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파2025-04-15 00:58:45
용의자는 없습니다. 흥미로운 인물이 있을 뿐
넷플릭스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 버렸다> 리뷰
* 범인 스포 없음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 버렸다]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한 최악의 선택이다.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이걸 정주행하느라 이틀을 버렸다.
내가 많은 추리물을 본 것은 아니지만 최근 본 추리물 중에서는 가장 재밌는 추리물이다.
#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백악관의 총 관리자였던 윈터가 살해된다. 그를 중심으로 두고 백악관의 직원, 대통령, 유명 인사들의 관계와 그들의 진술들을 풀어나간다. 누구는 그에게 약점을 잡혔었고, 누구는 그가 재수 없어서 싫고 등등. 여러 증거들이 다양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대통령의 친구나 대통령의 말썽쟁이 가족들, 백악관의 직원들이 이 드라마의 용의자와 목격자가 되어 주기에 미국 정치 풍자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미국식 농담 개그들도 함께 이 추리물에 곁들어 있다. 사치와 패악을 부리는 낙하산 관리자들과 고통받는 직원들. 그들의 무능함이나 혹은 무례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웃음 포인트들이 된다.
또 기득권층을 가득 채우는 백인 남성들에 대한 풍자 개그들도 더러 있다. 아무것도 못하고 여성 탐정을 닦달하는 FBI, 경찰, 고위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의 추리를 그냥 통째로 무시해버리는 세계 최고 탐정의 우아함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 드라마의 연출

드라마의 연출이 상당히 신기하다. 추리물을 많이 본 편은 아니지만 보통 추리물은 탐정의 시선을 따라서 현재 탐정이 초점에 둔 사건 혹은 인물의 뒤를 캐면서 진행된다. 내가 보았던 나이브스 아웃이나 오리엔탈 특급 열차나 혹은 다른 추리물들도 비슷했다.
다만, 이 드라마는 마치 따지고 보면 미국 시트콤이나 혹은 다큐멘터리의 진행 방식과 닮았다.
어느 인물이 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사건에 관련 있는 모두가 사건에 대해 진술하는 방식이다. 탐정이 인터뷰나 조사를 어떻게 했는지를 타임라인으로 보기보다는 서로 다른 진술들을 퍼즐처럼 맞추어가는 형태다. 그렇기에 그전의 사건이 어땠는지를 시청자인 우리도 생각하며 보게 만든다.
또 이 드라마는 사건 현장인 백악관뿐만 아니라 청문회와도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백악관에서는 탐정이, 청문회에서는 탐정에게 취조 받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사건이 조금씩 해결되는데 탐정은 어디 있는지? 이 청문회 장면은 왜 나오는 건지? 이 또한 시청자들이 기다리고 볼 몫으로 남겨진다.
# 매력적인 탐정
코델리아 컵 탐정, 흑인 여성 탐정이고 위에서 말했듯 상당히 우아하다.
조류 관찰자? 탐색가?라서 탐조하는 것이 취미고, 수사 방식부터가 새들의 사냥 방식 혹은 생존방식에서 영감을 얻는다. 내가 추리물을 많이 안 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보통 잘난 탐정이 서민들을 무시하며 우리도 모르는 사이 퍼즐을 맞춰놓고 이것도 몰랐냐? 이 바보야? 하고 농락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인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탐정이 누누이 말한다.
"용의자는 없습니다. 흥미로운 사건 혹은 인물이 있을 뿐이죠."
그 말처럼, 탐정의 수사 방식은 한 사람 혹은 증거에 꽂히는 것이 아니다. 탐정은 최대한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은 사람과 만나며 그들의 진술을 기억한다. 설사 그들의 진술이 도대체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하는 것들도 많다. 예를 들면 피해자가 신중한 성격이어서 항상 문을 닫고 얘기를 했다든지, 대통령의 장모님이 술 중독이라든지, 그날 오기로 했던 가수가 안 왔다든지. 그러한 진술들을 자신의 노트에 차곡차곡 기록해둔다. 그들의 인상착의, 말하던 말투, 특기, 하다못해 방 안의 그림들까지.
팀장은 침착하고 그리고 우아하게 사람들을 심문한다. 탐정이 자주 쓰는 방식은 "침묵"인데 사람들 앞에서 침묵을 통해 그들이 찔려 하는 부분을 술술 불게 만든다. 반은 변명이고 반은 거짓말이지만 탐정은 그러한 거짓말 또한 차분히 들어주며 하나의 조각으로 삼는다.
맨 마지막에 가서야 처음에는 상관없어 보였던 모든 조각들이 모인다. 탐정은 그것을 천천히 맞춰나간다. 우리가 천 피스 퍼즐을 사서 바닥에 풀어놓으면 꼭 안 이어질 것 같은 퍼즐들이 난잡하게 되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조금 느리거나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정석적인 추리처럼 느껴졌다.
# 추리물이란
나는 추리물에 대한 편견이 좀 있다. 어릴 때 봤던 코난도 그렇고 조금이지만 봤던 셜록도 그렇고 전혀 모르겠는데 그들은 나름의 "트릭"을 발견했다며 기가 막히게 사건을 해결한다. 꼭 "저기 창틀에 물방울이 하나 있는 것을 보았어요. 아마 어제 새벽에 비가 왔는데 그때 미처 재킷을 털지 못한 스미스 씨가 아침에도 그것을 입고 와서 바쁘게 일을 하느라 미처 못 닦았던 그 물방울이겠죠?" 식으로 진행되니 그다지 명석하지 못한 내 입장에서는 이게 뭔가 싶다.
다만 이 사건은 조금 친절하게 그리고 천천히 진술을 모으면서 진행된다. 또한 추리물보다 코미디인가 싶을 정도로 캐릭터들이 웃기고, 또 누구 하나를 용의자로 선택하지 않아서 오히려 덜 긴장한 상태로 보게 된다. 이 드라마의 흐름에 나를 맡기다 보면 어느새 퍼즐이 모아져 있다. 아마 추리물의 놀라운 트릭이나 그들의 명석함, 혹은 천재적임을 기대했다면 코델리아 컵 탐정의 천재력은 조금 아쉬울 수 있으나 함께 풀어나가는 문제 풀이식 추리물 + 코미디를 원했다면 상당히 좋은 선택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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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끝없는 Why + 영화의 미래를 논하다.
제 25회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즈"부문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불의 딸들"
그리고 "시네필전주"부문 빔 벤더스 감독의 "룸666".
두 작품은 '페드로 코스타 + 빔 벤더스' 함께 묶여 상영되었습니다.
페드로 코스타 "불의 딸들"
시놉시스: 포고 화산 폭발로 인해 어린 세 자매는 뿔뿔이 흩어지지만 그들은 노래한다. 우리는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어찌하여 살아가고 고통을 받게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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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출신의 감독인 페드로 코스타가 선보이는 Experimental short(실험적인 숏 필름)로, 현재 그가 유럽에서 투어 중인 Canción de Pedro Costa 박물관 전시의 일부입니다.
9분밖에 되지 않는 매우 짧은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1951년 카보베르데 섬의 포구 산에서 발생한 화산폭발에서 시작합니다.
코스타는 한 화면에 세 명의 여성, 아델라이드, 클로틸드, 이로디나가 비아지오 마리니의 "파사칼리아 (Opus 22)" 편곡을 노래하는 서로 다른 컷 세개를 함께 배치하여 보여줍니다.
화면 속 여성들은 끊임없이 "왜?" 라는 물음을 본인 스스로에게, 후대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던집니다.
또한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 짧은 다큐멘터리 클립을 삽입하여, 관객들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왜?"라는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이처럼 끝없는 "Why?"를 통해 감독은 관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라는 단순한 질문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해야되지?"라는 물음까지 던집니다.
이처럼 그의 실험적인 영상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상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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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 "룸 666"
시놉시스: 1982년 칸 영화제, 전반적으로 암울한 분위기가 감돌고 영화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느낌이 곳곳에 퍼져 있다. 호텔 마르티네즈의 666호실. 고다르, 파스빈더, 스필버그, 안토니오니, 헤어조크 등의 감독들이 질문에 맞춰 대답한다. "영화는 곧 사라질 언어, 곧 죽어갈 예술인가?"
1980년대 텔레비전과 새로운 촬영기술, 장비 등의 등장으로 영화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습니다.
영화의 존폐가 걸린 변화.
이에 감독 빔 벤더스는 1982년 깐느영화제 당시 호텔의 666번방을 빌려 동료 감독들에게 "영화의 미래"에 대해 인터뷰를 하게됩니다.
프랑스영화 거장 장뤽고다르, 할리우드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이탈리아 영화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의 세계 각국의 감독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는 곧 사라질 언어, 곧 죽어갈 예술인가?"
이에 서로다른 견해를 보이는 감독들.
그들의 견해는 크게 몇가지로 나뉘어집니다.
1.영화는 죽을 것
영화감독인 나조차도 더이상 보지않는 영화를 미래에 누가 보겠냐며 약간은 회의적인 태도.
텔레비전이 더 재미있음.
영화는 너무나 짜여진 것이고, 진실된 캐릭터가 없다고 강조.
연극도 죽고, 소설도 죽었듯 이제 영화도 죽을 것이라고 보는 입장.
2.영화는 지속적일 것
텔레비전의 것들은 이야기가 없으므로 우리의 진실된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와 다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멀리서 큰 것을 바라보는 것과 가까이서 작은 것을 바라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므로, 영화인들이 텔레비전의 등장에 크게 두려워 할 필요없다라는 입장.
혹은 '디지털이나 자기 필름등 새로운 영화촬영 기법들을 수용하고 활용하여 발전하는 시선'에서 영화의 지속을 논함.
3.영화가 죽지는 않지만 성장하기 쉽지 않을 것
텔레비전 덕분에 보다 폭 넓은 영화의 보급이 이루어졌지만, 이에 반해 국제 경제적 인플레이션이 생김. 이제 점점 영화에 투자하는 비용들이 더 비싸 질 것이고, 그것이 영화제작에 발 목을 잡을 것임. 영화를 망치는 것은 기술 발전도, 감독도 아닌 영화를 제작하는데 'Yes or No'를 할 수 있는 권력자들이다.
4.필름 안쓰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야!
필름을 안쓰는 디지털 영화는 취급하지 않고, 디지털로 영화를 제작하지도 않을거라는 입장.
5.영화 기술 개발? 오히려 좋아.
필름(Pellicule)로 영화를 찍는것은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번거롭다.
이럴바엔 디지털? 오히려 좋을 수도.
과연 어떤 감독이 어떤 의견을 냈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얼마나 정확하게 영화의 미래를 내다보았을까요?
이처럼 "영화의 미래"를 두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견을 가진 감독들의 시선을 알아볼 수 있는 영화 "룸 666"입니다.
씨네랩 소속 기자로 제 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여한, 강예림 기자였습니다.
상영일정:
CGV 전주고사 3관 2024.05.03 11:00
CGV 전주고사 3관 2024.05.05 18:00
CGV 전주고사 2관 2024.05.10 10:30
영화제 일정:
2024.05.01-2024.05.10
"불의 딸들" 페드로 코스타 감독 인터뷰 참조: https://filmmakermagazine.com/123828-interview-pedro-costa-the-daughters-of-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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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터슨〉이 한국에서 나이를 먹는다면
감독이 자신의 부모를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작은새와 돼지씨〉는 여간해서는 거리두기가 어려운 영화다. 가사노동을 하는 작은새와 경비원으로 일하는 돼지씨는 오랫동안 부부로 살았다. 두 딸을 낳고 키웠고, 함께 슈퍼를 운영하며 생계를 이었다. 그들이 거주하는 소박한 아파트에는 그들이 함께한 세월이 묻어난다. 작은새와 돼지씨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떳떳하게 살아온 서민 부부의 전형이다.
작은새는 수줍음 많은 다정한 여자고 돼지씨는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호탕한 남자다. 여느 부부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기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한다. 배가 볼록 나온 돼지씨가 소파에 누워 작은새에게 발톱을 깎아달라고 하는 장면, 발에 가시가 박한 작은새가 돼지씨에게 이를 빼달라고 하는 장면, 넌지시 그리고 조심스럽게 상대에 대한 묵힌 불만을 털어놓는 장면 등등. 핵가족의 형태로 살아본 적 있는 사람은 이들 장면을 변주할 자신만의 수많은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낯설고 ‘민망한’ 장면도 있다. 사랑보다는 동지애로 살아가는 수많은 평범한 부부가 한때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었음을 일깨우는 장면 말이다. 영화에는 작은새와 돼지씨가 주고받은 연애편지가 소개된다. 간드러지는 표현으로 서로를 갈구하는 두 사람에게서 우리는 그들이 함께한 세월을 상상하게 된다. 더불어 각박한 현실을 함께 해치며 삶의 토대를 다져온 그들이 지금과는 영 다른(?) 감정을 주고받은 연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감정이 여전히 그들에게 소중히 간직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맺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성찰케 한다. 오래 지속되는 관계는 어떻게든 변한다. 여기에 어떻게 깊이를 더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둘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서로를 지탱하며 버텨온 작은새와 돼지씨의 관계는 여기에 작고 사랑스러운 참조점이 되어준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에 예술이 있다. 우리는 보통 새롭고 혁신적인 예술에만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확장해주는 예술 말이다. 그러나 예술의 가치는 하나가 아니다. 작은새와 돼지씨는 일상의 감정을 승화시키는 수단으로 예술을 한다. 작은새가 자기 내면을 표현한 서예와 그림, 돼지씨가 경비 노동을 하며 쓴 시는 예술의 가치가 하나가 아님을 보인다.
〈작은새와 돼지씨〉를 보며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미국에서 버스 기사로 일하는 패터슨이다. 그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고, 똑같은 버스를 운전하며, 같은 동료의 불평을 듣는다. 퇴근 후에는 아내의 실험적인(맛없는) 요리를 먹고, 어제 간 길로 개를 산책시키며, 어제와 같은 술집에 가서 어제와 같은 술을 마신다. 그러나 다른 것도 있다. 그는 매일 조금씩 다른 시간에 일어난다. 버스에 탄 승객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도 매일 달라진다. 동료의 불평 내용도 바뀐다. 아내는 매일 집을 새롭게 꾸미고, 그녀가 만든 머핀 위 하얀 설탕 물결도 매일같이 달라진다. 술집의 대화는 어제와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터슨은 매일 다른 시를 쓴다. 패터슨에게 시는 따분하고 지루해 보이는 일상을 평온하고 소박한 차이의 반복으로 인식하게끔 해주는 새로운 언어다.
아마도 패터슨이 한국에 산다면, 그가 나이를 먹는다면 작은새, 돼지씨와 닮은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이지만 예술을 통해 발견되지 않은 의미를 들춰내고 스스로를 빛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돼지씨와 작은새가 오래도록 예술과 함께 일상을 살아내기를, 그리하여 그들을 닮은 모든 가족의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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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마주친 연극
영화와 가장 비슷하고도 다른 예술,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에디터는 가장 먼저 ‘연극’이 떠올랐는데요.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도 연극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자주 보이곤 합니다.
무대 위를 오르는 배우를, 글을 적어내는 작가를, 극을 완성시키는 연출을 비추기도 하죠.
그럼, 영화 속 연극을 마주하러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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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렁하지만 유연하게
네오 소라의 <Happy End>는 제목 그대로 종국에 행복을 발견하는 영화다. 행복이 작은 불씨로 틔워진 채 영화는 막을 내리고, 관객은 아주 개운하지는 않는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중한 불씨를 횃불로 키우기 위한 고민이 현실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모든 영화는 끝이 있지만, 인류의 삶은 (멸망하지 않는 이상) 계속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이 되어 극장 바깥에서 다시 상영된다.
코우와 유타를 중심으로 한 다섯 명의 음악동아리원은 학교에서 유명한 사고뭉치다. 고3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듣기 위해 클럽을 드나들정도로 대담하며, 교장 선생님의 훈계에도 지지 않고 오히려 대들정도로 무모하다. 이들이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삶의 배경을 가졌기 때문이다. 재일한국인, 미국인, 중국계 일본인, 토종 일본인이 모인만큼, 고유한 개성이 섞여 마치 히피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존재감을 분출한다. 다양성은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지만, 의견을 모으는 데 큰 어려움이 생긴다는 단점이 있다. 코우와 유타 사이에서의 균열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이 히피클럽도 위기에 봉착한다.
클럽에 다녀온 새벽, 코우와 유타는 교장 선생님의 자동차를 세로로 세우는 기행을 저지른다. 교장 선생은 눈엣가시였던 히피클럽 무리를 불러 강하게 압박했고, 특히 재일 한국인인 코우에게 인간종의 차이를 운운하는 등 혐오 표현을 일삼으며 조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립이 계속되자, 동아리 방을 폐쇄하고 AI시스템 파놉티(Panopty)를 가동하여 카메라를 통해 학교 곳곳에서 학생들을 감시하고, 언행을 검열하도록 했다. 히피클럽원들은 동아리방이 폐쇄된 것에 분개하며 감시 시스템을 피해 클럽 앞으로 음악 장비를 옮기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코우는 힘을 보태면서도 교장의 모욕적인 언행에 큰 반항심을 느끼며 더 큰 움직임을 꾀한다.
코우의 반항심에 더 큰 불을 지핀 것은 총리의 긴급 담화문이었다. 수차례 울리는 지진 경보에 대국민 긴급사태조항을 발효하면서, 지진 때마다 불법 입국자와 범죄자들이 판을 쳤다는 기울어진 역사적 사실을 환기한다. 총리의 담화 이후로 교내 일본인과 비일본인을 분류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비일본인 학생들의 자유가 위협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은 좌시하지 않고 행동한다. 교장실을 점거하고 농성하며 판옵티의 철거를 요구한다. 코우가 사회를 바꾸려는 움직임에 힘을 쏟는 동안 순수 일본인인 유타는 방황한다. 코우와 멀어진 것이 속상하면서도 사회 시스템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비일본인 학생들의 농성이 성공하고, 교장은 강당에서 학생들에게 판옵티의 조건부 철회를 약속한다. 자동차 테러 주동자가 자수할 것. 교장의 발언을 두고 판옵티의 철회를 찬성하는 무리와 반대를 주장하는 무리가 갈라져 뒤엉킨 가운데, 유타는 본인의 혼자 저지른 소행이었음을 밝히고 퇴장한다. 이후 판옵티는 철거되고, 유타는 퇴학당한다. 코우와 유타는 졸업식을 마치고 화해하며 작은 화합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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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End>는 하이틴 주인공이 등장하는 여느 학원물처럼 성장 영화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환기시키는 역사,사회극의 내용을 담고 있다. AI 감시 시스템인 판옵티는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이 제시한 교도소 '판옵티콘'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며, 나아가 조지 오웰의 '1984' 빅브라더를 교내에 이식한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연결지을 수 있다. 또한 총리의 왜곡된 발언은 마치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려 학살을 자행했던 역사를 되풀이하는 방식과 비슷하며, 제국주의 시대 자국민 중심 정책을 펴는 독재자들을 연상케 한다. 먼미래 이른바 지구촌 사회가 도래하여 다인종이 하나의 국가에 공존하는 시대에, 획일화를 강조하며 폭력을 일삼는 현상은 반복됐다. 그러나 이들은 행동했고 자유를 쟁취했다. 더 기쁜 것은 인류의 미래인 학생들이 변화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이다.
지진 경보음은 위기감을 조성하면서 전국민을 미지의 공포로 밀어넣는다. 공동의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한 데 모이게 함과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일본인과 비일본일을 구분하며 분열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 코우의 자백은 큰 의미를 가진다. 기득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순수 일본인이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내려놓고 공동선을 위한 행동을 한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판옵티 철회라는 작은 변화에 불과할 뿐이지만, 넓은 차원에서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 유타와 비일본인 코우의 화해가 이를 암시한다. 이 작은 화합으로부터 내진설계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대판 싸워도 우스운 장난으로 풀어내는 남학생들처럼, 불안하게 흔들리지만 중심만은 지키고 있는 내진설계는 전인류적 공포인 지진을 효과적으로 방어한다.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게 흔들리는 이러한 태도는 다양성이 피어날 미래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유타와 코우가 일구어낸 작은 불씨를 마음 속에서 보살피며 우리의 횃불로 키워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사유하고 반추해야 한다.
딱딱한 것보다 물렁한 것이 더 잘 찌끄러지지만, 충격을 잘 흡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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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참석한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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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그 많던 모성은 누가 다 망쳤을까
이 영화의 제목, 두 가지 단어가 눈에 띕니다. 하나는 몽타주(Montage)입니다. 여러 장면을 이어 붙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영화 기법이지요.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몽타주에 관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다른 하나는 현대 모성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모성, 그중에서도 현대 모성에 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감히 확신하건대, 현대 모성의 진실에 관해 무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몽타주의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보다 현저히 적을 겁니다.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는 영화를 비롯한 이 시대의 창작물이 외면하고 있는 현대 모성의 순간들을 이어 붙인 홍콩 영화입니다. 같은 아시아 국가의 여성으로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들로 가득하죠. 알려지지 않은 현대 모성의 진실이 궁금하다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된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에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
Montages of a Modern Motherhood
Summary
'징'의 하루는 이른 새벽, 유축을 하고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긴 뒤 베이커리로 출근하는 것을 트래킹하는 유려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함께 시작된다. 까다로운 기질의 어린 딸 '칭'은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울고, 함께 사는 시부모와는 사사건건 육아 및 집안일로 부딪히며 배달 일을 하는 남편에게 육아는 '징'의 일을 잠시 돕는 것일 뿐이다. 단지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징'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며, '징'은 사회인으로 살아온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을 부정당하는 듯한 상황에 놓인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Cast
감독: 올리버 시쿠엔 찬
출연: 담선언, 노진업
현대 여성에게 요구되는 전근대의 모성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의 스토리라인은 간결합니다. 생후 6개월 된 아이를 양육하는 초보 엄마 '징'의 이야기죠. '징'은 젊은 나이에 10년의 경력을 쌓은 파티시에로, 아이를 갖기 위해 6년간 고군분투한 끝에 소중한 딸 '칭'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의 기쁨도 잠시, '징'은 점차 현대 사회에서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 일인지 깨닫지요.
'징'은 좋은 엄마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모유가 아이의 건강에 좋다는 말에 분유를 먹이려는 시어머니와 부딪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양육의 고됨 속에서도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를 짓고 마는, 분명한 모성이 엿보이는 사람이죠. 그러나 출산 후 변해버린 몸, 직장의 해고 통보, '여자는 그래야만 한다'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성화는 차츰 '징'을 엄마라는 그늘 속에 가두어 버립니다.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는 순간이 자꾸만 늘어나고, '징'은 모성과 자아 사이에서 세차게 흔들립니다. 불균형 속에서 바둥거리던 '징'은 결국 비극적인 선택에 이르고 맙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현대 엄마의 일상은 지독하고 가혹합니다. 한 생명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엄마에게 맡기고, 여성의 자아는 아무렇지 않게 몰살해 버리죠. 주변인들이 '징'에게 양육의 과업을 내맡기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궁과 가슴이 있어 아이를 낳고 품는 것이 엄마이고, 그렇기에 엄마들은 '원래부터' 희생해 왔다는 겁니다.
이렇듯 '징'과 같은 현대 아시아 여성들은 사회로부터 모성을 강요당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현대 여성에게 '과거의 모성'을 강요하지요. 오늘날의 여성들은 가정에만 얽매이지도, 남성의 품 안에서만 살아가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많은 현대 여성이 '원래부터'라는 말에 떠밀려 여전히 양육의 과업을 홀로 감내하고 있습니다.
'징'의 비극적인 선택에도 우리는 감히 그를 모성도 없는 매정한 엄마라고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서서히 그의 자아가 말살되는 과정을 지켜본 관객들은 알 수 있지요. 그 많던 모성을 망친 것은 여성 자신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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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의 진짜 이유를 고찰할 때
얼마 전, 두 눈으로 읽고도 믿지 못할 기사 헤드라인을 보았습니다. 국방부 산하 기관의 수장이 "여성도 군대에 가면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발언했다지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일하게 결혼과 출산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입니다. 정말 여성과 남성이 연을 맺을 기회가 없어서 결혼과 출산이 이토록 저조한 걸까요?
올리버 시쿠엔 찬 감독은 GV에서 "주변에서 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이 영화를 보여주라"고 말했습니다.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는 그만큼 출산 이후의 여성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렇지만 절제된 감정으로 담아내는 작품입니다. 과연 여성이 이러한 세상에서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겠느냐고, 냉소적으로 되묻고 있지요.
우리는 미디어에서 이처럼 직접적인 방식으로 현대 엄마, 현대 모성에 관해 드러내는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미디어는 현대 여성의 진화에도 여성의 진짜 현실을 쉽게 노출하지 않습니다. 모유를 먹이기 위해 출산 후에도 식단을 관리하고, 일하다가도 젖을 짜야 하고, 튼살이라는 영원한 흉터가 남고, 젖을 물리다가 유두에 상처가 나고, 재채기 한 번에 주르륵 소변이 흘러나오는, 출산한 여성이 마주하는 삶 말이죠. 이런 이야기들은 맘카페와 같은 엄마들의 익명 커뮤니티에서 폐쇄적으로 오갈 뿐입니다. 그렇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또 다시 여성의 영역 안에만 갇혀 버립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여성이 군대에 가면 출산율이 늘어날 거라는 안일한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진정으로 우리 사회를 오래도록 보전하고 싶다면, 현대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창작자의 고민도 깊어져야겠지요. 현실을 조각내어 예술(또는 콘텐츠)라는 대상으로 탈바꿈하는 창작자만이 현대 모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모성을 재생산하는 게으른 창작이 사라지길, 여성으로서 염원합니다.
One-Liner
이토록 부조리한 현대 사회에서 현대 모성이 어찌 찬란할 수 있겠는가.
Schedule in BIFF
2024.10.07(월) 영화의전당 소극장 16:00
2024.10.08(화) CGV센텀시티 3관 19:30
2024.10.10(목)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10관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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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 리뷰
사랑을 단념해야 하는 두 사람이 있다. 둘의 차이는 전 연인이 살아있느냐, 살아있지 않느냐 정도에 불과해 보인다. 당연히 살아온 시간과 환경이 다르니 다른 점은 더없이 많겠지만, 동네 주민들에게 둘은 그저 ‘이상한 사람’ 일뿐이다. 한 명은 새벽에 결혼식 비디오를 찾다가 난동을 피우기도 하며,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손님이 있는 저녁 식사 자리마저 순식간에 망쳐놓는 재주를 지녔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팻(브래들리 쿠퍼)은 이별의 계기가 썩 좋지 못했음에도 자신과 그가 천생연분이었다는 사실을 신봉한다. 접근금지 처분을 빠르게 극복해 불륜을 저지른 아내와 재결합하여 서로를 완전케 할 사랑에 다시 빠질 수 있으리라 철썩같이 믿는다. 그렇다면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는 어떤가? 그는 사별한 남편을 잃은 후 느낀 허망함과 우울에 자신을 세상에 내던졌던 나날을 느리게 갈무리하는 중이다.
사실, 영화의 장르가 로맨틱/코미디인 만큼 결론은 뻔하다. 두 사람은 두 시간 동안 여러 굴곡을 겪을 테고, 서로가 자신에게 완벽한 짝이라는 것을 발견하며 끝날 것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과 결이 다소 다르다. 남녀 주인공이 서로를 포용하는 과정은 그들이 겪은 상실과 우울의 치유 여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이상異常: 보통과 다른
이상하지 않은 상태란 무엇일까?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는 일이 전혀 없다는 걸 의미할까? 그렇다면 사랑에 빠진 상태도 어떠한 의미에선 이상한 일일 테고, 누군가와 결별하는 것 역시 안전한 보통의 나날을 영위하는 이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일 것이다. 그러하므로 이상과 정상은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경계가 있을지라도, 개개인의 세계관에 따라 달라지는 유동적인 상태라 볼 수 있을 터다. 물론, 그의 아버지인 패트리치오(로버트 드 니로)가 전 재산을 거는 도박 행위 역시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단 걸 생각해보면, 사회가 관용을 베푸는 이상과 정상의 경계조차 뚜렷하게 말하기 어렵겠지만.
어쨌든 영화 초반의 가장 큰 문제는 팻의 이상행동이 타인에게 위협적일 수 있다는 점이며 조울증으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랑을 쏟아부은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할 때, 우리는 대상에게 투여한 리비도를 회수해야 하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고. 또, 이 과정은 대개 순탄하지 않고, 현실 부정이나 대상에 대한 집착과 같은 강력한 반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고. 프로이트가 말한 애도에 대한 이론을 생각한다면 영화 초반의 팻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동네 주민에게 팻은 이미 오래전에 깨어져 돌이킬 수 없게 된 사랑을 어떻게든 붙여보려 하는 이상한 사람일지라도, 팻에게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이 안전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데에 집착하는 것이 당연하다. 팻은 어머니 때문에 일찍 집에 돌아왔을 뿐, 여전히 주기적으로 의사를 봐야 하는 환자이며 여전히 전처 니키와의 완벽한 사랑이 가능하리라는 환상 속에 사는 남자니까.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흔히 떠올리는 '이상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극단적인 기질을 지닌 인물이 여럿 등장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팻의 상실감 -혹은 상실에서 비롯된 우울이라는 일탈-을 이해하는 이는 극소수다. 팻의 어머니인 돌로레스(재키 위버)나 친구인 로니(존 오르티즈)는 친절하지만 사랑을 잃은 이가 유지하는 참담한 환상을 없애주진 못했다. 팻의 형인 제이크(셰어 위검)는 간만에 본 동생 앞에서 되려 우월감을 느끼기만 할 뿐이고, 아버지 패트리치오는 팻이 말썽을 피우지 않도록 집 안에 있을 것을 거듭 권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상실한 사랑, 토미로부터 벗어나던 티파니는 팻에게 거침없이 다가간다. 댄스 대회 파트너가 되어달라는 요청은 팻에게 이끌림을 느낀 티파니가 시간을 벌기 위한 방법이었던 게 분명한데, 그는 팻의 언어를 반복하며 유인한다. '니키를 위해서, ' '니키에게 당신이 더 좋아졌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니키에게 편지를 전하고 싶다면': 당신은 댄스대회에서 나의 파트너가 되어야만 해. 타인의 언어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티파니는 팻의 손에서 니키가 읽는다는 책을 앗아가고 춤을 가르침으로써 팻에게 자신의 언어를 체화시키기까지 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이상理想: 완전하고도 궁극적인
티파니가 아마추어 댄서였던 것은 팻에게나, 티파니에게나 큰 행운이었다. 실제로 우울증을 개선하는 데에 신체활동이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상에서 하지 않는 몸짓 언어를 개발시키는 과정에서 신체뿐만 아니라 정서/인지적 측면의 개발이 가능하다고 한다. 당장 니키에게 편지를 전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팻은 주기적으로 티파니와 댄스 연습을 하며 거부감 없이 우울증을 치료했던 셈이다. 특히 초반에는 연습만으로 기진맥진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영화 속에서 자세히 묘사되진 않았으나 체력적 요소 등으로 오로지 춤에만 매달려야만 했던 연습 초기엔 팻이 전처 니키를 떠올릴 겨를이 없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마 이러한 부분 역시 그가 상실한 대상에게서 벗어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반면 티파니는 팻이라는 사람을 통해 토미라고 하는 옛 연인에게 집중되어 있던 자신의 감정, 혹은 옛 연인에게 쏟아부었기에 이젠 오갈 길 없게 된 자신의 애정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특히 춤이라는 예술이 비언어적 표현에 기반한 소통 행위라는 것과 티파니가 날 선 말을 잘하는 캐릭터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팻과 다양한 감정을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 춤보다 더 좋은 수단을 찾긴 쉽지 않았을 듯하다.이렇듯 팻과 티파니는 최초의 끌림이 바로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고 지연된 덕분에, 둘은 더욱 어울리는 한 쌍으로 거듭났다. 다만, 이데아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기에, 현실을 사는 우리가 최선의 세상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하는 것처럼, 둘의 사랑이 영원토록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토미와 티파니의 사랑 역시 한때엔 이상적이었을 테고 니키와 팻 역시 그림 같은 커플이었던 시절이 존재했지 않은가. 그렇기에 영화의 결말부에서 둘의 행복한 결합이 그려졌다 해도 이 아름답고도 이상적인 사랑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우리는 모른다. 치유 과정 속에서 서로에게 상대방이 단 하나뿐인 사람이었을지라도 다시금 세상에 나갔을 때, 둘의 심경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이 둘이라면 영화 필름 밖에서도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으리라 믿게 되는 건 왜일까. 팻의 아버지가 말했듯 티파니가 팻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깊은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단지 그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둘은 댄스 대회에서 다른 경연자처럼 규격화된 음악과 안무를 택하지 않는 과감함을 지닌 이들이며, 5점에 아쉬움을 내비치지 않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호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다듬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팻과 티파니 개인의 어떠한 부분은, 두 사람이 함께 하자 긍정적인 시너지로 탈바꿈하였다. 타인 앞에서 굴하는 일이 없던 티파니에겐 팻이 비뚤어진 채로 서 있을 때 다가가 바로 설 수 있도록 돕는 힘이 있었고, 완전한 사랑을 믿던 팻에겐 티파니가 거짓으로 써준 답장을 모른 척 눈감아주는 이해심이 있었지 않은가. 심지어 로니 부부로 끝날 수 있었던 공동의 지인 역시 늘어나 단단하고도 따뜻한 안전망까지 넓어졌으니, 팻과 티파니는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리듬에 맞춰 '이상한' 사랑을 별 탈 없이 이어나갈 것만 같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세상에 나온 지도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다양한 변주로 관객을 기쁘게 하듯, '만남'이라고 뭉뚱그려지는 단어조차 유심히 살펴보면 동일한 사례는 하나도 없다. 손쉽게 둘의 마주침을 허용하는 운명도 있겠으나 일정 거리 밖에서 서성이며 자신이 안전한 사람임을 부단히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한 만남도 세상 어딘가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꼭 그만큼, 누군가에겐 멀리서 애써 찾아오는 인연이 있을지 모른다. 티파니가 팻의 동선을 알기 위해 그의 집에 전화를 걸고 똑같이 달려 나간 것처럼.
그러니 필연적인 우울이 길어져 힘겨워도 그대, 가끔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찬란한 한 줄기 햇빛은 오로지 당신만을 만나기 위해 일억오천만 킬로미터를 달려왔다. 다시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을 찰나의 위로, 어쩌면 당신의 짐을 덜어내고 당신을 바꿔놓을 가능성조차 외면하기엔 우리의 삶이 너무도,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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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파이럴> 티저 예고편
경찰서로 배달된 의문의 소포
그리고 시작된 경찰 연쇄살인
또 다른 살인이 시작되기 전 단서를 찾고 사건을 해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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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자마> 메인 예고편
18세기 말 스페인 식민지 남미의 한 벽지.
치안판사 자마는 스페인 국왕의 전근 발령을 초조하게 기다리지만 몇 년째 감감무소식이다.
“비쿠냐 포르토” 라는 도적떼에 대한 소문이 지역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는 가운데,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친 자마에게 유일한 도피처는 육체적 욕망을 탐닉하는 것뿐이다.