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SEOUL2025-04-04 00:00:09
영화 '장미의 행렬 (Funeral Parade of Roses)' 리뷰
장미의 행렬 (Funeral Parade of Roses)
아트나인 ‘재팬무비페스티벌’ 상영작 중 하나인 <장미의 행렬>을 봤다.
포스터 속 인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보게 됐는데 영화 자체도 포스터 만큼이나 스타일리시하고 강렬했다.
“나는 상처이자 칼날이며 사형수이자 사형집행인이다”라는 문구로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가 실험적이었다.
여러 이미지가 아주 짧은 시간 깜빡이듯 노출되며 인상을 남긴다든지 하는 독특한 편집이 많았다.
조금 패션 필름 같기도 한 부분도 있었고…
에디라는 게이보이(영화 속에서 쓰는 단어다)가 주인공이다.
그는 게이바에서 잘나가는 호스트로 마담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맨 얼굴의 에디와 화장을 하고 가발을 쓰고 화려한 옷을 입는 에디는 다른 사람 같다.
이 장면에서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가면 아래 가면이 또 있기도 하다는 대사가 나오는 게 인상 깊었다.
성매매 업소의 마담을 ‘엄마’라고 부른다는 말을 본 기억이 있는데
그걸 생각하면 생모와 마담, 두 가지 인물 모두에 대해 에디가 가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다룬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머리 너무 예쁘고 자꾸 거울에 비친 이미지가 나오는 것도 자아 성찰, 또는 자아의 분리를 상징하는 것 같아 좋았다.
복선
스포를 절대 읽지 말고 봐야 된다. 그래야 이 영화가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 엔딩 때문에 원래는 별점 3점 정도로 생각하다가 4점을 줬다.
영화는 사람은 끊임없는 부정을 통해 영혼의 궁극에 이른다는 문구로 끝맺는다.
이렇게 나오는 문구들도 좋았고 위에서 말했듯 영화 자체도 스타일리시하고 실험적이다.
미장센도 좋고… 결말이 특히 충격(positive)이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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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도시'로는 성공, '콘크리트 유토피아'로는 실패
사랑하는 수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망가진 세상 한가운데에 살고 있는 지완(이준영)이다. 활을 메고 있는 지완. 눈앞에 악어괴물이 보인다. 활시위를 당긴다. 악어에게 적중한다. 죽은 것 같다. 악어에게 다가가는 지완. 하지만 악어가 갑자기 살아나서 지완에게 달려온다. 질겁하는 지완. 근처에 있는 차에 잽싸게 숨는다. 위기에 처한 지완을 도와주는 건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남산(마동석)이다. 악어의 목을 자른 남산. 악어 사체를 가지고 가서 마을 사람들과 식량을 나눈다. 남산 덕에 위기를 넘긴 지완. 지완과 남산은 가족 이야기도 함께 나누는 친한 사이다. 지완이 턱없이 어린 탓에 둘이 친구야?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남산은 정이 많다. 한편 지완이에겐 짝사랑하는 여자 애가 있다. 바로 수나(노정의)다.남산은 어릴 때 수나의 목숨을 살려준 적이 있어 안면이 있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지완의 연애 이야기는 남산과 대화하기에 적합하다. 남산에게 수나 이야기만 하는 지완. 이 두 사람에 일상에 큰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수나가 양기수(이희준)에게 납치된 것이다. 무너진 세상. 남산과 지완, 그리고 또 다른 손님이 기수 일당의 본거지로 직진한다.
형은 좀비를 찢어
<황야>는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한 영화에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을 200% 활용한다. 우리가 마동석 배우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가 액션스타라는 점이다. <황야>는 마동석 배우가 구현 가능한 액션을 전부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각종 ‘~파이팅’이 다 있다. 총기액션, 나이프파이팅, 맨손 격투 등 온갖 방식으로 나쁜 놈들을 두들겨 팬다. 영화 줄거리도 이 액션 역량을 다 보여줄 수 있게끔 짜여 있다. 가령 빌런 무리들에겐 특별한 점이 있다. 이 부분을 주인공 일행이 금방 간파한다. 그러나 이 약점을 공략하기 전엔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이 과정을 마동석 배우의 액션연기로 채웠다. 그리고 디스토피아라는 설정은 주인공 남산이 총기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음과 동시에 나쁜 놈들이 활개 치기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권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자잘한 요소들을 나름 근거를 제시하며 살려 액션 보는 맛이 좋다. 이 액션이 와일드하기만 하면 뭔가 맥이 빠질 것이다. 이에 당위성이 생긴 폭력 묘사가 극의 재미를 돋군다.
그리고 이 영화가 나름 ‘마동석 액션영화’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이 보인다. 바로 이은호 역을 맡은 안지혜 배우의 등장이 이것의 근거다. 후술하겠지만 이 영화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설정 자체를 잘 살린 편은 아닌 것 같다. 이것 때문에 생기는 이야기의 느슨함을 안지혜 배우의 액션연기로 끌고 간다. 처음부터 영화가 연출로 이 인물이 ‘중요해!’라고 강조한 것이다. 가령 이 이은호 캐릭터가 처음 등장할 때 장면을 보면 강렬하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에서 이은호 캐릭터가 이렇게 등장할 이유가 크게 있는 건 아니다. 장영남 배우가 맡은 캐릭터 처럼 초반부에 등장해도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관객이 신선함을 느껴 주의를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영화가 관객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연출을 보여줬다. 이후에도 <황야>의 이은호는 이 신선한 동력을 충분히 이행한다. 글쓴이는 첫 번째 공간을 바꾸고 나서 이 인물 중심으로 테이크를 길게 짠 장면을 최고로 뽑는다. 확실히 허명행 감독이 무술감독 출신이라 어떻게 해야 생동감이 사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 이 배우의 이 장면은 여태까지 본 한국영화의 여성 캐릭터 액션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다.
용감한 시민
글쓴이는 이준영 배우를 좋아한다. 왜? 이 분 잘생겼는데 연기도 잘한다. <D.P>와 <마스크걸>에서 양아치 연기를 생각해 보면 뭔가 스테레오 타입의 나쁜 놈 같으면서도 자기만의 색이 굵었다. 그러나 글쓴이는 두 드라마보다 <용감한 시민>에서의 연기를 더 좋아한다. 이 <용감한 시민>에서 한수강이라는 인물 역시 액션이 중요했는데 시원시원하게 잘 소화한다. 본작 <황야>에서도 똑같이 액션연기를 보여주는데, 남산과 안지혜와는 다른 결의 액션을 보여준다. 이 두 인물과의 차이점을 눈 크게 뜨고 보면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는데 글쓴이는 이준영 배우가 디테일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여기는 황궁아파트
사실 액션만큼이나 이 영화에서 중요했던 것은 디스토피아 묘사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세계관을 공유한 작품답게 이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용하는 것은 대지진이다. 대지진이 일어난 지구. 당연히 온 세상은 폐허가 됐다. 시각적인 묘사에 있어 이 난장판을 잘 묘사했냐? 고 묻는다면 글쓴이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노란색으로 색감을 뺀 부분이나 무너진 건물을 구성하는 적지 않은 요소들까지 나름 상상력이 돋보이는 장면이 보인다. 하지만 글쓴이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부산행>과 겹쳐 보이는 점이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폐허가 된 세상을 묘사하는 데에는 좋았지만 고유의 색이 흘러넘친다고 보긴 어렵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디스토피아 묘사가 개성이 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어떤 관객들에겐 비판 요소로 읽힐 수도 있다.
어디서 봤는데
사실 이 영화에 대해 글쓴이가 가장 아쉽다고 느끼는 부분은 문제 해결 방식이다. 이 영화의 플롯을 대략적으로 써보겠다. 주인공이 있다. 이 주인공을 둘러싼 세상은 온갖 나쁜 놈들 천지다. 나쁜 놈이 나쁜 짓을 한다. 푸근하지만 주먹 하나는 살벌한 주인공이 이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다. 우리는 비슷한 플롯을 알고 있다. 바로 ‘범죄도시’ 시리즈다. 마동석 배우가 속해있는 빅펀치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시그니처를 못 보고 지나가도 ‘이거 그거 아닌가’ 느낄 수 있을 만큼 <황야>가 개성이 뚜렷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물론 마동석 배우가 가진 매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그러라고 캐스팅한 것 아닌가? 하지만 글쓴이는 ‘범죄도시’ 시리즈와의 기시감을 문제 해결 방식에서만 근거를 찾고 싶지 않다. 바로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어떤 캐릭터가 있다. 이 캐릭터는 수많은 빌런들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이는데, 마동석 배우의 전작에서 이와 비슷한 인물이 있었다(심지어 유행어가 돼서 인기도 끌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 <황야>를 보고 생각한 점 중 하나는 이야기가 텅 비어 보인다는 점이다. 왜? 이 영화는 무언가를 시도하려다가 말았다. 이 시도하다 만 것은 장르적인 특성이다. 우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시리즈의 전작인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대해 써볼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라는 공간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사회를 탐구한다. 이 아파트를 둘러싼 사람들을 양분해서 ‘한국 사람들은 이곳(아파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 시도는 분명 의도가 있다. 바로 공동체가 지켜야 할 윤리의식을 한 집단 하의 두 사람(명화/영탁)을 중심으로 관객에게 질문한다. 이것을 왜 아파트라는 배경을 통해 질문할까? 바로 우리 한국사회는 사는 곳으로 서로에게 편견과 혐오를 표현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출을 통해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은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외국영화 중 <블레이드 러너 2049>나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도 각각의 철학적인 물음을 건네는 영화다.
하지만 이 <황야>에는 그런 장르적인 특성이 안 보인다. 물론 몇 번 시도는 한 것 같다. 양기수(이희준) 배우의 캐릭터의 대사 몇 줄이나 영화에서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 분명 어느 부분에 대해 지적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 대사 몇 줄 빼고는 문제를 심화시킨다거나 하는 장치가 많이 부족하다. 단지 주인공 일행을 위기에 더 밀어놓는 것 말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아파트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묘사하면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이 <황야>의 내적 논리는 플롯 안에서 구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물들이 하는 몇 마디로 끝낸다. 이렇게 나사 빠진 토대 위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사건의 끝마무리가 깔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느껴졌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마무리가 된 것이다.
반쪽짜리 성공
이러다 보니 이 영화가 굳이 디스토피아라는 배경을 가져온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만약 이게 범죄도시 7쯤 돼서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뒤집어 패버리는 마석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솔직히 그렇게 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영화의 기획의도에 구멍이 생기는 결함이 된 것이다.
반대로 영화의 액션은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범죄도시 2>의 액션이 극찬받았던 이유는 사운드 덕분이다. <황야>는 <범죄도시 2>처럼 사운드를 살리고, 또 촬영에서도 카메라를 흔들지만 나름 동선도 잘 포착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허명행 감독이 액션 하나는 정말 잘 살렸기 때문에 글쓴이는 <범죄도시 4>가 기대된다. 뭐 어차피 이 영화 각본 쓴 사람이 <범죄도시 4> 각본 쓴 것 아니잖아? 드라마가 어떻게든 보완이 됐을 테니 K-채드 스타헬스키(<존 윅 4>의 감독)가 허명행 감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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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멤버 미>, 진득하게 배어 있는 누군가의 체취들
우리의 삶은 누군가 묻혀놓은 체취들로 가득하다.
그 누군가는 우리의 가족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다른 많은 이들에게 우리의 체취를 남긴다.
그 체취는 제법 여운이 짙다. 진득하게 배어 있다.
개인적으로 <리멤버 미>는 '타일러(로버트 패틴슨)'의 삶 속의 다양한 체취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형의 자살,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무관심 등으로 인해 내면에 깊은 상처가 있고, 자주 깊은 사색에 잠기곤 하는 타일러에게는 타인의 체취가 유난히 더 깊게 배곤 한다. 그리고 타일러는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진한 체취를 남기고선 떠난다.
"아등바등 사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열심히는 살아야 한다."
형에게 쓰는 편지이자, 타일러의 독백이다.
- 형이 전에 그랬지. 누군가 묻혀놓은 체취들이 우리 삶에 배어있다고.
누구에게나 그럴까?
아니면 그럴싸한 말일 뿐일까?
타일러에게는 아직 자살한 형의 체취가 진득하게 배어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삶에도 진한 체취를 남겨놓고 간 사람이 있다.
이 체취는 평생 남아있을 것 같다. 안 지워질 것 같다. 그리고 문득문득 생각나겠지.
항상 형과 함께 가서 아침을 먹던 식당,
형이 자살하던 날 마지막으로 그를 본 곳,
형이 떠난 후에도 꾸준히 가서 형에게 편지를 쓰는 곳,
자신처럼 마음 속에 상처를 지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형에게 들려주러 가는 곳,
형의 체취가 진득하게 배어 있는 그런 곳.
- 생각보단 덜 갔을지도 모르겠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말이 내 마음 속을 후벼파는 것 같다.
왜 떠난 이의 영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는 걸까.
왜 그가 남긴 체취는 날이 갈수록 더 짙어지는 걸까.
타일러가 아버지의 컴퓨터 화면에서 발견한 가족 사진들.
자식들에게 무관심하고, 무심하다고만 생각한 아버지는 사실 모든 자식들을 보고 싶어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 속에서 더 이상 나이가 들지 않고 멈춰 있는 형 '마이클'.
먼저 떠난 이의 체취는 유난히 더 짙고 무겁게 느껴지곤 한다.
아마 타일러와 그의 가족에게 마이클의 체취는 제법 묵직했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버지는 자식들을 사랑하고 있었고, 형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 당연한 사실을 타일러는 이 화면을 보기 전까지 몰랐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표현을 안 했으니까. 알 턱이 없다.
나는 가족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바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실을 최근에 더욱 절실히 느꼈고, 선명하게 깨달았다.
사랑한다는 표현이 꼭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서로의 오해가 쌓이지 않도록, 이 정도만이라도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오해는 또다른 오해를 낳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남기게 되니까.
- 아등바등 사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열심히는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소중한 인생이니까.
누가 우리 인생에 들어오면 우리 반쪽은 말한다. 넌 준비가 안됐다고.
하지만 다른 반쪽은 말한다. 영원히 네 것으로 만들라고.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테러단체에 의해 자살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이 공격을 받았다.
이 순간, 타일러는 아버지의 회사인 이 건물에 있었다.
타일러는 씁쓸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사랑한다고.
너무 보고 싶다고.
그리고 용서한다고."
이제는 타일러의 인생에 들어왔던, 남은 이들이 간직할 말들.
왜 용서한다는 말을 타일러가 했을지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자살한 형을 미워했던 것에 대한 용서라고.
형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텐데, 힘든 결정을 내린 것일텐데. 더이상 미워하지 않을 거라고.
영화의 초반에 나왔고, 영화를 마무리하며 나왔던 타일러의 독백은 마음을 참 아프게 만드는 것 같다. 마음 속을 후벼파는 것 같다.
혼자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던 사람인 타일러의 끝이 참 허망하기 그지없어서 더 슬펐다.
영화를 보며 참 많은 영화 속 인물들의 끝을 지켜보았지만, 타일러의 마지막은 유독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다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너무 아파서.
타일러가 그 누구보다 속이 깊은 사람이라는걸 알기에 이제 이 영화를 생각하면, 그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911 테러로 인해 많은 이들이 아파했을 생각을 하니 더 씁쓸해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영화를 곱씹을수록 마음이 많이 무겁다.
'리멤버 미',
남은 이들의 몫은 그를, 그가 남겨놓고 간 체취를 기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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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적절하고 선을 잘 탄 가족 영화 《담보》
작년 추석 무렵 제주도에서 봤던 영화 《담보》. ‘바퀴 달린 집’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김희원과 성동일이 하지원이랑 굉장히 친한 모습이어서 이 조합을 무엇일까 궁금했었는데 바로 영화 《담보》를 같이 찍으면서 친해진 것 같았다. 영화 《담보》는 추석과 같은 명절에 가족끼리 보기 좋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담보》 시놉시스
1993년 인천, 거칠고 까칠한 사채업자 두석과 종배는 떼인 돈 받으러 갔다가 얼떨결에 9살 승이를 담보로 맡게 된다. “담보가 무슨 뜻이에요?” 뜻도 모른 채 담보가 된 승이와 승이 엄마의 사정으로 아이의 입양까지 책임지게 된 두석과 종배. 하지만 부잣집으로 간 줄 알았던 승이가 엉뚱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승이를 데려와 돌보게 된다.
예고 없이 찾아온 아이에게 인생을 담보 잡힌 두석과 종배. 빚 때문에 아저씨들에게 맡겨진 담보 승이. 두석, 종배, 승이 세 사람은 어느덧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 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알고 있었지만 눈물나는 스토리
영화를 보기 전부터 모든 스토리가 예상이 갔던 영화 《담보》.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에 크게 감동을 받지 못하지 않을까 우려를 하면서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영화 《담보》는 굉장히 선을 잘 탄 작품이었다.
이러한 신파가 많다는 것을 감독도 알고 있어서 그런지 뭔가 한 번에 일이 착착착 진행되기 보다는 한 두 번은 관계가 엇갈리게 배치하면서 적당한 긴장감을 보여주면서도 관객이 영화 속에서 바라는 감동포인트는 지켜주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중반 이후부터는 정말 눈물 주르륵 흘리면서 봤다. 전형적이긴 했지만 그 전형적인 것을 지루함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감동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에 충분히 만족스럽게 작품을 감상하고 나올 수 있었다.
김희원의 감초연기
하지원과 성동일이 영화 속에서 감동을 담당하는 역할이었다면 재미를 담당하는 역할은 김희원이었다. 극 중에서 같은 군대에서 복무를 하다가 제대한 성동일과 김희원.
약간 철없고 눈치없는 아이같은 김희원이 성동일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마다 내뱉은 뒷담화 같은 욕에 중독되어서 김희원이 클로즈업되거나 원샷을 받을 때마다 저 입에서 또 어떤 혼잣말이 나올까 내심 기대가 됐다.
그럴 때마다 찰진 욕과 상사에 대한 분노가 함께 표현됐지만 성동일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깨갱하며 다시 쭈굴 모드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가 가지고 있는 비굴함을 재밌게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추석영화
영화 《담보》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참 약아빠진 영화다.’였다. 신파라는 장르에 대해 굉장히 인색한 사람들 마저도 가족이 모이는 추석날이 되면 가족과 함께 다같이 가족극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주 그 시기를 적절하게 추석연휴로 개봉일자를 잡으시고, 내용도 남남이었던 세 사람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간의 정을 영화로 극대화를 시켜주시고~ 정말 타이밍 하나는 끝내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결론은 추천하는 작품이다. 물론 어디서나 한번씩 다 봤던 내용이지만 가족이 다 모였을 때 가족애를 더 강하게 느끼고 싶다면 영화 《담보》를 같이 보면서 함께 울고 재밌게 감상하는 방법도 좋을 듯 싶다.
너무나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내용으로 찾아온 아주 적절한 가족 신파 영화 《담보》. 신파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만족하고 충분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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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우리가 건넨 손길은 상처일까? 위로일까?
[SICFF 데일리] 우리가 건넨 손길은 상처일까? 위로일까?
영화 <손길> 리뷰
감독] 서준용
시놉시스] 다혜는 박차장이 자신을 성희롱 한 사실을 고발하려 한다. 한편, 아들 민찬이 어린이집에서 불미스러운 행동을 한 것을 알게 된다.
#스포일러 주의#동전의 앞뒷면 같은 우리의 기준
단편영화 <손길>은 박차장이 회사를 나오지 않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사건의 당사자인 다혜와 팀장님 뿐이다. 박차장은 사실 다혜를 성희롱하고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전까지 장기휴가에 들어간 상태였던 것이다. 회사에서는 다혜를 불러 참고인조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혹시 그동안 박차장이 회사를 위해 많은 공을 세웠는데 용서를 해줄 생각이 없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다혜를 회유하지만 다혜는 완고하다. 그런 다혜에게 갑작스럽게 박차장이 찾아와 자신의 가족을 생각해달라며 용서해달라고 빌지만, 그러한 모습에 더 치를 떨게된 다혜는 팀장님을 설득해 참고인 조사를 부탁한다.
그렇게 영화 내내 피해자일 줄 알았던 다혜는 자신의 아들 민찬이 어린이집에서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며 가해자의 엄마가 되어버린다. 아들 민찬이가 같은 반 여자친구의 몸을 만진 것이다. 여자로서 자신이 성희롱의 피해자인데,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성희롱의 가해자가 되어 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을까. 절대 동시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성적문제에서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다혜를 보면서 우리 모두 상황에 따라 모순적인 말들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성희롱의 피해자 다혜는 박차장의 징계에 대해 굉장히 단호한 편이었다. 징계위원회를 통해 박차장이 적절한 조치를 받길 바랐다. 하지만 가해자의 엄마로서 다혜는 민찬이가 배려와 이해를 받기를 바랐다. 박차장이 다해에게 했던 말처럼 말이다. 영화 <손길>은 이처럼 상황에 따라 인간은 그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판단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 <손길>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본능적으로 모순적인 선택과 발언을 할지라도 이성적으로 그 기준을 다시 지키려고 애쓰는 어른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피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받기 위해, 혹은 내 아들을 지키기 위해라는 개인적인 기준을 넘어서 사회적인 공공의 선을 생각하며 그 기준에 부합하는 결정과 판단으로 다시 수정하여 행동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그럼에도 이 사회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나쁜 손길, 선한 손길영화 <손길>은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의 중의적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의 손길은 성희롱과 같은 나쁜 의미의 손길이다. 박차장이 다혜에게, 그리고 아들 민찬이 친구에게 한 손길은 옳지 않은, 해서는 안되는 손길이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어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특히, 다혜의 직장 선배인 팀장님의 말이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가장 명확하게 담고 있었다. "우리 딸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라도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아들 민찬이가 만진 친구는 팀장님의 딸이었다. 팀장님의 개인적인 입장이었다면 회사에서 다혜가 피해자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가정에서는 다혜는 가해자의 엄마일 뿐이었다. 이를 알기에 다혜 역시 팀장님을 찾아가 징계위원회 일은 안하셔도 된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팀장님은 그런 다혜를 향해 이번에 다혜씨를 돕는 일이 앞으로 내 딸이 사회를 살아갈 때 좋은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면서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이렇게 시작된 선한 손길은 결국 징계위원회를 통해 박차장의 징계로 이어지고, 아들 민찬 역시 제대로 된 사과와 함께 어린이집을 나오면서 피해자가 더 피해를 받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너무나도 긍정적인 결말에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결말을 통해 우리 사회 역시 공공의 선을 생각하고 순간적으로는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지만 다시 그 선으로 돌아와서 마무리를 짓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흡족했던 마무리였다.
영화 <손길>은 중의적 의미를 통해 우리 사회와 개인의 기준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했던 작품이었다.
[상영시간표]
2023. 9. 15. 19:00 롯데시네마 은평 4관
2023. 9. 17. 12:30 롯데시네마 은평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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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를 알아보자
출처 :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가 어린이날 100주년과 더불어 개막 소식을 알렸습니다.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는 오는 6월 15일부터 22일까지 총 8일간 진행됩니다.
영화제 규모는 국제영화제 명성에 걸맞게 47개국 157편으로 진행되며, 해외 80편, 국내 77편입니다.
영화제는 온라인 중계(SICFF 유튜브 공식 계정), 씨네Q 신도림, 신도림 오페라하우스, 온피프엔(온라인), 문화철도 959(야외상영), 서울생활문화센터 신도림 다목적홀A(예스키즈존), 서울생활문화센터 신도림 다목적홀B(키즈포스터 전시), 신도림 테크노마트 11층(폐막식)에서 진행됩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의 시작을 알릴 개막작은 '울야는 못말려'가 선정되었습니다.
영화는 울야가 관측한 소행성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로 그리지만, 동시에 종교나 전통을 빙자하여 권위로 어린이들의 생각을 억압하고 존중하지 않는 부모와 동네 어른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가족'과 '마을' 단위로 어린이와 어른이 공존해야 할 때 어떻게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들려주며 존중 할 수 있을지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화 '울야는 못말려'는 6월 15일 18:30에 씨네Q 신도림 2관에서 상영됩니다.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는 10회를 맞이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프로글매은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SICFF)의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며, 그 중에서 씨네랩이 기대하고 있는 영화제 프로그램을 몇 가지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액터스 토크 '안녕하세요'
출처 :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홈페이지
프로그램 노트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의 크로스 아이콘 '김환희' 배우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영화에 한 발 더 다가갑니다. 어린이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김환희 배우의 영화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06월 18일(토) 15:00 영화 <안녕하세요> 상영 후 액터스 토크가 진행되며, 게스트로는 '김환희' 배우가, 모더레이터는 '이화정' 영화전문기자가 초대되어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안녕하세요> 시놉시스
: 보육원에서 자란 고3 학생 수미. 어느 한 곳 기댈 데 없는 수미가 희망을 등지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순간, 호스피스 간호사 서진이 이를 극적으로 막아선다. 이후 갈 곳 없는 수미는 죽는 법을 찾으려 서진이 일하는 호스피스 병원을 찾아가고, 삶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곳 사람들에게서 처음으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위로를 받는데..2. 우리가 외치는 '아동권리선언'
출처 :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홈페이지
프로그램 노트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이해 아동 권리를 외칩니다. 영화 <태일이>를 본 뒤 '아동권리'를 배워보고, 오늘날 필요한 아동권리를 외치는 '아동권리선언 행진'에도 함께 참여해보아요. 2022년을 살아가는 어린이와 어른들이 말하는 어린이 인권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행동 - 영화 <태일이> 속 아동권리
6월 18일 토요일 14:00 <태일이> 상영 후 진행되며, 씨네Q 신도림 2관에서 상영합니다. <태일이> 무료 관람 뿐만아니라 세이브더칠드런 기념 뱃지도 받아가실수 있습니다.
두 번째 행동 - 아동권리선언 행진(with 어린이 권리 탐험단)
6월18일 토요일 16:00 도담도담극장(신도림 오페라하우스 지하소극장)에서 진행되며, 첫 번째 행동 프로그램 '아동권리 교육'을 진행한 뒤 도담도담극장으로 함께 이동하여 진행합니다.3. 키즈 도슨트
출처 :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홈페이지
프로그램 노트
"어린이영화는 어린이가 제일 잘 알죠!" 키즈 도슨트는 어린이의 시각으로 어린이영화를 해설합니다. 영화를 관람하기 전 키즈 도슨트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영화 내용을 상상해 볼까요?
키즈 도슨트 1 :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마주하는 가족 이야기
6월 17일 금요일 16:00에 씨네Q 신도림 9관에서 진행되며, 씨네키즈 5플러스 1 <건전지 아빠>, <나쁜 친구>가 상영됩니다. 키즈 도슨트로는 김한나(개웅초 4학년), 정민규(개봉초 4학년)이 맡아 진행될 예정입니다.
키즈 도슨트 2 : <비스트 오브 아시아>로 보는 신화이야기
6월 18일 토요일 12:00에 씨네Q 신도림 10관에서 진행되며, <비스트 오브 아시아 1,2,4부>가 상영됩니다. 키즈 도슨트는 지은률(천왕초 6학년), 최홍원(구일초4학년)이 맡아 진행될 예정입니다.소개해드린 프로그램 외에도 씩씩한 토크 : 경계 존중하기, 비중러 리터러시 : 영화&그림수업, 기찻길 옆 극장 (야외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으니 자세한 사항은 아래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https://www.sicff.kr/kor/default.asp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오는 6월 15일(수) ~ 6월 22일(수) 총 8일간 개최됩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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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코코> 리뷰
멕시코의 전통과 디즈니 클리셰의 결합
멕시코의 어느 마을. 구두를 닦고 있었던 미구엘이라는 소년이 마라아치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원래 미구엘은 에르네스토 델라크루즈란 전설의 음악가를 동경해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대대로 신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던 가족들에 의해 음악을 금지당했단 내용이었다. 마라아치는 에르네스토였다면 바로 기타를 들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했을 것이라며 용기를 준다. 미구엘은 마침 죽은 자들의 날에 열리는 음악 경연 대회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지만 가족들에 의해 다시 퇴짜를 맞는다. 자신의 기타도 이 와중에 망가진다. 결국 미구엘은 에르네스토의 무덤으로 가 기타를 훔치기로 한다. 미구엘은 에르네스토가 자신의 잃어버린 조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에르네스토의 기타와 자신의 기타가 똑같은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타를 잡았을 때 미구엘은 사후 세계로 떨어지게 된다. 이승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축복을 받아야 했는데, 그것을 위해 미구엘은 에르네스토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헥토르라는 청년을 만나 에르네스토를 찾아간다.
'죽은 자들의 날'은 멕시코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에 실제로 있는 명절이다. 이 날에 사람들은 세상을 떠났던 가족들의 사진과 유품을 자신들의 집의 제단에다가 놓고 그들을 추모한다고 한다. 그러면 죽은 가족들이 그 제단을 방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날은 아즈텍 사람들의 제사였던 '영혼의 축제'에서 유래한다. 아즈텍 사람들은 사람의 삶이 꿈에 지나지 않고 죽음을 통해 진정한 삶을 획득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라 아즈텍 사람들도 해마다 죽은 사람들을 분류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이 때 죽은 사람들이 이승을 방문해 제물에 따라 풍요나 저주를 내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코코>는 사후 세계를 주요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음에도 이승처럼 화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오히려 영화의 사후 세계는 이승보다 더 활기차 보인다. 조그만 마을로 묘사된 이승에 비하면, 사후 세계에는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공중에 철로를 깐 전차들이 돌아다니고, 이승과 사후 세계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검문하는 경찰들로 가득하다.
죽은 자들의 날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은 분위기뿐만이 아니다. <코코>는 죽은 자들의 날이 세상을 떠난 가족을 기억하는 날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이야기 전체를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나서는 여행으로 꾸며낸다. 이승에 생전의 사진이 없으면 사후 세계에 있어도 영원히 사라진다는 새로운 설정도 추가되었다. 헥토르가 미구엘과 협력했던 이유도 미구엘이 축복을 통해 이승에 복귀할 수 있었기에 자신의 사진을 이승에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낯선 것을 통해 익숙한 것을 드러내는 디즈니의 영리한 변주가 돋보이는 모습이다. 영화 초반까지는 미구엘이 사후 세계 속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들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미구엘이 한계를 딛고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다가, 영화 중반에 그 전략의 실체를 드러낸다. 드디어 미구엘이 에르네스토와 만나서 그의 축복을 받으려 했지만, 미구엘에게 다른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헥토르는 분노에 차서 에르네스토에 대한 진실을 폭로해버린 것이다.
미구엘은 그 폭로를 통해 에르네스토가 헥토르의 곡을 뺏고 헥토르를 독살한 점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헥토르는 자신의 증조할머니인 코코의 아버지, 즉 에르네스토가 아니라 헥토르가 자신의 잃어버린 조상이란 것, 그리고 미구엘이 좋아했던 에르네스토의 Remember Me라는 음악이 헥토르가 딸 코코에게 들려주고 싶어했던 음악이란 것을 고백한다. 헥토르는 시간이 지나고 더 이상 가족을 내버려둘 수는 없겠다 싶어서 에르네스토한테 가족에게 돌아가겠다고 선언해버린다. 그러나 에르네스토는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에르네스토는 헥토르의 곡이 없으면 공연을 못 하는 처지였다. 그래서 에르네스토가 헥토르를 독살하고 그의 곡을 뺏어서 인기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구엘의 가족들이 음악을 싫어하고 헥토르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헥토르가 꿈을 이루겠다고 가족을 버린 것도 괘씸하겠지만, 그가 죽어서 가족들에게 돌아왔단 점이 후손들에게도 큰 트라우마가 됐을 것이리라.
가족에 대한 기억, 여성들에 대한 기억, 이름 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
그들의 한을 안 모양인지 영화는 그 속에서 소중한 것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들에 대해서도 조명한다. 남편이 떠나고 난 뒤 구두 장사를 해서 미구엘의 집안을 구두 명가로 만든 마마 이멜다, 그것을 계승한 코코, 미구엘의 할머니, 그리고 그것을 계승했던 가문 속 수많은 이름 없는 여성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 중 마마 이멜다는 영화 속에서 해결사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한편 영화에는 프리다 칼로라고 하는 멕시코의 유명 화가도 나온다. 그녀는 생전에 여러 장애를 딛고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었지만, 남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의 여성 편력 때문에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다. 이 배경 지식이 프리다가 미구엘을 도와주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에르네스토에게도 남편의 모습이 보인 이상, 이제는 에르네스토에게 영원한 인생이 좌우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에르네스토가 자신의 자손이라 찾아오는 정체불명의 꼬마(미구엘)한테 어마어마한 호의를 베풀어줬던 장면은 그가 디에고 리베라처럼 여성 편력이 있었다는 점을 암시해주는 증거이다.
<코코> 속 여성들에게 보내는 찬사의 정점은 마침내 이승으로 돌아온 미구엘이 코코한테 Remember Me를 불러주는 순간에 나타난다. 마침내 헥토르가 가족을 버리고 음악을 하러 갔던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했던 바람이 가족들에게 전달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노래를 들은 코코는 노래를 부르면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찾고, 헥토르의 사진을 서랍에서 꺼내 미구엘에게 준다. 그 이후 헥토르는 다시 기억되어 사라지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당연히 가족들이 가지고 있었던 트라우마도 해결되어 더 이상 미구엘에게 음악을 그만 두란 소리를 하지 않게 된다. 한편 미구엘이 사후 세계까지 다녀오면서 겪었던 그 기묘한 여정은 헥토르뿐만 아니라 헥토르로 대표되는 수많은 이름 없는 뮤지션들, 그리고 가장이 실종된 가장을 이끌어나갔던 수많은 여성들을 다시 기억에 각인시킨다. 그리고 에르네스토를 통해 꿈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기억에 상처를 입히진 않았는지, 더 나아가서 누군가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하지는 않았는지를 자문하게 만든다.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 과연 미구엘은 행복해졌는가?
하지만 <코코>가 이름 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의 회복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미구엘의 행복에 대한 영화라면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영화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았던 장면. 미구엘과 헥토르가 에르네스토를 만나기 전, 그를 만나기 위해 음악 경연 대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 때 그는 죽은 사람의 분장을 하고 관중들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 때 미구엘의 얼굴에는 성취감이 넘쳤다. 문제는 이미 에르네스토가 꿈의 파괴적인 결과를 미구엘에게 보여준 이상, 그 성취감은 가족을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박탈이 되어야 한다. 꿈과 가족. 그 양쪽을 다 만족시키기 위해 영화는 미구엘과 헥토르의 음악을 가족과 그들을 기억하는 수단으로 바꾸는 전략을 선택한다. 그 예로 분장을 했을 때 미구엘이 불렀던 곡은 자신이 사랑에 미쳐 있다던가(Un Poco Loco), 세계가 나의 가족이라던가(The World Es Mi Familia) 하는 식으로 자신을 드러낸 곡이었다면, 이후 가족들 가운데에서 부르는 곡은 가족들에게 자신을 기억해달라던가(Remember Me), 가족들 안의 사랑은 영원할 거라는(Proud Corazon) 내용이었다.
아까도 이야기했듯 죽은 자들의 날은 아즈텍 사람들이 이승을 꿈으로, 사후 세계를 진짜 삶으로 생각했던 사고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이승에서 '가족'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미구엘이 진짜 모습인가, 아니면 비록 죽은 사람처럼 행세를 해야 했지만 처음 의도했던 대로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사후 세계에서의 모습이 미구엘의 진짜 모습인가. 영화가 지니고 있는 따뜻함은 애써 이 고민은 쓸모가 없다고 재빠르게 결론을 짓는 듯하지만, 사후 세계의 활기찬 모습, 미구엘이 처음 기타를 치면서 보여준 행복한 표정, 한때 자신을 구하러 온 마마 이멜다한테 "나는 음악을 해야 행복한데, 그걸 뺏으려고 하잖아요!"라고 일갈했었던 것을 보면 아직 미구엘 안에 있는 갈등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미구엘에게 가족들이 초반처럼 음악을 뺏은 거나 마찬가지의 상황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어른들의 비정한 세계는 에르네스토를 통해 폭로됐고, 그리고 그 모습이 미구엘을 이미 여정으로 이끈 동력으로 작용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날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지네마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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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10월 27일 개봉하는 작품 ‘아네트’의 돌비시네마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예술가들의 도시 LA,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는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린다. 함께 인생을 노래하는 두 사람에게 무대는 계속되지만, 그곳엔 빛과 어둠이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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