라 할 일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어, 그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어떤 감정들에 부딪히게 됩니다. 내가 이상한 걸까 하는 고민부터, 내 선택을 행복과 성공으로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까지. 솔직히 저는 스스로가 아주 이상한 케이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평범과 거리가 멀다고 여기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긴 해요.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인생 전체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던 제 자신이 불안합니다. 내가 나를 책임져야만 할 것 같은데 방법을 몰라서요. 앞으로를 어떻게 그려갈 것인가 밑그림을 잡아두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직장인 생활을 몇 년 하고 나니 "커리어 패스career path"가 종종 입에 오르고, 주변에서는 결혼 계획을 묻습니다. 질문이 늘어갈수록 가볍게 떨쳐지지 않습니다. 훌륭한 직업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계획 없이 취미에 몰두하는 내가 너무 안일한 걸까?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 여기는 내가 이상한 걸까? 어른들이 인생의 지혜로 하는 말들을 나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걸까? 불안과 질문이 삶의 전방위로 거미줄처럼 뻗어갑니다. 점점 더 불안해집니다. 내가 한 선택들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해야만 할 것 같고요.
영화를 보면서 이 마음에 도움이 될 만한 실마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의 삶을 멋대로 기대해서 미안합니다만, 영화 속에 확신에 찬 당신들이 있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불안해지는 질문들 앞에 이 영화를 방패처럼 휘두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이유로 들어선 영화관에서, 기이하리만큼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파도가 깨진 자리에 빛이 튀기고, 바람이 풀밭을 쓸어주는 모습은 그래도 전에 좀 보았지만... 태어나 처음 보는 것들이 그토록 많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이런 걸 볼 수 있다 상상도 해보지 못했어요. 암실에서 작업하는 대신 별빛에 노출시키고 해초로 현상한 필름. 말똥에 묻었다가 들풀로 현상한 필름.
작업하면서 둘이 보냈을 시간을 상상해 봅니다. 잔잔하고 평온한 애정의 시간. 동시에 단조롭고 이따금 지치는 노동의 시간. 생이란 본디 그런 것일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무용한 것들이 정말 무용한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당신들의 작업에 자꾸 "왜?"를 붙이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말똥 속 벌레를 왜 잡아서 보는 거지? 물범이 새끼를 뱄는지 왜 살피지? 그걸 어디다 쓰지? 이 질문들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당혹하게 만듭니다. 나는 그걸 왜 묻지?
습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중구난방의 삶을 어떻게든 그럴듯해 보이도록, 멋진 일직선의 설계를 할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매 순간 저에게 하나하나 따져 묻고 있던 것입니다. 이걸 해도 되나? 왜 하려는 거지? 대신 저걸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들의 작업물에는 "왜"가 없었습니다. 단지 앎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기반으로 내린 수많은 선택이 있었습니다. 순간의 자잘한 선택들이요.
미대생이었던 조이 당신이 지금 모습이 되기까지, 그저 이 섬이 좋아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다는 오늘까지, 수많은 선택들이 중첩되었을 뿐. 무수한 선택들이 모여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갑니다. 3년용 프로젝트로 지은 집이 20년을 버티기도 하고, 때로는 한 번의 만남이 모든 걸 바꾸기도 하죠. 그러니 저는 예상할 수 없는 이 삶의 여정 각 단계를 설계하겠다고 아등바등 애쓰는 게 아니라,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내가 오래 바라봐도 지치지 않을 방향이 어디인가, 조용히 묻고 답을 찾으면 그만이었던 거예요.
"일단 해보자"는 재클린 당신은 또 어떤가요. 나무가 그림을 그리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는 사람이라니. 세상에 누가 개미의, 달팽이의, 딱정벌레의 음악을 전달해 주겠어요.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음악들이 있죠. 요즘 케이팝은 표절 시비를 피하기 위해 여러 곡을 믹스해 내기도 한대요. 그러다 보니 같은 곡의 앞부분과 뒷부분이 전혀 다른 곡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딱 케이팝이 복잡해진 만큼 세상 모든 게 다 복잡해진 것 같습니다. 알아야 할 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하나라도 놓치면 도태될까 두렵습니다. 이런 마음을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라고 부른다는데... 저는 이런 단어까지도 놓치지 않겠다고 아등바등, "포모"로 살아왔네요.
재클린, 당신이 음악에 조예가 깊은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만 당신이 포모가 아니었음만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일단 해보는 그 마음 하나로, 세상 가장 고유한 음악을 (저작권료 지불도 없이!) 여기까지 데려왔어요. 음악의 역사에 정통할 필요도, 지식을 섭렵할 필요도 없었을 거예요. 결국 세상이 뭐라든, 뭐가 어떻든, 자기 길을 가는 것만이 정답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알면서도 어딘가에서 더 손쉽고 덜 외로운 해답이 뿅 나와주지 않을까 기웃거리던 마음을 부정할 수 없네요.
두 사람이 내게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깊은 생각 하지 않고, 네 할 일을 하라고. 당장은 에둘러 가는 길처럼 보일 수도 있고, 뒤죽박죽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 보여도 괜찮다고. 굵직한 일 없어도 단지 계속하는 게 얼마나 강한 일인지 아느냐고. 물개 연구 모임에 취사 담당으로 자원해 세이블 섬을 다시 밟았던 조이, 당신이 지금 거기 남은 유일한 사람이듯이.
그 섬을 집이라 부르기까지 당신이 놓쳐버린 것들도 물론 많음을 인정하지만, 사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기에 그걸 인정하는 게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는 태도일 거예요. 그 끝에, 사랑이라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는 거겠죠.
저는 이제 저에게 "왜"라고 묻지 않으려 합니다. 이걸 해서 뭐에 쓸 거냐는, 생산성의 질문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무실의 일에서처럼 전체를 가늠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을, 제 인생을 대상으로도 해보겠다고 애쓰지 않을 거예요. (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단지 바라볼 겁니다. 풀숲에 앉아서, 풀잎과 바람 속에서 녹색 바다를 보는 눈이 있다면 다 괜찮을 거예요. 오늘의 쓰레기를 줍고 숫자를 헤아리면서도, 조이 당신처럼 장미와 향나무 냄새를 느끼겠지요. 그거면 돼요.
재클린은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사랑으로 한 일a lavour of love"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이 삶을 들여다보려 해요. 지금 사랑하는 것들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아직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걸 지금 말할 수 없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다만 우연으로 보이는 것들조차 첩첩 쌓이다 보면 상당한 무게가 생기고, 무게가 생긴 것들이 어디로 기우는지 보면 되겠죠. 놓치는 것도 낭비는 아닐 겁니다. 방목되다가 잊힌, 연안의 섬을 뛰어다니는 야생마들은 멋졌으니까. 제 삶에 그런 말들이 뛰어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무튼 끝에는 반드시 어딘가로 흘러갈 것만은 확실합니다. 당신들의 세이블 섬처럼. 직접 만든 드림캐처와 엽서가 가득 붙어 있는, 그 멋진 책상 위처럼. "일단 해본" 그 모든 아름다운 필름 위처럼.
거기서 다시 만날게요. 고독의 지리학도들에게 소실점은 그곳일 테니까.
전주국제영화제 정보
▶ 아쉽지만 이번 영화제의 모든 상영이 끝났어요.
▶ 자세한 정보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의 초청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프레스로 참석하였습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2022년 5월 7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계속 진행됩니다.
일부 온라인 상영작도 있어요. 어디 계시더라도 우리 전주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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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투명한, 그래서 담백한 작별 일기
서른네 살의 존과 그의 네 살 난 아들 마이클. 엄마는 없다. 마이클을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고향이 그립다며 러시아로 떠났다. 존은 창문 청소부다. 큰돈을 벌진 못하지만 단골도 있고, 그가 일을 할 때면 동네 주민들이 마이클을 돌봐준다. 요컨대, 엄마가 없다는 걸 빼면, 존과 마이클은 별다를 것 없는 가족처럼 보인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다. 존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다. 존은 입양기관 직원과 함께 마이클을 입양 보낼 가족을 찾아다닌다. 기준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평범한 가족(normal family)이면 좋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이 마이클에게 줄 수 없는 것을 줄 수 있는 가족이면 좋겠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마음에 드는 가족이 쉽게 나타날 리가 없다. 여러 가족이 마이클 입양 의사를 밝혔지만 존이 보기엔 다 어딘가 부족하다. 집이 과하게 깔끔하고 완벽하다거나, 성격에 결함이 있어 보인다거나, 이미 양육하는 아기가 너무 많다거나, 아이를 인형처럼 여기는 것 같다거나 등등. 존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입양기관 직원이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많은 가족을 소개해줬음에도 존은 마이클을 어느 가족에 입양 보낼지 결정하지 못한다.
이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프지만, 존에게는 하나의 과제가 더 있다. 존은 마이클에게 죽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줘야 한다. 마이클이 죽음을 이해해야 왜 아빠와 헤어져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네 살짜리 아이에게 죽음의 의미를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까? 아빠가 죽은 딱정벌레처럼 움직이지 않는 딱딱한 상태가 되어버린다는 걸 마이클이 이해할 수 있을까?
〈노웨어 스페셜〉이 흥미로운 건 이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우선 존이 어떤 가족에게 마이클을 입양 보내는지를 살펴보자. 영화의 마지막, 존은 이혼한 싱글 여성을 마이클의 새 가족으로 최종 선택한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원치 않는 임신을 했으나 임신 중지를 하지는 않았고, 출산 후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이를 위탁가정에 보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된 그녀는 입양을 원했으나 남의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남편과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이혼한 채 혼자 지내는 중이었다.
영화를 보며 존의 최종 선택을 유추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아픔과 현 상황을 꾸밈없이 털어놓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거짓 포장은 없었다. 싱글 여성이 입양에 불리한 조건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아이를 원하는 마음만은 진심이라고 담담히 고백했다.
존은 마이클을 ‘정상가족(normal family)’에 입양 보내고 싶어 했다. 그런 존의 마음을 움직인 건 무엇이었을까? 마이클이 엄마의 사랑도 느껴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존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들여 마이클을 양육했지만, 싱글 대디는 규범 ‘바깥’의 존재이기에 늘 존의 마음 한편에 아픔을 남겼다. 존은 여자의 간절한 마음이 마이클에게도 있을지 모를 상처를 보듬을 수 있을 거라고 짐작한 것 같다. 혼자이기에 더 진한 사랑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더불어 존은 그녀의 ‘부족함’을 보는 대신, 그녀의 마음을 보았다. 정상가족이라는 규범은 누군가에게 수치심을 남기지만, 진심 어린 사랑은 그 수치심을 거슬러 결핍 있는 자들을 결속시켜주고 그럼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아픔 속에서 피어나는 다정한 강인함. 이것이 마이클을 원하는 여자의 얼굴, 표정, 말투, 몸짓, 태도에서 존이 읽어낸 것이다. 정상가족이라는 규범에 상처받아온 존이 또 다른 상처를 응시함으로써 스스로의 아픔을 승화하는 것이다.
영화가 빛나는 또 다른 지점은 존과 마이클을 카메라에 담는 방식이다. 시놉시스만 들었을 때는 영화에 별 기대가 없었다. 오히려 인습적이고 뻔한 장면으로 눈물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앞섰다. 하지만 기우였다. 영화는 단 한 번도 감정을 강요하는 법 없이 사랑하는 아들과의 작별을 앞둔 아빠의 감정을, 어린아이가 아빠의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처 입은 자들끼리의 만남과 치유를 덤덤히 그린다. 제목(Nowhere Special)부터 그러하듯, 거창한 의미나 심오한 해석의 여지를 숨겨두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보여줄 것은 이것밖에 없다는 듯 투명하게, 그래서 담백하게 작별의 과정을 담는다. 지속하고 싶은 관계가 중단될 수밖에 없는 누군가에게 〈노웨어 스페셜〉의 잔잔함이 큰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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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물망초의 꽃말을 아세요?
메이저 톤으로(The Major Tones)
잉그리드 포크로펙
Argentina, Spain | 2023 | 102min | DCP | Color | Fiction | Asian Premiere겨울 방학의 어느 날, 열네 살의 아나는 어릴 적 사고로 팔에 이식한 금속판이 모스 부호로 된 이상한 메시지를 수신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나를 잊지 마세요.
Don’t forget me.이름부터 잊지 말아달라는 하늘색 꽃, 물망초(勿忘草)의 꽃말이다.
© 전주국제영화제
‘방 천장의 별을 따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열네 살의 소녀, 야나. ‘엄마’가 끼어들 공간은 없어 보일 정도로 유달리 화목해 보이는 부녀 사이는 오늘도 “이상 전선 무”인 듯싶다. 어딘가로부터 수신한 소리를 그대로 내뱉는 주인공과 그 소리를 악보로 받아적는 친구 사이에도 불완전함은 느껴지지 않고, 소녀의 인생은 굴곡 없이 잘 흘러갈 듯하다.
이윽고, 주인공 야나의 팔에 난 큰 흉터가 ‘그렇지 않아’라고 “뚠-뚠” 소리치며 이 빈틈없는 공간에 균열을 내버린다.
© 전주국제영화제
어릴 적 사고로 팔에 이식한 금속판에서 모스부호일 수도, 노래일 수도 있는 신호를 수신한다는 이 판타지 영화롤 보는 내내 최근 개봉한 한국의 성장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같은 듯 다른 두 작품은 소녀와 모스부호라는 공통 소재를 전자는 한국의 ‘입시’를 통해, 후자는 사회적 이슈를 통해 풀어낸다.
잉그리드 포크로펙 감독은 GV에서 아르헨티나의 현실에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전통 판타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며, 동시에 한 여자아이의 성장 서사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야나’가 뛰어다니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 안팎과 특히 열두 시가 넘은 야심한 밤에 ‘야나’에게 ‘시 경계는 건너지 않으니 내려서 걸어가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택시 기사의 말을 통해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 전주국제영화제
씁쓸한 현실 속 담담한 ‘야나’의 모습에서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는 <메이저 톤으로>는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기억하면서도 그 기억에 침몰되지 않고 간직하며 살아낼 수 있다는 희망을 찾아간다.
그리고, 영화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대상을 거머쥐며 ‘잉그리드 포크로펙’ 감독이 있는 아르헨티나 영화계 역시 희망차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전주국제영화제
5 BULL.T
9 Windmill등 모스부호를 통해 알아낸 단어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의 끝은 영화가 아닌 ‘엔딩크레딧’에 있으니, 만약 이 작품이 국내 극장에서 개봉한다면,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상영관 내에 불이 켜지더라도 자리를 지키고 엔딩크레딧 속 꽃말까지 감상하길 바란다.
국제경쟁 - <메이저 톤으로> -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스케쥴
2024.05.03(금) 17:00 | CGV전주고사 7관 (244) *GV
2024.05.06(월) 13:30 | CGV전주고사 7관 (527) *GV
2024.05.10(금) 13:30 | CGV전주고사 7관 (922)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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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이 캔 스피크>
* 이 영화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간단한 감상을 원하시는 분은 처음 두 단락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영화를 감상하신 후에 다시 보러 와주시기 바랍니다.
간만에 좋은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아주 잘 차린 가정식이라는 인상을 준다. 너무 맵거나 짜지도 않고, 적당히 감칠맛이 도는, 거창하지는 않지만 맛있고 자꾸만 생각나는. 그리고 건강하고 배부른 한 끼 식사.
성급한 일반화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영화를 보고나서 이토록 개운한 기분으로 영화관을 나서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한국민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건을 다루고 있으면서, 그것을 자극적이지도, 신파적이지도 않게 완급을 잘 조절했다. 사건의 진행은 나름의 개연성을 가지고 있고, 인물들 간의 관계도 촘촘한 편이다. 영화 중간 중간에 숨어 있는 위트들은 어떤 사람도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 그래서 편하다.
아래에서는 영화 전반에 관한 간단한(혹은 두서없는) 감상을 다룰 것이다.
1. 인간적인 원칙주의자들의 만남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의 양 끝단에 서 있다. 나옥분(나문희 분)은 도깨비 할머니라고 불릴 정도로 구청 직원들과 시장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하는 극성스러운 민원인이며, 유민재(이제훈 분)는 그런 옥분을 상대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서류부터 제출하시라'는 말을 하거나, 자신보다 높은 지위의 상대에게 당당하게 그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원칙주의적인 직원이다.
이런 원칙주의자들은 사실 적이 많다. 사람들은 원칙에 벗어나길 좋아하니까. 옥분에게는 시장과 구청 사람들이 그렇고, 민재에게는 그의 하나 뿐인 동생이 그렇다. 그들이 겪는 갈등은 원칙을 지키려는 자와 그것을 피해 가려는 자의 대립에서 피어나게 된다. 카메라는 그들의 이런 모습을 먼저 조명한다.
언뜻 보기에 옥분과 민재, 이 두 사람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도 보인다. 옥분은 할 일 없어 허구한 날 구청을 찾아와 민원이나 넣는 극성스러운 할매고, 민재는 토익 950점에, 업무처리까지 탁월해 구청장에게까지 인정받는 능력있는 인재다. 그런 민재는 정도도 모르고 구청 직원들을 성가시게 하는 옥분이 못마땅하다. 더군다나 뜬금없이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억척스럽게 달라 붙으니 그녀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러나 사실 이런 원칙주의자들은 오히려 합이 잘 맞기 마련이다. 사실 상 두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칙주의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옥분의 원칙주의는 그녀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불의에 대한 저항감에 기인한다. 무척 깐깐하고 무작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그녀는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설령 그것이 오지랖이고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지언정 그녀는 그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불의와 불합리함들이 사람을 어떻게 다치게 하는지를 그녀는 이미 겪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억척스러움이, 마냥 밉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그녀의 사정에 있다. 그녀의 결핍, 그러니까 가정의 부재와 아픈 과거로 인한 상처는 도리어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다.
민재의 원칙주의는 다소 엘리트주의적으로 보인다. 옥분이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할 때 일부러 어려운 단어들을 숙제로 내주고 외워오라고 하거나, 건물 재건축(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과 관련된 일로 구청장에게 편법을 제안하는 것은 얄밉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모습은, 타고난 본성일 수도 있겠지만, 어린 동생을 홀로 부양해야 하는 그의 사정과도 크게 떨어져 있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부모님이 부재한 상황에서 그는 좀 더 단단해지고, 좀 더 능청스럽게 그의 삶을 살아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옥분의 등장은 그를 난감하게 한다.
결국 두 사람의 원칙주의는 그 성질이 다소 달라보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 두 사람은 인간적이다. 이러한 원칙주의와 인간미는 두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게 하면서, 동시에 서로에게서 닮은 점을 찾고,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는 관객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두 주인공들의 만남을 애정 어린 눈으로 감상할 수 있게 돕는다.
2. 나는 말하고 싶다!
민재와 옥분의 기나긴 실랑이는 민재가 그녀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끝이 난다. 민재는 온갖 재치있는 교수법을 동원해 그녀를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열정적인 학생인 옥분은 그를 통해 아주 유창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훌륭한 한 사람의 영어 화자로 거듭난다.
이러한 모습은 언뜻 많은 영화에서 그려온 멘토와 멘티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한다. 재능은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못한 제자가 좋은 스승을 만나서 그의 꿈을 이룬다는 플롯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말하자면 전형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좀 더 특별한 것은, 단순히 영어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것이 옥분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영어는 말하자면 수단이다. 그녀에게는 많은 동기가 있다. 영어를 할 수 있어야 먼 타지에서 떨어져 사는 그녀의 남동생과 소통할 수 있고, 세계에 그녀와 그녀의 벗들이 겪었던 억울한 사연을 알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 절실했고, 더 열정적이다. 민재가 한 일은, 그런 그녀를 살짝 보조(Nudge)해준 것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재는 아주 좋은 교사다. 그는 학습자의 수준에 맞춰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파악해 가르쳐주는 방법을 알고 있다. 노래를 통해 가사를 외우는 것은 꽤 구시대적인 교수학습법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효과적이다. 그의 이런 모습은 옥분이 먼저 찾았던 학원 강사의 모습과 대비된다. 그러나 강사의 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반에는 너무 많은 학생이 있었고, 따라서 학생 개인에게 관심을 두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바람직한 방법은 학원에서 그녀를 위한 특별반을 마련해주는 것일 텐데, 학원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므로 그다지 끌리는 조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어 과외를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최적의 환경인 셈이다. 사실 전문 과외 선생도 아닌 민재를 영어 과외 선생으로 들인다는 것 자체가 좀 넌센스이기는 하지만 영화적인 장치로 이해해 보자.
사족 같이 덧붙이자면, 사실 그녀는 이미 상당한 영어 실력의 소유자다. 그녀는 영어학원에서 민재와 원어민 화자가 대화하는 것을 얼추 이해할만큼 능력이 좋다. 영어를 차치하더라도, 그녀는 각종 민원을 꼼꼼하게 지적해 제출할 정도로 법에 대해서도 잘 아는 편이다. 그녀는 단순히 노력만 열심히 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아주 영민하고 또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녀의 잘못을 잘 시인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줄 안다. 이는 좋은 학습자의 자세이며, 그녀가 끊임 없이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임을 시사해준다.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그녀가 만약 그녀의 아픈 과거가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더 많은 것을 꿈꿀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너무나 가슴아팠다. 그러나 현실의 그녀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충분히 멋있기 때문에, 너무 아파하지만은 않을 수 있었다.
3. 사건이 아닌, 인간 나옥분
이 영화에서 특히 높이 평가하는 것 중 하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녀를 단순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건'의 대상이 아닌, 그러한 아픈 과거를 지닌 한 사람의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녀는 누군가의 어머니도, 아내도 아니다.
물론 이는 그녀의 아픈 관거에 기인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점은 오히려 그녀를 누군가의 보조자가 아닌, 그녀의 삶의 당당한 주체로서 바라보게끔 한다. 그녀는 매일 같이 구청을 찾아 또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한 사람의 영웅이자, 정심과 진주댁에게는 소중한 벗이, 그리고 민재와 그의 동생에게는 의지를 하면서도 또 의지가 되는 사랑스러운 이웃이자, 새로운 가족이 되어 준다. 비록 그녀는 일제에 의해 그녀의 삶의 일부를 강제로 빼앗긴 적이 있었지만, 그래서 남들은 다하는 시집도 가지 못하고 속을 앓으며, 죄인처럼 스스로를 숨기면서 살아가야 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녀의 의지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해 나가며 살아간다.
영화의 카메라는 그녀의 이러한 모습을 조심스럽게 쫒아간다. 관객은 우선 한 사람의 인간인 나옥분을 조명하고, 그녀의 삶을 하나씩 나열해 나간다. 그리고 그것을 천천히, 강압적이지 않게, 개연성있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픔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을 무대의 전면으로 내보내면서 소위 '위안 부 피해자'의 문제가 단순히 우리와 동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가장 내밀한 이웃에게 벌어지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이 겪는 아픔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3. 우리에게는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이웃들이 있다.
옥분이 스스로가 위안부 피해자임을 신문을 통해 알렸을 때, 그녀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녀를 쉬쉬하고 그녀의 아픈 과거를 덮으려고만 했던 그녀의 어머니와 그 시대의 옛날 사람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좀 뻣뻣하고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애정어린 방식으로 그녀의 아픔에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그녀를 돕고자 애쓴다. 그녀를 끌어 안는 진주댁과 민재의 모습, 그리고 몰래 문틈에 돈봉투와 편지를 끼워 넣고선 먼 발치에서 허리 굽혀 이사하는 족발집 처녀, 그리고 증언을 위해 미국으로 가는 그녀에게 이것저것 많은 선물을 챙겨주는 다른 시장 주민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이웃들의 모습은 그녀가 위안부 증언대에 서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때 다시금 나타난다. 민재를 중심으로 하여 구청 직원들과 주민들로부터 시작된 탄원서는 국민적인 관심을 이끌어 그녀가 그녀의 말을 할 수 있게끔 돕는다. 이러한 전개는 영화 '마션'에서 보았던 것과 또 조금 다른, 한국적인 인간미가 우리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쾌감을 안겨준다.
인생은 때론 고달프고, 때론 원망스러울 정도로 야박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 안에는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를 돕고자 하는 인간애가 있다. 이 영화는 그런 것을 조명한다. 다소 식상한 전개임에도 이것이 싫지 않은 이유다.
4. 사이다 썰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해피엔딩
결국 옥분은 친구인 정심의 소원을 위해, 그리고 그녀가 그녀 자신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미국으로 가 위안부 피해자 사건이 실존함을 세계에 알린다. 그녀의 증언은 충격적이면서 감동적이다. 그녀는 일본군에게 무조건적인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조목조목, 그녀의 억울함을 논리적으로 토로한다. 그녀가 한 사람의 증언자로 나섬으로써, 그녀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원칙주의적 면모의 사연을 이해하게 되고, 그녀는 그녀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으로서 거듭난다. 그리고 그녀의 아픔으로만 남았던 사건은 세상에 공식적인 범죄로서 공표된다.
건물 상가를 철거하려던 건물주와 시장 주민들(사실 주민'들'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다. 나서서 해결하고자 했던 인물은 여태 옥분 하나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만이 유일한 민원인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영화 표면상에 나타난 것은 그렇다.)의 갈등은 민재의 중재를 통해 잠정적으로 중단된 것처럼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시원스러운 '사이다 썰'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본은 아직까지도 그들의 선조들이 벌인 만행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에 이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것으로 머문다. 또, 건물 철거 건도 사실은 해결된 것이 아니다. 영화는 건물주가 그의 고집을 철회하겠다 하는 장면 같은 것은 집어 넣지 않았다. 다만 유예될 뿐이다.
이렇듯 영화를 이끌어 가던 두 가지 큰 사건은 사실 상 명확하게 끝맺음 지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화장실을 갔다가 볼 일을 시원스레 마무리하지 못한 듯한 찝찝함은 남아 있지 않다. 왜일까? 그것은 옥분과 민재라는 인물이 이러한 사건들을 언젠가는, 조금씩, 설령 그것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그러한 불의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사실, 이 두 가지 큰 사건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의 자잘한 사건들은 꽤 순조롭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옥분과 구청 직원들, 시장 사람들과의 갈등, 그리고 민재와 민재 동생의 갈등은 사그러들었고, 옥분은 또 다른 증언을 준비하고 있으며, 민재는 준비 중이던 7급 공무원이 된다. 희망적이다.
5. 좋은 배우들, 좋은 연출. 삼시 세끼 먹어도 좋은 영화이제훈과 나문희의 조합, 정말 좋다. 나문희는 우리네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냈고, 이제훈은 그런 그녀의 훌륭한 보조자이자, 그 개인의 이야기에서는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고, 그리고 개선해나갈 줄 아는 입체적인 인물로 잘 소화해냈다.
연출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언급했으므로 더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눈물짓게 되는 장면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는 불쾌하지 않다.(불쾌한 신파의 한 예로, '7번방의 선물'은 너무나 고통스럽게 관객의 눈물을 쥐어 짠다.) 억울해서 마지못해 짜내는 종류의 눈물이 아니다. 그것은 순수하게 그녀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 그리고 감동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다. 좋은 눈물이다. 필자는 영화관에서 우는 것을 사실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영화라면, 충분히 울 가치가 있다.
이 영화는 여러 사건을 차근차근 놓아서 하나의 큰 사건으로 끌고 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과정은 지루하지 않다. 뒷 이야기가 자꾸만 궁금해진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다. 물론 옥분과 민재의 만남을 위한 장치들(가령 민재의 동생과 영어 학원에서의 만남)나, 옥분을 둘러싼 사건들이 희망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다소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이 정도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봐줄만 하다. 중간 중간에 담긴 위트는 재치있다. 재미있는 영화가 되기 위해서 차별과 혐오를 담아야 한다는 것은 괴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몸소 증명해준다. 그것이 없어도 충분히 영화는 재미있을 수 있다. 만약 건강한 영화의 교과서가 필요하다면, 나는 자신 있게 이 영화를 추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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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벨 문 2 | 잭 스나이더의 퇴보는 현재진행형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더월드의 '노블'(에드 스크레인) 제독을 죽이고 벨트 행성으로 귀환한 '코라'(소피아 부텔라)와 '군나르'(미힐 하위스만), 그리고 다른 전사들. 축하 파티를 시작하려는 바로 그 순간, 그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온다. 죽은 줄 알았던 노블이 모종의 방법으로 되살아났고, 복수를 위해 벨트로 달려오고 있다는 것. 이에 마더월드 장군 출신인 '타이투스'(자이먼 혼수), 몰락한 왕자 '타라크'(스타즈 네어), 갓을 쓴 검사 '네메시스'(배두나)의 지휘 하에서 벨트의 농부들은 목숨을 건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1보 전진하고 2보 후퇴한 <레벨 문>
솔직히 말하자. <레벨 문 - 파트 2: 스카기버>(이하 <레벨 문 2>)는 기대가 크지 않았다. 파트 1이 잭 스나이더 작품 중에서도 유독 실망스러웠고, 파트 1과 2가 동시에 촬영됐으니 반등 요소도 거의 없었기 때문. 파트 1은 문제가 많았다. 넷플릭스의 <스타워즈>를 표방했지만, <스타워즈> 세계관을 모방했을 뿐이었다. <스타워즈> 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고전인 <7인의 사무라이>의 서사도 더하면서 기시감이 극대화됐다.
플롯도 허점투성이였다. 주인공 코라를 제외한 그 어떤 인물의 서사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화려한 비주얼과 액션이라는 본연의 장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몇몇 장면은 그린 스크린에서 촬영한 티를 숨기지 못했고, 잭 스나이더의 연출 특징인 슬로 모션도 남발됐다. 이에 더해 배우끼리 합을 맞춘 티가 팍팍 나는 액션씬도 기대 이하였다.
<레벨 문 2>는 파트 1의 연장선상에 있다. 기시감 느껴지는 세계관은 여전하다. 액션 시퀀스 역시 스케일만 커졌을 뿐, 완성도는 실망스럽다. 그나마 스토리텔링은 개선된 듯 보인다. 하지만 질적으로는 여전히 기대 이하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레벨 문> 시리즈의 방향성과 미래도 어둡다. 잭 스나이더의 과욕과 퇴보를 한눈에 보여주며 그나마 남아있던 팬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때문이다.
액션도, 볼거리도 수준 이하
만약 <레벨 문 2>를 기다렸다면 이유는 하나다. 파트 1보다 진일보하고, 스케일도 더 커지고, 잭 스나이더 다운 박력 넘치는 액션을 원할 따름이다. 하지만 <레벨 문 2>는 마지막 희망마저 배신한다. <레벨 문 2>는 코라의 일행과 벨트 행성의 농민들이 노블의 군대에 맞서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런데도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로서도, 액션 블록버스터로서도 실망스러운 장면이 끊이지 않는다.
우선 파트 1에 이어서 <스타워즈>의 영향력을 지우려는 시도가 전무하다. 일례로 전투 전개는 지극히 <스타워즈>스럽다. 전투가 벌어지자 주인공들은 상대 기함에 잠입해서 가장 위력적인 무기를 무력화하고, 적군의 우두머리를 제압해서 승기를 잡는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데스 스타에, 레이가 스타킬러 베이스에 침투한 전개를 빼닮았다. 마지막 순간 등장한 전투기 편대도 X-윙의 공습을 연상케 한다.
구체적인 액션 연출은 파트 1의 문제점을 공유한다. 슬로 모션 때문에 합을 맞추는 대목이 눈에 띄거나, 박력이나 생동감 대신 허우적대는 느낌을 주는 식이다. 일례로 네메시스는 일 대 다 상황으로 결투를 벌이는데, 이때 상대가 일부러 네메시스의 검을 기다리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에 더해 클라이맥스인 코라와 노블의 결투씬 역시 예상가능한 클리셰를 그대로 차용하면서 맥없이 끝나 버린다.
개선점 같지 않은 개선점
물론 예상외의 개선점도 있다. 바로 캐릭터다. 파트 1은 불친절했다. 코라가 모은 전사들이 왜 그 신세로 떠도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다행히도 <레벨 문 2>는 각 캐릭터의 서사를 보충해 최소한의 개연성을 확보했다. 타이투스는 부하를 몰살한 마더월드에 환멸을 느껴 반기를 들었다. 타라크와 네메시스는 마더월드 때문에 죽은 가족들의 복수를 꿈꾼다. 이에 더해 코라가 수배자가 된 구체적인 이유도 마침내 제시된다.
그러나 완성도를 극적으로 향상하지는 못했다. 캐릭터의 서사를 보여주는 방식이 안일하기 때문이다. 결전 전날 모든 캐릭터는 한 탁자에 둘러앉아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들의 사연은 짧은 플래시백과 내레이션으로 제시된다. 여기까지다. 이를 바탕으로 드라마를 더 풍성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없다.
네메시스 캐릭터 활용법에서 이는 단적으로 드러난다. 네메시스는 전투 중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다. 그 순간, 한 어린아이가 그녀를 구해준다. 전투 전 곡식을 추수할 때 그녀에게 먼저 관심을 표하고 장난을 걸던 그 아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기보다는 실망감이 크다. 그녀와 아이가 유독 특별히 유대감을 쌓는 과정은 없기 때문. 다른 캐릭터와 마을 사람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기회는 있었다. 전투 전 벨트 농부들은 곡식을 추수하고, 전투를 대비한다. 이 시퀀스를 적절히 활용했다면 각 캐릭터의 아픔을 새로운 이야기로 전환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잭 스나이더는 그 순간에도 곡식 한 알 한 알이 떨어지는 모습을 특유의 슬로 모션으로 잡을 뿐이다. 그렇게 건설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줄 유일한 기회는 기능적으로 흘러 지나갔다. <레벨 문>의 1보 전진이 전진 같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반대로 터진 잭 스나이더의 고질병
심지어 <레벨 문 2>의 1보 전진은 오히려 2보 후퇴에 가까워 보인다. 파트 1과 파트 2가 공유하는 문제가 비단 한 작품만의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전반적인 기획의 부족함을 방증한다고 볼 여지가 더 크다.
파트 1에서는 일언반구 없었던 각 캐릭터 서사가 파트 2에서 등장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1편의 내용은 기승, 2편은 전결로 완벽히 이어지기 때문. 즉, 한 편으로도 충분히 풀 수 있는 이야기를 잭 스나이더가 과욕을 부려 2편으로 나눈 셈이다. 슬로 모션만 줄여도 파트 1과 파트 2는 한 편의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분량 조절 문제는 잭 스나이더의 꼬리표였다. 넷플릭스에서 작업하기 전에도 분량 조절을 잘 못하는 감독으로 유명했으니까. 다만 과거에는 영화 한 편에 이야기를 무리하게 밀어 넣는 문제가 컸다. 그러다 보니 그의 작품은 <왓치맨>, <배트맨 대 슈퍼맨>처럼 감독판으로 재평가받기로 유명했다. 심지어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무려 러닝타임이 4시간에 달할 정도였다.
이렇게 보면 <레벤 문> 시리즈는 잭 스나이더의 고질병이 정반대 방향으로 터져 버린 결과물이다. 넷플릭스의 <스타워즈>를 꿈꾸는 IP를 양적으로 늘리려는 잘못된 판단이 낳은 참사라 할 수 있다. 과욕으로 인해 필모그래피가 오히려 퇴보해 버린 셈이다.
어두운 미래
또 그렇다고 2편의 영화로 <레벨 문>의 세계관이 확장할 초석을 제대로 다진 것도 아니다. 시리즈를 더 길게 끌고 갈 계획이라면 그에 걸맞은 내용이 있어야 한다. 비록 몰입도를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어벤져스> 관련 이스터에그를 적극 삽입한 <아이언맨 2>처럼.
그런데 <레벨 문 2>는 다음 시리즈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작은 농촌 마을을 지키는 이야기가 행성과 우주를 넘나드는 거대한 전쟁으로,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저항으로 스케일이 확장되어야 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 도구가 되어야 할 섭정 '발리사리우스'(프라 피), 이사 공주, 로봇 '지미'(안소니 홉킨스)의 이야기나 암시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 내용과 별개로 속편을 암시하는 결말이 뜬금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레벨 문> 시리즈는 6편까지 계획되어 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넷플릭스와 잭 스나이더가 심혈을 기울인 IP다. 더 나아가 둘이 이전에 협업한 <아미 오브 데드> 시리즈와 연계되어 더 큰 세계관을 보여줄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지만, <레벨 문> 시리즈는 벌써 그 끝이, 어두운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Dreadful 끔찍한
다음을 기대할 팬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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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엔 의미 있는 ‘고·스톱’이 있었다?
1972년 9월 5일. 뮌헨 올림픽 기간 중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인질로 삼은 테러 사건은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스포츠 역사상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최악의 비극인 동시에 최초 생중계된 인질극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방송을 본 수는 전 세계 9억 명에 달했을 정도. 그렇다면 이 사건을 방송으로 담은 제작진들은 어떤 심정으로 이 사건을 방송했을까?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오롯이 테러 사건을 마주한 언론인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생중계에 도전한 미 ABC 방송국 스포츠팀은 총소리를 듣는다. 소리의 근원지는 100m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선수촌. 알고 보니 팔레스타인 테러 집단 ‘검은 9월단’이 선수촌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이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제프(존 마가로), 룬(피터 사스가드), 마빈(벤 채플린) 등 다수의 제작진은 익숙하지 않지만 스포츠 대신 사건을 생중계하기로 하고 자신의 위치에 맞게 방송을 준비한다. 어떻게든 보도를 이어가려는 이들은 여러 어려움을 맞이하고, 심지어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방송을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동일한 사건을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 <뮌헨>과 그 궤를 달리한다. <뮌헨>은 사건 이후 테러 조직을 소탕하는 이들의 모습과 고뇌에 집중했다면, 이번 영화는 당시 사건을 생생히 전한 중계팀에 집중한다. 이 사건을 단독으로 생중계하려는 순간 갖게 되는 떨림과 흥분, 그에 따른 무게감은 극 중 주 배경지인 스튜디오에 그득하다. 더욱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보도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 취재하고, 촬영한 필름을 빠르게 현상, 편집하고, 공중전화를 통해 생생한 보도를 하는 등 중계팀의 치열함은 곳곳에 묻어난다. 21세기에 필름을 현상하거나 일일이 수작업으로 자막을 입히는 생경한 작업 방식도 한몫 한다.
스포츠 중계처럼 다양한 카메라 워킹을 통해 인질극 생중계를 보여주는 영화의 진면모는 카메라 앞이 아닌 카메라 뒤에 있다. 초유의 사건을 단독 보도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속보가 중요하지만 오보를 내지 않기 위해 꼭 3명 이상의 정보원의 말이 동일해야 내보낼 수 있다는 원칙, 시청률을 높여야 하지만 이를 보도할 시 선수단의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절망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더불어 테러리스트도 보는 이 방송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야 할지 등등 제작진들은 매 상황마다 첨예한 대립각을 세운다. 격전지는 인질극이 벌어지는 선수촌뿐만 아니라 이를 방송하는 스튜디오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듯, 영화는 언론인이라면 겪어야 하는 이 딜레마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이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질 수밖에 없는 영화의 단점을 상쇄하듯 계속해서 긴장감을 부여하고, 생중계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언론인들의 이유 있는 고민과 행동을 밀도 있게 담는다.
자연스럽게 언론인들의 직업의식과 태도는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이는 <스포트라이트> <더 포스트>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등 여타 언론을 소재로 한 영화들과 그 궤를 같이하지만, 달리하는 것도 있다. 바로 스마트폰, 유튜브 등 기술의 발달로 인해 누구나 뉴스를 제작, 배포할 수 있는 시대 속에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은 되묻는 부분이다.
영화의 첫 시작은 인공위성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를 한다는 것을 내세우는 방송이다. 기술의 발달을 등에 없고, 생중계를 하는 당시의 언론인들을 괴롭힌 고민은 SNS를 켜고 라이브온을 하는 세상에서 의미 있게 다가온다. 과거에 비해 뉴스 생산자들은 많아졌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윤리의식을 가진 이들은 얼마나 되는지, 그런 고민 없이 자본의 흐름에 편중된 화면만 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1972년 사건을 지금의 시간으로 가져온 이유는 타당해 보인다. 제작을 맡은 숀 펜의 이유 제작, 팀 펠바움 감독의 연출과 각본은 빛을 발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도 각본상 후보에 이 영화를 올리며 그 의미에 힘을 싣는다. 팀 펠바움 감독은 “영화적 임팩트를 위해 스토리라인을 각색하는 등 역사적 사건을 왜곡하지 않았다. 당시 참사를 보도한 미디어의 관점을 그대로 따랐다”며 역사적 사실을 오롯이 전하면서 현시대의 문제점을 집어내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 생중계의 마지막은 비극이다.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은 모두 사망한다.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과 함께 영화의 말미는 무거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전 세계 생중계된 인질극의 말로가 희망이 아닌 절망을 전한 제작진의 황망함. 그럼에도 다음 보도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제작진의 뒷모습은 긴 여운을 남긴다. 1972년도에도 2025년도에도 가치 있는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지금은 그 의미를 곱씹는 게 중요한 시기다.
사진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점: 4.0 /5.0
한줄평: 기술 발전이 언론에 끼친 영향을 곱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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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정적 '잠수함'에게 칼을 맞고 칩거하며 폐인처럼 살던 탐정 ‘강필'에게
친하게 지내던 동생 '병도'가 찾아온다.
제주도의 한 건설업자가 원하는 사람을 찾아주면 꽤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하고
재정적으로 어렵던 강필은 의뢰를 받아들여 제주도로 향한다.
그런데 건설업자가 찾길 바라는 실종된 감독은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K3리그 '승부조작'에 관여한 정황이 보이고
주니어 축구교실 학부형들을 대상으로 '성매매'까지 알선했다.
게다가 조사를 진행할수록 주변 사람들의 숨겨진 '이면'이 속속들이 밝혀지는데...
강필은 이 사람을 계속 찾아도 되는 걸까?
건드리면 안 되는 '진실'에 다가가는 것은 아닐까?
이 세상에 제대로 된 '정의'란 존재하긴 하는 걸까?
탐정 '강필', 또다시 얽히지 말아야 할 사건에 얽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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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O2>
[2021년 5월 12일, 넷플릭스 공개]
극한의 공간에 갇힌 리즈,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해 내야 한다
남은 시간과 산소가 모두 사라지기 전에...
한 젊은 여성이 동면 캡슐에서 눈을 뜬다.
사라진 기억과 폐쇄된 공간, 그리고 급속도로 고갈되어 가는 산소.
살아남으려면 자신이 누군지 기억해내야 한다.
이곳이 그녀의 관이 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