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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I2025-04-10 19:48:33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당신에게

영화 <룩백> 리뷰

!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감독) 오시야마 키요타카

주연) 카와이 유미, 요시다 미즈키

 

작년 9, 5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봉한다. 만화 천재 후지노와 그녀를 따르는 쿄모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룩백>이다일본 현지 반응이 심상치 않았으며, 국내에서도 성공한 애니메이션인 <체인소맨>의 원작자 후지모토 타츠키의 작품이기 때문에 <룩백>은 개봉 전부터 꽤나 큰 기대를 받았다. 개봉 직후부터 입소문을 탄 <룩백>은 탄탄한 팬층을 형성하며 30만 관객을 모집하는 큰 성과를 거둔다.

 

 

 

그렇다면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룩백>은 학교에서 네컷 만화를 연재하는 후지노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녀에게 만화는 잘하는 것정도이다. 친구들의 칭찬을 받으면서도 만화가가 되는 것을 열망하진 않는다. 그러던 그녀의 삶에 쿄모토가 등장한다. 쿄모토의 만화는 이렇다 할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구도와 묘사를 보았을 때 대단한 실력자가 그린 것만은 확실했다. 자극을 받은 후지노는 만화 그리기에 열중하지만 좁혀지지 않는 간격에 만화를 그만두어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후지노는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쿄모토의 집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열성팬인 쿄모토를 마주한다.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은 누군가에겐 평생의 과제일 것이다.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두 가지가 일치하기는 더욱이 어렵다. 재능이 있다고 믿은 분야에서 진짜 재능을 만나 벽을 느끼기도 하며, 좋아하는 일이 싫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후지노에게는 만화가 그러했을 것이다. 쿄모토의 만화를 본 그녀는 충격을 받는다. 그녀는 노력하지만 쿄모토를 따라잡지 못한다. 만화를 그만두는 후지노의 선택은 현실과의 타협이었다. 그러던 그녀의 앞에 나타난 쿄모토가 그녀의 오래된 팬임을 밝혔을 때, 후지노는 지금까진 없었던 새로운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후지노와 쿄모토는 공동 작업을 시작한다. 쿄모토는 후지노가 짜놓은 이야기 속의 배경을 그린다. 그들의 포지션은 그들의 관계성과도 닮아있다. 쿄모토는 후지노의 배경이다. 쿄모토는 후지노를 선망해왔다. 후지노의 방에서의 그들의 위치 또한 의도되어있다. 바닥에 앉아있는 쿄모토가 책상 앞 의자에 앉아있는 후지노의 등을 바라보는 구조인 것이다. 후지노의 입장에서 쿄모토는 자신을 빛내주는 사람이며,  든든한 지원자이자 팬이자 동기부여의 대상이다. 그녀는 이제 만화에만 몰두할 수 있다. 그녀의 배경은 풍요롭게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차 성장해간다. 그러면서 각자의 꿈을 키워나간다. 결국 후지노와 쿄모토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자연스럽게 쿄모토의 시선으로 시작된 Look Back의 주체는 후지노에게 넘겨진다. 쿄모토의 Look Back이 후지노의 등을 보는 것이라면, 후지노의 Look Back은 뒤를 돌아보는 것이다. 허나 책상 앞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뒤쪽은 신경쓰지 않아도 될 부분이다. 쿄모토는 항상 뒤에 있을 것이며 지금 집중해야하는 것은 눈 앞의 만화이다. 그런 그녀에게 쿄모토와의 이별은 아쉽지만 이겨낼 수 있는 사건이다. 그녀는 더이상 뒤돌지 않는다. 이젠 뒤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인기 작가가 된 후지노는 어느 날 한 가지 사건을 전해 듣는다. 쿄모토가 괴한의 습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충격에 빠진 후지노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녀가 그 날 쿄모토의 집에 가지 않았더라면, 쿄모토는 지금 살아있을 것이다. 그녀는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고 자책한다. 어쩌면 그녀가 뒤를 돌아보지 않은 건, 쿄모토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존재가 아닌 등을 내어줄만큼 믿을 수 있는 존재였고, 떨어진 후에도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후지노의 Look Back은 공간적 차원에서 시간적 차원으로 넘어간다.

 



후지노의 배경이 되어준 쿄모토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쿄모토와 함께한 시간들은 후지노의 삶에 생생히 남아있다. 후지노는 깨달았을 것이다. 쿄모토가 그린 배경은 훨씬 장대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이제 그녀는 쿄모토를 위해 만화를 그린다. 쿄모토가 그려준 배경에 어울릴만한 솜씨를 갖기 위해서, 그리고 쿄모토가 채워준 삶의 배경에서 씩씩하게 살아갈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후지노의 작업실 창문에는 네컷만화가 붙어있다. 그리고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시선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한 번 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 앞에 놓인다. 그 선택의 결과는 당장은 알 수 없으며, 우연과 필연 사이의 운명과 같은 사건들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통제할 수 없는 삶은 가혹하며,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고통을 수반한다. 그때 그 선택을 했더라면 또는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는 후회는 먼지보다도 작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의 눈은 앞만 볼 수 있어서, 뒤를 돌아보면 다시 앞을 볼 수 없다. 정확히는 원래는 앞이었던 뒤를 볼 수 없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오래 지속되면 내가 보는 방향이 앞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렇게 역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갉아먹으면서도 그것을 멈출 수 없다.

 

 

 

<룩백>은 공교롭게도 룩백(Look back)’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가 담긴 작품이다. 등을 본다는 의미에서의 <룩백>은 누군가의 뒤를 지켜준 이들에 대한 감사 표시일 수 있겠다. 부모님, 배우자, 은인 등 각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쿄모토가 그 대상일 것이다. 뒤를 돌아본다는 의미에서의 <룩백>은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놓친 것들에게 대해 후회하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이다.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뒷편의 모습들을 충분히 사유하고 기억하되, 그것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도로 다가왔다. 앞을 보고 살아왔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것들이 있었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다. 후지노는 자신이 쿄모토를 구하는 이야기를 만화를 통해 그려냈다. 후지모토 타츠키는 <룩백>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57분간의 짧은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작성자 . C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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